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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가사의 여신(domestic goddess)’이라는 말이 있다. 요리, 청소, 육아 등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노동을 금전적 대가 없이 담당하는 여성을 ‘여신’으로 비꼰 말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유엔여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무급 가사노동의 75%는 여성이 담당한다. 또 여성은 남성보다 하루 최대 3시간을 더 노동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국내총생산(GDP)에서 해당하는 비율은 10∼39%라고 밝혔다. 최근 발표된 영국의 가사노동 가치 통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통계청(ONS)은 영국 전체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을 외부 노동력에 맡겼을 경우 지불해야 하는 금전적 규모를 1조6000억 달러(약 1814조 원)로 추산했다(뉴욕타임스 4일 보도). 이 중 금전적 가치가 가장 큰 것은 아이 돌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돌봄의 가치는 약 3520억 파운드(약 517조 원)였고, 요리 1580억 파운드(약 232조 원), 세탁물 관리 89억 파운드(약 14조 원)의 순이었다. ONS는 이러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가 그해 영국 GDP의 63%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유엔여성기구 조사보다 GDP 기여 비중이 훨씬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8일 나온 한국 통계청 발표에서도 가사노동의 가치는 GDP 대비 24.3%로 평가됐다. 인도 이탈리아 등에서는 각 가정마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노동 담당자(대부분 여성)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법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4년 뉴욕타임스는 가사노동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를 놓고 지상 전문가 토론을 벌였다. 전문가 4명 중 3명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는데 여성 전문가 2명 모두가 반대 의견을 냈다. 여성 전문가들은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정책 지원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차 북한 방문을 마쳤습니다. 이번 방북은 김정은 면담을 통해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켰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방북 성과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겠습니다. △North Korea strikes a positive tone after Pompeo talks.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 제목입니다. ‘빈손 방북’ 논란이 일었던 3차 방북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감자농장에 가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또 당시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강도 같다”는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확 바뀌어 북한으로부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흔히 ‘어떤 어조로 말하다’ ‘어떤 자세를 보이다’라고 할 때 ‘strike a tone’이라고 합니다. △There is no sign that North Korea has changed its decades-old negotiating strategy. 미 주요 언론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좀 박하게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의 협상전략이 변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합니다. ‘cautious’(조심스러운), ‘hesitant’(주저하는), ‘careful’(조심하는) 등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래도 폼페이오 장관과 미 언론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3차 방북 때보다는 낫다”는 거지요. △“This will be great,” Pompeo said, warning Kim not to trip over photographers. 폼페이오 장관은 오찬장에서 김정은과 악수를 한 뒤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다음 행동을 더 주목해야 합니다. 사진기자들이 근처에 있었나 본데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에게 “사진기자들의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not to trip over) 조심하라”고 얘기해 줍니다. 흔히 ‘혀가 꼬였다’고 할 때 ‘I tripped over my own tongue’이라고 합니다. 북한 최고 존엄이 혹시 넘어져 다칠까봐 사려 깊은 멘트를 날려주는 폼페이오의 센스. 북한에 자주 가다 보니 김정은과 많이 친해졌나 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큰일 났다. 북한 미사일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2017년 취임 직후 백악관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TV 폭스뉴스 채널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장면이 나오자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고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진)이 5일(현지 시간) 밝혔다. 그레이엄 의원은 공화당 의원 중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 그레이엄 의원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신이 “자료 화면이야, 지료 화면이야”라고 외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진정시켰다며 이 일화를 전했다. 당시 폭스뉴스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기획보도를 하던 중 과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WP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즉각 대통령인 자신에게 보고가 왔을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TV 방송만 보고 허겁지겁 실시간 상황이라고 오해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집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의 초보적인 대북 인식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레이엄 의원은 3일 시사잡지 애틀랜틱이 주최한 한 포럼에 참가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을 사랑한다’는 헛소리(love crap)를 그만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김정은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정을 이용해 한미관계를 갈라놓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을) 변하게 하기 위해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김정은은 완전히 다른 상대”라고 덧붙였다. 