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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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neo@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칼럼100%
  • 서울이 질식당했다

    중국에서 날아온 ‘스모그(대기 속 오염물질이 안개 모양의 기체가 된 것) 폭탄’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던 안개와 섞여 대기 중 미세먼지가 급상승하면서 5일 서울에 사상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 하지만 예보당국은 이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지름 2.5μm(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이날 오후 4시 기준 m³당 93μg(마이크로그램)을 기록해 ‘주의보’ 발령 기준(시간 평균 85μg 2시간 이상 지속)을 초과했다. 초미세먼지는 사람 머리카락의 6분의 1 굵기인 미세먼지(PM 10)보다 지름이 4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작다. 금속화합물 등 유해물질로 구성돼 있어 들이마시면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 깊숙이 침투해 심장 및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 역시 평소 3배 수준인 m³당 184μg까지 치솟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국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된 데다 국내 연무와 대기 정체 현상으로 초미세먼지 오염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 겨울 난방이 본격화하면서 미세먼지의 공습이 예상됐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날 오전에만 잠시 고농도 미세먼지가 예측될 뿐 하루평균 ‘보통’(m³당 81∼120μg)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잘못 예보했다. 기상청이 측정한 이날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오전 1시 m³당 153μg에서 오전 8∼10시 120μg으로 떨어졌지만 오후 3시 184μg까지 치솟았다.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중국발 오염물질이 바람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바람이 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기상청은 6일 전국이 대체로 맑겠다고 예보했지만 올겨울 내내 중국발 미세먼지 공습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신광영 neo@donga.com·이서현 기자}

    •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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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가는 공기업]환경산업기술원, 취약계층 생활·주거·교육환경 개선에 앞장

    “곰팡이가 싹 사라졌어요.” 경기 포천시에 사는 신모 씨(74)는 10일 깔끔하게 변신한 집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올여름 집중호우로 신 씨의 집이 침수돼 가족 6명은 벽지와 장판을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야 했다. 그의 집을 방문해 곰팡이를 없앤 뒤 친환경 벽지를 바르고 창문까지 새로 달아준 사람들은 환경산업기술원 소속 자원봉사 직원들. 신 씨의 집이 110가구째다. 환경산업기술원은 14일 “기초생활수급자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구 등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직원들 자원봉사뿐 아니라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 2200가구를 대상으로 곰팡이와 집먼지 진드기 등 실내공기오염물질을 진단하고 전문 청소기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환경 개선 컨설턴트가 진단 결과를 토대로 환기나 생활습관 개선 등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상태가 심각한 240가구에 대해선 벽지 장판 창문 변기 등을 친환경 자재로 교체해주고 있다. 기술원은 환경부와 함께 소외 지역 청소년들의 교육환경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선 물 부족이 심각한 전남 해남지역의 산이초등학교 등 학교 3곳에 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고 수도시설도 교체했다. 교실과 벽면은 친환경 페인트로 칠해서 아이들이 유해물질 걱정 없이 뛰놀 수 있게 했다. 홍천여고와 산청 간디학교 등 6개 학교에 대해선 기술원 직원들이 친환경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원 윤승준 원장은 “도시화로 실내 활동이 늘면서 천식이나 비염 아토피 같은 질환이 늘고 있다”며 “취약계층의 생활환경과 건강이 나아질 수 있도록 환경복지 실현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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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장 성접대 檢 무혐의 처분 억울”

    검찰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52)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수사해 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에 대해 11일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이 사건의 핵심 피해자가 “납득할 수 없다”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직접 기소를 신청하는 제도다. 피해여성 A 씨는 1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성접대 여부는 거의 안 묻고 다른 피해자들과 말을 맞췄는지에 초점을 맞추더라”며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A 씨는 검찰 처분에 항의하기 위해 재정신청 외에 탄원서를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낼 계획이다. A 씨와의 인터뷰는 12일 새벽 3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A 씨는 광고모델과 연기자 일을 하다 20대 중반이던 2006년 여름 지인에게서 윤 씨를 소개받았다. A 씨는 “얼마 뒤 윤 씨가 나를 강원도 원주 별장으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신고하면 연예계 활동을 못하게 소문내고 너도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유력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여성을 별장으로 유인해 성폭행하고 이를 약점 잡아 성접대에 동원하는 수법은 다른 피해여성들도 공통적으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윤 씨가 A 씨에게 유력인사 성접대를 상습적으로 강요하고 김 전 차관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11일 이들 혐의를 모두 무혐의 처분하면서 몇 가지 근거를 발표했는데 A 씨는 “실제 조사 내용과 많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우선 검찰은 윤 씨가 A 씨와 김 전 차관의 성관계 장면을 동영상으로 무단 촬영한 혐의에 대해 “A 씨가 해당 동영상 캡처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증거 확보에 협조하지 않아 성접대가 실제 있었는지, 이를 강제로 촬영했는지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A 씨에 따르면 윤 씨가 촬영한 뒤 협박용으로 A 씨의 휴대전화에 보낸 캡처 사진이다. A 씨는 “경찰 조사 때 해당 사진을 이미 지워버렸다고 얘기했고 애초에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한 적이 없고 검찰에서 제출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동생이 윤 씨에게서 이 사진을 받은 시기는 내가 윤 씨와 연락을 끊은 2008년 초이며 몇 년 보관하다가 2011년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에게 이 사진이 들통 나 파혼이 됐고 그 충격으로 유산까지 했다. 더이상 나쁜 기억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아 사진을 삭제하고 휴대전화도 바꿨다”고 말했다. 당초 경찰은 A 씨 조사 과정에서 이 사진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 대신 사진을 봤다는 A 씨 동생과 속기사(2008년 윤 씨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A 씨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피해 내용을 털어놓았던 인물)의 증언을 확보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내지 않았다”는 주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검찰은 또 A 씨가 윤 씨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경제적인 피해만 주장하고 강간이나 성접대 강요 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윤 씨에게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 씨는 “윤 씨가 나를 횡령으로 고소하려 했을 때 대응책을 알아보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에게 피해 내용을 e메일로 보냈다”고 반박했다. 본보가 A 씨에게서 해당 e메일을 전송받아 확인한 결과 피해 내용이 여러 군데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1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해당 e메일을 압수수색해 확인했는데 상습적으로 성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올 8월 검찰에서 10시간가량 조사받는 동안 핵심적 사안에 대한 질문은 거의 받지 않았다. 윤 씨에게 어떤 경제적 도움을 받았는지, 다른 피해여성과 연락을 하는지 등 본질과 거리가 먼 질문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A 씨는 8월 검찰 조사 때 피해 내용을 제대로 진술할 기회가 없었다고 느끼고 담당 검사에게 윤 씨의 강요로 피해를 본 정황을 자세히 설명한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다른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취재팀은 A 씨 주장에 대한 김 전 차관 측 반론을 듣기 위해 변호인에게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모르는 사람이고 성접대를 받은 적도 없으며 (성접대에 동원됐다는) 여성들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신광영 neo@donga.com·전지성 기자}

    •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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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이철규 “수사권 독립 외치자 표적수사” 檢 “법원 설득실패… 찍어내기 아니다”

    고교 선배(강원 동해시 북평고)인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과 박종기 전 태백시장 등에게서 5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56·사진)이 1년 8개월간의 법정투쟁 끝에 지난달 30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유 회장 등 이 전 청장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람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청장은 지난해 2월 대기발령 조치를 당하자 “결백을 입증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아직 출근을 하지 못한 채 경찰청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청장은 서울청장, 부산청장, 경찰청 차장, 경찰대학장과 함께 경찰총수(치안총감) 바로 밑의 5개 치안정감 자리 중 하나다. 7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난 이 전 청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에 앞장서다 검찰에 미운털이 박혀 표적수사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보는 이 사건 1, 2, 3심 판결문과 10일 검찰 수사팀 핵심 관계자 인터뷰 내용 등을 토대로 이 전 청장의 표적수사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확인해 봤다.○ “검찰, 돈 줬다는 진술 제대로 검증 안 해” 이 전 청장은 “유 회장의 진술이 나와서 수사가 시작된 게 아니다. 검찰이 저축은행비리 사건으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던 유 회장을 압박해서 마치 내게 뇌물을 준 것처럼 진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뇌물을 줬다는 유 회장의 진술과 객관적 상황이 거의 맞지 않는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진술을 끼워 맞췄다는 것이다. 일례로 검찰은 유 회장이 2008년 가을 자신의 집무실에 온 이 전 청장에게 서울 송파경찰서에 접수된 민원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지만 그해 11월 유 회장은 부정대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유 회장은 법정에서 “당시 그다지 중요한 민원이 아니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망이 옥죄어 오는 상황에서 유 회장이 급히 처리할 필요도 없는 민원 때문에 고위 공직자에게 거액을 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유 회장은 또 2010년 가을 이 전 청장의 집 앞에서 500만 원을 줬다고 여러 번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아파트 자동차 출입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 전 청장 집에 간 시기가 2011년 4월로 확인되자 “이전 진술은 착각이었다”며 말을 바꿨다. 검찰이 유 회장의 진술을 입증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재판부는 “유 회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사건을 마음대로 재구성한 뒤 내용을 끼워 맞추고 있다”며 이 혐의도 기각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 관계자는 11일 본보에 “유 회장 진술에만 의존한 건 아니고 기타 여러 증거와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핵심 관련자들 여러 번 입 맞춘 정황” 이 전 청장은 “유 회장이 공범인 측근들과 여러 번 입을 맞췄고 유 회장 스스로 ‘거짓 진술’이라고 시인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회장과 비자금 담당 임원 장모 씨, 유 회장의 아들, 행장 이모 씨 등 4명은 “이 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을 당시 대검찰청 대기실이나 빈 조사실에서 여러 차례 상의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또 법정에서 “유 회장이 이 전 청장에게 돈을 줬다는 내용은 검찰청 와서 유 회장 말을 듣고 알게 됐다” “경찰청 고위직에게 돈을 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구체적인 액수는 유 회장에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 대해 검찰은 “유 회장의 부하 직원들이 회장실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을 진술했기 때문에 그것을 추궁해 역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 회장이 이 전 청장에게 돈을 줬다는 다른 직원들의 진술은 유 회장 진술이 반복된 것일 뿐 증거 가치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전 청장은 또 “유 회장이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측근에게 ‘후배한테 뇌물을 줬다고 거짓 진술을 해 괴롭다’는 심경을 털어놓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유 회장은 이 전 청장 측 변호인이 당시 발언 내용을 물어보자 “그런 말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변호인이 “구치감 내부를 찍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보자”고 하자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유 회장 등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거나 수사상의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종기 전 태백시장 측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비슷한 사유로 기각했다. 무죄 결과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은 맞지만 이 전 청장을 표적수사하거나 수사권 독립 문제로 수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기소 검사였던 윤대진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 1팀장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 재직 중이다. 이은택 nabi@donga.com·신광영·유성열 기자}

