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김정은 기자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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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정은 기자입니다.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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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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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제사회의 잔혹한 민낯… 배우 이승헌의 연기로 몰입감 더해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다. 조지 오웰이 쓴 원작 소설만큼이나 심오한 주제의식과 모순되고 복잡한 구조를 담았다.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1984’는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와 덩컨 맥밀런의 각색 본을 바탕으로 한태숙이 연출을 맡았다. 소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작에 없는 미래의 북클럽과 호스트(북클럽을 이끄는 리더)를 설정한 점이다. 북클럽 회원들이 읽게 되는 한 권의 책을 매개로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액자식 구성을 띤다. 큰 틀에서 연극 역시 ‘빅브러더’로 대변되는 통제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당의 통제로 인해 개인 행동과 생각마저 감시받는 사회, 절대 권력을 의심하고 저항했다가 가혹하게 처벌받는 개인 등을 그린다. 2013년 영국 초연 공연은 일부 관객이 객석에서 구토를 할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다수 포함됐지만, 한태숙 연출의 한국 공연에선 이보단 수위를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스턴이 당 간부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고문을 받는 극 후반부 일부 장면은 다소 잔혹하게 그려진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 역을 맡은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이승헌의 연기가 단연 인상적이다. 날카로운 눈매와 인상, 폭발력 있는 연기력 등 여러모로 무대 위 이승헌은 완벽한 윈스턴으로 변신한다. 통제사회 시스템을 의심하고 여자친구 줄리아와 함께 조금씩 저항해가는 과정에선 결의와 비장함이, 극 후반부 오브라이언에게 배신당한 뒤 고문 받는 장면에선 처절함과 나약함을 드라마틱하게 연기했다. 11월 1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 (★5개 만점)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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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한밤중에 살금살금… 한나는 뭘 하는 걸까요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 혼자 깨어난 어린아이 한나가 아무도 몰래 겪은 일을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한나는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언니 몰래 언니의 인형을 갖고 놀거나 냉장고에서 우유와 체리를 꺼내 고양이 치로와 함께 나눠 먹는 등 평소엔 하지 못했던 나름의 ‘모험’을 강행한다. 작가는 한나가 혼자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문장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듯 ‘…더래’를 반복한다. 이런 문장들은 한밤중 한나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훨씬 더 깊이 독자와 공유할 수 있게 해 눈길을 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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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누군가의 삶이자 세상인 작은 서점 이야기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쪽의 앨리스섬에서 작은 서점 ‘아일랜드’를 운영하는 에이제이 피크리는 괴팍한 인물이다. 아내가 죽은 후 그의 까칠함은 더 심해졌다. 서점에 들여놓는 책 역시 기준은 하나다. ‘내 취향에 맞느냐, 안 맞느냐.’ 따분하리만큼 똑같은 그의 일상에 연거푸 새로운 인연들이 들이닥친다. 출판사 신출내기 영업사원 어밀리아, 책방 앞에 버려진 아이 미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찾아오는 램비에이스 경관…. 새로운 인연들은 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피크리에겐 노후를 보장하는 보물이 있었다. 미국 문인 애드거 앨런포가 18세 때 단 50부만 익명으로 출간한 희귀본 시집 ‘태멀레인’이다. 4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보장된 것이기에 서점 문을 닫게 되면 이를 경매에 팔아 수익금으로 먹고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차질이 생겼다. 출판사 영업직원 어밀리아를 처음 만난 날 진탕 술을 마셨고, 그날 태멀레인을 도난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서점엔 25개월짜리 아이 미아가 버려졌다. 계획과 달리 아이를 입양하고 아빠가 되면서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재밌는 건 피크리의 인생 자체가 억지스러울 만큼 ‘책’으로 점철된 삶이란 점이다. 까칠한 그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도 여성이 자신과 책에 대한 취향이 같다는 걸 발견했을 때이고, 일상생활의 대화 자체에서도 문학작품은 필수 단어로 등장한다. 세상 모든 인연이 ‘서점’으로 연결돼 있고, 서점이란 공간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장점은 손에 한번 들면 빨리 읽히는 속도감이다. 게다가 동네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때론 지적인 로맨스를, 때론 스릴러를 닮은 반전의 맛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특히 그의 새로운 배우자의 존재가 누구인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태멀레인을 훔친 범인이 누구인지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각 장의 첫 페이지는 피크리의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한 논평이다. 과하게 피크리의 취향위주의 분석이지만, 이를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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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석 이름 대신 ‘그 친구’로… 그래서 더 그립네요”

