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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담당 공무원이 ‘이유를 막론하고 (잼버리 행사가 진행되는) 12일 동안만 버티게 해 달라’라고 하더군요. ‘공무원 수백 명이 날아가게 생겼다’라면서요. 개영식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 공사 하청을 맡은 A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공사 현장에서 잼버리 담당 공무원에게 황당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 기록적인 장마로 야영장이 거대한 ‘진흙밭’으로 변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진 시점이었다. 그는 8일 동아일보에 “현장 관계자들은 난리가 나서 비 오는 날에도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뉴스에선 ‘준비가 잘되고 있다, 문제없다’고만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새만금 지역이 잼버리 개최지로 최종 선정된 건 2017년 8월이다. 올해 8월 행사가 개최되기까지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잼버리 관련 공사 발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 본격적인 공사는 행사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2021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 공사는 행사를 넉 달 남짓 앞둔 올해 3월에야 시작됐다. 정부가 6년이란 시간이 있었음에도 뒤늦게 준비에 착수해 ‘펄밭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참여자들이 이용할 필수 시설도 당초 계획보다 모자라게 마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새만금개발청이 밝힌 초기 계획에 따르면 영지에는 샤워장 417동, 급수대 278개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야영지에 실제로 마련된 건 샤워장 281동(67%), 급수대 120개(43%)다. 각각 초기 계획의 절반 안팎 수준만 설치된 것이다. 행사 초기 위생 불량 문제가 지적됐던 화장실도 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게 배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잼버리 사태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감찰도 검토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신인도의 문제가 걸린 만큼 최선의 수습을 다 한 뒤 철저한 리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실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12일 잼버리 폐막식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지원에 집중할 것”이라며 “감찰 관련 사항은 언급 않는 게 관례”라고 말을 아꼈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도 전북도 등 지자체의 예산 배정과 집행, 사업 진행 경과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샤워기-급수대, 당초 목표 절반도 안돼… 화장실, 1명이 10곳 관리 샤워기, 5000개 필요한데 1650개…급수대, 278개의 43% 120개 설치화장실 납품업체 “2곳당 1명 필요”…조직위, 불결 논란에 뒤늦게 증원폐기물 처리-해충 구제 대응도 늦어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행사 초기부터 샤워장과 화장실, 급수대 등 필수·위생시설이 열악해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잼버리 야영장에 마련된 샤워장과 급수대 수는 당초 목표의 절반 안팎 수준이며, 그 안에 설치된 ‘샤워기 수’로 보면 목표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전반적인 준비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정부와 전북도가 부실한 계획과 늦장 준비로 ‘뻘밭 참사’를 불러온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샤워기 5000개 필요한데… 1650개만 설치 새만금개발청은 2016년 ‘2023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실천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놓았다. 사실상의 ‘초기 마스터플랜’에 해당하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야영장에 샤워장을 총 417동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8일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영지 내에 실제로 마련된 샤워장은 281동(67%)뿐이었다. 샤워장이 아닌 ‘샤워기 수’로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기 계획에선 1동당 샤워기를 12개 설치해 약 5000개의 샤워기를 확보하기로 했지만, 실제 설치된 샤워기는 목표치의 33%인 1650개에 불과하다. 급수대 역시 278개를 설치하겠다는 당초 목표 대비 43%인 120개를 설치하는 데 그쳤다.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야영장 내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공사 업체를 선정한 건 잼버리 개막까지 불과 4개월여를 앞둔 3월 중순이었다. 정부가 늦장을 부리다 뒤늦게 샤워장 조성에 착수하면서 준비가 미흡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조직위 관계자는 “7월 장마가 길어지며 샤워장을 설치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던 건 맞다”면서도 “세부 운영 계획을 세우며 상황에 맞게 수량을 조정한 것으로, 시간이 없어 적게 만든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늦장’ 의혹이 제기되는 건 샤워장뿐만이 아니다. 당초 ‘K팝 콘서트’ 공연 등이 예정됐던 무대 설치 용역은 6월 중순이 돼서야 업체가 확정됐다. 공사 중 발생한 건설 폐기물을 처리할 업체는 개막 5일 전인 지난달 27일에야 정해졌고, 결국 행사장 곳곳에 폐기물이 쌓여 있는 채로 잼버리가 시작됐다.● 1명이 화장실 10개 청소… 임기응변 잼버리 잼버리 행사 초기 위생이 불량했던 화장실은 수량 자체는 충분했지만, 화장실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배정한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장실 354개를 관리하는 데 배정된 인원은 70명이었고, 그나마도 오전, 오후로 나뉘어 투입돼 1명이 화장실 10개를 관리해야 했다. 잼버리 야영장에 이동식 화장실을 납품한 업체 관계자는 “통상 유지보수와 관리(청소) 계약을 함께 맺는데, 조직위는 납품과 유지보수 계약만 체결했다”며 “청결 상태를 유지하려면 화장실 2곳당 1명 정도를 배치해야 한다”고 전했다. 조직위는 불결한 화장실이 큰 논란이 된 후인 3일에야 추가 인력 100명을 부랴부랴 투입했다. 잼버리 참여자들의 온몸을 ‘화상벌레’ 등에 물린 상처로 가득하게 만든 것도 조직위의 준비 부족과 무관치 않다. 습지 특성상 대규모 해충 번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조직위는 해충 기피제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가 된 참여자들의 다리 사진 등이 논란이 된 후에야 부랴부랴 후원을 받아 해충기피제를 참여자 1명당 1개씩 배부했다. 13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야영장 시설 공사도 철저한 계획보다는 그때그때 ‘임기응변’ 위주로 이뤄진 정황이 드러났다. 공사에 참여한 한 업체 대표는 “행사를 20일 남짓 앞두고 야영장 내부 길 곳곳이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진흙탕이 됐고, 예정에 없던 자갈 포장 공사를 추가로 해 줬다”고 말했다. 진흙밭 위에 텐트를 치기 위해 플라스틱 팰릿을 깔기로 한 것도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하청업체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조현병과 망상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환자 8명 중 1명만 지역사회에서 정부의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꾸준한 관리를 받지 않으면 약 복용이나 외래 진료를 임의로 중단해 ‘치료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대통령실과 정부는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올해 안에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8일 보건복지부의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 중 13%(2021년 말 기준)만 지역사회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 260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전화나 방문 상담 등을 통해 지역사회 내 중증 정신질환자의 증상을 확인하고 의료기관에 연계하는 등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난 등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충분한 예산이나 인력 지원 없이 (우울, 불안, 재난 트라우마 등) 대부분의 정신건강 문제를 센터에서 맡으라고 떠밀고 있어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 국민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겠다”며 관련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과 정부는 올해 하반기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 출범 직후부터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관계 부처가 여러 제도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 실정에 맞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해 하반기에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정신건강 종합대책 중 하나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해서 입원 여부를 판사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행법상 보호자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으로 입원하는 보호입원, 경찰에 의한 응급입원, 지자체장에 의한 행정입원 등이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소송 위험이 높다 보니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최근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이어지면서 중증 정신질환 관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환자들이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현병은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 바로 치료를 받으면 환자의 70∼80%는 한두 달 내에 증상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조현병 발병 후 치료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약 56주(2023년 기준)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간(12주)의 약 5배에 달한다. 