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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비가 너무 많이 올라 충무로에선 저예산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영화감독 A 씨) “좋은 대본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다 쓸어가 버렸다. 국내 방송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 이야기는 씨가 말랐다.”(영화 제작사 대표 B 씨) 최근 콘텐츠업계에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OTT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 알려진 뒷면엔 콘텐츠업계가 겪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OTT가 거대한 자본력으로 제작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방송계와 영화계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OTT와 불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배우 몸값 상승에 제작비 인플레이션‘경성크리처’, ‘무빙’, ‘스위트홈’…. 최근 콘텐츠업계에서는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들로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제작비가 해마다 천정부지로 올라 ‘1000억 원짜리 작품’ 탄생이 목전에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온다. 제작비가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출연료다. 최근 배우 이정재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출연하면서 회당 10억 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며 화제가 됐다. 한국 드라마계에선 전무후무한 출연료라 업계가 술렁였다. 배우 김수현, 박형식, 박보검 등도 회당 5억 원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부작 드라마라면 주연 배우 1명의 출연료로만 50억 원이 투입된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을 감안해도 출연료는 높은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1조573억 달러(약 1406조9491억 원)였다. 한국은 753억 달러(약 100조2017억 원)로 규모가 14배가량 차이 난다. 반면 배우 출연료 차이는 크지 않다. 2022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HBO 시리즈 ‘동조자’에 출연하며 회당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받았다. 그 뒤는 배우 크리스 프랫으로, 아마존프라임 드라마 ‘터미널리스트’에서 회당 140만 달러(약 18억 원)를 받았다. 여타 제반 제작비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할리우드의 제작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배우들 몸값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 몸값 인플레이션의 시작에는 글로벌 OTT가 있다.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명목으로 톱배우들이 출연료를 높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통할 만한 소위 ‘A리스트’ 톱배우가 한국에 많지도 않거니와,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고위험 투자라는 점에서 흥행을 위해 톱스타를 캐스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톱배우들 출연료 요구를 맞춰주다 보니 다른 제작사들 역시 이에 맞춰 출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출연료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분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단역 배우 출연료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개한 ‘2023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 ‘단가 하향 조정이 필요한 항목’에 압도적으로 ‘출연료’라고 답했다. 제작사들은 “제작비의 대부분이 출연료로 나가 수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결국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OTT가 좋은 작품을 과점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원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지 못한 채 넷플릭스의 외주제작 국가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100% 대고 IP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인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결국 한국 제작사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것. 한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현재 콘텐츠 시장 내 모든 좋은 시나리오는 자금력 있는 넷플릭스에 먼저 제안이 간다.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선점하다 보니 한국 제작사들은 점점 외주 업체화되고 있다. 점점 (체급 차이가 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모양새”라고 했다.● 더 잔인하고 더 자극적으로글로벌 OTT가 확산되며 콘텐츠가 더욱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크다. 몰아 보기를 많이 하는 플랫폼 특성상 시청자를 TV 앞에 묶어두려면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국내에서 흥행한 넷플릭스의 ‘킹덤’(2019년), ‘오징어 게임’(2021년), ‘지금 우리 학교는’(2022년), ‘솔로지옥’ 시리즈는 모두 선정성·폭력성 논란을 낳았다. 지난해 6월부터 OTT가 자체적으로 등급 분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정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양산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김성수 의원실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받은 ‘OTT 영상 등급분류 현황’에 따르면 자체등급분류 도입 이전(2023년 1∼5월 기준) 넷플릭스의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는 32.7%였으나 시행 이후(2023년 6월∼9월 12일 기준) 18%로 급감했다. 한국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고 한국 콘텐츠를 통해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내는 세금은 이에 비해 적은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제출받은 넷플릭스 한국법인(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2022년 한국에서 매출 7733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한국엔 법인세 33억 원을 냈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0.4%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같은 해 미국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의 매출은 316억1555만 달러(약 42조708억 원), 미국에 낸 법인세는 7억7200만 달러(약 1조273억 원)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2.4%다. 한국법인과 미국법인의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6배 차이 나는 것이다. 글로벌 OTT가 국내 통신업계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엘지유플러스 등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넷플릭스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요금과 넷플릭스 요금제를 결합해 총요금을 할인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 요금 할인의 대부분은 ISP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ISP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넷플릭스는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광고 없이 보기 위해선 스탠다드 요금제(월 1만3500원)를 구독해야 한다. 사실상 구독료가 월 4000원 인상된 셈”이라며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신비 인하 정책 때문에 ISP의 넷플릭스 요금제는 가격을 인상하기 쉽지 않다. 결국 월 4000원씩 ISP가 추가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홀드백, 토종 OTT 지원해야”콘텐츠업계에선 방송사와 OTT를 구분해 적용하는 규제 방식 때문에 선정성이 높은 글로벌 OTT가 급성장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이젠 플랫폼 규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 산업을 어떤 망으로 전송하느냐(전송 방식), TV로 보느냐 스마트폰으로 보느냐(콘텐츠 소비 기기)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른바 ‘통합 방송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OTT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기도 한 글로벌 OTT에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유럽연합(EU) 최초로 ‘홀드백’을 법제화했다. 홀드백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뒤 OTT 플랫폼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을 법으로 정해놓은 제도다. 