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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어울릴 만한 새 신발을 고민하고 있다면 올해는 ‘네모’(square)를 기억하자. 앞코에서든, 굽에서든 ‘에지’(모서리)가 분명하게 살아 있는 사각형은 최근 슈즈 업계의 주요 트렌드다. 보그는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트렌드 중 하나로 이 ‘네모’를 꼽으면서 “날카롭게 잘린 기하학적인 사각코, 사각굽을 가진 구두”를 기억하라고 주문했다. 신발에 접목된 사각형은 1990년대 풍의 복고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단순하고 미래지향적인 감성을 동시에 전한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앞코가 사각형인 ‘스퀘어토’(Square Toe)는 올해 유행의 핵심이다. ‘토’는 앞부리란 뜻으로 신발의 맨 끝부분을 가리킨다. 각진 모서리를 둥글게 한 ‘라운드 스퀘어토’도 있지만 올 시즌 트렌드는 각을 최대한 반듯하게 살린 네모 형태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이 독특한 디자인을 본격적인 유행 궤도에 올린 데는 보테가 베네타의 공이 크다. 새로 영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니얼 리가 데뷔쇼였던 2019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겨냥해 스퀘어토 슈즈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면서부터 패션 힙스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봄여름 시즌에는 발렌시아가, 이브생로랑 등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까지 합세하면서 판이 훨씬 커졌다. 부츠부터 펌프스, 샌들, 로퍼, 스니커즈와 슬리퍼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망라하고 스퀘어를 도입하고 있다. 기하학적 형태의 가방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네덜란드 브랜드 반들러 역시 사각형, 오각형 같은 도형 무늬가 도드라지는 네모코 신발로 이 분야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스퀘어토는 모양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단순하고 세련된 느낌은 물론 투박한 느낌도 낼 수 있다. 신발 종류도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다. 옷과 맞춰 신기 편한 것도 장점이다. 레이첼콕스 이은혜 팀장은 “스퀘어토는 어떤 스타일에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며 “상의로 블레이저를 툭 걸치고 연한 청바지나 버뮤다 팬츠와 함께 입으면 세련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중간 정도 높이의 힐이다. 격식을 살리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뮬(mule·뒤가 뚫린 신발) 형태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90년대식으로 동그란 발고리가 달려 있거나 첫째 둘째 발가락 사이에 끈이 있는 스퀘어토 샌들도 봄여름 런웨이 컬렉션에 많이 등장했다. 꼭 앞코만 네모일 필요는 없다. 높고 두꺼워진 플랫폼 힐의 유행과 스퀘어가 결합하면서 올해는 날렵하고 얇은 굽보다는 투박한 사각 굽이 그대로 보이는 대담한 스타일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도형처럼 묵직한 힐은 말 그대로 ‘발끝까지’ 스타일을 살려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특정한 당파의 지지자만을 위한 자유는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를 외쳤던 폴란드 출신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문학평론가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74)가 최근 펴낸 산문집 ‘타인의 자유’(난다·사진)는 룩셈부르크가 말했던 이 문구에서 제목을 따왔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경제학 통계학 정신분석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섭렵한 학자로서 김 교수는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화백(和白·다 말하게 한다)’의 정치와 ‘다성(多聲·polyphony)’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함을 이렇게 역설한다. 비평가로서 그는 먼저 맥락이 있는 독서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책의 의미는 그 뜻을 아래로 깊이 파고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다. 맥락을 모르면 오독하거나 조작하게 된다. 하지만 맥락을 궁극적으로 파악했다는 오만 역시 위험하다. “독서의 맥락은 언제나 새롭게 구축하고 해체되는 선택과 대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니체와 동학(東學)의 사상을 비교하기도 한다. 자신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겸허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태도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에서나 니체의 ‘영겁회귀의 수용’에서나 동일하다. ‘차라투스트라’에 나온 “허학(虛學)보다는 무식이 낫다”란 구절은 그의 좌우명이다. 은퇴 후의 소소한 일상 가운데 “메마름을 참고 견디는 것”은 그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 불교의 ‘제나(自我·자아)’와 ‘얼나(靈我·영아)’부터 중세철학의 에카르트 사상까지 아우르며 존재의 어두움을 묵묵히 견디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한밤의 성찰을 ‘멍청 타좌’(참선도 명상도 아니라 잠시 멍청하게 앉아 있기)라고 명명하는 데선 인간미가 드러난다. 독서방법론부터 중세철학, 기본소득제, 팝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종교,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11편의 글은 결국 제목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와 나를 성찰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분야를 아우르는 해박한 사유와 통찰은 맹목적 신념을 경계하고 좌든 우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의 기본이자 그것이 삶에 귀착해야 할 목표점임을 되짚게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주변의 모든 사람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세상의 온갖 멍청이들에 대해 욕하느라 심리치료사가 개입할 틈조차 주지 않는 환자 존. 상담사인 저자는 속으로 꾹 참으며 ‘연민을 갖자!’고 다독이고 쏟아지는 하품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하다가 결국 생각한다. ‘오늘은 그냥 또라이 같다. 이빨이 눈부신 또라이!’ 저자에게 상담이 이토록 힘든 이유는 사실 그 역시 결혼을 앞둔 연인과 갑작스레 헤어진 충격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웬델이란 상담사에게 찾아가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델 앞의 그는 존 못지않은 ‘진상’이 된다. 심리치료사인 동시에 치료가 절실한 환자가 된 저자의 상담일지를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논픽션이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렸다. 원제는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프랑스의 이민 규제법 반대 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날, 10세가 된 딸이 묻는다. “그런데 아빠, 인종주의가 뭐예요?” 