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구

지민구 기자

동아일보 디지털이노베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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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가 취미인 '신문 기자'입니다. 2012년부터 기자로 활동해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분야의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기록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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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산업51%
경제일반20%
IT13%
기업10%
칼럼3%
인사일반3%
  • 상반기에 연간 목표 수주액 70% 달성

    현대모비스는 37억4700만 달러(약 5조530억 원) 규모의 핵심 부품 해외 수주 목표를 세웠다. 더 많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차량 핵심 부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의 올 상반기(1∼6월) 수주액은 25억7000만 달러로 이미 연간 목표액의 70% 수준을 달성했다. 현대모비스는 수주 품목을 다변화하고 신규 고객을 확보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글로벌 현지 사업장에 현지 고객 전담 조직(KAM)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에선 임원급 현지 전문가가 영업과 수주 활동을 총괄한다. 현지 완성차, 부품사와 긴밀하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실제 현대모비스는 일본 완성차 업체인 미쓰비시, 마쓰다 출신의 전문가 2명을 영입했다. 이들은 현대모비스 일본 지사에서 영업과 수주 활동을 총괄하고 있다. 유럽 3명, 북미 3명, 중국 2명, 인도 1명 등 다른 지역에서도 현지 주요 완성차, 부품 업체 출신 입원급 전문가를 영입했다. 현대모비스는 앞으로 현지 기술 지원 인력도 확대해 영업 활동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최근 프랑스에선 ‘테크쇼’를 열기도 했다.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르노의 구매, 기술 개발 임원 등 200여 명을 초청해 증강현실(AR) 기반 헤드업디스플레이(HUD) 부품 기술을 선보였다. 현대모비스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기술 홍보관을 운영하고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 홍보관에 들어가면 현대모비스의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인 ‘엠비전 POP’ 등을 실제 전시관에 온 것처럼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살펴볼 수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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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기반의 실시간 교육 서비스 선보여

    KT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클라우드 기술 역량을 결집해 초등생 대상 라이브 교육 서비스 ‘크루디’를 출시했다. 크루디는 그룹을 의미하는 ‘크루’와 학습을 뜻하는 ‘스터디’를 결합한 것으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참여하는 실시간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말한다. 크루디는 선생님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수업을 진행할 때 다른 학생들과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도 서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 KT 관계자는 “학생들의 사고력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크루디는 AI를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진행한다. 수업 중 발언이 적은 학생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거나, 자리 이탈이 잦을 경우에는 자동으로 주의를 주는 방식 등이다. 또 학생마다 성격 유형 분석 정보를 참고해 성향이 맞는 선생님의 수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학부모에게는 실시간 카카오톡 알림 서비스 등으로 자녀의 학습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KT는 크루디에 대교, 천재교육, 메가스터디, 째깍악어 등 교육 전문기업과 협력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독서 논술 영역을 중심으로 창의, 융합 수업까지 선보였다. 앞으로 다른 교육 사업자와의 추가 제휴로 정규 교과 학습 과정도 다양하게 구성할 예정이다. 국내 유일 화상 언어재활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언어발전소’와의 협력을 통해 비대면 언어훈련 교육 과정도 독점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주간지나 단행본 교재를 활용한 교육 서비스도 선보이기로 했다. KT는 크루디 출시를 기념해 신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경품을 제공하는 행사를 다음 달까지 진행한다. 정규 수업 서비스 결제 시 첫 달 이용료를 90% 할인하는 이벤트는 연말까지 한다. 박정호 KT커스터머DX사업단 상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학습의 새로운 기준점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AI 등 첨단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여러 교육 전문 기업과 협업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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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파세대, 온라인콘텐츠 이용 4년새 4%→69%

    이른바 알파세대에 속하는 8∼11세(2010∼2013년생) 어린이 10명 중 7명은 온라인 콘텐츠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알파세대의 등장과 미디어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알파세대 응답자 68.6%는 ‘지난 3개월간 온라인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7년 같은 조사에서 당시 8∼11세 이용자 중 3개월간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했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4.3%였다. KISDI는 한국미디어패널조사가 매년 진행하는 ‘디지털서비스 활용행태 조사 결과’를 분석해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 1년간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애플리케이션(앱) 안에서 아이템이나 확장 기능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알파세대의 비율도 15.3%로 Z세대(0.5%)보다 크게 높았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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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 ‘다음’ 모바일 뉴스 개편…언론사 구독 탭 생겼다

    카카오가 25일 오전 포털 사이트 ‘다음’의 모바일 첫 화면과 뉴스 서비스를 개편했다. 모바일 다음 첫 화면에는 이용자가 구독하는 언론사별 뉴스를 모아보는 ‘My뉴스’ 탭이 새로 생겼다. 언론사는 이곳에 노출하는 뉴스를 직접 편집하면서 포털 안에서 기사를 보는 ‘인링크’와 외부 홈페이지로 이동해 보는 ‘아웃링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기존 ‘뉴스’ 탭에선 최신순, 개인화순, 탐독순 등 3가지의 뉴스 정렬 방식을 제공한다. 개인화순은 이용자의 기존 뉴스 소비 이력을 토대로 기사를 추천하는 것이며 탐독순은 기사별 체류 시간을 바탕으로 더 깊게 오래 읽은 기사를 보여준다. 뉴스 탭 안에는 1분 안팎의 쇼트폼 영상을 모은 ‘오늘의 숏’과 국내 20여 개 언론상 수상작을 보여주는 ‘탐사뉴스’ 섹션 등을 배치했다. 카카오는 다음 뉴스 서비스의 댓글 정책도 개편했다. 아이디 1개당 작성 가능한 댓글을 하루 30개에서 20개로 축소했다. 댓글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아이디로만 작성할 수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댓글 작성자는 뉴스 서비스 이용자의 2%에 불과하다”며 “현재 시스템은 소수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반영된다는 우려가 있어 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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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트폼’에 빠진 국내 10대… 이용시간 3년새 3배 이상 증가

    10대 스마트폰 이용자들 사이에서 60초 미만 동영상인 ‘쇼트폼’이 인기를 끌면서 쇼트폼 중심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스타그램, 틱톡을 사용하는 시간이 3년 전보다 3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와이즈앱)는 23일 이러한 내용의 국내 10대 스마트폰 이용자의 쇼트폼 플랫폼 사용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 스마트폰을 쓰는 10대 이용자를 표본 조사한 뒤 추정치를 산출한 것이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달 10대 이용자의 틱톡 누적 사용 시간은 19억4000만 분으로 집계됐다. 2019년 7월 7억6000만 분에서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인스타그램 앱의 누적 사용시간은 14억1000만 분으로 3년 전(4억 분)과 비교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와이즈앱은 “짧은 동영상을 제작해 공유하는 문화가 10대 이용자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틱톡에 이어 인스타그램, 유튜브도 쇼트폼 콘텐츠 서비스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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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月 6만1000원에 31GB’… LGU+, 중간요금제 출시

    LG유플러스가 월 6만1000원에 31GB(기가바이트) 데이터를 제공하는 5세대(5G) 이동통신 중간요금제를 24일 출시한다. 요금제 이름은 ‘5G 심플+’로 이용자가 무료 제공 데이터를 모두 사용해도 1Mbps(초당 메가비트)의 속도로 서비스를 계속 쓸 수 있다. 발신 전화와 문자메시지 발송은 무제한이다. LG유플러스의 5G 중간요금제는 KT와 비교하면 요금은 같고 월 데이터 제공량은 1GB 많다. SK텔레콤보다는 데이터 제공량이 7GB 많고 요금은 2000원 비싸다. 매장 방문 없이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더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전용 5G 중간요금제 상품 2건도 함께 출시한다. LG유플러스에 앞서 SK텔레콤과 KT는 이미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한 상태다. 통신 3사 모두 월 30GB 데이터 사용량을 기준으로 한 요금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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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클로바 케어콜, ‘대화 기억’ 기능 적용

    “어르신, 지난번에 허리 아프셨던 건 좀 어떠세요?” 네이버가 홀로 사는 장년층을 위한 인공지능(AI) 전화 안부 서비스인 ‘클로바 케어콜’에 과거 대화 내용을 기억해 통화에 활용하는 기능을 적용했다고 22일 밝혔다. 지속적인 관심 표현을 통해 전화를 받는 어르신의 대화 만족도를 높인다는 취지다. 새 기능이 적용된 클로바 케어콜은 통화 중 어르신의 건강 상태, 식사 습관, 수면 시간 등 주요 정보를 요약해 기록해 둔다. 통화가 끝나면 답변 내용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업데이트한다. 국내에 출시된 자유 대화형 AI 서비스 중에서 이러한 기능을 상용화한 것은 클로바 케어콜이 처음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AI가 대화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한 시점에 기억한 정보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정리해 저장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대규모 AI 데이터를 기반으로 클로바 케어콜을 개발해 올해 5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안부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현재 전국 30여 개 기초자치단체가 홀로 사는 어르신의 돌봄 서비스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지민구기자 warum@donga.com}

    •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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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맵모빌리티, KB국민銀서 2000억원 투자유치

    SK스퀘어의 자회사 티맵모빌리티가 KB국민은행으로부터 2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출범 1년 8개월 만에 기업가치가 2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모빌리티 보험 상품 등의 분야에서 KB금융그룹과 본격적인 사업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티맵모빌리티는 22일 “SK스퀘어와 협력해 국민은행과 전략적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며 “국내 대형 금융사가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에 대규모로 투자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티맵모빌리티의 지분 8.3%를 확보했다. 이번 투자 유치 과정에서 티맵모빌리티는 기업가치를 2조200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SK텔레콤에서 2020년 12월 분사해 SK그룹의 중간지주사인 SK스퀘어 자회사로 편입될 당시 기업가치가 1조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성장세다. 지난해 우버와 사모투자펀드(PEF)로부터 받은 자금을 포함해 누적 투자 유치액은 6600억 원이다. 이종호 티맵모빌리티 대표는 “금융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형 금융사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것은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행은 모빌리티 플랫폼 이용자 맞춤형 금융 상품으로 추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티맵모빌리티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티맵모빌리티가 운영하는 티맵 애플리케이션(앱)은 내비게이션(길 안내), 대리운전, 화물 운송, 발레파킹(대리주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월 활성 이용자 수(MAU)는 1394만 명이다. 티맵모빌리티와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검토하고 있는 공동 사업은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소액대출 서비스다. 대리운전 기사 등 모빌리티 플랫폼 종사자는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해 제도권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티맵모빌리티와 국민은행은 이를 고려해 플랫폼 종사자의 근무일, 업무량, 고객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어 대출 지표로 활용할 예정이다. 직접 투자한 국민은행뿐만 아니라 KB금융그룹의 주요 계열사도 티맵모빌리티와의 협업에 나선다. 티맵의 내비게이션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안전운전 점수는 KB캐피탈의 중고차 거래 플랫폼과 연계해 판매 차량의 사용 이력을 확인하기 위한 보조지표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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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블록스, 메타 출신 박대성 씨 영입 ‘아시아 시장 성장 동력 발굴’ 분석

