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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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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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 과시해선 안돼…한계 뛰어넘는 정신력 가져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돌고 돌아 결국 몸 쓰는 일로 돌아왔다. 황혜민 다부짐휘트니스 매니저(40·경기도 용인 수지)는 유망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부모의 반대에도 스케이팅을 포기하고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스케이팅은 타지 않았지만 운동을 멈추진 않았다. 대학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 트레이너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미술을 접고 전문 선수로 나섰다. 지금은 ‘보디 디자이너’로 건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몸을 만들어주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각종 대회 기록을 갈아 치우던 제가 중학교 때 스피드스케이팅을 그만 둔다고 하자 어머니 반대가 심했어요. 운동을 계속 하는 게 더 유망한데 갑자기 비전도 보이지 않는 미술을 한다고 했으니.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결국 몸 쓰는 일로 돌아왔죠.” 스피드스케이팅이 싫었던 게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 추운 곳에서 운동하는 게 싫었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운동 본능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운동은 언제나 그의 옆에 있었다. 미술을 했지만 시간 날 때 공원을 달리고,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은 계속했다. “몸을 쓰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 했다”고 했다. 혹시 몰라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체육대학 입시도 병행했다. 결국 미대에 진학했지만 1학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 시간제 트레이너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원 때 미술학원을 차린 뒤에도 시간을 내 헬스 트레이너로 ‘투잡’을 뛰었다. “2013년 헬스클럽 관장이 ‘살을 빼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보라’고 권유했어요. 보디빌딩을 10년 넘게 했지만 많이 먹으면서 운동해 체중이 74kg까지 나갔었죠. 살만 빼면 근육이 돋보일 것이라고 했어요.” 그해 7월 1일부터 3개월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해 20kg 넘게 감량했다. 다소 극단적인 다이어트였다. 그는 “2개월 간 하루 닭가슴살 400g, 현미 300g 먹다가 마지막 한 달은 탄수화물을 끊었다”고 했다. 하지만 황 매니저는 “다이어트를 할 때 절대 탄수화물을 끊으면 안 된다. 적당히 먹고 많이 운동해서 빼야 요요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살을 뺀 뒤 10월 2일 경기도 성남시 보디빌딩대회 여자부 52kg 이하급에서 1위를 하고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이 때부터 미술을 접고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에 매달렸다. 무대에서 잘 만든 몸을 과시하며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멋졌다. 오전 오후 4시간씩 하루 8시간 근육을 만들었다. 2013머슬마니아 코리아 대회에 출전해서도 머슬 1위, 피규어 3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다. 어렸을 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다져진 하체와 10년 넘게 만들어진 상체 근육이 돋보였다.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머슬마니아 세계대회에 출전해 2관왕을 차지했고 2018년까지 4회 연속 출전해 2016년(2위)을 제외하고 모두 우승했다. “솔직히 보기에 예쁜 몸을 만들고 싶었는데 전 근육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두드러졌어요. 몸매도 좀 서구적으로 생겼고…. 보디빌딩대회가 분화하면서 국내 각종 대회에서는 근육보다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경우가 많았죠. 그 때 사진기자 한 분이 ‘혜민 씨는 외국에 가야 먹힌다’고 했는데 실제로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미술을 공부했던 게 피트니스 트레이너인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인물을 그릴 때 밸런스와 대칭 등 알맞은 비율에 맞게 그려야 한다. 운동하면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다보니 미술과의 연관성이 깊었다. 요즘은 내 몸은 물론 지도하는 회원들의 몸도 멋지게 디자인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최근 근육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열심히 운동해 보디프로필을 찍어 과시하는 문화는 동기부여가 돼 좋다. 하지만 몸 건강을 위하기보다는 반짝 스포트라이트만 받으려는 의도는 좋지 않다”고했다. 황 매니저는 “한두 달 운동하고 대회에 출전해 마치 꾸준히 운동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한다. 속성 운동은 트레이너에게 부탁해 사실상 강압에 의해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다. 부상도 잦다”고 말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주목 받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뭐 ‘나 이런 것도 해’라고 과시하는 것이죠. 연예인이나 파워 유튜버, 또 속칭 인플루언서들…. 하지만 근육운동의 기본은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전 운동을 즐기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섰고 인정 받다보니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됐습니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근육운동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는 못합니다. 한계를 뛰어 넘는 힘겨운 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황 매니저는 웨이트트레이닝 기구를 사용하기 전에 맨몸 운동을 많이 시킨다. “근육을 잘 쓰게 하려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기구 운동을 하면 부상당할 수도 있고요. 전 스쿼트, 런지, 팔굽혀펴기, 사이드스텝, 버피테스트 등 맨몸으로 하는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잡아준 뒤 기구 운동에 들어갑니다. 전 20회 PT를 하면 10회 이상 기초를 잡기 위해 투자합니다. 맨몸을 잘 쓰면 두려움도 없어져요. 운동효과도 기구운동과 차이가 없습니다. 또 준비운동을 20분 이상해야 PT를 해줍니다. PT가 1시간이라면 미리 와서 준비운동 안하면 20분 손해 보는 겁니다. 제 PT 회원들은 수업 전에 와서 충분히 준비운동을 합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줌바, 스피닝 등 GX(그룹 운동)도 참여를 권유한다. 음악을 들으며 춤추듯 하는 운동을 하면 재밌기 때문이다. 그는 “재미없으면 피트니스센터에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흥미를 유발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 안 되면 센터에 나와서 샤워만이라도 하고 가라고 한다. 자주 나와야 꾸준히 운동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매니저에게는 ‘보디빌딩 선수’를 하고 싶은 회원들이 많이 찾는다. 그만큼 몸을 잘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가 디자인해준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2018년엔 육군 부사관학교에서 예비군인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황 매니저는 국내에선 선수보다는 머슬마니아 대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라스베이거스에 못가 안타깝습니다. 올해도 조만간 라스베이거스가 머슬마니아 세계대회로 달아오를 겁니다. 내년부턴 다시 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인 PT를 하면서도 매일 3시간 이상 운동할 시간은 확보한다. 그는 “돈보다 중요한 게 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근육운동과 함께 유산소운동을 꼭 한다. “지방을 빼는 데는 유산소운동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스피닝강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주말에는 10km를 달린다. 코로나19가 없을 땐 회원들과 함께 주요 마라톤대회 10km와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운동이 주는 즐거움도 크다. 취미로 주 1회 락킹 댄스도 배우고 있다. 새로운 것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는다. 황 매니저는 외관상 다소 강한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몸에 문신도 했다. 왼팔엔 Blossom, 오른팔엔 운동하기 전 자기모습, 등엔 양귀비꽃을 그렸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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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은 ‘몸 디자인’… ‘반짝 효과’ 노리면 오래 못 가”[양종구의 100세 건강]

    어렸을 때 잘나가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추운 곳에서 운동하는 게 싫었다. 부모의 반대에도 스피드스케이팅을 그만두고 평소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쳤다. 하지만 운동 본능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운동은 언제나 그의 옆에 있었고 지금은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활약하며 매일 근육을 키우고 있다. 황혜민 다부짐휘트니스 매니저(40·경기 용인시 수지구)는 몸 잘 만드는 ‘보디 디자이너’다. “초등학교 시절 각종 대회 기록을 갈아 치우던 제가 중학교 때 스피드스케이팅을 그만둔다고 하자 어머니 반대가 심했어요. 운동을 계속하는 게 더 유망한데 갑자기 비전도 보이지 않는 미술을 한다고 했으니.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결국 몸 쓰는 일로 돌아왔죠.” 미술을 했지만 시간 날 때 공원을 달리고,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은 계속했다. “몸을 쓰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 했다”고 했다. 혹시 몰라 미술대 입시를 준비하며 체육대 입시도 병행했다. 결국 미술대에 진학했지만 1학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 시간제 트레이너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원 때 미술학원을 차린 뒤에도 시간을 내 헬스 트레이너로 ‘투잡’을 뛰었다. “2013년 헬스클럽 관장이 ‘살을 빼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보라’고 권유했어요. 보디빌딩을 10년 넘게 했지만 많이 먹으면서 운동해 체중이 74kg까지 나갔었죠. 살만 빼면 근육이 돋보일 것이라고 했어요.” 그해 7월 1일부터 3개월간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해 20kg 넘게 감량했다. 10월 2일 경기 성남시 보디빌딩대회 여자부 52kg 이하급에서 1위를 하고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이때부터 미술을 접고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에 매달렸다. 무대에서 잘 만든 몸을 과시하며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멋졌다. 오전 오후 4시간씩 하루 8시간 근육을 만들었다. 2013 머슬마니아 코리아 대회에 출전해서도 머슬 1위, 피규어 3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다. 어렸을 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다져진 하체와 10년 넘게 만들어진 상체 근육이 돋보였다.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머슬마니아 세계대회에 출전해 2관왕을 차지했고 2018년까지 4회 연속 출전해 2016년(2위)을 제외하고 모두 우승했다. “솔직히 보기에 예쁜 몸을 만들고 싶었는데 전 근육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두드러졌어요. 몸매도 좀 서구적으로 생겼고…. 보디빌딩 대회가 분화하면서 국내 각종 대회에서는 근육보다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경우가 많았죠. 그때 사진기자 한 분이 ‘혜민 씨는 외국에 가야 먹힌다’고 했는데 실제로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미술을 공부했던 게 피트니스 트레이너인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인물을 그릴 때 밸런스와 대칭 등 알맞은 비율에 맞게 그려야 한다. 운동하면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다 보니 미술과의 연관성이 깊었다. 요즘은 내 몸은 물론이고 지도하는 회원들의 몸도 멋지게 디자인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최근 근육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열심히 운동해 보디프로필을 찍어 과시하는 문화는 동기 부여가 돼 좋다. 하지만 몸 건강을 위하기보다는 반짝 스포트라이트만 받으려는 의도는 좋지 않다”고 했다. 황 매니저는 “한두 달 운동하고 대회에 출전해 마치 꾸준히 운동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한다. 속성 운동은 트레이너에게 부탁해 사실상 강압에 의해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다. 부상도 잦다”고 말했다. 그는 “난 운동을 즐기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섰고 인정받다 보니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됐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근육운동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는 못한다. 한계를 뛰어넘는 힘겨운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인 PT를 하면서도 매일 3시간 이상 운동할 시간은 확보한다. 그는 “돈보다 중요한 게 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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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면 되더라고요” 양팔 잃었지만…달려보니 세상 열렸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0년 8월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 2만2000V 고압선에 감전이 됐다. 깨어보니 양팔이 없었다. 당시 의사는 “생명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다보니 체중이 늘기만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마라톤이었다. 직장 상사의 권유로 2003년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고 나던 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달린 뒤 “마라톤은 사람이 할 운동이 아니다”라며 그만뒀던 그였다. 하지만 다시 달려보니 세상이 열렸다. 이젠 마라톤 풀코스를 넘어, 태권도와 철인3종까지 섭렵하며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70회 넘게 완주했고, 개인 최고기록이 2시간 55분 18초인 김황태 씨(44)는 운동을 통해 꾸준히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양팔이 없는 1급 장애를 훌쩍 뛰어 넘어 태권도와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으로 장애인올림픽(페럴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연일 땀을 흘리고 있다. 김 씨는 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 트라이애슬론선수권대회 시리즈 장애인 스프린트코스(수영 750m, 사이클 20km, 마라톤 5km)에 출전해 1시간 17분 10초를 기록해 PTS3(중대한 근육 손상 및 절단) 남자 부문에서 5위에 올랐다. 그는 수영 20분 27초로 상위 5위중 가장 기록이 늦었다. 사이클(32분 59초), 마라톤(20분 43초)에선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양 팔이 없어 수영에서 기록 차가 컸다. 수영은 팔 젓기가 속도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발로만 해야 해 수영이 가장 힘들어요. 숨쉬기가 어려워요. 숨을 쉴 때는 발을 더 힘차게 차면서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에 떠서 간다는 게 중요하죠. 실내수영장에선 17분대인데 오픈워터는 파도가 있어서 더 힘드네요.” 사이클은 의수를 차고 운전을 한다. PTS3부문은 의수 의족 등 보조 기구를 제작해 달아도 되기 때문이다. 의수가 없다면 사이클엔 아예 나가지도 못한다. “전기 사고 나기 전에 자전거도 타고 오토바이도 탔는데 의수를 하고 타려고 하다보니 무서웠습니다. 처음엔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했어요. 엄청 넘어졌어요. 이젠 적응해 잘 탑니다.” 김 씨는 당초 장애인스포츠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장애의 아픔을 딛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마라톤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양 팔이 없는 상태에서도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의 꿈의 기록인 풀코스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기록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자 장애인스포츠 쪽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먼저 국내에서 열린 2018평창겨울올림픽 이후 열린 평창겨울패럴림픽에 출전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2015년이었다. 노르딕스키로 출전하려고 했는데 2016년 말 왼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가 파열 돼 수술을 받는 바람에 출전이 무산됐다. “재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여름 페럴림픽 태권도에서 제 장애 분야가 추가된다고 출전 의향을 물어왔습니다. 당연히 간다고 했죠.” 2018년 아시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K41부문 61kg이하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9년 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정작 1년 연기돼 치른 2020도쿄 페럴림픽엔 출전하지 못했다. 김 씨 장애분야 종목이 추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2019년 3월 장애인 철인3종 스프린트 종목이 도쿄 페럴림픽에 추가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철인3종 훈련도 시작했다. 그 때부터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그냥 동네에서 심심풀이로 하던 수영이었는데 집 근처에 인천장애인국민체력센터가 개장 됐고, 그해 6월 아시아장애인철인3종대회가 있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훈련했다”고 했다. 사이클도 개조해서 사고 이후 처음 타기 시작했다. 이번 아부다비 대회까지 8차례 장애인 철인3종 스프린트 대회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 기록이 개인 최고기록이다. “철인3종도 결국 제 장애 분야 종목이 추가되지 않아서 올림픽 출전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24년 파리 페럴림픽 땐 정식 종목이 될 것으로 믿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김 씨는 장애인 태권도 및 철인3종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이제 스포츠는 그의 삶, 그 자체가 됐다. “솔직히 처음 달릴 때도 팔이 없어 균형을 잡지 못해 힘들었어요. 