그레이엄 의원은 “만약 로켓맨(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양보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면 미국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의 화제 중 하나는 와인 잔에 담긴 ‘다이어트 코크’(저칼로리 콜라)로 건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나의 행정부는 다른 거의 모든 행정부보다 더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는 연설을 마친 뒤 실무 오찬에서 다이어트 코크로 건배하는 사진이 공개되자 많은 미국인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혈질에 막말을 자주 하며 왠지 술을 많이 마실 듯한 인상을 풍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술을 일절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술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 브렛 캐버노 미 연방대법관 지명자 청문회 주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금주가 화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버노 지명자를 열렬히 지지하면서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은근히 강조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상당한 ‘애주가’라는 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기자회견에서 “(청문회에서) 맥주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캐버노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그는 술에 대해서는 완벽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말해왔고, 나도 그가 완벽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버노 지명자에 대해 우회적으로 실망감을 나타낸 장면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가 시절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아파트에서 살며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술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하며 금주 철칙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현지 언론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로는 이례적인 수준으로 자유분방하지만 매우 드물게 자기 절제를 실천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술이다”라고 전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을 인용해 “술을 좋아한다고 밝힌 캐버노의 말이 대통령을 조금 실망시켰다”라고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술을 기피하는 배경으로 비극적인 가족사를 자주 언급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형 프레드는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리다 1981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기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성격 좋은 프레드라는 형이 있었는데, 술 문제가 있었다. 항상 나에게 하던 말이 ‘술은 마시지 말라’였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기 작가 그웬다 블레어는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트럼프는 술에 취한 형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려는 야심이 있던 트럼프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는 사업에 대한 욕망은 크지만 술에 대한 욕망은 없다. 술에 대한 관심도 없다”고 털어놨다고 블레어는 전했다.○ 완전한 통제를 위해 금주 워싱턴의 상당수 정치인들은 술을 마신다.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술에 대한 규칙을 세워 놓고 있다. ‘사회적 음주가’와 ‘문제적 음주가’로 구분해 전자는 수용하고, 후자는 주변에 두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개인 변호사로 영입할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술 문제’였다. 트럼프의 변호사가 된 뒤 줄리아니는 거나하게 취하여 TV 인터뷰에 출연해 ‘러시아 스캔들’에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얘기들을 늘어놓는가 하면 술을 먹고 백악관 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 10분 뒤부터 코를 골며 자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참고 있지만 줄리아니 변호사가 한 번 더 술로 인한 실수를 하면 곧바로 해고 통지가 날아들 것이 확실하다. 톰 프라이스 보건부 장관은 ‘오바마케어’(의료보험 개혁법안) 폐지의 주무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한 술집에서 한가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이 공개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당신 해고야”라는 통지를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엄격한 금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2010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No alcohol, no drugs, no smoking(음주 금지, 약물 금지, 흡연 금지), 이 세 가지 규율은 우리 애들이 걷는 법을 알게 된 뒤부터 내가 계속 강조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그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 금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 ‘거래의 기술’을 공저한 작가 토니 슈워츠는 WP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를 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 그의 금주 습관을 불러온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술에 취할 경우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두렵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술을 안 먹는 건 내 습관 중 거의 유일하게 좋은 것이다”라며 “술을 마시면 내가 얼마나 엉망이 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세계에서 최악일 것이다”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정미경 전문기자}
