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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떤 파동은 운명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모든 자유를 뺏기고도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가 된 뮤지컬 ‘일 테노레’의 주인공 윤이선의 삶 자체도 그러하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된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윤이선 역을 맡은 배우 박은태(43) 역시 “내게 뮤지컬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17일 저녁 공연을 막 끝낸 그를 극장 인근 스튜디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은 1930년대 경성에서 오페라에 빠진 의대생 윤이선과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이 저마다의 꿈을 좇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 오페라의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테너 이인선(1906∼1960)의 삶을 재창작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작으로 윤이선 역은 박은태와 배우 홍광호, 서경수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박은태와 윤이선의 간절했던 20대 시절은 묘한 평행이론을 달린다. 공부만 아는 모범생이 돌연 음악에 영혼을 뺏기며 인생을 베팅하는 점에서다. 한양대 경영학부에 다니던 박은태는 학업과 공연을 병행하느라 입학 9년 만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허당’인 것마저 닮아 감정이입이 잘된다”고 했다. 이어 “이선과 달리 나의 부모님은 다행히도 꿈을 지지해줬는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돼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깨달았다. 만약 아이가 노래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릴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오페라를 향했던 윤이선의 마음은 시간이 흘러 사랑에 대한 간절함으로도 확장된다. 박은태는 인생에서 가장 간절했던 순간으로 걸그룹 ‘파파야’ 멤버 출신인 아내를 짝사랑했을 때와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를 꼽았다. 그는 “그때의 간절함을 마음에 품고 첫 대사를 읊으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작두 타듯 연기하게 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작품은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공연은 ‘꿈의 무게’ 등 19세기 오페라적 선율이 가미된 넘버들로 이뤄졌다. 이날 공연에서 박은태의 투명한 미성은 18인조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그렇지만 미성을 가진 그에게 테너라는 배역은 자기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일이었다. “화통 삶아먹은 큰 성량의 목소리를 타고나지 못해 출연을 주저했어요. 그러다 이인선 씨가 ‘동양의 스키파’라고 불렸던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감을 얻었죠. 티토 스키파는 미성으로 유명했던 20세기 테너예요. 1막 마지막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지만 ‘내가 스키파다’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겨우 진정시킵니다.” 이번 공연에선 그가 15년간 갈고닦은 성악적 기량을 들려준다. 베이스, 바리톤에 한정된 음역대가 콤플렉스였던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성악 훈련을 받으며 테너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내가 이토록 소중한 관객을 만날 자격이 있는가’를 거듭 고민했고 음악, 연기 공부에 매진했다”며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2년 전부턴 일상의 낙이던 퇴근길 맥주 한잔도 끊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는 줄었다”고 했다. 자정까지 이어진 인터뷰에도 그에게선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공부밖에 모르던 경영학도에서 대극장 주연 배우까지 오게 된 순수한 열정만이 느껴졌다. 어느덧 19년 차 배우가 된 그에게는 얼마만 한 꿈의 무게가 남았을까. “여전히 무대마다 죽을 만큼 떨리고, 컨디션 관리에 매몰돼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땐 자괴감이 들어요. 그렇지만 뮤지컬은 수천억과도 맞바꿀 수 없어요. 80대가 돼서도 노래하는 것, 그게 제게 남은 꿈입니다.” 다음 달 25일까지, 8만∼1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사진)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제96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 예측했다. 17일(현지 시간) NYT는 ‘다음 주 누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고 누가 떨어질까’ 기사를 통해 오는 23일 발표되는 아카데미상 부문별 예상 후보를 소개했다. 작품상 부문에서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비롯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 그레타 거위그 감독의 ‘바비’ 등을 후보로 꼽았다. NYT의 예측은 이달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상과 크리틱스초이스상 결과, 미국 배우조합상·제작자조합상·감독조합상의 후보 지명 결과 등에 기반했다. 앞서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등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고목을 배경으로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가 어깨를 맞대고 바위처럼 서 있다. 고도를 기다리던 이들 앞에 포조(김학철)와 짐꾼 럭키(박정자)가 등장하고, 네 사람은 무의미한 말을 떠들어대며 겨우 시간을 때운다. 한참이 지나도 포조가 “어째 떠날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하자 고고는 낭창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한다. “그게 인생이죠.”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으로 주인공 고고와 디디가 고도라는 실체 없는 인물을 50여 년간 기다리는 부조리극이다. 