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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경협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북측과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4일 국회에서 ‘남북경제 협력의 제도화 방안: 남북한 CEPA 추진 토론회’를 연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아 남북경협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금융제도와 CEPA 체결방향 등을 논의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광길 변호사가 ‘남북경협 투자보장 관련 남북기본합의서 평가와 보완’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장호 팀장이 ‘남북한 CEPA 체결의 방향성’을 각각 발표한다. 민 의원은 “최근 남북경협 논의가 활발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치변수를 제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을 놓고 부산경남(PK)권과 대구경북(TK)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을 위해 두 지역 간 ‘물 전쟁’ 조짐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자가 암각화 보존을 위해 경북지역 수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조만간 김종진 문화재청장을 만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송 당선자의 공약이자 문화재청이 제안한 울산 사연댐 수위 저감 방안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사연댐 수위가 낮아지는 데 따른 물 부족은 낙동강 상류의 안동·영천·임하댐에서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송 당선자의 수자원 확보 공약이 자칫 신공항 추진 논란처럼 경북 주민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민주당에 따르면 송 당선자 측 관계자와 문화재청 관계자가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최근 논의했다. 울산시장직 인수위원회인 시민소통위원회 관계자는 “송 당선자의 ‘맑은 물 확보’ 공약과 연계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반구대 암각화 주변 조사 자료를 받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송 당선자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 상류의 남는 물을 가져와 식수로 활용하면 사연댐 수위를 낮춰 국보인 암각화를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안동·영천·임하댐에는 울산 인구의 2배가 넘는 300만 명이 쓸 수 있는 물이 남아돌고 있다. 경북 지자체, 환경부와 협의해 이 물을 울산 식수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6월 30일 임기가 끝나는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현 울산시장이 암각화 보존대책으로 제시한 ‘생태제방’안을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시장은 경북 등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사연댐 수위를 유지하는 대신 암각화 앞쪽에 길이 357m의 제방을 쌓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생태제방안은 “주변 경관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2009년과 2011년 문화재위원회에서 잇달아 부결됐다. 송 당선자 측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통과된 물관리 일원화 3법(정부조직법, 물관리기본법, 물관리기술발전법)에 크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 법은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분담하던 수자원관리 업무 가운데 하천관리를 제외한 수자원 이용·개발업무를 환경부가 총괄하도록 했다. 물 관리 주무부처가 환경부로 일원화됨에 따라 중앙정부를 설득하기가 비교적 용이해졌다는 게 송 당선자 측 판단. 지역 정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오랜 친구인 송 당선자가 정부 여당의 핵심 인사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송 당선자 공약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리(水理) 분야 전문가인 조홍제 울산대 교수는 “송 당선자의 주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현실성이 없는 얘기로 결론이 났다.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면 취수 대상인 안동댐 등 인근 지역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댐 주변 주민들이 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데 부정적일 수 있는 데다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들이 한국당 소속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환경부가 나서 설득해도 지자체와 주민이 반대하면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울산시 관계자는 “경북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은 전임 시장들도 이미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없는 걸로 봤다”고 말했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서는 최근 공룡 발자국이 추가로 발견되는 등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청 고위 관계자는 “암각화 전망대 주변에 신석기시대 유적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사연댐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전대)를 앞두고 예비주자들의 물밑 접촉과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2년 뒤 국회의원 총선거 때 공천권을 행사하고 문재인 정부 중반기 정책 공약을 뒷받침하는 300여 개 입법 과제를 책임지는 막강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 대표 후보가 난립하면 3명으로 컷오프한 뒤 전대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세 가지 변수가 전대를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과연 누가 ‘뼈문’(뼛속까지 친문)인가” 민주당 전대 득표율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차지하는 비중(85%)은 국민과 일반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15%)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만큼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 성향 당원들의 향배가 결정적이다. 현재까지 출마를 선언하거나 저울질하고 있는 친문계 후보는 4선의 최재성, 3선의 윤호중, 재선의 전해철 박범계 의원 등이다. 이 중에서도 친문 핵심 중의 핵심, 이른바 ‘뼈문’으로 통하는 최재성 전해철 두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변수다. 최 의원은 “두 사람이 모두 전대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 의원은 후보 단일화보다는 차기 당 대표 이미지를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한 당정 협력으로 국정 구심력을 확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책임총리를 연상케 하는 ‘책임대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친문 성향 의원은 “친문이 당권을 잡는 과정에서 후보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범(汎)친문으로 분류되는 4선의 김진표 의원도 최근 두 의원을 따로 만나 후보 단일화를 논의한 걸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26일 “친문 전체가 한 후보로 모아지면 전국 대의원이나 권리당원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7월 초 출마 선언을 검토 중인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성과 창출형’ 당 대표 이미지를 내걸 예정이다.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경제를 잘 아는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부각하겠다는 것. 그러나 친문 주자 간 교통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으로 25일 친문 인사 중 처음으로 출마를 선언한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당 대표를 뽑는 과정이 단일화이며 후보 간 단일화라는 (정치) 공학은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크호스 행보와 비주류 결집 다크호스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7선 이해찬 의원의 출마 여부도 중대 변수다. 