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그린다’는 건 현재진행형 단어잖아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공연장에 펼쳐지는 순간 속에서 늘 뭔가를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수연(28)이 2023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활동한다. 지난해 5월 몬트리올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피아니스트 최초로 우승한 그는 새해 ‘화음(畵音):그림과 음악’을 주제로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에서 다섯 번 공연한다. 1월 5일 신년음악회 ‘스케치’를 시작으로 세 번의 솔로 리사이틀과 8월 테너 김세일과 함께하는 무대, 12월 다넬 콰르텟과의 피아노 5중주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짰다. 27일 오전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고 여러 차례 연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소중한 경험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계획한 연주들을 간략히 소개하면.“4월 27일 ‘블렌딩’에선 베토벤과 리스트, 슈베르트의 소나타와 환상곡을 ‘버무렸다.’ 소나타는 정격(正格)이란 이미지가 있지만 환상곡은 모든 걸 깨버리는 이미지다. 세 작곡가의 확고한 음악세계를 다채롭게 들려드리고 싶었다. 8월 31일 ‘명암’은 테너 김세일과 함께 볼프와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연주한다. 노래가 가진 시적인 힘에 덧붙여 다양한 피아노의 효과를 표현하고 싶다. 9월 7일 ‘필리아(Phlia)’는 유일하게 미술 기법에서 딴 제목이 아니다. 필리아란 사람들을 동등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내가 상상한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해 모차르트 곡들을 담았다. 12월 7일 ‘콜라주 파티’에선 다넬 콰르텟과 함께 하는 피아노5중주를 선보인다.”―내년 가을에 모차르트 곡을 담은 데뷔 앨범이 나올 예정인데.“몬트리올 콩쿠르 입상에 따른 특전으로 ‘스타인웨이 앤 선즈’ 레이블로 발매된다. 모차르트는 ‘가장 감정 그 자체에 있던 작곡가’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행복할 땐 행복을, 슬플 땐 순수한 슬픔을 표현했다. 여러 작곡가를 담을까 생각도 했지만 한 작곡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본디 그림을 좋아했나.“연주하러 여러 도시를 다닐 때마다 갤러리를 찾는다. 최근 로마를 다녀왔는데 카라바조의 그림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10년째 오스트라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파벨 길릴로프를 사사하고 있다. 어떤 점을 배웠나.“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음악가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테크닉이나 피아노를 잘 치는 맛에 치우치지 않고 음악을 직접 바라보는 음악가가 되기를 강조하신다. 악보 속의 숨은 의도들을 찾아낼 수 있는 ‘도구’들을 배웠다.”―최근 국내 음악팬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남성 피아니스트들에게 쏠려있다는 얘기가 나온다.“여성 피아니스트에겐 체력적인 불리함도 있지만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리아 조앙 피르스 등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이미 많이 있다.”―피아니스트로서 어떤 얘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한가.“자연스러운 음악을 한다는 말을 들을 때다. 내 색깔과 맞는 것 같다.”―계속 콩쿠르에 도전할 생각인가.“몬트리올 콩쿠르가 우승 이후 커리어에 많은 지원을 해주는 편이어서 만족한다. 콩쿠르에 더 이상 도전하지 않기로 했고, 그 뒤 음악적 풍요로움과 영역이 확장됐다고 생각한다.”내년 1월 5일 신년음악회 ‘스케치’에서는 마이러 헤스 편곡 바흐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과 프랑스 모음곡 5번, 모차르트 아다지오 B당조, 프랑크 ‘전주와 코랄, 푸가’, 쇼팽 2개의 야상곡 작품 48, 피아노소나타 3번을 들려준다. 4만원. 02-6303-1977.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사단법인 홍난파의집이 27일 오후 7시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한국가곡 100년의 노래’ 콘서트를 서울시 후원으로 연다. 홍난파합창단과 소프라노 임청화 강혜명 김민지, 메조소프라노 신현선, 카자흐스탄 테너 누르카나트와 테너 이재욱 김기선 이정원, 바리톤 박경준 김민성, 베이스 김형삼이 출연한다. 김봉미가 지휘하는 소리얼오케스트라 반주로 박태준 ‘동무 생각’, 김연준 ‘청산에 살리라’ 등 한 세기 동안 불러 온 한국 가곡 중 많이 사랑받은 곡들을 들려준다. 5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달력의 마지막 장이 뜯기고, 수첩의 마지막 장이 접히는 연말. 떠들썩한 회식 대신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의 결심을 세워 보면 어떨까. 바로크에서 모던까지, 바이올린 선율에서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색깔의 연말 콘서트가 세밑의 클래식 팬을 기다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27일 오후 7시 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라 장 & 비르투오지’ 콘서트를 연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로 이루어진 체임버 앙상블이 한 무대에 오른다. 비탈리의 ‘샤콘’,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는 27일 오후 7시 반 하피스트 곽정과 하피데이 앙상블이 꾸미는 ‘새로운 여정’ 콘서트가 열린다. 매년 연말 시즌에 열어 온 ‘Sharing Love’ 콘서트 시리즈 열한 번째 무대다.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영롱하게 빛나는 듯한 하프 음색으로 도니체티의 ‘하프 소나타’부터 피아졸라의 ‘망각’을 지나 맨시니의 ‘문 리버’까지 다채로운 선율을 수놓는다. 소프라노 박성희와 플루티스트 이소영,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함께한다. 젊은 앙상블 ‘앙상블블랭크’는 서울 예술의전당 체임버홀에서 28일 오후 7시 반 ‘앙상블블랭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연다. 바로크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0세기 덴마크 작곡가 아브라함센의 ‘눈’, 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최재혁이 피아노 두 대를 위해 쓴 신작 ‘눈’ 등 다른 세 시대의 작곡가가 만든 겨울 음악을 연주한다. 2021년 그래미상 클래식 기악 부문 수상자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29일 오후 7시 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송년콘서트 ‘탱고피아’ 무대를 갖는다.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막스 리히터가 편곡한 비발디 ‘사계’ 1악장, ‘피겨 여왕’ 김연아가 사용한 곡으로 잘 알려진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를 선보인다. 2022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첼리스트 문태국,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인 쥘리앵 라브로가 함께한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31일 오후 8시 2022 롯데콘서트홀 송년음악회가 열린다. 지휘자 최수열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와킹 댄서 립제이, 탭댄서 오민수가 출연해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라벨의 ‘라 발스’ 등 여느 해보다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서울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1일 오후 10시 시작된다. 홍석원 지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신창용, 소프라노 황수미, 베이스 박종민이 출연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여러 오페라의 명장면을 연주한다. 공연 후 예술의전당 야외광장에서는 불꽃놀이와 함께하는 신년 카운트다운 행사가 진행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달력의 마지막 장이 뜯기고, 수첩의 마지막 장이 접히는 연말. 떠들썩한 회식 대신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의 결심을 세워보면 어떨까. 바로크에서 모던까지, 바이올린 선율에서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색깔의 연말 콘서트가 세밑의 클래식 팬을 기다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27일 저녁 7시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라 장 & 비르투오지’ 콘서트를 연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들로 이뤄진 체임버 앙상블이 한 무대에 오른다. 