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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전’은 제사의 의식 또는 성대한 잔치를 뜻한다. 길운을 염원하는 제전에선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치고, 넘보기 힘든 산해진미를 내어놓는 법이다. 다음 달 26∼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서울시발레단 ‘봄의 제전’은 한국 발레의 새 지평을 열고자 현대무용가 안성수(62), 유회웅(41), 이루다(38)가 힘을 모은 귀한 한상차림이다. 지난달 출범한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이는 첫 번째 공연으로 8월 창단 공연에 앞서 공연된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에 이어 48년 만에 창단된 국내 세 번째 공공발레단이다. 그중 컨템퍼러리(현대) 발레단은 서울시발레단이 유일하다. 3인 3색 트리플빌을 안무한 세 사람을 27일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첫 신호탄을 알리는 만큼 세 작품 모두 뛰어난 기량과 고강도 체력을 요구한다. 안 씨의 ‘로즈’는 2009년 초연된 ‘장미―봄의 제전’을 더욱 빠르고 역동적으로 재구성한 30여 분 길이의 공연이다. 힙합 댄스가 가미된 기존 버전에서 발레 동작을 강화해 움직임은 자연스레 화려해졌다. 안 씨는 “2009년 초연 때부터 15년간 작품의 음악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선율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엔 놓쳤던 음표와 쉼표가 들렸다. 이를 움직임으로 채우다 보니 작품 강도가 높아졌다”면서 “연습이 끝나면 다들 몸을 부여잡으며 힘들어하지만, 운 좋게 이를 해낼 수 있는 멋진 무용수들을 만났다”며 웃었다. 서울시발레단은 기존 공공발레단과 달리 단장, 고정 단원 없이 시즌 및 작품별로 선발된 무용수와 안무가로 구성된다. 올해 시즌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미국 뉴욕 페리댄스 컨템퍼러리 무용단 등 출신의 무용수 5명으로 이뤄졌다. 김희현, 김소혜, 원진호는 ‘로즈’에, 남윤승, 박효선은 ‘노 모어’에 출연한다. ‘볼레로24’는 프로젝트 무용수 9명이 무대에 선다. 이루다의 ‘볼레로24’ 역시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를 더욱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펼쳐낸다. 1년 24절기, 하루 24시간으로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레로’의 희극적인 선율은 이 씨를 상징하는 ‘어둠’을 거쳐 재탄생된다. 이 씨는 “낮과 밤, 음과 양 등 우주의 흐름 속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을 몸으로 표현하려 한다”며 “어릴 때부터 백조보단 흑조를 좋아했다. 검정 색은 내 작품에 정체성을 부여한 길잡이”라고 설명했다. 컨템퍼러리 발레는 클래식발레와 비교해 비정형적인 움직임이 매력으로 꼽힌다. 그런데 유회웅의 ‘노 모어’는 그 매력을 한판 더 뒤집었다. 유 씨는 “현대무용이지만 신체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선다. 탁탁 두드리는 소리를 만들고 분출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작품은 오늘날 피로와 무기력에 매몰된 사람들의 심장에 힘찬 박동을 안겨주고자 기획됐다. 무용수들은 도심을 형상화한 무대세트를 배경으로 떨림과 긴장감을 빠른 드럼 비트에 맞춰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현대예술엔 정해진 답이 없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정답이 없기에 관객은 ‘찾아나가는’ 재미가 크다. 이 씨는 “클래식발레의 길고 예쁜 동작들이 어떻게 해체적으로 변형됐는지 비교해 보는 방법이 있다”며 “미디어아트에 담긴, 춤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각적 힌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권했다. 안 씨는 “무용수들의 아이디어로 재미난 동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의 제스처, 가수 엄정화의 춤 등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만∼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20년 12월, 한 재심법정에서 내려진 선고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1988년 벌어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서 범행을 자백해 20년간 구금됐던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 재판부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사과하며 “피고인의 자백 진술은 불법체포·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졌다. 각종 증거에 객관적 합리성도 없다”고 밝혔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는 이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책은 이처럼 누구든지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오늘날 사법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는 무죄 입증 변호사 단체인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의 설립자로서 30년간 힘썼다. 무고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옥에 갇히게 되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변호 인력의 부족과 부적절한 수사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매릴린 멀레로 사건, 범행 현장으로부터 56km나 떨어져 있었지만 목격자의 부정확한 진술 탓에 억울하게 복역한 라파엘 매드리걸 사건 등이 총 10개의 장에 걸쳐 등장한다. 영화 ‘추락의 해부’의 모티브가 된 어맨다 녹스 사건도 눈길을 끈다. 오판을 낳게 하는 불가항력적 실수와 구조적 요인들도 지적한다. 잘못 조합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인간의 기억력이 대표적이다. 책은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경찰이 잘못된 정보를 한두 개 흘리면 기억을 정확히 소환하기 어렵다”며 “경찰관은 심문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에 피의자가 동의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무고한 피해자를 낳는 불합리한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1800억 달러를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비용으로 투입하고 있다. 