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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 시간) 벨기에 비제에서 폐막한 2022 이자이 주니어 국제콩쿠르에서 손지우(예원학교 1학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사진)가 바이올린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손지우는 지난해 열린 제5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위에 오른 음악영재다. 콩쿠르 경연 영상은 이자이 콩쿠르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전자 가위’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DNA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편집할 수 있게 된 현실은 난치병을 퇴치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이 창조될 수 있다는 불안을 동시에 선사한다. 2020년 노벨화학상은 유전자 가위에 돌아갔다.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에게 돌아갔다. 여성들만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첫 사례다. 이 책은 그중 한 주인공인 다우드나의 일대기다. 동시에 크리스퍼 가위 기술이 탄생한 배경과 발견, 발전, 전망을 과학에 관심 있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상세히 전달한다. 1980년대 생물학자들은 세균의 DNA에 ‘반복되면서 대칭을 이루는’ 독특한 코드, 즉 크리스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기능을 밝힌 이들은 요구르트 회사에서 일하는 식품과학자들이었다. 바이러스가 유산균에 침입하면 균은 이 바이러스의 DNA 일부를 잘라낸 뒤 자신의 DNA에 삽입했고 침입자에 대한 면역을 획득했다. 다우드나 팀이 이뤄낸 것은 세균의 방어전략인 크리스퍼를 인간의 도구로 가져온 일이었다. 연구팀은 세균이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내는 메커니즘을 밝혀냈고, 이를 통해 원하는 대로 생명체의 DNA를 편집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도 DNA를 자르거나 이어붙이는 기술은 있었지만 이제 가이드 역할을 하는 crRNA를 조작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정확하고 자유롭게 자르고 붙이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과학적 층위에서는 읽어 내려가기 까다로울 수 있지만 이 책을 한층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 기술과 관련된 여러 과학자들의 협력과 우정, 질투와 배신이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우정과 반목을 거듭했다. 과학 매스컴이나 타인의 학술논문이 한 사람을 조명할 때 다른 한편은 불편해했고 사이는 점차 멀어졌다. 노벨상 공동수상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전화기를 붙들고 흉금을 터놓을 수 있었다. 다우드나와 특허권 분쟁을 펼쳐온 숙적 장펑과의 라이벌 관계도 흥미를 돋운다. 저자는 장펑의 진지한 인터뷰 자세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동료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는 혐의를 떨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아기라는 금단의 영역을 건드렸다가 범죄자로 낙인찍힌 중국학자 허젠쿠이와 다우드나 사이에도 탐색과 긴장의 시간이 이어진다. 책은 자연히 유전자 조작과 관련한 윤리적 논의로 이어진다. 이 기술은 불치병에서 해방된 행복한 세상으로 인류를 데려다줄까, 아니면 악한의 손에 넘겨질 수 있는 ‘인간기계’를 양산할 것인가. 주인공 다우드나와 저자의 시각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의) 평균적인 능력을 향상하려는 시도를 막고 돌연변이를 수정해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만 계속한다면, 우리는 안전한 쪽에 머무를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노의 조상인 하프시코드 연주와 현대무용이 어울리는 보기 드문 무대가 마련된다. 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바로크 음악과 현대무용의 조우’. 하프시코드 연주자 조성연(연세대 교수)과 마르친 시비옹트키에비치(폴란드 시마노프스키 음악원 교수)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현대무용가 서일영 정지혜가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춤으로 표현한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피아노처럼 현을 ‘때리지’ 않고 ‘튕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 1700년경 피아노가 발명된 뒤에도 19세기 초까지 피아노와 나란히 사용됐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하이든, 모차르트, 보케리니의 18세기 중후반 하프시코드 듀오 곡을 선보인다. 하프시코드 두 대로 연주하는 곡과 한 대로 두 사람이 연주하는 ‘포핸즈’ 곡이 섞여 있다. 무대를 기획한 조 교수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옛 음악이 가진 풍부한 장식음 등 즉흥성과 영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현대무용은 통한다. 옛 음악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대조’다. 청각과 시각의 대조, 각 시대의 대조를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시비옹트키에비치는 여러 음반사에서 바흐 하프시코드 협주곡,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폴란드 하프시코드계의 대표 주자. 조 교수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대전예술의전당 바로크 뮤직 페스티벌에 2016년부터 출연하며 합을 맞춰 왔다. 조 교수는 “내가 정격연주(옛 스타일을 지키는 연주)의 극단을 추구하는 반면 시비옹트키에비치는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그래서 대조 속에 오히려 호흡이 맞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6일 아트센터인천에서 열리는 ‘비바 헨델’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는 연주회다. 소프라노 김제니, 카운터테너 장정권, 바리톤 김태일이 두 사람의 하프시코드와 조 교수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바로크 오케스트라 ‘아니마코르디’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5일 공연 3만∼5만 원, 6일 공연 2만∼7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신랑, 걱정이에요. 폴란드 갔다가 우크라이나 들어갔어요. 총 든 사진 보냈어요. 전쟁하러 갔어요. 아휴.” 전화를 받은 우크라이나인 나타샤 드미트로 씨(48)는 2일 우리말로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남편인 우크라이나인 지우즈킨 드미트로 씨(47)는 이날 군용 차량 앞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사진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보내왔다. 지우즈킨 씨는 단원 72명이 있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단원이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다 지금 우크라이나 고향에서 총을 잡은 이는 두 명 더 있다. 비올라 주자 레우 켈레르 씨(51)와 트럼펫 연주자 마트비옌코 콘스+틴 씨(52)다. 이들은 지우즈킨 씨를 따라 고국으로 떠났다. 총 4명의 우크라이나인 단원 중 한국인 아내와 자녀들을 둔 한 사람만 서울에 남았다.우크라인 아내 “빨리 전쟁끝나 신랑 돌아오게 해주세요” 사단법인인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단원 중 금관을 중심으로 한 여러 명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왔다. 이들은 충실한 연주력과 성실한 근무 태도로 한국인 단원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에 전운이 드리우면서 지우즈킨 씨는 “우크라이나에 가봐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지우즈킨 씨는 고향 키이우에 있는 어머니를 3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다. 