‘결혼 전 부부계약에 서명하라(Get a prenup).’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워싱턴 정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결혼 전 부부계약’(프리넙·‘prenuptial’의 줄임말)을 맺으라는 조롱 섞인 충고가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정상 간 친밀한 관계는 분명히 좋은 일이며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통령을 감쌌지만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미나 보즈 호프스트라대 교수(대통령학)는 WP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외교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론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관계를 ‘나쁜 사랑’으로 정의한다. 이 관계에서 김 위원장은 부인을 속이고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가정폭력 남편 역할이다. 켈리 매그서먼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행동을 보면 그럴싸한 변명을 대며 부인을 속이는 남편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남편의 습관적인 학대에 길들여진 부인과 비슷하다. 남편에게 번번이 속지만 그의 달콤한 말들에 모두 잊어버리고 사랑한다는 착각 속에 사는 여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나쁜 사랑’의 고리를 끊을 의지가 있다면 ‘프리넙’을 체결하라고 충고한다. 성공적인 부부생활을 원한다면 구체적인 비핵화 절차에 대한 확실한 계약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 화제는 지난달 27일 열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 인준 청문회입니다. 의회 청문회, 특히 상원 인준 청문회는 미국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지 오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많은 미국인은 점심식사도 거른 채 캐버노 청문회 TV 중계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청문회의 두 주인공인 캐버노 지명자와 과거 그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는 웃고 소리 지르고 눈물도 흘리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I never drank beer to the point of blacking out.” 영어에는 ‘frat boy vs choir boy’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교클럽(fraternity) 소년이냐, 성가대(choir) 소년이냐’는 말인데요. 전자는 주로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사람, 후자는 신앙심이 깊고 사회의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캐버노 지명자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입니다. 그동안 그는 ‘성가대 소년’ 이미지가 강했는데 고교 시절 15세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미 언론은 그를 두고 ‘프랫 보이’라고 자주 부르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술을 마셨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캐버노 지명자는 “맥주를 잘 마셨고 지금도 잘 마신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취중 성폭행 시도는 부인합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맥주를 마신 적은 없다”고 말이죠. △“I was calculating daily the risk/benefit for me of coming forward.” 의혹을 제기한 포드 교수는 35년 전 일어난 사건을 폭로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일을 공개하는 것을 ‘come forward’라고 합니다. 공개하면 자신에게 별로 이득이 돌아오지 않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설 때 쓰는 말입니다. 의원들은 “왜 오래전에 일어난 일을 계속 침묵하고 있다가 지금 밝히기로 했느냐”고 묻습니다. 포드 교수는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겪은 심적 고통을 “달리는 기차 앞에 뛰어드는 것(jumping in front of a train)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밝히기 위해 나서는 일의 위험 수익을 매일 계산했다”고 속마음을 밝힙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구절로 꼽았습니다. 그녀가 정치적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녀(聖女)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거지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우리는 사랑에 빠졌어요(We fell in love).” 미국 언론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사랑 고백’을 일제히 제목으로 올렸다. 최근 김 위원장에 대한 칭찬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웨스트버지니아 휠링 지역에서 열린 중간선거 지원 유세 연설에서 자신과 김 위원장을 연인 관계에 비유했다. 그는 6월에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얘기하던 중 “북한 핵은 매우 매우 큰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터프하게(강하게) 나갔다. 김 위원장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더니 “아니다. 사실은 그가 나에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보내줬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면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 괜찮은 거 아니냐. 이런 말 해도 용납되는 거죠”라며 청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는 또 북한 비핵화 협상의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 전쟁 직전까지 갔었는데 지금은 북한과 대단한 관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청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칭찬할 때마다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은 (내가 김 위원장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에 대해) ‘끔찍하다’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 덕분에 한반도 긴장이 해소된 것 아니냐”며 자신의 공을 강조했다. “우리는 (북한과의 협상 성사를 위해) 먼 길을 걸어왔다. (야당과 언론은) 내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가 정점에 도달했다”며 “인권 침해 등으로 비난받는 독재자에게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하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No. No. No.”