이 책은 딸이 던진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저자는 인종주의가 어디서 시작됐고, 왜 생겼으며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한다. 아이는 아빠의 말을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계속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노예제도, 종족학살, 이주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주제가 조금씩 깊어진다. 저자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힘과 사랑을 키워 ‘인종주의라는 지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딸과의 대화에 더해 청소년들과의 만남, 독자들의 의견, 언론 기고문이 함께 수록돼 있다. 저자는 “무슬림 이주민 혐오, 반유대주의 등 인종주의는 갈수록 끈질기다”며 “환대와 보호의 전통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평범한 오후였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 그림책 작가 백희나 씨(49)는 스웨덴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분주해서 ‘무슨 상을 준다’는 말만 얼핏 들었다. 고맙다고 하고 일단 끊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통화 내용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다시 했다’는 거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 ‘무슨 상’이란 것이 알고 보니 세계적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ALMA)’이었다. 동화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지만 그에게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상이었다. 그제야 여러 번 되물었다. ‘그 린드그렌상이 정말 맞느냐’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자국의 세계적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2002년 제정했다. 상금 500만 크로나(약 6억 원)는 이 분야 최대 규모다. 백 씨는 67개국, 총 240명의 후보 중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인 최초다. 심사위원단은 “백 작가는 구름빵, 달 샤베트(셔벗), 동물, 목욕탕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니어처의 세계 속에서 고독과 연대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낸다”며 “그의 작품은 경이로운 세계로 통하는 통로”라고 평가했다. 백 씨의 작품은 더없이 일상적인 무대에서 출발해 판타지라는 작은 ‘마법의 문턱’을 넘고 독자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아침도 거르고 만원 버스에 치여 출근하는 아빠에게 먹으면 둥실둥실 날아오르는 구름빵을 전해주러 가는 남매(‘구름빵’)부터 아이가 아픈데도 일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는 워킹맘을 대신해 밥도 차려주고 간호도 해주는 ‘일일 엄마’ 선녀(‘이상한 엄마’),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녹은 달로 셔벗을 만들어 나눠주는 할머니(‘달 샤베트’)까지 현실의 비애를 아름다운 동화적 문법으로 어루만진다. 개인 사정으로 현재 태국에 체류 중인 작가와 1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일상 속 작은 판타지’는 당신의 신비로운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만들 때 독자를 많이 의식한다. 아주 어린 아이도, 함께 읽는 어른도 쉽게 이해하면서 즐겁게 빠져드는 책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판타지다. 다들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데다 살기 쉬운 사회도 아니지 않나. ‘어둠의 깊이’가 과거와 비할 바가 아닌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판타지가 때로는 절실하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어두운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고독이나 역경 속에 있을지언정 세상과 사람에 대한 유머와 애정을 잃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어른들 없이 집에 남겨진 남매에게 길을 잃은 아기 도깨비 달록이가 나타나 친구가 돼 주고(‘이상한 손님’) 어느 집에서나 한 번쯤 키워봤음 직한 잡종견 구슬이의 시선으로 뭉클하게 가족애가 그려진다(‘나는 개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입체 세트 안의 인형을 촬영한 ‘컷아웃’ 방식 덕분에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듯 몰입도가 높다. 현실과 가상의 절묘한 경계에 선 스토리텔링과 입체적 제작 기법이 결합해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킨다. ―정교한 인형 세트를 만든 뒤 사진 촬영하는 독특한 방식은 어떻게 탄생했나. “교육공학을 전공한 뒤 시청각교육 자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획·디렉팅 업무를 했다. 그런데 직장생활이 잘 맞지 않았다. 협업보다는 혼자서 진득이 뭔가 하는 편이 내겐 더 어울렸고, 지휘나 조율보다는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회사를 관두고 애니메이션을 다시 공부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영화적인 연출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업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입체 세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스토리 안에서 그 장면이 어떤 역할을 할지 정교하게 연구해야 한다. 구상을 마치면 표정과 자세, 옷차림까지 실제 인형으로 하나하나 구현해야 한다. 그는 “공정이 길고 고되지만 외골수 기질이 이런 작업에 최적화한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사전 공정을 끝낸 뒤 실제 연출을 마치고 조명까지 모두 세팅하고 사진을 찍을 때, 그 세트에 주인공이 실재하는 것처럼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는 그때를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아이들과 그림책, 인형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어린이들이 좋아 교육을 전공했고, 그들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시각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고민했다. 20대에 처음 접한 ‘피터 래빗’ 시리즈의 비어트릭스 포터와 직장 시절 알게 된 오스트리아의 그림 작가 리스베트 츠베르거에게서 가장 많은 감화를 받았다. 그는 “포터는 벌써 몇백 년 전에 토끼의 특징을 모두 살리면서도 완벽하게 의인화된 모습을 구현해내 놀랐고, 츠베르거는 여백을 많이 쓴 그림으로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데서 놀라움을 느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물건 중 하나인 인형을 사 모으는 수집벽은 여전하다. 유학 시절에는 상점까지 한참을 걸어가 바비 인형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게 낙이었다. 가끔 하나씩 사와 작업 책상에 놓고 위안 삼으며 일했다. 바비뿐만 아니라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인형은 다 좋아한다. 