국내 조현병 환자는 증상이 있는데도 치료를 받지 않는 기간이 길다는 의미다. 그럴수록 재발 가능성은 높고 예후가 좋지 않아 각종 범죄 등 사회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조기 발견-조기 치료’하는 시스템이 부실하다고 지적한다.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에 대한 상담이 활성화되는 것과 달리 초기 조현병 환자가 빠르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통로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화영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급성기 치료에 투자하기도 벅찬 현실”이라고 전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올해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전체 보건 예산의 2.6%로 미국 등 선진국 평균인 5%의 절반 수준이다. 조현병은 남성 15∼25세, 여성 25∼35세에 발병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 때문에 청년에 특화된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호주는 2011년부터 청년들이 자주 찾는 쇼핑몰이나 대학가에 초기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청년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센터를 세워 치료 접근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환자가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증상이 약간만 호전되면 환자가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가족들이 ‘이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김 교수는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환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듯 조현병 환자들도 외래 진료를 잘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미국, 영국 등 해외 스카우트 대표단에 이어 국내 참가자 중에서도 조기 퇴소 단체가 나왔다.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은 영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해 6일 일부 인원이 오전 조기 퇴소한다고 밝혔다. 김태연 전북연맹 제900단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일 여자 샤워실에서 30, 40대로 추정되는 태국인 남성 지도자가 발각됐다”며 “조직위에 강제 추방 등을 요청했는데, 아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북연맹은 총 833명이 입소했는데, 85명이 퇴영 절차를 밟았다. 이에 전북 부안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3일 접수해 피해자와 태국인 남성 A 씨,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김효진 전북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현재까지 관련자들의 진술과 샤워실 내 상황 등을 종합해 보면 성적 목적의 침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건조물 침입 등 다른 범죄 혐의가 있는지 법률적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해당 여자 샤워실에서 먼저 샤워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피해자가 샤워실에 들어온 뒤 A 씨를 발견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너무 더워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위 측은 해당 사건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제이컵 머리 사무국장은 “어떤 성추행 사실도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해명 과정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장관은 “경미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며 “만약 더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경찰과 함께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전북연맹 관계자들이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이 상당해 병원에 있는데, 이게 어떻게 경미한 일이냐”며 “피해자 보호와 분리 조치도 없었다”고 반발했다. 전북연맹의 조기 퇴소에 대해 전북도 고위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우리 도에서 열리는 건데 어떻게 (전북연맹이) 나갈 수 있냐”며 안타까워했다.부안=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선천성 면역결핍증후군을 앓는 6세 A 양은 최근 증상이 악화돼 1개월 넘게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원정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원래 다니던 국립대병원에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해지면서 입원 치료를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A 양의 집은 서울대병원에서 직선거리로 200km 이상 떨어져 있다. A 양의 어머니는 매주 3번씩 퇴근 후 서울행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대병원에 와 아이를 밤새 돌본 뒤 다음 날 첫차를 타고 내려가 출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필수·공공의료 분야에서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감염병·응급·중증외상·분만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는 전 국민이 사는 곳 인근에서 진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동아일보가 만난 의료진들은 국립대병원이 각 지역에서 가장 어려운 환자를 보는 최종 치료기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계적인 규제 적용을 재검토해달라고 호소했다.● “지역의료 심폐소생술 필요”최근 10년 사이 중증 환자들의 ‘서울 쏠림’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 소재 5대 상급종합병원 입원 환자 중 36.4%가 비수도권 출신이었다. 입원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비수도권에서 온 ‘원정 환자’라는 뜻이다. 10년 전 30.9%에서 5%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소청과는 주요 필수의료 과목 중에서도 비수도권 인프라가 가장 부족한 분야로 꼽힌다. 올해 모집된 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는 53명인데, 이 중 48명이 서울, 경기에 쏠렸다. 비수도권의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은 7%에 불과해 사실상 고사 상태다. A 양과 같은 희귀질환 환아뿐만 아니라 소아암 환자도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해도 지방에 사는 환아는 수개월에 한 번 있는 항암치료를 서울에서 받더라도, 추적 관리는 집 근처에서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지방에 살면 추적 관리조차 어렵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따르면 최근에는 2,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하는 면역 수치 주사조차 지방에서 맞지 못해 서울로 오는 환자가 늘고 있다. 최은화 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은 “최근엔 상대적으로 경증인 아이들마저 지역에서 해결이 안 돼 서울로 몰리고 있다. 국립대병원들이 지역의료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심폐소생술’에 가까운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AIST처럼 기타 공공기관 지정 해제” 현장 의료진들은 국립대병원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총액인건비 제한을 꼽았다. 인건비 규제 때문에 사립 병원들과 연봉 격차를 줄이기 어려워 인력 유출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2021년 국립대병원에서 퇴사한 의사의 58.7%, 간호사의 54.4%는 근속 기간이 2년 이하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 의사의 평균 임금은 1억6600만 원으로, 전체 의사 평균 2억4000만 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여기에 국립대병원들은 시설과 장비에 투자할 때도 국고 지원금이 최대 25% 이하로 제한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 공공의료원들이 장비 구입비 전액을 보전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장비가 낡아 최선의 의술을 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는 젊은 교수가 적지 않다”며 “최선의 진료 환경이 마련되면 국립대병원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규제들은 국립대병원이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기에 받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초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기타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한 바 있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기획조정실장(소화기내과 교수)은 “당장 기타 공공기관에서 빼기 어렵다면, 경영 실적을 토대로 매년 받는 ‘경영평가’만이라도 면제해주면 당직비 지급 등 의료진 보상과 지원에 자율성이 생겨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 “확실한 책임-보상 부여해야”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운영을 위해 정부는 전국을 16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의료체계의 리더 역할을 할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이 없는 울산과 인천을 제외하고는 모든 권역에서 국립대병원이 책임의료기관을 맡고 있다. 