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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퇴직을 막아라.’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일본에서 직원이 가족 간병을 위해 퇴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이이치생명보험은 최근 간병이 필요한 가족이 있을 경우 730일 내에서 횟수 제한 없이 휴직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법적으로 93일을 최대 3번에 나눠 쓰게 돼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말 그대로 파격이다. 이 회사는 직원 가운데 간병 퇴직이 많은 50대가 40%에 이른다. 회사 관계자는 “조만간 가족 간병 문제에 직면하는 사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도 지난해 간병 휴직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도 2년 휴직을 인정하고 있다. 간병 휴직은 무급이 원칙이지만 돈을 주는 회사도 느는 추세다. 파나소닉은 1년의 간병 휴직 기간 중 초반 6개월은 급여의 70%, 후반 6개월은 40%를 준다. 히타치제작소는 지난해부터 간병 휴직 기간 1년 중 9개월 동안 임금의 50%를 지급하고 있다.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간병 휴직 수당(급여의 67%)과는 별개다. 연차 휴가와 별도로 간병 휴가 제도를 신설한 곳도 있다. 일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달부터 매년 20일의 간병 휴가 제도를 만들었다. 생활용품 회사 가오(花王)는 최대 40일까지 자유롭게 간병 휴가를 쓸 수 있게 했다. 기업들이 제도 정비에 나선 것은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가족 간병을 이유로 직원들이 자꾸 그만두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요양시설이 부족해 매년 약 10만 명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회사를 떠나고 있다. 도쿄(東京) 등 대도시에는 요양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요양난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도우미를 부르려고 해도 하루 비용이 한화로 수십만 원에 이르러 매일 부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년간 약 100만 명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는 이들의 남녀 비율은 2 대 8로 여성이 압도적이며 연령대는 주로 50~60대 초반이 많다. 지난해 발표된 야스다메이지생활복지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돌보는 이들은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00만 명은 피로 누적으로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수 있는 ‘간병 퇴직 예비군’으로 분류된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간병 퇴직자 및 간병 퇴직 예비군의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방송에 출연해 다음 달 22일 중의원 선거가 끝난 후 평화헌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욕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 총리는 25일 중의원 해산 방침을 밝힌 뒤 같은 날 밤 NHK에 출연해 개헌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거론하며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을 명분 삼아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에 자위대 보유 근거를 명시하겠다는 뜻이다. 이어 “개헌안은 여당만으로 발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많은 당의 찬성을 얻고 싶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도 개헌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연립 여당이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의석(310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개헌에 찬성하는 고이케 도지사의 신당, 그리고 일본유신회 등과 ‘우익 연대’를 결성해서라도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자민당 창당 이래의 비원(悲願)”이라며 강한 의지를 불태워 왔다. 이런 가운데 전날 ‘희망의당’ 창당 및 대표 취임을 발표한 고이케 지사는 즉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설립 신고를 마쳤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으며 거리를 뒀다. 또 ‘의원의 정수 축소 및 보수 삭감’과 ‘원전 제로’를 공약으로 내걸며 아베 총리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자회견 후 ‘탈(脫)원전’을 주장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만나 격려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이케 지사는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 환경상을 지냈으며, 각별한 총애를 받아 ‘고이즈미 정권의 마돈나’로도 불렸다.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희망의당은 여야 정치인을 흡수하며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 민진당의 중진인 마쓰바라 진(松原仁) 전 국가공안위원장이 25일 탈당하고 합류를 선언했으며, 같은 당의 가키자와 미토(枾澤未途) 중의원 의원도 주중 탈당을 검토 중이다. 신당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최대 150명의 후보를 낼 방침이다. 위기감을 느낀 자민당은 견제에 나섰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이케 지사가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소비세 인상(8%→10%)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한 걸 두고 “도쿄의 경기회복을 실감할 수 없다는 고이케 지사의 감성이 이상하다”고 비판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25일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8일 중의원 해산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회견에서 ‘저출산 고령화’와 ‘북한의 위협’을 ‘국난’이라고 표현하고 “(이번 해산을) 국난 극복 해산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해산 이유로는 먼저 2019년 10월 소비세율 인상(8%→10%)으로 늘어나는 세수(稅收)의 사용처를 바꾼다는 점을 들었다. 아베 총리는 “‘사람 만들기 혁명’을 위해 2조 엔(약 20조2000억 원)을 육아가구 지원과 개호(간호) 분야에 투입할 것”이라며 “약속했던 2020년 균형 재정 달성이 어려워졌다. 국민과의 약속을 변경하는 만큼 신임을 묻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모든 가구의 3∼5세 보육비(유치원과 어린이집)와 저소득층의 0∼2세 보육을 무상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육시설 대기를 막기 위해 수용 정원을 32만 명 늘리겠다고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화의 노력은 시간 벌기에 이용당했다. 모든 압력을 최대한 가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선거에서 국민의 신임을 얻어 힘 있는 외교를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중의원을 해산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원점인 선거가 북한의 위협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일본 정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다음 달 10일에 공시된 후 22일에 투·개표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중의원 선거는 2014년 12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치러지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은 아베 총리가 언급한 해산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꼼수 해산’이라고 비판했다. 