인형이 얼마나 많냐고 묻자 “솔직히 셀 수 없이 많다”며 웃었다. ―인형이 왜 그렇게 좋은가. “내가 정해 놓은 세상에서 실제 살아가는 존재 같아서 좋다. 인형이 생기면 ‘어떤 곳에 사는 이런 아이에게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나고’ 하는 식의 스토리를 상상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히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인형놀이’를 했다.” 오랫동안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처음으로 책이 돼 나온 것이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구름빵’이었다. 출산 후 산후조리차 한국에 와 있던 때, 지인을 통해 한 출판사의 아동전집 시리즈 중 한 권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는 “애니메이션은 시간이 몇 배나 더 들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인 반면, 그림책은 혼자 컨트롤할 수 있고 복잡한 일이 많이 필요 없는 원시적 매체란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걸 틀고 구현하려면 (메모리가) 몇 메가 이상이 필요하고 어쩌고’ 하는 복잡한 논의 없이 그저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함이 주는 매력이었다.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사랑받은 이 책이 그에게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시 출판계 관행대로 맺은 ‘매절계약’(출판사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향후 저작물 이용 수익을 독점하는 계약) 때문에 책이 2차 콘텐츠 등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도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지만 올해까지 1, 2심 모두 패소했다. 백 작가는 매년 봄 새로운 책을 내왔지만 올해는 그 여파로 아무런 작업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시는 책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몸이 많이 아팠다. 그때 일어난 마법 같은 일이 린드그렌상 수상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비슷한 이름의 다른 상이 스웨덴에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수상 소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사실 아직도 ‘구름빵’은 표지조차 넘기지 못하는, 내가 썼음에도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는 책이다.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많이 회복됐다. 이 상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스웨덴 국민작가의 이름을 따서 세금으로 외국인에게 주는 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종사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스웨덴 국민이 세상에 주는 상’이라고 하더라. (창작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격차가 크다고 느꼈다.” 백 작가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큰 상이어서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상의 의미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라가치상(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을 받는 등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고 단시간에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그림책 작가여서 자긍심을 느낀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접하는 문학작품이면서도 노인이 돼서까지 즐길 수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급적 많은 책을, 책임감을 갖고 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토양이 더 좋은 작품과 작가의 탄생을 북돋아 줄 만큼 충분히 성숙한지 여전히 염려를 느낀다. ―우리 아이들과 아동문학을 위해 무엇을 더해야 할까. “‘노키즈존’ ‘맘충’ ‘n번방 사건’ 등 우리 사회에서 아동 인권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아동과 관련된 음란물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다. 아이들 인권과 안전이 보호받는 장치가 없는 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작가의 권리는 얼마나 보잘것없겠는가. 선례는 항상 큰 영향을 미친다.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해서 결론내리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정말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백희나 작가는 (1971년생)△ 이화여대 교육공학 학사△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 캐릭터애니메이션 학사△ 200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2013년 제3회 창원아동문학상,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최근 브랜드 알렉산더 왕은 블라우스에 숄더백까지 멘 여성이 내의 같은 회색 면 레깅스와 두꺼운 양말, 운동화를 신은 사진을 ‘출근용 캐주얼’이라며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재택근무(WFH·Work from home)로 인해 일반화된 ‘상하의 분리 패션’을 재치 있게 연출한 것이다. 요즘 패션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격리의 시대를 맞아 ‘무엇을 입어야 할 것인가’란 화두로 떠들썩하다. 재택근무에서 영감을 받은 ‘상하의 따로따로 패션’을 비롯해 상식을 깨는 새롭고 자유분방한 옷 입기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상하의 따로 패션은 화상회의 등 상반신만 외부에 노출되는 재택근무 환경에 맞추다 보니 탄생한 옷차림이다. 카메라에 잡히는 상의는 격식을 갖춰서 입되 안 보이는 하의는 대충 입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집콕 패션을 공유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민망하게 여겨지던 이 옷차림은 코로나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드레스코드가 됐다. 일반인이 자신의 재택 패션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WFHfits’에는 상의로 블레이저를, 하의로 잠옷을 택한 이들의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주류 패션계의 주목까지 받기 시작한 이곳은 생긴 지 일주일 만에 팔로어가 22만 명을 넘으며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됐다. 패션에 대한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조류는 ‘잠옷 패션’의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잠옷을 입고 외출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젠 다르다. 