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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승객을 버린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항해사 등은 배가 곧 전복될 것이 명확한 시점에 인근의 유조선은 직접 구조가 어렵고 해경 경비정 1척만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승객들은 선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객들이 일제히 퇴선할 경우 구조 순위가 밀릴 것을 우려해 자기들이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다. 검찰은 어제 이준석 선장,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박기호 기관장을 살인죄 등으로 기소하는 등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을 기소했다. 이 선장 등 4명은 자신들의 행위로 죽음의 위험에 놓인 승객에 대한 구호 의무를 다하지 않음(부작위)으로써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최초 구조 신고부터 선원들이 배를 빠져나갈 때까지 51분의 시간이 있었다. 검찰은 이 시간 동안 최소 7차례 승객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승객에게 퇴선을 지시하는 최소한의 구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선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승객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선박 사고에서 검찰의 살인죄 기소는 두 번째다. 1970년 326명이 희생된 남영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엔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져 선장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다. 법원은 “배가 화물 과적이 심하긴 하지만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사고 후 배가 80도 이상 기울기까지 1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배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객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신수단도 있었다. 일부는 근무복까지 갈아입었다. 상황이 다르니 법원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선장은 당시 판단력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강 항해사에게 회사와 연락을 취하도록 했고, 김 항해사에게는 객실에 연락해 선내 대기 안내방송을 하도록 지시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승객 퇴선 준비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듣지 않은 반면 박 기관장에게는 기관사들을 모아 퇴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지금까지 수습된 사망자의 90% 이상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대피 준비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살릴 수도 있었던 승객은 죽든 말든 내버려두고 자기들 살 궁리만 했으니 살인 행위와 뭐가 다른가.}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16일 출석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유 씨의 장남 대균, 차남 혁기, 장녀 섬나 씨 등을 소환했으나 모두 불응했다. 검찰은 어제 대균 씨의 서울 서초구 염곡동 자택에 강제 진입해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으나 행방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혁기 씨와 섬나 씨는 미국에 머물며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제3국으로 이미 도피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유 씨의 지시로 유 씨의 자녀들과 측근들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잡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고한 인명 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세월호 참사의 정점에는 청해진해운의 선장이나 선원, 직원들이 아니라 이들을 부리며 회삿돈을 빼먹은 유 씨 일가가 있다. 유 씨가 소속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본산으로 알려진 금수원의 대표인 탤런트 전양자 씨 등 일부 측근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유 씨 일가는 의혹이 부당하다면 검찰에서 밝히면 된다. 소환 자체를 거부할 어떤 명분도 없다. 유 씨 일가에서는 “우리 집안은 이미 전쟁을 치러 봤다”며 결전을 불사할 분위기마저 감돈다고 한다. 유 씨와 대균 씨는 구원파 신도들을 방패막이 삼아 금수원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어제와 그제 찾아간 경기 안성의 금수원에는 신도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접근을 막았다. 만약 두 사람이 신도들 뒤에 숨어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분노만 더욱 키울 뿐이다. 유 씨가 1991년 오대양 사건의 재수사로 검찰에 소환될 때 일부 신도는 언론사 등에 몰려다니며 거센 저항을 했다. 이번에도 청해진해운 계열사 관련자들이 대검찰청이나 인천지검으로 소환될 때마다 신도들이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고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인 유 씨는 탄압받는 종교 교주로 행세해 해외 여론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신흥 종교집단의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검찰은 신도들과의 불필요한 충돌로 수사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검찰은 아직 유 씨 일가의 소재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해외에 머무는 혁기 씨와 섬나 씨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사법공조로 이들의 국내 송환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쉽게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국내에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유 씨와 대균 씨에 대해 최대한 신속히 조사가 이뤄지도록 검찰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 학생이 보낸 최후의 메시지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사고 전후 탑승객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분석해 그제 공개한 것이다. 학생은 그 시간 이후에도 부모에게 메시지를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이 세월호가 이승과 교신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보름쯤 전 공개된 오전 10시 17분의 또 다른 메시지를 기억한다. 그것도 단원고 학생이 보냈다.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는 다른 방송은 안 나와요”라는 내용이었다. 난 당시 한국일보 1면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간직하고 있다. ‘AM 10시 17분 마지막 카톡’이라는 글자 아래 배가 100도 가까이 기울어 이미 절반 넘게 잠긴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설명과 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화가 치밀어 한참을 서성거려야 했다. 잔인한 4월이었다. 어른이란 게 부끄러운 4월이었다. 우리 속에 이준석 같은 무책임은 없는가, 우리 속에 유병언 같은 탐욕은 없는가, 우리 속에 해경 같은 무능함은 없는가 묻는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조금씩은 이준석이고, 조금씩은 유병언이고, 조금씩은 해경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정도의 차이다. 그 차이가 합법과 불법을 가르고 도덕과 비도덕을 가른다. 그 차이를 구별하지 않으면 자학(自虐)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우리 모두 치료가 필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천민 자본주의적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라고 천민 자본주의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간 ‘한겨레21’은 이번 주 커버 사진에 ‘우리는 아직 세월호에 타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하자는 반성의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修辭)로서나 통하는 말이다. 