북핵 국면에서의 지지율 상승세를 유지하고 임시국회에서 학원 스캔들 추궁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해산권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진당 대표는 “국회 추궁을 피하려는 보신(保身) 해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이케 아키라(小池晃) 공산당 서기국장도 “학원 스캔들을 감추기 위한 전대미문의 당략적 해산”이라고 했다. 전날 발표된 교도통신 조사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4%가 ‘해산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가 해산을 결정한 것은 지금 실시해야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신당은 출범 전이고 제1야당 민진당은 지난달 새 대표가 취임했지만 여전히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로 지리멸렬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 의석의 과반수인 233석을 목표로 제시했다. 현재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목표를 넘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경우 내년 가을 총재 선거 3연임과 비원(悲願)인 개헌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이낙연 국무총리(사진)는 23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에 대해 “지원을 곧바로 한다는 것도, 현금을 보낸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북한의 핵무장을 도우리라는 것은 과잉된 견해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배치된다는 비판이 일자 적극 해명에 나선 것이다. 이 총리는 “서울은 남북 군사경계선으로부터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60여 년 전에는 전쟁을 겪었다”며 “한국이 놓인 특수 상황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최대한의 압박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정부 기조를 강조한 것이다. ‘태평양 수소폭탄 실험’ 발언 등 북한의 강경 일변도 노선에 대해선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놓인 환경, 성품과도 관계가 있다”며 “김 위원장이 외국의 지도자들과 만나 세계의 흐름을 봤으면 좋겠다. 평양에 있는 독일 등 외국의 대사관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체 핵무장 및 미국 전술핵 재배치 논의에 대해선 “미국이 동의하지 않고 한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이 총리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 전 한국에 와서 그동안 양국이 풀지 못했던 매듭을 푼다면 양국 관계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방한을 제안했다. 이 총리는 신문기자 시절 도쿄특파원, 국회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을 지냈으며 일본어에도 능통한 대표적인 지일파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일왕은 20일 부인과 함께 역대 일왕으로는 처음으로 고구려 후손을 기리는 고마(高麗)신사를 찾으면서 한국에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퇴위는 내년 말 또는 2019년 3월로 예상된다. 이 총리는 “내년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라며 일왕 방한 추진에 의지를 보였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북한의 6차 핵실험 위력이 당초 예상보다 더 강력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인근 지질구조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핵실험 직후 함몰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20일이나 지난 23일에도 핵실험장 인근에서 두 차례 자연지진이 일어나자 인근 지역의 단층 활성화에 따른 백두산 분화(噴火) 가능성 등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실험 이후 심상치 않은 북한 단층 기상청은 23일 오후 1시 43분과 5시 29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11시 방향으로 6km 떨어진 지점에서 각각 규모 2.6과 3.2의 지진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3일 핵실험 직후 9분 뒤인 낮 12시 38분 규모 4.4의 ‘함몰지진’이 발생한 이후 20일 만에 자연지진이 생긴 것이다. 한때 진앙이 핵실험장 인근인 데다 진앙도 얕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의 라시나 제르보 사무총장은 이 지진이 핵실험에 따른 ‘2차 지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3일 (핵실험 직후) 발생한 지진과 23일 나타난 지진은 인공지진(man-made)이 아니다”라면서 “주요한 폭발에서 비롯된 지질학적 압력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이번 지진이 이전 사태(6차 핵실험)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라며 “(핵실험이) 여전히 (지질에) 추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연이은 핵실험이 인근 지역의 단층을 활성화시킨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3일 함몰지진은 붕괴 현상에 동반되는 저주파 대역의 파형이 뚜렷했지만 23일 지진은 전형적인 자연지진의 파형을 보였다”며 “이 에너지가 다른 단층으로 전달돼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백두산 분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지진 전문가는 “6차 핵실험 당시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에서 진동을 느껴 대피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있었다”며 “6차 핵실험의 위력이 역대 실험을 훌쩍 상회하는 규모라면 백두산 아래 마그마방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백두산 인근에서 규모 7.0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백두산이 폭발할 수 있다는 가설이 통용돼왔다.○ 자연지진에 한때 ‘7차 핵실험’ 논란 23일 연이은 자연지진과 관련해 국내외에선 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오후 5시 29분 풍계리 인근에서 지진이 관측된 직후 중국의 지진관측기관인 중국지진대망(CENS)은 “진앙 깊이 0m로 폭발에 의한 지진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 매체들은 앞다퉈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했고, 일본 언론도 즉각 핵실험 가능성을 거론하며 속보를 쏟아냈다. 반면 우리 기상청은 오후 6시 26분경 자연지진이라고 발표한 데 이어 파형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다시 한번 ‘자연지진이 맞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결국 이날 밤 중국지진대망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초저주파 기록들을 검토한 결과 핵 폭발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기존 발표를 뒤집었다. 일본 기상청 역시 일본 지진 관측 지점에서 흔들림이 관측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상청의 분석이 맞았지만 기상청도 발표 과정에서 규모와 진앙을 번복했다. 애초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5시 방향 20km 지점에서 규모 3.0의 자연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가 이후 진앙은 핵실험장에서 11시 방향 6km 지점이고, 규모는 3.2라고 수정했다. 기상청은 오후 5시 29분 2차 지진에 앞서 1차 지진이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발견했다. 기상청이 이날 오후 1시 43분에도 지진이 있었다며 언론에 통보한 시간은 약 12시간이 지난 24일 오전 2시였다. 기상청 관계자는 “국외 자료를 재분석해 규모와 진앙을 수정했다”며 “북한의 지진을 관측할 수 있는 국외 지점은 일본 34곳, 러시아 1곳, 중국 5곳인데 일본과 러시아는 실시간으로 자료를 전송해 주는 반면 중국의 관측 자료는 중국 정부가 국외 전송을 막고 있다. 중국 측 자료를 뒤늦게 받아 분석하면서 진앙 등을 바로잡았다”고 해명했다. 1차 지진을 늑장 통보한 데 대해선 “같은 지점에서 연이어 더 큰 지진(2차 지진)이 일어나면 앞선 지진이 묻히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장원재 특파원}
