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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것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7일(현지 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건물 외벽에 소설가 한강의 사진과 더불어 그의 작품 ‘흰’의 한 구절이 한글과 영어로 투영됐다. 노벨상 주간을 맞아 한강을 비롯한 역대 여성 수상자들을 담은 영상을 레이저 조명(미디어 파사드)으로 쏜 것. 노벨재단은 7∼15일 매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스톡홀름 시내 16곳에서 ‘노벨 주간 조명(Nobel Week Light)’을 선보인다. 스톡홀름은 위도가 북위 59도로 높아 12월에는 오후 3시쯤 해가 진다. 한강은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펼쳐지는 영상 ‘리딩 라이트(Leading Lights·선구자들)’와 시청 맞은편 부두 ‘돔 아데톤(de Aderton·18명)’에 각각 등장한다. 리딩 라이트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를 시작으로 역대 여성 수상자 65명을 조명하는 9분 길이 영상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인 ‘레 아틀리에 BK’가 제작했다. 수상자들의 얼굴과 업적을 담은 영상에서 한강은 두 차례 나온다. ‘돔 아데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18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까지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18명 배출된 데서 착안한 스테인드글라스 형태의 조명 작품. 1909년 수상자 셀마 라겔뢰프부터 올해 한강까지 여성 문학가들의 초상을 담아 스웨덴 왕립공과대 건축학과가 제작했다. 1901년부터 총 121명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 중 여성은 18명(14.9%)에 불과하다. 노벨 주간 조명은 올해로 5회째를 맞았으며 무료 야외 행사로 열린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소설가 한강은 7일(현지 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1979년 자신이 여덟 살 때 쓴 시의 일부를 소개했다. 지난해 1월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에 담긴 유년 시절의 일기장 사이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고. 한강은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돼 있다”며 “1979년 4월의 아이는 사랑은 ‘나의 심장’이란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썼고,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선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이라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자신의 모든 질문이 언제나 ‘사랑’을 향해 있었다고 돌아봤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란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하지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낭독할 때 뒤에서 들려주는 음향)이었다”고 했다. 한강은 이날 자신의 지난 삶과 맞물려 과거 작품들의 탄생 배경을 들려줬다.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설명하면서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 달에 걸쳐 매일 9시간씩 읽으며 완독했다. 또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전 세계에서 긴 역사에 걸쳐 반복돼 온 학살들에 대한 책을 읽어 내려갔다.한강은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며 “이따금 망월동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고 했다. 이어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차기작 발언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내가 느끼는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면서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그 실에 연결돼 주었고, 연결돼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적 성취를 잊고 다시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했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고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합니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에.”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31년간의 집필 인생을 회고했다.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을 낭독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노벨 주간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진다. 한강의 강연에는 스웨덴 현지 교민, 국내 출판사 관계자를 비롯해 200여 명이 참석했다.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에 대한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그는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그의 글쓰기를 이끌어 온 힘이었다고 밝혔다. 한강은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중략)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습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밝혔다.“‘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입니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강연이 끝난 뒤 청중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지면서 한강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자리를 떠났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을 스웨덴어로 번역하고, 이날 강연문도 스웨덴어로 번역한 안데쉬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는 “번역하면서 강연문을 이미 읽었는데도 막상 이렇게 한강 작가가 본인 목소리로 읽는 걸 들으니까 감동적이었다”며 “한강 작가도 감정이 올라왔는지 두 번 정도 뜸을 들이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이날 강연장 입구에는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한강 작가의 강연을 들으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림원 입구에 이날 강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어 관광객들이 지나가다 발길을 멈춰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림원이 위치한 감라스탄은 평소에도 크리스마스 마켓과 구시가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오후 6시 반 한강이 강연을 마치고 나올 땐 출입구 앞에 둥글게 반원으로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강연 전문.빛과 실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사랑은 무얼까?