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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내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9월 유엔총회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협의했지만 미국 측은 “두고 보자”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미국, 연내 종전선언에 부정적 한 정부 소식통은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바라보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 기류는 분명히 달라졌다”며 “그 결과로 체제보장 인센티브로 적극 검토했던 종전선언을 연내에 하는 것이 어렵게 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미 양국 정부에서 종전선언을 9월 유엔총회에 맞춰 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6, 7일 평양에 머물며 김정은도 못 만나고 ‘빈손 귀국’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기 전에 종전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말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북-미 회담이 순탄치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1∼14일 미국 측 협상팀을 만나고 귀국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3일 워싱턴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과거 전례에 비춰볼 때 북-미 협의 과정이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9년여 만에 북-미 장성급 회담 열려 유엔사 및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15일 오전 10시경부터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송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장성급 회담이 열렸다. 장성급 회담은 2009년 3월 이후 9년 4개월 만이다. 2, 3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회의는 주로 유해 송환 논의에 집중됐으며 비교적 순조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사항인 유해 송환 문제가 이행조치에 들어가면서 비핵화 등 다른 합의사항에 대한 실무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본부장은 “북-미 간 후속 협상이 곧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영국 데일리메일 인터뷰에서 김정은에 대해 “그는 매우 똑똑하고, 멋진 인물이며, 재미있고 억세면서 훌륭한 협상가”라고 칭찬했다. 한편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인 ‘강선(Kangson)’ 단지가 평양 인근의 천리마지역에 있다고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이 13일(현지 시간) 전했다. 강선단지는 2000년대 초반 건설됐으며 ‘주 기체 원심분리기 캐스케이드’가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메인홀은 길이가 약 50m, 폭이 약 110m로 추정됐다. 디플로맷은 “강선에서 처음으로 기체 원심분리기 시설을 가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평양 근교에서 10여 년간 우라늄 농축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황인찬 hic@donga.com·주성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의 미-러 정상회담이 16일(현지 시간)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개최된다. 두 정상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에서 잠시 만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양자회담을 갖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정상회담 장소인 헬싱키 대통령궁은 냉전 종식 무렵인 1990년 9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만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두 정상은 오후 1시부터 통역만 대동한 단독회담을 시작해 업무 오찬과 공동 기자회견 등을 가지며 3시간가량 북한 비핵화와 시리아 내전 등 지구촌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의제 하나하나가 해묵은 난제들이라 짧은 회담만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리아에서 북핵 문제까지 미-러 정상회담에 오를 의제는 사실상 ‘지구촌 난제 종합세트’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우선 양국은 시리아 문제에서부터 갈등이 첨예하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패전 위기에 몰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구원해 전세를 뒤집은 뒤 이제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은 시리아 사태에서 빠지고 싶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파병된 2200여 명의 미군을 빼낼 시기를 엿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 내 러시아의 영향력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보장받고 미군 철수를 제안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대신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전통적 중동 우방인 이스라엘이 가장 경계하는 이란의 시리아 내 세력 확장을 억제하는 걸 돕겠다고 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과 서방의 대러 제재도 이번 회담에서 다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가 상실한 주요 8개국(G8) 지위를 회복시켜 주자고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을 제외한 G7 정상들은 모두 반대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크림반도 병합을 용인하면 대러 제재 근간이 무너질 것으로 우려한다. 세계 핵무기의 92%를 차지하는 양국이 핵무기 감축에서 어떤 합의를 이룰지도 관심사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2021년까지 미-러의 핵탄두를 1550개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신전략무기감축 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했다. 양국 정상이 이 협정을 2021년 이후로 연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북핵 문제도 중요 의제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북한에 대한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지만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전면적 제재에 대해선 늘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서방의 제재와 저유가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동북아에서 만회하려는 러시아는 대북 제재 완화가 자국의 교역량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회담 자체가 푸틴의 승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이 푸틴 대통령의 자국 내 정치적 입지, 국제무대에서의 정통성 강화에 이용되는 데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2일 “푸틴 대통령은 회담장에 앉기도 전에 이미 이긴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미 언론도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 출신인 푸틴 대통령에 비해 정치 경험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많은 것을 양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회담의 의제들은 쉽게 풀릴 일이 아닌 데다 푸틴 정권의 태도도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푸틴 대통령에게 이용만 당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15일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는 낮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만남에서 어떤 나쁜 성격의 일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고 어쩌면 몇몇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나는 것이 좋다는 믿음이 있다. 김정은, 시진핑(習近平)과의 만남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고 강조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동굴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태국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들의 구조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은 축하 인사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 “용감한 소년들과 헌신적인 코치, 세계에서 달려온 구조대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적었다. ‘동굴 소년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할리우드 제작사가 나타났고, 소년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곳도 많다. 