도시바의 메모리 자회사 인수가 결정된 ‘한미일 연합’에서 SK하이닉스의 의결권이 향후 10년 간 15% 이하로 제한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신문은 또 “애플 등 미국 정보기술(AI) 대기업 4개사도 의결권을 갖지 않고, 일본이 경영 주도권을 쥐는 체제를 확립할 것”이라고 전했다. 애플 등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향후 메모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도시바는 동종업체인 SK하이닉스가 의결권을 보유할 경우 세계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가 길어진다는 이유를 들며 의결권 보유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의결권 없이 대출의 형태로 참여하고, 이후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더라도 10년 동안은 1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매수안은 도시바가 의결권의 40%를 보유하고, 광학기기 메이커 호야(HOYA)가 10% 가량을 보유해 일본 세력이 합쳐 50.1%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하면 일본 측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후 진행 중인 웨스턴디지털(WD)과의 법적 분쟁이 마무리되면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이 도시바 지분 상당량을 인수하게 된다. 신문에 따르면 정식 계약은 이번 주 이후에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청와대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과 관련해 “화를 냈다”고 보도한 일본 언론에 대해 “악의적 보도를 한 해당 언론사와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반박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금은 대화 국면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압력을 손상시키는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북 지원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니혼TV는 아베 총리와 방미에 동행한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화를 냈다. 이것으로 인도적 지원은 당분간 실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이에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화를 냈다’고 보도했는데, 현장 배석한 우리 관계자에 따르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의도적 왜곡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이 대북취약계층 돕기용 인도적 지원에 대해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그럴 수 있겠다”며 짧게 호응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한편 통일부는 22일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서 추진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원 시기는 국제기구와의 협의 등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백 대변인은 덧붙였다. 청와대는 19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사무총장 주재 오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아베는 힘이 있고, 문 대통령은 힘이 없다”고 언급한 것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에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윤 수석은 “정상 간 만남에 대화 내용은 공식브리핑 외에 언급하지 않는 게 외교 관례인데도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계속 보도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 같은 행태가 한일 간 우호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도시바가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겠다고 21일 공식 발표했다. 인수에 실패한 웨스턴디지털(WD)이 소송전을 벌이며 매각작업을 흔들고 있지만 도시바 측은 소송과 상관없이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계약을 서두르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도시바는 홈페이지에 전날 열린 이사회 결의 결과를 발표했다. 도시바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양도하고 주식양도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또 “도시바는 안정적인 사업 실현을 위해 3505억 엔(약 3조5250억 원)을 재출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도시바가 밝힌 인수자금은 2조 엔(약 20조2000억 원)이다.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보통주와 대출을 합쳐 6000억 엔(약 6조600억 원)을 낸다. 이 중 상당액을 SK하이닉스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애플, 델 등 미국 기업 4곳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 형태로 4000억 엔(약 4조400억 원)을 낼 예정이다. 주요 거래은행은 6000억 엔가량을 대출해준다. 8개월 동안의 혼란 끝에 매각처를 선정한 도시바는 정식 계약을 서두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이르면 오늘 중이라도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전했고 NHK는 “며칠 안에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각국의 반독점 심사를 거쳐 내년 3월 말까지 매각 절차를 마쳐야 상장 폐지를 피할 수 있다. 일단 결정은 내렸지만 매각전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WD는 한미일 연합의 승리가 전해진 20일 도시바가 WD와 공동 운영 중인 욧카이치 공장의 일부 시설에 단독으로 투자한 것이 계약 위반이라며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에 중재를 신청했다. WD는 5월에도 ICC에 도시바를 상대로 메모리 사업 매각 금지 중재신청을 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소송이지만 이 타이밍에 제기한 것은 도시바를 견제하려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연이은 소송으로 상황이 수렁에 빠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법원에도 WD가 도시바를 상대로 낸 사업 매각 중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도시바는 “WD가 매각 중지 소송을 철회하지 않더라도 매각 절차를 완료할 수 있다. WD의 중재신청에도 불구하고 매각 계약에 따라 양도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끝날 소송은 아니고 최종까지 ICC와 캘리포니아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겠지만 인수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국에서 통과해야 하는 반독점 심사도 남았다. 