민주당 불모지였던 대구에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 장관은 중도보수를 껴안을 수 있는 표 확장성과 특유의 친화력이 최대 강점이다. 그러나 개각 전 장관직 사퇴가 이른바 문심(文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출마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당내에서 대권과 당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 장관의 당권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 관계자는 “전대에 나서려면 지금쯤 캠프가 구성돼야 한다. 개각 시점이 다음 달로 넘어가면 설사 김 장관의 사표가 수리되더라도 물리적으로 출마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 장관 본인은 아직 전대 출마 카드를 완전히 접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 친노 좌장이자 당내 최다선인 이해찬 의원은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갈 수 있는 ‘힘 있는’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와 장관 등의 경륜을 갖춘 이 의원이 직접 나설 정도로 당이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스스로도 출마 여부를 함구하고 있다. 원내대표에 이어 당 대표까지 친문이 차지하는 데 대한 당내 비주류들의 집단 반발 가능성이 마지막 변수다. 지난달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 노웅래 의원이 예상 밖으로 선전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 관계자는 “친문 단일화든 비주류 결집이든 이번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문심의 향방이 전대에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상운 sukim@donga.com·유근형 기자}

“한동안 소외됐던 백제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공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를 1993년 발굴한 신광섭 울산박물관장(전 국립부여박물관장)은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불교미술사 연구 대가였던 연재 홍사준 선생(1905∼1980)의 요청에 따라 부여 궁남지(宮南池)를 1964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는 데 JP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궁남지는 7세기 백제 무왕 때 조성된 별궁 내 연못으로,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근거해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궁남지 물가를 걷다보면 연못 한가운데 포룡정(抱龍亭)에 걸린 JP의 현판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한때 학계 일각에서 궁남지 위치가 잘못 복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문화재청과 박물관 발굴조사 결과 인공의 담수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백제 문화재 보고(寶庫)인 국립부여박물관의 1993년 이전 개관과 문화재 수리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전통문화대 창립에도 JP가 간여했다. 신 관장은 “1993년 8월 부여박물관 개관식에 현직 대통령인 YS를 설득해 직접 기념식수까지 하도록 한 주인공이 JP”라고 증언했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전까지 백제에 대한 학계와 일반의 관심은 낮았다. 1970년대 정부의 대형 국책 발굴사업이 신라 수도인 경주에 집중되면서 백제 유적에 대한 보호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 황남대총과 천마총, 월성 발굴 등을 포함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을 진두지휘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경주 발굴현장을 직접 방문한 인사는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라에 대한 높은 관심을 삼국통일이나 화랑도 정신과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1960∼70년대 북한 김일성과 체제경쟁을 벌이며 통일을 지향한 통치 철학을 신라에서 찾고자 했다는 것이다. 신라에 몰두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JP가 백제 문화유산에 심취한 이유는 뭘까. 1차적으로는 백제 왕성(王城)이던 부여가 그의 고향인 까닭이 크겠지만, JP의 정치행보와 관련짓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을 모두 아우른 JP의 포용성이 백제문화의 그것과 통하지 않느냐”고 했다. 고고 역사학계에서 백제는 고대 동북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로 불린다. 인도에서 태동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불교문화를 일본 열도까지 전파한 백제의 독특한 역할 때문이다. 백제 연구자인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저서 ‘내가 사랑한 백제’에서 “백제는 고유의 불교문화를 이룩해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끼쳤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과 개방성, 포용성이 백제문화의 진면목”이라고 썼다. 24일 서울아산병원의 JP 빈소를 취재하면서 오랜만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인의 포용성을 떠올렸다. 비록 군사독재 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한국정치에서 그가 보여준 협치라는 가치만은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
DJ, YS 그리고 JP…. 영문 머리글자만 봐도 누구나 아는 계파의 보스이자 영·호남·충청의 지역 맹주로 군림한 ‘3김(金) 정치’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치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23일 김종필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3김 정치는 그 물리적 존재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게 됐다. 3김 정치는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직후 잠시 찾아온 ‘서울의 봄’과 함께 태동했다. YS와 DJ는 박정희 정권에 맞선 야권 대표 주자였고 JP는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2인자였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로 ‘서울의 봄’은 짧았고 3김에게 닥친 시련은 길었다. 1981년 DJ는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고, YS는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JP는 ‘유신 잔당’에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몰수당한 뒤 미국으로 쫓겨났다. 와신상담 끝에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3김은 정계에 복귀했다. 그해 말 3김은 대선에 나란히 출마했다. 그러나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대권을 내준다. 대선에선 실패했지만 각자가 지역 상징성을 확인하면서 3김 정치의 틀은 이때 완성됐다. YS의 통일민주당과 DJ의 평화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은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각각 부산경남과 호남, 충청에서 선전하며 첫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냈다. 이미 박정희 정권을 만들었던 킹메이커로서 JP의 행보는 1990년 3당 합당에서 다시 한번 가동됐다. JP의 지원을 받은 YS는 199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 후 내부투쟁 끝에 YS와 결별하고 1995년 2월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JP는 1997년 대선에서는 DJ의 손을 들어줬다. 그해 10월 27일 심야에 도움을 청하려고 자택을 찾아온 DJ에게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진 빚을 갚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측근들에게 “호남이 정권을 잡도록 해 수십 년 묵은 한을 풀어주자”고 설득했다. 3김 정치는 군사독재 정권의 잔재를 일소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데 그 나름대로 기여했지만 지역주의라는 큰 짐을 한국 정치에 던졌다. 그 폐해는 오래갔다. YS와 DJ, JP가 물러났는데도 특정 지역에서는 몰표를 받고, 다른 지역에서는 외면받는 선거결과가 한동안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3김 정치가 ‘보스 정치’라는 한계를 품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사독재 폭압에 맞선 효율적인 투쟁을 위해 3김의 카리스마에 의존했지만, 정작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는 소홀했다는 것. 