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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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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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정신까지 건강하게 해준 태권도, 내 인생의 버팀목”

    곽영훈 세계시민기구(WCO) 대표(78)는 10대 초반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팔순을 눈앞에 둔 지금도 도장에서 품세와 발차기, 주먹지르기, 격파로 수련하고 있다. 그는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심신의 건강을 동시에 끌어올리기에는 태권도가 제격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청도관 본관에서 처음 태권도를 접했다. 집 바로 옆이 청도관이었다. 형이 먼저 시작하자 따라 배웠다. 곽 대표는 “그땐 특별하게 즐길 스포츠가 없었다. 태권도는 운동이 되기도 했지만 사범을 존경하는 자세로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히며 도(道)를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엔 개인 수양으로 태권도를 했다. 그는 “사범들은 내게 호국정신과 호연지기를 불어넣었다. 누구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수양하는 것이다. 그 정신이 좋았다”고 했다. 곽 대표는 무엇보다 태권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도 배웠다. “태권도 품세든 발차기든 내 머릿속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에야 행동으로 나타난다. 순간적인 판단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다.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다. 마음을 먹어도 결국 몸으로 실행해야 뭐든 할 수 있다. 생각만 가지고는 이뤄지는 게 없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다. 태권도를 통해 그것을 체득했다.” 평생 태권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건축학), 하버드대(정책학) 유학 시절에는 체육관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세계적인 수재들을 직접 지도했다. 1960년대 초 한국 학생이 일본 혹은 중국 사람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태권도로 한국을 알렸다. 태권도는 그에게 좋은 기회도 가져다줬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지켜봤는데 ‘아, 이런 국제 행사로 나라가 발전하는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국도 올림픽을 개최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인프라를 잘 갖추는 게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직접 참관했다. 마음먹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했다. MIT와 하버드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모아둔 돈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내 곳곳을 지하철로 연결하고, 쓸모없을 것 같은 공간도 공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직접 보고 왔다”고 했다. 곽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학과장으로서 고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서울 올림픽 개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서울 잠실 일대에 올림픽종합경기장 및 공원을 짓는 밑그림을 만들어 제시했다. 지하철 2호선도 그곳을 통과하도록 조언했다. 1975년 사람과환경그룹을 만든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기간시설 건설계획은 물론이고 1993년 대전 엑스포 유치 마스터플랜, 2012 여수 엑스포 기획 및 설계 등에 기여했다. WCO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국제 네트워크로 지원하기 위해 1987년 창설했고, 지금은 실크로드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친환경적 도시 건설을 유도하고 있다. 곽 대표가 이렇게 활기차게 활동하는 원동력에 태권도가 있었다. 태권도에서 배운 호국정신을 국가번영정신으로 발전시켰고, 미국 유학 시절부터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해 실행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는 WCO 태권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다. 먼저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본격적인 신체 단련에 들어간다. 정신 수양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평소엔 걷기와 주변 청소로 건강을 관리한다. 집(서울 신당동) 근처 매봉산과 남산을 매일 오른다. 40여 년 전부터 하고 있는 ‘남산소나무 살리기’도 그에겐 운동이다. 남산을 걷다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며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 아카시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매일 하는 집 주변 서울성곽 청소도 그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가지치기와 청소의 운동량이 상당하다. 모두 태권도에서 배운 봉사정신에서 비롯됐다. 태권도 9단인 곽 대표는 “이제 뉴노멀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심신을 단련시키는 태권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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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희망의 태권도

    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태권도 첫 금메달을 땄다. 태국의 파니팍 웡파타나낏이 여자 49kg급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울루그베크 라시토프가 남자 68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 시간) 이 소식들을 전하면서 태권도가 메달 획득이 어려웠던 스포츠 약소국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태권도는 12개국 이상 국가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코트디부아르와 요르단은 국가 최초이자 유일한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땄다. ▷태국의 태권도 첫 금메달은 한국 사범들이 1960년대 중후반 동남아시아 태권도 보급에 나선 지 50여 년 만에 일군 성과다. 웡파타나낏을 조련한 최영석 감독은 2002년부터 20년째 태국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태권도 강국으로 키우고 있다. 태국은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16년 리우 대회까지 4회 연속 태권도에서 5개의 메달(은 2, 동 3)을 획득한 뒤 이번에 금메달까지 땄다. ▷올림픽 금메달의 효과는 크다. 공식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에서 국기를 달고 최정상에 서는 순간 웡파타나낏은 물론 태국 국민은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리우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웡파타나낏은 명실상부한 태국 최고 스타가 됐다. 최 감독까지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태국 현지 언론들은 역사적인 금메달을 획득하게 해준 최 감독이 계속 태국을 지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프리카의 튀니지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아시아의 태국 우즈베키스탄 요르단 네팔 등 스포츠 약소국들은 한국 사범들을 영입해 태권도를 국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성과도 계속 나온다. 이번 대회에서 튀니지의 무함마드 칼릴 젠두비가 남자 58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역대 두 번째 태권도 메달이다. ▷현재 210개국이 세계태권도연맹(WT)에 가입했다. 태권도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포츠다. 실력도 평준화되고 있다. 매 대회 돌풍을 일으키는 국가가 나오고 있고 이번에도 태국 우즈베키스탄 크로아티아 등이 새롭게 부상했다. 역으로 한국의 금메달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일부에선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걱정해야 할 건 이뿐만이 아니다. 전자호구를 도입한 뒤 파워 넘치는 플레이보다는 센서를 터치하는 잔기술로 점수 따기에만 몰두하는 경기 방식이 태권도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 박진감이 떨어져 팬들이 점점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키워 경기력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권도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종주국의 중요한 임무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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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세계 양궁의 지배자”

    26일 열린 대만과의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 한국 오진혁이 3세트 3번 사수로 나서자 먼저 쏜 김우진이 뒤에서 “7, 6, 5, 4…”라고 불러줬다. 오진혁은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겨 10점을 명중했다. 3명이 60초 안에 각 한 발씩 쏘는 단체전에서 마지막 사수는 남은 시간을 모르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남은 시간을 알려주게 한 것.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걸린 총 5개의 양궁 금메달 중 벌써 3개를 획득했다. 앞서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사상 첫 9연패를 하자 AP통신은 ‘이름이 바뀔 수 있겠지만, 한국 여자 양궁의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타전했다. 여자 양궁의 9연패는 미국과 케냐가 각각 남자 수영 400m 혼계영과 육상 장거리 장애물 경기에서 보유한 특정 종목 최다 우승 기록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다. 남자도 대회 2연패에 이은 6번째 정상이다. ▷한국 양궁의 비결은 남녀 모두 선발 과정의 공정한 경쟁과 준비 과정의 철저한 디테일이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선발만 되면 금메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3차례의 평가전으로 남녀 각 8명을 뽑고, 선수촌에서 함께 합숙훈련하며 다시 2차례의 평가전으로 각 3명을 최종 선발했다. 과거 기존 대표 선수는 1, 2차전을 면제해 줬지만 이번엔 그런 특혜도 없앴다. 이렇게 살아남은 선수들은 치밀한 실전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5월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하고 똑같이 만든 훈련장에서 활을 쐈다. 심지어 점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밝기까지 똑같았다. 밝기 차이가 선수들 시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전 경기 때도 선수들끼리 격려하며 돕는 세세한 루틴이 있다. 혼성경기에서 김제덕이 먼저 쏜 뒤 바로 안산을 향해 “지금 바람 없으니 자신 있게 쏘면 돼요”라고 정보를 줬다. 초 알리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만의 현장 전술이다. ▷남녀가 함께 훈련하는 환경도 양궁 발전에 도움이 됐다. 대표팀 중 유일하게 양궁만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일부 종목은 남녀 합동 훈련을 터부시하기까지 하지만 양궁은 체력부터 기록 훈련까지 똑같이 한다. 여자 선수들은 한 수준 높은 남자 대표 선수들과 거칠게 경쟁하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남자 선수들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적극성을 배웠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의 지도자를 스카우트해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지만, 한국 양궁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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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만 했는데 확 빠져”…의사도 놀란 노르딕워킹 효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주연서 INWA 코리아 사무국장(49)은 모델 출신 노르딕워킹 전도사다. 어려서부터 모델 활동을 했고, 사업을 하다 몸 상태가 나빠졌다. 노르딕워킹을 알게 되면서 푹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7년 전이었어요. 모델 에이전시 사업을 하는데 한 노르딕워킹 브랜드에 모델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일하다 노르딕워킹을 접했어요. 30대 전후 직장인들을 포커스해서 마케팅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배 모델들을 소개해주고 빠지려고 하는데 저도 배워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배웠는데 너무 좋았어요. 저도 운동을 좋아했는데 활동량도 많고 야외를 걷는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배우자마자 강사로 나섰다. “제가 모델을 해서인지 저를 지도해주신 분이 바로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전북 전주 공무원연수원에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배우며 강의하고를 반복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르딕워킹을 생활화했다. 몸도 바뀌었다. “제가 당시까지 10년 넘게 사업상 출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했는데도 몸이 자주 피곤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항진증이라고 하더군요. 약을 먹었죠. 허리에 통증도 왔어요. 그런데 노르딕워킹을 하고 1년 뒤 병원에 갔더니 말끔하게 나았다는 겁니다. 저도 놀랐고 의사도 놀랐습니다. 자연 속에서 걷다보니 효과가 배가 된 것 같아요. 그 때부터 약을 끊었습니다.” 체력, 특히 심폐지구력도 좋아졌다. 평소 요가와 수영, 골프, 사이클,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던 주 국장은 사업을 하면서는 주로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노르딕워킹을 접한 뒤엔 노르딕워킹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부턴 모든 사업을 접고 INWA 코리아에서 전문 강사로 활약하게 됐다. INWA(International Nordic Walking Federation)는 핀란드에 본부가 있는 국제노르딕워킹협회이다. INWA 코리아는 체계적인 INWA 교육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주 국장은 네덜란드와 핀란드에 가서 전문 강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주 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을 계기로 새롭게 시도한 프로그램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실내 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체중이 느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속칭 ‘확찐자’라고…. 그래서 지난해 12월 말 자연 속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효과적이라 저도 놀랐습니다.” 주 4회 매회 2시간 정도 함께 노르딕워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2시간 함께 걸으면 10km를 넘게 걷는다. 나머지 요일엔 개인적으로 1만보 이상 노르딕워킹을 하면 된다. 노르딕워킹 1만보도 2시간가량 해야 한다. “104kg의 한 남자분은 이번 달로 7개월째 인데 25kg이 빠졌어요. 첫 3개월에 14kg 감량했죠. 79kg의 여자분은 이제 4개월 차인데 65kg으로 14kg이나 줄었어요.” 주 국장은 “회원들 모두 제대로 잘 먹고 뺀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주로 복부 내장지방, 그리고 피하 지방이 빠진다. 상체의 목, 등, 팔에도 지방이 많은데 노르딕워킹을 하면 그 부분 지방도 잘 빠진다”고 말했다. 25kg을 감량한 남자 회원의 경우 턱선이 두터워 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젠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은 노르딕워킹의 기본인 바르게 걷기에 집중했었어요. 이렇게 다이어트에 포커스를 두고 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노르딕워킹의 다이어트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노르드(Nord)’는 ‘북방(北方)’을 뜻하는 말로서, 노르딕 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산지는 알프스 산악지방의 가파른 지형과는 달리 대부분 낮은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키가 발달했다. 노르딕 스키는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발원지의 지형 특성이 반영되어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노르딕워킹은 1990년대 중반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들어와 한 때 반짝 인기를 끌고 일부 마니아층에서 즐기는 운동이 됐다. 최근 바른 자세와 다이어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르딕워킹의 장점은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걷게 해준다는 겁니다. 폴을 활용해 걷기 위해서는 상체에서 어깨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상체는 어깨가 운동의 시작입니다. 발이 나갈 때 어깨도 함께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땅에 짚은 뒤 폴을 끝까지 밀어줘야 보폭이 커지고 운동량도 배가 됩니다.” 주 국장은 INWA의 10단계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보행, 바른 폴 사용법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폴을 잡고 걸으려 하는 순간 가슴이 펴진다. 가슴을 펴지 않으면 폴을 잘 사용할 수 없다. 자세교정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북목, 굽어진 등 등도 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걸으면서 지도한다. 북한산성 INWA 코리아 옥상이나 주변에서 기본 교육을 한 뒤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 “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 됩니다. 걸을 때 허벅지 장딴지가 가동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됩니다.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됩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3주 이상해야 운동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한달 정도 하면 체중 변화는 크게 없지만 몸이 균형 있게 변합니다. 