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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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상훈 기자입니다.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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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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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침도 오래 하면 병… 8주 넘기면 치료 받으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20대 후반 남성 이명훈(가명) 씨는 새벽 조깅을 즐긴다. 언젠가부터 숨이 조금 차는 느낌이 들더니, 이윽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앓고 있던 알레르기 비염이 원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따로 조치하지는 않았다. 기침이 더 심해졌다. 게다가 기침할 때 약간 쌕쌕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 씨는 강노을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를 찾았다. 강 교수는 천식을 의심했다. 폐 기능 검사와 기관지 확장제 반응 검사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 천식으로 진단됐다. 이 사실도 모르고 이 씨는 오랫동안 비염 치료만 했던 것이다. 이 씨는 천식 흡입제를 처방받아 사용했고 얼마 후 기침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 강 교수는 “이 씨처럼 만성기침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치료하다가 증세를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만성기침에 대해 알아두자 의학적으로 기침 그 자체는 질병이 아니다. 외부에서 해로운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폐와 기관지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몸이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침을 통해 이물질을 배출하는 것. 강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기침이 1, 2주 이어진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침을 급성기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질병과 무관하다. 질병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침은 8주 이상 지속되는 만성기침이다. 외부 자극이나 이물질이 침투하지 않았는데도, 혹은 기침이 발생할 요인이 없는데도 기침이 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성인 100명 중 3∼10명 비율로 만성기침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성기침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비염이 원인이 된 만성기침(상기도기침증후군)이 있는가 하면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폐질환이 있을 때, 혹은 흡연을 오래 했을 때도 만성기침이 나온다. 백일해같이 어렸을 때 앓았던 호흡기 감염증 후유증으로 드물게 만성기침을 얻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는 약물 부작용으로도 만성기침이 생길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기침도 있다. 이를 비특이적 만성기침이라고 한다. 이런 환자는 대부분 ‘기침 과민성’이 높다. 목과 기관지에 있는 기침과 관련된 신경이 과도하게 예민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 경우 △온도 변화 △자세 변화 △음식 섭취 △향수 △먼지 △말하기 같은 사소한 자극만 받아도 기침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기침을 많이 하게 된다.● 원인에 맞춰 정확한 치료 필요 60세 여성 박정순(가명) 씨는 기침이 심해 요실금 증세까지 생겼다. 기침 때문에 밤에 잠에서 깰 때도 많았다. 박 씨는 비염 증세도 없고 흡연도 하지 않았다. 천식 검사도 했지만 음성이었다. 그런데 왜 기침을 심하게 하는 걸까. 강 교수는 기침이 나는 상황에 주목했다. 교회 지하에서 성가대 일을 할 때마다 기침이 나왔다. 지하철역에 들어갈 때도 기침했다. 이처럼 지하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는 하루 종일 기침을 해 댔다. 일단 기침을 하면 발작적으로 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비특이적 만성기침으로 진단했다. 특정 상황에서 기침 과민성이 높아지는 유형으로 판단했다. 비특이적 만성기침일 때는 ‘기침 센서’가 뇌로 보내는 신호를 차단하는 약물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성분명 코데인)나 우울증 계열 약물을 쓴다. 박 씨 또한 이 약물을 썼고, 그 결과 증세가 좋아졌다. 강 교수는 “약물을 장기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효과가 나타나면 중단했다가 만성기침이 재발하면 다시 쓴다”고 했다. 40대 남성 강정훈(가명) 씨도 만성기침 때문에 강 교수를 찾았다. 강 씨는 주로 밤에 기침이 심했다. 숨이 차기도 했고, 쌕쌕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강 교수는 강 씨에 대해서도 천식을 의심했고, 관련 검사를 진행한 결과 천식 양성 판정이 나왔다. 강 교수는 천식 흡입제를 처방했다. 이 약물은 직접 폐로 전달돼 부작용을 줄이면서 증세를 완화해 준다. 실제로 강 씨 또한 흡입제를 사용한 뒤 1주일 만에 기침 증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강 교수는 “일반적으로 천식 약물을 쓰면 3주째 정도부터 약효가 나타나며 4주 차 정도가 되면 뚜렷하게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증세가 좋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약물을 끊으면 천식 증세가 악화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약물을 잘못 쓴다면 기침은 사라지지 않는다. 50대 남성 김정현(가명) 씨가 그런 사례다. 김 씨는 동네 의원에서 천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흡입제를 처방받아 썼다. 그런데 기침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목에 이물감도 느껴졌다. 강 교수가 김 씨를 진단한 결과는 달랐다. 김 씨는 비특이적 만성기침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기침이 멎지 않았으며 이물감 같은 증세는 흡입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강 교수는 흡입제를 끊게 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기침이 잦아들었고 다른 부작용도 사라졌다. ● 천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천식에 의한 기침인지, 비특이적 만성기침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 다만 기침의 양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일반인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천식에 의한 기침이라면 숨이 차고 쌕쌕거리는 느낌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숨 차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점을 더 살펴야 한다. 주로 환절기나 야간에 기침이 더 심해진다는 점을 알아두자. 감기에 걸린 후 천식 기침이 생겨날 수 있다. 만약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한 달 이상 기침이 지속된다면 천식 기침이 시작됐다고 의심해야 한다. 천식 환자는 기도 점막이 취약하다.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기도 염증이 더 증가하고 예민해진다. 이 경우 천식 흡입제를 빨리 써야 기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식도역류질환이 원인이라면 만성기침과 함께 속쓰림 증세가 나타난다. 좀 심할 경우 식도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비염이 원인이라면 코에 알레르기 증세가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비특이적 만성기침은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단 시간적, 계절적 관련성이 없다. 하루 종일 기침이 나올 수도 있고, 며칠 동안 기침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목이 간질간질하다가 기침이 시작된다. 발작적으로 기침이 나올 때가 많다.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잘 멈추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한 시간 넘게 기침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침이 심해지면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한다. 일반 동네 의원에서는 천식 여부를 정밀하게 진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증세만 가지고 흡입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강 교수는 “일주일 정도 흡입제를 처방받아 써 본 다음에도 효과가 없다면 상급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민감한 목, 이렇게 관리하자 만성기침은 원인에 따라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일단 기침 과민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첫째, 기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강 교수는 “폐질환 때문에 가래가 있는 기침이 아니라면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더라도 헛기침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둘째,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쉰다. 이와 함께 복식호흡을 하는 것도 과민성을 막는 방법이다. 평소에 자주 물을 마셔 주는 것도 좋다. 셋째, 외부의 민감한 자극 자체를 피하려고 해야 한다. 흡연은 물론이고 간접흡연도 피하는 게 좋다. 멘톨처럼 목에 화끈한 느낌이 들면서 건조하게 하는 것은 먹지 않도록 한다. 다만 단 성분이 있는 사탕은 기침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먹어도 무방하다. 평소 이같이 노력해도 목이 가려우면서 기침 충동이 생길 수 있다. 이때도 기침을 하지 않으려는 2차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팔로 입을 막는다. 그 상태에서 침을 삼키거나 물을 마신다. 숨을 5∼10초 동안 참는다. 다음에는 최소한 30초 동안 코로 천천히 숨을 쉬도록 한다. 기침하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팔에서 입을 떼고 코로 부드럽게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호흡한다. 만약 기침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면 이 과정을 2회 이상 반복하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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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경색 후유증, 운동으로 극복… 제2의 인생 즐긴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8년 12월이었다. 갈빗집을 운영 중인 권영국 씨(68)는 연말 장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갑자기 피로감이 심해졌다. 단체 손님이 많아서 그런 것이려니 했다. 다음 날에도 피곤했지만 다른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밥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다. 그러니 피곤해서 그런 것일 뿐이라 여겼다. 첫 증세가 나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피로도는 더 커졌다. 손님 두 명이 세 명으로 보이는, 이른바 복시(複視) 증세도 나타났다. 12월 27일이 됐다. 왼손으로 고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칼질을 하는데, 툭툭 끊어질 뿐 반듯하게 썰리지 않았다. 고기를 잡은 왼팔에서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사장님, 이상하다”고 했지만 권 씨는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뇌경색(허혈성 뇌졸중) 증세였다. 하지만 당시 권 씨는 뇌혈관이 막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좀 쉬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권 씨는 가게 뒷정리를 아내에게 맡기고 1시간 일찍 퇴근했다.● 한밤중 뇌경색 응급 시술 권 씨는 귀가한 후에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축축 처지는 기분이 들면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씻어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 일어설 수가 없었다. 뒤늦게 식당 정리를 마치고 들어온 아내의 성화에 겨우 얼굴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오전 2시경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특히 몸 왼쪽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한쪽 마비가 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서 아내는 펑펑 울었다. 권 씨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두려웠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병명이 확인됐다. 뇌경색이었다. 권 씨를 시술한 김치경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당시 바로 조치하지 않았다면 평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 심한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단 대뇌로 가는 오른쪽 경동맥이 심하게 좁아져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뇌동맥에서 약 3mm 크기의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은 대뇌동맥 절반 정도를 막고 있었다. 김 교수는 우선 스텐트를 설치해 경동맥 협착을 해결했다. 이어 대뇌동맥을 따라 들어가면서 혈전을 제거했다. 야간에 이런 응급 시술을 하려면 최소한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시술에 투입될 의료진이 모두 모이는 데만 꽤 많이 걸린다. 권 씨는 운이 좋았다. 김 교수팀이 막 다른 환자 시술을 끝낸 시점에 응급실에 갔던 것. 덕분에 곧바로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고 2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었다.● “고혈압이 뇌경색 유발했을 것” 진단 권 씨가 일할 때 몸 한쪽이 마비된 거나 복시가 나타난 것은 뇌혈관이 막히면서 나타난 증세였다. 반면 통증이나 어지러움증 같은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작은 뇌혈관이 막히면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도 있어 자칫 환자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병원에 가야 할지, 안 가도 될지 환자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얼굴 마비, 팔다리 마비, 언어 장애 등 세 가지 증세에서 한 가지만 나타나더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시기를 놓쳐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발생하면 의식을 잃거나 호흡 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권 씨는 어쩌다 뇌경색에 걸리게 된 걸까. 그는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갈빗집을 운영하지만 기름진 음식을 별로 먹지도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산악자전거와 테니스는 10년 넘게 지속할 정도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권 씨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가족 중에 뇌경색 환자도 없었다. 친구들도 권 씨가 쓰러지자 ‘불가사의’라 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원인이 보인다. 권 씨는 고혈압 환자였다. 중증까지는 아니지만 5년 넘게 고혈압 약을 먹고 있었다. 권 씨는 또,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을 진행할 때는 빨리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김 교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뇌경색을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고혈압은 당뇨, 고지혈증과 함께 뇌경색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 병들로 인해 동맥경화증이 발생하고, 그 결과 혈류가 막히는 것이다. 조급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권 씨 성격은 직접적으로 뇌경색을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혈압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 6개월간 힘겨운 병원 재활치료 막힌 혈관을 뚫었다고 해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뇌 손상이 발생한 부위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주변 기능을 강화해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깨나 무릎 등 근골격계 통증 같은 후유증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술 후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한다. 권 씨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팔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등 뒤로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왼쪽 다리에도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매주 2회 병원을 찾았다. 팔을 비틀고 동작 범위를 넓히는 재활치료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권 씨는 “평생 열심히 일해 이제 살 만해졌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빨리 회복해서 삶을 즐기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6개월 재활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전보다 훨씬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김 교수는 “병원 재활치료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환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스스로 재활훈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몸 상태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권 씨의 경우 팔다리에 힘이 덜 느껴졌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식당 일을 다시 할 정도로 건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을 때마다 발이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려 했다. 팔에는 꽤 힘이 들어갔지만 그나마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약간이라도 무게가 있는 물건은 들 수 없었다. 권 씨는 이를 악물고 자신만의 재활훈련에 돌입했다. ● 3년 만의 업무 복귀, 달라진 삶 병원 재활치료를 받는 중에도 야외에서 걷기를 했다. 2020년 들어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한 해 동안 눈만 뜨면 동네 안양천 공원으로 갔다. 매일 2시간씩, 1만5000보 정도를 걸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걷다가 점차 속도를 올렸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1년 동안 그렇게 걸었더니 체력이 좀 붙었다. 하지만 근력은 전과 같지 않았다. 2021년, 운동 장소를 헬스클럽으로 바꿨다. 한쪽 마비 후유증 때문에 벤치프레스를 해도 역기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권 씨는 전문 트레이너에게 주 3회, 40분씩 어깨, 가슴, 등, 다리를 비롯해 모든 부위 근육을 키우는 교육을 받았다. 트레이너와의 교육시간이 끝나면 추가로 1시간 동안 근력 운동을 복습했다. 이와 별도로 1시간씩 트레드밀 위에서 걸었다. 2022년에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이어 갔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에 매진했다. 마침내 팔과 다리에 힘이 붙었다. 권 씨는 “3년째가 되니까 힘이 떨어지거나 약한 마비 같은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몸이 좋아지자 다시 식당에 나갔다. 3년 만의 출근이었다. 권 씨는 “손님을 다시 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이제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옛 골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도 끼워 달라고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골프를 자주 즐긴다. 물론 골프장에서도 카트를 타지 않고 내내 걷는다. 이 경우 1만6000보를 걷게 된다. 요즘에도 권 씨는 주 5일 이상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운동한다. 이제 운동을 적당히 해도 되지 않을까. 권 씨는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가끔 여행을 가서 운동을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다시 팔과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는 것이다. 권 씨는 “재활훈련은 끝났지만, 평생 운동을 해야 뇌경색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사실 지금도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다. 마비됐던 왼쪽 팔 힘이 여전히 약한 것. 김 교수는 “100% 회복하는 경우는 솔직히 드물다. 마비 증세가 없고, 80% 이상의 힘을 되찾았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라고 평가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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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 치매 걱정되면 고혈압 먼저 잡아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항산화제 영양제만 꾸준히 먹는다고 해서 치매를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특정 운동을 하거나 인지 훈련 프로그램을 받아도 치매를 막을 수는 없죠. 진짜 예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치매 예방법에 대한 박지은 서울대병원 뇌 건강 클리닉 교수(정신건강의학과)의 대답이다. 박 교수는 “최근 30여 년간 각종 치매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한 가지 영양소나 활동만으로는 장기적인 치매 예방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세계적으로 다중요인(multi-domain)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으며 임상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를 유발하는 혈관성 위험, 식단, 운동, 인지 활동, 사회 활동, 우울증 같은 다양한 요인을 전방위로 관리하는 것이다. 박 교수 또한 9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2월 임상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적 특성에 맞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그는 “치매는 노화 과정에서 다양한 기전(機轉·발생 원리·mechanism)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이 모든 요인을 반영한 예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40대 때부터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라고 권했다. ● 중년 고혈압, 치매의 가장 큰 위협 어떤 사람이 노년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을까. 40대 이후 중년이라면 고혈압, 비만, 과음이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입증됐다. 최근 국제적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는 이것 말고도 외상성 뇌 손상 경험과 청력 저하를 치매 발병률을 높일 수 있는 중년의 새로운 위험으로 꼽은 논문이 실려 시선을 끌었다. 이 중에서도 고혈압에 특히 신경 쓸 것을 박 교수는 당부했다. 젊었을 때 고혈압이 생긴 후 수십 년 방치하면 혈관이 딱딱하게 변형될 수 있다. 이 경우 혈관성 질환 위험이 커지면서 치매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노년기로 접어든 후 단기간에 생긴 고혈압은 치매와는 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노년기에는 저혈압이 치매 위험을 더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얼마나 오래 혈관 건강을 방치했느냐가 핵심이다. 마찬가지로 30대도 고혈압을 반드시 잡아야 나중에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만이나 음주도 비슷한 원리로 각종 중증질환을 유발하면서 노년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 최근 노년 치매를 높이는 원인으로 밝혀진 청각 저하도 미리 대처해야 한다. 박 교수는 “청각 저하가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청각 저하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면서 치매 위험을 높인다고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40대 이후에는 이어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소음을 멀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당부했다. 외상성 뇌 손상의 경우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유전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러 연구 결과 부모 중에 치매 환자가 있으면 그 자식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2배로 커진다. 치매 가족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치매에 경각심을 갖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매 예방 식단 시도해야 치매 예방 식단을 보통은 마인드(MIND) 식단이라고 한다. 지중해식 식단과 심혈관 질환 예방 식단을 활용해 뇌 건강에 가장 잘 맞도록 고안한 식이요법이다. 박 교수는 이를 한국인의 식생활에 반영해 수정한 뒤 환자들에게 시행하고 있다. 