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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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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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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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좌절이 와도 연기는 포기할 수 없어요” 배우 꿈꾸는 스무 살 대학생[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상편(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616/119808141/1)에서 이어집니다.“즐거운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게 인생의 첫걸음이지만, 괴로운 시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인생이 끝나갈 때가 다 되어서도 알기 어렵다.”(하라 료의 소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에서)서울대 자유전공학부 2학년인 권수민 씨(20)는 자신을 “스스로 가시밭길에 걸어 들어간 사람”이라 했다. 물론 그가 어느 길로 가건 그 앞에 뭐가 기다릴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접었다면 평탄한 꽃길로 갈 기회가 적지 않았던 건 맞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데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국제공통 대학입학 자격시험)’ 만점을 받은 흔치 않은 스펙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수민 씨가 꿈꾸는 가시밭길은 ‘배우’다. 물론 이는 적절치 않은 표현일 수 있다. 스스로 선택했으니 어떤 길보다 그에겐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다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와 냄새나는 진흙탕과 거친 돌부리가 가득했다. 그런 길 위에서 수민 씨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학교와 연기수업 병행하기가 힘들진 않나요.“확실히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가 있어요. 최근에도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오디션 3개가 겹쳤거든요. 시험도 오디션도 대충 준비할 수 없잖아요. 일주일 넘게 하루 2시간 정도 잔 거 같아요. 게다가 과외도 6명을 2시간씩 주 12시간 하다보니…. 옛날엔 막연하게 학교 다니고 연기도 하면 무작정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닥치니까 정신이 멍해지는 게 이러다 과로로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오디션도 좋은 결과만 기대할 순 없겠죠.“그럼요. 좌절이 일상이죠.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오디션을 50번 정도 봤는데, 떨어지는 건 괜찮아요. 주위에서 함께 도전하는 연기지망생 언니 오빠들도 ‘오디션은 원래 500번은 봐야 하는 거야’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앞으로 10년은 더 열심히 볼 자신 있어요. 힘든 건 오디션 자체가 아니라…,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왜 저렇게까지 말하지’ 싶은 거죠. 지적이나 비판은 당연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나 행위들은 아직도 익숙해지질 않네요.”-연예계가 워낙 거칠단 얘기가 많죠.“저도 그런 말들 워낙 많이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거든요. 그런데도 언제나 그 이상이 있더라고요. 이 길을 선택했으니 감수해야 하는 거긴 한데, 기본적인 존중도 받지 못할 땐 정말 속상하죠. 여긴 약육강식의 법칙이 너무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엄마 아빠 속상하실까봐 이런 얘긴 안 하고 싶긴 한데, 집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펑펑 눈물 쏟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지거든요. 그럼 다시 또 힘내서 열심히 해보자 마음먹게도 되고요.”-그런 일을 겪어도 포기하겠단 맘은 들지 않는군요.“네, 한번도요. 저도 그게 좀 신기하긴 해요. 몸도 마음도 정말 다 털려버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더 하고 싶단 생각만 들어요. 더 오기가 생기고 더 각오하게 돼요. 경험 많은 어른들에겐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이대로 끝난다면 너무 억울한 거예요. 꼭 뭐라도 돼서 옛이야기 웃으며 할 수 있는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해요.”-왜 한국에서 연기에 도전한 건가요. 영어도 잘하고 성적도 좋으니 외국 대학에 가서 했으면 어떨까요. 요즘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배우도 많아졌고요.“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드라마를 보고 연기와 처음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여기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 가도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처음 연기학원 다닐 때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이 연기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어투가 자연스럽지 못했나 봐요. 그래서 밤마다 몇 시간씩 잠 줄여가며 발음연습을 했었어요. 여기서 뭔가 이룬 뒤의 먼 미래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승부를 봐야죠.”-서울대란 간판이 활동에 도움이 되나요, 방해가 되나요.“이젠 이렇게 인터뷰했으니 소용없는 일이 됐지만, 그전까진 웬만하면 굳이 밝히지 않으려고 했어요. 연기하는데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걸로 평가받고 싶지도 않거든요. 지난해 말 단편영화를 찍을 때도 감독님은 물론 스태프들도 아무도 몰랐어요. 학교는 그냥 제가 학생으로 다니고 배우는 곳일 뿐이지, 연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요.”-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요.“지금이야 맡겨주시면 뭐든 열심히 해야죠. 연기를 꿈꿀 때부터 여러 가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무슨 배역이든 상관없어요. 사실 제가 외모가 ‘딱 봐도 연예인 급’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작품에 들어가도 제가 원했던 역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를 맡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일단은 어디서건 전력을 다할 뿐이죠. 근데 최근엔 학원이나 오디션에서 거칠고 센 역할도 잘 어울리겠단 얘길 여러 번 들어서 그런 쪽으로도 연구하고 있어요.”-그런 연구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관련 작품 보고 연기 연습하는 게 기본이지만, 제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장소에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해요. 최근엔 밀항 브로커 연기에 관심이 생겨서 혼자 인천항에 가서 한참동안 돌아다녀봤어요. 제가 한국으로 몰래 들어온다면 어떻게 어디로 들어와야 할까 계획을 짜봤죠. 그쪽에 폐건물 같은 게 많아서 거기도 들어가서 이곳저곳 살펴봤어요. 공간이 주는 상상력의 힘이란 게 있으니까요.”-너무 위험한 곳은 혼자 가지 마세요.“하하, 네. 조심할게요. 물론 제 나이에 맞는 하이틴로맨스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많죠. 혹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보셨나요. 거기에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란 고애신(김태리)의 대사가 나와요. 꽃처럼 살 수 있지만 가슴 속의 열정을 이루기 위해 주변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케이트 윈슬렛)도 그렇고요. 제가 꿈꾸는 삶이나 연기도 그런 거예요. 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한발 한발 내딛는.”-마음속의 롤 모델이 있을까요.“방금 말씀드린 배우들도 좋아하지만, 지난해 개봉한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혜영을 연기했던 김혜윤 배우님은 정말 닮고 싶다고 느꼈던 분이에요. 뵌 적은 없지만, 제가 다니는 연기학원 선배시기도 해요!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연기에 반해서 이것저것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저희랑 비슷한 길을 걸으셨단 점도 너무 끌렸어요. 그분도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작은 단역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셨거든요. 게다가 그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강하신 점이 공감도 가고 매력적이었어요.”-잔인한 질문을 드릴 텐데, 어쩌면 연기자로 자리를 못 잡을 수도 있어요.“음…,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모든 게 제 맘대로 되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드릴게요.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더라도 계속 연기를 배우고 오디션에 도전할 겁니다. 오디션 중에 가끔 제가 서울대 다니는 걸 아시고 ‘재미로 배우 해보려는 것이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어요. 절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려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겠죠.”-대학생 때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런 걸 놓치는 게 아깝진 않나요.“여행이나 연애 같은 거 말씀이시죠? 주위에서 그런 말씀 많이 하시긴 해요. 근데 전 반대로 혹시 다른 일로 연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뺏기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에요. 물론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연애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좋겠죠. 그런 감정이나 기회를 억지로 막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연기니까요.”-강남 대형빌딩을 준대도 연기는 포기하지 않을 건가요.“당연하죠. 비교도 안 돼요.”-근데 기사 나간 뒤 호의적 반응만 있진 않을 겁니다. ‘네까짓 게 무슨 배우냐’ ‘세상 물정 모른다’ 악담도 나올 거예요.“무섭기는 해요.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겠죠. 이런 친구도 있구나 좋게 봐주시길 부탁드리지만, 그것 역시 제 맘대로 되나요. 다만 아시다시피 세상엔 정말 각양각색의 배우가 존재하잖아요. 권수민도 자기 나름의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 다 모르는 것도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연기만큼은 제일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요.”-혹시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에구…,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릴 때 신께선 왜 저한테 연기라는 시련을 주셔서 이렇게 힘들게 만드시나 싶은 적도 있었어요. 배우의 꿈만 아니었다면 아빠 엄마한테도 예쁨 받는 딸이었을 텐데 싶기도 했고요.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선 죄송함이 가득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걸 안 하면 못 살 거 같은데. 스스로 원망도 한탄도 많이 했지만, 결국 결론은 똑같았어요. 저는 이 길을 갈 겁니다.”-미래에 수민 씨는 어떤 배우가 돼 있을까요.“지금 같아선 배우라 불리기만 해도 행복하겠죠? 지난해 상업영화(주경중 감독의 ‘동대문’·미개봉작)에 처음 출연했는데, 너무 행복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것도 느꼈어요. 다만 제가 볼 때 제 장점은 ‘독기’라고 생각해요. 외모도 연기력도 아직은 어디서 내세울 정도가 아니라는 건 제가 더 잘 알아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전 뭐든 될 때까지 끝까지 하거든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전 연기를 너무 사랑하니까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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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풍속도’ 문화상품 MZ세대에게 큰 인기

    멍 때리는 댕기머리 총각 그립톡(휴대전화 손잡이), ‘육퇴(6시 퇴근)’ 하고 불콰하게 한잔하는 주모 소주잔….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그림을 현대적으로 유쾌하게 재해석한 ‘모두의 풍속도’ 문화상품이 최근 MZ세대에게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봄에 열린 궁중문화축전을 맞이해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이 선보인 ‘모두의 풍속도’ 배지와 메모지, 롤스티커 등 문화상품 12종이 모두 판매율 90% 이상을 달성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10, 20대에게 인기 높은 그립톡은 판매 2주 만에 모두 팔렸고, 성인들이 좋아하는 소주잔 세트도 최근 완판됐다. 재단 측은 “관련 문화상품 12종 모두 추가 제작에 들어갈 만큼 인기”라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라고 놀라워했다. ‘모두의 풍속도’란 2021년과 지난해 궁중문화축전 때 진행했던 온라인 이벤트를 일컫는다. 인터넷에서 궁궐을 배경으로 풍속도의 인물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인데, 30만 명이 넘게 참여해 46만여 개의 캐릭터가 만들어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올해 선보인 문화상품은 이때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문화상품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끈 이유가 뭘까. 김홍도 작품 특유의 친근한 해학을 바탕으로 요즘 트렌드인 ‘공감’을 포인트로 잘 살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에서 착안해 잔치 속 놀고 즐기는 다양한 인물들을 담되 표정이나 행동은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예를 들어, 누워서 다리 꼬고 스마트폰 보는 양반이나 걸그룹 ‘에스파’의 디귿자 춤을 추는 청년 등은 소셜미디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서는 “내 모습 같다” “너무 귀엽다”며 관련 게시물 조회수가 8만 회를 넘기기도 했다. 축전 관계자는 “지난해 오픈 하루 만에 참여자가 10만 명을 넘었고 소셜미디어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축전은 마무리됐지만 ‘모두의 풍속도’ 문화상품은 지금도 언제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다. 서울 경복궁·창덕궁·덕수궁·국립고궁박물관의 문화상품관인 ‘사랑’이나 인천국제공항 ‘한국전통문화센터’, 한국의집 문화상품관 ‘사랑’ 등에서 판매한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KHmall(www.khmall.or.kr)에서도 살 수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진나라 상품기획팀장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며 “앞으로도 전통을 소재로 참신한 디자인의 문화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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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 국어 능통한 IB 만점 서울대생 “다 포기해도 ‘배우’가 될 거예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을 때 가장 나쁜 점은 그 외의 다른 일을 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늘 현실에 매여 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붕 떠서 긴 세월 동안 펼쳐진 운명의 행로를 굽어볼 때가 있다.”(이디스 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천직(天職)이란 뭘까.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란 뜻을 잠시 음미해보자. 자신의 천직을 찾는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건 선천적 재능으로 ‘잘하는 일’을 하는 걸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걸 일컫는 걸까. 언뜻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큰 차이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권수민 씨가 그렇다. 그는 재능이 넘치는 청년이다. 좋은 여건에 공부 소질까지 타고나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다니며 영어와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흔히 국제 수능이라 부르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국제공통 대학입학 자격시험)’는 만점을 받기도 했다. 경영학 등을 전공할 계획인 수민 씨는 말 그대로 전도유망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천직은 이런 길 위에 있지 않다. 수민 씨는 ‘배우’를 꿈꾼다. 단지 꿈만 꾸는 게 아니다. 숱한 큰 기회를 버리고 연기를 택했으며, 여러 현실적 어려움에도 마음을 꺾지 않고 있다. 과연 수민 씨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겐 치기로도 보일 그의 ‘올인’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안녕하세요. 2003년생 권수민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22학번, 2학년 재학 중이고요. 자유전공학부인데 앞으로 경영학과 정보문화학을 복수전공할 생각이에요. 이건 학생 신분이고요.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란 소개가 더 정확할 거 같아요. 현재는 배우지망생과 신인배우 그 중간쯤 되는 거 같아요. 연기학원은 꾸준히 다니고 있고, 지금까지 몇몇 영화와 웹드라마 등에 출연했습니다.”-중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들었어요.“네, 맞아요. 상하이에서 7년, 선전에서 7년 정도 살았어요. 아빠가 기업 해외법인에서 근무하셔서 학교를 모두 중국에서 나왔어요. 초 1~4년은 현지 중국학교를 다녔고, 이후에는 미국식 국제학교에 다녔어요. 여전히 가족은 중국에 있어서 한국으로 홀로 유학을 온 셈이 됐네요.”-한국도 국제학교에 관심 많은데, 뭐가 장점일까요.“음…, 일단 영어가 기본인 학교에 다니면 자연스레 영어를 배울 수 있죠. 저도 중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요. 뭣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를 사귀며,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이지 않을까요. 고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 그룹을 떠올려보면, 미국 프랑스 핀란드 말레이시아 등 국적이 천차만별이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게, 요즘 외국 친구들은 케이팝 같은 한국문화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그들한테 배울 정도예요.”