극장 개봉 영화가 곧바로 OTT에 직행해 극장 관람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당초 36개월이던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당기는 대신 넷플릭스가 3년간 연매출의 4%(최소액 4000만 유로)를 10편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협상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계에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고 홀드백 필요성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영화계와 OTT 업계의 공생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토종 OTT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독과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업체가 경쟁해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에 최대 30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은퇴 이후 소비생활이나 여가활동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액티브 시니어’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늙음에 대해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축 처진 주름살을 들여다보고, 병원을 드나들며 요양원에 가야 하나 걱정한다. 통장을 들여다보며 얼마 남지 않은 은퇴자금을 헤아린다. 노년의 삶은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 노년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살펴보기 위해 ‘인생 2막’의 비법을 담은 책 2권을 함께 소개한다. 신간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는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노인의학과 의사와 미국 생물학자가 100세 이상 장수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을 찾아가 그 비결을 들은 책이다. 저자들이 만난 노인들은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를 만들라”고 입을 모은다. 은퇴 이후 방황하며 기력이 처진 이들이 해야 하는 건 삶의 목적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 돈을 벌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방 안에 갇혀 취미생활을 영위하라는 것도 아니다. 지역사회 봉사처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를 해야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라”고도 조언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일상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 특히 이 계획엔 건강관리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 등 노인들이 자주 앓는 질병들은 운동으로 예방할 수 있다. 직접 기른 채소로 식단을 꾸리고, 스스로 밥을 해 먹는 습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젊은 시절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건 노년뿐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을 갉아먹는 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교수인 아서 C 브룩스는 신간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에서 “청년 때 즐기던 인생은 노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노년기엔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뛰어난 성취를 거둬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은 노년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1859년 저서 ‘종의 기원’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노년기 연구가 주목받지 못하자 좌절에 빠진 것. 반면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청년기에 이어 노년기에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부터 천재 음악가로 명성을 떨친 그는 나이가 든 뒤 주목받지 못했지만,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으로 자신의 인생을 재설계했다. 노년에 접어들어 지혜와 통찰력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인생의 경로를 바꾼 것이다. 두 책이 전혀 듣지 못한 참신한 비법을 소개하는 건 아니다. 누가 방법을 몰라서 불행하게 사느냐고 반박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이야기도 다시 듣고 되새기면 다르게 다가온다. 이들의 조언처럼 살면 행복한 노년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일할 생각을 해야지. 한가하게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김 부장’은 회사에 출근한 뒤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는 젊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대기업에 25년째 다니고 있는 그는 연봉 1억 원을 받으며 서울에 집 한 채를 샀다. 집에서는 과묵하지만 누구보다 아내와 자식을 챙긴다고 자부한다. ‘꼰대’라고 불릴지언정 회사에서는 책임감 있는 리더로 인정받으며 산다고 믿는다. 남의 자식, 남이 타는 차, 남이 사는 집의 이야기에 집착하지만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상무가 그를 호출한다. 며칠 전 회사 동기가 사직 권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순간 떠오른다. 그에게도 드디어 위기가 찾아온 걸까. 지난해 12월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평범한 서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화요 웹툰 중 2위를 기록하며 인기다. 독자 평점에서 10점 만점에 9.9점을 받은 건 사실적인 묘사로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내가 다니는 직장 이야기 같다”, “웹툰을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웹툰계에서 극사실주의(일상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르) 작품이 떠오르고 있다. 웹툰 ‘개꿈’은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여성의 연애 이야기를 다뤘다. 웹툰의 주 독자층인 20, 30대의 공감을 얻어 네이버 토요 웹툰 1위에 올랐다. ‘대학원 탈출일지’는 대학원 신입생이 연구실 선배들의 군기 잡기에 시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고든 것도 인기 비결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육아용품을 파는 여성의 삶을 다룬 ‘팔이피플’은 유명인의 삶을 꼬집는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아파트에 계속 살기 위해 친구의 죽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30대 회사원을 통해 부동산 값이 폭등한 현실을 지적한다.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은둔형 청년을 그린 ‘무직백수 계백순’은 청년 문제를 다룬다. 억울하게 죽은 주인공이 다시 태어나 복수하는 회귀물에 대한 독자들의 피로도 영향을 미쳤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판타지보단 현실 소재의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쉬운 제작 여건도 극사실주의 웹툰 작품이 많아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 최초의 신소설인 소설가 이인직(1862∼1916)의 장편소설 ‘혈의 누’ 재판본(사진)이 28일 온라인 경매에서 국내 근현대 문학 서적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매업체 코베이옥션에서 열린 온라인 경매에서 1908년에 발행된 ‘혈의 누’ 재판본이 2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전까지 국내 근현대문학 경매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9월 케이옥션에서 낙찰된 김소월 시인(1902∼1934)의 시집 ‘진달래꽃’이 세운 1억6500만 원이었다. ‘혈의 누’는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길에서 부모를 잃은 여주인공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근대소설 이행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최초의 신소설로 꼽힌다. 1906년 신문에 연재된 뒤 1907년 초판본, 1908년 재판본이 나왔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직후 발행 불허 처분을 받아 현존하는 판본이 극히 드물다. 코베이옥션 관계자는 “국내에 초판본이 경매된 적이 없어 재판본이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부끄럽습니다. 두 권 쓰는 데 5년이나 걸렸습니다.” 윤흥길 작가(82)는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전 5권·문학동네)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부끄럽고 민망해했다. 그는 “5권짜리를 차마 대하소설이라고 할 수 없어서 ‘중하(中河) 소설’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다”며 머쓱해했다. ‘문신’ 1∼3권을 2018년 12월 출간하고 5년 3개월 만에 4, 5권을 낸 것에 대해선 “작품이 늦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편집자가 ‘21세기를 빛낼 새로운 고전’이라고 높게 평가하자, 그는 “고전이란 말은 민망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지병인 심혈관 질환이 악화돼 세 번 정도 심하게 아팠어요. 작품을 쓰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썼어요. 제 작가 인생에 남을 필생의 역작입니다.” 1968년 등단한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약자로 전락한 노동자의 애환을 다룬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년), 6·25전쟁의 비극을 다룬 단편소설 ‘장마’(1980년)로 이름을 알렸다. ‘문신’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 욕망, 갈등을 치밀하게 그렸다. 