한 사회의 각 분야는 똑같은 정도로 합리적이지도, 똑같은 정도로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사회는 불균등하게 발전한다. 어디는 앞서가고 어디는 뒤처져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착륙 사고 당시 침착한 대응으로 인명 피해를 크게 줄여 칭찬을 받았다. 항공사는 정기적으로 실물크기 모형 비행기를 물 위에 띄워놓고 실제 비상 상황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한다. 1년에 안전교육비로 고작 54만 원을 지급한 청해진해운과는 다르다. 과거 사고에도 불구하고 해운회사처럼 뒤처진 곳이 있고 과거 사고에서 배워 항공사처럼 앞서 가는 곳도 있다. 그것이 우리가 희망을 갖는 근거다. 연안 여객선을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뒤처진 교통수단인지를 느낄 것이다. 뭍에서 섬까지 한두 시간 가는 배만 있을 때는 그냥 넘어갔다고 치자. 수백 명의 승객과 수천 t의 화물을 싣고 1박 2일을 가는 배라면 더이상 우리가 아는 연안 여객선이 아니다. 카페리도 크루즈도 화물선도 아닌 것이 카페리와 크루즈와 화물선 역할을 다 하면서도 연안 여객선에 적용된 낡은 관행에 따라 취급된 것이 사고의 먼 원인이다. 큰 사고는 대개 새로운 것이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분노하라. 그러나 해결은 차가운 이성으로 추구해야 한다. 세월호가 도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물을 너무 넓게 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을뿐더러 잡아도 건져 올릴 수 없다. 지도자라면 어디가 앞서고 어디가 뒤처져 있는지 구별하고 뒤처진 곳에 그물을 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재야도 국가 개조를 얘기한다. 다 좋다. 그러나 디테일이 없다면 참사는 되풀이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나이지리아에서 한 여학교의 10대 여학생 276명이 지난달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보코하람’에 집단 납치됐다. 보코하람의 두목 셰카우가 인터넷으로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학교가 서구화 교육을 한다는 게 납치 이유다. 그는 여학생들을 강제로 결혼시키기 위해 시장에 내다 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는 물이 증발돼서 내리는 게 아니다’ ‘지구는 둥글지 않다’ 같은 걸 교리라고 내세운다. 창과 칼은 고사하고 돌도끼나 어울릴 것 같은 인간이 총을 들고 있다는 게 비극의 원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세네갈을 방문했을 때 부인 미셸 여사는 한 여학교를 찾았다. 그는 “아버지가 내 대학 학비를 대주기 위해 마다하지 않은 힘든 노동이 내가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공부한 동기가 됐고 결국 내 꿈을 이루게 했다”고 말했다. 검은 피부의 미셸이 검은 피부의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환영받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미셸은 “여러분들은 전 세계의 여학생들을 위한 롤 모델”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미셸이 그들의 롤 모델이었다. ▷지난해 16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다가 탈레반에게 피격 당했다. 말랄라는 11세 때 탈레반의 여학교 폐쇄령에 저항하는 글을 영국 BBC를 통해 용감하게 공개한 후 탈레반의 표적이 됐다. 말랄라는 피격으로 두개골 일부와 왼쪽 청각을 잃었지만 유엔 총회에서 감동적인 연설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탈레반은 우리를 침묵시켰다고 생각할 겁니다. 틀렸습니다. 그들은 저의 인생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똑같은 말랄라입니다. 저의 희망은 같습니다. 저의 꿈도 같습니다…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문맹 빈곤 테러에 맞서 싸우기 위해 펜과 책을 듭시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하나의 펜, 한 권의 책이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말랄라가 한 말이 바로 나이지리아 여학생들을 구하고 그들의 꿈을 되찾아 주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는 이유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세월호 사고 21일째인 어제 50대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선체에 로프를 매서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려고 오전 6시 6분경 입수했다가 11분 뒤 수심 24m 지점에서 통신이 끊겨 급히 구조됐으나 의식을 잃었다. 이 씨는 피로가 누적된 잠수사들을 대체하기 위해 이날 처음 입수했다가 변을 당했다. 30년 경력의 잠수사인 고인은 2인 1조로 잠수하는 수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 입수했다. 해양경찰청 측은 실종자를 찾으러 수심 40m까지 내려갈 때는 2명이 함께 가지만 수심 20m대에서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작업은 관행적으로 혼자 입수한다고 밝혔다. 안전수칙을 어겨 참사가 일어난 세월호 현장에서 또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다니 참담하다. 더구나 현장 바지선에 군의관이 있었다면 곧바로 긴급구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 조치에 미흡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또 놓쳤으니, 우리는 불과 21일 전 참사에서 배운 점이 없단 말인가. 고인은 대를 이은 잠수사였다. 해경이 새로 모집한 민간 잠수사 중 한 명이었으나 잠수는 민간 구난 업체 언딘의 관할 아래 했다. 고인의 죽음을 놓고 해경과 언딘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못 볼 노릇이다. 세월호 수색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잠수병을 호소하거나 부상을 입는 잠수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초대형 태풍을 뚫고 정전된 40층 건물에 들어가 휴대전화 조명 하나에 의지하면서 사람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최악의 맹골수도에서 잠수사들은 자기 자식을 찾는 심정으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구조 활동을 벌이던 한주호 준위가 생명을 잃었다. 세월호의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잠수사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사고대책본부는 고군분투하는 잠수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작업 여건을 개선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가 안전과 관련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국회는 해상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항로표지법 개정안, 수학여행 등 학생들의 단체 활동에 안전대책 수립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을 의결했다. 규제 철폐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안전 및 환경 관련 제품이 의무적으로 획득하도록 돼 있는 강제 인증은 더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규제 완화 대상에서 빼겠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안전 관련 규제는 지금처럼 놔두거나 더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제는 만들고 부족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한국해운조합이 선임하는 운항관리자들은 선박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 비상훈련 실시 여부 등을 감시 감독한다. 세월호는 이런 사항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아 참사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현행 해운법에 따르면 운항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다. 법의 맹점(盲點)을 보완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규제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규제가 미비해서라기보다는 있는 규제를 잘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측면이 크다. 국내 여객선은 열흘에 한 번 비상훈련을 하도록 돼 있다. 