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난 북한 관리들이 영국 배우 마이클 페일린(75) 촬영팀에 세 번이나 ‘안 된다(No)’는 경고를 날렸다. 평양 만수대 앞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을 참배하던 페일린이 격식을 차리지 않은 분위기 속에 촬영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던 것. 북한 관리들은 이 장면을 다시 찍으라고 명령했다. 북한 최고 존엄인 김씨 일가 동상 앞에서 불경한 행동을 하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공손 모드’로 급전환한 페일린은 동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촬영을 마쳤다. 27일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코미디 시리즈 ‘몬티 파이선’ 출신의 유명 배우이자 여행가인 페일린은 2년여에 걸친 북한 정부와의 협상 끝에 5월 촬영팀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약 2주 동안 북한에 머물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여행 다큐멘터리 2부작 ‘북한에서 마이클 페일린’(Michael Palin in North Korea)이 영국 현지에서 전파를 탔다. 20일과 27일로 나눠 방송된 이 다큐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코미디 배우인 페일린이 통제사회 북한의 수많은 규율을 지키려고 애쓰는 상황들이 재치 있으면서도 교훈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다큐를 방송한 지상파 민간방송 ‘채널5’는 “‘리얼리티쇼를 줄이고 이런 퀄리티(양질) 프로그램을 늘려 달라’는 시청자들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판권을 따내기 위한 방송사 경쟁이 벌어진 끝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다음 달 초 방영할 예정이다. 다큐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오전 5시부터 최강 볼륨으로 평양 시내에 울려 퍼지는 북한 주민 기상곡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는가 하면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일반 공항과는 달리 평양 공항에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아 ‘귀신공항’(ghost airport)이라고 별명을 붙이는 장면도 나온다. 평양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어린 학생이 김씨 일가를 칭송하는 시를 낭독해 페일린이 북한 체제 우상화를 느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있다. 북한에서는 70대 중반인 자신을 완전 노인 취급한다고 툴툴거리는 장면도 재미있게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서 75세 생일을 맞은 페일린이 감시인 2명으로부터 축하 케이크를 받고 감격하는 모습도 있다. 그가 주민들과 어울려 노동절(5월 1일) 행사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페일린은 다큐 방송 전 런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에는 북한 주민들이 아무런 감정 없는 로봇 같아 보였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친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나는 코미디언이라 잘 모른다”고 운을 뗀 뒤 “북한은 변화를 원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주민들이 아닌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인 듯해서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북극, 히말라야 등에서 각종 탐험을 완수한 페일린은 “약 2주 동안 코카콜라와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며 “그렇지만 북한에 다시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 주민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No. No. No.” 어디선가 쏜살같이 등장한 북한 관리들이 영국 배우 마이클 팰린(75) 촬영팀에게 무려 세 번이나 ‘안 된다(No)’는 경고를 날렸다. 평양 만수대 앞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을 참배하던 팰린이 격식을 차리지 않은 분위기 속에 촬영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던 것. 북한 관리들은 이 장면을 다시 찍으라고 명령했다. 북한 최고 존엄인 김씨 일가 동상 앞에서 불경한 행동을 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손 모드’로 급전환한 팰린은 동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촬영을 마쳤다.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코미디 시리즈 ‘몬티파이튼’ 출신의 유명 배우이자 여행가인 팰린은 2년여에 걸친 북한 정부와 협상 끝에 5월 촬영팀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약 두 주 동안 북한에 머물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여행 다큐멘터리 2부작 ‘북한에서 마이클 팰린’(Michael Palin in North Korea) 상편이 27일 영국 현지에서 전파를 탔다. 하편이 방송되기도 전인데 벌써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코미디 배우인 팰린이 통제사회 북한의 수많은 규율을 지키려고 애쓰는 상황들을 재치 있으면서도 교훈적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를 방송한 지상파 민간방송 ‘채널5’는 “‘리얼리티쇼를 줄이고 이런 퀄리티(양질) 프로그램을 늘려 달라’는 시청자들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판권을 따내기 위한 방송사 경쟁이 벌어진 끝에 여행 전문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다음달 초 방송할 예정이다. 다큐에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다수 담겨있다. 오전 5시부터 최강 볼륨으로 울려 퍼지는 북한 주민 기상용 음악 ‘장군님은 어디에’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는가 하면 김씨 일가 동상을 찍을 때는 전신이 모두 담겨야 한다는 북한 규정 때문에 팰린이 동상 앞이 아닌 저 멀리서 얼굴이 분간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사를 읽는 장면도 있다.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일반 공항과는 달리 평양 공항에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아 팰린이 ‘귀신공항’(ghost airport)이라고 별명을 붙이는 장면도 나온다. 