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스톡홀롬=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소설가 한강(54)은 6일 오후(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3일 밤 긴박했던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0일 열리는 노벨 문학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스웨덴을 찾은 한강은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으로 계엄 관련 내용이 나오자 미리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을 공부했다”라면서 “2024년 겨울이 그때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 돼서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 멈추려고 애쓴 분도 보았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보았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 잘 가라고 아들한테 하듯 소리치는 모습도 보았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강은 “(국회 봉쇄에 투입된)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분들의 태도도 인상이 깊었다”라면서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뭔가 판단을 하려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79년 10·26사태 이후 내려진 비상계엄으로 혼란해진 한국사회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강은 또 다른 대표작 ‘채식주의자’가 외설성 논란 등으로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된 것에 대해선 “소설에 유해 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일이 책을 쓴 사람으로선 가슴 아픈 일이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중고교생들이) 낭독회를 할 때 ‘채식주의자’를 갖고 와서 사인해 달라고 하면, 이건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 먼저 읽으라고 하기도 한다”며 웃으면서 말했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유독 그리운 인생의 한 시점이 있는가. 여기, 꿈에서도 그릴 법한 그 시절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이 있다. 어릴 적 내 방에 붙어 있던 벽지, 북슬북슬한 노란색 이불, 비틀스의 포스터까지. 이곳에선 쉰 살의 몸도 여덟 살의 몸이 돼 긴 털이 간질거리는 이불 위에 누일 수 있다. 노인정신의학과 의사 가우스틴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세밀히 재현한 ‘과거 요법 클리닉’을 고안한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살구색 건물에 클리닉을 만들고 층마다 각기 다른 10년을 완벽히 재현한다. 지난해 불가리아 작가 최초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타임 셸터’ 이야기다. 소설은 기억을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 그들의 내면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누군가의 머릿속 시간이 1965년이라면 적어도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만이라도 1965년이 되게 하자는 발상이다. 몇 달 동안 입도 뻥긋하지 않던 환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할 거란 기대에서다. 소설가인 화자는 가우스틴의 조수로서 과거의 물건과 이야기를 모아 클리닉을 꾸민다. 타자기, 초콜릿, 담배, 포스터 같은 소품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 때로는 향기와 빛까지 수집의 대상이다. 알츠하이머 클리닉으로 시작한 소설은 점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거에서 다시 살 수 있다는 개념이 질병과 무관하게 점점 더 많은 이를 사로잡은 것. 현재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과거로 회피하겠다는 욕망은 점차 유럽 전역에 퍼진다. 급기야 국가 전체가 함께 회귀할 과거의 특정한 시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대를 주장하는 정당이 설립되고 집회가 벌어진다. 고국인 불가리아를 찾은 화자는 나라가 2개의 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 70년대 국가사회주의 시기를 주장하는 세력과 오스만제국에 대항했던 19세기 말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국가주의 세력이다. 두 세력은 배우들을 고용해 집회 행사를 연출한다. 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됐던 사라예보 사건을 재연하는 행사 도중 소품 총에서 실탄이 발사돼 페르디난트 대공 역의 배우가 실제로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과거가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은 뚜렷한 줄거리를 속도감 있게 전개하기보다는 환자들의 사례나 인물들의 일화, 서술자의 메모와 단상, 그림 스케치 등을 곳곳에 배치하는 느슨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일화는 독립된 이야기처럼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기억과 정체성, 노스탤지어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우화다. 유럽 각국이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장면이 대표적. 과거에 대한 맹목적 동경이 어떤 퇴행을 부르는지 거침없는 전개로 보여준다. 작가는 브렉시트 등 유럽 전역에서 위대한 과거를 들먹이는 보수적 포퓰리즘이 만연한 세태를 보며 세계가 ‘과거’라는 팬데믹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영원한 과거와 노스탤지어를 향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올 위험에 대한 한 편의 사고실험 같은 소설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5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부 쿵스가탄에 위치한 2층짜리 대형서점. 문을 열고 열 걸음 들어서자 정면에 한강 작가의 책을 따로 파는 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왼편에 위치해 오르내릴 때마다 한 번씩 눈길이 갈 법한 위치였다. 매대엔 한강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 등 5권이 영어나 스웨덴어로 버전으로 전시돼 있었다. 이 서점 베스트셀러(소설 분야) 매대엔 한강 책이 1~4위를 차지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순이었다. 서점 직원 울리카 에클로브 씨는 “한강 책이 1시간에 5권은 꾸준히 나간다. 특히 ‘채식주의자’가 인기”라고 귀띔했다.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한강이 인지도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그전에도 꽤 알려졌던 것 같다. 나만 해도 수상 전에 3권(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을 읽었다. ‘채식주의자’는 8년 전에 읽었다”라며 “물론 내가 서점 점원이긴 하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왕립드라마극장에서 공연한 ‘채식주의자’ 연극도 봤다. 한강의 책은 천천히 읽게 된다. 읽기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흰’은 마치 긴 시 같다”고 말했다.서점 고객 시실리아 룬드바히 씨(50)는 “노벨상 중에 문학상이 가장 피부에 와닿는 상이라 스웨덴 시민들 사이에도 한강의 인지도가 높다. 수상하면 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도서관에 가보니 한강 책에 이미 줄이 길어서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스톡홀롬의 택시 운전기사 요반 작식 씨(66)도 한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바, 노벨, 이브라히모비치가 스웨덴이 배출한 유명인 3인방”이라며 “나는 택시기사니까 운전하면서 라디오에서 한강의 이름을 들어봤다,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이름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한강의 낭독회가 열릴 예정인 왕립드라마극장을 찾았다. 조만간 극장 전면 디지털 스크린 6개에 낭독회 홍보 포스터가 올라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곳에선 지난해 가을 한강의 ‘채식주의자’ 연극을 올렸다. 