하지만 정작 소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소년들은 동굴에서 번식하는 악성 세균 감염 우려 때문에 가족과의 면회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영화제작사 퓨어플릭스는 동굴이 있는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에 2명의 프로듀서를 보내 ‘동굴 소년들’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구조작업이 진행 중일 때 현장에 도착한 프로듀서들은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구조에 참여한 각국의 구조 전문가들과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을 인터뷰했다. 2010년 8월 칠레 북부 산호세 구리 광산에 갇혔다가 6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33명의 광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8월 개막하는 2018∼2019시즌의 안방경기에 소년들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7일 만에 모두 살아 돌아온 소년 12명과 코치는 현재 치앙라이 쁘라차누끄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8일 4명, 9일 4명 등 이틀간 구조된 8명의 소년은 10일 오후 가족들과도 전화 통화를 했다. 의료진은 이들이 가족에게 “‘구조돼 감사하고 행복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동굴에 갇혀 지내 지치고 힘들 법도 하지만 소년들은 밝은 모습으로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은 “아이들은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다. 9일 밤 병원을 찾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와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소년들은 오랜 동굴 생활로 체중이 1∼2kg가량 줄었지만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다. 구조된 13명(소년 12명, 코치 1명) 중 가장 마지막에 동굴에서 나온 에까뽄 찬따웡 코치와 3명의 소년은 미얀마 소수민족의 난민 출신으로 태국 국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살고 있는 치앙라이는 한때 범죄조직이 장악했던 미얀마 골든트라이앵글과 인접해 있다. 분쟁에 휘말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이웃 태국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에까뽄 코치도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불교 사원에서 자랐다. 미얀마 쪽에서 자고 다음 날엔 축구 경기를 위해 태국으로 돌아오는 삶을 반복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한편 동굴에서 소년들과 머물며 구조에 큰 기여를 했던 ‘잠수하는 호주 의사’ 리처드 해리스가 동굴 속에서 소년들을 돌보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호주 일간 사우스모닝헤럴드에 따르면 해리스는 13명을 모두 동굴에서 내보낸 뒤 동굴에서 나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것이 기적인지, 과학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태국 해군 네이비실은 10일 유소년 축구팀 13명을 모두 구조한 직후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이렇게 적었다. 최장 4개월까지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구조 작업이 일주일 안에 마무리된 것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온몸을 소년들을 위해 던졌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소년들을 이끈 에까뽄 찬따웡 코치(25), 전 세계에서 달려온 다국적 구조대 등이 이번에 화제를 모았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빛난 25세 리더십 소년들이 실종 열흘째인 2일 최초로 발견됐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다. 전원 무사한 데다 별다른 부상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에까뽄 코치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동굴에 갇힌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극한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도록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우리는 한 팀’이라는 의식을 계속 심어주었고 살아서 나갈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이끌었다. 소년들은 코치가 시키는 대로 같은 동작을 하고, 구호도 외쳤다. 에까뽄 코치는 소년들이 명상을 하게 해 체력을 비축시켰다. 또 소년들이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나눠서 먹게 했고 복통을 막기 위해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하고 천장에 맺힌 물만 마시게 했다. 덕분에 소년들은 구조대에 발견될 당시 다소 야위었으나 건강을 잃지는 않았다. 그 대신 코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에까뽄 코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죄책감 때문에 내내 괴로워했다. 그는 부모들에게 “제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피겠다고 약속해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 약속을 지켜 그는 마지막으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에까뽄 코치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고, 12세 때부터 사찰에 들어가 10년간 수도승 생활을 했다. 그의 헌신 리더십은 태국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혁혁한 공을 세운 다국적 구조대 이번 구조에는 전 세계에서 날아온 구조대원들의 공이 컸다. 특히 영국인 다이버 리처드 스탠턴과 존 볼랜선은 열흘 동안 실종돼 있던 13명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전직 소방대원인 스탠턴은 2004년에 멕시코 동굴 속에서 영국인 6명을 구출하는 등 여러 공로로 2012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현직 정보기술(IT) 컨설턴트인 볼랜선 역시 스탠턴과 함께 짝을 이뤄 활동하면서 2010년 프랑스에서 죽어가던 다이버를 구출한 적도 있다. 동굴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잠수하는 의사’ 리처드 해리스도 큰 활약을 했다. 동굴 잠수 분야에서 30년 경력을 가진 그는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번에 그는 현장에 들어가 소년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구조 순위를 정했고, 매일같이 소년들과 헤엄치며 잠수법을 가르쳤다. 그는 10일 마지막 팀으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태국에선 5일 산소 부족으로 사망한 태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의 사만 꾸난(37)에 대한 추모 열기도 뜨겁다. 그는 현직 공항 보안 직원으로 부인과 자식들도 있는 몸이지만 구조 작업 소식에 스스로 자원했다가 변을 당했다.주성하 zsh75@donga.com·전채은 기자}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빈손으로 평양에서 돌아온 것을 보며 미국이 북한을 깊이 ‘학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전리품에만 관심이 있지, 전 재산을 도박판에 올려놓은 북한의 심정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 북한으로선 종전협정을 맺고 핵 목록 신고를 하면 적어도 북-미 대표부 정도는 개설하고, 미국에 핵 검증을 맡기면 북-미 수교와 체제보장 선언 정도는 받아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반면 미국은 요구는 섬세하지만, 보상에 대해선 ‘일단 빨리 다 내놓으면 그 다음은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8일 베트남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김정은이 기회를 잡는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외교 관계와 번영으로 가는 베트남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기회를 잡으면 베트남의 기적은 당신(김정은)의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미국이 베트남의 기적을 북한의 롤모델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이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신뢰를 쌓고 미국과 국교 수립을 했고 각종 제재를 푼 뒤 국제기구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전형적인 미국의 시각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시각에서도 보자. 베트남은 30년 넘게 개혁개방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지만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 남짓(세계 130위권)이다. 과연 김정은의 눈에 베트남이 ‘번영의 기적을 쓰고 있는 롤모델’로 보일까. 특히 베트남은 1979년 ‘신경제정책’을 발표한 뒤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내놓기까지 4차례나 공산당 지도부가 바뀌었다. 보수파와 개혁파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전임 지도부에 실수와 능력 부족의 책임을 확실히 물은 뒤 개혁개방의 노선을 확정했다. 지도자가 실수할 수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는 북한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모델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베트남을 롤모델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 얼마나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또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중동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미국의 특정 국가에 대한 몰이해, 그로 인한 실패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북한에서 반복될까 봐 우려스럽다. 