-분위기가 그리 많이 바뀌었나요.“한국인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어요. 초4 때쯤 ‘강남스타일’부터인 거 같은데, 한국 노래나 드라마, 영화가 폭발적으로 인기가 높아졌어요. 한국인인 걸 부러워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을 정도예요. 고교 때 학생들이 꾸미는 ‘탤런트 쇼’ 공연이 있었는데, 외국 애들이 먼저 트와이스 노래와 안무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출신들도 마찬가지예요.”-본인이 공부를 잘한다는 건 언제 알았나요.“에구, 갑자기 훅…. 되게 민망하네요. 사실 중학교 초반까진 잘 몰랐는데, 선전에 있는 학교로 옮긴 뒤론 성적에 따라 상을 줬어요. 그때부터 조금은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겸손하네요. 서울대를 아무나 가나요.“음…, 개인적으로 한국에 살건 해외에 살건 좋은 대학을 가려면, 보통 노력으로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같아요. 고교 때 저희도 ‘3당4락’이란 말이 있었어요. 세 시간 자면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내신은 물론 IB도 준비하고,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 HSK(중국어능력시험) 토플 등도 다 점수 따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했어요. 교내 동아리 활동도 8, 9개 정도 한 거 같아요.”-동아리라면 어떤 건가요.“가장 열심히 한 건 ‘모의UN’이었어요. 국제학교 연합에서 운영하는 해외대회도 참가했죠.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회는 200명 정도 참석했는데 연설도 하고 토론도 열정적으로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원래 약간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그런 공개 석상에서 활동하며 자기 의견을 말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우스 빌딩 클럽’도 좋았는데, 필리핀의 낙후 지역 같은 곳에 가서 집 지어주는 봉사활동이에요. 연극부와 배드민턴부, 방송부, 경제이슈 공부하는 이코노미스트 부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IB 만점자라는 타이틀도 있어요.“쑥스럽긴 한데, 저한테 도움이 많이 돼요. 그 덕에 지금 과외로 돈 벌고 있거든요. 생활비나 연기학원 수강료 등을 제 손으로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한국에서도 IB가 꽤 알려진 거 같아요. 총 6개 카테고리가 있는데, 문학 외국어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학 예술로 나뉘어요. 카테고리마다 점수를 다 따고 논문도 통과해야 점수를 받는데, 운이 좋았는지 총 45점 만점을 받았어요.”-그 점수면 미 아이비리그도 갈 수 있지 않나요.“입학심사에서 꼭 IB만 보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유리한 건 맞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좋은 성적으로 왜 굳이 한국에 가냐’며 만류하는 학교 선생님도 계셨어요. 영국 명문대를 추천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대학은 무조건 한국으로 가려고 오래 전부터 맘먹고 있었던지라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서울에 와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배우가 되려는 꿈 말이죠.“네, 맞아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요. 빨리 한국 와서 아빠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배우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제 인생 목표는 좋은 배우가 되는 거니까요. 다만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건 연영과를 가지 않더라도 연기학원 등을 다니며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서울대도 영화학과가 생긴다는 얘기가 있어서 총장님한테 메일을 보내긴 했어요. 총장실에서 답을 주시긴 했는데,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총장한테 편지 보내는 대학생은 처음 봤어요.“하하, 좀 그런가요. 외국에선 헤드마스터한테 메일로 질문하는 게 일상이라 저도 자연스럽게 그랬나 봐요. 현실적으로 배우의 길이 금방 열리는 게 아니니까,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단 생각에…. 그만큼 저한텐 절실하거든요. 배우의 꿈을 두고 정말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지겨울 정도로 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여기에 100%를 던지지 못한다면 그건 저 자신은 물론 아빠 엄마한테도 미안한 일이잖아요.”-어릴 때부터 싸웠다면, 배우를 꿈꾼 게 오래됐군요.“2010년 방영된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본 뒤에 배우라는 직업에 푹 빠져버렸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니까 부모님은 저러다 말겠지 싶었나 봐요. 하지만 연극부에도 들어가고 더 열정적으로 하니까 그때부터 만류가 거세진 거죠. 10년 넘게 정말 지겨울 정도로 싸웠어요. 다 절 생각해서 하신 말씀인 건 알지만, 그중엔 마음의 상처가 된 말도 꽤 있었어요.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덤덤하긴 한데, 가끔은 그냥 좀 울컥하기도 해요. 이젠 이해도 하시고 대놓고 반대하시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극 찬성하진 않으시죠.”-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고생할까 봐 그러신 거겠죠.“제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아마 똑같은 상황에서 제 딸이 그런다면 저도 아마 말리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제가 외모가 특별하게 빼어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연기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니까요.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니 그걸 잘 살리면 당연히 훨씬 ‘꽃길’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가시밭길인들 어쩌겠어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은 그쪽이 아닌데. 발을 찔리고 피눈물을 흘려도 배우의 길을 가는 게 너무 좋은걸요. 그럼 그게 저에게는 진짜 꽃길이 아닐까요.”-아직 스무 살인데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거죠.“네. 아직 어린데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인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가끔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저를 상상해보기도 해요. 그럼 바로 드는 생각이, 평탄한 삶이겠지만 두고두고 연기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겠구나 싶어요. 평생 아쉬움을 가슴에 가득 묻어두고 사는 게 진짜로 잘 사는 걸까요. 물론 연기를 택했다고 제가 바라는 대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신기루 같은 허황된 꿈을 좇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제 꿈이잖아요. 그럼 가봐야죠. 직접 해보고 직접 실패도 해봐야죠.”(하편에서 계속)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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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가 된 ‘슈퍼마리오’는 언제까지 지금처럼 신나게 뛰고 달릴까[정양환의 데이트리퍼]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 줄거리는 예상 가능. 설정도 마무리도 뻔뻔할 정도로 뻔하다. 근데 왜 상큼한 박하사탕마냥 입안에 착 감길까. 유니버설 픽쳐스와 닌텐도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4월 26일 국내 개봉해 누적 관객 수가 약 232만 명(2일 기준)으로 준수한 편. 해외 성적은 훨씬 흐뭇하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12억8800만 달러(약 1조6820억 원)를 거둬들였다. 미국 뉴욕에 사는 배관공 형제가 왕가의 공주 자매(겨울왕국 1편 12억8400만 달러)보다 돈을 더 벌다니. 역시 자본주의는 위대하다. 드디어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이라는 게 확실히 밝혀진 마리오와 루이지(이전까진 이런 배경이 다소 애매하게 넘어갔다). 그간의 경력을 발판 삼아 나름 창업에 나섰지만 그다지 여건이 만만치 않은 상황. 허나 마법인지 게임인지 다른 세계로 뜬금없이 넘어가며 마리오 형제의 근사한 모험이 펼쳐진다. 기대대로 그곳엔, 피치 공주와 쿠파와 동키콩이 있다. 영화 ‘슈퍼마리오…’는 정말이지 기존 게임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작품이다. 이야기 흐름은 둘째 치고, 캐릭터들의 성격도 전혀 변주가 없다. (심지어 피치 공주는 표정도 잘 안 바뀐다.) 그나마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인물은 쿠파뿐. 근데 그 역시 ‘괴물이니 이래도 돼’ 식으로 마구 왔다 갔다 한다. 사정이 이러니 작품은 복합적인 플롯은커녕 얄팍한 구성 장치도 변변치 않다. 그냥 일직선으로 뻥 뚫린 고속도로를 쌩하고 달려간다. 한데 이런 경주마식 전개야말로 ‘슈퍼 마리오…’가 가진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나. 신장 155cm의 멜빵바지 입은 콧수염 아저씨(닌텐도는 20대 중반이라 우기지만)가 갑자기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하드보일드 탐정이 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마리오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무지개다리 위에서 바나나 던져가며 카트 타고 신나게 달려주길 바란다. 맥락이고 뭐고 상관없이.(※마리오의 트레이드마크인 차림새는 1981년 데뷔 때 그래픽 성능의 한계 때문으로 전해진다. 입 그리기 어려워 수염을 달았고, 머리카락 표현이 힘들어 모자를 씌웠다. 빨강 파랑 상하의는 팔다리 구별이 잘 되도록. 당시엔 그의 이름이 ‘점프맨’이었다.) 유니버설과 닌텐도에겐 축제와 같은 마리오의 이번 선전에 내심 복통을 호소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픽사와 마블을 거느린 애니메이션의 절대강자 디즈니다. 몇몇 외신은 “마리오가 디즈니의 악몽(nightmare)이 됐다”고까지 설레발쳤다. 지난해 야심작 ‘버즈 라이트이어(국내 관객 34만 명)’와 ‘스트레인지 월드’(11만 명)가 줄초상을 치른 상황이니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이 편치 않을지도. 다만 닌텐도는 은근슬쩍 “이제 슈퍼마리오는 미키 마우스와 동급”(무비픽쳐스)이라 여기고 싶은 눈치이나…, 그건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일단은 그런 입방아는, 아마도 지금쯤이면 제작이 확실해졌을 마리오 시리즈의 차기작들이 제대로 불쏘시개 역할을 해줄 터. 이번 작품에 쿠키영상을 배치한 것도(딱히 신선하진 않았지만) 선전포고의 출사표인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2편도 3편도 이런 ‘단무지(단순 무식 지X)’ 스타일이 먹힐지는 쉽사리 가늠하기 어렵다. 처음에야 ‘테이크 온 미(Take on me·1985년 아하 곡으로 이번 영화에 삽입됐다)’ 전략이 추억팔이 효과도 짭짤하게 거뒀지만, 그게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갑작스레 마리오의 절절한 번뇌를 보고 싶지도 않다. 뜬금없지만, 이제 마리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한 조사에서 미 응답자의 93%가 “슈퍼마리오를 잘 안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이젠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나 돈 콜레오네(영화 ‘대부’ 주인공)보다 유명세가 높다. 일본에서 창조한 브루클린 배관공이 이토록 엄청난 슈퍼스타가 될 줄이야. 영화판마저 “잇츠 미, 마리오!(It‘s a me, Mario·슈퍼마리오 최고 유행어)”로 접수해버릴 기세다. 하지만 1981년생이니 마흔 살이 넘은 마리오는 이제 지금쯤이면 모자 속 머리숱이 꽤나 빠지진 않았을까. 여전히 대가족 셋방살이 신세를 못 면한 채 쉼 없이 뛰고 달리는 걸 떠올리면, 어쩌면 그 콧수염이 가린 입가엔 삶의 고단함이 숨겨진 게 아닐지 망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미 배관공의 평균 연봉이 6만 달러쯤 된다니 그리 쪼들리는 삶은 아닐지라도, 왠지 뼈 빠지게 일하는데 남 좋은 일만 시킨 우리네 가장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에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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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 CDMO 기업으로 도약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올해 1분기(1∼3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CDMO 기업으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결기준 1분기 매출 7209억 원, 영업이익 1917억 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며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41%, 영업이익은 9% 증가했다”고 30일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국내 업계 최초로 연 매출 3조13억 원을 기록했다. 2011년 인천 송도에 1공장을 착공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건설 중인 4공장이 완공되면 세계 최고의 CDMO 기업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3개 공장을 가동하며 36만4000L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공장이 완공되면 60만4000L의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현재 4공장은 9개 고객사와 12개 제품에 대한 위탁생산 계약으로 선(先)수주를 확보한 상태”라며 “추가적으로 29개 잠재 고객사와 제품 생산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ESG 경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21년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를 설치한 뒤 관련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현재 영국 왕실이 주도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이니셔티브 SMI 내 헬스케어 시스템 태스크포스에서 유일한 CDMO 기업이다. 한국 기업 최초로 SMI가 주관하는 ‘테라 카르타 실(Terra Carta Seal)’을 획득하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거점을 확대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미국의 대표적 바이오클러스터인 샌프란시스코에 위탁개발(CDO) 연구개발(R&D)센터를 개소했으며, 올해 3월 글로벌 네트워킹 강화를 위해 뉴저지 영업 사무소도 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2의 도약’을 본격화하고 올해 5공장도 착공할 예정이다.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인천 송도에 건설될 5공장은 생산능력이 18만 L로 예측된다. 회사 관계자는 “1∼4공장 운영 경험을 통해 확보한 노하우와 최신 기술이 집약될 것”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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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은 제게 엄마 같은 존재…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 되고 싶어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상편()에서 이어집니다.“한결같은 동작으로 씨앗을 뿌리고 있는 파종꾼들이 평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쪽에는 주검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바로 그 대지 위에서 빵이 자라나고 있었다.”(에밀 졸라의 ‘대지’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발탈(발에 가면을 씌워 연희하는 탈놀이)’ 전수자인 차다율 씨(29)는 평소에 만난다면 국악인이란 사실을 알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현재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 전승기획팀에서 일하고 있어, 여느 여성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겪어낸 20대 사회생활도 그랬다. 국악을 전공했지만 연예기획사와 크루즈여행사 등을 다니며 사회생활의 부침을 감내해야 했다. 초봉으로 월급 70만 원을 받으며 야근에 시달려야 했고, 크루즈에선 상사와의 갈등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시 국악으로 돌아와 “그 모든 과정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 위한 고마운 밑거름이 됐다”고 당차게 얘기한다. 다율 씨에게 국악은 어떤 의미일까.-크루즈 승무원 생활이 쉽지 않았나 보네요.“음…, 배라는 환경 자체가 주는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배 타는 동안엔 퇴근도 따로 없이 갇힌 공간에서 생활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그곳만의 엄격한 규칙 같은 게 있어요. 6일 근무 체제라 하루 쉬고 다시 배로 돌아가니 친구하고 약속 한번 잡기도 어려웠고요. 처음엔 배를 탄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는데, 갈수록 답답함이 커졌죠.”-1년 만에 관둔 것도 그 때문이었군요.“네, 사실 관둔 시점이 후회되긴 해요. 한두 달만 더 있으면 상여금이랑 성과급 같은 게 나올 예정이었거든요. 월급까지 합치면 1000만 원이 넘어서 제겐 엄청나게 큰돈이었는데…. 하루하루 숨쉬기도 어렵다 보니 그때까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배에 타면 매일 울고 있으니 이러다 무슨 일 생기겠다 싶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돈보다 건강이 중요하죠.“그래도 시간이 지난 뒤엔 ‘조금만 더 버틸걸’하고 후회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더 아깝네요. 그 고생을 했는데 그걸 못 받고, 하하. 관두고 좀 쉬면서 마음도 추스르고 여행도 다니고 그랬어요. 많이 지쳤는지 꽤 오래 쉬었거든요. 대학 다닐 때도 알바를 계속해서 그렇게 쉬어본 적이 없어요. 그때가 가장 긴 방황의 시간이었어요. 2019년에 배에서 내렸는데, 2021년에 한국문화재재단에 들어왔으니까. 중간에 물류회사 같은 데도 조금씩 다녔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거죠.”-재단이 국악과 관련이 많으니 기뻤겠어요.“그럼요. 너무 좋았죠. 근데 실은…, 입사 직전에 고민이 없진 않았어요. 그때 한 무역회사도 같이 붙었거든요. 그쪽이 연봉은 800 정도 높았어요. 일은 당연히 재단이 맘에 드는데, 처음엔 계약직이기도 했고. 그래서 한 가지만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자꾸 다른 길로 돌지 말고 기회가 닿았을 때 어떻게든 다시 국악 쪽으로 돌아와 인연을 쌓자 싶어서 마음을 굳혔죠.”-국악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돈을 벌고 싶단 의지도 강해 보여요.“네, 말씀하셨듯이 직장인한테 연봉은 큰 문제니까요. 