총 12개의 항목으로 지켜야 할 것 9개와 피해야 할 것 3개로 구성돼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루에 한 끼 이상은 현미, 보리, 귀리, 조, 퀴노아, 렌틸콩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는다. 둘째, 매일 김치를 제외하고도 채소 반찬을 두 가지 이상 먹는다. 셋째, 매일 1회 이상 쌈이나 샐러드같이 익히지 않은 녹색 채소를 먹는다. 넷째, 좋은 단백질 원천인 콩은 거의 매일 먹는다. 검정콩, 강낭콩, 완두콩, 렌틸콩 혹은 콩으로 만든 두부나 두유는 매주 4회 이상 먹는다. 다섯째, 땅콩, 호두, 아몬드, 잣, 브라질너트, 마카다미아,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는다. 뇌세포를 이루고 있는 지질 성분을 좋은 지방으로 채울 수 있다. 여섯째, 매주 1회 이상은 생선을 먹는다. 등 푸른 생선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어도 오메가3를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일곱째,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보다는 닭고기 오리고기같이 흰 살코기를 먹는다. 여덟째, 당뇨가 없다면 과일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먹는다. 너무 달지 않은 사과, 배, 감귤류, 딸기, 블루베리 등이 좋다. 아홉째, 나트륨 함량이 높은 국, 찌개, 젓갈류와 과자, 분식 같은 음식은 피하고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피해야 할 3가지도 알아두자. 첫째, 달콤한 빵, 케이크, 과자, 파이 같은 디저트류는 주 3회 이하로 줄인다. 당이 첨가된 주스, 탄산음료는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 둘째, 포화지방이 많은 튀김류는 주 1회 이하로 줄인다. 셋째,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는 먹더라도 주 2회 이내로 줄인다. 박 교수는 “우선은 자신의 식단에 나오는 음식 목록을 일주일 정도 작성해 본 뒤, 마인드 식이 지침에 따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당장 싹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씩 시도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 치매 막는 운동법 알아두자 박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는 활동 중에서 효과가 가장 잘 입증된 것이 운동”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운동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 많이 추천된다. 노년기로 접어들면 근(筋)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중년부터 미리미리 근력 운동과 유연성 운동을 해 두는 게 좋다. 한국인이 많이 하는 걷기 운동은 어떨까. 박 교수는 “중등도(中等度) 이상 강도라야 한다”고 했다. 천천히 걷는 산책 정도라면 치매 예방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 호흡이 약간 가쁘고 심장 박동이 최대심박수의 50∼70%여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이른바 ‘파워 워킹’ 수준으로 빨리 걸어야 한다. 운동은 매일 30분씩 혹은 일주일에 150분 이상 해야 한다. 나눠서 하든 몰아서 하든 운동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박 교수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하루 8000보 이상 걸을 것을 추천했다. 빨리 연속으로 걷는다면 50∼60분에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치매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운동할 여력이 없다면 일상생활에서라도 운동할 기회를 찾으려 해야 한다. 가령 출퇴근할 때 한두 정거장 전에서 내려 빨리 걸으면 큰 도움이 된다. 또 평소 걸음 수를 측정한 뒤 8000보에 맞춰 서서히 목표치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뇌 ‘인지 보유고’를 늘려야 박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 ‘인지(認知) 보유고’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창고가 크면 보관하는 물건도 많아지고, 설령 한두 개 물건이 빠져나가더라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뇌의 인지 창고를 키워 놓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인지 보유고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박 교수는 다양한 활동을 제안했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늘리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인지 기능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통은 나중에 치매 위험을 높이는 중년 우울증도 예방할 수 있다. 소모임을 자주 갖는 게 이상적이지만 40대 이후 중년기는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려 하기보다는 기존 활동에 더 시간을 쏟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가령 동창 모임에 나간다면, 추가로 동창 모임을 기획하는 역할을 맡는 식이다. 아울러 은퇴 이후 인간관계를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인 중에서 누구를 지속적으로 만날 것인지, 무엇을 공유할 것인지 등의 고민과 함께 사회적 관계망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뇌를 충분히 쉬게 해 줘야 한다. 수면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깊은 단계 수면은 알츠하이머병의 직접적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못 자는 원인을 하나씩 교정하는 게 좋다. 이를테면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실제 자는 시간과 최대한 일치시키고 △낮 동안 햇빛을 보며 충분한 신체 활동을 하되 낮잠은 20분 이상 연속해서 자지 않으며 △커피, 녹차, 초콜릿 같은 카페인 함유 음식은 줄이거나 오전에만 먹고 △자기 전에 휴대전화나 TV를 시청하지 않는 식의 ‘수면 위생’을 지키라는 얘기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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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위기 ‘신음’ 아프리카-동남아를 더욱 푸르게

    극심한 가뭄과 홍수 같은 기후위기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상기후에 대비하는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 주민과 아동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동북부를 일컫는 ‘뿔 지역’에서는 4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가뭄과 홍수로 319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 불안과 건강 위험 등을 겪고 있다. 이에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비영리기구(NGO)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 아동 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는 개발도상국 주민들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고, 국내외에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및 에티오피아 정부와 함께 농가 피해가 큰 데베소 지역에서 ‘기후변화 대응력 강화 사업’을 벌였다. 45일 동안 산림위원회와 주민 1797명과 함께 나무 6만5000여 그루를 심었다. 지속 가능한 산림을 유지하기 위해 땔감을 조금 넣어도 화력이 좋은 고효율 스토브 340개를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또한 지역에 양묘장(養苗場)을 설치한 데 이어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묘목을 지급하고 지역 여성 중심의 양묘장 생산조합을 운영해 여성의 사회,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간다 오부텟 지역에서는 ‘주민 주도 숲 복원 및 관리 사업’을 펼쳤다. 주민 6007명을 대상으로 환경 보호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4회 진행했다. 양묘장 4개를 세우고 학교와 가정 등에 묘목 6만5210그루를 나눠줘 주민이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오부텟 주민 오켈로 찰스 씨(46)는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묘목 사업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양묘장은 지역사회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 숲 조성 사업은 베트남 까마우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함께 ‘아이오닉 포레스트 베트남 맹그로브 숲 조성 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맹그로브나무는 수질 정화력과 탄소 흡수력이 높아 탄소량을 낮추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지역 맹그로브 숲은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벌목돼 훼손된 상태다. 굿네이버스는 올해 말까지 맹그로브나무 약 12만 그루를 심는 데 이어 2026년까지 숲을 더 늘려 나갈 예정이다. 지역 주민에게는 산림 친화 양식장 운영을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나만의 탄소발자국 줄이기’ 실천 활동인 기후위기 대응 대국민 캠페인 ‘지구여행(지구를 구하는 나만의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카페 할아버지 공장’에서 7일까지 열리는 ‘지구여행 사진전’에서 굿네이버스 기후변화 대응 사업이 소개되고 배우 신혜선이 참여하는 오디오 도슨트, 스탬프 투어, 포토존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김중곤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굿네이버스는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피해를 최소화하고 아동 생존과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한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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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실내 공기 유지하려면… 환기만큼 효과적 방법 없어

    《현대인은 하루 중 80∼90%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고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실내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밖에 나가지 않고 창문을 닫은 채 에어컨을 오래 켜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실내 공기 질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내가 일상생활 대부분을 하는 곳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어떤 유해물질은 없는지, 이산화탄소가 기준보다 많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궁금해한다.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 공기 질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공기청정기를 틀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환기(換氣)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내 공기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방법과 환기의 중요성에 대해 전문가 2명의 설명을 들었다.》120만 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이낙준 이비인후과 전문의(사진)는 “실내 공기 속 미세먼지, 유해물질, 고농도 이산화탄소(CO₂)는 호흡기 질환을 비롯한 각종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실내 공기 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건강에 좋은 실내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면서 무엇보다 환기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실내 공기 질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내 공기 속 미세먼지와 유해물질, 고농도 이산화탄소는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실내로 유입되거나 요리, 청소를 하다 생기는 미세먼지는 천식이나 알레르기 질환, 감기,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 발병 확률을 높인다. 톨루엔,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은 백내장 발생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성 상기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로 꼽힌다. 사람이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불쾌해지면서 졸음이 오거나 두통, 어깨 결림,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임신부에게는 조산이나 아기 발달장애 원인이 될 수 있어 실내 CO₂ 농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내 공기 속 오염 물질이 독감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나.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 연중 증가하는 이유에는 실내 공기 질 저하도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감염은 바이러스나 세균 한 개체가 일으키지 않는다. 병원균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개체가 필요하다. 실내 공기 질을 관리해 병원균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개체 수를 줄여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실내 공기에서 미세먼지나 유해물질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도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미세먼지 때문에 염증이 생긴 호흡기는 병원균에 감염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실내 공기를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공기청정기와 환기다. 공기청정기도 중요하지만 실내 공기 질 악화를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활동은 여전히 환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적절한 환기를 하지 않는다면 실외보다 실내 공기 오염이 최대 100배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적절한 환기를 위해서는 아침 점심 저녁 한 번씩, 매 30분간 창문을 열어줄 것을 추천한다. 특히 요리나 청소 후에는 반드시 환기하는 것이 좋다. 장마철에는 실내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주 환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마음껏 열어 놓기도 힘들다. “그렇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0%가량 가구에서 미세먼지 탓에 환기 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세먼지 경보나 황사주의보가 발령된 경우 지나친 환기는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외 미세먼지나 황사는 실내 발생 미세먼지와 성분이 크게 달라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암이나 뇌 질환, 심장 질환을 일으킬 확률도 더 높다.” ―그렇다면 추천하는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환기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공기청정기로는 낮출 수 없다. 필터가 장착된 환기 설비 이용이 최선이다. 필터가 있는 환기 설비로는 외부 미세먼지나 황사가 유입돼도 적절히 환기할 수 있다. 이 같은 환기 설비가 없다면 하루 한두 번, 매 3분 이내 환기가 안전하다. 창문을 열어 환기한 뒤 물걸레질을 해서 방이나 거실 바닥에 붙은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뿌연 바깥공기 창문 못 열면… 연중 가동 환기 시스템 필수 팬만 도는 환풍기와 완전히 달라미세먼지-오염물질 거의 걸러내밀폐 공간-다중이용시설엔 필수 환기는 실내 공기 질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미세먼지 같은 적대적인 외부 환경은 창문을 열기 어렵게 만든다. 필터를 활용해 미세먼지 같은 외부 공기 속 오염물질을 거르고, 밖으로 나가는 공기에서 열을 회수해 쾌적하고 신선한 공기를 유입하는 열회수(熱回收) 환기 시스템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같은 환기 시스템은 계절에 상관없이 연중 사용 가능하고 에너지 소비량도 상대적으로 적은 환기 장치다.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사진)에게서 환기 시스템이란 무엇이고, 그 효용은 어떤 것이며 관리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문 환기 대안으로 환기 시스템이 거론된다. “오염된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이는 것이 환기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서 하는 환기는 바깥 공기가 깨끗하고 온도와 습도가 적당할 때만 가능하다. 환기 시스템은 단순히 팬(날개)만 돌아가는 환풍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특히 봄가을과 달리 여름이나 겨울에 창문을 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에너지 낭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열회수 환기 시스템은 실내 미세먼지,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 포름알데히드 등 오염물질과 CO₂ 농도를 바깥 공기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도 버려지는 열을 회수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실내외 공기 상태를 살펴보면서 자동으로 움직여 연중 24시간 쓸 수 있다. 버려지는 공기에서 열을 회수하고, 봄가을 황사나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필터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밀폐되기 쉽거나 다수가 이용하는 실내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기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창문 환기가 어려울 때 공기청정기만 트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환기와 공기 청정은 다른 개념이다. 공기청정기는 실내 공기를 재순환시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데 호흡, 취사에서 발생하는 CO₂는 없애지 못한다. 공기청정기만 가동한 교실에서 CO₂ 농도가 1000ppm(1ppm은 100만분의 1·0.0001%)을 넘어 집중력이 저하돼 학습 효과가 현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 바깥 공기를 유입시켜 CO₂ 농도를 떨어뜨리고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이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춰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환기 시스템을 찾아볼 수 있나. “환기 시스템은 밀폐되기 쉽거나 다수가 이용하는 실내 공간에는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건물은 고(高)단열, 고기밀화 경향으로 문틈이나 창틈으로 바깥 공기가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1조에 따라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나 지하철역, 판매 및 교육 시설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은 의무적으로 환기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일정 면적 이상일 때만 설치가 의무화돼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 2006년 이후 지은 아파트에는 대부분 환기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만 기능이 떨어지는 저가(低價) 제품이 많고 관리 방법을 알려 주지도 않아 아예 설치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환기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덕트나 제품 내부에 먼지가 쌓여 있어 정비하지 않은 채 작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초창기 제품은 소음이 큰 데다 성능도 떨어졌을 확률이 높아 확인이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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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장 투석 견디며 임신과 출산… 두 아이 엄마가 되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주부 최은영 씨(50)는 중학생 시절 신(腎)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단백뇨가 나오고 몸이 부으며 저(低)알부민혈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당시 최 씨의 체중은 62kg이었다. 의사는 체중부터 빼라고 했다. 이뇨제를 먹어 가면서 일주일 새 10kg을 뺐다. 그 덕분이었을까. 몸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최 씨는 ‘조심’이란 단어를 늘 새기며 일상생활을 해 나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너무 바빠진 데다 개인적 사정으로 병원에 갈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이뇨제를 먹으면서 스스로 관리했다. 다행히 이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건강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대로 신장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준비로 힘든 거라 여겼는데… 24세이던 1998년, 최 씨는 결혼식을 치렀다. 신혼여행지에서 살짝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강도가 더 심해졌다. 최 씨는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만성신부전증 진단이 떨어졌다. 당장 처치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료진은 최 씨를 입원시킨 뒤 곧바로 신장 투석을 진행했다. 이후 의료진은 최 씨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최 씨 진료를 맡았다. 양 교수는 “최 씨뿐 아니라 만성신부전증 환자 상당수가 숨이 차고 어지러운 원인이 신장 질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 제때 배출되지 못해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요독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숨이 찬 증세 때문에 심장 질환으로 오해한다는 것. 양 교수는 “일단 요독증이 나타나면 신장 기능은 5∼10%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만약 소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신장 기능은 5%도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혈액 투석을 하는 중에도 신장 기능은 떨어졌다. 신장 이식 외에는 해법이 없는 상태. 뇌사자 장기 이식을 기다리며 버텼다. 얼마 후 최 씨와 조직 적합도가 높은 뇌사자 신장이 나왔다. 1999년 10월, 최 씨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최 씨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에 장기 이식 우선순위가 주어졌다. 서울성모병원이 발굴한 뇌사자였으니 이 병원 환자인 최 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최 씨는 아직 20대로 젊었고 신장 이식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뇌사자 신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첫아이 출산 후 신장 다시 나빠져 장기 이식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다시 건강해졌다. 그러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하지만 임신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양 교수는 “신장을 이식받았다면 임신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임신중독이 생길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이 경우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식한 신장까지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 씨 부부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했다. 양 교수는 최 씨가 임신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폈다. 일단 거부 반응은 없는 상황. 단백뇨가 나오거나 혈압이 높지도 않았다. 양 교수는 잘 관리하면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말 이 판단대로 됐다. 2003년, 최 씨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가졌다. 2004년 6월에는 남자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다. 하지만 출산의 기쁨도 잠시. 최 씨 건강이 악화했다. 출산이 임박할 때부터 신장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출산 후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사해 보니 신장의 30% 정도가 망가져 있었다. 약물 복용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장기를 이식하면 12시간 단위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복용 시간이 이르거나 늦춰지면 농도가 달라져 면역 거부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최 씨의 경우 출산한 후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약 복용 시간을 가끔 지키지 못했다. 최 씨의 신장 기능은 갈수록 떨어졌다. 양 교수는 “출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빠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점점 나빠지더니 다시 투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최 씨는 출산하고 약 2년이 지난 2006년 4월, 다시 혈액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 투석하며 둘째 출산 최 씨는 그 후 매주 세 번씩 병원을 찾아 투석 치료를 받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흘렀다. 그렇게 힘겨운 투석 치료를 7년째 이어가던 2012년 말, 최 씨는 샤워하다가 배 안에서 아기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둘째 아이 임신이었다. 