영양 결핍 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짧은 북한에서는 70대 중반인 자신을 완전 노인 취급한다고 툴툴거리는 장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서 75세 생일을 맞은 팰린은 감시인 2명이 케이크 등 생일상을 차려줬다고 감격하기도 한다. 5월 초 북한에 갔던 팰린은 북한 주민들과 어울려 노동절(5월 1일) 행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는 다큐 방송 전 런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에는 북한 주민들이 아무런 감정 없는 로봇 같아 보였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친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나는 코미디언이라 잘 모른다”고 운에 뗀 뒤 “북한은 변화를 원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주민들이 아닌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인 듯해서 걱정이 된다”고 강조했다. 북극, 히말라야 등에서 각종 탐험을 완수한 팰린은 “두 주동안 코카콜라와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며 “그렇지만 북한에 다시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 주민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전문기자mickey@donga.com}

“대통령이 된 지 2년도 안 됐는데 나의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다른 거의 모든 행정부보다 다 많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 연설 초반부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업적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나중에는 폭소로 변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나흘 전 도착해 계속 연설문을 다듬어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청중의 웃음이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잠시 연설을 멈춘 뒤 머쓱한 듯 혀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괜찮다”며 즉흥 발언을 던졌다. 워싱턴포스트, CNN 등은 이 웃음이 조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의 약한 리더십 때문에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언제나 다른 나라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엔본부를 나서면서 취재진에 “관중을 웃기려는 퍼포먼스였다. 웃기려는 의도였는데 그래서 좋았다”고 주장하며 의도된 발언임을 강조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지금 중국 출장 중이어서 그런지 중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이 쏠립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석 달 넘게 자취를 감춘 중국의 세계적인 여배우 판빙빙의 행방이 궁금합니다. 미국 언론도 판빙빙 실종 사건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판빙빙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배우도 아니고 미국은 중국 영화계에 별로 관심도 없는데 왜 판빙빙 실종에 관심을 둘까요. 미국은 이 사건을 중국 정부의 비민주성과 법치주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It might sound ludicrous, or terrifying, but it’s the reality in China. CNN은 판빙빙을 미국 톱여배우 제니퍼 로런스에 비유했습니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레드카펫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 로런스가 다음 날 아무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상상해보라.’ ‘사실 터무니없고 무섭기까지 한 상상’이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인 나라, 진짜로 일어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합니다. 중국 지도부를 배신한 유명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죽는다는 거죠. CNN뿐 아니라 대다수 미국 언론은 판빙빙 실종 배후에 독재 권력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When you rub their face in manure, they have to do something.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판빙빙이 중국 정부의 위신을 깎아버렸기 때문에 실종됐다고 지적합니다. 판빙빙의 천문학적 출연료에 대한 중국인들의 비난이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Manure’는 배설물, 거름을 뜻합니다. 판빙빙이 그들(중국 지도자들)의 얼굴을 배설물로 문질렀다는 겁니다. △‘A lady vanishes’ ‘Fanbingbing disappears’ ‘The Chinese actress goes missing’ 판빙빙 실종 사건을 다룬 미국 언론매체들의 제목입니다. ‘실종되다’ ‘사라지다’라는 뜻으로 disappear, vanish, missing 등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자주 비교되는 disappear와 vanish의 경우 전자는 잠시 동안 사라지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사라져 나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판빙빙은 다시 대중 앞에 돌아올 가능성이 높으니 ‘disappear’가 정확합니다. ‘Missing’은 범죄적 의미가 담긴 실종으로 언제나 ‘go’라는 동사와 함께 씁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전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미국 워싱턴이 시끄러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와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행정부 고위관리의 익명 기고로 초강력 원투 펀치를 얻어맞았습니다. △Op-ed sparks high-stakes whodunit in Washington. 관심을 끄는 것은 NYT 기고(op-ed) 내용뿐 아니라 기고문의 필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기고문을 썼느냐’를 길게 문장으로 만들 필요 없이 ‘whodunit’이라는 한 단어로 썼습니다. 원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을 때 쓰는 말로 “Who has done it(누가 그짓을 했느냐)?”의 줄임말입니다. △“Only the Obama WH can get away with attacking Bob Woodward.”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 기자에게 “바보” “거짓말쟁이” 등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우드워드 기자를 존경하는 듯한 트윗을 날렸습니다. 