첫 집필부터 탈고까지 25년이 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있다. 200자 원고지 6500장으로 전 5권 세트가 209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제목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따왔다. 그는 “어릴 적 6·25전쟁 때 동네 청년들이 입영 통지를 받고 입영 직전에 팔뚝이나 어깨에 문신 새기는 걸 자주 봤다”며 “청년들이 며칠 동안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떠들고 동네 시끄럽게 하다가 군대에 갔던 기억을 소설의 한 요소로 녹여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인간쓰레기들을 그냥 청소한 것뿐이다.”(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o난감’ 중) “법에는 구멍이 나 있다. 이제 내가 그 구멍을 메우겠다.”(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비질란테’ 중) 최근 선악의 경계에서 사회 정의를 묻는 ‘다크 히어로’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히어로물이 착한 영웅 위주로 전개된다면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다크 히어로는 인간 심리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1위에 오른 ‘살인자ㅇ난감’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이탕(최우식)이 우연한 살인으로 시작해 ‘죽어 마땅한 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탕이 선악을 넘나들며 악한을 살해하는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를 사법당국이 아닌 개인이 직접 처단하는 게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다. 지난해 11월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된 뒤 한국 TV쇼 부문 1위에 오른 ‘비질란테’도 다크 히어로 콘텐츠다. 주인공 김지용(남주혁)은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 학생이지만, 밤이면 범죄자들을 찾아가 직접 심판한다. 어릴 적 지용의 엄마가 눈앞에서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었지만, 범인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낮은 형량을 받고 출소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역시 SNS에서 악인 중에서도 죽어 마땅한 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처벌은 무엇이 합당한지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크 히어로가 각광을 받는 건 악랄한 범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지난해 2월 방영돼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 2’처럼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한 복수극이 현실에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다는 것. 이와 관련해 ‘살인자o난감’과 ‘비질란테’를 비롯해 지난해 8월 방영돼 사형제 논쟁을 촉발시킨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모두 웹툰이 원작이다.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에 민감한 웹툰 원작들이 범행에 비해 법적 처벌이 미약하다고 여기는 대중의 공분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시각도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사법기관에 의한 공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대중의 분노가 다크 히어로 열풍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크 히어로물은 악을 신속하고 통쾌하게 처단하는 방법이 결국은 폭력이라는 부조리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살인자o난감’에서 형사 장난감(손석구)이 이탕을 향해 “네가 뭐 신이라도 되냐? 네가 뭔데 벌을 줘?”라고 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중심으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현상의 연장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7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 2는 군 복무 개선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OTT 콘텐츠를 접한 시청자들이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사회적 공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다룬 콘텐츠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 바둑 랭킹 1위인 신진서 9단(24)이 한중일 국가 단체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팀의 4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이번까지 16연승을 기록해 이창호 9단이 2005년 수립한 종전 최다연승(14연승)을 넘어섰다. 신 9단은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라운드 최종 14국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 구쯔하오 9단(26)에게 249수 만에 불계승했다. 신 9단은 “큰 판을 이겨서 뿌듯하다. 첫판을 둘 때만 해도 먼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6연승까지 하게 돼 영광”이라며 “대국할 때 우승을 생각하면 안 되는데 아른거리다 보니 나중엔 좋지 못한 바둑을 둔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을 바싹 차리고 둬서 이길 수 있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이번 대회는 신 9단의 ‘원맨쇼’였다. 한국팀 설현준 8단과 변상일·원성진·박정환 9단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모두 탈락했다. 하지만 신 9단이 2라운드에 투입돼 중국팀 셰얼하오(26) 9단을 물리쳤다. 이어 3라운드에서 일본 선수 1명, 중국 선수 3명을 연달아 물리쳐 승부를 최종국으로 몰고 갔다. 이날 열린 경기에서 신 9단은 구쯔하오 9단을 중반부터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다. 한때 신 9단이 실수를 저질러 위기에 처했지만 뒷심을 발휘했다. 복잡한 패싸움을 걸어 우상귀 백돌을 잡아 반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어 구쯔하오가 서둘러 패를 잇는 실착을 범하면서 재역전에 성공했다. 구쯔하오는 패색이 짙어지자 결국 항복했다. 신 9단은 이번 경기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우승했다. 이는 농심신라면배 25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2005년 제6회 농심신라면배에서 이창호 9단이 5연승을 거두며 우승한 ‘상하이 대첩’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한국팀의 우승 상금 5억 원과는 별도로 신 9단은 4000만 원을 받는다. 농심배에선 3연승한 선수에게 1000만 원을 주고 1승마다 1000만 원을 추가 지급하기 때문이다. 신 9단은 이번 대회로 명실상부한 ‘바둑 황제’에 올랐다. 20세였던 2020년 LG배 우승을 시작으로 2021년 춘란배, 2022년 LG배 및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세계대회를 제패했다. 바둑계에선 신 9단이 인공지능(AI)에 근접한 수를 구사한다고 해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눈송이(Snowflake).’ 사전에서 이 단어는 하얗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눈송이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 영미권에서 이 단어는 요즘 청년들을 나약하고 예민한 한심한 존재로 업신여길 때 쓰이는 속어다. 회사나 학교에서 불평만 터뜨리는 젊은 세대가 눈송이처럼 연약하고 쉽게 바스러진다는 뜻이다. 특히 눈송이는 2010년 이후로 성인이 된 이들을 지칭한다. 한국으로 치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에 가깝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비디오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눈송이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눈송이 세대는 부당한 업무에 항의하고, 자신의 임금에 대해 불평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던진다. 이전 세대는 눈송이 세대와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눈송이 세대가 국가를 망친다는 주장은 잘못된 공포라고 진단한다. 눈송이 세대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으며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나쁜 일자리로 밀려났을 때 잃을 게 더 많아졌다. 저자는 이전 세대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등을 거치며 강인하게 살아온 건 인정하지만 강인함은 본받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슬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눈송이란 단어가 유행한 시점을 2016년 이후로 추정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 단어가 퍼졌다는 것이다. 눈송이는 처음엔 성소수자, 여성을 비판하는 단어로 쓰이다가 정치권에서 세대를 갈라 치며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영미권에서 정치인들이 노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젊은 세대를 나약함의 대명사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물론 눈송이 세대를 만든 건 극우 정치인뿐이 아니다. 이미 기득권이 된 진보 엘리트주의자도 요즘 세대를 나약한 이로 치부하는 ‘꼰대’가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어느 나라든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이전 세대와 이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의 갈등이 있는 걸까. 