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지난달 23∼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제18차 샤카디타 세계대회가 열렸다. 샤카디타는 ‘붓다의 딸들’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이 행사는 불교 내 성평등 실현과 함께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대회다. 19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인도, 베트남, 미국 등 31개국에서 3000여 명의 비구니와 불교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조은수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서울대 철학과 교수·사진)를 3일 전화 인터뷰했다. ―이번 대회 주제가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 있기’였다. “우리는 늘 생각하며 살지만 대부분 과거에 대한 기억 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지, 지금 내 마음과 내 주변에 대해서는 신경을 잘 안 쓴다. 출근할 때, 도착해서 할 일은 생각해도 가는 길의 풍경은 주의깊게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쉽게 말해 지금 나에게, 우리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늘 자각하자는 것이다.” ―대회는 어떻게 진행됐나. “20여 편의 논문 발표 및 50여 개 주제의 워크숍, 문화 공연, 법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열렸다. 마지막으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에 모두가 힘을 다하자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폐막 후에는 백담사, 월정사, 낙산사 등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비구니의 위상이 낮은 나라가 많다. “불교 국가인 부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구족계 수계가 이뤄진 게 작년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비구니가 없는데, 비구니 5명 이상이 있어야 비구니 수계를 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던 나라도 있었다. 우리 안에도 여성을 폄하하는 관행이 여전히 반성과 비판 없이 반복되고 있다. 불교계와 학계에서 여성의 기여와 역할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 이태석 신부(1962∼2010)가 이런 말씀을 남겼어요. ‘예수님이라면 이곳(남수단)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라고요. 그 뜻을 이어 가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년)로 널리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잇기 위한 학교인 ‘이태석 리더십 학교’(1기·8주 과정)가 지난달 10일 출범했다. 이날 첫 수업 강사는 스웨덴 5선 국회의원인 올레 토렐. 서울 영등포구 이태석재단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사진)은 “이 신부의 리더십은 섬김과 봉사”라며 “진심으로 사람과 사회를 섬기는 리더를 키우고 싶어 토렐 의원을 첫 강사로 초빙했다”고 말했다. KBS PD를 지낸 구 이사장은 영화 ‘울지마 톤즈’의 감독이다. ―첫 강사로 스웨덴 국회의원을 초빙했다. “이태석 리더십 학교라고 하니까 종교 관련 강의 위주일 것 같지만 이 신부처럼 사회에 봉사하는 참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잘 개선되지 않는 건 법과 제도 탓이라기보다는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렐 의원에게 스웨덴 민주주의와 리더의 역할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한국 국회의원과 비교해 어떤 점이 다른가. “스웨덴은 국민이 국회의원들의 나랏돈 사용 내역을 요청하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복사도 해준다. 검증 차원에서 토렐 의원의 비용 사용 내역을 받았는데, 마이너스(―)로 표기된 부분이 있었다. 받아간 돈이 남아 반납했다는 의미다. 토렐 의원에게 물어보니 해당 항목은 식대로, 상대방이 계산을 해서 돈이 남았기 때문에 반납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게 국민과 사회를 진심으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학생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참가자가 중고등학생들이다. “당초 정원이 20명이었는데 40명으로 늘렸다. 자기소개서 및 이 신부와 관련된 에세이를 보고 뽑았는데, 내용을 보니 도저히 떨어트릴 수가 없었다. 또 강의가 주말마다 있는데, 학교와 학원 갈 시간에 여기 올 정도로 진심인 아이들을 떨어트리면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강의가 끝난 뒤 남수단도 방문한다.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국회를 견학하고 청년 정치인들을 만난다.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는 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울지마 톤즈’는 단순히 오지에서 선행을 한 신부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니다.” ―선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뜻인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섬김과 봉사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회 지도자들이 좀 보고 배우라고…. 올가을 2기 학교 때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인인 아르멘 멜리키안 씨를 강사로 초빙한 것도 같은 이유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노약자 수십 명을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800km에 가까운 거리를 목숨을 걸고 직접 차를 운전해 탈출을 도운 인물이다.” ―이 신부 같은 리더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남수단 수도 주마에서 의대에 다니는 이 신부 제자가 70여 명이나 된다. 톤즈는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 수도로 유학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인척들을 찾아다니며 ‘꼭 쫄리(이 신부의 별명으로,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현 ‘존’과 이 씨를 합친 것) 신부님처럼 의사가 돼서 돌아와 봉사하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뿌린 씨앗이 그렇게 퍼지고 커진 것이다. 남수단에서도 되는데 우리가 안 될 이유가 있을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 이태석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남겼어요. ‘예수님이라면 이곳(남수단)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라고요.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시작했습니다.”지난달 10일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잇기 위한 학교(이태석 리더십 학교 1기·8주 과정)가 출범했다. 이날 첫 수업 강사는 뜻밖에도 스웨덴 5선 국회의원인 올레 토럴.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이태석재단에서 만난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은 “이 신부의 리더십은 섬김과 봉사”라며 “진심으로 사람과 사회를 섬기는 리더를 키우고 싶어 올레 토럴 의원을 첫 강사로 초빙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개봉한 ‘울지마 톤즈’를 감독했다.―첫 강사로 스웨덴 국회의원을 초빙했다.“이태석 리더십 학교라고 하니까 종교 관련 강의가 주 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신부처럼 우리 사회에 봉사하는 참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개선이 안 되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법과 제도 탓이라기보다는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레 의원에게도 스웨덴 민주주의와 리더의 역할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지에 대해.”―스웨덴 국회의원은 어떤 점이 다른가.“스웨덴 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나라 돈 사용 내역을 요청하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복사도 해준다. 검증 차원에서 올레 의원의 사용 내역을 받았는데, 내역 중에 마이너스(-)로 표기된 부분이 있었다. 받아간 돈이 남아 반납했다는 표시다. 올레 의원에게 물어보니 식대였는데, 상대방이 대신 내서 남았기 때문에 반납했다고 했다. 이런 게 국민과 사회를 진심으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학생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참가자들이 중·고등학생들이던데.“원래 20명 정원이었는데 40명으로 늘렸다. 자기소개서와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에세이로 뽑았는데, 내용을 보니 도저히 떨어트릴 수가 없었다. 또 강의가 매주 주말에 있는데, 학교, 학원 갈 시간에 여기 올 정도로 진심인 아이들을 떨어트리면 큰 상처를 받을 것도 같고…. 