지난 가을 가장 인기 있었던 연극 중 하나였다고 한다. 객석이 300~322석 가량이었고 총 17회 극을 올렸는데 절반 회차 정도는 객석이 꽉 찼다고. 극장에서 일하는 줄리아 콜레마이넌 씨(29)는 “‘채식주의자’ 책을 연극 전에 친구가 추천해줘서 읽었다. 폭력적이지만 시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연극은 원작보다 더 강렬했다. 뺨 때리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놀라서 숨죽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스톡홀름 시내 곳곳은 노벨 주간 준비가 한창이었다. 스톡홀름 시청은 노벨 조명을 시범운영 중이었다. 시청에서 약 100m 떨어진 부둣가에 임시로 설치한 2층짜리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시청을 향해 색색의 조명을 쏘고 있었다. 7일부터 정식으로 노벨 조명을 틀면 한강의 대형 초상화가 시청 외벽에 뜰 예정이다. 10일 시상식이 열릴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노벨 옆모습 초상화와 ‘THE NOBEL PRIZE’라고 적힌 현수막 3개가 정면에 내걸려있었다. 정면 기둥 10개는 조명으로 감쌌다. 맞은편 광장엔 생화 크리스마스 리스와 축구 선수들의 등번호 유니폼, 각종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흥을 돋웠다. 오후 4시경 이미 해가 지고, 분무기로 가볍게 뿌리듯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과 노벨 조명으로 활기를 띠었다. 한강은 6일 오후 9시(한국 시간)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처음으로 스웨덴 현지에게 기자회견을 가진다. 한강 작가가 이역만리 떨어진 ‘노벨의 고장’에서 계엄 후폭풍으로 혼란스러운 고국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주목되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 현지를 찾는 한강(51·사진)의 공식 행보는 6일(현지 시간) 스톡홀름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으로 시작된다. 강연, 리셉션, 다문화학교 방문 등 공식 일정 7개와 비공개 행사 5개에 참석하며 12일까지 일주일 동안 ‘한강 위크’를 보내게 된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상의 수상자들에 대한 현지 의전은 ‘VIP’급으로 펼쳐진다. 한강은 스웨덴 현지에서 어떤 의전을 받게 될까. 한강은 스웨덴 땅을 밟으면서부터 특급 대접을 받는다. 한강을 배려해 스웨덴 외교부에서 파견한 전담 직원이 배정된다고 한다. 이 직원은 노벨상 수상자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영접해 체류 기간 내내 함께하며 수상자의 현지 활동을 돕는다. 주요 해외 행사도 조용히 혼자 다녀오는 한강으로서는 낯선 경험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해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수행 없이 혼자 다녀왔다. 한강의 이동 편의를 위해 노벨상 측은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 볼보 차량을 제공한다. 1927년 스웨덴에서 설립된 볼보 브랜드는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통하며, 노벨 주간 공식 차량으로 지정돼 있다. 볼보 공식 유튜브에는 노벨의 옆모습 초상화가 새겨진 볼보 XC9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수상자 의전에 사용된 모습이 올라와 있다. 이 차량 가격은 기본 모델이 8720만 원. 특히 시상식 등 주요 일정을 앞두고는 한강이 탑승한 차량 앞뒤로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따라붙어 경호 등을 제공한다. 한강을 비롯한 수상자들은 행사 기간 내내 스톡홀름 최고 호텔인 5성급 ‘그랜드호텔’에 머문다. 1901년 이후 모든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묵었던 호텔로 1874년 문을 열었다. 왕궁과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감라스탄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하다. 노벨상 수상자뿐 아니라 마틴 루서 킹, 프랭크 시나트라, 그레타 가르보 등 명사들이 생전에 찾은 곳이기도 하다. 스위트룸 가격은 1박에 약 260만 원이다. 1901년 12월 10일 첫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가 열린 곳도 그랜드호텔이다. 이후 행사 규모가 커지면서 연회 장소는 스톡홀름 시청으로 바뀌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도 쌍둥이 그랜드호텔이 있는데, 이곳에서 평화상 수상자가 묵는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도 오슬로 그랜드호텔에서 묵으며 관례에 따라 2층 발코니에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이라이트인 10일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름 콘서트홀에는 ‘블루 카펫’이 깔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상식이 중단된 2년간을 제외하고, 1926년부터 약 100년간 이어진 관례다. 이날 수상자들이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메달과 더불어 받는 증서(diploma)는 예술작품으로 통한다. 수상자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수작업으로 제작되는데, 특히 문학상 증서는 수상자의 작품 특성을 반영해 디자인된다. 한강만을 위한 세계 유일 선물이 제공되는 셈이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시상식이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스웨덴어로 번역했고, 이번에 한강의 노벨상 강연문의 번역 작업을 다시 맡은 박옥경 번역가가 시상식을 앞둔 스웨덴 현지 분위기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한강 작가와는 번역원에서 주최한 문학기행에서 2013년 처음 만났고, 이후 그의 책들을 번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2015년 한강 작가의 책들 중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스웨덴어 번역을 동시에 의뢰받았는데, 아쉽게도 이미 다른 책을 번역 중이어서 직역으로 옮기지 못했다. ‘채식주의자’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기 1년여 전인 2015년에 이미 스웨덴에서는 나투르 오크 쿨투르 출판사가 한강 책들의 판권을 사고 출판할 계획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소년이 온다’가 2016년 가을에,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2017년 1월에 출판됐다. ‘소년이 온다’가 출판되었을 당시 큰 호평을 받았고, ‘채식주의자’도 번역본이 스웨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2023년 가을에는 왕립극장에서 연극으로 올려지기도 했다.2019년 가을 ‘흰’이 스웨덴에서 직역으로 출판된 후 올해 3월 초 ‘작별하지 않는다’(사진)가 출판되기까지 지난 4∼5년간 스웨덴에서 한강의 입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올해 ‘작별하지 않는다’ 책이 출판된 이후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 나온 서평들이나 작가 소개를 보면 이전과는 달리 “머지않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작가” 또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유명 작가”로 소개됐다. 