비탈리 ‘샤콘’,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비발디 ‘사계’를 연주한다.27일 저녁 7시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는 하피스트 곽정과 하피데이 앙상블이 꾸미는 ‘새로운 여정’ 콘서트가 열린다. 매년 연말 시즌에 열어온 ‘Sharing Love’ 콘서트 시리즈 열한번 째 무대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이 영롱하게 빛나는 듯한 하프 음색으로 도니체티의 하프 소나타부터 피아졸라 ‘망각’을 지나 맨시니 ‘문 리버’까지 다채로운 선율을 수놓는다. 소프라노 박성희와 플루티스트 이소영,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함께한다. 28일 저녁 7시반에는 젊은 앙상블 ‘앙상블블랭크’가 서울 예술의전당 체임버홀에서 ‘앙상블블랭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연다. 바로크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중 ‘겨울’, 20세기 덴마크 작곡가 아브라함센의 눈, 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최재혁이 피아노 두 대를 위해 쓴 신작 ‘눈’ 등 세 가지 다른 시대의 작곡가가 본 겨울 음악을 연주한다. 2021년 그래미상 클래식 기악 부문 수상자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29일 저녁 7시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송년콘서트 ‘탱고피아’ 무대를 갖는다.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막스 리히터가 편곡한 비발디 ‘사계’ 1악장, 피겨 김연아가 사용한 곡으로 알려진 피아졸라 ‘아디오스 노니노’ 등을 선보인다. 2022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첼리스트 문태국, 세계적 반도네온 연주자인 줄리앙 라브로가 함께 한다.올해의 마지막 밤 31일 저녁 8시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2022 롯데콘서트홀 송년음악회가 열린다. 지휘자 최수열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왁킹(Waacking)댄서 립제이, 탭댄서 오민수 등이 출연해 사라사테 ‘치고이네르바이젠’, 라벨 ‘라 발스’ 등으로 여느 해보다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서울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1일 저녁 10시 시작된다. 홍석원 지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신창용, 소프라노 황수미, 베이스 박종민이 출연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여러 오페라의 명장면을 연주한다. 공연 후 예술의전당 야외광장에서는 불꽃놀이와 함께하는 신년 카운트다운 행사가 진행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839년 늦가을, 쓰네노(常野)는 에치고(오늘날의 니가타현) 친정 부근 마을 다카다의 다리에 서 있었다. 얼마 전 세 번째 이혼을 했고 서른다섯 살이었으며 에도(오늘날의 도쿄)로 가려는 참이었다. 동행해 주겠다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친정에는 온천에 간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훗날 그는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때 용감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도 결국 불쾌한 상황에 빠졌을 거예요”라고 적었다. 각각의 삶이 모여 시대를 이룬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두 세기 전 일본 여인의 굴곡진 생애를 통해 그 시대의 일본 시골과 에도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쓰네노의 삶이 구체적으로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편지와 가문의 기록 덕분이었다. 그는 글을 쓸 줄 알았고 친정은 절을 관리하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절을 물려받은 큰오빠와 그가 나눈 편지 및 다른 문서들은 가문의 문서함에 봉인되었다가 니가타 공립문서관에 넘겨졌고 웹사이트에 올려져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주어진 삶을 뿌리친 쓰네노의 도전은 성공했을까. 에도에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는 그의 몸을 탐한 뒤 결혼하자고 했지만 에도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친정에는 ‘영주의 저택에 들어가서 상류층 법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가부키를 상연하는 거리에서 부자 첩의 하녀가 되고 우연히 만난 고향 사람과 네 번째 결혼을 하지만 경기가 추락하면서 남편은 실직자 신세가 된다. 순조롭지 않은 삶이었지만 저자가 평생 천착한 19세기 에도의 모습과 함께 책의 각 장들은 화려하게 채색된다. “뒷골목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옷감을 염색하고 무늬를 찍고 나무 연장과 안경을 만들었으며 다다미를 짜고 악기를 조립했다.” 연예계의 호화로움은 오늘날을 연상시키는 팬덤 문화와 함께 남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우편 배달업이 전국에 걸쳐 체계화되어 있었고 고향으로 가는 특송편은 매달 세 번 열렸다. 쓰네노는 이혼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남편이 다음 해 전갈을 보냈다. 범죄를 관할하는 고관의 신하로 일자리를 찾았고 그를 데려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안정된 삶을 찾은 듯했지만 7년 뒤 쓰네노는 석 달 투병 끝에 48세로 세상을 떠난다. 사후명(死後名)은 얼마간 아이러니하게도 ‘현명하고 순종적인 여자’였다. 책 말미에 저자는 쓰네노와 같은 삶의 의미를 이렇게 상기시킨다. “여자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에도는 커지지 못했으리라. 여자들이 마루를 훔치고 숯을 팔고 장부를 적고 밥상을 차리지 않았더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이 극장표와 머리핀, 국수를 사지 않았다면 쇼군의 위대한 도시는 아예 도시가 되지 못했으리라. 쓰네노가 남긴 유산은 에도라는 위대한 도시였다.” 이런 유려한 문장들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큰 이유다. 이 책은 2020년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2021년 퓰리처상 전기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839년 늦가을, 쓰네노(常野)는 에치고(오늘날의 니가타현) 친정 부근 마을 다카다의 다리에 서있었다. 얼마 전 세 번째 이혼을 했고 서른다섯 살이었으며 에도(오늘날의 도쿄)로 가려는 참이었다. 동행해 주겠다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친정에는 온천에 간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훗날 그는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때 용감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도 결국 불쾌한 상황에 빠졌을 거예요”라고 적었다. 각각의 삶이 모여 시대를 이룬다. 최근 번역 출간된 책 ‘에도로 가는 길‘(에이미 스탠리 지음·유강은 옮김·생각의힘)에서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두 세기 전 일본 여인의 굴곡진 생애를 통해 그 시대의 일본 시골과 에도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쓰네노의 삶이 구체적으로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편지와 가문의 기록 덕분이었다. 그는 글을 쓸 줄 알았고 친정은 절을 관리하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절을 물려받은 큰오빠와 그가 나눈 편지 및 다른 문서들은 가문의 문서함에 봉인되었다가 니가타 공립문서관에 넘겨졌고 웹사이트에 올려져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주어진 삶을 뿌리친 쓰네노의 도전은 성공했을까. 에도에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는 그의 몸을 탐한 뒤 결혼하자고 했지만 에도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친정에는 ‘영주의 저택에 들어가서 상류층 법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가부키를 상연하는 거리에서 부자 첩의 하녀가 되고 우연히 만난 고향 사람과 네 번째 결혼을 하지만 경기가 추락하면서 남편은 실직자 신세가 된다. 순조롭지 않은 삶이었지만 저자가 평생 천착한 19세기 에도의 모습과 함께 책의 각 장들은 화려하게 채색된다. “뒷골목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옷감을 염색하고 무늬를 찍고 나무 연장과 안경을 만들었으며 다다미를 짜고 악기를 조립했다.” 연예계의 호화로움은 오늘날을 연상시키는 팬덤 문화와 함께 남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우편 배달업이 전국에 걸쳐 체계화되어 있었고 고향으로 가는 특송편은 매달 세 번 열렸다. 