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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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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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여행61%
경제일반20%
문화 일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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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3%
  • 퇴계의 예던길 따라 한 폭의 그림 속으로[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물러남’의 미학을 추구했다. 대과 급제 후 평생 140차례 벼슬이 주어졌지만 사직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은 것이 79차례다. 나아간 61차례마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호인 ‘퇴계(退溪)’는 ‘시내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는 고향인 안동의 낙동강변에 도산서당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내 ‘착한사람이 많아지는(善人多)’ 세상을 만드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았다. 이러한 퇴계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고 있는 도산서원선비수련원에서 2박3일간 숙박하며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과 함께 따뜻한 사람 향기로 가득찬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걸었다.●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예던길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15km 가량 떨어진 청량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칭할 정도였다. 15세 때 숙부와 함께 오른 것을 시작으로 평생 6차례 청량산에 오른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청량산에서 책을 읽고, 가는 길에 수많은 시를 남겼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청량산에 오른 것은 63세 되던 1564년 4월 14일. 퇴계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벽오 이문량(1498~1581)과 손자 안도를 비롯해 10여 명의 지인들이 함께 하는 산행이었다. 새벽부터 밥을 먹고 출발한 퇴계는 현재의 안동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인 천사(川沙)에 도착했다. 안개 낀 산 봉우리에 물결은 출렁이고, 새벽 하늘은 곧 동이 트려 붉게 물들고 있다. 그런데 친구인 벽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퇴계는 친구가 기다려도 오지 않자, 나귀의 고삐를 잡고 먼저 출발하면서 유명한 시를 남긴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先入畵圖中)!’ ‘예던길’은 퇴계가 청량산에 가던 낙동강변 4~5km 구간의 길이다. 숲 속 오솔길과 은빛 물결 주변에 펼쳐지는 학소대, 농암종택, 고산정의 수려한 풍경은 퇴계가 ‘그림 속(畵圖中)’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한다. ‘산(山)태극, 수(水)태극’이란 말처럼 산이 굽이치는 형세에 따라 물도 S자로 굽이친다. 퇴계는 나귀를 타고 미천을 건너면서 읊은 시에서 ‘맑고 맑은 여울(淸淸灘)과 높고 높은 산(高高山)’이 끊임없이 ‘사라졌다 다시 보이네(隱復見)’라며 지형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풍경을 표현했다. 예던길의 단천교 앞에는 ‘녀던길’이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퇴계가 지은 유일한 한글 시조인 ‘도산십이곡’ 중 아홉 번째 곡에 “고인을 못 뵈어도 녀뎐길 앞에 있네/녀던길 앞에 있으니 아니가고 어쩔고”에서 따온 말이다. ‘녀던길’은 옛 성현이 가던 길이라는 뜻이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에는 칸트, 괴테, 헤겔이 걸으며 사색하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사색하던 ‘예던길’도 그에 못지 않은 인문학 여행지인 셈이다. 예던길을 걷다보면 강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네모난 바위를 만난다. 퇴계가 ‘경암(景巖)’이란 시에서 읊은 바위다. 그는 거센 물결 속에서도 천년동안 변함없이 가운데 서 있는 바위를 보며 시류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의 ‘부평초’ 같은 삶을 되돌아본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벼슬을 지키려 하고, 권력을 좇는 먼지 속 세상에서도 한 가운데 중심을 잡는 바위같은 존재를 묵상하는 시다.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 청량산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시비에서 퇴계는 자연 속을 거니는 ‘유산(遊山)’이 독서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산을 거닐며 얕고 깊음, 근원을 배우고,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며 묘함을 깨닫고, 오르고 내려옴을 성찰한다. 그에게 산과 자연은 그에게 바로 학교이고 도서관이며, 학문의 전당이었던 것이다. ●새벽에 걷는 퇴계 명상길도산서원선비수련원의 아침은 5시반에 ‘퇴계명상길’ 산책으로 시작된다. 새벽 산책 코스는 퇴계가 머물렀던 한서암에서부터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도산서원까지 가는 왕복 1.5km 남짓한 산길이다. 이슬을 머금은 새벽공기가 감도는 초록빛 세상에는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퇴계 선생이 지은 시조 ‘도산십이곡’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걷다보니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도산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존경스러운 유학자를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설립한 사학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원이 사후에 지어지는 것과 달리,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생전에 직접 설계하고, 머무르며, 제자들을 10년 동안 가르쳤던 도산서당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도산서당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 마루 한 칸의 소박한 건물이다. 담장은 곳곳이 뚫려 있고, 나무를 엉성하게 얽은 사립문이 손님을 맞는다. 도산서당의 현판은 퇴계 선생이 직접 썼다. 세로로 기둥에 달린 현판 글씨가 무척 작고, 유머러스하다. ‘산(山)’자는 그림으로 표현됐고, ‘서(書)’ 자에는 새가 그려져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이를 찾는 새처럼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그려넣었을까. 이 곳에서 60대의 대유학자였던 퇴계 선생은 아무리 어린 제자라도 사립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퇴계 선생의 사후에 세워진 전교당에 있는 현판 ‘도산서원’은 당대 명필인 한석봉이 썼다. 전교당 뒤편에는 퇴계와 제자 월천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인 상덕사(尙德祠)가 있다. 기자도 유건과 제복을 입고 사당 안에 들어가서 ‘퇴도 이선생(退陶 李先生)’이라고 씌여져 있는 퇴계 선생의 위패에 향을 올리고 인사를 드리는 알묘(謁廟)를 했다. 도산서원을 천천히 걷다보면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선비가 은둔하며 수양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군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처럼 앞에는 낙동강 물과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천원권 지폐 뒤쪽에 새겨진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선경이다. 이 곳에는 퇴계 선생이 잠시 쉬며 사색하던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가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하늘, 빛, 구름’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쳐 함께 배회하는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는 곳이다. 김병일 원장은 “물이 맑고 깨끗할 때는 천, 광, 운이 물속에 잘 비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먹구름이 가리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사람도 나쁜 마음, 사악한 생각을 하면 착한 본성은 가려지기 때문에, 선한 생각으로 마음을 닦아 착한 본성이 드러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선비의 마음수양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후손에게 전해진 퇴계의 정신과 인간미 퇴계가 대학자를 넘어 성현(聖賢)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남녀, 신분 차이를 넘어 모든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실천한 삶 때문이다. 퇴계 종택과 퇴계가 태어난 태실, 묘소 등 도산서원 주변을 걷다보면 꼿꼿한 선비로만 알았던 퇴계가 사실은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어른이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퇴계의 묘소 밑에는 맏며느리(봉화 금씨)의 무덤이 있어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퇴계는 요즘말로 하면 ‘츤데레(겉으로는 무뚝뚝해보이지만 사실은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시아버지였다. 퇴계는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그 중에서 며느리가 생일에 버선이나 옷을 선물해서 보내면, 한양에서 조정에서 일하던 퇴계가 고마움을 표하는 편지와 함께 참비, 바늘 등을 사서 답례품으로 보낸다는 내용이 많다. 또한 퇴계는 평소 병약했던 맏며느리를 위해 전국의 유명한 약수터에 보내거나 사물탕, 반총산 등 약재를 손수 지어 보내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퇴계의 장례기간 중에 세상을 떠난 맏며느리는 이렇게 마음을 써주었던 시아버지 밑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는 퇴계의 증손자의 비극에 관한 사연이다. 퇴계의 맏손자(이안도)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맏손부 권씨 부인이 아들과 딸을 연년생으로 낳았다. 그런데 불행하게 산모인 맏손부가 젖이 부족했고, 갓 낳은 딸에게 우선 젖을 줄 수 밖에 없다보니 아들에게 젖을 주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도산에 있는 할아버지 퇴계 선생께 유모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딸을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덕이라는 여종이 젖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덕이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편지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퇴계는 여종을 보내면 그녀가 낳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의 아이를 죽여 내 자식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이는 네가 배운 성인의 가르침에도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몇 달 후 집안의 대를 이어야할 맏증손자는 죽고 말았다. 결국 양자를 들이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지만, 퇴계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분고하와 상관없이 모든 생명은 한결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가르친 것이다. 퇴계 종택에 들어섰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김병일 원장과 함께 종택의 대문에 들어서자 퇴계 16대 종손인 이근필(90) 옹이 서둘러 두루마기를 입고 마중을 나왔다. 방 안에서 서로 큰절로 인사를 한 종손은 매실차를 놓고 30여 분 동안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눴다. 도산서원선비수련원에서 체험하는 어린 학생들이 찾아와도 종손 어르신의 ‘공경의 무릎꿇기’ 자세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늘 손님을 맞으실 때의 자세를 보고 몸에 자연스럽게 배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아흔살의 나이인 그는 요즘도 신문의 서평을 꼼꼼히 읽으며, 최신 경제경영서까지 주문해 읽고 있었다. 그에게 집 안에서 내려오는 퇴계 선생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과 다툴 때 절대 이기려 하지 마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식들에게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에겐 꼭 이길 것을 요구하는 요즘의 세태와는 사뭇 다른 말이이었다. 도산서원선비수련원을 설립한 그는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착한 것은 드러내자’는 ‘은악양선(隱惡揚善)’ 운동을 제창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종손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준 뒤 대문 앞까지 배웅하며 깊게 허리숙여 인사했다. 