    메타버스 업체 로블록스가 박대성 전 메타 한국·일본 지역 공공정책 부사장을 아시아태평양 공공정책 부문장으로 영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박 전 부사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8년간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에서 대관 업무를 이끌었다. WSJ는 로블록스가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박 전 부사장을 영입한 것으로 분석했다. 로블록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인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증시 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450억 달러(약 60조 원)에 달했으나, 야외 활동이 늘어나며 올해 들어 주가가 50% 이상 하락했다. WSJ는 핵심 시장인 미국과 유럽 외에 아시아 지역에서 이용자가 늘어나는 점이 로블록스에 긍정적인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로블록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인력 채용을 늘리면서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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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T, 팔라우서 “부산엑스포, 기후변화 대응” 강조

    SK텔레콤은 박정호 부회장과 유영상 대표가 수랑겔 휩스 2세 팔라우 대통령을 만나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협력을 요청했다고 21일 밝혔다. 양측의 만남은 박 부회장과 유 대표가 18일 남태평양 팔라우를 방문하면서 이뤄졌다. SK텔레콤에 따르면 박 부회장은 부산엑스포가 기후변화 대응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엑스포라는 점을 강조했다. 휩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팔라우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직접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기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롱텀에볼루션(LTE)을 사용하는 팔라우에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SK텔레콤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팔라우에서 올해 6월부터 LTE 로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휩스 대통령은 5G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인공지능(AI), 메타버스, 클라우드 서비스 등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SK텔레콤은 팔라우 정부와 한국인 희생자 추념 공원의 주변 도로, 시설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팔라우에서 숨진 한국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된 공원에 더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하려는 것이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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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안 판다”

    카카오가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의 지분을 팔지 않기로 했다. 6월 중순 매각설이 처음 불거진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회사 내부의 반발이 거센 데다 당장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했을 때 제대로 된 기업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사모펀드사 MBK파트너스와 카카오모빌리티 2대 주주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 간의 매각 협상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는 18일 “카카오모빌리티 주주 구성 변경을 검토해 왔으나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카카오는 MBK를 상대로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10%대 매각을 추진하려다가 반발에 시달렸다. 카카오 지분 일부와 TPG 등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함께 팔아 MBK가 1대 주주가 되고 카카오는 2대 주주로 내려앉는 방식이었지만 카카오모빌리티 직원들과 카카오 공동체(그룹) 노조까지 나서 매각에 반대했다. 직원들은 신사업 차질과 구조조정 등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쥐었을 때 나타날 변화에 부정적이었고 노조는 사모펀드 특성상 회사가 사회적 책임에 소홀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달 말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가 카카오 컨트롤타워인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에 매각 추진을 유보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카카오 측은 “카카오모빌리티에서 만드는 방안을 존중하고 기대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였고, 이후 20일 가까운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매각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CAC는 “카카오모빌리티 노사가 이달 초 협의체를 구성해 사회적 책임과 성장, 혁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며 “협의체가 도출한 방향성을 존중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앞으로 플랫폼 종사자 처우 개선과 무리한 사업 확대 자제 등 사회적 책임에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당초 카카오가 지분 매각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잦은 논란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카카오’란 이름을 달고 사업을 지속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도 컸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지분 매각은 사실상 무산됐지만 FI 간 지분 매각 논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TPG와 MBK가 계속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카카오모빌리티 최대주주인 카카오(57.6%)에 이어 TPG 컨소시엄(29.0%)과 칼라일(6.2%) 등 FI가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카카오 내부적으로는 이제 TPG와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TPG는 2017년 처음으로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해 올해 5년이 됐는데, 통상 사모펀드 엑시트(자금 회수) 기한이 5년인 것을 감안하면 카카오모빌리티가 그간 무리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한 데에 TPG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입장에서 MBK라는 새 파트너를 맞이해 분위기를 쇄신하고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셈법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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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당신들에 빚졌습니다”…美, ‘제복의 유족’ 보상부터 치유까지 최고 예우[히어로콘텐츠/산화]