쓰네노는 이혼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남편이 다음 해 전갈을 보냈다. 범죄를 관할하는 고관의 신하로 일자리를 찾았고 그를 데려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안정된 삶을 찾은 듯했지만 7년 뒤 쓰네노는 석 달 투병 끝에 48세로 세상을 떠난다. 사후명(死後名)은 얼마간 아이러니하게도 ‘현명하고 순종적인 여자’였다. 책 말미에 저자는 쓰네노와 같은 삶의 의미를 이렇게 상기시킨다. “여자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에도는 커지지 못했으리라. 여자들이 마루를 훔치고 숯을 팔고 장부를 적고 밥상을 차리지 않았더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이 극장표와 머리핀, 국수를 사지 않았다면 쇼군의 위대한 도시는 아예 도시가 되지 못했으리라. 쓰네노가 남긴 유산은 에도라는 위대한 도시였다.” 이런 유려한 문장들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큰 이유다.이 책은 2020년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2021년 퓰리처상 전기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누가 클래식 음악을 만들었는가?”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22일 열리는 ‘피아니스트 허효정의 인문학 리사이틀 Ⅳ’의 부제다. 궁금증이 생겼다. 진짜 누가 클래식 음악을 만들었을까.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인 허효정(사진)에게 11일 전화를 걸었다.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도 음악 작품은 대체로 작곡된 뒤 바로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었죠. 옛 음악을 존중하고 ‘고귀하다’는 가치를 담아낸 ‘클래식 음악’은 예술의 역사 속에서도 특이한 일이었어요.” 그는 19세기 시민 계층(부르주아)에서 청중층이 늘어나며 다양한 취향의 음악회가 탄생한 데서 ‘클래식 탄생’의 단서 가운데 하나를 찾았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음악과 정신적인 깊이를 강조하는 음악이 나뉘게 됐죠. 이 중 깊이 있는 음악에는 당대 철학의 관념론과 이상주의가 영향을 줬어요. 특히 독일의 경우 ‘선조의 문화유산을 간직해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투영됐고, 베토벤과 바흐의 대곡을 비롯해 역사에 남겨질 만한 가치 있는 음악이 구분됐죠.” 서울대 기악과와 미학과를 졸업한 허효정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피아노 박사, 서울대에서 서양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에는 한국서양음악학회의 차세대 음악학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클래식이란 몇몇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청중, 평론가와 음악 저널리스트 같은 전문가, 작곡가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과 첼리스트 김연진, 소프라노 이결이 함께 출연해 생상스 ‘백조’, 헨델 ‘메시아’ 중 두 곡, 사라사테 ‘카르멘 판타지’ 첫 곡, 베토벤 3중주곡 ‘대공’ 등 주제와 연관된 음악을 들려준다. 허효정은 2019년 2월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숭고해졌는가?’를 시작으로 2021년 ‘왜 바흐인가?’, 2022년 ‘무엇이 음악을 숭고하게 만드는가?’를 주제로 한 인문학 리사이틀 시리즈를 이어왔다. 그는 “앞으로 ‘음악에서 숭고를 규정하게 된 이념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인문학 리사이틀 전 7편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석 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누가 클래식 음악을 만들었는가?”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에서 22일 열리는 ‘피아니스트 허효정의 인문학 리사이틀 IV’의 부제다. 궁금증이 생겼다. 진짜 누가 클래식 음악을 만들었을까.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인 허효정에게 11일 전화를 걸었다.“18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도 음악 작품은 대체로 작곡된 뒤 바로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었죠. 옛 음악을 존중하고 ‘고귀하다’는 가치를 담아낸 ‘클래식 음악’은 예술의 역사 속에서도 특이한 일이었어요.” 그는 19세기 시민계층(부르조아)에서 청중층이 두터워지면서 다양한 취향의 음악회가 탄생한 데서 ‘클래식 탄생’의 단서 가운데 하나를 찾았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음악과 정신적인 깊이를 강조하는 음악이 나뉘게 됐죠. 이 중 깊이 있는 음악에는 당대 철학의 관념론과 이상주의가 영향을 줬어요. 특히 독일의 경우 ‘선조의 문화유산을 간직해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투영됐고, 베토벤과 바흐의 대곡을 비롯해 역사에 남겨질만한 가치 있는 음악이 구분됐죠.”서울대 기악과와 미학과를 졸업한 허효정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피아노 박사, 서울대에서 서양음악학 박사를 받았다. 2017년 한국서양음악학회 차세대 음악학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허효정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클래식이란 몇몇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청중과 평론가나 음악 저널리스트 같은 전문가, 작곡가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과 첼리스트 김연진, 소프라노 이결이 함께 출연해 생상스 ‘백조’, 헨델 ‘메시아’ 중 두 곡, 사라사테 ‘카르멘 판타지’ 첫 곡, 베토벤 3중주곡 ‘대공’ 등 주제와 관계된 음악을 들려준다. 허효정은 2019년 2월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숭고해졌는가?’를 시작으로 2021년 ‘왜 바흐인가?’ 2022년 ‘무엇이 음악을 숭고하게 만드는가?’를 주제로 한 인문학 리사이틀 시리즈를 이어 왔다. 그는 “앞으로 ‘음악에서 숭고를 규정하게 된 이념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인문학 리사이틀 전 7편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전석 2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팬데믹을 거치고 되살아난 올해 해외 오케스트라 방한 러시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로 문을 닫는다. 올해 이 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34세의 우즈베키스탄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가 지휘봉을 들고,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과 전체 그랑프리를 수상한 25세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협연한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두 젊은 음악가를 8일 화상으로 만났다. ―알자스 지방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은 1855년 창립 이후 프랑스와 독일 국적을 오가는 힘든 역사를 겪었습니다. 이 악단의 음악적 특징은 무엇일까요. 쇼하키모프: 이 악단은 악보에 충실한 정확한 연주를 들려주면서 뛰어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의 강점을 모두 가졌다고 할 수 있죠. ―이번에 스트라스부르와 한국에서 연주할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쇼하키모프: 러시아와 프랑스 음악의 연결을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첫 곡인 비제 카르멘 모음곡 1번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매혹시켰고, 두 번째 연주곡이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2번이죠. 마지막 곡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은 러시아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프랑스인 라벨이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곡이죠. ―캉토로프 씨는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대신 덜 알려진 협주곡 2번을 연주했죠. 올해 5월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고요. 캉토로프: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협주곡 1번을 200번 이상 들었고,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 나만의 해석을 내놓기 어려웠어요. 2번의 악보를 보니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죠. 오페라나 발레 같은 면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친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장자크 캉토로프죠. 