그는 떠나는 기자에게 자신이 직접 붓글씨로 ‘조복(造福)’이라고 쓴 글귀를 선물로 주었다. 그는 “구복(求福)이나 기복(祈福)은 미신의 영역이지만, ‘조복’은 스스로의 힘으로 복을 만들어낸다는 진취적인 생각”이라며 ‘조복’이란 단어를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 ‘광야’의 저항시인 이육사의 고향퇴계는 제자들에게 늘 배움과 실천을 함께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가르쳤다.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퇴계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하계마을에는 구한말 의병활동과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독립유공자 25명이나 나왔다. 마을 입구에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독립운동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고개너머 원촌마을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고향이다. 이육사문학관에서는 퇴계의 14대 후손인 이육사 시인의 친필원고와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가로서 치열했던 삶을 볼 수 있다. 원촌마을에서 만난 이육사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81) 여사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여사는 “1943년 일경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이육사 시인이 베이징 감옥으로 이송될 때 청량리역에서 아버지를 뵀다”며 “당시 나는 네 살이었는데 얼굴에 짚으로 만든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고 놀라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원촌마을 뒷산인 윷판대에 오르면 이육사 시인이 대표작인 ‘광야’의 시상을 떠올렸다는 전망대가 있다.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선조의 만류에도 말년에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퇴계는 69세에 임금에게 일시적인 귀향을 허락받는다. 노구를 이끌고 서울 경복궁에서 경북 안동까지 총 700리에 이르는 귀향길을 거쳐 14일 만에 안동에 도착한다. 귀향 후 1년9개월만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마지막 귀향길이었던 셈이다. 퇴계의 귀향길은 지난 2019년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제1회 퇴계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 행사’를 개최한 후로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불리며 인문학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총 5개 광역 지자체를 거쳐가는 총 270여㎞의 대장정은 하루 평균 20㎞씩 꼬박 13박 14일간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올해 두 번째로 실시된 ‘퇴계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는 지난 15일 경복궁에서 출발했으며, 강남 봉은사, 양평, 여주, 충주, 단양, 죽령을 거쳐 28일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할 예정이다. ●맛집=안동에서는 제사 음식을 고추장 대신 간장에 비벼먹는 풍습이 있다. 안동 월영교 앞에 있는 ‘헛제사밥 까치구멍집’에서는 놋그릇에 6가지 나물, 탕국, 전, 김치, 안동식혜가 어우러진 헛제사밥 한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청포도’ 시인 이육사의 고향인 안동 도산면에는 ‘264 청포도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다. ‘264’는 이육사 시인의 수인번호.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국산 청포도 품종 ‘청수’를 이용해 만드는 화이트 와인은 ‘광야’ ‘절정’ ‘꽃’ 3종류가 있으며, 상큼한 과일향과 산미가 조화를 이룬다. 글·사진 안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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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향 깃든 靑山에 한 걸음 들어서니 나도 ‘녀던길’ 따라가네

    《조선의 성리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은 ‘물러남’의 미학을 추구했다. 평생 140차례 벼슬이 주어졌지만 사직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은 것이 79차례였고, 나아간 61차례마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호인 ‘퇴계(退溪)’는 시냇가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는 고향인 경북 안동에 도산서당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내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善人多) 세상’을 만드는 것을 평생 꿈꿨다. 이러한 퇴계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고 있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2박 3일간 숙박하며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76)과함께 따뜻한 사람 향기로 가득 찬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걸었다.》 ○ 퇴계의 ‘예던길’ 따라 그림 속으로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15km가량 떨어진 청량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칭할 정도였다. 15세 때 숙부와 처음 오른 것으로 시작해 모두 6차례 청량산을 찾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청량산에 오른 것은 63세 되던 1564년. 새벽부터 밥을 먹고 출발한 퇴계는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인 천사(川沙)에 도착했다. 안개 낀 산봉우리에 물결은 출렁이고, 새벽하늘은 곧 동이 트려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인 벽오 이문량(1498∼1581)이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때 퇴계는 나귀를 몰고 출발하면서 유명한 시를 남긴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先入畵圖中)!’ ‘예던길’은 퇴계가 청량산에 가던 낙동강변 4∼5km 구간의 길이다. 은빛 물결 주변에 펼쳐지는 학소대, 농암종택, 고산정의 수려한 풍경은 퇴계의 ‘그림 속(畵圖中)’이란 표현처럼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한다. ‘산(山)태극, 수(水)태극’이란 말처럼 산이 굽이치는 형세에 따라 물도 S자로 굽이친다. 단천교 앞에는 ‘녀던길’이 새겨진 돌이 있다. 퇴계가 지은 시조 ‘도산십이곡’에 나오는 ‘녀던길’은 옛 성현이 가던 길이라는 뜻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칸트, 괴테, 헤겔이 걸으며 사색하던 ‘철학자의 길’에 비견되는 이 길은 조선의 선비들이 거닐며 사색하던 인문학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예던길을 걷다 보면 강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바위를 만난다. 퇴계가 ‘경암(景巖)’이란 시로 읊은 바위다. 그는 거센 물결 속에서도 천년 동안 변함없는 바위를 보며, 시류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의 ‘부평초’ 같은 인생을 성찰한다. ○새벽에 걷는 퇴계 명상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아침은 오전 5시 반 ‘퇴계명상길’ 산책으로 시작한다. 퇴계 선생의 집이 있던 한서암에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도산서원까지 오가는 1.5km 남짓한 산길이다. 이슬을 머금은 새벽 공기가 감도는 초록빛 세상에는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퇴계의 ‘도산십이곡’을 낮게 읊조리며 걷다 보니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2019년 도산서원을 포함한 9개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다른 서원들이 대부분 학자의 사후에 지어진 것과 달리, 이곳엔 퇴계가 직접 설계해 짓고 10여 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도산서당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 마루 한 칸의 소박한 건물이다. 담장은 곳곳이 뚫려 있고, 나무를 엉성하게 얽은 사립문이 손님을 맞는다. 현판은 퇴계가 직접 썼다. 세로로 기둥에 달린 현판 글씨가 무척 작고, 유머러스하다. ‘산(山)’ 자는 뾰족뾰족한 그림으로 표현됐고, ‘서(書)’ 자에는 새가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60대의 퇴계 선생은 아무리 어린 제자라도 사립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군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처럼 도산서당 앞에는 낙동강 물과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1000원권 지폐 뒤쪽에 새겨진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선경이다. 이곳에는 퇴계가 사색하던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가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하늘, 빛, 구름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쳐 배회하며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는 곳이다. 김병일 원장은 “물이 맑고 깨끗할 때는 천, 광, 운이 물속에 잘 비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먹구름이 가리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사람도 나쁜 마음, 사악한 생각을 하면 착한 본성이 가려지기 때문에, 마음을 닦아 착한 본성이 드러나게 하는 선비의 마음 수양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후손에게 전해진 퇴계의 인간미 퇴계가 대학자를 넘어 성현(聖賢)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남녀, 신분 차별을 넘어서 모든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실천한 삶 때문이다. 퇴계 종택과 태실, 묘소 등을 찾다보면 엄하기만 할 줄 알았던 퇴계의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퇴계의 묘소 밑에는 맏며느리의 무덤이 있다.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퇴계는 한양에서 벼슬살이할 때도 며느리가 버선, 옷을 지어서 보내면 반드시 편지와 함께 참빗, 바늘 등을 답례품으로 보냈다고 한다. 또한 평소 병약했던 맏며느리를 위해 약재를 손수 지어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다정다감했던 시아버지 밑에 자신을 꼭 묻어달라고 며느리가 유언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서울에 살던 맏손자 며느리가 젖이 부족해 돌이 갓 지난 증손자가 시름시름 앓았다. 손자는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시골집에서 아기를 막 출산한 여종을 유모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퇴계가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불가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대를 이을 맏증손자는 목숨을 잃었지만, 퇴계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손자에게 가르친 것이다. 퇴계 종택을 찾았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김 원장과 함께 들어서자 퇴계 16대 종손인 이근필 옹(90)이 서둘러 두루마기를 입고 마중을 나왔다. 큰절로 인사를 한 뒤 그는 매실차를 놓고 30분 동안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 학생들이 방문해도 어르신의 ‘공경의 무릎 꿇기’ 자세는 늘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증조부, 조부, 아버지께서 손님을 맞으실 때 자세를 보면서 몸에 밴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기자에게 그는 직접 붓글씨로 쓴 ‘조복(造福)’ 글귀를 주었다. 그는 “구복(求福)이나 기복(祈福)과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복을 만들어 낸다’는 진취적인 ‘조복’이란 단어를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 달라”고 했다. ‘지행합일’의 정신을 가르쳤던 퇴계의 후손들이 사는 하계마을에서는 구한말 의병활동과 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가 25명이나 나왔다. 고개 너머 원촌마을은 퇴계의 14대 후손인 시인 이육사(1904∼1944)의 고향이다. 이육사문학관에서 만난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81)는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했던 아버지가 1943년 청량리역에서 압송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여사는 “얼굴에 짚으로 만든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원촌마을 뒷산인 윷판대에 오르면 이육사 시인이 ‘광야’의 시상을 떠올렸다는 전망대가 있다. 글·사진 안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맛집 안동에서는 제사 음식을 고추장 대신 간장에 비벼 먹는 풍습이 있다. 안동 월영교 앞에 있는 ‘헛제사밥 까치구멍집’에서는 놋그릇에 6가지 나물, 탕국, 전, 안동식혜가 어우러진 헛제삿밥 한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청포도’ 시인 이육사의 고향인 안동 도산면에는 ‘264 청포도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국산 청포도 품종 ‘청수’를 이용해 만드는 와인은 ‘광야’ ‘절정’ ‘꽃’ 등 3종류가 있으며, 상큼한 과일향과 산미가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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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ch&]LG전자 家電-車 핵심 부품은 모터(Motor)