최근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 스콧 슈먼은 파자마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뉴요커 사진을 공개하며 “재택근무의 영감 덕에 파자마가 침실에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상하의 파자마 세트를 입고 도로를 활보하거나 커피를 주문하는 뉴요커의 모습에 ‘파자마가 이렇게 스타일리시할 줄 몰랐다’는 호응이 쏟아졌다. 보그는 한술 더 떠 “일상에서의 옷 입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라며 “홈웨어와 정장의 중간쯤에 세련된 파자마 세트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잠옷인 듯 잠옷 아닌’ 파자마 스타일 옷은 올해 봄 유행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홍보대행사 APR의 강다영 과장은 “순면, 실크처럼 잠옷 느낌이 너무 강한 스타일보다는 파자마 특유의 편안함은 살리면서도 가까운 곳으로 외출할 수 있게 변형한 옷이 인기”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재택근무와 격리라는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황에서 ‘오피스 드레스코드’를 파괴한 옷을 입고 그것을 공유하는 건 창조적 활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패션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스트레스 없이 입기(dressed not stressed)’란 해시태그와 함께 침실에서 대형 부츠를 신은 자신의 과감한 집콕 패션을 여러 장 공개했다. 그는 “우리 직원들이 집에서 어떤 옷을 입고 이런 불확실한 시기에 영감을 유지하는지 계속 공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 명작소설을 읽던 어린 시절, ‘오렌지 마멀레이드’ ‘양배추조림’처럼 생소하지만 군침을 돌게 하는 낯선 음식 이름을 보며 어떤 맛일까 궁금해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은 독자 나름의 상상으로 이해되곤 했다. “근사한 맛, 냄새, 색채, 감촉, 소리. 내 멋대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지만 동시에 나만의 마법이기도 했다”는 이 저자의 회고처럼 말이다. 이 책은 ‘하이디’의 검은 호밀빵에서부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콘비프, ‘안나 카레니나’의 플렌스부르크 굴,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의 월귤(越橘)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음식을 매개로 번역, 추억, 독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는 산앵두나뭇과인 링곤베리가 월귤로 번역돼 있다. 작가는 어릴 적 자연스럽게 이를 신비스러운 귤 정도로 상상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외로운 신’에 나오는 롤빵은 원래 번(bun)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달콤하고 푹신푹신한 롤케이크로 이해했다. 번역 과정에서 달라진 단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런 오해는 오히려 상상력의 원천이 돼 작품을 독특한 분위기로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고전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저자를 사로잡은 건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아니라 19세기 말 러시아의 화려한 귀족사회 면면이었다. 낯설고 진기한 이름의 소품, 멋진 드레스, 군침 도는 식사. 그중 모스크바의 한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 준비된 플렌스부르크산(産) 굴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이다. 값비싼 굴을 방탕히 즐기는 오빠 오블론스키와 무언가 먹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 안나의 모습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저자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인물들의 삶의 행로와 가치관을 가늠하며 작품을 읽어나간다. 실제 음식뿐 아니라 빨간 머리 앤이 마신 나무딸기 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먹은 아주 작은 케이크처럼 상상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실었다. 저자가 이해(혹은 오해)했던 음식과 최연호 파티시에의 감수를 받아 정리한 실제 그 음식에 대한 정보와 유래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재밌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요계 사상 처음으로 앨범 누적 판매량 2000만 장을 돌파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가온차트 3월 앨범차트 기준으로 방탄소년단 앨범의 누적 판매량이 2032만 장을 넘었다고 9일 밝혔다. 이전까지는 가수 신승훈이 1700만 장으로 최다 기록을 보유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데뷔 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부터 올해 2월 발매한 ‘맵 오브 더 솔: 7(MAP OF THE SOUL: 7)’까지 총 14개 앨범이 2032만9305장 판매됐다. ‘맵 오브 더 솔: 7’은 417만 장,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는 377만 장, 러브 유어 셀프: 결 ‘Answer’(LOVE YOURSELF 結 ‘Answer’)이 259만 장 나가는 등 7개 앨범이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누적 판매량이 1000만 장을 넘은 건 2018년 11월이다. 이어 1년 4개월 만에 2000만 장을 돌파했다. ‘맵 오브 더 솔: 7’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최신 차트에서 25위에 오르는 등 6주 연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집에 콕 박혀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우울증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에 꼼짝 없이 있어야 하는 이때를 오히려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아티스트들의 기발한 작업이 활발하다. 리모와 캐리어는 최근 의자 모양으로 된 캐리어 디자인을 공개했다. ‘여행의 상징’이던 캐리어가 각국의 국경 폐쇄 탓에 이제는 ‘기다림의 상징’으로 변모한 현실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리모와 측은 “지금 우리는 여행 대신 고요함과 마주했다”며 “집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고독을 함께 견디며 지난날의 여행과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곳들에 대해 꿈꾸고 공유하는 기다림의 시간에 놓인 것”이라고 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alon_art’란 아이디로 활동 중인 익명의 현대미술 작가는 금박으로 만든 두루마리휴지에 ‘2020년 버전 화장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을 황금이 돼버린 화장지를 통해 풍자한 것이다. 영국의 모션아트 브랜드 MRE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패러디한 손세정제 사용법, ‘stayhome’(스테이홈·집콕)’이라 쓰인 대형 패브릭 아래서 몸부림치는 사람 등 코로나19가 낳은 세태를 꼬집은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였다. 베르사체는 집에 있는 시간을 마냥 따분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집콕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진 아카이브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선반이 된 남자나 사람이 앉은 의자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드레시한 옷차림의 여성 등 1990년대 ‘베르사체 홈’의 광고사진 작품들을 다시 불러왔다. 