    11월 공연되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가객’ 김광석(1964∼1996)과 그가 활동했던 그룹 ‘동물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동물원의 멤버 박기영(52)이 음악감독, 가수 겸 배우 홍경민(41)이 극중 주인공 ‘그 친구’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을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작품은 ‘혜화동’ ‘잊혀지는 것’ ‘변해가네’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동물원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기존의 대중음악을 활용한 뮤지컬)이다. 홍경민이 맡은 그 친구는 바로 김광석이다. 저작권 등이 해결되지 않아 그 친구라는 모호한 이름이 됐다. 동물원 멤버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보니 박기영에겐 매 장면이 ‘과거와의 만남’이다. 그는 “특히 그 친구와 갈등을 벌이고 그룹이 둘로 나뉘는 장면까지 광석이 형이 했던 말, 멤버들 간의 불편했던 대화들이 압축돼 있다”며 “당시 실제 멤버끼리 침묵으로 눈빛으로 나눴던 감정들이 무대에선 대사로 처리되는데, 광석이 형이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단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홍경민에게도 김광석은 특별한 존재다. 그는 “태어나 처음 본 연예인이 김광석 선배였다”며 “1989년 중학생 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라이브로 부르는 선배의 공연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처음 뮤지컬에 도전한 것도 동물원의 노래를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박기영은 동물원 1집 앨범 녹음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당시 드라마 음악 작업을 하던 산울림 김창완 형의 여의도 작업실에서 녹음했던 게 1집 앨범이다. 창완 형은 ‘이대생들에게만 팔아도 1000장은 팔 수 있다’며 팀명도 아예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로 지으라는 농담 섞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로 수록돼 뒤늦게 큰 사랑을 받은 ‘혜화동’에 얽힌 뒷얘기도 있다. 박기영은 “2집 앨범 B면 제일 마지막 수록곡”이라며 “일종의 ‘버리는 곡’으로 힘도 빼고 설렁설렁 불렀는데 훗날 빛을 발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홍경민은 동물원을 이해하기 어려운 ‘전설’에 비유했다. “신기하게도 동물원 노래는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는데 원곡을 뛰어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음악이 복잡하지 않아 덧칠하고 바꾸기 참 좋은 곡들인데 손을 대면 될수록 특유의 맛이 사라진다.” 그러자 박기영은 “음악의 벽이 아니라 아무리 풍성하게 음악적 구성을 바꿔 들려줘도 사람들에게 각인된 기억의 벽 때문일 것”이라며 “뮤지컬 곡 편곡도 원곡 느낌에서 크게 안 벗어나도록 통기타 위주의 반주로 했다”고 했다. 한편 박기영은 최근 김광석의 딸 서연 양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서연이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는데 최근까지 전혀 몰랐다. 우리가 과연 김광석의 친구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공연은 11월 7일∼2018년 1월 7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6만6000원∼9만9000원, 1577-336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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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출가 고선웅 “김주원은 천생 배우”… 발레리나 김주원 “내게 선물 같은 작품”

    연극계 ‘뇌섹남’으로 통하는 고선웅 연출(49)과 국내 무용수 중 아름다운 지젤라인(목에서 어깨, 팔로 이어지는 선)의 대명사로 꼽히는 발레리나 김주원(40)이 연극 ‘라빠르트망’에서 처음으로 합(合)을 맞춘다. 공연을 일주일가량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에선 묘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특히 7월 캐스팅 발표 직후 다소 긴장감이 묻어나던 김주원은 말투와 표정에서 180도 달라져 있었다. 고 연출은 “김주원은 천생 배우”라며 “연기에서 풋풋함과 신비주의가 느껴진다. 무대 위에서 집중할 때 확 변하는 배우 기질이 다분하다”고 평했다. 김주원은 극중 남자 주인공 막스가 첫눈에 반하는 발레리나 리자 역을 맡았다. 고 연출이 김주원에게 가장 먼저 준 디렉션은 “맘껏 욕을 하라”는 주문이었다고 한다. 김주원은 “황당한 디렉션이라 밤새 고민했다”며 “제 안에 악도 있고 깡도 있는데, 목소리가 작은 데다 말로 대사를 전달한 적이 없어 그게 잘 표현이 안됐다. 근데 디렉션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묘하게 악바리 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실 김주원의 연극 출연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의외의 캐스팅’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에 대해 고선웅은 “김주원을 캐스팅했을 때 사실 악수(惡手)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릿속에서 리자는 김주원밖에 없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리자로 완성돼 있다. 연극배우들이 김주원의 연기를 보게 되면 ‘납득이 가는 캐스팅이네’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주원은 발레 공연 대신 모두의 예상을 비켜간 ‘연극’이란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연극 ‘라빠르트망’은 내게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연습실에 연출가와 동료 배우들이 들어오면 심장이 뛴다”며 “연극 작업을 하며 배운 감정 표현 등의 상당 부분이 나중에 춤을 추는 데 피와 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춤 역시 이 작품 후로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김주원은 고 연출에 대해 “저도 살짝 정상이 아니긴 하지만, 고 연출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 연출님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요. 시골 밭에서 금방 김매고 나온 농부 같은 느낌이다가도, 세련된 뉴요커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가끔은 섹시한 20대 여자 같을 때도 있고, 물질하는 억센 해녀 같은 느낌도 있어요. 너무 다채롭고 매력적인 분이에요.” 각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로움이 넘친다. 김주원은 “국립발레단 단원 시절에도 늘 예술의전당 앞에만 가면 너무 행복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말했고, 고 연출 역시 “스무 살 때부터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맞장구쳤다. 김주원은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주위의 무용수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파트너와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고 연출도 “배우, 스태프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들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며 자신만의 연출 노하우를 밝혔다. 10월 18일∼11월 5일 서울 LG아트센터, 3만∼7만 원. 02-2005-100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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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성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잘나가는 연출가와 극작가가 빚어낸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서울시극단 단장인 김광보 연출과 스타 작가 장우재가 11년 만에 함께 작업한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욕망과 ‘찌질함’을 따뜻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배경은 재건축을 앞둔 20년 된 낡은 빌라다. 304호에 거주하는 광자 할머니는 빌라 옥상 위에서 이웃과 나눠 먹을 고추를 정성스레 기른다. 상고 졸업 후 전화국을 다니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던 201호 거주자 현자는 그런 광자 할머니가 늘 눈엣가시다. 입주자들로부터 재건축 동의를 받아내며 돈 버는 데 혈안인 현자와 달리 광자 할머니는 지금의 빌라를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자가 광자 할머니의 고추를 수십, 수백 개씩 따가면서 사달이 난다. 항의하는 광자 할머니에게 현자가 “혼자 사는 년”이라며 욕을 퍼붓자 광자 할머니가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그리고 며칠 뒤 숨진다. 이 사건을 두고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과 태도를 보이며 갈등 구도를 드러낸다. 작품의 백미는 단연 배우 고수희의 찰진 연기다. 고수희는 ‘내 것은 귀하지만, 남의 것은 하찮다’는 천박한 사고의 ‘막장녀’ 현자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도덕성을 잃어가는 막장 현대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에선 아이러니하게도 러닝타임 내내 따뜻함이 느껴진다. 블랙코미디로 점철된 작품으로 맛깔 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정감 가는 연기는 마치 주말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만∼5만 원. 02-399-1114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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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경제적 불평등 벽 허문 역사적 사건은