    •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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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폭염 지속 가을태풍 ‘맹위’

    필리핀의 태풍 강습은 최근 우리나라에 ‘가을 태풍’이 자주 불어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올여름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폭염이 오래 지속된 영향으로 지난달까지 태풍 발원지인 서태평양 열대 해상의 수온이 예년보다 1도가량 높았다. 과거에는 유례가 없던 수온 1도 상승에 기상학자들은 강력한 태풍 발생을 경고해왔다. 태풍은 고온의 바다가 머금은 수증기를 주에너지원으로 삼기 때문이다. 10일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9월과 10월 발생한 태풍은 13개로 한여름에 주춤했던 태풍이 가을에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발생한 태풍도 2004년 이후 가장 많은 28개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가을에도 태풍 발생 조건을 충족시키는 해역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태평양에서 북상한 태풍은 한반도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0월 들어 우리나라로 내려온 북쪽의 차고 건조한 대륙고기압이 태풍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태풍은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동남아나 일본 남부 해상으로 옮겨 다니고 있다. 하이옌은 서태평양에서 발원한 태풍이 위로 가지 못하고 서쪽인 필리핀 방향으로 이동한 경우다.기상청 관계자는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진행될수록 태풍은 더 강하고 더 늦게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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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11일 영하권… 강원-충북엔 한파주의보

    11일 서울이 올 하반기 들어 처음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중부와 남부 내륙지방까지 아침에 서리가 내리는 등 초겨울 추위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1일 북서쪽에서 확장하는 대륙 고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이 대체로 맑겠지만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서울과 강원 지역 아침 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할 것이라고 10일 예보했다. 한낮에도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서울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낮 최고기온 6도의 분포를 보이고 춘천 영하 4∼영상 7도, 인천 2∼7도, 강릉 1∼8도, 세종 0∼7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상청은 11일 오전 3시부로 서해 5도와 충남(태안군 서산시 보령시)과 전남(무안군 목포시) 일부 지역, 흑산도 홍도 울릉도 독도에 강풍주의보를 발령했다. 강릉시와 동해시 산간지역 등 강원도 일대와 청주시와 영동군을 제외한 충북 전역, 경북 일부 지역에는 한파주의보를 내렸다. 다음 날인 12일(화) 역시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대전 영하 1도, 세종 영하 3도, 전주 영하 1도로 예상된다. 그러나 13일부터는 전국 아침 기온이 전날보다 2∼3도가량 오르고 14일부터는 평년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기상청 관계자는 “비 소식이 있는 목요일에 추위가 누그러지겠지만 다음 주 초 다시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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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수병 가벼워진다

    생수병이 가벼워진다. 7일 환경부는 국내 주요 생수 제조사들과 '생수병 경량화 실천협약'을 맺고 생수 페트(PET)병 무게를 현재보다 최대 30% 줄여 폐기물을 줄이기로 했다. 참여 업체는 제주개발공사(삼다수), 풀무원(풀무원샘물), 롯데칠성(아이시스), 하이트진로(퓨리스석수), 동원 F&B(미네마인), 해태음료(평창수) 등 6곳이다. 협약사들이 지난해 판매한 생수는 500㎖ 5억6000만 개, 2L 4억1000만 개다. 빈 병 무게만 2만8000t을 초과한다. 이들은 3년 이내에 환경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생수병의 무게를 현재보다 최대 30% 줄인다. 환경부는 이로 인해 빈 페트병 무게를 7030t 줄이고 제조원가와 폐기물 처리비용을 더한 사회적 비용을 145억 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본도 2011년 페트병 17종의 평균중량을 2004년보다 13.3% 줄여 연간 폐기물을 6만8000t 감축했다"며 "생수병 경량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른 페트병도 경량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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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근로복지공단 外

    ◇근로복지공단 ▽1급 △부산북부지사장 임한병 △창원지사장 이금호 ▽2급 △부산본부 재활보상1부장 이기호 △복지부장 김응도 △부산북부 재활보상부장 이승준 △진주 가입지원부장 홍봉의 △대구서부 재활보상부장 김종승 △광주본부 재활보상2부장 소진만 △여수 재활보상부장 이양민 △부장 김창년 △대구산재병원 이경옥 △대전산재병원 김경희 ▽1급 △서울관악지사장 △원주지사장 주병선 △고양지사장 이명수 △천안지사장 문우동 ▽2급 △안동지사장 김인준 △경영지원국 노사협력부장 김헌재 △보험급여국 보상부장 문병효 △서울본부 송무2부장 정규환 △서울동부 가입지원2부장 최순성 △서울관악 가입지원1부장 김석운 △부산본부 송무부장 이종철 △대구본부 재활보상1부장 최윤목 △대구본부 송무부장 이희대 △복지부장 강명희 △포항 재활보상부장 공영한 △구미 가입지원부장 이희순 △경인본부 복지부장 김은경 △수원 가입지원2부장 김효현 △부천 가입지원부장 신기창 △안산 재활보상1부장 함준식 △성남 재활보상부장 김영성 △대전본부 가입지원부장 주영수 △천안 가입지원1부장 김영두 △안산산재병원 이남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홍완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김승국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코리아중앙데일리 편집인 겸 경영총괄(상무) 유권하}

    •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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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문화재청 外

    ◇문화재청 ▽과장급 △수리기술과장 최이태 △궁능문화재〃 정영훈 ◇국립생태원 ▽기초생태연구본부장 한동욱}

    • 201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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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 나쁘면 아토피 악화’ 사실로 확인

    주변 공기가 나쁘면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어린이들이 공기가 맑은 시골에서 지내면 호전될 수 있다는 가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 환경부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공동 연구한 결과 대기 중 미세먼지나 벤젠 톨루엔 총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농도가 높으면 아토피 피부염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2009년 7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삼성병원에서 치료 받은 아토피 소아환자 22명의 증상일지와 보건연구원이 측정한 대기측정소의 오염물질 농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m³당 1μg 증가하면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하루 전보다 평균 0.4% 나빠졌고 벤젠이 0.1ppb 증가하면 증상이 2.74% 심해졌다. 총휘발성유기화합물도 0.1ppb 증가하면 증상이 2.59%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별로도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봄에는 온도가 낮고 스타이렌 농도가 높을수록, 여름에는 이산화질소와 톨루엔 농도가 높을수록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악화됐다. 가을에는 온도가 높을수록, 겨울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증상이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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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천 “개발과 환경, 꽉막힌 교감의 벽 뚫어보겠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59)가 환경부 신설 기관인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21일 부임했다. 최 원장은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4대강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참여형 생태인문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학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행동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30년 넘게 학자의 길을 걷다 행정가로서 첫발을 뗀 최 원장을 18일 서울 청계천에서 만났다. ―행정가로의 전향은 어떻게 하게 됐나. “거의 등 떠밀렸다.(웃음)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을 갓 출범시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지난 정부에서 너무 깨져 버린 개발과 생태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가 워낙 거셌다. ‘행정은 모른다’고 고사하려 하자 한 후배는 ‘언행불일치의 이기주의자’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환경 걱정하더니 일해야 할 때 발 빼려 한다고….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만드는 게 절실하다는 점에서 나도 그 후배와 생각이 같았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최근의 큰 사회적 갈등은 대부분 개발과 환경의 교감이 막힌 사례다. 그로 인한 갈등 비용이 너무 크다. 4대강은 말할 것도 없고 밀양 송전탑 사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원전 입지 선정 문제를 보자. 생태적 관점에서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주판알만 튕겨서 밀어붙이다 보니 환경단체들로선 드러누울 수밖에 없다. 그럼 공사가 지연돼 국민 세금이 줄줄 새고 결국 공사를 억지로 마친 뒤에는 소모적 갈등이 계속된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립생태원장으로서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나. “국가가 500억 원 이상 드는 사업을 할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적 관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듯 생태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 현재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를 같이 불러놓고 토론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최적의 안’이 나온다는 거다. 개발과 환경을 동등하게 놓고 따지는 게 궁극적으로 개발사업을 성공시키고 국민 예산을 아끼는 길이다.” ―선진국에도 그런 장치가 있나. “미국은 환경청이 대통령 직속이어서 생태 문제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제도화돼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일본이다. 오래전부터 전국 관공서의 말단직원 상당수를 생태학 전공자로 채용하고 있다. 개발하려는 쪽이 이 말단직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예 사업 접수가 안 되도록 만든 구조다. 이런 식으로 자연을 변화시키려는 쪽에서 개발의 이유를 설득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는 거꾸로다. 개발을 막는 사람이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유엔 ‘국가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기본 후생 수준인 인간복지는 180개국 중 28위지만 생태계복지는 거의 꼴찌인 162위다.” ―취지는 좋은데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를 함께 불러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왜 두 부처를 같이 부른 줄 아느냐. 개발과 보전이 계속 싸움만 했는데 이젠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나에게 ‘개발과 환경보전의 새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을 꼭 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게 대통령의 진심이라면, 그 원칙을 계속 지키시겠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 ―생태가치를 따지다 보면 아무 일도 못 한다고 공격받을 텐데…. “생태가 개발을 가로막는 게 결코 아니다. 4대강 사업을 보자. 생태학자로서 원론적으로 반대했지만 나를 포함해 상당수 생태학자는 사실 4대강 정비에 찬성할 수 있었다. 우리 강들은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생태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태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생태학적으로 수용 가능한 4대강 사업을 하려 했다면 나 역시 찬성했을 거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또 어떤가. 사업 당시엔 내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 파괴의 측면이 있지만 도심 한복판에 물길이 생겨 서울시민이 그만큼 행복해지지 않았나. 나는 자연의 행복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거기 국민의 행복도 있더라.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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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포커스]“태국 감옥서 인권유린” 장황한 영어편지 한통… 발신자는 살인마였다