저자는 “거짓 자백을 만들 우려가 있는 절차들은 전부 뿌리 뽑고, 용의자 식별 절차 중 의도적 오염이나 실수가 개입하지 않도록 이중 잠금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뮤지컬 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가 ‘지방 관객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 공연 대비 짧은 기간 진행되는 지방 투어 공연에선 과거 시간 및 비용 효율 등의 이유로 뮤지컬 음악 반주가 MR(반주 음원)로 대체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서울 공연과 마찬가지로 지방 공연에서도 20인조 이상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21∼24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과 다음 달 2∼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모든 회차 공연에서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에 나선다. ‘드라큘라’ 제작사인 오디컴퍼니 공연제작팀 관계자는 “최근 일회성이 아닌 기간적 여유를 가지고 공연하는 경우가 늘면서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학생 등 밤 시간 공연 관람이 어려운 관객층을 겨냥해 낮 시간대 공연을 신설하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진 대구 공연 기간 금요일 마티네 공연을 추가했다. 통상 수요일 낮에 이뤄지는 마티네 공연을 금요일에도 실시해 주말과 이어 붙여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지난해 10, 11월 열린 부산 공연에서 4번의 마티네 공연을 추가했다. 노민지 클립서비스 홍보팀장은 “‘레미제라블’의 경우 먼 지역으로 공연을 보러 가기 어려운 학생들의 호응이 높았다. 마티네 공연을 중심으로 부산·경남 소재 40여 개 학교의 단체 관람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연 여건상 전국 투어 공연이 불가능할 경우 지방 관객의 발길을 서울까지 모으기 위한 이색 프로모션들도 제공한다.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EMK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360도 회전하는 대규모 무대장치 등으로 인해 서울 외 지역에서 공연을 열지 않는다. 그 대신 고속버스 승차권, 항공권 등을 제시하는 타 지역 관객에게 20% 할인 혜택을 줬다. 김지원 EMK 부대표는 “프로모션용으로 준비한 물량이 거의 다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며 “투어 공연이 어려울 경우 다양한 혜택을 마련함으로써 지방 관객들의 공연 관람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는 말을 기치로 사랑 한 줌 없는 삶을 견뎠다. 불우했던 이팔청춘에 청부 살인을 시작해 40여 년간 감정을 거세한 채 살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 그의 메마른 삶에 타인과 생명을 향한 사랑이 움트려 한다면 그건 축복일까, 더 큰 불운일까. 15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 중인 창작 뮤지컬 ‘파과’는 2013년 발표된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 ‘파과’는 부서진 과일 또는 여자 나이 16세를 뜻한다. 작품은 파과(破瓜)일 적부터 파과(破果)로서 살아야 했던 조각, 그리고 어린 시절 조각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후 20년간 복수심과 동경심을 원동력 삼아 살아온 ‘투우’가 그리는 이야기다. 투우 역을 맡은 배우 신성록은 증오와 동경, 연민이 뒤엉켜 비틀린 투우의 내면을 비릿한 웃음과 느릿한 말투 등으로 매끄럽게 표현한다. 조각 역의 구원영은 세월이 흐르며 곪아버린 마음과 그 속에서도 돋아나려는 새살로 인한 미묘한 감정을 건조하면서도 처연한 연기로 그려낸다. 조각 역은 차지연과 구원영이, 투우 역은 신성록과 김재욱, 노윤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소설과 비교해 뮤지컬에선 누아르 장르의 매력을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스카프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등 주연 배우들이 무대에서 몸소 선보이는 격정적 액션 장면은 긴박감을 더한다. 통상 뮤지컬에서 액션을 가미한 연기 및 군무가 극 전개와 다소 괴리되는 인상을 주는 것과 달리 ‘파과’ 속 액션은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누아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무대세트와 흑백 영상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차갑고 대칭적인 형태의 철제 난간과 계단은 날카롭고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총 3개 층으로 이뤄진 수직적 무대는 언제 어디서든 감시와 위협을 당할 수 있는 조각의 불안한 삶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성근 전개와 심리묘사는 다소 아쉽다. 조각이 어릴 적 친척 손에 거둬지며 겪었던 성장통, 투우가 살해범에게 온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배경 등이 뮤지컬에선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지극히 인간적인’ 이들의 양가적 마음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조각이 과거 자신을 거둬주고 청부 살인 방법을 전수한 스승에게 느꼈던 애틋함과 현재 부상당한 자신을 치료해주는 ‘강 박사’로 향한 연정이 어수선하게 병렬되며 흐름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다만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내레이션과 20여 곡의 서정적 넘버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보완했다. 5월 26일까지,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늘 훌륭한 가수분들과 (학전의) 마지막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학전의 정신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배우 황정민)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어 온 학전이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지 꼭 33년 만이다. 폐관 전날인 14일, 서울 종로구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황정민은 “학전은 제게 배우로서 포석이자 지금의 저를 만든 마음의 고향”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이날 학전 대표 김민기의 히트곡 ‘작은 연못’을 노래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지난해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학전과 인연이 있는 배우, 가수들이 뜻을 모아 기획했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던 배우 설경구, 장현성부터 가수 동물원, 시인과 촌장, 윤종신,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까지 모두 출연료 없이 노개런티로 동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총 20회 릴레이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티켓 수익금은 제작비를 제하고 모두 학전에 기부된다. ‘김민기 트리뷰트’를 부제로 열린 이날 공연에선 그룹 노찾사, 가수 박학기, 권진원, 정동하, 알리 등이 ‘상록수’를 비롯한 김민기의 히트곡들을 불렀다. 1956년 문을 열어 대학로의 산증인이 된 학림다방의 이충열 대표도 게스트로 참석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콘서트는 모든 출연진이 입 모아 “나 이제 가노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아침이슬’)를 노래하며 끝을 맺었다. 