그리고…, 가만 생각해보니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강박 비슷한 게 있긴 한가 봐요. 무슨 엄청난 부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엄마가 고생하시면서 저랑 언니를 키우셨으니까, 의젓하게 제 몫을 하고 싶고 가사에 보탬도 되고 싶죠.”-혹시 아버님이….“네, 제가 열두 살 때 돌아가셨어요. 원래 건강이 좀 안 좋긴 하셨는데, 집에 계시다 쓰러지셔서…. 그때 가족이 다 집에 있을 때였는데,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떠나셨어요.”-어린 나이였는데 충격이 컸겠네요.“그땐 뭐가 뭔지 상황 파악도 잘 안됐어요. 엄마가 저희는 당장 방에 들어가 있어라 그러고, 구급차 부르고 혼자 알아서 다 대처하셨어요. 전 그냥 현실 같지가 않아서 계속 멍했던 거 같아요. 항상 그랬어요. 엄마는 언니랑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해내셨어요. 아빠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도 안 좋아졌지만, 식당에서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저희를 다 건사하셨죠. 그런데도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며 최신 스마트폰 나오면 사주려고 하시고. 솔직히 풍족하진 않았지만, 뭐가 부족하거나 아쉬운 적은 없었어요.”-그런 와중에 국악까지 지원하신 거네요.“그러니까요. 아시겠지만, 예술 분야라는 게 돈이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니잖아요. 대학을 졸업해도 금방 돈벌이가 되는 게 아니고. 그런데도 엄마는 언제나 절 응원하고 뭐라도 하나 더 도움을 주려고 애쓰셨어요.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게 대견하기도 하셨겠지만, 그보다 자식이 하고픈 일을 하길 바라셨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저도 엄마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으니까. 대학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했고, 졸업하고도 열심히 벌려고 했던 거죠.”-재단에 들어온 뒤 발탈 전수자도 됐어요.“제가 그래도 인복은 있는 편인가 봐요. 재단의 김광희 문화상품실장님이 절 뽑은 면접관이신데,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전승교육사시거든요. 뽑아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제가 민요 전공이란 걸 아시고는 유심히 지켜보시더니, 어느 날 발탈 전수자 과정을 제안하셨어요. 회사에선 높은 상사이신데, 제자로 거둬주시겠다고 먼저 말씀해주시니 저로선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발탈이란 게 민요하고는 좀 다르지 않나요.“그렇죠. 전 경기민요를 했던 사람인데, 발탈은 남도의 판소리가 베이스니까요. 목을 쓰는 법도 다르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죠. 그래서 처음엔 고민도 많았어요. 그런데 스승님(김 실장)이 ‘너무 얽매이지 말고 너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라’고 하셨어요. 발탈은 아시다시피 문화재청이 지정한 전승취약종목이기도 해요. 그만큼 이를 이어가고 발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전통예술이죠. 저로서는 새롭게 배우는 재미도 있고, 이제야 제대로 길을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하죠.”-그 와중에 대학원도 다닌다면서요.“네, 올해부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제문화유산협동과정에 등록했어요. 사실 이것도 스승님이 권유하신 거였어요. 사람은 계속 공부해야 한다면서. 스승님이 워낙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시거든요. 재단에서 일하시면서 발탈 전승교육사에 오르시고 고려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따시고…. 사람이 성실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주고 계시니, 저도 게으름 피울 수가 없죠.”-인생의 롤모델이 생긴 거네요.“하하, 맞아요. 조금은 돌아왔지만, 결국 국악은 제가 걸어야 할 길이란 믿음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잘 실천하고 계신 분을 만났으니, 다시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잡은 셈이죠. 저 역시 항상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거든요. 연예기획사 다닐 때 부사장님이 ‘성장하는 스스로를 느끼면 정말 재밌어’란 말씀을 해주셨어요. 일은 힘들었지만 그 말은 정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아직은 미약하지만 하루하루 제가 크고 있단 생각을 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거죠.”-국악의 어떤 점이 다율 씨를 이렇게 이끈 걸까요.“뭐라고 해야 할까요…. 국악은 제게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빛을 비춰주는 등대 같아요. 힘들거나 헤매고 있을 때 여기에 빛이 있다며 버티고 있어 주는. 제가 대학도 가고, 좋아하는 일을 찾게 만들어줬죠. 평생 함께해야 할 소중한 존재.”-쭉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어머니’와 동의어 같은데요.“아…. 그러네요, 그러네요. 제게 너무나 감사한…. (울먹거리더니) 아, 저 왜 이러죠. 죄송해요. (잠시 숨을 고른 뒤) 민요는 정말 엄마 같네요. 매일매일 감사하고 지금의 절 있게 만들어준. 전 제가 되게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난 잘 될 거다, 난 잘 될 거야’라고 항상 믿거든요. 그 믿음의 뿌리가 어디서 나왔나 생각해보면, 그게 다 엄마에서 온 거 같아요.”-어머니도 다율 씨가 잘 커 줘서 고마우실 거예요.“아직 멀었지만, 전 항상 절 생각할 때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런 게 저 혼자서 가질 수 없는 마음이고 자세였던 거 같아요. 엄마가 주신 것 중에 그게 가장 큰 게 아닐까 싶네요.”-앞으로 어떤 국악인이 되고 싶나요.“제가 돈 벌려고도 노력해봤잖아요. 물론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결국 돈보다 삶의 가치가 중요하단 걸 배운 게 제일 큰 교훈이었어요. 국악도 그런 자세로 대하고 싶어요. 한때 주위 사람들 다 가진 ‘명품백’이 왜 저만 없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 알 거 같아요. 전 그것보다 더 큰 걸 가졌다, 명품백보다 명품 사람이 돼야겠다. 그러면 오늘 하루를 알차게 살고, 내일은 더 노력해야겠죠?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율아, 넌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요.”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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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바이오헬스산업혁신센터, 3년 연속 최우수평가

    충북 지역에서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기업들이 협력해 지역혁신사업을 이끄는 플랫폼 ‘충북바이오헬스산업혁신센터’(센터장 한상배)가 2023년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 단계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혁신센터는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이번 평가에서 A등급(계속 지원)으로 2021년부터 3년 연속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며 “지난해보다 36억 원이 늘어난 462억 원의 사업비를 올해 지원받게 됐다”고 23일 밝혔다. 2020년 교육부 공모에 선정돼 사업을 시작한 혁신센터는 지역의 우수 인재 및 기업 육성 등을 목표로 △제약바이오 △정밀의료·의료기기 △화장품·천연물 등 3개 핵심 분야에 인재를 공급하고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충북대를 총괄대학으로 한국교통대(중점대학)와 청주대 등 14개 대학이 참여하며, 충북도와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한국화학융합사업연구원, 셀트리온제약 등 424개의 지자체·연구기관·기업 등이 함께하고 있다. 혁신센터에 참여한 14개 대학은 ‘바이오프라이드 공유대학’을 운영해 공통 교과 과정을 개발했으며, 98개 관련 학과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센터 측은 “지난해 기준 수강생은 933명으로 공유대학을 통해 충북 대학생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며 “지역 기업과 연계해 학생들의 취업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역 내 70여 개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195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지역기업의 기술 향상과 제품 개발 지원도 혁신센터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해 지난 3년 동안 300건이 넘는 연구와 시제품 개발을 해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국산화에 성공한 삼진제약과 충북대의 뇌전증 치료제 원료의약품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 센터 측은 “수입 대체 효과만 300억 원에 이르며, 해외 수출이 성사되면 수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혁신센터는 지역 고교생을 위한 고교학점제도 운영하고 있다. 14개 대학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교생은 지금까지 3000여 명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바이오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지역 대학 관련학과에 진학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혁신센터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의 일환으로, 지역 대학이 양성한 인재가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취업과 창업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0년 선정된 충북을 포함해 현재 전국에서 9개 지역혁신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교육부가 주최하는 RIS는 2025년 2월 사업이 종료된 뒤에는 충북도로 사업 주체가 바뀌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으로 변환된다. 센터 관계자는 “지자체가 RIS 성과를 잘 계승해서 RISE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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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졸업 뒤 받은 첫 월급 70만 원…그래도 내 손으로 벌어 행복했죠”[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인간 칠십 고래희요/ 팔십장년 구십춘광/ 백세를 산다 해도/ 달로 더불어 논 하면은/ 삼만 육천 일에/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 사는 인생/ 어느 하가 부모은공 갚을 소냐.”(민요 ‘회심곡’에서)사람은 어디서 나고 자랄까. 종교적 철학적 설명이야 끝이 없겠지만, 누구나 하나의 분명한 공통점은 있다. 모두가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엄마 뱃속에서 생명이 영근다.국가무형문화재 ‘발탈(발에 가면을 씌워 연희하는 탈놀이)’ 전수자인 차다율 씨(29)는 그런 뜻에서 몸에 국악이란 DNA가 애초부터 새겨진 청년이다. 어머니인 이영미 씨가 한국국악협회 군포시지부장을 지냈던 소리꾼으로, 그에게 국악은 ‘밥상의 김치’처럼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였다. 대학에서 민요를 전공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하지만 그 과정도 순탄했던 건 아니다. 다율 씨는 대학 졸업 뒤 연예기획사 직원과 크루즈 승무원, 무역회사 사원 등을 거치며 국악과 무관한 길을 걸었다.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며 젊은 직장인의 고뇌를 제대로 맛봤던 그는 이제 돌고 돌아 본래의 자리로 귀향했다. 국악을 자신의 “평생 함께할 벗”이라 부르는 그는 왜 국악을 떠났었고, 그리고 다시 돌아온 걸까.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네…,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자리가 너무 긴장되네요. 현재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의 전승기획팀에서 주임으로 일하는 차다율이라고 합니다. 소속이 좀 긴데,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무형문화재 관련 활성화 사업이나 해외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이건 직장이고, 저란 사람은…민요, 국악 하는 사람이라고 봐주시면 될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영향을 받아 민요나 사물놀이를 가까이했고, 전공도 그렇고요. 현재는 탈놀이의 일종인 발탈 전수자 과정을 밟고 있어요.”-국악고등학교 출신인가요.“아뇨, 그렇진 않아요. 군포에 있는 수리고를 나왔어요. 아, 저희 선배 중에 엄청 자랑스러운 분이 계셔요. 김연아 선수!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호호. 어머니가 경기민요를 하셔서 자연스레 어깨 너머로 익혔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고1 때였어요. 음악 수업 때 진도아리랑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노래하는 걸 들으시더니 ‘너 어디서 배웠나’ 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저한텐 집안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거라 ‘그럼 한번 제대로 해볼까’ 마음먹게 됐죠.”-어머니 반응은 어떠셨습니까.“제일 좋아하셨죠! 딸 둘인데 언니는 아빠를 닮아 이과 스타일이고 저도 인문계였으니, 내색은 안 하셔도 살짝 아쉬우셨나 봐요. 해보겠단 의사를 밝히니 바로 민요 선생님에게 데려가서 테스트 같은 걸 했는데, ‘싹수가 보인다’ 하셔서 엄청 기뻐하셨어요. 그때부터 엄마는 언제나 저의 제일가는 선생님이자 매니저이자 후원자셨어요. 엄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는 거죠.”-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인 거죠?“남들보다 많이 뒤처졌죠. 천차만별이긴 한데, 제 대학(중앙대 전통예술학부) 동기들 보면 정말 아기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도 꽤 있거든요. 늦어도 중학교 때쯤엔 본격적으로 국악 공부를 한 애들이 대부분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친숙했다고 해도, 고교 전까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했어요! 고3 때는 아예 가요나 팝송은 듣지도 않았죠. 1년 내내 민요만 듣고 따라 부르고….”-인문계에서 국악으로 대학 가는 게 여간 어렵지 않을 텐데요.“맞아요. 저희 학교에서 민요 하는 학생은 저뿐이었죠. 그래도 예체능계 반이 따로 있어서, 학교에서 융통성 있게 배려해주신 덕이 컸어요. 경북 영천아리랑 민요제 등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들도 열심히 나갔고요. 실은 장려상이 제일 좋은 성적이라 입상 경력으로 대학 가긴 어려웠어요. 그래도 실기시험 때 가능성을 잘 봐주신 덕분인지, 제 마음속에 언제나 0순위였던 중앙대에 붙었어요. 처음 합격 소식 들었을 때 옆에 있던 친구랑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대학 생활은 기대했던 것처럼 좋았나요.“제가 13학번인데 입학해보니 부족한 게 정말 많다는 걸 느꼈어요. 확실히 오래 해온 친구들보다 이론도 딸리고 전체적인 이해도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도 지금도, 저의 가장 큰 무기는 ‘성실함’이거든요!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뭔가 주어지면 절대 빼지 않고 일단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시작은 늦었지만 열정은 뒤지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이건 너무 자랑 같긴 하지만, 졸업할 때 성적도 차석이었어요.”-첫 직장으로 연예기획사를 택한 것도 도전 의식이었나요.“음…, 반반인 것 같아요. 국악이 너무 좋고 무대에 오르는 것도 너무 좋은데, 아시겠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잖아요.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두려움에 고민이 많았죠. 근데 4학년 때 뮤직비즈니스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너무 흥미로운 거예요. 마침 담당 교수님이 그쪽 업계에 발이 넓으신 분인데, 저를 한 회사에 추천해 주셨어요. 대형기획사는 아니지만, 유명 아이돌도 소속된 회사라 저도 ‘한번 해보자’ 싶었고요. 다행히 회사에서도 좋게 봐주셔서 2017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거죠.”-민요 하던 사람이 대중가요란 다른 분야로 간 거네요.“네, 그러니 처음엔 얼마나 낯설고 정신없었겠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었죠. 큰 회사가 아니라서 앨범 기획부터 아티스트 스케줄 관리까지 모든 일에 다 투입돼서 일했어요. 그래도 그쪽 일은 뭔가를 하면 바로바로 성과가 나오고 팬들 반응도 즉각적이라 좋았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도 컸고요. 다만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버거웠어요. 사무실이 홍대 쪽인데 군포에서 출퇴근하기도 힘들었고요. 게다가 초반엔 크게 맘에 두지 않았지만, 연봉이 박한 것도 갈수록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죠.”-얼마 정도였는지 물어봐도 되나요.“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한데…, 첫 월급은 수습 3개월이 적용돼 70만 원 정도였어요.”-네?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처음엔 그런 생각도 못 했어요. 그냥 너무 기뻤어요. 대학 내내 카페 등에서 알바를 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취직해서 번 돈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일도 재밌으니까 앞으로 나아질 거란 기대도 있었고요. 하지만 수습이 끝나도 그리 월급이 드라마틱하게 오르진 않더라고요. 거의 휴일도 없이 매일 야근하는 상황이 갈수록 견디기 어려웠어요. 게다가 입사 1년 동안은 휴가를 쓸 수 없다는 내부규정까지 있었어요. 출퇴근 시간이라도 줄여보려고 홍대 쪽 자취방도 알아봤는데, 거기에 월급을 다 쏟아부을 판이라 포기했죠. 결국 반년 정도 다니다가 관두게 됐어요.”-요즘 말마따나 ‘열정페이’네요.“네, 그런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한동안 방황하는 시기를 겪기도 했어요. 난 뭘 해야 하나 싶었죠. 그래서 회사 다닐 때부터 맘속에 있던 생각을 실천하기로 했어요. ‘내 걸 하자. 내 것은 뭘까. 국악이고 민요다. 언제나 내가 돌아갈 고향이니까.’ 그때 대학 다니며 지역아동센터 같은 데서 민요를 가르치며 장학금을 받았던 기억이 났어요. 그걸 다시 해보기로 했죠. 근데 그것도 쉽진 않았어요. 보람은 크지만 역시 알바 수준이라 생계를 꾸릴 정도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계속 국악 관련 일을 검색하다가, 국악 전공자인 여객선 승무원을 뽑는다는 공고문을 보게 된 거죠.”-대형크루즈 같은 건가 보죠? 선상 공연도 하는.“비슷한 거예요. 인천과 중국 칭다오를 오가는 카페리호예요. 배 아래는 화물을 싣고 가고, 위에는 여객선으로 된 구조예요. 객실이나 식당은 물론 카페 편의점 면세점 등도 다 있고요.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흔히 ‘따이공(중국 보따리상)’이라고 불리는 승객들도 많았어요. 회사 측에선 만찬장 무대에서 국악 공연을 할 수 있는 이를 찾고 있었대요. 다만 공연만 하는 국악인을 뽑으려는 건 아니고,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공연도 소화할 수 있는 이를 원했던 거죠.”-당연히 합격한 거군요.“에구, 별말씀을요. 면접을 봤더니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저로서도 원래부터 배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비행기는 아니지만 스튜어디스란 직업도 근사해 보여서 기대가 됐죠. 뭣보다 이전에 받던 월급보다 훨씬 많아서…, 하하.”-직장인에게 연봉은 중요하죠.“말씀드렸지만, 전 70만 원 받고도 되게 행복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여긴 월 270 전후에 추가 수당도 있고, 매장에서 수익이 잘 나오면 그것도 일부는 성과급으로 나눠주는 거예요. 한 달에 300 이상 고정적으로 벌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근데…, 세상에 쉽게 버는 돈은 어디에도 없더라고요.”-업무가 상당했나 봅니다.“한 번 승선하면 승객이 300~400명 정도 되는데, 승무원은 남자 대여섯 분 포함해서 15명 정도뿐이거든요. 단순히 고객 응대만 하는 게 아니라, 카페든 면세점이든 일손 부족한 곳이면 다 투입되는 시스템이에요. 저는 주로 식당 쪽 일을 주로 했는데, 일도 일이지만 중국인 승객들하고 말이 안 통하는 게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다소 거친 분들도 적지 않았고요.”-선상 공연은 어땠나요.“기대와 달리 공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냥 승무원으로 일하는 거였죠. 주 6일 근무 체재인데 거의 쉴 틈 없이 돌아갔어요. 하지만…, 진짜 힘든 건 노동 강도가 아니었어요. 어디나 그렇지만, 직장인 고충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거기서 결국 1년밖에 버티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어요.”(하편에서 계속)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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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책방과 상생하는 온라인서점 ‘바로보네’ 출범