    “유가족을 돌보는 전담 조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소방관 유가족) “정부 조직을 늘리는 건 쉽지 않아요. 재단이나 단체를 만들려고 해도 근거와 예산이 필요합니다.”(정부 관계자) 국가보훈처는 매달 보훈 대상자 수를 공개한다. 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관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으로 보훈처에 등록된 사람은 1만5630명(7월 기준). 보훈처는 물론이고,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과 민간 사단법인 등이 유가족 예우와 처우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전담 조직의 기능이 약한 탓에 유가족 지원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의 경우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연방 단위 비영리단체가 분야별로 설립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군 유가족 지원기관인 ‘TAPS(Tragedy Assistance Program for Survivors)’와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는 제복 공무원(MIU·Men In Uniform)이 순직하면 유가족에게 보상금 지급 등을 안내하는 책자를 보내며 ‘맞춤형 돌봄’을 시작한다. 장례를 끝낸 유가족이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 ‘유가족 치유 캠프’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처지가 비슷한 유가족들이 자연스레 연결돼 서로의 치유를 돕는다. 특히 미국은 군 소방 경찰 모두 별도의 추모 기간을 정해 촛불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를 성대히 개최한다. 전사자 유가족을 ‘골드스타 패밀리’라 부르며 예우하고, 이들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는 것 역시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문화와 시스템이다. 반면 한국은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전국 단위 단체나 재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사단법인 성격의 유족회 등이 있지만 조직이 작고 예산도 적어 맞춤형 돌봄에 나설 여력이 없다. 실제 순직 소방관 유가족 모임인 ‘마음 돌봄 캠프’는 소방청 직원 1명이 홀로 나서 기업 후원을 유치하며 마련됐다. 켈리 린치 NFFF 이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을 치유하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을 잘 아는 전문가로 조직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美 “슬픔엔 시간표 없다” 유족 24시간 상담… 韓, 치유 시스템 없어 美 “우리는 당신들에 빚졌습니다”… ‘제복의 유족’ 위한 프로그램 다양‘같은 아픔’ 만남 통해 소통-치유… 유족으로 구성된 ‘돌봄전담팀’도韓, 전담조직 없고 보상금도 적어… “정부 지원 한계… 비영리단체 필요” “우리는 당신들에게 빚졌습니다. 이 자리에 나올 용기를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순직 경찰 추모 주간인 ‘내셔널 폴리스 위크’ 나흘째인 올해 5월 1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전국에서 유가족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모식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함께 참석한 부인 질 바이든 여사도 이날 남편의 발언을 경청했다. 바이든 여사는 군 유가족 지원 비영리기관 ‘TAPS(Tragedy Assistance Program for Survivors)’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 지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을 향한 대통령 부부의 진심 어린 행보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우린 당신들에게 빚졌습니다”폴리스 위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의 지원을 받았다. COPS는 왕복 항공료부터 숙소 등 모든 비용을 제공한다. 또 고인과 친분이 있는 전담 에스코트 경찰관을 배정해 주간 내내 유가족을 에스코트하도록 한다. 올해 폴리스 위크엔 순직 경찰 유가족과 친구, 동료 등 미 전역에서 6000여 명이 참석했다. 한 주간 대통령 참석 추모행사는 물론이고 순직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촛불추모제, 자녀들을 위한 경찰 체험과 ‘키즈 캠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도 비슷한 추모 행사를 매년 10월 4일간 열고 있다. COPS와 NFFF는 유가족을 위한 각종 ‘치유 프로그램’도 수시로 개최한다. 순직자 자녀를 연령대로 구분해 며칠씩 진행하는 캠프가 대표적이다. 캠프 참가가 내키지 않는 유가족도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다른 유가족과 연결될 기회가 늘 열려 있다. 고인의 남편, 아내, 형제 등 비슷한 관계의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레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 한국도 유족 지원 민간단체로 순직경찰유족회,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등이 있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1회성 추모행사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는 사무총장 1명이 모든 일을 도맡고, 1년 예산은 1억 원 안팎에 불과하다. 반면 NFFF는 매년 100억 원(2019년 기준)을 유가족 지원에 쓴다. 정부가 유가족에게 주는 보상금도 한국과 미국은 크게 차이가 난다. 미국은 경찰이 순직하면 약 5억 원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주별로 추가로 지원한다. 반면 한국 경찰의 ‘일반 순직’ 보상금은 1억 원, ‘위험 순직’ 보상금은 3억 원에 불과하다.○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TAPS는 순직 군인 유가족으로 구성된 ‘돌봄 전담팀’까지 두고 있다. 돌봄 및 소통 방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유가족들이 다른 유가족을 케어하는 시스템이다. 순직 사건이 발생하면 전담팀이 유족을 제일 먼저 접촉하고 앞으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한다. 유족이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는 순직 초기의 심리 안정을 돕는 것도 이들 몫이다. 군 유가족은 TAPS가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는 기조로 구축한 ‘헬프라인’도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유가족이 아무 때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긴급 상담전화다. 한국엔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한 순직 군인 유가족은 “군으로부터 들은 건 보건소 상담을 받으면 비용을 보전하겠다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미국은 군 유가족을 예우하는 극존칭도 널리 사용한다. 순직 유가족은 ‘골드스타 패밀리’, 자살 유가족은 ‘화이트스타 패밀리’, 부상·실종자 가족은 ‘레드스타 패밀리’로 부르는 식이다. 한국은 제복 공무원 유가족을 예우하는 별도의 호칭이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가족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처럼 비영리단체로 유가족 지원을 일원화하고 전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이윤수 부산외국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아무래도 유가족을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편견 없이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돌보기 위한 재단, 단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 제복 헌신-유가족 잊지 않을게요”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 독자들 공감보훈처 “제복 공무원 예우 강화” “이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걸 다시 한 번 새기겠습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5회에 걸쳐 보도한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를 경험한 독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국민을 구한 제복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겨진 사람(가족)들에겐 깊은 위로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독자들은 “제복 공무원의 헌신과 유가족의 고통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독자(아이디 hana****)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가족들은 용기 잃지 마시길 당부드린다”는 댓글을 적었다. 다른 누리꾼(seo****)은 “그저 잘 이겨내고 계셔서 감사하고, 가족분들의 희생 잊지 않겠다”고 썼다. 박선민 KAIST 인문사회학과 초빙교수는 “소방관 남편을 둔 저로서는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며 “순직 소방관 자녀를 위해 온라인 교육 등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마음 돌봄 캠프’(유가족 모임)에 대해서도 후원 방법을 묻는 연락이 이어졌다. 취재에 응한 유가족들은 “뜨거운 격려가 삶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박현숙 씨(45)는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라는 응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가족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독자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내놨다. 한 누리꾼(tric****)은 “심리 지원이 꾸준히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어떤 독자는 “마돌캠처럼 유가족들이 연대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를 방문해 추모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도 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암, 희귀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순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제복 공무원 예우 범국민 캠페인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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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화]④‘마돌캠’, 순직 소방관 유족들의 버팀목이 되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2017년 9월 강원 강릉의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했다. 영욱의 아내 이연숙과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홀로 아픔을 삼킨 채 살아갔다. 그리고 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함께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 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얘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소화하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 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소리를 냈다. 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 ‘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 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같은 슬픔끼리 만났다…조금씩 마음이 열렸다2018년 출범 ‘마음돌봄 캠프’ 계기, 또래 유족들 단톡방 ‘마돌캠’ 개설각자의 고민 꺼내며 유대감 형성… 망설였던 ‘자녀 심리상담’도 시작모임 낯가리던 아이들 금세 친구돼 “보다 많은 가족 참여하게 합시다” ○ 같은 모양의 슬픔 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 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김포맘] [오후 3:30] 음 ㅠㅠ 맘이 안 좋으셨을 듯. 저도 신랑 폰 해지할 때 그 마음이 생각나네요∼ 괜찮아요! 그런 마음 우리 말고 누가 알아주겠어요.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 [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 “엄마, 전화기 그만 봐!” 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 [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 [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 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 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 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 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 아빠에 대해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 소윤의 엉뚱한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돌캠 가족들은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주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 [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 “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다른 이에게 내민 손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경기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한 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 “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 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얘기를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 “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보세요.” 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남편 순직 1년 후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뉴스를 보며 현숙도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 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이번에 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 공감의 퍼즐을 찾은 사람들 “더 아픈 사람 도울 것” 마돌캠 만든뒤 김포서 소방관 순직… 현숙 “다른 유족에 도움되고 싶다”인담 통해 조의금 전달-마돌캠 소개… 연숙과도 알게 되며 연락 이어가7월 서울서 코로나로 미뤘던 모임… 아이도, 어른도 서로를 안아줬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남편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 그때부터 현숙과 연숙은 연락을 이어갔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달랐어도 소방관 남편을 잃은 아픔은 똑같았다. “소윤 아빠가 소파 앞에 누워서 야구 중계를 봤는데, 딸이 그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걸 안 보고 자랐는데, 신기해갖고.” “아니, 우리 손녀도 식성이며 이런 게 다 할아버지를 닮았어. 하는 짓도 그렇고. 진짜 깜짝깜짝 놀라. 아주 웃긴다니까.” 연숙과 현숙은 서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전화를 했다. 한번 통화를 시작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현숙과 연숙 모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올해 2월.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왔고 남편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태백을 떠나 원주로 이사를 왔다. ‘마돌캠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이젠 정말 상상도 안 된다.’ 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 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 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은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문화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가족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인담은 갑작스러운 인사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도 없었다. “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 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 봐요.” 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흩어진 조각이 모였다2022년 7월 1일. 마돌캠 4주년.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 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열차에 앉아도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았는데 어느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에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열린 마돌캠 모임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왔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를 탈 때도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 고양이다? 야옹.”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 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 “멍멍! 멍멍! 멍멍!” 까르르. 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 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너무 덥다. 우리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가을에 모일 일정을 잡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 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줬다. 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original.donga.com/2022/firefighter/part01)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전영한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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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방관 유가족이 모여, 퍼즐이 완성됐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2017년 9월 강릉의 60년 된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막내 대원 이호현 소방교.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두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갔다.남겨진 가족인 영욱의 아내 이연숙, 그리고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세상과 단절한 채 슬픔과 상처를 홀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얘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치르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하고 소리를 냈다.