나타샤 씨는 “내 엄마와 동생 아이들, 같이 폴란드로 갔어요. 가족들 거기 있고, 신랑, 혼자 우크라이나 갔어요”라며 울먹였다. 우크라이나로 떠난 지우즈킨, 켈레르, 콘스+틴 씨는 동료 단원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요즘 코로나19로 연주가 많지 않잖아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어제서야 지우즈킨 씨가 재직증명서를 떼어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대출을 받아 비행기표를 샀다고 하더군요.” 오케스트라의 하성호 상임지휘자는 말끝에 울먹였다. “지우즈킨 씨는 아주 성실한 친구죠. 2002년부터 16년째 우크라이나 친구들 모두 너무나 성실해요. 전장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을까 봐, 아는 입장에선 더 걱정입니다.” 나라 사이가 험하든 좋든 러시아 단원들과 우크라이나 단원들은 친하게 지냈다. 하 지휘자는 “국제적 환경이 가져온 현실이 안타깝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타샤 씨는 “일요일, 서울 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모여서 또 전쟁 반대 외치기로 했어요. 한국 사람들, 도와주세요. 전쟁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신랑 어서 돌아오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우리말을 이어가던 그는 마지막에 영어로 덧붙였다. “한국과 폴란드, 우크라이나에 흩어진 가족이 빨리 다시 모이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이 포함된 악단이 멋진 연주를 펼치는 걸 함께 보고 싶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환갑을 맞은 국립오페라단이 60년 전 공연한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직후인 1962년 4월 서울 명동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장일남 작곡 ‘왕자호동’을 11, 1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왕자, 호동’으로 공연한다. 여자경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들고, 지난해 그와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브람스…’에서 호흡을 맞춘 한승원이 연출을 맡는다. 장일남의 ‘왕자호동’은 동랑 유치진(1905∼1974)의 희곡 ‘자명고’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고구려 왕자 호동과 낙랑의 공주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적국의 왕자 호동을 사랑하는 낙랑공주는 적의 침입을 알려주는 북 ‘자명고’를 몰래 찢고, 고구려의 침입을 받은 낙랑의 왕 최리는 딸을 죽이고 만다. 현제명의 오페라 ‘왕자호동’(1954년), 김달성의 오페라 ‘자명고’(1969년), 임성남이 안무한 국립발레단 창작발레 ‘왕자호동’(1988년)이 같은 소재를 택할 정도로 호소력을 자랑하는 줄거리다. 초연 당시 30세의 신예 작곡가였던 장일남은 이후 가곡 ‘비목’ ‘기다리는 마음’을 선보이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한승원 연출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왕자 호동 개인의 얘기를 넘어 각 인물들의 삶으로 들어가 권력투쟁 속의 이해와 사랑을 사건 중심으로 정밀하게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특히 각 인물의 선택이 사건 전개에 주는 영향을 낙랑공주에게 초점을 맞춰 풀어 나갈 예정이다. 3개의 막 사이에는 국악 소리꾼이 해설자로 등장해 극의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원작 희곡의 5개 막을 오페라에서 3개로 압축하면서 이해가 쉽지 않아진 부분을 설명하는 장치다. 편곡을 맡은 작곡가 전예은은 국립오페라단 블로그에 실린 ‘편곡노트’에서 “원곡에 서곡을 추가하고 일부 부분의 순서를 바꾸었지만 서곡을 제외한 부분은 새롭게 작곡된 부분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 장면에 맞게 섬세하고 탄탄하게 사용된 원작의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호동왕자 역에 테너 이승묵 김동원, 낙랑공주 역에 소프라노 박현주 김순영, 낙랑의 왕 최리 역에 테너 김남두 정의근이 출연한다. 해설자(이야기꾼) 역할은 소리꾼 김미진 서의철이 맡는다. 공연은 국립오페라단 동영상 ‘크노마이오페라LIVE’로 동시 중계한다. 3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조성진(28·사진)이 ‘친푸틴’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조성진의 빈 필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은 당초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로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가 협연할 예정이었다.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날 카네기홀과 빈 필은 게르기예프 대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인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를 맡는다고 발표했지만 협연자 교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게르기예프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과 합병 당시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 19명과 함께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마추예프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카네기홀과 빈 필은 공연 당일인 25일에야 조성진이 협연자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연락을 받은 조성진은 활동 근거지인 베를린에서 급히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 공연에 참여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카네기홀과 빈 필이 조성진에게 공식적으로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조성진은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리허설과 백스테이지(무대 뒤) 사진을 올리고 ‘마지막 순간 참여하게 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조성진(28)이 ‘친 푸틴’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조성진의 빈 필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은 당초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로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가 협연할 예정이었다.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날 카네기홀과 빈 필은 게르기예프 대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세갱이 대신 지휘를 맡는다고 발표했지만 협연자 교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게르기예프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침공과 합병 당시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 19명과 함께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마추예프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카네기홀과 빈 필은 공연 당일인 25일에서야 조성진이 협연자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연락을 받은 조성진은 활동 근거지인 베를린에서 급히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 공연에 참여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카네기홀과 빈필이 조성진에게 공식적으로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조성진은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리허설과 