하지만 책임의료기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수행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이에 따른 보상도 마땅하지 않아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나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권역 내 병원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 유지할 의무를 책임의료기관에 부여하고, 지역 내에서 얼마나 최종 치료가 이뤄졌는지 등을 평가해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권역책임의료기관에 부여하되,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보건복지부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사망한 아동 249명 중 222명에 대해 “학대 혐의가 없다”며 최근 조사에서 결론을 냈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사망 장소나 원인은 물론이고 형제자매의 생사 등 학대 위험 요인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18일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소 249명의 사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망 아동 중 222명에 대해선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추가 조사도 하지 않는다. 사망진단서, 검안서 등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를 지닌 의사가 작성하므로, 만약 학대가 의심되면 그때 신고돼 수사했을 것이란 논리였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222명의 사망 형태와 원인, 장소 등 자료를 요청하자 복지부는 “별도로 파악하거나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관련 서류 사본 제출 요청에는 “각 지자체가 받았던 서류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완전히 파기하도록 안내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처리 목적이 달성된 개인정보는 즉시 파기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대 가능성을 가늠할 실마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서둘러 파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에선 사망진단서 등이 있다고 학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는 학대 흔적이 명백하지 않으면 부모 말을 듣고 서류를 써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대구에서 학대로 숨진 정지향 양(당시 2세) 사건 땐 검안의가 시신을 보지도 않고 허위 서류를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사망진단서만으론 ‘아동학대 없다’ 판단 일러… 추가 조사 필요” 사망 아동 222명 부실조사사망진단서 근거 ‘병사’ 추정하지만퇴원 48시간전엔 의사가 안봐도 발급“시간 쫓겨 보여주기식 조사” 지적 복지부는 출생 미신고 사망 아동 222명의 학대 피해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로 병원 진료 중 사망 시 발급되는 ‘사망진단서’의 존재를 꼽았다. 222명 중 상당수는 사망진단서가 확인됐으므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병사했을 거라는 추정이다. 학대나 유기를 의심할 수 있는 병원 밖 사망 시에는 시체검안서가 발급되는데 이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고 복지부는 전했다.지자체 담당자들은 “조사 기간이 2주에 불과해 사망 관련 서류를 확보하기에도 촉박했다”고 한다. 출생 미신고 아동 2132명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고, 사망자는 서류만 확인하라는 게 복지부 지침이었기에 추가적인 조사는 없었다. 한 광역자치단체 직원은 “자칫 아이 잃은 부모의 아픔을 헤집을까 봐 사망 원인을 꼬치꼬치 묻지 못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통상적인 서류 발급 절차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영아가 응급실에 실려와 숨지면 통상 법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응급실 전공의(레지던트)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지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숨졌다면 의사가 시신을 직접 보지 않아도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를 발급해줄 수 있다.또 사망 아동 222명 대다수가 학대와 무관하다는 복지부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출생신고 기한(생후 1개월)을 넘기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다가 병원에 방문했다면 그 자체로 학대를 의심할 수 있다. 2014년 이전에 태어나 이번 복지부 전수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들의 생사와 안위도 확인 대상이다.아동학대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관계자는 “만약 형제자매가 사망했거나,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의심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는 가정이라면 조사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 이전까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조사를 미루며 학대와 유기를 방치해 온 정부가 ‘보여주기식’ 조사로 마무리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결국 지금이라도 정부가 사망 아동 222명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여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는지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의원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고 사망했다면 원인이라도 분석해야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 복지부가 내실 있게 조사한 게 맞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전국 26개 지방대 의과대학 합격자 중 절반 이상이 해당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의대를 졸업하면 수도권에서 직장을 구하는 의사가 늘면서 ‘지역의료 붕괴’는 계속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졸업 후 취업, 정착까지 지방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외의 지역에 있는 26개 지방대 의대의 2023학년도 합격자 2066명 중 1082명(52.4%)이 해당 지역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지역 출신 합격자 비율이 가장 높은 의대는 부산대로 81.6%였다. 그다음으로는 동아대(80.4%), 전남대(77.2%) 등의 순이었다. 지방 의대 합격자 중 해당 지역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학년도 42.6%, 2022학년도 46.0%, 2023학년도 52.4%로 최근 3년 새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부터 도입된 지역인재 특별전형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대학육성법은 지방대 의대들로 하여금 전체 합격자의 30%(강원·제주는 15%)는 해당 지역 출신 학생을 선발하도록 권고한다.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2023학년도부터는 권고가 ‘의무’로 바뀌고, 지역 출신 학생 의무 선발 비율도 40%(강원·제주 지역 20%)로 늘었다. 지역인재 특별전형 도입 및 확대로 해당 지역 출신들이 지방대 의대에 합격하는 비율은 늘었지만 이 제도의 취지였던 ‘지역의료 살리기’는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현상까지는 막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총 9만9492명(2020년 기준)인데, 이 중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5만3988명(54.3%)이 몰려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 인력 일부를 비수도권 병원 등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신 의원은 “지역 출신 의대생이 의사 면허와 전문의 취득 이후에 지역에 남아 공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의사 양성 정책의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정부가 내년부터 뇌졸중, 급성심근경색 등 심뇌혈관질환 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수술 의사끼리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2차 심뇌혈관질환관리 종합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심뇌혈관질환은 심장과 뇌의 혈관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연간 환자 수가 약 290만 명에 달한다. 골든타임(심근경색 2시간, 뇌졸중 3시간) 내 치료를 받으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지만, 환자가 수술 의사와 병상이 부족해 ‘표류’하다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이 반복됐다. 지금은 의사들이 알음알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을 통하거나 삼성서울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핫라인’ 전화를 통해 환자를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내년부터는 최소 7인 이상 전문의가 모이면 정부 공식 플랫폼을 통해 환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의료진은 건강보험을 통해 보상받는다. 