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같은 모양의 슬픔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엄마, 전화기 그만 봐!”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심리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가 아빠를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엄마, 내 아빠는 내 아빤데…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소윤의 해맑은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마돌캠 가족들은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길 원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한 조각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다른 이에게 내민 손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1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 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얼마나 해야 할까요.”“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소식을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전했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같은 강원 지역이고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만나보세요.”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년 정도 지나서 발생한 사고였다. 불을 끄던 소방관들이 순직했다는 뉴스를 보며 현숙도 자신의 곁을 떠난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현충원에서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올까. 시동생에게 강릉까지 운전을 좀 부탁할까.강릉을 가는 방법까지 고민해 봤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겁이 났다.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승민의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현숙은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혹시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현숙과 연숙이 통화를 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야기했다.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온 태백을 떠나 원주에 자리를 잡았다.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이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자조 모임을 만들어 지원하진 않는다.속마음과 달리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했다. 인담 역시 그때는 갑작스럽게 인사발령이 나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나설 수 없는 환경이었다.“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봐요.”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흩어진 조각이 모였다2022년 7월 1일. 마돌캠 첫 모임 후 4년이 되는 날이었다.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기차에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는데, 어느새 많이 컸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딸을 바라보던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보는 마돌캠 가족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와 있었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하룻밤이 지나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뾰족한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도 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나 고양이다? 야옹”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멍멍! 멍멍! 멍멍!”까르르.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 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현숙과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소윤과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우리 무더운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다음 모임 일정을 잡고 있었다.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기차 타는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어주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 줬다.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급한 마음에 동동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꼭 붙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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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얘네도 아빠가 없대”… 같은 아픔과 만났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눈을 감은지 2년.박현숙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려고 발버둥쳤다.버티고 버텼지만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시어머니와 딸 소윤 앞에서 2년 간 삼켜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얼마 후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순직자 예우와 유가족 지원 담당자 조인담 주임이었다.느닷없이 소방관 유가족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하라면서 전화를 끊은 인담.다른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현숙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2017년 9월 17일.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인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순직 소방관 예우와 유가족 처우를 담당하는 인담에게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은 많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다. “주임님, 강원 강릉에서 화재 진압 중에 순직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방청 상황실에서 걸려온 긴급 전화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근할게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서 외청(소방청)으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생긴 일이었다. 인담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직 사고 업무를 처음으로 맡게 된 것이다. 장례식장에 놓을 훈장을 준비해 강릉으로 먼저 보냈다. 윗선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통령, 총리 명의의 조화와 조의금을 신청했다. 강릉에는 이틀 뒤 영결식 당일 아침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정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방관 두 명의 얼굴이 수천 송이의 하얀 국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위에 적힌 하얀색 글씨. 고 이영욱 소방경, 고 이호현 소방교.‘보상금 부자’ 됐다며? 툭 던진 한마디, 비수가 됐다‘강릉 석란정 화재’서 남편 잃은 연숙… 시댁식구가 꺼낸 보상금 헛소문목숨값부터 따지는 현실이 원통… 갈수록 선명해지는 남편과의 추억‘당신 없는 세상 모든 것이 싫어요’… 오늘도 ‘소방청 추모관’을 찾는다○ 남편이 받을 수 없는 편지아내 이연숙은 영욱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몇 달 전 강원 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정강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다치고서도 집에 돌아와 웃던 남편이었다. 소방관으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홀로 외지에 있을 때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던 그이였다. 휴가 때 큰불이 나면 연숙과 여행을 떠났다가도 소방서로 부리나케 돌아가던 양반이었다. ‘이렇게 빨리 가려고 평생 줄 정을 미리 쏟아준 걸까.’ 영욱과 연숙은 서로에게 늘 다정했다. 어쩌다 연숙이 홀로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직원들이 웬일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비가 오는 날엔 안목해변으로 드라이브를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커피거리를 거닐었다. 강릉 어디에나 남편과의 추억이 묻어 있었다. 연숙이 그토록 사랑하는 영욱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고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너 벼락부자 됐다고 그러더라?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이 그렇게 많다던데? 너는 이제 딴 놈 만나서 잘 살겠다.” 연숙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명절마다 함께 웃던 시댁 식구는 영욱이 떠나자마자 연숙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녀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일시 보상금은 2억 원 수준. 다른 돈을 받은 게 있다면 전국 소방관들이 1만 원씩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조의금 정도다. 시댁 식구가 연숙에게 한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허위사실로 목숨값부터 따지고 드는 현실이 연숙은 원통했다. ‘남편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보상금 같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궂긴 일은 연이어 찾아왔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 만에 시누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숙은 초췌한 얼굴로 빈소에 앉아 있었다. “이 집 남동생이 소방관인데 지난달에 죽었잖아.” “그러면 지난달에 죽은 동생이 누나도 데려간 거야?” 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은 그 소방관의 아내가 빈소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숙은 슬픔을 속으로만 삼킨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었다. ‘내 남편은 그저 불을 끄러 갔을 뿐이야. 그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남편의 영결식이 끝난 직후 외아들 이인이 사는 원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도 연숙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복도에서 발소리라도 들리면 영욱이 바뀐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숙은 퇴근한 아들과 마주 앉아 남편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억을 나누곤 했다. 처음엔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양만큼 슬픔이 옅어지지는 않았다. 연숙은 어느 날 “아들 앞에서 이렇게 맨날 울면 안 되는 건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둘 사이에 영욱 이야기는 점점 줄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를 만났다”거나 “야근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다를까. 연숙은 아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으니 편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남편을 잊어가는 것 같아 야속했다. 하루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아빠 생각 안 나?”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연숙을 바라봤다. “엄마, 내가 아빠 자식인데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렇다고 계속 울 순 없으니까….” “네가 표현을 안 하니 아빠를 잊은 것 같아서 서운하잖아.” “내가 아빠를 어떻게 잊어요.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사는 거죠. 엄마 앞에서 매일 아빠 보고 싶다고, 슬픈 표정 지으면 엄마만 더 힘들잖아요….” 감정을 꾹꾹 담아 하는 말에 연숙은 뭐라 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연숙의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과의 기억은 매일 그녀의 몸과 마음을 후벼 팠다. 잠을 청하기 위해 홀로 술을 마셔 봐도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연숙은 순직 소방관 추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고 연숙은 느꼈다. 떠난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좋았다. ‘당신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요. 그래서 밖을 잘 안 나가게 돼요. 당신의 빈자리가 점점 더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는 당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네요.’(2018년 1월 27일 0시 27분)○ 아들의 목숨값을 묻는 사람들연숙에게서 영욱을 앗아간 건 경포호 앞 작은 목조 건물에서 난 화재였다. 그날 석란정에선 화재 신고가 두 번 접수됐다. 화염과 싸우고 돌아온 소방관들은 불이 다시 났다는 신고를 받고 두 시간 만에 다시 출동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건물 바닥에서 나는 듯했다. 팀장인 영욱이 마루를 확인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임용 8개월 차 막내 이호현이 영욱을 따라 들어갔다. “시너인가?” 소방관들은 본능적으로 가스 냄새를 느꼈다. 연기도 솟아올랐다. 마룻바닥을 뜯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 방화복 위에만 입었잖아. 이제 물길 트러 가니깐 얼른 나가.” 호현은 화재 진압 지원을 나온 소방학교 동기를 내보낸 뒤 영욱과 함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호현이 형!!” 목재 건물을 지탱하던 나무더미들이 순식간에 영욱과 호현을 덮쳤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모두 달려들어 18분 만에 이들을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냈다. 심폐소생술을 받는 호현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영욱과 호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호현의 사촌들은 소방서 직원들에게 따졌다. 그 위험한 곳에 왜 소방관들을 들어가게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가 조카들에게 소리쳤다. 아들 앗아간 사고, 왜 일어났는지…끝내 알 수 없었다‘강릉 석란정 화재’서 아들 잃은 광수… “사고원인 밝혀달라” 소방서 방문“보상금 부족한가요” 예상 못한 말… 화났지만 참았다, 아들 명예 위해친구도 친척도 만남 피하게 됐다… 외로울 때면 아들의 추모비 찾아 “너희들 조용히 안 해? 내가 가만히 있는데.” 광수는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 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아들을 소방관의 길로 이끈 건 광수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해양경찰이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군대도 해병대를 나왔으니 어울리지 않겠나 싶었다. 곰곰이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던 호현은 어느 날 말했다. “아빠, 내 길을 찾았어.” “뭔데?” “나 소방관 할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대신 후회는 하지 마.” 호현이 떠난 뒤, 몇 번이고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매일같이 석란정을 찾는 아버지석란정에 누가 일부러 불을 냈을까. 아니면 갑자기 불이 난 걸까. 경찰은 사고 한 달 만에 수사를 마무리하며 화재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본부도 방화가 의심된다는 내용으로 조사를 끝냈다. 광수는 아들을 앗아간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광수는 경찰서와 소방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원인을 밝혀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방서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아버님, 혹시 돈이 부족하셔서 그러십니까?” 광수는 소방서 간부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보상금이나 연금 등을 나누는 절차가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소방서에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보상을 더 받고 싶어서 따지는 줄 아는구나. 내가 말을 꺼내면 안 되는 일이었구나.’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허공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바닥에 뒹굴고 싶었다. 누군가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 원통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모든 걸 표현하면 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 화가 나더라도 그저 참아야 했다. 아비보다 먼저 떠난 아들은 매달 돈을 보냈다. 임용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순직했기에 호현의 연금은 큰 액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광수는 그 돈이 낯설고 무서웠다. 들어오는 연금은 그대로 적금으로 빠지도록 했다.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슬픔을 삼키다가 지칠 땐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하루는 친구가 광수에게 말을 꺼냈다. “근데, 언제부터 네가 목걸이를 차고 다녔어?” 친구는 광수가 차고 있는 금목걸이를 바라봤다. 아들이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월급에서 매달 20만 원씩 꼬박꼬박 낸 계모임에서 받은 목걸이였다. 그저 광수의 순서가 왔을 뿐이었다. ‘아들 목숨값으로 금붙이 차고 다니네.’ 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뭐라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할수록 구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목걸이를 벗어 던졌다. 그때부터 광수는 말수가 점점 줄었다. 친구나 친척들도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대신 광수는 외로움이 커질 때마다 석란정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아들과 영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가 있는 곳. 이틀에 한 번씩 새벽같이 일어나 추모비를 닦고 주변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그곳에 있는 소나무엔 여전히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추모비를 예쁘게 꾸며보려 꽃잔디를 심어도, 타버린 흙을 몇 달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근무지. 이곳에만 오면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한 영결식이 떠오른다. “영욱이 형님! 호현아!” 