신간을 읽으며 한국에서 벌어지는 MZ세대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비난하기 급급한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유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PD)로 아이돌 그룹 히트곡을 다수 만든 신사동호랭이(본명 이호양·41)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3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이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지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인데,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인은 이 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직접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이 씨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아이돌 그룹 EXID의 ‘위아래’, 티아라의 ‘롤리 폴리’, 트러블 메이커의 ‘트러블 메이커’, 포미닛의 ‘볼륨 업’, 에이핑크의 ‘노노노’ 등의 히트곡들을 만든 유명 작곡가다. 이 씨가 소속된 티알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 씨는 최근 걸그룹 ‘트라이비’를 프로듀싱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박충민 티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22일 오후 7시경 트라이비가 출연한 방송을 본 뒤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고, 23일 출연하는 방송에 대한 콘셉트나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며 “‘내일’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당황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술도 마시지 않고, 금전적 문제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4화. 악인을 감별하는 능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주인공 이탕(최우식)은 지경배 검사(남진복)를 살해하기 전 잠시 망설인다. 지 검사를 납치해 포박한 상태라 죽이기만 하면 되지만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것이다. 이탕은 말없이 앉아 책 한 권을 읽는다. 책을 덮은 뒤 지경배에게 다가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묻는다. “제가 왜 아저씨를 죽이려는 걸까요?” 이탕이 읽는 책은 장편소설 ‘죄와 벌’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1867년 출간했다.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는 ‘살인자ㅇ난감’이 다루는 주제가 157년 전 이미 다뤄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묻는다. ‘악인을 죽이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죄와 벌’에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한다. 자신이 선악을 초월한 비범한 인물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라스콜니코프는 노파의 재산 대부분은 그대로 둔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운 좋게도 라스콜니코프의 범행은 걸리지 않는다. ‘살인자ㅇ난감’에서 ‘죄와 벌’이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죄와 벌’은 원작에 가까울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죄와 벌’의 배경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빈부격차가 극심했다. 가난한 라스콜니코프가 부자인 노파에게 혐오의 눈빛을 보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살인자ㅇ난감’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던 이탕, 고급 승용차를 타고 회식 비용을 거리낌 없이 결제하는 지 검사에게도 삶의 격차가 엿보인다. 합리화 과정도 비슷하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사악한 노파의 삶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라며 피해자를 깎아내린다. “‘비범한’ 사람은 양심상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며 가해자인 자신을 옹호한다. ‘살인자ㅇ난감’에서 이탕의 조력자인 ‘노빈’(김요한)이 “쓰레기통(이탕)이 있어야 쓰레기(악인)를 버릴(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연히 범죄 현장을 발견한 노파의 이복 여동생까지 죽인 건 자신이 완전범죄를 위해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은 사람을 죽이고 평온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수한다. ‘살인자ㅇ난감’에서 이탕이 매일 밤 자신이 죽인 이들의 환영을 보는 점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살인자ㅇ난감’ 4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탕과 노빈은 함께 지 검사를 살해한다. 행동만 봐선 둘 다 용서받을 수 없다. 다만 악인은 죽여야 한다고 확신하는 노빈과 ‘죄와 벌’을 읽으며 망설이던 이탕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노빈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자”고 제안하지만 이탕은 “따로 살고 싶다”며 거절한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 강물에 떠내려가는 지 검사의 시체를 바라보는 이탕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작가 김겨울(33)은 2017년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개설해 2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뒤 7권의 책을 잇달아 펴냈다. 이 중 지난해 11월 펴낸 에세이 ‘겨울의 언어’(웅진지식하우스)는 출간 직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예스24 에세이 부문에서 각각 2, 5위에 올라 석 달 만에 1만2000부가 팔렸다. 이 책은 작가가 서문에 “내가 오로지 김겨울로 쓰는 첫 책”이라고 밝힌 데에서 알 수 있듯, 그동안 주로 써온 리뷰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이혜인 웅진지식하우스 과장은 “유튜브 구독자들 덕분에 초반 판매량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유튜브를 등에 업은 파워라이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튜브 ‘공백의 책단장’(구독자 6만 명)을 운영하는 공백의 에세이 ‘당신을 읽느라 하루를 다 썼습니다’(2022년·상상출판)와 유튜브 ‘유투북 변진서’(구독자 2만 명)를 운영 중인 변진서의 ‘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2023년·부크럼)처럼 유튜브 콘텐츠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펴내는 이들도 있다. 기존 파워라이터가 역으로 유튜브에 진출해 고정 독자를 늘리는 사례도 있다. 생물학 분야 석학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70)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2020년 개설해 68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그가 최근 1년간 단독 혹은 공동저자, 감수 등으로 관여한 책은 9권에 이른다. 13일 출간된 ‘최재천의 곤충사회’는 알라딘에서 에세이 부문 4위에 올랐다. 출판가에선 최 교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상당수가 그의 책을 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정 열림원 주간은 “유튜브 채널 덕에 젊은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유튜버 출신 파워라이터들은 다른 책의 판매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김겨울이 유튜브에서 추천한 교양과학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1년·곰출판)는 20만 부 이상 팔렸다. 독자들이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이른바 ‘벽돌책’도 마찬가지. 792쪽짜리 교양과학서 ‘개미와 공작’(2016년·사이언스북스)은 최재천 교수가 유튜브에서 소개한 뒤 판매량이 10배나 늘었다. 최 교수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한 이후 출판사들이 1년 동안 팔지 못했던 책을 다 팔았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이전에 신문 칼럼이나 강연에서 책을 소개했을 때 잘 팔렸다면 이제는 유튜브로 마케팅 파워가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유튜버 개인에 대한 구독자들의 충성도가 책 구매로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자기 이름을 걸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에 대한 구독자의 신뢰와 지지가 대단하다. 특히 객관적 평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주관적 평가를 앞세우는 방식이 기존 평론가들의 추천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유튜버 출신 파워라이터처럼 책 광고에만 몰두하지 말고, 좋은 책을 꾸준히 쓰고 추천해야 생명력이 길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대중과의 접점이 강한 유튜브와 책이 만나는 접점에 있는 이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커질 것”이라며 “단편적인 지식 소개를 넘어 무게감 있고 의미 있는 책을 소개해야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4만 자.