국내에서는 극단 산울림이 1969년부터 50년간 1500회가량 공연한 뒤 연극 ‘라스트 세션’ 등을 만든 파크컴퍼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제작했다. 연기 경력 도합 227년에 달하는 네 배우가 단일 캐스트로 출연한다. 공연은 단조로운 조명 아래, 음악도 없이 2시간 10분간 이어진다. 난해한 희곡대로라면 관객에게도 이는 버티기 힘든 긴 시간일지 모른다. 맥락 없는 만담을 주고받으며 관성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장면이 계속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로배우들은 ‘고도를 기다려 본’ 내공을 살려 파편화된 대화를 잘 짜인 퍼즐처럼 소화해 낸다.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울림 큰 발성과 뛰어난 암기력이 황무지 같은 무대 세트와 대비를 이뤘다. 기승전결이 없는 서사임에도 희극과 비극을 수없이 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에는 배우들의 공력이 큰 역할을 한다. 이완과 수축이 적절히 안배된 두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연기에선 끝없는 기다림에서 비롯한 옅은 희망과 무력감이 동시에 배어났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실감하려는 듯 고고와 디디가 신발 한 켤레로 우스꽝스럽게 시간을 때우는 장면에선 연민 섞인 웃음이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이 실험적 연극을 끝까지 감내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막 후반부는 백 마디 통속적인 격려보다 묵직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이 짓 더는 못하겠다”는 고고의 말에 디디는 “다들 하는 소리”라고 짤막히 답한다. 객석에 앉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버티는 삶을 함께 살고 있음을 곱씹게 만든다. 다음 달 18일까지. 5만5000∼7만7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열두 살의 로커가 전자 기타로 강렬한 선율을 뽑아내자 관객은 마치 지미 헨드릭스를 보듯 환호했다. 12명의 10대 청소년들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며 2000석짜리 대극장을 로큰롤의 열기로 가득 채웠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가 12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해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록밴드에서 퇴출당한 주인공 듀이가 교사인 친구를 사칭해 명문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다룬다. 이번 공연의 ‘로큰롤 스피릿’을 완성한 존 릭비 뮤직슈퍼바이저(55)와 벤 졸레스키 록코치(33)를 개막 당일 극장에서 만났다. 공연은 2003년 발표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에 사용된 ‘School of Rock’ 등 음악 3곡에 웨버가 14곡을 별도로 작곡했다. 웨버와 28년 넘게 협업한 릭비는 “웨버에게는 확실히 ‘록 DNA’가 있다”고 웃었다. 이어 “‘오페라의 유령’ 넘버에서도 록 보컬이 요구되는 등 뮤지컬에 꾸준히 록을 접목시켜왔다”며 “이번 작품에선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명곡 ‘Satisfaction’ 리듬을 탬버린으로 표현하는 등 더 여실히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일반 뮤지컬과 달리 ‘스쿨 오브 락’은 무대 위 배우들이 직접 록 음악을 연주한다. 악기 연주를 총괄 지도하는 록코치(rock coach)가 투입된 이유다. 졸레스키는 기타, 피아노, 플루트, 색소폰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만능 연주자다. 그는 “어린 배우들을 보며 학교 친구들과 처음 밴드를 꾸렸던 열네 살 시절이 떠올랐다. 실망과 좌절에 익숙한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정답만을 요구하기보다 격려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극을 이끄는 배우들은 11∼14세로 평균 연령 12.5세의 아이들이다. 잭 역을 맡은 해리 처칠 군은 지난해 ‘브리튼스 갓 탤런트’ 준결승에 진출한 음악 신동. 두 사람이 이들에게 무엇보다 바란 건 ‘자유롭게 즐기기’였다. 졸레스키는 “헤드뱅잉하며 기타 치기 등 로큰롤 동작을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음악에 온몸으로 빠져듦으로써 관객과 에너지를 주고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토벤이 이런 말을 했죠. ‘가슴에서 나온 건 가슴으로 돌아간다.’ 이성이 감성을 쉽게 막아서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가슴에 가깝게 행동해요. 어린 배우들은 ‘네 목소리를 찾으라’는 공연의 메시지를 관객들의 마음에 누구보다 잘 전달할 겁니다.”(존 릭비)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팝과 K드라마가 세상을 강타하기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콘텐츠에 두 눈을 반짝였던 사람이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등 동시대 한국 문학을 전 세계 출판사들에 소개한 저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은 국제 출판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저자가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보고 느낀 감상을 담은 에세이다. 한옥과 고층빌딩이 뒤섞인 서울 종로부터 북한이 내다보이는 비무장지대(DMZ), 해녀들을 조우한 제주까지…. 저자는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한다. 한국은 한(恨)과 흥(興)과 정(情)이 빚어낸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하며 한국 구석구석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독자라면 생각지 못했을 우리나라의 숨은 행복을 길어 올린다. 부산을 여행하는 동안 대중목욕탕을 찾은 저자는 “서양 사람은 느긋하게 쉬도록 설득하는 게 쉽지 않지만 한국에선 다르다. 대형 스파 시설이 있기 때문”이라며 “찜질방에 가면 편히 쉬면서 몸을 돌보는 이들을 볼 수 있다”고 예찬한다. 국민 스포츠로 꼽히는 등산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자연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가족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라고 치켜세운다. 국내 유명 작가들로부터 얻은 한식 조리법 10가지도 소소한 볼거리다. 