스톡홀름과 스웨덴 북쪽 소도시 우메오에서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 출판사 주관하에 열렸던 한강 작가 북콘서트와 사인회에는 1000명이 넘는 독자들이 참여했고, 작가 사인을 받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 것만 봐도 한강의 인지도가 인구 1000만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스웨덴 내 소식통에 따르면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강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더 높이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았으며 이번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스웨덴 출판사 출판담당자인 니나 에이뎀 씨도 처음 ‘작별하지 않는다’ 번역 원고를 받아 읽었을 때 놀랄 만큼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10여 개 신문에 실린 몇몇 서평의 타이틀만 살펴봐도 엄청난 호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번역문학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제한적이었을지 탁월한 작가 한강은 확실히 보여준다.” “폭설이 내리는 제주에서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스웨덴 영화계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장면들을 연상하게 한다.” 노벨상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해마다 수상자들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많은데, 특히 노벨 문학상에 대한 관심은 일반 대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상이기에 특별하다. 이 때문에 수상자가 발표되면 신문 방송에서 앞다투어 다루고 책들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한강의 책들도 모든 서점에서 동이 나고 공공 도서관의 대기 순번도 100명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책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스웨덴 독자가 뽑는 올해의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현재 온라인 투표 중이다. 아직 스웨덴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의 추가 번역 출간도 추진되고 있다. 필자가 번역했고 좋아하는 작가인 한강이 노벨상을 받게 돼 밤잠을 설칠 정도로 너무 기쁘다. 다만 노벨상을 받지 않았어도 훌륭한 한국 작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좋은 번역가들이 꾸준히 기울인 노력이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10일 열릴 한강의 노벨상 시상식이 기다려진다.박옥경 번역가}

올해 베스트셀러 1위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사진)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는 10월 10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판매량이 가장 급증했다. 교보문고에선 지난 10년간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책들 가운데 ‘소년이 온다’의 판매량(올해 1∼11월 집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예스24는 노벨상 발표 이후 약 두 달간, 한강의 서적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00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런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두 대형 서점 연간 순위에서 ‘채식주의자’(창비)가 2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가 3위를 차지해 1∼3위를 모두 한강 작품이 휩쓸었다. 다만 구체적인 판매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한강 효과’는 다른 한국 문학 작품의 판매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스24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과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창비)는 한강의 노벨상 발표 이후 각각 36배, 95배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10일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강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주영 한국문화원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가유산청 등과 손잡고 ‘한국문학 베스트셀러 특별전’을 내년 1월 31일까지 연다. ‘홍길동전’ ‘구운몽’ 등 고전문학부터 ‘영자의 전성시대’ ‘인간시장’ 등 20세기 베스트셀러, 한강의 작품 등을 아우른다. 지난달 28일 개막 행사에는 150여 명의 영국 문학 및 교육 전문가, 출판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5일에는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그레이스 고 교수 등이 참여하는 한국 문학 강좌가 현지에서 열릴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 유수찬)는 제9회 대한민국 사진축전을 4일부터 8일까지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의 지원 아래 진행되며, 2024 서울포토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열린다. ‘사진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전은 사진예술을 대중과 가깝게 연결하는 장으로, 전시 관람은 모두 무료다. 스마트폰 사진 무료 인화 서비스와 사진작가와의 촬영 이벤트가 마련돼 시민들이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다양한 특별전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특별전 ‘위대한 한강, 빛으로 흐르다’에서는 서울의 중심에서 흐르는 한강의 야경을 담은 전시로, 한강이 품고 있는 역사와 발전의 이미지를 빛과 어둠으로 표현했다. 특별전 ‘일상사진공모전 및 청소년사진제 수상작 전시’에서는 일상 속 예술적 순간을 포착한 일반 시민과 청소년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로, 누구나 사진을 통해 창의성과 감성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중국 작가들과 국내 사진학과 학생들의 특별전도 각각 열린다. 또한 1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부스전에서는 다양한 주제와 색채를 담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홍창일 작가의 88올림픽 사진전, 인도의 ‘쿰브 멜라’ 사진전, 영월군 관광사진전 등 다채로운 전시가 한국 사진예술의 현재를 보여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삼간 채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한강이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을 앞두고 이번 주초 출국한다. 그는 6일 노벨박물관 물품 기증식을 시작으로 기자회견, 강연, 시상식 등 스웨덴 노벨재단이 주최하는 총 7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한강은 6일 오전 첫 공식 일정으로 노벨박물관을 방문한다. 수상자들은 자신의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한 뒤 이곳 의자에 서명을 남긴다. 노벨상 100주년을 기념해 2001년 설립된 노벨박물관은 알프레드 노벨과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기증 행사 자체는 비공개로 진행하는데, 한강이 어떤 소장품을 기증했는지는 추후 발표한다. 한강은 이날 오후엔 국내외 언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연다.시상식 사전행사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다음 날인 7일 스톡홀름 증권거래소에서 열리는 수상자 강연이다. 모든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1시간가량 강연을 여는 것이 관례. 특히 언어의 귀재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강연문은 이후 책으로 출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은다. 한강은 이날 모국어인 한국어로 강연을 하며, 이후 노벨상 홈페이지에 번역문(스웨덴어 및 영어)이 게재된다. 