심사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메모리 동종 업체인 SK하이닉스가 인수자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NHK는 “일본 기업이 관련된 인수합병 사례에서는 중국이 심사를 예상보다 늦게 한 경우도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종 계약까지는 아직 거쳐야 할 절차가 많이 남아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이 11월 초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도쿄(東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1일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방카 고문의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제행사 기간을 하루 늘리는 등 공을 들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방카는 3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할 예정이다. 2014년부터 매년 열리는 이 회의는 여성 분야에 대한 일본 정부의 관심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행사다. 아베 총리도 매년 참석해 축사를 한다. 올해는 당초 1, 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방카의 스케줄에 맞춰 일정이 하루 연장됐다. 이방카는 아베 총리를 만나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과 관련한 사전 협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중국은 이방카 내외를 초청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최근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방카의 딸은 4월 미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앞에서 중국 민요 모리화(茉莉花)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친중(親中) 성향으로 알려졌던 이방카가 일본을 먼저 찾는 것은 아베 정권에 또 하나의 외교 성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며칠 전 일본 유명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등 문화인 21명이 성명을 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1일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사를 보내지 않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에 대한 항의 성명이었다. 문득 3주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추도식이 열리는 도쿄 스미다구의 공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바지가 벗겨진 남성이 속옷 차림으로 끌려 나가고 있었다. 경찰 다섯이 팔과 다리, 머리를 든 채였다. 남성은 “이거 놔. 저놈들이 뭘 하는지 보라”며 악을 썼다. 일본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눈을 의심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우익들이 추도식을 방해하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던 터라, 당연히 끌려 나간 남성이 우익단체 회원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반대였다. 우익단체 회원 30여 명은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있었고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며 이들을 보호했다. 그 대신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는 일명 ‘카운터 시위대’를 한 명씩 끌어내던 중이었다. 우익 집회에는 ‘6000명 학살은 정말인가’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여성은 “일본인은 한신, 고베 대지진 때 침착히 대처해 세계의 칭찬을 받았다. 간토 대지진 때도 가족과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을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도식 주최 측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1973년 추모비를 세운 후 매년 행사를 열었지만 우익이 옆에서 집회를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관계자는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흐름 위에 있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되짚어 보면 말 그대로였다. 징조는 올 3월 도쿄도의회에서 나타났다. 자민당 고가 도시아키(古賀俊昭) 의원이 “희생자 6000명은 근거가 희박하다. 추도문을 보내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당시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했던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가 의원과 고이케 지사 그리고 우익단체는 어떤 관계일까. 고가 의원은 집회를 연 단체와 면담하는 등 수차례 교류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대지진 때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고이케 지사 역시 2010년 이 단체에서 강연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기반으로 세워진 지금의 일본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선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난징 대학살과 간토 대지진 학살을 두곤 ‘숫자가 과장됐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역사전(歷史戰) 시대’라며 한국 중국을 ‘적’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도지사의 40년 추도문 전통을 중단시킬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번 일은 ‘일본의 퇴행’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리고 서막에 불과하다. 우익세력은 추모식을 중지하고 추도비를 철거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금보다 더한 악다구니와 대결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모두에 언급한 문화인들의 성명도 그렇지만 기자를 더 감동시킨 건 당일 추도식에 참석한 일본 시민들이었다. 예년의 2배인 500명이 모였다고 했다. 이들은 추도비 앞에서 말없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자도 손을 모았다.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동시에 우익의 폭주를 막을 일본 시민사회의 건투를 빌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20일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의 최종 사업인수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태원 SK 회장의 승부수가 결국 통했다”는 탄성이 나왔다. 최 회장이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올 2월이다. SK가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 전문업체 LG실트론을 6200억 원에 인수한 직후였다. 최 회장은 4월 19일 출국금지가 풀리자마자 닷새 뒤인 24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바 인수전 상황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우선 도시바 메모리의 몸집이 너무 컸다. 20조 원이 넘는 매각 가격 때문에 SK하이닉스 단독으로는 인수가 불가능해 미국 사모펀드와 정보기술(IT) 기업, 일본 도시바홀딩스까지 규합해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내심 독자 생존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도시바 측의 태도, 웨스턴디지털(WD)과 도시바 사이에 얽힌 법적 다툼도 걸림돌이었다. 