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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진퇴를 둘러싼 기(氣)싸움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것이었다. 우 수석과 넥슨 사이에 정말 비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의혹이 번져 논란이 되는 만큼 우 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입장과 의혹만으로 물러나면 계속 의혹만으로 물러날 수 있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잊고 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느닷없이 끼어들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다툼은 법적 유무죄의 문제로 바뀌었다. 그것도 우 수석의 본건(本件) 의혹이 아닌 별건(別件) 의혹에 대한 법적 유무죄의 문제로 바뀌었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냐는 한쪽이 완전히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되면 유죄이거나 무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액체적인 정치적 사건을 고체적인 법적 사건으로 만든 것이 그의 어리석음이다. 법적인 유무죄만 다뤄온 상상력 부족한 검사가 제1호 특별감찰관에 임명됐다. 그는 자기 직무영역에 들어온 의혹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자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정작 진경준 인사 검증 실패나 진경준을 매개로 한 서울 강남땅 매매라는 본건은 감찰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돈키호테처럼 본건이라는 괴물 대신 별건이라는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 어느 기자가 산초가 돼 ‘칼을 뺐다가 그냥 집어넣으면 당신이 다친다’며 부추겼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검사 시절부터 몸에 밴, 본건 수사가 안 되면 먼지떨이식 별건 수사를 해서라도 반드시 기소한다는 못된 습관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수사 의뢰한 이유가 뭔가를 밝혀내서가 아니라 밝혀내지 못해서라고 한다. 기상천외한 이유다. 특별감찰관은 범죄행위가 명백할 때는 고발을 한다. 수사 의뢰는 범죄행위가 명백하지 않고 수사해 봐야 알 수 있을 때 한다. 고발이 아니라 수사 의뢰에 그쳤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나온 의혹을 모아서 검찰에 전달한 수준이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실제 이상의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특별감찰관 수사 의뢰의 초라한 실상이다. 그는 감찰에 진전이 없었던 이유가 우 수석의 영향권 아래 있는 기관들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감찰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경찰부터 우 수석까지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감찰 방해 행위로 고발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사실 압수수색도 계좌추적도 못 하는 특별감찰관이 얼마나 협조를 얻어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에게는 우 수석이 혐의가 있다는 쪽으로도, 혐의가 없다는 쪽으로도 진상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그것이 그가 감찰에 착수했을 때 빠져들었던 함정이다. 그는 고발도 무혐의 처분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출구는 ‘모르겠으니 검찰이 수사해 달라’는 길밖에 없었다. 그에 의해 우 수석의 의혹에 대해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본래 이 그림의 근경(近景)에는 우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땅 매매가 있고 의경 아들 꽃보직 특혜니 가족기업 ‘정강’의 회삿돈 유용이니 하는 것은 원경(遠景)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경에 있던 것이 근경을 차지하고 근경에 있던 것이 원경으로 밀려났다. 우 수석이 꼭 물러나야 국정이 잘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집에 불과하고, 우 수석이 꼭 있어야 국정이 잘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집에 불과하다. 기싸움의 뒷면에서는 양쪽에서 다 음습한 공작의 냄새까지 풍긴다. 그래도 겉으로나마 정치적 올바름을 놓고 공방할 때는 서로 압박에 밀려 물러선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물러설 방법을 모색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또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특별감찰관이 끼어들면서 사태는 한쪽이 져야 끝나는 정면대결로 치닫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특별감찰관제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특별감찰관법을 만든 것도, 이 특별감찰관을 1호 특별감찰관으로 임명한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 정권의 누구 하나 특별감찰관제가 어떻게 기능할지 예상이나 했던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 수석이 자리에서 내려와 모든 의혹에 대해 결백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아름답지만 속물적인 여인 데이지의 남편이자 개츠비의 연적인 톰 뷰캐넌이란 인물이 나온다. 뷰캐넌은 ‘매년 여름이 더 더워진다’고 불평하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뜨거운 여름은 살인의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출판한 것은 1925년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생기기 전이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세상이 매년 더 더워진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세계 평균 기온 관측을 시작한 1880년 이래 올 7월이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다. NASA의 지표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자료로 인용되는 권위 있는 지표다. 이 지표는 1951∼1980년을 준거로 삼아 이 기간의 평균 기온으로부터 높은 쪽으로 0.01도씩 벗어날 때마다 1점, 낮은 쪽으로 0.01도씩 벗어날 때마다 ―1점을 부가한다. 올 7월의 지표는 84점으로 역대 최고다. 준거 기간보다 평균 기온이 0.84도 높았음을 의미한다. ▷‘위대한 개츠비’가 출간된 1925년의 7월 지표는 ―29점이다. NASA가 관측을 시작한 1880년 이래 1939년까지 60년간 7월의 지표는 단 한 차례만 플러스였고 모두 마이너스였다. 1940년부터 플러스가 점차 늘기 시작하더니 1977년 이후로는 지금까지 40년간 단 한 차례만 마이너스였고 모두 플러스였다. 온난화의 원인이 자연적인 순환 과정인지 인간 활동인지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온난화 자체는 확실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7월은 우리의 7월과 비교하면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낮았다. 그러나 당시는 뉴욕 가정에 에어컨이 보급되기 전이라 덥게 느꼈을 수 있다. 지난달 누진제로 인한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여름이 더울 뿐 아니라 습한 데다 많은 사람이 대도시 아파트에 사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생활이 힘들어졌다. 에어컨 가동을 상수로 놓고 전력 발전과 요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작은 나라는 사대(事大)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사대를 현대적 용어로 큰 나라와의 동맹으로 정의한다면 작은 나라의 존립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국방’보다는 큰 나라와의 동맹에 의해 결정된다. 사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나쁜 사대가 있다. 조선시대 인조반정의 주역으로 권세를 누렸던 김자점이란 자가 있다. 친청(親淸)파인 그는 효종이 즉위 후 송시열을 중용해 북벌(北伐)을 추진하자 좌천됐다. 그러자 그와 아들 김식은 효종과 송시열이 북벌을 추진한다고 청에 밀고했다. 청을 움직여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려 한 김자점 부자의 행태야말로 더러운 사대라고 할 수 있다. 북벌론은 실제 북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적으로 청에 대한 복수(復讐) 의식을 보존하면서 자강(自强)을 모색하는 슬로건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 어찌 됐건 북벌론을 둘러싼 싸움은 조선 땅에서 조선인끼리 해야 할 것이었다. 북벌론이 또 다른 호란을 불러오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최소한 청에 고자질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에서 권세를 누릴 대로 누린 김자점 부자가 자기 살겠다고 한 짓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지금 중국에서 관변 학자의 뻔한 얘기를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납득했을지 모르겠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와 자매지들이 일제히 사드 배치를 극렬히 비판하는 가운데 관영 매체인 환추시보는 더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방중을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그것도 이용해 먹기만 했을 뿐이다. 의원들에 대한 접대 수준은 급을 못 맞춘 사신을 대하는 하대(下待)에 가까웠다. 겨우 초선이냐, 오려면 문재인 전 대표라도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더민주당은 비겁하게도 사드 배치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정당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중한 의원들은 중국에 갈 게 아니라 당을 움직여 사드 배치 반대 당론부터 정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여론을 얻기 위해 싸워도 싸워야 한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결정은 우리가 한다. 중국의 힘을 이용해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는 태도는 김자점 부자의 행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더러운 사대가 어디 김자점뿐이었겠는가. 