차라리 미국이 26년 동안 집권하며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끈 리콴유의 길을 따르라 했다면 김정은은 더 솔깃했을 것이다. 리콴유는 장남인 리셴룽이 총리가 된 뒤에도 90세 가까이 ‘선임장관’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했고, 죽은 뒤에도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강국에 둘러싸여 늘 안보 위협 속에 살아왔음에도 일당독재를 유지했고, 국가가 기업을 경영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김정은이 매력을 느낄 요소가 베트남에 비교할 바가 없이 많은 나라다. 그 밖에도 김정은이 롤모델로 참고할 나라는 많다. 싱가포르처럼 가난한 어촌에서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중국의 ‘선전(深(수,천)) 모델’은 어떤가. 리콴유도 “선전의 미래는 곧 중국의 미래”라고 예언했다. 선전은 중국식 시장경제의 시험무대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중국 개혁개방의 기관차가 됐다. 북한에도 개성, 신의주, 나선처럼 선전의 역할을 할 도시들이 있다. 또 선전을 만든 덩샤오핑(鄧小平)이 모방했던 박정희식 개발모델도 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세계에서 평가받는 모델들이지만, 다 과거일 뿐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김정은은 새로운 ‘김정은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가령 김정은은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을 4차 산업혁명 인재 양성으로 극복해 가는 에스토니아 모델도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2007년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15시간씩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힘도 없어 보인다. 북한이 4차 산업혁명 인재 양성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다면 20∼30년 뒤 한반도의 주도권을 가질 수도 있다. 김정은에게 보여줘야 할 미래는 베트남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다른 미래를 볼 것이라는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그 진심을 나도 보았기에, 진심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 동굴에 갇혀 있는 유소년 축구팀 최후의 5인이 10일 모두 구조됐다. 동굴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떠난 이는 25세 코치 에까뽄 찬따웡 씨였다. 고립 초기부터 구조 마지막 순간까지 소년들을 먼저 위했던 찬따웡 씨가 이날 오후 6시 51분 동굴을 빠져나오면서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봤던 ‘기적의 생환 드라마’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지난달 23일 소년 12명에 코치 1명 등 13명이 동굴에 고립된 후 17일 만이다. 앞서 태국 구조 당국은 8일 4명, 9일 4명을 구출해 냈다. 이날 구조 작업은 전 세계에서 자원한 최정예 다이버 19명을 투입한 가운데 오전 10시 8분에 시작됐다. 첫 번째 소년은 작업 시작 6시간 만인 오후 4시 12분에 빠져나왔다. 이어 3시간 사이에 나머지 4명이 모두 구조됐다. 이날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완수됐다. 구조현장 책임자인 나롱삭 오소타나꼰 전 치앙라이 지사는 “첫날인 8일 4명을 구하는 데 총 11시간이 걸렸지만 9일에는 9시간 만에 모든 작업이 끝났다”고 말했다. 소년들은 건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대를 모았던 소년들의 월드컵 결승전 경기장 방문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굴병’으로 불리는 히스토플라스마 카프술라툼 감염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국제축구연맹(FIFA)은 소년들이 구조되면 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밝혔다. 제사다 촉담롱꾼 공중보건부 사무차관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소년들이 TV로 결승전을 시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지난달 23일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자연동굴 탐험 중 폭우로 갇혔던 유소년 축구팀 소속 소년 12명 중 4명이 고립 16일째인 8일(현지 시간) 극적으로 구조됐다. 몇몇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4명 모두 걸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외신은 전했다. 나머지 소년 8명과 코치 1명도 이르면 9일 생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제축구연맹(FIFA)은 6일 소년들이 구조되면 15일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밝혔다. 깊은 땅 속에서 생사를 건 사투를 벌였던 소년들이 월드컵 축제에 인간 승리의 감동을 더할지 주목된다. 》 태국 동굴에 갇혔던 유소년 축구팀 소년 12명 중 4명이 고립 16일째인 8일 무사히 구출됐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이날 보도했다. 태국 구조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외국인 다이버 13명과 태국인 다이버 5명이 참가한 가운데 구조작업을 진행해 오후 5시 37분 첫 번째 소년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첫 번째로 구조된 소년은 몽꼰 분삐암(14)으로 알려졌다. 이어 5시 50분 두 번째 소년도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들의 생환 직후 토사나텝 분통 치앙라이주 보건국장은 “2명의 아이가 나왔다. 이들은 동굴 옆 의료진 텐트에 있으며 우리가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환한 소년 가운데 1명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지만, 4명 모두 걸어서 동굴을 빠져나왔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동굴 안에서 소년들과 함께 있는 호주 의사가 가장 건강이 안 좋은 소년을 먼저 구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소년이 분삐암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태국 당국은 당초 구조 작업이 11시간 정도 걸려 오후 9시경 첫 번째 소년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구조 작업은 8시간도 채 안 돼 끝났다. 태국 언론들은 그동안 집중적으로 동굴 안의 물을 뽑아냈고 비도 줄어들어 동굴 내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덕분에 동굴 내 상당 구간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고, 결국 구조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단축됐다는 것이다. 구조된 소년들은 헬기를 타고 60km 정도 떨어진 치앙라이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앞서 태국 당국은 8일 오전부터 소년들에 대한 구조 작업을 전격 단행했다. 8일 오후부터 비구름이 태국 북부에서 관측되고 며칠 동안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동굴 수위가 급격히 높아질 우려가 있다. 심지어 소년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까지 물이 더 차오를 수도 있다. 구조 현장을 지휘하는 나롱삭 오소따나꼰 전 치앙라이 지사는 이날 “오늘이 ‘디데이’다. 소년들이 어떤 도전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구조 작업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구조 당국은 그동안 소년들이 이 구간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사흘 이상 수영 및 잠수법을 가르쳤다. 구조 작업은 다이버 2명이 소년 1명을 데리고 나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대 난코스인 3번째 침수구역에는 공기통을 벗은 채 통과해야 하는 폭 60cm의 좁은 구간도 있어 구조가 쉽지 않았다. 이 구간은 소년들이 스스로 통과해야 했다. 태국 당국은 당초 13명의 생존자를 4개 그룹으로 나눠 구조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동굴을 탈출할 첫 그룹에는 4명, 이후에 나올 3개 그룹에는 각각 3명이 포함됐다. 축구부를 인솔했던 25세 코치는 제일 마지막에 빠져나오게 된다. 하지만 동굴 안 상황이 예상보다 좋아 1차로 4명을 구출함으로써 동굴 안에 남은 9명에 대한 구조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1차 구조에 9시간 정도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남은 소년들도 빠르면 9일 전부 구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6일 이 소년들을 15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했다. 치앙라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 클럽에 소속된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은 지난달 23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관광 목적으로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립됐다.주성하 zsh75@donga.com·전채은 기자}