    억만장자가 몇 명 있어야 세계 인구 절반의 순자산과 맞먹을까. 2015년 기준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의 자산과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 명의 개인 자산의 합은 비슷했다. 경제 불균형은 국가 내부에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최상위 1% 가구의 소득이 전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8%로 3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하위 90% 소득 비중은 49.7%로 역대 최저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역사학자이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저자는 석기시대부터 21세기까지 인류사에 나타난 방대한 경제사를 조명하며 역사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에 주목한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종말 이야기를 다룬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를 본떠 역사상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킨 요인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고 ‘평준화의 네 기사’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평준화의 네 기사’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저자가 꼽은 평준화의 네 기사는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전염병이다. 저자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불평등의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며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 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역사상 최대의 평등화 동력’으로 꼽는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이다. 1850년 문호개방 이후 불평등이 심화된 일본은 1938년 상위 1%의 부자가 총 신고소득의 19.9%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들의 점유율은 7년 만에 6.4%로 떨어졌다. 손실 절반 이상은 최상위층 부자 가운데서도 가장 부유한 0.1%에서 나타났다. 남성 인구의 25%가 동원된 2차 대전 도발이 그 원인이었다. 저자는 “전시의 정부 규제, 인플레이션 및 물리적 파괴는 소득과 부의 분배를 고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1차 대전 이후 혁명으로 가장 극적인 불평등 감소가 뒤따른 곳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였다. 혁명 지도자들이 부농들의 토지재산권 국유화와 은행 재산 압수 조치 등을 벌인 결과 제정 러시아 말엽 0.362이던 지니계수가 1967년 0.229로 완화되며 불평등 간격이 좁혀졌다. 저자는 국가 실패로 인한 불평등 완화 사례로 소말리아를 꼽는다.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뒤 기존에 편파적인 혜택을 전유하던 일부 파워 엘리트 집단이 무너졌고, 1997년 0.4였던 소말리아 지니계수는 이웃 국가와 서아프리카보다 낮아졌다. 흑사병과 페스트 등 각종 대형 전염병도 불평등의 완화를 가져왔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되면서 반대급부로 노동가치 상승, 임금 상승 효과가 동반돼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는 효과가 뒤따랐다. 저자가 꼽은 ‘평준화의 네 기사’는 ‘폭력적인 재난’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저자는 평준화의 규모 역시 폭력의 규모에 따라 달라졌다고 본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안에는 다양한 연구자료, 역사적 기록 등이 녹아 있어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다만,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안 제시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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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무살 난타, 성장통 딛고 재도약”