이날 강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문학계에 따르면 한강은 자신의 작품 세계 전반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강연문 초고를 작성해 지난달 중순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계 인사는 “한강이 자신의 작품처럼 진중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강연문을 썼다고 들었다”며 “10월 포니정 혁신상 수상 소감에 들어간 잔잔한 유머 코드는 이번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포니정 시상식 당시 한강은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농담을 던져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집필 과정에서 보이는 한강의 완벽주의 기질이 이번 노벨상 강연문 작성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초고 제출 후에도 최근까지 글을 계속 수정하는 등 마지막까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 앞서 한강은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펴내고 북토크를 열면서 “제가 좀 끝까지 고치는 스타일이라 편집자님을 힘들게 한다”며 “출력 넘어가는 날까지 전화해서 또 고치겠다고 했더니 (편집자가) ‘지금 출력 넘어갔는데…’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인 10일 시상식에서도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 한림원 관계자가 물리·화학·의학상에 이어 네 번째로 문학상 수상자를 스웨덴어로 약 5분간 소개하면서 수상자를 연단으로 이끄는 마지막 문장을 수상자의 모국어로 말하는 게 관례여서다. 예컨대 “친애하는 한강 작가님, 국왕 폐하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서주실 것을 요청하며 스웨덴 한림원의 따뜻한 축하를 전합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스웨덴어로 번역한 박옥경 번역가가 한국어 번역을 맡았다. 시상식에서 한강은 발등까지 오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시상식에서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 드레스를 각각 입는다. 이때 수상자 출신 국가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도 허용된다. 스톡홀름의 주요 관광명소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으로 꼽히는 스톡홀름 시청에선 7일부터 한강의 대형 초상화 조명을 볼 수 있다. 한강의 얼굴 이미지를 담은 조명을 청사 외벽 전체에 걸쳐 비추는 것. 한편 한강은 이번에 스웨덴으로 출국하면서 아들이나 부친인 한승원 작가와 동행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642년은 중국 명나라 역사상 최악의 해였다. 전례 없이 심각한 한파와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떼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사지로 내몰렸다. 산 사람은 왕겨나 썩은 음식물을 찾아 헤맸다. 몇 두의 왕겨나 나무껍질을 얻을 수만 있어도 기쁜 일이었다. 이로부터 2년 뒤 명 제국은 무너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중국사 교수인 저자는 신간에서 명 제국을 몰락시킨 극단적인 곡물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기후’라고 단언한다. 명나라 말기 은의 유입과 화폐 공급량으로 인해 인플레가 촉발됐다는 기존 통설을 반박한 것. 그는 수백 개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한 후 그 시점이 소빙하기 시기와 일치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자연 현상이 명 제국의 명운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명, 청, 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3000권에 달하는 지방지와 수필, 일기, 회고록, 영국 동인도회사 장부 등을 모았다. 777건에 달하는 기근 시기 곡물 가격 자료를 추출해 쌀, 보리, 밀, 콩 등 곡물 종류별로 가격 추이를 추적했다. 물가를 기후 변화의 결과로만 해석하지 않고 명대의 물가를 기후 변화를 감지하는 대리 지표로 활용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기후 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과정,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곡물 가격으로 고통받은 서민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특히 명대 서민 가정이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자녀 양육을 위해 필요로 한 연간 생활비를 추정한 대목이 흥미롭다. 노동자, 군인, 자영업자, 장인, 어부 등 서민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선 은 14냥이 필요했다. 이에 비해 중산층은 23냥이 들었다. 서민층의 연간 임금은 은 5∼12냥, 중산층은 14∼22냥이었다. 부족분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해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은 1푼, 1돈, 1냥으로 각각 살 수 있는 25가지 물건도 제시했다. 명대 대부분의 시기에 쌀 1두의 정상 가격은 은 3∼4푼이었지만, 소빙하기에 따른 기근 때는 은 10∼30푼으로 뛰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인플레이션의 고통이 엄습한 현 시점과 당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추천사에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 준다”고 썼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사진)이 2018년 문을 연 독립서점 ‘책방오늘’의 운영에서 최근 손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책방오늘’은 앞서 이달 2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강) 작가님은 책방오늘의 운영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니 혼란이 없으시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더불어 작가님의 SNS 계정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책방오늘과 작가님과 관련한 사칭 계정에 유의해달라”고도 했다. 서점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부터 휴업에 들어갔다가 약 한 달 만인 이달 13일 영업을 재개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임시 휴업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한강이 운영에서 손을 떼는 결정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서점은 운영 재개에 나서면서 영업시간도 줄였다. 휴업 이전에는 매일 오후 1∼7시에 문을 열었지만, 현재는 주 4일(수∼토요일) 오후 3∼7시에만 문을 연다. 다만 26일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강은 ‘책방오늘’의 사내 이사로 여전히 등재돼 있다. 앞서 한강은 2021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현재까지 그 자리는 공석으로 돼 있다. 앞서 한강은 서점에 손수 책을 진열하고 매대에 붙이는 소개글을 쓰는 등 서점 운영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또 20대인 한강의 아들이 주말에는 서점을 찾아 일을 돕기도 했다. 한강은 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 외곽에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서점에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강과 친분이 있는 문인은 “(운영에서 손을 뗀다고 하지만) 한강이 아예 서점에 발길을 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한강은 지난달 17일 열린 포니정 시상식 참석 이후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한강은 다음 달 10일(현지 시간) 노벨 문학상 시상식을 앞두고 관련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7일 스웨덴 현지에서 열리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의 원고 초고를 작성해 이달 중순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를 스웨덴어, 영어로 번역하고 브로슈어로 제작하는 시간이 필요해 강연에 한참 앞서 원고 초고를 한림원에 보냈다고 한다. 