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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신작 ‘기생수: 더 그레이’가 5일 공개 후 전 세계 TV 시청 1위에 올라서며 초반부터 뜨거운 반응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을 숙주 삼아 세력을 확장하는 기생 생물에 대한 이야기.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연재된 이와아키 히토시의 일본 만화 ‘기생수’가 원작이다. 연출은 영화 ‘부산행’(2016년)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 드라마의 백미는 쪼개진 인간의 얼굴에서 촉수를 뻗어내는 크리처(괴생명체)들이다. 불가사리처럼 얼굴이 갈라지며 단숨에 길고 축축한 촉수로 변하는 모습은 기괴하고 강렬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 앞서 지난해 말 공개된 ‘경성크리처’, ‘스위트홈’ 시리즈까지 ‘K크리처물’이 최근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 글로벌 OTT로 날개 단 크리처물 그동안 한국에서 크리처물 영화는 종종 만들어졌지만 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작 허들이 높았기 때문이다. 마니아층이 뚜렷한 장르라 방송 편성이 쉽지 않고, 까다로운 시각특수효과(VFX) 작업이 필요해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뛴다. 자연스레 투자금이 잘 모이지 않아 좋은 대본이 있어도 제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크리처물 투자를 시작했고, 처음 빛을 본 작품이 드라마 ‘스위트홈’이다. 2020년 12월 시즌1 공개 당시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 처음으로 세계 시청 3위에 올랐다. ‘스위트홈’이 성공하자 크리처물 제작에 불이 붙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경성크리처’ ‘기생수: 더 그레이’ 등 K크리처 드라마가 줄줄이 제작됐다. 자연스레 한국 VFX 기술 수준도 한 단계 성장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 VFX 작업을 맡은 덱스터 스튜디오의 진종현 이사는 “과거 한국의 VFX가 할리우드를 쫓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할리우드가) 우리 디자인을 보게 만들겠다는 스탠스로 바뀌었다”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튜디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작업하고 있다. 이미 우리 기술력이 그들 못지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공존과 이해, 인간성 담긴 ‘한국적 괴물’ ‘K크리처물’의 독특한 특징은 한국 특유의 감성을 작품에 녹여 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크리처가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더 강한 크리처가 살아남는 식의 서사가 대부분이었다면 한국식 크리처물은 공존과 이해,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주인공 수인(전소니)이 기생 생물과 몸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드라마 속 수인이 기생 생물로 변하는 몸짓은 우리 농악의 ‘상모 돌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위트홈’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괴물 모습으로 변한다는 콘셉트로 성형 중독, 자살 충동 등 한국적이면서도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심리적 문제를 담았다. ‘스위트홈’의 주인공 차현수(송강) 역시 괴물로 변해도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제강점기 인체 실험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경성크리처’에서는 괴물이 여전히 모성애를 갖고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콘텐츠는 아주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시대정신을 갖고 있다”며 “서구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한국적이고 동양적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이해, 공감을 바탕으로 하면서 세계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농업, 어업 등 세계의 제1차 산업을 뒤흔든 사람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포공학 기술력으로 맛있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만들어내고, 바닷속 참치와 연어를 실제와 똑같이 구현해 낸다. 더 나아가 이제는 농업의 근간인 쌀까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한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세계적 기업 BF(Blood Free)의 대표 윤자유(한효주)는 단숨에 전 세계 농어민의 공공의 적이 된다. 그를 향한 살해 위협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지고, BF를 향한 랜섬웨어 공격이 시작된다. 배양육이라는 소재로 미스터리 추리를 펼치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지배종’이 10일 공개된다. 총 10부작으로 매주 수요일 두 편씩 공개될 예정이다. ‘지배종’의 첫 장면은 한 행사장에서 상영된 한 영상으로 시작된다. 영상 속 소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는다.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큰 눈망울로 천천히 풀을 뜯는 엄마 소와 아기 소. 그러나 소들의 한가한 하루는 일순간 생지옥이 된다. 도축업자들이 소들을 쫓자 소들은 영상이 홀로그램화돼 상영되던 행사장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도축업자들의 칼날을 피할 수 없던 소들은 행사 참가자들 바로 옆에서 몸이 갈가리 찢겨 도륙된다. 스테이크를 먹던 행사 참가자들은 이 영상을 보고 도저히 다시 나이프를 들 수가 없다. 문제의 영상은 생명공학 기업 BF가 참혹한 도축이 아닌 실험실에서 만든 윤리적인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BF의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고, 육고기는 물론 생선에 이어 쌀까지 실험실에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전 세계 농어민 및 관련 단체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던 BF는 어느 날 ‘시티즌X’라는 존재에게 랜섬웨어 해킹을 당하고, 800억 원을 요구받는다. 일에만 파묻혀 사는 BF 대표 윤자유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시티즌X’의 존재를 파헤치기 위해 경호원 우채운(주지훈)을 고용한다. 그러나 우채운 역시 BF의 비밀을 캐야 한다는 미션을 받고 윤자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인물이다. 드라마는 BF를 둘러싼 겹겹의 미스터리를 파헤쳐 나간다. 8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한효주는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똑똑한 소재의 똑똑한 드라마”라며 “지금도 대본을 처음 읽었던 날이 생각난다. 드디어 이런 좋은 대본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일기까지 썼다”고 말했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를 쓴 이수연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진짜 내 편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시청자들이 상상력을 펼쳐 나가도록 구성했다고. 홀로그램 구현 영상 등 풍부한 시각효과도 눈을 잡아끈다. 전직 군인 출신인 우채운이 윤자유의 경호원이 되기 위해 선발 테스트를 받는 모습은 마치 게임의 한 장면 같다. 우채운이 증강현실 속으로 들어가 공격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자동차 레이싱을 하며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모습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웠던 ‘스케일이 남다른’ 시각효과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어떤 사건은 우리를 결코 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유능한 남편, 착하고 귀여운 아들, 다정한 이웃…. 부러울 것 없던 셀린(앤 해서웨이)의 삶은 어느 봄날 한순간에 산산조각 난다. 여덟 살 아들 맥스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만 것. 떨어진 아이를 부둥켜안고 절규해보지만 아들의 숨은 이미 끊어졌다. 맥스의 죽음으로 이웃 앨리스(제시카 채스테인)의 일상도 무너진다. 셀린과 친자매처럼 지내던 앨리스는 맥스가 발코니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앨리스의 아들 테오 역시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맥스를 잃은 슬픔에 빠져 우울해한다. 앨리스를 더욱 신경쇠약 상태로 몰아넣는 건 셀린의 태도다. 죽은 맥스를 기억한답시고 자꾸 테오를 집으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테오에게 과자를 권해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앨리스는 셀린이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들 테오를 해치려 한다는 노이로제에 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복잡 미묘해져 간다. 두 엄마의 모성애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뒤틀린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한 영화 ‘마더스’가 3일 개봉했다.