전체적으로 근육량이 늘고 지방이 없어집니다. 일종의 몸의 탈바꿈이라고 할까요. 3개월 이상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최소 하루 60~90분은 해야 합니다.” 주 국장은 노르딕워킹 3개월로 10kg을 감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솔직히 젊은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바로 체중을 감량할 수 있지만 갱년기가 지난 여성들은 다이어트가 쉽지 않아요. 호르몬의 영향도 있고, 골격근을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빼줘야 합니다. 노르딕워킹이 딱 좋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60대 후반 여성의 경우 노르딕워킹 4개월째인데 63kg에서 56kg으로 7kg을 감량했어요.” 주 국장은 어떨까? 주 5일 이상, 많게는 하루 4시간 이상 노르딕워킹을 하고 있다. 그래도 체중 변화는 없다고 했다. “전 원래 체중이 많이 나가진 않았어요. 오히려 노르딕워킹을 한 뒤 1~2kg이 증가했죠. 체지방이 빠지고 코어 근육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노르딕워킹으로 몸매가 더 좋아졌다는 평을 받아요. 남자나 여자나 노르딕워킹으로 자세를 바르게 잡고 살이 빠지고 몸이 건강해지면 몸매가 정말 아름다워져요.” 주 국장은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노르딕워킹은 잘못된 자세로 몸이 틀어진 학생들을 잡아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자세를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노르딕워킹을 하면 통증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걸을 때 무릎, 허리, 고관절 등에 통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폴을 집고 걸으면 통증을 완화 시킬 수 있습니다. 폴로 지면을 압박하기 때문에 무게를 분산시켜 줍니다. 자세 고정에 따른 통증완화도 됩니다. 특히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입니다. 물론 아프지 않은 분들은 바른 자세로 쉽게 걸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려면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운동효과를 높이는 노르딕워킹이 최고입니다.” 주 국장은 “유럽에서는 노르딕워킹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치매와 파킨슨병 등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주 국장은 국민대에서 운동처방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체형과 걷는 스타일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딱 맞는 정보를 주려면 더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모델과 패션사업은 접었지만 그는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즐겁게 살고 있어 삶의 만족도는 훨씬 크다”고 했다. 그는 “100세 시대 이렇게 자연 속에서 노르딕워킹하며 건강하게 살면 이보다 행복한 삶이 어디있나”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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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운동’으로 새로운 삶…오십견도 사라졌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태권도와 골프, 댄스스포츠, 등산…. 체육을 전공했고 다양한 스포츠와 운동을 즐겼지만 체계적인 근육운동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 ‘언젠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야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이끌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김경래 전 연세대 미래캠퍼스 인문예술대학 교수(65) 이야기다. “골프 전문가이기 때문에 겨울이면 꼭 따뜻한 나라로 가서 골프를 쳤어요. 추우면 엘보가 와 국내에서는 못 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에는 코로나 19탓에 해외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버킷리스트로 간직했던 근육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로 몸을 단련했고 미국 유학시절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배우며 다양한 운동을 즐긴 그는 몸매가 날씬했다. 키도 185cm로 컸다. 교양체육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주위에선 ‘근육을 키우면 진짜 보기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런 주위 평가도 있었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늘 “은퇴한 뒤 여유가 있을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코로나19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인도한 셈이다. 김 전 교수는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경기도 용인 메카헬스짐 박용인 관장(59)이 눈에 들어왔다. ‘양종구 기자의 100세 건강’에 소개됐고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소 씨(77)와 권영채 씨(66)를 지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박 관장은 보디빌딩 국가대표 출신으로 PT계에서 잘 나가는 지도자다.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2월 말 박 관장을 찾아가 개인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 시작했다. 주 2회 1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저를 보자마자 관장님이 그러는 거예요. ‘교수님은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고. 처음엔 그냥 근육운동이나 하겠다. 100세 시대 근육을 키워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기 때문에 찾아 온 것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럼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대회 출전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박 관장은 “교수님의 체형이 너무 좋아 조금만 근육을 만들면 바로 입상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 출전 같은 목표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돼 열심히 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열릴 예정인 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데 3월 갑자기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김 전 교수로선 목표가 사라져 주춤한 데다 은퇴 후 2년간 준비한 사업상 바쁜 일도 겹쳤다. 한 달 반 정도 쉬고 있을 때 6월 27일 월드 내추럴 챔피언십 시그니처(WNC) 대회가 열린다고 해 5월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주 2회 PT 받는 것에 더해 집(경기도 의왕)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1, 2회 추가로 운동했다. 결과는 50세 이상부 스포츠모델과 피지크 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최소 몇 년에서 수십 년 운동한 50세 초반 선수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이제 갓 시작한 60대 중반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근육을 키우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골프 엘보와 오십견이 사라졌다. 그는 “골프 연습 때 왼쪽 팔꿈치가 아팠다. 오른쪽 어깨엔 오십견 증세가 있었다. 통증클리닉까지 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팔꿈치와 어깨 주변 근육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은 “통증 유발 원인이 근육 약화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증의 원인이 관절이라면 의학적 치료가 우선이다”고 분석했다. 김 전 교수는 미국 퍼듀대 유학시절(스포츠심리학 전공)부터 술과 담배를 다 끊었고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산을 즐겼기 때문에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근육운동으로 달라진 것은 몸매가 더 탄력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힘이 좋아지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솟았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입시 당시 인기 있었던 기계공학과(인하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군대를 마치고 연세대 체육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체육과에는 잘 적응했다. 체육인으로서도 특이함을 추구했다. 미국 유학 때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접한 뒤 ‘향후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골프 레슨 프로 및 PGA 투어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고, 볼룸댄스(현 댄스스포츠) 지도자 및 심판 자격증까지 땄다. 미국에선 자신의 특기인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태권도 5단 유단자인 그는 퍼듀대에 태권도 지도관 클럽을 만들어 유단자들을 배출했다. 인디애나주 티피카누 카운티 라피엣과 웨스트라피엣으로부터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태권도로 지역사회 보이스클럽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태권도시범과 활동이 미국 NBC 방송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귀국한 뒤 연세대 신촌 및 원주, 송도국제캠퍼스에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보급했다. 댄스스포츠 책도 썼다. 1998년 국내 처음 열린 제1회 슈퍼코리아컵 전국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향후 댄스스포츠의 스타로 군림할 박지은(43)-박지우(41) 남매와 함께 겨뤘다. 지은 지우 남매는 한국 댄스스포츠의 전설 박효 전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 회장의 자녀다. 박 회장은 1998년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를 설립해 각종 대회를 개최했다. 댄스스포츠 경력은 보디피트니스에도 도움이 됐다. 박 관장은 “김 전 교수님은 첫 대회부터 무대를 사로잡았다. 댄스스포츠를 해서 인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교수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늦게 시작했지만 근육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마치 미국에서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처음 배우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요즘 나이든 분들은 근육운동과 단백질 섭취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100세 시대 장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젊음을 되돌리는 회춘약 근육운동을 시작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머리를 잘 써야 치매가 안 걸린다고 판단해 학점은행제로 경영학과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올 초부터 각 18학점씩을 들었다.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아 나무 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2018년부터 나무 의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나무병원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증을 따면 근육운동을 즐기면서 나무를 치료하며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자격증을 따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도전을 계속해야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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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 엘보-오십견 훌훌…근육운동 덕에 새 인생 훨훨”[양종구의 100세 건강]

    김경래 전 연세대 미래캠퍼스 인문예술대학 교수(65)는 뒤늦게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체육을 전공했고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스포츠와 운동을 즐기면서도 근육운동은 이번에 처음 체계적으로 했다. 근육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그는 “겨울이면 꼭 따뜻한 나라로 가서 골프를 쳤다. 추우면 엘보 때문에 못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탓에 해외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생 버킷리스트로 간직했던 근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키 185cm에 날씬한 체형의 그는 교수 시절부터 근육을 키우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한 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근육운동과 적절한 단백질 섭취가 100세 시대 장수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코로나19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본격 인도한 셈이다. 김 전 교수는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경기 용인시 메카헬스짐 박용인 관장(59)을 알게 됐다. 본 칼럼에 소개됐고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소 씨(77)와 권영채 씨(66)를 지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말 찾아가 개인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 시작했다. 주 2회 1시간씩 지도받았다. 김 전 교수는 근육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박 관장의 권유로 바로 대회 출전 준비를 했다. 박 관장은 “김 교수의 체형이 아주 좋아 조금만 근육을 만들면 바로 입상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 출전 같은 목표가 있으면 동기 부여가 돼 더 열심히 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4월 열릴 예정이던 대회가 3월 취소되는 바람에 한 달 반가량 공백이 생겼다. 갑자기 목표가 사라진 데다 은퇴 후 2년간 준비한 사업상 바쁜 일이 겹쳐 운동을 쉬었다. 6월 27일 월드 내추럴 챔피언십 시그니처(WNC) 보디피트니스 대회가 열린다고 해 5월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주 2회 PT 받는 것에 더해 집(경기 의왕시)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1, 2회 추가로 강도 높게 운동했다. 그 결과 50세 이상 부문 스포츠모델과 피지크 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50세 초반 선수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60대 중반이 선전한 것이다. 근육을 키우면서 골프 엘보와 오십견이 사라졌다. 그는 “골프 칠 때 왼쪽 팔꿈치가 아팠고, 오른쪽 어깨엔 오십견 증세가 있었다. 심할 땐 통증클리닉까지 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은 “통증 유발 원인이 근육 약화이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주변 근육이 강화되면서 없어진 것이다. 통증의 원인이 관절이라면 의학적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미국 퍼듀대 유학 시절(스포츠심리학 전공)부터 술과 담배를 다 끊고 다양한 운동을 즐겼기 때문에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근육운동으로 달라진 것은 몸매가 더 탄력적으로 바뀌었고 “힘이 세어지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았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다소 이색적인 삶을 살았다. 입시 당시 인기 있었던 기계공학과(인하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군대를 마치고 연세대 체육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인지 체육과엔 잘 적응했다. 체육인으로서도 색다름을 추구했다. 미국 유학 때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접한 뒤 ‘향후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골프 레슨 프로 및 PGA투어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다. 볼룸댄스(현 댄스스포츠) 지도자 및 심판 자격증도 땄다. 귀국한 뒤 댄스스포츠 선수로도 활동하며 연세대 신촌 및 원주, 송도국제캠퍼스에서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 레저스포츠를 보급했다. 댄스스포츠 경력은 보디피트니스에도 도움이 됐다. 박 관장은 “교수님은 첫 대회부터 무대를 사로잡았다. 댄스스포츠를 해서인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여유 있게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교수는 9월 국제대회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근육운동을 통해 새 삶의 길을 찾았다. 마치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처음 배우던 때 같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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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을 달리는 게 행복한 연구원 “마라톤 너무 힘들었는데…”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진희 부산연구원 도시·환경연구실 연구원(38)은 11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달리기에 빠져 들었고,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마니아가 됐다. 이젠 달리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 “부산연구원에 입사하자마자 사내 마라톤동호회 회원인 대학 선배와 친구가 마라톤대회에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 4월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 출전해서 10km를 달렸습니다. 평소 등산을 하긴 했지만 처음 달린 것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1시간 16분. 그래도 완주의 쾌감은 좋았어요. 그래서 바로 사내 동호회에 가입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달리기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16년. 