    LG전자 모터, 축적의 시간만 59년LG전자는 59년 전인 1962년 선풍기용 모터를 시작으로모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버터 기술 기반의 ‘DD모터(다이렉트 드라이브 모터)’를 개발해 세탁기에 탑재했다. 모터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경남 창원에 모터를 생산하는 전용라인을 따로 둘 정도로 모터 없이는 LG전자 생활가전을 설명할 수 없다.‘가전은 LG’ 초석은 모터 ‘가전은 역시 LG’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LG 생활가전이 세계 1위로 자리매김하는 데 ‘모터’가 효자 역할을 했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건조기,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까지 모두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모터를 탑재하고 있다. LG전자의 차별화된 모터 기술은 강력한 성능과 수명을 갖출 뿐 아니라 정교한 제어가 가능하다.‘세계 최강’ 모터 기술, 이젠 전기차 파워트레인! LG전자는 올 7월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Magna International Inc.)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전기차의 동력전달장치인 파워트레인은 모터, 인버터 등이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 시장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는 가운데 합작법인은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대량생산체계를 조기에 갖춰 사업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일 예정이다.자동차 부품 ‘3각 편대’ 펼친다LG전자가 미래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전장사업을 키우며 연이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2018년 차량용 프리미엄 헤드램프 기업인 ZKW를 인수한 데 이어 올 7월 LG전자와 마그나의 합작법인이 출범하면 LG전자 전장사업은 전기차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 차량용 조명 등 3각 편대를 주축으로 본격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전승훈 기자raphy@donga.com}

    •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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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ch&]연간 누적 이용자 2000만 명… 타사 고객도 이용 가능한 ‘U+프로야구’

    LG유플러스가 ‘U+프로야구’에 4대 기능을 신설해 올 시즌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다시 한번 사로잡는다.U+프로야구는 2018년에 이미 연간 누적 이용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선 국내 대표 야구 플랫폼 서비스다. 모바일 앱을 통해 KBO 실시간 중계, 각 구단의 경기 일정, 주요 선수 정보, 인기 하이라이트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KBO 경기 5개 실시간 동시 시청 △포지션별 영상 △홈 밀착영상 △경기장 줌인(8K) △주요 장면 다시 보기 등 ‘집관(집에서 관람)’에 최적화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U+프로야구 인기의 원천은 LG유플러스 야구서비스실 직원 6명의 손끝에서 매년 새롭게 탄생하는 기능과 콘텐츠에서 나온다. 올해도 4대 서비스가 새롭게 적용됐다. △실시간 스트라이크존 △야매 중계 △친구 채팅 △친구 초대가 핵심이다.야구서비스실 김성훈 선임은 특히 ‘실시간 스트라이크존’ 서비스에 공을 들였다고 말한다. 김 선임은 “열성 팬들은 스트라이크인 것 같은데 볼이라 하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실제 중계 영상 화면 위에 스트라이크존을 바로 띄워줘 판정에 대한 불만을 줄이고, 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사회인 야구팀 20년 경력의 최형진 책임은 주목할 만한 콘텐츠로 ‘야매 중계’를 꼽는다. 이는 ‘야구 매니아가 중계하는 방송’의 줄임말로 야구 광팬인 개그맨들이 나와 쉬운 용어로 해설해주는 것이 골자다. 최 책임은 “야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전문용어를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꾸준히 새로운 야구 팬들을 유입시켜 생태계를 확대하고자 야구 초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중계를 기획했다”고 밝혔다.올해는 지인과 온라인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소셜 기능도 강화됐다. 신설된 ‘친구 채팅’은 지인들과 함께 야구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프라이빗 채팅방’이다. 떨어져 있는 친구, 가족과 동반 관람을 하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지인들에게 앱을 손쉽게 알릴 수 있는 ‘친구 초대’도 신설했다. 앱 마켓에 들어가고, 서비스명을 검색해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기능이다.LG유플러스는 향후에도 콘텐츠 차별화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잠가도 음성 중계를 들을 수 있는 ‘백그라운드 모드’는 택시 기사들을 비롯한 운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경기 요약본을 원하는 ‘라이트 유저’들은 KBO 리뷰 프로그램 ‘베이스볼S’의 이용률이 높다. 엄주식 LG유플러스 야구서비스실장은 “U+프로야구의 양적, 질적 기능 강화를 통해 고객들의 ‘방구석 응원’에 더욱 생동감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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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베네치아 뱃사공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해가 지면 분홍색 가로등이 들어온다.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에 핑크빛 등불이 켜질 즈음이면,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를 타야 한다. 곤돌라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수로 사이로 조용히 흘러다닌다. 리알토 다리와 탄식의 다리, 바람둥이 시인 카사노바의 스토리가 숨겨진 건물…. 베네치아에선 물길이 골목이 된다. 뱃사공이 불러주는 노래는 라이브 영화 배경음악(BGM)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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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퐁 뒤 가르

    멀리서 보면 영화 필름처럼 보이는 ‘퐁 뒤 가르(Pont du Gard)’는 고대 로마의 수도교다. 1세기 전반에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3층 건축물이다. 로마인들이 골족을 점령하고 세운 도시에서 쓸 용수가 부족하자 50km 밖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건축한 수로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의 경이로운 축조기술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퐁 뒤 가르 밑 계곡에서는 관광객들이 강물에서 수영을 즐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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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꽃도 시샘하는 한지 맵시… 춘천은 지금 ‘꽃보다 인형’

    《강원 춘천시는 호반의 도시다. 그만큼 춘천 시내를 휘감고 있는 의암호와 춘천호 그리고 육지 속의 바다라 부르는 소양호가 있다. 춘천의 물 위에는 고구마섬, 고슴도치섬, 남이섬, 중도 등 경치가 빼어난 섬도 많다. 물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은 언제나 장관이다. 호수와 섬 인근에는 30년 넘은 전통의 춘천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를 비롯해 춘천연극제, 춘천아트페스티벌 같은 유서 깊은 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문화도시 춘천, 인형극의 메카 꿈꾼다 춘천의 섬과 호반, 실내외 공연장에서 만나는 인형극은 어린이들만 보는 유치한 무대예술이라는 선입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예술적 모양의 인형을 움직이는 첨단 기술과 정교한 빛으로 조절하는 조명, 환상적인 무대장치와 어우러지는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어른들도 인형극의 매력에 쏘옥 빨려든다. 올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춘천시는 세계적인 인형극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외 교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벤치마킹 대상은 국제인형극학교가 있는 프랑스 샤를빌. 국제인형극연맹(유니마·UNIMA) 본부가 있는 샤를빌은 인구가 겨우 5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매년 열리는 인형극 축제에 전 세계 인형 극단 400여 개가 찾아오고 열흘간의 축제를 위해 온 마을이 1년 동안 준비를 한다. 춘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유니마 코리아)는 올해 33회째를 맞은 춘천인형극제를 지역의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기 위한 국제교류에 나서고 있다. 춘천에서는 2022년 세계인형극도시연합(AVIAMA) 총회와 축제가 열린다. 또한 2025년에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유니마 총회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에서 70개국의 인형극 관계자 약 800명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 1800여 명이 참여해 컨벤션과 전시, 인형극 공연이 펼쳐지는 지구촌 최대의 인형극 축제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2014년 춘천인형극제와 유니마 코리아 이사장을 직접 맡을 정도로 인형극에 관심이 많다. 그는 “인형극을 통해 춘천을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키우겠다”는 비전으로 국제인형극학교 설립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5년 전부터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ESNAM) 등 세계적인 인형극 전문가 교수진을 초빙해 시범교육사업을 벌여 왔고 내년 4월 춘천인형극장 옆에 학교가 건립될 예정이다. 이 학교에는 아티스트들이 인형을 직접 제작하는 공방도 만들어져 관광 명소로 기대되고 있다. ●국제 인형극 네트워크와 유니마 코리아 유니마 총회 유치와 해외 교류 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유니마 코리아)는 최근 온라인으로 ‘국제 인형극비디오 캠페인’을 벌였다. 전 세계 인형극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를 보내주고 인형극 동영상을 보내 달라는 아이디어였는데 30개국 58개 팀이 수준 높은 작품을 보내오면서 동영상 조회수가 대박을 터뜨렸다. 코로나19로 무대를 잃은 아티스트들로부터 “팬데믹 봉쇄 속에서 창작과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다”는 메일도 전 세계에서 쏟아졌다. 이번 공모전 캠페인을 위해 유니마 코리아 측은 강원 원주한지개발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다양한 색상의 한국 전통 한지와 훈민정음이 적힌 한지, 한지 공예품을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게 보냈다. 유럽과 아프리카, 미주, 아시아 각국의 인형극 아티스트들은 한지를 뭉쳐 인형과 해와 달, 무지개와 바위, 나무 같은 무대장치를 만들어냈다. 또한 한지의 반투명한 질감을 이용해 빛의 농도를 변화시키는 그림자극을 창작해 내기도 했다. 독일 팀의 ‘한지 판타지’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배경으로 실에 매달린 한지들이 춤을 춘다. 인도네시아 팀이 만든 인형극에서는 ‘한지 왕(King Hanji)’이 등장해 “뉴노멀 시대에, 집에 머물더라도 예술은 계속돼야 한다”고 외친다. 스위스 참가자는 요들송이 울려 퍼지는 깊은 산속 모습을 한지로 표현해 냈고, 아이슬란드 작가는 빙산과 흰 눈, 바다와 고래, 갈매기와 화물선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한지로 연출해 냈다. 