백스테이지(무대 뒤) 사진을 올리고 ‘마지막 순간 참여하게 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초 이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었던 게르기예프는 잇단 공연 취소와 해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앞서 밀라노의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는 그에게 “우크라이나의 평화적 해결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을 경우 라 스칼라에서 예정된 차이콥스키 오페라 ‘스페이드 퀸’을 지휘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디터 라이터 독일 뮌헨시장은 “게르기예프가 28일까지 러시아의 야만적 공격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경우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침공에 대해 여러 러시아 출신 음악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러시아 출신 미국 지휘자 세묜 비취코프는 침략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체코필은 본부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며칠 전 발표한 영상메시지에서 “침략 전쟁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나치 전범과 유고 내전 전범들은 재판을 통해 교수대나 감옥에서 오욕의 삶을 마쳤다. 아무도 역사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앞으로 올 세대에 그들은 피에 굶주린 범죄자들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러시아의 야욕을 강력히 비판했다. 키신은 게르기예프와 동향인 모스크바 출신이며 1986년 세계 순회연주와 2018년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축제 출연을 함께 하는 등 커리어의 초반부터 최근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흑인 여성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교향곡 4곡을 비롯한 대작들을 만든 미국 작곡가 플로렌스 프라이스(1887∼1953)의 작품들이 뒤늦게 조명을 받고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음악감독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한 프라이스의 교향곡 1, 3번 앨범을 지난달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했다. 이 음반은 발매 즉시 클래식 음반 전문지 그라모폰의 ‘이달의 음반’, 프레스토 ‘편집자의 선택’과 BBC 라디오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BBC 뮤직 매거진은 “섬세한 디테일을 갖춘 프라이스의 만화경 같은 관현악을 잘 살려냈다”고 평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존 제터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빈 ORF 방송 교향악단이 프라이스의 교향곡 3번을 세계 최초로 녹음 발매했다. 프라이스는 아칸소주 리틀록의 치과의사 아버지와 음악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15세 때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오르간과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미국 흑인에 대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멕시코 푸에블로’로 기재해야 했다. 결혼해 리틀록으로 돌아온 뒤 흑인에 대한 폭력 사건이 거듭 일어나자 1927년 시카고로 이사했다. 35세 때 워너메이커 재단 작곡상에 응모한 프라이스는 교향곡 1번으로 1등상을 받았다. 1933년 시카고 박람회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카고 교향악단이 그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하면서 그는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가 작품을 연주한 첫 미국 흑인 여성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뒤 잊혀지다시피 한 프라이스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2009년. 그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빈 집에서 수많은 악보와 논문이 나왔다. 바이올린 협주곡 2곡과 교향곡 4번도 처음 발견됐다. 9년 뒤인 2018년, 악보출판사 셔머가 프라이스의 악보 전체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고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새 음반들에서 프라이스는 미국 흑인 특유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남부 시골의 흑인음악 요소와 시카고의 도회적 느낌이 한데 어울린다. 처음 들어도 매우 이해하기 쉬우며 한국인의 심성에도 맞아들 법한 소박함과 흥겨움이 넘쳐난다. 교향곡 1, 3번의 3악장에는 ‘주바’라는 흑인 춤 이름이 붙어 있다. 이달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가 독집앨범 ‘아메리카’에 프라이스의 바이올린 곡 ‘경모(adoration)’를 거슈윈 번스타인 코플런드 등의 작품과 함께 수록했다. 프라이스가 쓴 교향곡의 느린 악장들과 비슷한 명상적인 분위기와 소박한 사색의 세계가 펼쳐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3월 서울에 ‘김지연 시즌’이 펼쳐진다. 스무 살이던 1990년, 미국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하고 ‘바이올린 요정’으로 각인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사진). 대중에게는 1990년대 샴푸 광고 모델로 친숙하다. 그가 미국 백악관 초청 음악회에서 단상을 치워달라고 부탁하자 객석 맨 앞줄에 앉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이 직접 단상을 옮긴 일은 유명하다. ‘대통령을 움직인 여자’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다음 달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악단 협연무대 ‘김지연의 8ight(8+Eight) Seasons’를 시작으로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의 3중주 무대 ‘트리오 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5일 피아니스트 조재혁과의 듀오 리사이틀(예술의전당 IBK챔버홀)까지, 세 개 무대를 연달아 갖는다. 이번에 두 개 무대를 함께하는 조재혁과 미국 텍사스주 올버니의 집에 있는 김지연을 18일 화상 인터뷰했다. 김지연은 “조재혁은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음악을 보는 눈이 깊으며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조재혁은 “김지연의 연주는 감각적이고 화려하면서 가볍지 않고 즐거움이 녹아 있다”며 웃음 지었다. 둘은 줄리아드음악원 동기다. ―듀오 무대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등을 연주합니다. ▽김=슈트라우스의 소나타가 주인공입니다. 훗날의 아내 파울리네와 연애하던 시절 작곡한 곡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모두 화려하고, 2악장은 매우 감미롭죠. ―첼리스트 송영훈이 함께하는 8일 공연에 ‘트리오 인(i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조=2019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셋이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협연했죠. 트리오 인이라는 이름에는 항상 음악 ‘안’에서 청중과 함께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이번에는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가 쓴 피아노 3중주를 연주합니다. 클라라의 3중주는 섬세하고 가슴을 적시는 요소가 많아요. ―‘클래시칸 앙상블’과 함께하는 ‘8ight Seasons’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연주해요. 