검사해 보니 이미 임신 5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입덧이 없어서 최 씨가 임신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임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랫동안 투석 치료를 받았기에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영양 상태는 썩 좋지 않았고 호르몬 균형도 깨져 있었다. 임신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양 교수도 놀랐다. 양 교수는 “투석 치료 중에 임신은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임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10개월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 유산한다. 출산한다면 그 자체가 의학계에 보고될 만한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둘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출산을 결심했다. 양 교수가 보니 태아는 이미 상당히 성숙했고 발육 상태가 좋았다. 산모인 최 씨는 임신중독 징후가 없었다. 양 교수도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양 교수는 해외 치료 사례를 수집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뒤 치료법을 재점검했다. 우선 투석 치료 일정부터 조정했다. 그전에는 매주 3회, 각 4시간씩 투석을 했다. 이를 주 6회로 늘리는 대신 투석 시간을 3시간으로 줄였다. 태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폐물을 조금씩 자주 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 씨 혈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했고, 조혈호르몬 투여량을 늘려 빈혈을 없앴다. 체중도 다른 산모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늘렸다. 산모와 의료진 모두가 힘을 합쳤다. 2013년 3월, 최 씨는 39세에 둘째 공주를 무사히 출산했다.● 의사와 환자, 평생 동반자 보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포르(rapport·친밀함)가 좋을 때 치료 효과도 좋다는 말이 있다. 최 씨와 양 교수가 그렇다. 최 씨는 양 교수를 무한 신뢰했고 그런 최 씨를 양 교수는 가족처럼 대했다. 양 교수는 “의사와 환자로 만난 지 2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 씨가 24세로 보인다”며 웃었다. 양 교수는 “의사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노력이 보태질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 씨가 26년 동안 혈액 투석을 해 왔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최 씨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실제로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최 씨는 7년째 투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투석하지 않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에어로빅도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투석 치료를 오래 하다 보면 요독이 쌓이면서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최 씨는 그런 증세가 덜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삶에 대한 욕구도 더 강해졌다. 이 모든 점이 최 씨가 투석을 극복하고 아기까지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올해 1월 최 씨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뇌사자 신장 재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 현재까지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양 교수는 “1년 이내에 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0년 이상 장기가 유지될 확률이 90%를 넘는다.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론 최 씨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음식은 절대 먹지 않고 채소도 익혀 먹는다. 운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매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매일 5000보 이상 걷는다. 살이 찌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다 보면 식욕이 당기는데, 이때 무작정 먹었다가 살이 찌면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최 씨는 “몇몇 제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 아주 평화롭다. 이대로만 잘 유지할 계획”이라며 웃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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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장 투석 이겨내며 출산…두 아이의 엄마가 되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주부 최은영 씨(50)가 중학생이었을 때다. 우연한 기회에 병원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신증후군 진단이 떨어졌다. 단백뇨가 나오고, 몸이 부으며, 저알부민혈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당시 최 씨 체중은 62㎏이었다. 의사는 체중부터 빼라고 했다. 이뇨제를 먹어가면서 일주일 사이에 10㎏을 뺐다. 그 덕분이었을까. 몸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최 씨는 ‘조심’이란 단어를 늘 새기며 일상생활을 해 나갔다.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다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 바빠졌다. 게다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병원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국 나중에는 아예 병원을 가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이뇨제를 먹으면서 스스로 관리했다. 다행히 이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인지, 몸이 나아져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최 씨는 건강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대로 신장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준비로 힘든 거라 여겼는데…25세가 되던 1998년, 최 씨는 결혼식을 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몸에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신혼여행지에서 살짝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도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도가 더 심해졌다. 최 씨는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최 씨는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당장 처치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료진은 최 씨를 입원시킨 뒤 곧바로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논의 끝에 최 씨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후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최 씨의 진료를 맡았다. 양 교수는 “최 씨뿐 아니라 만성신부전증 환자 상당수가 숨이 차고 어지러운 원인이 신장 질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 제때 배출되지 못해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요독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숨이 찬 증세 때문에 심장 질환으로 오해한다는 것. 양 교수는 “멀쩡한 것 같아도 일단 요독증이 나타나면 신장 기능은 5~10%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만약 소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신장 기능은 5% 정도도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혈액 투석을 하는 중에도 신장 기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신장 이식 외에는 해법이 없는 상태. 뇌사자의 장기 이식을 기다리며 버텼다. 얼마 후 최 씨와 조직 적합도가 높은 뇌사자 신장이 나왔다. 1999년 10월, 최 씨는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사실 최 씨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에 장기 이식 우선순위가 주어졌었다. 서울성모병원이 발굴한 뇌사자였으니 이 병원 환자인 최 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최 씨는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였고, 신장 이식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뇌사자 신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첫 아이 출산 후 신장 다시 나빠져시간이 흘렀다. 장기 이식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다시 건강해졌다. 그러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하지만 임신이 마냥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양 교수는 “신장을 이식받았다면 임신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임신중독이 생길 위험도 커진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식한 신장까지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 씨 부부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했다. 양 교수는 최 씨가 임신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폈다. 일단 거부 반응은 없는 상황. 단백뇨가 나오거나 혈압이 높지도 않았다. 양 교수는 잘 관리하면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말로 이 판단대로 됐다. 2003년, 최 씨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임신했다. 이어 2004년 6월에는 남자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다. 아기는 2.57㎏의 저체중아로 태어났지만,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최 씨의 건강이 악화했다. 출산이 임박할 때부터 신장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출산 후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사해 보니 신장의 30% 정도가 망가져 있었다. 약물 복용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장기를 이식하면 12시간 단위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복용 시간이 이르거나 늦춰지면 농도가 달라지면서 면역 거부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최 씨의 경우 출산한 후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약 복용 시간을 가끔 지키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양 교수는 “최 씨는 그나마 약을 꼬박꼬박 먹은 편이다. 가끔 10대와 20대 환자 중에서는 아예 약을 먹지 않았다가 신장이 다 망가진 후 병원을 찾는 사례도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최 씨의 신장 기능은 갈수록 떨어졌다. 양 교수는 “출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빠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점점 나빠지더니 다시 투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아기를 출산하고 약 2년이 지난 2006년 4월, 다시 혈액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투석하며 둘째 출산 성공투석해 본 환자들은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안다. 최 씨는 그 후로 매주 세 번씩 병원을 찾아 투석 치료를 받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흘렀다. 그렇게 힘겨운 투석 치료를 5년째 이어가고 있었다. 2011년 말, 최 씨는 샤워하다가 배속에서 아기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둘째 아이 임신이었다. 검사해 보니 이미 임신 5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다만 입덧이 없어서 최 씨가 임신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실 임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랫동안 투석 치료를 받았기에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영양상태는 썩 좋지 않았고, 호르몬 균형도 깨져 있었다. 임신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양 교수도 놀랐다. 양 교수는 “투석 치료 중에 임신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임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10개월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 유산한다. 출산한다면 그 자체가 의학계에 보고될 만한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둘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출산을 결심했다. 양 교수가 보니 태아는 이미 상당히 성숙했고 발육 상태가 좋았다. 산모인 최 씨는 임신중독의 징후가 없었다. 양 교수도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양 교수는 해외 치료 사례를 수집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뒤 치료법을 재점검했다. 우선 투석 치료 일정부터 조정했다. 그전에는 매주 3회, 각각 4시간씩 투석을 했다. 이를 주 6회로 늘리는 대신 투석 시간을 각각 3시간으로 줄였다. 태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폐물을 조금씩 자주 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 씨의 혈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했고, 조혈호르몬 투여량을 늘려 빈혈을 없앴다. 체중도 다른 산모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늘렸다.산모와 의료진 모두가 힘을 합쳤다. 그 결과 2012년 3월, 최 씨는 둘째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다. 40세의 나이에 투석 치료를 견뎌내면서 얻은 공주였다. 첫째 아이 출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이는 2.6㎏의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신장 이식을 한 경우 대부분 저체중아가 태어난다”라고 덧붙였다. 둘째 아이 또한 첫째 아이와 마찬가지로 건강했다. ●의사와 환자, 평생 동반자보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뽀’가 좋을 때 치료 효과도 좋다는 말이 있다. 라뽀는 친밀한 유대관계를 뜻한다. 최 씨와 양 교수의 라뽀는 상당히 좋다. 최 씨는 양 교수를 무한 신뢰했고, 그런 최 씨를 양 교수는 가족처럼 대했다. 양 교수는 “의사와 환자로 만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 씨가 25세로 보인다”라며 웃었다. 양 교수는 최 씨의 둘째 출산을 높이 평가했다. 양 교수는 “투석하면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의사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노력이 보태질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최 씨가 25년 동안 혈액 투석을 해 왔지만, 꿋꿋하게 버텨왔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최 씨 본인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실제로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최 씨는 이미 6년째 투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힘든 시기였다. 투석하는 날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음식은 먹을 수 없었고, 되레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투석하지 않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병을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였다. 이와 별도로 에어로빅을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투석 치료를 오래 하다 보면 요독이 쌓이면서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최 씨는 그런 증세가 덜했다. 게다가 아기를 키우면서 삶에 대한 욕구도 더 강해졌다. 이 모든 점이 최 씨가 투석을 극복하고, 아기까지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올해 1월, 최 씨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뇌사자 신장 재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 최 씨는 이번만큼은 평생 신장을 다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났을 때 검사해 봤더니 이식 거부 반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예정된 이날, 다시 검사했는데, 역시 모든 게 정상 수준이었다. 양 교수는 “1년 이내에 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0년 이상 장기가 갈 확률이 90%를 넘는다.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그 투석을 다 견디고 25년째 만성신부전증을 극복하며 살았는데,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 거라고 확신한다”라며 웃었다. 물론 최 씨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 음식은 절대 먹지 않고, 채소도 익혀 먹는다. 운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매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매일 5000보 이상 걷는다. 살을 찌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다 보면 식욕이 당기는데, 이때 무작정 먹었다가 살이 찌면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체중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최 씨는 “몇몇 제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 아주 평화롭다. 이대로만 잘 유지할 계획”이라며 웃었다.〈최은영 씨 만성신부전증 투병 및 출산 일지〉1980년대 후반 중학생 때 신증후군 진단1998년 만성신부전증 진단 및 투석 시작1999년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2003년 첫째 아기 임신 성공2004년 첫째 남자 아기 출산2006년 신장 나빠져 혈액 투석 재개2012년 혈액 투석 6년째 둘째 아이 임신 투석 횟수 늘리고 시간 줄이는 등 ‘비상 체제’ 가동2013년 정상분만으로 둘째 아기 출산 성공 (투석 도중 출산은 드문 사례임)2024년 1월 두 번째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 2024년 5월(현재) 장기 거부 반응 없으며 잘 적응 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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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해진 소변 줄기, 다 병은 아니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너무 자주 소변을 보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문제를 고칠 수는 없을까. 소변을 다 봤는데도 남은 소변 방울이 흘러 속옷을 적시는 게 혹시 병일까. 기침만 해도 소변이 새어 나오는 건 어찌해야 할까. 50대 이후가 되면 많이 생기는 배뇨 장애다.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50대 이후 배뇨 장애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많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 치료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하루 8회 이상 소변보면 빈뇨 배뇨 장애는 크게 △소변을 저장할 때 △소변을 볼 때 △소변을 본 후 장애로 나눈다. 이와 별도로 요실금과 야뇨증도 배뇨 장애로 구분한다. 소변 저장 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이 빈뇨다. 빈뇨는 모든 배뇨 장애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보통 성인은 하루 대여섯 번, 매회 300mL가량 소변을 본다. 이 배뇨 횟수가 하루 8회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빈뇨로 볼 수 있다. 밤잠을 자다 발생하는 야간뇨, 갑자기 요의를 느끼는 절박뇨, 소변볼 때 요도나 방광 주변에 통증을 느끼는 배뇨통도 소변 저장 장애에 해당한다. 소변볼 때 장애는 방광이 막혔을 때 주로 발생한다. 전립샘 비대증이나 요도 협착이 원인일 때가 많다. 따라서 요도가 짧은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변 줄기가 가늘어졌거나 △몇 초가 지나서야 소변이 나오거나 △소변 줄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거나 △배에 힘을 잔뜩 줘야 소변을 볼 수 있거나 △소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소변 줄기가 가늘어진 세뇨증은 전체 배뇨 장애의 30% 정도로 빈뇨에 이어 두 번째로 환자가 많다. 소변을 본 후 잔뇨감이 있거나 오줌 방울이 새며, 곧바로 다시 요의가 생기는 경우는 배뇨 후 장애다. 장 교수는 “이 중 오줌 방울이 새는 현상이 중년 남자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병이라기보다는 노화에 더 가까우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고환과 고환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면 요도에 남은 소변이 배출된다. 요실금은 방광에 있던 오줌이 흘러나오는 병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배의 압력(복압)이 올라가면 소변이 나오는 복압성 요실금 환자가 많아진다. 갑작스럽게 소변이 흘러나오는 절박성 요실금 환자도 적잖다. 잠자다가 요실금이 생기면 야뇨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과민성 방광, 약물 치료하면 증세 개선” 배뇨 장애 원인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빈뇨만 하더라도 당뇨병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 낮에는 빈뇨가 없는데 밤에 야간뇨가 생긴다면 심부전증 조짐일 수도 있다. 또 절박뇨 증세가 급격하게 심해졌다면 방광염이 원인일 수도 있다. 40대 이전에 배뇨 장애가 나타났다면 방광결석이나 요로결석도 의심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과민성 방광(여성)이나 전립샘 비대증(남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빈뇨의 예를 들어보자. 원래 방광은 소변이 차야 넓어진다. 소변이 차지 않을 때는 요의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방광의 탄력성이 줄어들면 예민해지면서 약간만 차도 ‘다 찼다’고 인식한다. 이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려워진다. 남성은 조금 다르다. 일단 전립샘이 비대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커진 전립샘이 방광을 자극하고 그 결과 방광이 예민해지면서 요의를 느끼는 것. 요실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민성 방광이다. 정상적이라면 방광에 소변이 차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수십 분을 참은 뒤 소변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방광이 이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소변이 나와 버린다. 방광을 튼튼하게 해야 배뇨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과민성 방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 목적은 증세 개선에 있다. 이 때문에 약물은 복용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다. 먹다가 끊으면 증세는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장 교수는 “고혈압 약처럼 평생 먹는다는 생각으로 약물 치료를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약물 치료 효과는 보통 2주째부터 나타난다. 또 6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족스러운 치료 효과를 얻는다.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과민성 방광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꾸준히 약물 치료한 환자의 하루 평균 배뇨 횟수는 11.7회에서 8.3회로 줄었다. 절박뇨는 8.2회에서 2.2회로, 절박성 요실금 또한 2.2회에서 0.1회로 크게 줄었다. 장 교수는 “약물이 많이 좋아져서 수술이나 시술까지 가지 않아도 증세 개선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배뇨 습관 만들기 약물 복용만으로는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는다. 장 교수는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발표한 7대 건강 수칙을 따를 것을 추천했다. 첫째,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걷기 같은 운동이 추천된다. 운동을 하면 골반을 지탱하는 근육이 발달하면서 방광을 튼튼하게 한다. 반대로 과체중은 방광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둘째, 알코올이나 카페인은 삼간다.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이런 물질들은 모두 방광을 자극한다. 셋째, 매일 물을 6∼8잔 마시는 등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변비는 잦은 소변을 유발한다. 따라서 배변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섬유질을 섭취한다. 넷째, 배뇨 일지를 작성한다. 얼마나 소변을 보는지, 소변량은 어느 정도인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일기처럼 적다 보면 빈뇨, 야간뇨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소변을 참기 어렵다면 평소 방광 훈련을 한다. 소변이 마렵다고 여겨지면 일정 시간 동안 소변을 참는 것. 처음에는 짧은 간격으로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리면 소변을 더 잘 참을 수 있고, 규칙적인 배뇨에 도움이 된다. 여섯째, 골반 근육 체조(케겔 운동)를 한다.