    “20년 사랑받은 것 이상으로 40년, 60년 롱런하는 ‘난타’를 만들겠습니다.” 1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난타 전용극장에서 열린 ‘난타 20주년 기념 특별 간담회’에 참석한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60)의 소회다.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 난타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송 감독을 비롯해 원년 멤버인 배우 류승룡, 김원해, 김문수, 장혁진 등이 총출동했다. 1997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난타는 한국 전통가락인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 국내 최초의 비언어극이다. 송 감독은 “1997년 난타 초연 공연을 앞두고선 표가 전혀 팔리지 않아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 공연 동호회분들을 중심으로 초대권을 뿌려 객석을 메우곤 했다”며 “얼마 안 가 ‘새로운 공연이 나타났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이 이어졌고, 어느덧 난타는 20년간 꾸준히 국내외 관객의 사랑을 받는 공연이 됐다”고 말했다. 난타는 지난달 기준 누적 공연 횟수 4만600여 회, 누적 관람객 수 1282만 명을 기록하며 20년간 꾸준히 국내외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총 57개국 310개 도시에서 공연된 난타는 서울 명동과 홍익대 앞, 제주를 비롯해 태국 방콕 등 5개 전용극장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확산 제한 정책)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난타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인 관광객 전용관인 충정로 난타극장도 12월 폐관하기로 했다. 송 감독은 “가장 어려운 때 20주년을 맞고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며 “미국 하와이, 태국 파타야 등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8년부터 5년간 난타에 출연한 배우 류승룡은 “가장 뜨겁고, 무서울 게 없었던 청춘을 고스란히 담았던 공연이 바로 난타”라며 “난타를 빼놓고는 인생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배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1997년에 합류해 10년간 난타에 출연한 김원해는 “오디션이 아닌 송승환 감독의 ‘낙하산 인사’로 1997년 난타에 합류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1993년 송 선배와 연극을 같이 할 때, 제가 손 선배 머리에 흑채도 뿌리고 심부름도 도맡아 하는 이른바 몸종 후배였다”면서 “공연에서 장구 치고 판소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시고 기억하셨다가 난타에 합류시켜 주셨다”며 웃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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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을엔 ‘실험 연극’ 바람이 분다

    올가을 대학로가 실험 연극으로 물든다. 22일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서울연극협회가 준비한 ‘제7회 서울미래연극제(ST-Future)’와 ‘2017 서울연극폭탄(ST-BOMB)’ 무대가 동시에 펼쳐진다. 두 연극 축제 모두 실험적인 국내 창작극을 발견하고 해외 무대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미래연극제가 선보이는 7개 작품은 희곡을 넘어 다양한 표현 방법을 활용 및 개발한 창작 작품들이다. 장르의 경계가 없는 실험과 시도가 돋보인다. 해보카 프로젝트의 ‘씹을 거리를 가져오세요’는 다큐멘터리 시어터를 차용해 ‘화’라는 감정 밑에 숨겨진 것을 찾아 나선다. 이를 위해 창작진은 한강 다리 위 등에서 텐트를 치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의 ‘분노’를 수집해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 공연에선 곳곳에서 수집한 다양한 관객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욕망과 삶을 이야기한다. 12∼15일 알과핵 소극장. 예술단체 인테러뱅의 ‘VISUS-동물농장: 두 발은 나쁘고 네 발은 좋다’(11∼15일·드림씨어터)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각색해 무대에 올린다. 극단 시지프의 ‘[On-Air] BJ 파우스트’도 주목할 만하다. 페이스북 실시간 방송을 통해 무대와 객석, 그리고 극장 밖 대중까지 접촉하며 연극의 소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11∼15일 드림아트센터 4관. 서울연극협회는 참가작 중 3개 작품을 베스트 작품으로 선정하고, 23일 폐막식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선정된 작품들은 서울연극폭탄(ST-BOMB)의 네트워크를 통해 본격적 해외 진출을 모색한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서울연극폭탄(ST-BOMB)은 국내 작품의 진출과 해외 우수 작품 초청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이번에는 동유럽 권역을 조명한다. 루마니아 토니불란드라 극단의 ‘오셀로’가 13일부터 나흘간 동양예술극장 2관 무대에 오른다. 이 외에도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권의 연극 축제 예술감독들과 테이블 토크를 진행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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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수-박성우 “같은 규복役… 형은 야성미, 저는 모성애 자극”