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무엇보다 ‘믿고 보는 배우’인 앤 해서웨이와 제시카 채스테인의 연기가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앤 해서웨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엄마 셀린 역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특히 아들이 죽은 직후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옆집 아이 테오를 볼 때 미움인지, 소유욕인지 모를 감정으로 눈빛이 살아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큰 눈과 시원시원한 입매로 사랑스럽거나 처연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앤 해서웨이의 연기 변신이라 할 만하다. 앤 해서웨이는 보그 홍콩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맡았던 것 중 가장 어려운 역할이었다. 배우로서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하차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도중에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한다. 제시카 채스테인은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점점 히스테릭해지는 앨리스의 감정을 차곡차곡 능숙하게 쌓아 올린다. 각각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두 배우가 부딪치는 장면은 눈빛만으로도 긴장감이 전달된다. 친구 사이인 두 배우 모두 영화 제작자로 참여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에 비해 각본과 연출이 단순하다는 인상을 준다. 촬영감독으로 잘 알려진 브누아 들롬의 첫 장편 감독작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내면의 평화…. 내면의 평화…. 내…냉면의 평화…?” 통통하게 축 처진 배와 짧은 팔다리, 수련을 위해 ‘이너피스’를 외치지만 머릿속엔 먹을 생각으로 가득한 판다 ‘포’. 어수룩해 보여도 의외의 운동신경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용의 전사가 된 포가 다시 한번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후계자를 찾아 나서며 한층 더 성숙한 성장담이 펼쳐지는 ‘쿵푸팬더4’가 10일 개봉한다. 푸바오를 중국으로 떠나보낸 한국 관객들의 쓸쓸한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을까.8년 만에 돌아온 ‘쿵푸팬더4’는 용의 전사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포(잭 블랙)가 후계자를 찾으라는 스승 시푸(더스틴 호프먼)의 명을 받고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어려운 수련을 거치고 모든 동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용의 전사로 거듭난 포는 전사 자리를 쉬이 내놓고 싶지 않다. 그러던 중 새로운 악당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를 처단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밀을 가진 실력자 젠(아쿼피나)을 만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8년 만에 내놓은 시리즈 후속편이라 세계적인 관심이 뜨겁다. 쿵푸팬더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했다.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쿵푸팬더1’(2008년)이 473만 명, ‘쿵푸팬더2’(2011년)가 500만 명, ‘쿵푸팬더3’(2015년)가 400만 명 등 누적 관람객 수 1300만여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4편은 지난달 북미 개봉 직후 ‘듄: 파트2’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1편에서는 잠재력을 깨닫고 쿵푸 고수로 거듭나는 포, 2편은 마음의 참된 평정심을 찾는 포, 3편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되는 포를 그렸다면 4편은 욕심과 편견을 내려놓고 참된 후계자를 찾는 포의 성장을 담았다. 마이크 미첼 감독은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포 역시 그렇고 포가 만나는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라며 “상대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믿어줘야 한다는 게 메시지”라고 말했다. 가장 반가운 건 ‘영원한 포’ 배우 잭 블랙의 목소리 연기다. 장난기 넘치면서도 힘 있는 그의 목소리가 추억의 ‘포’를 소환한다. 재치 넘치는 대사들은 블랙의 애드리브인지, 진짜 대사인지 헷갈릴 만큼 ‘싱크로율’이 뛰어나다. 새로운 캐릭터인 여우 ‘젠’은 한국계 미국인인 아쿼피나가 연기했다. 래퍼 출신 연기자인 아쿼피나는 특유의 허스키함으로 할리우드 내 새로운 목소리 연기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인어공주’(2023년)에서 갈매기 스커틀을, ‘인투 더 월드’(2024년)에서 뉴욕의 비둘기 멍첨프를 연기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다만 호랑이 타이그리스, 원숭이 몽키, 두루미 크레인, 살모사 바이퍼, 사마귀 맨티스로 이뤄진 ‘무적의 5인방’이 등장하지 않아 아쉬워할 시리즈 팬들이 많을 것 같다. 새로운 캐릭터 젠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영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타이렁, 카이 등 전작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해 아쉬움을 달래준다. 새 악당 카멜레온은 몸집은 작지만 시리즈 중 그 어떤 캐릭터보다 교활하고 강력하다.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치머의 음악이 더해져 카멜레온의 등장은 더더욱 압도적이다. 한편, 이번 시리즈는 전 세계 26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북미에서도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들의 10년을 세상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4월 16일 10주기를 맞는 가운데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희생자 가족들이 겪은 10년의 세월을 정리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이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문지성 양의 아버지 문종택 씨가 직접 찍은 영상으로 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를 유가족이 직접 만든 영화는 처음이다. 영화는 벚꽃이 만개한 안산 단원고를 전경으로 시작한다. 다가올 모든 따뜻한 봄을 잃은 아이들과, 빛나는 봄 같던 아이를 잃은 부모의 모습이 겹쳐져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문 씨가 직접 담담하게 내레이션을 읽어 내려간다. 2014년 4월 16일 사고 소식을 듣고 단원고로 모여든 가족들 모습에서부터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국회, 광화문, 청와대까지 10년 동안 가족들이 눈물 흘렸던 공간을 모두 따라간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마치 배 위에 있는 듯 일렁이는 화면들도 삽입됐다. 영화는 2014년 8월부터 거의 매일 유가족들의 일상을 기록해 온 문 씨의 영상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문 씨는 유가족 유튜브 채널 ‘416TV’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정리된 영상만 50TB(테라바이트)에 달한다. 문 씨와 함께 김환태 다큐멘터리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문 씨는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람의 세월’은 심장이 있어야 보이고 가슴이 있어야 들리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는 젊은층이 많이 관람하길 바란다”며 “(참사에) 국가는 어떻게 했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극장을 나서면 대성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합니다.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예쁘거나, 섹시하거나, 부모가 엔터테인먼트 업계 유명인이거나. 할리우드에서 여자 배우로 성공하려면 셋 중 하나는 갖춰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성공 함수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배우가 요즘 할리우드를 뒤흔들고 있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여운 것들’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들어 올린 배우 에마 스톤(36)이다. 놀라울 만큼 큰 눈과 입은 전형적인 미인이라기보다 매력적인 마스크에 가깝고, 가녀리게 마른 몸을 가졌다. 아버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와는 거리가 먼 건설업계 종사자다. 그런 그녀에게 외신은 ‘할리우드 스위트 하트’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주목하고 있다. 6일 개봉한 ‘가여운 것들’은 에마 스톤 연기력의 절정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기발함을 넘어 기이한 영화다. 천재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럼 더포)는 어느 날 강가로 떠밀려온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의 뇌는 멈췄지만 몸에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배 속에는 아기가 있다. 갓윈은 아기를 꺼낸 뒤 아기의 뇌를 엄마에게 이식한다. 그 뒤 엄마의 몸에 고압 전류를 흘려 살려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 ‘벨라’(에마 스톤). 몸은 성인 여성이지만 지능은 갓난아기다. 갓윈은 아이를 키우듯 벨라에게 대근육 사용법과 식탁 매너, 언어를 가르친다. 