한미일 연합은 6월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7월 도시바가 돌연 태도를 바꿔 미국, 대만의 다른 인수 희망자와도 매각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최 회장은 기자들에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8월 24일에는 사태가 더 악화돼 WD 진영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는 일까지 벌어졌다. 20일 오전까지만 해도 WD가 ‘의결권 포기’를 제안하며 분위기가 WD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이사회에서 한미일 연합이 최종 사업인수자로 선정됐다는 낭보가 전해지며 8개월간의 반전 드라마는 끝이 났다. 이번 인수 결과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매출의 38.3%는 삼성전자가 쓸어 담았다. 2위 도시바는 16.1%, 3위 WD는 15.8%다. SK하이닉스는 10.6%로 5위다. 산술적으로 인수 이후 ‘SK하이닉스+도시바’가 되면 세계 시장 점유율은 2위인 26.7%로 뛴다. 삼성전자와 합치면 한국의 두 업체가 세계 매출의 65.0%를 가져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을 휘어잡는 셈이다.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구글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전망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협업이나 공동 연구개발로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나 직접 지분을 갖는 게 아니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전에 직접 지분을 참여한 게 아니라 베인캐피털이 인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에 전환사채(CB) 투자 금액 대출을 해주는 형식으로 간접 참여를 했다. 투자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인수가 마무리돼도 지분 구조는 베인캐피털 49.9%, 도시바 40.0%, 일본 기업 10.1%로 일본이 총 50.1%를 확보한다. 산케이신문은 “동종 분야인 SK하이닉스가 앞으로 취득할 수 있는 의결권 비율을 15% 정도로 낮춰 반독점 심사를 오래 끌지 않도록 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가 대놓고 경영에 참여하거나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매각전에서 탈락한 WD도 도시바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갈 방침이어서 분란의 불씨를 남겨 둔 상태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영향력을 폭넓게 행사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현대의학이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질환 ‘치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 치매 환자수가 76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도 치매 환자의 급증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21일 ‘세계 치매의 날’을 맞아 일본 아사히신문,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 등 해외 언론과 머리를 맞대고 치매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치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참신한 해외 사례들을 소개한다.》 “디저트 드시겠어요?” 백발의 여성 종업원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테이블로 다가갔다. 자리에 앉은 남성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이미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다른 종업원이 다시 디저트를 권했다. 남성은 짜증을 내는 대신에 여전히 밝은 얼굴로 ‘괜찮다’고 했다. 17일 오후 찾아간 일본 도쿄(東京) 고급 주택가 롯폰기(六本木)의 식당에선 일반 레스토랑이라면 언뜻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자주 연출됐다. 종업원이 테이블을 헷갈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시지 않은 음료수를 금방 가져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식당 안에선 불평 대신 웃음꽃이 피었다. 식당 앞에는 혀를 내민 일러스트와 함께 ‘주문과 맞지 않는 요리점’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일본 ‘경로의 날’(19일)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치매의 날’(21일)을 맞아 사흘 동안 한시적으로 문을 연 식당이다. 이날 서빙을 맡은 종업원 20여 명은 모두 치매 환자들이다. 이날 종업원으로 일한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의 80대 여성은 “음식을 잘못 가져다주는 등 여러 번 실수했는데 손님들이 다들 ‘사과할 필요 없다’고 해서 기뻤다.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이어 “기회가 되면 또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식당을 창안한 사람은 방송국 PD로 일하는 오구니 시로(小國士郞·38) 씨. 그는 5년 전 치매 노인이 사는 그룹 홈을 취재하다가 식사에 동석했다. 메뉴는 햄버거였는데 정작 나온 건 만두였다. 오구니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먹으면서 맛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주변에 이런 관용이 퍼진다면 치매에 걸린 이들도 보통의 생활을 이어갈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오구니 씨는 치매 노인도 일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복지 전문가 와다 유키오(和田行男·61) 씨와 의기투합했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정보기술(IT) 전문가, 대형 광고 대리점의 디자이너, 유명 식당 요리사 등이 힘을 보태 실행위원회를 구성했고, 6월 초 지인들을 대상으로 이틀 동안 시범행사를 열었다. 테이블 10곳 중 6곳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발생했지만 10명 중 9명은 “식당을 다시 찾고 싶다”고 답했다. 용기를 얻은 실행위원회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본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필요한 자금은 800만 엔(약 8160만 원).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500여 명이 동참해 목표를 초과한 1291만 엔(약 1억3200만 원)이 모였다. 식당을 빌리고 전용 배지와 그릇, 컵, 앞치마 등을 제작했다. 디저트에도 로고를 새기는 등 세심하게 준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사흘 동안 식당을 찾은 손님은 약 300명. 해프닝도 많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흥이 오른 종업원이 테이블에 앉아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았다. 일본의 치매 환자는 2015년 기준으로 약 500만 명이다.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 2025년에는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프로젝트 실행위원장을 맡은 와다 씨는 “치매에 걸린 이들이 오늘 일을 잊더라도 뭔가 즐거웠다는 느낌은 남을 것”이라며 “치매에 걸리더라도 능력을 발휘할 장소를 늘려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고구려는 언제 멸망했나요.” 20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고마(高麗)신사를 둘러보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안내하던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 궁사(宮司·일본 신사 운영 책임자)에게 물었다. 