음악과 인형, 자연이 어우러지는 인형극 동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그리스 아네모두르 인형극단 대표 바비스 코스티다키스 씨는 “한국의 전통 한지는 활용성이 좋고 질감이 너무 좋아서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며 “한지를 그림자극장 스크린으로 사용해 모든 조명 효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은 코로나19에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감동을 더한다. “침묵이 찾아올 때, 그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지로 연을 만들어 날리는 일본 팀이 “오겐키 데스카(건강하세요)”라고 외치는 장면도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폴란드 팀의 알렉산드로스 모노칸딜로스 씨는 “12개월 동안이나 고립된 생활에서 불안감을 느꼈는데, 유니마 코리아의 인형극 동영상 캠페인 제안을 받았을 때 새로운 창작과 소통, 치유의 기회를 얻은 듯해 흥분됐다”고 말했다.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 임정미 이사장은 “이번 공모전은 팬데믹과 봉쇄로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줘 국제적 호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는 데서도 큰 의의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공모전은 4월 19∼23일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세계 유니마 총회에서 2025년 차기 총회 개최 후보지인 춘천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메일과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비대면 상시 접속을 통해 세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공모전에 참여해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유니마 코리아는 지난해 1년 동안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예술회복력(레질리아트)’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고, 회원국 13개국에 마스크를 1000장씩 보내며 홍보 활동을 펼쳤다. 마스크를 지원받은 유니마 회원국들은 유니마 코리아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거리 공연을 펼치는 사진을 감사의 편지와 함께 보내왔다. 유니마 코리아는 국내에서도 인형극 영상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총 17개 팀이 참가해 ‘세계 인형극의 중심도시 춘천’의 면모를 세계에 알렸다. ●가볼 만한 곳=올해 33회째를 맞은 춘천인형극제는 1989년 1세대 문화기획자인 고 강준혁선생(1948∼2014)이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기획한 축제다. 2001년 개관한 춘천인형극장은 국내 유일의 인형극 전용극장이다. 특히 북한강이 흐르고 있는 춘천인형극장 뒤편 야외극장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덱(deck)이 딸린 야외 카페가 오픈하면서 밤에도 명소가 되고 있다. 춘천인형극박물관에는 국내외 200여 점의 인형극 인형이 전시돼 있고 막대인형극, 손인형극, 줄인형극, 그림자인형극 등 다양한 인형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춘천인형극장 근처에 있는 육림랜드는 소나무 숲속에서 일일 캠핑을 즐기고,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있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적합하다. ‘춘천애니메이션 박물관―토이로봇전시관’에는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로봇태권브이를 비롯해 추억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득하다.춘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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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보험公-수출입銀, K뉴딜-ESG분야 업무협약

    한국무역보험공사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 본점에서 한국수출입은행과 K뉴딜의 글로벌화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국내 대표 수출지원 금융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그린·디지털 시장 선점과 ESG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맺어졌다.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K뉴딜과 ESG 분야의 수출·해외투자 정보를 공유해 관련 기업과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이들에 대한 마케팅, 금융주선, 금융제공 등 금융 지원 전 과정에서 힘을 모으기로 했다. 신재생에너지, 첨단 모빌리티, 이차전지, 무선통신, 반도체, 헬스케어 등 신성장 동력을 주도하는 품목이 우선 지원 대상으로 검토된다. 우수한 ESG 경영을 인정받은 기업과 프로젝트에는 금융 우대도 제공된다. 특히 지원 대상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에 협력하고 민간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의 참여를 적극 주선해 그린·디지털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힘쓰기로 했다. 이인호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K뉴딜 산업의 글로벌화와 ESG 경영 확산을 위한 정책금융을 신속히 제공하고,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더욱 힘써 국내 산업 기반을 공고히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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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터닝 토르소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는 스웨덴 말뫼의 랜드마크 건물이다. 정육면체 9개를 비틀어 쌓아올린 모양이 스크루바 아이스크림처럼 보인다. 높이가 190m(54층)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말뫼의 상징은 세계 최대 크기의 코쿰스 크레인이었다. 조선업 침체로 2002년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매각되면서 ‘말뫼의 눈물’로 불렸다. 터닝 토르소는 새로운 도시의 상징으로 탄생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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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금원 “올해 1150억 규모 농식품모태펀드 조성”

    농업정책보험금융원(원장 민연태)은 올해 1150억 원 규모의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는 농림수산식품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2010년에 출범한 이후 매년 신규 출자를 거듭해왔다.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와 민간자금을 합작하여 조성된 농림수산식품펀드의 규모는 2021년 2월 기준 총 1조3448억 원에 이른다. 82개 자조합에서 농식품경영체 및 수산경영체 476개사(투자 건수 685건)에 대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농식품펀드 운용전문기관인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이 올해 조성하는 농식품펀드는 정부 출자금 737억 원을 포함해 총 1150억 원 규모. 농식품 일반펀드는 360억 원, 농식품벤처·세컨더리·영파머스 분야 등 특수목적펀드는 790억 원 규모다. 특히 올해는 농림축산식품부 전략육성산업인 그린바이오 산업과 그린·디지털 뉴딜에 대응한 스마트팜, 탄소중립 분야에 대한 전략 투자를 위해 ‘그린바이오펀드’와 ‘스마트농업펀드’(스마트팜+탄소중립)를 각각 150억 원 규모로 신규 조성한다. 그린바이오펀드와 스마트농업펀드는 주목적 투자대상에 6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무와 함께 분야별 투자금액 조건도 추가됐다. 그린바이오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은 마이크로바이옴, 대체식품·메디푸드, 종자산업, 동물용의약품, 기타 생명소재 등 5대 산업으로 구분되며, 산업별로 최소 10억 원을 의무로 투자해야 한다. 스마트농업펀드는 빅데이터·AI·데이터 솔루션과 탄소중립 분야에 해당하는 기업에 각각 최소 10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농식품 일반펀드에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농식품 일반펀드를 통해 그린바이오·스마트농업 대상 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금액의 1%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도록 설계하여 해당 분야에 대한 민간투자 촉진 기반을 마련했다. 농금원은 4월 16일까지 출자신청서를 접수하며, 선정절차를 거쳐 5월 중 신규 운용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출자사업 계획 공고 및 펀드별 세부 출자사업조건 관련 사항은 농금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공동기획: 농업정책보험금융원}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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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은한 빛과 선으로 그린 산들…‘자연치유력’ 엿볼 수 있는 두 작품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재 프랑스 서양화가 한홍수 화백(63)의 개인전 ‘결’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제3전시실에서 31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한홍수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추상적 풍경을 그린다. 풍경은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나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체의 굴곡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캔버스 위에 두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여러 겹이 겹쳐져 ‘결’을 이룬다. 그의 풍경화는 유화 물감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질감)가 아니라 투명하고, 맨질맨질한 느낌이 마치 TV 평면 화면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붓으로 수십 번의 붓질을 하며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만들고 싶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결’은 때로는 나뭇결처럼 시공간의 미세한 순서가 드러날 때도 있고, 물결처럼 파도가 높아질 때도 있지만 금세 다시 가라앉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유화인데도 동양화의 화선지처럼 결을 따라 번져 나간다. 한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수회에 걸쳐 레이어(층)을 만들며 작업하지만, 그의 독특한 테크닉 덕분에 캔버스 위에 안료의 두께가 쌓여 ‘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처음)의 레이어도 보이는 ‘결’의 느낌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근경에 있는 사람의 신체가 중경에서 산과 계곡으로 변형되어 가다가, 원경에서 사라지곤 한다. ‘몽유도원도’를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은 ‘원근법’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산점투시법(散點透視法)’ 또는 ‘자연 투시법’으로 설명된다. 즉 인간에서 자연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에서 인간을 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심은록 미술평론가(동국대 겸임교수)는 “‘숯의 화가’ 이배가 흔하디 흔한 청도의 숯을 파리에서 재발견했듯이, ‘결’은 한홍수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실험하여 재발견해낸 한국의 고유한 개념이자 실천양식”이라며 “미술사적, 문화적, 사상적으로 ‘층’과 비교할 수 있는 ‘결’의 재발견은 디지털 개념이나 물질과도 잘 어울려, 디지털 원주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재”라고 평했다. 한편 한홍수 화백은 이시형 사회정신전문의와 함께 강원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 효천 갤러리(겨울동)에서도 2인전 ‘카오스의 세 딸과 썸타는 두뇌’를 개최한다. 4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산으로 둘러 쌓인 힐리언스의 효천갤러리는 숲의 ‘자연치유력’을 느끼며 힐링아트 미래아트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장이다. 전시장인 효천갤러리에 들어서면 이시형 박사가 그린 문인화가 가장 먼저 보인다. 한 줄로, 때로는 선 위에 굵은 선을 더하면서 일필휘지로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덤덤하고 간략하게 산의 윤곽이 이어지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시형 박사의 힐링 철학을 요약하는 화제인 ‘나물먹고 물마시고/이보다 좋은 병원이 또 어디 있던가’가라는 말이 두 줄로 적혀 있다. 이어서 한홍수 작가의 ‘결’ 연작이 길고 긴 화랑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이시형의 산의 윤곽은, 한홍수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색을 입고 입체적인 형체를 띠게 된다. 공(空)에 색(色)이 입혀지고, 색이 다시 공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처럼. 