    《 ‘악마의 편지’가 도착한 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한국 교도소에서 10년 넘게 단련된 저도 태국 교도소에선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영어로 쓴 편지에는 불만 사항이 장황하게 적혀 있었다. ‘말이 안 통해 매점에 거의 못 간다’ ‘어쩌다 가면 뒤에 늘어선 죄수들이 소리를 질러 늘 싸움 직전까지 간다’ ‘재소자들이 내 소지품에 마약을 찔러 넣고 교도관에게 신고해 괴롭힌다’…. 현지 교도관이 우리말로 쓴 편지를 못 부치게 한 것에 대해선 ‘재소자가 모국어로 편지 쓸 권리는 전 세계 감옥의 상식’이라며 정부 차원의 항의를 요구했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찰 영사인 차경택 총경(51)은 편지를 읽다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경찰의 해외도피 흉악범 ‘1번 수배자(최우선 검거 대상)’ 최세용(47). 최세용은 차 총경을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경찰청 인터폴이 체포한 최세용을 신속히 한국에 보내는 게 차 총경의 임무였다. 최세용은 지난해 성탄절 첫 편지 이후 차 총경에게 1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모두 상당한 수준의 영어로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스스로 운명을 예견한 구절이 있었다. “한국에 가면 저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겠죠.” 최세용은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의 한 환전소에 들이닥쳐 현금 1억 원을 훔쳤다. 여직원(당시 25세)이 몰래 신고 벨을 누르자 칼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에는 2008∼2011년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납치했다. 필리핀 여행을 앞둔 한국인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여행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접근한 뒤 공항에 마중 나가 차에 태웠다. 납치한 뒤 석방비 명목으로 2억7000만 원을 뜯어냈다. 납치된 이들 중 홍석동 윤철완 씨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홍 씨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31일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최세용이 ‘이역만리 감옥에 갇힌 자국민 인권’을 운운하며 차 총경에게 처음 편지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아내 만나러 간 길이 ‘저승길’ 지난해 7월 8일, 태국 경찰에서 넘겨받은 얼굴사진 40장 가운데 한 장이 차 총경의 눈에 들어왔다. 장발에 야윈 얼굴, 뿔테 안경. 수배전단과는 달랐지만 분명 ‘그놈’이었다. 2007년 필리핀으로 도주해 5년 동안 행적이 오리무중이었던 최세용. 당시 우리 경찰은 최세용이 2011년 가을 태국으로 도망갔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어 아내 시모 씨(45)가 2011년 12월 이후 세 차례 태국에 출입국한 기록을 확인했다. 시 씨는 석 달마다 태국 국경을 잠시 넘었다 들어오며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었다. 이른바 ‘비자런(Visa Run)’ 방식이었다. 최세용이 아내를 도피처로 불러 함께 살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차 영사가 받은 사진 40장은 시 씨가 지난해 5월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치앙라이 국경을 다녀왔던 날 검문소를 통과한 한국인들의 얼굴이었다. 그중 최세용이 있었으니 악마의 꼬리를 찾은 셈이었다. 경찰은 아내 뒤를 밟아 그를 잡기로 했다. 시 씨가 다음 ‘비자런’을 할 것으로 예상된 지난해 8월 경찰청은 치앙라이 국경에 경찰관을 보냈다. 하지만 그땐 최세용 부부가 이미 2주 전 태국으로 입국한 후였다. 경찰은 국경관리소 측에 시 씨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쪽에선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치앙라이에 주재관을 보내 국경관리소 직원들에게 여러 번 식사와 술 대접을 했다. 그때부터 검문소 직원들은 책상 위에 최세용 부부의 사진과 수배 전단을 붙였다. 다시 석 달 뒤인 지난해 11월 3일 차 총경은 태국 이민국의 전화를 받았다. “시○○가 나타났다.” 시 씨가 오전 10시경 검문소를 나갔다가 3시간 뒤 다시 입국해 이민국 직원 5명이 사복차림으로 시 씨를 쫓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마침 한국 경찰관들이 최세용을 잡으러 방콕에 도착한 날이었다. “미행만 하고 절대 체포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랑 같이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차 총경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강조해서 말했다. 국경을 넘을 땐 가족을 먼저 보내 동태를 살핀 후 유유히 들어오는 게 해외도피범들의 수법이었다. 이민국 직원 2명은 시 씨가 탄 버스에 함께 탔고 3명은 승용차를 타고 버스를 뒤따랐다. 시 씨는 버스에서 내려 치앙라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안으로 따라 들어가기 직전 이민국 직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차 총경이었다. “최세용은 분명 다른 사람 이름을 댈 겁니다. 무조건 잡으세요.” 시 씨는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귀퉁이에 앉은 한 남자와 마주앉았다. 이민국 직원 2명은 커피숍 문 앞을 지키고 3명은 시 씨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여권 좀 봅시다.” 최세용은 태연한 얼굴로 ‘송OO’ 명의로 된 가짜 여권을 내밀었다. 필리핀에서 납치했던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빼앗은 여권이었다. 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이민국 직원들은 수배전단을 들이밀며 수갑을 채웠다. 5년 4개월의 도피 행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현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최세용에겐 그날 밤 마지막 탈출 기회가 있었다. 최세용을 감시하던 태국 경찰관 중 한 명이 “풀어주면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온 것. 하지만 오랜 도피생활로 돈이 떨어진 최세용은 꼼수를 부리지 못했다. 태국 감옥에 수감된 최세용은 차 총경에게 아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자주 했다. 그는 편지에서 “아내는 저 때문에 모든 걸 잃었습니다. 아내는 한 불쌍한 범죄인의 여인일 뿐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최세용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아내와의 관계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에 발목을 잡히는 단초가 됐다.○ 한국 송환 직전 “옷 사 주세요” 최세용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를 한국에 데려오려면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었다. 최세용이 태국 1심 법원에서 징역 9년 10개월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위조여권 사용과 공문서 허위 기재 등의 혐의였는데 예상외의 중형이었다. 우리와 태국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르면 현지에서 형을 다 치른 범죄자만 인도가 가능했다. 최세용이 출소할 때까지 10년이 지나버리면 그의 죄를 입증할 증거와 목격자들이 사라질 수 있었다. 납치 실종자 가족들도 그가 빨리 입을 열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임시 인도 청구’ 조항에 희망을 걸었다. 현지에서 징역을 살기 전에 본국에 송환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한 예외조항이었지만 전례가 없어 사문화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또 태국 정부가 거절하면 대책이 없었다. 전재만 주태국 대사와 차 총경이 쁘라차 쁘롬녹 법무장관을 찾아가 협조를 사정했다. 다행히 쁘롬녹 장관은 “한국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반가워했다. ‘근면 자조 협동’을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이 ‘친한파’ 법무장관은 최세용에 대한 임시 인도 청구에 합의해줬다. 하지만 최세용이 태국 1심 판결에 항소와 상고를 하며 시간을 끌면 인도 절차를 시작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는 감옥에 면회 온 차 총경에게 “한국에 가면 여론재판이 열릴 것이고 내가 안 한 것까지 덮어씌워 법정 최고형을 받게 될 것”이라며 안 가겠다고 버텼다. 최세용은 안양 환전소 직원 살해와 필리핀 관광객 몇 명을 납치한 것은 시인하면서도 실종자들에 대해선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제가 됐든 한국에 갈 테니 괜히 외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가는 게 좋다”는 차 총경의 설득에 최세용은 동요했다. 몇 달 뒤 면회에서 그는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살아갈 시간도 별로 없고 몸도 안 좋고…. 삶이 공허합니다.” 최세용은 항소를 포기하고 한국에 가기로 했다. 죗값을 치르려는 생각보단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간 자충수였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 장기간 수감생활을 하다 보면 태국에서 받았던 9년 10개월형은 흐지부지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형이 확정되면 일단 태국에서 9년 10개월을 다 산 뒤 다시 한국에 들어와 새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한국 송환이 이뤄진 이달 15일 태국 방콕 공항에서 최세용은 수갑을 찬 채 현지 경찰관 전화로 차 총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행색으로 한국에 들어가려니 부끄럽습니다. 옷 한 벌만 사주세요.” 당시 최세용은 남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차 총경은 차갑게 말했다. “그냥 들어가라. ‘금의환향’하는 거 아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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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 홍보 유아용품 8종중 5종서 유해물질”