    한국 최고의 현대 희곡으로 손꼽히는 차범석의 ‘산불’이 창극이란 새 옷을 입는다. 2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극 ‘산불’에선 국립창극단의 젊은 피 김준수(26), 박성우(27), 이소연, 류가양이 남녀 주인공 규복과 점례, 사월을 맡아 열연할 예정이다.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대표가 연출을, 영화 ‘부산행’ ‘곡성’ ‘타짜’ 등에서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장영규가 음악 감독을 맡았다. 360도 회전 나선형 무대에 1000그루 이상의 대나무로 만든 숲과 실제 크기를 방불케 하는 추락한 폭격기 모형 등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만들 예정이다.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은 “새로운 산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점례와 사월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규복 역에 더블 캐스팅된 ‘국악계의 아이돌’ 김준수와 창극단의 신예 박성우를 지난달 26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규복이라는 한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김준수와 박성우는 여러모로 180도 다른 느낌이다. 이성열 연출도 “김준수의 규복은 사슴을, 박성우의 규복은 들개를 떠오르게 한다”고 평했을 정도다. 김준수는 “성우형의 규복에선 야성미와 박력이 느껴지는 반면 저는 점례와 사월 사이에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규복을 연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도 “저는 통이 크고, 준수는 호소력이 짙다”고 말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소리꾼 김준수는 중앙대 3학년이던 2013년 22세의 나이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국립창극단 창단 51년 만에 최연소 입단이었다. 입단 이후 ‘메디아’ ‘배비장전’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등 굵직한 신작에서 주연만 꿰차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고,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엠넷(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KBS ‘불후의 명곡’ 등 방송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며 폭발적 관심도 끌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김준수 대기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팬들은 200여 명. 창극계에선 이색적 풍경이다. 반면 지난해 유태평양 등과 함께 입단한 박성우는 이번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당초 규복 역에는 김준수만 캐스팅됐지만, 음악감독 장영규의 강력한 추천으로 규복 역에 뒤늦게 합류했다. 박성우는 “대장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감사하게도 규복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연기하게 됐다”며 “국립극장 자료실에 가서 과거 창극단의 ‘산불’ 공연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주역 데뷔는 늦었지만, 해오름극장 무대 경험은 김준수보다 선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립창극단의 ‘청년시대’ 무대에서 아역배우로 일찌감치 무대를 맛봤다. 국악중, 국악고 시절엔 태권도와 유도 선수 생활을 병행했고 한양대 국악과를 다닐 때엔 대학로 연극무대에도 섰다. “영화와 뮤지컬 무대도 도전하고 싶어요.” 국립창극단의 신작 ‘산불’은 25∼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7만 원. 02-2280-4114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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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퓨전 ‘꼭두’ 만나볼까, ‘브로드웨이…’로 갈까

    기울었던 달이 가득 차 오르는 추석, 명절 나들이를 공연으로 즐겨 보자. 긴 연휴 동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작이 적지 않다. 게다가 할인해 주는 공연도 많아 가격 부담도 평소보다 덜하다. 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되는 ‘꼭두’는 영화배우 탕웨이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맡고, ‘군함도’ ‘부산행’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김수안이 출연한다. 상여에 장식된 나무 조각을 가리키는 ‘꼭두’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와 연극, 국악과 전통무용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작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추석 연휴인 10월 4일부터 8일까지의 공연을 예매하는 관객에게는 전석 5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3만∼5만 원. 02-580-3300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9일까지 전 좌석을 ‘1+1’ 특가 할인으로 제공한다. 6만∼13만 원. 1588-5212 뮤지컬스타 임태경, 마이클 리, 한지상이 출연하는 ‘나폴레옹’은 9일까지 원래 가격인 6만∼14만 원에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또 같은 기간 지방에서 서울로 역귀성하는 관람객에게는 역귀성 할인 40% 혜택을 제공한다. 샤롯데씨어터. 1577-3363 영국, 미국에 가지 않아도 해외 유명 연극을 서울 도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상영회도 볼만하다. 국립극장은 3일부터 8일까지 NT Live ‘프랑켄슈타인’ ‘워 호스(War Horse)’ ‘헤다 가블러’를 상영한다.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이 영미권 연극계 화제작을 영상 촬영해 전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추석 당일인 4일에는 3개 작품을 연달아 상영한다. 1만5000∼2만 원. 02-2280-4114 추석 연휴 동안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 ‘현존하는 최고의 프리마돈나’ ‘21세기 오페라의 여왕’으로 통하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46)와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40) 부부가 1년 6개월 만에 내한해 오페라 아리아로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콘서트홀. 7만∼35만 원. 02-541-3173 스타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27)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낭만·현대 작곡가들이 오로지 더블베이스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6만 원. 1544-1555김정은 kimje@donga.com·김동욱 기자}

    •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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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과 만나 더 신나게 아리랑 난장

    ‘2017 서울 아리랑 페스티벌’이 13∼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2013년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축제로 올해로 5회를 맞았다. 특히 올해는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열정의 노래, 아리랑’을 주제로 열린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슬로건인 ‘하나의 열정’(Passion Connected)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축제 기간 3일 동안 요일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첫날인 13일에는 전통음악과 클래식 앙상블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개막공연이 펼쳐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원일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가 이끄는 50인조 서울 아리랑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국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앙상블 사운드를 선보인다. 안숙선 명창, 소리꾼 장사익, 국악인 최수정과 뮤지컬 배우 카이가 출연하고 200여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2일 차인 14일은 ‘청춘열정’이란 주제로 광화문광장을 젊은이들을 위한 뮤직페스티벌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킨다. 대중음악을 통해 아리랑의 기운을 발산하는 ‘광화문뮤직페스티벌’에는 가수 헤이즈, 밴드 노브레인, 잠비나이 등이 참여해 무대를 꾸민다. 신진 아티스트를 위한 광화문광장 버스킹 무대인 ‘광화문음악소풍’, 국악뮤지션리그 ‘청춘만발’의 결선무대 등도 준비된다. 마지막 날인 15일은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인 ‘아리랑 난장’이 마련된다.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측 6차선 도로를 막고 진행되며 100여 개 단체 2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한국형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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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환경운동, 메시지만큼 중요한 건 마케팅”