베르사체 측은 “집은 항상 우리에게 영감과 위안의 원천이었다”며 “집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진 작업을 통해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겨울밤이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막기 위해 공군 군악대 막사의 석탄 난로를 꺼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했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에서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지만 ‘석탄의 음흉함’을 피하려는 순간, 차가운 추위와 무한한 밤에 동사(凍死)당할 또 다른 위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애국적인 밤’의 추위 속에서 동료 중 하나가 샹송을 부른다.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모두 함께 마치 자장가처럼 따라 부른다.(‘군대의 검은색’)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검은색’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모았다. 잉크, 검은 개, 적과 흑, 블랙 유머, 검은 표범, 검은 대륙, 고래 등 그가 검은색에서 연상해낸 주제는 예술 정치 철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단둘만의 여행을 위해 그를 피레네산맥 외딴 마을에 맡겨뒀을 때 밤길에서 만난 무서운 검은 개는 불안 두려움 괴물의 원형이 되고(‘어둠 속의 검은 개’) 글을 배우며 접하게 된 까만 잉크통은 문장이 굽이쳐 나오는 기적, 문자가 된 사유에 대한 경이로움을 발견케 하는 매개가 된다(‘잉크통’). 유년과 젊은 시절 경험담이 얽힌 글에서부터 가볍게 시작하지만, 검은색에서 변증법을 발견하고 우주의 암흑물질까지 다루는 만만치 않은 사유와 시적인 문장들이 어우러졌다. 검은색이란 매력적인 색에 얽힌 저명한 철학자의 통찰과 사유를 더 친근한 산문 형태로 엿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물방울무늬가 돌아왔다. 올봄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중심부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도트(dot) 바람이 심상치 않다. 흔히 물방울무늬라 불리는 폴카 도트(polka dot)는 오랫동안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클래식한 프린트지만 한동안 유행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 같은 해외 패션전문지는 “‘만능 패턴’ 도트에 관한 디자이너의 관심은 꺾일 줄 모른다”며 올봄 가장 주목해야 할 패션 트렌드로 폴카 도트의 유행을 꼽았다. 폴카 도트의 화려한 귀환은 복고 트렌드에 따른 ‘할머니 스타일(그래니 룩·granny look)’의 강세 덕분이랄 수 있다. 지름 0.5∼1cm의 작은 물방울이 잔잔하고 균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문양을 뜻하는 폴카 도트는 1950년대 유행한 오드리 헵번이나 메릴린 먼로의 원피스처럼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룩에 자주 쓰여 왔다. 그러면서도 마치 시골 할머니의 옷장에서 막 꺼낸 듯한 빈티지함이 풍기는 것이 매력. 물론 올해 유행할 물방울무늬는 마냥 그런 복고 감성에만 젖어 있지 않는다. 도트의 크기 색깔 형태 등에 변형을 주며 한층 도회적이고 세련된 느낌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도트를 시그니처 패턴으로 삼고 있는 카롤리나 에레라는 올봄 컬렉션에서 시어(sheer) 소재를 덧댄 도트 문양의 노란 오프숄더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구사마 야요이의 그림같이 동화적이고 몽환적 느낌을 준다. 도트 패션도 시대에 따라 진화함을 실감케 한다. 셀린의 에디 슬리만도 올 봄여름 컬렉션에서 도트를 응용한 디자인을 여러 벌 선보였다. 그가 이번에 해석한 도트는 범용성이 좋은 ‘에브리데이 도트’다. 보기엔 예뻐도 막상 입으려면 너무 튀는 게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 도트인데 출퇴근 룩으로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고, 조끼 신발 가방 등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브닝용으로도 가능하게끔 ‘한끝’을 살려냈다. 드리스 반 노튼은 도트의 크기를 오버사이즈로 키워서 재해석했다. 큼직한 원형 패턴을 활용한 원피스형 재킷은 도회적 감성을 물씬 풍긴다. 오버사이즈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는 전반적으로 작은 도트보다는 큰 도트가 강세다. 오버사이즈와 마이크로 도트같이 서로 다른 크기의 폴카 도트를 섞어서 자신만의 도트 룩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 폴카 도트는 드레스, 투피스, 블라우스, 스커트뿐 아니라 가방이나 모자 같은 액세서리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베이직한 아이템에 과하지 않게 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정아 롯데백화점 PB운영팀 바이어는 “국내에서는 여러 아이템 가운데 특히 도트 패턴의 롱 원피스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한다”며 “도트의 크기는 커졌지만 색상은 컬러풀한 것보다는 블랙, 화이트의 기본형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컬러풀한 도트로 생기를 더하고 싶다면 민트나 바이올렛처럼 튀지 않는 파스텔컬러가 트렌드임을 감안해 고르도록 하자. 런웨이 룩이나 스트리트 패션에서 자주 보이듯 하늘하늘 여성스러운 폴카 도트 원피스에 과감한 액세서리와 가죽 부츠 등을 매치해도 멋스럽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그림책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49·사진)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이 상은 2002년 스웨덴 정부가 ‘삐삐 롱 스타킹’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으로 상금은 500만 크로나(약 6억460만 원)다. 한국 작가로는 첫 수상이다. 심사위원회는 “백 작가는 소재와 표정, 제스처에 대한 놀라운 감각으로 영화 같은 그림책을 통해 외로움과 결속력에 대한 이야기를 경이롭고 감각적으로 풀어냈다”며 “모든 이야기에 아이의 관점과 놀이와 상상력이 갖는 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백 작가는 “정말 받고 싶은 상이었지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꿈같은 세상에서 아이로 살고 싶어서 그림책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며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이 상이 계속 책을 쓸 힘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구름빵’을 비롯해 ‘달 샤베트’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등 그림책 13권을 냈다. 그는 인형과 소품, 세트를 직접 제작하고 조명을 설치해 하나의 무대를 만든 뒤 각각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신선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생동감 있고 깜찍한 장면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즉각적인 만족은 인간의 심오한 행복을 방해한다.” 초(超)연결 초능력시대이지만, 어떻게 돼선지 인간의 하루는 더 정신없어졌다. 원하는 정보와 관계를 실시간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책 읽을 시간이, 산책하고 사색할 시간이, 가족들과 완전한 휴식을 누릴 시간이 전혀 없다.