고마 궁사는 고구려인들이 일본에 정착한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고마 궁사는 1300년 전 이곳에 정착한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의 60대 손이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은 유민 1799명을 데리고 이곳에 정착했다. 히다카시의 옛 이름인 고마군도 고구려에서 유래했다. 후손들은 약광을 기리기 위해 고마신사를 짓고 직계가 대대로 궁사를 맡아 왔다. 일왕 부부는 이날 1년에 두 차례 있는 사적(私的) 여행의 일환으로 이곳을 찾았다. 역대 일왕이 이 신사를 찾은 건 처음이다. 부부는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도리이(鳥居·신사의 경계를 표시하는 문)를 지났고, 붉은 옷을 입은 고마 궁사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일왕은 신사 옆의 오래된 가옥을 보고 “여러 가지가 잘 보존돼 있다”며 감탄했다. 교도통신은 “일왕이 열심히 설명을 들은 후 참배를 마쳤다”고 전했다. 부부는 준비된 점심까지 먹으며 경내에 3시간가량 머물렀다. 방문 이유에 대해 교도통신은 “다양한 역사를 접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일왕이 2001년 12월 생일 기념 기자회견 때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한 것을 언급했다. 신사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왕의 방문 이유를 모른다”고 밝혔다. 일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도 ‘사적인 여행’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퇴위를 앞둔 시점에서 이곳을 찾은 걸 두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후 중국 사이판 필리핀 등을 돌며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추모하는 ‘위령의 여정’을 이어 왔다.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이 최근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를 무릅쓰고 고마신사를 찾는 행보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일왕은 2018년 12월이나 2019년 3월 왕위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돼 임기 중 방한은 어려운 상황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東京)도지사(사진)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중의원 해산 결정에 대해 “목적이 무엇인지, 대의명분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고이케 지사 측 의원들이 다음 주 신당을 결성하고 도쿄 전체 선거구에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하는 등 일본 정계가 급속히 선거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19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에게 무엇을 물으려 하는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아베 총리의 조기 총선 방침을 비판했다. 동시에 “앞으로의 개혁은 국정과 도정이 연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며 선거 지원에 의욕을 보였다. 한편 교도통신은 고이케 지사와 가까운 와카사 마사루(若狹勝) 중의원이 지난달 민진당을 탈당한 유력 정치인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중의원과 신당을 만들어 도쿄 25개 소선거구 전부에 후보를 낼 방침이라고 19일 전했다. 7월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케 열풍’을 재현하겠다는 의도다. 도쿄 외의 지역에도 후보자를 낼 방침이다. 두 의원은 28일 임시국회 소집 전 정당 요건이 되는 5인 이상의 현역 의원을 확보해 신당을 만들 예정이다. 류 히로후미(笠浩史) 등 3명의 중의원이 민진당에 탈당계를 내고 합류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신당 구성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외에도 다수의 의원 및 정치인들이 동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25일 연립여당인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와 회담을 갖는다. 직후에 28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 달 22일 총선을 치른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은 개헌을 통해 중·참의원 양원제를 단원제로 만들자는 내용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민진당과 연대해 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있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진당 대표도 “소선거구에서는 야당이 제각각인 것보다는 후보자가 1명인 쪽이 좋다”고 말해 반(反)아베 연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등 전략 도발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모든 국가가 북한 핵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놓이자 이를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공동 대응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모든 국가에 동원 가능한 영향력 있는 수단으로 압박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과거 북한에 우호적이었던 국가들도 속속 회초리를 들고 나섰다. 남미의 멕시코, 페루와 중동의 쿠웨이트에 이어 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스페인이 18일(현지 시간) 북한대사 추방 결정을 내렸다. 스페인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김혁철 주스페인 북한대사를 오늘 소환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통보했다”며 “그는 즉각 모든 업무를 중단해야 하고 9월 30일 이전에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2014년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북한대사관을 개설했고 김 대사를 포함해 3명의 직원이 파견돼 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북한 도발에 대응해 지난달 한 명의 외교관을 추방한 데 이어 대사마저 추방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유럽뿐 아니라 북한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북한의 3대 교역국 중 하나인 필리핀은 8일 북한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발표한 유럽연합(EU)은 북한에 대한 송금과 투자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EU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9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EU는 최근 역내에서 북한에 송금할 수 있는 한도를 1인 1회 1만5000유로(약 2025만 원)에서 3분의 1인 5000유로(약 675만 원)로 낮추는 내용의 제재안을 각국에 보냈다. 북한 출신 노동자들의 수입이 북한에 흘러들어가 김정은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또 EU 역내의 개인이나 기업이 새로 북한의 건설업이나 조선업에 투자하는 것도 금지된다. 미국 의회도 행정부가 주도하는 북핵 저지 국제 공동 전선 확장에 팔을 걷어붙이고 돕고 있다. 대북 강경파인 코리 가드너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18일 중국 러시아 등 21개국 정부에 북한과의 외교 경제관계를 중단하고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는 방법을 지지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파리=동정민 / 도쿄=장원재 특파원}