이번 릴레이 콘서트의 총감독을 맡은 가수 박학기는 “김민기 이름 석 자 아래 선후배들이 같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 서정임 씨(서울 광진구·50)는 “20대에 ‘지하철 1호선’만 두세 번 봤고 지금도 김민기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며 “아쉬운 마음에 딸에게 부탁해 티켓을 구했다”고 했다. 학전은 그동안 고(故) 김광석, 들국화, 조승우 등 수많은 스타 가수와 배우들을 배출해 냈다. 국내 창작뮤지컬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1994년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 작품이었다. 공연 횟수 4000여 회, 누적 관객 7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소극장 뮤지컬의 역사를 썼다. 또 학전이 제작한 뮤지컬 ‘의형제’는 제35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극장은 다음 달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임차한다. 학전의 뜻에 따라 명칭은 변경되며 올 7, 8월경 어린이·청소년 전문극장으로 재개관하게 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호흡을 맞춘다’는 것. 심장박동을 나누고 함께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이다. 차디찬 로봇이 달리는 말의 등에 올라타 호흡을 맞추고 질주의 두근거림을 나눈다면, 그 순간만큼은 로봇에게도 온기가 도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존재가 맞추는 호흡을 담은 연극 ‘천 개의 파랑’이 다음 달 4∼28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소설이 원작으로 국립극단이 제작했다. 더는 달리기 힘든 경주마 ‘투데이’, 투데이를 살아있게 하고자 스스로 폐기를 택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런 콜리를 살리려는 소녀 ‘연재’가 연대하는 과정을 그렸다. 티켓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된 화제작이다.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장한새 연출가(35)와 천선란 작가(31)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났다. 2016년부터 SF 연극을 꾸준히 다뤄온 장 연출가는 연재와 콜리가 첫눈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봤듯 책 ‘천 개의 파랑’을 읽자마자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SF지만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다분히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먼 미래에나 벌어질 상상으로만 치부한다면 이미 도래한 기계사회에서 기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사유되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고 했다. 천 작가의 작품이 연극, 영화 등 3차원(3D)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공연으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고 외쳤다”며 “2년 전 한 축제에서 ‘천 개의 파랑’ 낭독을 듣던 중 울어버렸다. 한 장면의 감각과 분위기를 언어로 온전히 담아내는 데 평소 한계를 느끼는데 연극에선 이를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콜리와 투데이가 대화하지 않고 고삐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호흡을 맞추듯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만으로 상상력을 펼쳐내는 무대예술이다. 천 작가는 “영화화 제안도 받았지만 말과 로봇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약속으로 이뤄지는 장르이니 가능하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 중 투데이는 빛으로 형상화돼 콜리의 심장을 표현한다.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올라 콜리 역을 맡는다. 특별 제작된 145cm 크기 로봇은 조명장치 제어 기술로 신호를 받아 동작과 대사를 실시간으로 소화한다. 배우 김예은이 로봇을 조종하는 동시에 콜리 시각에서의 서술자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는 사실적 재현 대신 ‘콜리의 메모리박스’로서 표현된다. 장 연출가는 “콜리가 각 인물과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에 중점을 뒀다”며 “경마장은 말발굽 소리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투데이의 존재를 통해 감각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이 각자 소설로 연극으로, 있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에게 SF적 상상력이란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의 원천’이다. 장 연출가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듯 세상의 끝을 이야기함으로써 새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천 작가는 “인류가 사라지고 몇백 년이 흘러 텅 빈 도시를 상상하면 소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 순간 차별과 갈등에 맞서 싸울 힘이 생겨요. 결국 모두 침묵 속에 가라앉을 거라면 지금 더 크게 목소리 내도 되겠다 싶어요. 그게 제가 SF를 사랑하는 이유죠.”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늘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더라고요. ‘진짜 마지막’ 같아서…. 학전은 제게 운명이었고, 그 이름은 사라져도 제겐 학전의 DNA가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겁니다.”(배우 설경구) 뿌린 씨가 싹을 틔우길 기다리는 이른 봄, 11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 선 배우 설경구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1994년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그는 꼬박 30년이 흘러 국내 손꼽는 ‘명배우’ 타이틀을 달고 같은 무대에 섰다. 설경구는 “대학 졸업 후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학전 김민기 대표의 눈에 띄어 엉겁결에 무대에 섰다. 그땐 모든 게 참 어설펐다”고 미소 지었다.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학전의 마지막 공연은 ‘릴레이 콘서트’다.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지난해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학전과 인연이 있는 배우, 가수들이 ‘학전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겠다’며 발 벗고 나선 것. 출연료는 한 푼도 없다. 