인조 때 이괄과 함께 난을 일으켰던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난이 실패한 후 후금(청의 전신)으로 피신해 광해군의 밀명으로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에게 “강씨 일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고 무고하고 누르하치에게는 “민심이 인조를 떠나고 있다”며 조선 침략을 부추겼다. 한윤의 무고와 선동은 정묘호란의 원인이 됐고 기구한 운명의 강홍립은 오랑캐의 앞장을 서야 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조선이야 한 사람이 곧 나라인 왕조국가였다. 임금 눈 밖에 나면 목숨도 부지하기 힘드니까 자기들 살겠다고 그랬다고 치자.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다. 더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행태는 임금에 대한 배신행위도 아니고 종묘사직에 대한 배신행위도 아니고 국민 모두에 대한 배신행위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군주정은 명예, 독재정은 공포, 공화정은 덕성을 기초로 유지된다고 했다. 공화국의 덕성은 공화국에 대한 사랑, 애국심이다. 군주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통치하고 독재자는 공포를 이용해 통치하지 국민의 애국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화국은 애국심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메달을 땄다고 기뻐하고 박수 치는 것은 값싼 애국이다. 그러나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황금 같은 청춘 2년을 보내는 것은 비싼 애국이다. 성주 주민만이 아니라 돈 없고 백 없는 국민 대부분은 다 이런 애국을 해봤으니까 이해할 것이다. 한반도 어딘가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면 그 사드는 자기 집 뒷마당에도 배치될 수 있다고 각오해야 애국이다. 하필 성주로 결정돼 선조부터 살아온 고향 땅을 내놓아야 하는 성주 주민을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돈을 퍼준다고 될까. 오직 애국심밖에 없다. 성주 주민이 그런 애국심을 보여준다면 공화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빅브러더(Big Brother)’와 ‘서바이벌(Survival)’이 성공을 거둔 이후 자리 잡았다. 오늘날 한국의 주말 프라임타임 TV 프로그램도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세다. 다만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서구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따져보면 드라마보다 연출이 좀 덜한 상황에서의 리얼리티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출연자도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에는 연애 리얼리티라는 분야도 있다. 미국 TV의 ‘총각들(The Bachelors)’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한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한 일반인 여성이 짝을 이루지 못한 상심으로 녹화 중 자살하면서 폐지됐다. 이후 진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시들해지고 젊은 연예인들이 가상결혼을 하는 ‘우리 결혼했어요’, 나이 든 독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불타는 청춘’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진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는 모르는 두 사람이 호감을 가져가는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연예인이 등장하는 사이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는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 안 하는 것도 아닌 불분명한 상태에 흥미를 느낀다. ‘불타는 청춘’에서 개그맨 김국진과 가수 강수지는 실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한 ‘썸타는’ 상황을 1년 넘게 끌어왔다. 그 두 사람이 어제 사귄다고 밝혔다. ▷진짜 커플은 ‘우리 결혼했어요’에선 불발에 그쳤는데 ‘불타는 청춘’에서는 나왔다. 일반인 남녀가 녹화 도중 호감을 느껴 사귀게 된 것 같은 리얼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더 노골적으로 된 ‘청춘’들이 이것저것 잴 것이 많은 젊은 청춘보다 더 자기감정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연애가 리얼리티가 되면 시청자의 흥미는 사라지고 당사자는 퇴장해야 한다. 두 사람도 이 법칙을 피해 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 칼럼은 ‘본지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양해를 구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처가 땅 매매를 둘러싼 의혹이 돌아가는 꼴이 정윤회 문건 때와 비슷하다. 정윤회 문건은 액면 그 자체로 찌라시 수준이었으나 세상을 흔들었다. 문건은 ‘∼라고 한다’는 전문(傳聞)체로 돼 있는 데다 누구의 말인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십상시 같은 비유적 표현에 10명의 인물을 짜 맞추려 한 흔적이 결정적으로 의심스러웠다. 문서 작성자가 경찰 조사에서 ‘(한눈에 띄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행’ 운운했을 때는 실소마저 나왔다. 우 수석 처가가 상속받은 서울 강남땅을 넥슨에 팔았다는 보도는 의혹이 있다고 보기 시작하면 있고, 없다고 보기 시작하면 없는 그런 수준이다. 1000억 원대의 부동산 거래라는 게 대체로 복잡해서 이렇게 보면 이렇게,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인다. 우 수석 처가와 넥슨 사이에 매매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진경준은 ‘우병우-넥슨 거래’ 다리 놔주고, 우병우는 진경준의 ‘넥슨 주식 눈감아줬다’는 프레임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제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하고 농지법 위반이니, 아들 꽃보직이니 하며 다른 의혹을 뒤진다는 것 자체가 강남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무언(無言)의 인식을 보여준다. 우 수석이 진경준의 검사장 승진 당시 넥슨 주식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못한 것을 두고 물러나라고 한다면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 그의 안이한 판단으로 하마터면 130억 원 가치의 뇌물을 받은 범죄자를 놓칠 뻔했다. 특별감찰관의 감찰이 진행되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자. 농지법 위반 등도 사실로 드러나면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 수석이 진경준을 매개로 넥슨과 뭔가 주고받은 게 있어서 물러나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없다. 언론은 전지(全知)적 작가가 아니다. 언론은 아직 우 수석과 넥슨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모른다. 진경준의 넥슨 주식 매입 자금 4억 원은 그가 자기 돈으로 마련했다고 했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좋다는 주식도 전망만 보고 사는 이상 리스크가 큰 금융 상품인데 월급쟁이 공무원인 검사가 자기 돈 4억 원을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 결국 이 돈은 넥슨에서 받은 돈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 수석 처가의 땅 매매에는 진경준의 ‘4억 원’처럼 손에 확 잡히는 단초가 없다. 계약 당시 현장에 없었던 것처럼 말한 우 수석의 거짓말이란 것도 본(本)과는 거리가 먼 말(末)에 해당하는 것으로, 괜한 의혹을 불러일으켜 추가 설명을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거짓말이다. 언론이 허구한 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의견 대립을 보일 때는 그게 큰 문제인 것 같더니 이제 언론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한 방향으로만 폭주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이게 더 무섭다. 설혹 내 판단이 틀려 망신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르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언론과 대통령은 지금 무용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권력과 싸운다는 자체가 정의도 뭐도 아니다. 그러나 누가 원인을 제공했든 이 무용한 기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 되면 결국 진실이 무엇인지로 결판낼 수밖에 없다. 사실 대통령도 전지적 대통령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진실이 뭔지 모르는 것은 언론과 마찬가지다. 언론도 대통령도 모르는 진실 앞에서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우 수석으로서도 자신이 떳떳하다면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언론이 우 수석을 향해 물러나라고 하는 이유는 진경준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점잖은 수준이 아니다. 진경준이 넥슨과의 거래를 다리 놔준 대가로 진경준의 넥슨 주식을 알고도 눈감아줬다는 파렴치한 의혹으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물러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형(重刑)을 살게 해야 한다. 어차피 우 수석이 고소해서 시작된 수사다. 그가 수석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수사 결과를 사람들이 믿어줄 리도 없지 않은가. 우 수석과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의 사퇴 자체가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억울해도 지금의 순리는 우 수석은 사표를 내고 박 대통령은 처리하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으나 선거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농성사건이라는 그늘도 있었다. 1000여 명이 연행되고 200여 명이 구속됐다. 농성 진압 직후 구로구청 5층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하거나 구청 지하 기관실에서 질식해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서울대생이 투신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1987년 12월 16일 대선 투표 당일 오전 서울 구로을 선관위원들이 수상한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트럭에 싣고 구로구청을 나서려 한다는 제보에서 비롯됐다.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투표함은 이들의 선관위 점거 44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선관위로 넘겨졌다. 