진화하는 벨라는 점점 바깥세상이 궁금해지고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펄로)의 손에 이끌려 여행을 하며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더 랍스터’(2015년) ‘킬링 디어’(2018년) 등을 만든 그리스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미장센을 인정받았다. 란티모스 감독이 만든 이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숨을 불어넣은 건 단연 에마 스톤의 연기다. 성인의 몸에 깃든 어린아이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자신의 욕구와 요구를 시리도록 투명하게 드러내는 벨라의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준다. 벨라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스스로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성장담을 보는 듯하다. 미국 매체 콜라이더는 “에마 스톤 필모그래피상 가장 대담하고 야심이 넘치는 연기”라고 평가했다. 에마 스톤이 처음 주연 배우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0년 영화 ‘이지A’를 통해서다. 소설 ‘주홍글씨’를 하이틴물로 각색한 이 영화에서 에마 스톤이 맡은 여고생 올리브 역은 주체적이고 대담한 여성이라는 그의 필모그래피의 서막이 됐다.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거침없이 대응하는 올리브의 모습은 그의 시원시원한 마스크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에마 스톤을 단숨에 매력적인 배우로 발돋움하게 했다. 에마 스톤을 연기파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시킨 건 단연 영화 ‘라라랜드’(2016년)다. 그는 배우를 꿈꾸며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미아 역을 맡았다. 꿈과 사랑에 들뜬 모습에서부터 떠나 보내야 하는 인연을 향해 미소 짓는 모습까지 달콤 쌉싸름한 인생을 알맞은 온도로 연기했다. 에마 스톤은 이 영화로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선택한 영화가 ‘가여운 것들’이라는 점은 그의 연기 욕심을 엿보게 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개운하고 통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길 바란다면 이 영화를 골라선 안 된다. 영화의 소재인 ‘댓글부대’는 마치 일산화탄소 같다. 무색, 무취에 피부에 자극도 없지만 서서히 중독시켜 죽음으로 이끄는 일산화탄소처럼 댓글부대는 눈에 보이지도, 꼬리를 밟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파괴력을 가졌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면 홀연히 그곳에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괴수가 나오는 크리처물이나 ‘험한 것’이 나오는 오컬트물보다 더 무시무시한 영화 ‘댓글부대’가 27일 개봉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모골이 송연해질지 모른다. 내가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댓글들, 공작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댓글부대’는 대기업을 저격했다가 오보 논란에 휘말린 신문기자 임상진(손석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임상진은 굴지의 대기업 ‘만전’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했다는 제보를 받고 정황을 자세히 취재해 기사를 쓴다. 단독 기사를 내놨다는 만족감을 안고 다음 날 인터넷을 열어 본 임상진은 당황한다. 만전이 곧장 조작된 듯한 해명 사진을 내놓으며 반박에 나선 것. 더 나아가 그 시각 온라인에는 만전을 두둔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임상진의 얼굴 사진과 신상을 털어 만든 모욕적인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돌아다닌다. 그의 기사는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보가 되고 회사로부터 정직을 당하고 만다. 억울한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임상진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제보가 들어온다. 자신을 닉네임 ‘찻탓캇’으로 소개한 남자는 “우리가 만전의 사주를 받고 여론을 조작했다. 기사를 오보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임상진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쫓기 시작한다. 영화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를 각색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년)로 호평을 받았던 안국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배우 손석구가 댓글부대의 실체를 쫓는 기자 임상진 역을 맡았다. 제보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가려 내려고 노력하지만 혼란에 빠지고 마는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관객들 역시 자신이 임상진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임상진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거울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핸들을 잡고 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차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건 수동적인 것도, 능동적인 것도 아니다. 임상진은 현대인의 그런 아이러니를 가진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인들이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만들어진 여론 전쟁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는 ‘댓글부대’의 존재 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자극한다. 이에 대해 안국진 감독은 “댓글부대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없는 것 같은 존재 같다. 실체를 장담할 수 없고 현상은 있는데, 실체가 있다기엔 증거도 없다”고 설명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파묘’가 올해 개봉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24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물 영화로는 첫 1000만 영화다. 평일에도 하루 6만 명 이상 꾸준히 관람이 이어지고 있어 최종 관객 수가 기대된다. 24일 배급사인 쇼박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파묘’ 누적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지 31일 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 영화로는 23번째, 역대 개봉작으로는 32번째 1000만 영화다. 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2015년), ‘사바하’(2019년)가 좋은 평가를 받은 데 이어 세 번째 영화로 ‘1000만 감독’에 등극했다. 장 감독은 앞서 21일 인터뷰에서 “매 장면을 재밌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길을 가지 않고 새로운 영화, 체험적인 오락영화를 만든 것이 흥행 요인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파묘’는 ‘K오컬트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 함께 악을 물리친다는 속살은 ‘서민 히어로 영화’에 가깝고, 후반부에는 일제시대의 ‘쇠침설’을 활용한 항일 영화로 흐르며 관객 저변을 크게 넓혔다는 분석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파묘’가 한국 오컬트물 최초로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뒀다. 개봉 28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20일 기준 952만 명이 봤다. 이번 주말까지 1000만 관객 달성이 확실해 보인다.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재현 감독(43·사진)은 “손익분기점만 넘기자고 생각했다. 1000만 관객 동원 같은 건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이런 시간이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해서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파묘’는 큰돈을 받고 무덤을 이장하게 된 풍수사 김상덕(최민식 역)과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역), 무당 이화림(김고은 역) 등이 ‘험한 것’의 존재와 마주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오컬트물이다. 영화계에서는 ‘파묘’가 이만큼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마니아층이 확실한 장르물인 데다, 설 연휴가 끝난 극장가 비수기에 개봉했기 때문에 기대가 크지 않았다. 장 감독은 “배우들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배우들이 워낙 역할을 잘 소화해줬고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며 “특히 (영화 중) 대살굿 장면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다. 배우들이 정말 잘해줬는데 화면에 50%밖에 담아내지 못했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겸손을 떨었다. 이번 영화로 장 감독은 명실상부한 대세 감독으로 떠올랐다. 2015년 ‘검은 사제들’(544만 명)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그는 2019년 ‘사바하’(240만 명)에 이어 ‘파묘’까지 총 3편의 영화를 내놨고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특히 오컬트물 한길만 판 그가 ‘1000만 감독’ 대열에 가까워졌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검은 사제들’은 천주교, ‘사바하’는 불교와 기독교적 소재를 이용한 오컬트물이었고, ‘파묘’에서는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다뤘다. 