영욱, 호현과 같은 119센터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대표로 조사를 읽었다. 강당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인담도 눈물을 흘렸다. 헌화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던 연숙은 몇 걸음 걷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붙어 그녀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그녀를 대신해 아들이 하얀 국화를 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고 왔다. 뒤이어 광수가 단상에 올랐다. 성큼성큼 걷던 발걸음이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멈췄다. 광수는 꽃을 내려놓고 외쳤다. “호현아!” 아들을 향한 광수의 마지막 인사가 추모 음악에 파묻혔다. 인담은 멀찍이 떨어져 연숙과 광수를 지켜봤다. 곧 그들에게 연락해 보상 절차를 꺼내야 했다. 미리 인사를 해두면 앞으로 일 처리가 조금 수월할지도 몰랐다. 인담은 가까이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진 가족들. 홀로 남겨진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쟤네도 아빠 없어요?”인담이 소방관 유가족을 모이도록 한 서울 행사장엔 수십 명이 와 있었다. 소방관 가족을 잃은 배우자나 자녀들이었다. 박현숙은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엔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로를 소개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시작됐다. 카드 게임, 소방차 그리기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 탓에 배고프고 졸리다고 칭얼거리는 소윤을 보며 현숙은 유독 피로감을 느꼈다. ‘참 어설프다, 어설퍼.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현숙이 성의 없이 손뼉을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른들은 자신처럼 영혼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왠지 소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망설이던 현숙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기가 몇 살이에요?” 모두 세 살이라고 했다. 소윤과 나이가 같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소윤도 옆에 있는 아이들이 동갑내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더니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행사장과 호텔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여기 애들은 다 아빠 없어요?” 현숙은 깜짝 놀라 아이가 소리친 곳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인담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인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한 번 질문했다. “쟤네도 저랑 똑같이 아빠가 없는 거예요?” 인담이 대답을 망설이자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대신 답했다. “그래, 우리도 아빠가 없어. 너랑 똑같아.” 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나처럼 소방관 아빠 없대! 나랑 똑같대!” 현숙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픈 이야긴데, 저렇게 기뻐할 일인가.’ 여태껏 엄마 뒤에 숨어서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연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졌다. 어른들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른 애들이 소윤이한테 아빠 없냐고 물어봤으면 마음이 아팠을 텐데…. 진짜 다 똑같은 처지라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 묘한 감정을 현숙은 느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 그녀는 문득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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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더 필요하세요?” 소방관 아들 잃은 아버지는 울었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눈을 감은지 2년.박현숙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려고 발버둥쳤다.버티고 버텼지만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시어머니와 딸 소윤 앞에서 2년 간 삼켜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얼마 후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순직자 예우와 유가족 지원 담당자 조인담 주임이었다.느닷없이 소방관 유가족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하라면서 전화를 끊은 인담.다른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현숙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2017년 9월 17일.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인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순직 소방관 업무를 보는 인담에게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은 많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다.“주임님, 강릉에서 화재 진압 중에 순직 사고가 발생했는데요….”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방청 상황실에서 걸려온 긴급 전화였다.“알겠습니다. 바로 출근할게요.”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서 외청(소방청)으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생긴 일이었다. 인담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직 사고 업무를 처음으로 맡게 됐다.장례식장에 놓을 훈장을 준비해 강릉으로 먼저 보냈다. 윗선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통령, 총리 명의의 조화와 조의금을 신청했다. 강릉에는 이틀 뒤 영결식 당일 아침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정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방관 두 명의 얼굴이 수천 송이의 하얀 국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위에 적힌 하얀색 글씨.고 이영욱 소방경, 고 이호현 소방교.남편이 받을 수 없는 편지아내 이연숙은 영욱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몇 달 전 강원 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정강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다치고서도 집에 돌아와 웃던 남편이었다. 소방관으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홀로 외지에 있을 때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던 그이였다. 휴가 때 큰불이 나면 연숙과 여행을 떠났다가도 소방서로 부리나케 달려가던 양반이었다.‘이렇게 빨리 가려고 평생 줄 정을 미리 쏟아 준 걸까.’영욱과 연숙은 서로에게 늘 다정했다. 어쩌다 연숙이 혼자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직원들은 웬일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비가 오는 날엔 안목해변으로 드라이브를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커피거리를 거닐었다. 강릉 어디에나 남편과의 추억이 묻었다.연숙이 그토록 사랑하는 영욱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고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너 벼락부자 됐다고 그러더라?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이 그렇게 많다던데? 너는 이제 딴 놈 만나서 잘 살겠다.”연숙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명절마다 함께 웃던 시댁 식구가 영욱이 떠나자마자 연숙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녀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일시 보상금은 2억 원 수준. 다른 돈이 있다면 전국 소방관들이 1만 원씩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조의금 정도다. 시댁 식구가 연숙에게 한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말이었다. 연숙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허위 사실로 목숨값부터 따지고 드는 현실이 원통했다.‘남편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보상금 같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궂긴 일은 연이어 찾아왔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 만에 시누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숙은 초췌한 얼굴로 빈소에 앉아 있었다.“이 집 남동생이 소방관인데 지난달에 죽었잖아.”“그러면 지난달에 죽은 동생이 누나도 데려간 거야?”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은 그 소방관의 아내가 빈소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숙은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내 남편은 그저 불을 끄러 갔을 뿐이야. 그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연숙은 속으로만 슬픔을 삼킨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남편의 영결식이 끝난 직후 외아들 이인이 사는 원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도 연숙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복도에 발소리가 들리면 영욱이 바뀐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연숙은 퇴근한 아들과 마주 앉아 남편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억을 나누곤 했다. 처음엔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양만큼 슬픔이 옅어지지는 않았다. 연숙은 어느 날 “아들 앞에서 이렇게 맨날 울면 안 되는 건데”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그러자 둘 사이에 영욱 이야기가 줄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집에 늦게 들어왔다.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를 만나거나 야근을 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다를까.’아들이 없는 집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으니 편하면서도, 아들이 남편을 잊은 것 같아 야속했다. 하루는 연숙이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아빠 생각 안 나?”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연숙을 바라봤다.“엄마, 내가 아빠 자식인데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렇다고 계속 울 순 없으니까….”“네가 표현을 안 하니 아빠를 잊은 것 같아서 서운하잖아.”“내가 아빠를 어떻게 잊어요.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사는 거죠. 엄마 앞에서 매일 아빠 보고 싶다고, 슬픈 표정 지으면 엄마만 더 힘들잖아요.”아들이 감정을 꾹꾹 담아 하는 말에 연숙은 뭐라 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연숙의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과의 기억은 매일 그녀의 몸과 마음을 후벼 팠다. 잠을 청하기 위해 홀로 술을 마셔 봐도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연숙은 추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편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연숙은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떠난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좋았다.‘당신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요. 그래서 밖을 잘 안 나가게 돼요. 당신의 빈자리가 점점 더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는 당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네요.’(2018년 1월 27일 0시 27분)아들의 목숨값을 묻는 사람들연숙에게서 영욱을 앗아간 건 경포호 앞 작은 목조 건물에서 난 화재였다. 그날 석란정에선 불이 두 번 났다. 화염과 싸우고 돌아온 소방관들은 불이 다시 났다는 신고를 받고 2시간 만에 다시 출동했다.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건물 바닥에서 나는 듯했다. 팀장인 영욱이 마루를 확인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임용 8개월 차 막내 이호현이 영욱을 따라 들어갔다.“시너인가?”소방관들은 본능적으로 가스 냄새를 느꼈다. 연기도 솟아올랐다. 마룻바닥을 뜯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너 방화복 위에만 입었잖아. 이제 물길 트러 가니깐 얼른 나가.”호현은 화재 진압 지원을 나온 소방학교 동기를 내보낸 뒤 영욱과 함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호현이 형!”목재 건물을 지탱하던 나무 잔해가 순식간에 영욱과 호현을 덮쳤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모두 달려들어 18분 만에 영욱과 호현을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냈다. 심폐소생술을 받는 호현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장례식장에 도착한 호현의 사촌들은 소방서 직원들에게 따졌다. 그 위험한 곳에 왜 소방관들을 들어가게 했냐고 물었다.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가 조카들에게 소리쳤다.“너희들 조용히 안 해? 내가 가만히 있는데.”광수는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아들을 소방관의 길로 이끈 건 광수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해양경찰이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군대도 해병대였으니 어울리지 않겠나 싶었다. 곰곰이 자신의 앞날을 그려 보던 호현은 어느 날 말했다.“아빠, 내 길을 찾았어.” “뭔데?”“나 소방관 할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대신 후회는 하지 마.”호현이 떠난 뒤, 몇 번이고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매일같이 석란정을 찾는 아버지석란정에 누가 일부러 불을 냈을까. 아니면 갑자기 불이 난 걸까. 사고 한 달 만에 경찰서는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소방본부는 방화가 의심된다는 내용을 끝으로 조사를 끝냈다. 광수는 아들을 앗아간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광수는 경찰서, 소방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원인을 밝혀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방서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호현 아버님, 혹시 돈이 부족하셔서 그러십니까?”광수는 소방서 간부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보상금이나 연금 등을 나누는 절차가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소방서에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보상을 더 받고 싶어서 따지는 줄 아는구나. 내가 말을 꺼내면 안 되는 일이었구나.’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허공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바닥에 뒹굴고 싶었다. 누군가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 원통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하지만 생각으로 멈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모든 걸 표현하면 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 화가 나더라도 그저 참아야 했다.아비보다 먼저 떠난 아들은 매달 돈을 보냈다. 임용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순직했기에 호현의 연금은 큰 액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광수는 그 돈이 낯설고 무서웠다. 들어오는 연금은 그대로 적금으로 빠지도록 했다.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슬픔을 삼키다가 지칠 땐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하루는 친구가 광수에게 말을 꺼냈다.“근데, 언제부터 네가 목걸이를 차고 다녔어?”친구는 광수가 차고 있는 금목걸이를 바라봤다. 아들이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월급에서 매달 20만 원씩 꼬박꼬박 낸 계모임에서 받은 목걸이였다. 그저 광수의 순서가 왔을 뿐이었다. 아들 목숨값으로 금붙이 차고 다니네. 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뭐라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할수록 구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목걸이를 벗어 던졌다.그때부터 광수는 말수가 점점 줄었다. 친구나 친척들도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로울 때면 광수는 석란정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아들과 영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가 있는 곳. 이틀에 한 번꼴로 새벽같이 일어나 추모비를 닦고 주변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그곳에 있는 소나무엔 여전히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추모비를 예쁘게 꾸며 보려 꽃잔디를 심어도, 타버린 흙을 몇 달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근무지. 이곳에만 오면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한 영결식이 떠오른다.“영욱이 형님! 호현아!”영욱, 호현과 같은 119센터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대표로 조서를 읽었다. 그가 울먹이며 떠난 이들의 이름을 외쳤다. 강당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인담도 눈물을 흘렸다.헌화를 위해 단상에 오르던 연숙은 몇 걸음 걷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붙어 그녀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그녀를 대신해 아들이 하얀 국화를 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고 왔다. 뒤이어 광수가 단상에 올랐다. 성큼성큼 걷던 발걸음이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멈췄다. 광수는 꽃을 내려놓고 외쳤다. “호현아!”아들을 향한 광수의 마지막 인사가 추모 음악에 파묻혔다.인담은 멀찍이 떨어져 연숙과 광수를 지켜봤다. 곧 그들에게 연락해 보상 절차를 꺼내야 했다. 미리 인사를 해두면 앞으로 일 처리가 조금 수월할지도 몰랐다. 인담은 가까이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진 가족들. 홀로 남겨진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쟤네도 아빠 없어요?”인담이 소방관 유가족을 모이도록 한 서울 행사장엔 수십 명이 와 있었다. 소방관 가족을 잃은 배우자나 자녀들이었다. 사회자는 사람들을 정해진 자리에 앉도록 했다.박현숙은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엔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목에 걸고 있는 표찰로 이름만 알 수 있었다.서로를 소개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시작됐다. 