    “친환경으로 홍보하는 유아용품 8종을 직접 구해서 실험해 봤더니 5종에서 유해물질이 나왔습니다.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5일 정부세종청사 내 환경부 국정감사장.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부산 남을)이 윤성규 장관에게 이같이 질의하며 ‘그린워싱(Green-Washing)’ 실태를 지적했다.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상품의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로 꾸미거나 과장 광고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서 의원은 이날 인형과 배변훈련팬티, 놀이매트 등 친환경이라고 광고하는 유아용품 8종에 대해 국가공인시험검사기관인 FITI시험연구원에 성분 조사를 의뢰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이 중 5종에서 환경호르몬인 노닐페놀과 합성수지 제조 때 사용되는 디메틸포름아미드 등 유해성 물질이 검출됐는데 독일 연방환경청 친환경 인증 기준 대비 4∼7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 의원은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들 제품 표지에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더욱 안전하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은 무해무독한 제품’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는 것”이라며 강력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환경부가 친환경 사칭 제품을 검증하고 허위 과장 광고로 판명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정 조치 의견을 통보토록 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을 이달 발의할 계획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은 정부가 그린워싱을 규제하기 위해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친환경마케팅 표시사용 지침’, 영국은 ‘녹색 주장 지침’, 일본은 ‘환경표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놓고 기업들이 친환경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품목의 사실 여부를 가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정위가 감독 권한을 갖고 있지만 단속 여력 부족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주관부처인 환경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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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이네” 당신이 산 제품 2개중 1개는 ‘그린워싱 짝퉁’

    ‘유기농 원료 95% 함유 치즈’ ‘피톤치드 성분이 풍부한 솔잎 추출물이 들어 있는 치약’ ‘물 대신 에코서트 인증 솔잎수를 100% 사용한 내추럴 보습 크림’…. 국산 생필품 겉표지에 적힌 제품 설명이다. 유기농과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위 사례처럼 ‘녹색(친환경)’을 표방한 제품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이 제품들이 내세운 친환경 성분은 허위 또는 과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치즈의 95%를 구성한다는 유기농 원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치약에 솔잎 추출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가 구체적으로 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화장품의 경우도 에코서트(국제유기농인증협회) 인증 재료를 썼다고 하는데 해당 인증 표시는 제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인증 도용’ 사례가 늘자 국내 유기농 제품 인증 업무를 하는 건국에코서트인증원은 ‘원료성분 승인은 인증 요건 중 하나일 뿐이며 에코서트에서 승인받은 원료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광고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마트 제품 절반이 ‘짝퉁 친환경’ 이처럼 기업이 상품의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로 꾸미거나 과장 광고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한다. 친환경 제품의 시장 규모는 2001년 1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약 30조 원으로 20배나 성장했다. 친환경 마케팅이 제품 판매에 주요 변수가 되면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녹색 제품으로 위장하는 그린워싱 사례가 만연한 실정이다. 소비자원이 지난해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세제, 화장지, 화장품 등 7개 제품군 702개 품목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46.4%인 326개가 허위 과장 표현을 하거나 중요 정보를 누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에서 대형마트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PB(Private Brand)’ 상품은 제외했다. 소비자원은 “PB 상품의 경우 일반 상품에 비해 환경 기준이 비교적 느슨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PB 상품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하면 그린워싱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친환경 상품으로 눈속임을 하기 위해 동원한 수법을 보면 객관적 근거 없이 자체 제작한 친환경 마크를 제품에 표기하거나 인증마크를 무단으로 사용해 소비자들이 공식 인증 제품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한 사례가 많았다. ‘무독성(Non-toxic) 세제’ ‘천연 유기농(All Nature) 샴푸’ 등 의미가 어렵거나 광범위한 용어를 사용해 막연하게 친환경 이미지를 부추기는 경향도 자주 나타났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녹색 제품이라고 광고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친환경적 요소가 아예 없거나 오히려 환경호르몬이 다량으로 검출되는 제품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 ‘그린워싱’ 색출 나서기로 그린워싱을 해온 기업들은 정부 차원의 친환경 인증 가이드라인이 없고, 환경 관련 공식인증을 받는 것도 선택사항으로 규정해놓은 현 제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기업이 제품 홍보를 목적으로 별다른 근거 없이 친환경성을 내세우더라도 이를 검증하거나 제재할 법적 근거가 미약했던 것.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또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 등에 따라 친환경으로 둔갑한 제품을 관리 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단속 여력이 없어 유명무실했던 게 사실이다. 2010년부터 최근까지 그린워싱과 관련해 특정 제품을 적발하거나 시정 요구를 한 사례가 없다. 이 같은 단속 공백이 지속되면 소비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해 친환경 제품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또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려는 기업의 의지가 꺾이고 친환경 관련 산업의 성장도 크게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시중에 유통되는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그린워싱 실태조사를 이달 말까지 진행한 뒤 친환경 위장 제품을 걸러낼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기업들이 내세우는 친환경 제품에 대해 정부가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그린워싱으로 판명되면 시정을 요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키로 했다.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을 이달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친환경에 투자해온 선량한 기업들을 보호하려면 녹색 제품으로 허위 과장하는 기업들을 규제해야 한다. 시장 질서를 바로 세워야 산업구조를 환경친화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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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점이 떠있는 섬 따라… 국내 첫 ‘바다둘레길’ 열렸다

    배를 타고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길’이 시작된다. 길 옆으로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초록의 원시림이 겹쳐 보인다. 오르막길에서 숨이 가빠올 즈음 불쑥 아찔한 해안 절벽이 펼쳐진다. 탁 트인 바다 너머로 섬들이 점점이 떠있고 화창한 날이면 일본 쓰시마 섬이 자태를 드러낸다. 국내 첫 ‘바다 둘레길’이 15일 개통됐다. 이 길을 걷다보면 이런 풍경을 만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를 대표하는 미륵도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매물도 소매물도를 연결한 ‘바다백리길’.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6개 섬의 절경을 둘러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 42.1km를 완공했다. 백리길은 기존 올레길이나 둘레길과 달리 풍광이 빼어난 섬들이 이어져 있어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기는 걷기 코스라는 게 특징. 주민들이 다니던 작은 오솔길을 연결해 걸으면서 섬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연대도의 길목에 걸린 문패를 보면 ‘가장 오래된 밀감나무와 시원한 우물이 있는 백또성아 할머니댁’, ‘윷놀이 최고 고수 서재목 손재희의 집’ 등 개성 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통영의 신선한 해산물과 충무김밥 등 먹을거리도 다채롭다. 시 ‘향수’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은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을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란 말로 방문 소감을 남긴 바 있다. 각 코스는 달아길(미륵도), 역사길(한산도), 산호길(비진도), 지겟길(연대도), 해품길(매물도), 등대길(소매물도) 등 별도의 이름이 있다. 각 섬으로 처음에 출발할 때는 통영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하면 된다. 또 섬들을 잇는 배편이 섬마다 마련돼 있어 ‘육로-해로-육로’의 환상적인 둘레길이 이어진다. 유일하게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한 곳은 미륵도 달아길.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달아공원부터 희망봉(230m)과 미륵산(461m)을 거쳐 미래사로 이어지는 14.7km 구간이다. 공단 측은 “구간 별로 소요시간이 다르지만 하루 최대 2개 섬을 둘러볼 수 있다”며 “아직은 관광객이 많지 않아 배편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미리 운항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통영=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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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자도 가해자도 만신창이… 끝나지 않은 탈북자 北送의 비극