자랄 때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캉토로프: 제게 음악을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매일 아버지가 연습하시는 소리나 다른 음악가들과의 대화, 아버지의 음반을 들으면서 음악적인 환경을 흡수했죠. ―쇼하키모프 씨는 불과 18세 때 우즈베키스탄 국립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죠. 그때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쇼하키모프: 열한 살 때부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했죠. 열세 살 때 베토벤 교향곡 3번으로 국립 오케스트라 지휘에 데뷔했고, 이후 시즌마다 두 번씩 지휘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소중한 경험이었죠. 저희 부모님보다 나이 많은 연주자들에게 음악적으로 확신을 주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음악가로서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쇼하키모프: 캉토로프는 눈부신 음악성과 기교뿐 아니라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피아니스트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분명하고 주변에 깊은 영향력을 끼지는 연주자죠. 캉토로프: 쇼하키모프는 음악이 흘러가도록 그냥 놓아두는 편이 아니고 연주를 예측하는 스타일이죠. 독주자에게 많은 유연성을 줍니다. 함께 연주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출됩니다.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 중 주목하는 사람이 있나요. 캉토로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기교와 컨트롤이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많습니다. 20일 콘서트는 오후 8시에 열린다. 5만∼2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사랑받는 콘서트홀을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네덜란드와 독일의 유명 콘서트홀들을 찾아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마음에 담아둔 질문이었다 11월 27일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뛰어난 공연장’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를 찾았다. 1888년 개관한 이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린 무대와 벽면 곳곳에 붙은 대작곡가들의 명패가 인상적이다. 이날 이 콘서트홀에서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방문연주를 펼쳤다. 이스라엘 지휘자 오메르 메이어 웰버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은 이 홀 특유의 풍요한 중저음으로 귀를 가득 채웠다. 묵직한 중량감과 세련된 잔향의 마무리가 고급차 같은 안락함을 선사하는 음향이었다. 이 홀은 전통적인 슈박스(구두상자)형 콘서트홀의 상징으로 통한다. 긴 직육면체 모양의 슈박스형 홀은 특별한 설계상의 고려 없이도 대체로 좋은 음향을 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콘세르트헤바우만이 가진 특별한 음향은 전문가들도 그 비밀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11월 29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에 2017년 문을 연 ‘엘프필하모니’에서 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옛 창고를 재활용한 벽체 위에 파도가 얼어붙은 듯한 고층부의 세련된 건물이 시선을 붙든다. 공사 기간이 예정보다 3배 늘어난 10년, 비용은 당초 예산의 10배인 7억8900만 유로(완공 당시 기준 약 1조 원)에 달하면서 ‘세금 낭비’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개관 직후 2년 동안 모든 공연이 전석 매진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이으면서 ‘함부르크 옛 항구지역 재생의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이 홀은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와 함께 21세기에 지어진 최신의 ‘비니어드(Vineyard)’형 콘서트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이란 여러 좌석 섹션(section)이 무대를 둘러싸 경사진 포도밭을 연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여러 겹의 장미꽃잎이 꽃술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런 콘서트홀은 모든 좌석에서 무대가 가깝고 시야각이 안정된 점이 장점이다. 엘프필하모니의 경우 최고층 뒷좌석에서 무대의 거리가 30m가 채 안 된다. 그러나 이날 들은 엘프필하모니의 음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휘자 크리스티안 머첼라루와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협연한 스크랴빈의 협주곡은 중음역이 뭉쳐 불분명하게 들렸다. 음향의 난반사를 잡기 위해 만든 벽면의 컵(cup) 구조를 무대 위까지 적용한 것은 과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1일 방문한 곳은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의 원조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였다. 1956년 실시한 설계 공모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최고점을 받지 못했던 건축가 한스 샤룬의 계획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길거리 버스킹처럼 청중이 연주가를 자연스럽게 둘러싸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홀의 잔향이 불충분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음향을 담당한 로타어 크레머는 당초 설계보다 천장을 높여 문제를 해결했지만 대신 연주자들이 서로를 잘 들을 수 없었다. 크레머는 볼록한 반사판을 무대 가까이 매달았고 연주자들은 만족했다. 이 홀의 음향은 음역대마다 밸런스가 잘 잡힌 안정된 소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콘세르트헤바우나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맛볼 수 있는 ‘호화로운 장식의 끝마감’은 그 소리에 없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5년 문을 연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를 찾아 2028년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옆에 클래식 콘서트홀을 짓고 대극장도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혔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대극장인 피에르 불레즈 홀은 엘프필하모니와 함께 21세기 지어진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의 대표적인 사례지만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은 오늘날에도 실험을 거치며 발전 중이다. 스위스 루체른의 KKL(문화컨벤션센터)이나 통영국제음악당처럼 21세기에 지어졌으면서도 전통의 슈박스형 구조를 택한 콘서트홀들도 있다. 여러 논의를 거쳐 수많은 클래식 팬을 만족시키고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아올 연주가들도 탄복시킬 수 있는 콘서트홀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팬데믹을 거치고 되살아난 올해 해외 오케스트라 방한 러시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로 문을 닫는다. 올해 이 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34세의 우즈베키스탄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가 지휘봉을 들고,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과 전체 그랑프리를 수상한 25세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협연한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두 젊은 음악가를 8일 화상으로 만났다.―알사스 지방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은 1855년 창립 이후 프랑스와 독일 국적을 오가는 힘든 역사를 겪었습니다. 이 악단의 음악적 특징은 무엇일까요. 쇼하키모프: 이 악단은 악보에 충실한 정확한 연주를 들려주면서 뛰어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의 강점을 모두 가졌다고 할 수 있죠.―이번에 스트라스부르와 한국에서 연주할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쇼하키모프: 러시아와 프랑스 음악의 연결을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첫 곡인 비제 카르멘 모음곡 1번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매혹시켰고, 두 번째 연주곡이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2번이죠. 