세월호는 이 규정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비상훈련을 제대로 하도록 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을 뒀다면 참사를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큰 사건만 터지면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규제 강화로 이어지는 것도 적폐(積弊)의 일종이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관료들이 지키지도 못할 엉터리 규제를 잔뜩 만들어놓고 퇴임 후 협회 등으로 내려가 그 규제들을 활용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행태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관예우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규제 강화에 앞서 정부 부처와 산하 단체의 유착 관계부터 없애야 한다. 안전 입법과 관련한 국회의 전문성도 의심스럽다. 현행 해운법으로 운항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은 국회가 2년 전 해운법을 개정하면서 운항관리자 처벌 조항을 부주의로 빼놓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공무원은 규제 강화를 반기게 마련이다. 규제의 벽이 높아진 만큼 규제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재량과 권한도 커진다. 국회와 정부가 규제 강화에 골몰하다 보면 관료 개혁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물 건너갈 수 있다. 또 한 번의 졸속 규제가 아닌, 지킬 수 있는 제대로 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를 보고받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해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 선실 구석구석을 뒤지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정확한 상황 보고에 기초한 지시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그것은 뭘 모르는 지시였다. 세월호는 선실 구석구석은 고사하고 선실 입구에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의지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방법을 알아야 한다.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다. 총리도 장관도 될 수 없다. 재난 구조는 일반적 지식으로는 안 된다. 전문적인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대통령 총리 장관은 컨트롤타워를 지원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 컨트롤타워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나는 1995년 같은 해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빌딩 폭파 사고를 둘 다 현장에서 취재했다. 두 사고의 컨트롤타워는 너무 달랐다. 삼풍백화점 사고의 컨트롤타워는 정치인 출신의 서울시장이었다. 사고 직후 무너진 백화점 지하로부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연기를 내버려두면 생존자가 질식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장은 물을 뿌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연기가 더 많이 올라왔다. 전문가를 자처한 어떤 사람이 와서 소방거품을 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이번에 소방거품을 뿌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또 다른 전문가가 달려와서는 소방거품은 생존자에게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폭파 사고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 소방대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9·11테러 당시 뉴욕 시 소방대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과 똑같다. 그는 생존자 구출을 위해 생존자의 다리를 잘라야 하는 힘든 결정도 여러 차례 내렸다. 그는 구조 현장에 들어가고 나올 때가 기자들과 접촉하는 유일한 시간이었지만 언론을 통해 상황을 알리는데도 최선을 다했다. 며칠 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희생자 추도 예배가 인근에서 열렸다. 예배 참석자의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구조견을 앞세운 소방대원들이었다. 소방대장은 예배 때도 현장을 지키느라 오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현장의 구조 컨트롤타워는 누구였는가. 애초 이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해경 장비기술국장이 나와서 브리핑하는 것을 보면서 해양경찰청장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최근에야 한 해군 대령에게 자문해 해양경찰청장이 지휘한다는 공식 설명이 나왔다. 그러나 김석균 청장의 이력을 보면 잠수 근처에도 가본 것 같지 않다. 그 역시 구조작업을 지원할 적임자인지는 모르지만 구조작업을 지휘할 적임자는 아니다. 해경청장에게 조언을 한다는 해군 대령이 25일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해난구조대(SSU) 대장이다. 그가 상황을 설명하자 구조작업을 비난하던 실종자 가족들이 비로소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컨트롤타워를 해야 한다면 그가 컨트롤타워여야 할 사람이다. 높은 사람이 컨트롤타워를 맡을수록 좋다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촌각을 다투는 재난 구조는 지휘체계를 초(超)단순화해야 한다. 실질적 컨트롤타워 위에 옥상옥(屋上屋)을 만들어놓으니까 선내 진입이 72시간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아닐까. 생환자는 아직 제로다. 구조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본래부터 침몰한 배 속에 에어포켓도 생존자도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생존자가 있었으나 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최소한 남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에는 박 대통령부터 컨트롤타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고 지휘와 지원도 명확히 구별하지 못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 일본에 도착해 2박 3일의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그의 일본 방문은 세 번째지만 국빈 방문은 처음이다. 일본 국빈 방문은 일왕 부부가 거처인 고쿄(皇居)에서 영접하는 환영행사, 일왕 부부와의 궁중 회견과 만찬, 일왕 부부가 국빈의 숙소로 나와 하는 작별인사 등 4가지를 포함한다. 이게 모두 이뤄지려면 국빈이 최소 2박 3일 일본에 머물러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빈이 아니어도 좋다며 1박 체류를 원했지만 일본의 끈질긴 외교적 노력으로 2박으로 결정됐다. ▷외교적 실리에 밝은 나라일수록 강대국에는 비굴하고 약소국에는 거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1박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일왕이 직접 나서 동일본 대지진 때의 지원에 감사한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국빈으로 대접하고 싶다고 전해 국빈 방문이 이뤄졌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 미셸 여사와 동행하지 않아 충분한 호의를 베풀지는 않았다. 미셸 여사의 불참에 일본에선 “무시당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일본은 국빈 방문 비용도 철저히 따진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국빈 방문은 한 번에 약 2500만 엔(약 2억5000만 원)의 예산이 든다. 예산 문제로 국빈은 1년에 2번 정도밖에 초대할 수 없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센카쿠(尖閣) 열도가 미일수호조약의 대상이라는 점을 공동문서로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벌써 ‘일본은 미국의 정치적 첩(妾)’이라는 내용의 거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은 들인 돈 이상의 대가는 얻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마치고 25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중일 간 쟁점인 센카쿠 열도와는 달리, 한일 간 쟁점인 독도 문제는 의제에 오르지도 않는다. 미국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 시도에 비판적이지만 독도 문제에는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이 독도에 시비 거는 빌미를 제공한 데는 미국 책임도 없지 않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유감스러운 대목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그제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 내용은 이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선회한 시각이 16일 오전 8시 48분. 8시 55분 제주VTS에 “배가 넘어간다”고 통보한 뒤 10시 45분 선체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그들은 뱃사람으로서의 직업윤리는커녕 최소한의 양심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마저 저버린 모습이었다. 