이후 투표함은 봉인된 채로 지금까지 보관됐다. 한국정치학회는 내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을 앞두고 선관위의 협조를 얻어 어제 29년 만에 투표함을 열었다. ▷개표 결과 4325표 중 노태우 3133표(72.4%), 김대중 575표(13.3%), 김영삼 404표(9.3%) 순으로 나왔다. 당시 구로을 전체로는 김대중 6만6204표(35.7%), 노태우 5만2076표(28.1%), 김영삼 4만7078표(25.4%) 순으로 득표했다. 당시는 부재자 투표를 일반 투표와 혼합해 개표했기 때문에 부재자 득표율은 따로 집계된 게 없다. 이번 개표에서 노태우의 득표율이 너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별로 비교해볼 수 없어 구로을 선관위원들이 우편투표함을 조작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디선가 부정투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시 군(軍)에서는 광범위한 부정이 자행됐다. 육군 모 사단 장교 3명이 이를 공개했다가 정보사로부터 린치를 당했다. 나도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해서 사정을 안다. 선거부정은 중대장이나 대대장 앞에서의 사실상 공개투표로 행해졌고 대리투표도 있었다. 구로구청 농성사건 덕분에 당시 군 부대 선거부정을 증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남았다고 생각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에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12월 뉴욕타임스(NYT) 발행인인 아서 설즈버거 2세와 편집국장 빌 켈러를 백악관으로 불러 테러리스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 게재 보류를 요청했다. 백악관은 NYT의 기사 게재를 이미 한 번 막은 적이 있다. 멀리 1971년 국방부의 베트남전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얘기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게재 보류를 요청한 바로 그 기사를 놓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클 헤이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나서 NYT를 설득해 한 번 보류시켰다. NYT가 다시 기사를 게재하려 하자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이 설즈버거 발행인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NYT가 테러리스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면 적들이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설즈버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기사 게재를 보류해 달라고 촉구했고 설즈버거는 내 요청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썼다. 설즈버거와 켈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NYT는 열흘 뒤 기사를 게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이 얼마 전 공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 수석의 전화를 받고 김 전 국장은 밤 9시 뉴스에 내보낸 기사 한 꼭지를 밤 11시 뉴스에서 뺐다. 기사는 ‘세월호 침몰 둘째 날 해군의 재투입이 해경 때문에 황금시간을 놓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NYT의 설즈버거는 자기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사의 게재를 보류해 달라고 촉구하던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 KBS는 그러지 못했다. NYT는 백악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만 KBS는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느냐는 반박이 나올 만하다. 맞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김 전 국장이 이 전 수석과의 전화 통화 중 변명하듯 말한 것처럼 KBS 조직 내부의 성격상 정말 중요한 기사였으면 국장이라도 함부로 뺄 수 없다. KBS는 노조의 감시가 강한 조직이다. 이 전 수석의 요구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사를, 그것도 이미 한 차례 보도가 된 기사를 빼달라는 것이었으니까 김 전 국장이 티 안 나게 빼줄 수 있었다. 둘이 짜고 몰래한 좀도둑 짓에 언론의 자유라는 거창한 자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우습다. KBS는 일방적으로 정권에 당하는 조직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다만 KBS와 정권의 관계가 어떨 때는 가학적이고 어떨 때는 피학적일 뿐이다. KBS는 문창극 보도에서는 악마의 편집을 하며 가학적인 입장에 섰다. 이 전 수석과 김 전 국장의 통화를 듣고 있노라면 가학-피학 관계가 교차되는 두 남자를 보는 묘한 느낌이 든다. 이 전 수석은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계속 봐달라는 식으로 읍소를 하고, 김 전 국장은 수세적인 것 같으면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보도지침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일방통행식 관계는 없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밑에서 공보국장을 지낸 앨러스테어 캠벨은 ‘블레어 시대(The Blair Years)’란 책을 냈다. 이 책은 캠벨이 평소 쓴 일기를 발췌해 엮은 것이라 공보국장의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일기에는 캠벨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사나 방송사의 책임자들과 통화하면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홍보수석이란 자리도 그런 일을 하는 자리다. 부시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사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다. 그 예외적인 순간에 설즈버거는 대통령의 요청에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예의상 한 말이든 진짜 고려해 보겠다고 한 말이든 큰 차이는 없다. 권력의 요청이 애초 터무니없다고 여기면 예의상으로 고려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이고,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 그것까지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이 ‘고려해 보겠다’는 말 속에 가학-피학 관계를 넘어선 권력과 언론의 정상적 관계가 들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랠프 월도 에머슨은 19세기 중반 미국이 공업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에 활약한 시인이다. 그가 언급했다는 ‘더 좋은 쥐덫’은 혁신의 힘을 상징하는 은유로 널리 쓰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며 “어떤 시인의 유명한 글귀가 있다”면서 “‘더 좋은 쥐덫’을 만든다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에머슨의 시를 언급했다. 에머슨이 1882년 죽기 전에 실제로 ‘더 좋은 쥐덫’을 언급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상용 쥐덫은 그가 죽은 뒤에 사용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울워스라는 쥐덫 회사는 한번 걸린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예쁜 모양의 플라스틱 쥐덫을 만들어 발전시켰다”라고 덧붙인 말이 화근이었다. 미국에선 에머슨이 했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발명가들이 앞다퉈 쥐덫을 개량하는 바람에 쥐덫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가 나온 상품이 됐다. 그중 대부분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실패한 혁신이었다. 그 예쁜 쥐덫도 쥐와 함께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쥐만 버리고 씻어 쓰기는 찝찝한 상품이 되고 말았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더 좋은 쥐덫의 오류’라고 부른다. ▷많은 언론이 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용을 조롱했다. 실은 조롱한 언론도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예쁜 쥐덫을 만든 것은 울워스사가 아니라 1928년 미국 동물트랩사(Animal Trap Co. of America)의 체스터 M 울워스 사장이다. 오늘날 생활용품 업체 울워스(Woolworth)사가 쥐덫을 만들긴 하지만 울워스 사장은 울워스사와는 관련이 없다. ▷LG CNS의 홍보 사이트에는 ‘더 좋은 쥐덫의 오류’를 설명한 글이 올라와 있었는데 거기에는 울워스사의 체스터 울워스 사장이라고 돼 있다. LG CNS는 현재 이 글을 삭제했다. 삭제 이유가 대통령을 곤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오류가 있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대통령도 틀리고 LG CNS도 틀리고 언론도 틀렸다. 모두 다 잘 모르는 걸 아는 체하다 보니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로마 시민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 대신 병역의 의무를 졌다. 국가는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지 않고 숙식만 해결해줬다. 시민은 전쟁에 필요한 칼 방패까지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로마의 정치인, 즉 원로원 의원은 봉급 같은 건 받지 않았다. 오히려 퇴역하는 군인의 연금을 위해 상속세를 냈다. 정치나 전쟁은 모두의 것(res publica·공화국)을 위한 일이어서 시민이 기꺼이 무보수로 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다. ▷독일 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보면 두 종류의 정치인이 등장한다. 정치를 부업(副業)으로 삼는 정치인과 주업(主業)으로 삼는 정치인이다. 전자는 대개 무보수이고 후자는 유급이다. 베버는 보수가 별 의미가 없던 부유한 명사(名士)들 중심의 정치에서 리더를 중심으로 정당 조직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로의 변화를 우려와 기대가 함께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국회의원의 겸직 허용은 ‘부업으로서의 정치’의 잔재다. 프랑스에서는 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영국 의원도 거의 모든 직업에 겸직이 허용된다. 반면 미국은 세비의 15% 이상을 외부에서 벌 수 없고 일본은 세비의 절반 이상을 벌면 신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변호사 교수 사장 이사 등의 겸직을 아예 금지한다. 