장 감독은 ‘왜 오컬트물이냐’는 질문에 “보이지 않는 걸 (영화로)만들어 낸다는 게 흥미진진하다. 제가 제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니까 제가 보고 싶은 걸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다. 장 감독 전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대중적인 소재와 덜 거북한 이야기 흐름이 허들을 낮췄다는 평가도 있다. 장 감독은 “저는 항상 그랬다. ‘사바하’ 개봉 땐 다들 ‘검은 사제들’을 기대해서 혹평을 받았던 것 같고, 이번 영화는 ‘사바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건 뭐야’ 하는 반응”이라며 “했던 것을 또 잘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오컬트물이라는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진보해 나가지 않으면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평가는 관객 몫이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가 1000만 명 가까운 대중을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영화감독으로서 예기치 못하게 큰 사랑을 받으면 욕심이 스멀스멀 생길 수 있는 법. 하지만 속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장 감독은 단호했다. “이야기가 내실이 없다면 만들 가치가 제게는 없습니다. 욱여넣어서 그냥 흥행을 위해 속편을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못할 이유는 없지만요.”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이 어느 날 갑자기 닭강정으로 변한다면 아빠는 어떤 심정일까.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까지 튀김 껍질이 마르지 않도록 명품 물엿을 발라주고, 차디찬 냉장고 안에서 춥진 않을까 티슈를 덮어준다. 실수로 그만 다른 닭강정들과 섞여 버리자 절규하는 모습은 황당하고 기가 차지만 실소가 터져 나온다. 기상천외한 소재에 ‘병맛 코미디’가 더해져 드라마를 보고 웃는 스스로가 우습지만 기묘하게 빠져들어 ‘다음 화 보기’를 클릭하게 된다. 영화 ‘극한직업’(2019년)으로 한국 코미디 영화 최다인 1600만 관객을 모은 이병헌 감독(사진)의 신작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이다. 15일 공개되자마자 “배가 당길 정도로 웃었다”는 평가와 “어떤 부분이 재밌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평가가 신랄하게 갈리고 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코미디임에는 분명하다. 총 10부작이다.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호불호가 갈릴 것을 당연히 예상했다”고 했다. “도전적인 코미디 장르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호불호 반응이 나온다면 성공이죠. 이런 장르의 드라마 데이터가 쌓이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거고, (이 자체로) 재밌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닭강정’은 어느 날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황당한 설정의 작품이다. 딸 민아(김유정)를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아빠 최선만(류승룡)과 민아를 짝사랑하는 고백중(안재홍)이 기계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극한직업’에서 엿보였던 이 감독 특유의 허를 찌르는 유머와 기발한 대사의 향연이다. 매 장면 작정하고 웃긴다. 이 점이 어떤 시청자에게는 꼭 봐야 할 이유가 되고, 어떤 시청자에게는 전혀 볼 이유가 없는 호불호 강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극한직업’으로 큰 성공을 맛본 이 감독에게 ‘닭강정’은 도전이었다. 그는 “새로운 풍의 코미디가 국내, 해외 관객들에게 어떻게 어필될지 너무 궁금했다. 외모나 편견이 주요 소재지만 주제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그래도 투자가 안 된다면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말자고 (제작진들과) 이야기했다”며 웃었다. 실험적인 작품이라 두려울 때도 있었다고 했다. “제 머릿속에서는 너무 재밌었지만 현장에서 이 장면이 구현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배우도 저도 진지하게 준비했지만 끝까지 무서웠어요. 그럴 때마다 ‘재밌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되뇌면서 작업했습니다.” 흔들리는 그의 마음에 돛이 되어준 건 배우 류승룡과 안재홍이었다. 능청스러운 생활형 코미디에 연극톤 대사 연기가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인 양 자연스럽다. 닭강정이 된 민아를 바라보는 두 배우의 눈빛이 진지하고 절박해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진다. ‘코미디 세계관’을 인정받은 1600만 감독임에도 여전히 창작자의 고집과 대중성이 맞물리는 지점을 향해 외줄을 타고 있다. “누군가에겐 받아들여지기 힘든 작품일 거예요. 저도 공부하는 과정이겠죠. 그래도 계속 제 취향껏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창의적인 리뷰와 댓글들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하하.”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올봄 극장가는 영화 사운드 대신 노랫소리로 수놓아질 것 같다. 대작들이 개봉하지 않는 봄 비수기를 노리고 가수들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가 속속 개봉을 앞두고 있다. 팬데믹 이후 관객 수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자, 수익을 다변화하려는 극장가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 17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콘서트 실황 등 공연 장르 영화 매출액은 173억 원으로 2019년 장르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였다. 올해 들어선 4월까지 공연 영화 개봉작이 4편으로 하반기 개봉 예정작을 포함하면 지난해보다 매출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가장 먼저 개봉하는 공연 실황 영화는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에픽하이 20 더 무비’다. 지난해 12월 데뷔 20주년을 맞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렸던 콘서트 실황을 담아 20일 개봉한다. 22일에는 가수 이승윤의 첫 공연 현장을 영상화한 ‘이승윤 콘서트 도킹: 리프트 오프’가, 다음 달 10일에는 방탄소년단 슈가의 월드투어 과정을 담은 ‘슈가∼어거스트 디 투어’가 개봉한다. 앞서 지난해 방탄소년단, 아이유, god, 임영웅 등 대형 콘서트를 연 가수들의 공연 실황이 극장에서 개봉되는 등 콘서트 후 실황 영화 발표가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공연 실황 영화 제작에 뛰어든 영화계는 올 들어 더 많은 실황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계기는 팬데믹이다. 이 기간 영화 제작이 멈춰 개봉 영화 수 자체가 줄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면서 줄어든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상영관을 정상 운영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영화 이외의 수익 창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공연시장이 돌파구가 됐다. 영화계와 달리 지난해 공연시장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2019년)보다 14% 늘었다. 공연 실황 영화가 주목받는 건 ‘피케팅’(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케팅)으로 콘서트 예매를 하지 못한 팬들이 큰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다. 특히 IMAX, 스크린X 등 특별관에서는 큰 화면을 통해 무대를 가까이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돌비나 사운드X 등 음향에 최적화한 상영관에서는 콘서트 현장보다 섬세하게 가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CGV는 반돔형 스크린에 좌석마다 생생한 음향을 제공하는 스피어X라는 특별관을 만들어 공연 실황 영화 상영에 활용하고 있다. 또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정해 놓은 특별 상영관에선 옆 좌석 관객들과 ‘떼창’을 하며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다. 15만 원 선인 콘서트 티켓 가격과 비교하면 영화 티켓값은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멀티플렉스사는 공연 실황 영화를 통해 팬덤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현장감 있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번 관람하는 ‘N차’ 관객도 많다. CGV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개봉한 가수 임영웅의 공연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관객 25만 명이 봤는데 N차 관람객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티켓값도 일반 영화보다 2000∼3000원가량 비싸 그만큼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멀티플렉스사들은 공연 실황뿐 아니라 팬미팅 실황 등도 상영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앞으로도 가수와 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지난해 드라마 ‘무빙’으로 ‘한국 철수설’ 위기를 딛고 일어난 디즈니플러스가 올해는 넷플릭스의 적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디즈니코리아는 최근 ‘디즈니플러스 2024 콘텐츠 라인업’을 공개하고 공격적인 콘텐츠 경쟁을 예고했다.