하지만 여야 간에 최소한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 정치 실종의 시대인 요즘엔 3김이 발휘했던 정치가 아쉽다는 말도 적지 않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4일 서울아산병원 내 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빈소. 영정 사진 기준으로 왼편에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조화가 죽 늘어서 있었다. 반대편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전현직 지도자들이 보낸 조화들이 절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1997년 DJP연합을 탄생시키며 보수, 진보를 아우른 고인의 광폭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말이 빈소에선 자주 들렸다. 그러나 생전 고인과 미묘한 관계에 놓였던 전두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의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김 전 총리 빈소에는 여야 지도부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여의도를 옮겨 놓은 듯 ‘임시국회’를 방불케 했다.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이 지지부진해 정작 국회에서는 거의 한 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빈소에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정진석 원유철 의원을 내실에서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총리는 전날 밤 빈소를 찾아 1시간 반 동안 머물며 JP와 얽힌 사연을 회고했다. 이 총리는 “고인이 총리 하실 때 기자로 뵈었는데 풍모나 멋, 식견에 늘 압도됐다”며 고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던 일화도 소개했다. 평소 막걸리를 주로 마시는 이 총리는 깊은 소회에 젖어 폭탄주도 몇 잔 기울인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총리의 공적을 기려 정부는 소홀함 없이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함께 장례위원장을 맡아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빈소를 지켰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의 공적을 선양하기 위해 2013년 그의 아호를 따서 만든 운정회(雲庭會)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며칠 전 댁에서 뵐 때만 해도 병원으로 옮기면 회복될 희망이 있어 보였는데 정말 애석한 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 이면에 김 전 총리를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큰 별이 가셨다”고 말했다. 이수성 이회창 정운찬 한덕수 전 총리도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23일 빈소를 찾은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고인의 딸을 껴안으며 위로했다. 추 대표는 “고인은 정권 교체라는 시대의 큰 책무를 다한 어르신으로서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뵈었다”고 했다. 야당에서는 ‘JP 사단’으로 분류되는 정우택 정진석 의원이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내내 빈소를 지켰다. 고인을 ‘정치적 아버지’로 모셔 온 정진석 의원은 전날 타계 소식을 접하자마자 지역구인 충남 공주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2000년 고인이 이끈 자유민주연합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돼 당 대변인을 지냈다. 정우택 의원도 1996년 자민련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뒤 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DJP 연정 때 해양수산부 장관에 올랐다.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최근 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대표직 사퇴 후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홍 전 대표는 JP와의 인연이나 소회를 묻는 질문에 “됐습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전날 빈소를 찾은 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JP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기린다. 저희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갖겠다”고 말했다. 상도동계로 정치를 시작한 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24일 조문한 뒤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조국 근대화를 통해 국민들을 잘살게 한 분이다. 은퇴 이후에도 정치계나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조문했다. JP와 함께 3김을 형성했던 DJ, YS의 자제들도 찾았다. DJ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은 “총리님을 생전에 뵌 적이 있다.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YS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아버님과 오랜 정치 생활을 하며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때도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정말 각별한 사이였다”고 회고했다.김상운 sukim@donga.com·최고야·박효목 기자}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여세를 몰아 남북 경협을 뒷받침할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 구성을 야당에 제안키로 했다. 북한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남북 철도 연결 등 다양한 남북 경협 아이디어도 쏟아내고 있다.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19일 남북 철도 연결을 주제로 한 당정 토론회에서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남북 경협 관련 입법과 예산을 종합할 수 있는 특위를 야당에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협력기금 증액이나 남북 철도 연결 등 각종 경협 추진에 필요한 입법을 총괄할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안을 밝힌 것. 홍 원내대표는 이어 “북측의 각종 인프라 사업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신속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홍 원내대표를 비롯해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여권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 구체적인 남북 협력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북-미 간 비핵화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아 대북 제재가 여전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민간 투자를 약속한 만큼 선제적으로 경협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야당과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국회 남북특위 구성을 함께 논의하려고 한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야당이 이를 무작정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당 일각에서는 북한과 안정적인 경협을 지속하기 위해선 북측과 FTA를 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민병두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그동안 남북 경협은 민족 내부거래 관행에 따라 무관세로 이뤄졌지만 경협 규모가 커지면 국제 사회로부터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남북한 FTA 체결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적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국회 후반기 원 구성 지연으로 민갑룡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사진)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경찰위원회의 임명제청 동의를 거쳐 민 경찰청 차장을 신임 경찰청장에 내정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임기는 이달 30일까지로 정부는 그 전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민 내정자의 청문회 통과를 낙관하는 분위기다. 민 내정자는 15일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의 친분이 청장 내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청문회를 통해 말씀드리겠다”고만 답했다. 