“긴자는 새로운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여 온 거리입니다. 긴자식스는 단순한 쇼핑센터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발신하는 기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긴자식스 리테일매니지먼트의 구와지마 소이치로(桑島壯一郞·59·사진) 사장은 15일 긴자식스 7층 접견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이마루 백화점 출신으로 2015년부터 긴자식스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올 5월에 긴자식스 상업시설을 총괄하는 현직에 올랐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구와지마 사장은 “기존 백화점은 문화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문화와 예술은 긴자식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긴자식스는 모리(森)미술관과 협력해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호박’을 비롯한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천장에 설치된 ‘호박’을 보기 위해 긴자식스를 찾는 고객도 많다. 이 작품은 내년 2월까지만 전시된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3층에는 480석 규모의 일본 전통예술 노(能) 공연장을 만들었다. 구와지마 사장은 “노는 7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예술로 해외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6층 서점 쓰타야에는 예술 관련 희귀 서적들이 모여 있다. 새로운 ‘긴자의 얼굴’인 만큼 지역 공헌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건물을 통해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했고, 건물 뒤편에 관광버스 정류장을 만들어 매일 20∼30대를 주차하게 했다. 그 덕분에 메인 도로의 불법 주차도 줄었다”고 말했다. 옥상에는 4000m² 규모의 정원을 만들어 오전 7시∼오후 11시 누구에게나 개방한다. 그는 “지진 등 재해가 났을 때 3000명이 사흘 동안 먹고 잘 수 있는 식료품, 모포 등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긴자 일대 상업시설로는 가장 큰 대피시설이다. 해외 관광객을 위해서는 관광안내, 환전, 면세, 짐 보관 및 발송을 일괄 처리할 수 있는 투어리스트 서비스센터를 설치했다. 전체 241개 점포 중에서 170개 점포에서 면세가 가능하다. 구와지마 사장은 “고객 중 외국인 관광객 비중을 20% 정도로 생각했는데 목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긴자식스 점포 중 절반 이상인 121곳이 플래그십 매장이다. 5개 층을 통으로 사용하는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긴자 플래그십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 구와지마 사장은 “풍부한 상품과 우수한 점원, 세련된 매장 디자인을 갖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긴자식스만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간 방문객 2000만 명, 매출 600억 엔(약 6120억 원)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해서도 “순조롭다”고 했다. 지하 식당가에는 일본 전역의 유명 음식점들이 입점했다. 160년 역사의 녹차가게, 130년 역사의 도시락가게 등이 들어와 있다. 구와지마 사장은 “백화점 지하상가처럼 신선식품은 다루지 않는다는 방침”이라며 “한정된 공간인 만큼 차별화를 노렸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도심재생 정책에 대해서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만큼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긴자라는 거리였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멋진 상업시설을 만들겠다는 우리 생각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5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의 쇼핑 1번지 긴자(銀座)의 긴자식스. 천장에는 흰 바탕에 붉은색 점이 뿌려진 거대한 호박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다. 이를 중심으로 지그재그로 배치된 에스컬레이터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올 4월 문을 연 긴자식스는 지하 6층, 지상 13층의 긴자 최대 복합시설. 상업시설 면적이 4만7000m²에 달한다. 긴자 최초의 백화점 마쓰자카야가 있던 자리를 개발했는데 건물 한가운데를 도로가 관통하는 방식으로 두 블록을 이은 뒤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긴자에서 유례없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옥상 정원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50년 동안 긴자를 봐 왔는데 긴자식스 개장 후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도쿄 변신의 상징, 긴자식스 개발 계획이 추진된 것은 2003년부터다. 당시 롯폰기힐스를 개발한 모리빌딩과 마쓰자카야 백화점이 머리를 맞대고 높이 190m 초고층 빌딩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지역 상인들과 3년 동안의 논의를 거치며 높이가 56m로 낮아졌다. 공사비 861억 엔(약 8800억 원·땅값 제외)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금융 경험이 많은 스미토모상사가 합류했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계열 투자회사도 힘을 합쳤다. 정부는 도시재생특별지구로 지정해 용적률 혜택을 줬고, 지방자치단체는 공사비 일부를 보조했다. 민관의 노력으로 ‘긴자의 새 얼굴’이 만들어진 것이다. 개장식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석해 “긴자가 본래 갖고 있던 힘이 발휘된 결과”라는 축사를 했다. 최근 도쿄는 곳곳에서 도시재생 붐이 일면서 ‘도시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면서 침체됐던 건설 경기가 2020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64년 도쿄 올림픽 즈음에 만들어졌던 도심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중심부를 대거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띤다. 도쿄의 상징인 도쿄역 앞에서는 미쓰비시지쇼(三菱地所)가 높이 390m의 일본 최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근에는 2023년까지 54층, 45층 빌딩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들 건물이 모두 완공되면 거리 모습이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재생 효과로 땅값도 들썩 10개의 지하철 노선이 만나는 시부야(澁谷)는 도큐(東急)부동산을 중심으로 2027년까지 대규모 개발계획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에서 보면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건설 현장이 보일 정도다. 최고 시속 600km인 리니어 신칸센의 출발점인 시나가와(品川)역 인근에선 JR히가시니혼(東日本) 등에 의한 대규모 개발 계획이 진행 중이다. 신주쿠(新宿)에선 일본 최고층 맨션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닛케이BP의 집계에 따르면 도쿄 내에서 2014∼2020년 1만 m² 이상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곳이 325곳에 달한다. 정부도 도시재생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총리는 2014년 국가전략특구 제도를 만들고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을 ‘국제 비즈니스 혁신 거점’으로 지정했다. 도시재생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를 완화해 지난해 2월까지 42개 사업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이를 통해 2조4500억 엔(약 25조 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완화 정책으로 풍부해진 유동성과 급증하는 관광객도 도시재생 붐의 순풍이 되고 있다. 2012년 840만 명이던 방일 관광객은 지난해 24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4000만 명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도시재생으로 인해 장기 침체에 빠졌던 도쿄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땅값이 가장 비싼 도쿄 긴자 규쿄도(鳩居堂) 매장 앞의 올해 공시지가는 m²당 4032만 엔(약 4억1100만 원)으로, 버블이 최고점이던 1992년을 넘어섰다. 