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방귀를 참는다는 생각으로 항문을 당겨 조여준다. 1부터 5까지 세고 나서 힘을 풀어준다. 수축할 때 숨을 참지 말아야 하며 아랫배에 손을 대고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한다. 일곱째, 배뇨 장애와 관련된 증세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한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그만큼 효과가 빨라진다.● 소변 상태를 보면 병이 보인다? 소변 상태로 개략적으로나마 비뇨기계 질환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소변에서 악취가 난다면 방광염이나 요로감염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 다만 냄새를 세밀하게 구별하기 쉽지 않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냄새보다는 소변 색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이 낫다. 소변은 투명한 노란색을 띠어야 정상이다. 이 색깔이 미세하게 달라졌을 때는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가령 소변이 많이 탁하다면 방광염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소변이 약한 갈색을 띨 때도 있다. 주로 오랫동안 운동하거나 일했을 경우,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침에 그럴 때가 많다. 장 교수는 “색깔이 탁한 것은 탈수 증세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소변 색깔이 변한다는 것. 혹은 과격한 운동 때문에 근육 세포 일부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장 교수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물을 섭취하고 쉬면 좋아진다”고 했다. 소변이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면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황달이 심해지면서 소변도 진한 노란색을 띠는 것이다. 이 경우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혈뇨는 위험 신호다. 혈뇨는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다. 좌변기 안쪽, 오목하게 파인 부위에 빨간색 물이 고인다. 혈뇨는 방광암, 신장암, 전립샘 질환, 급성 방광염 등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40대 이하라면 또 다른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곧바로 병원에 가는 게 좋다. 소변에 거품이 있을 때는 거품의 양과 지속된 날을 따져 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거품이 많다면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양의 거품이 나온다면 단백뇨를 의심해야 한다.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것.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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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변 줄기 약해졌다… 병에 걸린 걸까?[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너무 자주 소변을 보는 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문제를 고칠 수는 없을까. 소변을 다 봤는데도 남은 소변 방울이 흘러 나와 속옷을 적시는 게 혹시 병일까. 기침만 해도 소변이 새어 나오는 요실금을 어찌해야 할까.50대 이후가 되면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고민이다. 하지만 민망스럽거나 수치스럽다는 생각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비뇨기계 질환이 있는 환자 중에 병원을 꺼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에 대해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50대 이후의 배뇨 장애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많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 치료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루 8회 이상 소변보면 빈뇨배뇨 장애는 소변을 배출하는 여러 단계에서 발생한다. 크게 △소변 저장할 때 △소변볼 때 △소변본 후 장애로 나눈다. 이와 별도로 요실금과 야뇨증도 배뇨 장애로 구분한다. 소변 저장에 문제가 생긴 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이 빈뇨다. 빈뇨는 모든 배뇨 장애의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환자가 많다. 보통 성인은 하루 5,6회, 매회 300mL의 소변을 본다. 이 배뇨 횟수가 하루 8회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빈뇨로 볼 수 있다. 이밖에 밤잠을 자던 중 발생하는 야간뇨, 갑자기 요의를 느끼는 절박뇨, 소변을 볼 때 요도나 방광 주변에 통증을 느끼는 배뇨통도 소변 저장 장애에 해당한다. 소변볼 때의 장애는 방광이 막혔을 때 주로 발생한다. 전립샘 비대증이나 요도 협착이 원인일 때가 많다. 따라서 요도가 짧은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변 줄기가 가늘어졌거나 △소변을 보려고 해도 몇 초가 지나서야 소변이 나오거나 △소변 줄기가 1회 이상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거나 △배에 힘을 잔뜩 줘야 소변을 볼 수 있거나 △아예 소변이 막혀 볼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 소변 줄기가 가늘어진 세뇨증은 전체 배뇨 장애의 30% 정도로, 빈뇨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변을 본 후 잔뇨감이 있거나, 오줌 방울이 새며, 곧바로 다시 요의가 생기는 경우는 배뇨 후의 장애다. 장 교수는 “이중 오줌 방울이 새는 현상이 중년 남자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병이라기보다는 노화에 더 가까우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고환과 고환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면 요도에 남아있던 소변이 배출되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요실금은 방광에 있던 오줌이 흘러나오는 병을 말한다. 요실금의 유형도 다양하다. 나이가 들면서는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배의 압력(복압)이 올라가면 찔끔하고 소변이 나오는 복압성 요실금 환자가 많아진다. 또는 절박뇨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소변이 흘러나오는 절박성 요실금 환자도 적잖다. 잠을 자는 도중에 요실금이 생기면 야뇨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과민성 방광, 어떻게 치료할까배뇨 장애의 원인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가령 빈뇨만 하더라도 당뇨병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 낮에는 빈뇨가 없는데, 밤에 야간뇨가 생긴다면 심부전증의 조짐일 수도 있다. 또 절박뇨 증세가 오래 지속된 것이 아니라 최근에 급격하게 심해졌다면 방광염이 원인일 수도 있다. 40대 이전에 배뇨 장애가 나타났다면 방광결석이나 요로결석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과민성 방광(여성)이나 전립샘 비대증(남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빈뇨의 예를 들어보자. 원래 방광은 소변이 차야 넓어진다. 소변이 차지 않을 때는 요의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방광의 탄력성이 줄어들면 예민해지면서 약간만 차도 ‘다 찼다’라고 인식하게 된다. 예민해진 방광 탓에 소변이 마렵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조금 다르다. 일단 전립샘이 비대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커진 전립샘이 방광을 자극하고, 그 결과 방광이 예민해지면서 요의를 느끼는 것. 요실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민성 방광이다. 정상적이라면 방광에 소변이 차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수십 분을 참고 난 후 소변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방광이 이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소변이 나와 버린다. 결국 방광을 튼튼하게 해야 이런 증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능할까. 장 교수는 “이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완치는 불가능하다. 최대한 증세를 완화하기 위한 치료를 한다”라고 했다. 과민성 방광이 왜 생기는지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의 목적은 증세를 개선하는데 있다. 가령 과민성 방광으로 인해 빈뇨가 나타나면 치료제는 빈뇨 증세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이지, 과민성 방광 자체를 개선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 이런 점 때문에 이런 약물은 복용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다. 먹다가 끊으면 증세는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장 교수는 “고혈압 약처럼 평생 먹는다는 생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약들은 24시간 지속형이기 때문에 하루 1회만 복용하면 된다. 다만 약물을 복용할 경우 증세는 확실히 좋아진다. 보통은 2주째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또 6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족스러운 치료 효과를 얻는다. 실제로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과민성 방광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 꾸준히 약물치료를 한 환자들의 하루 평균 배뇨 횟수는 11.7회에서 8.3회로 줄었다. 절박뇨는 8.2회에서 2.2회로 줄었고. 절박성 요실금 횟수 또한 2.2회에서 0.1회로 크게 줄었다. 장 교수는 “요즘 약물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수술이나 시술까지 가지 않아도 증세 개선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과민성 방광 자가 진단법>-하루에 소변을 8회 이상 본다.-소변이 일단 마려우면 참지 못한다.-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화장실 위치부터 알아둔다.-화장실이 없을 것 같은 장소에는 잘 가지 않는다.-화장실에서 옷을 내리기 전 소변이 나와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다. -소변이 샐지 몰라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화장실을 너무 자주 다녀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패드나 기저귀를 착용한다.-밤에 잠을 자다 2회 이상 화장실에 간다.※9개 증세 중 1개 이상만 나타나도 과민성 방광 가능성 큼. 자료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건강한 배뇨 습관 만들기약물 복용만으로는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는다. 장 교수는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평소 방광을 튼튼하게 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 교수도 “노화에 따른 질환이기 때문에 완치하려 하기보다는 평소에 예방하고 증세를 완화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발표한 7대 건강 수칙을 따를 것을 추천했다. 첫째,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걷기와 같은 운동이 추천된다. 운동을 하면 골반을 지탱하는 근육이 발달하면서 방광을 튼튼하게 한다. 반대로 과체중은 방광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둘째, 알코올이나 카페인은 삼간다. 또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이런 물질들은 모두 방광을 자극한다. 특히 과음과 흡연은 요실금, 야간뇨 등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셋째, 매일 6~8잔의 물을 마시는 등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배변 활동을 촉진하고 변비를 막기 위해 섬유질을 섭취한다. 변비는 복통 등의 증세 외에도 잦은 소변을 유발하기 때문에 예방하는 게 좋다. 넷째, 배뇨 습관을 체크하면서 배뇨 일지를 작성한다. 얼마나 소변을 보는지, 소변량은 어느 정도인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일기처럼 적는 것. 이렇게 하면 빈뇨, 야간뇨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소변을 참기 어렵다면 평소 방광 훈련을 한다. 소변이 마렵다고 여겨지면 일정시간 동안 소변을 참는 것. 처음에는 짧은 간격으로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리면 소변을 더 잘 참고 규칙적인 배뇨에 도움이 된다. 여섯째, 골반 근육 체조(케겔 운동)를 한다. 양쪽 다리를 벌린 채로 앉아서 방귀를 참는다는 생각으로 항문을 당겨 조여준다. 5까지 세고 나서 힘을 풀어준다. 수축할 때 숨을 참지 말아야 하며 아랫배에 손을 대고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하도록 하자. 일곱째, 배뇨 장애와 관련된 증세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한다. 이를 통해 조기에 별을 발견해 치료하면 그만큼 효과가 빨라진다. <방광 건강을 위한 7대 건강 수칙>①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자신에게 맞는 체중을 유지한다.②카페인 섭취량을 줄이고 흡연 및 알코올 섭취를 삼간다.③적절한 수분 및 섬유질을 섭취하여 변비를 예방한다.④배뇨 일지 작성을 통해 자신의 배뇨 습관을 점검한다.⑤소변을 참기 어렵거나 화장실을 자주 간다면, 방광 훈련을 시행한다.⑥골반 근육 체조로 방광 및 골반을 강화한다.⑦배뇨 관련 증세가 발생하면 조기에 전문의와 상담하고 치료한다.※자료 :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소변 상태를 보면 병이 보인다?소변 상태로 개략적으로나마 비뇨기계 질환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소변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면 방광염이나 요로감염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 다만, 세밀한 냄새를 일반인이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냄새보다는 소변 색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이 낫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질환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소변은 투명한 노란색이나 황색 빛을 띠는 게 정상이다. 이 색깔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을 때는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가령 소변이 많이 탁하다면 방광염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소변이 약한 갈색을 띨 때도 있다. 주로 오랫동안 운동하거나 일했을 경우,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침에 그럴 때가 많다. 이와 관련해 장 교수는 “색깔이 탁한 것은 탈수 증세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소변 색깔이 변한다는 것. 혹은 과격한 운동 때문에 근육 세포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장 교수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물을 섭취하고 쉬면 된다”라고 말했다. 소변이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면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황달이 심해지면서 소변도 진한 노란색을 띠는 것이다. 이 경우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혈뇨는 위험 신호다. 혈뇨는 누구나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좌변기 안쪽에 오목하게 파인 부위에 빨간색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혈뇨는 방광암, 신장암, 전립샘 질환, 급성방광염 등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40대 이하의 젊은 층이라면 또 다른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그 어떤 경우든 혈뇨가 나오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변에 거품이 있을 때는 거품의 양과 지속된 날을 따져 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거품이 많다면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양의 거품이 나온다면 단백뇨를 의심해야 한다.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것.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추가검사가 필요하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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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이되고 재발한 암… 4차례 수술 거뜬히 이겨낸 비결[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흔한 잇몸 염증이려니 생각했다. 염증약을 먹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예상과 달리 잇몸 염증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형 치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입안에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7년 7월 이야기다. 당시 50대 후반이던 김희상 씨(65)의 구강암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신장암 극복했는데 다시 구강암 김 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였다. 소변이 마려워 급히 볼일을 봤는데 쌀알만큼 피가 섞여 나왔다. 다음 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암이라고 했다. 당시 김 씨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펑펑 울었더랬다. 김 씨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았다. 암 덩어리가 커서 신장암 병기(病期)는 3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 있는 왼쪽 신장을 통째로 절제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2015년 김 씨는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암에서 해방되고 2년 만에 김 씨는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구강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암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김 씨가 충격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일단 병기가 4기였다. 입안 상태는 처참했다. 잇몸과 입천장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잇몸뼈는 위쪽 전체가 거의 파괴돼 있었다. 암세포는 림프샘으로 전이된 상황. 대형 병원 의사조차도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부터 시도해 보자”고 할 정도였다. 당시 의사는 면역 항암치료를 제안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비만 약 1억5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고도 완치 확률은 20% 미만. 김 씨는 당시 운영하던 회사가 쓰러지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면역 항암치료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친구 믿고 오른 수술대 김 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고등학교 동문들에게 퍼져 나갔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우리 동창 중에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있다. 태 교수가 잘한다니 가 보자”며 김 씨를 설득했다. 김 씨는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친구가 그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태 교수에게 데리고 갔다. 태 교수는 “만약 목 밑까지 암이 전이됐다면 이비인후과 진료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내가 수술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술에 도전해 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 구강암 진단을 받고 2개월이 흐르는 동안 암 덩어리는 7cm 크기까지 자랐다. 림프샘으로 전이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다행인 점은 폐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는 것. 태 교수는 수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태 교수는 “악성 흑색종은 수술이 최고 치료법이다. 다만 친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김 씨는 누가 집도하느냐고 물었다. 태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집도할 것이라 했다. 김 씨는 “그렇다면 믿고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했다. 고난도 수술이 시작됐다. 태 교수는 먼저 구강암 제거 수술에 돌입했다. 코 옆 선을 따라 인중 부위까지 10cm를 절개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안쪽 뼈와 입천장은 모두 들어냈다. 이어 성형외과 의료진이 텅 비어 버린 입안을 채우기 위한 2차 수술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김 씨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 입안에 이식했다. 이 모든 수술에 꼬박 12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이 끝난 후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미세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태 교수는 “그 순간 수술 성공과 완치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 의학적으로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 씨는 2015년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이 되면 구강암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2년만 더 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 여겼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20년 폐에서 암이 발생했다. 태 교수와 김 씨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구강암이 폐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 교수는 “구강암이 원래 폐로 전이가 잘된다. 특히 악성 흑색종은 재발하는 일도 잦다. 이런 상황이면 생존율은 30%가 안 된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미 완치 판정을 받은 신장암과 조직이 같았다. 신장암이 10년 만에 폐로 전이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폐 일부를 절제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제거했던 신장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해당 부위 림프샘을 제거하는,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구강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고, 이 무렵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멀쩡하던 오른쪽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신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수술까지 가지는 않았다. 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암세포가 자라지 않는 등 면역 항암 효과가 잘 유지되고 있어 추적 검사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신장암의 경우 10∼20년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만 대부분 김 씨처럼 무증상이기 때문에 매년 추적 검사만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신장암에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긍정적 자세로 의사와 소통하라” 몇 번 위기를 넘겼지만 김 씨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10년 만에 신장암이 전이되고 재발했는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단다. 김 씨는 “짓궂은 친구 하나가 다시 찾아온 거라 생각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병과 싸우면서 여유를 되찾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씨는 “수술 세 번을 무난히 견뎌냈고, 네 번째 면역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든든한 의사 친구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의사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다음은 하늘의 뜻이란다. 태 교수는 “이 친구는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매사에 긍정적이다”라며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긍정적인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치료가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내 주치의가 고교 동창이라 그런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또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김 씨는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주변에 더러 있는데, 쓸데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버리고 몸도 악화시킬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이제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거의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김 씨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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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전이에 재발… 4회 수술 모두 이겨낸 비결은?