서양인에겐 낯설지 모를 보말죽, 된장찌개를 음미하며 감탄을 거듭한 저자의 한식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장편소설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가 “소박하기에 더욱 각별한 음식”이라 소개한 계란 간장밥, 신경숙 작가가 저자를 위해 밥상에 차려준 고기만두 등 각 장의 마지막마다 짧은 레시피를 실었다. 다만, 한국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아쉽다. 저자는 “한국 이력서의 첫 번째 질문은 ‘부모님이 누구신가’로, 직업 관련 경험보다 가족에 대한 정보가 더 중요하다”고 썼다. 각종 출신에 대한 공식적 요구가 사라진 요즘 경향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푸른 용의 해’를 맞아 다채로운 전통음악 공연이 잇따라 펼쳐진다. 정효문화재단과 서울남산국악당이 주최하고 동아일보, 문화체육관광부 등 7개 단체가 후원하는 신년음악회 ‘한일전통음악의 흥과 멋’이 16일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다. 일본의 유명 샤미센(전통 현악기) 연주자 혼조 히데타로가 8년 만에 내한해 제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재일교포 3세 민영치의 서용석류 대금산조 연주와 화동정재예술단의 궁중무용 ‘포구락’도 만나볼 수 있다.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는 17일부터 음악극 ‘적로’가 공연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희곡 ‘열하일기 만보’ 등을 쓴 배삼식 작가가 극작을 맡았다.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인 김정민이 ‘박록주제 박송희류 흥보가’를 선보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36)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가 ‘오펜하이머’ 등을 제치고 전미비평가협회(NSFC) 작품상을 수상했다. 10일 NSFC에 따르면 ‘패스트 라이브즈’는 6일(현지 시간) 열린 제58회 NSFC 시상식에서 2023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다.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61명의 투표를 거쳤다. 2위는 영국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였다. 지난해 열린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3위에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올랐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이민으로 헤어진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다.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로 이뤄졌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와 한국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그는 영화 ‘넘버3’(1997년) 등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NSFC 작품상을 받게 되면서 3월 10일 열리는 세계적 권위의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셀린 송 감독은 이달 7일 열린 제81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마틴 스코세이지 등 거장과 나란히 감독상 후보로 지명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6400억 원의 공연 티켓 판매액(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 수치)을 기록하며 성장 가도를 걸은 공연계가 올 한 해 어떤 다채로운 공연들을 선보일까. 올해 공연 라인업에선 ‘신작 초연’ ‘상업극 진화’ 등의 키워드가 두드러진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팬데믹 기간 발생된 손실을 회복하고자 흥행이 보장된 대작 위주로 공연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신선한 신작들로 재편되는 ‘분갈이의 해’가 될 것”이라며 “높아진 가격 장벽이 걸림돌이지만 올해도 공연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알라딘’ 등 화제작 초연 전 세계 누적 1600만 명이 관람한 디즈니의 인기 뮤지컬 ‘알라딘’이 11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국내 초연된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2014년 첫선을 보인 지 10년 만의 라이선스 공연이다. 앞서 3월 2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선 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이 베일을 벗는다. 2017년 토니상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 듀오인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이 참여했다. 무용 장르에선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스타이자 수석 무용수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이 눈에 띈다.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다룬 ‘모댄스’를 4월 20,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초연한다. ‘모댄스’는 볼쇼이 발레단이 2019년 자하로바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동명 동화를 토대로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발레 ‘인어공주’를 5월 1∼5일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처음 선보인다.● 찰리 채플린 손자 등 최초 내한 엔데믹 이후 회복세가 비교적 빠른 한국 시장을 찾아 주목도 높은 내한공연도 잇달아 열린다. 찰리 채플린의 손자이자 서커스계 유명 스타인 제임스 티에레가 올해 처음 한국을 찾는다. 4월 18∼2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룸’은 방에 갇힌 티에레와 친구들이 벌이는 소동을 그린다. 티에레가 극작과 연출은 물론 연기, 무용, 연주에도 참여한다.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9번이나 수상한 연출가 겸 극작가 조엘 폼라도 11월 7∼10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생을 그린 연극 ‘이야기와 전설’로 처음 내한한다.