사내 동호회에서 훈련도 하고 매년 2번씩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늘 달리는 게 힘들었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고 생각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 연구원은 “제대로 달려보고 싶어 동네 주변 동호회를 찾아봤는데 런클럽부산이란 곳이 있어 바로 가입했다”고 했다. 런클럽부산에 가입하면서 트레일러닝도 접하게 됐다. “당시 부산에는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동호회에 서울 한 마라톤클럽에서 매니저를 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트레일러닝이 재미있다며 참가해볼 것을 권유해 봉래산 등을 달리는 훈련을 한 뒤 2016년 여름 거제지맥 트레일러닝 13km에 출전했어요.” 트레일러닝은 그에서 딱 맞는 스포츠였다. 원래 산을 좋아해 등산을 즐겼는데 막 재미를 붙인 달리기를 산에서 하니 환상적이었다. 여전히 등산을 좋아하지만 가벼운 복장으로 더 먼 거리를 빠르게 즐길 수 있어 트레일러닝에 빠져들었다. “첫 출전 대회인 거제지맥에서 4등을 했어요. 3등까지 시상을 해 입상은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달리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일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뒤 그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퇴근 후 시간이 달리기 위주로 변했어요. 예전에는 맛 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검색해 찾아가길 좋아했는데 산을 달리면서부터 달리기 좋은 코스, 일출 혹은 일몰이 좋은 코스를 검색해 달리러 다녔습니다.” 김 연구원은 단거리 전문이다. 마라톤은 10km에 주로 출전했고 트레일러닝도 10~15km 이내로 달렸다. 마라톤에 입문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풀코스는 단 한번도 달리지 않았다. 하프코스도 2018년 12월 타이완 타이페이마라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렸다. 당시 1시간 47분 22초를 기록했다. 트레일러닝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2019년 하이원 스카이러닝에서 20km를 달린 게 가장 길다. 산이나 도로는 친구들과 훈련할 때 긴 거리를 달린다. 부산 둘레길 47km도 달렸고 지리산 종주도 혼자 하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기록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훈련도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대회 때는 짧고 굵게 달리는 게 훨씬 부담도 없고 상쾌해요.” 사실 산을 달리다보니 트레일러닝은 위험하다. 김 연구원도 트레일러닝을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지리산을 달리는 릴레이 대회에 훈련 삼아 참가했다가 무릎을 다쳐 1년간 쉬어야 했다. “산을 달릴 때는 집중해야 합니다. 조금만 정신집중이 흐트러져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레일러닝은 오르막에는 좀 쉬어갈 수 있고 힘들어도 자연 경관을 보며 힘든 순간을 보상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동도 산마다, 시간마다, 계절마다 달라요. 정신 바짝 차리고 즐긴다는 자세로 달리면 행복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부상에서 돌아온 뒤 도로 및 산악 마라톤 단거리의 강자로 올랐다. 2018년 5월 거제지맥 트레일런 14km 2위, 2019년 3월 진주남강마라톤 10km 3위, 5월 부산하프마라톤 10km 2위, 6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20km 4위, 9월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 13km 2위, 12월 진주마라톤 10km 1위…. 2년간 20여개 대회에서 입상했다. 마라톤 10km 최고기록은 2019년 11월 10일 열린 부산마라톤에서 세운 41분 02초다. 그는 지난해 초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등을 다쳤다.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발등 위로 지나갔다. 뼈가 으스러지지는 않았지만 근육과 인대 등이 손상 돼 달릴 때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됐고 대부분의 대회가 최소 되는 바람에 그나마 재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부상 전에는 평일 저녁 퇴근하고 야간 트레일러닝으로 집 근처 백양산 14km를 주 2회 친구들과 달렸다.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 대회에 참석해 ‘달리기 여행’을 즐겼다. 대회가 없을 땐 장거리 등산을 하거나 장거리 도로 달리기를 했다. 장거리 등산은 짧게는 20km에서 60km까지 한다. 도로도 30~40km를 달리고 많게는 80km도 달린다. 부상 후에는 퇴근 한 뒤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고 주말에 장거리 등산을 한다. 역시 등산은 20~60km까지 산을 탄다. 아직은 가급적 달리지는 않는다. 근육운동은 주로 하체 근육 강화다. 특히 발등을 다친 뒤 발목이 좋지 않아 양 발목 밸런스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다 나았다고 달려도 된다고 하는데 달리면 통증이 있어요. 재활 전문가는 당분간 쉬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안 달린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가 확산돼 대회들이 취소되고 단체 집합도 금지되면서 평일에는 홈트를 하거나, 소수의 인원만 모여 야간트레일러닝을 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산으로 갔다. 대회가 없어 생긴 주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부 친구들끼리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했다. 그 중의 하나였던 ‘부산갈맷길 700리 프로젝트’가 있다. 그는 “매 주말 짧게는 36km, 길게는 50km를 달리거나 걸어 6번에 걸쳐 완주했다. 타지역 대회에 다니느라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부산 갈맷길을 온전히 걷고 뛰면서 나의 도시 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12km 부문에 출전해 5위에 올랐다. “솔직히 당시 발목이 좋지 않아 완주에 대한 자신이 없었지만 도전했다. 우려했던 대로 레이스 도중 다친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이 기특했다”고 했다. 환경단체가 만든 특별 이벤트 레이스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부터 11월 1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6명이 3팀으로 나눠서 238.6km를 릴레이로 달리는 이벤트에서 84.6km를 달렸다. 형제봉에 산악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지리산을 지키자(Save the Jiri)’ 특별 이벤트였다. 올 4월에는 ‘제주를 지키기 위해 달리자(Run to Save Jeju)’는 제2공항 건설 반대 80km마라톤 이벤트 대회에 참석해 완주했다. 환경정책을 연구하기 때문에 환경 이슈를 제기하는 특별 이벤트 마라톤이 열리면 적극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무리해서 달리진 않는다. 천천히 완주를 목표로 달린다. “달리기 초창기엔 다치면 쉬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좋아지면 다시 달렸는데 바로 역효과가 났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많아 테이핑도 하고 다양한 재활법이 있어서 조화롭게 근육을 키우면서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산을 활기차게 달리기 위해 재충전 시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김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사라지면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 몽블랑(UTMB)에 출전할 계획이다. “전 유유자적 자유로운 달리기를 하며 살고 싶어요. 아직 가 보지 못한 산들도 정말 많아요. 삶에 좀 여유가 생겼을 때는 원하는 산 아래 한두 달 머물며 산을 오르고 산을 달리며 살고 싶습니다.” 트레일러닝은 그가 평생 건강을 챙기며 인생도 즐길 최고의 취미이자 스포츠가 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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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에 빠진 ‘괴짜’… “계족산에선 대통령보다 유명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2)은 달리는 형님들을 따라 2001년부터 마라톤에 입문해 21년 째 달리고 있다. 마라톤은 그에게 심신의 건강을 가져다준 것은 물론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도 충천시켜줬다. “우리 둘째 형님이 고향인 경남 함안에만 가면 아버지 산소 갈 때 소주병을 들고 뛰어 올라갔어요. 괴짜였죠. 일찍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셋째 형님은 축구 국가대표까지 했는데 1998년 중풍으로 쓰러졌어요. 그 형님도 달리기 시작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형님들 따라 달렸고 다양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 때부터 달리는 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달리면 몸과 마음에 쌓인 찌꺼기가 비워집니다. 비워야 채워지듯 달리고 나면 에너지가 충만해집니다. 전 기분이 안 좋으면 달립니다. 그러면 의욕이 없다가도 생기가 넘칩니다. 마라톤은 제 인생은 물론 사업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달리면 생각도 바뀝니다.” 조 회장은 2005년 둘째 형 경래 씨(79), 셋째 형 갑래 씨(74)와 세계 최고의 보스턴마라톤에도 함께 출전했다. 지금도 가끔 함께 달리며 형제애를 쌓고 있다. 갑래 씨는 2005년 완전히 중풍을 떨쳐내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조 회장은 ‘괴짜’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다. 대전 계족산에 황토를 깔아 맨발 걷기 및 마라톤의 성지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2004년 (주)선양주조를 인수한 조 회장은 2006년부터 계족산 14.5km 임도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게 했다. 첫해 2만여 톤, 이후 매년 2000여 톤을 추가로 뿌리고 관리한다. 보수공사 및 비온 뒤 정비 등 연간 10억 원이 들어간다. 계족산은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2006년 초 대전을 방문한 지인들과 계족산을 걷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으며 맨발걷기의 효능을 체험했어요. 몸이 후끈 달아올랐어요. 잠을 잘 못 잤는데 숙면을 취했고, 머리도 맑아졌죠. 그 때부터 계족산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큰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어 발바닥이 아팠어요.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맨발로 걷게 하기 위해 황토를 깔았습니다.” 조 회장이 계족산에 나타나면 모든 사람이 알아본다. 그는 “계족산에선 제가 ‘대통령’보다 더 유명하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이 계족산을 찾아 즐겁게 걸으며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2006년부터 매년 5월 계족산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마사이마라톤대회도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문화예술까지 어우러진 계족산 맨발축제로 발전됐다. 자연 속에서 몸(맨발)과 마음(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치유하는 체험형 에코힐링 축제다. 맨발 걷기 혹은 달리기는 지압 및 접지(接地·Earthing) 효과가 있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과학적 결과가 많다. 2007년부터 4월~10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계족산 숲속음악회인 ‘뻔뻔(funfun)한 클래식’도 연다. 클래식에 뮤지컬, 연극, 개그 요소를 섞어 관객과 함께 참여하는 공연이다. 조 회장은 2013년 (주)선양주조의 사명을 맥키스컴퍼니로 바꿨다. 맥(脈·이을 맥)과 KISS를 혼합해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18년 소주 ‘O2린’을 ‘이제우린’으로 바꾼 것도 단순히 술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조 회장은 2016년부터 1월 1일 오전 11시 11분 11초에 맨몸으로 대전 갑천변을 7km 달리는 대전맨몸마라톤도 개최하고 있다. “새해만 되면 해돋이를 보러 바닷가로 가는데 해가 안 뜨면 실망이 크다. 그래서 그럼 아예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뜻있는 마라톤 대회를 열면 어떨까 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2019년엔 참가한 5세에서 12세 어린이들에게 세뱃돈 3만 원씩을 주기도 했다. 그날만 세뱃돈으로 2100만 원을 썼다. “아이들이 달리니 너무 좋아서”라고 했다. 태안반도에서 열렸던 샌드비스타 맨발마라톤, 현재 인도양 세이셸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세이셸에코힐링마라톤 등 다양한 대회를 만들었다. 그는 “어, 이거 재미있겠네 하면 만들었다”고 했다. 고향 함안에도 에코씽씽뚝방마라톤 대회를 만들었는데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없어졌다고 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는 ‘괴짜왕 조웅래’라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고 사람들 사는 게 힘들어져 뭔가 새로운 것으로 즐거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달리며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명소를 가서 직접 달리면서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국 나이 65세가 되면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달리는 ‘마라투어(마라톤+투어)’를 하겠다고 한다. 조 회장은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마라톤이란 한 가지 운동을 21년 째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운동을 평생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도 달리고 사위, 며느리에게도 달리게 하고 있다. “2018년 예비 사위가 찾아 와 딸하고 결혼하겠다고 하기에 그럼 하프코스를 달려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어요. 그해 9월 2일 예비 사위가 저랑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9월 29일 결혼했습니다. 올 11월 아들이 결혼하는데 예비 며느리에게 10km를 완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 회장은 가족과 함께 하는 ‘말아먹는 여행’을 만들었다. 마라톤과 먹거리를 합친 조어다. “회사 일만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 순간 저 혼자만 외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딸, 아들 셋이선 잘 뭉치고…. 야,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에 가족 전체가 함께 할 일을 찾았어요. 그래서 지역 명소를 방문해 맛있는 것도 먹고 마라톤도 달리는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말아먹는 여행을 한 지 6년이 넘었다.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다. 사위도 함께 하고 있고 며느리도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 2019년 환갑을 맞아선 미국 하와이를 ‘말아먹고’ 왔다. 그 때 아내와 사위가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맥키스컴퍼니에서는 정식 사원이 되려면 10km를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2005년부터 일명 면수습 마라톤대회를 만들었다. 수습을 떼는 사원과 기존 선배 사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10km를 달리는 행사다. 10km 완주한 수습사원에게 사령장을 준다. 지금까지 완주 못한 사원은 단 한명도 없다. 이렇게 마라톤을 강조하는 이유는 준비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인생은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10km든 하프코스, 풀코스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완주를 못합니다. 인생도 준비 안하면 힘듭니다. 마라톤 완주를 준비하면서 심신이 건강해고 에너지도 얻습니다. 완주하고 나면 자신감도 생깁니다. 또 마라톤은 소통입니다. 함께 달리면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조 회장은 6월 27일 회사 임원들과 함께 울릉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달렸다. 이번이 풀코스 80번째 완주다. 매주 토요일 새벽엔 임직원들과 계족산에서 함께 달린다. 일요일 새벽에도 뜻이 있는 직원들은 함께 달린다. 회사 임원인 아들은 토요일 함께 달린다. 코로나 19가 없을 땐 대회에 출전해 사위랑도 함께 달렸다. 지금은 서울 사는 사위가 대전에 내려올 때 함께 달리고 있다. 그는 “아들, 사위와 달리는 아버지가 있을까?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조 회장은 마라톤을 즐기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제가 마라톤 입문해 2003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23분의 풀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지금도 3시간 30분 정도에 완주하지만 절대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매주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망가진 사람도 많죠.” 21년간 풀코스 80회 완주니 연간 4~5회만 풀코스를 달린 셈이다. 울트라마라톤 등 무리해야 하는 레이스는 아예 참가하지 않는다. 부상 방지 노력도 열심히 한다. “90살까지 풀코스를 달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찾았더니 요가가 보였습니다. 요가는 몸을 유연하게 해주고 근력도 강화시켜줍니다. 요가 한지 5년 됐는데 키가 1cm 컸고 근육량도 4.2kg 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요가 한 뒤 부상이 없습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뜻 깊은 기부도 하고 있다. 1km를 달릴 때마다 1만 원을 적립해 대전 충청 지역 중증장애인시설에 체중계를 보내준다. 그는 “마라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다. 난 달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장애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은 한달에 2, 3번 체중을 체크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젤 수 있는 전문 체중계가 없으면 힘들다는 한 시설 원장의 편지를 받고 시작했다. 체중계 하나에 152만 원. 조 회장은 한달 평균 150km 이상을 달리니 매월 한 개씩 기부하고 있는 셈이다. 5월에만 237km를 달렸다. 조 회장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경영난에도 지난해와 올해 5억 2000여 만 원의 지역사랑 인재 육성 장학금을 마련해 지역민을 돕고 있다. ‘이제우린’ 소주 1병이 팔릴 때마다 5원을 장학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조 회장은 말한다. “제가 마라톤으로 심신이 건강하니 사업도 잘 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으로 얻은 혜택, 남들에게도 계속 전해주겠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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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재산보다 달리기 유산… 며느리와 사위도 함께 뛰어요”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2)은 형들의 영향을 받아 2001년 마라톤에 입문해 21년째 달리고 있다. 