《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에서 실종됐던 16세 이하 유소년 축구팀원 12명과 코치(25)가 지하 1km의 깜깜한 동굴 속에 열흘이나 갇혀 있다가 2일(현지 시간)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이들의 생존 소식은 3일 하루 내내 월드컵 이슈를 제치고 최대 화제가 됐다. 이제 전 세계는 이 용감한 소년들이 흙탕물로 가득 찬 5km가 넘는 동굴을 헤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태국 북부에서 자연동굴 탐사 중 연락이 끊겼던 16세 이하 유소년축구팀 12명과 코치가 실종 열흘 만인 2일(현지 시간) 동굴 깊은 곳에서 모두 건강한 상태로 발견됐다. 기적적인 생환 스토리를 기다리던 전 세계는 크게 열광하고 있다. ○ “아주 행복해요” 태국 해군 네이비실은 3일 소년들이 무사히 생존해 있다고 발표하면서 전날 이들과 구조대원이 나눈 대화 영상을 공개했다. 카메라에 비친 소년들은 유니폼을 입고 맨발인 상태로 캄캄한 동굴 속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다. 이들의 발밑에선 뿌연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구조팀의 모자에 달린 랜턴이 아이들을 비추자 한 소년이 힘없는 목소리로 영어로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다른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을 발견한 사람은 2명의 영국 동굴탐험 전문가들로 대화는 영어로 이뤄졌다. 구조팀이 먼저 몇 명이냐고 물어보자 소년들은 13명이라고 대답했다. 일부 소년이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하자 전문가는 “알고 있다. 이해한다. 식량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년이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묻자 구조팀은 “월요일이다. 너희들은 열흘 동안 갇혀 있었다”고 답한 뒤 “너희들은 매우 강하다”고 격려했다. 구조팀이 “내일 네이비실이 식량을 가지고 의사와 함께 올 것”이라고 말하자 한 소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다. 구조팀은 “모두 구조될 때까지 계속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태국 당국은 아이들의 건강이 대부분 양호한 상태라고 밝혔다. 일부는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관계자들은 동굴 온도가 섭씨 26도이며 벽에서 물이 떨어지기 때문에 탈수와 저체온 증상 없이 버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소년들의 동영상이 공개되자 동굴 입구에서 이들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과 구조대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11∼16세인 이 소년들은 치앙라이 지역 유소년축구팀 소속으로 지난달 23일 훈련 뒤 25세 코치와 함께 근처 동굴 탐험에 나섰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동굴 일부가 침수돼 빠져나오지 못했다. ○ 당국, 위험 감수한 구조 계획 발표 이들이 발견된 위치는 동굴 입구에서 5∼6km 안쪽이다. 평소라면 몇 시간 걸어서 도달할 거리지만 동굴 곳곳에 뿌연 흙탕물이 천장까지 차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의 군인과 7개국에서 날아온 동굴구조 전문가들이 실종 소년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 동안 매시간 10t의 물을 동굴에서 뽑아내 수위를 시간당 1cm씩 낮춘 끝에 겨우 구조대가 도달할 수 있었다. 3일 몇몇 구조대원이 다시 들어가 소년들에게 고열량의 젤리와 해열진통제를 우선적으로 전달했지만 이들을 굴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누퐁 파오찐다 내무장관은 3일 “다시 큰비가 내려 동굴 안의 수위가 높아지기 전에 이들을 밖으로 데려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오찐다 장관은 소년들에게 간단한 잠수훈련을 시킨 뒤 1명당 2명의 구조대원이 동반해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 전에 동굴 안의 물을 최대한 빼내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가 더 내려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되면 생존자들이 얼마나 오래 동굴 안에 갇혀 있어야 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게도 버거운 흙탕물 속의 잠수가 쇠약해진 소년들에겐 위험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일부 구간은 너무 좁아 구조대원이 곁에 붙을 수 없기 때문에 생존자들이 스스로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내륙에서 자란 대부분의 소년은 수영할 줄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위험에도 대안이 마땅치 않다. 현지 기상청은 앞으로 3일 안에 대규모 비가 내린다고 예고했다. 비가 예상보다 많이 오면 최악의 경우 소년들이 있는 공간까지 물이 차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동굴이 붕괴할 위험도 있다.주성하 zsh75@donga.com·한기재 기자}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최근 내놓은 북한 핵 개발 실태에 대한 보고서가 미 정치권과 외교가를 강타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롭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북한이 최근 수개월간 핵무기 개발을 위한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려 왔으며,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후에도 핵 개발 작업을 계속 진행해 왔다고 결론지었다. 북한이 해외 언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큰 쇼(big show)’를 벌였지만 진정한 비핵화에 나설 의지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 앞두고 공개된 보고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작성에 관여한 미 정보관리들이 언론에 주요 내용을 누설(leak)하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됐다. 상부의 지시 없이 정보관리들이 언론에 북한의 핵능력 확대와 은폐 실태를 공개한 것은 “더 이상 북한의 핵위협은 없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뉴욕매거진은 지적했다. 정보 당국조차도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하는 북한 비핵화 약속을 믿지 않을 정도로 행정부 내부 분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보고서 내용을 처음 보도한 NBC방송은 “미국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중대 양보까지 했는데 북한이 핵 비축량을 줄인다든지, 핵무기 생산을 포기하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정보관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6일 전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 핵개발 관련 기밀 정보가 알려지면서 비핵화 확약에 금이 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측과 만나 비핵화 의제 등을 사전 조율했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다시 방한해 1일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미 간 비핵화 로드맵 논의를 위한 실무 접촉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 협상에 관여했던 당국자 간 접촉이 확인된 것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19일 만이다. 지난 주말 방한한 김 대사는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북측과 1시간가량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김 대사의 상대였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한 대북 소식통은 “폼페이오의 이번 (세 번째) 방북은 북-미 정상회담 후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김 대사가 판문점으로 와서 직접 조율한다는 건 미군 유해 송환뿐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까지 논의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보복’ 가능성 우려 트럼프 행정부는 DIA 보고서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개발 확대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대책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핵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트위터에 “북한에 핵시설을 폐쇄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거짓 약속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슈퍼매파의 충고에 따라 ‘(군사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볼턴 보좌관은 1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 프로그램 대다수가 1년 이내에 해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이 업무(비핵화 협상)를 진행 중인 이들에게는 몽상적(starry-eyed)인 감정이 조금도 없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과거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외교를 관장해 온 수전 손턴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지명자가 7월 말 퇴임한다고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밝혔다. 2월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퇴임한 데 이어 손턴 지명자까지 물러나면 당장 미국의 대북 외교라인에 적잖은 공백이 예상된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신나리·주성하 기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한국에 2골 차 패배를 당한 소식은 28일 하루 종일 세계 언론과 누리꾼 사이에서 최대 화제였다. 