● 창작 뮤지컬 신작 잇달아 스테디셀러 뮤지컬 위주로 공연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다채로운 창작 뮤지컬 신작이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레베카’ ‘웃는 남자’ 등을 만든 공연제작사 EMK는 5월과 7월 각각 원작 소설과 만화를 토대로 한 뮤지컬 ‘벤자민 버튼’(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과 ‘베르사유의 장미’(충무아트센터 대극장)를 초연한다. 뮤지컬 ‘헤드윅’ ‘멤피스’를 제작한 쇼노트는 지난해 6번째 시즌을 마친 대학로 뮤지컬 ‘트레이스 유’의 스핀오프 신작 ‘클럽 드바이’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6월부터 선보인다.●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 갖춘 상업극 활약 연극계 라인업에선 시의성 높은 주제와 짜임새 있는 희곡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상업극’들이 돋보인다. 지난해 연극 ‘나무 위의 군대’를 제작한 엠피앤컴퍼니는 12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창작한 연극 ‘스타크로스드’를 초연한다. 라이브러리컴퍼니는 브로드웨이에서 2019년 초연된 심리스릴러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를 8월 처음 선보인다. 다음 달 17일부터 LG아트센터 서울에선 젊은 여성의 안락사를 주제로 한 영국 내셔널시어터 출신 극작가 믹 고든의 연극 ‘비Bea’가 5년 만에 재공연된다. 연극 ‘튜링머신’ 등을 만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제작한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세련된 감각의 젊은 연출가들과 자본력을 갖춘 신생 제작사들의 협업이 최근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상업극이 늘면서 올해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우 손예진, 현빈 부부(사진)가 소아청소년 환자와 미혼모 가정 등을 위해 1억5000만 원을 기부했다. 9일 손예진의 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말 서울아산병원과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 총 1억5000만 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두 배우가 후원한 기부금은 서울아산병원을 통해선 형편이 어려운 소아청소년 환자 치료비를 지원하고, 베이비박스를 통해서는 미혼모 가정과 자립 준비 청소년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앞서 손예진 부부는 2022년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해 성금 2억 원을 기탁했다. 2020년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의료진을 위해 손예진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억 원을 내기도 했다. 손예진은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훈클럽은 제71대 총무로 이우탁 연합뉴스 국제뉴스1부 선임기자(사진)를 9일 선출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이 신임 총무는 연합뉴스 중국 상하이·미국 워싱턴 특파원,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 콘텐츠책무실장, 연합뉴스TV 사회부장 정치부장 등을 지냈다. 임기는 11일부터 1년. 디음은 9일 선임된 관훈클럽 제71대 임원진 명단. △서기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위원 △기획 임민혁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회계 김미경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편집 황인혁 매일경제신문 산업부장 겸 부국장 △감사 김경태 MBC 저널리즘책무실 국장, 이제교 문화일보 정치부장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끝나버린 관계가 많다. 기억을 되감아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각자가 일련의 시간을 거치며 서로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짐작할 뿐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이달 17일부터 공연되는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이처럼 한때 영원을 약속했던 연인 제이미와 캐시의 파경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다. 주인공 제이미 역을 맡은 배우 이충주(39)를 3일 서울 서초구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만났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예술가(뮤지컬 ‘물랑루즈!’의 크리스티안)부터 여자들을 유혹하는 미남 장교(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 역)까지…. 숱한 사랑을 연기해 왔지만 그는 “제이미의 연애는 색다르다”고 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사랑이 아닌 ‘내 이야기’예요. 서울의 한 커플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현실적인 연인을 표현하죠. 대본 리딩 때 출연진들이 저마다 개인사를 늘어놓을 정도로요. 관객이 이 이야기의 당사자라 느끼지 못하면 우린 실패한 겁니다.” 극 중 제이미의 관점은 숨이 멎는 듯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5년 뒤 사랑했던 순간들만 두고 가는 이별 순으로 펼쳐진다. 반면 캐시의 시간은 그 반대로 흐르도록 연출해 관객이 이들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임을 느끼게 한다. 제이미 역은 이충주와 최재림이, 캐시 역은 박지연 민경아가 번갈아 연기한다. 두 등장인물은 공연 시간 90분 내내 등장, 퇴장 없이 1, 2인극을 오간다. 이충주는 “뮤지컬 배우 경력 15년이 넘었지만 이번 연습이 가장 강도가 세다. 운동을 좋아해서 마라톤도 뛰어봤는데, 그에 맞먹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공연은 대사와 가사 간 경계가 없는 총 14곡의 넘버로 이뤄졌다.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이전에도 대사를 모두 노래로 표현하는 송스루(Song Through) 뮤지컬은 해봤지만 연기와 노래 간 경계가 이토록 치밀하게 허물어진 적은 없다”며 “균형을 찾느라 연습마다 ‘죽겠다’ 싶어도 배우로서 성장하는 성취감이 크다”고 했다. 이 씨는 이번 공연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지난해 3월까지 공연된 뮤지컬 ‘물랑루즈!’ 이후 다른 작품엔 출연하지 않았다. 같은 배역을 맡은 최재림과는 서로의 집에 놀러 갈 정도로 막역한 동갑내기 친구 사이지만 성격은 딴판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보여줄 제이미의 매력이 각기 달리 느껴질 이유다. 