클래시칸 앙상블은 줄리아드, 맨해튼, 매니스 음악원 출신 연주자들이 모인 악단입니다. ―1990년대 김지연의 연주는 ‘젊음의 밝음이 한껏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김=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 철이 없어요.(웃음) 하지만 저보다 ‘더’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는 일이 많아졌어요. 코로나19 국면이 끝나면 더 사랑하고 느끼고 뭐든 마음껏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희망을 세 무대에서 전하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1877년) 3악장은 여러모로 기묘하다. ‘스케르초’로 표기되어 있지만 통상의 스케르초에서 들을 수 있는 빠른 3박자 대신 2박자로 되어 있다. 게다가 현악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한다. 차이콥스키는 이 악장을 ‘술에 취하기 시작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자유롭고 괴상한 상상들’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에는 ‘취한 농부들과 거리에서 들리는 노랫가락’ ‘멀리서 들리는 군악대의 행진’도 표현된다. 이 교향곡에는 제목이 없다. 차이콥스키가 청중을 위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것을 밝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1악장부터 마지막 4악장까지 그가 나타내려 했던 것을 꽤 소상히 알 수 있다. 차이콥스키가 이 곡에 묘사한 내용들을 후원자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악보와 함께 적어 보냈기 때문이다. 편지에 따르면 1악장은 ‘행복의 추구를 방해하는 운명’, 2악장은 ‘일에 지쳐 홀로 앉았을 때의 우울한 상념’, 4악장은 ‘민중의 축제’를 그렸다. 차이콥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훗날 공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내용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편지 덕분에 우리는 취한 차이콥스키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술은 예술가들의 친구이자 영감을 자극하는 뮤즈(예술의 여신)였다. 그러나 뜻밖에 ‘술 취한 사람’을 표현한 음악 작품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에는 계절마다 각각의 곡을 표현한 소네트(짧은 정형시)가 붙어 있다. ‘가을’ 1악장은 다음과 같다.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수확을 축하하고 바커스의 술로 열기를 더한다. 연회는 잠으로 끝난다.” 두 세기 뒤인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로마의 축제’ 4부 ‘주현절(La befana)’에서 그려낸 이탈리아인의 축제도 비슷하다. 예수의 신성(神性)이 나타난 것을 축하하는 축제를 맞이해 로마인들이 나보나 광장에서 펼치는 광란과도 같은 떠들썩한 모습들을 그렸다. 트럼펫 솔로를 비롯한 금관들이 표현하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닌 ‘고성방가’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가곡집과 교향곡 사이에 놓인 독특한 작품이다. 독일어로 번역된 옛 한시(漢詩)들을 가사로 사용했다. 여섯 개 악장 중 두 개가 술 노래다. 1악장 ‘지상의 괴로움을 노래하는 술 노래’는 술 권하는 노래다. ‘가득 찬 술잔은 세상 어떤 나라가 부럽지 않다’고 찬미하다가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삶은 어둡다. 죽음도 그러하다’고 노래한다. 5악장의 ‘봄에 취한 자’에서는 ‘삶이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수고할 건가. 차라리 흠뻑 취하리라’고 외친다. 노래가 함께하는 오페라는 어떨까. 유명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서 여러 오페라에 ‘축배의 노래’가 나오지만 의외로 술 취한 사람을 그리는 장면은 많지 않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묘약’은 다름 아닌 와인이다. 돌팔이 약장수의 ‘이 약을 마시면 사람들이 자네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만 믿고 순진한 총각 네모리노는 덥석 ‘약’을 사서 마신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사모하는 처녀 아디나 앞에서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디나는 기분이 상하고 만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서 나잇값 못하는 늙은 신랑 옥스 남작이 부르는 ‘나 없으면’도 술 취한 장면의 노래다. 늦장가를 가게 된 옥스 남작은 신부의 집에 청혼 사절을 보냈지만 잘되어 가는지 보겠다며 직접 그 집으로 들어가 말썽을 피우고 만다. 신붓감은 그에게 크게 실망하고, 철없는 옥스 남작은 포도주에 취해 다른 여인과의 밀회를 꿈꾸며 흥겨운 왈츠를 흥얼거린다. 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 지휘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할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얘기가 길어졌다. 바딤 레핀이 협연하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도 이날 연주된다.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는 계절, 술자리의 유혹도 많다. 하지만 술은 예술가의 뮤즈이기에 앞서 수많은 사고를 유발하는 어두운 유혹이기도 하다. 특히나 술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 것은 절대 삼갈 일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3월 서울에 ‘김지연 시즌’이 펼쳐진다. 1990년 20세로 미국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하고 프랑크의 소나타, 생상스와 랄로의 협주곡집 앨범 등을 선보이면서 한 시대의 바이올린 요정으로 각인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그는 3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악단 협연무대 ‘김지연의 8ight(8+Eight) Season’을 시작으로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3중주 무대 ‘트리오 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5일 피아니스트 조재혁과의 듀오 리사이틀 등 세 개의 무대를 연달아 갖는다. 이번에 두 개의 무대를 함께 하는 조재혁과 미국 텍사스주 올버니의 집에 있는 김지연을 18일 화상회의 앱으로 인터뷰했다.―두 분은 2018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함께 연주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음악적으로 잘 맞았나요. 김: 좋았으니까 다시 같이 하죠(웃음). 조 선생님은 언제나 준비도 완벽하게 해주시고 음악을 보는 눈도 너무 깊으면서 머리 회전이 빠르셔요. 바로 서로의 생각을 느끼면서 연주하죠. 조: 김 선생님은 줄리어드 동기였지만 재학 시절에는 안면만 있는 정도였어요. 2018년 연주는 열흘 남기고 저를 급하게 피아니스트로 구하신 건데, 그때 좋게 보셨나 봐요. 김 선생님의 연주는 감각적이고 화려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즐거움이 연주에 녹아들죠. 둘 다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데, 빨리 먹으러 나가자고 리허설을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다(웃음). ―듀오 무대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등을 연주하시는데. 김: 슈트라우스의 소나타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이올린 피아노 모두 화려하고, 2악장은 매우 감미로운 곡이죠. 슈트라우스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파울리네와 사랑에 빠졌던 시절에 작곡한 곡이라서 매우 로맨틱합니다.―첼리스트 송영훈이 가세한 8일 공연에 ‘트리오 인(i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앞으로 쭉 같이 활동하게 되는 건가요. 김: 2019년에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셋이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협연했고 같은 해 금호아트홀 연세에서도 공연했죠. 