그러나 국회 상황은 좀 다르다. 지난달 29일 정세균 국회의장 임기가 만료되면서 후반기 의장단과 18개 상임위원장이 모두 공석이다. 여야 간 원 구성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다 일각에선 9월 정기국회까지 원구성이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정부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제출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국회는 인사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만약 20일을 넘기면 해당 후보자는 국회 임명동의 절차와 무관하게 임명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국회 원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경미 원내대변인은 “경찰청장은 청문 요구가 오고 20일이 지나야 그냥 임명될 수 있다. (현 경찰청장의 임기 만료 전 임명을 위해) 원 구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 참패 후폭풍에 빠져 있는 자유한국당은 원 구성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에 불이 났는데 불부터 꺼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권기범·최고야 기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촛불이 틀렸다 카고, 남북 정상회담을 ‘쇼’라 카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예.” 부산에 사는 김모 씨(52·상인)는 6·13지방선거에서 오랫동안 지지하던 보수정당 대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밀었다고 당당하게 공개했다. 김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던 2016년 11월 부산 서면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떠올리며 “그때 시민 10만 명이 몰린 걸 보고 부산의 야성(野性)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고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1995년 첫 지방선거 이후 보수세력이 독점한 부산의 정치지형이 1990년 김영삼(YS)의 3당 합당 이전으로 돌아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부산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인 야도(野都)로 통할 정도로 보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텃밭’으로 돌아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는 55.23%를 득표해 자유한국당 서병수 후보를 18%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다. 이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총 16곳의 부산 지역 기초단체장 가운데 13곳(81.3%)을 휩쓸었다. 불과 4년 전 지방선거 때에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기초단체장 16곳 중 15곳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한 곳도 차지하지 못했다. 비례대표 외에 42명을 뽑는 부산시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90% 이상인 38명을 확보했다. 앞서 4년 전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42곳 전체를 싹쓸이했다. 부산의 광역과 기초단체장 권력지형이 혁명적인 수준의 변화를 겪은 셈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부산의 바닥민심 변화가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5석을 확보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당시 문재인 후보가 부산에서 거둔 득표율(38.71%)이 한국당 홍준표 후보(31.98%)를 앞질렀다. 민주당 민홍철 경남도당 위원장은 “침체된 부산과 울산, 경남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열망이 이번 선거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남도 지방권력 교체에 버금가는 변화가 일어났다.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총 18곳의 경남 기초단체장 가운데 7곳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4년 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 한 곳만 민주당 몫이었다. 지역에서는 지난해 경남도지사 임기 도중 사퇴한 한국당 홍준표 대표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조유묵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홍 대표의 막말과 정태옥 의원의 이부망천 발언이 경남 선거에서도 악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경남은 전체적으로 민주당 지지 기반이 넓어진 가운데 거제 통영 고성 남해 등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오랫동안 터를 닦은 지역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각종 지역 현안을 해결할 ‘힘 있는’ 여당 단체장에 대한 기대감도 선거에 반영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시민들이 지역 정치질서와 방식을 모두 바꾸라고 명령한 것이다. 경남에서 민주당 외길을 묵묵히 걸은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운 sukim@donga.com / 창원=강정훈 / 홍정수 기자}

“특정 계층에 의해 주도된 부산 시정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는 13일 출구조사에서 승리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자 변화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오 당선자는 선거운동 내내 “30년 만에 딱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유권자들에게 ‘바꿔 보자’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5년 첫 부산시장 도전에 나선 이후 민주당 계열은 한 번도 부산시장을 내지 못했다. 오 당선자는 3전 4기의 도전 끝에 4년 전 선거에서 1.4%포인트 차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자유한국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에게 설욕했다. 오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 후보를 크게 앞서 나갔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부산을 찾아가 세 차례나 사죄의 큰절을 올렸다. 홍 대표는 “부산시민들의 실망과 분노에 사죄드린다. 부산까지 무너지면 한국당 문을 닫아야 한다”며 거듭 읍소했지만 한 번 돌아선 민심을 돌려세우진 못했다. 이는 부산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14일 오전 1시 현재 민주당은 총 16곳의 기초단체장 중 13곳을 차지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15곳을 휩쓸었다. 그는 지난달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은 정치권력 교체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선거 기간 칠순 고령에 대한 경쟁자들의 문제 제기에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생각이 젊기 때문이다. 시민과 원활하게 소통한다는 건 젊다는 뜻 아니냐”고 응수했다. 문 대통령과 같은 경남고 출신인 오 당선자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해수부에서의 업무 경험을 살려 신항만 경쟁력을 높이고 배후 물류단지를 활성화해 침체된 부산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조선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힘 있는 여권 시장을 밀어보자는 정서와 한국당에 대한 실망이 겹쳐 표심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든든한 지방정부로 뒷받침하겠다. 공정과 정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겠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13일 오후 10시 40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며 지난해 대권을 놓고 한때 경쟁을 벌인 문 대통령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번영을 언급했다. 박 당선자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을 지키며 새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이번 지방선거는 박원순만의 선거가 아니다. 서울의 모든 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선거 초반부터 압승이 예상된 상황에서 박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운동 못지않게 구청장 지원 유세에 집중했다. 