그는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마라톤이란 한 가지 운동을 꾸준하게 해 온 것”이라며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도’하고 있다. 조 회장은 대전 계족산에서는 ‘대통령’으로 통할 정도로 유명하다. 2004년 ㈜선양주조를 인수한 뒤 2006년부터 계족산 14.5km 임도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첫해 2만여 t, 이후 매년 2000여 t을 추가로 뿌리고 관리해 이젠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지역 명소가 됐다. “2006년 초 대전을 방문한 지인들과 계족산을 걷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으며 맨발걷기의 효능을 체험했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불면증이 있었는데 숙면을 했고 머리도 맑아졌다. 그때부터 맨발로 걸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맨발로 걷게 하기 위해 황토를 깔았다.” 연간 황톳길 유지비용은 10억 원. 조 회장은 “시민들이 즐겁게 걸으며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해부터 매년 5월 계족산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마사이마라톤대회도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문화예술까지 어우러진 계족산 맨발축제로 발전됐다. 자연 속에서 몸(맨발)과 마음(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치유하는 체험형 에코힐링 축제다. 맨발 걷기 혹은 달리기는 지압 및 접지(接地·Earthing) 효과가 있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조 회장은 2016년부터 1월 1일 오전 11시 11분 11초에 맨몸으로 대전 갑천변을 7km 달리는 대전맨몸마라톤도 개최하고 있다. 조 회장은 자신을 마라톤의 길로 인도한 둘째형 경래 씨(79), 셋째형 갑래 씨(74)와 지금도 함께 달리고 있으며 아내와 딸, 아들은 물론이고 사위, 며느리까지도 달리게 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예비사위가 찾아와 딸하고 결혼하겠다고 하자 하프코스를 달려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해 9월 2일 예비사위가 나와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9월 29일 결혼했다”고 말했다. 올 11월 아들과 결혼할 예비며느리도 10km는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운동을 평생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다행히 아내와 우리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함께 달려줘 너무 고맙다”고 했다. 맥키스컴퍼니에서는 정식 사원이 되려면 10km를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2005년부터 일명 면수습 마라톤대회를 만들었다. 수습을 떼는 사원과 기존 선배 사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10km를 달리는 행사다. 완주한 수습사원에게 사령장을 준다. 지금까지 완주 못한 사원은 없었다. 이렇게 마라톤을 강조하는 이유는 준비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조 회장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다. 10km, 하프, 풀 어느 코스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완주를 못 한다. 그 준비 과정에서 심신이 건강해지고 활기찬 에너지를 얻는다. 인생도 준비 안 하면 힘들다. 또 마라톤은 소통이다. 함께 달리면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27일 회사 임원들과 함께 울릉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달렸다. 풀코스 80번째 완주다. 매주 토요일 새벽엔 임직원들과 계족산에서 함께 달린다. 일요일 새벽에도 뜻이 있는 직원들은 함께 달린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뜻깊은 기부도 하고 있다. 1km를 달릴 때마다 1만 원을 적립해 대전 충청지역 중증장애인시설에 체중계를 보내준다. 그는 “마라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다. 난 달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장애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은 한 달에 두세 번 체중을 체크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잴 수 있는 전문 체중계가 없으면 힘들다는 한 시설 원장의 편지를 받고 기부를 시작했다. 체중계 하나에 152만 원. 조 회장은 한 달 평균 150km 이상을 달리고 있어 매월 하나씩 기부하고 있다. 5월에만 237km를 달렸다. 조 회장은 “마라톤으로 심신이 건강하니 사업도 잘하고 있다. 마라톤으로 얻은 혜택, 남들에게도 계속 전하겠다”고 며 웃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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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kg→60kg’ 다이어트 성공 뒤 유지 비결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체중이 100kg이었지만 뚱뚱한지 몰랐다. 키가 170cm로 커서 그런지 주위에서도 살쪘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비만인 것을 알고 강도 높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이종민 대전 브레인요양병원 재활의학과 진료원장(35)은 철저한 운동과 관리로 40kg을 감량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소아비만이었어요. 성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날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2학년 1학기 마치고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뒤 재수학원에 뛰어 들면서부터 제가 살이 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다닌 특목고는 다들 개성이 강해 제가 뚱뚱한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재수학원에서는 제가 비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또래보다 1년 먼저 재수를 시작해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헬스클럽에 등록해 하루 8시간씩 걸었다. “수능이 끝나면 다시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 한 3개월이 비어요. 그 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4시간, 오후에 4시간 트레드밀을 걸으니 한 20kg 빠졌어요. 근데 다시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90kg까지 늘었죠. 재수에서 3수로 넘어갈 때 독하게 마음먹고 빼 60kg까지 떨어뜨렸어요. 그 때부터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수 끝에 의대에 합격한 뒤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한 때 80kg까지 다시 올랐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이어트라는 게 일시적으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좀 관리 안하면 체중이 늘고, 관리하면 빠진다”고 말했다. 2018년 결혼을 앞두고 몸을 만들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퍼스널트레이닝(PT)을 받으면서 근육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배워 일부 기구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긴 처음이다. “그 피트니스센터가 보디빌딩 선수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제게도 대회 출전을 권유했어요. 그래서 이왕 운동하는 김에 대회에 출전하려고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동안은 유산소운동 위주로 했는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니 몸이 예뻐지더라고요.” 이 원장은 전공의 4년 차이던 2018년 2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입상했다. 10월 피트니스스타 광명 대회에서 피트니스모델 1위를 차지했고, 바로 이어진 피트니스스타 대전 대회에서 피트니스모델 1위, 비키니모델 톨 부분 1위, 그랑프리 2위를 차지했다. 유산소 운동으로 살을 뺀 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입힌 몸매가 빛을 발했다. 이 원장은 전공의 3년 차 때인 2017년에는 필라테스 자격증도 획득했다. “재활의학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필라테스에 관심이 갔어요. 재활에서 필라테스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통증 환자들의 경우 제게 ‘필라테스 해도 되나요?’ ‘헬스 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잘 알고 있어야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배웠습니다.” 이 원장은 전공을 정할 때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다이어트 관련 분야를 택하려고 했다. “다이어트 관련 과를 지켜봤는데 전반적인 건강을 관리하는 가정의학과, 지방 흡입하는 성형외과, 위 절제술하는 외과 등이 있었어요. 제가 전공을 고민할 무렵 가수 신해철 씨기 위절제술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 큰 이슈가 됐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위절제술을 해도 다시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위는 커지고…. 수술 하고도 100kg 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방향하고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재활의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이 원장은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억제제도 먹어봤다. 하지만 어차피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운동으로 계속 관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 이 원장은 다이어트 요요현상이란 표현을 싫어한다. “다이어트는 평생 지켜야 할 생활습관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본 결과 어느 기간 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생활습관을 잘 지켜 관리가 되면 살이 빠지고, 관리가 안 되면 살이 찌는 것입니다. 평생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죠. 전 지금도 좀 관리 안하면 체중이 늘고 관리하면 빠집니다. 결국 본인 의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원장은 다시 한번 개인적인 생활 습관에 따른 지속적인 관리를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움직이고 적당히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직업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다보니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먹는 시간도 다 다릅니다. 결국 건강을 위해 먹는 시간과 운동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개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의지 속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효율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장은 워낙 오랫동안 비만으로 살아와 체중을 뺐어도 살 처짐 현상은 있다고 했다. 그는 “운동을 많이 해서 좋아지긴 했지만 특정 부위는 아직 살 처짐 현상이 있다. 그렇다고 수술할 정도는 아니다. 계속 운동으로 처짐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2018년 이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전공의과정을 마치고 석사과정, 펠로우십까지 하다보니 시간이 없었고 지난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전 브레인요양병원으로 갔는데 코로나가 터졌죠. 요양병원은 정부에서 특별 관리해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백신 접종이 끝나 좀 여유로웠는데 3주 전까지만 해도 주 2회 코로나 검사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하는 홈 트레이닝을 하거나 병원 집무실에서 개인적으로 운동했죠. 지금은 피트니스센터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는 9월 대회 출전을 위해 이른바 ‘시즌(보디빌딩 운동선수들이 집중적으로 운동하는 기간)’에 들어갔다. 병원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운동을 시작해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간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환자들을 위해서다. “대회 출전은 정확하게 운동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제가 몸을 잘 움직일 수 있어야 환자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전 고도 비만이었고 유산소 및 무산소 운동으로 살도 많이 뺐습니다. 대회 출전을 위해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운동하다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은 안전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허리 아픈 사람이 ‘어떤 운동을 해야 하냐’고 질문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운동 전, 운동 중간, 운동 후 통증이 있다면 운동을 멈춰야 합니다. 먼저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통증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해서 되는 동작, 안 되는 동작을 명확히 알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안 아프면 어떤 운동이든 해도 좋습니다. ‘운동하고 아프면 좋은 것이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운동하다 몸을 완전히 망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최근 코로나 19 이후 젊은이들이 운동에 매진하며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게 인기다. “젊은이들이 밖에 나가 에너지를 분출할 기회가 없어 나타난 현상 같아요.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젊음을 한껏 발산해야 하는데 못하니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에너지를 분출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시적이지만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운동 경험은 평생 갑니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진다고 해도 운동하면서 느꼈던 좋은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어 할 겁니다. 저도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다시 출전하려고 했을까요? 운동의 좋은 기억이 있다면 늦게라도 다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이 원장도 운동을 통해 살도 뺐고,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좋은 기억 때문에 계속 운동하고 있고, 평생 운동을 할 마음을 먹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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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세 시대, 마라톤 평생 즐기려면 욕심 버려야”[양종구의 100세 건강]

    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 원장(77)은 연세대 의대 소아과 교수 시절인 1986년 큰 결단을 내렸다. 대학에 들어와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끊고 산을 타기로 한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 더 이상 방치하면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중환자들입니다. 머릿속에 온통 환자들로 가득 차 잠도 제대로 못자고, 담배와 술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몸이 완전히 망가졌더라고요. 담배를 끊겠다고 각오하고 맘먹고 관악산을 올랐는데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서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예과 시절 산악회에 가입해 쉽게 오르던 산이었는데…. 땅을 치며 통곡을 했죠.” 의사로서 자신의 몸을 너무 망쳤다는 데 더 실망스러웠다. 더 독하게 마음먹게 된 이유다. 그 때부터 틈 만나면 산에 올랐다. 집(서울 반포)에 있을 땐 관악산을, 주말에 신촌 병원을 마칠 땐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을 올랐다. 연세의료원 산악회에 가입해 한달에 한번씩 전국의 명산도 찾았다. 1999년엔 세브란스의대 출신들로 세브란스산악회(세산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국내 명산을 다 정복한 뒤엔 일본 후지산과 북알프스, 남알프스, 대만 위산(玉山),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해외 명산도 올랐다. 킬리만자로 등정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8년 킬리만자로에 도전했죠. 그런데 올라가다가 의사로서 자존심이 좀 상했어요. 4000m 정도 산만 도전하다 고산병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고지를 바로 앞에 두고 남기고 포기했습니다. 참나…. 제가 의사였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억울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받기도 힘든 휴가 1주일 냈고 엄청난 경비까지 지불했는데….” 이 원장은 킬리만자로 5895m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전 세계 고산병관련 책자와 논문을 수집해 연구했다. 이 원장 휴대폰 뒷자리 번호가 5895다. 그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2003년 5월 13명의 대원을 다 정상에 올리는 쾌거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술도 2년 끊었죠. 5년 전 혹시나 술 때문에 못 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반에 나서 아침마다 대원들 혈압체크하고 약을 주면서 고산병이 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까지 등반 대원 전원이 다 정상을 밟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2007년 한국산악회가 구성한 실버원정대 주치의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하지만 7000m에서 포기했다. 그는 “다른 원정대 사람들이 죽어나가 겁이 났다. 