독일은 깊은 침묵과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독일을 라이벌로 여겨온 나라들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한국 축구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문 중국과 일본 언론까지 한국의 경이로운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오늘 우리는 매우 슬프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조별리그 탈락’이란 성적표를 받아든 독일은 충격에 빠졌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전차군단’ 독일 대표팀의 공식 트위터엔 경기 직후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미드필더 메주트 외질의 사진이 올랐다. 외질의 사진 위로 ‘말문이 막힘(Speechless). 독일, 월드컵 탈락’이란 표현이 적혀 있다. 27일(현지 시간) 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회의장에 있던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와 대화하는 시연을 했다. 독일의 한국전 패배에 관한 정보가 입력돼 있는 소피아가 독일이 그동안 차지한 우승컵(4차례)을 세면서 메르켈 총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맞아, 소피아. 지나온 오랜 시간을 보면 그건 사실이야. 그러나 솔직히 오늘 우리는 매우 슬프다”고 속삭였다. 독일 언론도 ‘재앙’ ‘악몽’ 등의 단어를 쏟아내며 일찌감치 짐을 싼 자국 대표팀을 비난했다. ‘빌트’는 ‘말이 안 나오네(Ohne Worte)!’라는 탄식성 표현으로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매체는 4년 전에도 같은 표현을 썼었다. 하지만 당시엔 의미가 달랐다. 2014 브라질과의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이 개최국 브라질에 7-1의 대승을 거두자 ‘말이 안 나오네!’라는 경탄의 표현을 썼던 것이다. 빌트는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큰 굴욕”이라며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두 번 패하고 비틀거리며 러시아를 떠나게 됐다”고 전했다. 독일의 축구전문 매체 키커도 “역사적인 패배에 챔피언 독일이 사라진다”고 보도했다.○ “F조 순위표 소장하세요” 반면 독일 축구에 오랜 기간 눌려 지내온 유럽의 경쟁 국가들에는 신나는 하루였다. 특히 축구 종가이면서도 오랫동안 독일에 밀렸던 영국은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영국 매체 선스포츠는 28일자 신문 1면에 G조에 속한 잉글랜드 대표팀과는 관계없는 F조 순위표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순위표 옆에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의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순위표 주변엔 점선을 둘렀고 점선 위엔 가위 표시도 해놓았다. 그리고 ‘우울할 때 꺼내 보면 웃을 수 있으니 (순위표를) 잘라서 보관하라’는 취지의 설명도 달아놓았다. 영국의 한 스포츠 바에선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손님들이 마치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듯 환호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영국 못지않게 한국의 승리에 열광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4년 전 안방 대회에서 독일에 1-7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폭스스포츠 브라질’은 한국-독일 경기 종료 후 트위터를 통해 “아하하하(AHAHAHA)…”를 수십 번 반복해 올리며 독일을 조롱했다. 브라질 매체 ‘란세’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과 독일 국기를 나란히 배치한 다음에 ‘18!’이라고 썼다. 2018년에서 2와 0을 각각 2골을 넣은 한국과 무득점에 그친 독일의 국기로 대신한 것이다. 이는 독일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가 2017년 새해 축하 글을 SNS에 올리면서 숫자 ‘20’ 뒤에 브라질과 독일 국기를 나란히 배치했던 것에 대한 되갚음이다. ○ ‘한국이 독일 전차를 전복시켰다’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이 독일 전차를 전복시켰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월드컵 최대 이변을 일으킨 한국에 찬사를 보냈다. 일본의 축구 전문 매체 ‘사커 다이제스트’는 “한국을 보고 우리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마지막 90분까지 싸워 이기겠다”란 일본의 간판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의 말을 전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국은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은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됐다”면서 언더도그의 반란을 조명했다. 한편 한국의 승리가 가져온 ‘나비효과’도 있다. 독일의 탈락으로 월드컵 판세까지 흔들리 게 된 것이다. 벌써 29일 오전 3시 G조 1, 2위 결정전을 치르는 잉글랜드와 벨기에는 서로 2위를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눈치작전을 펴기도 했다. 이전까진 2위로 올라가면 독일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젠 2위로 올라가야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포르투갈 등 강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1, 2차전에 나서지 않은 선수 중에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자격이 있는 선수가 있다”란 말로 1.5군을 출전시킬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자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벨기에 감독은 4골로 득점 2위이자 팀 전력의 핵심인 로멜루 루카쿠를 언급하며 “발목 보호를 위해 하루 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 정부와 벌이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 의회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법안이 26일(현지 시간) 미 상원에서 발의됐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가 (싱가포르 6·12 정상회담에서) 매우 애매한 합의안에 서명한 뒤로 비핵화 과정에 대한 어떤 세부 사항도 밝히지 않고 있어 의회의 감독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메넨데스 의원과 동아태소위원장인 공화당의 코리 가드너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외교적 협상 세부 내용과 전망 등을 30일마다 의회에 문서로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의미 있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대북 제재를 지속할 것과 미국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능 있는 사람” “자기 나라를 무척 사랑하는 지도자”라고 평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무자비하고 잔인한 전제군주”라고 규정했다. AP통신은 이 법안의 상원 통과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면서도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여야의 우려가 반영됐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하셨다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춘추관에서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의 36년 전 사법연수원 성적이 언급된 이유는 이날 한 중앙일간지의 칼럼 때문. 22일 한-러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A4용지를 들고 있는 장면을 두고 “정상 간의 짧은 모두발언까지 외우지 못하거나, 소화해 발언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을 반박하면서다. 김 대변인은 “(대변인을 맡은 후) 넉 달여 동안 많은 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정상이 메모지를 들고 와서 이야기한다”며 “‘당신과의 대화를 위해 이만큼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는 성의 표시”라고 덧붙였다. 이어 “(메모지로) 지도자의 권위, 자질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지난해 말까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끌어낸 게 문 대통령”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청와대 말대로 실제로 많은 정상들이 회담에서 메모지를 사용할까. 일단 외교부 관계자는 “회담의 성격이나 정상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상당수 정상은 회담에서 메모지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인사말과 농담까지 메모를 준비하는 정상도 있고, 핵심적인 내용만 담은 자료를 갖고 회담장에 들어가는 정상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에는 물론이고 지난해 7월 독일에서 가진 첫 한-러 정상회담에서 철도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의제들을 빼곡히 담은 메모지를 직접 손으로 넘겨가며 대화했다고 한다. 올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한일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문제 등을 담은 자료를 들고 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역시 정상회담 때 메모를 활용한다는 게 외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메모 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때는 자료를 활용하지만 단독 회담 때는 메모지 없이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트럼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메모 없이 회담을 했다. 