    인터넷·대형 서점에 밀려 힘겨워하던 지역 동네책방들이 출판기업 온라인 플랫폼과 손잡고 새로운 상생을 꿈꾼다. 1990년대 온라인서점이 등장한 뒤 서점가는 대형서점 중심으로 개편된 지 오래다. 이로 인해 큰 자본이나 유통망 없는 중소 규모 동네책방들은 줄곧 역경을 겪어왔다. 최근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2003년 3589곳이던 국내 지역서점은 2021년 2528곳으로 약 30%나 줄어들었다. 지역사회의 동네책방 활성화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지금, 한 출판유통기업이 중소형 서점들과 상생을 도모하는 온라인서점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출판도매유통사업의 절대강자인 웅진북센이 올해 1월 지역서점과 연계한 플랫폼 ‘바로보네’를 출범한 것. 관련 업계에선 바로보네가 미국에서 동네서점과 힘을 합쳐 아마존 대항마로 떠오른 ‘북숍’의 한국식 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도서 판매 수익의 최대 100%를 지역서점으로 웅진북센이 바로보네를 론칭한 건 누구보다 지역서점의 위기를 체감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서점 2000여 곳과 거래하며 시장점유율이 약 70%(2021년 기준)에 이르는 웅진북센은 동네책방의 몰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웅진북센 관계자는 “최근 지역서점들이 ‘우리도 온라인 사이트가 절실한데 매장 운영조차 버겁다’는 토로를 많이 했다”며 “지역서점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는 마음으로 바로보네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전국 145개 중소형 서점이 참여한 바로보네는 수익 배분부터 남다르다. 현장에서 지역서점을 통해 회원으로 가입한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결제한 뒤 매장에서 책을 받으면 수익의 100%(결제수수료 및 적립금 제외)를 해당 서점이 갖는다. 집에서 배송받아도 50%는 서점에 돌아간다. 게다가 바로보네 홈페이지에서 가입한 회원이 책을 매장에서 수령해도 수익의 절반을 지급하기로 했다. 서점 입장에선 바로보네를 통해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지역서점들을 알리고 영업시간이나 연락처, 위치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바로보네 관계자는 “매달 입점한 서점 가운데 ‘이달의 서점’을 선정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며 “어떤 추가 투자도 없이 온라인서점을 무료로 운영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전했다. 출범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소비자 반응은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로보네 회원으로 현재 4660명이 가입했는데, 2375명(약 51%)이 지역서점을 통해 등록했다. 고객 입장에서도 바로보네는 매력적인 요소가 상당하다. 책 가격과 관계없이 무료로 배송해주는 데다, 지역서점이 보유하지 않은 책도 바로보네를 통해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안양시에서 ‘평촌문고’를 운영하는 김경진 대표(61)는 “바로보네 얘기를 듣고 무조건 찬성했다. 서점으로선 온라인서점을 따로 내주는 것과 같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웅진북센은 대형 물류유통망도 가지고 있어 바로보네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본다”고 말했다.열악한 지방·독립서점들이 더 반색…종합 서점문화 플랫폼으로론칭 이전에 바로보네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시장조사 당시 몇몇 서점은 “대기업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고 한다. 바로보네 측은 “이정훈 대표가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실무자들과 함께 직접 서점을 돌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 오해를 풀어 나갔다”고 전했다. 오픈 직후부터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서점들과 소규모 독립서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현재 가입 현황을 보면 서울은 33곳이고, 나머지 지역이 112곳으로 훨씬 많다. 제주와 강원도 각각 4곳, 3곳에 이른다. 유형별로 보면 독립서점이 70곳으로 48.3%에 이른다. 바로보네 측은 “기획 초기엔 여건상 수도권 중대형 서점 위주로 진행을 계획했으나, 열악한 상황의 지방·독립서점들이 더 큰 성원을 보내줬다”고 귀띔했다. 시장 반응이 긍정적인 만큼 바로보네도 지역서점을 위한 중장기적인 마케팅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내년까지 서점 큐레이션 등 지역서점 커뮤니티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2024년까지 실시간 재고 연동 시스템도 구축하려 한다. 이정훈 대표는 “향후 3년 안에 고객이 주문 뒤 1시간 내에 서점 픽업이 가능하고 4시간 이내로 배송받는 서비스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바로보네가 지역서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다양한 소식도 제공하는 종합적인 서점문화 플랫폼으로 커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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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디프랜드, 글로벌 ‘K-안마의자’ 시대 이끌어

    “한류의 또 다른 열풍, 이제는 ‘K안마의자’ 시대다.” 국내에서 안마의자의 대표로 자리 잡은 ‘바디프랜드’(대표이사 지성규 김흥석)가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글로벌 가정건강제품(홈 헬스케어)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은 “바디프랜드가 세계 안마의자 시장에서 2020년 상반기 매출액 기준 7.5%의 점유율을 차지해 세계 1위에 올라섰다”고 최근 밝혔다. 지금껏 안마의자 종주국으로 불렸던 일본 파나소닉(2위)과 이나다패밀리(3위)를 앞지른 놀라운 성과다. 바디프랜드는 이를 바탕으로 2년 연속 ‘세계 일류 상품 및 생산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일류 상품 및 생산기업은 수출 활성화에 기여한 상품과 생산기업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하고 KOTRA가 인증하는 제도. 세계시장 규모가 5000만 달러 이상인 품목에서 시장 점유율이 5% 이상으로 5위 이내에 들어야만 자격이 주어진다. 해당 업계에선 바디프랜드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은 배경으로 차별화된 연구개발(R&D) 투자를 주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바디프랜드 ‘헬스케어메디컬R&D센터’는 전문의를 포함한 연구 인력들이 건강관리와 관련된 기술력 제고에 적극 매진하고 있다. 바디프랜드 측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 대비 4.8%에 이르는 249억 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며 “최근 5년 동안 소비가 위축되고 가전시장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약 1000억 원을 R&D에 쏟아부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앤드 마케츠에 따르면 세계 안마의자 시장 규모는 2021년 33억 달러에서 2027년 46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바디프랜드는 이에 발맞춰 ‘의료기기 안마의자’로 세계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다. 실제로 2021년 선보인 뒤 국내 누적 매출액 3500억 원을 기록한 ‘팬텀 메디컬 케어’는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 등록을 마쳐 현지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바디프랜드 측은 “올 4월에 허리디스크 치료도 받을 수 있는 ‘메디컬팬텀’도 새로 출시했다”며 “현재 전체 매출의 30% 수준인 의료기기 제품의 비중을 올해 50%까지 늘려 글로벌 홈 헬스케어로 입지를 다지겠다”고 전했다. 바디프랜드는 이런 성과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세계인의 건강수명 10년 연장’이란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바디프랜드 관계자는 “올해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했다”며 “국내외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끄는 기업이 되도록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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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즈메의 문단속’이 다녀오겠단 약속을 지킬 그날 [정양환의 데이트리퍼]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여전히 끝내주는, 그 맛 그대로다. 진득한 무게와 경쾌한 리듬이 어우러진 수작. 딱히 흠 잡을 대목을 찾기도 어렵다. 근데 왜 ‘뻔한’ 식사를 마친 기분이 들까.명불허전. 신카이 마코토(新海誠)는 역시 신카이 마코토였다. 3월 8일 국내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4일 현재 누적 관객 518만 명. 지금까지 일본 만화영화가 500만 명을 넘은 건 처음이란다. 분명 앞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460만 명)가 분위기를 띄워준 덕도 봤다. 허나 흡입력과 폭발력을 한데 갖춘 신카이 감독 작품이 아니라면 어림없는 흥행이다.볼 사람은 웬만큼 봤겠지만, 줄거리는 간명하다. 한 여고생이 잘난 남정네에 혹해 문 열어뒀다가 사고 치는 얘기다(이리 말하니 80년대 ‘토속 에로영화’가 떠오른다). 언제나 대도시와 시골 마을이 이어지는 신카이 작품답게, 규슈 소녀 스즈메는 도쿄 청년 소타에 이끌려 폐허 속 낡은 문을 열었다가 뭔가를 깨우며 마을에 참사를 가져올 뻔한다. 이후 일본 전역에 큰 위기가 닥친 걸 알고 두 사람(한 명은 의자로 변한 채)은 모험을 떠난다.‘신카이 표 미장센’이라 불러야 할 낯익은 설정은 이번 작품도 여전하다. 감독이 “재난 영화 3부작”이라 한 ‘너의 이름은’(2016년) ‘날씨의 아이’(2019년)를 함께 떠올려보자. 앞서 말한, 도쿄와 지방에 사는 남녀. 그 중 하나는 무당처럼 영험한 능력의 소유자다. 어김없는 항공 샷과 낙하 씬, 담배 피우는 조연, 아이폰, NTT 도코모 요요기 빌딩은 그러려니 치자. 뜬금없는 환상의 나래가 펼쳐져도 곧장 “우연일지라도 널 믿을게”(신승훈 노래 ‘그 후로 오랫동안’) 태세 전환과 그 굳건한 사랑으로 어떻게든 연인을 구해내는 결말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물론 이런 반복성이 작품의 질을 해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여가며 더 화려하고 풍성한 맛을 담아낸다. ‘너의 이름은’이란 찰진 쌀밥 위에 ‘날씨의 아이’ 소스와 고기를 올리니 ‘스즈메의 문단속’ 같은 훌륭한 부타동이 탄생한 모양새다. 특히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하잘것없음을 상기시키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으니 버티고 살아가자는 호소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이는 참으로 드물고 귀하다.3부작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이 가장 세계적으로 성공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흐름에 군더더기가 없고 메시지가 분명했다. 일단 전작의 다소 복잡한 갈등 해결(너의 이름은)이나 그늘진 열린 결말(날씨의 아이)을 피했다. 개인적으로 ‘날씨의 아이’가 가장 맘에 들긴 하나, 그 거친 에너지는 호불호가 갈릴 터. 뭣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대지진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상처와 치유에 대한 공감이 훨씬 깊숙하고 강력하게 와 닿았다. 다녀오지 못한 ‘다녀오겠습니다’란 인사말의 울림. 그걸 비껴가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다.그런 뜻에서 감독은 재난 시리즈라 했지만, ‘상실의 시대’ 연작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주연이나 조연이 다들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지녔으며, 사회적 약자에 가까운 경계 밖 사람들이란 점은 또 다른 신카이 표 미장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이 이런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은 언제나 세상이 이해해주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손가락질받기도 하지만, 별 상관은 없다. 그저 나와 닮은 상대가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이 보듬어주면 족하다.다만 다음 작품에선 신카이 마코토의 새로운 ‘도전’이 보고 싶긴 하다. 물론 3부작을 비롯해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빼어나다. 별 다섯 개 만점에 4개 이하가 없다. 허나 다섯을 꽉 채우긴 망설여진다. 근사한 유명 식당에서 만족스런 한 끼였지만, 예의 딱 알던 그 맛은 큰 바뀜이 없다. 당연히 이런 지속성도 훌륭한 덕목이다. 허나 예상을 뛰어넘는 신박함은 떨어진다. 언젠가부터 세간에선 그를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를 이을 명장감이라 부른다. 솔직히 그 의견에 정색하고 반박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수식언에 떳떳하려면 이젠 ‘붉은 돼지’(1992년) 같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걸작이 한번 나와 줄 때다. 아마 그건 그리 먼 미래가 아닐 게다. 혜성은 이미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P.S] 어쩌면 이런 설레발조차 신카이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뜬금없긴 한데, K팝 K무비 K드라마 K웹툰…. 케이만 붙이면 뭐든 대단한 듯 착시현상이 만개한 세상에서, K만화영화의 가뭄에 허덕이는 우리로선 이런 풍성한 텃밭이 부러울 따름이다. 얼른 국내에도 소타와 히나(날씨의 아이), 미츠하(너의 이름은) 같은 작가들이 늘어나길. 스즈메와 호다카, 타키가 되어줄 팬들은 목이 마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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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로는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상편()에서 이어집니다.“과학적 시선을 통해 해상도가 달라진 또렷한 눈으로 세상을 좇으며 매일매일 가슴 뛰는 과학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학자 궤도의 책 ‘궤도의 과학 허세’에서) 인공지능과 기후변화, 자율주행 자동차…. 우리의 삶에 과학이 끼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져가는 건 자명하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고르는 선구안은 왠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정부의 과학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사인 강성주 박사(42)가 지향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잡한 세상의 최신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어느 때보다 나침반이 필요한 시대다. 유튜브 인기 채널 ‘안될과학’(활동명 항성)에서 과학을 통한 소통에 매진하는 강 박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2020년 하반기 ‘안될과학’에 합류하셨죠.“한국천문연구원을 관두고 잠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시행하는 과학융합 강연자 저술가 과정 등을 다녔어요. 거기서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나며 일종의 ‘과학 인맥’이 늘어난 거죠. 그 덕에 우연찮게 ‘안될과학’의 대표적 과학자인 궤도 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원래부터 안될과학과 궤도 님의 열렬한 ‘찐 팬’이었거든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롤 모델이기도 했고요. 근데 궤도 님과 얘기를 나누며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저랑 너무 똑같은데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게스트 제안을 해주셔서 신나서 출연했는데, 시청률도 잘 나오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나 봐요. 그때부터 정식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안될과학이 이렇게 인기 많은 이유가 뭘까요.“재밌잖아요, 하하. 뭣보다 과학으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아웃리치(outreach)’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만큼 한국말로 대체어를 찾기 마땅치 않지만, 일반 시민들을 위한 봉사 지원 활동 같은 걸 뜻하죠. 안될과학은 최신 과학정보를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서 편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아시겠지만, 한국인은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많고 이해도도 상당히 높아요. 때문에 이런 채널에 대한 갈증이 존재해왔고, 이를 안될과학이 채워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편하게 전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을 텐데요.