서로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모이기로 뜻을 모았어요. 트리오 인이라는 이름에는 항상 음악 ‘안’에서 청중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조: 연주를 할 때 연습과 리허설에서 많은 것을 정해두지만, 저희 셋은 무대 위에서 새롭게 느낀 것을 즉흥적으로 풀어나갈 때도 자연스럽게 눈짓 하나로 마음이 맞아요. 이번 공연에서는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가 쓴 피아노3중주를 무대에 올립니다. 1853년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의 슈만 집을 방문했을 때 음악으로 교류했던 일을 떠올리는 무대죠. 특히 클라라의 3중주는 섬세하고 우리 가슴을 적시는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클래시칸 앙상블과 함께 하는 ‘8ight Seasons’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 비발디의 ‘사계’와 탱고 작곡가로 유명한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를 연주하는 무대에요. 클래시칸 앙상블은 줄리어드, 맨해튼, 메네스 대학 출신 연주자들이 모인 악단인데, 지휘자가 없이 서로 상의해서 앙상블을 맞추는 악단입니다.―1990년대 김지연의 연주는 ‘젊음의 밝음이 한껏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 철이 없어요. (웃음) 하지만 저보다 ‘더’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시큰한 감동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전 덴온 레이블로 발매된 생상과 랄로의 협주곡 음반, 프랑크 소나타 음반은 연주의 품격 외에 녹음의 품질로도 찬사를 받았습니다. 쨍하게 빛나는 바이올린 음색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지금도 당시의 악기를 쓰시는지요. 김: 1669년 제작된 ‘프란체스코 루지에리’ 악기를 쓰고 있어요. 당시 녹음에 쓰인 악기죠. 그 악기가 들려주는 소리를 이번에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올해의 다른 계획은 김: 줄리어드 2학년 때 주말마다 프로그램 바꿔가며 리사이틀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강효 교수님 레슨 때 울며 정말 힘들다고 얘기했어요. 선생님께서는 ‘일단 이번 것만 걱정하자’고 하시더군요. 위안을 받았어요. 그때 이후 먼 계획보다 오늘 하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 저는 올해 쇼팽 솔로 음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이 나올 예정이구요, 3월 말에는 강릉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데 생상스 피아노협주곡 2번에서는 피아노를, 생상스 교향곡 3번에서는 오르간을 협연합니다.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투어도 가질 예정입니다. 김: 평소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가볍게 인사 나누고 연주하고 헤어지고 했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되고 나서는 처음 보는 음악가들 사이에도 서로 애틋하고, 훨씬 더 배려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랑을 잃고 나면 더 깊이 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것과 같죠. 이 국면이 끝나면 더 사랑하고 더 느끼고 뭐든지 마음껏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희망을 이번 세 무대에서 전하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975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만 19세로 우승한 폴란드 피아노계의 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사진)이 3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자가 격리 7일을 감수하고 입국하는 만큼 선물 보따리도 풍성하다. 대구콘서트하우스(25일)를 시작으로 부산문화회관(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3월 1, 2, 6일), 대전예술의전당(3월 4일)까지 여섯 차례 공연을 펼친다. 바흐 파르티타 1, 2번과 모국 출신 대가 쇼팽의 소나타 3번, 시마노프스키 마주르카 13∼16번을 연주한다.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광대한 레퍼토리를 지닌 지메르만은 연주생활 5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흐트러짐 없는 기량으로 팬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지난해 발매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집음반(도이체 그라모폰)은 ‘지메르만의 해석은 찰나의 우아함으로 숨을 멈추게 만든다’(BBC뮤직)는 격찬을 받았다. 지메르만은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가장 적합한 터치를 유지하기 위해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구해 다니고, 현장 상황에 따라 건반과 액션(건반 움직임을 현에 전달하는 장치)을 가져와 피아노에 연결하기도 한다.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의 산물이다. 이런 면모는 한 세대 앞선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1920∼1995)를 연상시킨다. ‘피아노 옮겨 다니기’의 원조가 미켈란젤리였고, 지메르만은 젊은 시절 ‘조율사로 미켈란젤리와 동행하기’가 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완벽주의나 철저한 신조에 따른 ‘까칠함’도 두 연주가는 닮았다. 지메르만은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앞두고 무대에 설치된 마이크 철거를 요구해 콘서트 시작이 지연됐다. 절대 녹음은 없을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득이 이어진 뒤에야 연주를 시작했다. 2009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연주회에서 미국의 폴란드 내 미사일 배치를 항의하는 발언으로 객석의 야유를 받았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더 이상 연주하지 않고 있다. 미켈란젤리가 연주 취소에 따른 위약금 문제 등으로 유감을 표한 일본이나 모국 이탈리아에서까지 연주를 거절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만년의 거주지로 스위스를 택한 것도 두 사람이 같다. 다른 점이라면 미켈란젤리의 연주가 숙연할 정도의 정갈함을 앞세웠다면, 지메르만은 그를 연상시키는 깨끗한 터치 속에서도 ‘곁을 내주는’ 따뜻함을 더 갖췄다는 것. 서울 공연 7만∼1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네 살 때 처음 간 미술학원에서 아이는 음표와 건반을 그렸다. 옆의 음악학원으로 옮겼다. 피아노도 잘 쳤지만 다음 해부터 오선지를 그려 곡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피아노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입학했고 TV 프로그램 세 곳에 영재로 출연했다. 피아니스트 서형민(32). 그를 1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5일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 첫 순서로 자신의 곡 ‘세 개의 피아노 소품’을 연주한다.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다. 이 콩쿠르에서 그는 1등상과 3개 부문 특별상을 휩쓸었다. “결선이 두 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첫 결선에서 현대곡과 베토벤의 3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있어요. ‘현대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주최 측과 심사위원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자작곡에 이어 베토벤 소나타 30번,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베토벤 콩쿠르 훨씬 이전부터 베토벤은 ‘신적 영역’에 있는 존재였다고 그는 말했다. 