[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흔한 잇몸 염증이려니 생각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염증약을 먹는 것으로 사실상 치료를 끝냈다. 예상과 달리 잇몸 염증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형 치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입안에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러니까 2017년 7월의 이야기다.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김희상 씨(65)의 구강암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암 극복했는데 다시 암이… 사실 김 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였다. 소변이 마려워 급히 볼일을 봤는데, 쌀알만큼 피가 섞여 나왔다. 다음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암이라고 했다. 당시 김 씨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펑펑 울었더랬다. 김 씨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았다. 암 덩어리가 커서 신장암의 병기가 3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수술만 잘 끝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의사의 설명이 큰 위로가 됐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 있는 왼쪽 신장을 통째로 절제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암세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 후로도 경과는 무척 좋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2015년 김 씨는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암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김 씨는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구강암. 김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암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이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김 씨가 충격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일단 병기가 4기였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기에 생존율이 낮다는 뜻이다. 실제로 입안 상태는 처참했다. 잇몸과 입 천장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잇몸뼈는 위쪽 전체가 거의 파괴돼 있었다. 게다가 암세포는 이미 림프절로 전이된 상황. 대형 병원 의사조차도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부터 시도해 보자”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의사가 제시한 것은 면역 항암치료였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비만 약 1억 5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고도 완치 확률은 20% 미만. 김 씨는 당시 운영하던 회사가 쓰러지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면역 항암치료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김 씨는 “솔직히 당시에는 구강암 진단을 사실상의 ‘사형 선고’로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친구 믿고 수술대 올랐다김 씨가 암에 걸린 소식은 얼마 후 고등학교 동문들에게 퍼져나갔다. 고교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김 씨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 동창 중에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있다. 그 친구가 잘한다니까 가 보자”라며 김 씨를 설득했다. 김 씨는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친구가 그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태 교수에게 데리고 갔다. 태 교수는 김 씨를 보자마자 바로 검사부터 진행했다. 태 교수는 “만약 목 밑까지 암이 전이됐다면 이비인후과 진료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내가 수술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술에 도전해 보자”라고 말했다. 구강암 진단을 받고, 2개월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구강암은 7㎝ 크기까지 자라 있었다. 림프절로 전이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다행인 점은, 폐나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지는 않았다는 것. 태 교수는 수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태 교수는 “악성 흑색종은 수술이 최고의 치료법이다. 다만 친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 씨는 누가 집도하냐고 물었다. 태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집도할 것이라 했다. 김 씨는 “그렇다면 믿고 수술대에 오르겠다”라고 했다. 고난도 수술이 시작됐다. 태 교수가 먼저 구강암을 제거하는 수술에 돌입했다. 코의 옆선을 따라 인중 부위까지 10㎝를 절개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안쪽의 뼈와 입 천장은 모두 들어냈다. 이어 성형외과 의료진이 텅 비어버린 입안을 채우기 위한 2차 수술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김 씨의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 입안에 이식했다. 이 모든 수술에 꼬박 12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이 끝난 후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미세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태 교수는 “그 순간 수술의 성공과 완치를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의학적으로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 씨는 2015년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이 되면 구강암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수술은 잘 됐고,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당연히 2년만 더 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 여겼다.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2020년, 폐에서 암이 발생했다. 태 교수와 김 씨 모두 가슴이 철렁거렸다. 구강암이 폐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 교수는 “구강암이 원래 폐로 전이가 잘 된다. 특히 악성 흑색종은 재발하는 일도 잦다. 이런 상황이라면 생존율은 30%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직 검사를 해 보니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10년 전 발병했고, 이미 완치 판정을 받았던 신장암과 조직이 같았던 것. 신장암이 10년 만에 폐로 전이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한양대 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폐 일부를 절제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제거했던 신장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해당 부위에 있는 림프절을 제거하는,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구강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 덕분에 신장암이 재발하기 얼마 전, 김 씨는 구강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신장암은 지금까지도 김 씨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멀쩡했던 오른쪽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신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수술까지 가지는 않았다. 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면역항암 효과가 잘 유지되고 있어 추적 검사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궁금한 대목이 있다. 10년이 훨씬 지났는데 암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을까.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신장암에서는 10~20년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만 대부분 김 씨처럼 무증상이기 때문에 매년 추적 검사만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신장암에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관리만 잘 하면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씨는 매년 1회 정도 병원에 와서 추적 검사를 하고 있다. 현재 암세포는 쌀알 크기보다 작은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긍정적 자세로 의사와 소통하라”몇 번의 위기를 넘겼지만 김 씨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10년 만에 신장암이 전이되고 재발했는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짓궂은 친구 하나가 다시 찾아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었다.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랜시간 병마와 싸우면서 오히려 여유를 찾은 것이다. 김 씨는 “수술 세 번을 무난히 견뎌냈고, 네 번째 면역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든든한 의사 친구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며 웃었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의사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다음은 하늘의 뜻이란다. 태 교수는 “이 친구는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매사에 긍정적이다”라며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태 교수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긍정적인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치료가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씨는 “내 주치의가 고교 동창이라 그런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또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주변에 더러 있는데, 쓸데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버리고 몸도 악화시킬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러 번의 암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서 김 씨도 많이 달라졌다. 이미 말한 대로 훨씬 여유로워졌다. 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전에는 사업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화를 많이 냈었다. 지금은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남을 더 배려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매일 만 보 이상 걷는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서는 맘이 불편해진단다. 또한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거의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김 씨는 “이러니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김희상 씨의 신장암-구강암 투병기>2010년 신장암 발견, 왼쪽 신장 절제2015년 5년 경과에 따라 신장암 완치 팥정2017년 7월 구강암(악성 흑색종) 진단2017년 9월 구강암 제거 및 구강 재건 수술(12시간)2020년 2월 신장암 폐 전이 발견, 폐 일부 절제술 시행2022년 9월 5년 경과에 따라 구강암 완치 판정2022년 12월 왼쪽 신장 부위 암 재발, 림프절 제거2023년 7월 오른쪽 신장암 재발 확인.다만 크기가 작고 안정돼 있어 추적검사만 하는 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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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절기 극성 호흡기질환… 면역력 키워 ‘철통 방어’

    한낮 수은주가 섭씨 20도 중반까지 오르며 초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껏 창문을 열어젖힐 수도 없다. 창문을 걸어 잠그게 만드는 미세먼지와 황사, 꽃가루 같은 불청객이 많아서다. 높은 일교차로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도 쉽다. 이 같은 환경에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호흡기 질환자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력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하루 대부분을 머무는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종일 창문을 닫고 환기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리되지 않은 실내 공기는 심각한 미세먼지나 황사로 가득한 외부 공기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호흡기 질환 전문가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사진)에게 환절기에 왜 호흡기 질환이 늘어나며 어떻게 발생하는지, 실내 공기 질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들었다.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인체는 통상 주위 환경에 적응하며 건강을 유지하는데 일교차가 심하면 이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서 면역력이 감소하는 것이다. 더욱이 건조한 날씨에는 기관지 등 호흡기 점막이 마르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침투가 수월해져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 더욱 많아진다.”―바이러스나 유해 물질은 호흡기에 어떻게 유입되나. “인체에서 비말(飛沫) 형태로 배출된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떠돌다가 숨을 들이마시면 코나 입으로 들어와 호흡기를 거친다. 이때 기관지나 폐포(肺胞) 점막이 약해져 있다면 쉽게 침투해 감염을 일으킨다. 직경 1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상의 미세먼지는 상기도 점액이나 섬모 등을 통해 걸러진다. 하지만 그 미만이거나 특히 1㎛ 이하 초미세먼지는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까지 넘어간다. 이 경우 폐포 모세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이동하면 비염, 기관지염, 폐렴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패혈증 같은 심각한 질환에까지 이를 수 있다.”―세균과 바이러스는 실내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나. “바이러스는 실내로 퍼지며 미세먼지와 결합해 세균성 미세먼지 형태로 떠다니곤 한다. 특히 세균성 미세먼지는 집 밖에서 머리카락이나 옷에 묻어 집 안으로 유입될 확률이 높다. 귀가하면 옷을 잘 털고 머리를 감는 등 개인 위생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실내 공기를 왜 쾌적하게 관리해야 하는가. “실내 공기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미세먼지와 음식 할 때 나오는 조리흄(cooking fumes), 세제나 새 가구 냄새에 포함된 유해가스는 물론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알레르기 물질이 혼합돼 있다.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면 이런 물질들이 오랫동안 공기 중에 머물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은 공기 중 유해물질 양에 좌우되기도 한다.”―실내 공기는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창문을 열고 안팎 공기를 순환시켜 불순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세먼지나 황사 때문에 외부 공기 유입이 꺼려질 때가 많다. 이럴 때에는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내부 공기를 정화시키는 제품들을 통해 실내 공기 질 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가족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를 보유한 가족이 있다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기는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접촉을 최소화하고 환기를 자주 시켜 집 안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일상에서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받는 게 좋다. 항체를 만들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충분한 영양 및 수분을 섭취하고 숙면을 취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날 외출할 경우엔 반드시 보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날씨 탓에 실내 환기가 어렵다면 실내 공기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공기청정기 같은 제품 사용도 권장한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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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근길 선글라스 벗어야 밤잠 잘 잔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잠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숙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깊은 잠을 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다.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수면 전문가인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매일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4시 반에 일어난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다. 숙면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바로 생체시계다. 크게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눈다. 취침 시간이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 반까지라면 중간형. 그 이전에 잔다면 아침형, 자정을 훨씬 넘기면 저녁형이다. 중간형이 가장 많지만 최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기 사용 등으로 저녁형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근 저녁형 비중이 40% 정도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저녁형의 경우 취침 시간을 미루다 보니 기상 시간이 늦어진다.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면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저녁형이라면 무엇보다 기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침상으로 가라 중간형에 해당한다면 규칙적인 침상 습관부터 만들어야 한다. 우선 침상에 머무는 시간과 드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가령 매일 오후 11시에 침상에 들어가서 다음 날 오전 7시에 일어나기로 했다면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6시간밖에 못 잤더라도 오전 7시에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몸이 더 피곤하다며 일찍 잠을 청하는 것도 수면의 규칙성을 깰 수 있어 피해야 한다. 똑같은 시간에 침상에 들란 이야기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면 일단 침상을 벗어나 거실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가 더 각성할 수 있기 때문. 잠시 쉬고 잠이 올 것 같으면 침상으로 돌아간다. 이런 행동은 뇌가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 교수는 “이런 훈련을 한 달 이상 하면 침상에 들 시간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주 교수는 대체로 매일 7∼8시간 잠잘 것을 권했다. 만약 주중에 잠이 부족하다면 주말에 좀 더 자서 잠을 보충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평소대로 취침 시간을 지키고, 수면 시간의 중간값 차이를 2시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 사람이라면 수면 시간 중간값은 오전 3시다. 이 사람이 주말에 오전 2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6시. 두 수면의 시차(사회적 시차)는 3시간이다. 이 경우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잤을 뿐인데, 월요병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이 사람이 주말에 평소와 마찬가지로 0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났다면 수면 시간 중간값은 오전 5시가 된다. 평소보다 4시간을 더 잤는데도 사회적 시차는 2시간으로 줄어든다. 주 교수는 “사회적 시차를 2시간 이내로 줄이면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월요병, 우울증, 심장병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 빛 조절은 숙면에 꼭 필요 빛의 강도 조절도 숙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이상은 햇빛에 얼굴을 노출하는 게 좋다. 날씨가 흐릴 경우에는 햇빛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빛 치료(라이트세러피)용 기기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한낮 태양광선이 쨍하게 비칠 때가 3만 럭스 이상이다. 빛 치료용 기기는 맑은 낮에 해당하는 1만 럭스 정도다. 흐린 날은 100럭스. 사무실은 보통 300럭스, 화장실은 50∼80럭스다. 이 기기를 쓸 때는 머리에서 30cm 정도 거리를 둔다. 광원을 보면 안 되지만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간접적으로 빛이 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30분 정도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빛을 쬐면 확실히 잠에서 깨어난다. 이를 통해 낮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수면주기를 만들 수 있다. 자외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출근길이나 아침 운동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 교수는 “밤 숙면을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이라면서 “아침에는 어떤 식이든 빛을 많이 받는 게 저녁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반대로 해가 진 후부터는 빛을 제한해야 한다. 주 교수는 일몰 후 거실과 주방을 150럭스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50럭스 이하 어두운 조명만 허용할 것을 권했다. 주 교수는 “종이에 쓰인 글씨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조명을 제한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도 숙면에 방해가 된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야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제거하는 게 좋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야식은 물론이고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주 교수는 “야식을 하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뇌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등 주간과 다름없이 활동한다. 이 때문에 숙면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주 교수는 “잠을 자야 할 밤에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가짜 허기’”라고 진단했다. 식사 습관이 흐트러지다 보니 뇌가 배고프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이때 야식을 먹다 보면 심장, 간 등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차들이 있다. 캐모마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도 취침 3∼4시간 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주 교수는 “자기 전에 마시는 차는 수면 중 야뇨를 유발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운동은 잘하면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숙면을 방해한다. 주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두면 수면주기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면서도 “다만 잠을 자기 직전에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무렵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교감신경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게 하므로 숙면을 방해한다. 환한 조명에서 운동하는 것도 몸을 더 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불빛을 낮춘다. 어둑어둑한 가로등 정도 조명이 좋다. 운동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까지가 좋다. 근력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수면을 촉발할 수 있다. ● 수면 패턴 무너지면 중병 올 수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만성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의 수면 패턴이 무너진 게 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근 주 교수를 찾아온 58세 남성 A 씨가 그랬다. A 씨는 젊을 때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하지만 워낙 쉽게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어 수면 장애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다가 가슴이 덜커덩거리는 느낌에 깼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더니 심장부정맥을 진단 받았다. 