    《 8월 중순 취재팀이 ‘탈북자 납치북송 사건’ 피해자 장○○ 씨(33)를 처음 만났던 순간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장 씨는 2004년 겨울, 탈북자 출신 한국인 채○○ 씨(48)가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한 것에 속아 가족과 함께 북송된 비운의 여인이다. 북송 후 남편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아들은 어딘가로 입양됐다. 》장 씨의 집은 충남 소도시의 한 임대아파트였다. 장 씨는 인터뷰를 거절하며 집에 찾아온 취재팀을 반나절가량 기다리게 했다. 하지만 계속된 설득 끝에 비로소 문을 열어줬을 때 장 씨의 첫인상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장 씨는 막 머리를 감은 듯 머릿결이 젖어 있었고 분홍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7년간 북한 교화소 생활을 할 때 대못을 삼켜 자살하려 한 적이 있고, 출소 후 다시 탈북하다 붙잡혔을 땐 칼로 배를 찌르기까지 했던 ‘독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천생 여자’에 가까웠다. 취재팀은 그날 이후 여섯 차례 장 씨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자주 들은 말이 있었다. “제가 그(북송) 전에는 진짜 뽀얗고 예뻤거든요.” 장 씨는 북송 이후 잃어버린 20대 청춘에 대한 회한이 깊어 보였다. 채 씨의 배신으로 북송됐을 당시 장 씨는 24세였다. 그녀가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빌러 온 원수의 딸(22)을 만났을 때 딸의 예쁜 모습에 눈길이 갔던 이유도 그 때문인 듯했다. 장 씨는 북송 후 참혹했던 7년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구수한 북한 사투리를 썼고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자주 지었다. 그녀를 이런 비극으로 내몬 채 씨는 교도소에서 죗값(1심 7년 선고)을 치르겠지만 장 씨의 잃어버린 가족과 꿈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채 씨의 가족 역시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채 씨 아내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북한에서부터 앓아왔던 간염과 폐병, 허리디스크가 더욱 악화됐다. 대학 3학년인 딸은 채 씨가 감옥에 갇히면서 엄마와 남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학교 공부를 하며 호프집 서빙과 편의점 알바, 육아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채 씨의 딸은 올해 9월 장 씨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러 가면서 마음이 무거운 중에도 생전 처음 타보는 기차에 대한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침울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보며 ‘기차를 또 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채 씨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이나, 채 씨가 자신의 가족을 사지(死地)에서 구해내기 위해 북한에 넘겨버린 장 씨의 가족이나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채 씨의 범행은 체제에 의해 강요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방법이 다른 선량한 가족을 파탄시키는 것뿐이라면 이 야만적 선택을 피해갈 ‘아버지’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가족애’라는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려 한 사람의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북한 체제의 가장 비열한 단면이다. 북한의 두만강과 접한 중국 국경지역에는 채 씨처럼 한국에 넘어왔다가 밀무역이나 탈북 브로커 일로 돈을 벌려고 다시 중국으로 모여든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 현재까지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 2만5560명 가운데 통일부가 소재 파악을 못하고 있는 사람은 3.1%인 792명에 달한다. 이들 일부가 북한의 가족이 걱정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비열한 거래’를 하는 것으로 국가정보원은 파악하고 있다. 채 씨와 장 씨, 두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9월 교도소에서 만난 채 씨는 기자에게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무얼 위해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채 씨에게 “네 가족을 보살펴 줄 테니 장 씨 가족을 넘기라”고 지령했던 함경북도 보위부 반탐처장 윤창주 대좌(한국에선 대령급) 역시 2011년 간첩으로 몰려 처형됐고, 그의 가족들도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 장 씨와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채 씨, 심지어는 윤창주까지 북한 정권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신광영·손효주 기자 neo@donga.com▶ [두만강변의 배신] 원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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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만의 가을 태풍… 중형급 ‘다나스’ 북상

    제24호 태풍 ‘다나스(DANAS)’가 대만에서 빠르게 북상해 8일 오전 9시경 제주 남해상 310km 지점을 거쳐 이날 밤 부산 남동쪽 160km 해상을 지날 것이라고 기상청이 6일 예보했다. 다나스는 필리핀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경험’을 뜻한다. 태풍은 부산 남쪽 해상을 지난 뒤 서서히 약해져 소멸할 것으로 예측됐다.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10월 가을 태풍’은 1998년 이후 15년 만이다. 다나스는 초속 30m의 강풍을 동반한 중형급 태풍으로 폭우 등 피해가 우려된다. 가을태풍이라 수확기 농작물 피해도 예상된다. 특히 8일 오후부터 9일 오전 사이 경남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8일과 9일 사이 예상 강수량은 영남과 강원, 제주, 울릉도 지역이 50∼100mm이며 동해안과 경남 남해안, 제주 산간 일부 지역에는 최대 15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다나스는 8일과 9일 사이 대한해협을 지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돼 동해상으로 진출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태풍의 진로와 우리나라 주변 기압계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제주도와 남해안에 강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을 가능성이 높아 저지대 침수와 해안가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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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만강변의 배신]원수의 딸

    《 (지난 줄거리) 한국으로 보내준다는 채민철에게 속아 가족과 함께 북송된 장은희. 은희가 7년간 교화소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이 남편은 죽고 생후 8개월이던 아들은 어딘가로 입양됐다. 은희 가족을 팔아넘긴 민철은 자신의 가족을 탈북시켜 한국에 데려왔다. 은희는 출소 후 복수를 위해 다시 탈북길에 오르지만 강을 건너다 군인들에게 붙잡히자 칼로 자결을 시도했다.》하나원에서 배정받은 서울 강북의 아파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 남자가 문 앞에 있었다. 허름한 검은 옷에 때가 절어 본색이 사라진 운동화 차림이었다. 오래 기다렸는지 입술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2010년 2월, 아직 영하의 날씨였다. "아버지." 채영선(가명·22)은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아버지라는 세 글자가 주는 느낌이 낯설었다. 다만 10년간 상상해 온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10년 전 여름, 채민철(가명·48)은 영선의 손을 잡고, 등엔 다섯 살이던 아들 영학(가명·17을 업고 평양 시내를 걸었다. 탈북 브로커 일로 생계를 잇던 시절이었다. 북한 주민 2명을 중국으로 보내는 '큰 건'을 앞두고 남매에게 평양 구경을 시켜 준 것이었다. "아빠가 중국 가서 돈 많이 벌어 올게." 한 팔로 자신을 번쩍 들어 올리던 그때의 듬직함을 문 앞의 남자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등은 오그라들고 키는 쪼그라들어 보였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고 이마와 볼에 파인 자국이 수두룩했다. 민철이 영선에게 다가왔다. 자신(키 165cm)보다 키가 큰 딸(167cm)을 어색하게 안았다. "보고 싶었다." 민철의 잠바에선 시큼한 땀 냄새가 풍겼다. 영선은 아버지를 허리춤을 꽉 부여잡았다. 영학은 이 광경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어릴 때 헤어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민철의 시선은 아들을 거쳐 아내 허정애(가명·45)와 마주쳤다. 정애는 젖은 눈을 깜박였다. 이튿날 아침, 민철의 집은 침묵에 잠겼다. 영선이 "잘 주무셨느냐"고 물었을 때 민철이 "어"라고 답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화가 없었다. 