2013년 우드워드 기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써서 당시 백악관 관리들로부터 엄청 시달렸습니다. 당시 트럼프는 “오바마의 백악관이야말로 (유명하고 존경스러운) 밥 우드워드를 공격하고도 살아남는 유일한 행정부”라는 트윗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How many individuals are there in the administration who fit the bill?” 미국인들은 NYT가 기고문 필자라고 소개한 ‘행정부 고위관리(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라는 단어에 꽂힌 듯합니다. 한 독자가 “지금 행정부에서 ‘고위관리’ 카테고리에 몇 명이 들어가느냐”고 물어봅니다. NYT는 솔직하게 “우리도 잘 모른다(We don‘t know either)”고 답합니다. ‘고위(senior)’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까요. △“The book is a total BS.”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을 “완전 헛소리(total BS)”라는 한마디로 일갈합니다. BS는 ‘bullshit’의 줄임말입니다. 욕이나 비속어를 이렇게 줄여서 말합니다. 이러면 욕하는 것처럼 안 들리니까요. ‘Total BS’는 더 간단히 ‘TB’라고 하기도 합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전 워싱턴 특파원}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 상원의원 사무실이 모여 있는 러셀 빌딩에 가면 존 매케인 의원실 앞은 언제나 시끌벅적했습니다. 매케인 의원을 보려고 온 구경꾼들로 시끄러웠죠. 매케인 의원이 나오면 함성이 터집니다. 완전 록스타급 인기입니다. 매케인 의원은 이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도 찍습니다. 지난달 25일 타계한 매케인 의원의 장례식에 수많은 정치인과 일반인들이 집결했습니다. 추모사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After all, what better way to get the last laugh than to make George and I say nice things about him before a national audience?”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추모사는 엄숙하다기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매케인 의원은 오바마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각각 대선(2008년)과 대선 경선(2000년)에서 대결해 패했습니다. 그러나 매케인 의원은 패자가 아니라 ‘최후의 승자(get the last laugh)’라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치켜세웁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에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로 하여금 자신을 칭찬하게 만드는 매케인 의원이야말로 진정한 승자가 아니겠습니까. △“It crosses your mind and a smile comes to your lips before a tear to your eye.”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추모사에는 매케인의 유족을 위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유족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니 엄청난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의 강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옅어질 것입니다. 슬픔이 있었던 곳에는 대신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기 전에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될 것이다.’ 미국 언론은 매케인 추모사 중에서 이 문장을 ‘최고의 구절’로 꼽았습니다. △“The more he humiliated you, the more he liked you. And in that regard I was well served.” 매케인 의원의 ‘절친’으로 통했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추모사에서 자신은 매케인 의원으로부터 많이 혼났다고 고백합니다. 혼나면서도 기뻤다고요. “만약 매케인이 당신을 자꾸 혼내고 창피를 준다면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도 많이 혼났다.” 맞는 얘기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혼내지도 않으니까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AP통신은 27일 “핵무기에 가려진 북한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은 ‘made in North Korea’(북한산) 소비제품의 급증”이라고 전했다. 2013년부터 평양에서 근무 중인 에릭 탈매지 AP통신 평양지국장은 “최근 입수한 ‘2018 조선상품(Korea Commodities)’ 책자에서 북한 소비층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한 다양한 신제품을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책자에 업체들의 전화번호도 나와 있지만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된다면 매우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북한 국제무역진흥위원회가 북한의 신제품을 홍보하려고 발간한 총 207쪽 분량의 ‘2018 조선상품’ 책자에는 타조가죽에서부터 평면TV, ‘최고의 성기능 보조제’라는 네오-비아그라(짝퉁 비아그라), 기적의 암 치료 신약까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담겨 있다. 의약품의 경우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자체 기술로 생산했다고 광고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것인데, 특히 건강보조제 ‘혈궁불로정(Royal Blood Fresh)’은 고려항공 평양∼베이징 노선에서 기내 광고를 할 만큼 유명하다. 슈퍼마켓에 북한산 오일(O-il·5월 1일 노동절을 의미) 콜라가 진열돼 있는 사진도 실렸다. 한 신제품 에너지 음료는 ‘키가 클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는 광고 문구가 달려 있다. 영국 벤처회사와 합작 설립한 북한의 하나전자는 평면TV, DVD 플레이어, 가라오케 기계 등을 주로 생산한다. 태블릿과 노트북, 3차원(3D)TV를 선전하는 북한 기업들도 있다. 탈매지 지국장은 “전자제품들이 해외에서 생산된 것을 북한에서 단순 조립한 것인지, 북한에서 모든 공정이 이뤄지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지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북한 관련 핵심 참모 5명이 책상을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백악관이 공개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취소 회의 사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 앉은 참모들은 긴장한 듯 보입니다. 