지난달 15일 후보자 예비등록 이후 서울 시내 25개 구를 모두 최소 두 바퀴 이상씩 돌았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14일 오전 1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총 25곳의 서울 구청장 가운데 최소 23곳을 휩쓸었다. 박 당선자는 두 달 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출마를 선언하면서 파란색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민주당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4년 전 재선 과정에서 당명이나 로고를 잘 드러내지 않고 홀로 배낭을 메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벌인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2011년 첫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당선자는 민주당의 입당 권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소속으로 나섰다. 한 여권 인사는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접은 후 박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당원들을 파고들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 된 박 당선자의 대권 행보는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길을 끄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박 당선자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얽히고설킨 인연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안 후보의 전격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3선도 없었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야권 표가 분산돼 박 당선자를 간접적으로 도운 측면이 있다. 박 당선자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올 4월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안 후보와 나는 당도, 서 있는 위치도, 가는 길도 굉장히 달라졌다. 참 애매한 관계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안 후보는 이번 패배로 그야말로 2011년 정치 입문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차기 대선은 물론이고 당내 입지 자체가 흔들려 다시 한 번 깊은 정치적 잠행을 타야 할 형편이다. 안 후보는 7년 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냉정했다. 안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골목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시민들과 만났다.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에서의 득표율(22.7%)을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안철수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안 후보는 선거 전 기자와 만나 “선거에 나서면 한국당은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판을 흔들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박 당선자에게 1위를 내주더라도 3위를 크게 앞선 2위로 올라서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바른미래당 일각에서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당권 도전에 안 후보가 나서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연달아 3위에 머물며 안 후보가 심각하게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안 후보는 출구조사 발표가 난 뒤 서울 당사를 방문해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이 시대 제게 주어진 소임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겠다. 따로 말씀 드릴 기회를 갖겠다”고 말한 뒤 입을 닫았다. 김 후보는 2위를 기록하며 일단 재기의 발판은 마련하게 됐다. 안정적인 대구 지역구를 버리고 중앙당의 서울시장 출마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포스트 홍준표’를 노린 행보라는 말이 나온다. 김 후보는 평소 “나는 보수 통합론자다. 안 후보도 좋은 인재이니 한국당에 입당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보수야권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김상운 sukim@donga.com·최고야 기자}

“문재인 정부 성공을 든든한 지방정부로 뒷받침하겠다. 공정과 정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겠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13일 오후 10시40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박 당선자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을 지키며 새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당선자는 선거운동 내내 “이번 지방선거는 박원순 만의 선거가 아니다. 서울의 모든 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선거 초반부터 압승이 예상된 상황에서 박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운동 못지않게 구청장 지원 유세에 집중했다. 지난달 15일 후보자 예비등록 이후 서울시내 25개구를 모두 두 바퀴씩 돌았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두 달 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출마를 선언하면서 파란색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민주당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4년 전 재선과정에서 당명이나 로고를 잘 드러내지 않고 홀로 배낭을 메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벌인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2011년 첫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당선자는 민주당의 입당 권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소속으로 나섰다. 한 여권 인사는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접은 후 박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당원들을 파고들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자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 된 박 당선자의 대권 행보는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길을 끄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박 당선자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얽히고설킨 인연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안 후보의 전격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3선도 없었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야권 표가 분산돼 박 당선자를 간접적으로 도운 측면이 있다. 박 당선자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올 4월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안 후보와 나는 당도, 서 있는 위치도, 가는 길도 굉장히 달라졌다. 참 애매한 관계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안 후보는 이번 패배로 그야말로 2011년 정치 입문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차기 대선은 물론 당 내 입지 자체가 흔들려 다시 한번 깊은 정치적 잠행을 타야할 형편이다. 안 후보는 7년 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냉정했다. 안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날마다 동네를 바꿔가며 골목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시민들과 만났다.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에서 득표율(22.7%)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안철수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안 후보는 선거 전 기자와 만나 “선거에 나서면 한국당은 매우 곤란해질 수 밖에 없다. 