올레 의원이 ‘아이들이 질문 준비를 워낙 많이 해서 대충 대답할 수가 없었다’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열의가 뜨겁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남수단도 방문한다고.“스웨덴, 덴마크에서는 국회 견학과 청년정치인들을 만나고,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는 이 신부의 섬김과 봉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험을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울지마 톤즈’는 단순히 오지에서 선행을 펼치는 한 신부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니다.”―뭘 말하고 싶었던 건가.“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섬김과 봉사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회 지도자들이 좀 보고 배우라고…. 올 가을 2기 학교 때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인인 아르멘 멜리키안 씨를 강사로 초빙한 것도 같은 이유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노약자 수십 명을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800km에 가까운 거리를 목숨을 걸고 직접 차를 운전해 탈출을 도운 인물이다.” ―이 신부 같은 리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남수단 수도 주마에서 의대에 다니는 이 신부 제자가 70여명이나 된다. 톤즈는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 수도로 유학 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인척들을 찾아다니며 ‘꼭 쫄리(이 신부의 현지 별칭) 신부님처럼 의사가 돼서 돌아와 봉사하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뿌린 씨앗이 그렇게 퍼지고 커진 것이다. 남수단에서도 되는데 우리가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07년 봄, 새벽에 한 남자로부터 아기를 교회 문 앞에 두고 가니 잘 보살펴 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놀라서 대문을 박차고 나가 보니 굴비 상자에 아기(온유)가 담겨 있더군요.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만든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담임목사(69)가 말했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영아 유기. 관계 기관은 출생신고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고, 지난달 국회에서는 의료기관에 출산 통보를 의무화하는 ‘출산통보제’가 통과됐다. 서울 관악구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베이비박스)에서 3일 만난 이 목사는 “왜 출생신고를 안 하는지 깊은 고민 없이 법으로 강제하다 보니 자꾸만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베이비박스로 지킨 생명이 2090여 명이나 된다고요. “온유를 돌보기 시작한 뒤에 소문이 났는지 아기를 놓고 가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어요. 근데 언제 어떻게 놓고 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베이비박스였죠. 온유도 굴비 상자 안에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먹을 것인 줄 알고 상자를 온통 긁고 있었거든요. 마침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착안해 철공소를 하는 친구와 직접 만들었지요. 아, 그리고 제일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엄마들을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로 매도하면 안 돼요.” ―아기를 버린 게 아니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요. “도저히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아기를 살릴 방법을 찾고 찾아서 온 엄마들이에요. 진짜 비정하다면 길이나 산에 버렸겠지요. 왜 여기까지 찾아오겠습니까. 그걸 증명하는 게, 작년에 아기 106명이 들어왔는데 이 중 30%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어요. 상담과 설득을 통해 마음을 돌린 거죠. 그래서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고 지켜진 아이들입니다.” ―고민 없이 만든 법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출생신고를 하면 부모의 신원이 드러납니다. 10대 청소년, 성폭력과 외도로 인한 출산, 근친상간, 불법체류자 등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지요. 신고를 꺼리는 원인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병원에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병원은 신원 확인이 돼야만 받아줍니다. 그러니 이제는 집이나 숙박시설에서 직접 낳는 병원 밖 출산이 늘겠지요. 이들을 도와주는 의료 시설이 있을 리 없으니 아기뿐만 아니라 산모도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이미 늦은 상태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높아질 겁니다. 그래서 임산부의 신원 노출 없이 출산이 가능한 ‘보호출산제’가 함께 통과됐어야 했는데….” ―보호출산제는 왜 통과가 안 된 건가요. “출생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건데….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살아야 알 권리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기돼서 죽은 뒤에 알 권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선(先)지원, 후(後)행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기가 아파서 죽을 상태인데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전에는 병원에도 못 가요. 지원도 안 되고요.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리는데…. 일단 생명부터 살리고 행정은 다음에 해도 되지 않습니까? 행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들에게 ‘베이비박스를 찾아가라’라고 안내를 해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을 돌봐주는 곳은 베이비박스가 유일하니까요. 낳은 아기도 못 돌보면서 저출산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07년 봄, 새벽에 한 남자로부터 아기를 교회 문 앞에 두고 가니 잘 보살펴 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놀라서 대문을 박차고 나가보니 굴비 상자에 아기(온유)가 담겨 있더군요.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지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영아 유기. 관계 기관은 출생 신고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고, 국회에서는 의료기관에 출산 통보를 의무화하는 ‘출산통보제’가 통과됐다. 2009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만든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담임목사(69)는 3일 서울 관악구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베이비박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왜 출생신고를 안 하는지 깊은 고민 없이 법으로 강제하다 보니 자꾸만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까지 베이비박스로 지킨 생명이 2090여명이나 된다고요.“온유를 돌보기 시작한 뒤에 소문이 났는지 아기를 놓고 가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어요. 제일 급했던 게 언제 어떻게 놓고 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죠. 온유도 굴비 상자 안에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먹을 것인 줄 알고 상자를 온통 긁고 있었거든요. 마침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착안해 철공소를 하는 친구와 직접 만들었지요. 아, 그리고 제일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엄마들을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로 매도하면 안 돼요.”―버린 게 아니라는 게….“도저히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아기를 살릴 방법을 찾고 찾아서 온 엄마들이에요. 진짜 비정하다면 길이나 산에 버렸겠지요. 왜 여기까지 찾아오겠습니까. 그걸 증명하는 게, 작년에 106명이 들어왔는데 이 중 30%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어요. 상담과 설득을 통해 마음을 돌린 거죠. 그래서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고 지켜진 아이들입니다.” ―앞서 고민 없는 법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됐다고 했습니다만.“출생 신고를 하면 부모의 신원이 드러납니다. 10대 청소년, 성폭력과 외도로 인한 출산, 근친상간, 불법체류자 등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지요. 