보디랭귀지로 보건대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활발한 대화가 오가기보다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듯합니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전문가들의 의견 들어보겠습니다. △“I read this tweet as a temper tantrum from Trump.” 이성윤 터프츠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짜증과 분노(temper tantrum)가 회의 분위기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홧김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화가 풀리면 다시 방북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 트럼프의 심기를 계속 주목해야 한다(stay tuned)고 주장합니다. △“You can only run this play so many times.” 에번 메데이로스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이 ‘게임’에 대해 의논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게임’이란 미국이 북한의 요청을 마지막 순간에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하자 김정은은 금방 저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메데이로스 전 보좌관은 이번에도 북한이 굽힐 것이라고 예상하고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는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미 북한도 이 게임을 간파했으니까요. △“The decision also leaves Moon Jae-in isolated.” CNN에 따르면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결정을 공식화하기 전에 한국 측에 알려줬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바쁘게 준비하던 한국 관리들은 미국 측 통보에 완전히 허를 찔렸다고 하죠. 애덤 마운트 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고립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는 남북 경제협력 등 대북 유화책이 미국의 비핵화 협상과 통합될(integrate)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문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는 거죠. 한동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던 미국, 이렇게 경고를 날리네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 워싱턴 북서쪽에 워터게이트 빌딩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건물이지만 그 앞에 서면 별다른 감흥은 없습니다. 벌써 약 45년 전 사건이니 잊어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졌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이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처럼 큰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It would have been like having the keys to the kingdom.” 지금 백악관은 벌집 쑤신 듯합니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도널드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이 로버트 뮬러 특검에 가서 많은 얘기들을 털어놨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이 많이 나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뮬러 특검은 한시름 놨습니다. 법조계 인사들은 지금 뮬러 특검 분위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열쇠(keys to the kingdom)’를 얻었다고. △“His client is not Donald Trump, his client is the office of the president.” 맥갠 고문은 뮬러 특검에게 협조한 이유에 대해 “존 딘 신세가 되기 싫었다”고 했습니다. 미국 정치에서 존 딘은 유명한 이름입니다. 닉슨 전 대통령은 법률고문인 딘에게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많은 비밀을 털어놨는데 이는 딘이 충신이어서가 아니라 그를 희생양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습니다. 맥갠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의 책임을 자신에게 씌우려고 하자 방어 차원에서 특검에 협조한 거죠. 이번 사태를 전해 들은 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맥갠 고문의 고객은 트럼프가 아니다. 고객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다.” 한마디로 맥갠 고문이 잘했다는 겁니다. △Like Nixon, Trump has drawn up a list of enemies, but it may backfire. 피해망상에 시달렸던 닉슨 전 대통령은 ‘정적 명단(enemies list)’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적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정적 명단이 결과적으로 역효과(backfire)를 낸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적 명단을 만들기는 쉽지만 그것이 가져다 줄 엄청난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북한이 다음 달 9일 정권수립 70주년 행사 앞두고 ‘반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척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두발 및 복장 단속에 나섰다. 17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 자유아시아방송(RFA),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청년 조직을 전국에 파견해 주민들의 외모를 단속하고 있다. 대형 행사를 앞두고 주민들의 사회주의 의식이 확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길목이나 공공장소마다 검은색 한복을 입은 여성 단속원 2, 3명이 파견돼 주민들을 단속하고 있다. 단속원들은 두발이나 복장 상태가 단정하지 않은 주민들을 불러 주의를 주고 상부에 보고한다. 적발될 경우 대부분 벌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해결되지만 심할 경우 구금되기도 한다고 RFA는 전했다. 미니스커트나 속이 훤히 비치는 스커트는 단속 대상이며 여성들의 바지 착용은 여전히 금지된다. 해외 여행객들은 바지를 입을 수 있지만 무릎 위 길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발의 경우 북한 당국이 허용하는 15개 헤어스타일을 준수해야 한다. 염색은 금지된다. 