한강은 다음 달 초 스웨덴으로 출국할 것으로 보이며, 첫 공식 일정은 6일 열리는 기자회견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스웨덴 공영방송과 한 차례 인터뷰를 했을 뿐 언론 접촉을 피해 왔다. 수상 이후 첫 기자회견을 수상 발표 이후 약 두 달 만에 갖게 되는 것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2018년 문을 연 독립서점 ‘책방오늘’의 운영에서 최근 손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책방오늘’은 앞서 이달 2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강) 작가님은 책방오늘의 운영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니 혼란이 없으시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더불어 작가님의 SNS 계정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책방오늘과 작가님과 관련한 사칭 계정에 유의해달라”고도 했다. 서점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부터 휴업에 들어갔다가 약 한 달 만인 이달 13일 영업을 재개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임시 휴업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한강이 운영에서 손을 떼는 결정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서점은 운영 재개에 나서면서 영업시간도 줄였다. 휴업 이전에는 매일 오후 1~7시에 문을 열었지만, 현재는 주 4일(수~토요일) 오후 3~7시에만 문을 연다. 다만 26일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강은 ‘책방오늘’의 사내 이사로 여전히 등재돼 있다. 앞서 한강은 2021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현재까지 그 자리는 공석으로 돼 있다. 앞서 한강은 서점에 손수 책을 진열하고 매대에 붙이는 소개글을 쓰는 등 서점 운영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또 20대인 한강의 아들이 주말에는 서점을 찾아 일을 돕기도 했다. 한강은 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 외곽에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서점에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강과 친분이 있는 문인은 “(운영에서 손을 뗀다고 하지만) 한강이 아예 서점에 발길을 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한강은 지난달 17일 열린 포니정 시상식 참석 이후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한강은 다음달 10일(현지 시간) 노벨 문학상 시상식을 앞두고 관련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달 7일 스웨덴 현지에서 열리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의 원고 초고를 작성해 이달 중순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를 스웨덴어, 영어로 번역하고 브로슈어로 제작하는 시간이 필요해 강연에 한참 앞서 원고 초고를 한림원에 보냈다고 한다. 한강은 다음달 초 스웨덴으로 출국할 것으로 보이며, 첫 공식 일정은 6일 열리는 기자회견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스웨덴 공영방송과 한차례 인터뷰를 했을 뿐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 수상 이후 첫 기자회견을 상 발표 이후 약 두 달 만에 갖게 되는 것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나의 유년시절 풍경에 어떤 어른들이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 보자.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거나 눈을 마주치며 길을 알려 주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갈 길만 가는 어른의 모습이 있다.최근 ‘어떤 어른’(사계절·사진)을 펴낸 수필 작가 김소영(48)은 25일 통화에서 “어린이의 인생에 어떤 ‘신 스틸러’가 될 것인가 생각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저도 많은 어른들을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부모님,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담임이 아닌데도 이름 한 번 더 불러주신 선생님 등 많은 어른들의 영향을 받았으니 저 혼자 큰 게 아니지요.” 20만 부가 팔린 전작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가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면, 신간은 어린이 눈에 비친 어른을 조명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순간에도 어른을 항상 관찰하는 아이들의 사례를 통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한다. 작가의 일터인 독서 교실을 비롯해 세탁소, 동네 식당, 학교 등 일상 공간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는 다양한 순간을 포착했다. 어른의 말과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작가는 ‘노키즈존’ ‘○린이’ 같은 표현들에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에 대한 배제나 멸칭은 누구보다 어린이가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다”며 “어린이에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자신들이 배제당했던 방식으로 남을 배제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맥락에서 어린이 박물관이나 어린이 도서관을 따로 설치하기보다는 한 공간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더불어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어른 도서관에 가면 ‘어른도 책을 읽는구나. 우리한테만 읽으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읽는 사람’들의 세계란 이런 거구나’를 알 수 있어요. 관람 예절도 자연스레 배우게 되고요.” 그는 어린이를 잘 대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잘 대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들이 나한테 어떻게 해줬는지 떠올리게 되고, 동네 마트에서 어린이 손님에게 잘 대해 주는 계산원 등 다른 어른들은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게 된다”고 했다. “어린이에게 어른 역할을 잘하려면 저한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 안에 상처가 많고 내 곳간이 비어 있어서는 어린이에게 내줄 게 없으니까요.” 당장 지금부터 어른들이 실천할 수 있는 ‘어린이 대하는 법’ 세 가지를 꼽아 달라고 했다. “눈 마주치며 인사하기, 엘리베이터 문 잡아 주기, 반응이 기대 같지 않아 무안해도 또 하기.”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배우 정우성(51)이 모델 문가비(35)와의 사이에 혼외자 출생 사실을 인정하고 아버지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소속사를 통해 밝혔다. 