이 콩쿠르 전 이미 서형민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경남 통영에서 열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3년 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5년 만의 국내 무대를 가졌다. 2020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도 열었다. 열 살 때 미국 매네스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국내 음악계와 학연의 끈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맞는 음악가들과 현악합주단 ‘노이에 앙상블’을 창단해 지난달 데뷔연주를 지휘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뒤 두 가지 화제가 그를 따라다녔다. 하나는 그의 어머니다. 그는 지난해 공연 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16세 때 상경해 봉제공장에 취직한 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했고, 아들을 위해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네일숍과 세탁소에서 밤낮으로 일한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에 감사를 표했다. 서형민이 이겨내 왔고, 앞으로도 이겨내야 할 역경 중 하나는 그를 줄곧 따라다닌 손가락 염증이다. 손톱이 들뜨며 통증이 찾아왔고 때로는 고름이 찼다. 2016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 2019년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을 모두 그 고통과 싸우며 이겨냈다. 다행히 이제는 통증이 연주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본 베토벤 콩쿠르 우승으로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올해 9월에는 콩쿠르 우승 혜택으로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독일에서 연주한다. “자작곡도 연주하고 지휘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더군요.” 10년, 20년 뒤 사람들은 그를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중 어떤 이름으로 기억할까.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일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피아노에 주력하면서 다른 기회가 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작곡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고요.” 야심작이 될 피아노협주곡도 12년째 ‘끄적거리고’ 있다. 그는 러시아 근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듣기 어렵지 않은 곡이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네 살 때 처음 간 미술학원에서 아이는 음표와 건반을 그렸다. 옆의 음악학원으로 옮겼다. 피아노도 잘 쳤지만 다음 해부터 오선지를 그려 곡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피아노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입학했고 TV 프로그램 세 곳에 영재로 출연했다. 피아니스트 서형민(32). 그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 첫 순서로 자신의 곡인 ‘세 개의 피아노 소품’을 연주한다.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다. 이 콩쿠르에서 그는 1등상과 3개 부문 특별상을 휩쓸었다. “결선이 두 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첫 결선에서 현대곡과 베토벤의 3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있어요. ‘현대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주최측과 심사위원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자작곡에 이어 베토벤 소나타 30번,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베토벤 콩쿠르 훨씬 이전부터 베토벤은 ‘신적 영역’에 있는 존재였다고 그는 말했다. 이 콩쿠르 전 이미 서형민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통영에서 열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3년 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5년만의 한국 무대를 가졌고 2020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열 살 때 미국 매네스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국내 음악계와 학연의 끈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맞는 음악가들과 현악 합주단 ‘노이에 앙상블’을 창단해 지난달 데뷔연주를 지휘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뒤 두 가지 화제가 그를 따라다녔다. 하나는 그의 어머니다. 지난해 공연 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16살 때 상경해 봉제공장에 취직한 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했고, 아들을 위해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네일샵과 세탁소에서 밤낮으로 일한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에 감사를 표했다. 서형민이 이겨내 온, 앞으로 이겨내야 할 중요한 역경 중 하나는 그를 줄곧 따라다닌 손가락 염증이다. 손톱이 들뜨며 통증이 찾아왔고 때로는 고름이 찼다. 2016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 2019년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 등을 모두 그 고통과 싸우며 이겨냈다. 다행히 이제는 통증이 연주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베토벤 콩쿠르 우승으로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올해 9월에는 콩쿠르 우승 혜택으로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독일에서 연주한다. “자작곡도 연주하고, 지휘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10년, 20년 뒤 사람들은 그를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중 어떤 이름으로 기억할까. “계획하고 노력을 배분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피아노에 주력하면서 다른 기회가 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작곡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고요.” 야심작이 될 피아노협주곡도 12년째 ‘끄적거리고’ 있다. 그는 러시아 근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듣기 어렵지 않은 곡이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중세의 기사들도 전쟁을 앞두고 몸 관리를 했다. 현대의 다이어트는 언제 어디서 탄생했을까. ‘1890∼1910년대 미국’이라는 게 저자가 알려주는 답이다. 이 시기 다이어트 상품 광고가 급증했고 체중계가 급속히 보급됐다. 1918년에는 룰루 피터스의 책 ‘다이어트와 건강’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유는 충분했다. 19세기에 깡마른 몸은 결핵의 위험을 상기시켰지만, 보건위생이 개선되고 결핵이 줄자 사람들은 비만이 가져다주는 질병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날렵한 몸매는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된 자세로 인식됐다. 귀족층이 붕괴하고 주부의 살림이 강조되면서 ‘효율과 관리’를 강조하는 가정학이 대두됐다. 기성복이 널리 보급됐고 사람들은 옷의 규격에 몸을 맞추기 시작했다. 1966년 패션계를 강타한 모델 트위기는 현대의 과격한 다이어트로 넘어오는 변곡점이 됐다. 트위기의 깡마른 몸매는 성숙한 여성스러움을 거부하고 소녀로 돌아가려는 욕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1970년대 펑크 열풍은 이전 히피족의 자연주의에 대립하는 반자연주의와 인공적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펑크의 학대적 공격성은 과격한 다이어트의 고통과 통했다. 