그는 “좋은 게 좋고 우유부단한 나와 달리 재림이는 확신이 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재림이의 연기를 보며 연인 사이여도 할 말은 하는 ‘제이미스러움’을 느끼곤 한다”며 웃었다. 향후 도전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는지 묻자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한 작품을 하면서 다음은 잘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받은 피드백을 내일 전부 보완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요. 2008년 이후 15년 만에 올라가는 공연인 만큼 ‘대체 불가한 캐스팅’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4월 7일까지. 6만∼8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가객(歌客) 고(故) 김광석(1964∼1996)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8년째인 6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 앞. 어둠이 내리자 종일 맑았던 하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생전 ‘보금자리’였던 학전의 지붕 위로 함박눈을 쏟아냈다. 이날 학전에서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가 열렸다. 대회를 찾은 관객들은 공연 전 꽃다발과 소주, 담배 등이 가지런히 놓인 김광석 노래비를 마주 보며 고인을 기렸다. 대회는 사회를 맡은 가수 박학기가 무대에 올라 친구의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소주 한 잔을 따르면서 시작됐다. 김광석 추모사업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2012년 ‘김광석 노래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학전에서 꾸준히 열렸다. 학전은 1991년 개관 이후 김광석이 라이브 공연을 1000회 이상 펼친 곳이다. 박학기는 “오늘 대회는 훗날 큰 아름드리가 될 씨앗을 만나는 자리”라고 말했다. 총 179개 팀이 경쟁을 벌인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7개 팀은 김광석의 노래와 창작곡을 각각 1곡씩 불렀다. 참가자 11명은 모두 무대 위에 걸린 사진 속 김광석과 같은 20대였다. ‘기타와 나’ ‘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등 나직이 부른 창작곡들에는 과거 김광석이 그랬듯 앳되고 진솔한 마음이 공통적으로 묻어났다. ‘외사랑’을 부른 서림 씨는 “김광석 노래로 처음 기타를 배웠고, 아버지의 인생 첫 대학로 극장이 학전이다. 이곳에서 노래해 꿈 같다”며 웃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10∼60대 관객 150여 명은 힘껏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최근 학전 폐관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본선 티켓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오랜 재정난에 김민기 학전 대표 겸 김광석추모사업회장의 건강 악화가 겹쳐 개관 33년 만인 올 3월 잠정 폐관이 결정된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재개관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학전은 ‘비상업성’ 등 기존 운영 방침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문을 열어도 이 같은 대회를 학전에서 이어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까지 대회 현장을 지킨 김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날은 나오지 못했다. 대상인 ‘김광석 상’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창작곡 ‘청춘예찬’을 부른 이상웅·정지윤 씨에게 돌아갔다. 부상으로 창작지원금 200만 원과 마틴 기타가 수여됐다. 이 씨는 “일곱 살에 부모님과 간 라이브클럽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접한 후 가수의 꿈을 키웠다”며 “뜻깊은 자리라 더욱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가창상(성해빈·양은채), 연주상(플릭), 편곡상(민물결), 작곡상(곽다경·신우진), 작사상(김부경), 다시부르기상(서림) 등 나머지 6개 부문 수상자에게는 창작지원금 100만 원과 파크우드 기타가 지급됐다. 올해 심사는 학전 출신 선배들이 머리를 맞댔다. 밴드 동물원의 박기영과 가수 이적, 정원영 호원대 실용음악학부 교수, 권진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 작곡가 김형석, 작사가 심현보, 홍수현 프로듀서 등이 참여했다. 권 교수는 “지난 대회들에선 대견하다고만 느꼈는데 오늘은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그 밖에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 씨, ‘서른 즈음에’를 작사·작곡한 강승원도 객석을 채웠다. 대회는 참가자와 심사위원 등이 다 함께 김광석의 히트곡 ‘일어나’를 부르며 끝을 맺었다. 내년에도 이곳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한 노랫말이 극장을 울렸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봄의 새싹들처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의 은하는 처음 탄생했을 땐 길쭉한 바나나 모양이었다?’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고 있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촬영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초창기 은하는 바나나나 서프보드처럼 길쭉한 모양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학설은 신생 은하가 동그란 원형이나 원반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 시간) “미 컬럼비아대 연구원 비라지 판디야 박사 등 연구진은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촬영한 신생 은하 이미지 약 4000장을 분석했더니, 선형에 가까운 바나나 서프보드 시가 피클의 형태가 보였다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현존 최고의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은 우주 먼지와 가스 구름을 뚫고 원거리 파장까지 포착해 가장 멀리 있는 은하까지 관측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 ‘우주 진화 초기 방출 과학 조사(CEERS)’에서 얻은 이미지를 분석해 3차원으로 제시했다. NYT는 “이 연구 결과가 받아들여진다면 은하의 등장과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창작오페라 등 총 28개의 작품이 올해 3월까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이달 포문을 여는 작품은 그중 6편이다. 