정우성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24일 “문가비 씨가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아이는 정우성의 친자가 맞다”면서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최선의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정우성은)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앞서 문가비는 22일 소셜미디어에 아기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게재하며 출산 사실을 전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소식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는 임신의 기쁨이나 축하를 마음껏 누리기보다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조용히 임신 기간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보며, 완벽함보다는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건강한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연예계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22년 한 모임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아이의 출산 시점은 올해 3월로 전해졌다. 다만 정식으로 교제한 사이는 아니었고 아이 출산으로 인한 결혼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혼외 출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혼인 외 출생아 수’는 지난해 사상 첫 1만 명을 돌파해 1만900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 23만 명의 4.7%를 차지했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20∼29세 중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8%로 10년 전에 비해 12.5%포인트 늘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1일 경기 김포시 김포만화도서관 아동용 서가. 성인 손바닥 크기의 알록달록한 신발 10켤레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인근 유치원에서 놀러 온 5세 반 아이들이 서가에 꽂힌 만화책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한 아이는 원통을 잘라 만든 듯한 아늑한 공간에 폭 들어가 있었다. 교양만화 ‘WHY? K-POP’의 책장을 넘기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이날 개관한 김포만화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김포시 민원콜센터 1층에 195m²(약 59평) 규모로 조성됐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데 만화도서관이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 도서관 주변에 초등학교가 여럿 있는 만큼 아이들이 보다 도서관을 자주 찾았으면 하는 취지에서 만화책 수가 많다. 물론 일반도서도 취급하고 있다. 현장을 찾으니 만화책이 서가에 가득했다. ‘유미의 세포들’, ‘미생’, ‘정년이’ 등 인기 웹툰 단행본부터 절판된 만화책의 초판본까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화도서관 개관에는 기증자의 도움도 큰 몫을 했다. 김모 씨는 6개월 전에 20대로 세상을 떠난 딸이 애지중지하던 만화책 약 500권을 기증했다. 1999년 발행된 ‘검정고무신’, 절판된 ‘먹짱!’, ‘유유백서’는 상태가 좋아서 마치 새 책 같았다. 개관식에서 만난 김모 씨는 “웹툰 작가 지망생이던 딸이 만화책을 무척 아껴서 햇빛에 종이가 바래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둘 정도였다”면서 “내가 관리하면 책들이 손상될 것 같아 기증하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 한편에는 웹툰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태블릿과 PC도 넉 대 설치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원피스, 짱구 피규어가 서가 위에 놓여 있었고 포켓몬스터 노래도 흘러나왔다. 지역 주민들은 김포만화도서관이 신곡초, 보름초, 신곡중학교 등과 인접해 있어 아동, 청소년을 위한 문화교육시설이 될 것을 기대했다. 개관 당일부터 찾아온 신곡초 6학년 최정훈 군은 “웹툰보다 종이책이 훨씬 흥미진진하다. ‘마법천자문’과 ‘수학도둑’을 다 읽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김병수 김포시장,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은덕 KB국민은행 강서지역그룹대표 등이 참석했다. 김병수 시장은 “우리 아이들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산파 역할을 하는 작은 도서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연 대표는 “책을 읽으면 마치 아는 길을 가듯, 살아본 삶을 살듯 익숙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여유가 있고 행복하다”며 “실패 없이, 실수 없이, 불행 없이 살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포=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멋진 신세계’ ‘1984’ 등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눈여겨볼 신간이다. 기존 디스토피아 소설이 가상 국가 같은 새로운 배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면, 지난해 영국 부커상 수상작인 이 책은 현실이 배경이다. 전체주의 독재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크게 와닿는 이유다. 소설은 전체주의에 휩쓸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싸우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주인공 아일리시의 집에 사복 경찰이 찾아든다. 교원 노조에 참가한 남편을 찾으러 온 것. 변호사 접견이나 불법 구금에 대한 항의 등 모든 상식과도 같은 절차가 생략된다. 아일리시의 네 아이는 쉴 새 없이 엄마를 찾고, 나날이 치매가 악화하는 아버지까지 딸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에 징집 통지서를 받은 큰아들, 여권 발급이 거부된 막내까지. 도망도 기다림도 선택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이어진다. 작가는 인물이 느낄 극도의 불안을 따옴표를 없애고, 마침표 대신 쉼표를 쓰는 등의 실험적 형식으로 드러낸다. 새벽 1시 15분 직장 동료가 구금됐다는 전화를 받고 아일리시 부부가 침실에서 나누는 대화다. 남편의 말과 아내의 말이 혼란스레 섞였다. “캐럴 말로는 마이클이 지금 경찰서에 갔는데 제대로 말을 안 해줘서 밤이니까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대, GNSB(치안국)랑 연락도 안 되나 봐, 직통 번호가 없대, 왜 노조에서 나한테 전화를 안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진짜 큰일 같은데. 아니야. 뭐가 아니야? 어젯밤에 집으로 찾아왔던 형사 명함에 번호가 있어, 핸드폰 번호, 당신이 직접 전화했잖아, 말해봐, 래리,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남편은 침울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고 거대한 압력에 짓눌린 듯 경직돼 있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범죄자처럼 굴고 있다. 아일리시는 변해 버린 남편을 보며 낯섦과 무력감을 느낀다. 옆집 불은 오늘부터 켜지지 않고, 직장 동료는 오늘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적 소요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채 서서히 주인공의 삶에 파고든다. “만약 A를 B라고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하고 또 하면 사람들은 그걸 진실로 받아들여. 물론 이건 오래된 생각이야, 새로울 건 없지, 하지만 넌 책에서가 아니라 네가 직접 살아가는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어.” 소설은 한 개인의 비극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함으로써 뉴스 한두 줄로 접하는 전쟁과 재앙이 실은 수많은 개인의 종말임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시스템이 언제라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2023년 부커상 수상작. 당시 심사위원단은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국가 폭력과 내몰림의 현실을 그렸다”며 “오늘날 많은 정치적 위기와 공명하면서도 오로지 문학성으로 승리한 책”이라고 시상 배경을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밤이 와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6월. 