오늘날의 다이어트는 환경주의와 결합하며 ‘힐링 세러피’와 같은 치유의 메시지를 동반한다. 결국 다이어트는 신체의 문제이면서 그 이상으로 정신의 문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풍부한 사례와 쉽게 읽히는 문체가 책장을 술술 넘기도록 만든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노 반주 딸린 독창곡으로 익숙한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합창과 함께 듣는다. 성남시립합창단이 1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합창으로 듣는 겨울 나그네’. 이 합창단의 손동현 상임지휘자가 지휘하고 바리톤 김대수(울산대 교수)가 독창자로 출연한다. 피아니스트 겸 가곡 문헌학자인 유희정이 해설을 맡는다.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는 빈 소년합창단이 노래하는 합창곡으로 친숙하지만 전 24곡 중 다른 곡을 합창으로 연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합창 버전 악보를 만든 그레고어 마이어(독일 게반트하우스 합창단 지휘자)가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은 여러 사람이 함께할 때 더 강력해진다’라고 한 걸 읽고 마음이 움직였죠. 그게 우리가 합창을 하는 이유이니까요.” 2019년 8월 성남시립합창단에 부임한 손 상임지휘자는 취임 반년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맞았다. 여러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밝은 곡들로 청중에게 위로를 주는 데 주력해 왔지만 ‘시대의 슬픔을 그대로 함께 슬퍼하는 것도 예술이 전해주는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겨울 나그네’ 전 24곡마다 편곡된 모습도 각각 다르다. 18곡 ‘폭풍의 아침’은 주변 환경의 묘사가 두드러지는 만큼 독창자 없이 합창단이 노래한다. 10곡 ‘휴식’은 피아노를 뺀 무반주 합창과 독창자가 함께한다. 제목처럼 짙은 고독을 드러내는 12곡 ‘고독’과 20곡 ‘이정표’ 두 곡은 합창 없이 독창자가 노래한다. 대부분의 곡은 독창과 합창이 선율을 주고받거나 합창이 피아노에 반주 역할을 더한다. 소프라노 알토 등의 합창단원이 독창을 맡는 부분도 있다. 14곡 ‘백발’은 독창이 ‘서리가 내려 내 머리를 덮었네’처럼 1인칭으로 노래하는 반면 합창은 ‘그의 머리를 덮었네’처럼 3인칭으로 표현해 흥미롭다고 손 지휘자는 귀띔했다. “‘겨울 나그네’의 시를 쓴 빌헬름 뮐러나 곡을 붙인 슈베르트 모두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고, 두 사람 모두에게 마지막 단계의 작품이죠. 죽음을 예감하듯 감정적으로 매우 외롭고 춥고 힘겨운 곡입니다. 두 예술가가 빚어낸 사랑과 이별, 상실에 대한 깊은 감정을 합창과 함께 들으면서 위로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손 지휘자는 “오늘날의 음악과 비교할 때 ‘겨울 나그네’에 사용된 음악적 기교와 도구들은 단순하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놀라울 정도다. 관객들이 계속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신경을 쓰며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석 5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교육대 음악영재교육원이 2022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 3∼6학년(2022학년도 입학전형 입학일 기준)을 대상으로 피아노 관현악 성악 국악 분야 음악영재와 미래영재(세부전공 관계없음)를 선발한다. 서울교대 음악영재원은 1년 과정으로 90시간의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전공별 마스터 클래스, 향상음악회, 악기별 세미나를 통해 연간 2회 이상의 연주 기회를 부여하고 학기 말 평가를 겸한 실기 발표회를 연다. 학교 생활기록부 교과 관련 특기사항란에 영재교육원 수료 사실을 기재할 수 있다. 2021년도 음악영재원에서는 6학년 재학생 전원이 예원학교와 선화예술학교에 진학했으며 한국쇼팽콩쿠르, 음악교육신문콩쿠르 등의 우승자가 배출됐다. 원서 접수는 14일부터 18일 오후 5시까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소프라노 박혜상(34·사진), 2020년 11월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데뷔 음반 ‘I am Hera’를 내놓으며 세계 성악계의 혜성이 된 그가 사랑과 삶을 전한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5일 독창회 ‘사랑과 삶’으로 팬들을 만난다. 1부에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 반주로 바로크 아리아와 로시니 ‘베네치아 곤돌라 경주’ 등을, 2부에서는 현악4중주 반주로 거슈윈과 바일 등의 현대곡을 노래한다. 최근 입국해 자가격리 중인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곡목들을 살펴보면 바로크와 20세기 음악이 전하는 ‘사랑과 삶’으로 여겨집니다. “지휘자로 일하는 친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음악을 공유하며 함께 들었어요. 친구가 권하는 곡들 중에서도 바로크에서 명상과 자유를 느꼈죠. 적당한 정도의 우울감과 감동이 함께 몰려왔어요. 일종의 중독과 같았죠. 그중에서도 죽음에 관한 곡들에 빨려 들어갔어요. 그 우울함을 극복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는 곡들이 무얼까 생각해보다가 20세기 초반의 곡들에도 무게를 싣게 되었죠.” ―시대적으로 넓게 펼쳐질 뿐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의 개성을 활용하는 곡목 선정으로 느껴집니다. “목소리를 사용해서 다양한 컬러를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노래가 전하는 일시적인 충동부터 숨어있던 긴장과 번득임까지 객관적으로 해석하면서 한편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 좋습니다. 바로크 음악과 20세기 초반의 음악은 닮은 점이 많아요. 20세기 초 음악은 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즉흥성이 강한 점도 그렇죠.” ―후반부에 현악4중주가 반주하는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인가요. “맞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다른 여러 색깔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하고 싶었어요.” ―DG 레이블로 나올 두 번째 음반에 대해서도 귀띔 부탁드립니다. “7월에 로마에서 녹음할 예정이에요. 죽음이 주제죠. 이번 리사이틀은 그 음반의 프리뷰 성격도 있다고 할까요, 비슷한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혜상은 지난달 모차르트 ‘마술피리’ 여주인공 파미나 역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다. 뉴욕타임스는 ‘박혜상은 고급스러운(plush) 목소리로 타미노와 사랑에 빠지는 파미나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2025년까지 매년 두 편 이상의 오페라에 출연하기로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이 돼 있다고 밝혔다. 4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이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켜본 세계는 불안하다. 유일 초강대국의 입지를 잃어가는 미국은 자유세계의 방패를 계속 자처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98년 미군 소령 복무 시절 내놓은 책 ‘직무유기: 존슨, 맥나마라, 합동참모본부, 그리고 베트남전을 발발시킨 거짓말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베트남전은 결정권자들의 무지와 오만 때문에 지상군 투입 전 이미 진 전쟁’이라는 요지였다. 2017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그는 13개월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해임’으로 물러났다. 이후 2020년 발표한 이 책에서 그는 미국 외교안보의 현실과 한계, 미국이 대면해야 하는 경쟁자와 적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짚어 나간다. 