티켓 수익금은 제작비를 제하고 전액 학전에 기부된다. 윤종신, 장필순 등 싱어송라이터와 동물원, 시인과 촌장 등 굵직한 포크 가수, 그리고 데이브레이크 등 ‘요즘’ 밴드까지 릴레이에 동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총 20회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폐관을 나흘 앞둔 11일 공연은 나윤선, 오지혜 등 학전 출신 배우 70명이 직접 기획과 연출을 맡은 것은 물론이고 직접 출연자로 나섰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고추장 떡볶이’ 등 학전 대표작의 넘버를 부르는 갈라 콘서트와 토크쇼로 구성됐다. 과거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김윤석과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배우 장현성은 손수 기타를 치며 설경구, 방은진, 최덕문과 ‘축복합니다’를 노래했다. 장현성은 “가장 ‘학전답게’ 이별하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관객과 학전의 앞날을 축복하고자 이 노래를 골랐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순수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방은진은 “백스테이지에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콘서트는 출연진 전원이 무대와 객석 통로에 빼곡히 서서 ‘지하철 1호선’ 1막 마지막 넘버 ‘코랄’을 합창하며 끝이 났다. 김민기를 위해 배우들이 준비한 감사패는 직접 전달되지 못했다. 가수 박학기 등에 따르면 김민기 대표는 “건강상 극장을 직접 찾진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극장에 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일 릴레이 콘서트 녹화 영상을 챙겨 보고, 출연진에게 전화해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공연 막바지 그동안 학전을 거쳐 간 배우, 연주자, 스태프 등 771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엔드크레디트가 오를 때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울음은 김민기의 히트곡 ‘봉우리’가 흘러나와 위로했다. 1991년 개관한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끈 상징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기획·제작한 작품 수는 총 359개에 달한다. 고(故) 김광석, 들국화, 안치환 등이 학전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08년까지 약 4000회 공연되며 관객 70여만 명을 모았다. 다음 달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극장을 임차해 어린이·청소년 전문극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다만 학전의 뜻에 따라 명칭은 변경하며 7∼8월 재개관한다. 한편 학전은 14일 열리는 콘서트를 끝으로 33년의 릴레이를 완주한다. 마지막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공연계에선 다음 달 17∼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발레 ‘모댄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역인 세계적 발레 스타이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5·사진)의 정치색 논란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그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한 데 이어 러시아 연방의회 국가두마(하원)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인물이다. 푸틴으로부터 훈장도 받아 ‘친푸틴’ 인사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이번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측은 주한 대사관을 통해 “침략 국가의 공연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며 공연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연계에선 논란이 되는 정치적 배경을 지닌 예술가의 공연을 허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물리고 있다. 최근 정치적 올바름(PC)이 대중의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윤리적 결함이 있는 예술가의 공연 취소, 캐스팅 변경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 초 공연 예정이던 연극 ‘두 메데아’는 공연예술 관계자 343명, 관객 363명이 연명한 보이콧 운동으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취소됐다. 주연 배우 김모 씨가 2018년 미투로 질타를 받은 연희단거리패 대표 출신인 데다, 그래픽디자이너가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 3일 폐막한 뮤지컬 ‘더 데빌: 파우스트’에는 원래 배우 한모 씨가 출연 예정이었으나 개막 전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2020년 성추행 논란을 두고 관객들이 대학로 거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등 거세게 항의한 데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공연을 허용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공연계에선 PC 논란을 일으킨 예술가들의 공연 여부를 놓고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연 강행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과 캔슬컬처(논란이 된 인물의 지위를 박탈하는 집단적 움직임)는 마녀사냥일뿐더러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자하로바 공연 논란의 경우 자하로바 본인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주장해도 핵심적인 친푸틴 예술가로서 가해자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나라들에선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의 공연을 줄줄이 취소했다. 비윤리적 예술가가 활동을 재개해도 괜찮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공연을 ‘안 볼 권리’가 있는 개개인이 작품을 외면함으로써 예술가가 반성을 하고, 자연적으로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공과를 다각도로 살피지 않은 일방적 매도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단죄를 넘어 논란이 된 예술가의 작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는 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에 참여하는 홍예원 연출가는 “나치 독일의 괴벨스가 만든 선전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는 한편 어떤 목적으로 제작됐는지 대중이 인지하고 본다는 게 핵심”이라며 “공연을 취소하고 사안을 봉인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평가로 건강한 논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 16∼18일에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갈라콘서트가, 6월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이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인터넷을 보다 보면 세상의 종말이 머잖은 것 같은 때가 있다. 