세월호는 출항 시 고정시켜 놓은 제주VTS와의 교신 채널을 진도VTS 해역에 들어서면 바꿔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 최초 교신을 제주와 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진도VTS와의 교신이 12분이나 늦어졌다. 진도VTS는 세월호에 승객 탈출을 결정하라고 거듭 재촉했지만 세월호는 “구조대가 언제 오느냐” “탈출시키면 바로 구조가 되느냐”고만 되물었다. 진도VTS와 교신이 시작된 후 12분이 지났을 때 세월호는 이미 50도 이상 기운 것으로 나온다. 이 정도면 이미 절벽과 같은 기울기여서 사람이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힘든 상태다. 사고 직후부터 30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대형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게 아닌가. 선장 이준석 씨는 퇴선(탈출)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교신 내용에선 그런 흔적이 없다. 승무원들이 워키토키를 통해 10여 차례 승객을 탈출시킬지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고 한다. 통상 매뉴얼대로 ‘구명조끼를 입고 제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방송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배가 침몰할 무렵엔 해경만이 아니라 민간 어선 40여 척도 구조 활동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내리기만 해도 살 수 있었다.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대부분은 사고 직후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브리지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만 다니는 통로를 이용해 모두 탈출한 것도 모르고 순진한 학생들은 공포 속에서도 안내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키다 배와 함께 침몰했다. 이번 참사는 ‘모두의 잘못’이랄 수 없다. 이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때 선장이 배와 운명을 같이한 이후 이것이 ‘전통’이 됐지만 최근 2년 사이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선장이 승객들을 침몰선에 버려놓고 제일 먼저 달아난 일이 벌어졌다”며 “자랑스러운 국제적 전통을 깬 것이어서 해양 전문가들에게는 충격이다”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그 자체도 어처구니없지만 사고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제 살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이 선장과 선원의 영혼을 지녔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쿠데타는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다. 트로츠키가 없었다면 러시아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레닌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느 순간에 어느 방식으로 권력을 탈취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레닌이 혁명의 시기를 저울질하며 망설이는 동안 ‘쿠데타의 기술자’ 트로츠키는 핵심 시설을 장악하기 위해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너무 신속하고 정확해서 볼셰비키는 한동안 권력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지도 몰랐다. 레닌마저도 24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국가 전복의 기술, 즉 쿠데타의 기술에 관한 책이다. 공산주의 이념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은 이 책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혁명이든 뭐든 본질은 쿠데타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다시 살아나 러시아혁명을 분석한다는 느낌이 든다. 쿠데타(coup d'´etat)란 말의 원조는 프랑스다.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이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로 불린다. 나폴레옹 이래 쿠데타는 왕조 시대의 권력 찬탈과 달리 법의 준수와 법의 파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프랑스혁명의 아들이기도 했던 나폴레옹도 공화국 법과 의회 절차를 준수하면서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환상에 빠졌다. 나폴레옹이 최종적 순간에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의회를 습격하긴 했지만 그 환상 때문에 애초의 권력 장악이라는 목표를 몇 차례나 물거품으로 만들 뻔했다. 나폴레옹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란음모는 일종의 쿠데타 음모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유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지만 KT 혜화지사나 평택 물류기지 등을 특정해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쿠데타의 기술적 측면에 해당한다. 오늘날은 지하철에 앉아 ‘쿠데타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버젓이 가진 이 책을 읽어도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아무도 잡아가지는 않지만 이 책이 1930년대 처음 나왔을 당시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금서 중의 금서가 됐다. 오늘날에도 트로츠키를 숭배하는 유럽의 극좌파는 자본주의 국가 전복을 꿈꾼다. 저자 쿠르치오 말라파르테(1898∼1957)는 마키아벨리의 먼 후예쯤 되는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이 책으로 체포돼 3년간 섬 유배생활을 했다. 이탈리아 작가가 정치적 음모에 연루된 게 아니라 순전히 작품 때문에 처벌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이 실제 음모가적 기질이 있어 이 책은 더 실감난다. 그는 일찍이 파시즘 운동을 추종했으나 무솔리니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공산주의 운동에 경도됐지만 죽기 직전까지 공산당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책은 말라파르테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현대적 고전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볼프강 카프 등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와 바우어 내각의 대응도 흥미로운 분석이다. 스페인 프랑코,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의 파시스트 쿠데타를 분석했다. 해박한 지식과 살아있는 경험이 결합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전남 진도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잠수부들이 처음으로 바다에 잠겨 있는 배의 화물칸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지만 아직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구조 작업을 통해 한 명이라도 살아온다면 그 한 명이 자기 자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종자 가족들은 사흘 밤낮을 현장에서 새웠다. 설령 자기 아이가 아니라도 꺼져가는 희망을 되살려준 데 대해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오늘로 세월호 침몰 이후 나흘째로 접어든다. 만 사흘(72시간)을 넘기면 선체 내 에어포켓에 산소가 희박해져 사람이 호흡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잠수부들이 어제부터 선내에 산소를 주입하고 있지만 필요한 곳에 산소가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침몰 이후 수면 밖으로 나와 있던 선수의 끝 부분이 물속으로 가라앉아 불안감을 더했다. 