새로운 스포츠를 시작할 땐 팔이 없어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하면 되더라고요. 이를 악물고 훈련했습니다. 이제 제 삶에서 마라톤과 수영, 사이클, 태권도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스포츠를 통해서 팔 없는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제 가족에게도 자랑스러운 가장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김 씨는 아내 김진희 씨(44)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옷 입는 것부터 식사하는 것까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내는 고교시절 만났고 장애를 입은 상태에서도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해 김 씨의 도전을 옆에서 돕고 있다. 아내 김 씨는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마라톤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 씨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밖으로 나와 스포츠 즐기기”를 권했다. “저도 운동을 안했을 땐 무기력하게 자포자기한 상태로 보냈습니다. 이젠 운동은 제 삶의 활력소이자 제 삶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됐습니다. 꿈도 꾸게 됐습니다. 장애는 장애일 뿐입니다.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는 “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저도 처음 달릴 때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달리니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줬습니다. 그것에 더 용기를 내게 됐죠. 남의 시선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장애인 여러분들이 용기를 내길 바랍니다.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많습니다. 전 운동을 하면서 살아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오전엔 집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탄다. 점심 때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 저녁 때 마라톤클럽에 가서 동호인들과 함께 달린다. 철인3종 대회가 있을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집중훈련을 한다. 태권도 대회가 있으면 태권도에 집중한다. 김 씨는 다음달 터키에서 열리는 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올림픽 출전 꿈을 꾸며 이렇게 운동에 빠져 살며보니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김 씨는 “11월 28일 서울 잠실YMCA에서 장애인 실내철인3종경기(파라 트라이애슬론)가 열린다. 참가할 수 있는 장애인들은 참가하고, 관심 있는 분들은 응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실내철인3종경기는 수영은 수영장에서 하고, 사이클과 달리기는 고정식사이클과 러닝머신에서 달린다. 거리는 장애인철인3종경기 스프린트코스(수영 750m, 사이클 20km, 마라톤 5km)와 같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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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할 때마다 헬스클럽 갔죠” 20년 넘게 이어온 근육운동[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96년 1월이었다. 동시통역을 공부하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 풀 방법을 찾았다. ‘술을 마실까?’ ‘아니다. 운동을 하자.’ 그래도 건전하게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국제회의통역사 조재범 한국외대 EICC학과 외래교수(49)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일찌감치 시작한 근육운동 덕분에 최근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까지 떨치고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전 순수 국내파로 동시통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경쟁하다보니 늘 모든 게 부족하게 느껴졌죠.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잘하지?’ ‘왜 난 이렇게 못하는 거야?’ 스트레스 없는 공부가 없겠지만 저는 너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통역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 어떨까하는 우려감에 경쟁자들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까지….” 조 교수는 최근 20년 넘게 이어온 근육운동 덕에 우울증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2019년 봄부터 크고 작은 안 좋은 일이 이어졌습니다. 사람관계에서 오는 상실감도 있었고…. 믿고 의지하던 분까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우울한 나날 이어졌죠.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에 거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일도 잘 안 풀리는 데다 늘 의지하던 분까지 떠나니 모든 게 공허했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그는 “우울할 때마다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갔다. 자칫 깨질 수 있었던 삶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근육운동이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한껏 땀을 흘리다보면 우울한 세상을 잊을 수 있었다. 우울증을 완전히 떨쳐내는 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근육운동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의 운동을 통한 우울증 탈출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운동처방을 해줄 정도로 운동이 우울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운동은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우울증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운동 기간이 길수록 우울증을 낮추는 효과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돼 한 때 3주간 헬스클럽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덤벨 등을 구입해 홈트레이닝을 하며 슬기롭게 버텨냈다. 조 교수는 “사실 26년 전 스트레스를 술로 풀까도 고민했다. 술도 제법 잘 마셨었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술로 풀었으면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운동을 하니 삶이 달라졌다. 처음엔 그저 헬스클럽에 도장 찍으러 주 2,3회 나갔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는 횟수가 늘었다. 땀을 쫙 빼고 나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근육운동이 단순해 재미는 없지만 몸이 조금씩 변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원래 체력이 약했는데 강해지다 보니 정신력도 좋아졌다”고 했다. 부정기적으로 헬스클럽을 찾던 그가 거의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1998년부터다. “한 3년 운동하니 근육도 좀 잡히고 재미도 좀 붙었죠. 경제난으로 취업 길이 막히다보니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에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동시통역까지 공부하고 졸업했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월급 100만 원도 안 되는 인턴사원 자리만 나올 때였죠. 거의 매일 헬스클럽으로 향했습니다.” 다음해 취업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해 LG전자에 입사했고 삼성SDS, SK텔레콤 등 회사를 다니던 그는 2003년부터 다시 본격 통역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SK텔레콤 다닐 때 저랑 통역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분이 통역을 왔다. 그 때 ‘아, 나도 저 일 하려고 공부했는데…’라는 생각이 밀려와 다시 동시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스페인어(한국외대) 과정을 이미 마친 그는 영어(서울외대) 통역대학원까지 섭렵했다. 한국외대에서 영어 통역번역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근육운동을 계속 하긴 했지만 ‘저 친구 헬스 좀 했네’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가 제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운동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속칭 ‘각(근육)’이 제대로 안 나왔어요. 건강해 보이긴 했지만 어디 가서 운동했다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제 불찰도 있었지만 좀 억울했습니다. 10년 넘게 했는데…. 그래서 체계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체, 하체, 코어 3분할로 나눠 몸을 만들었다. 근육운동도 피로회복을 위해 부위별로 나눠서 해야 효과적이다. 매일 새벽 6시 30분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헬스클럽은 서울 광화문과 명동 2군데에 등록했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학부 통번역학 강의를 나가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시간이 많을 땐 명동에서, 집(독립문)에 있을 땐 광화문에서 운동을 한다. 매일 2시간 운동하는데 끝날 때쯤엔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 근육운동을 한 뒤 트레드밀을 달리거나 고정식자전거를 타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에너지소비량이 더 높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지방이 빨리 끼는 몸이라 근육운동 뒤에는 꼭 유산소운동을 했다. 그런데 결국 중요한 것은 음식조절이다. 운동 열심히 하고 과식하면 효과가 없다“고 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10월 아마추어 보디빌딩대회에 출전해 40대 이상부 1위를 했다. 그는 ”코로나19 탓에 혼자 출전해 1위를 하다보니 좀 멋쩍었다. 그래서 11월 20일 서울보디빌딩협회에서 주최하는 ‘미스터 서울’ 마스터스부문에 출전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더 훈련에 집중해야 해 운동의 질이 달라진다. 또 목표가 있어야 운동 효율도 좋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아침저녁 3시간 이상 몸을 만들고 있다. 조 교수는 운동을 일상생활을 매끄럽게 하는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통역을 하는 날에는 준비할 게 많기 때문에 운동을 통역이 끝난 뒤에 한다. 그는 ”어떤 통역을 하든지 자료 준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새벽 시간도 뺄 여력이 없다. 대신 통역을 마친 뒤 스트레스 해소를 하기 위해 꼭 운동을 한다“고 했다. 강의나 번역을 할 땐 사전에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 집중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26년째 근육운동을 하며 긍정의 선순환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근육운동은 스트레스로 날려줬고 공부 집중력도 높여줬다. 삶도 활기차졌다“고 했다. 다음날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주량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는 ”운동을 하다보면 가사에 등한시할 수 있지만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도 반겨준다. 또 미안한 마음에 더 가정에 봉사한다. 이런 게 선순환 아니겠나“라며 활짝 웃었다. 운동을 안 하면 숙제를 안 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는 ”100세 시대, 건강이 중요해졌다. 돌이켜보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온 게 지금 삶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주위에서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그게 자극이 돼 더 운동에 매진하는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11월 27, 28일 서울 세종문화관에서 열리는 제13기 시민연극교실 연극무대에도 선다. 서울시극단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경험을 주는 무대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6월 신청했고 합격해 7월부터 매주 2일씩 연습을 했다. 대학 강의와 번역 및 통역, 그리고 헬스에 연극까지. 1인4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매일이 즐겁다. ”아직 바쁜 게 좋습니다. 딴 생각도 나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는 밑바탕에 근육운동이 있습니다. 평생 몸 만들며 건강하고 즐겁게 살겠습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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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 근육운동 습관 덕에 떨쳐내”[양종구의 100세 건강]

    2년 전 사람관계에서 오는 상실감으로 고민이 많았다. 믿고 의지하던 사람까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1996년 초부터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국제회의 통역사 조재범 한국외대 EICC학과 외래교수(49)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근육운동 덕분에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을 떨치고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2019년부터 크고 작은 안 좋은 일이 이어졌다. 일도 잘 안 풀리는 데다 늘 의지하던 분까지 떠나니 모든 게 공허했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우울할 때마다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갔다. 자칫 깨질 수 있었던 삶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근육운동이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한껏 땀을 흘리다 보면 우울한 세상을 잊을 수 있었다. 우울증을 완전히 떨쳐내는 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근육운동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 교수는 동시통역을 공부하던 때 스트레스가 많았다. 순수 국내파로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경쟁하다 보니 늘 모든 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잘하지?’ ‘왜 난 이렇게 못하는 거야?’ 스트레스 없는 공부가 없겠지만 그가 느끼기에 동시통역은 유독 심했다. 통역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 어떨까 하는 우려감에 경쟁자들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까지…. 운동을 하니 달라졌다. 처음엔 그저 헬스클럽에 도장 찍으러 주 2, 3회 나갔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는 횟수가 늘었다. 땀을 쫙 빼고 나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부정기적으로 헬스클럽을 찾던 그가 거의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1998년부터. 조 교수는 “한 3년 운동하니 재미도 좀 붙었는데 취업 길이 막히다 보니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에 더 집착했던 것 같다”고 했다. 다음 해 LG전자에 입사했고 삼성SDS, SK텔레콤 등 회사를 다니던 그는 2003년부터 다시 본격적인 통역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SK텔레콤 다닐 때 저랑 통역대학원 다니던 분이 통역을 왔다. 그때 ‘아, 나도 저 일 하려고 공부했는데…’라는 생각이 밀려와 다시 동시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바꿨다”고 했다. 통역번역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운동을 계속하긴 했지만 ‘저 친구 헬스 좀 했네’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제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조 교수는 “운동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속칭 ‘각(근육)’이 제대로 안 나왔다. 내 불찰도 있었지만 좀 억울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상체, 하체, 코어 3분할로 나눠 몸을 만들었다. 근육운동도 피로 해소를 위해 부위별로 나눠서 해야 효과적이다. 매일 오전 6시 30분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헬스클럽은 서울 광화문과 명동 등 2군데에 등록했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학부 통번역학 강의를 나가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시간이 많을 땐 명동에서, 집(독립문)에 있을 땐 광화문에서 운동을 한다. 매일 2시간 운동하는데 끝날 때쯤엔 꼭 유산소운동을 한다. 근육운동을 한 뒤 트레드밀을 달리거나 고정식자전거를 타는 유산소운동을 하면 에너지 소비량이 더 높다. 조 교수는 지난해 10월 아마추어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40대 이상부 1위를 했다. 그는 “코로나19 탓에 혼자 출전해 1위를 하다 보니 좀 멋쩍었다. 그래서 20일 서울보디빌딩협회에서 주최하는 ‘미스터 서울’ 마스터스부문에 출전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더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목표가 있어야 운동 효율도 좋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아침저녁 3시간 이상 몸을 만들고 있다. 조 교수는 26년째 근육운동을 하며 긍정의 선순환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근육운동은 스트레스로 날려줬고 공부 집중력도 높여줬다. 삶도 활기차졌다”고 했다. 다음 날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주량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는 “운동을 하다 보면 가사에 등한시할 수 있지만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도 반겨준다. 또 미안한 마음에 더 가정에 봉사한다. 이런 게 선순환 아니겠나”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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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달릴 수 있지만 잘못된 동작은 악영향…바른 주법 필수”[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기록을 20년 넘게 보유했다. 은퇴를 앞둔 선수시절부터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을 지도했다. 한 때 스포츠브랜드 아식스 마케팅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행복하다. ‘한국 여자마라톤의 전설’ 권은주 프리랜서 마라톤 감독(44)이 인천 청라호수공원에서 마라톤 교실 ‘Run With Judy’를 운영하고 있다. 월 수 금 오후 8시에 시작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권 감독을 통해 ‘잘 달리는 법’을 알아봤다. “2017년 이었습니다. 제가 여자마라톤 한국 최고기록을 세운지 20주년을 맞아 춘천마라톤에서 마스터스 마라토너 20명을 모아 함께 달리는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그 때 제 영어 이름인 Judy를 내세워 ‘Run With Judy’란 행사를 가졌습니다. 