이시형 박사가 던지는 화두에 한홍수 작가가 대답하고, 이번에는 관람객들에게 또다른 화두를 던지며 그렇게 산의 선 혹은 결이 이어진다. 이 전시는 ‘힐링아트, 미래아트’라는 주제로 이후 개최될 행사(국제포럼, 국제전 등)의 서막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힐링아트’와 ‘미래아트’를 함께 고민하며 대화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그래서 두뇌(정신의학)과 카오스(예술)가 썸을 타며, 수많은 현대의 디지털 신화가 탄생될 것을 예고한다. 이 전시의 제목에 나오는 ‘카오스의 세 딸’은 들뢰즈의 개념에서 착안된 것으로 ‘예술, 과학, 철학’ 세분야의 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사단법인 세로토닌문화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으로서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활용한 자연치유력 증강법을 전파해왔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적 정신의학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다. ‘결’의 화가 한홍수는 199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난 이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신표현주의 거장 A.R. 펭크를 사사했으며,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 미국, 한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아트플러스갤러리 에스더김 대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의 ‘치유’와 ‘힐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시형 박사-한홍수 화백의 ‘힐링아트 미래아트’전을 계기로 매년 혹은 2년에 한번씩 다른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 한 명씩 전시 참여해 힐링아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심포지엄과 전시 등의 행사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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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25일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서 정기총회 개최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회장 구로문화재단 허정숙 대표)는 25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2021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번 총회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각종 공연, 전시, 축제 등의 취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열렸다. 공연이 어려움에 처하자 문화 예술인의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예술계의 생태계는 파괴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각 지역의 재단 임직원들은 예술 강사비 선지급 같은 실질적인 지원에서부터 철저한 공연장 방역으로 소규모의 공연을 유지하거나 비대면 콘텐츠를 개발하고 베란다 콘서트, 자동차 극장의 활용 등 기존의 시설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번 총회의 표창장 수여식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감사와 202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재난 상황을 이겨내자는 각오를 다지고 서로를 응원을 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의 노고를 응원하는 취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한국예술위원회 위원장상,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상임이사상,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상 등의 푸짐한 표창장 수여식이 열렸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이승정 회장은 축사를 통해 지역문화재단의 자율성과 보장과 협력관계 증진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으며 총회에서는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지역 예술인 일자리, 지역 생활예술 네크워크 구축이라는 키워드로 2021년 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전국의 지역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목표를 위해 문화예술계의 현장에서 노력해 왔다. 현재는 생활문화의 진흥, 예술인 복지, 국가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2020년 한해에만 20여개의 지역문화재단이 탄생했고 전국 총 105개의 지역 문화재단이 설립돼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이날 총회는 비록 사회적 거리두리 방역방침에 의해 대표자 위주로 참석하는 등의 참석자의 제한이 있었지만 전국의 다양한 지역의 참석과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졌다.다음은 수상자 명단. ◆문화체육부장관상=단체 김해문화재단. 춘천문화재단, 개인 박경현(담양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윤영주(성남문화재단) 정기진(종로문화재단) 김안나(은평문화재단) 권종철(안양문화예술재단) 이주행(포항문화재단) ◆한국예술인 복지재단 상임이사상=단체 양천문화재단. 제천문화재단, 노원문화재단, 개인 이혜진(광명문화재단), 나유미(전주문화재단), 김인성(구로문화재단) ◆전국문화재단연합회 회장상 특별상=나기석(구로문화재단) 홍기선(안양문화예술재단) 손경은(전주문화재단) 이찬(은평문화재단) 민병일(종로문화재단) 서유선(광명문화재단) 정희숙(부천문화재단) 박태영(금정문화재단) 조준필(천안문화재단) 안윤진(강릉문화재단)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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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스위스 근위대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은 스위스 근위대가 지킨다. 바티칸시국의 유일한 군사조직이다. 스위스 근위대의 공식 제복은 전형적인 르네상스풍의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에로 복장처럼 보이는 이 제복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푸른색과 노란색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집안(델라 로베레 가문)을 나타내며, 붉은색은 교황 레오 10세의 집안(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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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이 와도 앙상한 ‘나목’의 천국…박수근의 자취를 따라서[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DMZ에도 봄이 왔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강원도 양구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에는 아직도 곳곳에 눈과 얼음이 쌓여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녹아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봄을 깨우는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처럼 경쾌하게 숲 속에 울려퍼진다.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이제 막 눈이 녹고, 야생화가 피어나는 청정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DMZ 펀치볼 둘레길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펀치볼(Punch Bowl)’은 여의도 면적의 6배의 광활한 대지다.펀치볼 둘레길의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오르면 어떤 광각 카메라로도 한 번에 담기 어려운 광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가칠봉,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왕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6.25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핑크빛 칵테일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란 애칭이 생겼다고 한다. 펀치볼 둘레길은 총 72.2km.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평화의숲길 등 4개의 구간으로 이어진다. 해발 1200m의 대암산에는 국내 1호 람사르 습지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습지인 ‘용늪’이 있다.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걷기 전에 몸을 푸는 준비운동을 마친 후 숲길체험지도사가 DMZ로 들어가는 철조망 문을 열었다. 둘레길 탐방로 양쪽엔 빨간 바탕에 노란글씨로 ‘지뢰’라고 씌여진 경고판이 선명하다. 탐방로를 벗어난 숲 속에는 아직도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 길은 방문자센터에서 사전예약 후 전문해설사와 함께 걸어야 한다. DMZ 생태탐방로는 동자꽃, 하늘말라리, 금강초롱, 앵초 등 희귀식물과 산양, 독수리, 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야생화 설명과 6.25전쟁사 이야기에 빠져서 숲길을 걷다가 쪽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연리지(連理枝)’또는 ‘혼인목(婚姻木)’이라 부르는 나무를 만났다. 신기하게도 두 나무가 붙은 밑에서 어린 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다. 박진용 숲길체험지도사는 “단풍나무와 쪽동백나무가 혼인했는데 전혀 다른 제3의 종의 나무가 태어났다”며 “이 나무 이름은 참회목”이라고 설명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펀치볼 둘레길을 단체로 방문할 경우 계곡에서 먹는 ‘숲밥’이 인기다. 펀치볼 특산물인 시래기, 인삼뿐 아니라 곰취, 더덕, 두릅 등 10여개의 나물반찬이 나오는 뷔페다. 탐방 일주일 전 신청하면, 주민들이 시간을 맞춰 준비해준다. ●화가 박수근의 ‘나목(裸木)’ DMZ의 어느 소나무 밑에는 양구출신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아직도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박수근은 아내의 친정인 북한 땅 금성에서 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월남했다. 아내 김복순 씨는 월남 도중 남편의 작품 수십점을 갖고 올 수 없어 항아리에 담아 강원도 철원군 DMZ 한가운데 묻었다고 한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2007년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남북관계가 회복돼 언젠가 그림을 찾게 된다면 수백억원 대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근이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살았던 양구에는 화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수근은 나목(裸木)을 즐겨 그렸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봄이 오다’부터 1950~60년대 ‘나무와 여인’ 시리즈까지 박수근이 그린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다. 봄이 왔건만 최북단 접경지대인 양구는 아직도 벌거벗은 나목의 천국이다. 지금도 양구교육지원청 뒷동산엔 ‘박수근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수령 300년 된 느릅나무가 남아 있다. 박 화백은 양구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놀며 그림을 그렸다. 이 나무를 찾았을 때 박수근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 양구의 초등학생 형제가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앙구읍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은 지난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건립됐다. 건축가 고 이종호가 설계한 미술관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돌처럼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질감(마티에르)을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나무와 여인’ ‘빈 수레’ ‘굴비’ ‘두 남자’ 등 박수근의 유화 5점이 소장돼 있고, 건물 뒷편에는 박수근 묘소와 빨래터, 자작나무 숲도 있다. 