“맞아요. 단순히 좀 안다고 해서 가르치려 들었다면, 이렇게 호응이 크진 않았을 거예요. 함께 정보를 나누며 유쾌하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쓰죠. 저희도 그렇지만, 전문가들을 모실 때도 재밌게 설명할 분을 선정하려 고심을 많이 합니다. 채널을 보시는 분들이 과학에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돕는 게 주목적이니까요.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님이나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님 같은 분들이 먼저 길을 잘 닦아 오신 덕도 크죠. 아울러 저희가 ‘학계’를 절대 놓고 있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예요.”-학계를 놓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전문성을 유지하며 흐름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안될과학 같은 유튜브 채널은 어떤 정부나 대학 기관이 아니잖아요. 때문에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 영향력은 커지지만, 그게 어떤 신뢰성이나 위상을 보장하는 건 아니거든요. 최신 동향과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계속 파악해야, 정통 학계도 수긍하고 대중도 인정하는 거죠. 저 역시 한국천문학회와 국제천문연맹, 한국천문올림피아드 등에 소속돼 활동하는 이유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안될과학에 참여한 뒤로 연구원으로 재직할 때보다 논문을 더 많이 읽는 거 같아요, 하하.”-과학관 연구사이기도 한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요.“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잠 좀 줄이면 다 가능합니다. 과학관 퇴근 뒤에 안될과학 출연하고 집에 가면 보통 새벽 1, 2시쯤 돼요. 논문 보고 자료 정리하다 보면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잡니다. 물론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죠. 하지만 정신건강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살짝 버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거 못해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요.”-좋은 채널인데 재정 지원 같은 걸 받으면 어떨까요.“아…, 그건 저희가 제일 피하고 싶은 거예요. 실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프로젝트 제안을 많이 해주고 있으세요. 감사한 일이지만, 저희로서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도 공무원인지라 다소 민감한 부분이 있고요. 뭣보다 정부건 기업이건 어디에 얽매이면 안될과학의 근본정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자유롭게 과학을 탐구한다는 본질이 변한다면 저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거죠.”-한국의 과학 수준이 높다고 했는데, 노벨상은 언제쯤 나올까요.“어려운 질문이네요. 조심스럽긴 한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이대로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긴 힘들다고 봅니다. 한국인은 교육 수준도 높고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훌륭해요. 미국만 해도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거든요. 안될과학이 이렇게 인기 있는 것도 그걸 증명하죠. 문제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 정부나 대학 연구기관은 1년 회계연도에 맞춰서 ‘실적’을 내놓아야 해요. 그렇다 보니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실험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 제출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성과를 얻기란 요원할 것 같아요.”-외국도 연구자가 성과를 내놓긴 해야 하잖아요.“맞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를 무엇으로 판단하는가에서 결정적 차이가 납니다. 첫째로 해외에선 ‘과정’도 실적으로 받아들여져요. 10년 프로젝트가 있다고 칠게요. 미국이나 일본은 1, 2년 때 실험을 통해 이런저런 오류를 발견했다는 것도 값진 소득으로 여겨요. 우리는 아니죠. 작게라도 ‘진전’이 있어야만 그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과학에서 오류를 제거하는 건 절대 정체나 답보가 아니거든요. 여기서 두 번째 중요한 차이가 나오는데, ‘실패’도 성과로 본다는 겁니다. 어떤 연구에서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도 뭔가를 배운 거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래야 다음 연구에선 그 방식을 배제하고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정책적 인식이 바뀌어야 우리도 과학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그런 와중에 나로호 발사 같은 큰 성공도 거뒀잖아요.“네, 정말 대단하죠. 해외의 1/10쯤 되는 인력과 재원으로 그걸 해냈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근데 생각해보세요. 우린 언제까지 이런 행운만 바라며, 현장의 희생과 사명감에 기대야 할까요. 그리고 과연 이런 기적이 계속 이어질까요. 외국 과학자들을 만나면, (한국의 성과에) 놀라는 게 아니라 걱정부터 합니다. 괜찮으냐고. 그러다 큰 사고 나는 거 아니냐고요. 당장 지원을 외국만큼 늘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다만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식으로는 과학 발전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거잖아요.”-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아질 거란 희망은 보입니다. 이전보다 정부나 학계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성과’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에요. 과학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경직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중들이 과학에 애정을 많이 가져주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한국 언론이나 국민이 ‘나사(미 우주항공국)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관측 결과’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국내 과학정책 등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안될과학도 그렇게 분위기를 바꾸는데 기여하려고 노력해야죠.”-예전보다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줄지 않았나요.“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과학을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적지 않아요. 20세기에는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이 몇 개 없었죠. ‘로봇 태권V’ 같은 공상과학(SF) 만화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과학자가 매력적이었죠. 지금은 세상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졌잖아요. 웹툰 작가나 유튜버 같은 새로운 직업이 눈에 들어오니, 과학자가 잘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오히려 요즘 만나본 아이들은 질문 수준이 엄청 높아요. 구체적이고 예리합니다. 과학 인력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부모들도 자녀들이 과학자가 되길 바랄까요.“문제는 바로 그 대목이죠. 사회적으로 과학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아마 경기도 나쁘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과학자란 직업이 전망이 어둡다고 보는 게 아닐까요. 정부 정책 같은 걸 봐도 과학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돈 많이 버는 과학자들도 꽤 있어요, 하하. 게다가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막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긍정적인 요소와 불안한 요소가 뒤섞여 있지만, 그럴수록 어른들이 더 잘해야겠죠. 과학의 매력에 빠진 어린이들이 그 꿈을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과학현황지수(SOSI·State of Science Index)’라는 게 있다. 글로벌기업 3M이 2018년부터 17개국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인식 조사인데, 나라마다 사람들이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86%가 “과학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세계 평균 52%보다 무려 34%포인트가 높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우려 역시 다른 나라보다 높다. 한국인은 약 80%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잘못된 과학정보가 퍼지고 있다고 봤으며, 76%가 기술의 변화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화를 걱정했다. 과학현황지수를 봐도 한국인처럼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 그 관심만큼 과학정책을 중시하고 과학자를 우대해왔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케이팝 같은 한국의 소프트 콘텐츠가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는 지금, 나라의 근간이 되어줄 기초과학을 우리는 얼마나 잘 보살피고 키워가고 있을까. 일단 ‘안될과학’ 등을 통해 과학을 향한 관심부터 다시 한번 환기시켜보자. 분투하는 청년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실어줄 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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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세대 자동차전문인력 지속 육성하겠다”

    “메르세데스-벤츠 모바일 아카데미는 글로벌 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여러 직군 선배들에게서 생생한 조언을 듣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우수한 엔지니어로 성장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대림대 재학생 이예신 씨) 메르세데스-벤츠 사회공헌위원회(의장 토마스 클라인)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이사장 이훈규)이 10일 경기 용인에 있는 AMG 스피드웨이에서 대학생들을 초청해 ‘메르세데스-벤츠 모바일 아카데미 16기 경력개발 워크숍’을 개최했다. 경력개발 워크숍은 메르세데스-벤츠 모바일 아카데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 메르세데스-벤츠의 우수한 기술력과 글로벌 교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실시하는 산학협동 프로젝트다. 메르세데츠-벤츠 측은 “이번 워크숍에는 국내 자동차 관련 학과 학생 110명에게 이론적인 기술 교육을 비롯해 현업에서 해당 기술이 활용되는 다양한 직군을 소개했다”며 “본인에게 맞는 직종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16기 워크숍에는 전국 11개 대학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과 ‘리더와의 대화’ ‘AMG 스피드웨이 드라이빙 체험’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마련됐다. 특히 리더와의 대화는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사인 더클래스 효성의 이철승 대표이사가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사회공헌위원회 부의장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1박 2일 워크숍을 통해서 미래 자동차 역군들이 자신의 역량을 향상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며 “차세대 자동차 전문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국내 자동차 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세데스-벤츠 모바일 아카데미는 2014년부터 국내 관련 대학에 현장 실습 교육 및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고, 실습용 차량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수료생들은 대다수가 자동차 산업으로 진로를 이어가 모범적인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출범한 사회공헌위원회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약속’이란 공식 슬로건 아래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5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모바일 아카데미 외에도 △어린이 교통 안전을 위한 ‘메르세데스-벤츠 모바일 키즈’ △임직원 참여형 봉사활동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스포츠와 기부를 결합한 ‘메르세데스-벤츠 기브’ △탄소중립 기후행동 실천을 위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린플러스’ 등이다. 사회공헌위원회 관계자는 “11개 대학과 협약을 맺어 해마다 기초 과정 275명과 심화 과정 110명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며 “1년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에겐 최대 1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며, 16기 우수 성적자들에게는 독일 본사 견학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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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결과 마술하던 청년, 유튜브 인기 ‘과학 전도사’ 되다[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역사를 돌아보면 자연은 인간을 놀라게 하는데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해왔다. 지금보다 더 먼 곳을 관측하고 더 작은 영역을 들여다봤을 때 무엇이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할지, 그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탐험을 계속한다면, 우주의 조리법을 발견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해리 클리프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 ‘다정한 물리학’에서)흐드러지게 피고 지기론 벚꽃 못지않다. 요즘 유튜브 채널들 얘기다. 알고리즘과 자극이란 밀물 썰물에 휩쓸리다 보면, 뭘 따라가는지 정신 차리기도 버겁다. 그 와중에도 힐끗 보기엔, 다소 민숭민숭한 채널이 하나 있다. 과학 전문 채널 ‘안될과학.’ 간판에 달린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박사급 아재들이 만든, 될 과학 안 될 과학 다 만드는 본격 과학 채널”이란 설명에도 왠지 문턱 넘기 망설여진다.하지만 2018년 시작한 안될과학은 현재 구독자 수가 77만 명(19일 기준)에 이르는 탄탄한 인기를 구축했다. 천문학 물리학 생명과학 등 정통 과학정보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채널 주인장들인 궤도와 항성, 약, 공진(모두 예명) 등도 이제 온라인 안팎에서 상당한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한다.특히 ‘항성’으로 활동 중인 강성주 박사(42)는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 소속된 연구사. 학자이자 공무원으로 공사다망한데도, “잠 잘 시간 쪼개가며” 안될과학에 매진해왔다. 평탄하게 실적 쌓으면 그만인 그가 왜 굳이 ‘돈 안 되는’ 가욋일에 이리도 진심인걸까.(※강 박사는 안될과학에서 단 한 푼도 출연료를 받지 않는다)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해드릴”(안될과학 시그니처 인사법) 과학자 항성을 만나봤다.-유튜브 스타를 만나 영광입니다.“에구, 무슨 말씀을요. 국립과천과학관 천문우주팀에서 일하는 공무원 신분의 연구사(硏究士)일 뿐입니다. 물리 천문 기상 등을 담당하고 있고요, 교육이나 전시 등을 기획 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안될과학은 ‘과학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공부할 때부터 꿈꿨던 일이라 즐겁게 하는 거예요.”-과학 커뮤니케이터란 게 뭔가요.“말 그대로 과학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우리말로는 적당한 대체어가 없긴 한데…, 흔히 대중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데, 그건 좀 달라요. 전문성을 갖고 있되 일반인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삼키기 편하게 만들려 노력하지만, 어떻게 소화하는가는 각자 받아들이는 이가 편하게 선택하는 거죠.”-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으셨나요.“네, 신기하게도 한 번도 장래 희망이 바뀐 적이 없어요. 일곱 살 때쯤 과학만화를 좋아했는데, 거기서 마주한 보이저 2호가 우주에서 찍은 사진에 반해버린 뒤 언제나 천문학자를 꿈꿨어요. 무작정 졸라서 아버지가 천체망원경을 사주셨는데, 처음엔 어떻게 보는지 방법도 몰랐죠. 며칠을 만지작거려서 드디어 목성을 처음 봤을 때의 그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근데 저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들은 어릴 때 우주나 별에 빠져서 그대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요.”-첫사랑과 그대로 결혼한 셈이네요.“다 부모님 덕분입니다. 언제나 제 꿈을 지지해주시고, 얘기를 경청해주셨어요. 어릴 때 제가 정말 말이 많았거든요. 어른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얘기인데도 절대 막지 않고 귀 기울여 주셨어요. 한번은 어머니가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수다 떠느라 하나도 못 먹고 국물이 없어질 정도로 탱탱 불어터졌어요. 근데 제 앞에 앉아 조용히 다 들어주신 뒤 ‘걱정 마. 다시 끓여줄게’ 하셨을 정도예요. 아이 입장에선 너무 고마운 대화 상대가 되어주신 거죠. 전 지금도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려면 그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깁니다.”-부모님 속 썩인 일은 없으셨나 봐요.“아, 웬걸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진 괜찮은 아들이었을 수도 있는데, 대학 가면서 큰 사고를 쳤죠. 실은 연세대를 수시로 붙어놓고, 시간이 남아서 취미를 찾다가 마술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에서 마술이 그리 대중적으로 인기 있던 시절은 아닌데, 우연히 마술 동호회 모임에 갔다가 은결이를 만났는데….”-세계적인 마술사 이은결 씨 말인가요.“흐흐. 네, 저랑 동갑이에요. 그 친구 만나서 완전히 빠져서는, 대학이고 뭐고 필요 없고 무조건 마술사 되겠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은결이가 마술 쇼하면 보조 역할도 하고. 용품 비용 대느라 대학 등록금으로 받은 돈도 다 갖다 썼어요, 부모님 몰래. 