    ‘환경운동가들이 성공적인 환경운동을 이끌기 위해선 사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등산용품과 각종 의류를 제작해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 ‘파타고니아’. 이 회사는 1985년부터 매출액의 1%를 숲과 사막, 강과 해변 등을 지키는 지역 환경단체 ‘활동가 회의(tools for activists conference)’에 기부하고 있다. 책은 파타고니아의 환경운동 지원과 활동가 회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엮은 책이다. 활동가 회의는 여느 환경단체보다 더욱 기업적 사고가 강하다. 이윤 창출적 측면이 아닌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다. 환경운동에 있어서도 마케팅과 효과적인 전략, 전술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비즈니스, 캠페인 전략, 마케팅, 조직, 모금,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교섭 활동, 기업 협업, 환경 경제학, 시각 데이터 등 총 11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각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성공한 환경운동에 관해 토론한 내용을 정리했다. 한 예로 캠페인 전략 기조연설을 맡은 브라이언 오도널의 사례는 이상을 추구하며 전략이 부재한 일부 환경운동가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오도널은 워싱턴 내셔널몰 기념공연에서 열린 한 시민단체의 집회에 우연히 참가하게 된다. 단체는 자신들의 주장을 의회에 호소하고자 수십 대의 버스를 준비해 수천 명을 동원했다. 하지만 당시 어디에도 TV 카메라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의회의 반응도 덤덤했다. 게다가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535명의 의원들은 당시 워싱턴에 없었다. 국회 회기가 끝난 시기였기 때문이다. 오도널은 이처럼 대개 환경단체가 정확한 전략 없이 그저 집회를 열고 메시지만 외치는 전술에만 집착하면서 ‘운동을 위한 운동’ 수준에 그쳐 실질적 환경 보호를 위한 성과를 거두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세련된 책 편집과 다양한 환경운동 활동 모습 및 자연 살림 및 동식물 사진 등이 수록돼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를 더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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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탁금지법 1년… 공연계 표정은

    《 “공연계 10여 년 동안 올해만큼 힘든 적은 없었어요.” 한 클래식 기획사 대표가 최근 공연계 모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청탁금지법이 28일 시행 1주년을 맞는 가운데 기업들의 협찬과 후원에 크게 의존해왔던 공연계는 잔뜩 움츠린 상황이다. 내년부터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 20∼40% 수익 감소에 깜깜한 미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대형 클래식 공연이다. 시장 자체가 작아 기업 후원 없이는 1회에 5억∼10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2500석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든 객석을 20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아야 5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빈체로, 크레디아, 마스트미디어 등 대형 클래식 공연 기획사들은 대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고 제작비 일부를 메워왔다. 보통 전체 티켓의 30∼40%를 기업 후원사에 제공했다. 기업들은 이런 티켓을 고객 초청행사 등 마케팅에 활용했다. 하지만 초대권 제공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기업들은 후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인 상황이다. 올해 3∼5월 한국메세나협회가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활동 관련 지출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는 응답이 23.8%에 달했다. 한 기획사 대표는 “공연을 1, 2년 전부터 준비하면서 후원받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올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라며 “하지만 내년 공연의 경우 기업 후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기획사 대표도 “지난해보다 수익이 20∼40% 줄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라고 했다. 반면 뮤지컬, 연극 공연은 상대적으로 기업 후원이 적어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뮤지컬 연극 등 공연 티켓을 단체로 구매하는 기업의 큰손은 카드 회사였다. 이들은 연말에 실적이 높은 고객들에게 감사 선물 차원에서 공연 티켓을 구입해 무료로 제공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이 방식이 법에 저촉될 소지가 커지자 카드사들은 자사 카드 결제 시 ‘1+1 티켓 판매’를 내세워 5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줬다. 뮤지컬 ‘벤허’를 제작한 NCC는 “제작사 입장에선 과거 기업이 티켓을 단체 구매하던 것과 효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뮤지컬 ‘아이다’ ‘맘마미아’ 등을 제작한 신시컴퍼니 측도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에게 주려고 단체로 구매하는 티켓은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아 뮤지컬 시장이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스타 마케팅과 지방 공연 활성화 필요 언제까지나 기업 후원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공연계는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을 줄이고 실력은 좋지만 국내에 덜 알려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게 대표적이다.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국내 스타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팬들이 좀더 찾을 수 있는 공연을 많이 기획하고 지방 공연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공연계에 대한 청탁금지법 적용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뮤지컬 제작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선물 상한액인 5만 원 이하로 티켓 가격을 책정하기는 무리”라며 “문화 향유 차원에서 유동성 있는 상한액 조정이 뒤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욱 creating@donga.com·김정은 기자}