카드 게임, 소방차 그리기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 탓에 배고프고 졸린다고 칭얼거리는 소윤을 보며 현숙은 유독 피로감을 느꼈다.‘참 어설프다, 어설퍼. 이런 건 도대체 왜 하는 거야.’현숙이 성의 없이 손뼉을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른들은 자신처럼 영혼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왠지 소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망설이던 현숙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아기가 몇 살이에요?”모두 세 살이라고 했다. 소윤과 나이가 같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소윤도 옆에 있는 아이들이 동갑내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더니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행사장과 호텔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아저씨, 여기 애들은 다 아빠 없어요?”현숙은 깜짝 놀라 아이가 소리친 곳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인담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인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한 번 질문했다.“쟤네도 저랑 똑같이 아빠가 없는 거예요?”인담이 대답을 망설이자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대신 답했다.“그래, 우리도 아빠가 없어. 너랑 똑같아.”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갔다.“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나처럼 소방관 아빠 없대! 나랑 똑같대!”현숙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픈 이야긴데, 저렇게 기뻐할 일인가.’ 여태껏 엄마 뒤에 숨어서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연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졌다. 어른들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른 애들이 소윤이한테 아빠 없냐고 물어봤으면 마음이 아팠을 텐데… 진짜 다 똑같은 처지라고 하니 마음이 편하네….”현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 그녀는 문득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프롤로그 보기[산화]⓪美, 제복과 함께한 수천 촛불… ‘13분 추모식’ 뒤 흩어진 한국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808/114850319/1▶1회 보기[산화]①“괜찮은 척했다, 살아가야 했기에”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809/114868239/1▶2회 보기[산화]②슬픔이 터졌다 “더는 못 가겠어”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810/114887400/1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https://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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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는 못 가겠어”…끝내 무너진 순직 소방관의 아내[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박현숙은 울지 않았다.남편이 남기고 간 생후 110일 된 딸 소윤이 슬픈 기억을 갖고 살지 않았으면 했다.엄마와 씩씩하게 크길 바랐다.그래서 현숙은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참아내고, 눌러냈다.1년, 그리고 2년.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승민 소방관이 강풍 피해를 수습하다 순직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승민의 아내 박현숙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소방청에서 일하는 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6월 말에 소방관 유가족 모임이 있는데요. 1박 2일입니다. 보호자도 1명 동반할 수 있고요. 안 오시면 양육비 지원이 어려울 수 있으니 꼭 오세요.” 현숙이 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멍하니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봤다. ‘뭐야.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소방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현숙은 인담의 말을 믿지 못했다. 이런 행사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전화를 끊고 소방청 홈페이지를 뒤져 봤다. “조인담. 어, 진짜 있네? 흔한 이름은 아닌데….” 044로 시작하는 번호도 휴대전화에 찍힌 것과 같았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한데요, 아직 아기가 어려서요. 서울까지 가는 건 어렵겠어요.” 현숙도 할 말만 하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핑계였다. 다른 유가족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다른 유가족 만나면 어떨까요, 손을 내밀었다순직 유가족 업무 맡은 인담암으로 숨진 후배 소송끝 공상 인정‘힘든 유족 제대로 돕고 싶다’ 계기돼‘美 순직 소방관 지원재단 사업처럼남겨진 사람들 위해 모임을 만들자’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 뜻밖의 통화 인담이 중앙소방본부(현 소방청) 소방정책과로 발령 난 1년 반 전.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한가득 쌓여 있는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복지 민원부터 순직 유가족의 연금 및 보상금 서류와 공무상 재해 인정 소송 상황까지. 파악할 업무가 수두룩했다. “내가 있는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순직 사건만은 일어나지 마라.” 소방관이 순직하면 각종 행정 처리에 보상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새로운 일까지 맡고 싶진 않았다. 어느 날 서류를 살피던 인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고 김범석 소방교. 익숙한 이름이었다. 남양주에서 일할 때 본부에 투병 중인 소방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혈관육종암이라는 희소암이었는데,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범석은 몇 달 뒤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인담은 본부 동료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범석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상주 자리에 서 있었다. 범석과 그녀 사이엔 돌을 갓 지난 아들이 있었다. 초점 없는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눈을 맞출 자신도 없었다. 인담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곤 자리를 떴다. 범석이 떠난 후 유가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했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는 범석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은 국가가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길 바랐다. 1심 선고일 인담은 법원을 찾았다. 범석의 가족이 승소해 순직 관련 새 판례가 생기면 인담도 바빠질 터였다. 새 기준으로 순직과 공상 인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원해야 할 순직 소방관 유가족 수도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혈관육종암은 매우 희소한 질환으로 그 발생 원인이 불명확하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인담에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인담의 머릿속엔 범석의 아이가 맴돌았다. 자신도 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빠 없이 커가야 할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이가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석의 아내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조인담인데요, 항소도 진행하시죠.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 “주변에선 다 안 될 거라고 하는데, 방법이 있나요?” 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석의 아내는 “변호사들이 항소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은 1%라는 이야기만 했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지 난감해했다. 전화를 끊은 인담은 2심을 맡을 변호사를 찾아가 항소심을 준비했다. 범석의 아내와 같이 변호사를 만나며 재판 대응 논리도 짰다. 그녀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인담은 그녀를 다그치며 더 강하게 설득했다. “어머니, 이건 범석 대원과 남은 아이를 위한 일이에요. 어머니께서 희망을 갖지 않으시면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모른 척할까요?” 범석의 아내는 계속된 인담의 설득에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인담은 공무상 재해임을 입증할 전문가도 찾아 나섰다.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가 소방관의 암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까지 연락이 닿아 자문서를 받았다. ‘화재 현장의 유독 가스가 암 발병의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년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인담이 전문가들에게서 받아온 자문서를 인용했다. 승소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 그때부터 인담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처음에는 무작정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요새 힘든 건 없으시고요?” “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유가족들은 낯설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담으로선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동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인담은 작은 구실이라도 만들어 계속 전화를 걸었다. 꾸준하게 안부를 묻는 인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도 생겼다.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그래도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아이만 왜 아빠가 없을까.’ ‘왜 나만 가족을 잃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남겨진 가족들은 평범한 가정과 비교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인담이 유가족 수십 명과 주기적으로 통화를 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도움이 될 만한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막연히 같은 지역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다 포기했다. 정해진 업무 절차나 예산이 없었다. 인담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온종일 전화를 돌리던 인담을 한 기업 관계자가 찾았다. 순직자 자녀에게 심리 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인담의 머릿속에 작은 생각 하나가 스쳤다. 순직 소방관 가족의 자녀와 아내, 남편을 대상으로 한 캠프를 열면 어떨지 역제안했다. 그들이 모이면 대화와 치유의 물꼬가 자연스레 트일 것 같았다.인담이 기획한 캠프는 미국의 순직 소방·경찰관 지원재단이 20년 전부터 하고 있는 사업과 비슷했다. 미국에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캠프를 1년에 10번 이상 연다. 순직자와의 관계, 자녀 여부, 자녀 연령대 등을 구분해 개최하는 행사도 있었다. 같은 유가족이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어서다. 다만 인담은 미국의 이런 사례까진 알지 못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냉랭했다. 나만큼 불행한 사람 있을까요, 고개를 저었다소방관 남편 먼저 보낸 현숙눈물 누르고 누르며 버틴 2년어느날 갑자기 ‘허공에 떠있는 느낌’극심한 스트레스에 공황장애 찾아와소중한 딸조차 밉다고 느껴질 즈음인담의 전화를 받았다… 부담됐다 “평일에 직장을 다니는데 어떻게 가겠어요.” “직장이 어딘데요? 제가 직접 전화하고 협조 요청 공문 보낼 테니 한번 와보세요.” “애들을 집에서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든데, 다 데리고 거길 무슨 수로 가요.” 첫 시도는 실패였다. 그냥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소방관 가족을 모이게 하면 변화가 생길 거라 믿었던 인담도 흔들렸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후원 기업도 설득해 놨다. 인담은 2번, 3번씩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도 그의 끈질긴 전화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괜찮은 줄 알았다 승민이 떠난 지 7개월이 지나고 1월에 태어난 소윤의 첫돌이 찾아왔다. 소윤의 백일 때 현숙과 승민은 따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대신 첫돌이 오면 사진관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그때 좀 찍어 놓을걸. 가족사진 하나 없네.’ 밀려오는 후회에 현숙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현숙은 아빠 없는 아이의 돌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돌잔치에서 웃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윤을 돌잔치도 못 해본 아이로 키우긴 싫었다. 무작정 태백의 유명한 식당부터 예약했다. 친정 식구와 친한 친구들을 부르고 남편이 근무했던 소방서에도 연락했다. 그녀의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돌잔치를 찾아 축하했다. 눈을 깜빡이던 소윤이 판사봉을 집어 들었다. 모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승민과 약속했던 가족사진은 친정 식구들과 찍었다. 현숙의 오빠, 남동생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현숙은 그렇게라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다.곧이어 설 연휴가 다가왔다. 모든 식구가 모였는데 승민만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시어머니가 입을 뗐다. “이제부터 명절 때 차례는 안 지낸다. 울상 하고 있지 말고 산 사람은 어디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편히, 즐겁게 지내자.” 그때부터 현숙은 연휴나 명절 때마다 식구들과 여행을 다녔다. 슬픈 생각은 잊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소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마음도 컸다. 승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렸지만, 현숙은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저 이만하면 소윤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다시 겨울이 왔다. 현숙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남동생 부부와 가까운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기분 전환을 할 생각이었다. 쇼핑몰에 들어서던 현숙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래졌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 현숙은 몸이 자꾸만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거꾸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현숙이 옆에서 걷고 있던 남동생의 팔을 꽉 붙잡았다.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야. 나 못 걷겠어.” 남동생이 119에 다급히 전화했다.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현숙은 부축을 받으며 병원으로 갔다. 응급 처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깜깜한 새벽이었다. 소윤은 시어머니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어지럼증 때문에 응급실 다녀오느라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시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했다. 며칠 뒤 현숙은 동해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 동해. 그녀가 수도 없이 다닌 길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그래도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뒷자리에는 친정 엄마와 소윤이 탔다. 태백 시내를 벗어나 국도 38호선에 들어서 터널로 진입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숨이 막혀 왔다. 도로 끝에 빛이 보였지만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또 다른 터널이 나왔다.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10개가 넘는 터널을 지나야 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동해에 다 와 갈 때쯤. 마지막 터널인 것 같았다. ‘이것만 지나면 되는데… 이것만….’ 끼익―. 그녀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차가 덜컹하며 앞으로 쏠렸다. “엄마, 나 이 터널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 더는 못 가겠어.” 현숙은 양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떨고 있었다. 멀리서 119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그녀를 구급차에 태웠다. “엄마아, 엄마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에서 소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숙은 눈을 꼭 감았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공황장애.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곪은 눈물이 덧났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현숙이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앞에 앉아 소윤에게 줄 꼬마김밥을 말았다. 노란색 달걀지단과 초록색 시금치, 주황색 볶음 당근이 놓였다. 여러 색의 재료가 현숙의 눈에는 모두 회색빛으로 보였다. 눈앞에서 놀고 있는 소윤마저 색이 없었다. 김밥을 자르던 현숙은 소윤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TV로 ‘뽀로로’를 틀어주고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둘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승민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가 달려왔다.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떨고 있는 현숙의 손을 꼭 잡았다. “니는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한참 더 울어야 해.” 중얼거리듯 외는 소리에 현숙은 눈물이 핑 돌았다. 현숙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더 울어라. 그렇게 해야 니가 산다. 그래야 니가 살아.” 2년 가까이 곪았던 눈물이 한 번에 흘러내렸다. 현숙은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었다. 