구조대는 공기 주머니를 부착해 선수를 인위적으로 띄우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자신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살아 있을지 모를 승객들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다다를 시점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1분 1초가 급한 실종자 가족들은 직접 바닷속에 뛰어들어 구조에 나서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잠수부들도 잠도 못 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잠수부가 실제 잠수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번에 길어야 30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사고 해역은 조류가 빨라 잠수부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악조건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초기에 사태를 근거 없이 낙관해 민군경(民軍警)을 막론하고 전국 최고의 잠수부들을 모으는 작업이 늦어졌다. 잠수부들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들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지휘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조 작업은 처음에는 해양경찰청장이 지휘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해군참모총장이 지휘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바닷속 구조 작업은 정밀한 상호협력이 필수적인데도 지휘부가 허둥지둥대다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고도 그렇지만 구조 작업 역시 후진국형이 아닌가. 실종자 가족들은 “제발 아이들을 살려내 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구조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침몰한 세월호 어딘가에는 어른들의 도움을 바라며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이틀째 뼈 속을 파고드는 추운 바닷물에 잠겨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느꼈을 죽음의 공포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누군가는 기적처럼 살아오기를 전 국민이 간절히 기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을 방문하고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전날 정홍원 국무총리의 방문에 가족들이 터뜨렸던 울분은 ‘대통령이 내 자식 살려 달라’는 간절한 호소로 변했다. “정부가 이틀 동안 한 일이 뭐가 있느냐” “해상 구조하는 것을 못 봤다. 이게 국가냐” “우리가 속아도 너무 속았다”는 고함도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구조 현황을 신속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관계 장관이 모두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강조하자 가족들은 비로소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꿀 만큼 ‘국민 안전’을 국정 목표로 제시한 박 대통령이다. 그 정부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은 더 분노하는 것이다. 누가 저 어린 생명을 앗아갔는가.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앞으로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번 참사는 인재(人災)다. 3등 항해사 조타수가 굽은 협수로에서 뱃머리를 급격히 돌리는 바람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이후의 대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다. 선장과 선원들과 선주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국민은 지금 정부를 한층 원망하고 있다. 이들을 감독하고 재난대처에 철저하라고 세금을 바치는 것이 아닌가. 사고가 난 16일 오전 9시 45분 강병규 안행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지만 숫자도 제대로 못 세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참사가 발생한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탑승객 수와 실종자 수가 계속 바뀌었다. 해운법은 여객선 승선자는 이름 연락처 등을 명시한 승선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관리 감독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틀릴 수는 없다. 더구나 안행부는 대형사고 위험이 있는 유도선·여객선 안전관리 실태 점검 등 행락철 안전 집중관리대책을 공언하며 11일 보도자료까지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대책을 내놓은 지 5일 만에 여객선 침몰사고가 터졌다. 범정부 차원의 안전대책은 늘 그렇듯 탁상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직후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도 오전 11시까지 “피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니 초동단계부터 사고 대처에 적극적 선제적으로 나섰을 리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잘못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날려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가 뒤늦게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혼선이 계속되자 어제서야 전남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정부사고대책본부를 꾸려 정 총리가 총괄에 나섰을 정도다. 교육부는 수학여행 안내지침에 수학여행 참여 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정해 놓았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불과해 지키는 학교가 드물다. 제주도나 해외 수학여행이 늘면서 학생들이 여객선이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빈도도 늘고 있으나 자동차에 대한 안전 매뉴얼만 있지 선박이나 비행기 등에 대한 지침은 없다. 그러고는 이번 사고가 나자 수학여행을 당분간 전면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전형적 뒷북 행정이다. 국제 여객선은 국제기구에서 한 달에 두세 번 비상훈련 점검을 하고 이 훈련에 응하지 않으면 아예 운항을 못하게 한다. 국내 여객선도 법에는 10일에 한 번 비상훈련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인 해수부와 해양경찰청이 제대로 감독을 안 하고, 선사(船社)들이 감독에 불응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 세월호의 구명벌(천막처럼 퍼지는 구명보트)은 46개 가운데 1개만 펴졌고, 구명조끼도 270개로 승객 수보다 적은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배가 올해 2월 선박 정기 검사를 버젓이 통과했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검사 통과에 비리는 없었는지 의심스럽다. 1분 1초가 안타까운데 어제 기상 악화로 실종자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어 국민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고 있다. 추가 구조자가 이틀째 없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1993년 292명을 희생시킨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그런 후진국형 사고는 다시 없을 줄 알았다. 19세기 박제가는 ‘북학의’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배가 중국 배에 비해 얼마나 형편없는지 설명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조선업이 세계 1위에 올랐다지만 배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19세기에 머문 듯하다. 하드웨어는 발전했으나 이를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과 국민의식은 발전하지 못했다. 그 대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이 치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을 ‘안전 국치일(國恥日)’로 삼아, 이 부끄러운 나라를 미래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기초선거 무공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새누리당은 공천을 하고 새정치연합은 하지 않는 불공정 게임이 될 경우 내부 반발이 얼마나 셀지도, 그것을 뚫고 나갈 역량을 스스로 갖추었는지도 가늠하지 못한 정치인이라면 성장 가능성이 의심스럽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하겠다고 청와대로 무작정 뚜벅뚜벅 찾아가는 꼴이라니 제1야당 대표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돈키호테적 시도는 우리 정치판에서 약속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 안 대표가 말한 새 정치는 기초선거 무공천이 아니다. 그의 새 정치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말한다. 