우리나라 세비는 연 1억4000만 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민소득 대비 3번째로 높다. 겸직 금지를 감안해도 높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 연설에서 세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국민은 10%나 20%는 몰라도 절반 축소는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박수를 보냈다. 사실 세비는 의원을 유지하는 데 드는 경비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반값 국회’를 만들려면 친인척까지 데려다 쓰는 보좌진을 7명에서 서너 명으로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으로서는 세비 절반을 내놓을지언정 정치에 매달려 먹고사는 직업 보좌관들을 줄이기는 더 어렵다. 노 원내대표가 그 일에 앞장선다면 더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어느 시대나 자기 시대의 예언자를 갖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몰락을 내다본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운명을 피해 보려 노력했으나 그 노력이 오히려 신탁의 예언대로 귀결됐다. 점을 보는 것과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크게 다를 것 같지만 과학의 목적도 결국 예측하는 것이라고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말했다.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그래서 앞을 내다보려는 욕구는 더 집요하다. 미래학자는 현대판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이다. 앨빈 토플러는 그 신전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지식 정보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유전자 복제, 퍼스널컴퓨터(PC)의 파급력, 인터넷 발명, 재택근무 등을 예견했다. 한때는 모든 사람이 토플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책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등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토플러는 미국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공활(공장 활동)에 나섰다. 그는 5년간 알루미늄 제조 공장의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을 써보려 했으나 소질이 없었다. 대신 노조가 후원하는 신문사에 자리를 얻어 경영과 기술 분야의 칼럼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나중에 경제전문지 포천에서도 일했다. 이후 IBM 제록스 AT&T에서 컴퓨터의 사회적 파급력 등을 연구하면서 이상한 운명에 의해 미래학자가 됐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이버 인프라 구축,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 생명공학 투자, 교육제도 개혁 등을 권고했다.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바이오, 뇌과학, 하이퍼 농업, 대체에너지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그를 헨리 키신저나 새뮤얼 헌팅턴처럼 위대한 학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학자보다는 구루(guru·선생)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 지혜로웠던 구루가 지난달 27일 별세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뭘 하겠다고 나서면 겁나는 사람들이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87년 학문적으로는 족보가 없는 ‘경제 민주화’란 말을 헌법에 집어넣은 사람이다. 그가 얼마 전 국회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내각제 개헌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란 말은 있다. 그 말을 옛 유고 공산주의식 ‘노동자 자주(自主) 관리’의 의미로 쓴 과거 예일대의 로버트 달 같은 진보적 정치학자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경제 민주화를 이런 뜻으로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쓰는 사람 입맛대로 쓰고 있다. 의미의 과잉은 문학에서라면 몰라도 법에서는 곤란하다. 김종인은 과대평가된 주식과 같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사이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쓴 책이라고는 신통치 못한 잡설을 모은 것 말고는 거의 없다. 체계적인 책은 1980년 ‘재정학’이 유일하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나눠 쓰자는 간단한 얘기를 700쪽 넘게 지루하게 늘어놓은,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책이다. 헌법은 기본권과 통치구조를 다룬다. 헌법은 공정거래법이 아니다. 제헌헌법부터 들어있던 ‘경제’라는 촌스러운 장은 87년에 이르러서는 없애야 마땅했다. 그것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더 장황하게 만든 장본인이 김종인이다. 그가 이번엔 87년 헌법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승자 독식 권력 구조’를 들고나왔다. 이제 통치구조에까지 손을 대겠다니 난감할 따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인식에 반발한 사람은 뜻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지금의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과 권력적 기반으로 인해 주어진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87년 헌법을 낳은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을 움직여 국회에서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노무현 이후 이런 것은 사라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임기 전반에는 지지 기반을 유지하다가도 후반에는 지지 기반이 이탈하면서 레임덕에 빠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건 대통령들의 인식일 뿐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런 경우에도 국회가 대통령을 향해 제왕적이라고 할 때는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백낙청 전 창작과비평 대표는 2014년 창비 겨울호의 ‘큰 적공(積功), 큰 전환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국회의 개헌 논의에 대해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87년 체제의 최대 기득권 집단 가운데 하나인 국회의원들끼리 추진하는 개헌이라면 기득권자의 담합 이상이 되기 어렵다”고 썼다. 국회에서 나오는 개헌 얘기는 내각제란 말이 앞에 붙어있지 않아도 내각제 개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87년 헌법으로 최대 기득권 집단이 되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여야가 기득권을 나눠 갖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놓은 국회는 대통령령 수정권, 수시청문회 개최권 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권한 강화를 추진해왔다. 내각제 개헌 추진은 이참에 국회가 아예 대통령을 해먹겠다는 것이다. 헌법이 정한 개헌 절차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국회가 직접 발의해 국민투표로 가는 경로와 대통령이 발의해 국회를 거쳐 국민투표로 가는 경로다.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데는 여야가 한통속이다.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국회의 대통령령 수정권, 수시청문회 개최권은 여당이 승인하거나 앞장서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여당을 믿고 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가 움직이면 대통령도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현자(賢者)들을 모아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협치(協治)라는 번드르르한 포장재로 내각제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국회에 개헌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대(大)변화를 감당할 전문성도 없는 데다 국회의 저열한 지적 수준과 책임 의식, 특권 집착과 갑질 관행을 고려하면 내각제는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재명 성남시장이 “정부가 매년 성남시 돈 1051억 원을 뺏아가려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주일 넘게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정이 넉넉해서 정부 교부금을 주지 않는 불교부(不交付) 지방자치단체가 기초단체 시군 중에는 경기 성남 수원 용인 화성 고양 과천시 등 전국에 단 6개가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니까 경기도가 지원할 필요도 없지만 실제로는 지원한다. 문제는 경기도내 다른 25개 시군보다 이들 6개 도시에 더 많은 돈이 지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은 이들 6개 도시에 경기도 교부금을 우선 배분한다는 경기도의 이상한 조례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경기도 교부금 2조6000억 원 중 52.6%인 1조4000억 원이 이들 6개 도시에 배분됐다. 이 조례가 없었다면 이 중 5244억 원은 다른 25개 시군에 배분됐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이 조례의 근거가 된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고치려 한다. 인구가 비슷한 성남과 부천을 비교해 보면 경기도의 교부금 배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알 수 있다. 2015년 성남시의 자체 수입은 1조80억 원, 부천시의 자체 수입은 5799억 원이다. 인구는 성남시가 14% 많을 뿐이지만 자체 수입은 73%가 많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로부터 받는 돈은 성남이 2545억 원이고 부천이 982억 원이다. 성남은 ‘불교부’ 단체이니까 정부로부터는 한 푼도 받지 않고 부천은 1155억 원을 받는다. 정부와 경기도의 교부금을 합치면 성남은 2545억 원, 부천은 2137억 원을 받는다. 여전히 성남이 400억 원 이상 많다. 성남이 자체 수입도 훨씬 많은데 외부에서 지원받는 돈까지 많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 정부 교부금은 정부가 국세(國稅)로 거둬들인 돈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고, 경기도 교부금은 경기도가 도세(道稅)로 거둬들인 돈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장이 정부가 뺏어간다고 주장하는 1051억 원은 굳이 뺏어가는 주체를 찾는다면 정부가 아니라 경기도다. 