마지막 곡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은 러시아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프랑스인 라벨이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곡이죠.―캉토로프 씨는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대신 덜 알려진 협주곡 2번을 연주했죠. 올해 5월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고요. 캉토로프: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협주곡 1번을 200번 이상 들었고,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 나만의 해석을 내놓기 어려웠어요. 2번의 악보를 보니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죠. 오페라나 발레 같은 면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부친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장자크 캉토로프죠. 자랄 때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캉토로프: 제게 음악을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매일 아버지가 연습하시는 소리나 다른 음악가들과의 대화, 아버지의 음반을 들으면서 음악적인 환경을 흡수했죠.―쇼하키모프 씨는 불과 18세 때 우즈베키스탄 국립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죠. 그때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쇼하키모프: 11살 때부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했죠. 13살 때 베토벤 교향곡 3번으로 국립 오케스트라 지휘에 데뷔했고, 이후 시즌마다 두 번씩 지휘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소중한 경험이었죠. 저희 부모님보다 나이 많은 연주자들에게 음악적으로 확신을 주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열심히 연구했습니다.―음악가로서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쇼하키모프: 캉토로프는 눈부신 음악성과 기교 뿐 아니라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피아니스트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분명하고 주변에 깊은 영향력을 끼지는 연주자죠. 캉토로프: 쇼하키모프는 음악이 흘러가도록 그냥 놓아두는 편이 아니고 연주를 미리 예측하는 스타일이죠. 독주자에게 많은 유연성을 줍니다. 함께 연주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출됩니다.―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 중 주목하는 사람이 있나요. 캉토로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기교와 컨트롤이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많습니다. 20일 콘서트는 오후 8시에 열린다. 5만~25만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2월 공연계에 ‘조수미 시즌’이 펼쳐진다. 소프라노 조수미(60)가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세계적인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67)과 듀오 콘서트 ‘Art Songs’를 펼친다. 23일에는 새 앨범 ‘In LOVE’에 실은 곡을 선보이는 ‘조수미 & 프렌즈―In LOVE’ 콘서트를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다. 조수미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연말을 맞아 팬데믹 기간의 힘든 시간들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22일 ‘Art Songs’ 콘서트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1부에서는 햄프슨이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6곡과 말러의 초기 가곡 6곡을 윤홍천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한다. 2부에서는 조수미가 윤홍천, 스페인 기타리스트 마르코 소시아스,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김과 함께 바흐의 칸타타 아리아와 드뷔시 ‘별이 빛나는 밤’ 등 예술가곡을 들려준다. 23일 ‘조수미 & 프렌즈―In LOVE’ 콘서트에서는 베이스바리톤 길병민과 함께 부르는 김효근 ‘첫사랑’을 비롯해 크로스오버의 특징이 담긴 최근 한국 가곡과 가요, 드라마 삽입곡이 펼쳐진다. 앨범에 참여한 첼리스트 홍진호,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해금연주자 해금나리와 최영선이 지휘하는 프라임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앞서 6일 중구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수미는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에 때가 있는데 지금은 사랑할 때라고 느꼈다”며 ‘In LOVE’ 앨범과 콘서트의 의미를 밝혔다. “제 첫사랑이 잊히기 전에 이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학 때 첫눈이 오면 남자친구와 경복궁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학교에 있다가 밤에 나와 보니 눈이 쌓여 있어 경복궁으로 달려갔는데 그가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집 앞에서 기다린 거였어요. 그때의 설렘을 잊을 수 없어요.” 조수미는 이 콘서트와 앨범에 담은 곡을 “쉬고 싶을 때 찾는 힐링 같은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잠도 못 자면서 모든 열정을 바쳐 앨범을 만들었어요. 창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소프라노 성악 창법은 들을 수 없을 거예요. 세계에서 인기 있는 K팝처럼 세계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을 따라 부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22일 롯데콘서트홀 ‘Art Songs’ 콘서트 8만∼15만 원,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조수미 & 프렌즈―In LOVE’ 콘서트 5만∼1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2월 공연계에 ‘조수미 시즌’이 펼쳐진다. 소프라노 조수미(60)가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세계적인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67)과 함께 듀오 콘서트 ‘Art Songs’를 펼친다. 23일에는 새 앨범 ‘In LOVE’에 실은 곡을 선보이는 ‘조수미 & 프렌즈-In LOVE’ 콘서트를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다. 조수미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연말을 맞아 팬데믹 기간의 힘든 시간들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22일 ‘Art Songs’ 콘서트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1부에서는 햄프슨이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6곡과 말러의 초기 가곡 6곡을 윤홍천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한다. 2부에서는 조수미가 윤홍천, 스페인 기타리스트 마르코 소시아스,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김과 함께 바흐의 칸타타 아리아와 드뷔시 ‘별이 빛나는 밤’ 등 예술가곡을 들려준다. 23일 ‘조수미 & 프렌즈-In LOVE’ 콘서트에서는 베이스바리톤 길병민과 함께 부르는 김효근 ‘첫사랑’을 비롯해 크로스오버의 특징이 담긴 최근 한국 가곡과 가요, 드라마 삽입곡이 펼쳐진다. 앨범에 참여한 첼리스트 홍진호,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해금연주자 해금나리와 최영선이 지휘하는 프라임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앞서 6일 중구 정동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조수미는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에 때가 있는데 지금은 사랑할 때라고 느꼈다”며 ‘In LOVE’ 앨범과 콘서트의 의미를 밝혔다.“제 첫사랑이 잊히기 전에 이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학 다닐 때 첫 눈이 오면 남자친구와 경복궁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학교에 있다가 밤에 나와 보니 눈이 쌓여 있어 경복궁으로 달려갔는데 그가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집 앞에서 기다린 거였어요. 그 때의 설렘을 잊을 수 없어요.” 조수미는 이 콘서트와 앨범에 담은 곡을 “쉬고 싶을 때 찾는 힐링 같은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잠도 못 자면서 모든 열정을 바쳐 앨범을 만들었어요. 