단지 기초선거 무공천은 모든 정당이 약속한 것이니까 이것부터 실천하자는 의미였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이 쉬운 말귀를 어른들이 못 알아듣는 척 의도적인 왜곡이 난무했다. 옛 신문을 검색해 보시라. 기초선거 무공천은 공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시도지사들이 맨 먼저 건의한 것이다. 그것을 거의 전 언론이 지지했고 모든 대선 후보가 받아들여 공약으로 내놓았다. 모두가 약속한 것이기에 가장 쉽게 실천될 줄 알았던 약속이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오자 도토리만 한 이익 앞에 손바닥처럼 쉽게 뒤집혔다. 이것이 정치판의 파렴치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최경환 원내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은 ‘나쁜 약속’이라고 했다. 그의 보스인 박근혜 대통령 후보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지지했던 기초선거 무공천이 이제 와서 왜 나빠졌는지 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바보였던가. 백보 양보해 설혹 그것이 나쁜 약속이더라도 약속할 때와 이행할 때 사이에 중요한 사정(事情) 변경이 없는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선이다. 그것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약속의 의미이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약속의 의미다. 약속을 깬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과하고 입 닥치는 것이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둘러싼 상황은 본래 새누리당이 먼저 약속을 저버리고 민주당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가는 것이었다. 때로는 새누리당이 먼저 약속을 깨고 때로는 민주당이 먼저 약속을 깨는 차이는 있지만 돌아가는 게 늘 그런 식이었다. 이런 판에 편승하면 새 정치와 모순 관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안 대표가 끼어들어 원칙대로 하자고 주장했을 때 언론조차도 익숙해져서 새삼 의제로 삼지도 않던 헌 정치의 모습이 새롭게 부각됐을 뿐이다. 독일 사민당(SPD)은 공약을 지키기 위해 주(州) 선거에 이기고도 정권을 포기한 적이 있다. 내가 유럽 특파원 때 있었던 일이라 잘 기억한다. 2008년 안드레아 입실란티 헤센 주 SPD 위원장은 좌파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공약하고 주 선거에서 이겼다. 그러나 녹색당과만의 연정으로는 정부를 구성할 수 없자 좌파당과의 연정을 모색했다. 이에 다그마어 메츠거 등 헤센 주 SPD 의원 4명은 공약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끝까지 좌파당과의 연정에 반대했다. 결국 SPD는 선거에 이겨 놓고도 의석수가 모자라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결국 재선거가 치러졌고 기민당(CDU)이 승리했다. 정당의 존재 목적은 집권이다. 메츠거 의원 등은 SPD 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들을 살려준 것은 독일 국민이었다. 독일 국민은 입실란티 위원장이 좌파당과의 연정을 모색하자 SPD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추락한 신뢰도 때문에 입실란티 위원장을 지지한 강경파 쿠르트 베크 당수가 결국 물러났다. SPD는 다시 온건파 프란츠 뮌터페링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것이 지금 지그마어 가브리엘 체제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것은 어디서나 깨어 있는 국민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의 박모 씨(42)와 경북 칠곡의 임모 씨(36)에게 1심에서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울산에선 여덟 살배기 여자아이가 계모에게 갈비뼈가 14개나 부러질 만큼 맞아서 죽고, 칠곡에선 열두 살짜리 언니가 여덟 살인 동생을 죽였다는 죄를 계모 대신 뒤집어쓸 뻔했던 사건이다. 엄마, 엄마 부르며 울다가 죽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식 가진 사람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국민의 정서에 비하면 두 계모에게 내려진 처벌은 턱없이 가볍다. 법조문과 양형기준에만 사로잡힌 판검사들이 두 계모의 극악한 죄질을 선고형량에 충분히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울산지검은 아이가 당한 폭행이 심하고, 폭행 직후 사망한 점 등을 고려해 계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대해 울산지법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살인죄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동학대는 일반 상해나 상해치사보다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크고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된 점 등을 고려했다”는 판결 이유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칠곡 계모에 대해 대구지검은 여덟 살인 A 양이 계모의 폭행 이틀 뒤 복막염으로 숨졌기 때문에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검찰은 “싸우다 때렸다”는 A 양 언니의 거짓 자백만 믿고 언니를 상해치사의 주범으로 기소했다. 계모에 대해서는 A 양을 ‘한 차례’ 때린 혐의로만 기소했다가 최근 법정 비공개 증인신문에서 수차례 발로 밟아 살해한 사실을 알아냈으니 부실 수사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성인이 살인 의도를 부인해도 살인죄가 인정되고, 대부분 무기징역형이 선고된다고 울산지검은 밝혔다. 방어 능력 없는 어린아이가 성인에게 폭행을 당할 때는 ‘죽을 수도 있다’고 예견할 수 있는데도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법정서와 어긋난다. 법원은 아동학대 살인의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황제 노역’ 사건도 법조인들이 육법전서만 들여다보고 일당 5억 원이라는,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려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특권 의식 속에 국민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판검사들은 구름 속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동학대가 더이상 집안일이 아니라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것이 시급하듯, 법조계도 국민의 법감정을 제대로 알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8일 영국 런던 도서전에서 ‘문학과 역사’란 주제로 강연을 하다 이런 말을 했다. “난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사는 것처럼 늘 역사의 중압감에 눌려 살았고 그걸 작품으로 써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작가의 역사적 책임을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살기에 비유하는 것은 흔치 않다. 황석영이 실제 사나운 마누라를 겪어봐서 저런 말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황석영의 첫 번째 부인은 소설 ‘깃발’을 쓴 작가 홍희담이다. 이혼한 후에도 동지처럼 지낸 것을 보면 사나운 마누라 계열은 아닌 것 같다. 지금 같이 사는 여성은 황석영이 드라마 대본 ‘장길산’을 집필할 때 보조로 일하던 20년 연하의 방송작가다. 황석영은 이 방송작가 때문에 재미무용가 출신의 두 번째 부인과 이혼소송까지 갔다. 그의 사나운 마누라가 정확히 누구였든 사나운 마누라와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역사의 중압감에 비교하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처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달리 강의료도 받지 않고 가르쳤다. 돈도 벌어오지 않는 늙은 소크라테스에게 30년 이상 연하의 크산티페가 물세례를 퍼부은 걸 이해할 만하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게 아내에 대해 물었더니 “말을 타려면 거친 말을 타고 배우는 걸세. 그 여자를 견딜 수 있으면 천하에 견뎌내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사나운 마누라는 영어로 ‘shrewish wife’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Taming of the Shrew)’는 ‘성질 사나운 여자 길들이기’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셰익스피어는 주인공 캐서린을 ‘크산티페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은 여자’라고 표현한다. 황석영의 사나운 마누라는 한반도의 반쪽인 북한을 의미할 수도 있다. 북쪽의 사나운 마누라와는 현실의 마누라와 달리 이혼할 수도 없다. 길들이기도 쉽지 않다. 