    •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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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의 종이배… 서울 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에서 영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특별했다. 고대 올림픽의 탄생지이자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그리스의 땅 아테네에서 108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의 이목은 그리스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개막식에 집중됐다. 수백 개의 북이 울리는 웅장한 배경음악 사이로 하얀 빛줄기를 뿌리며 혜성 하나가 올림픽 스타디움 바닥에 떨어졌고, 조명이 환하게 켜지며 스타디움 바닥은 거대한 호수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했던 에게해(海)를 상징하는 호수에 한 어린이가 대형 종이배를 타고 입장해 중앙 무대에서 기다리던 콘스탄티노스 스테파노풀로스 당시 그리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세계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지낸 그리스 출신 예술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53)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공동 제작에 참여한 신작 ‘위대한 조련사’ 내한 공연을 위해서다. 2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많이 회자된 종이배 장면은 사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장면”이라고 고백했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 장면에서 어린 소년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던 순간이 제겐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어린 소년이 종이배 모양의 보트를 타고 물을 가로지르던 장면의 모티브가 됐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은 한 국가의 전통 문화와 역사, 철학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기회”라며 “쇼 비즈니스보다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캐릭터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한국 관객에게 처음으로 선보일 ‘위대한 조련사’는 올해 프랑스 아비뇽 축제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다. 그는 “10여 명의 출연자가 ‘인간 발굴’이라는 주제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작품이다. 장르 역시 연극, 무용, 서커스 등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 ‘복합장르’에 속한다. 아비뇽 페스티벌 참가 당시 ‘비주얼이 뛰어난 복합 연극’ ‘정해진 의미가 있지 않고 의미를 알려주지 않아 보는 것이 그대로 와 닿는다’ 등의 호평을 받았다.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표현하며 순수 예술로의 회귀를 추구하고 싶었다. 알쏭달쏭하지만, 한국 관객에게 많은 영감을 선물할 수 있길 기대한다.” 28∼30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3만∼7만 원. 02-2098-2982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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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가 된 객석… 신선하지만 다소 산만

    ‘신선한 시도였지만, 다소 산만했다.’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객석 입장부터 여느 공연과 달랐다. 단원들은 입장을 위해 한 줄로 늘어선 관객 100여 명에게 이상의 데스마스크 소품과 흰색 봉투를 나눠줬다. 극장 입구에서 무대까지 이어지는 긴 통로 사이를 배우와 관객이 뒤섞여 걷는데, 곳곳에서 ‘한 사람의 마지막 얼굴을 보러 가네’라는 대사가 들린다. 실제 시인 이상이 죽자 도쿄 유학생 13인이 그의 얼굴을 본뜬 데스마스크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극중 이 마스크는 작품을 풀어 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관객은 러닝타임 내내 이 마스크를 쓴 채 관람해야 한다. 극 초반 일부 배우들도 같은 데스마스크를 쓰고 연기한다. 공연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이머시브’ 형태다. 초반 10여 분 동안 관객들은 무대 한복판에 선 채 앞뒤좌우로 이동하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극이 시작되고 18분이 지난 시점에 배우들은 관객을 한쪽 객석으로 안내했고, 그때부터 앉아서 관람할 수 있었다. 줄거리는 원작과 결을 달리한다. 창작가무극에선 이상이 죽은 뒤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오감도 1호 속 ‘13인의 아해’, 자신의 애인이었던 금홍, 주변의 문인인 김기림 박태원 변동림 김유정 등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묻는 과정을 그렸다. 무대를 100% 활용한 것은 신선했으나 지나치게 움직임이 많은 동선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일부 대사와 노래가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30일까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 1544-1555 ★★★(★5개 만점)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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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직장 상사가 사이코패스라면?

    호감 가는 외모, 유창한 언변, 높은 학력, 그럴싸한 직업….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사람이지만, 함께 조직 생활을 하는 동료들에게 심적 고통을 안기는 사람들이 있다. 공감능력 없는 고장 난 인격의 소유자들로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자기만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 그래서 타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사람…. 범죄심리학의 대가인 저자는 이들을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저자는 범죄 현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사이코패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일상에 파고들어 있는 두 얼굴의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의 유형을 자기중심적인 ‘막무가내 사이코패스’와 매력적인 모습 뒤에 진짜 속마음을 숨기며 사람을 조종하는 ‘치명적인 사이코패스’로 구분했다. 두 유형 모두 삶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태도가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맞닥뜨린다.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사는 게 무척 힘들다고 여기고, 과도하게 극적이며 감정적이다. 저자는 특히 치명적인 매력을 활용하는 사이코패스에 초점을 맞췄다. 각 장마다 소설과 심리학 이론 부분이 교차하도록 편집돼 있다. 특히 이 유형의 데이브라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인 점이 흥미롭다. 그가 어떻게 거짓으로 능력을 부풀리고 주변 사람들을 조종해 실력자들을 주저앉힌 뒤 조직 내 실세까지 몰아내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며 사이코패스에 대해 분석한다. 조직 생활을 하며 사이코패스와 함께 일할 때 필요한 대처 방식을 정리한 부분도 나름 쏠쏠한 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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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객석, 무대의 일부가 되다