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지난달 16일까지 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의 에세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마름모) 독서 모임이 올린 글자 수다. 500여 개 감상문에는 책의 글귀를 단순히 옮겨놓거나, “잘 읽었다” 정도의 단편적인 소개만 있는 게 아니다. 참여자들은 4주 동안 책을 꼼꼼히 읽으며 느낀 점을 상세히 써 내려갔다. “나도 작가처럼 쓰기를 망설였던 것 같다”며 자신의 감상을 쓰거나, 특정 단락을 놓고 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10일에는 해당 에세이를 쓴 정아은 작가(49)와 독서 모임 참여자 40명이 서울 마포구의 카페에 모여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김새섬 그믐 대표는 “책을 꼼꼼히 완독한 독자만 모이니 질문의 깊이가 깊고 다양하다. 진짜 책의 내용에 대해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독서 플랫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22년 출범한 그믐은 회원 수가 9000명을 넘어섰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2021년 시작한 독파는 3만 명을 넘겼다. 1만여 명이 참여하는 플라이북은 유료로 책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텍스처는 책에 쓰인 문장을 온라인으로 공유해 소통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건 아무 때나 참가할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을 원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독자들이 온라인 만남에 익숙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새섬 대표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활자로 소통하면 오히려 책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와의 만남 때 파생되는 대관비 등이 드는 대면 모임에 비해 온라인 플랫폼은 비용이 적게 든다. 그믐은 무료, 독파는 1년에 1만5000원만 내면 된다. 장편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문학동네)를 펴낸 정세랑 작가는 지난해 12월 줌 화상회의로 독파 회원들과 만났다. 작가, 편집자의 전문적 해설이 곁들여지는 것도 매력 포인트. 혼자 읽기 버거운 이른바 ‘벽돌책’을 읽을 때 이들의 해설이 유용하다. 예컨대 1040쪽에 이르는 교양과학서 ‘행동’(문학동네)을 함께 읽는 독파의 온라인 모임에는 211명이 몰렸다. 박민재 문학동네 독파팀장은 “마니아 독자층을 보유한 유명 작가들의 소설, 에세이를 해설과 함께 읽으려는 독자가 많다. 특히 분량이 방대한 벽돌책을 함께 읽으려는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독서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선 오프라인 모임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온·오프라인 독서 플랫폼 모두 책을 매개로 다른 사람과 교류한다는 점은 같다”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소규모 독립서점에서 북토크를 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 ‘무빙’을 본 뒤 스마트폰을 켜고 원작 웹툰을 정주행한 적이 있나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격주로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선 넘는 콘텐츠’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의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원작 텍스트가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악당에게도 서사가 필요하다. 삼촌 ‘진만’(이동욱)이 남긴 불법 무기 쇼핑몰 때문에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김혜준). 그의 생존기를 다룬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은 원작소설 ‘살인자의 쇼핑몰’(2020년·자음과모음)의 세계를 확장해 악당들의 이야기에 풍성함을 더했다. 악당들을 위한 찰진 각색 덕인지 지난달 17일 공개된 드라마는 4주간 한국 디즈니플러스 TV쇼 1위를 차지했다.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국에서 톱 10에 진입했다. 원작도 이에 힘입어 알라딘 문학 부문 7위에 오르며 역주행했다. 특히 원작에선 이미 죽은 걸로 나오는 악당 ‘베일’(조한선)을 킬러들을 이끌며 쇼핑몰을 공격하는 사이코패스 두목으로 되살려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원작에서 냉혹한 킬러인 ‘성조’(서현우)는 살인할 때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성불해라”라는 농담을 던지는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재창조해 극의 호흡도 조절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드라마 연출자 이권 감독(50)은 “베일처럼 극악무도한 악당이 살아 있어야 긴장감이 커지지 않느냐. 악당이 강해야 주인공들이 끈끈하게 뭉친다”고 말했다. 좋은 이야기에서 악당은 주인공과 닮았다. 악당과 주인공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년)에서 조커는 배트맨을 향해 “사람들 눈엔 너도 (나처럼) 미친 놈이야”라고 말한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선 살인 청부업체에서 한때 함께 일했던 주인공 진만과 베일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게 각색됐다. 진만은 일반인을 죽이지 않는다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너(진만)랑 베일이랑 닮은 꼴”이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괴로워한다. 악당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년)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을 이길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성조는 시시때때로 자신이 고아 출신이고, 킬러들은 사선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진만을 배신하고 베일 편에 선 이유를 이렇게 변명한 것이다. 성조를 냉혹한 킬러로만 묘사하는 원작과 다른 점이다. 원작자인 강지영 작가(46)는 14일 인터뷰에서 “원작은 분량이 짧아 다양한 이야기를 넣지 못했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만들어져 악당들의 서사가 더 풍성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액션 장면을 실감 나게 살리기 위해 범죄 규모를 키웠다. 킬러들의 조직 ‘바빌론’이 원작에선 소모임에 불과했지만, 극에선 수백 명이 소속된 글로벌 범죄조직으로 불어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만들어낸 것. 원작에선 총싸움만 벌어지지만, 드라마에선 사방에서 폭탄이 쏟아지고 살인용 드론이 날아다니며 선혈이 낭자한다. 이 감독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드라마를 2, 3배씩 빨리 감기 하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싶었다. 영화 ‘킬 빌’(2003년)과 달리 현실감 높은 액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와 달리 원작은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다. 지안이 자신이 몰랐던 진만의 과거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복잡한 감정 변화는 부모와 화해하는 자식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어렸을 적 부모님은 자신의 어려움을 제게 말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든 뒤에야 부모님의 젊은 시절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작품에는 우리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겨온 부모 세대를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강 작가)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빠, 이런 얘기 전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어느 날 60대인 저자는 딸에게 전화로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딸은 인터넷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중 전사한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유럽 등에서 일하며 프랑스 발레리나와 결혼해 세 딸을 뒀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알아냈다. 저자는 딸과 전화를 끊은 뒤 이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딸의 전화를 받은 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닌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1944년생으로 올해로 80세다. 청년기를 지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때에 오히려 아버지의 인생을 찾아간 점이 흥미롭다. 숨겨진 아버지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은 추리소설처럼 펼쳐진다. 생전 어머니는 저자에게 “아버지는 전쟁 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집에는 아버지의 사진 한 장 없었다. 저자도 사실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소년은 롤모델을 찾고, 배우고, 반항하는 복잡한 노력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자의식을 구축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아버지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조사 결과 아버지는 전쟁 중 죽지 않았다. 아버지는 1942년 미군 정보부대에 입대해 2년간 유럽 전선에 배치된 뒤 1944년 영국에 있는 미군 구치소 임시 교도관으로 발령받았다. 하룻밤 병영을 무단 이탈하는 등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미군 병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전후 이 구치소에서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장교와 병사 교도관들이 조직적으로 수감자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고, 강제로 뛰게 하는 등의 가혹 행위를 벌인 것. 