나중에 A 씨는 관상동맥 협착도 발견됐고 중증 수면무호흡증도 진단 받았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질환으로 악화한 사례인 셈. 실제로 이런 경우 심장질환 위험성은 2배 정도 높다. 69세 된 남성 B 씨는 건망증으로 병원에 왔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었다. 기억력 클리닉에서 검사한 결과 B 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B 씨 또한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상태였다.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뇌혈관까지 손상돼 인지장애로까지 이어진 것. A 씨와 B 씨 모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주 교수는 “숙면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다면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 같은 약에만 의존했다가 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면 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다원검사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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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선글라스 벗어야 밤잠 잘 잔다”[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수면 습관 들여야 숙면 가능해져”“모자란 잠 보충하려 주말 몰아잘 때기상 시간 늦춰도 취침 시간은 지켜야”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숙면을 이루지 못하면 각종 만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수명도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숙면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수면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상태가 장기적으로 방치되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수면 전문가인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내 생체시계를 이해하라”주 교수는 매일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든다. 수면 시간은 약 7시간 반 정도.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주 교수는 자신이 ‘아침형 인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밤에는 너무 지쳐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이란다. 이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 모든 업무를 해결한다. 밤에 숙면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바로 이 ‘생체시계’다. 취침 시간을 기준으로 크게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눈다. 취침 시간이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 반까지라면 중간형. 그 이전에 잔다면 아침형, 자정을 훨씬 넘기면 저녁형이다. 주 교수는 “독일의 생체학자가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 수면 의학 분야에서도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중간형이 가장 많다.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기의 사용 등으로 인해 저녁형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근 저녁형의 비중이 40% 정도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저녁형이라면 오후 9시나 10시에 취침하는 게 불가능하다. 자정 이후에 취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녁형의 경우 취침 시간을 미루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에 자정 언저리에 자다가 나중에는 새벽 1시, 2시까지 미루고, 그에 따라 기상 시간도 늦어진다. 이 경우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가 생기기 쉽다. 따라서 저녁형이라면 무엇보다 기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침형이라면 자정까지 버티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가급적 모든 업무를 주간에 끝내는 게 좋다. 잠을 줄이면서 다른 일을 하다가는 주간 졸음증이나 야간 불면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피로감도 심해지고, 업무나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온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침대 가라”주 교수에 따르면 건강한 수면은 △충분한 수면 시간 △좋은 수면 품질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의 주기가 고를 때 얻을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얻으려면 규칙적인 침상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침상에 머무는 시간과 들어가는 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 가령 매일 오후 11시에 침상에 들어가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나기로 했다면, 이 원칙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6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해서 침상에 더 머물면 안 된다. 피곤하더라도 기상 시간인 7시에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몸이 더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잠을 청하는 것도 좋지 않다. 주 교수는 “조금 참더라도 평상시 자던 시간에 자야 수면의 규칙성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아침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제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좀처럼 잠들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누워 있으면 오히려 뇌가 더 각성할 수 있다. 이때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일단 침상을 벗어나 거실로 나간다. 잠시 쉬고 잠이 올 것 같으면 침상으로 돌아 간다. 이런 행동은 뇌가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이 경우에도 기상 시간은 평소와 같아야 한다.주 교수는 이런 수면 훈련을 최소한 한 달은 지속할 것을 강조했다. 꾸준히 훈련했다면 그 이후에는 침상에 들어가는 시간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단다. 물론 자신의 생체시계에 맞춰 침상에 머무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주 교수는 대체로 7~8시간 이내에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주중에 잠이 부족한 사람이 주말에 보충하기 위해 잠을 더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평소대로 취침 시간을 지키고, 수면 시간의 ‘중간값’ 차이를 2시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시차’를 줄여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예를 들어 평소에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 직장인이라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3시다. 이 직장인이 주말에 오전 2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6시. 두 수면의 사회적 시차는 3시간이다.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잤을 뿐인데, 월요병이 생길 확률이 높다. 반면 이 직장인이 주말에 똑같이 자정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났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5시가 된다. 평소보다 4시간을 더 잤는데도 사회적 시차는 2시간으로 줄어든다. 주 교수는 “사회적 시차를 2시간 이내로 줄이면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월요병, 우울증, 심장병 등의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빛 조절, 숙면에 꼭 필요빛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숙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무엇보다 빛을 받을 때는 확실히 빛을 받아야 한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빛에 얼굴을 노출해야 한다. 최소한 30분 이상은 태양 빛을 받는 게 좋다. 하지만 날씨가 흐리면 강렬한 빛을 받을 수 없다. 이때는 태양 빛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빛 치료(라이트테라피)용 기기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한낮 태양광선이 쨍하게 비칠 때가 3만룩스 이상이다. 빛 치료용 기기는 맑은 낮에 해당하는 1만룩스 정도다. 흐린 날은 100룩스 정도다. 사무실은 보통 300룩스 정도, 화장실은 50~80룩스 정도다. 이 기기를 쓸 때는 머리에서 30㎝ 정도 거리를 둔다. 광원을 보면 안 되지만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간접적으로 빛이 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30분 정도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빛을 쬐도록 한다. 주 교수는 수면을 차단하는 블루라이트가 들어간 기기를 추천했다. 블루라이트는 수면을 방해하는 빛이다. 하지만 아침에는 확실히 잠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수면주기를 바꾸는데 도움을 준다. 자외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출근길이나 아침 운동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밤 숙면을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이라고 했다. 주 교수는 “아침에는 어떤 식이든 빛을 많이 받는 게 저녁 숙면에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해가 진 후부터는 빛을 제한해야 한다. 주 교수는 일몰 후 거실의 주방을 150룩스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빛에 대한 노출을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물론 블루라이트도 이때는 차단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50룩스 이하의 어두운 조명만 허용할 것을 권했다. 주 교수는 “종이에 쓰인 글씨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조명을 제한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 휴대폰도 숙면에 방해가 된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야식이 밤잠 방해한다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제거하는 게 좋다. 일단 저녁 식사 이후에는 야식은 물론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주 교수는 “야식을 하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뇌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등 주간과 다름없이 활동한다. 이 때문에 숙면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면 시간은 점점 뒤로 미뤄지게 된다. 그 경우 야행성으로 바뀌면서 밤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주 교수는 “잠을 자야 할 밤에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가짜 허기’다”라고 진단했다. 식사 습관이 흐트러지다 보니 뇌가 배고프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이때 야식을 먹다 보면 심장, 간 등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차들이 있다. 카모마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들도 취침 3~4시간 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주 교수는 “자기 전에 마시는 차는 수면 중 야뇨를 유발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차가 수면을 돕는다는 의학적 근거나 임상시험은 별로 없는 상황.특히 깊은 잠이 이뤄지는 시간대가 있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다. 생체시계 유형에 따라 시간대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40대 이후에는 대부분 이 시간대에 숙면이 이뤄진다. 이 시간대를 놓치면 아침에 개운하지 못하고 피로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운동은 잘하면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숙면을 방해한다. 조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 두면 수면 주기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면서도 “다만 잠을 자기 직전에는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무렵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교감 신경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게 하므로 숙면을 방해한다. 환한 조명에서 운동하는 것도 몸을 더 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불빛을 낮춘다. 어둑어둑한 가로등 정도의 조명이 좋다. 운동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까지가 좋다. 근력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수면을 촉발할 수 있다. ●수면 패턴 무너지면 중병 올 수도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만성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수면 패턴이 무너진 게 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근 주 교수를 찾아온 58세 남성 A씨가 그랬다. A 씨는 젊었을 때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하지만 워낙 쉽게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어 수면 장애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다가 가슴이 덜커덩거리는 느낌에 깼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더니 심장부정맥을 진단받았다. 나중에 A 씨는 관상동맥 협착도 발견됐고 중증 수면무호흡증도 진단받았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질환으로 악화한 사례인 셈. 실제로 이런 경우 심장질환의 위험성은 2배 정도 높다. 69세 된 남성 B 씨는 건망증으로 병원에 왔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었다. 기억력 클리닉에서 검사한 결과 B 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B 씨 또한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상태였다.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뇌혈관까지 손상돼 인지장애로까지 이어진 것. A 씨와 B 씨 모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주 교수는 “숙면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다면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와 같은 약에만 의존했다가 병을 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불면 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다원검사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숙면을 위한 생활 습관 만들기>규칙적으로 취침하고 기상한다.오전에는 밝은 빛에 노출시키고 저녁 시간에는 제한한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30분 이상 이행한다. 취침 3~4시간 전부터는 가급적 금식한다.취침 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든다.커피는 취침하기 10시간 전까지만 마신다. 술은 숙면의 적. 금주한다. 자료 :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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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만에 귀로 소리를 듣다… 인공 와우로 되찾은 삶[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초등학생이던 28년 전, 전정협 씨(39)는 청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친구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여자아이들과 대화할 때 어려웠다.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웅얼대는 것처럼 들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전 씨의 인공 와우(蝸牛·달팽이관) 수술을 집도한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여자아이 목소리는 전 씨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고음이기 때문에 더 듣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씨의 청각장애는 담임선생님이 발견했다. 교사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이 전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청각장애가 확인됐다.● 10년 넘게 보청기 착용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 씨는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신경을 안 써서 그런지 큰 불편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방심하는 동안 청력은 더 떨어졌다. 중고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뺐다. 친구들에게 보청기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전 씨를 사오정이라고 불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에서다.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무렵부터 친구들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다. 고교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많아지면서 결국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착용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보청기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졌다. 전 씨는 “사회복지사 2년 차부터 업무가 다양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전화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승진은 꿈도 꾸지 못했단다. 30세 때 대장 질환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간 김에 이비인후과 진료도 받았다. 그때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전 씨에게 인공 와우 수술을 권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 씨의 청력은 양쪽 모두 10% 정도만 남았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입 모양을 본다 해도 대화 내용의 50%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 인공 와우 수술 후 이명 사라져 최 교수는 “보청기는 최대 30%의 청력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청력이 50%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80% 수준까지는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력이 70∼80% 이상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교정 후 청력이 최대 50%가 되지 않는다. 웅성대는 느낌만 들 뿐 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 씨에게 남아있는 청력은 10% 정도.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공 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의 청(聽)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다. 몸 안에 이식하는 내부 장치와 바깥에 부착하는 어음(語音)처리기로 나눈다. 귀 뒤쪽 뼈 일부를 절개해 컴퓨터 칩 역할을 하는 내부 장치를 이식한다. 이 장치에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 내부로 삽입돼 청신경을 자극한다. 귀 밖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 내부 장치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은 선천적으로 청신경이 없는 경우만 빼고는 대부분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전 씨는 수술 성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상대방 입 모양을 보며 대화했기에 과연 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와 대화한 후 마음을 굳혔다. 전 씨는 “최 교수님이 수술 성공을 확신했기에 믿음이 갔다.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2015년 12월, 청력이 더 안 좋은 왼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나 사흘 만에 퇴원했다. 수술하고 열흘 만에 이명(耳鳴)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청력이 떨어지면 청각세포들이 ‘더 잘 들으려고’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이명이 생긴다. 그러니 이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청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징조다. ● 수술보다 어려운 재활 과정 인공 와우 수술은 대략 1시간이면 끝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다. 수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술받은 사람 중에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비율이 약 10%다. 왜 그럴까. 청각장애 기간이 길수록 재활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수술하면 바로 소리가 들릴 거라 기대했다가 재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들어하다 포기하는 비율이 10%라는 뜻”이라고 했다. 당연히 20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하던 전 씨도 재활 과정은 어려운 편이었다. 2016년 1월, 수술 2주 후 귀 바깥쪽 머리에 어음처리기를 부착했다. 재활이 본격 시작된 것. 전 씨는 “잡음이 심했고 모든 말소리가 헬륨가스 먹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그동안 뇌가 정상적인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를 뇌가 인지하려면 수천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치매나 인지장애만 아니라면 6개월∼1년 꾸준히 재활하면 대부분 효과를 본다”고 덧붙였다. 이후 1주일 간격으로 총 5회 장치를 조정했다. 당장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청기를 함께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 구별이 어려웠다. 소리가 더 커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맑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꾹 참았다. 수술 5개월째부터 변화가 두드러졌다. 언어 평가 결과 보청기만 착용하면 30%가 들렸는데 인공 와우 장치로는 57%를 들었다. 두 장치를 함께 착용하니 모든 문장을 맞혔다. 수술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는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92%를 알아들었다. 이때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내 덕이 컸다. 전 씨는 매일 4시간씩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줬다. 대화를 반복하면서 점점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됐다. 나중에는 아내의 말실수도 콕 집어냈다. 최 교수는 “수십, 수백 번 듣고 대화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찾아내 뇌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재활 과정을 잘 넘긴 사례”라고 설명했다.● 1년 만에 90% 이상 청력 회복 2017년 2월,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삶은 꽤 풍족해졌다. 전 씨는 “무엇보다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좋았다”고 했다. 업무에도 탄력이 붙었다. 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그전에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 거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정면을 바라봐야 해 상대방 입 모양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면을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소리에 적응하며 청력을 회복하는 지표를 크게 7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난도가 높다. 맨 마지막 7단계를 통과하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 7단계가 바로 전화 통화다. 사람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데다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 기계음을 이해해야 하므로 가장 어렵다. 요컨대 시각 정보 없이 오롯이 낯선 음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 씨는 7단계를 1년여 만에 통과했다.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어느덧 8년여. 