각 헤어스타일에는 ‘포도형’(여), ‘갈매기형’(여), ‘파도형’(남), ‘축포형’(남)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일각에선 북한에서 김정은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15개 헤어스타일은 추천일 뿐 강요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밝힌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미국의 양대 신문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15일(현지 시간)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이 구상은 ‘획기적(groundbreaking)’이지만 북한 비핵화에 집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NYT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 즉 미국이 준비 중인 구상을 넘어설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만약 문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협력 방안에 너무 매달린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을 반박하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NYT는 한국이 북-미 협상에서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주목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역할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한미관계에서 미묘한 논란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성윤 터프츠대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북한은 기뻐하겠지만 미국에는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WP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앞으로 미국에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문 대통령이 섣불리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미국 내에서 그의 발언들이 면밀히 검토될 것”이라고 밝혔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경제 협력 발언에 대해 미국 언론 등이 다소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의해 엄격히 제한돼 있는 까닭에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만 경제 협력 또는 종전선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5일(현지 시간) “남북한 간의 철도 협력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이후 결의된 유엔의 제재에 의해 금지돼 있다. 이 강력한 제재 조치는 북한 무역의 약 90%를 차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철도 연결 사업을 위해 대북 제재에서 예외 요건을 찾을 것인지 등과 관련해서는 발언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 경제 협력 방안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으로도 보이지만 역대 어떤 대통령의 계획보다 진취적”이라고 평했다. 반면 이성윤 터프츠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역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북한은 기뻐하겠지만 미국에는 우려만 안겼다. ‘금강산과 개성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지 마라’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4일 한국 국민에게 전하는 광복절 73주년 축하 메시지에서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해 긴밀하게 (한국과) 공조하면서 철통같은 (한미)동맹에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미 언론과 전문가는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분석가 톰 로건은 14일 워싱턴 이그재미너 기고에서 “지금이라도 미국은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서울(한국 정부)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과거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을 지지했던 한국이 지금은 북한이 평화만 약속한다면 외교적이건 경제적이건 군사적이건 그 어떤 양보라도 내줄 듯 보인다”고 비판했다. NYT도 “비핵화를 우선시하는 미국과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한국 사이에 균열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손택균 기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요즘 실질적 진전을 보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뉴욕타임스는 ‘impasse(교착 상태)’라고 했습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중에선 “이번 협상이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옵니다. △“Trump is in a long tradition of American presidents who have been taken to the clean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랑 중 하나는 자신이 북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겁니다. 그 덕분에 미국 국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건데요.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꿈 깨라’고 말합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들의 길고 긴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어떤 전통이냐 하면 협상 때마다 북한에 탈탈 털리는, 북한에 완패당하는 전통입니다. ‘Take to the cleaners’는 상대를 거덜 내는 것을 뜻합니다. △“It is not unusual or surprising for talks to be stalled as parties jockey for position.” ‘Jockey for position’은 기수들이 서로 앞서 나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짜고 대외적으로 동맹군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협상은 늦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협상이 늦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워싱턴 소장의 설명입니다. △“Expecting any result to negotiations in this context is indeed a foolish act that amounts to waiting to see a boiled egg hatch out.” 미국에 대한 독설로 가득한 최근 북한 외무성 성명 중 일부분입니다. 북한 성명을 보면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삶은 달걀(a boiled egg)’이 등장합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란 삶은 달걀이 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웃기는 비유입니다. ‘삶은 달걀이 된 북-미 협상, 빨리 부화 가능한 달걀로 돌아오길!’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