신고를 꺼리는 원인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병원에 출생 신고를 의무화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병원은 신원 확인이 돼야만 받아줍니다. 그러니 이제는 집이나 숙박시설에서 직접 낳는 병원 밖 출산이 늘겠지요. 의료 시설이 있을 리 없으니 아기뿐만 아니라 산모도 위험한 상황이나 이미 늦은 상태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높아질 겁니다. 그래서 임산부의 신원 노출 없이 출산이 가능한 ‘보호출산제’가 함께 통과됐어야 했는데….” ―왜 통과가 안 된 것인지요.“출생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건데….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살아야 알 권리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기돼서 죽은 뒤에 알권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도 선(先)지원, 후(後)행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기가 아파서 죽을 상태인데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전에는 병원에도 못 가요. 지원도 안 되고요.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리는데…. 일단 생명부터 살리고 행정은 다음에 해도 되지 않습니까? 정말 아이러니한 게, 행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들에게 ‘베이비박스를 찾아가라’라고 안내를 해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을 돌봐주는 곳이 베이비박스가 유일하니까요. 낳은 아기도 못 돌보면서 저출산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집의 유선 전화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기능은 왜 필요한 거지? 누가 쓰는 거지?’ 녹음 데이터 엑셀리포트 기능, 소프트웨어 SKIN 보기, 컴퓨터 연결 녹음, 통화 분류별 관리…. ‘온 훅(on hook)’ 버튼이 뭔가 싶어 설명서를 보니 ‘수화기를 들지 않고 온 훅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수화기를 들고 통화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입니다’라고 한다. 별로 편리한 것도 없는데, 값은 ‘오직 전화만 걸 수 있는 것’에 비해 3배 이상 비싸다. 그리고 ‘오직 전화만 걸 수 있는 전화기’는 어느덧 시장에서 찾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술 진보로 인한 풍요가 공동체보다 소수의 엘리트와 권력자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렸다는 걸 손꼽히는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책이다. 엘리트들은 국가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그 비전은 늘 자신들이 더 큰 이득을 보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나중에 그 비전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돼도 대부분은 책임지지 않았고, 오히려 또 다른 이득을 얻었다고 지적한다. “파생상품이라고 알려진 복잡한 금융 기법도 은행 업계에 막대한 수익의 원천이 되었다. … 거대 은행들은 감옥에 넣기에만 너무 큰 것이 아니라 ‘망하게 두기에도 너무 큰’ 상태가 되어 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경제에도 좋은 것이라고 정책결정자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함으로써 후한 구제 금융을 받아냈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한 뒤, 주요 금융기관 중 도산하는 곳이 하나라도 더 생기면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되어 경제 전체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로 굳어졌다.”(3장 ‘설득 권력’에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들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 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거대 자동차 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그렇게 강조하며 사활을 건다.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전기차만 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데 전기료는? 시민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에어컨도 제대로 못 켜는 게 현실인데…. 환경 보호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그 속에 ‘더 큰 자신들의 이득’이 없다면 과연 머스크가 나섰을까? 책에는 비판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렇다고 저자들이 기술 진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테크노-낙관주의’에 빠져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빈곤까지도 기술의 진보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기술 진보로 환경오염, 불평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낳기 위한 산통”이라는 ‘테크노-낙관주의자’들의 주장에 속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민주주의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했다지만, 사실 읽고 나면 좀 허망한 면이 있다. 지적과 분석은 날카롭지만, 결론은 샌델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숙제로 내준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 흑인 노인이 총상을 보여주며 ‘내가 참전했던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말 가보고 싶은데, 여유가 없어 못 간다’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울컥해서 ‘제가 모든 걸 다 대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게 벌써 16년 전이네요.”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13일 만난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61)는 2007년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들을 처음 한국에 초청했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17년째 이어진 초청 행사는 올해(17∼22일 방한)까지만 국내에서 진행된다. 고령인 용사들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는 현지 방문으로 바꿔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17년째 초청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2007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국제평화상 전야제에 참석했을 때다. 리딕 너새니얼 제임스라는 한 흑인 노인이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옷을 들어 올려 왼쪽 허리 총상을 보여주며, ‘6·25전쟁 때 의정부, 동두천 등에서 싸우다 다쳤다. 한국이 그렇게 변했다는데 형편이 안 돼 못 가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리랑을 부르더라. 그때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한 게 치밀어 올라 ‘내가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8개국 6000여 명의 참전용사와 가족, 유가족들을 초청했다. “제임스에게 혼자 오면 적적하니 참전용사 친구들과 함께 오라고 했다. 대여섯 명 정도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50여 명이 온다고 연락했다. 그때 ‘아, 이걸 단순한 일회성 초청 정도가 아니라 행사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미 한국전쟁참전용사회 등 참전국 관련 단체를 통해 용사들을 찾아 초청했다.” ―초청 행사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을 초청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웨버 대령은 강원 원주 전투에서 오른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주치의가 건강상 장거리 비행은 안 된다고 해 끝내 못 모셨다. ‘왼손 경례’로 유명한 분이다. 지난해 4월 97세로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대한민국이 발전해줘 정말 고맙다. 우리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해줬다. 군인으로서 한국을 위해 싸우다 팔과 다리를 잃은 건 최고의 영예’라고 했다.” ―현재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이 방한 중이다. “폴 헨리 커닝햄 전 미국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 10여 명의 생명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 미 해병대 중위 유가족 등 참전용사 6명과 가족, 유가족 등 40여 명이 방한했다. 