입학금만 내고 등록은 안 했으니, 결국 1학기 끝나고 집에 통보가 온 거죠. 매일 신촌에 간다기에 학교 가는 줄 아셨던 부모님이 정말 충격이 크셨어요. 실은 마술 아지트가 신촌에 있었거든요.”-놀라시는 게 당연하죠.“그죠. 뭣보다 자식이 그간 당신들을 속인 셈이잖아요. 은결이까지 덩달아 불려 가서 엄청 혼났어요. 아버지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셨을 정도니까요. 은결이도 억울했죠. 제가 등록금까지 갖다 쓴 줄 몰랐거든요. 근데 혼나고 나와서 은결이가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말할게. 너 마술에 진짜 소질 없어. 머리는 똑똑하니 공부 다시 해라.’ 그때 뭔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요.”-친구를 위해 쓴소리한 게 아닐까요.“맞아요. 덕분에 정신 차렸죠. 지금도 제일 소중한 친구 중의 하나예요. 근데 그대로 한국에 있으면 도저히 마술의 유혹을 떨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하고 이리저리 알아보니 천문학과로 유명한 미국 텍사스대학이 딱 저한테 맞을 거 같았어요. 다행히 토플이나 SAT 점수도 나쁘지 않아서 입학도 받아들여졌고요. 운 좋게 2001년 9·11테러 직전에 입학해서 학비도 미국학생과 동일했어요. 그 이후론 텍사스대도 국제학생은 미국 학생보다 서너 배는 학비가 비싸진 걸로 알고 있어요. 여러모로 운이 따랐죠.”-유학 가선 사고 치진 않으셨나요.“하하, 아버지랑 똑같은 반응이네요. 눈앞에서도 그러는 놈을 뭘 믿고 보내주느냐고 하셨거든요. 다행히 마음 잡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원래 꿈이 천문학자이기도 했으니까요. 학부 때는 천문학 물리학 등을 전공했고요. 석박사 학위는,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요. 간단하게 말해서 별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유형으로 탄생하는가를 연구했어요. 그리고 뭣보다 미국 유학은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겠다는 진로를 결정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봐요.“원래도 조경철 박사님(1929~2010)을 선망하기도 했지만, 학부 때 지역주민 행사에 참여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한 아버지가 설명을 정말 집중해서 들으시는 거예요. 사실 한국 부모님들은 그런 곳에 오시면 아이들은 참여시키고 뒤로 살짝 빠져서 좀 쉬시는 경향이 있거든요. 괜한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봤더니, ‘우리 애 하나가 자폐스펙트럼인데, 내가 알아들어야 우리 가족의 언어로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그 아버지가 가족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거네요.“네, 맞아요. 그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사실 과학 용어나 개념이 대중에겐 낯설고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근데 쉽게 설명하면, 관심 있는 분들은 대부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 다리를 놓는 일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운 좋게 세계적인 천문학자 닐 타이슨(65)을 사석에서 뵌 것도 큰 도움이 됐어요. ‘위대한’ 칼 세이건(1934~1996)의 제자답게 제 꿈을 적극 응원해주셨어요. 너무 멋진 일이라며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죠.”-한국행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인가요.“네, 실은 박사를 딴 뒤에 진로 고민을 좀 했어요. 아직 한국에선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게 생소하기도 하고,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그런 업무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천문연구원에 지원했다가 합격해서 갈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했죠. 나사에 대한 열망이 커서 망설였는데, 그때 지도교수님이 ‘조국에서 네 꿈을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하셔서 귀국하기로 맘먹었습니다.”-천문연구원에 5년 정도 계셨더군요.“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구직 인턴을 거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한데…. 좋은 연구와 프로젝트도 많이 했지만, 저랑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어요. 연구원은 아무래도 연구 중심이거든요. 국책기관이니 실적이 우선시되고, 외부 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보급이나 대중화 쪽 일인데, 그럴 기회나 여지가 거의 없었어요. 안정된 직장이지만 꿈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거든요.”-국립과천과학관으로 옮긴 게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여길 오겠다고 확정하고 이직한 건 아니고요. 일단 연구원을 관두고 나와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다행히 와이프도 ‘꿈을 포기하지 마라’고 응원해줬고요. 국립과천과학관은 그 이후에 저랑 잘 맞겠단 생각에 들어온 거죠. 그리고 엇비슷한 시기에 ‘안될과학’에도 참여하게 된 거고요. 드디어 꿈에 다가가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기분이었습니다.”(하편에서 계속)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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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과 폐지로 상처 입은 청년들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상편()에서 이어집니다.“아무것도 없는 빈 바둑판에 돌이 하나하나 추가되면, 다 내 것 같던 넓은 땅이 쑥쑥 줄어든다. 경계가 흐릿해 다 내 것 같다가, 경계가 드러나며 내 땅인지 네 땅인지 알게 된다.”(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에서) 바둑은 어찌 보면 참 간명하다. 희고 검은 돌을 나눠 잡고 승부를 가린다. 5000년 역사를 지녔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땅(집)을 더 차지해야 이기는 건 변함없다. 그래서 바둑은 더 오묘하기도 하다. 수천 년 같은 방식인데 둘 때마다 천변만화한다. 이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낫다지만, 그건 계산의 영역이지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바둑판 위에선 삶의 묘리가 살아 숨 쉰다. 명지대 자연캠퍼스에서 만난 고영훈 씨(25)도 그런 ‘반상(盤上)의 법칙’을 깨쳐가는 청년이다. 현재 아마 5단인 그는 7살 무렵 돌을 잡은 뒤 바둑고등학교를 나와 2017년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현역으로 전역한 뒤에도 19줄 바둑판은 영훈 씨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명지대가 바둑학과 폐지안을 통과시키며 자신이 몸담은 과가 사라지는 걸 목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최종확정은 아니고 재학생들의 졸업도 보장된다지만, 이미 “가슴이 뻥 뚫린” 쓰디쓴 상처는 누가 메워줄까.-폐과 소식을 처음 들은 건 언제인가요.“지난해 10월쯤이었어요. 밤 10시쯤인가, 갑자기 예술체육대학 학생회장단 단톡방이 시끄러웠어요. 다들 ‘에타(대학생 커뮤니티)’ 봤냐며. 누군가 학교 통합안을 몰래 올렸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내용이 복잡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바둑학과가 다른 단과대로 옮기고 일반 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게 뭔가 싶어 교수님들께 여쭤보니 이건 폐과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학교 측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겠네요.“네, 당연하죠. 바로 공식적으로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면담 자리에서 ‘단순한 초안이 누출된 거다. 최종안은 학생들 의견 다 수렴해서 만든다. 우려할 정도의 개편은 없을 테니 걱정마라’고 하더군요. 근데 저도 그렇고, 만나고 나온 학생들이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왠지 일단 무마하려고 둘러댄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공청회라는 걸 열었는데, 의견을 들어주거나 상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뭔가 이미 다 결정됐고 그저 통보하는 식이었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12월에 학교 측 통합추진위원회라는 게 열렸는데, 거기서 바둑학과 폐지가 통과됐죠.”-학생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겠습니다.“솔직히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났어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1997년 창설해 25년이 넘은 학과가 이렇게 쉽게 없어진다는 게 이해가 안 갔습니다. 바둑학과는 한국 바둑계의 산실 같은 곳이고, 입학 경쟁률도 지난해 3 대 1 정도로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니 백번 양보하더라도, 학생들 교수들하고 논의는 해야 하는 거잖아요. 문제가 있다면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은 해본 뒤에 결론 내도 늦지 않은 거 아닌가요.”-소통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거군요.“네, 그게 가장 아쉬워요. 학교 측도 사정이 있을 테죠. 시스템을 바꾸는 일인데 고민도 많았겠죠. 요즘 대학들이 갈수록 힘들단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양해도 구하지 않는 건, 학생들을 학교의 구성원으로 대해주지 않은 거라고 봐요. 물론 저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연히 폐과에 찬성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니까 더 대화했어야 하는 거잖아요.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죠. 힘을 가졌다고 권한이 있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걸 보고 학생들이 뭘 배울 수 있을까요.”-학생회장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상심이 컸겠어요.“평소 바둑 말고도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실제로 회장을 맡기 전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일이 터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저도 뼛속까지 ‘바둑인’이었어요. 바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어요. 어떤 분들은 바둑학과가 왜 필요하냐고 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과는 그저 프로기사만 배출하는 곳이 아니에요. 바둑 전문 TV 등 관련 산업 전반으로 진출하고, 해외 바둑 보급에 힘쓰는 선배들도 많아요. 한국 바둑 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자신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 바둑계에서도 이렇게 한목소리로 페과에 반대하지 않았겠죠.”-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나요.“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미 결정된 사안이 쉽사리 바뀌진 않겠죠. 하지만 저를 포함해 대다수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고 싶단 마음이에요. 몇몇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기도 해요. 벌써 전과나 편입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요. 학생들은 아무래도 을의 입장이고, 이번 일로 더욱 약자라는 걸 많이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주저앉아 포기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잖아요. 다행히 바둑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겠다는 연락을 많이 주세요. 쉽게 지치지 않아야 할 거 같아요.”-이번 학기 휴학했던데, 이번 사건 때문입니까.“음…(한참 망설이더니), 꼭 그것 때문은 아닌데 아예 없다고도 못하겠네요. 다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휴학은 했어도 과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할 거예요. 학생회장 임기는 끝났지만, 후배한테 떠넘기고 떠났다는 얘긴 듣고 싶지 않거든요. 다만 이번 일로 ‘세계관’이 좀 바뀌었어요. 그전까진 어떤 일이든 바둑 관련해서, 일단 취직을 염두에 뒀었거든요. 그런데 학교도 구조조정을 이유로 과를 내쫓는데, 사회에서 회사는 더 심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이 누군가의 결정에 좌지우지된다는 게 너무 속상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취직보단 제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고 싶어요.”-뭔가 삶의 방향이 바뀌어버린 거네요.“진짜 세상의 어려움을 감내하는 어른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로선 큰 갈림길에 선 기분이 들어요. 그냥 다들 가는, 기존에 있는 길을 찾아갈 수도 있겠죠. 근데 그랬다가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바둑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되 어디에 묶여있고 싶진 않아요. 예를 들어 창업 같은 걸 하더라도, 나만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단 생각이 들어서 그런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쉬운 길은 아닐 텐데요.“사실 지금 바둑계가 전체적으로 막 흥하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갈수록 바둑 인구도 줄고 있고, 사양산업이란 소리도 듣고 있죠. 바둑계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봐요.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질 못했으니까요. 어쩌면 바둑으로 ‘먹고 살겠다’고 한 순간부터, 이런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건 닥쳤을 거 같아요. 바둑학과 폐지 논란도 그런 상황의 연장선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전 이미 바둑과 연을 맺은 사람이니 끝까지 함께 가야죠.”-바둑학과 나왔다고 바둑 관련 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맞아요. 그런데 제가 그러고 싶은 거죠. 평생 바둑을 둬왔으니 이쪽 일을 하겠다가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바둑이 좋으니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여전히 바둑으로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거든요. 그거 아세요? 이번 큰일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왜 하필 바둑을 선택했지’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흔히들 바둑에는 인생이 들어있다고 하잖아요. 전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바둑은 언제나 제게 말을 걸어주는 존재였어요. 아직 전 바둑과 해야 할 얘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명지대 홈페이지에는 여러 소속 학과에 대한 친절한 소개 글들이 실려 있다. 바둑학과도 마찬가지인데, 상세한 설명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1997년 사상 최초로 창설된 바둑학과는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바둑은 귀중한 문화의 하나로 간주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너무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침으로써 과학적인 접근법에 의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 바둑학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바둑문화의 발전에 공헌하려 한다.” 영훈 씨가 학문적 성취를 얼마나 쌓았는지는 모르겠다. 바둑학과가 사라지는 게 ‘바둑문화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허나 이번 사태로 바둑을 사랑한 한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나아갈 선로를 틀려 하고 있다. 또한 바둑학과를 꿈꾸던 고교생들은 당장의 진학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어떤 일에도 대가는 따른다지만, 막 날갯짓하는 젊은 꿈에 생채기 내는 결과를 낳진 말길. 그게 어른들의 몫 아닐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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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포 ‘포지티브566’, 세계 최대 카페로 기네스북 등재