창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소프라노 성악 창법은 들을 수 없을 거예요. 세계에서 인기 있는 케이팝처럼 세계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을 따라 부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22일 롯데콘서트홀 ‘Art Songs’ 콘서트 8만~15만 원,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조수미 & 프렌즈 In LOVE’ 콘서트 5만~1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곡가 프랑크는 ‘생명의 양식’으로 알려진 가곡을 본디 ‘천사의 빵’이라는 제목으로 썼죠. 가난한 농민을 담은 밀레의 ‘만종’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구자은 ‘프렌즈 오브 뮤직’ 예술감독) 창단 10주년을 맞은 실내악 그룹 ‘프렌즈 오브 뮤직’(사진)이 21일 송년음악회 겸 10주년 기념음악회 ‘파리, 생명의 양식’을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다. 카운터테너 이희상과 함께하는 프랑크의 성가곡 ‘생명의 양식’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태형,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비올리스트 김세준, 첼리스트 홍채원이 로시니 현악 소나타 3번, 생상스 7중주곡 E플랫장조 등을 들려준다. 구자은 감독은 “19세기 파리는 화려한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였지만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그린 것과 같은 비참한 현실도 있었다. 당시의 화려한 문화와 함께 어두웠던 이면까지 콘서트를 통해 돌아보고자 한다”며 “연주회 수익금은 무의탁 노인 시설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구 감독은 여러 대륙에서 공부한 젊은 음악가들을 실내악을 통해 하나로 엮고 싶다는 이상에서 프렌즈 오브 뮤직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 소외된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도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프렌즈 오브 뮤직은 올해부터 콘서트에 인문학적 콘셉트를 접목했다. 여성의 날(3월 8일)이 있는 3월에는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했고, 환경의 날(6월 5일)이 있는 6월에는 문화와 환경의 나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을 소개했다. 내년에도 6월에 6·25전쟁과 관련해 전쟁과 음악을, 제자의 날(12월 1일)이 있는 12월에는 제자(弟子)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음악으로 돌아볼 예정이다. 3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계 오페라무대 인기 작품 중 하나인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가 12월 서울에 찾아온다. 2016년 서울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오페라부문 최우수상, 2017년 대한민국 음악대상 오페라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증명해온 솔오페라단이 동아일보와 함께 주최하는 무대다. 12월 9∼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라 트라비아타’는 프랑스 파리 화류계 여성과 순정남의 사랑을 그린 뒤마 피스의 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베르디는 첫 아내와 사별 후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주세피나에게 과거가 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그 고뇌를 이 작품에 녹여냈다. 연출은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여온 안경모가 맡는다. 그는 “욕망에 이끌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련의 여인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여성으로서 주인공 비올레타를 그려내려 한다”고 밝혔다. 솔오페라단은 이번 무대의 조명을 특히 눈여겨봐 달라고 귀띔했다. 파격적인 콘셉트로 주목받아온 김대한의 무대 디자인과 서울연극제 무대예술상을 수상한 김영빈의 조명이 만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테크아트’로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오페라 무대를 선보인다는 설명이다. 지휘는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 상주지휘자인 프란체스코 오마시니가 맡는다. 2014∼2019년 베네토 주립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지내며 콘서트와 오페라 양쪽에서 능력을 보인 지휘자다. 주인공 비올레타 역으로 소프라노 질다 피우메와 김신혜가 출연한다. 피우메는 독일 바이로이트 극장, 베로나 야외극장, 스페인 리세우 극장에서 주역 소프라노로 활약하고 있으며 감미로운 목소리와 우아한 표현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신혜는 솔오페라단 ‘잔니 스키키’ 라우레타 역을 맡았다. 순수남 알프레도 역에는 테너 세르조 에스코바르와 김동원이 출연한다. 스페인 출신인 에스코바르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암스테르담 오페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해왔다. 김동원은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눈에 띄는 음성연기의 매력을 선보였다. 알프레도의 부친 제르몽 역은 미국과 유럽에서 종횡무진 활약해온 바리톤 루카 그라시와 국내 30개 이상의 오페라에 출연해온 박정민이 맡는다. 공연은 12월 9일 오후 8시, 10일 오후 7시, 11일 오후 5시에 열린다. 5만∼2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1월 산속을 걷는 길은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나뭇잎들이 떨어져 쌓이고 삭아들면서 찻잎이 찻물에 우러나는 듯한 향기를 낸다. 코로 깊이 들이마시면 몸에도 좋을 것만 같다. 소소한 감각의 향연 속에 지난해와 그 이전의 숲들이 남긴 기억들도 쌓인다. 이런 계절에 불만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달력은 고작 한 장이 남고, 결산의 때는 기업들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며 꿈꾸고도 손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가을에 흔히 소환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심각한 자기 회의(懷疑)의 주인공이었다. ‘재능도 없는 데다 게을러터졌다’며 걸핏하면 자책감에 빠지곤 했다. 그의 사랑받는 선율들이 흔히 심한 가을앓이와 결부되는 것은 이 계절이 주는 자기 불만과도 관련될 것이다. 그의 표제적 작품인 ‘만프레드 교향곡’에 나오는 주인공도 그렇다. 이 센티멘털한 러시아인은 영국 문호 바이런의 시 ‘만프레드’를 네 악장의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만프레드는 심각한 자기 연민과 회의에 빠져 스위스의 알프스 산속을 방랑하는 주인공이다. 이 계절에 귓전으로 불러내는 이 복잡하고 심각한 교향곡은 충족과 불만 속을 방황하는 ‘가을인(人)’들에게 동질의 위안을 안겨준다. 바람 많고 흐린 날이 많은 북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작곡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늦가을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악장, 선율은 마디마디 조각나서 일부는 현에, 일부는 플루트에, 일부는 첼로의 낮은 음역에 나부낀다. ‘드뷔시적인 브람스’라 할 만큼 다양한 색상의 팔레트로 채운 소리의 물결은 옷깃에 찬 바람이 스며드는 흐릿한 날의 풍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억제할 수 없는 격정으로 1악장이 마무리 지어지면, 시선이 탁 트이는 풍경 속에 한층 더 절절한 과거의 추억 속으로 2악장이 우리를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번 소개한 바 있지만 영국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가 쓴 ‘토머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도 바람 불고 쓸쓸한 이맘때 벗해 듣기 좋은 작품이다. 16세기 성가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현의 울림이 아득한 과거의 환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829년, 갓 스무 살의 젊은 작곡가 멘델스존은 북쪽 나라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긴 메리 여왕의 흔적이 깃든 옛 성에서 감회에 젖어보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폭풍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하는 여행이었다. “아버지, 여기서 마실 만한 것은 위스키뿐이랍니다.” 