또 크레바스에 빠지면 죽을 것 같았다. 당시 원정대원 8명 중 2명만 정상에 올랐다”고 했다. 마라톤은 2000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세브란스마라톤 동호회 회장이었던 안영수 약리학과 교수(71)가 “마라톤도 등산만큼 좋다”고 해 마음이 동한 것이다.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등산을 오래 한 터라 혹 풀코스 완주를 못하면 창피할까 혼자서 몰래 훈련하며 풀코스 완주를 준비했다. 2001년 4월 경주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렸다. 2시간 1분. 내심 풀코스는 무난히 달릴 것 같았다. 그해 여름 혼자 풀코스를 4시간 50분 정도에 갈린 뒤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30분에 완주했다. 50대 후반에 처음 풀코스에 도전해 낸 기록으론 수준급이다. 등산으로 달련 된 체력에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산 정상을 정복한 뒤 성취감이 오듯 풀코스를 완주한 뒤에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정말 뿌듯했습니다. 직접 내 다리로 달린 것이기 때문에 100%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등산과 마라톤을 병행했다. 산을 오르고 달리다보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모두 잊을 수 있어 머리가 맑아진다. 특히 마라톤은 달릴 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복잡한 일을 정리하고 향후 어떤 일을 할지도 계획할 수 있다. 외래환자 돌보고, 학생들 가르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지만 연구실에 마라톤화와 운동복을 갖춰놓고 틈만 나면 달렸다. 해외나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는 마라톤 전지훈련을 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2005년 1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의사로서, 등산과 마라톤 하면서 건강엔 자신이 있었는데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해 2월 19일 금강산마라톤, 4월 18일엔 보스턴마라톤에 참가 신청까지 했던 터였다. 1월말 수술한 뒤 두 대회 모두 참가해 완주했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그는 “지금은 무용담처럼 얘기하지만 생각해보면 다소 무모했다. 금강산마라톤에 출전했을 땐 수술하고 꿰맨 곳이 다시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이 원장은 의사이기 때문에 절대 몸을 망칠 정도로 무리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361회나 뛰었고, 100km 울트라마라톤, 한반도 횡단 308km도 완주했지만 관절에 전혀 이상이 없다. 힘들면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종단 622km(전남 해남에서 강원 고성)와 537km(부산에서 임진각)에 7차례 도전했다 모두 중도 포기했다. 2007년 120km에서 그만뒀고, 2008년 100km, 2009년 400km, 2011년 365km, 2012년 167km, 2013년 330km, 2014년 169km에서 각각 포기했다. 그는 “일단 시작한 것이라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계속 달릴 경우 다치는 것은 고사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자칫 정신줄을 놓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과감히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했다. 국토종단 및 횡단 울트라마라톤은 사실상 혼자 달려야 해 밤엔 교통사고 사망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200km 울트라마라톤도 도전했다가 100km에서 포기했다. “60세가 다 돼 마라톤에 입문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즐기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도전하기에 저도 도전은 했지만 힘들면 포기합니다. 제 주변에 기록과 완주 횟수에 집착하다 몸이 망가진 사람이 많아요. 마라톤 풀코스를 1000회, 2000회 넘게 완주하면 뭐합니까. 무릎 연골과 관절에 이상이 생겨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라톤 시작한다고 했을 때 후배 정형외과 의사들이 ‘선생님 언제 오실 거예요?’라며 농담했는데 아직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100세 시대, 마라톤을 평생 즐기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원장은 특히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도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 48km도 해봤고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45km도 해봤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산을 오르내리는 게 운동이 많이 되고 좋긴 하지만 내리막 달리는 것은 무릎 등 관절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하더라도 정말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려야 합니다.” 이 원장은 마라톤으로 모교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2019년 전주고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문들과 전주시 주변 100km를 달리고 1km=1만 원, 100만 원의 장학금을 냈다. 2022년엔 졸업 60주년을 맞아 60km를 달리고 60만 원을 장학금으로 낼 계획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퍼지면서 대회 출전을 멈추고 집 근처(서울 신촌) 연세대와 이화여대 캠퍼스, 안산을 달렸다. 올해 코로나 19가 좀 누그러지면서 4월과 5월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풀코스를 2번 달렸다. 최고기록은 3시간45분이지만 지금은 5시간을 훌쩍 넘긴다. 힘들면 쉬면서 물 한잔 마시고 천천히 달린다. 이 원장은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미국대륙 4500km 횡단, 그리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한창 마라톤에 빠졌을 때 미국대륙 횡단을 맘속에 두고 있었는데 벌써 80세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현재론 목표일뿐입니다. 목표가 있어야 사는 이유도 있으니까요. 일종의 버킷리스트라고 보면 됩니다. 에베레스트는 2007년 오르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욕심을 버려야 평생 운동을 즐길 수 있다”며 “지금 현재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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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마라톤, 힘들면 미련 없이 완주 포기… 즐겨야 평생 달려요”

    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 원장(77)은 등산과 마라톤으로 건강하고 즐거운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세대 의대 소아과 교수 시절인 1986년 심한 스트레스로 몸 상태가 악화되자 담배를 끊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 마라톤도 즐기고 있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중환자이다. 머릿속에 온통 환자들로 가득 차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담배와 술로 스트레스를 달래다 보니 몸이 망가졌다. 맘먹고 관악산을 올랐는데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서 중도에 포기했다. 대학 예과 시절 산악회에 가입해 쉽게 오르던 산이었는데….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산에 올랐다. 관악산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등 가까운 산을 올랐다. 연세의료원 산악회에 가입해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의 명산도 찾았다. 1999년 연세대의대 출신들로 세브란스산악회(세산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국내 명산을 다 정복한 뒤엔 일본 후지산과 북알프스, 남알프스, 대만 위산(玉山)산,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해외 명산에도 올랐다. 마라톤엔 2001년 입문했다. 세브란스마라톤동호회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 2000년부터 “등산만큼 마라톤도 좋다”고 해 마음이 동했다. 등산을 오래 한 터라 혹 풀코스 완주를 못 하면 창피할까 봐 혼자서 몰래 훈련하며 준비했다. 2001년 4월 경주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렸고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30분에 완주했다. 그는 “산 정상을 정복한 뒤 성취감이 오듯 풀코스를 완주한 뒤에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정말 뿌듯했다. 직접 내 다리로 달린 것이기 때문에 100%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등산과 마라톤을 병행했다. 산을 오르고 달리다 보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모두 잊을 수 있어 머리가 맑아진다. 특히 마라톤은 달릴 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복잡한 일을 정리하고 향후 어떤 일을 할지도 계획할 수 있다. 외래환자 돌보고, 학생들 가르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지만 연구실에 마라톤화와 운동복을 갖춰 놓고 틈만 나면 달렸다. 해외나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는 마라톤 전지훈련을 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2005년 1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의사로서, 등산과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엔 자신이 있었는데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해 2월 19일 금강산마라톤, 4월 18일엔 보스턴마라톤에 참가 신청까지 했던 터였다. 1월 말 수술한 뒤 두 대회 모두 참가해 완주했다. 스스로도 대견한 정신력이었다. 그는 “지금은 무용담처럼 얘기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소 무모했다”고 회상했다. 이 원장은 의사이기 때문에 절대 몸을 망칠 정도로 무리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361회나 뛰었고, 100km 울트라마라톤, 한반도 횡단 308km도 완주했지만 관절에 전혀 이상이 없다. 힘들면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종단 622km(전남 해남에서 강원 고성)와 537km(부산에서 임진각)에 7차례 도전했다 모두 중도 포기했다. 최대 400km까지 달렸다. 200km 울트라마라톤도 100km에서 포기했다. 그는 “60세가 다 돼 마라톤에 입문했기 때문에 즐기는 데 초점을 둔다. 도전은 하지만 힘들면 포기한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보면 마라톤 풀코스를 1000회, 2000회 넘게 완주한 사람들이 있는데 몸이 망가진 경우가 많다. 기록과 완주 횟수에 집착하다 무릎 연골과 관절에 이상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 100세 시대, 마라톤을 평생 즐기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지고 마라톤 대회가 없어지면서 집 근처(서울 신촌) 연세대와 이화여대 캠퍼스, 안산을 달렸다. 올해 코로나19가 좀 누그러지면서 4월과 5월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풀코스를 2번 달렸다. 최고기록은 3시간45분이지만 지금은 5시간을 훌쩍 넘긴다. 힘들면 쉬면서 물 한 잔 마시고 천천히 달린다. 그는 “과유불급(過猶不及), ‘마라톤 장수’는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다시 강조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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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번 수술로 만신창이, 백대명산 오르자 놀라운 기적이…[양종구의 100세 건강]

    2016년 9월 20일 새벽 4시 30분. 무작정 설악산으로 향했다. 남설악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들머리에 도착하자 오전 7시 40분. 아직 해가 솟지 않는 어스름 새벽이었다. 안개가 드리워진 ‘묵언수행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니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지는 어스름에서 벗어나 빛의 입자들이 흠뻑 스며들며 밝아지니 아름다운 빛깔의 경연장이 됐다. 이름 모를 아름다운 산꽃들은 향기를 풍기며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몸이 힘들 무렵 새소리 물소리가 천상의 교향곡을 울려주고 살랑대는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주었다. 청량한 공기는 내 허파를 채웠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신비했다. 내육신은 지쳐가고 있었지만 내 정신 속에는 무엇인가 뿌듯하게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어느덧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 올랐다. 평생 불가능해보였던 대청봉에 오른 것이다. 도서출판 청송재 장종표 대표(66)는 4차례의 수술로 만신창이기 된 몸을 대한민국 백대명산을 오르며 건강하게 되돌려 놨다. 군대에서 맹장이 터져 복막염 직전까지 갔고, 이어 목과 신장암, 간암 수술이 이어졌다. 맹장 수술 이후는 모두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에 매진하다 몸 관리를 못해서 얻은 병이었다. 1992년 초 급성 간염이란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관리를 잘 했으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14년 전 신장암, 그 4년 뒤 간암으로까지 이어졌다. 장 대표는 2014년 말부터 한강변 걷기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수술로 몸을 좀 추스른 뒤 건강을 위해 한강변을 걸어 다니고 2013년부터 간간히 산도 오르고 있었는데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몸이 더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묵언수행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나홀로 걷고 또 걸으면서 자연 속으로 다가가 자연의 품에 안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4계절 가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녔다. 2016년 초에는 북한산 둘레길 71.8km 묵언수행에 나섰다. 21개 코스로 나뉜 북한산 둘레길을 주말과 공휴일에 도전해 8회에 걸쳐 마쳤다. 북한산 둘레길은 한강변하고 또 달랐다. 아름다운 기암괴석, 기송괴목을 만났다.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보니 훨씬 힘이 들었지만 산속을 걷다보면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좋았다. 이때 얼토당토않은 일이 벌어졌다. “2016년 6월 동생의 아내가 건강검진 차 수면 위내시경 시술을 받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 3개월간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의료사고를 입증하느라 뛰어다녔더니 몸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어요. 의료사고 입증 자료도 어느 정도 확보해서 그해 9월 설악산으로 떠난 것입니다.” 자칭 약골이었던 장 대표는 대청봉에 오르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학창시절부터 약골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체력장 때 1000m 기록이 기준보다 1분이 늦어 4점 깎일 정도였죠. 산을 천천히 오르긴 했지만 대청봉을 5시간 만에 오를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 때 ‘그래 이것이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다 오르자’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 대표는 ‘나홀로 산행’을 택했다. 체력이 약해 친구들과 함께 가면 민폐가 된다는 생각에 혼자 산을 탔다. ‘묵언수행’은 혼자서 하는 산행이라는 의미도 있다. 혼자 가면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조용히 산행만하는 수행과 같다. 2013년부터 2016년 9월 20일 이전에 대한민국 산림청 선정 백대명산 5개를 올랐지만 그날 설악산을 오른 것부터 본격적으로 백대명산 정복에 나서기로 했다. 몸은 물론 정신 건강에 등산은 최고였다. 나홀로 산행은 혹 사고가 나면 위험할 수 있다. “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는데…. 죽기야 하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올랐어요. 암도 이겨냈는데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각오로 올랐죠. 제 운명을 믿은 것입니다. 강원도 백운산에 오르다 멧돼지도 만났죠. 강원도 두타산에 오를 때는 눈이 40cm가 쌓였지만 혼자 올라갔다 왔죠. 그랬더니 산을 지키던 사람이 ‘혼자 갔다 왔냐? 여긴 사냥개 유기견이 많아 위험하다. 잘못하면 잡아먹힌다’고 하기도 했죠. 하지만 어떤 동물도 기가 센 사람은 건들지 않습니다. 전 그 때 살고자 독이 올랐을 때였고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등산이 왜 좋았을까. “정상에 오르면 몸은 힘들지만 정신이 해방된 느낌이 듭니다. 성취감, 정복감 등도 있죠. 산은 저를 감싸줍니다. 자연의 품속에 안기는 느낌이랄까. 어머니 품속처럼 정말 편안해요. 제가 밖에 나가면 잠을 잘 못 자는데 전날 20km를 비를 맞고 걸어서 힘들지만 다음날 산행을 1~1.5km 하고 땀이 나면 곧바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집니다.” 100대 명산 완등 중 68번을 혼자 올랐고 나머지는 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가 백대명산을 오른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들이 함께 하지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동반 등반했다. 그는 “그래도 전 늘 제일 뒤에서 천천히 올랐습니다”고 말했다. 당초 2년 안에 백대명산을 완등하려 했지만 좀 늦어졌다. 제대로 시작한 게 2016년 9월 20일이고 완등한 게 2018년 12월 1일 이니 2개월 정도 늦어졌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뒤 자신감을 얻으면서 유럽 알프스 3대 미봉(융프라우, 마테호른, 몽블랑)과 히말라야 산맥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 등을 오르느라 늦어졌어요. 함께 가자는 친구들의 등살에 일정을 조율해야 했던 것도 늦어진 이유에 한 몫 했죠.” 장 대표는 대한민국 백대명산을 오른 스토리를 ‘백폭 진경산수화 속 주인공이 되다’는 책으로 엮었고 최근 ‘백대명산 묵언수행’으로 개정판도 냈다. “백대명산을 백폭 산수화로 비유했는데 실질적으로 산속에 들어가면 1만, 10만 폭의 산수화가 펼쳐집니다. 대한민국 산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떤 산이 가장 좋았을까? “어느 산이 더 좋으냐는 질문은 산에 대한 실례입니다. 우리나라 산은 다 좋습니다. 동네 뒷산도 아름답습니다. 외면만 아니라 그 내면을 쳐다보면 무한한 아름다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작은 산과 큰 산의 차이라면 큰 산이 좀 더 장엄할 따름입니다.” 2019년 알프스 돌로미테 트레킹을 하다 히말라야 14좌를 오른 한왕용 대장(55)을 만났고 그 때부터 함께 트레킹을 다녔다. 그해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5643m에도 함께 다녀왔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발병하면서는 맘 맞는 지인들 소수와 산에 오르고,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다시 나홀로 산행을 많이 하고 있다. 집(서울 잠실)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자주 오르고 북한산 등 수도권 산에도 오른다. 한강과 석촌호수 주변을 걷기도 한다. 이제 걷거나 산에 오르지 않으면 몸이 먼저 안다. 움직여 달라고. “최근 병원에 갔는데 아직은 전혀 문제없다고 하네요. 간암이면 술 마시면 안 되는데 막걸리 한잔은 마십니다. 일종의 정상주라고 할까요. 산 정상에 오르면 그 기쁨에 한잔은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마시지 않습니다.” 장 대표는 산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고 믿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산행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백대명산을 다시 오르고 해외 명산도 오르겠다고 했다. 그는 “산을 오른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에게는 산이 생명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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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아까워 강행하는 도쿄올림픽… 후대에 남겨줄 유산 있을까[수요논점/양종구]