선수 땐 혼자 달렸지만 함께 달리니 좋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달려준다는 의미를 담아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게 제대로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전해드리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권 감독은 1997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26분 12초의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기록을 세우며 말 그대로 혜성같이 나타났다. 이 기록은 2018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김도연이 2시간 25분 41초의 새로운 한국 최고기록을 세울 때까지 20년 넘게 난공불락이었다. 권 감독은 마라톤 명문 코오롱을 시작으로 삼성전자, 제주도청, 인천시청, 함안군청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2011년 은퇴할 때까지 다시 마라톤 한국 최고기록에 도전했다. 하지만 한국 최고기록을 세운 뒤 ‘1998 보스턴 마라톤’ ‘1998방콕 아시아경기’ 등을 준비하느라 무리하는 바람에 족저근막염에 걸려 수술 받은 뒤부터는 제 실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그는 “시골서 올라와 더 잘 뛰고 싶다는 욕심에 쉬지 않고 달린 게 화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때문에 권 감독은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을 지도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쉬면서 천천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제 선수시절을 돌아보니 성적에 급급해 예민했어요. 억지로, 타의에 의해 훈련한 측면도 있었고.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은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잖아요. 취미로 즐기면서. 그런데 취미로 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열정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제 선수시절 얘기하면서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스트레스 풀려고 달리는데 무리해서 다치면 더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권 감독은 제주도청 선수시절이었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벤트성으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을 지도했다. 마라톤 전문 브랜드 아식스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15년엔 아식스 정식 직원으로 마케팅 담당을 하면서 ARC(아식스 러닝 클럽)을 이끌기도 했다. 올 6월까지 ARC를 이끌던 그는 아식스가 오프라인 행사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돼 7월부터 인천 청라호수공원에서 마라톤교실을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A형 간염에 걸려 3개월간 고생하는 바람에 10월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경기도육상경기연맹 회장님의 도움으로 3개월 무료로 한 뒤 유료화하려고 했는데 제가 아픈 바람에 10월만 무료로 하고 11월부터 유료화 합니다. 달리기를 돈 주고 배우려는 분들이 별로 없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내야 더 참여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대로 배워야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권 감독은 달리기가 운동화와 운동복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쉽게 달릴 수 있지만 잘못된 동작은 몸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바른 주법을 배워야 하고 적당한 근육운동, 그리고 잘 쉬어야 잘 달릴 수 있습니다.” 권 감독은 ‘배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서 팔을 앞뒤로 자연스럽게 흔들고 발을 11자로 달려야 한다’는 기본자세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신체구조에 맞는 방법으로 달리는 것을 권유한다. “처음엔 기본자세를 알려주지만 계속 달리다보면 자신만의 자세가 나오게 됩니다. 그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달리는 법도 알게 되지요. 똑바로 서서 달리는 사람, 약간 앞으로 몸을 숙이고 달리는 사람,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달리는 사람 등 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기본자세를 강조하지만 개인 스타일에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권 감독은 땅에 발을 착지하는 방법까지 고민해 지도한다. 권 감독은 “그동안 뒤꿈치부터 닿은 뒤 중간, 앞으로 밀어주는 게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엔 발 중간(미드풋·mid foot)으로 디딘 뒤 바로 다음 발로 넘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란 연구 결과가 많다. 땅에 지지하는 시간을 줄이고 발목과 무릎에 받는 충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조깅 및 마라톤 화도 미드풋으로 착지하도록 설계돼 나오고 있다고 한다. 권 감독은 바른 주법, 코어 근육운동 방법, 적당한 휴식 등 가장 효과적으로 달릴 수 있게 지도하고 있다. 플랭크, 스쾃, 런지,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등 달리는데 필요한 바디웨이트(프리 웨이트·몸으로 할 수 있는 근육운동) 방법은 물론 다양한 보강훈련 법도 전수한다. 권 감독의 강점은 함께 달리며 지도한다는 점이다. 함께 달리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잘못 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권 감독은 레슨 때 5~10km를 함께 달리고 주말에 지인들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20km를 하며 몸을 관리하고 있다. 홈트레이닝으로 코어 및 전신 근력운동도 계속 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은 달리기 방법은 무엇일까? “거의 매일 운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2일에 한번씩 달리고 그 중간에 근력운동을 끼워 넣는 게 좋습니다. 우리 몸은 같은 근육을 계속 사용하면 피로도가 높아져 쉽게 지치고 부상 위험도 높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주 3~4회를 권합니다. 이 땐 달리는 것과 근육운동을 같이 하는 게 좋습니다. 달리기 반, 근육운동 반.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근육운동을 꼭 해야 합니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걸어야 한다. “과체중인 분들은 달리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걸어야 하는데 평지보다 약간 높은 야산을 걷는 게 좋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연결돼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 형식을 갖출 때 살이 잘 빠집니다. 다리 근육 발달에도 좋습니다.” 다이어트에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이 효과적이다. 운동생리학적으로 등산은 오르막 내리막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불린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그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심폐지구력을 강화할 때 쓰인다. 에너지 소비량도 더 높다. 최근 달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좋은 현상입니다. 젊은이들은 일명 크루라고 무리지어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달리고 SNS에 올리며 자신들의 에너지를 과시합니다.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그에 맞게 2,3명 3,4명 씩 달리는 문화도 생겼습니다. 함께 달리며 서로 응원하고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문화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권 감독은 혼자 달리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달리는 것을 권유한다. 달리기가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함께 달리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며 더 쉽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달림이들도 늘었다. “사실 모든 스포츠에서 남녀의 장벽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달리기 걷기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하느냐 안 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죠. 과거엔 여자 운동선수하면 거칠게 봤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SNS에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많아진 것만 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달리면 에너지 넘치고 활기차 보입니다. 예쁘고 건강한 이미지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합니다. 이제 여성들이 달리고 근육 만드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권 감독은 운동이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는 측면을 강조했다. “지도하다보면 본인들이 이렇게 잘 달릴지 모르고 있다가 직접 느낀 뒤 자신감을 얻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달리면서 자신감이 붙어 열정적으로 살아가죠. 너무 과해서 부상 등 역효과에 고생하는 분들도 있지만 달린 뒤 더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권 감독은 일단 인천에서 시작하고 조만간 서울에서도 달리기 교실을 열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엘리트선수들도 지도하고 싶단다. 엘리트를 지도하더라도 마스터스 마라톤교실은 계속 운영한다. “제가 좋아서 함께 달리는 겁니다. 달리기는 제 스스로를 관리하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100세 할머니가 돼서도 달리고 있을 겁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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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한 상황, 정신력보다 체력 더 중요한 이유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런 ‘인생역전’이 따로 없다. 사회생활하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너무 공부에만 매진하다 과로로 쓰러졌다.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평생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다.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체육과 출신보다 더 열심히 체력단련에 집중한다. 수업과 강의, 방송에서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는데도 열성적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58) 얘기다. “1991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박사과정시절이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따라가다 보니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해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체득했습니다. 뇌력을 발휘하려면 체력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생존 차원에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스포츠 왕국 미국 대학은 체육시설이 좋았다. 유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도 키우고 걷고 달리는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몸이 건강해지자 공부도 더 잘 됐다. 유 교수의 경험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운동을 하면 뇌신경 성장 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돼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물들이 많다. 운동은 우울증과 치매도 예방한다. 유 교수는 “몸은 나의 중심이다. 근간을 이루는 몸이 무너지면 모든 감성과 지성, 그리고 영성이 무너진다. 몸이 바로 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부터 유 교수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된다. 올 1년은 연구년이라 좀 여유 있게 시작하지만 평소엔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간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땀을 흘린 뒤 학교로 넘어간다. 무산소 근력운동과 유산소 달리기 걷기를 혼합해서 운동한다. 하루를 웨이트트레이닝에 중점을 둔다면 다음 날은 달리고 걷기에 집중하는 식이다. 유 교수도 처음엔 뇌력이 먼저 인줄 알았다. 수도공고를 졸업한 그는 취업해 2년 사회상활 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고시에 합격한 체험수기를 본 뒤 인생 역전이라는 게 이런 것을 느끼며 법대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육공학과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하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다 쓰러진 뒤에야 신체건강의 중요성을 체득한 것이다. “정신 나간 사람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려고 하고, 제 정신인 사람은 체력으로 극복합니다. 극한 상황에서 머리는 절대 몸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정신력이 아닌 체력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유 교수는 2015년 해발 5895m 킬리만자로에 오를 때 다시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산을 오를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져 더 이상 못 움직일 것 같은 극한 상황이 왔다. 머리로는 가자고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체력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체력이 바닥난 사람은 포기해야 했다. 체력이 없으면 몸은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진국 미국은 체덕지(體德智)를 강조합니다. 지덕체(智德體)를 앞세우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우리가 살아갈 가장 중요한 기본인 몸을 안 움직이며 머리로만 공부해선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리더와 창의적 인재가 많이 나오는 배경에 체덕지가 있습니다.” 유 교수는 모든 학생을 ‘공부 선수’로 만드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에 비판적이다. 그는 “무엇을 하려면 실행을 해야 한다. 몸이 부실하면 실행력이 떨어진다. 실력은 실행력의 줄임말이다. 결국 체력이 실력이 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해야 실행력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2018년 체인지(體仁智)란 책을 썼다. 체덕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직접 체험하고 공감하며 실천하는 게 진짜 지성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야(Change)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그는 “운동하면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움직인 만큼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바뀐다”고 했다. “운동하는 사람은 정신 건강도 좋아요. 머리는 거짓말 하지만 몸과 감정은 거짓말 하지 않아요. 몸을 움직이면 그 느낌이 가슴을 거쳐 머리로 올라갑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뇌만 때리고 있습니다. 몸으로 느끼고 가슴에 온 게 없으니 손발을 안 움직입니다. 실천이 없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죠.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체덕지 위주로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유 교수는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사용한 동사가 얼마나 다양하느냐가 행복을 결정합니다. 매일 ‘오늘도 수학 영어 공부했다. 회사에 갔다, 친구를 만났다’ 등 틀어박힌 동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요. 일상을 바꾸는 것은 자신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제 안했던 운동을 해보고 산에도 오르고, 자전거도 타고 등 어제와 다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감탄사를 연발했으냐가 행복의 기준입니다. 신체를 움직이면 그게 곧 행복입니다.” 실행력을 키우는 교육을 강조하는 배경엔 유 교수의 지식생태학적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지식생태학자를 자처한다. “평범한 대학교수보다 개인의 정체성을 알리는 퍼스널 브랜딩 차원에서 자칭한 것입니다. 지식생태학자는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경쟁과 협조를 통해 어떻게 거대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관찰합니다. 그리고 통찰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원리를 연구합니다. 예들 들면 지식생태학자는 화초와 잡초를 비교해서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화초형 인재보다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서 야생에서 자생력을 기르는 잡초형 인재를 육성하자는 주장합니다.” 유 교수는 지식생태학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지식생태학자는 갓 잡은 명태를 지칭하는 생태(生太)를 연구하지 않고, 생물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과 그들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생태(生態)를 연구합니다. 물론 명태의 싱싱한 생태도 연구하고 겨울에 얼린 동태도 연구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태는 명태의 다른 이름인 생태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양태를 지칭하는 생태(生態)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지식생태학은 자연 생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계맺음이 일어나는 사회생태입니다. 기존 학습관과 지식관을 비판적으로 분석, 대안적인 관점과 접근논리를 제시하려는 근원적인 생태학적 대안입니다. 지식생태학은 자연 그대로의 생태가 아닌 인간의 의도성과 목적성이 담긴 지식생태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식과 생태라는 익숙한 개념이 만나 지식생태라는 낯선 생태가 탄생한 것이죠. 지식생태학의 탐구여정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를 지식생태계로 조성하는 과정, 우리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지식생태계를 다 함께 디자인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며 깨달아가는 집단적 성찰의 과정입니다.” 유 교수는 운동하고, 책 읽고, 책 쓰는 것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책만 번역서를 포함해 90권이 넘는다. 연구 논문도 다른 교수들에 비해 10배는 많다. 