분단국에서 사는 작가의 복잡한 심정을 토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경북 칠곡에서 계모 임모 씨(35)가 여덟 살 동생을 발로 차 죽게 한 것을 보고도 “내가 동생 인형을 뺏으려다 죽였다”고 거짓 자백했던 12세 여자 아이의 사연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 이 여자 아이는 “계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동생처럼 죽을지 몰라 무서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계모는 여자 아이의 동생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방에 가뒀다. 갇힌 동생이 방문을 긁자 계모는 화가 나 동생을 발로 짓밟았다. 폭행을 당한 동생이 배가 아파 밥을 먹지 못하자 계모는 다시 발로 차고 밤새도록 벌을 세웠다. 동생은 결국 내장 파열로 사망했다. 아이는 변호인의 도움으로 계모와 떨어져 살게 되자 비로소 판사에게 “(계모를) 사형시켜 주세요”라는 편지를 썼다. 아이가 느꼈던 공포와 울분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학대는 학교 담임교사와 이웃 주민들까지 눈치 챌 정도로 심각했다. 아동보호기관의 상담사들이 신고를 받고 아이들을 직접 만났다. 그러나 아이들이 계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학대를 부인하는 말만 듣고 그냥 돌아갔다. 동생의 담임교사는 “신고까지 했는데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니는 계모로부터 당한 학대를 경찰에 직접 신고한 적도 있었지만 보호를 받지 못했다. 아동보호기관과 경찰이 적절하게 대처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죽음이어서 안타깝다. 지난해 울산에서는 계모 박모 씨(40)가 8세 여자 아이의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 숨지게 한 ‘서현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아이가 포항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유치원 교사가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지만 이 기관은 엄마가 계모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반성문 한 장 받는 것으로 끝냈다. 아이가 울산으로 이사 간 후에는 그쪽 보호기관에 알려주지도 않았다. 울산 계모 사건을 계기로 일명 ‘서현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범죄 등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돼 9월 시행된다. 앞으로 아동학대 치사는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법원의 새로운 아동학대 치사죄 양형기준은 최고 징역 9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동은 자기방어 능력이 없다.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동 학대 사망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법원의 양형기준을 일반 살인죄 수준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요즘은 속기학원도 찾기 힘들지만 우연히 ‘속기학원’ 간판을 볼 때마다 녹음을 할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속기를 할까 궁금증이 든다. 속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귀를 스쳐 흘러가 버리는 음성보다는 종이에 고정된 문자가 활용도가 높다. 녹음을 해봐야 녹취록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녹취록을 만드는 데 다시 속기사가 개입하므로 처음부터 속기를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낫다. 디지털 시대에도 속기는 활용도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에는 공판조서란 게 있어서 재판 과정을 기록한다. 조서는 모든 진술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치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빼고 요약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가 말한 것과 다르게 기재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당사자는 정정을 요청할 수 있는데 그 근거가 모든 진술을 그대로 기록하는 속기록이다. 물론 속기사가 작성하는 속기록은 어디까지나 보조이고 법원사무관이 작성하는 조서가 중심이다. ▷속기의 역사는 녹음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사소송에서는 그렇지 않다. 1995년부터 법정에 본격적으로 속기와 녹음이 도입됐다. 다만 최근까지는 녹음이 기술적으로 번잡해 속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확하기로는 속기보다 녹음이다. 속기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로 빠뜨릴 수 있다. 속기사가 자기 검열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빼는 것도 있다. 가령 법관의 막말 같은 것이다. ▷꼭 법관의 막말을 가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과거보다 훨씬 예민해진 사건 당사자의 시비에 대비하는 데 녹음만 한 것은 없다. 대법원은 내년부터 전국 법원의 모든 재판과정을 녹음하도록 하는 법정녹음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법관의 판단에 의하거나 사건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한다. 녹음과 속기는 선택적이어서 녹음을 하면 속기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은 아예 녹음된 자료로 공판조서를 대체해 조서 작성에 필요한 인력을 줄일 계획까지 갖고 있다. 문자 중심의 법정이 음성 중심의 법원으로 가는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느낌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헌법재판소의 야간 시위 금지 한정위헌 결정을 보면서 헌재의 월권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보다 유연하게 고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 법 조항을 무효화한 뒤 나머지는 국회에 맡기는 통상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밤 12시 이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로 바꿔 적용하도록 했다. 보통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법조문이 불명확해 자의적 해석의 소지가 있고 그런 해석이 기본권을 침해할 때 내려진다. 그러나 야간 시위 금지 한정위헌 결정은 말만 한정위헌 결정이지 기존 한정위헌 결정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의 뜻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무슨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밤 12시로 바꾼 것은 법 조항의 해석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법 조항 자체를 변경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국민은 앞으로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밤 12시 이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새겨들어야 한다. 헌재의 의도는 만약 일몰이 오후 6시이고 일출이 오전 6시라고 한다면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시위를 불허하는 것은 위헌이고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시위를 불허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즉 집시법 10조는 위헌인 부분과 합헌인 부분이 모두 포함돼 있고 헌재는 위헌인 부분에 한정해 위헌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한정위헌 결정이 왜 문제인가 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야간 시위의 전면 금지가 위헌이어서 일부 허용하더라도 그 시간을 몇 시로 정해 허용할지는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는 그 시간을 오후 10시나 11시로, 혹은 오전 1시로 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헌재는 밤 12시 이전으로는 정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버렸다. 밤 12시라는 시간이 자의적일 뿐 아니라 시간을 정해 야간 시위를 제한하는 방식 자체가 월권이다. 국회는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를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 허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단서를 추가해 시위를 허용할 수도 있다. 헌재가 국회에 준 재량이라고는 고작 밤 12시 이후 몇 시로 할지만 정하라는 것 정도다. 