우선 20세기 실존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앞세운 연극 2편이 공연된다. 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언덕의 바리’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여성 폭탄범’ 안경신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여성 신화인 바리데기 이야기와 엮어 재구성했다. 13일부터 21일까지는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아들에게’가 공연된다. 중국, 미국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실존 인물 현미옥(앨리스 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 3편도 잇달아 열린다. 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민요 첼로’는 우리 민요를 다섯 대의 첼로와 밴드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통음악의 박자 개념을 현대인의 삶의 호흡과 대응시킨 ‘만중삭만―잊혀진 숨들의 기억’은 12, 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0, 2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선 전통 장단을 흐르는 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영상예술과 결합한 ‘물의 놀이’가 관객을 만난다. 그 밖에 동화 ‘신데렐라’를 두 언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오페라 ‘3과 2분의 1 A’도 11, 1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펼쳐진다. 유리구두를 핵심 소재로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을 그려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온 현대문학 3편이 올해 잇달아 ‘뮤지컬’이란 새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오른다. 우선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베스트셀러 소설 ‘천 개의 파랑’(2020년)이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으로 재탄생한다. 폐기 직전의 휴머노이드 로봇, 안락사 위기에 처한 경주마, 척수성 소아마비를 겪은 은혜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간과 동물, 로봇 간 연대를 노래한다. 뮤지컬 ‘빠리빵집’ ‘라흐 헤스트’ 등을 쓴 김한솔 극작가가 제작에 참여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공연된다. 구병모 작가의 스테디셀러 소설 ‘파과’(2013년)는 뮤지컬로 탈바꿈해 관객을 찾는다. 2013년 출간 당시 ‘60대 여성 청부살인업자’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이목을 모은 작품이다.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한 ‘조각’이 나이가 들어 뒤늦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담겼다. 연극 ‘아마데우스’, 뮤지컬 ‘서편제’ 등을 만든 Page1이 제작을 맡았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3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공연된다.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2016년)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8년 서울예술단이 첫선을 보인 이후 이번이 4번째 시즌이다. 최상위 계층이 사는 1지구부터 최하위 9지구까지 분리된 계급 도시를 배경으로 주인공 다윈이 자신의 가문에 감춰진 악의 근원과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월 8일부터 24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곰팡이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명공학 기술을 예술에 결합한 ‘바이오아트’가 최근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시테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박지희 씨는 균류를 활용해 ‘기록되지 않은 미시적 역사’를 시각화한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옛 경성방직 사무동의 역사를 추적한 프로젝트 ‘생략된 궤도’가 대표적이다. 건물의 먼지를 수집해 곰팡이 균을 찾아낸 뒤 투명한 레진 안에 곰팡이의 색소 물질을 넣어 염색한 설치물 등으로 구성됐다. 사람과 생물 간 상호작용을 분석해 소리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지난해(2023년) ‘ACT 페스티벌’에 전시된 ‘미시적 연결감각’이 바로 그것.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신인 김대희 작가의 작품이다. 관람객이 전시된 버섯을 만지면 버섯에 연결된 바이오피드백 센서가 사람과 버섯 사이에 흐르는 미세 전류를 감지하고 이를 소리로 변환해 들려준다. 바이오아트는 기술과 예술 간 융합이 비교적 일찍 이뤄진 서구에선 국내보다 먼저 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 2000년 브라질 출신 작가 에두아르두 칵은 토끼의 몸속에 해파리의 녹색 형광 단백질을 주입해 형광 빛을 내는 유전자 변형 토끼 ‘GFP 버니’를 발표했다. 미국 출신 작가 헌터 콜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박테리아로 그림을 그린다. 밝게 빛나던 작품은 박테리아가 죽어가는 2주간 서서히 빛을 잃으며 생명의 순환을 보여 준다. 바이오아트는 인간과 생태계 간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지희 작가는 “사람들은 곰팡이를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하지만 곰팡이를 예술로써 본 관람객은 이 역시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임을 감각할 수 있다”며 “바이오아트는 인간과 다양한 생물군의 공존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뚜렷해진 인공지능(AI)의 존재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류가 AI의 기계적 사고방식과 공존하게 된 건 결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300여 년 전부터라고 말한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거대한 인공 인간’으로 묘사했을 즈음이다. 