전 씨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 씨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귀가 나쁘니 인공 와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전 씨는 왼쪽 귀만 인공 와우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왁자지껄한 곳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오른쪽에서 누군가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른쪽 귀도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한쪽 귀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때문에 추가 수술에는 3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최 교수는 “청각장애자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양쪽 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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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만에 소리를 듣다…“인생이 달라졌어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청각장애 전정협 씨인공와우 수술로 한쪽 귀 청각 되찾아28년 전인 1996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전정협 씨(39)는 그제야 청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언제부터 친구들의 말소리가 잘 안 들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 씨는 “증세가 그 전부터 있었는데, 너무 어려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여자 친구들과 대화할 때가 더 어려웠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나중에 전 씨의 ‘인공와우 수술’을 집도한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여자아이들의 목소리는 전 씨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고음이기 때문에 더 듣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임 선생이 전 씨의 청각장애를 발견했다. 교사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이 전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실제로 전 씨의 청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청각장애 진단을 받게 됐다. ●10년 넘게 보청기 착용했지만…처음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 씨는 “평소에도 혼자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큰 불편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방심하는 동안 청력은 계속 떨어졌다. 중고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뺐다. 친구들에게 보청기를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전 씨를 사오정이라 불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에서다. 크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 무렵부터는 친구들의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다. 고교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많아졌기에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보청기만으로는 사회생활에 한계가 느껴졌다. 전 씨는 “사회복지사 업무를 시작하고 약 2년 흘렀을 때부터 업무가 다양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전화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으니 답답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소통 자체가 점점 불가능해지니 승진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돼 버렸다. 30세 때 대장 질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간 김에 이비인후과 진료도 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최 교수다. 최 교수는 전 씨에게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권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 씨의 청력은 양쪽 모두 10% 정도만 남았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입 모양을 본다 해도 대화 내용의 50%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직장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 후 이명 사라져청력이 심하게 떨어지면 보청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 교수는 “보청기는 소리만 확대하는 스피커와 비슷하다. 최대 30%의 청력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청력이 50%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정상인의 최대 80% 수준까지는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력이 70~80%까지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교정 후의 청력이 최대 50%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웅성대는 느낌만 들뿐 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 전 씨가 최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남아있는 청력은 10% 정도. 최 교수는 인공와우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공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의 청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다. 몸 안에 이식하는 내부장치와 바깥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로 나눈다. 원리는 이렇다. 귀 뒤쪽 뼈 일부를 절개해 컴퓨터 칩 역할을 하는 내부장치를 이식한다. 이 장치에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 내부로 삽입돼 청신경을 자극한다. 귀 밖에 부착하는 어음처리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 내부장치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은 선천적으로 청신경이 없는 경우만 빼고는 대부분 시행할 수 있다. 다만 오래 방치하면 뇌의 청각영역이 쇠퇴해 수술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전 씨 또한 이런 사례에 해당할 뻔 했다. 다만 보청기를 쭉 사용했기 때문에 청신경이 그나마 자극됐고 따라서 뇌의 청각영역이 남아있어 인공와우 수술이 가능했다고 최 교수는 추정했다. 수술이 결정된 후에도 전 씨는 성공을 크기 기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며 대화했기에, 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와 대화한 후 마음을 굳혔다. 전 씨는 “최 교수님이 수술의 성공을 확신했기에 믿음이 갔다.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청력이 더 안 좋은 왼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나 3일 만에 퇴원했다. 수술하고 10일 만에 이명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청력이 떨어지면 청각 세포들이 ‘더 잘 들으려고’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이명이 생긴다. 그러니 이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청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좋은 징조다. ●수술보다 어려운 재활 과정인공와우 수술은 대략 1시간 정도면 끝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란다. 게다가 수술 성공률도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비율이 10% 정도 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재활 과정에서 포기한 사람들이다. 수술을 버텨냈는데 왜 재활에서 ‘탈락’하는 걸까. 보통 청력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발견해 인공와우 수술을 한다면 재활 기간은 짧아질 수 있다. 반면, 청각장애 기간이 길수록 재활 시간도 길어진다. 최 교수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수술하면 바로 소리가 들릴 거라 기대했다가 재활하는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비율이 10%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20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전 씨는 특히 재활 과정이 어렵고 오래 걸렸다. 그 과정을 들어봤다.2016년 1월, 수술 후 2주가 흘렀다. 귀 바깥에 어음처리기를 처음 부착했다. 재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첫 날은 어땠을까. 전 씨는 “잡음이 심했고, 모든 말소리가 헬륨가스 먹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척 피곤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그동안 정상적인 소리를 듣지 못했던 뇌가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를 뇌가 인지하려면 수천 번 이상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끝없는 반복이 재활 환자를 지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다. 최 교수는 “최소한 6개월~1년을 인내하면, 치매와 인지장애가 아니라면 100% 효과를 보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1주일 후 두 번째로 장치를 조정했다. 첫 회에 전기자극을 강하게 줘 청신경을 깨웠다면 2회째부터는 자극의 강도를 조절하며 상태를 살펴본다. 이런 식으로 1주일 간격으로 장치를 조정한다. 5회까지 장치 조정을 한 결과는 어땠을까. 전 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보청기를 함께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 구분이 어려웠다. 소리가 더 커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맑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참았다. 재활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2016년 4월, 6회째 장치 조정을 하면서 언어평가를 했다. 보청기만 착용하면 30%를 들었지만 인공와우는 57%를 들었다. 두 장치를 함께 착용하니 모든 문장을 맞췄다.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마음. 비로소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6개월 후인 2016년 7월. 언어평가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92%를 알아들었다. 이때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내의 덕이 컸다. 정 씨는 매일 4시간씩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줬다. 반복 대화를 하면서 점점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됐다. 나중에는 아내의 말실수도 콕 짚어냈다. 최 교수는 “재활 훈련 과정은 외국어를 공부할 때와 비슷하다. 수십, 수백 번 듣고, 대화하고, 그걸 받아쓰면서 발음이 정확한지 등을 따져야 뇌에 입력이 된다. 듣기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1년 만에 90% 이상 청력 회복2017년 2월, 인공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삶이 풍족해졌다. 전 씨는 “무엇보다 사람의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좋았다”고 말했다. 업무에도 탄력이 붙었다. 덕분에 전 씨는 팀장으로 승진도 했다. 전에는 자동차 운전할 때 거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다. 정면을 바라보려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도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하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소리에 적응하며 청력을 회복하는 지표를 크게 7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난도가 높다. 맨 마지막인 7단계를 통과하면 ‘완치’로 규정하는데, 바로 전화 통화다. 사람의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데다가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 기계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 요컨대 시각정보 없이 오롯이 낯선 음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 씨는 이 7단계를 1년여 만에 통과했다. 인공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어느덧 7년. 전 씨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 씨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착용하는 것처럼 귀가 나쁘니 인공와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전 씨는 왼쪽 귀에만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모든 발음을 들을 수도 없다. 왁자지껄한 곳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오른쪽 방향에서 누군가 말하면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른쪽 귀도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전 씨도 이 점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한쪽 귀에만 건강보험 혜택을 준다. 오른쪽 귀 수술하려면 비급여로 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수술비만 3000만 원이 넘는다. 전 교수는 “청각장애 환자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귀 양쪽 모두 건강보험 적용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정협 씨의 인공와우 수술 및 재활 투병일지>1996년 청각장애 사실 처음 확인(12세)2005년 본격적으로 양쪽 귀에 보청기 착용(21세)2015년 12월 왼쪽 귀에 인공와우 수술 시행(30세)2016년 1월 인공와우 수술 후 재활 본격 시작2016년 1월~4월 매주 1회씩 인공와우 장치 조정 (이후로도 장치는 수시로 조정함)2016년 4월 인공와우와 보청기 함께 착용하면 문장 100% 이해함2016년 7월 인공와우 만으로 입 모양 보지 않고 문장 92% 이해함2017년 2월 수술 1년여 경과 후 가장 난도 높은 7단계 전화 통화 성공 사실상 완치 판정2017년 3월 이후 매년 2월 인공와우 장치 조정 2024년 4월(현재) 오른쪽 귀 인공와우 수술 검토 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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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하면 사라지는 허리 통증… 강직성 척추염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허리 통증의 97% 정도는 근육이나 관절 손상에 따른 것이다. 추간판탈출증(척추디스크), 척추관협착증, 척추골절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런 통증을 ‘기계적 통증(Mechanical Pain)’이라고 한다. 이런 원인이 아닌데도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다.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등을 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어떤 병인가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만성화하면서 발생한다. 허리나 엉덩이, 팔과 다리 관절, 앞가슴, 발꿈치나 발바닥 등에 통증이 주로 나타난다. 다른 장기로도 침범할 수 있다. 눈으로 진행하면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발생한다. 포도막염은 재발이 잘 되며 녹내장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특정 유전자(HLA-B27)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족 중에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있다면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 밖에도 환경적 요인, 물리적 자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지만 확실하게 정립되지는 않았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며 전신 염증 질환이다. 이 때문에 완치가 어렵고,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결국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다.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염증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 경우 평생 약을 먹지 않고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굳어 버린다. 이를 ‘대나무 뼈(Bamboo Spine)’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앞으로 굽힐 수 없다. 그러니 제대로 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재발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방치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국내 환자 수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주로 발병한다. 여성보다는 남성 환자 수가 많다. 50대 이후로는 발병 건수가 줄어든다.●쉴 때 더 아프다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자가 진단법을 알아 두는 게 좋다. 일단 척추디스크나 척추협착증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일 때도 등과 허리, 골반 주변에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통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숙지하자. 강직성 척추염의 허리 통증은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보통은 3개월 이상 지속된다. 통증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통증의 강도도 악화했다가 좋아지기를 되풀이한다. 통증이 지속적이라면 병원에 갈 텐데, 곧 사라지는 점이 조기 발견을 막는 요소다. 일시적인 통증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초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김 교수는 “실제로 환자 대부분이 3∼4년 앓다가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통증의 주기는 환자마다 다르다. 김 교수는 “한 달 아프다가 이후 서너 달은 멀쩡한 환자도 있고, 일단 아프면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다 사라지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통증의 양상은 척추디스크와 완전히 다르다. 척추디스크는 쉬면 통증이 줄어든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운동할 때 통증이 줄어들고, 쉬면 오히려 통증이 악화한다. 척추디스크의 경우 다리가 저리는 등의 신경학적 증세가 나타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이런 증세가 전혀 없다. 또 척추디스크일 때는 한쪽으로만 증세가 나타나는데, 강직성 척추염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곧장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선 척추의 유연성을 검사한다. 다음에는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 염증 수치가 높은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 X레이로 척추가 얼마나 강직됐는지 확인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한다. ●방치하면 뼈가 굳는다 김 교수는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것이 치료 목표”라고 말했다. 이 병 진단을 받으면 1차로 운동을 병행하며 재활치료를 한다. 효과가 미미하면 소염진통제를 쓴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염증 진행을 억제하는 생물학적제제를 쓴다. 이것도 효과가 작으면 또 다른 생물학적제제나 표적치료제를 쓴다. 이미 말한 대로 조기 발견과 대처가 중요하다. A 씨 치료 사례가 대표적이다. 2년 전 2월, 당시 21세의 현역 군인 A 씨는 새벽마다 허리 통증 때문에 깼다. 의무대에서 소염진통제를 받아와 먹으면 통증이 사라졌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아팠다. 군 의료진은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고, 초기 상태인 것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소염진통제를 투입했다. 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염증 조절을 위한 추가 치료가 필요했다. A 씨는 김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추가로 생물학적제제 주사를 투입했다. 그 후 A 씨는 조기 전역했고, 치료에 전념했다. 병은 악화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소염진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태도 좋아졌다. 3개월마다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다. 42세 남성 B 씨는 치료에 소홀해 심각해진 사례다. B 씨는 2018년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병원을 잘 다니며 치료도 잘 받았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3년 정도가 지난 작년 7월 B 씨가 다시 김 교수를 찾았다. 몸 상태는 심각했다. X레이를 찍어 보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척추뼈가 붙어 있었던 것. B 씨는 몸을 앞으로 구부릴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목뼈까지 붙어 버린다. 김 교수는 “굳지 않은 부위만이라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모든 뼈가 붙어 버리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골절이 일어나고, 그 경우 상체가 앞으로 그대로 꺾이게 된다”고 말했다.●병 악화 막는 스트레칭 강직성 척추염의 진행을 막기 위한 운동법이 있다. 김원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팀이 제안한 다섯 동작을 따라 하자. 환자가 아니어도 이 스트레칭을 시행하면 척추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원칙은 이렇다. 첫째, 매일 해야 한다. 20∼30분에 걸쳐 다섯 동작을 모두 따라 한다. 둘째, 각 동작은 10∼20초에 걸쳐 천천히 하고, 3∼5회 반복한다. 다만 여섯 번째 ‘등 근육 강화’ 운동 동작은 더 느리게 10회 반복한다. 더불어 유산소운동을 병행하고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도록 한다.강직성 척추염 진행을 막는 스트레칭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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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하면 허리 통증 사라진다, 혹시 강직성 척추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젊은 사람들이 허리와 등이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 근육이나 관절 손상에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추간판탈출증(척추디스크), 척추관협착증, 척추골절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허리와 등 통증의 97% 정도는 이런 원인으로 발생한다. 이런 통증을 ‘기계적 통증(Mechanical Pain)’이라고 한다. 이런 원인이 아닌데도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다. 이 병이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등을 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강직성 척추염 어떤 병인가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오래 지속되면서 발생한다. 허리나 엉덩이, 팔과 다리 관절, 앞가슴, 발꿈치나 바닥 등에 통증이 주로 나타난다. 다른 장기로도 침범할 수 있다. 눈으로 진행하면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발생한다. 포도막염은 재발이 잘 되며 녹내장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특정 유전자(HLA-B27)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족 중에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있다면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 밖에도 환경적 요인, 물리적 자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지만 확실하게 정립되지는 않았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며 전신 염증 질환이다. 이 때문에 완치가 어렵고,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결국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다.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염증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 경우 평생 약을 먹지 않고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재발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방치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이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굳어버린다. 이를 ‘대나무 뼈(Bamboo Spine)’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앞으로 굽힐 수 없다. 그러니 제대로 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서구에 환자가 많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경우 국민의 5% 정도가 강직성 척추염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덜해서 국민의 0.3% 내외 정도, 10만 명이 조금 넘는 환자가 있다.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주로 발병한다. 여성보다는 남성 환자 수가 많다. 50대를 넘어서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김 교수는 “군 생활하던 중에 발견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강직성 척추염, 쉴 때 더 아프다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자가 진단법을 알아두는 게 좋다. 