유명한 빨래터 그림 밑에는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냈다는 연애편지가 적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자세히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술관에서는 현재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인연을 맺게 된 ‘나목’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은 1952년 당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내에 있던 미8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한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본 그림을 ‘고목(枯木)’이라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흘러서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그 그림이 시든 ‘고목’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의 믿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양구백토의 600년 전통, 백자박물관첩첩산중 최북단 양구가 조선백자 600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곳에서 백자를 제작하는 질좋은 원료인 ‘양구 백토’가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 관요인 분원에 공급하는 양구 백토를 캐느라 백성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려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된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 백자발은 양구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도자기로 유명하다. 방산에 있는 양구 백자박물관에 가면 양구 백자의 600년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조선백자의 마지막 꽃인 청화 백자는 물론 현대 백자도 전시하고 있다. 백자박물관 뒤편에 있는 수입천에는 높이 15m의 직연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직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겨우내 얼었던 수입천이 녹아 파로호로 흘러드는 폭포 주위로 높이 약 20m 규모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백자박물관에는 서울대 석박사출신 연구원이 양구백토를 연구하는 양구백자연구소도있다. 이 연구소 출신인 도예가 김덕호-이인화 부부는 아예 양구에 정착해서 백자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작업실에 살고 있는 순백색의 고양이가 유리창 밑에 전시된 하얀 백자 사이를 어슬렁 거리면서도 작품을 하나도 건드리거나 깨뜨리지 않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가볼만한 곳=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 앞에 있는 ‘까미노 사이더리’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버려지는 사과, 딸기 등 지역농산물을 이용해 주스, 식초 등의 가공식품을 만든다. 카페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한 양구사과콤부차, 사과워터케피어 등의 음료와 애플케¤을 맛볼 수 있다. 철학자 김형석, 안병욱, 시인 이해인 수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양구 인문학박물관’, 파로호 호수 위에 조성된 한반도섬 둘레길도 찾아가볼 만하다. 두타연 계곡과 을지전망대, 대암산 ‘용늪’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현재 공개를 하지 않는다. ●맛집=일교차가 심한 펀치볼에서는 고랭지 배추, 무 뿐 아니라 사과, 포도, 복숭아 등 당도가 높고 맛있는 과일이 생산된다. 양구의 특산물인 ‘시래기 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시래정’과 ‘시래원’이 있다. 토종닭, 고등어, 코다리에 시래기를 넣은 찜과 시래기 된장국이 입맛을 당긴다. ‘만대리 농가레스토랑’의 ‘두부 정식’에도 시래기 반찬이 일품이다.글 사진 양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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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의 왈츠 흐르는 청정분지… 나목도 내게 들꽃처럼 살라 하네

    《비무장지대(DMZ)에도 봄이 왔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강원 양구군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에는 아직도 곳곳에 눈과 얼음이 쌓여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녹아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봄을 깨우는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처럼 경쾌하게 숲속에 울려 퍼진다.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이제 막 눈이 녹고, 야생화가 피어나는 청정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DMZ 펀치볼 둘레길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펀치볼(Punch Bowl)’은 여의도 면적 6배의 광활한 대지다. 펀치볼 둘레길의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오르면 어떤 광각 카메라로도 한 번에 담기 어려운 광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가칠봉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왕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6·25전쟁 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핑크빛 칵테일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란 애칭이 생겼다고 한다. 펀치볼 둘레길은 총 72.2km.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평화의숲길 등 4개의 구간으로 이어진다. 해발 1200m의 대암산에는 국내 1호 람사르 습지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습지인 ‘용늪’이 있다.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걷기 전에 몸을 푸는 준비운동을 마친 후 숲길체험지도사가 DMZ로 들어가는 철조망 문을 열었다. 둘레길 탐방로 양쪽엔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로 ‘지뢰’라고 쓰인 경고판이 선명하다. 탐방로를 벗어난 숲속에는 아직도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 길은 방문자센터에서 사전 예약 후 해설사와 함께 걸어야 한다. DMZ 생태탐방로는 동자꽃 하늘말나리 금강초롱 앵초 등 희귀식물과 산양 독수리 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야생화 설명과 6·25전쟁사 이야기에 빠져 숲길을 걷다가 쪽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연리지(連理枝)’ 또는 ‘혼인목(婚姻木)’이라 불리는 나무를 만났다. 신기하게도 두 나무가 붙은 밑에서 어린 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다. 박진용 숲길체험지도사는 “단풍나무와 쪽동백나무가 혼인했는데 전혀 다른 제3종의 나무가 태어났다”며 “이 나무 이름은 참회목”이라고 설명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펀치볼 둘레길을 단체로 방문할 경우 계곡에서 먹는 ‘숲밥’이 인기다. 펀치볼 특산물인 시래기 인삼뿐 아니라 곰취 더덕 두릅 등 10여 가지의 나물반찬이 나오는 뷔페다. 탐방 일주일 전 신청하면 주민들이 시간을 맞춰 준비해 준다. ○화가 박수근의 ‘나목’ DMZ의 어느 소나무 밑에는 양구 출신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아직도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박수근은 아내의 친정인 북한 땅 금성에서 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월남했다. 아내 김복순 씨는 월남 도중 남편의 작품 수십 점을 항아리에 담아 강원 철원군 DMZ 한가운데 묻었다고 한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2007년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남북관계가 회복돼 언젠가 그림을 찾게 된다면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근이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살았던 양구에는 화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수근은 나목(裸木)을 즐겨 그렸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봄이 오다’부터 1950, 60년대 ‘나무와 여인’ 시리즈까지 박수근이 그린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다. 봄이 늦게 오는 양구는 아직도 벌거벗은 나목의 천국이다. 양구교육지원청 뒷동산엔 ‘박수근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수령 300년 된 느릅나무가 남아 있다. 박수근은 양구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놀며 그림을 그렸다. 이 나무를 찾았을 때 박수근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이들이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앙구읍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은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건립됐다. 건축가 고 이종호가 설계한 미술관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돌처럼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질감을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미술관에는 ‘나무와 여인’ ‘빈 수레’ ‘굴비’ 등 박수근의 유화 5점이 소장돼 있고 뒤편에는 박수근 묘소와 빨래터, 자작나무 숲도 있다. 빨래터 그림 밑에는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낸 연애편지가 적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술관에서는 현재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인연을 맺게 된 ‘나목’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은 1952년 당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내에 있던 미8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한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본 그림을 ‘고목(枯木)’이라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흘러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그 그림이 시든 ‘고목’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의 믿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양구 백토의 600년 전통, 백자박물관 첩첩산중 최북단 양구가 조선백자 600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 백자를 제작하는 질 좋은 원료인 ‘양구 백토’가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 관요인 분원에 공급하는 양구 백토를 캐느라 백성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려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된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 백자발은 양구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도자기로 유명하다. 방산면에 있는 양구 백자박물관에 가면 양구 백자의 600년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백자박물관 뒤편에 있는 수입천에는 높이 15m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직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백자박물관에는 서울대 석·박사 출신 연구원이 양구 백토를 연구하는 양구백자연구소도 있다. 이 연구소 출신인 도예가 김덕호 이인화 씨 부부는 아예 양구에 정착해 백자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작업실에 살고 있는 순백색의 고양이가 하얀 백자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도 작품을 하나도 건드리거나 깨뜨리지 않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글·사진 양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볼 만한 곳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 앞에 있는 ‘까미노 사이더리’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 버려지는 사과 딸기 등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주스 식초 등의 가공식품을 만든다. 카페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한 음료와 애플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철학자 김형석 안병욱, 시인 이해인 수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양구 인문학박물관’, 파로호 호수 위에 조성된 한반도섬 둘레길도 찾아가볼 만하다. 두타연 계곡과 을지전망대, 대암산 ‘용늪’은 현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 맛집 양구의 특산물인 ‘시래기 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시래정과 ‘시래원’이 있다. 토종닭 고등어 코다리에 시래기를 넣은 찜과 시래기 된장국이 입맛을 당긴다. ‘만대리 농가레스토랑’의 ‘두부 정식’에도 시래기 반찬이 일품이다.}

    •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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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테리어]모든 것이 가능한 집의 재발견, 올웨이즈 홈(ALL+ways Home)