체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올 초에는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를 썼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며 운동을 강조한 책이다. 그는 “돈도 체력이 있어야 번다. 재테크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근(筋)테크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 돈 번 뒤 병원에 누워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유 교수는 다양한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에도 도전했다. 사하라 등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국내 최초로 달성한 ‘오지레이서’ 유지성 OSK 대표(50)와 함께 참가했다. 비록 120km지점에서 포기했지만 유 대표와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란 책도 썼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도 5번 완주했다. 마라톤 계속 하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 이젠 달리지 않고 속보로 걷고 있다. “운동효과는 달리기보다 속보가 더 효과적이다”고 했다. 올 6월부터는 자전거로 전국 일주도 시작했다.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국토 종주를 다녀왔어요. 자전거 타기는 또 다른 매력을 주더군요. 먼저 오르막 내리막을 달리기 때문에 유산소 무산소 운동이 함께 되는 효율적인 스포츠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잘 갖춰진 자전거길이 너무 아름다워요. 자전거 타기는 움직이는 인생학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순간 모든 사물이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바람도 하늘도 강도 나무도…. 자전거 타기는 자연의 협주곡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의 시라고 할까요? 제가 자전거 타는 시인이 된 기분입니다.” 유 교수는 자전거 인문학이란 책도 준비하고 있다. 4대강 1857km, 동해안해안도로, 제주 둘레길 등 국토완주을 하면서 느낀 점을 책에 담을 계획이다. 운동 습관은 어떻게 들여야 할까? “우리가 밥은 매일 먹죠. 안 먹으면 죽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운동은 안 해도 죽진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등한시하죠. 하지만 운동을 해야 삶의 질이 좋아집니다. 삶을 보는 프레임도 바뀝니다. 밥 먹듯 매일 운동해야 합니다.” 유 교수는 운동은 새벽에 해야 효과적이며 알람이 울리자마자 1초안에 일어나 나가야 실천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운동을 점심, 저녁 때하면 변수가 너무 많아집니다. 갑자기 없던 약속이 생기도 하고, 회의가 잡히기도 하고. 새벽에 하면 그런 변수가 사라지죠. 그리고 알람 3개를 맞춰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바로 ‘운동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머리를 맴돕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오래 생각하면 행동은 미뤄지는 법입니다.” 유 교수는 “100세 시대의 화두는 건강과 행복이다. 과거 50대에 정년이었다. 이젠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신체성, 즉 건강이 확보돼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다.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재차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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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정신력 앞서는 게 체력… ‘근테크’는 절대 실패 안 해”

    “1991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박사과정 시절이었다. 짧은 영어로 따라가려다 보니 잠을 줄여 가며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과로로 쓰러졌다. 그때 체득했다. 뇌력을 발휘하려면 체력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생존 차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58)는 미국 유학 시절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뒤 운동을 평생 생활화하고 있다. 수업 및 각종 강연, 방송에서 운동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체육과 교수로 보일 정도다. 스포츠 왕국 미국의 대학은 체육시설이 좋았다. 유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도 키우고 걷고 달리는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몸이 건강해지자 공부도 더 잘됐다. 유 교수는 “몸은 나의 중심이다. 근간을 이루는 몸이 무너지면 모든 감성과 지성, 그리고 영성이 무너진다. 몸이 바로 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의 중요성을 안 뒤부터 유 교수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된다. 올 1년은 연구년이라 좀 여유 있게 시작하지만 평소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간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땀을 흘린 뒤 학교로 넘어간다. 무산소 근력운동과 유산소 달리기 걷기를 혼합해서 운동한다. 하루를 웨이트트레이닝에 중점을 둔다면 다음 날은 달리고 걷기에 집중하는 식이다. 그는 2012년 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 마라톤에도 도전했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도 5번 완주했다. 올해부터 자전거로 전국 일주도 시작했다. 유 교수도 처음엔 뇌력이 먼저인 줄 알았다. 그는 수도공고를 졸업하고 취업했다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고시에 합격한 체험수기를 본 뒤 ‘인생 역전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느끼며 법대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육공학과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다 쓰러진 뒤 신체 건강의 중요성을 체득한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머리는 절대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 정신력이 아닌 체력이 더 중요하다.” 유 교수는 2015년 해발 5895m 킬리만자로에 오를 때 다시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산을 오를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져 더 이상 못 움직일 것 같은 극한 상황이 왔다. 머리로는 가자고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체력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체력이 없으면 몸은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진국 미국은 체덕지(體德智)를 강조한다. 지덕체(智德體)를 앞세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갈 가장 중요한 기본인 몸을 안 움직이며 머리로만 공부해선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없다.” 유 교수는 모든 학생을 ‘공부 선수’로 만드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 비판적이다. 그는 “무엇을 하려면 실행을 해야 한다. 몸이 부실하면 실행력이 떨어진다. 실력은 실행력의 줄임말이다. 결국 체력이 실력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해야 실행력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2018년 체인지(體仁智)란 책을 썼다. 체덕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직접 체험하고 공감하며 실천하는 게 진짜 지성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야(Change)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그는 “운동하면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움직인 만큼 세상을 보는 틀이 바뀐다”고 했다. 유 교수는 매일 운동하고, 책 읽고, 책 쓰는 것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책만 번역서를 포함해 90권이 넘는다. 연구 논문도 다른 교수들에 비해 10배는 많다. 체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올 초에는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를 썼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으니 운동을 강조한 책이다. 그는 “돈도 체력이 있어야 번다. 재테크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근(筋)테크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 돈 번 뒤 병원에 누워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유 교수는 “100세 시대의 화두는 건강과 행복이다. 과거엔 50대가 정년이었다. 이젠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신체성, 즉 건강이 확보돼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다.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재차 강조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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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세계 최강과 겨뤄보니, 수영 세계新 자신감도 생겨”

    《“어떤 상황에서도 쫄지 않는다.”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의 스타로 떠오른 황선우(18·서울체고)를 지켜본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타고난 강심장이란 평가다. 서울체중 2학년 때부터 5년째 그를 지켜본 이병호 서울체고 감독(52)은 “자신은 긴장을 한다고 하는데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나치게 긴장하면 오히려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는데 황선우는 늘 기대 이상의 성적과 기록을 내는 것으로 봐 적당히 긴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선우는 이런 특유의 배짱을 앞세워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에 새 꿈을 심어 줬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리스트 박태환(32)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당한 반면 황선우는 첫 무대부터 당당하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했다. 황선우는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00m까지 49초78로 주파해 세계기록(50초12)보다 앞섰다. 결국 1분45초26으로 7위에 그쳤지만 150m까지 1위로 달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100m 준결선에서는 47초56으로 아시아 기록(종전 중국 닝쩌타오 47초65)을 7년 만에 갈아 치웠다. 1956 멜버른 올림픽 다니 아쓰시(일본) 이후 65년 만에 올림픽 자유형 100m 결선에 오른 아시아 선수가 됐다. 100m 결선에서는 47초82로 5위를 했지만 금메달을 딴 케일럽 드레슬(25·미국)로부터 “18세 때의 나보다 빠른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14일 막을 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수영 5관왕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황선우를 경북 김천과 구미에서 만났다. 그의 마음은 벌써 3년 뒤의 2024 파리 올림픽에 가 있었다. “파리의 에펠탑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성장 중… 근력 키우면 세계 정상 황선우는 “올림픽 자유형 100m 준결선에서 출발한 뒤 15m 만에 드레슬에게 허리 이상 뒤졌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다시 영법으로 따라잡았는데 50m에서 턴한 뒤 다시 밀렸다. 결국 출발 및 턴 이후 돌핀킥을 보완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황선우는 성장 중이라 웨이트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시키지 않았다. 당연히 파워 넘치는 선수들에게 돌핀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자유형 100m 선수들은 모두 근육질 체형이다. 자유형은 출발한 뒤 15m 정도를 물속에서 돌핀킥을 하는데 파워가 부족하면 치고 나가기 힘들다. 흐름상 바로 물 위로 나와 팔 스트로크를 하면 오히려 더 뒤처진다. 황선우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파워를 보완해야 하는 이유다. 이 감독은 “100m에서 드레슬에게 스타트와 턴에서 뒤졌지만 영법으로 다시 따라잡는 것을 보고 충분히 세계기록 경신도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현 남자 자유형 100m 세계기록은 2009년 브라질의 세자르 시엘루 필류가 기록한 46초91이다. 황선우의 기록(47초56)과 불과 0.65초 차다. 황선우는 “제가 세계기록을 깬다고 장담하기엔 솔직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했고 잘 보완하면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얻었다”고 말했다.물에선 따라올 자 없는 ‘신동’ 황선우는 수영에 특화된 천재다. 요즘 한 TV 프로그램에서 ‘축구 선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박태환은 전형적인 만능 스포츠인이다. 다른 운동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하지만 황선우는 다르다. 전동현 서울체고 코치(46)는 “선우는 수영 외에 잘하는 운동이 거의 없다”고 했다. 서울체고는 여름철과 겨울철에 심폐기능 향상을 위해 오래달리기 훈련을 시킨다. 남자 선수들은 400m 육상 트랙 10바퀴를 바퀴당 2분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황선우는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들어온 적이 없다. 심지어 2분30초 페이스로 달리는 여자 선수들에게도 뒤진다. 최근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서 오래달리기 훈련을 하다 5바퀴 돌고 과호흡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물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량을 뽐낸다. 황선우는 수영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훈련도 즐기고 다른 선수들의 영상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분석하고 어떻게 자신의 영법에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게 취미다. 황선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엇박자 영법’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황선우는 오른쪽으로 숨을 쉰 다음 오른팔을 앞으로 더 길게 밀어 넣어 물을 세게 당겨 추진력을 얻는 엇박자 영법의 리듬을 유지하며 팔 젓기를 빠르게 한다. 리듬이 깨지지 않고 팔 스트로크를 빠르게 하는 황선우만의 기술이다. 리듬 없이 무작정 팔만 빨리 회전시킬 경우 오히려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황선우가 지도자들과 협의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했고 기록이 단축되다 보니 자신만의 영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황선우는 “수영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실업팀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내년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그리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그는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게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병행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란 판단을 했다”고 했다. 부모님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황선우는 “부모님들은 제 선택을 언제나 믿고 따라 주신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영 선수를 하면서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부모님은 언제나 황선우의 선택을 지지했다. 수영을 즐기는 부모님을 여섯 살 때부터 따라다니며 수영을 배운 황선우는 수원 매현중 2학년 때 서울체중으로 전학했다. 국제규격인 50m 수영장이 있는 곳에서 체계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결국 한국 대표 수영 선수로 성장했다.‘미완의 천재’ 수영계가 키워야 황선우는 이번 전국체육대회에서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늘 웃는 게 트레이드마크가 돼 ‘미스터 스마일’로 불렸다. 지도자 동료 선수들과 대화할 때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도 늘 활짝 웃으며 다 찍어 줬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지도자들은 황선우가 큰 무대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강심장인 이유도 이런 긍정적인 성격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지도자들은 황선우를 미완의 천재로 보고 있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얘기다. 이 감독은 “황선우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도 잘할 선수다. 다만 지나치게 성적과 기록에 집착하면서 훈련시키다 보면 황선우의 천재성을 망칠 수 있다. 천재성을 드러낼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선우에게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황선우를 한국 수영계가 잘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선우는 21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국제수영연맹(FINA) 쇼트코스 경영월드컵에 출전한다. 황선우의 세계 정상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황선우△ 생년월일=2003년 5월 21일 생△ 신체조건=186cm, 72kg△ 소속=서울체고(매니지먼트 올댓스포츠)△ 한국기록자유형 100m=47초56(※아시아 기록)자유형 200m=1분44초62개인혼영 200m=1분58초04혼계영 400m=3분35초26계영 800m=7분11초45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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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루들과 뛰고, 트레일러닝까지…달리기는 삶의 활력소”[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헤어디자이너 임경아 씨(41)는 요즘 달리는 재미로 산다. 도로와 공원은 물론 산까지. “2년여 전 2019년 6월이었습니다. 한강변을 달리고 걷고 있는데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크루라고 달리는 사람들 모임이 있었는데 앞에서 끌어주고 같이 응원하면서 달리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럿이 함께 달리면 재밌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게 맞는 크루를 찾아 나섰죠.” 사실 임 씨는 10여 년 전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댄스스포츠, 발레, 수영, 헬스, 걷고 달리기…. “헤어샵에서 일할 때 주 1일 쉬면서 일했어요. 운동을 자유롭게 하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허리에 통증이 와 2일 정도 걷지도 못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댄스스포츠를 먼저 시작했다. 춤을 추며 건강도 다질 수 있어 좋았다. 