국립현충원,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천안함, 미8군 사령부와 도라산전망대 등을 방문한다.” ―민간이, 그것도 교회가 나서서 행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교회, 특히 대형 교회에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시대적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전후 세대에게 애국심과 확고한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것은 대형 교회의 사명이다. 참전용사 초청 행사가 우리 사회에 역사의식을 조금이라도 심어주는 파수꾼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올해가 마지막 국내 초청이다. “참전용사들이 90세가 넘어 워낙 고령이라 장거리 비행이 어렵다. 내년부터는 현지를 방문해 감사 인사를 드릴 계획이다. 6·25전쟁 때 그분들의 희생과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도움을 받았으면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내년부터는 해외에서 열리지만, 마지막 한 분이 남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 흑인 노인이 총상을 보여주며 ‘내가 참전했던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말 가보고 싶은데, 여유가 없어 못 간다’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울컥해서 ‘제가 모든 걸 다 대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게 벌써 17년 전이네요.” 13일 만난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61)는 2007년 처음으로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들을 초청했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17년째 이어진 초청 행사는 올해(17~22일 방한)까지만 국내에서 진행된다. 고령인 용사들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는 현지 방문으로 바꿔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17년째 초청행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2007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 전야제에 참석했을 때였다. 한 흑인 노인(리딕 나다니엘 제임스·Riddick Nathaniel James)이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리고 옷을 들어 올려 왼쪽 허리 총상을 보여주며, ‘6·25전쟁 때 의정부, 동두천 등에서 싸우다 다쳤다. 한국이 그렇게 변했다는데 형편이 안 돼 못 가봤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리랑을 부르더라. 그때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한 게 치밀어 오르기에 ‘내가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지금까지 8개국 6000여명의 참전용사와 가족, 유가족들을 초청했던데.“그때는 제임스에게 혼자 오면 적적하니 참전용사 친구들과 함께 오라고 했다. 대여섯 명 정도 오겠거니 했는데, 50여명이 온다고 연락이 오더라. 그때 ‘아, 이걸 단순한 일회성 초청 정도가 아니라 행사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미 한국전참전용사회 등 참전국 관련 단체를 통해 용사들을 찾아 초청했다.”―초청행사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고 윌리엄 웨버(William E. Weber) 대령을 초청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웨버 대령은 강원도 원주 전투에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주치의가 건강상 장거리 비행은 안 된다고 해 끝내 못 모셨다. 작년 4월에 97세로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대한민국이 발전해줘 정말 고맙다. 우리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해줬다. 군인으로서 한국을 위해 싸우다 팔과 다리를 잃은 건 최고의 영예’라고 했다.”―현재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이 방한 중이다.“폴 헨리 커닝햄(Paul Henry Cunningham) 미 한국전참전용사회 전 회장,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 10여명의 생명을 구한 발도메르 로페즈(Baldomero Lopez) 미 해병대 중위 유가족 등 참전용사 6명과 가족, 유가족 등 40여명이 방한했다. 국립현충원,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천안함 견학, 미8군 사령부와 도라전망대 등을 방문한다.”―민간이, 그것도 교회가 나서서 하는 이유가 있나.“교회, 특히 대형교회에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시대적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전후세대에 애국심과 안보 의식, 확고한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대형교회가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보훈병원 참전용사 위문, 교회 초등학생들의 ‘6·25전쟁 참전용사에게 감사 편지 쓰기’ 등을 함께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올해가 마지막 국내 초청이라고 하던데.“용사들이 90세가 넘는 등 워낙 고령이라 장거리 비행이 어렵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현지를 방문해 감사 인사를 드릴 계획이다. 6·25전쟁 때 그분들의 희생과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더욱이 올해는 6·25전쟁 제73주년이자 한미동맹 70주년인 뜻 깊은 해다. 도움을 받았으면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비록 내년부터는 해외에서 열리지만, 마지막 한 분이 남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팝페라테너 임형주가 살레시오수녀회가 건립을 추진 중인 몽골 노밍요스 중등학교 명예 교장으로 위촉됐다고 소속사인 디지엔콤이 19일 밝혔다. 살레시오수녀회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인 게르촌 지역에 유치원(2013년)과 초등학교(2014년)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중등 과정을 위한 학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임형주는 16일 서울 영등포구 살레시오수녀회 에서 열린 위촉식에서 관구장 김은경 수녀로부터 위촉패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인 임형주는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학교 건립 후원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 여러 방면에서 이 학교 건립을 돕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2015년)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의 실제 모델은 여성 독립운동가인 남자현(1872∼1933)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남자현은 1926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경성에 잠입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1933년 주만주국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는 거사를 하기 직전 체포돼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순국했다. 폴란드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인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활동한 폴란드판 ‘남자현’들의 이야기를 썼다. 유대인 여성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2007년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우연히 1946년 출간된 ‘게토의 여자들’이란 책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그동안 전혀 듣지 못했던 폴란드 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할머니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고, 오랫동안 유대인 학교에 다녔음에도 왜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는지 충격을 받은 저자는 이후 10여 년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나치에 저항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추적해나갔다. “대부분의 연락책은 여성이었다. 유대인 여성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 남성의 신체적 표식이 없었기에 ‘바지 내리기 테스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중략) 나치 문화는 전형적으로 성차별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불법 공작원이 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저자는 여성 레지스탕스들이 불굴의 정신력으로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 나갔다고 말한다. 가족과 친구, 남편과 애인을 잃은 고통, 폭행과 강간의 두려움도 그들을 막지 못했고,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우리도 저자가 처음 가졌던 의문에 빠진다. 왜 이런 사실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까. 