그렇다면 경기도가 뺏어간다는 건 사실인가. 그것도 아니다. 도세로 거둬들인 돈이니까 원래 경기도의 돈이다. 성남에 가서는 안 되는 돈이 잘못된 조례에 의해 성남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성남의 세수가 1051억 원이 줄어들면 성남시가 모라토리엄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기업으로 치면 순이익에 해당하는 순세계잉여금(純歲計剩餘金)이 성남의 경우 2014년 7400억 원, 2015년 6500억 원에 이른다. 수원 용인 화성 고양 과천도 부러워하는 액수여서 성남시가 쉬쉬하고 있다. 엄청난 돈을 남기면서도 ‘1051억 원이 줄어들면 축소·폐지될 수 있는 시민을 위한 사업들’로 ‘청년배당 중단’ ‘산후조리비 지원 중단’ ‘중학교 무상교복 지원 중단’ 등 40여 가지 사업을 거론하며 시민을 협박하고 있다. 이 시장은 2010년 취임하자마자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는 자기가 시정을 잘해서 모라토리엄을 극복하고 잉여금을 쌓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시장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이전 시장들을 깎아내리기 위한 쇼였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길어 시민단체인 좋은예산센터 김태일 소장이 쓴 책의 한 구절만 인용하겠다. “성남시에서 겨우 5000억 원 때문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은 성급했다. 성남은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기초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성남에는 호화 신청사를 짓는다고 펑펑 써댄 5000억 원을 충분히 갚을 만한 세수가 이미 그때부터 있었다. 철거민의 도시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성남이 부자도시가 된 것은 성남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정부와 경기도가 세금 감면 혜택이나 인프라 확충 같은 지원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멀리 분당 신도시 개발부터 가까이 판교 테크노밸리 조성까지의 혜택을 성남시가 독차지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경기도 교부금을 조정하는 것은 개인으로 치면 부유한 사람에게 잘못 간 세금 혜택을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 이 시장은 입만 열면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말해온 사람이 아닌가. 이 시장이 자신과 성남의 가난했던 옛 시절을 잊어버리고 못된 스크루지 행세를 해선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현대적인 미국 백악관 시스템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만 하더라도 참모라면 전화를 연결하는 비서이거나 타이프라이터였다. 루스벨트가 참모조직을 확대하고 직속기관을 늘려가자 우려가 나왔다. 그때 그가 참모들을 옹호하기 위해 한 유명한 말이 ‘익명의 열정(passion for anonymity)’이다. ▷우리나라에는 ‘익명의 열정’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모토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는 모든 직속기관의 비공식 모토나 다름없었다. 이 말에서 영감을 얻어, 1961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첫 수장을 지낸 김종필이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첫 원훈(院訓)을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원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꿨다. CIA의 공식 모토 ‘국가의 일, 정보의 중심(The Work of a Nation, The Center of Intelligence)’처럼 단순하지만 단단한 맛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원훈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봤는지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으로 고쳤다. CIA의 비공식 모토라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용어를 교묘하게 뒤섞은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부가 원훈을 다시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꿨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은 학문적 종교적 뉘앙스까지 느껴져 정보기관의 공식 모토로서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소리 없는 헌신’은 ‘익명의 열정’을 현대화한 말로는 ‘무명의 헌신’보다 어감이 좋다. 다만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는 사족(蛇足) 같다. 국정원이 정권 아닌 대한민국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말 같기도 하다. 모토만 바꾼다고 실체가 바뀌지 않는다. 실체가 바뀌어야 CIA처럼 수십 년 지나도 바뀌지 않는 모토가 나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는 고양이부터 악어까지 갖가지 동물 미라가 나오지만 닭 미라는 없다. 닭은 남아시아의 밀림에서 인도를 거쳐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를 통해 유럽까지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시경(詩經)에서부터 닭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성경만 해도 양이나 소, 돼지 얘기는 많이 나오는데 그에 비해 닭 얘기는 별로 없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억 마리의 닭이 산다. 닭이 없는 지역은 펭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살아 있는 닭의 반입을 금지하는 남극뿐이다. 닭은 알을 많이 낳고 해충도 많이 잡아먹는다. 닭은 ‘닭고기 수프’ ‘백숙’ ‘프라이드치킨’ 등 갖가지 형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식용되는 육류로 ‘지구의 단백질’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아직도 닭이 귀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 닭 10만 마리를 보내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게이츠는 닭을 기르고 파는 것이 가난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이며, 하기는 쉽고 돈은 적게 드는 좋은 투자라고 강조했다. 5마리의 닭을 기르면 1년에 1000달러(약 116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최저 수준의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빈곤선은 700달러(약 81만 원) 정도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선 국민의 41%가 빈곤선 아래에서 산다. ▷시간을 돌려 보면 먼 아프리카 얘기만도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닭은 장모가 사위나 와야 잡아 주는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으로 빈곤을 극복하는 데 양계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아프리카에서 닭을 보급하고 사육을 지도하는 데 앞장서 왔다. 지금도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는 부룬디 코트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의 공무원들이 교육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중 우간다에서는 아프리카 최초로 새마을운동 지도자 교육시설이 문을 열었다. 게이츠의 닭 기부와 우리의 사육 지도가 결합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논쟁적인 인도인’이라는 책을 보면 인도인은 천성적으로 말이 많다. 유엔에서 회자되는 얘기 중에 ‘국제회의에서 의장에게 가장 힘든 일은 인도인의 말을 그치게 하는 것과 일본인이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영어 실력의 차이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인도인은 너무 말이 많고 일본인은 너무 말이 적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말 많은 것과 논쟁과는 연관이 깊다고 본다. 프랑스나 독일만 해도 시내버스를 타면 조용한 편이다. 누가 떠들면 앉아 있던 노인들이 먼저 눈총을 보낸다. 영국의 시내버스는 상당히 시끄럽다. 프랑스나 독일만 해도 교사들이 영어권 국가와 비교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이 적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는 질문이 더 없다. 수업은 질의응답이 아니라 주입식 강의 위주다. 강의에 대한 질문도 단순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면 모르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남아 있어 더 그렇다.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최근 ‘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투자국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을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투자국인데도 왜 노벨과학상을 못 타는가’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과 미국을 앞섰고 유럽연합(EU)과 중국에 비해서는 2배 수준이다. 그런데도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없다. 제시된 다양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연구실에서 토론이 활발하지 못하고, 이런 특징이 학교 교육에서부터 비롯돼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이 노벨문학상이나 노벨과학상을 타지 못해 안달이 난 게 세계에 널리 알려진 모양이다. 올 1월 미국 시사문예지 뉴요커는 “한국인은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만 바라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네이처는 활발한 토론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노벨과학상만 바라고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높은 데만 쳐다보지 말고 어디 서 있는지도 내려다 볼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편집증을 가진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박해하거나 악의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편집증이 정신병적 단계에 이르면 조현병(調絃病)이라고 부른다. 