정치 혼란, 경기 침체 등 막막한 문제를 둘러싼 각종 ‘썰’이 난무해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썰의 황금기(?)에 태어난 듯해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음모론이 단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 역사와 패턴에 대해 몰입도 높게 풀어낸다. 책에 따르면 음모론은 중세에도 팽배했다. 부활절 전날 영국의 숲속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자 ‘유대인이 기독교도 아이들을 살해한다’는 낭설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1960, 70년대 미국에선 베트남전, 정계 인사의 암살 등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음모론이 폭발했다. 다만 저자는 “오늘날 인터넷이 보급되며 극단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심화한 양극화는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의식을 키웠다”고 말한다. 일루미나티, 폴 매카트니 사망설 등 세상을 뒤흔든 음모론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며 음모론이 사라지기 힘든 이유를 진화론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원시 인류는 위험 요소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보다 실존하지 않는 위험을 보는 게 유리했다”며 “음모론은 세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욕구를 충족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음모론자가 단지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이 아닌 ‘우리’ 모두일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예컨대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믿는 모임’을 창설했다. 음모론의 시비도 따져본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팬데믹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자기파 중 하나인 5G는 인체에 피해를 일으킬 만한 에너지가 없는 비전리 방사선”이라고 반박한다. 음모론에 매몰되면 그것의 토대가 된 진짜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삶을 좌우하는 진짜 원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만남과 헤어짐이 물 흐르듯 이어진대도 어떤 사랑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오래 살며 사랑하는 일’은 머나먼 행성만큼 요원하다. 19∼3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이처럼 평범함이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2000년생 동갑내기 재은과 윤경이 만나 동성 가족을 이루고, 딸을 입양해 함께 살아가는 100년의 시간을 그린다. 제5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이래은이 연출했다. 6일 정동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초연 대본을 읽었을 땐 다음 일이 쉽게 예측돼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눈물이 탁 터졌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현실에서 오롯이 지켜본 적이 없기에…. 마음이 무너진 거예요.” 주인공 재은과 윤경의 혼인신고서가 반려되자 곧장 유언장을 작성하는 장면은 관객 가슴에 파문이 일게 한다. 이 연출가는 “동성 부부는 병원에 가도 서로 보호자조차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이 그들에겐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극 중 일대기는 ‘우주’와 연결된다. 처음 만나 UFO(미확인비행물체)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닿고, 먼 미래엔 우주정거장에서 재회한다. 이 연출가는 “슬픔과 고통이 반복되는 삶의 순간들이 까맣고 긴 터널처럼 이어지는 형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를 표현하고자 분야별 디자이너들과 논의해 무대 바닥에 궤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평범한 사랑 이야기’임을 보여주고자 무대와 관객 간 거리를 좁히는 보조 무대를 설치했다. 세 주인공의 10대 시절은 특히 섬세한 대사로 그려진다. 시대별 10대를 적확히 표현하고자 당시 정치사회와 대중문화부터 양육자 세대의 성장 배경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8세부터 99세까지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액팅코치, 안무가와 머리를 맞대고 신경심리학적 연구도 했다. 8세 전후 어린이를 연기할 땐 윗입술을 바짝 올리고,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출하듯 걷는다. 80대가 되면 무게 중심을 골반 앞으로 움직이고, 길어진 인중과 밭은 숨으로 말한다. 그는 “과학적 근거로 몸을 만들면 슬픔과 고통을 연기하더라도 배우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눈물을 뚝뚝 떨구기도, 봄 닮은 미소를 짓기도 하던 그에게 사랑은 단지 이성을 향해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텅 빈 우주 어딘가에 표류할 서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는 것, 다시 말해 계속 들여다보고 면면을 발견하는 것. 그게 사랑이죠.”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굽은 등과 뒤틀린 입술, 절룩이는 다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카지모도)의 첫 등장은 여느 뮤지컬의 ‘백마 탄 왕자님’들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향해 누구보다 꾹꾹 진심을 눌러 담아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될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 역을 맡은 배우 정성화(49)를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그는 콰지모도를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역할’로 꼽으며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첫 등장은 열한 살인 우리 아이가 나를 피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쯤엔 ‘나라도 저 친구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에서 15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스테디셀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국어 공연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콰지모도 역은 정성화와 양준모, 윤형렬이 돌아가며 맡는다. 