정부는 또 심뇌혈관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도 현재 14곳에서 2027년까지 24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심근경색과 뇌졸중 환자가 골든타임 내 병원에 도착할 확률이 지난해 각각 48%와 52%였는데, 이를 2027년까지 각각 58%, 62%로 10%포인트씩 올리겠다는 계획이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각종 복지사업의 기준선인 내년 ‘기준 중위소득’이 올해보다 6.09% 오른 572만9913원(4인 가구 기준)으로 결정됐다. 기준 중위소득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를 선정하기 시작한 2015년 이래 최고 인상률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준도 완화해 생계급여 최고액이 올해 대비 13.16%(4인 가구 기준) 오른다. 생계 급여의 두 자릿수 인상 역시 역대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올해 540만964원(월 소득 기준)에서 내년 572만9913원으로 6.09% 인상하기로 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 가구 소득의 중앙값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부터 국가장학금, 행복주택 공급 등 73개 복지 서비스의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활용된다. 기준 중위소득이 높을수록 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늘어난다. 특히 생계급여는 그 대상자가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에서 내년부터 ‘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로 완화돼 급여액과 대상자가 크게 늘어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현재 159만 명인 생계급여 수급자가 내년에는 169만 명으로 약 10만 명이 증가해 사각지대가 대폭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생계급여액 13% 올라 183만원… 169만명 대상 중위소득 6% 최고 인상기준보다 적으면 정부가 차액 지급 이번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기준 중위소득 인상으로 내년 기준 중위소득은 1인 가구 222만8445원, 2인 가구 368만2609원, 3인 가구 471만4657원이다. 각각 6∼7% 이상씩 올랐다. 중위소득 인상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다. 생계급여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이 오른 데다 대상자의 선정 기준도 완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생계급여 대상자는 가구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인 경우’다. 내년부터는 이 기준이 32%로 바뀐다. 생계급여 대상자 선정 기준이 너무 엄격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라 현 정부는 이를 35%까지 완화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생계급여 대상자와 이들이 받는 생계급여액이 모두 늘어난다. 내년 생계급여 최고액은 4인 가구 기준 183만3572원으로 올해 162만289원보다 13.16% 오른다. 첫 두 자릿수 인상이다. 4인 가구 소득이 이보다 적으면 그 차액만큼 정부가 현금으로 지급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생계급여 확대로) 약 2조 원의 예산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불필요한 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은 18조 원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 대상자 선정 기준도 기준 중위소득의 47%에서 48%로 확대한다. 가구원 수 등에 따라 최대 32만4000원까지 지원이 늘어나게 된다. 기준 중위소득전국의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 73개 복지사업의 기준선으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최근 3년간 가구 중위소득 증가율 등을 반영해 매년 8월 결정한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질병관리청이 전국에 일본뇌염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뇌염은 ‘작은빨간집모기’(사진)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감염병이다. 사람 간 전파는 일어나지 않는다. 질병청은 27일 “부산 지역에서 전체 모기의 91.4%가 작은빨간집모기로 확인됐다”며 “경보 발령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올해 경보 발령일은 지난해보다 1주 가량 늦었다. 부산 지역의 강수 일수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여름철 장마 기간은 모기 유충이 빗물에 쓸려가 번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가진 작은빨간집모기에 물리면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이 없이 지나거나 발열과 두통 등의 가벼운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심한 경우 경련과 혼수상태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국내 일본뇌염 환자는 2013∼2022년 총 209명이었고 이 중 26명이 사망했다. 일본뇌염은 백신이 있다. 2010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어린이는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대상이라 무료로 일본뇌염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질병청은 논과 돼지 축사 인근 등 작은빨간집모기가 자주 나타나는 곳에 살거나 일본뇌염 유행 국가(호주, 방글라데시, 중국, 일본 등)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일본뇌염 예방을 위해서는 야외 활동을 할 때 밝은색의 긴 옷을 입고 얼굴 주변을 피해 모기 기피제를 3, 4시간 간격으로 뿌리는 것이 좋다. 집 주변의 웅덩이나 배수로는 모기 유충의 서식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고인 물을 빼줘야 한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언론이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권고하기로 했다. 현재 6개로 흩어져 있는 자살 상담 전화번호는 위급 상황에서 쉽게 떠오르도록 하나의 번호인 ‘108’(가안)로 통합하기로 했다. 정신건강 및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모인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의 ‘자살 위기 극복 특별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최근 확정했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에 제안하고 각 부처가 실행토록 할 예정이다.● “‘극단적 선택’ 표현은 부작용이 더 커” 먼저 통합위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자살보도 권고기준’ 개정을 제안할 방침이다. 현재 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 암시 표현(목매 숨져, 투신 사망 등) 대신 ‘사망’ ‘숨지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사 본문의 경우 자살 방법 등을 자세히 보도하지 않도록 했지만 용어와 관련된 별도 규정은 없다. 이에 언론에서는 ‘사망’이라는 단어로 의미를 포괄할 수 없는 경우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특위는 기사의 본문에서도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자살은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데, 이 용어는 개인 의지의 선택이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가족에게는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기는 부작용도 크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살률을 높인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에둘러 표현하는 나라는 없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극단적 선택 표현 사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며 “언론계와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위 논의 과정에서는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는 사회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자살’ 용어 사용을 자제하되,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대로 사용하자는 의견 등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상담번호 일원화, 미국서 효과 입증 특위는 또 자살 상담 번호를 하나로 통합해 복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연계하자는 방안도 제안하기로 했다. 현재 자살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번호는 1393, 1577-0199, 129, 1388, 1661-5004, 1588-9191 등 6개다. 일일이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스스로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운영 주체도 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으로 달라 제각각 관리되고 있었다. 일원화할 경우 번호는 ‘108’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108은 1(한 명이라도 자살로 사라지는 생명이) 0(‘제로’가 되도록) 8(빨리 구하자)는 의미다. 특위 관계자는 “세 자리 숫자를 사용하면 자살도 범죄(112)나 화재·구조(119) 같은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위는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성공 사례를 참고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자살 상담 전화를 열 자리에서 911과 비슷한 988로 개편해 효과를 봤다. 