    220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카페인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이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로 공식 인정받았다.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은 “영국에 본부를 둔 기네스 월드레코드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카페’로 등재됐다”고 6일 밝혔다. 경기 김포시에 있는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은 연면적 1만1900㎡(약 3600평)에 이르는 호텔식 카페로, 지난해 문을 연 뒤 엄청난 규모와 다양한 부속 시설로 줄곧 화제를 모아 왔다. 실내 좌석 수도 2190개로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로 알려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마사 카페(1050석)보다 2배 이상 고객을 받을 수 있다. 지하 1층∼지상 5층으로 이뤄진 내부는 높은 천장과 엄청난 샹들리에, 레트로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MZ세대 등으로부터 소셜미디어에 사진 올리기 좋은 ‘핫플’로 관심을 끌고 있다. 카페 외에도 식사나 주류를 즐길 수 있는 여러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1층부터 4층까지는 다양한 콘셉트를 가진 공간으로 꾸며져 어느 위치에서 촬영해도 근사한 포토 존이 된다. 이 밖에 야외 테라스와 이벤트 홀도 있으며, 크고 작은 예약 룸도 19개나 있어 4명부터 100명까지 참여하는 행사나 모임이 가능하다. 특히 5층에 있는 ‘포지티브 아트센터’는 예술 전시 공간으로 방문객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현재 ‘포지티브 아트센터 영 아티스트 프로젝트’ 제1회 대상 수상자인 SINA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해당 프로젝트는 아트센터에서 국내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뜻에서 올해부터 시작한 공모전이다. 이은순 포지티브스페이스566 대표는 “기네스북 등재를 통해 김포에 새로운 랜드마크를 선보였다는 기쁨이 무척 크다”며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은 기네스북 등재를 기념해 조만간 다양한 특별 메뉴와 이벤트를 선보일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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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다니는 과가 없어진다니…” 폐지안 발표된 명지대 바둑학과 재학생의 시린 봄날[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바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에요. 그래서 끝에서부터 가운데로 자기 집을 잘 지으며 남의 집을 부수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해요.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 (넷플릭스 드라마 ‘글로리’에서) 드라마 ‘글로리’의 세계적인 히트로 또 한번 주목받은 스포츠(혹은 게임)가 있다. 바둑이다. 해당 작품에서 바둑은 주인공 동은(송혜교)의 복수를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장치였다. 온라인쇼핑몰에 따르면 글로리 방영 뒤 바둑 관련 상품은 지난해보다 134%나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인기는 ‘반짝 거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실제 바둑은 지속적으로 위기에 봉착했단 평가를 받아왔다. 그 흔했던 기원도 이젠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 특히 지난해는 바둑계가 심각하게 술렁인 해였다. 1997년 세계 처음으로 바둑학과를 개설한 명지대가 폐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바둑계 안팎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내후년부터 바둑학과는 신입생을 받지 않을 예정이다. 바둑학과 폐지가 옳은지 그른지는 잠깐 판단을 미뤄두자. 어느 쪽이건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바둑의 위기’란 거대담론이 오고가는 와중에, 정작 제일 중요한 뭔가가 빠진 기분이 든다. 현재 바둑학과를 다니는 학생들, 바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어릴 때부터 흑돌 백돌과 사랑에 빠져 전공마저 바둑으로 선택한 젊은이들. 그들은 자신이 몸담은 학과가 없어진단 통보를 어떤 심정으로 받아들였을까. 명지대 바둑학과 ‘17학번 복학생’ 고영훈 씨(25)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네, 안녕하세요. 명지대 바둑학과 고영훈이라고 합니다. 2017년 입학했고, 2018년 10월에 군대 갔다가 2021년 1학기 때 복학했어요. 지난해는 1년 동안 과 학생회장을 맡았었습니다. 원래 올해 4학년이 되는데, 따로 준비하는 게 있어서 지금은 휴학 중입니다.”―대학생다운 소개네요. 바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7, 8살 때부터였어요. 2000년대 초반인데 그땐 산만한 아이들에게 바둑 가르치는 게 자연스러웠나 봐요. 부모님 말로는 제가 워낙 까불까불하고 어디 가서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대요. 집중력이라도 키우라고 연년생 형이랑 같이 학원에 보냈답니다. 형은 2, 3년 다니다 관뒀는데 전 지금까지 이어졌네요.”―그때부터 재능을 드러낸 거군요.“에구, 진짜 기재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프로기사들은 네댓 살 때부터 시작하니 늦기도 했고, 그냥 광주의 조그만 동네 학원에서 잘 두는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상급학원으로 옮겼는데, 이미 그때 ‘벽’을 좀 느꼈어요. 저보다 어린 데 훨씬 실력있는 친구들이 많았죠. 근데 이상하게 낙담하기보단 바둑이 더 재밌어졌어요. 왠지 도전의식이 샘솟았다고나 할까요. 중학교 올라간 뒤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계속 바둑을 두고 싶었어요. 프로기사가 되긴 어렵더라도 바둑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싶단 생각을 했죠.”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쉽지 않은 선택인데.“감사하게도 제 뜻을 존중해주셨어요. 현실적으로 프로기사가 되긴 어렵다는 걸 부모님도 아셨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격려해 주셨죠. 그래서 그때부터 명지대 바둑학과를 목표로 준비했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중3 때 전남 순천에 한국바둑고등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2회 졸업생인데, 지금은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그때는 신설이라 입학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요. 기숙사까지 있는 학교라 집중해서 바둑 실력 쌓기에 좋은 조건이었어요.”―바둑고등학교는 교과과정이 어떻게 되나요.“하하, 사람들은 그게 제일 궁금한가 봐요. 하루 종일 바둑만 두냐고 묻더라고요. 다른 학교랑 똑같이 국영수 등 정규 과목 다 그대로 배워요. 다만 주 10시간 바둑이 정규 수업에 포함돼있죠. 자유시간엔 바둑도 두고 축구도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요. 대신 교내에 ‘리그전’이라는 게 있어요. 학생들끼리 바둑 둬서 그 성적으로 1군부터 6군까지 등급이 매겨져요. 아무래도 바둑이 주 목적인 학교니까, 바둑 실력이 중요하죠.”―영훈 씨는 주로 몇 군이었나요.“1, 2군을 들락날락했어요. 바둑은 특성상 4, 5군인 친구가 1,2군으로 가는 건 거의 드물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실력이 갑자기 늘지 않는데다, 상급자들일수록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비집고 올라가기가 엄청 어렵죠. 다만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한번씩 등급이 요동쳐요. 나이 어린 후배여도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선배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죠.”―요즘 드라마 ‘글로리’가 화제잖아요. 바둑고등학교는 학폭과는 거리가 멀겠어요.“아무래도 바둑 특성화 학교다보니 그런 면이 있죠. 바둑을 제일 잘 두는 학생이 가장 인정받는 곳이니까요. 바둑 두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이 차분하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론 심각한 폭력이나 따돌림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 학교도 서울을 포함해서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어 기숙사 생활을 하거든요.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모였으니 시끄러울 때도 없진 않죠.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다들 잘 지냈던 거 같아요.”―바둑고등학교를 나오면 바둑학과 진학이 쉬운 편인가요.“전혀 아니에요. 바둑고등학교라서 무슨 가산점이 있는 건 아니고, 각 지역 연구생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요. 저 때도 입학 경쟁률이 3 대 1 정도 됐었어요. 게다가 바둑학과 지망생들은 여기가 아니면 대안이 없어요. 바둑학과 떨어졌다고 뜬금없이 다른 과를 갈 순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만약에 대비해서 고3 때 체대 입시를 같이 준비했어요.”―체대 준비까지 병행했으면 정말 힘들었겠어요.“다행히 바쁘게 사는 게 제 성향에 잘 맞았어요. 사실 바둑학과만 준비할 땐 오히려 고민도 많고 답답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체대 입시 학원도 다니니까 시간은 빠듯했어도 뭔가 스스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1분 1초까지 쪼개가며 열심히 사는 게 저를 단련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거든요. 그래서 체대 학원 다니던 도중에 바둑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도 끝까지 계속 다녔어요.”―이미 합격했는데 왜 굳이 학원을 계속 다닌 건가요.“어…, 제가 합격했다고 중간에 관둬버리면 괜히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잖아요. 같이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누가 빠져나가 버리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고요. 나중엔 가까운 몇 명한테는 말했지만, 학원 쪽에는 아예 얘길 꺼내질 않았어요. 저로선 체력도 단련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책임감이 무척 강한 편인가 봐요.“주어진 일이 있으면 피하지 않는 성격이긴 해요. 근데 그보다는 바둑에만 매몰돼서 외골수로 살지 않고 싶었어요. 바둑인이라고 하면 왠지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물론 실력이 좋아서 프로기사로 나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죠. 하지만 바둑을 매개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뭐든지 열심히 경험해보려 했습니다. 대학 와서도 여기저기 정말 많이 참여했어요. 물론 바둑학과다보니 바둑에만 집중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지만, 전 이런 스타일이 잘 맞았어요.”―군대 다녀와서 학생회장을 한 것도 그런 성향의 연장선인가요.“일단 당시 학생회장 선배가 선거에 나가보면 어떠냐고 추천을 했어요. 원래는 제대 뒤에 교환학생을 목표로 토플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코딩이나 영상 촬영 같은 것도 배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회장이 돼서 과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거죠. 저로서는 바둑학과가 좀더 나아지고 한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럼 한번 해보자’ 싶더라고요. 그런데 학생회장 하면서 (바둑학과 폐과라는) 그런 엄청난 사건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하필 학생회장 때라 더 힘들었겠어요.“충격이 컸죠. 학생들을 위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과가 없어진다니…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죠. 뭔가 낌새라도 느꼈으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정말 갑작스러웠거든요. 아시다시피, 저희 과는 좀 특별한 학과잖아요. 세계에서 유일하기도 하고. 한국 바둑계의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 같은 곳인데, 처음엔 이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평생 쌓아온 뭔가가 타인에 의해 무너지는 기분마저 들었어요.”(하편에서 계속)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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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가요” 세계 명품업계가 환호하는 청년 일러스트레이터의 열정[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맥퀸은 말했다. 제 옷을 입은 여성을 보세요. 제 옷에는 여성이 강해 보이도록 하는 어떤 강인함이 있어요. 그 강인함 덕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죠.”(을유문화사 평전 ‘현대 예술의 거장-알렉산더 맥퀸’에서) 패션업계 종사자들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게 있다. 대체로 상냥하고 부드럽지만, 문득문득 예리한 칼날을 품은 기세가 배어난다. 언제든 전쟁터로 뛰어들 차비가 된 장수처럼.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재석 작가(36)도 그랬다. 세계적인 패션일러스트레이터답지 않은 소탈한 말투에다 차분한 미소도 보드라웠지만, 가끔씩 번뜩이는 눈빛이 서늘하면서도 강렬했다. 뭣보다 “타협하진 않되 문을 닫아두지도 않는다”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는 청년 아티스트의 패기 넘치는 신념도 묻어났다. 김 작가는 2010년 미국 뉴욕의 유명백화점 블루밍데일스와 협업을 시작으로 구찌 카르티에 불가리 피아제 등 수많은 브랜드와 작업해왔다. 이젠 그와 작업하지 않는 패션브랜드를 골라내기 힘들 정도다. 그가 작업마다 선보이는 캐릭터 ‘수수걸’은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이토록 많은 브랜드들이 앞다퉈 찾는 걸까.-수수걸의 정체성은 뭔가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일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모델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패션디자이너마다 선호하는 모델이 있듯, 제 의도를 가장 잘 실현해주는 캐릭터였던 거죠. 스트리트 패션부터 오뜨 꾸뛰르(맞춤제작의상)까지 소화하는. 그러다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소셜미디어에서 나름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됐고요. (※작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현재 약 26만 명에 이른다) 뭣보다 저의 또 다른 자아를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고요.”-눈도 코도 없는 캐릭터를 왜 이렇게들 좋아할까요.“보시는 분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기 때문 아닐까요. 물론 제가 그릴 땐 분명한 ‘의도’가 들어가 있어요. 모든 작품 속 수수걸은 다 각각의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죠. 얼굴에서 드러나지 않는 기분이 자태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어요. 전 그게 훨씬 ‘패션스럽다’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어떤 느낌을 받느냐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니까요. 자기만의 선(線)을 지니고 있지만, 항상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죠.”-동양적인 분위기가 짙다는 인상도 받았어요.“애초에 어떤 피부색이나 특정 문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는 아니지만, 제가 한국인이니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배어나긴 하겠죠. 그런데 그런 점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최근 워낙 세계적으로 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잖아요.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들이 케이팝 뮤지션들을 서로 모셔가려고 하니까요. 아무래도 패션은 서구사회가 주류다 보니 과거엔 묘한 우월감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쪽에서도 우리를 ‘리스펙트(존중)’하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지금까지 함께 한 협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는 어딘가요.“아무래도 이쪽 일을 하는 계기가 된 블루밍데일스죠. 첫 문을 열어준 곳이기도 하고, 일도 참 깔끔하게 했죠. 좀 다른 이유로 화장품 브랜드인 ‘끌레드뽀 보떼’와의 협업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 로스앤젤레스 공항 면세점에서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행사를 했는데, 한 중국인 소녀가 찾아왔어요. 자긴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부모님은 의사가 되라고 강요한다며. 제 작업을 보면서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도전하겠다는데 좀 뿌듯했어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열정이면 뭘 해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과일이나 음식 재료로 만든 수수걸 드레스도 놀라웠어요.“신세계와 협업한 캘린더 프로젝트였죠. 사실 꽃을 좋아해서 생화를 주로 쓰는데, 신세계는 백화점 브랜드니까 ‘계절과 식탁’이란 이미지를 만들기엔 그런 소재들이 유용하다고 봤어요. 뭔가를 표현할 때 주제가 중요하지, 작업 방식이나 형식엔 구애받지 않는 편이에요. 직접 손으로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디지털 작업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때도 있거든요. 요즘은 개인적으로 세라믹(자기)에 관심이 많아서, 이를 통해서 수수걸을 형상화하기도 해요. 아직 준비 단계지만, 조만간 개인전도 선보일 계획입니다.”-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게 여기는 가치는 뭘까요.“음…, 딱 한 가지를 고르기는 무척 어렵네요. 일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어야겠죠. 아까 수수걸이 눈코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활동 초기에 수수걸의 생김새를 바꾸길 요청하는 업체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그게 수수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본질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걸 이해해주시는 회사와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이건 커머셜한(상업적인) 협업이기도 하잖아요. 때문에 커뮤니케이션도 무척 중요합니다. 제 고집만 피우지 않고 의견을 잘 청취하고, 또 제 생각을 긍정적으로 잘 전달해야 최선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궁금하네요.“트렌드를 읽어내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단순히 패션 유행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각광받던 소셜미디어를 적절하게 이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지금 유튜브가 유행이라면 그걸 즐기는데 그치지 말아야 해요. 이걸 이용해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거죠. 무조건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란 얘기는 아니에요. 자신이 가진 걸 어떻게 새로운 방식과 결합시켜서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한국의 경직된 사회문화가 그런 창의성을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 같아요. 분명히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젊은 사람들이 회사 관두고 창업하겠다고 하면 다 말리는 분위기잖아요. 외국에선 오히려 해보라고 응원하는 분위기인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면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뭐든 해봐야 결과도 나오는 거니까요. 다만 그 도전이 뭘 위한 것인지는 잘 판단해야 할 거 같아요. 회사생활 힘드니까 관두고 싶다 같은 것이어선 안 돼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준비 없는 도전은 용기가 아니라 무책임한 거죠. 그런 면에서 사회적 분위기만 탓해서도 안 된다고 봐요.”-작가님이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요.“돈이죠, 돈. 하하. 농담입니다. 물론 프리랜서로 나설 땐 어느 정도 수익 창출이 가능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요. 그런데 말이 좀 이상하지만, 꾸준하게 노력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꾸준함이에요. 왜 공부도 계속하는 사람이 결국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세상에 하는 것마다 성공하는 천재가 몇이나 되겠어요. 천재도 그렇게 운이 따르진 않을 거 같아요. 저도 가방 사업을 포함해 실패한 게 많죠. 하지만 그걸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가 되든 계속해봐야죠.”