그는 관객에게 연민을 자아내는 것을 목표로 배역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고 했다. “시즌 초반에 ‘콰지모도가 너무 청아하다’는 관객 평을 보고 크게 반성했어요. 콰지모도의 불편한 등허리와 청력 등을 연기와 목소리로 표현하려 다시 고민했죠.” 이후 그는 또렷한 발음 대신 다소 어눌한 발음을 연습했고, 다리 근육을 훈련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공연계에 입성한 그는 21년 차 베테랑 배우다.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킹키부츠’의 롤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오갔다. 그는 2009년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이번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정성화는 “무대에 올라 관객 귀를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저 스스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은 처음이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24일까지, 7만∼17만 원. 29일부터는 부산과 대구에서 공연이 이어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카메라에 불이 켜지고 두 무용수가 눈을 맞추자 연습실 검은 장막에 푸른 달빛이 사푼 내려앉은 듯했다. 밤마다 백조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오데트와 악마의 방해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려는 왕자 지그프리트. 호수만큼 시린 눈빛이 허공에 걸렸을 땐 이들이 사랑의 주역으로 거듭 호흡을 맞추는 이유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달 27∼3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영원한 사랑을 춤추는 두 주역, 솔리스트 조연재(29)와 수석무용수 박종석(33)이다. 5일 서울 서초구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은 ‘호두까기 인형’ ‘고집쟁이 딸’ 등에서 연인을 연기한 발레단 대표 듀오 중 하나다. 전 회차 전석 매진된 이번 공연에서 오데트 역은 심현희, 조연재, 안수연이, 지그프리트 역은 박종석, 허서명, 하지석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는 세계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버전으로 남녀 무용수 모두에게 고강도 체력과 정교한 연기를 요구한다. 박종석은 “1막 1장은 내내 뛰어다니기 때문에 연습한 날엔 따로 유산소 운동을 안 해도 될 정도”라며 “그 대신 공연을 끝낸 뒤 돌아오는 행복도 2배”라고 했다. 조연재는 역대 출연작 중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를 꼽았다. 그는 “백조를 표현하려 뒤로 꺾는 팔의 움직임이 매우 까다롭다. 태생적으로 왼쪽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고백했다. 백조 오데트 역 발레리나가 사랑을 훼방 놓는 흑조 오딜 역까지 겸해 180도 반전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 작품의 묘미다. 조연재는 ‘처연한’ 백조와 ‘매혹적인’ 흑조가 되고자 고심했다. 그는 “지그프리트를 속이려면 흑조는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봤다”며 “백조 연기는 전설적인 무용수 율리아나 로파트키나 영상을 참고했다. 인간이 아닌 백조 그 자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트가 그릇된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은 박종석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2년 전 발레리나 겸 배우 왕지원과 결혼한 그는 평소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이때 지그프리트가 받는 충격은 완전히 제 것이에요. 오데트와 사랑에 빠질 때, 자기 잘못을 깨닫고 슬픔을 느낄 때 아내와의 일들을 생각하죠. 일상에서 느낀 진짜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섬세한 연기로 공연마다 호평을 받는 박종석은 2016년 입단 후 5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조연재 역시 승급 속도가 매섭다. 2018년 입단한 해에 ‘호두까기 인형’ 마리 역으로 주역에 곧장 데뷔했다. 올해 1월엔 드미솔리스트에서 솔리스트2를 건너뛰고 솔리스트1로 두 계단 점프했다. 입단 동기 중 승급이 가장 빠르다. “‘백조의 호수’를 잘하고 싶어서 연말연초 휴가에 쉬지 않고 연습을 했거든요. 그런데 1월 첫 출근 날 발목이 돌아갔어요. 발레가 내 길이 아닌 걸까 하늘을 원망했죠. 병가를 내고 병원에 다녀오는데 승급 전화가 와서…포기하지 말라는 거구나, 큰 힘이 됐죠.” 두 사람에게 빠르게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물었다. 조연재는 “연습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우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할 일은 하자’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하려 한다”고 했다. 박종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같은 답을 내놓았다. “집 가서 털고 다음 날부터 그냥 다시 하는 거죠. 안 되는 걸 계속 해보고 또 해보면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걸그룹 트와이스가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K팝 가수가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8번째다. 3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는 차트 예고기사를 통해 트와이스가 열세 번째 미니음반 ‘위드 유-스(With YOU-th)’로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의 컨트리음악 스타 모건 월런의 앨범 ‘원 싱 앳 어 타임(One Thing at a Time)’과 카녜이 웨스트-타이 달라 사인의 ‘벌처스 1(Vultures 1)’ 등 쟁쟁한 후보를 제쳤다. 비(非)영어 앨범이 ‘빌보드 200’ 1위에 오른 건 24번째다. 앞서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 키즈, 슈퍼엠, 에이티즈 등 7개 K팝 그룹이 1위를 차지했었다. 2015년 데뷔해 ‘치어 업’ 등의 히트곡을 낸 트와이스는 해당 차트의 10위권에 5차례 진입한 끝에 처음 1위에 올랐다. ‘빌보드 200’은 스트리밍 횟수,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 등을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뒤 실물 음반 판매량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위드 유-스’는 집계 기간 음반 판매량이 9만5000장에 달했다. 신보에는 타이틀곡 ‘원 스파크’를 비롯한 6곡이 수록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방송인 김신영이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하차한다. 