    《올 4월 전 세계 대학 부설 올림픽연구센터 온라인 세미나가 열렸다. 42개 연구센터 중 30개 센터장들이 참여했다. 토론 주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어젠다 2020에 따른 스포츠를 통한 사회 발전이었다. 당시 참여자들은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는데 전반적으로 개최 실익이 전혀 없다는 쪽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홍석표 강원대 올림픽연구센터장(스포츠과학부 교수)은 “최소 인원 참가와 해외 무관중 등 반쪽짜리 올림픽이 된 데다 조만간 유명 스타 및 선진국들이 보이콧을 시작할 수도 있다며 도쿄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전했다.》정치-상업화에 무너진 올림픽 가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돼 치르는 2020 도쿄 올림픽의 개막(7월 23일)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본 국민들과 아사히신문, 해외 유수 언론들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고 하지만 IOC와 일본 정부는 “취소는 없다”며 강행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로선 도쿄 올림픽 성공을 통해 9월 재집권을 달성하겠다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코로나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도 올림픽 개최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7월 초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고, 7월 말까지 고령자에 대한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그리고 도쿄 올림픽 성공 개최가 시나리오였는데 코로나 확산이 멈추지 않자 올림픽 개최 반대 등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스가 총리는 7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37%로 역대 최저치 지지율이란 성적표를 받았다. 올림픽을 취소할 경우 일본은 18조 원, IOC는 방송 중계권 수익에서 3조∼4조 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도 올림픽 강행의 주요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IOC는 관중 없이 TV 중계만 해도 되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굳이 취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도쿄 올림픽 개최 강행을 IOC 상업화의 극치로 보는 대목이다. 홍 교수는 “올림픽은 전 세계인이 참여해 평화를 추구하는 스포츠 제전이다. 지금의 IOC는 올림픽이 코로나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데도 돈벌이에만 집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비판했다.유산보다 IOC-개최국 이익 우선 IOC는 도쿄 올림픽 기간에 선수들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본인 책임’이라는 서약을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라나 하다드 IOC 최고운영책임자가 지난달 말 제네바에서 열린 온라인 포럼에서 선수들의 코로나 감염 시 주최자는 면책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받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방역 대책을 정리한 책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참가자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백신 접종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하루 1000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쏟아지고 있다. 자칫 올림픽이 코로나 확산을 가속화시킬까 우려해 일본 국민들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가 선수들의 안전에 대한 확신을 주기는커녕 감염에 따른 책임을 선수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행태다. IOC와 일본이 올림픽의 주인공인 선수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정치적 경제적 잇속만 차리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치러진 도쿄 올림픽은 후대에 어떤 교훈이 되는 레거시를 남겨 줄 수 있을까.올림픽은 더 이상 영광이 아닌 족쇄 2018 평창 겨울올림픽, 2020 도쿄 여름올림픽,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3번 연속 열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시아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일까. 아니다. 과거와 같이 선진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의사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개최에 열정적이었던 한국,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일본,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중국 등은 개최 목표가 확실했지만 다른 나라는 개최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2016년까지 개최된 여름 및 겨울 올림픽 50회(전쟁 취소 제외) 중 아시아 개최는 단 5번이었다. 모두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이 개최했고 2016년만 남미 브라질에서 열렸다. IOC는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2015년 큰 혼란을 겪었다. 오슬로(노르웨이) 등 유럽 도시들, 아시아 2개 도시(중국 베이징, 카자흐스탄 알마티)가 개최를 희망했다가 유럽 도시들이 천문학적인 개최 비용과 주민 반대 등으로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다. IOC가 최종으로 오슬로, 베이징, 알마티로 좁혔는데 막판에 오슬로까지 개최를 포기하면서 결국 베이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IOC는 향후 개최 도시 선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2019년 ‘개최 7년 전 개최 도시 선정’이란 올림픽헌장을 ‘언제든 적당할 때’로 바꿨다. 그리고 1924년 이후 100주년 기념 개최를 희망한 프랑스 파리에 2024년 여름올림픽을, 파리와 경쟁하려고 했던 로스앤젤레스(미국)에 2028년 여름올림픽 개최권을 일찌감치 떠넘겼다. IOC는 개최국 도시 분산 개최는 물론이고 국가 간 도시 분산 개최까지 가능하게 하고, 개최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기존 시설 활용도 강조하고 있지만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국가와 도시는 줄고만 있다. 정치적 중립 강조한 ‘올림픽 정신’ 흔들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에는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올림픽이 치러지는 장소, 경기장 등에서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것이다.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IOC 자체가 정치적인 행보를 많이 보였다. 사실상 물 건너갔지만 2032년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에 대해 IOC도 적극적이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을 노린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남북 관계가 좋을 때인 2018년 평양까지 방문했을 정도다. 하지만 북한이 돌변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지 않자 올 초 2032년 여름올림픽 우선 협상 도시로 브리즈번(호주)을 선택했다.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도 IOC는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시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항의하며 IOC의 중재를 부탁했지만 묵묵부답으로 방관하고 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땐 일본의 반발에 남북한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빼라고 했던 IOC였다. 경제대국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다는 행보다. 과거 올림픽은 정치에 유독 휘둘렸다. 독일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이데올로기 확산의 기회로 이용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60여 개국이 보이콧해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졌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도 동구권의 보복 보이콧으로 반쪽 올림픽이 됐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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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체건강이 곧 정신건강…자전거로 갱년기 극복”[양종구의 100세 건강]

    2016년 말 무작정 산악자전거(MTB)를 샀다. 그해 초부터 불거진 크고 작은 일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황현실 씨(52)는 자전거 타며 갱년기를 슬기롭게 보낸 뒤 자전거 마니아이자 전도사로 거듭났다. “결혼하기 전에는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아이 낳은 뒤 일하고 살림하느라 바빠서 잊고 살았죠. 출산 후유증으로 허리 디스크가 생겨 통증 억제 수단으로 헬스클럽에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본적인 건강만 챙기는 수준이었어요.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 등으로 너무 힘들어 돌파구를 찾았죠. 처녀 때처럼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자전거 붐이 한창 일고 있었어요. 평생 자전거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 MTB를 샀습니다.” 도로 사이클은 바퀴가 가늘어 위험하다는 생각에 MTB를 구입했다. 자전거 교실을 찾아 배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혼자 자전거에 올랐다. 브레이크와 기어도 구분하지 못해 숱하게 넘어지면서 타는 법을 익혔다. MTB를 1년 정도 탄 뒤 도로 사이클로 바꿨다. 사이클이 날렵하고 자세도 잘 나온다. 최근 젊은층들이 사이클로 몰리는데 사이클 타는 멋진 모습의 사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고 싶은 욕구 때문인 측면도 있다. 사실 황 씨도 처음부터 사이클 타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서 MTB를 택했던 것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사이클을 타고 싶었어요. MTB는 나이 좀 들거나 어린 아이들이 주로 타죠. 사이클을 타야 속된 말로 ‘간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MTB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사이클을 타고 싶어 바꿨어요.” 자전거는 신세계였다. 페달만 밟으면 가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있었다. 50km, 100km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는 볼 수 없는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할까요. 오롯이 내 두발로 페달만 밟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가다 냇가가 나오면 들고 건너서 가도 되고, 가다 힘들면 쉬고, 여기저기 유명한 맛 집도 찾아다니고…. 너무 좋았어요.” 사실 허리가 좋지 않아 자전거 타는 것을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허벅지와 복근 등배근육 등 코어 근육을 많이 써 오히려 허리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됐다. “2017년 8월 저혈압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운동을 시작했지만 스트레스가 가중되다보니 기절을 했죠. 방문 고리에 부딪혀 왼쪽 눈 근처에 큰 상처가 나 유혈이 낭자했었죠. 당시 피가 흐리지 않았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 때부터 건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2018년부터 등산도 즐겼다. 불교 신자라 평소 사찰에 가기 위해 산행도 많이 했는데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등산에도 빠지게 됐다. 자전거 동무들이 산악회 회원들이라 자주 산을 찾게 된 것이다. 산악회 정기 등산보다는 맘 맞는 회원들과의 산행을 즐겼다. “서울 근처에 산이 많잖아요. 그냥 시간 되면 북악산에 올라 인왕산 찍고 오거나, 북한산 일부 구간을 걸어요. 짧고 굵게 산행하는 것을 좋아해요. 하루 종일 타고 막걸리 마시는 분위기는 싫어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되면서는 산행보다는 사이클에 집중하고 있다. 교육업을 하고 있는 황 씨는 주 3~4회 사이클을 탄다. 주중엔 서울 한강으로 나가 50~60km를 달린다. 주말엔 경기 양평 등 수도권 명소를 찾아 100km 이상 질주한다. 페달을 힘차게 밟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이마에 땀이 맺히는 만큼 쌓인 정신적 스트레스는 날아갔다. 올 3월부터는 자전거 교육 및 콘텐츠 사업을 하는 케이벨로(kvelo. www.kvelo.co.kr)를 찾아 제대로 자전거를 공부하고 있다. 황 씨는 “사이클을 제대로 타려면 클릿슈즈를 신어야 한다. 페달과 슈즈를 연결해주는 클릿을 넣고 빼는 것은 혼자 배우기 힘들어서 케이벨로를 찾았다. 클릿슈즈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봤는데 케이벨로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당초 클릿슈즈 사용법만 배우려했는데 자전거 안전의 기본까지 배우며 또 다른 즐거움을 얻었다. 그는 “솔직히 독학으로 자전거를 배우다보니 상황에 따라 불안한 측면이 있었는데 안전수칙을 배우고 나니 심적으로 안정이 됐고 안 보이던 풍경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전거교실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에도 있고 구청별로 개설한 곳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 이용률이 높진 않다. 케이벨로는 수준별 자전거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황 씨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자전거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고 했다. 헬멧 등 기본 장비를 갖추지 않는 것은 물론 한손에 휴대폰을 들고 따릉이를 타거나, 연인끼리 두 줄로 타다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와 충동사고가 난다. 어르신들은 막걸리 한잔 하고 비틀거리다 넘어지기도 한다. 그는 “운전면허 취득 때 교육시키듯 자전거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씨는 갱년기를 앞둔 여성들에게 자전거를 권유했다. 그는 “특히 전업주부들의 경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집안 일만 몰두하다 애들이 성장해 품 밖으로 나가면 허무해지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 때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운동을 취미로 가지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살다 폐경기와 갱년기가 맞물리는 시점에 건강도 챙기며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자전거라는 얘기다. 그는 “자전거를 사야하고 배워야 하는 등 약간의 진입 장벽은 있다. 하지만 취미로 어떤 것을 시작해도 초반엔 투자가 필요하다. 자전거는 한번 투자하면 추가 비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트레스 받을 때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리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운동을 하면 뇌신경 성장 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돼 뇌가 각종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신체 건강이 곧 정신 건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또 100세 시대에 사이클 같은 운동이 취미가 된다면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황 씨는 결혼하기 전에는 ‘운동 본능’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복싱과 유도 등 격투기도 했고 테니스와 스쿼시, 탁구, 축구, 농구, 배구도 했다. 결혼하면서 생업과 살림 때문에 중단했던 것이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일찌감치 체험했죠. 운동은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그 선택을 자전거로 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운동 본능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8년, 2019년 유방암환자 후원 핑크런 마라톤대회 10km에 출전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올해 열리면 다시 출전할 계획이다. 자전거는 평생 탈 생각이다. “이제 제 인생을 살 겁니다. 그동안 일과 살림에 치여 제 자신에 대해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젠 저를 위해 투자할 겁니다. 이젠 제 인생을 즐길 겁니다. 건강한 취미, 자전거가 있어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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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타며 스트레스 훨훨… 갱년기 탈출에 최고”[양종구의 100세 건강]