나치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폴란드 내 유대인들에게조차. 저자가 전하는 ‘그 이유’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존한 여성 레지스탕스들은 종전 후 외부 세계가 여성 투사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고사하고, 침묵하거나 심지어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맞게 이용하는 데 좌절했다고 한다. 유대인을 도운 폴란드인도 많았지만, 전쟁을 이용해 유대인을 밀고하고 이용한 폴란드인이 더 많았고, 이런 분위기가 종전 후에도 이어진 탓에 폴란드 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유대인들도 나라를 세운 자신들과 구분 짓기 위해 유럽 유대인들의 투사 활동을 애써 지우려 한 것도 이유라고 한다. 여기에 더러 다루더라도 ‘아름답고 젊은 여성’을 부각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를 분단 이후의 이념 잣대로 구분하고, 여성 독립운동가는 남성들의 뒷바라지를 한 것 정도로 여겼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영화 ‘암살’이 나오기 전에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알았던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가짜가 포함되면 안 되겠지만, ‘구체적인 독립운동 활동 증명’이 있어야 서훈을 받을 수 있으니 항일운동도 틈틈이 기록하며 하라는 걸까. 폴란드 유대인 이야기지만,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한 책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아픈 뒤에야, ‘전에 했던 내 위로가 혹시 건성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산 수영구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해인글방에서 8일 만난 이해인 수녀(78)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시 편지집 ‘꽃잎 한 장처럼’(샘터)으로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지난달 받았다. 그는 “일상의 삶에 대한 사랑과 감사, 기쁨에 관한 내용”이라며 “힘든 사람들, 특히 아픈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대장암이 발견돼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양쪽 다리에는 인공관절을 넣었고, 류머티즘으로 몇 개의 손가락에 변형이 왔다. ‘꽃잎 한 장처럼’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올해 가을과 수녀회 입회 60주년인 내년에도 아픈 이들을 위한 시선집을 연이어 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아서 병문안을 자주 가요. 기도와 함께 제가 쓴 시를 읽고, 배경 설명도 해주는데 의외로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제가 아픈 걸 아니까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나 봐요. ‘아직은 시가 주는 역할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해서…. 마침 어제도 새 책 ‘인생의 열 가지 생각’(마음산책)이 나왔는데, 위로에 관한 얘기예요.” ―내가 아픈데 남을 생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 암 투병에 관한 시를 읽은 한 독자가 ‘항암 치료가 무서워서 안 받겠다던 어머니가 수녀님 시를 읽고 치료받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때 알았죠. 병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구나.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구나. 이제는 더 진심을 담아 위로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지요.” ―‘꽃잎 한 장처럼’을 보니 몰래 사탕을 먹었다가 주치의에게 혼나셨다고요. “제가 허브 사탕, 조각 초콜릿을 좋아해서…. 하하하. 당뇨 약을 먹으면서도 절제가 안 돼 걱정이죠. 긴 시간을 투병하다 보니 약을 충실하게 먹는 게 쉽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에게 자주 혼나지요.” ―수녀님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믿음이 흔들리신 적도 있는지요. “수도 생활을 50년이 넘게 했어도 정말 힘든 게 인간관계고, 사랑인 것 같아요. 저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흔들린 적이 더러 있어 괴로웠지요. 그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줬겠지?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겠지?’ 하는 믿음과 신앙으로 버틴 것 같아요.” ―책에 국내외 사건, 사고에 관한 언급이 많아서 의외였습니다. “우리 같은 수도자들이 관념적인 삶을 살기가 쉽잖아요. 저는 매일 아침에 신문 4개를 봐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죠. 그래야 기도가 구체적일 것도 같고.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슬픈 이들을 향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독자들이 보낸 선물을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선물은 돌고 돌아서 그것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가는 게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부분 그 물건이 필요해 보이는 분들에게 드리죠. 처음에는 생각을 못 했는데, 주신 분이 서운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지금은 먼저 물어보고 허락받아요. 최근에 한 동료가 제게 ‘마치 선물의 집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기쁘더라고요.”부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아픈 뒤에야, ‘전에 했던 내 위로가 혹시 건성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달 중순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가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지난해 출간한 ‘꽃잎 한 장처럼(샘터)’. 그는 8일 부산 수영구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해인글방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작은 위로, 작은 기도, 작은 희망 등 일상의 삶에 대한 사랑과 감사, 기쁨 등에 관한 내용”이라며 “힘든 사람들, 특히 아픈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올가을과 수녀회 입회 60주년인 내년에도 아픈 이들을 위한 시선집을 연이어 내신다고 들었습니다.“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아서 병문안을 자주 가요. 기도와 함께 제가 쓴 시를 읽고, 배경 설명도 해주는데 의외로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작가가 하니까, 또 제가 아픈 걸 아니까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나 봐요. ‘아직은 시가 주는 역할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해서…. 마침 어제도 새 책 ‘인생의 열 가지 생각(마음산책)’이 나왔는데, 위로에 관한 얘기에요.” ※그는 2008년 대장암이 발견돼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양쪽 다리에는 인공관절을 넣었고, 류머티즘으로 몇 개의 손가락에 변형이 왔다. ‘꽃잎 한 장처럼’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내가 아픈데 남을 생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제 암 투병에 관한 시를 읽고 한 독자가 ‘항암 치료가 무서워서 안 받겠다던 어머니가 수녀님 시를 읽고 치료받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때 알았죠. 병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구나.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구나. 그리고…제가 아프고 보니까, 전에 했던 위로가 혹시나 건성은 아니었는지 싶더라고요. 이제는 더 진심을 담아 위로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지요. 하하하.”―책을 보니 몰래 사탕을 먹었다가 주치의에게 혼나셨다고요.(“…단 것을 절제하라는/ 의사의 충고도 무시하고/ 초콜릿 하나 살짝 챙겨 먹고/ 쑥스럽게 웃는 나/ 이리도 말 안 듣는 내가/ 스스로 한심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나/ 변명할 궁리를 하며/ 웃음만 나오는/ 어느 날의 병실에서…”, ‘꽃잎 한 장처럼’ 중 ‘병상일기’에서) “제가 허브 사탕, 조각 초콜릿을 좋아해서…. 하하하. 당뇨약을 먹으면서도 절제가 안 돼 걱정이죠. 긴 시간을 투병하다 보니 약을 충실하게 먹는 게 쉽지 않아요. 의사에게 자주 혼나지요.”―수녀님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믿음이 흔들리신 적도 있으신지요.“수도 생활을 50년이 넘게 했어도 정말 힘든 게 인간관계고, 사랑인 것 같아요. 저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흔들린 적이 더러 있어 괴로웠지요. 그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줬겠지?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큰 사랑이겠지?’하는 믿음과 신앙으로 버틴 것 같아요. (수녀님이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거라는 게 상상이 안 갑니다만….) 