동작이 크고 활동적이여 운동 효과가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굳어지는데 몸을 잘 안 풀어주면 미세한 부상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유연성도 키우고 상하체 미세한 근육도 잡아주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는 기본적으로 바와 플로어에서 하는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동작이 많다. 상대적으로 하체를 많이 쓰지만 상체도 우아한 포즈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수영은 운동량이 많고 부상 위험이 없어 시작했다. 헬스와 걷고, 달리는 것은 늘 하던 루틴이었다. 하지만 2년여 전부턴 정말 열성적으로 달리고 있다. 달리는 게 너무 좋았다. “요즘은 크루 등 동호회 정보를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서 찾아요. 저도 그렇게 해서 찾아 가입해 달렸습니다.” 서울 집(논현동) 근처 한강 공원을 주로 달렸다. 주 4일 이상은 달렸다. 한 번 달릴 때 10~15km는 달린다. “달리기 시작한 뒤 그해 가을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달리기에서 10km, 춘천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처음 달렸죠. 그리고 몇 개 마라톤대회에 더 출전했어요. 2020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임 씨는 ‘달리기 초보’였지만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에 춘천마라톤 하프코스 여자 30대 1위, 손기정마라톤 하프코스 여자 30대 1위, 코리아마스터스마라톤 하프코스 여자 30대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월드런마라톤 하프코스에선 여자 종합 4위를 차지했다. 10km는 45분대, 하프코스는 1시간 41분대가 개인 최고기록이다. “얼마 하지 않았는데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자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지난해 대회는 없었지만 좀 많이 달렸어요. 혼자 달릴 때 30km까지 소화했죠. 그러다보니 올해 초 왼쪽 발에 장경인대염이 걸려 한 달간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부턴 무리해서 달리진 않습니다. 10~15km만 달립니다.” 임 씨는 제대로 자세를 배워 달리려고 2019년 말 아식스러닝클럽(ARC)에도 가입해 달렸다. 지금은 갱런 6기로 활동하고 있다. 갱런은 달리기로 인생갱생에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가입신청을 하면 일정 정도 훈련을 시켜 테스트를 한 뒤 최종 가입을 승인하는 달리기 모임이다. 임 씨는 이렇게 6기로 가입했다. 올 봄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시작했다. “공원 도로만 달리다보니 심심했어요. 코로나19로 뭉쳐서 달릴 수도 없고…. 그래서 산에 올라서 달려봤는데 색다른 맛이 있었어요. 도로나 공원은 사람들이 많아 노래를 들으면서 달렸는데 사람들이 드문 산에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달릴 수 있어 좋았어요. 고개를 넘고 바위, 개울 등이 있어 힘들고 부상 위험도 있지만 꽃과 나무 등 자연과 함께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임 씨는 17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리는 하이원스카이러닝 트레일러닝대회 12km에 출전한다. 첫 대회 출전이다. 11월 초에는 트랜스제주 트레일러닝대회 50km에 출전할 계획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산들을 달리기는 했지만 대회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떨립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임 씨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헤어샵에 얽매여 있을 땐 느끼지 못한 즐거움입니다. 제가 5년 전 프리랜서로 전향했거든요. 이젠 틈만 나면 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집과 헤어샵 근처인 서울 강남에서만 맴돌았다면 본격적으로 달리면서부터는 수도권은 물론 지방 명소까지 가서 달리고 있습니다.” 아차산, 검단산, 청계산, 대모산, 북한산은 등 수도권 산은 다 달렸다. 조만간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도 달릴 계획이다. 최근엔 제주 한라산을 달리고 왔다. 도로와 공원은 주로 밤에 달렸는데 산은 새벽에 달리고 있다. “달리기는 할 때마다 새로워요. 장소가 바뀌잖아요. 그리고 몸 컨디션이 안 좋은데 더 잘 달리기도 하고 몸 컨디션이 좋은데 잘 못 달리기도 하고…. 지루하지가 않아요. 물론 건강에도 좋고요.” 임 씨는 맘에 맞는 달리기 친구들과 ‘런 트립’이란 크루를 만들었다. 소수정예로 전국 명소를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달리는 달리기모임이다. 이미 헤어샵 입사 15년 지기와 경기 강화, 제주도 등을 달리고 왔다. 코로나19가 가고 일상이 찾아오면 내년 3월엔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계획이다. 지난해 3시간 40분을 목표로 연습했다. 올 겨울에도 첫 풀코스 3시간 40분 완주를 목표로 도로와 공원, 산을 달릴 계획이다. “제 모토가 오늘이 나의 리즈(전성기·황금기)이게 살자입니다. 게을러지려 할 때마다 생각하는 모토입니다. 운동은 매일 밥을 먹듯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안 하면 하루가 안 지나가요. 건강을 지키는 것도 있지만 달리면 삶에 활력이 생겨요. 달리기는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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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은 달리기 아내는 수영…권재도 목사의 부부 건강학[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부부의 날(5월 21일)’ 발안자인 권재도 수원 카페교회 담임 목사(5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터진 뒤 지난해 10월 ‘코로나 극복 전국 순회 1인 마라톤’을 진행했다. 건강해야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캠페인성 마라톤이다. 경기 의왕 왕송호수(5.4km), 서울 여의도 일주(9km), 강원 춘천호(31km), 경남 창원시내 일대(21km) 부산 해운대 일대(5km) 등 10개 도시를 돌며 총 90여 km를 질주했다. 마라톤 대회를 전문적으로 출전하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는 아니지만 환갑을 앞둔 나이에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30여 년 전 젊은 나이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권 목사는 학창시절 허약체질로 힘겹게 살다 운동이란 신의 선물을 만나 건강한 노년을 개척하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위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대학 땐 허리 디스크 통증 탓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늘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웃을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대학 때가 최악이었죠. 성적을 상대 평가로 하다보니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도서관에서 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3분을 채 앉아 있기 힘들었어요. 돌이켜보니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다보니 척추에 무리가 간 것입니다. 여러 병원도 찾아 다녔지만 당시 의술론 완치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요양도 좀 하고 군대도 갈 겸 휴학을 했다. 군대서 훈련 받고 할 땐 크게 문제가 없었다. 2년 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해 공부를 시작하자 다시 허리가 아팠다. 1년 휴학을 더 했다. 종교에 귀의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자 좀 편안해졌다. 그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는 명언을 떠올렸다. “죽기야 하겠냐며 부산대 인근 구월산(해발 317m)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처음엔 정상까지 10분의1도 못 뛰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조금씩 더 뛰어 올랐습니다. 보름이 지났을 때 한 번도 쉬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뛰어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허리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산을 오르며 허벅지와 등의 근육이 강화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력의 중요성을 빨리 알았더라면 훨씬 빨리 허리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그 때부터 운동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운동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기 위해 했다”고 했다. 권 목사의 하루는 국군 도수체조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군대에서 배운 도수체조로 몸을 깨웁니다. 도수체조는 하루 몇 차례씩 틈나는 대로 하고 있어요. 간단하지만 쉽게 할 수 있어 하고 나면 몸에 활기가 쏟아요. 논산 신병훈련소에서 배운 도수체조가 제 건강의 기본이 되다니….” 권 목사는 속칭 ‘전문적인 마라토너’는 아니다. 생활 속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목회자라 일요일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출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집과 교회 근처 산과 공원을 달리고 걷는다. 2~3km의 짧은 거리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15년 전부터는 팔굽혀펴기를 하루 1500개, 스쾃을 500개씩을 병행했다. “탤런트 차인표 씨가 팔굽혀펴기를 하루 1000개씩 한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했다. 요즘은 각각 300개, 150개를 한다. 아내 유성숙 씨(53)도 약 15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부부는 집 근처인 경기 수원 세류동 버드내노인복지관 스포츠센터에서 함께 운동하고 있다. 권 목사는 달리고 걷고 근육운동하고, 유 씨는 수영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복지관 스포츠센터를 운영하지 않아 함께 걷고 산을 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운동은 일종의 의식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걷는 게 아닙니다. 운동을 하면서 삶의 목표를 확고하게 합니다. 어제 한 일, 오늘과 내일 해야 할 일 등 반성과 계획도 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성경말씀에 따라 살아야겠다는 삶의 목표가 더 확실해 집니다.”1980년대 말 부산지역 선교단체 대표를 맡고 있던 권 목사는 종교 행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권 목사는 전남 순천 출신의 아내를 맞아 영호남 교류의 상징 장소인 하동 화개장터에서 1991년 결혼식을 올렸고, 그해부터 서울에서 ‘영호남 부부 모임’도 결성해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에도 앞장섰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한 권 목사는 잠깐 다른 사업을 하다 1992년부터 신학을 공부했다. 1995년 경남 창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날 TV를 보다가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아동시설의 초등학생이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된다는 의미를 담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 10계명’과 ‘부부싸움 10계명’ ‘부부폭력 제로 운동 선언문’ ‘부부의 전화’ ‘부부 주말캠프’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벤트로 부부의 날을 알렸다. 2003년엔 부부의 날을 추진하면서 한 경험을 ‘장미를 든 목사’란 책(동아일보사)으로 엮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7년 부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권 목사는 백년해로헌장도 만들었고 2001년부터 ‘올해의 백년해로 부부상’도 만들어 결혼 60~70년 된 모범부부들에게 시상도 하고 있다. “2001년 결혼 85주년 된 이훈요(당시 95세)-김봉금(당시 99세) 부부에게 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남편 이훈요님께서 ‘사람이 아니면 인내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인내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 부부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권 목사는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며 “특히 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100년 해로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생활은 마라톤과 같다. 100세 인생 역시 마라톤 아닌가. 부부가 건강해야 할 이유다. 부부가 함께 열심히 운동하는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나 같은 약골도 운동 덕에 팔팔하게 살 수 있다. 사실상 ‘국민 약골’이었는데 운동을 생활화하면서 이젠 건강 하나는 자신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차 트렁크에 운동복과 운동화를 싣고 다닌다. 어딜 가든 운동을 한다. 몇 시간 씩 길게는 하지 못하지만 짬짬이 하는 운동도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건강(健康)이 부(富)보다 낫다(Heath is better than wealth)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우리 모두 건강한 100세 인생을 개척합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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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젊은 시절 괴롭혔던 허리 통증, 산 달리면서 털어냈죠”

    ‘부부의 날(5월 21일)’ 발안자인 권재도 경기 수원 카페교회 담임 목사(59)는 학창시절 허약 체질로 고생하다 운동이란 신의 선물을 만나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위장병으로 고생했고 대학 땐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늘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웃을 날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대학 때가 최악이었다. 상대평가로 성적을 내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사실상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3분을 채 앉아 있기 힘들었다. 돌이켜 보면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다 보니 척추에 무리가 간 것이다.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당시 의술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했다.” 휴학하고 쉬다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훈련받고 할 땐 크게 문제가 없었다. 2년 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해 공부를 시작하자 다시 허리가 아팠다. 1년 휴학을 더 했다. 종교에 귀의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자 좀 편안해졌다. 그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는 명언을 떠올렸다. “그래 죽기야 하겠냐”며 부산대 인근 구월산(해발 317m)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처음엔 10분의 1도 못 뛰었다. 그래도 조금씩 더 뛰어올랐다. 보름이 지났을 때 한 번도 쉬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뛰어서 오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허리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는 “산을 오르며 허벅지와 등의 근육이 강화됐기 때문이었다. 근력의 중요성을 빨리 알았더라면 더 빨리 허리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그때부터 운동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운동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기 위해 했다”고 했다. 권 목사의 하루는 체조로 시작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군대에서 배운 도수체조로 몸을 깨운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고 했다. 집과 교회 근처 산과 공원을 달리고 걷는다. 2∼3km의 짧은 거리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한창 땐 팔굽혀펴기를 하루 1500개, 스쾃을 500개씩 병행했다. 요즘은 각각 300개, 150개를 한다. 15년 전부터 아내 유성숙 씨(53)도 운동을 시작했다. 부부는 집 근처인 경기 수원시 세류동 버드내노인복지관 스포츠센터에서 함께 운동하고 있다. 권 목사는 달리고 걷고 근육운동을 하고, 유 씨는 수영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복지관 스포츠센터를 운영하지 않아 함께 걷고 산을 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권 목사는 지난해 ‘코로나 극복 전국 순회 1인 마라톤’을 진행했다. 건강해야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캠페인성 마라톤이었다. 경기 의왕 왕송호수, 서울 여의도 일주, 강원 춘천호, 부산 해운대 등 10개 도시를 돌며 짧게는 2km, 길게는 31km를 달려 총 90여 km를 질주했다. 1992년부터 신학을 공부한 권 목사는 1995년 경남 창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날 TV를 보다가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아동시설의 초등학생이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는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의미를 담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 10계명’과 ‘부부싸움 10계명’ ‘부부폭력 제로 운동 선언문’ ‘부부의 전화’ ‘부부 주말캠프’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벤트로 부부의 날을 알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7년부터 부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권 목사는 전남 순천 출신의 아내를 맞아 영호남 교류의 상징 장소인 하동 화개장터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1991년부터 서울에서 ‘영호남 부부 모임’도 결성해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에도 앞장섰다. 권 목사는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며 “특히 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100년을 해로해야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 부부가 함께 열심히 운동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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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바가지 대중 골프장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골프 인구가 늘면서 대중 골프장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국내 골프장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4% 늘어났다고 한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국정감사에서 밝힌 경기도의 한 대중 골프장 사례를 보면 1000원대 막걸리를 1만2000원에 판다. 떡볶이 가격도 시중의 10배가 넘었다. 