영학은 아직 아버지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민철이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온 지 5년. 그리워하던 가족이 마침내 탈북해 한국에 왔지만 헤어져 지낸 10년 세월의 벽이 허물어지는 데는 1년여가 걸렸다.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민철이 퇴근하는 오후 8시가 되면 가족은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민철은 마중 나온 남매에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웃음을 지어 입가가 씰룩거릴 뿐이었다. 영선과 영학(키 182cm)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면 가운데 있는 민철은 움푹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아내 정애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집으로 걸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남매는 민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워 TV를 봤다. 서로 민철의 팔을 베겠다고 다투다 결국은 양팔을 하나씩 꿰차곤 했다. 영선은 북한에 있을 때 아버지 팔을 베고 TV 보는 상상을 자주 했다.● 아들 생일날 들이닥친 손님 올해 3월, 은희는 결국 한국 땅을 밟았다. 2011년 여름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려다 북한군에 붙잡혔을 때 스스로 배에 칼을 찔러 넣고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은희는 한국에 가 있는 엄마가 보내 준 돈을 찔러 주고 교화소에서 빠져나왔다. 세 번의 시도 만에 한국행에 성공한 것이다. 은희는 한국에 오자마자 민철의 만행을 국가정보원에 알렸다. 조사관에게 민철의 가족이 3년 전 한국에 와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은희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놈을 꼭 잡아 주기요. 내가 먼저 칼탕 쳐(토막 내) 죽이기 전에…." 국정원은 은희 가족이 북송된 직후인 2005년부터 민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은신처를 제공한 조선족이 민철을 간첩으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민철 역시 2010년 가족이 한국에 오고 나서 얼마 뒤 "보위부 지령을 받고 탈북자 일가족 북송에 가담한 적이 있다"고 국정원에 자수했다. 국정원은 민철을 처벌하는 대신 북한 쪽 정보원 역할을 제안했다. 보위부에서 내려 보낸 공작원들이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귀띔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민철을 협조자로 대하던 국정원은 피해자인 은희가 한국에 살아 들어와 신고하자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 요원과 경찰이 민철의 집에 들이닥친 건 올해 6월 20일 아침. 아들 영학의 생일이었다. 출근을 앞둔 민철이 미역국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민철은 요원들 손에 수갑이 들린 것을 보고 말했다. "영선이 영학이는 나가 있어라." 영선은 며칠 전 민철이 "아빠 없어도 영선이 네가 엄마 잘 보살펴라"라고 지나가듯 말했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요원들은 13평(약 42.9㎡) 남짓한 민철의 집을 샅샅이 뒤졌다. 서류와 사진, 휴대전화 같은걸 모조리 상자에 담았다. 아내 정애는 심장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고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민철은 또다시 남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붙들려 갔다. 이날 저녁은 한국에서 처음 아들의 생일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텅 빈 법정에서 내려진 7년 형 8월 9일 경기 의정부지법.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재판장이 민철에게 물었다. "혐의 다 인정합니까?" "네." "마지막으로 할 얘기 없어요?" 민철은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저는 부모 없이 자라서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살았지만 내 아이들은 남한에 와서 꿈을 펼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방청석은 텅 비어 있었다. 민철과 은희 어느 쪽에서도 오지 않았다. 은희는 "벌을 약하게 주면 내가 그 자리에서 배를 가르겠다"고 흥분해 주변에서 참관을 말렸다. 민철의 딸 영선은 재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겹쳤고 아내 정애는 허리디스크가 도져 거동을 못 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보다 형량을 깎아 주는 관례에 비춰 이례적이었다. 민철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9월 중순 교도소에서 기자와 만난 민철은 스포츠형 머리에 베이지색 수형복을 입고 있었다. 콧대에 가로로 길게 파인 흉터가 도드라져 보였다. 10여 년 전 북한 보위부에 탈북 브로커 일을 한 게 들켜 고문을 받다 코뼈가 부러진 자국이다. "왜 그랬습니까?" 민철은 큰 눈을 껌벅이며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었다. 다시 똑같이 물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소." "북송되면 어찌 되는지 알면서 왜 그랬어요?" 민철은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갑자기 들었다. "애들이 위험하면 안전한 데로 빼 줘야 하잖아요. 제가 아빠잖아요." "(다른 가족의) 8개월짜리 아기는 북한에 보내고요?" "저도 그게…. 여자하고 애기가 있어서 안 보내려고 했는데…." "반성한다면서 항소는 왜 한 건가요?" 민철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면회 종료 종이 울렸다. 자리를 뜨려는 기자에게 그가 말했다. "북한에서 10년간 그리 고생시켰는데 어떻게 7년을 또…. 와이프 약값도 많이 들고 돈은 누가 법니까."● '7년'이 앗아간 것들 영선은 9월 12일 충남 아산행 열차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는 기차였다. 영선은 '여행을 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잣말을 했다. 한 복도식 아파트 앞에 닿았을 때 종이가방을 쥔 영선의 손이 덜덜 떨렸다. 종이가방 안에는 카스텔라 상자가 있었다. "네가 무슨 체면으로 여기를 와!" 은희의 집 문이 열리자 은희 엄마가 영선을 쏘아보며 말했다. 은희 엄마는 먼저 탈북해 2008년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집에 은희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대신해서 제가 빌려고 왔어요." "스물 몇 살밖에 안 된 사위(이명호)가 죽고 손주는 어디 가 버리고. 응? 자기 가족은 살려 놓고 이제 와 어쩌자는 거야. (네 아빠) 찢어 죽여도 시원찮아." 은희 엄마는 영선이 오는 걸 허락하고도 막상 얼굴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영선은 울먹였다. "저희도 10년 전에 아빠랑 헤어져서, 여기 와서 알게 됐어요. 아빠가…." 그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은희의 얼굴이 보였다. 은희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영선을 대면했다간 분에 못 이겨 해코지를 할 것 같았다. 은희 엄마의 목소리가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높아졌다. "다 필요 없고 돈으로 보상해. 내 딸, 어떻게 보상할 거야." "아빠도 보상해 드리라고 했어요. 해 드릴게요. 근데 저희가…." 영선은 고개를 떨궜다. 대학생인 영선은 아버지 민철이 수감된 뒤 호프집 서빙과 편의점 알바 일을 하고 있었다. 간염과 폐병으로 앓고 있는 엄마(정애)는 일할 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은희 엄마는 30분 넘게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영선을 지그시 바라봤다. "우리 딸도 불쌍한 만큼 그쪽 딸도 불쌍하고 아깝지. 사람 다 죽여 가면서 왔으니 어찌 벌을 안 받겠어." 영선은 이곳에 오면 전하려던 말이 있었다. 오기 직전 교도소로 면회를 갔을 때 아버지는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혹시 써 줄 수 있는지 부탁해 보라"고 했다. 울분을 억누르려 애쓰는 은희 엄마를 보며 영선은 탄원서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발에 쥐가 나 절뚝이며 현관으로 향하는 영선에게 은희 엄마는 카스텔라 상자를 내밀었다. "천당에서 가져온 거라도 안 받아." 영선이 당황해하며 신발을 신으려 하는 순간 안방 문이 또다시 열렸다. 은희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영선을 유심히 바라봤다. 하얀 피부에 크고 쌍꺼풀 진 눈, 긴 갈색 생머리, 매끈하고 탄력 있는 다리.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나도 저렇게 고왔는데….' 원수의 딸을 보면 분통이 터질 줄 알았는데 서글픔이 더 크게 밀려왔다. 은희는 7년 동안 교화소에서 겪었던 영양실조의 후유증으로 눈이 튀어나온 데다 시력이 나빠져 돋보기를 끼고 있었다. 민철에게 속아 북송되기 전 20대 초반이던 자신의 모습과 눈앞의 영선이 겹쳐졌다. 은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방문을 닫았다.신광영·손효주 기자 neo@donga.com   ※논픽션 드라마는 사건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기사입니다. 공식 기록과 당사자 증언을 검증해 재연한 100% 실화(實話)입니다.}