저자에게 미국 외교안보의 근원적 약점은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제시한 ‘전략적 자아도취(strategic narcissism)’로 요약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미국의 결정과 계획에 따라서만 이루어진다고 전제하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은 터무니없는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이어졌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이념과 패권 경쟁, 군사적 경쟁이 막을 내렸다는 ‘역사의 종말’식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정반대로 2008년 이후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이라크-아프간으로 대변되는 국제 개입의 문제점이 이어지면서 비관주의와 체념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낙관과 비관을 넘어서면서 미국이 마주한 ‘전선’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먼저 러시아는 그들의 민화에 나오는 대로 ‘이웃의 소를 죽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신이 강해지지 못한다면 경쟁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생존을 모색하는 전략이다. 그 최신 무기는 ‘거짓 정보’다. 러시아 차세대 전쟁작전(RNGW)이라고 불리는 사이버 정보전을 통해 끝없이 거짓 선전을 전파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해 미국 사회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중국의 전략은 ‘기존 질서의 대체’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수립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규칙으로 대체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술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화웨이와 같은 회사들은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정보들을 빼내 왔다고 그는 역설한다. 7개 장(章) 중 여섯 번째 장은 북한 문제에 할애한다. 저자는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과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북한에 시간만 벌어준 ‘분명한 실패’로 규정한다. 한편으로 중국이 역사의 기억을 이용해 한국과 일본 사이를 분열시키려 한다며 경계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한다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각국이 역할을 다하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북한 문제 해법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은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바라던 책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은 트럼프에 대한 공격을 원하겠지만 자신은 당파를 넘어서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서평 제목은 ‘맥매스터의 회상은 역사에는 엄중했지만 트럼프에 대해서는 가벼웠다’였다. 푸틴의 정보전을 트럼프가 조장했지만 이에 대한 추궁은 적었다는 것이다. ‘디플로매틱 쿠리어’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대로 운영됐다면 외교정책들이 어땠을지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며 이 책을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이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켜본 세계는 불안하다. 유일 초강대국의 입지를 잃어가는 미국은 자유세계의 방패를 계속 자처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98년 미군 소령 복무 시절 내놓은 책 ‘직무유기: 존슨, 맥나마라, 합동참모본부, 그리고 베트남전을 발발시킨 거짓말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월남전은 결정권자들의 무지와 오만 때문에 지상군 투입 전 이미 진 전쟁’이라는 요지였다. 2017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그는 13개월 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해임’으로 물러났다. 이후 2020년 발표한 이 책에서 그는 미국 외교안보의 현실과 한계, 미국이 대면해야하는 경쟁자와 적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짚어나간다. 저자에게 미국 외교안보의 근원적 약점은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제시한 ‘전략적 자아도취(strategic narcissism)’로 요약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미국의 결정과 계획에 따라서만 이루어진다고 전제하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은 터무니없는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이어졌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이념과 패권 경쟁, 군사적 경쟁이 막을 내렸다는 ‘역사의 종말’식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정반대로 2008년 이후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이라크-아프간으로 대변되는 국제 개입의 문제점이 이어지면서 비관주의와 체념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낙관과 비관을 넘어서면서 미국이 마주한 ‘전선’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먼저 러시아는 그들의 민화에 나오는 대로 ‘이웃의 소를 죽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신이 강해지지 못한다면 경쟁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생존을 모색하는 전략이다. 그 최신 무기는 ‘거짓 정보’다. 러시아 차세대 전쟁작전(RNGW)이라고 불리는 사이버 정보전을 통해 끝없이 거짓 선전을 전파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해 미국 사회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중국의 전략은 ‘기존 질서의 대체’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수립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규칙으로 대체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술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화웨이와 같은 회사들은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정보들을 빼내왔다고 그는 역설한다. 7개 장(章) 중 여섯 번째 장은 북한 문제에 할애한다. 저자는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북한에 시간만 벌어준 ‘분명한 실패’로 규정한다. 한편으로 중국이 역사의 기억을 이용해 한국과 일본 사이를 분열시키려 한다며 경계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한다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각국이 역할을 다하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북한문제 해법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은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바라던 책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은 트럼프에 대한 공격을 원하겠지만 자신은 당파를 넘어서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서평 제목은 ‘맥마스터의 회상은 역사에는 엄중했지만 트럼프에 대해서는 가벼웠다’였다. 푸틴의 정보전을 트럼프가 조장했지만 이에 대한 추궁은 적었다는 것이다. ‘디플로매틱 쿠리어’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대로 운영됐다면 외교정책들이 어땠을 지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며 이 책을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