그러다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에서 다른 정상들이 메모를 참고하는 걸 보고 종종 메모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담은 치열한 전략·논리 싸움인 만큼 지켜보는 입장에선 오히려 정상들이 메모지를 활용하지 않을 때 더 조마조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주성하 기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2018년은 세계 정치사에서 ‘신권위주의’ 도래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2033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술탄, 황제, 차르, 파라오’ 잇따라 집권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술탄에 빗대 ‘21세기 술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에르도안 대통령뿐만 아니라 2018년은 ‘황제’ ‘차르’ ‘파라오’ 등이 줄줄이 출현한 해로 기록되게 됐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3월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해 ‘황제’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같은 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앞서 14년간의 통치에 이어 2024년까지 6년 더 러시아 대통령직에 올라 ‘현대판 차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역시 같은 달 이집트에선 ‘파라오’라는 별칭을 얻은 군부 출신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2022년까지 4년 더 집권하게 된다. 그가 헌법을 개정해 2022년 이후에도 권력을 놓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집권 바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똑같이 불고 있다. 2월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연정에 성공해 2005년부터 이어진 집권의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4월엔 헝가리에서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해 역시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올해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3선에 성공해 2021년까지 연임하면, 그는 일본 최장기 총리가 된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장기 집권 권력자가 민주주의 투표로 자리를 내놓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반대로 ‘스트롱맨(강한 지도자)’을 자처한 리더가 장기 집권으로 가는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미에서 그런 바람이 거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올해 6월 재선에 성공했고,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2016년 헌법을 개정해 임기 제한 없는 대통령에 올라 지난해엔 부인을 부통령에 임명하기도 했다. 혼란에 빠진 브라질에선 국민의 40%가 군부 쿠데타를 원한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돼 충격을 주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임기는 정해졌지만 강력한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리더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왜 스트롱맨이 성공하는가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조차 ‘스트롱맨’에게 의존하는 시대로 회귀하는 세계적 추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스트롱맨의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급변하는 정세는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강력하고 독단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중동의 혼란과 이민자 급증, 경제 악화 등을 틈타 강력하고 터프한 엘리트들이 ‘우리’를 ‘그들’에게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집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패한 엘리트가 될 수도 있고, 욕심 많은 가난뱅이가 될 수도 있으며, 외국 인종이나 종교적 소수자 등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정치인의 거짓말이 반복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관료, 은행가, 판사, 기자 등이 신뢰를 잃으면서 이런 혼란 속에 강력한 지도자를 추구하는 대중의 욕구가 증폭되고 있다고 잡지는 분석했다. 한편으로 장기 집권자들은 ‘과거 영광의 시대’를 다시 열겠다고 약속하며 강국이 될 수 있는 장기적 전략 목표를 제시하고 국가를 경영하지만, 유권자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단기 임기의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눈앞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도 스트롱맨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이 국가 대신 개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독재를 약화시킬 것으로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사례를 보면 강력한 권력자들은 인터넷 여론을 쉽게 통제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서 우위에 서고 있다. 타임은 “적잖은 미국인들조차도 미국의 정치개혁이 중국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생각이 스트롱맨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냉전의 승자들이 선택한 시스템의 매력은 크게 떨어져가고 있으며, 민주주의 지도자가 국가의 안보와 대중의 민족적 자부심을 보장하지 못할 때 스트롱맨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11년 8월 김정일은 뇌중풍(뇌졸중)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며 힘겹게 생애 마지막 해외 방문에 나섰다. 나흘 동안 열차로 3900km를 이동해 간 곳은 러시아 아무르주. 이곳에서 그는 서울 면적(6만 ha)의 3배가 넘는 빈 땅 20만 ha를 임차해 농사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그해 10월에도 아무르 주지사를 평양에 불러 임차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두 달도 안 돼 사망하면서 그의 마지막 꿈은 물 건너가는 듯했다. 북한이 2013년 아무르주에 1000ha 규모의 작은 시범농장을 시작하고 이듬해까지 운영했다는 것까진 알려졌지만 이후 소식이 없다. 작황도 시원치 않았던 것 같고, 대북 제재로 대규모 인력 파견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북한의 식량 문제를 풀려고 농지 임차 계획을 세웠겠지만, 만약 이 구상이 지금 현실화됐다면 다른 시각에서 탁월한 선택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대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중국이 내달 6일부터 미국산 대두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산 대두 3300만 t, 139억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문제는 미국산 대두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돼지고기와 식용유 가격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를 대체할 수입처를 찾지 못했다. 동북 지역을 활용해 내수로 대체하려 해도 경작지가 많지 않고, 시간도 꽤 걸린다. 하지만 러시아 극동(원동)의 광활한 땅은 중국의 대두 공급처로 적합하다. 북한이 20만 ha에 콩을 심었다면 최대 40만∼50만 t을 생산했을 것이다. 러시아 극동의 1ha당 콩 생산량은 유기농 1t, 일반 콩은 최대 3t을 넘지 못한다. 극동에선 콩 보리 밀 귀리를 한 세트로 순환 재배를 한다. 이 작물들은 높이가 비슷해 한 콤바인으로 경작이 가능하다. 옥수수는 높이가 달라 콤바인을 새로 사야 한다. 극동에서 쓰는 농기계는 미국산이 많다. 한국 농기계는 작아서 광활한 극동의 농사엔 적합지 않다. 극동에 경작지가 늘면 미국 농기계도 대거 팔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농가들에 직접적 피해가 될 러시아 극동 농지 개간을 반길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생산량 100만 t 정도는 북한과 러시아만 결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국을 경계하는 러시아는 극동에 북한 외에 딱히 갖다 쓸 만한 노동력이 없다. 러시아산 곡물은 한국인과도 밀접히 연관될 수 있다. 2년 전 러시아는 유전자변형동식물(GMO) 금지법을 채택했다. 러시아산 곡물은 Non-GMO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연간 1000만 t의 GMO 곡물을 수입한다. 인구 1인당 쌀 소비량이 65kg인데, GMO 소비량은 45kg 세계 최대 수준이다. 한국에선 GMO 대두 100만 t이 독성 물질인 헥산을 사용하는 유기용매 추출 방식으로 식용유 생산에 쓰인다. GMO 유해성은 과학적 논쟁의 대표적 주제다. 한쪽에선 한국이 GMO를 수입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자폐증 대장암 발병률 세계 1위, 유방암 치매 증가율 1위가 됐으며, 출산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쪽에선 GMO 부작용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른다. 다만 북한에서 살다 온 나는 왜 같은 민족인데 남쪽엔 자폐증과 치매 환자 등이 너무 많은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북한은 GMO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콩기름도 전통적 압착 기법으로 생산한다. 