소윤은 거실에서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 흘리는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숙은 친구 오정미, 김진영과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자식들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웃음 짓던 현숙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사실 동해 가려고 운전하다 터널 앞에서 공황이 왔었어. 구급차에도 처음 실려 가봤잖아.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어.” 정미와 진영의 눈이 마주쳤다. 천천히 할 말을 정리한 정미가 입을 뗐다. “그래, 병원에 가 봐야지. 주기적으로 다녀 봐.” 정미는 섣불리 현숙을 위로하지 못했다. 진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진영은 심란해진 마음으로 생각했다. ‘밝고 꿋꿋하게 지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 속에서 곪는 줄도 모르고… 왜 네 감정을 숨기고 산 거야… 왜….’○ 확신할 수 없는 모임 “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할 거고요. 다른 소방 가족들도 오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번 오세요.” 인담이 또 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은 뭐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답을 듣지 못한 인담과 대답을 보류한 현숙 모두 망설였다. 현숙은 캠프에 가서 다른 유가족을 만난다고 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아무튼 반강제적으로, 캠프에 필참입니다!” 현숙이 마지막으로 답을 하기도 전에 인담은 전화를 또 한 번 뚝, 끊었다.<계속>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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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소방관 아내 “슬픈 감정이 곪아 터져”[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박현숙은 울지 않았다.남편이 남기고 간 생후 110일 된 딸 소윤이 슬픈 기억을 갖고 살지 않았으면 했다.엄마와 씩씩하게 크길 바랐다.그래서 현숙은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참아내고, 눌러냈다.1년, 그리고 2년.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허승민 소방관이 강풍 피해를 수습하다 순직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승민의 아내 박현숙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안녕하세요. 소방청에서 일하는 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6월 말에 소방관 유가족 모임이 있는데요. 1박 2일입니다. 보호자도 1명 동반할 수 있고요. 안 오시면 양육비 지원이 어려울 수 있으니 꼭 오세요.”현숙이 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뭐야. 신종 보이스피싱인가?’소방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현숙은 인담의 말을 믿지 못했다. 이런 행사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전화를 끊고 소방청 홈페이지를 뒤져 봤다.“조인담. 어, 진짜 있네? 흔한 이름은 아닌데….”044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도 스마트폰에 찍힌 것과 같았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죄송한데요, 아직 아기가 어려서요. 서울까지 가는 건 어렵겠어요.”현숙도 할 말만 하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핑계였다. 다른 유가족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뜻밖의 통화인담이 중앙소방본부(현 소방청) 소방정책과로 발령 난 1년 반 전.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한가득 쌓여 있는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소방관 복지 민원부터 순직 유가족의 연금 및 보상금 서류와 공무상 재해 인정 소송 상황까지. 파악할 업무가 수두룩했다.“내가 있는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순직 사건만은 일어나지 마라.”소방관이 순직하면 각종 행정 처리에 보상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새로운 일까지 맡고 싶진 않았다. 어느 날 서류를 살피던 인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고 김범석 소방교.익숙한 이름이었다. 남양주에서 일할 때 본부에 투병 중인 소방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혈관육종암’이라 일컫는 희소암이었는데,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범석은 몇 달 뒤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인담은 본부 동료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범석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상주 자리에 서 있었다. 범석과 그녀 사이엔 돌을 갓 지난 아들이 있었다. 초점 없는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눈을 맞출 자신도 없었다. 인담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곤 자리를 떴다.범석이 떠난 후 유가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했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는 범석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은 국가가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길 바랐다.1심 선고일 인담은 법원을 찾았다. 범석의 가족이 승소해 순직 관련 새 판례가 생기면 인담도 바빠질 터였다. 새 기준으로 순직과 공상 인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원해야 할 순직 소방관 유가족 수도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혈관육종암은 매우 희소한 질환으로 그 발생 원인이 불명확하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인담에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인담의 머릿속엔 범석의 아이가 맴돌았다. 자신도 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빠 없이 커가야 할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이가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석의 아내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조인담인데요, 항소도 진행하시죠.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주변에선 다 안 될 거라고 하는데, 방법이 있나요?”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석의 아내는 “변호사들이 항소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은 1%라는 이야기만 했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지 난감해했다.전화를 끊은 인담은 직접 2심을 맡을 변호사를 찾아가 항소심을 준비했다. 범석의 아내와 같이 변호사를 만나며 재판 대응 논리도 짰다. 그녀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인담은 그녀를 다그치며 더 강하게 설득했다.“어머니, 이건 범석 대원과 남은 아이를 위한 일이에요. 어머니께서 희망을 갖지 않으시면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모른 척할까요?범석의 아내는 계속된 인담의 설득에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인담은 공무상 재해임을 입증할 전문가도 찾아나섰다.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가 소방관의 암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하버드대 의대 교수까지 연락이 닿아 자문서를 받았다.‘화재 현장의 유독 가스가 암 발병의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년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인담이 전문가들에게서 받아온 자문서를 인용했다. 승소였다.●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그때부터 인담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처음에는 무작정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요새 힘든 건 없으시고요?”“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유가족들은 낯설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담으로선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동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그래도 인담은 작은 구실이라도 만들어 계속 전화를 걸었다. 꾸준하게 안부를 묻는 인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도 생겼다.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그래도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우리 아이만 왜 아빠가 없을까.’ ‘왜 나만 가족을 잃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남겨진 가족들은 평범한 가정과 비교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인담이 유가족 수십 명과 주기적으로 통화를 하며 내린 결론이었다.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막연히 같은 지역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다 포기했다. 정해진 업무 절차나 예산이 없었다. 인담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온종일 전화를 돌리던 인담을 한 기업이 찾았다. 순직자 자녀에게 심리 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인담의 머릿속에 작은 생각 하나가 스쳤다. 순직 소방관 가족의 자녀와 아내, 남편을 대상으로 한 캠프를 열면 어떨지 역제안했다. 그들이 모이면 대화와 치유의 물꼬가 자연스레 트일 것 같았다.인담이 기획한 캠프는 미국의 순직 소방·경찰관 지원재단이 20년 전부터 하고 있는 사업과 비슷했다. 미국에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캠프를 1년에 10번 이상 연다. 순직자와의 관계, 자녀 여부, 자녀 연령대 등을 구분해 개최하는 행사도 있었다. 같은 유가족이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어서다. 다만 인담은 이런 케이스까진 알지 못했다.가족들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냉랭했다. “평일에 직장을 다니는데 어떻게 가겠어요.”“직장이 어딘데요? 제가 직접 전화하고 협조 요청 공문 보낼 테니 한번 와 보세요.”“애들을 집에서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든데, 다 데리고 거길 무슨 수로 가요.”첫 시도는 실패였다. 그냥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소방관 가족을 모이게 하면 변화가 생길 거라 믿었던 인담도 흔들렸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후원 기업도 설득해 놨다. 인담은 2번, 3번씩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도 그의 끈질긴 전화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괜찮은 줄 알았다승민이 떠난 지 7개월이 지나고 1월에 태어난 소윤의 첫돌이 찾아왔다. 소윤의 백일 때 현숙과 승민은 따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대신 첫돌이 오면 사진관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그때 좀 찍어 놓을걸. 가족사진 하나 없네.’밀려오는 후회에 현숙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현숙은 아빠 없는 아이의 돌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돌잔치에서 웃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윤을 돌잔치도 못 해본 아이로 키우긴 싫었다. 무작정 태백의 유명한 식당부터 예약했다. 친정 식구와 친한 친구들을 부르고 남편이 근무했던 소방서에도 연락했다.그녀의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돌잔치를 찾아 축하했다. 눈을 깜빡이던 소윤이 판사봉을 집어 들었다. 모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승민과 약속했던 가족사진은 친정 가족들과 찍었다. 현숙의 오빠, 남동생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현숙은 그렇게라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다.곧이어 설 연휴가 다가왔다. 모든 식구가 모였는데 승민만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시어머니가 입을 뗐다.“이제부터 명절 때 차례는 안 지낸다. 울상 하고 있지 말고 산 사람은 어디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편히, 즐겁게 지내자.”그때부터 현숙은 연휴나 명절마다 식구들과 여행을 다녔다. 태백을 떠나 슬픈 생각은 잊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소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마음도 컸다. 승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렸지만 현숙은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저 이만하면 소윤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다시 겨울이 왔다. 현숙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남동생 부부와 가까운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기분 전환을 할 생각이었다. 쇼핑몰에 들어서던 현숙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래졌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현숙은 몸이 자꾸만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거꾸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현숙이 옆에서 걷고 있던 남동생의 팔을 꽉 붙잡았다.“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야. 나 못 걷겠어.”남동생이 119에 다급히 전화했다.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현숙은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근처 병원으로 갔다. 응급처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깜깜한 새벽이었다. 소윤은 시어머니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어지럼증 때문에 응급실 다녀오느라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시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했다. 현숙은 동해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 동해, 그녀가 수도 없이 다닌 길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그래도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뒷자리에는 친정 엄마와 소윤이 탔다. 태백 시내를 벗어나 국도 38호선에 들어서 터널로 진입했다.‘어…? 내가 왜 이러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숨이 막혀 왔다. 도로 끝에 빛이 보였지만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또 다른 터널이 나왔다.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향해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10개가 넘는 터널을 지나야 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동해에 거의 다 와 갈 때였다. 마지막 터널인 것 같았다. ‘이것만 지나면 되는데… 이것만….’ 끼익―. 그녀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차가 덜컹하며 앞으로 쏠렸다.“엄마, 나 이 터널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 더는 못 가겠어.”현숙은 양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떨고 있었다. 멀리서 119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그녀를 구급차에 태웠다.“엄마아, 엄마아.”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에서 소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숙은 눈을 꼭 감았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공황장애.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곪은 눈물이 덧났다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현숙은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앞에 앉아 소윤에게 줄 꼬마김밥을 말았다. 노란색 계란 지단과 초록색 시금치, 주황색 볶음 당근이 놓였다. 여러 색의 재료가 현숙의 눈에는 모두 회색빛으로 보였다. 눈앞에서 놀고 있는 소윤마저 색이 없었다. 김밥을 자르던 현숙은 소윤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현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TV로 ‘뽀로로’를 틀어주고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둘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승민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가 달려왔다.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떨고 있는 현숙의 손을 꼭 잡았다.“니는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한참 더 울어야 해.”중얼거리듯 외는 소리에 현숙은 눈물이 핑 돌았다. 현숙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더 울어라. 그렇게 해야 니가 산다. 그래야 니가 살아.”2년 가까이 곪았던 눈물이 한 번에 흘러내렸다. 현숙은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었다. 소윤은 거실에서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 흘리는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숙은 친구 오정미, 김진영과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자식들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웃음 짓던 현숙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사실 동해 가려고 운전하다 터널 앞에서 공황이 왔었어. 구급차에 처음 실려 가봤잖아.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어.”정미와 진영의 눈이 마주쳤다. 천천히 할 말을 정리한 정미가 입을 뗐다. “그래, 병원에 가 봐야지. 주기적으로 다녀 봐.”정미는 섣불리 현숙을 위로하지 못했다. 진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진영은 심란해진 마음으로 생각했다.‘밝고 꿋꿋하게 지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 속에서 곪는 줄도 모르고… 왜 네 감정을 숨기고 산 거야….’●확신할 수 없는 모임“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할 거고요. 다른 소방 가족들도 오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번 오세요.”인담이 또 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은 뭐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답을 듣지 못한 인담과 대답을 보류한 현숙 모두 망설였다. 현숙은 캠프에 가서 다른 유가족을 만난다고 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아무튼 반강제적으로, 캠프에 필참입니다!”현숙이 마지막으로 답을 하기도 전에 인담은 전화를 또 한 번 뚝, 끊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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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은 척했다, 살아가야 했기에”[히어로콘텐츠/산화]