미국 보건복지부(HHS)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1년 동안 988에 연결된 전화 및 문자는 총 500만 건으로 전년(300만 건) 대비 66% 증가했다. 다만 남은 과제도 있다. 위급 상황에서 빠른 대처가 중요한데 상담사가 부족해 실제 상담까지 연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위기 상황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평소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 온 50대 여성이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권은영 씨(51·사진)가 6일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5명에게 심장과 폐, 간, 좌우 신장을 주고 100여 명에게 인체조직을 기증한 뒤 세상을 떠났다고 26일 밝혔다. 개인 사업을 하는 권 씨는 1일 운동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권 씨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아동 후원, 연탄 나르기 등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했고, 딸의 이름을 지을 때는 ‘베푸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을 담아 ‘시아’라고 짓기도 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이르면 8월 중순으로 계획한 방역 완화 조치를 예정대로 시행할 방침이지만 병원과 노인요양시설 내 마스크 착용 의무만큼은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2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1주일(18∼24일) 일평균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만880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18일부터 엿새 연속으로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하루 확진자가 4만 명을 넘은 건 올해 1월 17일(4만169명) 이후 6개월 만이다. 무엇보다 확진자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직전 한 주(11∼17일) 일평균 2만7955명이었던 신규 확진자가 38.9%나 증가했다. 감염자 한 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감염재생산지수’는 6월 셋째 주(18∼24일) 이후 4주 연속 ‘1’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1 이상이면 당분간 유행이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같은 확산세는 지난달 1일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 의무가 해제되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바깥 활동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겨울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 참가자의 면역 효과도 줄어들 시점이 됐다. 확진자 집계를 중단한 해외에서도 표본 감시를 통해 재유행이 확인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주 “응급실 방문 환자와 하수 검사를 종합한 결과 올해 1월 이후 처음으로 코로나19 증가세가 전국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영국 공공보건국도 이달 8∼14일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전주 대비 22.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일선 병원에선 환자가 입원 중 확진돼 격리 병상으로 옮기거나, 의료진 확진으로 일손이 부족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검사를 꺼리는 ‘숨은 환자’까지 고려하면 실제 유행 규모는 공식 집계의 최소 2배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휴가철 활동 증가는 인플루엔자(독감) 등 다른 감염병 유행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 표본 감시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 환자는 이달 둘째 주(9∼15일) 기준 16.9명으로 3주 연속 증가했다. 다만 방역당국은 중환자 병상 등 의료 대응에 여유가 있다고 보고 ‘2단계 일상 회복 조치’를 8월 중순경 시행할 방침이다. 2단계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대다수 나라처럼 코로나19 감시가 표본 감시로 바뀌고 병원이나 요양시설 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다. 최근 코로나19와 독감의 확산세를 감안해 고위험 환자가 밀집한 시설 내 마스크 착용 의무만큼은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저질환을 지닌 고령층에선 위협적인 질병이다”라며 “마스크 착용 의무를 의료기관의 권고에만 맡기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한국의 인구 대비 병상 수와 의료장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크게 상회하지만, 인구 대비 의사 수는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OECD가 이달 초 발표한 ‘보건통계 2023’의 세부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2021년 한국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OECD 평균(4.3개)과 비교하면 약 2.9배다. 같은 해 기준 한국의 자기공명영상(MRI) 보유 대수는 인구 100만 명당 35.5대로 OECD 평균(19.6대)의 1.8배에 달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보유 대수도 42.2대로 OECD 평균(29.8대)의 1.4배였다. 또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도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일본이 11.1회(2020년 기준)로 한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이처럼 병상과 의료장비가 풍부하고 의료이용이 많은 것에 비해 의료진 수는 최하위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 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5명)에 이어 두번째로 적었다. 의학계열(한의학 포함, 치의학 제외) 졸업자도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서 세번째로 적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지금의 의대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저출산 등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감안하면 2047년에는 활동 의사 수가 OECD 국가 평균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치료와 예방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사망률을 뜻하는 ‘회피가능사망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142명으로 OECD 평균(239.1명) 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회피가능사망률은 낮을수록 긍정적인 지표다. 최근 10년간 한국은 최근 이 지표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2356건. 서울에 사는 엄나경 씨(23)가 2020년 8월부터 최근까지 온라인상에서 발견해 삭제를 요청한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의 수다. 2356건이면 3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게시글을 2건 이상 찾아낸 셈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오늘도 함께 목숨을 끊을 사람을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다른 누군가는 당장 내일 스스로 세상을 등지겠다며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을 예고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런 게시글은 또 다른 이의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법적 처벌의 대상이다. 엄 씨는 이렇게 온라인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을 모니터링하는 자원봉사자다. 그는 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죽고 싶다’는 외침 수천 개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걸까. 24일 서울 광진구에서 엄 씨를 만났다. ● 시간 날 때 틈틈이 생명 지키는 ‘방파제’ 역할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을 모니터링해 삭제를 요청하는 자원봉사단 ‘지켜줌인(人)’ 을 운영하고 있다. 엄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던 2020년 여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던 중 이 활동을 처음 알게돼 시작했다. 엄 씨가 모니터링하는 자살 관련 게시글은 크게 ‘유발정보’와 ‘유해정보’로 나뉜다. 유발정보란 자살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거나 자살행위를 돕는 데 활용되는 정보를 뜻한다. 이런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하면 자살예방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자살유해정보는 자해 사진이나 동영상, 자살을 미화하거나 또는 희화화하는 정보다. 이 경우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다.자살유발정보자살유해정보자살동반자 모집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자살을 실행하거나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 사진, 동영상자살위해물건(번개탄, 농약 등)을 판매하거나 활용하는 내용자해 사진 및 동영상자살을 미화하거나 희화화하는 내용법적 처벌 대상 O법적 처벌 대상 X자살 관련 온라인 게시글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이유는 자살유발정보가 평소 정신건강이 취약하거나 지속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SNS를 많이 사용하고 주변의 자극에 취약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위험하다.