판을 흔들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박 당선자에게 1위를 내주더라도 3위를 크게 앞선 2위로 올라서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바른미래당 일각에서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당권 도전에 안 후보가 나서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연달아 3위에 머물며 안 후보가 심각하게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안 후보는 출구조사 발표가 난 뒤 서울 당사를 방문해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이 시대 제게 주어진 소임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겠다. 따로 말씀드릴 기회를 갖겠다”고 말한 뒤 입을 닫았다. 김 후보는 2위를 기록하며 일단 재기의 발판은 마련하게 됐다. 안정적인 대구 지역구를 버리고 중앙당의 서울시장 출마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포스트 홍준표’를 노린 행보라는 말이 나온다. 김 후보는 평소 “나는 보수 통합론자다. 안 후보도 좋은 인재이니 한국당에 입당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보수야권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6·13지방선거 유권자 5명 중 1명꼴인 20.14%가 8, 9일 실시된 6·13지방선거 사전투표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4년 전 지방선거보다 8.65%포인트 높아졌고, 전국 단위 선거 기준으로 지난해 대선(26.0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율은 21.07%를 기록했다. 지역별 사전투표율에서는 전남(31.73%)이 가장 높았고 전북(27.81%) 세종(25.75%) 경북(24.46%) 경남(23.83%)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대구(16.43%) 부산(17.16%) 경기(17.47%) 인천(17.58%)은 평균 투표율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역 일꾼 4016명과 국회의원 12명을 뽑는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유권자 선택이 8, 9일 사전투표로 개시된다. 유권자들은 신분증만 있으면 사는 곳에 관계없이 전국 3512개 투표소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전투표를 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약 사이트()에 가면 지역별, 후보별 주요 공약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국회의원 재·보선 때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는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14년 지방선거 때 처음 실시됐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11.49%.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율은 26.06%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대선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사전투표율이 높아지면 전체 투표율도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여야 지도부는 대부분 선거 당일인 13일이 아닌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것으로 투표 참여를 독려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9일 고향인 대구에서 사전투표를 할 계획이다. 8일 서울 송파에서 사전투표를 할 예정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론조사에 현혹되지 마시고, 꼭 투표장으로 가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도 사전투표 추이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투표율에 따라 여야 간 유불리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지난해 대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전투표율이 15% 미만이면 여당인 민주당에 불리하고 이보다 높아 20%에 육박하면 한국당 등 야당에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큰 정치 할 사람이 충청도에서 나와야 하는디….” 6일 오전 충남 천안시 이화전통시장. 휴일인 데다 5일장을 맞아 장터에 활기가 돌았다. 장을 보러 나온 김모 씨(72)는 충남도지사로 누굴 지지하느냐고 묻자 “JP(김종필) 다음으로 안희정이한테 기대를 걸었는디…”라며 말을 아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불명예 퇴진 직후 치러지는 6·13지방선거에서 충남도민의 표심은 복잡하다. 일단 최근 여론조사는 ‘문재인의 사무총장’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가 자유한국당 이인제 후보를 20%포인트 안팎 앞서는 걸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 간 격차가 실제론 줄어들 수도 있다. 공주에 사는 이모 씨(48·교사)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 사람 특유의 정서를 감안해야 한다. 여당 대세론에 투표를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양승조 “이인제, 고향 논산에서도 질 것” “(안 전 지사 낙마 이후)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판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양 후보는 충남 천안시 쌍용동 유세 직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충남도민들은 안 전 지사에 대해 애정과 아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양 후보는 “충청은 영호남에 밀려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변방에 있었다. 안희정을 통해 (대권에 대한) 갈망을 실현하려는 정서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대선만 두 번 도전한 6선 의원 출신인 이 후보에 비해 4선 출신인 양 후보의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 이에 양 후보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인은 유권자들에게 선택받기 힘들다. 이 후보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분 아니냐”고 말했다. 양 후보는 “장담컨대 이 후보는 고향인 논산에서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천안시와 아산시 거리유세에는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합세했다. 추 대표는 “양 후보의 출마로 빈 천안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윤일규 후보를 꼭 채워 달라”고 호소했다. ○ 이인제 “안희정, 충남도민 자존심 실추” “새도 두 날개로 날아야 합니다. 배도 기울어지면 침몰하고 자동차도 균형이 맞아야 목적지로 가지 않습니까.” 천안시 병천시장을 찾은 이 후보는 ‘균형’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후보는 두 팔을 내릴 틈도 없이 시종일관 앞으로 내민 채 걸으며 5일장을 찾은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올드보이’ 이미지도 있지만 인지도만큼은 여전했다. 한 70대 시민은 “노동부 장관할 때부터 응원했다”고 격려했다.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지만 이 후보 측은 “실제 민심은 경합”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도지사’를 자처하는 이 후보는 “진정한 여론은 여러분 마음속에 있다”며 “당보다는 사람과 정책을 보고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안 전 지사를 거론하며 “민주당이 8년간 도정을 이끌었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다. 퇴임식도 못 하고 사라져 충남도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무참하게 실추시킨 민주당에 다시 도정을 맡길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김주한 씨(64)는 “일방통행이 불안하다. 문재인 정부를 확실히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40대 시민은 “균형을 맞춰줘도 목적지로 가지 못할 게 뻔하다. 한국당이 창피하다”고 했다.천안=김상운 sukim@donga.com / 천안 아산=홍정수 기자}