    종합 홈 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대표이사 강승수)이 2021년 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23일 발표했다. 주제인 ‘올웨이즈 홈’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중의적 표현이다. 첫 번째는 ‘항상 집’이라는 뜻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했고, 합성어인 ‘All+ways Home’은 ‘모든 길은 집으로’라는 뜻으로 집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는 현상을 담았다. 한샘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일상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집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모색했다.● 라이프스타일 핵심 키워드 5가지 선정 한샘의 라이프스타일 키워드 5가지는 집을 뜻하는 영어 ‘House’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홈루덴스(Home-Ludens) △오픈키친(Open Kitchen) △언택트 라이프(Untact Life) △스마트홈(Smart-Home) △맞춤수납(Efficient Storage)이다. 최근 유행하는 ‘홈루덴스족’이라는 신조어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루덴스’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샘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해 집을 홈시네마, 가족살롱, 홈트레이닝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홈쿡’ 트렌드가 떠오름에 따라 거실과 부엌의 경계를 허문 ‘오픈키친’ 인테리어도 주목받고 있다. 가족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넓은 부엌과 다이닝 공간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비대면으로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을 하는 ‘언택트 라이프’가 활성화되면서 홈오피스, 자녀 방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가구, 가전이 조화를 이루는 ‘스마트 홈’도 선보였다. 다양한 가전제품들을 전체적인 디자인 조화와 사용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효율적인 동선으로 배치했다. 또 음성 명령만으로 TV의 전원을 껐다 켜고, 조명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편리한 공간을 구현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한 ‘맞춤 수납’ 솔루션도 제공한다. 자전거 등 부피가 큰 취미용품을 수납하는 ‘팬트리 공간’과 거실, 침실, 자녀 방, 드레스룸 등에는 빌트인 맞춤수납장을 설치했다.●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2가지 신규 모델하우스 한샘은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초등 자녀가 있는 집 99m² △중등 자녀가 있는 집 120m² 등 2가지 모델하우스를 선보인다. ‘초등 자녀가 있는 집 99m²’는 부모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위한 각각의 독립 공간과 가족이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거실이 공존한다. 스마트폰 GPS를 활용해 가족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환기 시스템을 작동하거나 침대 온열패드를 작동시키는 홈 IoT 기술도 돋보인다. 이 모델하우스는 한샘리하우스 스타일패키지 ‘모던베이지 내추럴’로 꾸몄다. ‘중등 자녀가 있는 집 120m²’는 가족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요리와 식사를 즐기는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에는 라운지형 소파를 배치했고, 대형 아일랜드 부엌을 배치해 함께 마주 보고 요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음악, 독서, 꽃꽂이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도 돋보인다. 스타일패키지 ‘모던클래식 크림’으로 공간을 꾸몄는데 벽이나 방문에 프레임 형태의 장식패널을 덧댄 ‘웨인스코팅’을 활용했다. ‘2021년 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언택트 시대에 맞춰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한샘 닷컴’에 접속하면 발표회 영상 콘텐츠 및 가상현실(VR) 모델하우스를 확인할 수 있고 개별 제품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리모델링을 위한 다양한 건자재 신제품도 선보였다. 벽장재로는 대리석, 타일 등 다양한 패턴을 프린팅해 시공하는 대형 벽패널 ‘와이드 월플러스’와 ‘한샘 M보드’를 출시했다. 욕실은 지난달 출시한 프리미엄 ‘바스바흐(BATHBACH)’를 모델하우스에 처음으로 적용해 더욱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꾸몄다. 창호는 단열 성능이 우수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은 신제품 ‘유로700NEW’를 출시했다. 한샘 디자인본부 김윤희 상무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 스마트홈의 발전, 재택근무 확대 등 사회 변화에 맞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인테리어의 역할”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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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K-POP 슈퍼콘서트’ 개최지 순천 결정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 종식 이후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2021 K-POP 슈퍼콘서트 in K-오리지널 전남’의 개최지로 순천시를 최종 선정했다. ‘K-POP 슈퍼콘서트’는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올 4분기에 메가 한류 이벤트를 개최해 전남형 신한류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19일 순천시가 최종 선정됐다. K-POP 콘서트는 10월 말 순천만국가정원 동문 잔디마당(사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시는 국도비 포함 총사업비 10억 원을 들여 K-POP 콘서트를 개최하며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관광공사, 전남관광재단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K-POP 콘서트가 전통과 생태, 정원이 어우러진 순천에서 개최되는데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사전홍보와 전남 외래 관광객 유치 기반 확립을 위해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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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올드 아바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바 올드 아바나 시내의 골목에서는 평범한 카페나 바에서도 수준급 밴드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봉고(작은 손북)와 마라카스(야자나무 열매로 만든 악기), 구이로(호리병박 모양의 악기)는 물론이고 기타, 색소폰,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 구성도 다양하다. 열대과즙처럼 쏟아져 나오는 흥겨운 댄스리듬에 한 여성이 한바탕 춤을 추면, 큰 박수가 뒤따라온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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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빈사의 사자상

    스위스 루체른 절벽 바위를 깎아 만든 ‘빈사의 사자상’. 죽어가는 사자의 등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를 지키다 1792년 전멸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한 작품이다. 그들은 빈국(貧國) 스위스의 생계수단인 용병 일자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스위스 용병은 의리와 충성심의 상징이 됐다. 마크 트웨인은 사자상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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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멍게…도다리쑥국…시와 그림의 고향 통영으로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경남 통영의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려수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아니 나폴리보다 훨씬 멋진 강구항(통영항). 아침 해장국 손님들로 분주한 서호시장에는 식당마다 ‘도다리쑥국 개시’라는 글씨가 나붙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어린 해쑥이 나올 즈음 도다리도 겨우내 영양분을 축적하고 포동포동 살이 올라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둘을 함께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은 담백한 맛과 향이 입안 가득히 봄을 선사한다. 통영의 봄 미각(味覺) 여행엔 멍게비빔밥도 빼놓을 수 없다. 싱그럽게 톡톡 터지는 꽃멍게만큼 바다의 향을 감미롭게 표현하는 해산물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 이중섭의 ‘흰소’와 청마의 ‘편지’ 통영항의 등대는 끝이 뾰족한 연필 모양이다. 수많은 문필가들이 활동한 도시를 상징하는 모양의 등대다.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를 비롯해 시인 유치환 김춘수 백석,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등 수많은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통영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또한 나전칠기, 옻칠, 갓, 부채, 누비, 통영오광대놀이 등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통영 기행은 골목골목을 걸어야 제맛이다. 걷다 보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고 노래했던 시인 유치환이 편지를 5000여 통이나 보냈던 청마우체국이 나타나고,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를 넘기도 한다. 또한 윤이상 기념관에서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베를린에 살았던 작곡가가 타고 다녔던 벤츠 자동차도 만난다. 강구항의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언덕에는 그리스 산토리니를 방불케 하는 감성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작가들이 2년마다 한 번씩 새롭게 그려 넣는 벽화는 바다의 풍경과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게 만든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통영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통영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12공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경상, 전라, 충청의 해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 잡았던 통영은 조선시대 500여 척의 전함과 수군 3만 명 이상이 주둔한 최고의 군사도시였다. 이순신 장군이 군수품을 조달하는 ‘12공방’을 만들면서 8도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무기뿐 아니라 옷, 모자, 가구, 부채 등을 직접 생산했고, 화폐를 발행하는 주전소까지 있었다. 나전칠기와 통영갓 등의 공예품은 임금님께도 진상되면서 조선의 명품으로 등극했다. 통제영에 방문하면 ‘세병관’ ‘운주당’과 함께 ‘12공방’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매장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었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기술자(예술가)들이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지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 예술의 토양이었다.”(박경리 ‘토지’ 완간 10주년 특별 대담) 통제영은 300년간 지속된 후 1895년 폐영됐지만, 많은 통영 사람들이 나전칠기, 소목, 화공 등 12공방의 일을 계속 가업으로 이어오면서 그들의 몸속에는 예술적 유전자가 형성됐다. 음악가 윤이상의 아버지도 유명한 소목장이었다. 화가 이중섭도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취직하면서 통영과 인연을 맺었다.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이중섭은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주임강사로 있던 유강렬(훗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도움으로 통영에 왔다. 이중섭은 이곳에서 약 2년간 머무르며 ‘흰소’ ‘황소’ 등 자신의 대표작을 그렸다. 통영 시절 이중섭은 전혁림, 유강렬 등과 함께 호심다방과 성림다방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3차례 열어 작품을 팔았다. 통영 시절에 그린 그의 소 그림은 가장 힘이 넘친다. 