엄 씨의 역할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SNS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살펴보는 SNS는 트위터다.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게시글을 찾기 위한 약간의 요령도 필요하다. 예컨대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는 초성만 따서 ‘ㄷㅂㅈㅅ’이라고 적거나, 초성을 딴 ‘두부장사’와 같은 단어로 바꿔서 표현된다. “독성 약품을 판매한다”며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적어둔 게시글 역시 모두 모니터링 대상이다. 엄 씨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해당 게시글의 링크와 캡쳐본 등을 첨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 삭제 조치가 진행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구체적인 의사와 계획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위기 상황이라고 보고 ‘긴급구조대상자’로 경찰에 직접 문자 신고를 한다. 이후 경찰이 위치를 추적해 출동한다. 엄 씨는 “‘내일까지 새로운 글이 안 올라오면 난 세상에 없는 거다’라는 글을 올린 분이 있었는데 실제로 다음 날까지 지켜보니 추가로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신고한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9명을 긴급구조대상자로 신고했다”고 전했다.● “아주 작고 소박한 미래라도 꿈꿀 수 있기를”3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엄 씨는 가끔 자신의 행동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느껴진다. 모니터링을 하고 또 해도, 하루만 지나면 수십개씩 쌓이는 새로운 게시글들을 보면 ‘내가 아무리 신고해도 티도 안 나겠다’ ‘정말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또 게시글을 쓴 당사자들이 ‘왜 참견하느냐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곤 했다. “그분들이 제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직접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니니까요. 제 행동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하지만 엄 씨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며 덧붙였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긴급구조대상자로 신고된 분들은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심리상담 같은 걸 연계해줄테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전날에는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이 10개 올라왔는데, 그다음 날에는 한두 개만 올라올 때가 있어요. 이런 날들이 일주일, 한 달, 두 달…. 계속 모이면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요?”실제로 전문가들은 ‘자살하려는 사람은 정말로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한다. 자살 시도자 중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들이 많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부가 2016~2018년 자살 시도자 3만8193명을 분석한 결과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정말 죽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이들이 37.3%였다. ‘정말 죽으려고 했으며, 그럴만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응답한 34.8%보다 많았다. ‘죽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실제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응답한 이들도 25.5%였다. 변호사를 꿈꾸는 엄 씨는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를 꿈꾸게 됐다. SNS에 올라오는 자해 사진의 90% 이상에 학교생활이나 부모님,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의 글이 함께 올라오는 걸 보면서부터다.“종이에 살짝 베이기만 해도 아픈데,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안타까워요. 각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흔히 말하는 ‘로망’을 품으면서 아주 작고 소박한 미래라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봉사활동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앞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자살 예방 Q&A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Q.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나요?A.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자살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매우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했다고 해서 평생 자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 충동이 강하게 있을 때 그 징후를 잘 포착하고 적절한 위기 개입이 이뤄지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편하게 시연해보세요.” 23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7B홀. 전자담배 박람회 ‘코리아베이프쇼 2023’이 열리는 이곳에선 곳곳에서 희뿌연 전자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자가 한 부스에 들어서자 직원은 액상형 전자담배 샘플을 피워보라고 권했다. 입을 갖다 대는 부분에 갈아 끼울 수 있는 일회용 고무와 소독을 위한 알코올 패드도 준비돼 있었다. 전시기획사인 ‘THE FAIRS’와 한국전자담배진흥원 주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구역(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인 킨텍스에서 실내 흡연이 이뤄질 것을 우려해 행사를 열지 말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주최 측에 보냈지만, 박람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그 결과 우려대로 실내흡연과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장 곳곳에 붙은 ‘시연 금지’ ‘흡연 금지’ 안내문이 무색했다. ● 간접흡연 위험 그대로 노출전시장에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있었다. 부스와 부스 사이 통로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단속을 하던 일산서구보건소 직원에게 적발됐다. 보건소 직원이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하자 이 남성은 “몰랐다. 지금 다들 피우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기자가 전시장에 머문 지 1시간가량이 지나면서부터 목이 칼칼하고 따갑기 시작했다. 전시장은 입장문이 열려 있었다. 그 너머에는 다른 박람회를 찾은 어린이,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이들 모두 간접흡연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람회에서의 호객 행위도 치열했다. 주최 측이 일본 성인물(AV) 여배우의 팬미팅을 열어 순간 30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업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글을 올리거나 게임에서 이기면 전자담배 제품을 무료로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논란이 커지자 킨텍스 측은 ‘내년부터는 전자담배 박람회를 킨텍스에서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고양시, KOTRA의 출자로 이루어진 전시장에서 정부의 금연 정책에 역행하는 내용의 행사가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각종 규제 피해 가는 ‘유사 담배’ 이번 박람회에서 나타난 실내흡연 등의 문제를 제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법상 담배의 정의가 협소한 탓이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서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다. 즉, 연초의 ‘잎’을 원료로 만들어진 제품만 담배에 해당한다. 그 외에 담배의 기능을 하지만,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제품들을 통칭해 ‘유사 담배’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연초의 줄기나 뿌리, 화학물질을 이용한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고 ‘유사 담배’일 뿐이다. 이 때문에 유사 담배는 담뱃갑 경고 그림과 문구 표시, 광고 제한 등 정부의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대부분의 업체는 자신들의 제품이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연구역에서 피워도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담배의 정의를 확대해 이러한 유사 담배가 정부의 규제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에 연초의 줄기나 뿌리, 니코틴으로 만든 유사 담배도 담배로 포함시키자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고양=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여름 휴가철을 맞아 야외 활동과 이동이 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주(9∼15일)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8만6953명으로 전주(2∼8일)보다 22.2%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간 확진자가 18만 명이 넘은 건 올 1월 셋째 주(15∼21일) 이후 반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달 11일 하루 확진자는 3만1224명으로 1월 27일(3만1695명) 이후 165일 만에 3만 명 넘게 발생했다. 