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밥 딜런의 말을 인용하며 사색과 느림, 시간이 소요되는 일들의 가치를 재조명해나간다. 20년에 걸쳐 만든 뒤샹의 생애 마지막 작품과 639년 동안 공연되는 존 케이지의 오르간 연주를 비롯해 시골의 우체부가 33년에 걸쳐 만든 돌멩이 성, 1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역청을 관찰하는 과학 실험 등 ‘시간의 힘’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만은 느긋하게, ‘시간’을 할애해 천천히 읽어달라고 당부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이를 숨긴 채 동네 치킨집에서 일을 시작한 아란의 상황은 막막하다.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엄마는 아란을 또와 아저씨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렸는데, 눈치껏 더부살이하던 그 집마저 손만 대면 족족 망하는 장사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파산해버린다. 졸지에 집도 일자리도 가족도 없어진 아란. 부모 품에서 공부하고 투정부리고 철없이 지내야 할 10대 소녀가 마주하기엔 가혹한 현실이다.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아란의 독립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절제된 문장 속의 낙관과 긍정은 20년차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안정적 서사와 결합해 빛을 발한다. 소설 제목 ‘홍시’는 아란의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 아란은 엄마의 얼굴이자 목소리이고 웃음인 홍시를 보기만 하면 사 모은다. 2019 창비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인 소설가 윤성희 씨의 작가 인터뷰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낙선 이력을 밝힌 이 책은 좀 독특하다. 2002년 장르문학 계간지로 등단한 소설가 정혁용 씨(48)가 최근 출간한 첫 책 ‘침입자들’(사진)이다. ‘최종심 후보작’이긴 하지만 낙선은 낙선. 문학상 수상작임을 내세우는 많은 책 가운데서 단연 눈에 띈다. ‘행운동’이란 지역의 택배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을 알아본 이는 낙선작을 투고했던 여러 출판사 중 한 곳인 다산책방의 이호빈 편집자였다. 이 편집자는 “올해 초 투고된 원고가 너무 재밌어서 잡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린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는 건 후에 작가를 만난 뒤 알게 됐다. ‘느낌이 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초고속 출간을 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낸 무명작가를 어떻게 홍보할지가 고민이었다. 편집팀은 작가를 설득해 ‘최종심 후보작’임을 프로필과 띠지에 넣었다. “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중엔 이렇게 단행본으로 충분히 출간할 만한 작품이 많을 수 있어요. 기존의 문학적 문법과 다르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단 하나의 수상작’이 되지 못한 것뿐인 것 같아요. 독자들에겐 훨씬 재미있을 수 있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거죠.”(이 편집자) 이 작품은 운이 좋은 경우다.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문학상 수상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출판계에서 무명작가가 장편 출간 기회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작가 역시 책 낼 기회를 얻지 못해 지금까지 택배 기사로 일하며 소설을 썼단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두 개의 장편을 써서 문학상 두 곳에 응모했다. 둘 다 최종심에만 들었다”고 회고한다. 한 문학평론가는 “많은 문학상 응모작이 떨어진 뒤 다른 문학상을 전전하며 떠돈다. 공모전을 포함해 보다 다양한 기회를 통해 작품들이 발굴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운동화가 트렌치코트부터 맥시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어떤 스타일의 옷에도 어울리는 만능 템으로 부상한 이래 화이트 스니커즈는 언제나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과감하게 발끝에 색을 입혀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색채연구소 팬톤은 올해 유행할 색상 트렌드로 ‘다양한 색의 강렬한 조합’을 꼽았다. 역동적인 색상의 향연이 두드러지는 한 해가 될 것이란 뜻이다. 신발에서 그런 트렌드가 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평범한 봄을 만끽하긴 어려워졌지만 런웨이에서부터 자유분방한 길거리 패션에 이르기까지 알록달록 현란한 색으로 가득 찬 스니커즈는 화사한 봄기운을 먼저 몰고 온다. 가장 먼저 주목할 건 업그레이드를 마친 ‘어글리 슈즈’(굵고 투박한 굽을 가진 운동화)다. ‘인기의 정점은 지났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1970, 80년대 ‘패션 테러리스트’ 아빠들이 신던 울퉁불퉁 못생긴 운동화에서 ‘힙트로’(hiptro·최신 복고패션)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 신발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패션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로 연착륙하고 있다. 실제로 올 시즌에도 대부분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글리 슈즈를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는 신발 전반에서 높고 두꺼운 굽을 자랑하는 이른바 ‘통굽’이 대세인데, 신상 운동화 역시 이런 유행이 반영돼 키높이 신발처럼 밑창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어글리 슈즈는 외형을 크게 키우면서 한층 밝고 화사해진 색상으로 무장했다. 발맹, 클로에 등은 어글리 실루엣을 지키면서 핫핑크나 레몬, 네온그린 등 보색 관계인 여러 색상을 블록처럼 조립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텔라 매카트니 등 마치 팔레트에 풀어놓은 파스텔 물감처럼 밑창에 은은하게 그러데이션을 준 운동화는 ‘올 화이트(all white)’ 신봉자의 마음도 설레게 만든다. 어글리 슈즈의 물량 공세만은 못하지만, 몇 년간 지속되는 이 투박함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한결 얌전해진 단화형 스니커즈를 주력으로 내놓는 브랜드들도 있다. 이들 역시 색감을 강조하며 포인트를 준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찌는 깔끔하고 날렵한 테니스화 실루엣 안에 미키마우스, 애플패턴 등 톡톡 튀는 캐릭터와 색을 담아냈다. 샤넬도 신발 끈과 밑창에 포인트로 네온컬러를 입혀서 과하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되는 전략을 꾀했다. 만약 현란한 레인보부터 전위적인 메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워진 색깔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올 시즌 네온(형광)의 부상을 잊지 말자. 민트 그린, 탄제린(감귤색) 등 촌스럽지 않은 파스텔 느낌으로 진화한 네온 컬러들은 발렌티노, 샐리 라포인트 등 여러 브랜드의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공통적으로 선보였다. 의상으로 즐기기에는 쨍한 색깔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스니커즈로는 봄 기분을 내기 그만이다. 