저자의 아버지는 이와 무관해 처벌받지 않았지만, 법정에서 동료들의 행위를 증언하며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해야 했다. 1946년 제대한 아버지는 미 육군성에 민간인 직원으로 취업했다. 이후 독일, 태국에서 일하며 전후 미군의 복구 활동에 참여했지만 집으로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91년 세상을 떠났다. 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저자는 군 기록을 토대로 아버지가 재판을 거치며 전쟁에 대한 혐오를 느꼈다고 추정한다. 또 이 때문에 미군이 전후 세계 질서를 복구할 때 자신의 힘을 보태고 싶어 했을 거라고 봤다. 물론 학창 시절 응석받이였던 아버지가 책임감이 부족했을 거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건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없는 삶을 원망하고, 늘 불행했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는 것.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부모를 바라보면서 늘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는 게 아닐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 웹툰 ‘입학용병’은 네이버의 일본 웹툰 플랫폼 ‘라인망가’에서 지난해 총 10억 엔(약 89억 원)의 거래액을 올렸다. 한국에서 2020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이 작품은 주인공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은 뒤 우연히 전투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2021년부터 라인망가에 연재된 뒤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본 만화계의 인기 장르인 학원 액션물이라는 점과 더불어 일본 내 한국 웹툰 플랫폼의 성장세가 영향을 미쳤다. 입학용병의 YC 작가는 “연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성공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일본에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라인망가 덕분에 만화 강국 일본에서 많은 독자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웹툰이 일본 시장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두고 있다. 카카오의 일본법인 카카오픽코마(구 카카오재팬)가 운영하는 현지 웹툰 플랫폼 ‘픽코마’는 지난해 거래액이 1000억 엔(약 8874억 원)을 넘겨 2016년 출시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네이버웹툰 산하 라인망가와 이북재팬의 지난해 거래액도 1000억 엔을 달성했다. ‘재혼황후’, ‘약탈신부’처럼 일본 내 월 거래액이 1억 엔(약 8억9000만 원)을 넘기는 한국 웹툰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 한국 웹툰이 인기를 끄는 건 라인망가, 픽코마 등의 플랫폼이 일본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종이책 만화만 펴내던 일본 업체 대신 한국 웹툰 업체들이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보는 일본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라인망가를 운영하는 ‘라인디지털프론티어’의 김신배 최고성장책임자(CGO)는 “일본 만화는 오랜 역사와 두꺼운 팬덤을 기반으로 거대 만화 시장을 갖고 있다”며 “모바일로 작품을 감상하는 젊은 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 디지털 만화 시장은 작은 편이라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 웹툰 업체가 일본 현지 웹툰을 발굴하기도 한다. 일본 제작사가 만들어 라인망가에 연재한 웹툰 ‘신혈의 구세주’는 지난달 거래액이 1억2000만 엔(약 10억7000만 원)에 달해 라인망가에 연재된 일본 웹툰 중 최고액을 기록했다. 세계 만화 시장에서 일본의 위상이 막강한 만큼 일본에서 성공한 웹툰은 미국, 유럽에서도 환영을 받는 경향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쉬운 점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돼 480만 명이 관람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처럼 일본은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서 세계적 강국이다. 박태준만화회사가 지난해 7월 일본법인 ‘더그림엔터테인먼트 재팬’을 세우고, 한국 웹툰 ‘싸움독학’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올 4월부터 일본에서 방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샛별 더그림엔터테인먼트 재팬 법인장은 “일본에선 출판 만화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미디어믹스 시장의 규모가 크다. 한국 웹툰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믹스도 연달아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일본은 만화를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음악, 게임, 여행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일본 시장을 한국 웹툰의 세계 진출 교두보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08년 가을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를 그만두고,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오랫동안 따르던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그동안 치열하게 쌓은 기자 경력은 상관없었다. 직장에서 버티기 위해 꾸역꾸역 애쓰며 살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일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래서 경비원이 돼 매일 아침 미술관으로 출근했다. 8시간씩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지켜봤다. 거장들의 혼이 담긴 회화와 조각을 보고, 동료 경비원들과 대화하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 갔다. 멈췄던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2008∼201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사진)를 펴낸 미국 작가 패트릭 브링리(41)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술관은 현대인들을 위한 사원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품들과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위로하고,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기쁨, 슬픔 등 온갖 경험이 어떤 식으로 작품에 반영됐는지 들여다볼 수 있죠.” 신간은 지난해 11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뒤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까지 10만 부가 팔렸다. 알라딘 종합순위에서 5주 연속(1월 1주∼2월 1주) 1위에 오르는 등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솔직함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형은 내가 흥미로운 일을 겪을 때마다 달려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며 “형이 아프고 난 뒤에야 형이 내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실 어떤 것이 한국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반응을 전해 듣고 기뻤어요.” 신간에서 경비원이 된 그는 매일 아침 개관 30분 전 배정받은 구역에서 그림을 홀로 바라보는 일상을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탈리아 화가 베르나르도 다디(1290∼1355)의 회화를 지켜보며 처연함을 느꼈다. 미국 화가 메리 커샛(1845∼1926)의 그림을 보며 햇살에 닿는 듯한 따스함에 젖었다. 그는 “미술관은 아름답고, 신성하고, 세상이 얼마나 충만한지를 알려주는 예술품들로 가득 차 있다”며 “미술관을 거닐면 ‘우리가 겪는 고통이란 얼마나 작고 별것 아닌가’라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다. “미술관에는 삶과 죽음, 아름다움, 고통이 다 담겨 있어요. 예술품을 만든 수천 년 전의 예술가와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죠.” 그는 사람을 통해서도 치유 받았다. 이민자, 농부, 택시운전사 등 다양한 출신의 미술관 경비원들은 모두 파란색 제복을 입고 동등하게 서로를 대했다. 그는 “동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대화하면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며 “형의 죽음 이후 조용했던 나는 점점 사람들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2018년 그는 미술관 경비원을 그만두고 현재는 뉴욕에서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미술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미술관을 올바르게 관람하는 방식은 없습니다. 미술관 큐레이터, 고대 이집트인, 르네상스 화가도 답을 몰라요. 그냥 사람들이 없는 아침에 미술관에 와서 조용히 작품을 바라보세요. 필요한 건 오로지 작품을 마주하고, 마음껏 해석할 용기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KBS ‘고려거란전쟁’뿐 아니라 최근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역사왜곡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다. 이 드라마에선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사제와 통역사에게 중국 전통음식인 월병과 중국식 만두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됐다.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지만 조선을 방문한 이들에게 중국 음식을 대접한다는 설정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 것. 