지난달 1일 코로나19 격리 의무가 사라진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확진자 수는 휴가철에 들어서며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다만 확진 치명률이 0.03% 수준으로 낮고 중환자 병상 가동률도 30%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질병청은 다음 달로 계획해온 ‘2단계 일상회복 조치’를 그대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2단계에서는 현재 2급인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으로 낮추면서 전수 감시가 아닌 표본 감시로 바뀐다. 검사비와 치료비 지원도 고령층과 중증환자 등으로 한정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등급 조정 시점을 미룰 정도로 위협적인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보건복지부는 집중호우 피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의 주민들에게 건강보험료와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고 19일 밝혔다. 해당 지역 주민 중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최대 6개월 동안 건보료를 30~50% 경감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인적·물적 피해를 동시에 입은 경우 6개월 분의 건보료를, 두 가지 중 한가지 피해만 입었다면 3개월 분을 경감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경감율은 지방자치단체 조사를 통해 산정된다. 또 해당 지역 이재민 중 지자체 피해조사 결과 재난지수(재난지원금 산정을 위해 쓰이는 지표) 300 이상인 경우 병원을 이용할 때 내는 본인부담금을 3개월 동안 의료급여 1종과 같은 수준으로 경감받는다. 의료급여 1종의 본인부담금은 외래 진료 기준 △의원 1000원 △병원·종합병원 1500원 △상급종합병원 2000원이다. 해당 지역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행정안전부 피해조사를 거쳐 재난관리시스템에 피해 대상자로 등록되면, 국민연금 보험료도 최대 1년 간 납부하지 않을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납부예외 신청 안내에 따라 가까운 지사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4월 지방의 A국립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40대 남성이 공장에서 일하다 폭발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왔다. 환자의 몸에 고압 산소를 주입하지 않으면 뇌와 폐의 기능을 영영 잃을 수도 있는 응급 상황. 하지만 A국립대병원에는 이런 치료가 가능한 고압산소치료기가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1대 남아 있던 낡은 장비를 폐기한 뒤 새 장비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권역 내에서 대형 화재나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발생하면 인근 다른 병원으로 환자들을 돌려보낸다. A국립대병원에는 권역 내에서 생긴 응급환자를 최종 치료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다. 하지만 정작 환자를 돌볼 기본 장비조차 없는 것이다. 40대 남성이 실려온 이날은 하필 장비가 있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는 데도 실패했다. 결국 이 환자는 폐가 망가져 제 기능을 못 하게 됐다. A국립대병원이 새 장비 구입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립대병원이다 보니 시설이나 장비를 교체, 구입할 때 국고 지원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정부가 제한된 예산을 기존 사업에 먼저 투입하면서 삭감되기 일쑤였다. 지역사회 기업이나 대학 동문에게 손을 벌리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국립대병원은 기부금품법상 기부금 모집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제3자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부하지 않는 이상 병원이 먼저 기부금 모금 행사를 열거나 홍보를 하는 것도 모두 금지된다. A국립대병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적자가 264억 원이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국립대병원은 ‘돈 안 되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느라 의료 수지가 만성 적자다. 민간 병원과 달리 기부금 모집마저 막혀 있어 낡은 장비와 시설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이라고 지적했다.18년된 심혈관 조영기 툭하면 꺼지고… 27년된 신생아 치료기 사용 의료진 “심혈관 시술중 꺼질까 불안”뇌혈관 MRI 찍으려면 한달 대기의료장비 대여업체서 빌려쓰기도“열악한 환경에 의사도 환자도 떠나” B국립대병원의 심혈관 조영기 중 1대는 2005년 7월에 도입돼 18년째 사용 중이다. 심혈관 조영기는 급성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등 환자의 막힌 심장 혈관을 뚫을 때 필요한 의료기기다. 보통 10년 정도 쓰고 교체해야 한다. 이 병원 의료진들은 낡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서 오작동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오진으로 이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기자가 지난달 28일 B국립대병원을 찾은 날에도 이 기기는 시술 도중 작동이 멈춰버렸다.● 낡은 장비들, 수술-시술 도중 ‘먹통’ B국립대병원은 총 3대의 조영기를 보유하고 있다. 노후된 조영기는 되도록 안 쓰는 게 좋지만 환자가 밀리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 병원 관계자는 “심장을 다루는 시술이라 노후 의료기기를 사용하다가 만에 하나라도 돌발상황이 생기면 대처가 어려울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예산 확보 과정에서 준정부기관 수준의 각종 규제를 받기 때문에 노후 의료기기 및 시설 교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어렵다. 사용 연한이 한참 넘은 의료기기를 그대로 쓰는 이유다. 대당 10억 원을 넘는 기기를 정부 보조나 기부금 모집 없이 국립대병원 재원으로만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B국립대병원은 권역에서 유일하게 신생아중환자실도 운영하고 있다. 병상 25개는 항상 몰려드는 신생아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권역 내 미숙아 진료나 조산도 이 병원이 전담한다. 하지만 신생아 환자 역시 노후 의료기기로 돌보는 상황이다. ‘신생아집중치료시스템(ICS)’이 대표적인 예다. 인공호흡, 보온, 산소치료가 결합된 진료대로 신생아 환자의 호흡을 돕고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B국립대병원에 설치된 ICS 8대 중 3대는 1996∼1998년 도입됐다. 27년 된 기기가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낡은 기기는 체중계 기능이 없고 인공호흡 기능도 신제품에 비해 떨어진다. 고장이라도 나면 빠른 시간 내 수리가 불가능하다.● 비 오면 줄줄 새는 병원… 환자도, 의사도 떠나 B국립대병원 건물에는 외벽 타일이 깨지거나 병실 벽에 균열이 가 있는 곳이 수두룩했다. 고층 타일이 떨어지면 보행자가 다칠 우려도 있었다. 환자가 입원하는 본관 55병상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벽에 금이 가 있어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이 들이친다고 한다. 병원 측은 “의료기기도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에 건물 외벽이나 타일 보수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비도 부족해 뇌혈관 사진을 찍으려면 1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은 “차라리 서울에 가서 찍고 오는 게 빠르지 않겠냐”며 하소연했다. 다른 국립대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C국립대병원 소아중환자실에는 최근 3년 동안 인공호흡기와 침대를 제외한 새 장비가 도입된 적이 없다. 심정지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환자는 이후 3일가량 저체온요법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장비가 없어 외부 대여 업체에서 빌려 쓰고 있다. 이 병원 소아중환자실에는 뇌압 감지 장치도 없다. 혈액투석기도 턱없이 모자라 수시로 성인 병동에서 빌려온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다른 병원들은 로봇 수술 기기처럼 새로운 의료 기술을 도입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반해, 국립대병원은 처지가 열악하다”며 “좌절감을 느끼고 병원을 떠나는 의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국고 지원은 25%에 불과, 기부금 모금도 금지 국립대병원은 교육부의 관할이다. 새 의료기기를 도입하려면 교육부에 국고출연금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이 통과돼도 국고 지원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다섯 건 신청해서 한 건 통과되면 많이 된 거다. 심지어는 국고 지원 없이 우리 돈으로 기기를 사겠다고 해도 불허되는 경우도 있다”며 “방만 경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데, 병원이 환자 위한 의료기기 구입하는 것이 어떻게 방만 경영이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인 지방의료원은 전액 국고 및 지자체 지원을 받아 새 의료기기를 구입한다. 인건비와 적자 보전에 쓰이는 운영비도 지원을 받는다. 지역의료 거점 역할을 하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 메이오클리닉 등 해외 주요 대학병원들은 전체 수익의 10% 이상을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공공의료에 공헌하는 만큼 기부하려는 개인과 기업들이 적지 않다. 병원들도 적극적으로 기부금 유치에 나선다. 국내의 경우 기부금품법상 국립대병원의 기부금 ‘모금’이 불법이다. 기부자가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돈만 받을 수 있다. 병원이 나서서 기부금 모금 행사 등은 할 수 없다. 국립대병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수익 악화가 심해져 자발적인 기부금 접수만으로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국립대병원의 기부금 모금을 허용하는 기부금품법 개정안은 2011년 8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당시 행정안전부가 반대해 법제화가 무산됐다. 