    어린이날 하루 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다.철제 구조물이 떨어져 도로에 나뒹구는 위험한 현장.인명 피해를 막으려고 출동한 소방관 남편이 바람에 날아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100일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그녀는 눈물을 참아냈다. 대신 발버둥 쳤다.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원주 시내의 한 플라워카페에 도착했다. 분홍색 스웨터에 하얀 운동화, 밝은 고동색의 단발머리. 밝고 환한 카페 분위기와 현숙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 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분홍빛의 입술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거는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현숙은 기자가 질문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제가…. 뭔가 이상해 보이죠?” 침묵이 이어졌다. 기자는 대답할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 “보통 소방관의 유가족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 현숙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너편 공원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분홍 립스틱이 유리잔에 묻어났다. 분홍색이 희미해진 입술은 두어 번 달싹였다. 현숙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기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울지 말자, 동정받기는 싫다2016년 어린이날 하루 앞두고, 출동 현장서 머리를 다친 남편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원했지만… ‘1·19’가 출생 예정일이었던소윤인 백여일만에 아빠를 잃었다홀로 아들 키운 시어머니는 말했다“애비 연명치료 말자, 네 걱정해라”휘이이잉. 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별안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소윤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현숙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 “형수님, 허승민 부장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지금 당장 병원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분명 소윤 아빠 번호였는데 휴대전화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전화에 다급한 말투. 현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현숙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에겐 집으로 와서 소윤을 돌봐 달라고 했다. 시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현숙은 병원으로 향했다. 바깥은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운전석 시야를 가렸다. 집에서 태백병원까지는 15분이 걸렸다. 현숙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던 오빠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현숙은 상황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 현숙은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남편. 눈은 감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뇌사였다. 현숙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태백으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현숙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빌었다. “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당신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떠나보내야 했다“저기, 황지동에 사는 소방관 있잖아. 재작년에 결혼한….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던데.” 오정미는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현숙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다. 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입원해 있다는 태백병원으로 향했다. ‘진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현숙을 만나면 뭐라 하지.’ 신호 대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 현숙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경적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발견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나 때문이야. 내 팔자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 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태백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동료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이 강풍 탓에 뜯겨 나갔다는 신고였다. 거대한 구조물이 연립주택 주변 도로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강판이 또 한 번 바람에 날려 주택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을 수습할 인원이 부족했다. 결국 구급차를 운전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연립주택 지붕에 남아 있던 구조물 일부가 갑자기 날아왔다. 하필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불과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숙은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한 주민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소방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숙은 읽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소윤을 재우러 집에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아이의 생이 여기까지면, 연명치료고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 현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현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단호했다. “계속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결국 너희만 힘들어진다.”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호떡 장사를 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운 시어머니.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했다.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현숙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단단하게 살자, 발버둥쳤다아무것도 모른 채 칭얼거리더라도아빠의 마지막 길, 딸이 보게 했다… 기억못할 기억이나마 가질 수 있게 ‘딸에게 슬픈 모습 보일 수 없어’… 일부러 유모차 끌고 세상 밖으로동정의 눈빛 애써 모른 체 했지만… 남편 사후, 세상은 온통 회색이었다“떠날 운명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 감정을 꾹꾹 누른 시어머니에게 현숙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현숙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소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소윤을 사랑했다. 소윤의 출생 예정일을 1월 19일로 통보받았을 때 “역시 소방관 딸”이라며 웃던 남편. 소윤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도,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사고 전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출근하기 직전까지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현숙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소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현숙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 ‘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유모차 태우고 당신이랑 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같이할 수가 없네….’ 5월 12일 오전 8시 12분. 승민은 현숙과 소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 승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현숙 사이에 100일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소윤을 동정하는 게 현숙은 싫었다. 빈소를 꾸리기 전, 현숙은 어린이집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진영에게 소윤을 부탁했다. “진영아, 장례식장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 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빈소에 머물렀다.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 승민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숙의 귀에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소윤을 찾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 현숙은 진영에게 다시 전화해 재차 당부했다. “진영아, 소윤이 절대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진영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현숙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현숙을 안심시켰다. 검정 정복을 입은 승민의 동료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현숙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울지 말자. 우리 울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다.” 다른 소방관들은 빈소 안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직원들이 상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불렀다. “제수씨, 이리 오세요.” “형수님, 한잔 드세요.” 현숙이 그들 옆으로 가 맥주 한 캔을 집었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동료들 뒤로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승민의 얼굴이 보였다. ‘소윤 아빠, 당신 왜 거기에 있어. 바보같이 왜 당신이 그 위험한 곳에 갔어.’ 다들 승민더러 영웅이라고 불렀다. 현숙은 그곳에 왜 승민이 있었는지 화가 날 뿐이었다. 허무했다. 맥주의 뒷맛은 시원하지 않고 씁쓸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승민의 발인 날. 진영은 소윤을 데리고 승민의 마지막 길을 따라갔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소윤이가 제 눈으로 봤으면 했다. 진영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을 통해 멀찌감치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소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진영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만 했다. 이날 승민은 121번째 순직 소방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그 후로도 6년간 27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괜찮은 척을 했다냉정하고 단단해 보였던 시어머니는, 정작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십 년 운영하던 호떡 가게도 문을 닫았다. 가끔 현숙을 대신해 소윤을 돌봐주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남편에 이어 아들을 보낸 시어머니의 가슴은 타다 못해 아예 문드러졌다. “어머님, 이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장사도 다시 시작하셔야죠.” 이번엔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바깥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기 싫다. 장사도 이제 더는 안 하련다.” “어머님, 우리가 허승민 소방관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 태백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평생 피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들을 이야기면 얼른 듣고 끝내도록 해요.” 생각보다 시어머니는 완강했다.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품에 안은 소윤의 몸만 토닥였다. 그래도 현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두운 옷을 입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아들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희, 깔끔하고 밝게 하고 다녀요. 특히 전 소윤이한테 슬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영결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현숙은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다녔다. 현숙을 알아본 이웃들이 말을 걸었다. “아휴, 소윤 엄마 괜찮아요?” “소윤 아빠는 잘 보내드렸어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현숙은 답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소윤이 씩씩하게 잘 키우려고요.” 하루는 소윤을 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다가와 현숙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사는 소방관 아저씨가 죽었다는데 혹시 아줌마도 얘기 들으셨어요?” ‘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현숙은 작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어어, 그래 알아.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 현숙이 씩씩하게 다니려 해도, 누군가는 뒤에서 쑥덕거렸다. “남편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네.” “연금, 보상금 받았으니 이제 시댁이랑은 인연 끊는 거 아냐?” 시댁 식구들도 처음엔 그녀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현숙은 “소윤이 이 집 아이예요. 손주고 조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내 딸도 이 집 핏줄이야’라고 되뇌었다. 소윤에겐 아빠가 없다는 상처 외에 다른 큰 흠이나 구김이 없으면 했다. 그래서 현숙은 승민이 세상을 떠나기 전보다 더 자주 시댁에 들렀다. 가끔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면 술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남편 떠나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먹고살 만한가 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소윤과 둘이 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현숙은 술이 생각날 때마다 시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님, 막걸리 한 잔만 같이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게 술을 권하는 며느리라니. 현숙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게 현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떠나간 남편이 떠오르고, 소윤을 키우며 아등바등 버텨내는 삶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복잡한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챈 시어머니는 현숙의 부탁에 응했다. 둘은 그렇게 종종 막걸리를 마셨다. 평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현숙도 술 몇 모금 마시다 보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현숙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소윤이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이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슬픔에 빠진 채로 지낼 수 없어.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외면했던 회색빛 삶플라워카페에 앉아 있는 현숙의 뒤로는 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튤립에 분홍 카네이션까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던 5월 4일이라 많은 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꽃이 심긴 곳을 등지고 앉은 현숙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6년 전 이야기를 풀어내던 현숙은 잠시 슬픈 눈을 보이다가 금세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소윤 아빠가 떠나고… 한 2년간 그랬네요. 괜찮은 척, 발버둥을 쳤어요. 사실 우리 집 벽지, 그리고 내 방의 천장, 저를 둘러싼 모든 공간은 온통 회색빛으로만 보였거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현숙이 텅 빈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회색빛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제복 공무원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로 연결됩니다. 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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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점짜리 우리 아빠 사랑해요’…소방관 딸의 마지막 편지[히어로콘텐츠/산화]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소방, 경찰, 군인…어렴풋이 위험한 순간도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정말 자신보다 타인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6월부터 2개월 간 전국의 순직 소방, 경찰, 군인의 유가족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었을까.남은 가족들은 말없이 고인의 일상이 담긴 유품을 꺼내놓았다.남은 물건들이 대신 답했다.세상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어떤 사람들도,실은 가족과 울고 웃던 평범한 자식과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내였다고.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건 단비 덕이 컸다. 단비는 집에 오면 윷놀이판을 펼치고, 여행 갈 땐 마이크를 챙기는 딸이었다. 늘 살가웠지만, 그해 어버이날에는 더욱 다정했다.“생전 그런 적은 없었는데, 절을 하면서 어버이은혜 노래까지 부르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떠날 걸 알고서 그랬나봐….”그리고 용돈과 함께 쥐어준 편지. 평소에 못한 말이 담겨 있었다.‘어디서도 아빠 사랑 많이 받고 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준 100점짜리 아빠’‘내 성격 원래 이렇다는 핑계로 엄마 얘기 많이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요’단비의 마지막 편지가 됐다.-어머니 이진숙“대신 받아오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주인 없는 상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들은 순직 두 달 전 다뉴브강을 누볐다. 2019년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수색에 투입되면서다. 헝가리 정부는 이듬해 5월 사고 1주기를 기려 아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미 혁이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지.”-아버지 배웅식2019년 10월 31일 박단비 소방교(순직 당시 29세)와 배혁 소방장(순직 당시 31세)은 소방헬기를 타고 독도를 향했다. 응급환자를 태우고 독도를 이륙한 헬기는 불과 2분 만에 바다로 추락했다. 박 소방교와 배 소방장을 비롯해 김종필 기장(순직 당시 46세), 서정용 검사관(순직 당시 45세), 이종후 부기장(순직 당시 39세)이 함께 순직했다“와, 남자친구가 다이어트 기념으로 꽃을 줬다고?”재국은 ‘꽃을 든 남자’였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을 선물했다. 같이 있다가 화장실 다녀오겠다더니 꽃을 내밀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다이어트 기념 꽃을 주는 남자친구 이야기에 친구들의 탄성이 쏟아지곤 했다. 그가 남편이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남편에게 받은 꽃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장 큰 꽃을 남긴 채 떠났다. 임신 4개월이었다.-아내 이꽃님2020년 2월 15일 유재국 경위(순직 당시 39세)는 한강 가양대교 북단에 출동했다. 투신 기도자를 수색하기 위해서였다. 수중 수색 중 교각 틈에 유 경위의 몸이 끼면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가까스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중 순직했다.“제일 예쁘고 화려한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싶었어. 동네 꽃집에서 생화도 넣고 조화도 넣고 색색깔로 만들어서 청주까지 가져갔어.”파일럿 준비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정민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라”고 말했었다. 아들은 좋은 성적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학교를 졸업했다. 대구에서 공들여 주문한 꽃목걸이를 공사가 있는 청주까지 가져갔다.화환을 보면 여전히 아들이 자랑스럽다.-어머니 최원숙2022년 1월 11일 F-5E 전투기 한 대가 경기 수원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활주로를 이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체 이상 신호가 나타나자 조종사였던 심정민 소령(순직 당시 29세)은 관제탑에 비상탈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결국 전투기는 인근 야산에 추락했다. “아버지는 젊으셨습니다. 불과 2년 전 제가 선물해드린 신발을 신고 체력장 시험에서 20대, 30대 후배들보다도 빠르게 뛰고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신발을 보면 매일 운동을 하셔서 20대 후반인 저보다도 힘이 세고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아들 이길현2020년 8월 6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 댐을 방류할 정도의 폭우에 수질 정화를 위해 설치된 인공 수초섬이 급류에 떠내려갔다. 신고를 받고 악천후 속에서 수초섬 고정 작업에 나선 이종우 경감(순직 당시 53세)은 타고 있던 순찰정이 전복되면서 실종됐다. 이틀 후 북한강 근처에서 순직한 그가 발견됐다.“호종이 생각나는 물건은 집 안에 남겨두기 힘들어서 옷이나 신발, 모자, 아령같은 운동기구도 다 버렸어. 그런데 이 다이버 시계는 그냥 버리기가 싫었어요. 해경 시험 준비할 때부터 찬 거거든. 합격하고 훈련받거나 일하러 갈 때도 이게 갖고 있는 시계 중에 제일 크고 두껍다고 자주 찼어. 보면 바닷물 소금기가 아직도 남아있어. 여기 까만 고무에, 허옇게 희끗희끗한 것들이 다 소금이잖아.”-어머니 박상숙2020년 6월 6일 경남 통영시 홍도 인근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던 다이버 2명이 기상악화로 인해 해상동굴에 고립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정호종 경장(순직 당시 34세)은 9시간 넘게 구조 작업을 이어가다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그는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이버 2명은 무사히 구조됐다.우리 가족 네 사람을 15년 동안 태우고 다니던 자동차 키.남편은 언제나 우리 넷 다 가야지, 말했다. 아내와 둘만 가는 여행도 손사래쳤다. 꼭 아들 둘까지 다 끼고 가야 한다고 했다. 괜히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웃어 넘겼다. 그래 우리 넷이 가족이잖아.그래서 이 차를 여전히 처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차장에 뒀다. 남편이 운전하러 올 것만 같다.“파출소도 그랬나봐. 남편 생각난다고 차를 치워달라고 하더라고…”-아내 이성선2015년 2월 27일 경기 화성시 주택가에서 총기 인질극이 벌어졌다. 남양파출소장이던 이강석 경정(순직 당시 43세)은 직접 현장에 출동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신속하게 범인을 설득하고 피해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범인이 쏜 총탄에 맞아 순직했다.“커서는 등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아주 만능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운동 좋아하는 애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 때도 축구는 좋아했어.”국환이는 직장에서도 축구 소모임 장을 맡아 주말에 종종 경기를 나가곤 했다. 등번호는 주로 7번이나 10번. 팀에서 에이스나 최전방 공격수들이 다는 번호다. 그만큼 축구를 잘하고 또 좋아했다.소방서 축구 소모임 유니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아버지 김도근2020년 7월 31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 한 명이 물에 빠졌다. 며칠간 이어진 비로 계곡은 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국환 소방장(순직 당시 28세)은 피서객을 구하기 위해 계곡에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휩쓸리며 순직했다. “이 시계가 남편 보물 1호였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결혼 25주년 선물로 남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매일 찼다. 사고가 난 그날도 마지막까지 차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의 남동생이 대신 시계를 차고 있다.“팔찌는 몇 년 전에 내 생일 선물로 해준 거야. 같이 TV 보고 있다가 팔찌 예쁘다니까 ‘그럼 팔찌 살까’ 해서 금은방 가서 산거거든. 그때 퇴직할 때는 순금 팔찌 해준다고 적금도 들었는데…”-아내 이연숙 취직한 아들이 첫 월급을 받아 사준 선물. 그전까지 아빠와 아들이 서로 선물 주고받은 적은 손에 꼽았다. “첫 월급 받았다면서 강릉 시내 끌고 가더라고. 나는 운동화나 사달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운동화는 평소에도 사지 않냐, 첫 월급인데 제일 좋은 거 사야 된다면서 구두를 사자하더라고. 올 가을이 간 지 5년인데 이제 잘 가라고, 호현이 물건들은 다 태우려고 하는데 이건 안 태우려고. 이건 유품이 아니라 나한테 준 선물이잖아.”-아버지 이광수2017년 9월 16일 밤 9시 43분경, 강원도 강릉의 오래된 목조정자 석란정에 불이 났다. 이영욱 소방경(순직 당시 59세)과 이호현 소방교(순직 당시 27세)는 불을 끈 후 복귀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경 불이 다시 붙었다는 신고에 두 번째로 출동했다. 화재 진압 중 석란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두 사람을 덮쳤다. 18분 만에 구조됐지만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뒀다.“이거는 푸켓으로 신혼여행 가서 같이 산 지갑이에요. 여기에 공무원증이랑 주민등록증 같은 것도 다 들어있어요. 원래는 사진 찍는 걸 막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행 갔을 때 찍은 사진도 한 장 있고. 나중에 딸래미 크면 아빠 쓰던 거라고 보여주려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아내 박현숙2016년 5월 4일 강원도 태백의 연립주택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 도로에 떨어졌다. 허승민 소방위(순직 당시 46세)는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도로변에 떨어진 지붕 구조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강풍이 이어지며 옥상에 남은 또 다른 지붕 구조물이 작업 중이던 허 소방위의 머리로 떨어지면서 순직했다.지갑의 주인이었던 승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다.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아빠를 잃었던 아기는 일곱 살이 됐다. 사랑하는 자식, 부모, 남편, 아내는 떠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남겨진 이들은 무너지고 또 무너지지만 살아있다. 살아가고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 ▽기사 취재 : 지민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 ▽사진 취재 : 홍진환·송은석 기자 ▽그래픽 :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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