긴자식스 개관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26%나 올랐다. 도쿄 전체적으로도 관광명소를 중심으로 땅값이 3.2%나 올랐다. 이 때문에 ‘버블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20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에 왔을 때 마쓰모토 다이요(松本大洋)의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일본어도 모르면서 ‘철근 콘크리트’ ‘핑퐁’ 등 그의 작품을 산더미처럼 사 갔습니다. 그런 작가와 함께 상을 받는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15일 일본 도쿄(東京) 오페라시티에서 만난 윤태호 작가(사진)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미생’으로 이날 일본 문화청이 주최하는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올해 20회를 맞는 이 행사 만화 부문에서 한국인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번역을 맡은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 씨와 한국 서적 전문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도 함께 수상했다. 수상보다 더 윤 작가를 흥분시킨 것은 오랜 우상이었던 마쓰모토 작가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e메일 주소가 ‘taio69’일 정도로 마쓰모토 작가를 흠모해 왔다고 한다. 마쓰모토 작가도 이번에 우수상을 받았다. 윤 작가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한국이 웹툰 종주국이 됐지만 제 세대 만화가들에게 일본 만화는 동경의 대상”이라며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는 내 만화 연출 방식에 큰 영향을 줬다. 마쓰모토는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을 보여줘 좌절을 안겨줬다”고 돌이켰다. 시상식을 마친 윤 작가는 마쓰모토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둘은 바둑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마쓰모토 작가는 “프로기사 이세돌의 열혈 팬이라 지난해 알파고에 패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미생을 꼭 읽어보겠다. 언제든 e메일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한국만화가협회장인 윤 작가는 그를 국제만화가대회(ICC)에 초청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된 미생은 심사 과정에서 ‘한국적이면서도 일본 청년들에게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다’,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등의 극찬을 받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만화가 이누키 가나코(犬木加奈子) 씨는 시상식 후 윤 작가를 찾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인상 깊었던 차에 후보작으로 올라와 주저 없이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미생은 일본에선 지난해 후지TV에서 리메이크 드라마로 제작돼 황금시간대에 방영됐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한다!” 16일 낮 일본 도쿄(東京) 도심의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는 재일동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을 중심으로 모인 800여 명의 재일동포들은 히비야도서문화관에서 집회를 연 뒤 북한을 규탄하는 도심 행진을 시작했다. 김길수 도쿄본부 단장은 집회에서 “세계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폭거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공태 중앙본부 단장은 집회 후 동아일보 특파원과 만나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재일동포들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다. 일본 우익들은 북쪽과 남쪽을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라’,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지 말라’, ‘핵개발을 단호하게 규탄한다’는 등의 내용을 한글과 일본어로 쓴 플래카드 및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날 집회와 행진은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히로시마(廣島) 후쿠오카(福岡) 등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민단은 전국적으로 약 2000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재일동포들은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가 확산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의 중국 책임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보다 “중국 러시아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북한의 도발을 막으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더 반발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요구에 대해 “방울을 푸는 건 방울 단 사람이 해야 한다. 직접 관련된 국가들이 대응의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자신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것은 모두 무책임하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북핵 문제의 핵심은 북-미 갈등이다. 북핵 갈등의 초점도, 정세를 계속 긴장시키는 것도 중국이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의 관건 역시 중국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책임이 중국에 없으니 대북 압박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으로, 최근 나온 중국의 관련 공식 발언 가운데 수위가 가장 높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이용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은 이날 오후 3시 외교부 브리핑에서야 공식 입장을 냈다. 3일 북한 핵실험, 12일 안보리 결의안 통과 직후 입장을 표명한 것에 비해 한참 늦었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이례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논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한반도의 추가적 긴장 고조를 초래하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단호히 비난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면서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고 밝혔다. 북한 미사일이 또 영공을 통과한 일본은 발사 후 3분 만인 15일 오전 7시 J얼러트(전국순간경보시스템)를 통해 홋카이도(北海道)와 도호쿠(東北) 자치단체 등 12곳에 대피 명령을 내렸다. 미사일은 오전 7시 4∼6분 일본 상공을 통과했다. 일본 정부는 오전 8시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긴급 대책을 논의했다. 오전 9시경 인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관저로 직행해 기자들 앞에서 “폭거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계속 이런 길을 가면 밝은 미래가 없다는 걸 북한이 깨달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