저도 사람이니까… 상대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왜 없겠어요.”―책에 국내외 사건·사고에 관한 언급이 많아서 의외였습니다.“우리 같은 수도자들이 관념적인 삶을 살기가 쉽잖아요. 저는 매일 아침에 신문 4개를 봐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죠. 그래야 기도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 것도 같고.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슬픈 이들을 향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독자들이 보낸 선물을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하던데요.“저는 선물은 돌고 돌아서 그것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가는 게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부분 그 물건이 필요해 보이는 분들에게 드리죠. 단지 처음에는 생각을 못 했는데, 주신 분이 서운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지금은 먼저 물어보고 허락받아요. 최근에 한 동료가 제게 마치 선물의 집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기쁘더라고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지난달 29일 팝페라 가수 임형주, 소프라노 박성희, 하프 박라나 등 국내 유명 음악가들이 참여한 자선공연이 열렸다. 1800여 석(무대 뒷자리 제외) 중 1400여 석이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룬 이 공연은 몽골 노밍요스 중등학교 건립 후원을 위한 것. 기획부터 대관, 섭외, 홍보까지 대부분을 홀로 한 살레시오수녀회 최수경 수녀(선교위원장)를 6일 서울 영등포구 살레시오수녀회에서 만났다. 최 수녀는 “어떻게든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범죄도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살레시오수녀회는 1872년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 활동을 위해 설립됐으며 한국에는 1957년 진출했다. ―절박감 때문에 할 수 있었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저희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인 게르촌 지역에 유치원(2013년)과 초등학교(2014년)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데 지난해 몽골법이 바뀌었지요. 중고교 과정을 신설해야만 계속 운영을 할 수 있게 의무화한 거예요. 몽골은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어요. 저희는 사립이거든요.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은 변두리인데, 먹고살기 위해 수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처음 정착하는 곳이에요. 그만큼 모든 환경이 열악하지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서 학교에서 매일 간식과 점심 식사를 제공하거든요. 그런 학교가 없어지면 안 돼서….” ―공연 기획 경험은 없으셨을 것 같은데요. “전 완전 비전문가예요. 수녀원 안에서 아이들과 행사를 준비한 정도가 경험의 전부죠. 건축비를 마련하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다 자선 공연이 떠올랐어요. 무작정 대관부터 알아봤죠. 그런데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공공 공연장은 저희 같은 종교단체에는 빌려주지 않더라고요. 대관일도 이미 대부분 차 있어서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롯데콘서트홀은 하루 빈 날이 있었는데 그게 5월 29일 월요일이더라고요. 우리 처지에 월요일이면 어떠냐 싶어서 작년 12월에 계약했는데, 그날이 부처님오신날 대체공휴일인지 몰랐어요. 결과적으로는 공휴일이라 많이 오신 것 같아요.”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소프라노 박성희 선생님과 몇 분은 아는 사이였어요.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또 다른 분들도 연결해주셨지요. 임형주 씨는 제가 아는 분은 아닌데,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평화방송 사장 신부님께 전달을 부탁했어요. 임형주 씨가 그곳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든요. 원래 다른 스케줄이 있었는데, 취지를 듣고 감사하게도 일정을 변경해 참여해주셨어요.”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데요, 혹시 교육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는지요. “저도, 다른 교육자들도, 사람이다 보니 한계가 있고 또 넘어질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육이 희망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지요. 아이들의 마음을 얻으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형사 처벌 나이를 낮추거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청소년 범죄도 저는….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는 팝페라 가수 임형주, 소프라노 박성희, 하프 박라나 등 국내 유명 음악가들이 참여한 자선공연이 열렸다. 1800여석(무대 뒷자리 제외) 중 1400여석이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룬 이 공연은 몽골 노밍요스 중등학교 건립 후원을 위한 것. 기획부터 대관, 섭외, 홍보까지 대부분을 혼자 힘으로 해낸 살레시오수녀회 최수경 수녀(선교위원장)는 6일 서울 영등포구 살레시오수녀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살레시오수녀회는 1872년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한국에는 1957년 진출했다.―절박감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요.“저희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인 게르촌 지역에 유치원(2013년)과 초등학교(2014년)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데 작년에 몽골법이 바뀌었지요. 중·고등학교 과정을 신설해야만 계속 운영을 할 수 있게 의무화한 거예요.” (몽골 정부 지원은 없습니까) “몽골은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어요. 저희는 사립이거든요.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은 변두리인데, 먹고 살기 위해 수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처음 정착하는 곳이에요. 그만큼 모든 환경이 열악하지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에서 매일 간식과 점심 식사를 제공하거든요. 그런 학교가 없어지면 안 돼서….”―공연 기획 경험은 없으셨을 것 같은데요.“전 완전 비전문가에요. 수녀원 안에서 아이들과 행사를 준비한 정도가 경험의 전부죠. 건축비를 마련하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다 자선 공연이 떠올랐어요. 무작정 대관부터 알아봤죠.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공공 공연장은 저희 같은 종교단체에는 빌려주지 않더라고요. 대관일도 이미 대부분 차 있어서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 빈 날이 있었는데 그게 5월 29일 월요일이더라고요. 우리 처지에 월요일이면 어떠냐 싶어서 작년 12월에 계약했는데, 전 그때까지도 그날이 부처님오신날 때문에 대체공휴일인지 몰랐어요. 결과적으로는 공휴일이라 많이 오신 것 같아요.”―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제가 소프라노 박성희 선생님과 몇 분은 알아요.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또 다른 분들도 연결해주셨지요. 임형주 씨는 제가 아는 사이는 아닌데,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평화방송 사장 신부님께 전달을 부탁했어요. 임형주 씨가 그곳에서 라디오 진행을 하거든요. 원래 다른 스케줄이 있었는데, 취지를 듣고 감사하게 일정을 변경해 참여해주셨어요.”―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데, 혹시 교육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보신 적은 없으신지요.“저도, 다른 교육자들도 사람이다 보니 한계가 있고 또 넘어질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육이 희망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지요. 아이들의 마음을 얻으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형사 처벌 나이를 낮추거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선과 경전 공부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게 한국 불교의 특징이지요. 그만큼 넓고 깊어요.”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지난달 30일 ‘외국인의 눈으로 본 고전 텍스트―최치원전’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강사는 리처드 맥브라이드 미국 브리검영대 아시아·극동아시아 언어학과 교수(54). 대학에서 한국학과 불교학을 가르치는 그는 국제 한국학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다. 