    요즘 공연계의 화두는 형식 파괴를 의미하는 ‘이머시브(Immersive)’다. 엄격하게 구분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공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보니 배우는 객석에서 연기를 하고, 관객은 공연장 어디에나 앉을 수 있고, 공연 중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다. 때로는 관객을 참여자로 끌어들여 전통적인 관람자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지난주 공연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개막작 클루지 헝가리안 시어터의 ‘줄리어스 시저’의 첫 장면은 객석 2층 난간에 매달린 배우가 객석에 앉은 관객을 로마 시민으로 가정하고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20여 명의 배우들이 러닝타임 내내 객석의 통로를 주요 동선으로 사용했고, 관객들은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마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머시브 공연의 힘은 기계적으로 구분된 공간의 경계를 허문 변화로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관성적인 일상생활에서도 발상의 전환이라는 변화가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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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공연 도중 지진 훈련하는 일본… 한국은?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관객분들은 직원의 지시에 따라 신속히 대피해 주십시오.”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대극장. 테너 기시나미 아이가쿠(岸浪愛學)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르던 도중 지진 발생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페라 성악팀 ‘피봇’의 공연이 시작된 지 고작 17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극장 객석에 앉아 있던 1200여 명의 관객들은 하우스매니저들의 안내에 따라 차분히 극장 밖으로 7분 만에 대피했다. 일본 신국립극장이 마련한 제2회 피난 체험 오페라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재난 상황을 불시에 연출해 출연자 및 관객, 극장 관계자들이 피난 훈련을 하고 훈련 종료 후 다시 공연을 이어가는 방식의 공연이다. 2014년 첫 피난 체험 공연을 시작으로 이번이 두 번째다. 무료로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재난 훈련 콘서트’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재난 대피 훈련 콘서트의 목표는 재난 안내 방송 후 10분 이내에 1200명 관객 전원이 대피하는 것이었다. 이날 공연에선 7분 만에 모두가 대피했다. 극장 밖으로 일사불란하게 대피한 관객들은 시부야 소방서 관계자들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다시 극장으로 이동해 1시간가량 오페라 공연을 관람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예술의전당도 2014년 6월 IBK챔버홀에서 문화가 있는 날 공연으로 열린 ‘아티스트 라운지’에서 관객 참여 화재 대피 훈련을 연 바 있다. 공연 관람 후 관객 400여 명과 직원들이 무대에 화재가 났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응 훈련을 펼쳤다. 이외에도 예술의전당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간 4회씩 주기적으로 재난 대비 훈련을 실시한다. 국립극장 역시 1년에 6회가량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난 대비 훈련을 실시 중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지진과 화재 대피 훈련뿐만 아니라 심폐소생술, 소화전 사용 방법 등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지도록 실습 훈련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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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6시간 춤 연습, 공부보다 재밌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2010년 국내 초연 이후 7년 만에 돌아왔다. 2005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1980년대 광부들이 대파업을 벌이던 시기 영국의 한 탄광촌에 살던 빌리가 우연히 접한 발레에 빠져들어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여정을 그렸다. ‘빌리…’는 아역 배우가 주인공이다. 아역 대다수가 프로무대의 경험이 적다 보니 ‘빌리’ 역의 오디션은 그야말로 ‘흙 속의 진주’를 찾는 과정으로 유명하다. 10개월간의 오디션에서 40 대 1의 경쟁을 뚫고 천우진(13), 김현준(12), 성지환(11), 심현서(10), 에릭 테일러 군(10)이 당당히 빌리 역을 차지했다. 공연을 두 달여 앞두고 18일 서울 중구 다산동 뮤지컬연습장에서 5명의 소년을 만났다. 이국적인 외모로 벌써부터 팬 층을 확보한 에릭 테일러 군은 최종 오디션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재도전 끝에 다섯 번째로 합류를 결정지었다. 에릭은 “엄마 아빠가 첫 데이트 때 봤던 영화가 ‘빌리 엘리어트’라 우리 가족에겐 소중한 추억과 같은 작품”이라며 “탈락한 뒤에도 꾸준히 애크러배틱, 탭댄스 등을 연습하며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 애슐리(8)는 그의 든든한 무대 선배다. 에릭은 “2년 전 여동생이 뮤지컬 ‘원스’에서 아역 배우로 섰던 공연을 지겨울 정도로 챙겨 봤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빌리 역에 도전하게 된 데엔 원작 영화와 뮤지컬의 팬인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천우진 군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열혈 팬이었던 엄마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오디션이 진행될수록 빌리가 되고 싶다는 나 자신의 욕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5명 중 심현서 군은 유일하게 여섯 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심 군은 “어릴 때 학원에 가면 저만 남자아이라 놀림을 받곤 했다”면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리노가 되려고 애썼던 빌리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빌리 친구인 마이클 역에 도전했다가 되레 주인공 ‘빌리’ 역을 맡게 된 김현준 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영국에서 ‘빌리…’를 봤을 때는 그저 재밌고 좋았는데, 얼마 전 일본에서 다시 볼 땐 ‘나도 저 장면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7개월간 이들은 주 6일 매일 6시간 동안 애크러배틱, 탭댄스, 발레, 필라테스 등을 배웠다.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들이 꼽은 가장 애착 가는 장면은 뭘까. 천우진·심현서 군은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빌리의 꿈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드림발레’를, 에릭·성지환·김현준 군은 화난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1막 마지막 장면의 ‘앵그리 댄스’를 꼽았다. 11월 28일∼2018년 5월 7일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02-577-1987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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