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대표는 “마음을 훔치는 이야기, 서사에 더욱 집중하겠다”며 넷플릭스와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올해 9편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거의 모든 작품이 범죄, 액션, 스릴러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순차 공개되고 있는 12부작 드라마 ‘로얄로더’는 한국 최고 재벌가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내용의 범죄 스릴러물이고, 다음 달 공개되는 한효주·주지훈 주연의 드라마 ‘지배종’은 인공 배양육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하반기 공개되는 드라마 ‘폭군’ ‘조명가게’ ‘강남 비-사이드’ ‘화인가 스캔들’ 등도 액션이 가미된 스릴러·미스터리물이다. 디즈니플러스가 액션 스릴러 장르에 집중한 것은 같은 장르의 드라마 ‘무빙’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데다 구독자들의 성향을 고려한 영향이 크다.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보다 구독자 중 남성 비율이 높다. 지난해 미국 넷플릭스 구독자 남녀 성비는 48 대 52인 데 비해, 디즈니플러스는 55 대 45 수준이었다. 한국 디즈니플러스도 사업 초기 전 연령대에서 남성 사용자가 여성보다 많았다.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로맨스물보다 범죄, 액션, 스릴러 장르물을 통해 남성, MZ세대 공략에 집중한 데 따른 것. 김 대표는 “자극적인 소재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오고 소비자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액션이 아무리 화려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소비자들도 이제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즈니플러스가 ‘무빙’을 이을 최대 야심작으로 꼽는 작품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드라마 ‘삼식이 삼촌’이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 인생 처음으로 드라마에 도전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공개되는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긴 16부작이다. 4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캐럴 초이 디즈니 아태지역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총괄은 “작년 디즈니플러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로컬 오리지널 작품 상위 15개 가운데 9개가 한국 작품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제작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와 제작업계에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철수설을 일축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정치 전문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스스로를 좌파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한다. 그는 “동지와 같은 마음으로 좌파에 질문을 던지며 썼다”고 고백한다. “우리(좌파)가 그토록 똑똑하다면 어찌해서 (정치적) 책임을 맡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집필을 시작했다는 것. 그러나 책은 편파적이지 않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가 번성하려면 반드시 보수주의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수주의 역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짚는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대표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보수주의 역사에 집중한다. 18세기부터 시작된 보수주의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자유주의가 발본하자 이에 맞선 보수주의의 초기 저항기(1830∼1880년), 바뀐 현실에 적응하고 정치적으로 타협했으나 권력을 잃은 대실패기(1880∼1945년), 정치적 지배를 되찾은 회복기(1945∼1980년),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와 강경 우파가 패권 경쟁을 벌이는 현재(1980∼현재)다. 책 마지막 부분에 다룬 강경 우파의 등장은 현실과 맞닿아 시사점이 있다. 탈냉전 이후 세계적 혼란이 초래된 2000년대 초반부터 강경 우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2001년 9·11테러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국 중심주의가 보편화됐다.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런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각국에서 강경 우파가 힘을 얻게 된 것. 저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온건한 보수주의 세력이 강경 우파와 치열하게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주의 역사 전반을 다루는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한국과는 다른 정치적 토양을 가진 나라들의 이야기라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세력 간 다툼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어디나 같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입해 읽다 보면 더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인셉션’(2010년), ‘인터스텔라’(2014년), ‘덩케르크’(2017년) 등 명작을 내놓고도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오펜하이머’(2023년)로 드디어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원자폭탄 발명 과정을 담은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역시 4관왕에 오르며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놀런 생애 첫 오스카이날 시상식의 주인공은 이변 없이 영화 ‘오펜하이머’였다.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놀런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띠며 무대 위로 올랐다. 그는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고 “영화의 역사가 이제 막 100년을 넘었고 이 엄청난 여정이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면서 “그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 부분이 됐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놀런 감독은 앞서 3번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고 이번에 상을 탔다. ‘아이언맨’으로 친숙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오펜하이머’로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그는 “상처 입은 한 마리 강아지 같던 저를 사랑으로 키워준 아내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남우주연상 역시 ‘오펜하이머’의 주연 킬리언 머피에게 돌아갔다. 그는 원자폭탄을 소재로 한 영화임을 빗대 “이 세상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 영화 ‘가여운 것들’은 주연 배우 에마 스톤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올랐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돌아갔다.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이 상을 처음 수상한 지 21년 만이다.● 인종차별 논란도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처음으로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다양성 형평성 포용) 규칙’을 적용해 이목을 끌었으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카데미는 2015년 시상식 후보자가 모두 백인이라는 데에 항의하는 해시태그 ‘#Oscarsowhite’ 운동이 벌어지자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자정의 의미로 올해부터 영화계에서 소수자를 보호하는 4개 분야의 기준을 세우고 이 중 일부를 충족해야 수상 후보가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그러나 올해도 작품상, 남우주·조연상, 여우주연상 등 큰 상은 모두 백인이 받아 뉴욕타임스는 “이 제도가 눈속임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특히 일각에선 수상자들의 인종차별 논란도 일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에마 스톤이 전년도 수상자로 시상자 5명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배우 양쯔충을 무대 위에서 무시했다는 것. 그는 트로피를 전달한 양쯔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옆에 있던 제니퍼 로런스 등과만 포옹을 나눴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야 양쯔충과 짧게 악수했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무대 위에서 전년도 수상자이자 베트남계 배우인 키호이콴에게 트로피를 낚아채듯 가져가고 악수도 나누지 않았다. 