인류는 의사결정을 더 크고 기계적인 집단에 맡김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부와 안전을 구축했다. 국가는 헌법과 국채 등을 도구로 시장과 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런 기업들은 이제 ‘지속가능한 성장’을 표어 삼아 AI 개발에 자본을 들이붓는 중이다. 책은 열린 결말이다. AI가 지배할 세상을 구체적으로 예견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이 그동안 인간에게 어떻게 군림해왔는지 설명함으로써 AI가 침투할 세계를 암시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총 8개의 장으로 이뤄졌고, 전체 분량 중 3분의 2 이상을 국가의 개념과 형성 과정, 기업의 발전 등 역사를 풀어내는 데 할애하며 AI의 속성과 연결짓는다. 국가와 기업, AI가 모두 ‘비인간적인 결정 대리인’이란 점에서 같다는 논지를 펼친다. 효율성이 핵심인 이들의 기계적 사고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국가의 경우 팬데믹이 창궐하자 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감시했고 오늘날 세계 곳곳에선 민주적 절차가 무시된 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그 속에서 우리에겐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인공 대리인인 국가가, 기업이 대신 선택했다”며 “결정은 이들이 하는데 그 결과는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가올 미래를 무심히 ‘착한 AI 개발’에 맡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AI 이후의 세상은 국가와 기업이 부여받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고 거기서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 한 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휩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과 유행어 중에선 사회 현실에 대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시선이 담긴 것이 많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를 통해 화제가 됐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는 ‘중꺾그마’(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로 변형됐다. 연예인 박명수가 유튜브 채널에서 조어해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를 앞두고 한 대사 “나 지금 되게 신나”는 숱한 패러디물로 확대 재생산됐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힘든 현실에서는 손쉬운 성취도, 통쾌한 공정도 불가능하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을 좇는 마음이 해학적 밈으로 표출됐다”고 말했다. 2023년 유행어를 분석해봤다.● 공감 욕구, 개성 반영MBTI 열풍에 따른 ‘너 T야?’는 공감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성격유형 중 사고형을 나타내는 T를 빗대 공감해주지 않는 상대방을 비꼴 때 쓴다. 인플루언서 레오제이가 유튜브 영상에서 농담조로 던진 “너 혹시 뭐 돼?”란 말은 ‘너 뭐 돼?’로 축약돼 인기를 끌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유행어가 됐지만 상대에게 발언할 자격을 문제 삼거나 공감을 요구하는 자기중심적 언어”라고 말했다. ‘추구미’ 역시 X(구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애용됐다. ‘추구하다’와 미(美)를 합성한 단어로 ‘내가 꿈꾸는 이미지’를 뜻한다. 옷차림, 롤모델, 분위기 등을 두루 가리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집단적 취향보다는 자기만의 이상향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담겼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했다.● 아이돌 음악, 사회 이슈 소재로인기를 얻은 대중음악도 밈과 유행어로 널리 활용됐다. 지난해 7월 뉴진스의 데뷔 앨범 수록곡 ‘Hype Boy’가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란 밈(어물쩍 답변을 회피할 때 사용)으로 퍼진 데 이어 올해 초 발표된 ‘Ditto’는 상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의 ‘디토(Ditto·찬성)합니다’로 즐겨 사용되고 있다. 황 평론가는 “아이돌 문화는 일상에 영향을 미쳐왔는데 SNS의 확대와 맞물려 더욱 침투력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과거엔 TV 인기 방송이 미는 유행어를 전 국민이 사용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유행어는 훨씬 다양한 매체에서, 누구나 알아듣기엔 까다로운 형태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밈은 사회 이슈와 직결된 경우도 많다.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의 재혼 상대로 알려졌던 전청조의 사기 행각으로 유행된 ‘I am 신뢰예요’는 일명 ‘맑은청조체’로 불리며 많이 회자됐다. 팍팍한 현실 속, 쇼트폼과 자극적 콘텐츠에 길들여진 젊은층 사이에선 ‘도파민 중독’이란 자조적 표현도 인기를 얻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기 세대와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에게 유행어는 세태를 풍자함으로써 시정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며 “정치, 경제 등 젊은층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 변수 대신 온라인과 언어를 무기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97년 DVD 대여 우편배달 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10년 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를 통해 오늘날 왕좌에 오른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는 단지 시류를 읽어내는 데 성공해 스트리밍이라는 ‘대어’를 물어 운 좋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책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서 활동한 두 기자가 썼다. 2018년부터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를 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넷 출현과 소니픽처스 해킹 사태 등 업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저자들임에도 “스트리밍으로 인한 지각변동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회고하며 스트리밍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짚어낸다. 