카트 사용료는 10만 원으로 똑같은 경남 의령에 있는 대중 골프장에 비해 20배나 비쌌다. ▷주말골퍼라면 대부분 느끼고 있던 문제가 국감 무대에까지 오른 이유는 골프장들의 횡포가 그만큼 지나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청정지역으로 생각하는 골프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전국 501개 골프장 내장객은 467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1% 늘었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자영업 분석 보고서에는 지난해 골프 인구가 515만 명으로 1년간 46만 명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다 보니 코로나19 이후 골프장 부킹은 사실상 전쟁이 됐고 모든 비용이 덩달아 올랐다. ▷대중 골프장들은 골퍼들이 몰리자 입장료와 카트 사용료, 캐디피 등을 올리면서도 서비스의 질은 개선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1년간 대중 골프장의 입장료는 평균 20%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 입장료를 회원제(비회원 25만∼27만 원)보다 많은 37만 원까지 받는 곳도 있다. 카트 사용료와 캐디피도 1만∼2만 원씩 올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로 골프장에서 샤워를 못 하게 되면서 골프장들은 또 다른 부수입까지 챙기고 있다. 수도세, 전기세에 인건비까지 아끼면서도 골퍼들에게 되돌려주는 곳이 거의 없다. 과거엔 공사 등으로 샤워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때 목욕비로 1만 원을 깎아줬다. 오히려 골프장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검사 관계로 불가피하게 당일 빠졌을 때 돈을 더 받기도 한다. 4명에서 3명으로 인원이 줄어들면 3명에게서 그린피 1만 원씩을 더 올려 받는다. ▷세금을 덜 내고 이익은 더 챙기면서 대중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회원제보다 두 배로 커졌다. 대중제는 개별소비세(2만2000원)도 면제인 데다 종합부동산세 등의 경우 중과세 대상인 회원제와 달리 일반 세율이 적용된다. 입장료를 오히려 회원제보다 비싸게 받으면서도 대중 골프장이란 이유로 일반 과세 혜택까지 받는 것이다. 일부 소비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폭리·갑질 골프장 정보를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하지만 워낙 골프장 수요가 많다 보니 골프장들은 꿈쩍도 안 한다. 이런 ‘무늬만 대중제’인 골프장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한 때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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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을 달리는 가족 “사람이 할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직장인 황용환 씨(41)는 2017년 초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무작정 집 근처(경기 남양주 별내) 불암산을 오른 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을 느끼며 정상에 올랐을 때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산이 좋아질 때 쯤 아는 동생이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으니 나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조언했고 그해 4월 말 경기 동두천에서 열린 코리아 50K 트레일러닝 10km 부문에 출전하면서 그는 트레일러닝에 빠져 들었다. 지금은 아내와 두 자녀까지 함께 달리는 ‘가족 스포츠’가 됐다.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매일 보았던 불암산이 멋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당시는 트레일러닝이 큰 인기를 끌 때가 아니었어요. 아는 동생이 말하기에 여기저기 검색했는데 정보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 때 사막마라톤 등 오지 마라톤 전문가인 유지성 대장이 개최하는 코리아 50K가 눈에 들어왔고 신청해서 달렸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완주하는 순간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좌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어요.” 황 씨는 남편 따라 코리아 50K에 구경 온 아내 김미정 씨(39)에게도 트레일러닝을 권유했다. 한 달 뒤 열린 강릉 TNF(노스페이스) 100 대회 10km를 함께 달렸다. 황 씨가 코리아 50K에 처음 출전 할 때 4살이던 아들 지후 군을 1km 유아부문에 출전시키기도 했다. 동서와 처제 가족도 끌어 들였고 지금은 7살인 딸 지아 양까지 함께 산을 달리게 됐다. “산을 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달려보니 너무 좋았어요. 다소 위험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자연 속에서 나무와 꽃, 돌, 바위, 개울 등을 보며 달리는 기분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그 힘겨운 과정을 지나 결승선에 들어올 때 느끼는 쾌감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 남편이 주로 달리고 아내는 가끔 남편과 함께 달린다고 했다. 아이들과는 연중행사로 진행하고 있다고. 황 씨는 2017년 트레일러닝 10km 3회를 완주한 뒤 바로 50km 레이스를 준비했다. “10km를 달리고 들어와서 놀고 있으면 50km에 출전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50km는 새벽에 출발시켜 10km 끝날 때쯤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아주 평범한 아저씨들이 힘들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그 무렵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감과 패배감에 싸여 있었거든요. 선수도 아닌 아저씨들이 해냈다는 성취감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사실 산을 50km 달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50km는 쉽지 않았다. 2017년 가을부터 준비해 2018년 4월 열린 코리아 50K에 출전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당시 코스가 역대 최고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열심히 연습해 나갔는데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골인을 했더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그 성취감이란…. 무엇보다 거의 꼴찌로 들어왔는데 미리 완주한 사람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박수치며 응원하는 모습에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50km를 완주한 뒤 몸 컨디션이 올라왔다. 그는 “우리나라 50km를 모두 완주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상위권 입상은 힘들지만 완주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50km를 완주하는 게 너무 힘드니 몸을 더 잘 만들어야 했다”고 했다. 아내 김 씨도 2018년 5월 강릉 TNF100 대회에서 50km를 완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50km 완주였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 대회를 나가거나 어려운 산행을 하면 너무 힘들고 아플 때도 있어서 다신 안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 또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황 씨는 2019년엔 트레일러닝 100km를 완주했다. 50km를 자주 완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100km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50km는 10번 정도 완주했다. “50km 하다보니 솔직히 속도를 내 기록을 단축하는 것은 힘들다고 봤어요. 전 속칭 산을 잘 타는 ‘선수’도 아니고…. 그 때 100km를 달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천천히 길게 달릴 수는 있었으니까요.” 2019년 5월 TNF 100km 대회. 사실상 110km를 달리는 대회였다. 제한시간 27시간 30분. 황 씨는 제한시간 약 1시간 전에 완주했다. “TNF가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첫 대회로 좋다고 판단해 출전했죠. 거의 뒤에서 90%로 들어왔습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졸려서 힘들었어요. 달리지 못하고 계속 걸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아침 해가 뜨고 오전 10시쯤 들어오는데…. 꼴찌에게도 박수를 쳐주며 응원해주는 참가자와 대회 관계자들 때문에 피곤이 한 방에 날아갔어요.” 황 씨는 트레일러닝을 시작하며 평소 하지 않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는 “트레일러닝 정보가 없다보니 SNS 등에서 얻어야 했다. 정보를 얻으며 내가 훈련하는 모습 사진, 대회 출전 사진을 올렸더니 응원과 조언이 이어졌다. SNS로 사귀어 함께 달리는 친구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달리기는 하지만 마라톤을 즐기진 않는다. 그는 “마라톤은 트레일러닝을 하기 위한 연습을 위해서만 한다. 10km와 하프까지는 달려봤지만 풀코스는 달려보지 않았다. 산을 달리는 게 좋다”고 했다. 마라톤 10km는 45분에 달리만 트레일러닝 10km는 코스에 따라 1시간에서 1시간 넘게 걸린다. 50km는 보통 7~8시간, 힘든 코스는 10시간 정도에 주파한다. “사실 산을 달린다고 하지만 달리는 구간은 10km 부문을 빼면 전체의 10% 미만이죠. 거의 대부분을 걷습니다. 어떻게 산을 계속 달릴 수 있나요? 기계도 아니고. 잘 달리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전 그렇게 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면 됩니다.” 산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레일러닝이 산을 달리기 때문에 극한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데 전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달리는 스포츠입니다. 제가 아내와 아이들까지 함께 달리는 이유입니다. 물론 힘들고 위험하지만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달릴 땐 10km에 참가한다. 아이들을 위한 대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반응은 어떨까? “솔직히 트레일러닝 하러 가자고 하면 처음엔 안 간다고 해요. 그럼 살살 달래면서 설득하죠. ‘완주하면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줄 거야…’ ‘산을 10km 완주한 애들 있니?’ 그런데 이렇게 힘겹게 데리고 갔는데 완주하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특히 완주 메달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까지 전 각 부분 약 30개, 아내는 5~6개, 아들은 3개, 딸은 1개의 메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딸과는 지난해 7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트레일러닝 대회 때 처음 완주했다. “매번 가족과 함께 달리지는 못하지만 가족 모두가 달릴 때 가장 행복해요. 천천히 걸으면서 꽃과 나무를 보고 만지기도 하고…. 완주하면 힘든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평생 가족이 함께 달리고 싶습니다.” 황 씨는 아내와 새벽에 함께 달리며 몸을 만들고 있다. 집에서 고정식자전거를 타거나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등 홈 트레이닝도 한다. 주말엔 긴 산행을 한다. 아이들과 한 한 달에 1,2번 산을 오르고 있다. 황 씨는 가능한 오랫동안 트레일러닝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실 트레일러닝을 천천히 준비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속칭 꽂혀서 시작해 처음에 무리를 많이 했어요. 몸이 준비도 되기 전에 심한 운동을 해서 잔 부상도 많았어요. 운동할 시간이 없어 한 번 할 때 몰아서 했죠. 당연히 역효과가 났죠. 즐기는 게 최고입니다. 요즘엔 저강도로 즐기면서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칭과 필라테스 등으로 회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회복이 잘 돼야 산도 잘 달리더라고요.” 도전도 계속된다. 그는 10월 말에 열리는 영남알프스 하이트레일 나인피크 울주에 도전한다. 이 대회는 울산 울주 영남 알프스 산 9개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로 국내에서 가장 힘든 대회다. 간월산 (1069m) 고헌산(1034m) 문복산(1047m)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89m) 영축산(1081m) 신불산(1159m). 상승 등반 고도만 9000m에 가깝다. 총 거리만 105km. “올 5월엔 서울 둘레길 100마일(약 160km) 대회에 출전했어요. 정식 대회는 아니고 10명이 출전해 3명이 완주했는데 제가 3등을 했어요. 35시간 30분 만에 들어왔죠. 1,2등보다 13시간 뒤에 들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주면서 박수를 보냈죠. 트레일러닝 하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것이죠. 그 고생 아니까. 그런데 그 고생을 해야 즐거워요.”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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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의 보디빌더 “근육 키우면 젊음도 돌아와…늦은 때는 없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항공사와 건설사, 정부기관 등 해외주재원으로만 20년 넘게 일한 조우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동협의회 부회장(60)은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진 뒤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은퇴할 나이도 됐고 100세 시대를 맞아 향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아들 현우 씨(26·연세대 체육과 대학원)가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대회에도 출전하라고 조언했다. 미스터 연세 출신으로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한 현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생활화했어요. 몸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죠. 그래서 새로운 직업을 택한다면 보디빌딩 지도자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2019년 아들이 미스터 연세를 준비하고 결국 우승까지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보디빌딩 분야에 관심을 가졌어요. 저도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꾸준히 했거든요. 대학 때부터 철봉 등으로 몸 만드는 것을 좋아했죠. 복싱과 태권도, 유도, 검도도 했고 팔굽혀펴기, 스쾃 등 체중을 이용한 근육운동(보디 웨이트)을 평생 해왔습니다. 그래서 몸 하나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조 부회장은 지난해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필기와 실기, 현장 연수로 이뤄진 과정을 단번에 통과했다. 그리고 올 3월부터 몸을 제대로 만들기 시작해 5월말 열린 고양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와 피지크에서 우승했고, 마스터스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국제보디빌딩연맹 마스터 자격증을 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운동 및 식단까지 관리해주는 멘토 역할을 했다. 현우 씨는 “아버지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깜짝 놀랐어요. 운동은 제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결과는 아버지가 더 좋았어요”라고 했다. 조 부회장은 “아들의 권유에 환갑 기념으로 대회에 나갔는데 첫 대회부터 우승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기쁜 것도 있었지만 성취감이 대단했다”고 했다. 그는 “사실 보디빌딩 기본 포즈도 어떻게 잡아야하는 지도 하루 전날 동영상 보고 배웠고, 아들이 거들어줘서 간신히 소화했다. 대회 관계자들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국내 무대에서 알려지지 않다 갑자기 등장해 우승까지 해 다들 놀랐다”고 말했다. 대회 출전은 개인적인 동기부여이자 자극제 역할을 했다. 평범한 사람도 도전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사실 아내가 ‘나이 들어서 뭐하는 짓이냐’며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도전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6월 말 열린 월드스포츠탑모델쇼(WSTMS) 미디엄(키 177cm 이하) 부분에서 우승했다. 9월 12일엔 WSTMS 우승자들이 벌인 대회에서 전 연령대를 통틀어 남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10월엔 미스터코리아 서울선발전, 12월엔 미스터코리아 대회까지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 대회에도 나갈 생각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회 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땐 웨이트트레이닝을 주 6일 하루 1시간 30분 씩 한다. 3일 하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몸을 3분할로 나누어 한다. 하루씩 하체, 가슴과 어깨, 등과 코어로 나눠서 운동한다. 격일로 유산소운동(1시간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을 해 지방도 태운다. 식단관리도 중요하다. 조 부회장은 ‘지속가능한 운동’을 강조하며 하루 3식을 4식으로 나눠 2식은 단백질과 채소 위주, 2식은 탄수화물 등이 포함 된 일반식을 한다. 그는 “근육을 만들 때 탄수화물을 안 먹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일시적으론 가능하지만 평생 운동을 하려면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은 물론 식단 관리까지 많은 것을 먼저 시작한 아들에게서 배웠어요. 전 기본적으로 체중을 활용한 근육운동에 집중했었습니다. 기구는 바벨 등 기본적인 것만 조금씩 활용했죠. 그런데 다양한 기구들을 쓰니 원하는 부위 근육을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디 웨이트와 기구 활용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조 부회장은 평소에도 몸이 좋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하면서는 ‘조각’처럼 선명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근육의 볼륨만 있었다면 이젠 선명도가 높아져 사람들이 선호하는 몸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달라진 몸에 만족한다”고 했다. 조 부회장과 아들 현우 씨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주로 아버지가 배우지만 아들도 가슴 등 특정 부위가 잘 발달한 아버지의 운동 방식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조 부회장은 “탄수화물도 적절하게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아들에게서 배웠다. 실제로 운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탄수화물도 적절하게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5세 때부터 해외 생활한 현우 씨는 만능 스포츠인이었다. 육상 단거리를 비롯해 수영, 축구, 럭비까지 섭렵했다. 연세대 럭비 선수였던 그는 20세 이하 럭비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했다. 70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해외 전문가로 관광학 박사 학위까지 딴 조 부회장은 요즘 사는 게 즐겁다. 그는 “은퇴하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이 많았다. 평생 내가 좋아했던 운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트레이너로 사는 게 행복하다. 즐기며 돈도 번다. 일석삼조의 직업이다”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 PT가 낮엔 띄엄띄엄 있다가 밤 10시에 끝나지만 하루가 즐겁다. PT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개인 운동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중요합니다. 4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이 1%씩 빠집니다. 근육이 없으면 낙상 가능성이 높고 뼈도 쉽게 부러지게 됩니다. 근육을 키우면 젊음도 돌아옵니다. 근육=젊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절대 늦었다는 때는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키우면 충분히 탄탄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조 부회장은 100세 시대를 맞아 자신의 운동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시니어를 위한 전문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목동 에스짐파리공원점과 인근 피트니스센터에서 프리랜서 PT(퍼스널 트레이닝)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60대 전 연령층을 지도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자원봉사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인체 해부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체는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습니다. 지리탐구 하듯 인체를 탐구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조 부회장은 운동은 지속가능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나이 들면 운동을 싫든 좋든 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운동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무슨 운동이든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이 적응할 수 있는 만큼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의욕 넘친다고 하루에 너무 세게 하면 역효과만 납니다. 운동을 오래 지속하려면 즐겨야 합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 골병 든 사람 많습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하면 우리 몸은 서서히 탄탄하게 바뀝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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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에 나간 첫 대회서 우승… 헬스 지도자로 인생 2막”[양종구의 100세 건강]