송해(1927∼2022)의 후임으로 발탁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김신영은 지난달 29일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담당 CP(책임 프로듀서)가 (KBS 윗선으로부터) MC 교체 통보를 받고 당황해 연락이 왔다. 이달 9일 인천 서구편 녹화를 끝으로 하차하게 됐다”며 “김신영은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달려온 제작진과 힘차게 마지막 녹화에 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국노래자랑’은 국내 최장수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1980년 정규 편성돼 가수로 활동했던 고 이한필, 방송인 이상용 등이 역대 MC로 이름을 올렸다. 김신영은 1988년부터 34년간 MC를 맡았던 송해의 뒤를 이어 2022년 10월 ‘전국노래자랑’ 첫 여성 MC로 발탁됐다. 김신영의 하차는 시청률 하락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노래자랑’은 송해가 진행을 맡던 시절 10%대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나 올해 시청률은 5∼6%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대표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임으로는 방송인 남희석이 확정됐다. 남희석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은 이달 31일부터 방영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방 안에 있는 거미를 보면 대체 어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다. 빽빽한 쇠창살로 둘러쳐진 감옥에도 온기가 들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미여인’ 몰리나는 감옥만큼 굳게 닫혀 있던 발렌틴의 마음에 스며들며 잿빛 바닥을 색채로 가득 메운다. 마치 거미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온유하게 기다리면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일부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이그가 1976년 발간한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수감 중인 두 인물 몰리나와 발렌틴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그렸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돼 2017년 세 번째 시즌을 거쳐 7년 만에 다시 막이 올랐다. 성소수자 몰리나 역은 배우 전박찬, 정일우, 이율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정치범 발렌틴 역은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맡았다. 연극 ‘오펀스’, 뮤지컬 ‘라카지’ 등을 만든 레드앤블루가 제작했다. 이념과 성격이 정반대인 두 주인공을 대사와 소품을 통해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렸다. 스스로를 여자로 생각하며 “지금을 즐겨” “난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울 거야”라고 말하는 몰리나의 자리는 형형색색의 스카프와 포스터로 장식돼 있다. 반면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발렌틴은 “내게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며 낡은 책 두어 권만 머리맡에 두고 이상을 위해 인내한다. 감옥이라는 단일한 무대세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인극이지만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가 현실에 환상을 중첩시켜 입체감을 더했다. 원작 속 길게 서술되는 영화 이야기는 핵심만 남기고 과감히 덜어내 두 인물의 서사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31일까지, 전석 6만6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공연 티켓 판매액(콘서트 등 제외)은 6489억 원으로 관련 수치를 집계한 2019년 이래 최대였다. 콘서트 등 대중예술 분야를 합치면 1조2697억 원으로 영화 매출액을 처음 넘어섰다. 그러나 공연시장 성장의 이면에는 티켓가 급등이나 공연 질 저하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3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홈쇼핑 판매 영상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OST 앨범과 프로그램 북을 포함한 VIP석 패키지 티켓은 반값 특가로 7만 원에 판매됐다. 이 영상의 댓글창에는 “지금은 절대 없는 할인율”이라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6년 새 티켓가가 크게 올랐지만 할인 혜택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폐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VIP석 티켓가는 19만 원으로, 뮤지컬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다음 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스타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모댄스’의 R석 티켓가는 34만 원에 달한다. 공연 티켓 가격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는 ‘스타 캐스팅’ 시스템이 꼽힌다. 공연계에 따르면 ‘n차 관람’을 유도할 수 있는 A급 남자배우들의 개런티는 회당 4000만 원이 넘는다. 공연계 관계자는 “인지도와 팬층이 어느 정도만 있어도 2000만∼3000만 원 개런티는 기본”이라며 “인건비가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5, 6년 전에 비해 현장 스태프나 하우스 매니저의 인건비도 50% 이상 뛰었다”며 “티켓 할인을 해주면 제작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예매수수료와 극장 주차요금 등 부대비용도 줄줄이 올랐다. 티켓링크는 온라인 티켓 예매수수료를 기존 1000원(연극 외 공연 기준)에서 지난 달 2000원으로 올렸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6∼12월)에 인터파크와 멜론, 예스24가 예매수수료를 2배로 인상했다. 공연 가격은 올랐지만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스타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가 대표적이다. 배우 최재림은 올 1월 28일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에서 반복적인 음 이탈을 낸 후 최근까지도 고음 넘버의 일부 소절을 대사로 처리해 논란이 됐다. 