제작진은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가미해 소품을 준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청자 항의가 쏟아지자 SBS는 방영 2회 만에 조기 종방을 결정했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지도 권고를 내며 “드라마의 허구성에 대해 철저히 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1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설강화’도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에게 쫓기던 남파 간첩(정해인 분)을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여대생(지수 분)이 구해준다는 이야기다. 간첩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안기부 직원이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된 점이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볼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이 자칫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사건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고 시청률이 3.9%까지 올랐지만 역사왜곡 논란 직후 1.7%까지 떨어졌다. 드라마가 조기 종방되지는 않았지만, 기업들이 광고와 제작 지원을 철회했다. 해외 콘텐츠들도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나폴레옹’은 극중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나폴레옹이 지켜보고, 나폴레옹이 기마 돌격에 앞장서는 장면이 “영화적 상상을 넘어선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4도 다이애나빈이 섭식 장애를 앓아 음식물을 토하는 장면 등이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은 뒤 ‘이 작품은 허구’라는 자막을 추가했다. 국내 방송계에선 정통사극에 새로운 소재를 접목한 이른바 ‘퓨전 사극’이 최근 유행하면서 논란이 더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당시 격리된 장소에서 촬영할 수 있는 사극 제작이 늘면서 제대로 고증이 안 된 작품들도 방송 전파를 탈 수 있었다는 것. 한 드라마 작가는 “역사왜곡 논란이 과도해지면서 창작자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대중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범위 안에서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정통·퓨전 사극을 불문하고 대중문화콘텐츠는 대중의 역사 인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상상력이란 단어가 변명이 될 순 없다”며 “사료 검증이 철저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콘텐츠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얼마 전 내 작품이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출판사 판매량 시스템에는 그게 반영이 안 돼 있었다.” 10권 이상 책을 펴낸 중견 작가 A 씨는 “한참 지나서야 시스템의 숫자가 바뀌는 걸 보고 출판사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21년 출판계의 불투명한 인세 정산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쇄량이 아닌 판매량만 알 수 있는 데다 이마저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인된 공공기관이 아닌 출판사나 서점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통계라는 점도 한계다. A 씨는 “인세 논란이 불거진 뒤 대형 출판사들과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관련 시스템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믿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2021년 공상과학(SF) 출판사 아작은 장강명 등 작가들의 인세를 누락한 사실이 밝혀져 사과했다. 임홍택 작가는 출판사 웨일북으로부터 전달받은 ‘90년생이 온다’의 종이책 판매부수를 검토하다 발행부수보다 10만 부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해 뒤늦게 인세 1억5000만 원을 받아냈다. 논란이 커지자 출협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각각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과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만들어 저자가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창비도 인세 정보를 저자들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여전히 “바뀐 게 없다”는 반응이다. 책마다 고유 번호가 없어 출판사가 판매부수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것. 한 작가는 “담당 편집자조차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모를 정도로 출판사 내부에서도 판매량을 쉬쉬한다”며 “하물며 작가가 정확한 판매량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판매량 집계가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인쇄부수가 아닌 판매부수를 기준으로 인세를 정산하는데, 반품된 물량을 반영하다 보니 인쇄 후 길게는 수개월이 지나서야 판매량을 알 수 있다는 것. 다른 작가는 “출판사가 인세를 뒤늦게 지급한 걸 나중에 알았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인세를 언급하는 작가를 속물로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가들 스스로 시스템 개선에 나서고 있다. 임홍택 작가는 지난해 11월 출판사 ‘도서출판11%’를 세웠다. 이곳은 출판계 관행과 달리 판매부수가 아닌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한다. 임 작가는 “책이 반품되면 출판사가 책임지고 비용으로 처리하고 저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이 책을 온라인 출판 플랫폼에 독점 공급하기도 한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은 2022년부터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만 작품을 올려 수익을 얻고 있다. 김재희 한국추리작가협회 부회장은 “‘윌라’ 종합 순위에 오르면 수익이 수천만 원에 달해 굳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출판계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처럼 공신력 있는 공공기관이 판매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집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출협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에는 1290개, 문체부 출판전산망에는 2791개 출판사가 각각 참여하고 있다. 이는 문체부에 등록된 전체 출판사(8만2588개)의 각각 1.6%, 3.4%에 불과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협이나 개별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인세 시스템은 작가들이 신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 주도의 통합전산망 가입 출판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한국의 한 대학 건물. 복도를 꽉 채우는 크기의 거대 문어가 빨판투성이 다리를 굼실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대학 강사인 ‘나’는 강사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시위 중이다. 진지한 상황이지만 문어의 이상한 행동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시위를 주도하는 ‘위원장님’의 행동은 더 가관이다. 뒤에서 입맛을 다시던 ‘위원장님’은 전화기로 문어를 때려 기절시킨다. 그러곤 머리 안쪽을 뒤집어 가위로 자르고 내장을 잡아당겨 꺼낸다. ‘위원장님’은 어이없어하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눈하고 이빨 떼기 전에 물에 씻어야 되는데 좀 도와주실래요?” 최근 출간된 정보라 작가(48)의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래빗홀·사진)에 수록된 단편소설 ‘문어’의 일부다. 그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소설 대부분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사회학과 강사였던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과 농성을 하다 사귀고, 2022년 11년간 강사로 일한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그의 인생이 작품에 진하게 녹아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연애를 하다 문어회를 먹으러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한 놈은 맛이 갔고 다른 한 놈은 싱싱하다’고 말하더라고요. 허락을 받고 그 대사도 소설에 녹였죠.” 그는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 2020년 남편을 따라 경북 포항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시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소설의 주인공이 된 여러 해양 생물을 떠올렸다. 그는 “포항 송도해변에서 포스코와 해수욕장을 번갈아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미래도시 같다”며 “‘서울 촌놈’인 나는 바닷가를 걸을 때마다 마치 마술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고 더 마술적이고 더 잔혹할 수 있다”고 했다. 신작에 실린 6개 단편은 상상과 현실이 온통 뒤섞인 정 작가 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돋보인다. 대게는 인간에게 러시아어로 “도와주시오”라고 말을 걸고(단편 ‘대게’), 우주 해파리는 인간 곁을 떠돈다(단편 ‘해파리’).