이들은 넷플릭스가 촉발한 콘텐츠 시장 패권 경쟁에 ‘미디어 공룡’ HBO와 워너브러더스 등이 가세하고 아마존, 애플 등의 기업이 뒤늦게 뛰어든 흐름을 좇는다. 또 기회를 잡은 자와 놓친 자의 당시 내외부 상황을 입체적으로 풀어내 독자 역시 경쟁에 참여한 듯한 느낌을 준다. 2007년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할 즈음 아메리칸온라인(AOL)도 타임워너 이사회에 유튜브 매입을 적극 제안했으나 “안 돼, 꺼져”라는 대답이 돌아온 일화를 밝히고, 넷플릭스의 혁신적인 인사 시스템 등이 성공을 견인했다고 진단한다.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의 모든 회차를 한 번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한 유명 방송국 간부가 테드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에게 전화해 ‘텔레비전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하는 거요?’라고 물었던 이야기도 공개한다. 저자는 “이 교란자에게 중요한 것은 구독자를 행복하게 해 결국 방송국 경영진까지 새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스트리밍 산업의 앞날에 대해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스트리밍 산업의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허문, 끊임없이 움직이는 골대를 상대로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충무공이 북채가 닳도록 두드려댄 독전고(전투를 독려하는 북)가 없었더라면 이후 우리 역사엔 새살이 돋아날 수 있었을까. 영화 ‘명량’(2014년)과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 이어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노량: 죽음의 바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20일 개봉하는 ‘노량’은 국내 영화 사상 최다 관객(1761만 명)을 모은 ‘명량’에 이어 ‘한산’(726만 명)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시리즈다. 1592년부터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 최후·최대의 전투인 노량해전(1598년)을 담았다. 영화는 독전고 소리를 배경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시작된다. 왜군이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하자 이순신은 “이 전쟁을 올바로 끝내야 한다”며 명나라와 손잡고 왜군 섬멸을 결심한다. 이순신 역은 배우 김윤석이, 왜군 수장 시마즈 역과 명나라 도독 진린 역은 각각 백윤식, 정재영이 맡았다. 충무공은 “열도 끝까지 몰아붙여서라도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감독은 “‘단지 대규모 전쟁을 보여 주는 게 목적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그토록 치열했던 전쟁을 설명하려면 모두가 이 전쟁을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 이순신 장군이 품었던 고독한 화두에 주목해야 했다”고 밝혔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이 용장(勇將)이라면 ‘한산’에선 지장(智將)으로, ‘노량’에서는 현장(賢將)으로 그려졌다. 김윤석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탁월한 표정 연기를 통해 현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줬다. 목에 칼이 들어올 때조차 깜박임 한 번 없는 눈에선 결연함이 묻어났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저 북쪽 대장별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이미 명운을 다했을 것”이라는 진린의 대사는 이순신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강인해 보이던 얼굴도 죽음 앞에서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일그러진다. 적군의 혼령이 악귀처럼 몸에 들러붙고,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이 왜적에게 살해돼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영웅 역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 준다. 날이 밝아오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이순신은 직접 독전고를 울리며 왜군을 추격하다 적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고 담담히 말한다. 김윤석은 “전쟁이 후손에게 미칠 영향까지 내다본 이순신의 마음을 체화하는 것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조·명 연합군은 지형과 바람 때를 맞춘 전술을 통해 압도적으로 많은 왜선에 맞선다. 2만 명을 섬멸하는 해전은 영화 상영시간 153분 중 무려 100분간 이어진다. 적막한 잿빛 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일순간 솟구치는 화공(火攻)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적군의 배로 빠르게 날아가는 포탄을 쫓는 카메라는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거북선이 왜선을 거침없이 격파하는 장면은 목조선이 부서지는 소리가 더해지며 짜릿함을 준다. 노량해전에 거북선이 출전한 기록은 없다. 김 감독은 “후대로 갈수록 거북선이 많이 만들어졌기에 계속 재건된 것으로 보고 조선 병사에게 큰 의지가 된 거북선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고향에 살아 돌아가려는 마음이 간절한 3국 병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어 전쟁의 지난함을 강조했다. 모든 전투 장면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사용한 강원 강릉 아이스링크에서 물 없이 촬영됐다. 투입된 제작비는 명량(190억 원), 한산(312억 원)을 넘어서 3부작 중 최대 규모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