뮤지컬 3편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무리한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8일 그의 공연을 관람한 한모 씨는 “1막 하이라이트에서 ‘삑사리’가 난 이후 공연에 몰입이 안 됐다. 1층의 좋은 좌석을 18만 원이나 주고 어렵게 구했는데 돈이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뮤지컬 제작사들에 캐시카우로 통하는 스테디셀러 작품을 놓고 골수 팬들 사이에선 “예전보다 성의가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팬들이 인증샷 촬영에 열을 올리는 캐스팅보드(배역을 소개한 안내판) 사진 ‘재탕’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공연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레베카’는 캐스팅보드에 들어가는 배역별 사진을 갱신하지 않고 지난 공연에서 사용한 사진을 재활용했다. 막심 드 윈터 역의 주연배우 류정한의 경우 10년 전 초연 사진이 캐스팅보드와 프로그램북에 그대로 들어갔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지난해 공연시장이 엔데믹 이후 빠르게 회복됐지만 건강한 성장을 이루진 못했다”며 “과도한 스타 마케팅에서 벗어나 공연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70년 가까이 무대를 지켜온 원로배우 오현경 씨(사진)가 투병 끝에 1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55년 전국고등학교연극경연대회에서 ‘사육신’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이후 극단 실험극장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연극 ‘봄날’, ‘휘가로의 결혼’ 등에 출연했다. 특히 고인은 KBS 2TV 드라마 ‘손자병법’(1987∼1993년)의 만년 과장 이장수 역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고인은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제3회 동아연극상(1966년)에서는 실험극장 ‘무익조’의 금박사 역으로, 제22회 동아연극상(1985년)에서는 실험극장 ‘아메리카의 이브’ 장군 역으로 연기상을 받았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고인은 지난해 8월 뇌출혈로 쓰러지기 석 달 전 연세극예술연구회 학생들과 함께 유작이 된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무대에 섰다. 고인의 딸이자 배우인 오지혜 씨는 “아버지에게 연극은 종교나 다름없었다. 생전 ‘깐깐한 배우’로 살면서 구순을 앞두고도 매일 다음 작품을 꿈꾸셨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딸 지혜, 아들 세호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5일 오전 5시 20분. 02-2227-7500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소설가 한강(53·사진)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제7회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2018년 황석영의 장편 소설 ‘해 질 무렵’ 이후 6년 만이다. 기메 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이날 ‘작별하지 않는다’를 수상작으로 발표하며 “절제된 표현력과 주제의 보편성”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과거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강렬한 시대극들이 잇달아 공연된다.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달 27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루이 16세의 왕비로서 화려한 삶을 살다 단두대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재조명했다. 당대 귀부인들이 입던 로코코풍 드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50여 벌의 드레스와 회전무대로 표현한 베르사유 궁전 등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배우 김소향, 이지혜, 옥주현 등이 출연한다. 다음 달 26일부터는 나폴레옹의 침공을 앞둔 19세기 러시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재창작한 작품으로 백작의 서자 피에르와 군인 아나톨,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 간의 사랑을 그린다. 배우 대부분이 연기는 물론이고 악기까지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20세기 중국에서 스파이로 활동한 경극 배우 스페이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엠. 버터플라이’도 다음 달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7년 만에 공연된다. 여장 남자 쑹리링(송릴링)이 주베이징 프랑스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캐내는 이야기다. 1988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나라 세 번째 공공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이 창단했다. 국립발레단이 1962년, 광주시립발레단이 1976년 출범한 이후 48년 만이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내 발레 무용수들이 이미 세계무대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데도 (발레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공적 지원이 충분치 않았다”며 “서울시발레단이 K컬처의 매력을 확장하고 서울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발레단은 단장, 고정 단원 없이 시즌 및 작품별로 선발된 무용수와 안무가로 구성된다. 기존 공공예술단들이 1인 단장(예술감독)과 정년 보장 단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대비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공연별로 최적화된 프로덕션을 꾸리고, 더 많은 국내 무용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현재 국내 발레단에 자리가 부족해 해외로 나간 무용수가 많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솔리스트(독무를 추는 무용수)만 100명 이상”이라고 했다. 서울시발레단은 클래식 발레 위주로 공연하는 다른 국내 주요 발레단들과 달리 동시대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국내 관객의 오늘날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8월 창단 공연으로 무용가 주재만이 안무하는 전막 창작 발레 ‘한여름 밤의 꿈’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한다. 앞서 4월에는 안성수, 유회웅, 이루다 안무의 트리플빌 ‘봄의 제전’을 선보인다. 10월에도 한 차례 더 공연을 연다. 연간 배정된 제작비, 인건비 등 예산은 총 26억 원이다. 올해 시즌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미국 뉴욕 페리댄스 컨템포러리 무용단 등 출신의 무용수 5명으로 이뤄졌다. 연초 실시된 공개 오디션에 참가한 인원 129명 가운데 선발했다. 시즌 무용수는 올해 열리는 공연 3편에 모두 선다. 단일 공연에 출연하는 프로젝트 무용수는 17명이 뽑혔다. 이 외에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무용수 200여 명을 객원 무용수로 섭외할 계획이다. 발레단 전용 공간은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에 조성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