그는 “한국학 연구가 유명한 인물과 사건에 집중된 면이 있다”며 “더 다양한 대상을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에 1988년 선교사로 처음 와 부산과 그 인근에 있었다. 그때 신라 문화를 처음 접했다. 내게는 너무너무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대학에서 아시아학과 한국어를 복수 전공하고, 1994년 연세대 외국어학당에 들어가 한국어를 더 배웠다. 한국과 한국 문화를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경영학을 했는데 자꾸 마음이 한국학으로 향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불교 신앙과 화엄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덕분에 먹고사는 셈이다. 하하하.” ―최치원은 한국 사람들도 단편적으로만 안다. “최치원전(崔致遠傳)은 신라시대 천재인 최치원과 귀신의 기이한 만남을 이야기로 담은 한문 소설이다. 최치원전에 관심을 가진 건 그 안에 신라시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시대 중국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유령,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지만 최치원전은 이를 받아들여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풀어냈다. 내게는 한국과 한국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한국 불교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불교에서 단번에 깨우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한다. 이런 주장이 여전히 있지만, 대체로 한국 불교는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이래 깨치고 난 뒤에도 계속 수행해야 깨침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한다. 그래서 참선과 공부를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넓고 깊은 면이 있다.” ―삼국유사와 불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K팝과 달리 한국학, 한국 역사는 외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선(禪)’도 그렇다. 영어로 ‘젠(Zen)’인데 ‘선’의 일본어 발음이다. 사실 일본 불교보다 한국 불교가 훨씬 발달했는데 일본 용어로 세계에 알려져서 아쉽다. 연구자들과 삼국유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학을 하는 외국 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궁금하다. “한국학 연구가 아주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에 집중돼 아쉽다. 홍길동전을 연구하는 학자는 많지만, 전우치전을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유신에 관한 연구는 많아도 ‘박씨부인전’(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소설) 연구는 적다. 더 다양한 대상을 연구한다면 한국을 세계에 더 잘 알릴 수 있을 것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선과 경전 공부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게 한국 불교의 특징이지요. 그만큼 넓고 깊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고전 텍스트-최치원전’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강사는 리처드 맥브라이드(54) 미국 브리검 영(Bringham Young)대학교 아시아·극동아시아 언어학과 교수. 그는 대학에서 한국학과 불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국제 한국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학 연구가 유명하거나 중요한 것에 집중된 면이 있다”라며 “한국 연구자들이 좀 더 다양한 대상을 연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한국학을 하게 된 계기는.“한국에는 1988년 선교사로 처음 왔다. 부산 쪽에 있었는데 그때 신라 문화를 처음 접했다. 내게는 너무너무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간 뒤 대학에서 아시아학과 한국어를 복수 전공하고, 1994년에 연세대 외국어학당에 들어가 한국어를 더 배웠다. 한국과 한국문화를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경영학을 했는데 자꾸 마음이 한국학으로 향하더라. 그런 인연으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불교 신앙과 화엄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덕분에 먹고 사는 셈이다. 하하하.”―최치원은 한국 사람들도 단편적으로만 아는데.“최치원전(崔致遠傳)은 신라시대 천재인 최치원과 귀신의 기이한 만남을 이야기로 담은 한문 소설이다. 내가 최치원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안에 고대 신라시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시대 중국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유령,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지만, 최치원전은 그것들을 받아들여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다. 내게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불교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불교에서 단번에 깨우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여전히 있지만, 대체로 한국 불교는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이래 단박에 깨치고 난 뒤에도 계속 수행해야 깨침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한다. 그래서 참선과 공부를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넓고 깊은 면이 있다.” ―삼국유사 및 불경을 영어로 번역해오고 있다고 하던데.“번역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설마…’하겠지만 솔직히 K팝 등과 달리 한국학, 한국 역사는 외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선(禪)’도 그렇다. 영어로 ‘젠(Zen)’인데 이게 ‘선’의 일본어 발음이다. 사실 일본 불교보다 한국 불교가 훨씬 더 발달했는데 일본 용어로 세계에 알려져서 아쉬운 점이 많다. 내가 삼국유사의 영어 번역을 돕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학을 하는 외국 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유는 있겠지만, 연구자 폭이 아주 중요하거나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에 집중돼있다는 점이 아쉽다. 홍길동전을 연구하는 학자는 많지만, 전우치전을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유신에 관한 연구는 많아도 ‘박 씨 부인전(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소설)’은 적다. 한국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좀 더 다양한 대상이 연구된다면 그만큼 더 한국을 세계에 잘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가 주최하는 6·25전쟁 국내외 참전용사 초청 행사가 4년 만에 대면으로 17∼22일 열린다. 이 행사는 2007년 순수 민간 차원으로 시작돼 올해 17년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에는 온라인과 현지 방문 등으로 열렸다. 지금까지 초청된 세계 각국 참전용사들은 모두 6000여 명. 참전용사들의 고령화로 국내 초청 행사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부터는 미국 등 참전국을 방문해 현지 초청 행사로 열 계획이다. 이번 초청 행사에는 21세 때 참전했던 폴 헨리 커닝햄 전 미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장(93), 올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 중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군 중위의 유가족 등 한미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 명이 참석한다. 로페즈 중위는 기관총에 맞은 상태에서도 떨어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쳐 부하 10여 명을 구하고 전사했다.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헌화한 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에서 열리는 ‘6·25전쟁 제73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 한미 참전용사 초청 보은과 미 전몰 장병 추모예배’에 참석한다. 또 해병대 사령부,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평택 미8군 사령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새에덴교회는 올해 초청된 참전용사 6명을 비롯해 전사자 4명과 실종자 12명 등 22명에 대한 내용을 담은 ‘한국전 참전 수기록 기념 책자(위대한 헌신, 자유의 꽃을 피우다)’를 발간한다. 또 이번 행사에 참석한 양국 참전용사들의 서명록을 동판으로 제작해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도 전달할 계획이다. 