그와 키호이콴이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친근하게 포옹하며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지만, 온라인에선 인종차별적 제스처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규탄하는 의미로 일부 배우들이 ‘빨간 단추’를 달고 나왔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In Memoriam)’ 영상에 영화 ‘기생충’의 주연배우 이선균이 등장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의 성격이 보인다. 누가 봐도 찰떡인 역할에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안전한 작품만 고르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이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게 되는 승부사 스타일의 배우도 있다. 송중기(39)는 후자에 가까운 배우다.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서 그는 목숨을 걸고 망명한 탈북자 로기완을 연기했다. 탈북 과정에서 기완은 어머니를 잃고 그 시신을 판 돈으로 벨기에에 도착한다. 난민 지위가 인정되기 전 기완은 한겨울 공중화장실에서 노숙하며 버틴다. 씻지 못해 찌든 몸으로 쓰레기통에서 썩은 빵을 허겁지겁 주워 먹는다.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 송중기에게 노숙하는 탈북민 역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로기완’ 직전 송중기는 저예산 영화 ‘화란’에 노개런티로 주연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연이은 ‘의외의 선택’에 대해 “성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성장하고 싶고, 스스로도 지겨워지고 싶지 않아서 도전한다”며 “늘 성장하고 잘하고 싶다. 요즘 시대가 송중기, 혹은 더 유명한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봐주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인터뷰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답하는 그답게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그럼 흥행보다 작품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항상 흥행을 바란다. 흥행을 바라지 않으면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형편없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 한다. 현장의 모든 제작진이 다 각자 집안의 가장인데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로기완’은 공개 이후 비영어권 영화 TOP10에 들며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원작 소설과 달리 후반부가 로기완과 마리의 로맨스로 흘러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대해 송중기는 “이해한다”며 “7년 전 처음 역할 제안이 왔을 때 그 부분이 나도 이해가 잘 안 돼 고사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목숨을 등에 업은 기완이 ‘잘’ 살고 싶어진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잘 사는 게 뭘까’.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공감이 됐어요. 혹시 지금 공감이 안 된 분들도 나중에 영화를 다시 보고 (저처럼) 생각이 바뀌면 좋겠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성큼 다가온 봄을 맞아 ‘사랑이 뭘까?’ 묻는 화제작 두 편이 한국에서 개봉한다. 한 편은 강아지와 로봇의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다른 한 편은 14세 소년과 사랑에 빠진 35세 유부녀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메이 디셈버’다. 대척점에 있다고 할 만큼 서로 다른 영화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를 깊게 다뤘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극장을 나온 뒤 오래도록 사랑과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된다. 두 편 모두 10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이다. 13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의 주인공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사는 강아지 ‘도그’다.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냉동 음식을 데워 먹으며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그는 어느 날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로봇은 단숨에 도그의 세계를 바꿔 놓는다. 둘은 함께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놀이공원에 간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보는 로봇의 표정을 보며 도그는 행복을 느낀다. 흑백 같던 도그의 세계는 로봇을 향한 사랑 덕에 무지갯빛이 된다. 하지만 행복은 늘 오래가지 않는 법. 해변에 놀러 갔던 둘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그 사이 로봇은 고장이 나 모래사장에서 꼼짝 못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해수욕장 폐쇄 기간이 돼 도그는 로봇을 데리고 나올 수 없게 되고, 둘은 해수욕장 재개장 시기만을 기다리며 생이별을 하게 된다. 영화는 103분 러닝타임 동안 대사가 단 한마디도 없는 무성영화이지만 놀랍도록 흡입력 있다. ‘도그’와 ‘로봇’의 눈짓, 몸짓은 그 어떤 대사보다 풍부하게 감정을 전한다. 긴 이별 끝에 둘이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영화 ‘라라랜드’(2016년)를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의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작이다.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메이 디셈버’는 1997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격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35세 교사이자 네 아이를 둔 유부녀 메리 케이 르투어노가 당시 14세이던 빌리 푸알라우를 성폭행해 아이까지 낳았던 사건이다. 두 사람은 메리가 복역한 뒤 실제 14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는 설정이다. 복역한 뒤 50대의 그레이시(줄리앤 무어)와 30대의 조(찰스 멜턴)는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하면서 배우 엘리자베스(내털리 포트먼)가 그레이시 역을 맡게 되고, 촬영을 시작하기 전 두 사람을 만나 이들 마음속 깊은 곳을 탐구한다. 배우 줄리앤 무어와 내털리 포트먼의 연기가 스크린을 압도한다. 특히 내털리 포트먼은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연기력을 보여 준다. 비상식적인 사랑,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연기자로서의 광기를 살얼음 위를 걷듯 날카롭게 표현해 냈다. 거울 앞에서 그레이시의 심경을 독백하는 장면은 그의 인생 연기라 평가할 만하다. 조 역의 찰스 멜턴은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 배우다.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올해 아카데미상에는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당신은 음악으로 부자가 되었나요?”(기자) “부자라는 게 뭐죠? 은행 계좌에 돈이 많으면 부자인가요? 나에게 그런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풍요로움이란 삶 그 자체입니다. 영원히요.”(밥 말리) 레게 음악계 전설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밥 말리(1945∼1981)의 생애를 담은 영화 ‘밥 말리: 원 러브’가 13일 개봉한다. 자메이카 출신의 음악가 밥 말리를 소재로 만든 첫 실사 영화다. 지난달 14일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2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 56개국에서 박스오피스 수익 1억5000만 달러(약 2002억 원)를 달성했다. 영화는 밥 말리의 생애, 특히 그의 전성기에 집중했다. 1963년 밴드 ‘밥 말리&더 웨일러스’를 결성한 그는 앨범 ‘Catch a Fire’와 ‘Natty Dread’ 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자메이카 노동당과 인민국가당이 팽팽히 맞서며 극도로 분열돼 있던 상황에서 그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스마일 자메이카 콘서트’를 열었고, 사람들은 이에 열광한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던 와중에 괴한이 그의 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와 가족들은 영국으로 도피한다. 하지만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 보내기를 멈출 수 없었던 그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고향 자메이카로 돌아간다. 밥 말리는 1978년 ‘원 러브 피스 콘서트’를 열며 무대에서 양당 총재를 악수시키기에 이른다. 영화는 전설적인 가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겪은 그의 두려움과 갈등, 그럼에도 평화를 위해 투신했던 그의 삶을 따라간다. 밥 말리의 아들이자 역시 레게 가수인 지기 말리와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 피트는 오래전부터 밥 말리를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하나로 꼽아 왔다. 