    황현실 씨(52)는 2016년 말 산악자전거(MTB)를 샀다. 그해 초부터 불거진 크고 작은 일 탓에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털어낼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다. 결혼 전 유도 탁구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던 그는 아이를 낳은 뒤 일하고 살림하느라 ‘운동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왔다. “살기에 바빠 허리 디스크 통증 완화를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본적인 건강만 챙기고 있었죠.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 등으로 너무 힘들어 돌파구가 필요할 때 자전거 붐이 일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전거 교실은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혼자 자전거에 올랐다. 브레이크와 기어도 구분하지 못해 숱하게 넘어지면서 타는 법을 익혔다. MTB를 1년 정도 탄 뒤 도로 사이클로 바꿨다. 사이클이 날렵하고 자세도 잘 나온다. 최근 젊은층은 멋진 모습의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싶은 욕구에 사이클로 몰리고 있다. 사실 황 씨도 처음부터 사이클을 타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 MTB를 택했다. 그는 “MTB로 타는 법을 배운 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사이클을 타고 싶어 바꿨다”고 했다. “자전거는 신세계입니다. 페달만 밟으면 가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있죠. 50km, 100km 거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는 볼 수 없는 풍광도 감상할 수 있어요.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할까요. 여기저기 유명한 맛집도 찾아다니고요.” 교육업을 하고 있는 황 씨는 주 3, 4회 사이클을 탄다. 주중엔 서울 한강으로 나가 50∼60km를 달린다. 주말엔 경기 양평 등 수도권 명소를 찾아 100km 이상 질주한다. 페달을 힘차게 밟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이마에 땀이 맺히는 만큼 쌓인 정신적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3월부터는 자전거 교육 및 콘텐츠 사업을 하는 케이벨로(kvelo)를 찾아 자전거 공부를 하고 있다. 황 씨는 “사이클을 제대로 타려면 클릿슈즈를 신어야 한다. 페달과 슈즈를 연결해주는 클릿을 넣고 빼는 것은 혼자 배우기 힘들어 케이벨로를 찾았다”고 말했다. 당초 클릿슈즈 사용법만 배우려 했는데 자전거 안전의 기본까지 익히며 또 다른 즐거움을 얻었다. 그는 “솔직히 독학으로 자전거를 배우다 보니 상황에 따라 불안한 측면이 있었다. 안전수칙을 배우고 나니 심적으로 안정됐고 안 보이던 풍경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자전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고 했다. 헬멧 등 기본장비를 갖추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따릉이를 타거나, 연인끼리 나란히 타다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와 충돌 사고가 난다. 어르신들은 막걸리 한잔하고 비틀거리다 넘어지기도 한다. 그는 “자전거도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씨는 갱년기를 앞둔 여성들에게 자전거를 권했다. 그는 “전업주부들의 경우 갱년기 때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집안일에만 몰두하다 애들이 성장해 품 밖으로 나가면 허무해지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때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운동을 취미로 가지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살다 갱년기가 왔을 때 건강도 챙기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자전거라는 얘기다. 그는 “자전거를 사야 하고 배워야 하는 등 약간의 진입장벽은 있다. 하지만 취미로 어떤 것을 시작해도 초반엔 투자가 필요하다. 자전거는 한번 투자하면 추가 비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트레스 받을 때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리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운동을 하면 뇌신경 성장 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돼 뇌가 각종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신체건강이 곧 정신건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또 100세 시대에 사이클 같은 운동이 취미가 된다면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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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수구조 대장이 본 ‘中 죽음의 마라톤’… 예방하려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5월 22일 중국 북서부 간쑤성에서 열린 100㎞ 산악마라톤 대회 도중 21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고산지대에서 열린 산악마라톤 대회에서 우박을 동반한 강풍과 폭우가 겹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대부분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산악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최근 등산 인구도 부쩍 늘었는데 준비 없이 산행하다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치상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대장(55)을 통해 안전한 산행에 대해 들어봤다. 이 대장은 1984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산악연맹에 가입해 산을 탔다. 고 박영석 대장하고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5개를 올랐고, 2004년 남극점 정복을 함께 한 산악인이다. 박 대장은 2011년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신 루트 개척에 나섰다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대장은 회사 생활을 하다 2019년 2월 경찰산악구조대가 없어지고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구조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먼저 트레일러닝에 대해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산악마라톤, 즉 트레일러닝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산은 30년 넘게 올랐습니다.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후배들을 통해서 들은 바에 따르면 결국 제대로 준비하느냐 안 하느냐가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유명한 국제대회는 준비물을 제대로 검사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출전을 못하게 합니다. 배낭, 침낭, 보온 재킷, 간식, 음료수, 스틱…. 그 이유는 갑자기 기상이 악화될 때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최소한의 안전 장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에 대한 욕심으로 기본 준비물도 없이 대회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대회 도중 기상이 악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 대장은 ‘기본’을 강조했다. 산에선 산에 적합한 신발을 신어야 하고, 저체온증에 대비해 보온 재킷도 필수다. 스틱과 무릎 보호대 등은 부상을 막을 수 있는 장비다. 간식, 음료수도 있어야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산을 잘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도로를 달리다 산으로 오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산에 와서 무턱대고 빨리 가는 것에 우선을 두다보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목에 맞는 장비가 있듯 산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특히 북한산 같은 돌산은 등산화도 바위에 잘 밀착하는 것을 신어야 합니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악 전문가들은 항상 비가 올 것에도 대비를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비가 오면 산에는 안 가는 게 맞습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호우주의보 이상의 기상특보가 발령되면 주요 탐방로를 차단해 입산을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산에 오르다 조난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새벽 4시 이전, 오후 5시 이후 입산 금지를 어기고 오르다 조난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규정을 어기는 것도 잘못됐지만 모두 헤드랜턴 등 기본 장비를 갖추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고다. 각종 자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발병 이후 등산 인구가 급증했다. 사고도 많다. 북한산 전체적으로 보면 하루 평균 1건. 등산객이 많은 주말과 휴일에 많이 발생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실직한 중장년층이 대거 산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등산인구가 늘었죠. 그런데 20여 년 전과 다른 점은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젊은 남녀들이 체력만 믿고 아무런 준비 없이 와서 황당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체 국립공원 사고의 50%가 북한산에서 일어나고, 북한산 사고의 70%가 일반 국민들이라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사고가 등산화를 안 신어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이른바 실족, 낙상 사고다. “준비만 제대로 하고 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많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고 헬리콥터를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죠. 물마시고 좀 쉬면되는데 근육 경련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겁을 먹고 구조요청을 한 것입니다. 가서 응급처치 해주고 나면 그냥 웃음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대장은 “등산화도 아닌 스니커스를 신고 숄더백, 허리 색만 하고 500cc PET병 생수 하나만 들고 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보면 조금만 올라도 물집이 잡히는 등 발이 불편해지고 물도 없으니 근육 경련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산행하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2020년 사고를 분석해 안전사고저감대책으로 특수산악구조대에서 백운대를 탐방하는 등산객들에게 무릎보호대와 스틱을 대여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젊은 등산객들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문제점은 ‘경쟁’과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 인증샷’ 촬영이다. “친구들과 와서 경쟁하듯 산을 오르다 실족, 낙상 등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동반자가 있을 경우 등산의 기본은 가장 체력이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천천히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여유를 가지고 안전하게 풍광을 구경하면서 오를 수 있습니다. 등산은 경쟁이 아닙니다.” SNS에 올리려고 특정 위치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3주 전 쯤 북한산성 쪽에서 사진을 찍다 실족해 헬리콥터에 실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분은 사망했습니다. 백운대 오리바위 등 특정 위치에 올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만 보면 아주 멋집니다. 그러다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하나에 목숨을 거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 대장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산은 경치도 구경하고 운동도 되기 때문에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오르지 말고 미리 산에 대한 정보를 얻어 사고예방에 신경을 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장비를 잘 갖췄다면 등산 관련 앱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북한산은 쉽게 올 수 있는 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최고 높은 봉우리가 836m밖에 안되고 전철, 버스 타고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산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산은 흙 밟을 일이 거의 없는 바위산, 속칭 악산입니다. 조심히 타야 사고도 없습니다.” 최근엔 운동이 생활화되고 있어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등산을 하다 심장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산행은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혈액 공급을 필요로 하는데 심혈관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부하는 심장 기능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평소 건강관리 및 산행 전 워밍업과 스트레칭 체조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산에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한편 트레일러닝(Trail-running)으로 불리는 산악마라톤은 당초 산길처럼 포장되지 않는 길을 달리는 스포츠였다. 언덕을 포함한 들이나 초원 등 언덕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험한 산을 달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대자연 속에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대명사가 됐다. 마라톤에서 파생한 트레일러닝도 한계에 도전하면서 희열을 느끼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에 맞춘 스포츠로 변한 것이다. 남들은 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란 점도 사람들을 끌어 들리는 요소다. 하지만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도전할 의미는 없다. 폭우 등 천재지변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최근엔 인공위성과 과학의 발달로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트레일러닝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아직 큰 인명사고는 없지만 산속에서 만나는 폭우는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제대로 장비를 갖추는 게 기본이지만 산악마라톤을 평소 연습할 때도 폭우가 예상되면 산속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의 영역’까지는 넘보지 않는 도전 문화가 새삼 중요해졌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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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서 명예퇴직…아픔 달래려 달리고 달렸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만약 달리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성덕제 씨(59)는 약 4년 전인 2017년 여름을 잊지 못한다.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했다. 해당 기업과 관련된 국제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행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1988년 입사해 30년을 다녔던 회사였다.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매일 나가던 회사를 가지 않으니 갈 데가 없었어요. 시계바늘처럼 돌아가던 일상이 퇴직하면서 태엽이 풀려 멈춰버린 괘종시계 같았습니다. 며칠간 고민을 했죠.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행히 그에겐 달리기가 있었다. 그 무렵 건강이 악화돼 시작했던 달리기를 매일 하며 실직의 아픔을 달랬다. 그는 “절망은 했지만 달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어요. 10km 달리려다 20km 달리고, 20km 달리려다 30km를 달리고…. 그러다보니 울분도 날아가고 침착하게 다른 일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제게 유일한 희망이 달리는 것이었습니다”고 회상했다. 고교시절부터 태권도를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축구와 수영 등을 즐겼던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체력이 좋아지기보다 나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는사람들’이란 울산의 마라톤동호회 회장이 후배였는데 함께 만나 운동을 하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함께 운동해도 될 것 같아 클럽에 가입할 생각으로 운동장 10바퀴를 달렸습니다. 그런데 50대 초반 아주머니를 뒤 쫓아가다 중간에 포기했어요. 물론 천천히 달리면 완주는 했을 텐데…. 페이스를 아주머니에 맞추다 오버한 것이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매일 혼자 열심히 달렸습니다. 한 3개월 달리니 따라갈 수 있었죠.” 인터넷 유튜브 등을 보며 공부도 했다. 동호회 선배들이 “녹아들어서 잘 따라다니면 된다”고 했지만 훈련하고 체계적으로 먹고 회복하고 등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성 씨는 “한 1년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느 순간 몸이 익숙해지면서 쉽게 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울산 동구의 해발 202m 염포산을 달리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마라톤 시작 1년 반쯤 지났을 때 벚나무로 터널같이 이어지는 염포산 편도 8km 코스를 왕복했어요.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코스를 달리고 나니 어디든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2018년 4월 영남 알프스 9봉을 지인들과 달렸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울주군, 경남 양산시와 밀양시,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 등 5개 기초자치단체에 몰려 있는 해발 1000m 이상 9개 산군(山群)을 가리킨다. 가장 높은 가지산(해발 1241m)을 비롯해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 등이다. 하루에 다 달린 것은 아니고 2,3일에 걸쳐 달렸다. 