헌재는 단순한 위헌 결정을 해서 집시법 10조를 무효화하면 법 개정 전까지 야간 시위가 전면 허용되는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에 한정위헌 결정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폭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시위는 현행법으로도 사전 차단할 수 있으므로 밤 12시까지는 시위를 허용해도 염려할 게 없다는 게 헌재의 논리다. 똑같이 시야가 제한되는 야간인데 밤 12시까지는 되고 그 이후는 안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3명의 헌재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통해 주장했듯이 위헌 결정을 한다면 그냥 단순한 위헌 결정을 했어야 한다. 이번 결정이 특별히 문제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정위헌 결정 자체가 법에 근거가 없는 꼼수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래 위헌법률심판은 법 조항 자체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지 법 조항의 해석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한정위헌 결정은 법조문의 최종 해석권을 가진 대법원과 충돌한다. 꼼수를 내버려두니 헌재가 이제는 사실상 법조문을 변경해 국회 입법권까지 침해하고 있다. 헌재는 헌법 정신의 큰 틀을 제시하는 곳이다. 좁쌀영감처럼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것은 헌재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고작 재판관 9명에 불과한 헌재가 입법의 세부적인 것까지 결정해 지도하려 하지 말고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겨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장학관 친구를 한 달 전쯤 만났다. 올해부터 방과후 돌봄 교육을 초등 1, 2학년 희망자 모두에게 확대해야 하는데 예산이 모자라 다른 예산을 돌려 배정해야 할 처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각 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취학 전 아동 누리과정을 5세에서 3, 4세까지로 확대하느라 이미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교육청은 돈이 없어 학교시설을 제때 개선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강사도 많이 해고했다. 올해는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들의 퇴직금을 줄 형편이 못돼 신임교사 발령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누리과정과 돌봄 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중앙정부가 도입한 것이다. 지자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똑같이 실시하는 것이다. 무상급식만 해도 지자체별로 결정한 것이고 예산도 지자체가 스스로 마련한다. 그러나 누리과정과 돌봄 교육은 중앙정부가 결정한 것이고 예산을 지자체에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친구의 불만은 정부가 충분한 예산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 공약을 실천한다는 생색만 내고 있다는 것이다. 뒷감당은 안중에도 없는 여야의 무상서비스 경쟁은 4년 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등 야권의 무상급식 공약에서 시작됐다. 이해찬 전 총리의 말처럼 이것은 보편적 복지를 팔기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그 미끼를 물어 누리과정 같은 전국적 서비스로 확대한 것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다. 그러나 무상급식이라는 첫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누리과정 등 그 다음 단추가 모두 잘못 끼워지게 됐다. 무상급식과 일률적 누리과정 지원은 글로벌 관행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복지에서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프랑스를 보자. 난 2009년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급식비로 1년에 약 500유로를 냈다. 내 소득은 중간 정도의 등급을 받았다. 최고 등급을 받으면 약 750유로를 내야 한다. 물론 최저 등급을 받으면 거의 내지 않는다. 프랑스의 급식비 구조는 빈곤층에는 매월 아동수당에다 무료에 가까운 급식을 제공하고, 중산층에는 매월 지급한 아동수당을 급식비로 대부분 환수해가고, 부유층에는 아동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급식비도 모두 내게 하는 것이다. 교사는 급식비 청구서를 봉투에 담아 아이를 통해 학부모에게 전해주고, 학부모는 봉투에 수표를 넣어 아이를 통해 교사에게 보낸다. 차등적인 급식비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면 대부분의 프랑스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는 터무니없는 얘기가 된다. 이런 구조는 학교 급식만이 아니라 유치원과 어린이집 이용요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초중학교에서 누구에게도 급식비를 받지 않는다. 누리과정 지원비는 올해 1인당 22만 원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준다. 현실적으로는 이 돈으로 다 감당이 안 돼서 2016년까지 30만 원으로 올리도록 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부유층과 중산층에는 안 받던 급식비를 받고 빈곤층은 당장이라도 돈을 더 낼 필요 없이 누리과정을 다니게 하는 것이 옳다. 무상으로 돌봄 교육을 받던 초등 3학년 이상 차상위계층 학생들이 앞으로 돈을 내야 한다는 보도를 얼마 전에 봤다. 돌봄 교육을 초등 1, 2학년 희망자 모두에게로 확대하면서 예산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무상급식 도입 이후 첫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용감하고 책임 있는 지방선거 후보라면 잘못된 보편적 복지의 구조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말했다. 어제는 “대통령이 왜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하느냐고 하는데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불타는 애국심’과 ‘사생결단’을 강조했다. 관료사회의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에 답답해하는 대통령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는 표현은 ‘미제(美帝)는 우리의 원쑤’라는 북한의 섬뜩한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인수위 시절 ‘손톱 밑 가시’에 규제를 비유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쳐부술 원수’는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격조 있는 표현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말에서 갑자기 이질감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진도개 정신으로 업무를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끝장을 볼 각오로 일하라는 뜻이겠지만 살벌한 표현이다. 재벌 총수가 사장단 회의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나 할까. 나랏일은 사기업의 일과 달리 공공성이 중요하다. 일을 하다가도 공공성에 어긋나면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증거 조작 의혹 사건도 진도개 정신으로만 달리다 벌어진 일일 수 있다. 뜻은 단호해도 여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휘호를 즐겨 썼다. 황무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시절, 한국인을 하나로 모아준 강한 정신의 표현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선거 유세 때 “당신 할 수 있어(You can do it)”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하면 된다’와 ‘당신 할 수 있어’라는 말은 같은 뜻이지만 후자가 현대인의 정서에 좀더 편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언어의 묘미다. 박 대통령은 절제되고도 적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질을 보여줬다.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통일은 대박’이란 말은 청소년도 이해할 만큼 의미를 잘 전달한 표현이다. 대통령의 비유는 국민 사이에 회자되는 법이다. 박 대통령이 “규제는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 덩어리”라고 말하자 민주당에서 곧바로 패러디해 “국정원이 나라의 암 덩어리”라고 받아쳤을 정도다. 대통령의 말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무릎을 치게 할 정도의 통찰력이나 감각을 보여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