다만 먼저 개봉한 국가들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밥 말리의 생애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위대한 삶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혹평이 섞여 있다. ‘No Woman, No cry’ ‘Exodus’ 등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레게 리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겹게 다가온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결합한 오컬트 영화 ‘파묘’의 흥행세가 무섭다. 개봉 11일 만인 3일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00만 관객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흥행 영화 2위에 오른 ‘극한직업’(2019년)과 같은 속도다. 그동안 1000만 관객이 넘은 한국 오컬트물은 없었다는 점에서 파묘가 그 주인공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컬트물로 이례적 흥행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파묘’는 4일까지 624만 명이 봤다. 한 집안의 묫자리와 관련된 기이한 사건을 다룬 ‘파묘’는 ‘검은 사제들’(2015년) ‘사바하’(2019년)를 만든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컬트 영화다. 마니아층만 본다는 오컬트물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례적 흥행이다. 일등 공신은 믿고 보는 배우진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베테랑 배우 최민식과 유해진, 뜨는 별 김고은과 이도현이 한데 모여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들이 구축한 개성 강한 4명의 캐릭터가 오컬트 영화인데도 대중성을 살렸다는 평가다. 극 중 최민식은 40년 경력의 실력파 풍수사 상덕 역을, 유해진은 전직 대통령들을 염한 유명한 장의사 영근 역을 맡았다. 김고은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굿을 하는 ‘힙한’ 무당 화림을, 이도현은 온몸에 문신을 한 채 근육 운동에 매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법사 봉길을 연기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서민들이면서도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 함께 악을 물리친다. 오컬트물이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속살은 ‘서민 히어로 영화’에 가깝다. 그 덕에 마니아층만 즐기는 장르 영화가 아닌 관객 저변을 크게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영화의 소재 역시 흥행에 큰 몫을 했다. ‘파묘’는 풍수지리와 굿, 전통 장례 절차 등을 주요 소재로 했다. 아기 이름을 지을 때면 작명소를 이용하고, 묫자리에 풍수를 따지는 한국에서 관객들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소재다. 구마(驅魔) 의식이나 이단 종교 같은 기존 오컬트물 단골 소재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누레온나, 오니 등 낯선 일본 요괴를 등장시켜 흥미를 돋웠다. 영화 후반부가 일제시대의 ‘쇠침설’을 활용한 항일 영화로 흐르며 애국심을 자극한 부분도 대중성 확보에 도움이 됐다.● 팬데믹 이후 달라진 흥행공식 눈여겨볼 부분은 ‘파묘’가 팬데믹 이후 완전히 달라진 극장가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극장가 비수기인 지난달 22일 개봉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1000만 영화는 설·추석 연휴나 여름, 연말 등 소위 극장가 성수기에 탄생했다. 역대 한국 흥행 1위인 ‘명량’(2014년)은 여름 휴가 기간, ‘극한직업’은 설 연휴, 3위인 ‘신과 함께: 죄와 벌’(2017년)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개봉해 가족 관객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파묘’는 설 연휴를 보내고 2월 말이라는 전통적인 비수기에 개봉해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 역시 극장가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다. 또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약 196만 명)보다 둘째 주 주말 관객 수(약 233만 명)가 20% 늘었다. 팬데믹 이전 극장가에서는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를 1000만 영화의 바로미터로 여겼다. 통상 첫 주말 관객 수가 가장 많고 이후 관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첫 주 성적이 중요하다. 하지만 ‘파묘’는 둘째 주 주말에 이례적으로 관객이 큰 폭으로 늘었다. 이는 팬데믹 이후 관람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중화되면서 관객들이 극장에 가서 볼 영화를 고르는 눈이 까다로워졌다. 대작이라고 해도 개봉 직후에 보지 않고 평가를 지켜본 뒤에 반응이 좋으면 극장으로 간다. ‘입소문’이 흥행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파묘도 영화 속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 찾기 열풍이 불어 입소문 타기에 성공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상덕, 화림, 영근, 봉길은 모두 실제 독립운동가들 이름이다. 등장인물들 차량 번호는 삼일절(0301) 광복절(0815) 광복연도(1945)다. 온라인에선 영화 속 숨겨진 의미를 찾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데믹 이후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제1 이유는 ‘재미’”라며 “재밌으면서도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영화가 흥행하는데 파묘가 그 지점을 잘 공략했다”고 분석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제작비가 너무 많이 올라 충무로에선 저예산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영화감독 A 씨) “좋은 대본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다 쓸어가 버렸다. 국내 방송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 이야기는 씨가 말랐다.”(영화 제작사 대표 B 씨) 최근 콘텐츠업계에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OTT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 알려진 뒷면엔 콘텐츠업계가 겪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OTT가 거대한 자본력으로 제작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방송계와 영화계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OTT와 불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배우 몸값 상승에 제작비 인플레이션‘경성크리처’, ‘무빙’, ‘스위트홈’…. 최근 콘텐츠업계에서는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들로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제작비가 해마다 천정부지로 올라 ‘1000억 원짜리 작품’ 탄생이 목전에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온다. 제작비가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출연료다. 최근 배우 이정재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출연하면서 회당 10억 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며 화제가 됐다. 한국 드라마계에선 전무후무한 출연료라 업계가 술렁였다. 배우 김수현, 박형식, 박보검 등도 회당 5억 원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부작 드라마라면 주연 배우 1명의 출연료로만 50억 원이 투입된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을 감안해도 출연료는 높은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1조573억 달러(약 1406조9491억 원)였다. 한국은 753억 달러(약 100조2017억 원)로 규모가 14배가량 차이 난다. 반면 배우 출연료 차이는 크지 않다. 2022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HBO 시리즈 ‘동조자’에 출연하며 회당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받았다. 그 뒤는 배우 크리스 프랫으로, 아마존프라임 드라마 ‘터미널리스트’에서 회당 140만 달러(약 18억 원)를 받았다. 여타 제반 제작비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할리우드의 제작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배우들 몸값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 몸값 인플레이션의 시작에는 글로벌 OTT가 있다.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명목으로 톱배우들이 출연료를 높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통할 만한 소위 ‘A리스트’ 톱배우가 한국에 많지도 않거니와,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고위험 투자라는 점에서 흥행을 위해 톱스타를 캐스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톱배우들 출연료 요구를 맞춰주다 보니 다른 제작사들 역시 이에 맞춰 출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출연료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분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단역 배우 출연료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개한 ‘2023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 ‘단가 하향 조정이 필요한 항목’에 압도적으로 ‘출연료’라고 답했다. 