이중섭이 머물렀던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은 ‘시드니 카페’라는 간판이 걸린 채 현재는 비어 있는데, 통영시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중도 시인(윤이상기념관 팀장)은 “통영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중섭은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작업에 열중해 그가 머물렀던 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며 “통영은 바다만 보고 있어도 시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마법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 매화 동백 절정, 바다에도 붉은 꽃이 통영대교 너머에 있는 미륵도는 수려한 산세와 숲, 바다가 어우러진 비대면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산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삼칭이해안길과 미래사 편백숲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달아공원 전망대에서 보는,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도 장관이다. ‘삼칭이해안길’은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영운리까지 이어지는 4km의 해변길이다.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서 바라보는 푸른 청보석 바다의 경치가 그만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좋다. 이곳을 걷다가 양식 꽃멍게를 수확하는 작업장을 만났다. 푸른 바닷물 속에서 줄줄이 매달려 올라오는 멍게는 그야말로 붉은 꽃이었다. 미래사 편백숲길은 100년 가까이 되는 편백나무 숲이 5만 평이나 펼쳐져 있다. 편백나무는 다른 침엽수보다 세 배 이상의 피톤치드를 뿜어내 암 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숲길을 걷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미륵도의 가로수는 동백이다. 도로 양쪽에 동백과 흰매화, 홍매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동백은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에서 만났다. 고즈넉한 사당 앞마당에 동백꽃은 나뭇가지에도, 나무 밑에도 뚝뚝 떨어져 붉게 피어 있었다. 충렬사 돌계단은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통영의 한 소녀를 생각하며 울듯울듯한 마음으로 ‘¤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아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는 시를 썼던 곳이다. 통영은 ‘동피랑 벽화마을’이 조성된 후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로컬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통영의 바다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봉수골 ‘전혁림 미술관’ 근처가 대표적이다.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봄날의 책방’은 너무 예뻐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은 서점이다. 2010년부터 통영에 내려가 로컬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남해의 봄날’ 출판사 정은영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골목길 옆에는 2016년부터 통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카페 ‘내성적싸롱호심’도 있다. 통제영 근처의 ‘삼문당 커피컴퍼니’는 아버지가 50년 동안 운영하던 표구점을 아들이 새롭게 인테리어해서 만든 카페.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인디밴드 공연과 인문학 강연, 남해안 별신굿 배우기 등이 펼쳐지는 이곳은 통영 로컬 힙스터들의 아지트다. 삼문당 윤덕현 대표(45)는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가 활동하던 시절처럼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돌아오는 통영을 꿈꾼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26일~다음 달 4일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에 나선다. 퓨전 국악팝 ‘범 내려온다’로 화제를 일으킨 이날치밴드도 무대에 선다. ●맛집=통영의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통영 다찌집’을 찾아야 한다. 술을 시키면 안주는 멍게, 해삼, 생선회, 생선구이, 굴전 등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다. 그날그날 시장에 나온 식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뀌고 계절마다 제철 음식이 나온다. 통영 다찌는 ‘대추나무’, 도다리 쑥국은 서호시장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은 중앙시장 앞 ‘동광식당’. ●통영 시인 이중도 “통영은 시와 그림, 서정의 고향입니다.” 통영 출신인 이중도 시인(52)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계간 ‘시와 시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통영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시를 쓰고 있다. 시집으로 ‘통영’ ‘섬사람’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등 5권의 시집을 낸 그는 통영의 살아 숨쉬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토속적 언어로 시를 쓴다. 윤이상 기념관에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통영의 바다는 왜 잔잔하고 아름다운가. “통영 앞 바다에는 570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그 중 유인도는 44개이고 나머지는 무인도다. 한산도 비진도 연화도 등이 파도를 막아주고 있는 내해는 정말 호수처럼 잔잔하다.” ―바닷가 항구도시 통영에서 근대 문화예술이 꽃피우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통영에는 세가지의 큰 뿌리가 있다.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잔잔한 바다와 따뜻한 기후와 같은 자연 환경이다. 그것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300여년간의 통제영 전통에서 12공방이라는 장인들의 기술이 피어난 것이다. 통제사는 상당히 높은 계급이기 때문에 귀임할 때 상당히 많은 고급 진상품이 필요했다. 그런 목적으로 명품 나전칠기, 갓 등이 발전하게 됐다. 세 번째는 근현대의 문화예술 전통이다. 청마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 김상옥 같은 분들은 전부 일본 유학파다. 일본에서 근대의 신문물 세례를 받은 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돈이다. 여수에서 돈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통영에 비교하면 게임이 안됐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이 엄청났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풍족했다. 일제강점기 때 야마하 같은 악기점이 통영에 있었다. 야마하 피아노 악기점은 전국에서 서울하고 통영에만 있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통제영 12공방 전통, 항구를 통한 근대 신문물의 세례, 재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본다. 미술시장이 굉장히 어렵지만 통영에서는 요즘에도 그림이 팔린다. 통영에서는 새로 집을 이사갈 때는 그림을 사서 꾸미는 풍습이 있다. 전혁림 선생 그림이나 아는 화가의 그림 2000~3000만원 짜리 하나 사서 걸어두는 것이다.” ―화가 이중섭의 통영생활은 어떠했나. “이중섭 선생은 통영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통영에서 ‘흰소’와 ‘달과 까마귀’와 같은 대표적인 중요한 작품을 그렸다. 통영의 다방에서 4인 단체전 한번, 개인전 한번 전시회를 했는데 그림이 다 팔리고, 수금도 다 됐다. 통영은 6.25전쟁 피해를 받지 않은 도시라 살림살이가 괜찮았다. 그림도 팔리고 돈이 생기니까 일본에 있는 부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가 부인에게 쓴 편지에 보면 ‘여보,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그린다. 술도 마시지 않고 하루종일 그리다보니 그림이 산더미처럼 쌓여간다’는 구절이 있다. 가장 열정적으로 그린 시기였다. 2016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갔더니 그림을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에 따라 분류해서 원산관, 부산관, 서귀포관, 통영관이란 이름으로 전시실을 꾸몄더라. 그런데 이중섭의 전체 작품 중 80%가 통영에서 그린 그림이었다. 특히 유화는 통영이 절대적이었다. 왜냐하면 서귀포나 부산에서는 너무 생활고를 겪었기 때문에 유화 물감이나 그림 도구를 구하지 못해 작은 종이에 스케치한 것들이 많다. 이중섭 선생은 통영에서 청마 선생과도 교류했고, 김춘수 선생도 이중섭에 대한 연작시가 있다. 통영의 문인들과 많은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 ―통영 이후의 이중섭의 생활은 어땠나. “통영에서 2차례 전시회에서 그림을 다 팔고 돈까지 정산받았던 이중섭 선생은 자신감을 얻어 진주, 대구를 거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개인전을 했다. 런데 그림은 대부분 팔렸지만 실제로 수금이 안됐다. 서울에서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절친했던 김환기 선생이 집도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중섭 선생을 위해 발벗고 나서서 수금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도 수금률이 5% 정도 밖에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 절망했다. 통영에서 그린 소는 힘이 넘쳤다. 이중섭을 대표하는 소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린 소는 병색이 짙은 잿빛 소다. 소는 이중섭의 자화상이었다. 소를 따라가다 보면 이중섭 선생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통영의 자연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통영은 시인과 화가의 도시다. 잔잔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 에머랄드빛 바다와 항구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시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선이 굵은 대하소설이나 교향곡 같은 서사적 장르는 잘 나오지 않는다. 박경리 선생도 통영에만 계속 살았다면 ‘김약국의 딸들’ 같은 작품에 멈췄을 것이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쫓기듯 고향을 떠나 태백산맥 자락의 원주에 정착했다. 박 선생은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통영을 그렸지만, 50년간 한번도 통영을 찾지 않았다. 통영은 그에게 애증의 도시였다. 고향을 떠난 것은 가혹한 운명이었지만, 오히려 박 선생이 대하소설 ‘토지’를 쓸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 국내 대하소설이 대부분 태백산맥에서 살면서 쓴 소설이다. 통영에서는 중단편적인 소재만 있지, 대형서사가 나오기 힘들다. 대형 서사를 쓰려면 태백산맥으로 가야 한다. 윤이상 선생도 통영에서는 교가나 동요, 가곡 정도만 썼다. 독일 유학 후에 본격적인 대형서사를 갖춘 교향곡이 나온다. 통영은 서정의 고향이다. 시와 그림은 그냥 있어도 저절로 튀어나온다.”● 서울에서 즐기는 ‘통영의 맛’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통영 바다풍경’은 서울에서 통영 음식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박병기(70)·이복자(69)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는 요즘 봄내음 가득한 도다리쑥국이 제철이다. 매일 새벽 통영에서 직송돼 올라오는 싱싱한 해산물로 정통 통영식 밥상을 차려낸다. 이 가게에서는 물메기탕, 멍게비빔밥 같은 통영 계절음식과 나물비빔밥, 멸치쌈밥, 충무김밥, 방아전 같은 통영의 바다향 물씬나는 음식이 가득하다. KBS TV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도 ‘서울 속의 통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되기도 했다.부부는 통영 중앙시장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식당을 하며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지난 2018년에 강석주 시장으로부터 ‘통영시 관광홍보 대사’ 위촉을 받기도 한 박병기 대표는 현재 재경통영시향우회 간사와 재경경남도민회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박 대표는 통영을 알리는 ‘홍보대사’로 평생을 살아왔다.“통영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서울 속 통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진짜 통영의 맛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 매일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해초가 사람의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지만, 통영의 해초가 얼마나 특별한가도 과학적으로 공부하고 있어요.”그는 “통영의 해초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특별한 풍미를 지녔다”며 “도서관에서 연구한 결과 적당한 염분의 바닷속에서 침잠을 반복하며 자라는 해초에 더 많은 영양과 맛이 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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