    조우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동협의회 부회장(60)은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진 뒤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온 뒤 아들 현우 씨(26·연세대 체육과 대학원)의 조언에 따라 웨이트트레이닝 트레이너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스터 연세 출신으로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한 현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운동하시는 아버지의 몸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 획득과 대회 출전을 권유했는데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깜짝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지난해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올 3월부터 몸을 제대로 만들기 시작해 5월 말 열린 고양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와 피지크에서 우승했고, 마스터스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국제보디빌딩연맹 마스터 자격증을 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운동 및 식단까지 관리해주는 멘토 역할을 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철봉 등으로 몸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복싱과 태권도, 유도, 검도도 했고 팔굽혀펴기, 스쾃 등 체중을 이용한 근육운동(보디 웨이트)을 평생 해왔다. 전문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몸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환갑 기념으로 대회에 나갔는데 첫 대회부터 우승할 줄은 몰랐다.” 항공사와 건설사, 정부기관 등 해외주재원으로만 20년 넘게 일한 조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새 인생을 준비했다. 평생 운동을 즐겼고 아들이 2019년 미스터 연세를 준비하고 우승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보디빌딩 지도자에 관심이 많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자신의 운동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는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시니어를 위한 전문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목동 에스짐파리공원점과 인근 피트니스센터에서 프리랜서 PT(퍼스널 트레이닝)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60대 전 연령층을 지도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자원봉사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대회 출전은 개인적인 동기부여이자 자극제이다. 평범한 사람도 도전해 열정을 가지고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사실 아내가 ‘나이 들어서 뭐하는 짓이냐’며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도전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6월 말 열린 월드스포츠탑모델쇼(WSTMS) 미디엄(키 177cm 이하) 부문에서 우승했다. 12일엔 WSTMS 우승자들이 벌인 대회에서 전 연령대를 통틀어 남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10월엔 미스터코리아 서울선발전, 12월엔 미스터코리아 대회까지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 대회에도 나갈 생각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회 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땐 웨이트트레이닝을 주 6일 하루 1시간 30분씩 한다. 3일 하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몸을 3분할로 나누어 한다. 하루씩 하체, 가슴과 어깨, 등과 코어로 나눠서 운동한다. 격일로 유산소운동(1시간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을 해 지방도 태운다. 식단관리도 중요하다. 조 부회장은 ‘지속가능한 운동’을 강조하며 하루 3식을 4식으로 나눠 2식은 단백질과 채소 위주, 2식은 탄수화물 등이 포함된 일반식을 한다. 그는 “근육을 만들 때 탄수화물을 안 먹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일시적으론 가능하지만 평생 운동을 하려면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70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해외 전문가로 관광학 박사 학위까지 딴 조 부회장은 요즘 사는 게 즐겁다. 그는 “은퇴하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이 많았다. 평생 내가 좋아했던 운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트레이너로 사는 게 행복하다. 즐기며 돈도 번다. 일석삼조의 직업이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노령일수록 근육이 중요하다. 4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이 1%씩 빠진다. 근육이 없으면 낙상 가능성이 높고 뼈도 쉽게 부러진다. 근육을 키우면 젊음도 돌아온다. 절대 늦었다는 때는 없다. 나이가 많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키우면 충분히 탄탄한 몸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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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마음 일으켜 세운 운동…보디 프로필 덕에 자존감 올라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뒤 마음이 무너졌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결국 나를 나락으로 이끌었고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더 이상 이런 상태를 지속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심리상담까지 받았다. 그 때부터 몸을 움직였다.’ 오우진 초당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36)는 무너진 마음을 몸으로 일으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순간 이러다 완전히 망가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찾아왔어요.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몸을 써서라도 과거를 떨치려고 노력했죠. 몸이 피곤하면 생각이 좀 덜해지잖아요. 정신적 고통을 나누는 셈 치고 몸을 많이 움직였습니다. 비행이 없는 날은 하루 6시간 이상 몸을 움직였어요. 필라테스와 요가, 그리고 피트니스. 몸이 힘드니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잠도 자기 시작했죠.” 대한항공 승무원이던 오 교수는 2016년 인간관계로 인한 상실감에 한동안 심리적 고통 속에 살아야 했지만 운동을 통해 잘 극복했다. “상실감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의 반대쪽에 성취감을 높여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 선택한 게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효과적이었죠.” 올 3월 초당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오 교수는 승무원으로 일하면서부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고 외모도 관리하기 위해 요가와 필라테스, 피트니스는 계속 해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체계적이고 집중해서 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순간 보디 프로필(Body Profile)을 찍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무너진 정신을 다잡기 위해 뭔가 제가 해낼 수 있는 결과물이 필요했어요. 인간관계, 사회 및 회사 생활에서는 제가 마음먹는다고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잖아요. 거기서 통제력을 잃고 무력감을 느끼죠. 제 몸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몸을 드러내놓고 사진을 찍으려면 몸을 잘 만들어야 하죠. 개인 노력도 필요합니다.” 보디 프로필은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몸을 만든 다음, 몸매를 돋보이게 찍는 프로필 사진을 말한다. 2017년.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만들어 실행했고, 비행을 하면서도 하루 2시간이상 운동에 매달렸다. 운동은 필라테스와 요가 등 해오던 것을 함께 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의 비중을 높였다. 등과 가슴, 어깨, 팔에 하체 운동까지 골고루 했다. 어릴 때부터 상체에 비해 하체가 강했다. 그래서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해 상체 운동을 등한시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기 위해 상체 운동도 할 수 밖에 없었다. 벤치프레스와 푸시업. 처음엔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은 벤치프레스를 30kg 무게로 하고, 푸시업은 10개씩 3세트를 가볍게 한다. 3주가 지나자 체중이 1kg 늘었다. 골격근량이 1.7kg늘고 체지방량이 2kg 줄었다. 그는 “내 몸이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건강해져 보였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운동 시작 2개월 뒤 보디프로필을 찍었다. 만족스러웠다. “제 노력과 성취감을 사진에 담고 싶었죠. 두 달 동안 비행을 하면서도 닭가슴살(혹은 삶은 달걀)과, 토마토, 고구마만 먹으면서 운동을 했어요.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저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게 사진이란 결과물로 나왔죠. 보디 프로필은 모든 게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최소한의 안간힘이었습니다.” 보디 프로필을 찍고 난 뒤 운동은 그의 삶이 됐다. “성취감을 얻었죠. 제가 목표로 한 것을 마무리 지었다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먹는 대로, 운동하는 대로 결과물은 나오게 돼 있죠. 작지만 이 성취감에 자존감이 올라갔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서 정신력도 키울 수 있었다. “운동은 한계와의 싸움이죠. 예를 들어 이너싸이(Inner Thigh) 머신을 이용해 내전근 운동을 할 때입니다. 처음엔 20kg으로 20회 1세트를 한 뒤 5kg씩 올려 1세트씩 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35kg까지 올려 4세트를 하다보면 15회 넘어 더 이상 두 다리를 모을 힘이 없어져요. 그래도 트레이너의 ‘할 수 있다’는 소리에 끝까지 다 해냅니다. 일종의 ‘강제 반복’입니다. 제가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뇌는 그만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거부하고 반복함으로써 뇌를 굴복시키게 됩니다. 안 될 것만 같았는데 해낸 것을 뇌는 인지하고 몸은 기억합니다. 체력도 정신력도 커지는 것이죠. 트레이너가 ‘할 수 있다’고 옆에서 거들어 주지만 막연히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게 아니라 제 몸으로 경험하며 증명해내면서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운동이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결과물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특히 2007년 존 레이티 하버드메디컬스쿨 교수가 쓴 ‘불꽃: 운동과 뇌에 대한 혁명적인 신과학’(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이란 책이 나오면서 운동과 뇌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됐다. ‘운동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운동은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치매를 예방한다.’ ‘운동은 정신력을 키운다.’ …. 최근 보디 프로필을 찍는 게 일종의 트렌드가 됐고 일부에선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나치게 몸을 만들려다가 오히려 몸을 망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오 교수는 “몸을 망치면서까지 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보디 프로필을 단순히 자기 과시용으로 폄훼할 필요는 없다. 보디 프로필이란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얻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보디 프로필을 찍는 과정에서 몸도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얻은 성취감, 자신감, 자기효능감을 통해 제가 원하던 튼튼한 마음도 만들었어요. 운동은 몸과 마음의 근력을 함께 향상시킵니다. 운동을 하면서 제가 중심이 돼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비로소 제 삶의 주체자가 된 것입니다.” 오 교수는 특히 젊은이들이 보디 프로필을 찍는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왜 최근 젊은 친구들이 보디 프로필을 찍고 싶어 하는 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이 힘들어지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작은 성취감이라도 스스로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메시지를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을 조금 헤아려봅니다. 젊은이들이 보디 프로필을 통해 자기효능감도 올리고 자존감도 높이면서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 교수는 2019년에도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는 “보디 프로필 촬영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고스란히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고, 일터에서 그리고 삶에서 나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고 했다. 그는 “운동은 변수가 적다. 투자한 만큼 결과로 나온다. 그만큼 통제력을 느낀다. 사회생활 등에서 느낀 무력감을 운동을 하면서 키운 통제력으로 상쇄 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만간 보디 프로필을 다시 한번 찍을 예정이다. 오 교수는 운동에 매료돼 생활체육지도자와 필라테스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탓에 항공사에서 5개월 쉬고 1개월 근무하는 순환근무 체제 때 쉬는 동안 그는 생활체육 지도자로 활동했다. 오 교수는 지난해 8월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에서 ‘항공사 객실승무원의 생활체육 참여 정도가 직무성과에 미치는 영향: 신체적 자기지각과 자기효능감의 이중매개효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운동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것이다. “운동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겁니다. 이젠 운동을 평생 제 삶의 근간에 두고 살 겁니다. 지금도 뭔가 잘 안 풀리면 바로 운동하러 갑니다.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도 운동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길 바랍니다.” 오 교수는 마음이 무너진 뒤 운동으로 다시 일어선 경험담을 ‘바디 프로필로 올린 자존감, 마인드 & 바디 밸런스’란 책으로 엮었다. 전남 무안 집을 홈트레이닝 할 수 있게 꾸미고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는 그는 ‘마바밸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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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통증에 계단도 못 올랐는데…‘제대혈 줄기세포 수술’ 뒤 축구공도 ‘뻥’[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앗, 왜 그러지.” ‘축구광’ 황덕진 씨는 63세이던 2013년 오른쪽 무릎에 큰 통증을 느꼈다. 계단을 못 오를 정도였다. 공을 차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평생 이런 일이 없었다. 여기저기 지방 병원을 찾았지만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 “어느 병원에선 전혀 문제없으니 공을 차라고 했고, 어느 병원에선 절대 축구하지 말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국내에서 제대혈 줄기세포 무릎수술을 받는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히딩크 감독이 수술을 받으면 걸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언론 보도를 본 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을 찾았습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다 닳은 상태였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수술하면 축구할 수 있나요?’ 송 원장이 ‘6개월 뒤 축구할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4년 3월이었다. 