지리산에도 올랐고 2019년 2월에 다시 영남 알프스 9봉을 달렸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2019년 한 해에만 3200km를 달렸다. 하루 평균 10km에 가깝다. 올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언택트로 열린 대회에 출전해 처음 풀코스를 달렸다. 언택트 마라톤대회는 거리와 시간을 측정하는 앱을 실행하고 혼자 달린 뒤 대회 홈페이지에 올리는 코로나 19시대의 마라톤 레이스다. 기록은 3시간 59분 16초.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귀촌해 어머니하고 함께 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고향 요양병원을 다니면서 어머니를 모실 심산이었지만 아내가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기업 하청업체 현장 노동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기구를 들고 선배들 밑에서 심부름 하는 일이었다. 평생 사무직으로 일해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터졌고 하청을 받지 못해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한 요양병원에 취직하기도 했다. 처음엔 요양보호사로 들어갔는데 대기업에서 중간 간부까지 했다고 기획실장으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난 대기업 마인드로 디지털시스템을 만들며 일하려고 했고 원장은 뭐든 수작업인 아날로그식으로 운영하려고 해 갈등을 벌이다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뭐든 자신 있게 도전하고 있다. 지금은 고향인 충남 예산의 예당저수지 인근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텔을 직접 운영하며 커피숍과 베이커리 등 시설관리를 해주는 일이다. 그는 “85세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렸다. 어머니 집에서 15분 떨어져 있으니 자주 가 볼 수 있다. 또 예당저수지 주변을 매일 달릴 수 있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새벽 예당저수지 주변을 10~15km를 달리며 성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달리면서 잔병이 사라졌다. 70kg까지 갔던 체중도 60kg으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과거 좀 힘든 일을 하면 피곤했는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해도 거뜬했다. 채식 위주 식이요법을 병행한 그는 올 3월 건강검진에서 혈관 건강지수가 23세 젊게 나왔다. “약 7년 전이죠. 회사 다닐 때 50대 초반이었는데 업무 특성상 술을 많이 마셨어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이불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먹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30년 심마니를 한 사부님을 만나 온갖 약초를 공부했다. 지금까지 캔 산삼만 70뿌리 정도라고. 경옥고와 공진단도 직접 만든다. “단백질과 지방, 단백질 3대 영양소에 비타민과 미네랄까지 5대 영양소를 고르게 먹으면 몸이 또 달라집니다. 전 각종 야채로 청혈주스(피를 맑게 하는 주스)를 만들어 먹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청혈주스까지 마셨더니 혈관건강 지수가 36세로 나와 간호사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달리기는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사람의 나이는 매년 먹는 나이가 있고, 뼈와 심장, 근육, 혈관 등 5가지 나이가 있다. 매년 먹는 나이 외에는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젊게 살수 있다”고 말했다. 여행이든 사업차 출장이든 집 나가면 운동할 수 있는 복장 2벌을 챙겨간다. 어디 가서든 달리기 위해서다. “처음엔 긴 거리를 빨리 달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힘들더라고요.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니 30km를 달려도 편안했어요. 후유증도 별로 없고. 그 때부터 즐기면서 달립니다. 전 1km를 5분40초에서 6분 페이스로 달릴 때 가장 즐겁습니다.” 달리기전 30분 이상 필라테스나 요가도 필수다. 유연성이 좋아야 부상이 없다. 그는 바닥에 앉아 다리 벌려 배가 바닥을 닿는다고 한다. 성 씨의 사연을 들은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매일 자신이 정한 거리와 시간에 달리기를 완주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은 게 현실 삶으로 긍정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직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았지만 달리기는 자기 맘대로 통제하면서 자신감을 축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달리기에서 얻는 성취감이 계속 이어지면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전이 된다. 한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기관리는 물론 대인관리, 사회생활에서도 자신감을 찾아 새로운 영역에서도 잘 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 국내에서는 마라톤 붐이 일었다. 실직의 아픔을 ‘인간 승리’의 드라마인 마라톤을 통해서 극복하는 사람들이 넘쳤다. 참고 인내하고 달리면서 건강도 챙기고 새롭게 도전해 위기를 이겨낸 스토리가 가득했다. 성 씨는 “코로나 19로 실직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달리며 실직의 아픔을 달랬고, 새로운 삶도 개척하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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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실직의 아픔 달래준 달리기… 잔병까지 싹 없애줘”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던 성덕제 씨(59)는 2017년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하게 됐다. 해당 기업과 관련된 글로벌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1988년 입사해 30년간 다녔던 회사였다. “매일 나가던 회사를 가지 않으니 갈 데가 없었어요. 참 절망적이었죠.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던 일상이 퇴직하면서 태엽이 풀려 멈춰버린 괘종시계 같았습니다. 며칠간 고민을 했죠.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무렵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달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어요. 10km 달리려다 20km 달리고, 20km 달리려다 30km를 달리고…. 그때 제게 유일한 희망이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축구와 수영 등을 즐겼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는 사람들’이란 울산의 마라톤동호회 회장이 후배였는데 함께 만나 운동을 하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엔 운동장 10바퀴를 도는데 50대 여성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자존심이 좀 상했다. 그래도 축구할 때마다 선수로 뛰었었는데…. 혼자 열심히 달렸다. 한 3개월 달리니 따라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건강을 위해서 달린 것이라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리산 천왕봉,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9봉을 달리는 등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에도 빠져들었다. 지인 3, 4명과 함께 2, 3일씩 산을 달렸다. 그는 2019년 한 해에만 3200km를 달렸다. 하루 평균 10km에 가깝다. 올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언택트로 열린 대회에 출전해 처음 풀코스를 달렸다. 언택트 마라톤대회는 거리와 시간을 측정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혼자 달린 뒤 대회 홈페이지에 올리는 코로나19 시대의 마라톤 레이스다. 기록은 3시간59분16초. 달리면서 잔병이 사라졌다. 70kg까지 갔던 체중도 60kg으로 줄었다. 과거 좀 힘든 일을 하면 피곤했는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해도 거뜬하다. 채식 위주 식이요법을 병행한 그는 올 3월 건강검진에서 혈관 건강지수가 실제 나이보다 23세 젊게 나왔다. 그는 “달리기는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사람의 나이는 매년 먹는 나이가 있고, 뼈와 심장, 근육, 혈관 등의 나이가 있다. 매년 먹는 나이 외에는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젊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한 뒤 한 대기업의 하청회사에 취업해 현장 노동일을 하기도 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요양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기업 하청회사는 경기 불황으로 하청을 받지 못해 그만뒀고, 요양병원은 기획실장으로 들어갔다가 원장과의 운영 방식 갈등 탓에 나왔다. 하지만 뭐든 자신 있게 도전하고 있다. 지금은 고향인 충남 예산군의 예당저수지 인근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새벽 예당저수지 주변을 10∼15km 달리며 성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성 씨의 사연을 들은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매일 자신이 정한 거리와 시간에 달리기를 완주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은 게 현실 삶으로 긍정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직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았지만 달리기는 자기 맘대로 통제하면서 자신감을 축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달리기에서 얻는 성취감이 계속 이어지면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전이된다. 한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기관리는 물론이고 대인관리, 사회생활에서도 자신감을 찾아 새로운 영역에서도 잘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 국내에서는 마라톤 붐이 일었다. 실직의 아픔을 ‘인간 승리’의 드라마인 마라톤을 통해서 극복하는 사람들이 넘쳤다. 참고 견디고 달리면서 건강도 챙기고 새롭게 도전해 위기를 이겨낸 스토리가 가득했다. 성 씨는 “코로나19로 실직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달리며 실직의 아픔을 달랬고, 새로운 삶도 개척하고 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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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숲길 달리는 ‘트레일러닝’… “새로운 세상 여행하는 기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회사원 박선호 씨(31)는 5월 8, 9일 열린 서울 둘레길 논스톱 트레일러닝 160km 특별 이벤트에서 22시간 32분에 완주해 마스터스 달림이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트레일러닝 대회 운영 및 물품 판매를 하는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가 14명을 대상으로 주최한 레이스에서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2015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열린 서울 둘레길 달리기 이벤트에서 이렇게 빠른 기록은 처음이다. 트레일러닝(Trail-running)은 산과 들, 숲길을 달리는 것이다. ‘트레일(Trail)’의 사전적 정의는 길이지만 특히 산길처럼 포장되지 않은 곳을 주로 말한다. 우리말로는 보통 ‘산악 마라톤’으로 통용 된다. 박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발명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는 트레일러닝 ‘2030 세대’ 중 한명이자 트렌드를 선도하는 선두주자다. 유지성 OSK 대표(50)는 “트레일러닝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속칭 ‘간지난다’고 하는데 등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스피드와 짜릿함에 빠져 드는 것 같다. 그리고 잘 갖춰 입고 달리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 팔로워들의 반응도 뜨거우니 더 빠져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산을 달려본 친구들은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막마라톤과 트레일러닝 대회를 섭렵한 유 대표는 박 씨에 대해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박 씨가 트레일러닝계의 새로운 강호로 떠오르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즐기는 트레일러닝에서도 보이지 않는 자존심 경쟁이 뜨겁다. 박 씨는 이제 트레일러닝 입문 2년 좀 넘었지만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강호들을 위협하고 있다. 박 씨는 2019년 4월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린 코리아 80km에서 15시간 8분으로 15위, 그해 9월 거제 트레일런 100km에서 22시간 11분으로 20대 부분 1위, 그해 10월 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대회 100km 14시간 59분으로 6위를 하는 등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5월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7km)에 동호회 여성 선배인 박정순 씨(62)의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참가해 9시간 18분으로 전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해군장교 시절인 2015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배를 타다 보니 좀 답답했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니 좋았습니다. 심신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온갖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잡생각도 없어집니다. 이왕 시작한 김에 42.195km 마라톤 풀코스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도 달성하고 싶었지만 4년 전 고구려마라톤에서 330(3시간 30분 이내 기록)을 달성한 뒤 도로 마라톤 대회는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불수사도 산악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서울 근교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주로 달리는 동호회다. “동호회 스승이 한 분 계셨습니다. 당시 제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살았는데 매일 아침 회기역에서 그분을 만나 산을 달렸습니다. 처음엔 배봉산에서 주로 달렸고 체력이 붙으면서 불수사도북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호회 선배님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훌쩍 성장해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약 43km의 불수사도북 코스를 훈련을 포함해 20번 넘게 달렸다. 5월 2일 열린 제19회 불수사도북 클라임바톤(Climb+Marathon) 대회에서 5시간 50분 7초로 2위를 했다. 1위와 단 1초차이다. 이렇게 달리고도 1주일 뒤 서울 둘레길 160m에서 경이로운 기록을 낸 것이다. 그는 서울 둘레길을 달리며 기억에 남는 곳은 “아차산에서 잠실 롯데타워를 내려보는 곳이 있는데 장관이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둘레길 표시가 잘 돼 있어 천천히 달리면 길을 잃지 않고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며 달리든 걷든 도전해보라고 권유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처로 이사 온 그는 매일 새벽 10km 정도를 달리고 출근한다. 달리는 게 매일의 일과가 됐다. 새벽 달리기는 하루를 힘차게 맞게 해주는 활력소다. “하루는 경복궁 둘레(약 2.5km)를 세 바퀴, 하루는 청계천, 하루는 안산, 하루는 한양도성길, 하루는 북한산 아랫길…. 이렇게 돌아가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주중 하루는 쉬고 주말에는 불구사도북을 찾는 등 장거리 산악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벽 운동은 하루를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줍니다. 새벽에 뭔가를 잘 끝냈다는 느낌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제가 제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옵니다.” 산을 왜 달릴까. “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솔직히 도로 대회를 참가하면 힘들어도 참고 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산은 힘들면 걸어도 돼요. 나무와 꽃, 돌, 바위, 개울 등 경치도 너무 좋아요. 볼거리가 많죠.” 산을 달리면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고 했다. “트레일러닝 대회를 출전하든 훈련하든 산을 좀 길게 달리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도로를 달리는 것하고는 정말 다릅니다.” 다칠 위험은 없을까. “오히려 산이 도로보다 위험하지 않습니다. 산악 지형 등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고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니 하체 근육도 조화롭게 발달해 부상을 예방해줍니다. 산을 달린다고 생각하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산을 달리면서 삶에 활기가 생겼어요. 힘들지만 에너지를 더 받는 느낌이랄까.” 박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만 아니면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등 해외대회에도 나가고 싶지만 “당분간 아름다운 대한민국 금수강산을 달리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참 달리기 좋은 산이 많아요. 우리나라 산부터 섭렵한 뒤 코로나가 사라지고 기회가 되면 해외 출정도 고민해보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클도 즐기고 있다. 요즘 날씨가 좋아 야외에서 타기도 하지만 자전거 시뮬레이션 앱인 ‘즈위프트’로 경쟁을 즐긴다. 즈위프트는 자전거에 센서를 달고 컴퓨터나 모니터에 연결한 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전 세계 이용자들과 온라인으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혼자서 탈 때의 심심함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경쟁하며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수영을 하지 못해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대회엔 아직 출전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씨는 이렇게 즐겁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매일 달리고 있는 이유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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