정진아 스타일리스트는 “다채로운 색상이 섞인 운동화를 선택할 때 전체적인 룩을 뉴트럴 톤으로 중화시키면 현대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트렌치코트나 심플한 재킷에 톤온톤(동일 색상 내에서 톤의 차이를 두는 배색)으로 하의를 선택하고 트렌디한 스니커즈를 신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임신과 출산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에서는 ‘매직아이’란 말을 자주 쓴다. 임신을 너무 바라다 보니, 임신테스트기에서 실제로 보이는 건 시약선 한 줄밖에 없는데도 ‘희미하지만 두 줄이 보이는 것 같다’고 믿는 것이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두 줄인데, 일종의 ‘베이비 피버(baby fever)’다. 아기를 열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중 스칸디나비아에서 베이비 피버라는 말을 쓴다. 헛것을 보기도 하고 통증도 느낀다. 핀란드의 가족사회학자 안나 로트키르흐는 이 현상을 연구하며 다양한 여성이 느낀 경험을 조사했는데 응답자 중 다수가 ‘아기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여러 고충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한 순간,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출산 육아의 기쁨과 고충을 논하는 숱한 책이 쏟아지는 와중에 이 책은 소설가인 저자가 실제 난임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기약 없는 긴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임의 상황에 처한 다른 이들처럼 저자 역시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한 여성의 임신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가정은, 난임을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느끼게 한다. 매일 기초체온에 전전긍긍하고, 툭하면 눈물바람에, 성공 확률이 실낱같은 치료에 돈을 지불하며 5년을 넘게 고통받는 처지가 되자 모든 게 다시 보인다. 생물의 번식 습성, 인간의 모성애와 양육 욕구부터 아이 없는 상실감을 토로했던 버지니아 울프, 아이 없는 부부의 비참한 삶을 다룬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새로워진다. ‘나’를 낳은 엄마의 삶, 생산을 그친 여자의 몸을 생각하고, 입양제도 속의 상처와 아픔을, 가족에 대한 통념을 고민한다. 난임이라는 사적인 문제는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영역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포기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의료기술 발달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결국 막대한 비용 때문에, 그럼에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으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약물과 주사 때문에 망설이던 체외수정을 결심한다. 난임 부부가 기대는 마지막 보루인 체외수정은 산업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창조 섭리의 위협’ ‘실험실 아기’ 등으로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번식을 위해 울어대는 매미소리조차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 그는 또 다른 기다림이 될 최후의 과정을 밟는다. 난임의 세밀한 기록 속에서 던져진 질문과 인터뷰는 생명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그를 둘러싼 이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을 돌아보게 한다. 난임 치료비용은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저자는 인종이나 지위, 재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이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난임 치료 혜택이 확대돼야 함을 함께 피력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맥시멀리스트(maximalist)가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노그램 패턴과 청청(靑靑) 패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패션계 전방위로 무르익은 레트로 무드는 결국 오버사이즈 백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작아지다 못해 가방인지 열쇠고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 깜찍한 마이크로 사이즈로까지 축소됐던 미니 백 열풍 속에서 소지품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스타일리스트 레이철 조의 블로그 ‘더조리포트’는 “이제야 겨우 이 작은 가방에 뭘 넣고 뺄지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싶었는데 유행이 지나가 버렸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웬만한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어도 넉넉했던 1990년대 스타일의 큼지막한 가방이 밀레니얼 감성으로 되살아나면서 크기가 슈퍼사이즈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이다. 수납공간이 넉넉한 가방을 캐리올 토트(carryall tote)라고 하는데 올해 보테가 베네타, 펜디, 에르메스 등의 봄여름 컬렉션을 장식한 가방은 소지품 정도가 아니라 세간을 통째로 넣어도 될 만큼 거대한 가방(carry-your-life-with-you tote)이다. 장담하건대 어떤 가방이든 들까말까 망설이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면 올해는 안심해도 좋다. 가방 사이즈에 대한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XXL 백 컬렉션을 두고 ‘보그’ 같은 해외 패션 전문지들은 선택의 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크면 클수록 더 좋다.” 그중에서도 보테가 베네타의 자신감은 단연 돋보인다. 인트레차토(격자무늬 가죽 직조 기법)를 확대 재해석한 ‘카세트 백’으로 새바람을 일으킨 대니얼 리는 가방 사이즈도 맥시로 키우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분명히 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적어도 대니얼 리만 보자면 정말로 빅 백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볼 수 있는 올해 오버사이즈 백의 특징은 엄청난 크기와 대비를 이루는 부드러움과 가벼움이다. 딱딱하고 묵직한 큰 가방은 잠시 제쳐두자. 자연스러운 곡선형 핸들을 가진 유광의 맥시한 가죽가방은 무심히 툭 어깨에 메기만 해도 절로 시크해지는 빅 백의 감성을 살리면서도 데일리 백으로 선택하기에 부담이 없다. 몸에 둥글게 감기는 보테가 베네타 빅 숄더백은 이미 해외 스트리트패션을 장식 중이다. 에르메스가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대형 호보 백 역시 이런 트렌드를 보여준다. 뭐든 끝없이 들어갈 것 같은 크기로 압도하지만 몸의 움직임에 따라 굴곡이 흐르듯이 변모하는 원형의 부드러움과 경쾌함을 유지한다. 그동안 미니 백의 강세 속에서도 리애나, 제시카 알바를 비롯한 할리우드 셀럽들의 선택을 받으며 꿋꿋하게 완판 행진을 이어간 디올의 오버사이즈 캔버스 백 ‘북 토트’도 넉넉한 가방이 필요했던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레트로 감성을 극대화한 2000년대 초반의 로고 플레이를 되살려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가방은 올해 주목할 키워드인 ‘플로럴(floral) 프린트’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뉴컬렉션의 특색을 가미하며 더 새로워졌다. 