일단 척추디스크나 척추협착증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일 때도 등과 허리, 골반 주변에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통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숙지하자. 강직성 척추염의 허리 통증은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보통은 3개월 이상 지속된다. 통증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통증의 강도도 악화했다가 좋아지기를 되풀이한다. 통증이 지속적이라면 병원에 갈 텐데, 곧 사라지는 점이 조기 발견을 막는 요소다. 일시적인 통증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초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김 교수는 김 교수는 “실제로 환자 대부분이 3~4년 앓다가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통증의 주기는 환자마다 다르다. 김 교수는 “한 달 아프다가 이후 서너 달은 멀쩡한 환자도 있고, 일단 아프면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다 사라지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통증의 양상은 척추디스크와 완전히 다르다. 척추디스크는 쉬면 통증이 줄어든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운동할 때 통증이 줄어들고, 쉬면 오히려 통증이 악화한다. 척추디스크의 경우 다리가 저리는 등의 신경학적 증세가 나타나지만, 강직성 척추염일 때는 이런 증세가 전혀 없다. 또 척추디스크일 때는 한쪽으로만 증세가 나타나는데, 강직성 척추염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곧장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선 척추의 유연성을 검사한다. 다음에는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 염증 수치가 높은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 X레이로 척추가 얼마나 강직됐는지 확인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한다. ●방치하면 뼈가 굳는다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으면 1차로 운동을 병행하며 재활치료를 한다. 이 치료만으로 효과가 미미하면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약물치료에도 단계가 있다. 우선 소염진통제를 쓴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염증의 진행을 억제하는 생물학적제제를 쓴다. 이것으로도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으면 또 다른 생물학적제제나 표적치료제를 쓴다. 김 교수는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것이 치료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강직성 척추염 또한 조기 발견과 대처가 중요하다. A 씨 치료 사례가 대표적이다. 2년 전 2월, 당시 21세의 현역 군인 A 씨는 허리가 아파 새벽마다 잠에서 깼다. 의무대에서 소염진통제를 받아와 먹으면 그럭저럭 통증이 사라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통증이 다시 나타났다.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군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다. 군 의료진은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고, 실제로 초기 상태인 것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소염진통제를 투입했다. 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염증 조절을 위한 추가 치료가 필요했다. A 씨는 김 교수를 찾았고, 이때부터 김 교수가 치료를 담당했다. 김 교수는 추가로 생물학적제제 주사를 투입했다. 그 후 A 씨는 조기 전역했고,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병은 악화하지 않았다. 소염진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태도 좋아졌다. 요즘에는 3개월마다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다. A 씨와 달리 42세 남성 B 씨는 치료에 소홀해 심각한 상태가 된 사례다. B 씨는 2018년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병원을 잘 다니며 치료도 잘 받았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3년 정도가 지난, 작년 7월 B 씨가 다시 김 교수를 찾았다. 몸 상태는 심각했다. X레이를 찍어보니 척추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뼈가 붙어 있었던 것. B 씨는 몸을 앞으로 구부릴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목뼈까지 붙어버린다. 김 교수는 “굳지 않은 부위만이라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뼈가 붙어버리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골절이 일어나고, 그 경우 상체가 앞으로 그대로 꺾이게 된다”고 말했다. ●병의 악화 막는 스트레칭강직성 척추염의 진행을 막기 위한 운동법이 있다. 김원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팀이 제안한 다섯 동작을 따라해 보자. 환자가 아니어도 이 스트레칭을 시행하면 척추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원칙은 이렇다. 첫째, 매일 해야 한다. 약 20~30분에 걸쳐 다섯 동작을 모두 따라 한다. 둘째, 각 동작은 10~20초에 걸쳐 천천히 하고, 3~5회 반복한다. 다만 여섯 번째 ‘등 근육 강화’ 동작은 더 느리게 10회 반복한다. 더불어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고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도록 한다. ①앞쪽 몸통 스트레칭=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상체를 뒤로 젖힌다.②가슴 스트레칭=벽 모서리를 보고 서서 양손으로 벽을 짚고 앞쪽으로 가슴을 쭉 민다.③몸통 회전 운동=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회전시킨다.④뒤쪽 허벅지 스트레칭=누운 자세에서 수건이나 끈을 이용하여 다리를 앞으로 당긴다.⑤흉추 스트레칭=수건이나 쿠션을 등에 대고 누운 상태에서 양다리를 구부린다.⑥등 근육 강화 운동=무릎을 대고 엎드린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다. 이때 반대쪽 팔을 들어 쭉 편다. 그 다음에 반대쪽도 번갈아 운동한다. <강직성 척추염 증세 감별하기>1. 허리, 등 통증이 40세 이전에 시작됐다.2. 밤에 자다가 허리, 등 통증으로 깬다.3. 계속 아픈 게 아니고,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한다.4.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 허리가 뻣뻣한 느낌이 든다.5. 특정 운동을 하고 나면 괜찮아진다.6. 엉덩이 관절이나 어깨 관절 등이 붓고 아프다.7. 눈 통증이나 충혈이 발생하는 포도막염이 있었다.자료 : 김용길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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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약은 초기 일시적 효과, 끊으면 ‘요요’ 불러”[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글로벌 제약사들이 새로운 비만치료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약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큰 비만치료제가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이어트를 계획 중인 많은 이들이 ‘꿈의 다이어트약’이라 부르는 그 약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비만치료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도 관련 약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궁금한 점이 있다. 이런 다이어트약들이 실제로 효과가 클까. 정말로 약이나 주사만으로도 체중이 쭉쭉 빠질까. 과체중이거나 비만이 아닌 사람도 이 약을 먹으면 날씬해질까. 고도비만 환자도 이 약을 쓰면 정상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증은 또 생긴다. 다이어트약 말고 비만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식욕을 억제하기 위해 수술을 한다는데, 효과가 있는 걸까. 약물과 수술 치료에 대한 질문을 권영근 고려대 안암병원 비만대사센터 교수에게 던졌다. 권 교수는 다이어트약에 대한 인식부터 정립할 것을 강조했다. ● 약 쓰기 전, 이것만은 명심하자 권 교수는 “다이어트약은 내키면 아무 때나 먹는 약이 아니다. 비만치료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받고 먹어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라는 것. 당연히 비만치료제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겠다며 비만치료제를 먹는다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도 생기기 쉽다. 권 교수는 “비만치료제는 체중 감량을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약만 먹고 체중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효과를 얻으려면 체질량지수(BMI) 25 이상 비만 환자일 때 사용해야 한다. 이 환자가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같은 동반 질환이 있다면 쓰는 게 좋다. 이 경우 동반 질환도 함께 개선할 수 있다. BMI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국내 기준에 따르면 18.5∼22.9가 정상, 23∼24.9가 과체중, 25부터 비만에 해당하며 30을 넘어서면 고도비만으로 본다. 고도비만 환자는 약물만으로는 체중 감량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체중을 줄였다고 해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도비만 환자는 약물 외에도 수술 치료를 병행할 때가 많다. 비만치료제들은 대부분 최근 등장했다. 따라서 5년 혹은 10년 이상 의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 물론 장기간 사용이 인정된 약은 대부분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권 교수는 “어떤 비만치료제는 3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판매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약물별 장단점 알아두자 인터넷을 몇 분만 검색해도 다이어트 광고를 여러 번 접하게 된다. 특히 체중 감량을 보장하는 약물을 홍보하는 광고들이 넘쳐난다. 이런 광고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약물 효과가 뛰어나다고 부각하는 광고일수록 과장 광고일 확률이 높다. 권 교수는 “국내에서 장기간 사용 허가를 받은 비만치료제는 네 종류”라고 말했다. 성분명으로 구분하자면 △올리스타트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날트렉손/부프로피온 △리라글루타이드다. 이 약물들은 지방이 장에서 흡수되지 않도록 억제하거나, 식욕이나 음식만 보면 먹고 싶은 강한 욕구를 억제함으로써 음식 섭취량을 줄여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 혹은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음식을 덜 먹도록 하는 약도 있다. 대부분 먹는 약이지만 주사제도 있다. 약물마다 부작용이 있다. 자신에게 적합한 약을 알아두는 게 좋다. 이 네 가지 비만치료제는 1년 사용할 때 대체로 5∼10%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 체중이 80kg이라면 4∼8kg 정도 감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체중을 더 줄여보겠다며 용량을 늘리거나 기간을 늘려 복용해도 그 이상 효과는 볼 수 없다. 비만치료제를 보조 수단이라고 하는 이유다. 새 비만치료제 2종류가 곧 국내에 출시된다.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와 티르제파티드(제품명 젭바운드)다. 두 약물은 식욕 조절이나 포도당 대사 등에 관여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면서 체중을 뺀다. 임상시험에서 위고비는 15%, 젭바운드는 20%까지 체중을 감량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두 약물은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을 동시에 치료하는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치료법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한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고도비만 치료를 위한 수술법 BMI가 30 이상이고 나이가 18세 이상이면 비만 수술을 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 다만 BMI가 30∼35라면 고혈압, 2형 당뇨병, 고지혈증, 비알코올성 지방간, 수면무호흡증, 관절질환, 천식,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비만에 동반한 질환이 한 가지 이상 있어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술 방법은 여러 종류가 있다. 과거에는 위장에 풍선을 넣어 섭취량을 줄이는 방법을 썼다. 이 방법은 6개월 정도 후 풍선을 빼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단점이 있다. 6개월여 만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셈이 된다. 요즘에는 많이 시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의 상단부를 밴드로 조여 섭취량을 제한하는 위 밴드 시술은 합병증이 많이 생긴다는 보고가 많이 나오면서 최근 시술 건수가 줄었다. 요즘에는 위 소매 절제술이 가장 많이 시도된다. 마치 옷소매를 잘라내듯 위의 80%를 수직으로 잘라내는 방법이다. 공복 호르몬인 그렐린 수치가 감소해 식욕이 줄어들고 포만감이 커진다. 다음으로 자주 하는 수술은 위 우회술이다. 위의 상단 부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잘라낸다. 이렇게 하면 음식물이 위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장으로 가게 돼 음식 섭취량이 줄어든다. 식욕 조절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쳐 포만감을 키워준다. 수술 치료 결과는 어떨까. 권 교수는 “사람마다 체중 감량 정도는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2∼18개월 사이에 25∼30% 체중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100kg이라면 최대 70kg으로 줄어든다는 뜻. 혹시 요요 현상이 심하지는 않을까. 권 교수는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환자와 30% 감량에 못 미치는 환자를 모두 합쳐야 (전체 수술받은 사람의) 10%”라고 말했다. 체중 감량 효과가 확실히 크다는 것이다. 다만 이 다이어트는 과체중이나 비만 환자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권 교수는 “약물과 달리 수술 치료는 위장 일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며 신중하게 고민하고 의사와 상담한 후 결정할 것을 추천했다. ● 다이어트 원칙 준수가 성공 좌우 다이어트 성공 여부는 언제 판단할까. 권 교수는 “목표 체중 달성에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요요 현상 없이 그 체중을 유지할 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약만으로는 결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길게 봐야 하며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생활방식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약물 다이어트는 초기에 효과가 있을 뿐, 약을 끊으면 거의 모두 식욕이 다시 올라오고 체중이 늘어난다는 것. 수술한다고 해도 생활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요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똑같다. 권 교수는 ‘다이어트=비만 치료’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따라서 체중 감량뿐 아니라 동반 질환도 함께 개선해야 비로소 삶의 질이 좋아지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용 목적으로 비만치료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에도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생활방식을 개선해야 다이어트에 최종 성공하는 것이란다. 권 교수는 “이런 원칙들을 지키지 않으면서 약물에만 기댄다면 100%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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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열량 탄수화물 비중 30~50% 바람직… 10% 밑은 위험”[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1972년 미국 의사 로버트 앳킨스가 쓴 책 ‘다이어트 혁명’에 수록된 다이어트 방법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렀다. 탄수화물은 먹지 않고 단백질과 지방을 더 먹으면 체중이 빠진다는 것. 빵이나 밥을 안 먹으면 기름진 육류는 무제한 먹을 수 있어 ‘황제 다이어트’라고 불렀다. 이것이 바로 저(低)탄수화물 다이어트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2010년대 국내에도 전파됐다.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현재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가장 인기 있는 다이어트 중 하나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보통 하루 섭취 열량의 45% 미만으로 탄수화물 비중을 줄인다. 탄수화물 섭취를 10% 미만으로 줄이는 초(超)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위험할 수 있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궁금증이 생긴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지방을 줄이는 저지방 다이어트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권혁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해답을 들었다. ● 탄수화물만 줄이면 되는 걸까? 탄수화물을 줄이면 우리 몸은 저장된 지방을 꺼내 에너지원(源)으로 쓴다. 그러니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면 지방 소모량이 늘어나고 체중도 줄어든다는 것. 최근에는 인슐린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기도 한다. 이 경우 특히 GI(혈당지수)가 높은 단순당 음식을 덜 먹어야 한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가파르게 오른다.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돼 아직 소비하지 않은 에너지원을 곧바로 지방으로 저장한다. 권 교수는 “식사 후 금세 배가 고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써야 할 에너지원이 순식간에 저장돼 버리니까 추가로 에너지가 필요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결과는 비만이다. 권 교수는 “특히 GI가 높은 음식을 피해야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체중 감량 효과는 어떨까. 권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 (다이어트 개시) 24주 이후부터는 효과가 작거나 요요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부작용도 있다. 몸에 나쁜 LDL(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승한다. 권 교수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평균 12주가 지난 시점부터 이 수치가 높아진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고지혈증 환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다이어트다. 제2형 당뇨병 환자도 탄수화물 섭취를 지나치게 줄이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케톤이란 물질이 몸에 쌓여 치명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탄수화물은 두뇌가 돌아가는 연료다. 수험생이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직장인은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구토, 변비, 두통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저탄고지’냐, ‘저탄고단’이냐 탄수화물을 줄인 만큼 지방 섭취량을 늘리면 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고지) 다이어트,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면 저탄수화물 고단백(저탄고단) 다이어트가 된다. 일반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지방 섭취가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는 2018년을 전후로 저탄고지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지방 비중을 높이면 음식의 고소한 맛이 유지될 뿐 아니라 풍미가 더 살 수 있다. 밥과 빵만 줄이면 되니 그보다 쉬운 다이어트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삼겹살을 무한정 먹거나 버터를 발라 먹으면서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초기에는 체중 감량 효과가 있었다. 너도나도 이 다이어트에 도전했다. 의학회가 비판 성명을 내기에 이를 정도였다. 포화지방산과 동물성 지방을 많이 먹는다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커지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방 비중이 40%를 넘어서면 사망률도 높아진다. 여기에다 권 교수는 “장기 데이터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암 발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식물성 지방을 먹는 게 좋다. 대규모 연구 결과 탄수화물 대신 식물성 지방을 섭취하면 사망률이 18% 감소했다. 반면 동물성 지방을 먹으면 사망률이 18% 증가했다. 포화지방산은 하루 섭취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게 좋다. 저탄고지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새로 주목받은 게 저탄고단이다. 원리는 저탄고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작용도 비슷하다. 따라서 단백질도 동물성보다는 식물성 단백질을 늘려야 한다. 만성 신장병 환자는 단백질 과잉 섭취가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 콩팥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저탄고단을 무조건 시행하면 안 된다.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지방을 줄여 체중을 줄이자’ 지방 1g당 열량은 9Cal로 탄수화물과 단백질(각각 4Cal)의 두 배가 넘는다. 똑같은 양이라도 지방 함량이 많은 음식의 열량이 높다. 이런 음식을 먹었다면 열량을 더 소비해야 살이 찌지 않는다. 반대로 지방 함량이 적은 음식을 먹으면 소비해야 할 열량이 적어진다. 저지방 다이어트의 기본 원리가 이것이다. 지방을 줄여 체중을 줄이자는 것.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전적인 다이어트다. 저지방 다이어트는 국내보다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서양에서 특히 유행했다. 일반적으로 서양 식단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웃돈다. 이 비중을 20% 이내로 줄이자는 것이다. 반면 한국 사람은 굳이 이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권 교수는 “우리 전통 식단은 탄수화물 비중이 크고 지방 비중이 작다. 일부러 지방을 덜 먹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식단에서 지방 비중은 15∼20% 정도다. 다만 최근 청소년과 젊은 층이 서구 식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저지방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권 교수는 “학생들이 학원 주변에서 먹는 음식들을 보면 대부분 지방 함량이 높다. 게다가 활동량까지 적어 비만이 되기 쉽다. 그런 학생들은 의도적으로라도 저지방 식단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을 줄이면 단백질과 탄수화물 중 한쪽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때 탄수화물 섭취량을 늘리면 과잉 탄수화물 상태가 돼 체중이 늘어난다. 탄수화물은 중간 정도로 먹고 단백질을 늘리는 게 좋다. 가령 닭고기를 먹는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가슴살 위주로 먹고 밥은 적당히 먹는 식이다.● 최소 12주 시도해 보고 적합한 방식 찾아야 대한비만학회가 권장한 건강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탄수화물 비중은 30∼50%가 적절하다. 지방은 30∼40%, 단백질은 20∼30%다. 비중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음식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 탄수화물은 GI가 낮은 복합당 위주로 먹는다. 지방과 단백질은 동물성에서 식물성으로 바꾼다.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면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권 교수는 “단기 체중 감량에 만족하지 말고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탄수화물이든 저지방이든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찾고 유지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유행하는 다이어트라고 해서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직접 시도해 봐야 한다. 최소한 12주는 해 봐야 다이어트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다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어느 정도 감이 온다고 권 교수는 조언한다. 권 교수는 “2∼3주 동안 다이어트를 했는데 500g도 빠지지 않았다면 다른 다이어트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에게 적합하다 여겼지만 12주 동안 겨우 500g 빠졌다면 의미가 없으므로 이때도 다른 다이어트로 바꿔야 한다. 만성 질병이 있다면 의사와 상의해 다이어트 방법을 결정하는 게 좋다. 권 교수는 “종합적으로 보자면 저탄, 저지, 고단을 추천한다”고 했다. 물론 이때도 복합당 위주 탄수화물, 식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을 먹어야 다이어트 효과를 높이고 질병 위험을 낮춘다. 하지만 원칙대로 실천하는 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권 교수는 “그렇다면 하루 세 끼를 거르지 않고 먹되 양을 줄이는 방법을 시도하라. 그 대신 주의할 식품은 최대한 차단하라”고 조언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바닐라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를 고르고, 케이크를 먹기보다는 통밀빵을 먹는 식이다. 단순당이 많은 음료수나 디저트는 웬만하면 삼간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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