수입 GMO 곡물을 러시아산 Non-GMO 곡물로 대체하면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없다. 깨끗한 공기와 더불어 안전한 먹을거리 역시 한국인의 사활적인 관심사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러시아 방문 때 농업 교류를 좀 더 중요하게 다뤘어야 했다. 이미 극동 지역엔 한국 농업인들이 진출해 10만 ha 이상 경작하고 있다. 극동 농업은 노동력 때문에 북한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러시아는 김정은에게 9월 이전 자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간다면 농업 교류를 먼저 추진하길 바란다. 이는 강대국들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북한이 뛰어들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마지막 꿈을 기억하기 바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전면적(total) 비핵화’가 이미 시작됐다”며 “우리는 매우 빨리 움직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이후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북한은 핵 문제를 끝내길 원하고 우리도 끝내길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북한)은 탄도미사일을 포함해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다. 그들은 엔진 시험장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대형 시험장소 중 하나를 폭파시켰다. 사실 그것은 대형 실험장들 중 4개였다”고 말했다. 이 실험장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장 최신 정보에 정통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이후 실험장을 해체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의 증거는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도 “6월 12일 이후 위성사진 분석 결과 북한의 대표적 미사일 발사장인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뚜렷한 해체 움직임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내 미사일 관련 시설 8곳에서 해체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폼페이오) 어디 있나”라는 농담으로 회의 참석자들의 시선을 끈 뒤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여기 있군. 북한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북-미 회담 후속 협의를 위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임박했음을 내비쳤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주성하 기자}
중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소식과 일정을 이례적으로 19일 도착 직후 공개했다. 그동안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 땅을 벗어난 뒤에야 방중 사실을 공개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중국 당국의 태도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이날 오전 10시 13분(현지 시간) 앵커가 속보 형식으로 “김 위원장이 19, 20일 중국을 방문한다”고 짧게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같은 시간 속보를 내보냈다. 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 1호가 이날 오전 10시경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 착륙한 지 13분 만에 도착 사실을 알린 것이다. 이어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도 이날 오후 3시경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방문이 북-중 관계를 한층 심화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북-중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며 지역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이 관행을 깬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은 3월 말 김 위원장의 1차 방중 때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단둥 철교를 거쳐 북한으로 넘어간 뒤에야 방중 사실을 공개했다. 5월 2차 방중 때도 김 위원장의 비행기가 북한으로 넘어간 뒤 오후 7시 뉴스를 통해 방중 사실을 알렸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찾았을 때부터 내려온 이런 관행은 전통 혈맹으로서 북한과 중국의 ‘특수관계’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돼 왔다. 중국이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북한을 정상 국가로 대우하겠다는 중국의 메시지가 읽힌다.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앞세우지 않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신속 보도를 수용한 것을 놓고 더 이상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조짐은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10∼13일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도 나타났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과 싱가포르 도착, 현지 명소 방문, 북-미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다음 날 비교적 신속하게 보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17일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반군과의 평화협정 수정론자인 우파 ‘민주중도당’의 이반 두케 후보(42·사진)가 당선됐다. 두케 당선인은 54%를 득표해 42%에 그친 좌파연합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8월 7일 대통령에 취임하면 콜롬비아 현대 정치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보수 색채가 강한 콜롬비아에선 좌파 후보가 당선은 고사하고 결선 투표에 오른 것조차 이번이 처음이다. 페트로 후보는 수도 보고타 시장까지 지냈지만 과거 좌파 게릴라 조직인 M-19에 몸담고 있었던 경력이 큰 약점이 됐다. 2010년 이후 8년 동안 집권했던 중도우파 후안 마누엘 산토스 현 대통령은 3선을 금지하는 헌법에 따라 불출마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상원의원을 지낸 두케 당선인은 2002∼2010년 집권했던 강경우파 성향의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낙점한 인물이다. 우리베 전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미주개발은행에서 일하던 그를 2013년 콜롬비아로 불러들여 주요 정치인으로 키워냈다. 우리베 전 대통령은 산토스 정부가 2016년 11월 최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평화협정안에 합의할 때 자신이 이끄는 민주중도당 의원 전원과 합께 의회 표결에 불참했다. 협정이 내전 기간 마약 밀매, 살인과 납치 등 반인권 범죄에 연루된 FARC 지도자들과 대원들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정계에 발을 디디고 사회로 복귀하게 허용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두케 당선인 역시 중범죄를 저지른 반군 지도자들과 대원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특별 전범재판소를 구성해 이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평화협정을 수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두케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사회로 복귀한 옛 FARC 대원 7000여 명 중 일부가 반발해 다시 무장투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평화 정착의 걸음마를 막 뗀 콜롬비아에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남은 주요 반군인 민족해방군(ELN)과의 평화협상도 더 진척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대선 투표는 50여 년 만에 처음 반군과의 무력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옛 FARC가 정당으로 거듭난 데다 ELN은 대선을 전후로 임시 정전을 선언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후!” 짧지만 커다란 외침과 함께 팔을 넓게 벌리고 머리 위에서 손뼉을 친다. 굵고 짧은 함성과 함께 손뼉 치는 소리가 마치 천둥 같다. 아이슬란드 팬들이 내는 ‘천둥 박수’다. 16일 인구 33만8000명의 소국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는 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주점은 물론이고 미술관 박물관에까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천둥소리를 냈다. 이날은 아이슬란드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른 날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이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겼다. 평균 신장 185cm가 넘는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흐트러지지 않는 수비 대형을 유지하며 메시를 비롯한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꽁꽁 묶었다. ‘얼음 성벽’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메시는 페널티킥을 포함해 11개의 슈팅(전반 3개, 후반 8개)을 날리고도 골을 잡아내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26개의 슈팅(유효 7)을 날렸지만 단 한 골에 그쳤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19분 세르히오 아게로가 수비수를 등지고 돌아서며 날린 그림 같은 골로 앞서 나갔지만 4분 뒤 역습에 나선 알프레드 핀보가손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핀보가손은 아이슬란드 본선 첫 골의 역사를 썼다. 