펜디 역시 휴양지 느낌의 라피아나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빅 토트를 다양하게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혔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회사원 A 씨(32)는 주말에 서점 매대에 놓인 책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5년 차. 상사들 눈치 보며 아등바등 쫓기듯 사는 데 지친 터였다. 그는 책을 산 뒤 커피숍 테이블 위에 제목이 잘 보이도록 올려놓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올렸다. ‘#제목으로힐링 #취향저격 #직장인의주말’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서점가에 독자들의 취향과 기분을 대변해주는 제목이 인기다. 마치 책이 ‘지금 이런 기분이지?’ ‘딱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았어?’라고 말을 걸어오는 식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제목에 열광하는 독자가 늘면서 책 제목은 과감한 구어체로 변모 중이다. ○ 제목으로 ‘나’를 표현하는 독자들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과로에 지친 누군가의 투덜거림 같지만, 실은 요즘 나온 세 권의 책 제목을 연결한 것이다. 제목은 내용을 압축한 핵심어나 독자를 매혹시키는 미문(美文)이 아닌가 했던 이들에게 요즘 책 제목은 너무 구어적이어서 파격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배움보다는 공감을 원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선행 가나출판사 차장은 “요즘 독자들은 멘토의 ‘한 말씀’엔 큰 관심이 없는 반면에 공감과 위안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독서 인증’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이들에게 책 제목은 자기표현의 도구다. “만약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이젠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셈이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올린다는 건 ‘늘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제목이 나를 대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사서 보는 거죠.”(서 차장) 실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두 책의 제목으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각각 2만 건에 달한다. 이 제목에 감정을 이입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제목으로 ‘나’를 알리는 작가들 작가도 달라졌다. 에세이 시장이 커지면서 SNS에서 새 작가들이 대거 발굴되고 있다. 제목은 SNS 출신 신인을 알리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제목 장사’가 더 중요해진 데 영향을 미쳤다. 자그마치북스의 구소연 편집자는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다’고 직관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어체 제목이 많아지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서술형) ‘그냥 다니는 거지 뭐’(자조형)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생략형)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감탄형) 식이다. 에세이 분야는 구어체 제목이 점령했다. 16일 현재 예스24 에세이 베스트셀러에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위),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8위),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9위) 등이 올라와 있다. 김태희 예스24 에세이 MD는 “제목 자체가 책의 킬러 콘텐츠가 되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대화형 제목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시인의 감각이란 건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문정희 시인(73)의 대답은 이랬다. “안으로는 탐독, 밖으로는 탐색.”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이 산다’(민음사)는 그중 탐색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은 20여 년간 프랑스 낭트에서부터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마케도니아 테토보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인으로 초청받은 수많은 이국 도시를 여행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사이에서 예민하게 포착한 경험과 감각은 그의 안목과 취향이 됐고, 시가 됐다. 그는 “문학은 인간이고 인간은 결국 자유”라며 “‘시인 살기’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뜻한 필치로 그려지는 매력적인 여행기는 그래서 그의 진솔한 시작(詩作)노트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사건이 생기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의 여행기는 흥미진진한 일화가 넘친다. 분홍색 넥타이를 풀어 즉흥 선물을 한 워싱턴 낭독회의 노신사나, 넝마 위 스카프를 칭찬하자 “가져라”며 던져준 델리의 걸인 이야기는 만남의 신비를 위트 있게 전한다. 뉴델리의 빈부 격차에 깊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당장 녹물 나오는 초청 숙소는 견디기가 어렵고, 10년 치 퇴직금을 공항에서 잃은 기내 네팔 근로자의 절망에 몰입하면서도 이륙 후 쏟아지는 졸음까지 이기진 못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요지 야마모토, 헬무트 랭 등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글은 특히나 재밌다. 시인은 “작가가 패션에 대해 말하기엔 경직된 사회였지만 내겐 책만큼 옷이 많다”고 말했다. 철칙은 ‘똑같은 건 싫다’는 것. 강남 명품거리에서 독특한 직조의 코트를 사 입었는데 알고 보니 목욕가운이었던 일이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옷을 입고 잡지 화보까지 찍은 일화는 시인의 유쾌한 개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의 옷차림을 ‘투우사의 옷’이라 칭하며 창작열을 고무시키는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논의하는 이 글은 빈곤, 고통 등 무거운 주제에만 눌려 있던 한국 문학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과일 따위에 ‘스위트’란 단어를 쓸 순 없다는 시인 아도니스나 필터 없는 프랑스 담배 ‘지탄’을 즐겨 피우던 김환기 화백의 아내 김향안 여사와의 파리 데이트도 인상적이다. 옥타비오 파스, 심보르스카 등 탐독으로 걸러진 다른 문인의 촌철살인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이 긴 탐색의 끝에 시인은 어디에 도착했을까. 그는 “쓰는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껏 투사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인생과 문학의 미완성과 불안감을 통렬히 수긍하게 됐어요. 나이가 아니라 탐색으로 얻게 된 감각이에요. 쓰는 존재, 그거면 된 거예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