기부금을 냈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인 국립대병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번 국회에서도 비슷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청주=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전주=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달 28일 A국립대병원 흉부외과 진료 대기실. 수술 전후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한 가운데 한 진료실이 비어 있었다. 올 초까지 흉부외과 전문의 B 씨가 환자를 보던 공간이다. 그는 이 병원에서 대동맥 박리 등 초응급 심장병 환자의 가슴을 열고 심장에 메스를 댈 수 있는 유일한 개흉술 의사였다. 하지만 365일, 24시간 지속되는 ‘온콜(on-call·비상대기)’ 근무를 견디다 못해 사직했다. A병원은 권역 내에서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다. 심뇌혈관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초응급 심장병 환자를 수술할 의사는 이제 한 명도 없다. 병원은 빈자리를 채우려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 문의조차 없었다. 민간병원보다 약 2억 원 낮은 연봉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은 현행법상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소속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급여가 총액인건비로 묶여 있다. 밤새워 수술한 의료진에게 성과급도 줄 수 없고, 연봉 인상률도 정부 결정대로 일괄 적용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도 보장해야 하는데, 당직 의사를 추가로 구하기도 어렵다. 부서마다 의료진 수가 ‘교원 정원’으로 제한돼 있다. A병원이 개흉술 의사를 구하지 못한 최근 반년 새 인근에서 발생한 초응급 심장병 환자들은 수십∼수백 km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분원까지 포함해 전국에 17곳 있는 국립대병원들은 지역 의료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보건당국은 권역별로 리더 역할을 할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관리하는데, 16개 권역 중 14곳에서 국립대병원이 책임의료기관을 맡고 있다. 국립대병원은 어린이병원이나 외상센터 등 ‘돈이 안 되지만 꼭 필요한’ 공공·필수의료를 도맡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1곳은 평균 5.4개의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정원과 인건비를 규제하는 건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재정 안정성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해야 할 국립대병원에까지 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지방에서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의원이 줄어들고 있다. 국립대병원이 대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병원 인건비 규제에 낮은 연봉… 심장수술할 의사 못 구해‘에이스’들 급여 불만에 개업의 유출…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도 못받아부족한 방사선사는 정원 규제에다른 직종 의료진이 대신 맡아“급여-의료진 채용 탄력 운용” 지적 C국립대병원에는 ‘인터벤션(중재)’을 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1명뿐이다. 인터벤션이란 피부를 절개하는 대신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면서 치료하는 시술이다. 심혈관질환, 비뇨기질환 등의 치료에 활용된다.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하기 때문에 흉터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 치료 후 회복 속도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 시술이 가능한 의사가 1명밖에 없다 보니 해당 의사가 쉬는 날에는 환자를 받기가 어렵다. C국립대병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하기 위해 1년 넘게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가 원하는 만큼의 급여 수준을 맞춰주지 못해 채용에 실패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서울에 몰려 있다”며 “현재 국립대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 병원만큼 급여를 주기가 어려워 의료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 규제에 ‘스타 의료진’ 채용은 꿈도 못 꿔국립대병원이 의료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서는 기타공공기관도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과 예산 지침 등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역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기타공공기관은 ‘총액 인건비 한도’를 지켜야 한다. 국립대병원 또한 이 한도 내에서 의료진 인건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민간 병원만큼의 급여를 제안하며 의료진을 데려오기가 어렵다. 윤경철 전남대병원 안과 교수(기획조정실장)는 “실력 있는 의사를 데려와서 병원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가장 중요한 건 급여”라며 “이른바 ‘스타급 교수’를 데려오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타공공기관은 총인건비 인상률(올해 기준 1.7%)도 정해져 있다 보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당직비를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수도권 대형병원이나 사립대병원으로 의료진 유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게 국립대병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 에이스’들이 점점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며 “정형외과에서 제일 수술을 잘하던 전공의가 개업하겠다고 하면 ‘교수로 남아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교수직을 포기하고 ‘촉탁의로 전환해 달라’고 신청하는 국립대병원 교수들도 생겨나고 있다. 촉탁의는 총액 인건비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1년 단위로 병원 측과 계약을 할 수 있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병동에 상주하며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일만 전담하는 입원전담전문의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립대병원 교수라는 자리의 명예나 고용 안정성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라며 “개원하면 연봉을 2배로 벌 수 있다 보니 의료진들은 ‘가족들이 교수를 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방사선사 부족해도 ‘정원 제한’에 못 늘려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규제는 인건비 제한뿐만이 아니다. 특정 직종 의료진을 더 채용하고 싶어도 ‘정원 제한’이라는 걸림돌에 가로막힌다. 국립대병원은 직원 증원이 필요할 경우 기획재정부 심의 절차를 거쳐 확정된 인원만큼만 더 늘릴 수 있다. 이 역시 국립대병원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D국립대병원에는 수술실에 근무하는 방사선사가 현재 2명뿐이었다. 병원 측은 ‘정원을 2명 더 늘려달라’고 기재부에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수술실에서 뼈와 관절을 실시간으로 투시하는 특수영상장치(C-Arm)를 다룰 방사선사가 부족해 방사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직종 의료진이 대신하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으로 고생하는 방사선사들도 걱정되고, 결국 그 업무를 대신하는 다른 직종 의료진의 업무 과중 문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북대병원 감염관리센터도 이 같은 정원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지난해 5월 총 51개의 음압병상을 갖춘 감염관리센터를 열었다. 현재 이 센터에선 간호사 약 50명이 코로나19 중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만 배정된 인원이라 올해 말에는 이 정원을 반납해야 한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중환자는 전체 확진자 수 감소와 달리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다른 부서 간호사를 데려오려고 해도 그곳 역시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국립대병원 무너지면 취약계층부터 타격”인건비 제한과 정원 제한이라는 규제로 인해 생기는 여러 제약 때문에 국립대병원 의료진 사이에서는 ‘우리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민간 병원과 달리기 경쟁을 하는 셈’이라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물론 국립대병원이 공공기관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니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을 필요는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모든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총인건비 인상률 등 획일화된 기준을 국립대병원에 적용하면 임금 격차에 따른 의료진 유출을 막기 어렵다. 정원 제한도 의료 현장의 수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에 박힌 규제 때문에 병원 역량이 약화되면 결국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의료진과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지역 주민들에게 남는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결국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라며 “의료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 이들과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