강남 ‘묻지 마 살인’ 사건은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여성 혐오’로 규정하고 끝까지 억지를 부리는 것 역시 편집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자는 체포된 직후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여성 혐오로 몰아가는 몰이는 계속됐다. 한 신문은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 1000여 건을 촬영해 일일이 문자화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모공간을 만들어 기념하겠다며 포스트잇을 통째로 서울시로 가져갔다. 색깔이 붉은 훈제 청어(레드 헤링)는 냄새가 독해 사냥감을 쫓던 개가 그 냄새를 맡으면 혼란을 일으켜 사냥감을 놓치게 된다. 여성 혐오라는 잘못된 규정은 레드 헤링 효과를 일으켜 올바른 의제 설정을 방해했다.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처할 것인가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문제로 보는 쪽을 여성 혐오 동조자로 몰아가는 태도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범죄이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여성 혐오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02년 한 정신질환자가 서울 광진구에서 교회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 교회 부설 유치원의 아이들을 칼로 찌른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치원은 외부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돼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그 유치원은 길가에서 바로 교회 주차장을 통해 아무나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었다. 정신질환자는 김일성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숨을 곳을 찾아 교회로 들어갔고 준비해 간 칼도 아닌 유치원에 있던 과도로 아이들을 찔렀다. 그가 “아이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식으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김일성으로 보였다면 이것은 아동 혐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질환자 관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근대화를 속성(速成)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도시’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도시는 익명적이다. 바로 앞집에 사는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른다. 그 익명성 때문에 지하철을 타면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정신질환자나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는 곳이 도시다. 도시의 삶은 정신질환자나 범죄자의 적절한 격리를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쓴 프랑스 학자다. 그가 독창적이었던 것은 서구에서 근대화 초기에 발생한 정신질환자나 범죄자의 격리에 주목하고 그런 격리를 서구 근대화의 한 주요한 특징(물론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취약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 약자 일반이다. 약자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장애인도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유치원생이 피해자가 됐고, 어떤 경우에는 여성이 피해자가 됐다. 서구 선진국의 대도시 도심에도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은 많다.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을 없애면 여성이 타깃이 된 범죄가 줄어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해답이 될 수 없다. 범죄는 여성 공중화장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해답은 여성이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주목할 때 찾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일간베스트(일베)와는 대척점에 있으면서 여성 일베라고도 불리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유명해졌다. 메갈리아와 같은 사고방식에 동조한 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단정했고, 더 이상 단정하기 어렵게 되자 경찰을 비판했고, 경찰도 비판하기 어려우니까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들고 나왔다. 편집증은 어떤 생각에 한번 사로잡히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증상이다. 살인자는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한번 여성 혐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어떤 진실에도 귀 기울이지 않은 것 역시 편집증적인 증상이다. 누구나 망상은 갖는다. 그러나 정상인은 사실에 맞춰 망상을 수정할 줄 안다. 그래서 정상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본 것은 진짜 라스코 동굴도 아니었는데 그렇다. 1963년 프랑스 문화장관 앙드레 말로는 라스코 동굴의 폐쇄를 결정했다. 그러고 만든 것이 원래 위치에서 200m 떨어진 곳에 벽화는 물론이고 동굴을 통째로 본뜬 ‘라스코2’다. 눈을 가린 채 안내돼 동굴 안에 선다면 진짜 라스코인지 라스코2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1만7000년 전 구석기 시대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에서 미술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선사학에선 마들렌 문화라고 부른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라스코 동굴 벽화가, 스페인 북부에서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가장 유명하다. 구석기시대 화가는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은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신석기시대 농사꾼에겐 더 이상 사냥꾼의 예리한 감각은 필요치 않았다. 구석기인의 재현 능력은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사라지고 근대 인상주의에 와서야 비로소 완전히 회복된다. ▷라스코 동굴 벽화가 경기도 광명동굴에 전시되고 있다. 한국에 온 것은 ‘라스코3’다. 라스코3는 라스코2가 미처 복제하지 못한 부분을 복제했다. 진짜 라스코를 볼 수 있었던 때도 폐쇄돼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굴의 깊숙한 부분이 있었다. 그곳에 ‘헤엄쳐 강을 건너는 다섯 마리 사슴’과 ‘들소 앞에 넘어진 새 얼굴을 한 사람’을 그린 유명한 벽화가 있고 그것을 라스코3가 복제한 것이다. 라스코2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라스코3가 국제 전시용으로 쓰인다. ▷광명동굴은 일제강점기 폐광을 개발해 테마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다니엘 올리비에 전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이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라스코3 전시 장소를 찾던 중 광명동굴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이곳에 전시를 제안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라스코 동굴에 가기는 쉽지 않다. 파리에서 자동차로 대여섯 시간 걸린다. 구석기인들이 돌도끼나 들고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달 총선 패배로 새누리당에서 다시 쇄신이 논의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뭘 개혁하겠다면 이제 겁이 난다. 4년 전인 2012년 대선 전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때도 새누리당은 쇄신에 나섰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 밑에서 황우여 원내대표가 한 대표적 쇄신이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은 박근혜 정권을 말아먹었다. 앞으로는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말아먹는 법이 될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는 합의(合意)란 말이 유행했다. 이번에는 협치(協治)라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이 본래의 사회과학적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유행하고 있다. 협치는 영어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말이다. 여기서의 거버넌스는 관(官)의 민(民)에 대한 일방적 통치(統治)와 구별되는 민과 관의 상호 대등한 협치를 말한다. 여야(與野)의 합의나 타협과는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은 여야의 협치 운운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인 양 내세우고 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비극으로, 한 번은 협치라는 소극(笑劇)으로. 협치를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여야의 합의나 타협이라고 해보자. 협치가 결렬될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는 협치는 무의미하다. 그렇게 최초의 협치 시도인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한 편의 웃지 못할 소극으로 끝났다. 과거 정치인들은 최소한 용어라도 정확히 썼다. 대통령제에서는 거국내각은 있어도 연립정부(coalition)는 없다. 박 대통령이 총리와 몇몇 장관 자리를 야당에 준다면 그것은 거국내각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도에서 부지사와 몇몇 국장 자리를 야당에 주고 연정(聯政)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거국내각의 지자체판(版)이지 연정은 아니다. 연정은 의원내각제에서나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 심각한 용어의 혼란은 정치의 혼란을 그대로 반영한다. 국회선진화법은 남경필류의 비박 쇄신파가 주도해 통과시킨 것이다. 최경환 등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했다. 보수는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전통을 존중한다. 