제작사들은 “제작비의 대부분이 출연료로 나가 수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결국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OTT가 좋은 작품을 과점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원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지 못한 채 넷플릭스의 외주제작 국가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100% 대고 IP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인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결국 한국 제작사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것. 한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현재 콘텐츠 시장 내 모든 좋은 시나리오는 자금력 있는 넷플릭스에 먼저 제안이 간다.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선점하다 보니 한국 제작사들은 점점 외주 업체화되고 있다. 점점 (체급 차이가 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모양새”라고 했다.● 더 잔인하고 더 자극적으로글로벌 OTT가 확산되며 콘텐츠가 더욱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크다. 몰아 보기를 많이 하는 플랫폼 특성상 시청자를 TV 앞에 묶어두려면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국내에서 흥행한 넷플릭스의 ‘킹덤’(2019년), ‘오징어 게임’(2021년), ‘지금 우리 학교는’(2022년), ‘솔로지옥’ 시리즈는 모두 선정성·폭력성 논란을 낳았다. 지난해 6월부터 OTT가 자체적으로 등급 분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정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양산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김성수 의원실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받은 ‘OTT 영상 등급분류 현황’에 따르면 자체등급분류 도입 이전(2023년 1∼5월 기준) 넷플릭스의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는 32.7%였으나 시행 이후(2023년 6월∼9월 12일 기준) 18%로 급감했다. 한국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고 한국 콘텐츠를 통해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내는 세금은 이에 비해 적은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제출받은 넷플릭스 한국법인(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2022년 한국에서 매출 7733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한국엔 법인세 33억 원을 냈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0.4%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같은 해 미국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의 매출은 316억1555만 달러(약 42조708억 원), 미국에 낸 법인세는 7억7200만 달러(약 1조273억 원)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2.4%다. 한국법인과 미국법인의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6배 차이 나는 것이다. 글로벌 OTT가 국내 통신업계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엘지유플러스 등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넷플릭스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요금과 넷플릭스 요금제를 결합해 총요금을 할인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 요금 할인의 대부분은 ISP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ISP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넷플릭스는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광고 없이 보기 위해선 스탠다드 요금제(월 1만3500원)를 구독해야 한다. 사실상 구독료가 월 4000원 인상된 셈”이라며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신비 인하 정책 때문에 ISP의 넷플릭스 요금제는 가격을 인상하기 쉽지 않다. 결국 월 4000원씩 ISP가 추가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홀드백, 토종 OTT 지원해야”콘텐츠업계에선 방송사와 OTT를 구분해 적용하는 규제 방식 때문에 선정성이 높은 글로벌 OTT가 급성장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이젠 플랫폼 규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 산업을 어떤 망으로 전송하느냐(전송 방식), TV로 보느냐 스마트폰으로 보느냐(콘텐츠 소비 기기)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른바 ‘통합 방송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OTT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기도 한 글로벌 OTT에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유럽연합(EU) 최초로 ‘홀드백’을 법제화했다. 홀드백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뒤 OTT 플랫폼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을 법으로 정해놓은 제도다. 극장 개봉 영화가 곧바로 OTT에 직행해 극장 관람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당초 36개월이던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당기는 대신 넷플릭스가 3년간 연매출의 4%(최소액 4000만 유로)를 10편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협상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계에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고 홀드백 필요성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영화계와 OTT 업계의 공생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토종 OTT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독과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업체가 경쟁해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에 최대 30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세계적인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는 ‘더글러스 퍼’ 종(種) 나무 한 그루가 작은 씨앗에서부터 700년을 살다가 흙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책에 담았다. 나무의 생애에는 모든 생명체의 생애가 압축돼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나무에 매료된 것은 자신의 오두막 근처에서 높이가 50m, 둘레가 5m쯤 되는 거대한 더글러스 퍼 한 그루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크기로 볼 때 400년쯤 되었으니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쓰기 시작할 무렵 생을 시작했고, 아이작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처음 싹을 틔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저자는 나무 한 그루의 역사를 통해 다른 시대,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나무의 일생을 ‘탄생, 뿌리 내리기, 성장, 성숙, 죽음’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숲속 생명의 시작은 불이다. 세계의 숲은 200∼300년에 한 번꼴로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난다. 그보다 작은 지표면 화재는 30년에 두 번꼴이다. 죽은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흙에 양분을 제공하려는 자연의 섭리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거대한 더글러스 퍼 나무는 산불에 타지 않도록 두꺼운 껍질을 진화시켰다. 화재로 건조해진 더글러스 퍼 나무의 열매는 산불이 끝나면 껍질을 열고 씨앗을 날려 보낸다. 수많은 씨앗 중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더글러스 퍼 씨앗은 다양한 숲 생명체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저자의 더글러스 퍼 나무가 15살 무렵이었던 중세 말, 세상은 식물의 쓰임새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나가고 있었다. 성당에 돌 아치 대신 나무 들보가 들어갔고, 가죽 의복 대신 식물을 가공한 리넨 옷이 만들어졌다. 나무는 이런 시간을 거쳐 점점 나이 들어간다. 진균과 곤충의 공격을 더 이상 막아내지 못하는 나무는 고사목이 된다. 바닥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는 완전히 흙이 돼 없어질 때까지 숲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 자연에 또다시 기여한다. 저자는 이것이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강조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