그가 묘사한 스코틀랜드의 어둡고 쓸쓸한 풍광도 우리의 늦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듯하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스산한 오후에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곡을 들을 때는 독일 작가 슈토름의 소설 ‘호반’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옛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 같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에 대한 상념이랄까. 가을이 그 종적을 감추기 전, 한층 어둡고 묵시록적인 11월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도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두 손을 깊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사람의 센티멘털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11월은 근대 오페라 최후의 큰 봉우리로 남은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달이다. 그는 1924년 11월 29일에 후두암 치료를 위해 찾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다. 벨기에는 이국의 대가를 국장으로 예우했고 6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며칠 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돌아와 밀라노의 대성당(두오모)에서 두 번째 장례식이 열렸다. 이 장례식에서는 그의 두 번째 오페라 ‘에드가르’ 장송 합창, 레퀴엠이 연주됐다. 이해도 한 달 남짓을 남겨둔 주말,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오른다. 이 한 해 동안 내가 소망한 것을 얼마나 성취했으며 그것을 위해 나는 얼마나 부지런히 살았을까, 얼마간의 성취감과 함께 작은 후회들도 밀려온다. 서쪽 하늘을 부옇게 물들이는 붉은 해를 보며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느린 악장 아다지오를 듣는다. 브루크너가 자신이 경모하던 바그너의 죽음을 접하고 쓴 악장이다. 해가 짧아져서 산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바쁘지만 ‘바그너 튜바’의 긴 울림은 귀에 선명히 남아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레즈네바는 목소리 자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악기다. 젊음의 순수함과 함께 마치 크림 같은 황홀함을 안겨준다.”(영국 월간 ‘오페라’) “어떤 기악 연주가의 손가락도 레즈네바의 성대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영국 일간 가디언)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33)의 노래는 폭풍처럼 강력하고 미풍처럼 달콤하다. 현존 최고의 모차르트와 로시니, 바로크 소프라노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그가 다음 달 3,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무대를 연다. 2013년부터 세계 최고의 바로크 전문 아티스트와 악단들을 소개해온 ‘한화클래식’의 열 번째 무대다. 레즈네바는 러시아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는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김치도 먹어보고 한국 옷가게에서 산 한국 스타일 옷도 입었다. 물리학자였던 아버지가 일찌감치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덕에 일곱 살 때 모스크바로 이사해 성악과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스무 살 때 핀란드의 미리암 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는 등 여러 콩쿠르를 휩쓸었다. 2010년 세계적 바로크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조반니 안토니니에게 발탁된 뒤 청순한 이미지와 깎은 듯한 기교, 유연한 음성으로 세계무대를 누벼 왔다. 음역이 넓어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된 레퍼토리 대부분을 소화한다. 2018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첫 내한 무대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레즈네바는 “바로크 음악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점에서 재즈를 닮았다. 노래할 때 모험을 하듯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점도 재즈를 닮은 매력”이라고 말했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1797년 창단된 뒤 이탈리아의 바로크 연주를 대표하는 악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8, 2015년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함께 내한한 바 있다. 2008년 발매된 비발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음반이 음반 저널 디아파송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는 등 공연과 음반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공연에서 레즈네바는 헨델 ‘알렉산드로스’ 중 ‘사랑스러운 고독이여’를 비롯해 후기 바로크의 오페라 3대장으로 불리는 헨델과 비발디, 니콜라 포르포라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노래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배치한 비발디 ‘그리셀다’ 중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는 2018년 서울시향과의 공연에서 ‘몰아치듯’ 청중을 열광시킨 노래이기도 하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비발디 ‘현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협주곡’ 등 기악곡들도 감상할 수 있다. 2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레즈네바는 목소리 자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악기다. 젊음의 순수함과 함께 마치 크림 같은 황홀함을 안겨준다.” (영국 월간 ‘오페라’)“어떤 기악 연주가의 손가락도 레즈네바의 성대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영 일간 가디언)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33)의 노래는 폭풍처럼 강력하고 미풍처럼 달콤하다. 현존 최고의 모차르트, 로시니, 바로크 소프라노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그가 12월 3,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무대를 연다. 2013년부터 세계 최고의 바로크 전문 아티스트와 악단들을 소개해온 ‘한화클래식’의 열 번째 무대다. 레즈네바는 러시아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는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김치도 먹어보고 한국 옷가게에서 산 한국 스타일의 옷도 입었다. 물리학자였던 아버지가 일찌감치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덕에 일곱 살 때 모스크바로 이사해 성악과 피아노를 배웠다. 스무 살 때 핀란드의 미리암 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는 등 여러 콩쿠르를 정복했다. 2010년 세계적 바로크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조반니 안토니니에게 발탁된 뒤 청순한 이미지와 깎은 듯한 기교, 유연한 음성으로 세계무대를 누벼왔다. 음역이 넓어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된 레퍼토리 대부분을 소화한다. 2018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첫 내한 무대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바로크 음악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점에서 재즈를 닮았다. 