6·13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각인된 후보들의 이미지는 판세를 좌우할 핵심 변수다. 동아일보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폴랩·pollab)과 함께 2014년 7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약 4년 치 28개 언론사 기사에 등장한 광역단체장 후보 이미지를 빅데이터 기법으로 분석했다. 해당 후보를 다룬 기사에서 빈번하게 언급된 키워드와 연관 인물을 뽑아봤다. 한 교수는 “유권자들이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어떤 이미지로 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朴 ‘3선’, 金 ‘대구’, 安 ‘탈당’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현직답게 ‘서울시장’ ‘3선’ 키워드로 가장 자주 인식됐다. 3선 이미지는 풍부한 시정 경험으로 비칠 수 있지만, 동시에 ‘3선 피로감’ 혹은 ‘바꿔 보자’는 야당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다. 박 후보가 미취업 청년들에게 지급한 ‘청년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확대 적용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접대·청탁을 엄격히 처벌한 ‘박원순법’도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경선 내내 경쟁자들이 집중 제기한 ‘미세먼지’ 대책을 비롯해 6년 전 불거진 박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아들’ ‘의혹’ 키워드)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분석된다. 함께 거론된 인물 1위로 나타난 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의 경쟁을 반영한 동시에 정권교체 이후 박 후보가 문 대통령과 ‘원 팀’을 강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하면 떠오른 키워드 1, 2위는 ‘대구’와 ‘김부겸’이다. 김 후보는 2016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패했다. ‘잠룡’과 ‘경기도지사’는 김 후보의 풍부한 정치 경험을 보여준다. 2014년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개혁적 면모는 ‘혁신위’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대통령’ ‘탄핵’ ‘태극기’는 김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활발히 참여한 데 따른 것이다.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동시에 진보 지지층에 ‘극우’로 비칠 양면성을 갖고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의 경우 총 3만519건의 기사가 작성돼 광역단체장 후보 중 압도적 1위였다. 2위 박원순 후보(1만1430건)에 비해서도 약 3배나 많은 기사량이다. 한때 ‘안철수 현상’을 이끈 대선 후보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 후보와 관련해선 ‘미래’ ‘연대’ ‘신당’ 같은 이미지들이 상위권이었다. 새로운 정치세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무소속으로 출발했다가 벌써 세 번째 당에 소속된 부정적인 이미지도 내포하고 있다. ‘탈당’ ‘논란’ ‘박지원’ 키워드는 민주당 분당과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의 정치적 논란이 여전히 유권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경기지사 후보들 차기 ‘대권 주자’ 이미지 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는 ‘문재인’ ‘안희정’ ‘대선’ 등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가 강했다. ‘탄핵’ ‘박근혜’ 등은 탄핵 정국에서 전국적 스타로 떠오르면서 1000건 넘게 기사가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논란’이란 키워드는 최근 욕설 논란이나 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구단주’는 이 후보가 구단주인 성남FC와 네이버의 유착관계 의혹과 연관돼 있다. 한국당 남경필 후보는 도지사 재임 기간 강조한 ‘연정’과 ‘일자리’가 상위권 키워드에 올랐다. 남 후보는 재임 중 일자리 60만 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잠룡’은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로서의 이미지다. 반면 ‘아들’ ‘투약’ ‘폭행’ 키워드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남 지사의 장남은 2014년 4월 후임병을 폭행한 데 이어 지난해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남지사 후보들 ‘문재인’ ‘김무성’ 키워드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선 민주당 김경수 후보의 연관 인물로는 문 대통령이 눈길을 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꼽히는 김 후보의 위상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경남지사 출마 여부가 관심을 끌던 올해부터 김 후보 기사가 급증했고 그중에서도 ‘드루킹’ ‘경찰’ ‘보좌관’ ‘소환’ ‘특검’ ‘댓글’ ‘인사 청탁’ 등 관련 키워드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댓글 여론조작 사건 연루 의혹의 영향이다. 한국당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의 핵심 키워드는 공교롭게 같은 당 소속 김무성 의원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 의원과 벌인 공천 갈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상위권에 오른 ‘개죽음’ 키워드는 김 후보가 2015년 6월 제2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다시는 우리 아들딸들이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것과 관련돼 있다.김상운 sukim@donga.com·박훈상·박성진 기자}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아파트 103동 3, 4, 5호 라인. 사흘 전 선거공보물이 80개 가구별 우편함에 꽂혔는데, 절반 이상이 그대로 있었다. 우편함 밖으로 삐죽 나온 봉투에 ‘선거’ 글씨가 선명해 누가 봐도 6·13지방선거 공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방선거 후보 공약 사이트의 누적 접속자 수는 57만4011명, 전체 유권자(4290만 명) 대비 1.3%에 불과했다. 6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례 없는 ‘선거 실종’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불리를 떠나 선거전을 치르는 각 정당에선 “매일 쏟아지는 북-미 정상회담 이슈로 공약을 알리기조차 쉽지 않다”고 푸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으로 여론이 여당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라 선거 판세도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 직장에선 선거 때마다 결과를 놓고 벌어졌던 ‘사다리 타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후보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줘버렸다”며 “후보자에 대한 관심 실종, 여론을 주도할 만한 민생 이슈의 실종, 후보자 간 치열한 접전의 실종 등 ‘3대 실종’으로 최근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 중 가장 낮은 수준의 투표율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조금이라도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후보들의 언어는 갈수록 말초적이고 거칠어지고 있다. 상대 후보의 정책보다는 사생활을 들추는 네거티브 선거전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대선이나 총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방 예산은 210조6000억 원. 국가(중앙정부) 예산과 합친 총 공공예산(541조 원)에서 38.9%를 차지할 정도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되는 전국 4016명의 지역 일꾼이 바로 이 막대한 돈을 주무르고 관리하게 된다. 광역단체장 17명과 기초단체장 226명 기준으로 계산하면 단체장 1명이 1년에 86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으로 유권자들이 외면한 선거를 통해 뽑힌 지역 일꾼들은 정치적 정통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각종 문제가 야기될 수 있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폐기장 유치 등 첨예한 갈등 이슈가 벌어졌을 때 의견을 수렴하고 해법을 찾는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조진만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의사를 표출하지 않고 침묵하면 소수의 민심이 전체 의견인 양 왜곡될 수 있다”며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왜곡된 민심이 ‘실체’가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최우열 dnsp@donga.com·김상운 기자}