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편견과 비판(단편 ‘상어’), 생태계 파괴로 고통받는 해양 생물들에 대한 고민(단편 ‘고래’)처럼 사회적 문제도 담았다. 그는 “서울을 떠나 바닷가에 산 뒤로 해양 생태계 문제에 민감해졌다”며 “생물들이 없어지면 인간도 죽는다. 지구 생물체가 살아남기 위해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단편 ‘문어’)처럼 자신의 고백이 담긴 듯한 문장도 눈에 띈다.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단편 ‘대게’)처럼 남편에 대한 진한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소설보다 에세이처럼 읽힌다. 최근 수술을 받았다는 남편의 안부를 묻자 그는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남편이 엊그저께 퇴원했거든요. 지금 통화도 옆에서 들으면서 계속 추임새를 넣고 있어요. 요즘 오징어, 문어 포획량이 줄어 어민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꼭 써 달라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패스트 라이브즈’, ‘성난 사람들’, ‘파친코’, ‘미나리’…. 최근 한국인 이민자들의 정체성이 담긴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들이 문화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변방에 있던 한국 콘텐츠가 주목받으며 한국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도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을 인종차별로 풀어내는 것을 넘어 그리움, 분노 같은 정서로 풀어내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적 특수성을 내세우며 색다름을 강조하던 과거를 넘어 누구라도 이해할 만한 보편적 감수성을 건드리며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인 이민자의 삶 입체적으로 그려최근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 관련 콘텐츠는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가 현지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처럼 토종 한국 콘텐츠가 부상하면서 한국계 외국인들이 제작한 콘텐츠도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각본을 쓰고 연출, 제작을 맡은 이성진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다. 이 감독은 10대 시절 한국식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껴 ‘소니(Sonny)’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바꿀 정도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이런 그의 고민을 반영하듯 ‘성난 사람들’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민자들의 분노를 포착했다. 특히 극 중 한국계 ‘대니’(스티븐 연)가 설렁탕과 라면을 즐기고, “교회에서 좋은 한국 여자를 만나라”는 엄마의 성화를 듣는 등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도 12세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셀린 송 감독이 연출했다. 송 감독은 데뷔작인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고향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송 감독은 아카데미 후보 지명 후 인터뷰에서 “나는 캐나다인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성난 사람들’과 ‘패스트 라이브즈’ 모두 한국계 미국인 혹은 캐나다인의 시각에서 한국 이민자의 정체성을 담아낸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최근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는 백인 주류 사회의 한국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에 한국계 배우들은 무술을 잘하는 과묵한 인물이나 소심한 너드(nerd·괴짜), 돈만 밝히는 수전노와 같은 캐릭터로 주로 소비돼 왔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지.아이.조’(2009년)에서 선악을 따지지 않고 주어진 임무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용병을 연기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난에 쫓겨 미국으로 온 한국 이민자 1세대를 다룬 영화 ‘미나리’나 재일 한인 교포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파친코’가 대표적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그린 작품과 달리 한국계 감독이 찍고, 한국계 배우가 연기한 작품은 한국적 감정을 주체적으로 그린다”고 평가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성난 사람들’과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양 창작자들이 한국인에게 지닌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다양성’ 추구도 영향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의 성공에는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 내 분위기도 한몫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 성별 등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2021년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영화 ‘미나리’가 한국어로 극이 전개된다는 이유로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자 아시아계 작품 홀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미국 아카데미는 2022년 남우조연상에 영화 ‘코다’의 미국 농아인 배우 트로이 코처를, 여우조연상에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성소수자이자 라틴계 흑인 배우인 아리아나 더보즈를 선정했다. 아카데미는 올 3월부터는 최고상인 작품상 수상 자격에 ‘다양성’ 기준을 추가했다. 영화 내용이나 제작, 마케팅 방식 등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인종·성별 다양성을 고려해야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송 감독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다양성 추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카데미가 2023년 뮤지컬·코미디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을 중국인 이민자를 다룬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말레이시아 화교 배우 양쯔충(양자경)에게 수여했다. 미국 영화계에서 다양성은 필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인지도와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거론된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그룹이 미국 빌보드를 휩쓴 것에 더해 대중문화적 파급력이 높아졌다.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한국이 수년간 쌓아온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인종, 나이, 성별, 장애 등 문화 다양성의 기조가 강조된 점도 성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편적인 주제 의식으로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恨)’과 같은 한국적 정서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분노, 향수 등 세계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친코’를 연출한 저스틴 전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간담회에서 “이민자 이야기는 각자의 섬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나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며 “‘성난 사람들’이 대단한 건 이민자의 삶을 통해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도 주목코리안 디아스포라 열풍은 출판, 문학계에도 불고 있다. 특히 그동안 주로 작품성으로만 인정받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전방위적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7세 때 서울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이 쓴 장편소설 ‘파친코’다. 2022년 애플TV플러스에서 공개를 시작한 동명의 드라마가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소설이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북스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70위에 올랐다. ‘파친코’의 성공 이후 연달아 영미 문학계에선 다양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조지프 한(한국명 한요셉)의 장편소설 ‘핵가족’(위즈덤하우스)은 202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이 작품은 미국 이민 2세대인 주인공이 6·25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계 미국 작가 미셸 조너가 자신의 성장 과정과 엄마가 해주던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문학동네)는 2021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아마존북스 아시안&아메리칸 분야 1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가 이민자처럼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빈곤층이나 성소수자 등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국제한인문학회장)는 “다수자와는 다른 소수자만의 생각과 느낌을 살려낼 때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는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