이날 후반 19분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골키퍼 한네스 할도르손은 “오늘 경기는 우리의 전형적인 경기 모습이다.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고 빠르게 역습한다. 우리는 예측불허다. 우리를 상대하는 팀들에 우리는 악몽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아이슬란드가 보여준 역습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16에서 강호 잉글랜드를 잡고 8강에 올라 돌풍을 일으켰던 아이슬란드는 크로아티아와 우크라이나, 터키 등이 속한 유럽 예선 I조에서 조 1위로 사상 처음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유로 2016 첫 경기에서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무실점으로 막고 포르투갈과 1-1로 비기며 돌풍을 예고했던 아이슬란드는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도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전하며 ‘제2의 반란’을 일으킬 조짐을 보였다. 크로아티아 나이지리아 등이 함께 속한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토의 70%가 빙하와 호수 용암지대로 이뤄져 있어 ‘불과 얼음의 나라’로 불리는 아이슬란드는 1년 중 축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국토가 눈과 비, 얼음으로 뒤덮여 9월부터 5월까지는 축구를 하지 못하는 악조건을 갖고 있다.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는 풀타임 축구선수는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두고 수비수 비르키르 사이바르손은 소금 포장 공장에서 일했다. 감독인 헤이미르 하들그림손은 치과의사 출신이다.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으며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MOM)로 선정된 골키퍼 할도르손은 4년 전까지 축구가 부업, 영화감독이 주업이었다. 지금은 하들그림손 감독이 축구에만 전념하고 있고 선수 대부분도 각국 프로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은 ‘투잡맨’이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정부의 지원으로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하들그림손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레이캬비크의 주점에서 팬들을 만나 스타팅 멤버와 전술을 공개하는 등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처음엔 10명도 오지 않던 팬들이 지금은 수백명씩 모인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15년 동안 실내경기장 7개를 짓고 국가가 나서 축구 코치와 선수 육성에 나섰다. 인구가 적은 대신 모든 선수와 시민들이 서로를 잘 알고 지내다 보니 협동심이 높다. 하들그림손 감독은 “상대가 우리를 작은 나라 출신이라고 가벼이 보기 일쑤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를 더 뛰게 만든다”고 했다. 2016년 유로 경기에서 아이슬란드가 프랑스 니스에서 잉글랜드를 이기는 첫 기적이 일어났을 때 전체 국민의 약 8%인 2만7000명의 아이슬란드 인이 니스 경기장에 모였다. 당시 TV 점유율은 99.5%에 달했다. 축구가 있는 날은 모든 게 올스톱이다. 아이슬란드는 6년 전만 해도 세계랭킹 133위였지만 지금은 22위까지 올라갔다. 축구는 2008년 경제위기로 주요 은행이 무너지는 침체를 겪은 아이슬란드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고 있다. 모스크바=양종구 yjongk@donga.com / 주성하 기자}

‘어린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그린 연애편지 삽화(사진)가 16일(현지 시간) 24만500유로(약 3억 원)에 팔렸다. A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미술품 경매업체 아르퀴리알은 이날 경매에 나온 생텍쥐페리의 작품 49점 중 이 삽화가 최고가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삽화는 1942년경 수채화로 그려 연애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어 보낸 것으로 생텍쥐페리가 1943년 소설을 통해 창조한 주인공 ‘어린왕자’를 빼닮았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의 일러스트를 다른 삽화가들에게 부탁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자신이 직접 그렸다. 어린왕자 이미지가 1년 전 연애편지 그림에서 비롯된 셈이다. 경매업체는 삽화에서 어린왕자와 닮은 인물이 긴 편지 두루마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은 생텍쥐페리가 한 여성에게 보내는 11쪽짜리 편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삽화가 그려진 편지가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서한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해당 편지가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42년 생텍쥐페리가 미국 뉴욕에서 어린왕자를 쓸 당시엔 엘살바도르 출신의 매력적인 부인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이 내조했다. 생텍쥐페리가 남긴 연애편지도 부인에게 쓴 것이 가장 많았지만 작가에겐 부유하고 지적인 여성 사업가 넬리 드 보귀에라는 연인도 있었다. 어린왕자는 지금까지 1억 부 넘게 팔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 주민은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여기는 무조건 환영 분위기”라고 대답했다. 그는 “아직 노동신문을 통해 회담 결과만 봤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핵 폐기와 경제제재 해제는 모든 사람이 환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진짜로 핵을 모두 폐기하더라도 제재를 풀어 잘살게만 해준다면 모두가 환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주민은 “여기 사람들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이 본질상 우리의 핵 폐기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단지 허리띠 졸라매면서 핵 보유국이 됐다고 해놓고 핵을 폐기한다는 것이 체면이 서지 않으니 듣기 좋게 비핵화라고 표현한다는 것도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도 체제 유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핵 폐기란 말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며, 완전 투항처럼 보이는 합의는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에 있는 한 북한 외교관도 이날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소감에 대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 관료들과 함께 찍은 셀카가 가장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하루 전인 11일 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 등 싱가포르 관광명소들을 둘러보며 수행한 싱가포르 외교장관과 셀카를 찍어 화제가 됐다. 그는 “최고 존엄이 그렇게(셀카 촬영)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며 “그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최고 존엄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놀라워했다. 이 외교관은 “국기(인공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린 사진을 보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야, 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며 “이 두 깃발이 나란히 걸려 있는 사진을 노동신문에서 보니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선대가 하지 못했던 일, 그것도 자본주의 나라(싱가포르)에까지 가서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는 자체가 파격”이라며 “지금으로선 김 위원장이 정권도 유지하고 인민들도 잘살게 하는,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택해야 할 그런 길을 걷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북한 소식통들은 비핵화와 경제제재 해제를 북한 군부도 대부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를 한다고 해도 군부가 특별히 기득권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의 모호성 때문에 회담 결과에 약간은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급된 북한 외교관은 “핵 포기와 그에 따르는 완전한 경제제재 해제와 같은 것이 명확하게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사실 무엇 하나 명백한 건 없구나 하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의 가난한 일반 주민들도 정상회담을 당연히 환영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돌아올 혜택 같은 것이 합의문을 통해 드러나지 않으니 아마 기대엔 못 미쳤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북한 사람들은 대체로 믿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핵을 폐기한다고 하면 사실 여기 대부분의 사람도 ‘그래도 몇 개는 감춰놓겠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