    •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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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만강변의 배신]복수를 위한 생존

    《 (지난 줄거리)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탈북한 채민철. 그가 행방불명된 죄로 북한의 아내와 어린 남매는 시골 유배지로 보내졌다. “탈북자 일가족과 탈영병들을 북송시키면 네 가족을 잘 보살펴 주겠다”는 보위부 간부 ‘윤 영감’의 제안을 받은 민철은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던 이명호 장은희 부부를 속여 북측에 넘긴다. 북송된 은희에겐 지옥 같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   화장실 문 높이는 70cm였다. 멀리서 보면 안에서 쪼그려 앉아 용변 보는 사람의 머리가 보였다. 장은희(가명)는 문에 등을 기댄 채 화장실 안에 웅크리고 앉았다. 머리는 푹 숙이고 발꿈치는 들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위장해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자세였다. 쇠붙이를 쥔 손 안에 땀이 흥건했다. 2006년 2월 새벽 4시. 함경북도 온성군 보안서(경찰서) 내 구류장 건물은 고요했다. 손 안에는 7cm 길이의 녹슨 대못 하나와 실핀 3개, 옷핀 하나가 있었다. 옷핀은 걸림 장치가 풀려 바늘 끝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을 벌렸다. 대못을 집어 목구멍 끝까지 가져갔다. 식도에 들어가도록 못을 조금씩 세웠다. 못은 식도 벽을 찢으며 일자로 세워졌다. 못을 밀어 넣었다. "어억, 어억." 구역질이 새어나왔다. 실핀과 옷핀도 우겨 넣었다. 가슴이 막혔다. 물을 들이켰다. 못 끝이 장기 내벽을 긁으며 흘러내렸다. 화장실 안 양동이에는 물이 있었다. 죽은 날벌레 떼와 유충, 물곰팡이가 뒤섞여 부유하는 썩은 녹물이었다. 습관처럼 남편 이명호(가명)를 생각하며 속말을 했다. '현준이(가명) 아부지, 내래 교화소 6년형이랍니다.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얘기 아입니까. 차라리 이래 죽는 게 나슬 것 같습니다. 죽는 것도 간단치가 않습니다.'●죽은 언니의 다리 9.9㎡(3평) 남짓한 구류장. 16명이 빈틈없이 서로 엇갈려 누워 자고 있었다. 은희는 돌아와 그 틈에 끼어 누웠다. 곧 죽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소매로 훔쳤다. 보위부와 보안서에서 1년 2개월을 보내면서 울다 들킨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는지 잘 알고 있었다. 눈치 빠른 간수는 우는 죄수를 끌어내 시래기를 강제로 먹여 대변을 보게 했다. 변에서 쇠붙이가 발견되면 고문을 했다. 자살 시도는 조국에 대한 배신이었다. 은희가 보안서에 온 건 4개월 전이었다. 북송된 뒤 10개월간의 보위부 조사를 마친 은희와 명호는 각각 생계를 위해 탈북한 경제범과 남한에 협력한 정치범으로 분류됐다. 2005년 9월말 보안서로 호송되기 전 은희는 명호가 있던 구류장을 지나다 속삭였다. "살아서 보기요." 한 달 뒤 명호는 상급기관인 함경북도 보위부로 끌려갔다. 경제범 형기는 길어도 3년이라고 했다. 영양실조로 죽기 전에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 볼만했다. 결과는 6년형이었다. 북한 당국은 남한행 탈북자가 5년 새 20배로 늘자 긴장했다. "본때를 보여 주겠다"며 징벌적 선고를 내렸다. 선고를 받은 날 밤, 7년형을 받은 동료 언니와 함께 자살하기로 했다. 각자 같은 양의 쇠붙이를 먹었다. '어차피 죽을 거 실컷 먹어보기나 하자.' 죄수에게 펑펑이 가루(옥수수 뻥튀기를 갈아 가루로 만든 것)를 배식하는 일을 하며 가루를 몰래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가루를 훔쳐 구류장에 들어와 죄수들과 나눠먹었다. 입 안에서 침으로 '펑펑이 떡'을 만들며 우물거렸다. 죽을 때를 기다렸다. 며칠 뒤 설사를 하던 동료 언니가 죽었다. 들것 밖으로 삐져나온 언니의 다리를 은희는 멍하니 쳐다봤다.● 쥐와 경쟁하다 '강짜로(억지로) 거둬 넣은 못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나만은 살아 나가 복수하라고, 당신이랑 군대 아들이 나를 살군(살린) 것이지요? 반드시 살아나가 채 가(채민철·가명)를 만나겠습니다. 칼탕쳐(칼로 토막내) 죽이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원수를 다 못 갚는다고 생각합니다. 꽃나이 세 명이 죽은 거 아닙니까. 그라고 우리 현준이는요….' 여자 주먹 크기의 밥덩이 하나. 2006년 4월 은희가 교화 생활을 시작한 평안남도 개천 교화소에서 나오는 한 끼 식사였다. 100g 남짓이었다. 밥덩이는 강냉이를 껍질째 빻아 찐 것이었다. 껍질에 사료까지 섞여 돌 씹는 느낌이 났다. 때로는 유리조각과 작은 못도 섞여 나왔다. 은희가 속한 뜨개반은 하루에 모자 5개를 떠야 했다. 하루 15시간 이상 뜨는 모자는 중국으로 팔려 나갔다. 5개를 다 못 뜨면 일렬로 꿇어앉아 '각재(각목) 구타'를 당했다. 입으로는 삽이 날아와 이를 깨놓았다. 식사는 '처벌밥'으로 바뀌었다. 한 끼당 30g. 한 숟가락 분량이었다. 살려면 5개를 뜨고 봐야 했다. 평소엔 '까마귀 날개' 국이 밥과 함께 나왔다. 썩어 문드러져 구멍이 숭숭 뚫린 양배추 잎을 물에 넣어 끓인 것이었다. 잎도, 국물도 까맸다. 흐물흐물한 큰 잎이 떠 있는 모습은 군데군데 털이 빠져 죽은 까마귀 날개가 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밥 먹는 시간은 2분. 한 반 죄수가 80명인데 국그릇은 20개였다. 국을 받자마자 '까마귀 날개'를 바닥에 건져놓은 뒤 한 번에 들이켰다. 국그릇을 넘겨준 다음 유일한 건더기인 '까마귀 날개'를 씹어 삼켰다. 늘 설사를 했다. '봄에 락종(落種·논밭에 씨 뿌리기)을 할 때는 그래도 낫습니다. 뜨락또르(트랙터) 소리에 개구리가 놀라 튀어 오릅니다. 그걸 잡아다 찢어가지고 몰래 매달아놓고 마르기만 기다리거든요. 꾸득꾸득해지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현준이 아부지, 내래 '세상에 어디 여자라는 기 개구리를 잡는가' 하지 않았습니까. 개구리 튀겨 당신 술안주로 내줘도 내 어디 입에나 댔습니까. 개구리가 눈을 바로 뜨고 올려다보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요. 이제는 없어서 못 먹습니다. 날이 좋지 않아 마르지 않거나 말리는 중에 쥐가 채가면 얼마나 아쉽고 속상한지요. 참 한심하지요.' 2008년 평안남도 증산교화소로 이동한 은희는 개구리로 버텼다. 개구리를 잡다 걸리면 발길질을 당했다. 처벌밥을 받거나 굶었다. 보호동물을 잡았다는 게 이유였다. 은희는 살아서나가야 했다. 쥐와 경쟁을 벌이는 한편 밥덩이 세 개를 모아 동료가 잡아놓은 쥐와 바꿨다. 쥐고기를 씹으며 4년 전 본 민철의 이목구비를 머릿속에 그렸다. 겨울이면 교화소 내에 달구지가 자주 오갔다. 은희는 달구지 밖으로 팔 다리가 축 늘어진 시체의 모습을 하루에도 여러 번 봤다. 뼈에는 가죽이 쪼글쪼글한 헝겊처럼 붙어있었다. '허약 3도'들이 줄지어 죽었다. 교화소에서는 허약자의 바지를 벗겨 허약도를 측정했다. 엉덩이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엉덩뼈(엉치뼈 아랫부분)가 얼마나 드러났는지를 살폈다. 양쪽 엉덩뼈가 드러나 약간 벌어져 있으면 1도, 세운 주먹이 엉덩뼈 사이에 들어가면 2도, 눕힌 주먹이 들어가면 3도였다. 2도는 똑바로 서지 못했다. 3도는 항문 근육이 토끼꼬리처럼 늘어져 있었다. 툭 건드리면 쓰러져 죽을 사람들이었다. 2009년 겨울, 은희는 허약 2도였다. '그렇게 맛있던 밥덩이가 목이 까슬까슬하매 넘어가질 않는 겁니다. 내장에 병이 나매 계속 설(설사)을 합니다. 저 지게에 얹힌 날강냉이 하나 채 먹으면 얼마나 달큰할까요. 몸이 금방 나슬 텐데요. 정신이 풀려 서 있을 수 없는데도 지도원은 '놀면 죽는다' 캅니다. 나가도 일을 못할 텐데요. 일을 못해 밥이 줄면 허약 3도가 될 것이고…. 그라면 살아나가 복수하지 못하게 될 텐데 말입니다.'● 다섯 생명과 바꾼 약속이 깨지다 민철의 가족을 보살펴주겠다던 윤창주 함경북도 보위부 반탐처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행불자'의 가족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은 더 매서워졌다. 이웃들은 민철의 아내 허정애(가명)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대화를 엿들어 인민반장 회의 때 보고했다. 정애가 민철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시장에 가면 보안원(경찰)이 따라붙었다. 무언가를 사면 돈의 출처를 추궁한 뒤 잡아갈 터였다. 민철은 정애와 통화할 때마다 "남한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2005년 중순부터 다시 한국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은희 가족 셋과 북한 탈영병 둘을 북한에 넘긴 사실이 중국 공안에 적발돼 그해 여름 한국으로 추방됐다. 민철은 2003년 탈북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가고는 싶은데 애들도 너무 어리고…." 2005년 당시 딸은 14세, 아들은 10세였다. 탈출의 순간은 4년 뒤 찾아왔다. 2009년 6월 보안원이 정애에게 다그쳐 물었다. "이 쌍간나, 니 요즘 누구랑 통화하네?" 벽장에 숨어 남편과 통화를 하다 보위부 탐지기에 휴대전화 전파가 잡힌 것이었다. 남한에 건 전화라는 게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날 밤 짐을 싸 두만강 국경으로 도망쳤다. 민철은 탈북 브로커를 보냈다. 정애와 두 남매는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탈북 1년 만인 2010년 6월 한국 땅을 밟았다.● "아는 살아있다" 2011년 7월 은희는 교화소 문을 나섰다. 두만강변에서 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된지 6년 7개월만이었다. 교화소에서의 마지막 4개월은 생존 투쟁의 나날이었다. 보이는 대로 낟알을 주워 먹었다. 쓰레기장에서 썩은 고구마를 찾아내 씹어 먹었다. 벌레는 잡히는 대로 입에 넣었다. 가족을 생지옥으로 팔아넘긴 민철에게 복수하려면 허약 2도에서 벗어나 살아야 했다. 은희는 출소하자마자 보위부원에게 남편의 생사부터 물었다. "무기수 중에 이명호가 없다. 그라면 어찌 됐겠니?" 남편 친구 말도 다르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명호가 살아있다고 보는가. 군대아들(민철이 북송시킨 탈영병 2명)도 다 죽었단다." 남편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는 살아있단다. (온성군) 창평으로 가보라." 현준이는 창평의 한 농가에 살고 있었다.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마루에 앉은 아이가 보였다. 입양된 현준이는 양어머니 무릎에 앉아 재잘댔다. 보위부원들이 얼어붙은 두만강에 내동댕이쳤던 젖먹이가 어느새 7세가 돼 있었다. 이름도 바뀌어 있었다. 은희는 아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양엄마를 친엄마로 알고 크는 게 행복할 것 같았다. 이제와서 아들을 반역자의 자식으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 발 밑 자갈 소리 "한국 갈 돈 준비됐으이 넘어오라. 내 창바이(長白) 국경에 서있을 거이다." 한국에 간 새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출소한 지 보름이 지나서였다. 은희의 엄마는 은희보다 5개월 앞선 2004년 1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중국에서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딸을 기다렸다. 엄마와 새 아빠는 북송된 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2008년 한국으로 갔다. 탈북을 결심한 은희는 갓 제대한 남동생과 혜산(북)-창바이(중)의 국경에서 만나기로 했다. 함북 온성군에서 양강도 혜산시까지는 걸어서 보름이 걸렸다. 보름이 지나자 압록강이 보였다. 150m 폭의 강만 건너면 중국이었다. 저녁 9시. 강둑 후미진 곳에 북한 군인이 나타났다. "강에 길 열어놨소. 지금 가면 되기요." 남매가 미리 돈을 쥐어준 군인이었다. 남매는 마지막으로 각자의 옷 주머니를 매만졌다. 국경에 도착하기 전 시장에 들러 산 칼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단추를 누르면 칼집에서 칼날이 튀어 올라오는 자동 칼이었다. 칼날 길이는 7cm. 붙들릴 상황이 되면 다시 고초를 겪는 대신 자결할 계획이었다. 강둑을 걸어 강 초입에 도착했다. 발걸음을 뗐다. '자그락자그락.' 발밑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북한군이 야반 탈북자를 잡겠다며 압록강 초입에 깔아둔 자갈 소리였다. 자갈들은 서로 몸을 뒤섞으며 거친 소리를 냈다. 돈을 받은 군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공명했다. "누기야." 북한군 초소 불이 켜졌다. 군인 7명이 뛰어나왔다. 은희는 온몸에 힘이 풀렸다. 함께 헤엄치던 동생의 손을 놓았다. 강 하류로 떠내려갔다. 동생은 누나를 뒤돌아보며 중국을 향해 헤엄쳤다. 강 건너 어둠 속에서 새아빠 실루엣이 우왕좌왕 흔들리고 있었다. 떠내려가던 은희는 주머니 속 칼을 꺼냈다. 칼이 튀어 올랐다. 배 깊숙이 찔러 넣었다. 군인들은 은희를 강둑으로 끌어냈다. 양쪽에서 팔을 잡고 강둑에 몇 차례 처박았다. 등을 발로 짓이겼다. 칼이 더 깊이 박혔다. 군인들은 은희를 바로 눕히고서야 배에 박힌 칼을 발견했다. "독종 간나. 제 배에 칼 꽂는 게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은희는 또 교화소에 가면 민철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분했다. 칼에 찔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손효주·신광영 기자 hjson@donga.com※논픽션 드라마는 사건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기사입니다. 공식 기록과 당사자 증언을 검증해 재연한 100% 실화(實話)입니다.}