노래할 때 모험을 하듯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점도 재즈를 닮은 매력”이라고 말했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1797년 창단된 뒤 이탈리아의 바로크 연주를 대표하는 악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8, 2015년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함께 내한한 바 있다. 2008년 발매된 비발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음반이 디아파송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는 등 공연과 음반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공연에서 레즈네바는 헨델 ‘알렉산드로스’ 중 ‘사랑스러운 고독이여’를 비롯해 후기 바로크의 오페라 3대장으로 불리는 헨델과 비발디, 니콜라 포르포라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노래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배치한 비발디 ‘그리셀다’ 중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는 2018년 서울시향과의 공연에서 ‘몰아치듯’ 청중들을 열광시킨 노래이기도 하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비발디 ‘현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협주곡’ 등 기악곡들도 감상할 수 있다. 2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대한민국이, 세계가,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하지만 세상의 일부는 여전히 가난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기준을 마련한 뒤 자립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편입시키면 될 듯하다. 그런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서울 난곡에서,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남부 선전시(深(수,천)市)에서 수많은 가난과 마주치며 빈곤에 천착해온 저자는 예상 가능한 답안을 거부한다. 또는 ‘간단히 답하기를 일부러 실패한다.’ 그의 연구 속에서 가난함의 범주는 계속 확장된다. ‘기존의 논의와 불화하며 우리 시대 빈곤에 관한 사유를 확장하는 것’이 저자가 밝히는 의도다. 사회가 빈곤을 다루는 관심의 중심에는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오랜 노력의 성과임은 저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돌아보아야 할 지점들은 존재한다. 빈곤을 가려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난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되고 그 대상자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누적시킨다. 모친 명의로 당장 쓰러질 듯한 집 한 채가 있다고, 오래전 소식이 끊겼어도 자식이 있다고 수급의 바깥으로 추방된다. 심장병을 앓는 이가 질병 수당과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분투하다 그만 죽고 만다는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는 먼 현실이 아니다. 현실 적용 과정에서의 이런 잡음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빈곤 통치의 역사는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역사’였음을 상기시킨다. 오늘날에도 ‘노동할 수 있는 자 대 수급자’라는 서열이 엄연하다. 멀쩡한 사람이면 수급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 서로 협력했던 빈민 운동은 ‘전문가 대 수혜자’의 기계적 관계로 대치된다. 따뜻한 연대 대신 치열한 심사를 거친 개별 가족의 생존이 관심거리가 된다. 대학교수로서 10년 동안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진행해 온 저자는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빈곤 퇴치 프로젝트에도 주목한다. 자신들도 결핍으로 위협받는 세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빈곤 레짐(규범 틀)에서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프런티어’로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봉사와 여행, 취업에 대한 욕구가 모호한 상태로 뒤섞여 있으며 이들에게 재미있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다가온다고 봤다. 빈곤과 반(反)빈곤의 모색이 만드는 모순의 광경들이 한국 사회만의 것일 리는 없다. 책 한가운데엔 저자가 중국에서 마주친 현장 사례들이 놓인다. 중국 선전에서 그는 2010년 연쇄자살 사태가 벌어졌던 전자기기 회사 ‘폭스콘’의 여성 노동자를 만난다. 가혹한 환경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졌던 그는 폭스콘을 나온 후 여러 종류의 노동을 하며 분투하지만 소외와 체념도 계속 쌓여간다. 하얼빈에서는 홍수로 시골집을 잃은 뒤 자기만의 집을 갖기 위해 애쓰다 좌절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두 사례 모두 저자의 시선은 ‘체념과 소외의 누적’으로 향한다. 기존 논의들을 모으고 마무리할 마지막 장에서 저자의 시선은 오히려 인간을 넘어 지구로 확장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착취가 자연을 ‘가능한 한 저렴하게 일하게’ 하며 인류세(人類世)적 빈곤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별에 거주하면서 매 순간 접촉하는 것들을 단지 소비할 자원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호소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대한민국이, 세계가,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하지만 세상의 일부는 여전히 가난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기준을 마련한 뒤 자립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편입시키면 될 듯하다. 그런가?서울 난곡에서,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남부 선전시(深圳市)에서 수많은 가난과 마주치며 빈곤에 천착해온 ‘빈곤 과정’(글항아리)의 저자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예상 가능한 답안을 거부한다. 또는 ‘간단히 답하기를 일부러 실패한다.’ 그의 연구 속에서 가난함의 범주는 계속 확장된다. ‘기존의 논의와 불화하며 우리 시대 빈곤에 관한 사유를 확장하는 것’이 저자가 밝히는 의도다.사회가 빈곤을 다루는 관심의 중심에는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오랜 노력의 성과임은 저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돌아보아야 할 지점들은 존재한다. 빈곤을 가려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난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되고 그 대상자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누적시킨다. 모친 명의로 당장 쓰러질 듯한 집 한 채가 있다고, 오래전 소식이 끊겼어도 자식이 있다고 수급의 바깥으로 추방된다. 심장병을 앓는 이가 질병 수당과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분투하다 그만 죽고 만다는 미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는 먼 현실이 아니다.현실 적용 과정에서의 이런 잡음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빈곤 통치의 역사는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역사’였음을 상기시킨다. 오늘날에도 ‘노동할 수 있는 자 대 수급자’라는 서열이 엄연하다. 멀쩡한 사람이면 수급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 서로 협력했던 빈민 운동은 ‘전문가 대 수혜자’의 기계적 관계로 대치된다. 따뜻한 연대 대신 치열한 심사를 거친 개별 가족의 생존이 관심거리가 된다.대학 교수로서 10년 동안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진행해 온 저자는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빈곤 퇴치 프로젝트에도 주목한다. 자신들도 결핍으로 위협받는 세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빈곤 레짐(규범 틀)에서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프론티어’로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봉사와 여행, 취업에 대한 욕구가 모호한 상태로 뒤섞여 있으며 이들에게 재미있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다가온다고 봤다. 빈곤과 반(反) 빈곤의 모색이 만드는 모순의 광경들이 한국 사회만의 것일 리는 없다. 책 한가운데엔 저자가 중국에서 마주친 현장 사례들이 놓인다. 중국 선전에서 그는 2010년 연쇄 자살사태가 벌어졌던 전자기기 회사 ‘폭스콘’의 여성 노동자를 만난다. 가혹한 환경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졌던 그는 폭스콘을 나온 후 여러 종류의 노동을 하며 분투하지만 소외와 체념도 계속 쌓여간다. 하얼빈에서는 홍수로 시골집을 잃은 뒤 자기만의 집을 갖기 위해 애쓰다 좌절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두 사례 모두 저자의 시선은 ‘체념과 소외의 누적’으로 향한다.기존 논의들을 모으고 마무리할 마지막 장에서 저자의 시선은 오히려 인간을 넘어 지구로 확장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착취가 자연을 ‘가능한 한 저렴하게 일하게’ 하며 인류세(人類世)적 빈곤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별에 거주하면서 매 순간 접촉하는 것들을 단지 소비할 자원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호소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