소강석 담임목사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지켜준 참전국과 용사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며 “참전용사들의 고령화로 내년부터는 해외 현지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바뀌지만, 마지막 한 분이 남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회사든, 군대든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이나 예산, 인력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상부에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면 습관처럼 듣는 말이 있다. “그런 거 다 있으면 누가 못 하나.” 1억 원이 필요한 참호 공사에 5000만 원만 주고, 일주일이 걸릴 일을 이틀 만에 하라고 하면 실무자의 선택은 뻔하다. 값싼 자재를 써서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평시에는 그렇다 쳐도, 전쟁이 나면? 전쟁사 연구자인 저자가 어떤 조직에서나 최악의 리더로 꼽히는 ‘부지런한데 멍청한’ 장군들의 이야기를 썼다. 물론 역사에 남을 정도로 전투에서 어마어마한 패배를 당한 장군들이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패배에 이를 수밖에 없게 만든 그들의 이상하고 괴이한 지휘 스타일이다. “무다구치 렌야의 더욱 황당한 발상은 어차피 식량이 없어도 이 넓은 산에서 열매나 동식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보급 준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버마의 정글은 일본의 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다구치 렌야는 병사들에게 풀을 먹는 적응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제2장 ‘일본군은 초식동물, 쌀 없으면 풀 먹으면 되지’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버마(현 미얀마) 주둔 제15군 사령관이었던 무다구치 렌야. 그는 버마 지역에서 영국군과 연합군을 몰아내는 임팔작전을 주도했지만, 출전했던 10만 명 중 1만2000여 명만 살아 돌아오는 사실상 전멸을 당한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지만 그의 문제는 패배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작전도, 보급도 없이 밀어붙이면 이긴다는 주술 같은 사고방식과 지휘 스타일이었다. 전투를 앞둔 부하들에게 “총알이 없으면 맨손으로, 그것도 쓸 수 없으면 물어뜯는 게 황군 정신”이라고 했으니 제정신일까. 더 나아가 부족한 보급을 보완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풀을 먹는 훈련까지 시켰으니 이기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미국 육군의 로이드 프레덴들 중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의 로멜에게 전차 183대와 및 차량 600여 대가 격파되고, 사상자 3000여 명에 더해 3700여 명이 포로가 되는 참패를 당한다. 오죽하면 보고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병사들이 싸움할 줄은 아는가?”라고 반문했을까. 프레덴들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만 근거는 없는, 사령부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현지 상황을 잘 아는 부하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무다구치나 프레덴들, 또 책에 소개된 다른 장군들 대부분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인재로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이 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혹한 평가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들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투를 씌워준 조직에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회사든, 군대든, 나라든 마찬가지다. 웃으면서 보고 있겠지만, 당신의 얘기일 수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국 기독교 부흥 시대를 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대회가 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빌리 그래함 목사(1918~2018)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가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973년 5, 6월 열린 그의 전도대회에는 33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한국 기독교 성장의 전환점이 됐다. 이 전도대회 실황이 미국 전역으로 중계되면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이 벌어지던 1952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미군 장병들을 위문하고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이때 쓴 일기를 책(‘당신 아들을 전쟁터에서 보았습니다’)으로 출간해 수익금은 모두 구호금과 선교비로 한국에 보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의 주 강사는 그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가 맡는다. 합심 기도는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대표대회장), 축도는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 목사(공동대회장), 개회 기도는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공동대표회장)가 한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진리를 타협하거나 희석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한다”며 “기독교인이나 교회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대회에 참석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남녀 차별이 하나님의 뜻일 리가 있을까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목사 이영훈)에서 25일 목사 안수를 받은 김명희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장(50)이 말했다. 이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여성 목사 47명이 대거 탄생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목사가 한꺼번에 배출된 것은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김 목사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목사가 되기도 어려웠지만, 목사가 된 후에도 편견 때문에 사역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여성 목사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세대 영산신학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괴팅겐대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목사는 2007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했다. ―여성 목사에 대한 편견이란 어떤 걸 말하는가. “여성 목사가 장례식 집도를 하러 가면 남자 목사가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또 남자 목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개인 문제로 생각하는데, 여성 목사의 경우 ‘여자라서…’라며 자질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여성 목사가 더 많아지면 바뀌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꺼번에 47명의 여성 목사가 탄생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목사가 되려면 얼마나 힘든가.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목사가 되려면 남성은 3년, 여성은 전에는 15년 이상 전도사로 활동해야 했다. 그러다가 여성의 경우 10년으로 줄고, 작년에 5년으로 또 단축하기로 하면서 여성 목사에 대한 문턱을 낮췄다. 남성이 3년인 것은 군 복무 기간을 고려한 것이라 이제는 남녀가 거의 동등해졌다고 보면 된다.” ―오랫동안 전도사를 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이유가 궁금하다. “2007년부터 전도사를 했다. 전도사나 목사나 사역에 큰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연구직(국제신학연구원)이라 사실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목회자로 나중에 어떤 일을 맡았을 때 목사가 아닌 것이 벽이 되는 상황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목사 안수를 받게 됐다.” ―어떤 목사가 되고 싶은가. “여성 목사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시대가 달라지면 성경 해석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데…. 남녀 차별이 하나님의 뜻일 리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도 교계가 일반 사회보다 변화가 좀 늦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여성 목사들이 잘하면 이런 상황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