보수라면 합의가 되지 않을 때 과반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일상생활에 뿌리박은 민주주의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국회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바꾸는 꼼수는 세상사의 엄중함을 아는 보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비박은 쇄신, 친박은 반(反)쇄신으로 일률적으로 구별할 순 없다. 친박과 비박은 무엇이 쇄신인지를 놓고 싸워야지 서로를 향해 친박이니 비박이니 낙인찍는 것으로 쇄신을 대신하려 해선 안 된다. 다수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지난달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다. 친박 이한구의 공천 전횡이 꼴 보기 싫어 등 돌린 사람도 많지만 비박 김무성의 ‘옥새 나르샤’가 꼴 보기 싫어 등 돌린 사람도 많다. 진단이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수지는 왜 섹시하지 않을까. 현아는, 설현은 섹시한데 왜 수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섹시하지 않을까. 질문이 잘못됐다. 수지는 섹시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수지의 아름다움은 섹시한 데 있지 않고 우아하거나 다른 데 있다. 보수란 그런 것이다. 굳이 섹시해지려고 할 필요가 없다. 수지는 섹시해 보이려고 노력할수록 더 어색할 뿐이다. 협치니, 연정이니 하는 말로 겉멋을 부리지 않아도 보수는 아름답다. 그런 보수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혁신이다. 섹시한 보수를 원하는 의원들이 있다. 유복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덕에 의원까지 됐다. 뼛속 깊이 보수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부모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당을 뛰쳐나가지도 못하면서 꼰대로 보이기는 싫은 쇄신파들이 대개 그런 부류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는 시대의 유행을 좇지 않고 때로 역풍을 맞으면서도 지혜로운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윈드서핑을 해보면 바람을 맞고 있는 돛을 그만큼의 힘으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야 배가 나간다. 진보가 끄는 힘이 강할수록 보수는 더 당겨야 한다. 진보가 끄는데 보수가 끌려가면 배는 멈추고 곧 기운다. 정치는 길항(拮抗)의 힘으로 나아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아이는 지난해 막 중학교에 올라가 새 학기를 맞았으므로 사실 어린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추운 3월, 아빠에게 맞아 살이 말 근육처럼 부은 아이가 티셔츠 차림으로 가출해 새벽 3시 반에 찾아간 곳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아파트였다. 아이는 정확한 호수는 알지 못했다. 경비원에게 선생님께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경비원은 늦었으니 다음 날 오라고 했다. 아이는 갈 곳이 없다며 경비실에서라도 재워 달라고 졸랐다. 아이는 이튿날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다시 ‘훔친 돈이 어디 있느냐’고 추궁했고 답하지 않자 다시 아이를 때렸다. 매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때리다가 제 손을 다쳤으나 그래도 또 때렸다. 새엄마는 아이가 달아나지 못하게 옷을 벗기고 문을 막아섰다. 아이는 5시간 동안 맞은 뒤 추운 방에 방치됐고 다음 날 아침 시신이 돼 있었다. 재판장은 격해져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니 따졌다. “피고인, 인간인가요? 인간 맞나?” 방청석에서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지난달 29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의 일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맞아죽은 아이는 아빠도 좋아하고 새엄마도 잘 따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장에는 아빠에 대해 “신학대에서 교수(정확히는 시간강사)로 일하시고 독일어와 헬라어를 가르치십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썼다. 새엄마에 대해서는 “항상 저를 위해 영어 공부도 하게 해주시고 예쁜 옷도 사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적었다. 천성이 활달한 아이였던지 부모가 딸 학교 행사에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장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도벽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껌을 훔치는 수준이었으나 친구들 가방에 손을 대더니 나중에는 돈도 훔쳤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도벽이 큰아들(19)의 도벽과 무관치 않아 더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부 합숙생활을 하면서 집 밖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못된 친구들에게서 절도를 배우고 동생에게도 가르쳤던 모양이다. 새엄마는 재판 내내 흐느꼈다. 아이는 남편의 세 자녀 중 자기를 가장 잘 따랐다고 했다. 남편이 때릴 때 말리지 않은 것에는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가 도둑질 안 하고 거짓말 안 하는 길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후회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다만 “훔친 돈 있는 곳만 대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아이가 ‘그럼 그 돈 못 쓰죠’라고 답했을 때 나도 모르게 뺨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그런 반응을 보고 얘가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사고방식이 죽음에 이른 매질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누구나 이미 부부가 아이의 시신을 11개월간 집 안에 둔 데서 기괴함을 느꼈을 것이다. 새엄마는 “자고 일어나 죽은 애를 봤을 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애가 살아나서 밥도 먹고 걸어 다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성경에 부활이 있으니까 그런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길 바랐다. 매일매일 옆에서 고대하며 지켜봤다. 그러나 깨어나기는커녕 몸에서 벌레가 나왔을 때 죽고 싶었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목사도 매일 시신 옆에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가 아이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어서 그랬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사이비 교단의 목사도 아니고 독일에서 제대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범죄가 발각돼 처벌받고 매장될 것에 대한 두려움, 버티면 얻을지도 모르는 신학대 교수 자리에 대한 욕망이 기괴한 심리로 포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도 목사이기 전에 가장이다. 처갓집 식구를 포함해 교인 20명에 불과한 개척교회의 목사이고 47세의 나이에도 아직 시간강사다. 경제적 여력이 없다 보니 부인은 어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부부는 세 아이 중 하나도 직접 돌보지 않았다. 큰아들은 가출했고 큰딸(16)은 독일 지인에게 보냈고 죽은 딸은 장모와 처제에게 맡겼다. 아무리 어려운 가장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부부는 죽은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하라는 재판장의 주문에 “널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해 미안하다. 널 사랑한 건 틀림없는데… 용서해 다오”라고 말했다. 사랑했는데도 죽이다니,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한숨만 나오는 완전한 실패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올 3월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이란 책을 냈다. 이 책은 신랄하면서도 탄탄한 논리로 로스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안을 발표했을 때 서울대 로스쿨 교수 59명 전원 명의의 반대 성명서가 발표됐다. 1인 성주(城主)들이 모인 교수사회는 의견이 난분분(亂紛紛)한 곳인데 최고 대학의 교수들이 군대나 회사처럼 일사불란한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서명한 어느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로스쿨이 이대로 가도 된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서울대만이 아니라 전국 25개 로스쿨 전체가 똘똘 뭉쳤다. 이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이 신 교수의 책이다. ―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인가. “로스쿨 교수들은 과거 법학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에서 강의를 한다.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해 각 대학은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새 건물을 짓고 부대시설을 꾸몄다. 교수들은 1주일에 고작 6시간 수업을 하고 웬만하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 반면 로스쿨 학생들은 로스쿨이 본래 예정한 실무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법률시장으로 나온다. 용케 법원 재판연구관이나 검사로 임용되거나 유명 로펌에 들어간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얼치기 변호사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있다.”2류 변호사 만드는 로스쿨 ―다른 로스쿨 교수들 반응은 어떤가. “책 내용에 대해 전제나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면 제가 반박을 하고 또 비판한 쪽에서 재비판을 하면서 논쟁을 벌일 텐데 그런 비판이 전혀 없다. 그것은 책 내용이 맞다는 것이다. 막연히 제 책이 로스쿨을 흠집 내기 위해 쓴 것이라는 비판은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신 교수는 판사 10년, 변호사 5년을 거쳐 법대 교수 재직 17년째를 맞고 있다. 판사 변호사 교수의 경력을 고루 갖춰 로스쿨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로스쿨이 벌써 8년째인데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이제 와서 바꾸기 어려운 것 아닌가. “나는 로스쿨 교수로서 8년을 쭉 지켜봤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전혀 없다. 