-앞으로 수수걸 앞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글쎄요. 앞일은 정해진 게 없으니까요. 다만 최근엔 파크 하얏트 같은 호텔이나 롤스로이스 같은 자동차, 삼성전자 등 패션 이외의 브랜드와도 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제는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트렌드 세터(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로 자리 잡은 거죠. 아, 조만간 수수걸의 남자친구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수수보이쯤 되겠죠? 그간 팬데믹 탓에 해외에 많이 나가질 못했는데, 다시 저와 함께 세상 곳곳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김 작가를 만난 뒤 ‘부캐(부 캐릭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봤다. 사실 부캐란 말이 아니어도 사람은 원래 여러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성격유형검사)도 할 때마다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듯, 우린 굳이 ‘부(副)’를 붙이지만 실상은 어느 게 본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게 본캐이든 부캐이든,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끈기 있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김 작가는 “패션광고회사에 다닐 때 기술적으로 실력 있는 작가들을 여럿 봤는데,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는 많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물론 그게 줏대가 될지 아집이 될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마저 소중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 귀하게 여겨줄까. 꿈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가 꾸는 것이다. 그걸 깨달아야 비로소 꿈을 향한 출발점에 설 수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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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회사원이 세계적 패션일러스트레이터로…한 청년작가의 당찬 도전[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당신이 열정의 대상이라면 창문을 박차고 뛰어내려라. 열정을 느낀다면 그것에서 도망쳐라. 열정은 지나고 지루함은 남는다.”(패션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 MZ세대에게 ‘부캐’는 이제 일상용어다. “부(副) 캐릭터”의 줄임말인 부캐는 원래 게임에서 주로 쓰지 않는 보조적 캐릭터를 일컫는 신조어. 이게 TV예능 등에서 기존 정체성과 다른 두 번째 인격이란 의미로 쓰이더니, 개그맨 김경욱의 ‘다나카’처럼 부캐가 도드라지는 경우도 잦아졌다. 요즘은 일반인도 유튜브 등에서 부캐로 활동하는 이가 적지 않다. 패션업계에도 이런 부캐와 함께 세계적 관심을 받는 젊은 한국인 아티스트가 있다. 패션일러스트레이터 김재석 작가(36)다. 패션 일러스트란 카메라로 찍는 패션사진처럼 그림으로 그린 화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수수걸’은 일종의 부캐이자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수수걸은 불가리 까르띠에 피아제 같은 명품브랜드는 물론 삼성 현대 신세계 등 국내외 기업과 협업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패션 전공도 아니고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던 김 작가는 어떻게 글로벌 패션·광고계가 주목하는 특급 패션일러스트레이터가 됐을까.-패션업계에선 유명하지만, 아직 생소할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하하, 당연하죠.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죠.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김재석이라고 합니다. 열 살 때 호주로 이민 가서 UTS(시드니공과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우연히 한국에서 작게 여성가방 사업을 시작했는데, 브랜드 이름이 ‘수수(SUSU)’였어요. 가방 홍보하려고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당시 그림에 등장한 여성캐릭터가 수수걸의 모태가 됐습니다. 지금은 수수걸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원래 전공이 패션은 아니군요.“네,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관심 많았지만, 호주는 패션 분야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에요. 그땐 본격적으로 패션에 뛰어들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인테리어 쪽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졸업 뒤 1년 정도 호주 인테리어 회사를 다녔는데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패션 선진국인 한국에 왔어요. 지금도 부모님은 ‘너 하는 일 계속 하면 밥 먹고 살 순 있는 거니’라고 하시죠, 하하.”-부모님은 패션 작가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으셨나 봅니다.“워낙 미술을 좋아해서 비슷한 계통의 일을 하리라 짐작은 하셨던 것 같아요. 다만 패션 쪽으론 문외한이시라, 제가 아니었다면 이쪽에 관심은 없으셨겠죠. 그래도 자식이 하고 싶은 걸 막거나 강압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거라면 하고 살아야지’라고 믿고 지켜봐주시는 분들이에요.”-왜 호주가 아닌 한국에서 가방브랜드를 론칭한 건가요.“호주에선 10대 남자라면 럭비 같은 스포츠가 가장 큰 관심사예요. 근데 전 스포츠는 젬병이었고, 패션 특히 가방에 관심이 컸어요. 가방을 시험 제작하고 싶은데, 호주는 디자인이 있어도 제작업체를 구하기 어려워요. 회사 관두고 한국에 놀러왔다가 시장조사를 좀 해보니, 한국은 동대문도 있고 관련 인프라가 워낙 잘 돼 있었어요. 적은 비용으로 창업하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죠.”-그때 탄생한 게 수수걸이군요.“정확하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가방은 어떻게든 만들었는데, 가진 돈은 없고 펀딩도 어려우니 광고할 방법을 찾기 힘들었어요. 패션 화보 찍을 예산조차 없었죠. 그래서 차라리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세상에 알려보자. 여성가방이니까 거기에 맞는 모델을 창조하자는 의도였어요. 가상의 인물인 수수걸이 가방을 매고 생활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 스토리를 알려보고 싶었습니다.” -가방사업은 그리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네, 역시 돈이 없으니…, 하하. 첨부터 모험이라 여겼기 때문에 크게 낙담하진 않았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하는 마음이었죠. 물론 잘 됐으면 브랜드를 키워 갔겠지만, 패션 쪽으로 경력이 없으니까 큰 기대는 하질 않았거든요. 당시엔 거창하게 ‘도전’한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내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겼죠. 그걸 계기로 패션 일러스트란 또 다른 문이 열린 거니까요.”-자신의 천직을 찾는 계기는 된 거군요.“그렇죠. 뭔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걸 직업으로 하는 건 전혀 다른 거니까요. 하지만 그때도 패션 일러스트가 ‘돈’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사실 패션을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건 1950, 60년대 방식이에요. 실제 모델과 사진, 영상이 대세니 그림은 한물 간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업 작가는 꿈도 못 꾸고, 한국에서 패션 관련 회사에 취직을 준비했죠. 다행히 디자인 전공에 가방브랜드 론칭 경험이 있고, 영어가 가능하다는 게 플러스 점수를 받아서 패션광고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5년 정도 회사를 다녔다던데 당시엔 작품 활동은 안 한 겁니까.“정말 그땐 취미생활에 가까웠어요. 한국에서 회사생활은 어디라도 힘들겠지만, 패션광고 쪽은 장난 아니거든요. 평일엔 거의 매일 야근이어서, 짬 낼 시간은 주말에 잠깐 뿐이었어요. 대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보니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죠. 수수걸의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이때 어느 정도 완성된 거 같아요. 그렇게 만든 작품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지인들과 공유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백화점체인 ‘블루밍데일스’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진짜 깜짝 놀랐죠.”-경력도 없는 신인을 해외의 유명회사가 어떻게 알아봤을까요.“그게 소셜미디어의 무서운 점인 거 같아요. 블루밍데일스가 협업했던 게 2010년인데, 이미 그때 외국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이 꽤 자리 잡고 있었어요. 블루밍데일스도 그해 크리스마스 캠페인 프로젝트를 기성작가가 아닌 신선한 아티스트와 하려고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운 좋게 저한테 기회가 온 거였죠. 경력이 부족한데도 작품 그 자체로 평가하고 작가의 창의성을 적극 반영해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은 겁니까.“전혀 아니에요. 회사를 몇 년은 더 다녔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블루밍데일스와의 작업 결과물이 반응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신데렐라처럼 인생이 바뀌진 않았어요. 여전히 아직 검증 안 된 신인작가인 건 그대로였죠. 다만 근사한 프로젝트를 해냈으니, 제 커리어에 좋은 주춧돌 하나를 잘 놓은 거죠. 제 입장에서도 이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단 걸 배웠고,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넥스트 스텝(다음 단계)’을 준비할 무기를 마련한 셈이었고요.”-요즘 세대 표현처럼 ‘노예 탈출’을 꿈꾼 건가요.“하하, 어느 정도 맞는 말이네요. 아시겠지만 패션 쪽이 유명 디자이너나 모델이 아닌 이상, 엄청난 박봉이거든요. 일개 사원은 거의 ‘열정 페이’만 받고 일하는 수준이죠. 근데 매일 새벽에 녹초가 돼서 집에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이러다 빨리 죽겠구나 덜컥 겁도 났어요. 호주에서 직장을 다녀봐서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사회생활은 정말 영혼을 갈아 넣는 수준인 거 같아요. 물론 장점도 있지만, 의사결정 구조 같은 것도 좀 답답한 부분이 많고요. 패션 일러스트라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회사를 관둔 첫 번째 이유지만, 일이 편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네요.”-지금도 여러 기업과 협업을 하잖아요. 한국과 외국 회사들이 많이 다릅니까.“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한데, 각자 장단점이 있긴 해요. 한국 회사들은 정말 일처리가 시원시원하죠. 일을 우선해서 휴일에도 의사소통이 잘 되고요. 해외 기업은 마감 직전인데도 연락이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다만 한국은… 윗선의 입김이 너무 세다고 할까요. 담당자들과 다 합의해서 진행하던 일도 임원 같은 분들이 틀어버리면 다 ‘리셋’되는 경우들이 생겨요. 물론 결정권자의 의견이 중요하지만, 현장 목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전업 작가가 된 뒤엔 그런 스트레스는 줄었겠네요.“그 역시 장단점이 있죠. 확실히 수입은 회사 다닐 때보다 낫고, 스스로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죠. 하지만 업계 트렌드를 꼼꼼히 체크하면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에요. 게다가 이젠 기업이 저의 고객이잖아요. 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클라이언트가 뭘 원하는지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해요. 오히려 시키는 대로 할 때보다 더 조심스러울 때도 많아요. 다행히 좋아서 하는 일이고, 협업을 하는 쪽도 제 작품이 맘에 들어 제안하는 거니까 직장인처럼 답답한 상황을 많이 겪진 않죠.” (하편에서 계속)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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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든 현실이 꿈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될까요” 걸그룹 페리블루[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넘어지고 쓰러져도 꺾이지 않는 청년’ 진도진 씨(상)▶‘넘어지고 쓰러져도 꺾이지 않는 청년’ 진도진 씨(하)“제가 원래 그리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내성적인 편이죠. 그런데 페리블루와 함께 하며 인생의 껍질 하나를 깨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를 향해 노력하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할까요. 그건 어디서도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멤버 슬) 청계천을 가끔 걷는다. 뚜벅거리다보면 광장시장 언저리에서 드문드문 마주치는 어르신이 한 분 있다. 지금껏 말을 건네 본 적은 없다. 다만 그때마다 혼자 지은 별명을 슬쩍 속으로 불러본다. ‘호루라기 봇짐 할배.’ 이유는 간명하다. 항상 괴나리봇짐 같은 걸 지고 입엔 호루라기를 문 채여서다. 지난달 말 서울 백암아트홀 연습실에서 걸그룹 ‘페리블루’를 만났을 때, 뜬금없이 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왜였을까. 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데. 그저 별명까지 지어놓고 얼굴 한 번 제대로 쳐다본 적 없구나 싶었다. 왜 그리 호루라기를 불어대는지 알아볼 맘도 없이. 그냥 성가셔서, 얼른 지나치고 싶었을 뿐. 우린 다들 서로에게 그러고 사는구나.어쩌면 페리블루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수없이 쏟아지는 걸그룹 보이그룹들. 스쳐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다. 물론 그들이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귀를 기울여야할 의무는 없다. 누군들 수없이 피고 지는 세상의 꽃들을 어찌 일일이 챙겨보겠나. 어쩌면 페리블루도 그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물론이죠. 우리 미래가 장밋빛만 가득하지 않다는 건 저희가 더 잘 알아요. 소속사도 없이 활동하다보면 한계를 느낄 때도 적지 않고요.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각자 생계도 꾸려야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월세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죠. 근데 그게…,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나요?”(멤버 선아) 실제로 페리블루 멤버들은 삶을 꾸려가는 게 만만치 않다. 만화카페 알바, 일반 사무직 직장인, 보컬트레이너, 온라인 패션모델…. 그러다보니 함께 연습하러 모이는 건 일주일에 1, 2번 밖에 짬을 낼 수 없다. 그것도 퇴근한 뒤에야. 그렇게 보통 오후 10시쯤 모인 멤버들은 다음달 오전 5시에야 안무와 노래 연습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하룻밤 잠을 포기한 채 새벽버스가 다닐 때까지.“당연히 피곤하고 힘들죠. 근데 그거 아세요? 끝내고 아침 찬바람을 맞을 때 오히려 머리가 더 또렷해져요. 그날 연습이 잘 됐으면 만족스러워서, 뭔가 좀 잘 안 됐을 땐 어떻게 부족한 걸 채워야할지. 그 상쾌함은, 제가 뭔가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는 기분 같은 거예요.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멤버 혜영)페리블루 멤버 중에는 큰언니 진도진 씨처럼 아이돌 기획사 연습생 시절을 보낸 이들이 여럿 있다. 그들 역시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고 소속사를 나왔다고 한다. “죽을 만큼 힘들었죠. 근데 지금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진짜 죽을 만큼 힘든 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니 남은 힘을 더 집중해서 쏟아 부어 봐야죠.”(멤버 시호) 꽤나 다부지고 야무진 말투였지만, 실은 직접 마주한 페리블루 멤버들은 대부분 아직 ‘솜털도 덜 가신’ 친구들이다. 올해 백제예술대 K-POP과를 졸업했으니 대부분 20대 초중반. 놀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들인데, 너무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저희가 페리블루를 ‘취미 활동’으로 여겼다면 그래도 되겠죠. 근데 그렇게 대충 즐기는 거라면 보시는 분들도 금방 알지 않을까요. 멤버들이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각자 다를 거예요. 그런데 함께 땀을 흘리는 이유는 하나예요. 진짜 제대로 끝까지 해보자. 그 앞에 성공이 기다릴지 실패가 기다릴지는 누구도 모르죠. 그런데 결국 원했던 걸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은 남기지 말아야 하니까요.”(멤버 선아)“인생 전체로 봤을 땐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죠. 하지만 걸그룹으론 그리 많은 기회가 남아있는 건 아니에요. 언제까지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얘들이 해봐야 어디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게 그리 쉬울 리도 없고요. 하지만 언젠가는 ‘페리블루는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는 친구들이야’라는 얘길 듣고 싶어요.”(멤버 시호)늦은 시간 연습실을 나서며 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페리블루 네 글자를 치고 뮤직비디오를 다시 찾아봤다. 연습실에 오기 전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2가지 생각이 떠올랐었다. ‘기대보다 음악이 좋다’와 ‘주변 여건이 지금보다 나았다면.’어둔 밤 여전히 불 켜진 연습실을 다시 올려다봤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페리블루를 관심 깊게 바라볼진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을 만나기 전 떠올렸던 생각에서 한 가지, ‘기대보다’는 빼기로 했다. 페리블루는 ‘음악이 좋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청계천 봇짐 할배는 누군가 가까이 있으면 절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졌을 때 홀로 단발마처럼 빽 하고 불었다.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듯. 어쩌면 어르신에게 호루라기는 힘든 봇짐을 이겨내는 자신을 위한 응원도구가 아니었을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남들이 뭐라건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해. 그렇게 걸어가는 인생은 절대 누추하지 않을 테니.페리블루는 그 소중한 호루라기를, 이미 찾았는지도 모르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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