제대혈 줄기세포 수술은 갓 태어난 아이 탯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아픈 무릎에 이식시킨다. 치과에서 충치를 제거하듯 없어지거나 찢어진 연골을 깨끗하게 걷어내고 무릎 골수에 구멍을 내서 줄기세포를 이식시킨다. 그럼 연골이 다시 생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근원세포인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체조직을 치유,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2014년 1월 수술한 히딩크 감독은 그해 말부터 카트 및 지팡이에 의지 하지 않고 골프를 칠 정도로 회복됐다. 황 씨는 수술하고 회복한 뒤 병원에서 제시한 레그 익스텐션과 레그 컬 등 무릎 주변 근육 강화 훈련에 집중했다. 경남 통영의 축구동호회인 통영 FC 소속인 그는 “축구를 하기 위해 재활전문가까지 찾았다. 재활을 잘 해야 다시 공을 찰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공을 드리블하며 좌우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무릎 주변 근육이 탄탄하지 않으면 통증이 올 것 같았다”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과거 MRI(자기공명촬영)가 없을 땐 허벅지 근육이 빠지면 관절염으로 진단했다. 연골이 닳아 관절염이 생기면 근육 생성이 안 되기 때문이다. 황 씨는 연골이 재생되면서 다시 근육을 키워 수술 1년 뒤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근육운동을 병행하며 주 2회 공을 찼다. “제에게 축구는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릴 때 논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며 시간을 보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축구 덕에 회사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 축구를 못한다는 것은 저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사관으로 군입대한 그는 한동안 축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를 마치고 대우그룹이 인수한 신아조선에 둥지를 튼 그는 사내 체육대회 때 축구선수로 참여하면서 다시 축구와 연을 맺게 됐다. “1977년이었습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사내 체육대회를 했는데 제가 축구선수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풀백이었는데 오버래핑까지 하고 골까지 넣으니 뒤집어졌죠. 당시 조기축구에 가입해 매일 공을 찼습니다.” 축구동호회에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주말엔 전국을 돌아다니며 축구를 했다. 생활체육 축구계에서는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르면 ‘간첩’으로 불릴 정도였다.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출신인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속한 로얄 FC 등 전국 유명 축구동호회와 친선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황 씨는 사실 술 때문에 무릎이 고장 났다. 그는 “회사에 다닐 때 영업부에 있다보니 술을 자주 마셨다. 매일 조기축구를 했는데 땀을 쫙 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고 했다. 그는 “축구하기 전날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축구하면서 땀을 쫙 빼면 되니까”라고 했다. 축구를 하고 나면 다시 술을 마셨다. 대부분 동호회축구 회원들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술을 마신 다음날 축구를 하면 피곤한 상태에서 무릎을 과하게 사용하게 돼 연골에 무리를 준다. 무릎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젊었을 때는 허벅지 및 무릎 주변 근육이 강해 버티지만 나이 들면서 근육이 약해지면서 연골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관절염이 오게 된다”고 한다. 축구를 오래 하기 위해선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시작한 황 씨는 평생 축구를 하며 이를 인식했기에 재활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이다. “솔직히 줄기세포 수술이 아니었다면 제가 축구를 다시 하지 못했을 겁니다. 연골이 새롭게 자랐기 때문에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송준섭 원장 때문에 제가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수술도 중요하고 재활도 중요합니다. 전 축구를 다시 하기 위해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송 원장은 “줄기세포 수술의 목표가 모든 운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연골을 재생시킴으로써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수술 이후 축구 등 특정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주변 근육을 키우는 노력은 개인적으로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히딩크 감독뿐만 아니라 ‘천하장사’ 장성우도 수술해 주목을 받았다. 고교시절 장성우는 ‘박리성 골관절염’으로 유명 대학병원에서 은퇴를 권유해 씨름을 포기할 뻔했다. 박리성 골관절염은 치료하지 않으면 지속적 통증과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박리성 골관절염은 퇴행성관절염으로 조기 진행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나이 들어 자칫 걷지도 못할 수도 있다. 운동을 해야 하는 선수에겐 치명적인 질병이다. 하지만 정성우는 제대혈 줄기세포 수술을 포함해 두 번에 걸친 수술 끝에 연골을 재생시켜 씨름을 계속할 수 있었고 천하장사까지 올랐다. 송 원장은 “무릎 연골 줄기세포 치료법은 획기적이다. 그동안 60세 이전에 퇴행성관절염이 오면 보통 65세까지 기다렸다 인공관절을 하라고 했다. 인공관절의 수명이 15년에서 20년이기 때문이다. 50대에 퇴행성관절염이 오면 10년 넘게 고생하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줄기세포 치료법은 나이에 상관이 없다. 젊을수록 연골 재생이 더 잘 된다”고 말했다. 수술은 65세 이전까지는 언제든 해도 완치율이 높다. 70세 이후는 수술 후 회복기간이 길어진다. 황 씨는 2년 3개월 전에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하다 허리를 삐끗했는데 무리하게 축구를 강행한 뒤 요추 4,5번 사이 디스크가 돌출한 것이다.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바로 수술했다. 그는 “병원에서 축구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축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고 했다. 수술한 뒤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황 씨는 “2년 넘게 허리 및 다리 근육 키우는 데 집중했다. 무릎 수술한 뒤 했듯 허리 주변 근력을 키워야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황 씨는 요즘 오전엔 피트니스센터에서 상하체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오후엔 걷고 달린다. 인조잔디축구장을 한바퀴씩 걷고 달리기를 번갈아 24바퀴를 달린다. 약 9km다. 그는 “축구를 하기 위해 마치 신앙처럼 운동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를 다시 시작한 지 약 1개월이 된 그는 통영 FC가 주 2회 공을 차는데 이젠 주 1회만 참가하고 있다. 좋아하던 술도 꼭 필요할 경우 월 1회로 줄였다. 황 씨는 “주위에서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무릎에 이어 허리 수술까지 하고 축구를 하고 있으니…. 그래서 소문이 다 났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줄기세포 수술 받고 축구하고 있다고. 이 나이에 이렇게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젠 절대 무리하지 않고 몸 상태 봐가며 천천히 공을 찰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관절염이 올 경우 무릎 수술이 중요하다. 그와 더불어 근육운동으로 꾸준히 몸 관리해야 평생 공을 찰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통영=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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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무릎 관절염 ‘아차’ 했지만… 수술-재활 덕 70세에도 축구”

    한국 나이 70세인 황덕진 씨는 2013년 오른쪽 무릎이 아파 평생 즐기던 축구를 못하게 됐다. 계단을 못 올라갈 정도로 통증이 심해 공을 차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2014년 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국내에서 제대혈 줄기세포 무릎수술을 받는다는 언론 보도를 본 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을 찾았다. “검진을 했더니 퇴행성관절염으로 연골이 다 닳은 상태였다. 송 원장에게 수술을 하면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바로 수술했다.” 2014년 3월이었다. 제대혈 줄기세포 수술은 갓 태어난 아이 탯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아픈 무릎에 이식시킨다. 치과에서 충치를 제거하듯 없어지거나 찢어진 연골을 깨끗하게 걷어내고 무릎 골수에 구멍을 내서 줄기세포를 이식시킨다. 그럼 연골이 다시 생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근원세포인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체조직을 치유,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황 씨는 수술하고 회복한 뒤 병원에서 제시한 무릎 주변 근육 강화 훈련에 집중했다. 경남 통영의 축구동호회인 통영 FC 소속인 그는 “축구를 하기 위해 재활전문가까지 찾았다. 재활을 잘해야 다시 공을 찰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공을 드리블하며 좌우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무릎 주변 근육이 탄탄하지 않으면 통증이 올 것 같았다”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과거 자기공명영상(MRI)이 없을 땐 허벅지 근육이 빠지면 관절염으로 진단했다. 연골이 닳아 관절염이 생기면 근육 생성이 안 되기 때문이다. 황 씨는 연골이 재생되면서 다시 근육을 키워 수술 1년 뒤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근육운동을 병행하며 주 2회 공을 찼다. 황 씨는 2년 3개월 전에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을 하다 허리를 삐끗했는데 무리하게 축구를 강행한 뒤 요추 4, 5번 사이 디스크가 돌출한 것이다.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바로 수술했다. 그는 “병원에서 축구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축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고 했다. 수술한 뒤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황 씨는 “2년 넘게 허리 및 다리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허리 주변 근력을 키워야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황 씨는 사실 술 때문에 무릎이 고장 났다. 그는 “대우그룹산하 신아조선에 다닐 때 영업부에 있었다. 술을 자주 마셨다. 매일 조기축구를 하며 땀을 쫙 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고 했다. 그는 “축구하기 전날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축구하면서 땀을 쫙 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축구를 한 뒤 다시 술을 마셨다. 대부분 축구 동호회 회원들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축구를 하면 피곤한 상태에서 무릎을 과하게 사용하게 돼 연골에 무리를 준다. 무릎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젊었을 때는 허벅지 및 무릎 주변 근육이 강해 버티지만 나이 들면서 근육이 약해지면서 연골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관절염이 오게 된다”고 한다. 축구를 오래 하기 위해선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시작한 황 씨는 평생 축구를 하며 이를 인식했기에 재활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이다. 황 씨는 요즘 오전엔 피트니스센터에서 상체와 하체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오후엔 걷고 달린다. 인조잔디축구장을 한 바퀴씩 걷고 달리기를 번갈아 24바퀴를 달린다. 약 9km다. 그는 “축구를 하기 위해 마치 신앙처럼 운동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를 다시 시작한 지 약 1개월이 된 그는 통영 FC가 주 2회 공을 차는데 이젠 주 1회만 참가하고 있다. 좋아하던 술도 꼭 필요할 경우 월 1회로 줄였다. 황 씨는 “주변에서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무릎에 이어 허리 수술까지 하고 축구를 하고 있으니…. 하지만 축구가 좋은 것을 어떡하나?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젠 절대 무리하지 않고 몸 상태 봐가며 천천히 공을 찰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관절염이 올 경우 무릎 수술도 잘해야 하지만 근육운동으로 꾸준히 몸을 관리해야 평생 공을 찰 수 있다”고 강조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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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에 빠진 남자 “자료수집에 20억…100살까지 공 차는게 목표”[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축구 자료수집가 이재형 씨(60)는 매주 공을 차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일요일인 4일에도 충북 제천에서 서울 동대문구60대축구단 상비군 소속으로 제천60대 팀하고 경기를 했다. “제가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났어요. 집 뒤에 공터가 있었는데 동네 형 동생들과 매일 공을 차면서 놀았어요. 성북초교 다닐 때 아마추어 축구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죠. 인근에 홍익중과 경신중이 있었죠. 당시엔 속칭 뺑뺑이(추첨)로 중학교에 가는데 축구명문 경신중을 갔더라면 전 축구선수가 됐을 겁니다.” 이 씨는 홍익중을 가면서 축구를 사실상 그만 두게 됐다. 축구를 하지 못해 우울했다. 하교 때 매번 경신중 축구부 훈련 및 경기 모습을 1시간씩 보고 집으로 갔다. 축구를 못하는 대신,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 자료를 수집하게 됐다.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 다른 것에 눈을 뜨게 됐죠. 축구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엔 축구 저금통, 우표 등을 수집했습니다.” 그가 다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서울 숭인동 명우축구회를 만나면서다. 당시 조기축구회는 30대 청년부와 40대 장년부가 있었다. 27세에 가입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경기를 뛰지는 못했고 매일 훈련만 했다. “제가 열심히 했더니 조기회 홍보실장으로 임명했어요. 제가 대한민국 최초로 조기축구 신문도 만들었죠. 12페이지짜리 명우소식이란 신문을 1000부 찍어 회원들은 물론 상태팀 선수들에게 돌렸습니다.” 이 씨는 30대 때 종로구 대표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종로구에 15개 동호회 팀이 있었는데 전국대회를 나가려면 대표를 선발해야 했다. 그는 요즘 4개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동대문구60대축구단 상비군을 비롯해 용두축구회, 조이(JOY)축구단, 그리고 성북초교 선후축구회(성북초교 선배 후배 축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이축구단은 과거 축구선수 출신들 모임이다. 박경훈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비롯해 이태호 강동대 교수, 이흥실 김천 상무 단장, 전 할렐루야 선수 출신 김정희 씨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씨는 한 때 국가대표 출신들이 활약한 영서축구단도 만들었다. 영서축구단은 K4 서울 유나이티드로 바뀌었다. 이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집합이 금지되는 바람에 수도권에서 축구를 못해 지방 원정에 가는 팀을 따라가서 매주 축구를 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오기 전에는 주 3회 축구를 했어요. 주중에 1회, 토요일과 일요일. 지금은 주말에 1번밖에 축구를 못해 안타깝습니다.” 축구가 왜 좋을까? “축구를 하고 나면 보약을 몇 재는 먹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몸도 좋아지고 또 성취감도 있습니다. 제가 오른쪽 날개를 보는데 매 경기 골을 터뜨립니다. 공이 제 발끝을 떠나 골네트에 꽂히는 순간,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제가 조기축구 회원으로 평생 터뜨린 골이 3000골 정도 됩니다. 축구황제 펠레가 1200여골 넣었으니 제가 펠레보다 많이 넣었습니다. ㅎㅎ.” 매 경기 최소 2골을 터뜨린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선수 생활했던 감각이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서울 집(성북구 보문동) 근처 낙산공원을 1시간씩 달린다. 체력이 없으면 축구를 못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하체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조기회 룰에 따라 전후반 25분을 소화하려면 심폐 지구력도 있어야 한다. 그는 축구를 하면서 가끔 걸리는 감기 외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이 씨는 1996년 한국이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자료 수집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취미가 직업이 된 것이다. 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1997년 아크리스백화점에서 소장하고 있던 축구자료를 전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기념품 수준의 것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유물’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됐다.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 안정환의 골든 볼, 스페인과의 8강 승부차기 때 마지막 키커 홍명보가 찬 공을 각각 에콰도르와 이집트까지 날아가서 찾아왔다. 45개국을 돌아다니며 4만여 점을 모았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료 구입비와 여행비에 썼다. 30년 넘게 약 20억 원을 썼는데도 아깝지 않다. 코로나 19가 사라지면 다시 축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해외로 떠날 계획이다. 사재를 털어 축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떠나지만 새신랑이 신혼여행 가듯 행복하기만 하단다. 참고로 그는 아직 솔로다. “전 100살까지 공을 차는 게 목표입니다. 축구를 하려면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소통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골을 차면 서로 몸을 부딪쳐야 합니다. 그 재미도 좋습니다. 그렇게 공을 차다보면 심신이 건강해집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그만 둘 순 없죠.” 그는 축구자료 수집가란 타이틀도 명예로 생각한다. “축구선수가 됐다면 축구자료를 수집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자료수집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축구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축구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는 축구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다.제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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