소설가 천선란(31)은 캐나다 밴프의 한 호수 앞에 서 있었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쪽빛 호수와 로키산맥. 휴대전화는 먹통이 되고 세상 밖 소음과 언어가 닿지 않는 곳. 자연 앞에서 작가는 언어가 사라진 세계를 떠올렸다. 신작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를 낸 천선란을 18일 서울 마포구 한 책방에서 만났다. 그는 “언어가 없으면 오늘과 내일의 경계,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강박, 노화나 늙음마저 사라지지 않을까”라며 “우리가 얼마나 언어에 갇혀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선란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SF(공상과학) 작가 중 한 명이다. 2020년 출간한 그의 대표작 ‘천 개의 파랑’은 18만 부가 팔렸고, 올 초 영국 펭귄 랜덤하우스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었다. 표제작 ‘모우어’는 3000년 뒤 언어가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 한때 멸종 직전까지 갔던 인류는 탐욕과 불신, 혐오는 언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언어를 포기하도록 진화했다. 어느 날 이 세계에 떠내려온 아이 ‘모우’가 유일하게 언어를 씀으로써 균열이 시작된다. 작가는 “인간도 처음에는 벌레, 곤충,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자연의 일부였을 텐데 왜 생태계로부터 떨어져 나갔을까 고민하다 보니 시작은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그 사물의 용도를 명확하게 하고 이용하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은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같은 현상도 언어를 바꾸면 느낌이 달라요. ‘지구 온난화’라는 미온적인 단어를 이제 ‘기후 위기’로 대체해서 쓰고 있는 것처럼요. 언어를 정신 차리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언어에 ‘진심’인 것은 치매가 온 어머니를 10년간 간병하며 일상적으로 여러 차원의 언어를 구사해온 영향이 크다. 어머니와 대화할 땐 서너 살 아이들이 쓸 것 같은 간단한 수준의 언어만 쓴다. 북토크를 할 땐 말하기 쉬운 언어를, 책을 쓸 땐 더 높은 차원의 언어를 쓴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외국어를 못 한다는 이유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0’이 돼버리는 경험을 한다”며 “언어가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거구나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 다양한 글쓰기에 도전 중이다. 소설집 수록 작품도 소재와 결이 다양하다. 초능력을 가진 10대 청소년들을 다룬 ‘서프비트’, 장의사 안드로이드를 소재로 한 ‘뼈의 기록’ 등은 가독성 있게, 반면 마인드 업로딩을 소재로 한 ‘쿠쉬룩’ 등은 “확 불친절해지자”라고 마음먹고 썼다. 언어에서 뻗어 나가 도시, 가족, 사회 등 온갖 형태의 구조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그는 “언어라는 게 결국 생각의 집이자 형태다”라며 “지금 같은 도시 형태, 가족 형태는 왜 생겼을까, 이것을 다 해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특히 고정관념의 해체는 그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인터뷰 중 챗GPT나 디지털교과서가 화제에 올랐을 때 그는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뇌에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이 미래에 쓸 소설은 제 고정관념과 인식으로는 떠올릴 수도 없는 이미지일 거 아니에요. 그게 설레요. SF 작가로서. 또 어떤 것들이 나올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밤이 와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6월. 소설가 천선란(31)은 캐나다 밴프의 한 호수 앞에 서 있었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쪽빛 호수와 로키산맥. 휴대폰은 먹통이 되고 세상 밖 소음과 언어가 닿지 않는 곳. 자연 앞에서 작가는 언어가 사라진 세계를 떠올렸다. 신작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를 낸 천선란은 18일 서울 마포구 한 책방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얼마나 언어에 갇혀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언어를 아예 해체해서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강박을 벗으면 노화나 늙음마저 사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천선란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젊은 SF 작가 중 한명이다. 2020년 출간한 그의 대표작 ‘천 개의 파랑’(허블)은 18만 부가 팔렸고 올 초 영국 펭귄 랜덤하우스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었다. 표제작 ‘모우어’는 3000년 뒤 언어가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 한때 멸종 직전까지 갔던 인류가 탐욕과 불신, 혐오는 언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언어를 포기하도록 진화한 것. 어느 날 이 세계에 떠내려온 아이 ‘모우’가 유일하게 언어를 씀으로써 균열이 시작된다. 언어를 금지한다는 세계관은 어떻게 나왔을까. 작가는 “분명 인간도 처음에는 벌레, 곤충,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자연의 일부였을 텐데 왜 생태계로부터 떨어져 나갔을까 고민하다 보니 시작은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그 사물의 용도를 명확하게 하고 이용하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나무를 장작, 관재(관을 만드는 재료), 건재(건물을 만드는 재료)라 부르는 식으로. 그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은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언어를) 다시 쓰겠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같은 현상도 언어를 바꾸면 느낌이 달라요. ‘지구 온난화’라는 미온적인 단어를 이제 ‘기후 위기’로 대체해서 쓰고 있는 것처럼요. 언어를 정신 차리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언어에 ‘진심’인 것은 치매가 온 어머니를 10년간 간병하며 일상적으로 여러 차원의 언어를 구사해온 영향이 크다. “엄마와 소통할 땐 정말 간단한 수준의 언어만 사용해요. 서너 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대화요. 글을 쓸 땐 더 높은 차원의 언어를 쓰고, 북토크 땐 좀 더 말하기 쉬운 언어를 선택하죠. 반대로 해외에 나가면 제가 영어나 독일어, 불어를 못 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나의 정체성은 다 사라져버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0’이 돼버리는 경험을 해요. 언어가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거구나 느끼는 거죠.” 그는 최근 다양한 글쓰기에 도전 중이다. ‘모우어’에 실린 단편 중 ‘서프비트’, ‘뼈의 기록’, ‘얼지 않는 호수’는 비교적 가독성 있게 썼다면 ‘모우어’, ‘쿠쉬룩’은 “확 불친절해지자”라고 마음먹고 썼다. 언어에서 뻗어 나가 도시, 가족, 사회 등 온갖 형태에도 관심이 생겼단다. “언어라는 게 결국 생각의 집이자 형태잖아요. 지금 같은 도시 형태, 가족 형태는 왜 생겼을까, 이것을 다 해체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어서일까. 인터뷰 중 챗GPT와 디지털교과서가 화제에 올랐을 때 그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뇌에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이 미래에 쓸 소설은 제 고정관념과 인식으로는 떠올릴 수도 없는 이미지일 거 아니에요. 그게 설레요, SF 작가로서. 또 어떤 것들이 나올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