최근 4년 동안 경남도민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희망공약으로 꼽은 핵심 키워드는 ‘아이’ ‘기업’ ‘아파트’였다. 이 중 아이(교육)는 전국 희망공약에서도 단연 수위에 올랐으며, 기업은 조선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남도민들의 관심이 반영된 걸로 풀이된다. 아파트 키워드는 경기 악화에 따른 이 지역 부동산 시장 침체와 연관돼 있다. 6·13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의 3대 핵심공약에도 자녀 교육과 지역 경제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감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교육 분야에서 김경수 후보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시절 중단된 ‘친환경 무상급식’을 서울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반값 공공 산후조리원과 더불어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현 9.2%에서 40%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김태호 후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안전보험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김경수 후보와 같이 찬성한다고 밝혔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일자리 공약에선 두 후보의 접근방식이 차별화된다. 김경수 후보는 중후장대 산업의 보루인 경남답게 ‘제조업 혁신’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지난 30년 동안 경남을 책임진 사람들이 장밋빛 미래만 던졌지 경남의 강점인 제조업에는 정작 소홀했다. 김태호 후보의 4차 산업혁명 공약은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태호 후보는 5세대(5G) 네트워크 인프라, 스마트부품 특화단지, 로봇랜드·산학연 특화단지, 스마트팜 단지 구축 등 4차 산업혁명으로 경남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김태호 후보가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전국 경제성장률이 2%대였으나 경남은 6% 성장을 기록했다. 실제 지표가 있는데도 (김경수 후보 측이) 무책임하게 비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제조업 혁신이든 4차 산업혁명이든 주체는 정부·지자체가 아닌 생산적인 노사관계다. 이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후보의 3대 공약에 아파트(부동산)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기타 공약에 거주환경 정비를 위한 ‘도시재생’ 정책이 들어 있다. 김경수 후보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시재생 지원센터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김태호 후보는 도시재생 사업 추진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주택 수요·공급 분석을 적용하겠다고 했다.유근형 noel@donga.com·최고야·김상운 기자}
“너무 잘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지방선거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더욱 일 잘하게 만드는 길이다.”(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지난 1년 동안 내 살림 좋아졌나? 자식 취직 잘됐나? 세금이 내렸나? 2번 찍어 세상을 바꾸자.”(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6·13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여야는 각자의 ‘전략적 요충지’를 선택해 대대적인 유세 일정을 시작했다. 수도권 여풍(與風)을 기대하는 민주당은 서울과 경기를, ‘왕년의 텃밭’이었던 영남권부터 굳건하게 지키는 게 급선무인 한국당은 부산으로 향했다. 추 대표의 첫 유세지는 류경기 서울 중랑구청장 후보 출정식이었다. 중랑구는 최근 16년 동안 한국당 후보가 구청장으로 당선된 곳이다. 특히 현재 서울 25개 기초단체장 중 중랑구를 포함한 단 5곳(강남 송파 서초 중구)이 한국당 소속으로, 필수 ‘수복 목표’ 지역이다. 추 대표는 이어 인천 쪽방촌 작업장, 경기합동유세장 등을 돌며 “켜켜이 적폐를 쌓아온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꺾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수원에선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달라”며 대북 이슈를 선거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당사 기자회견으로 선거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이 정권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앞세웠지만 소득은 감소하고 성장엔진은 꺼졌다”며 경제실정론을 집중 제기했다. 홍 대표는 부산으로 옮겨 “최근 민주당 대표가 ‘김정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본심인지 말실수인지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는데, 호남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93%로 자기 밥그릇 챙겨놓고 남의 밥그릇 뺏어 먹으려는 못된 심보”라며 부산 표심 자극에 주력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는 남광주시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1년 전보다 청년들의 취업은 잘되는지, 주민들의 삶은 나아졌는지, 물가는 안정됐는지 생각해 보라”며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도 광주 양동시장 합동유세에서 “민주당의 오만과 특정 당 독주를 심판해 달라”고 강조했다. 주요 후보들도 출정식을 열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야전 사령관’ 콘셉트로 이날 오전 1시 지하철 답십리역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2시간의 쪽잠만 자고 철야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0시에 동대문시장을 방문한 뒤 서울역광장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국회에서 공약을 발표한 뒤 구로구를 찾아 선거운동을 이어 나갔다. 김 후보가 출정식에서 광화문의 ‘세월호 천막’을 두고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라”고 말한 것을 두고선 바른미래당이 “유가족의 상처를 비하했다”고 비판하며 야당끼리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격전지 경남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는 거제조선소 등을 돌며 “문재인 대통령과 원팀을 이뤄 경남 경제를 살리겠다”고 실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한국당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는 진주에서 유세를 시작하며 “김태호가 당선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김경수 후보는 특검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대구에선 한국당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가 장애인 시위대에 밀려 넘어지며 꼬리뼈에 부상을 당하는 사건 사고도 있었다.최우열 dnsp@donga.com·김상운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임기 마지막 날 공식 행사에서 강조한 화두는 ‘여야 협치’였다.정 의장은 여야 지도부와 참석한 29일 국회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탄핵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이 순항할 수 있었던 건 헌법 정신을 지키려 합심한 정치권의 헌신 때문이었다. 민주주의 기초는 여야의 협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1948년 문을 연 국회는 올해로 개원 70주년을 맞았다.정 의장은 앞서 28일 고별 기자회견에서도 재임 중 가장 큰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꼽았다. 그는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국회는 헌법이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탄핵안을 처리해 새 정부 출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의장에 대해 “여당 내 자기 계파를 거느린 역대 가장 힘 있는 국회의장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보다 영향력이 없던 일부 전직 국회의장들에 비해 정 의장은 중요한 정국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예컨대 국회에서는 정 의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지난해 11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꼽는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24년 만의 국회 본회의 연설인데다 남북미 관계가 첨예한 상황이어서 적지 않은 주목을 끈 정치 이벤트였다. 당시 정 의장은 혹시나 모를 일부 진보성향 국회의원들의 돌출 행동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서는 등 의전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뒤 엄지를 치켜세우며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국회 청소 근로자들에 대한 직접 고용과 국회 특권 내려놓기,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등도 정 의장 재임 중 이뤄졌다. 그러나 정 의장은 소신이던 개헌을 임기 내 실현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재경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여야 협치의 리더십을 구현하는데 앞장선 국회의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