저처럼 실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법대도 잘 아는 입장에서 볼 때 로스쿨 제도는 절대로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지혜를 모아서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도 로스쿨인데, 뭔가 법조인 양성에 새로 기여한 점이 있지 않겠나.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전공의 다양성만 해도 과거 사법시험에서 합격자를 50, 60명을 뽑을 때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타당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1000명씩 뽑으면서 그런 비판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1000명 시대에는 비(非)법학 인문계 출신만이 아니라 이공계 출신도 많이 들어왔다.” ―로스쿨은 부유층에 유리한가. “그렇다. 변호사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사법시험 때보다 부유층에 훨씬 낮아졌다. 로스쿨 교육과정은 소홀하지만 유력한 부모를 둔 학생은 나중에 좋은 로펌에 들어가 일하면서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받고 법조인으로 커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집 자녀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2류 3류 변호사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한다.”친노가 금수저 돕는 아이러니 ―그런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로스쿨은 노무현 정부하에서 이뤄진 사법개혁 중 하나다.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가 미국식 로스쿨을 모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지 논의는 있었으나 심각한 고민을 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당시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공식석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보다 먼저 미국식 로스쿨을 받아들인 일본의 경험에 관한 논의도 없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누가 주도했나. “1998년 진보정권이 들어선 뒤 기득권층에 재빨리 진입한 ‘진보귀족’들이 사법개혁을 주도했다. ‘한건주의’에 집착한 이들에 의해 미국식 로스쿨 도입 결정이 이미 굳어진 상태에서 이를 추종한 진보 성향 교수들이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도입에 앞장섰다.” 로스쿨 입학에서부터 로펌이나 재조 취업에서 돈 많고 권세 있는 유력 인사들의 자제에게 유리하다는 의혹이 여전하다. 이런 금수저 논란을 무릅쓰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로스쿨 수호에 전투적으로 앞장서는 교수들은 대체로 친노(친노무현) 성향 교수들이다. 서울대의 한모, 조모 교수가 그렇고 경북대의 김모 교수가 그렇다. 신 교수의 책에 “‘○○○ 변호사 아들이 우리 로스쿨에 원서를 냈는데 꼭 합격시켜야 한다’며 동료 연구실을 찾아다니는 교수가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300여 쪽의 책에 나오는 이 한 문장이 거센 논란의 발단이 됐다. 불명예를 떠안게 된 경북대 로스쿨은 신 교수에게 학교의 명예를 위해 ‘청탁 교수가 누구인지’ ‘청탁 학부형과 학생을 밝히라’고 요구한 반면, 로스쿨 공격의 빌미를 잡았다고 여긴 사법시험 존치 모임 쪽은 경북대 로스쿨을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 조사를 받았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나는 공공연한 청탁이 행해진다는 사실을 지나가듯 지적했을 뿐이다. 그것은 책의 큰 주제와도 별 상관이 없다. 경북대 로스쿨은 내가 실명을 밝히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징계 조치하겠다고 압박했으나 해당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경찰 조사에서도 끝까지 익명을 지켰다. 그런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해당 학생과 학부모, 청탁 교수가 누구인지 알려지고 언론에도 이니셜로 보도됐다. 내가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실명이 밝혀진 학생과 학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느 교수가 청탁하고 다녔다는 것과 그 학생이 부정입학했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 일로 또 다른 모함에도 휩쓸렸다는데…. “한 언론이 로스쿨 변호사 모임이 받은 제보라며 ‘신 교수가 청탁 학생의 입학사정 당시 면접위원 3명 중 한 명이며 이 학생에게 변호사 자녀라고 밝히도록 유도하고 다른 면접위원 2명과 달리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것도 바로 신 교수’라고 보도했다. 내가 그 학생의 면접위원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느거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물은 면접위원은 따로 있다. 내가 현장에 있었으니 누가 물었는지 안다. 그러나 밝히지 않겠다.” 신 교수는 지난달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책을 내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인생에 있어서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소회의 글을 올렸다. “휘슬블로어는 고통스럽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많은 판사가 당연하다는 듯 골프 칠 때도 난 골프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판사들에게 참 좋은 때여서 많은 것을 누렸다. 변호사를 하면서는 가족들이 무난히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 다음에 과거 법학부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로스쿨에서 나 역시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렸다. 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향유했고 다른 미련도 없다. 이 싸움을 마지막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 환갑을 넘겼다. 이 일이 끝나면 내 할 일은 다했다고 본다.” ―이번에 싸우는 조직은 대학인가. “그렇다. 법원 바깥에서 법원을 잘 모르듯이 대학 바깥에선 대학을 잘 모른다. 대학 바깥에서는 대학을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보고 있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렇지 않다. 로스쿨은 3년 안에 법학이론과 실무수습의 과정을 거쳐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다고 했으나 거짓이다. 어느 나라도 이런 식으로 법조인을 양성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과중한 수업 부담과 빈약한 법 실무교육 끝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법률시장으로 밀려 나온다. 도대체 법조를 이토록 망가뜨려 놓고 어쩌잔 말인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대학의 자율성이란 미명하에 로스쿨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방치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로스쿨 8년 동안 전혀 감독을 하지 않다가 로스쿨 금수저 논란이 생기니까 뒤늦게 입학과정을 전수(全數) 조사한다고 나섰다. 일본만 해도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회의에 관방장관이 의장, 법무상과 문부상이 부의장이 돼 계속해서 로스쿨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개입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신 교수는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에 이어 서열상 넘버2, 넘버3인 이인복 이상훈 대법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다. 얼마 전에 후배들이 두 대법관과 합동으로 자신의 환갑상을 차려준 사진을 보여주며 뿌듯해했다. 후배 중에는 유남석 광주고법원장, 이광범 변호사도 보인다. 지난겨울 두 대법관 중 한 명이 신 교수에게 “이번에 책을 낼 때는 다른 사람 마음 상하지 않게 하라”는 충고를 했던 모양이다. “당시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내가 공연한 일을 하는 게 아니냐는 자책이 터진 자루에 물 새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내가 이 사회를 위해 꼭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내면의 소리를 억제할 수 없었다.” 환갑이 지난 지긋한 나이에 신 교수는 내부를 향해 또 한번 휘슬을 불었다. 법원에서 첫 번째 그가 불었던 휘슬 소리는 나중에 법조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여러 갈래의 목소리와 합쳐져 사법개혁에 힘을 보탠 바 있다. 로스쿨에서 두 번째 그가 분 휘슬은 과연 금수저 논란에 휩싸인 로스쿨 개혁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신평 교수는▼195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문사철’에 관심이 깊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0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1993년 한 주간신문에 돈 봉투가 오가는 법원의 현실을 고발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1994년 대구경북 지역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대법원장과 싸우다 나왔다는 꼬리표가 붙은 그에게 개업 초기엔 사건 의뢰가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건 수임 1위를 기록했다. 변호사를 5년 남짓 했을 때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변호사 수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교수의 길로 들어섰다. 한강 이남에서 판사를 지낸 사람으로 대학교수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06년 경북대 로스쿨로 옮겼다.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2003년 열린우리당 경북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무특보 이강철 씨와 갈등을 빚은 끝에 정치라는 짧은 외도를 접었다. 시집 ‘산방에서’를 낸 문인협회 회원.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내부고발자’에서 ‘트러블메이커’까지. 그에 대한 재조(在曹) 내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