    • 201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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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만강변의 배신]아버지의 선택

    《 (지난 줄거리) 중국으로 탈북해 숨어살던 이명호 장은희 부부는 한국으로 데려다주겠다는 탈북자 출신 채민철의 안내를 받아 차에 탔다. 하지만 민철이 부부를 내려준 곳은 북한 보위부원들이 숨어있는 ‘사지(死地)’였다. 은희는 보위부 수사관이 내민 북한 군사 기밀 문서를 보고 숨통이 막혔다. “남한에 가려면 필요하다”는 민철의 말을 믿고 남편이 그에게 건넨 문서였다. “사람이 이럴 수 있는가.” 은희는 치를 떨었다. 》망원경의 초점은 한참을 방황하다 자전거를 탄 소녀에게 멈췄다. 더 들이밀 수 없을 때까지 눈을 망원경에 파묻었다. 흰 셔츠에 남색 치마. 이목구비가 흐릿했지만 딸이었다. 이제 열세 살. 마지막으로 본 게 2년 전이다. 여덟 살이 된 아들은 키가 제법 자랐다. 머리가 자전거 손잡이 높이까지 왔다. 아들의 반질반질한 바지가 햇볕에 반짝였다. 아이들 옆 풀밭에 앉아있는 여자는 아내였다. 예전보다 더 말랐는지 얼굴뼈와 턱선이 도드라져보였다. 2004년 7월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채민철(가명·당시 39세)은 두만강 건너 북한 땅에 있는 가족들을 살펴봤다. 중국 옌볜(延邊) 두만강 접경도시인 투먼(圖們)에서 북한으로 연결되는 투먼대교. 이쪽 끝은 중국, 저쪽 끝은 북한이었다. 다리 아래 두만강이 흘렀다. 민철은 중국 쪽 다리 끝 옆에 있는 전망대에 서 있었다. 다리 길이 200m가 민철과 가족 간의 거리였다. 북한 쪽 다리 끄트머리에 세관이 있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무역상을 마중 온 사람들이 많아 감시의 눈길이 분산되는 곳이었다. 전날 민철은 북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내 허정애(가명·당시 37세)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애들 데리고 세관 앞에 나오라. 거기서 놀아라." 정애는 세관 옆 풀밭에서 토끼풀 뜯는 척을 하며 아이들이 놀 시간을 확보했다. 남매는 강둑을 오가며 건너편을 힐끔힐끔 봤다. 전망대에는 관광객이 북적여 검은 점만 여럿 있었다. 아버지를 분간해낼 수는 없었다. 남매는 30분쯤 강둑을 기웃기웃하다 돌아갔다. 의심을 살까봐 더는 머물지 못했다. 세관을 통과해 나온 조선족 남자가 정애 앞에 포대자루를 내려놨다. "저쪽 아저씨가 전하랍니다. 아저씨가 애들 사진 몇 장 갖다달라니까 내일 다시 보기요." 자루에는 약초와 약통 몇 개, 쌀이 있었다. 정애는 간염과 폐병을 앓고 있었다. 아들은 각혈이 심해 코와 입으로 자주 피를 토했다. 그 날 먼발치에서 가족들을 본 뒤 민철은 투먼대교에 사람이 몰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다리 앞에 나갔다. 아내와 아이들도 그 시간에 맞춰 건너편 강둑으로 나왔다. 민철은 2~3주에 한 번 남매와 통화했다. 버릇처럼 "키가 얼마나 컸는가"라고 물었다. ○ '윤 영감'을 만나다 민철은 다리를 건너 북한에 갈 수 없었다. '윤 영감'을 알게 돼 시작된 숙명이었다. 영감은 지령을 내리는 보위부 간부를 뜻하는 은어다. 윤 영감의 본명은 윤창주. 함경북도 국가안전보위부 반탐처장으로 반역분자나 간첩을 색출하는 책임자였다. 2001년 7월 윤창주를 처음 만난 곳은 정치범 고문으로 악명 높은 종성집결소 취조실이었다. 민철은 몽둥이에 맞아 코뼈가 부러져있었다. 눈 주변까지 파랗게 부어오른 민철에게 그가 물었다. "토마토 많이 따 먹었나?" 민철은 방금 전까지 토마토 수확에 동원됐다가 불려온 터였다. 한 달 간 조사만 받다가 불쑥 투입된 것이었다. 조사 받는 동안 거의 먹지 못했던 민철은 지도원 눈길을 피해 토마토를 입에 쑤셔 넣었다. 윤창주는 민철이 뭘 하다 불려 들어왔을지 꿰뚫고 있었다. "더 따먹어도 된다. 괜찮아." 집결소에서 처음 들어본 부드러운 말투였다. 윤창주는 머리가 희고 눈빛이 인자한 50대 후반의 남자였다. 배가 볼록 나오고 덩치가 우람한 전형적인 당 간부의 풍채였다. "죄는 없던 걸로 해줄 테니 나랑 한 번 일해 볼래."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준다는 말이었다. 민철의 죄목은 2001년 봄 북한사람 2명을 중국으로 탈북시킨 것이었다. 탈북브로커가 민철의 돈벌이였는데 빼돌린 이 중 하나가 요주의 인물이었다. 민철은 그의 중국 은신처를 알고 있었다. 민철은 망설이지 않았다. "반탐처장 동지 지시대로 중국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중국 파견 전날 민철은 특별면회를 했다. 한 번 들어오면 생사가 불투명해지는 정치범 집결소에선 이례적이었다. 윤창주가 아내 정애를 직접 차에 태워 온 것이다. 정애는 핼쑥한 얼굴로 울먹였다. 민철은 이 면회가 격려용인지 협박용인지 분간되지 않았다.중국에서 잡아오겠다고 한 목표물의 행방은 묘연했다. 1년 넘게 진척이 없었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끄나풀은 보호받기 어려웠다. 국가안전보위부(한국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의 경쟁 정보기관인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보위사·한국으로 치면 기무사령부)가 민철의 과거 탈북 브로커 행적을 다시 들춰 수사에 들어갔지만 보위부는 그를 감싸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잡히면 살아나올 가능성이 없었다. 민철은 중국에 숨어 지내다 2003년 7월 한국으로 탈북했다. 민철이 행방불명되자 그의 가족은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시골마을로 추방됐다. 갱생차 트럭이 멈춰선 곳은 소 외양간 앞이었다. 민철의 아내 정애는 어린 남매와 이삿짐 보따리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축사에 소는 없고 빗물이 가득 차있었다. 구석에 보따리를 내려놓자 모기떼가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물어뜯던 소들이 사라져 애타게 손님을 기다린 모기들이었다. 굶주린 모기들은 사람 손바닥에 짓눌려 으스러져도 살갗에 꽂은 주둥이를 빼지 않았다. 모기를 상대하는 사이 보따리는 땅의 축축한 오물이 스며들어 황토 빛이 됐다. 이 축사가 민철 가족의 유배지였다. ○ 두 아버지 민철은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다시 중국에 갔다. 가족이 추방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그 후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 중국에서 북한 골동품 밀무역을 하면 한국보다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기도 했다. 정애와 연락이 닿은 건 2004년 7월. 수사를 피해 잠적한 지 2년 만이었다. 가족들은 유배지에서 1년 가까이 지내다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투먼대교를 사이에 두고 매주 토요일 서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다. 정애는 민철과의 통화에서 보위부원과 보안원(경찰관)의 '쫄쿠기(뜯어내기)' 얘기를 했다. 매일같이 찾아와 돈과 식량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남편이 행방불명이면 중국에 있을 테고, 그럼 돈을 보내줄 것이니 나눠 갖자"는 궤변을 늘어놨다. 보통 북한에서 행방불명자들은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중국으로 간 뒤 번 돈을 가족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정애는 밉보일까봐 빚을 내 뇌물을 댔다. 수시로 있는 중앙당 검열에서 '행불자' 가족은 1순위 조사대상이었다. 검거 실적을 쌓으려 또 다시 추방 보내거나 감옥에 가두는 게 다반사였다. 어린 남매는 '도망자의 자식'으로 살게 될 터였다. 민철 역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사망했고 아버지는 군에서 제대하는 날 세상을 떴다. 열여섯 살에 군 입대 하던 날 민철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봤다. 민철이 은희의 남편 이명호(가명·당시 23세)를 알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민철은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전해줄 송금책을 찾고 있었다. 밀무역으로 잔뼈가 굵은 명호는 북한 국경경비대 군인들과 호형호제했다. 명호는 "가족들과 남한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민철은 흔쾌히 응했다. 둘 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였다.○ 비열한 거래 며칠 뒤인 2004년 9월 20일 민철은 중국 투먼역 대합실에서 낮 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2001년 윤창주 지령을 받고 중국에 나왔을 때 동료 겸 감시자였던 김용식이었다. "채 사장, 그동안 어디 있었어?" "홍콩에서 조폭 했다." 한국 갔다고 실토했다간 반역자로 몰릴 판이었다. 민철이 말을 이었다. "윤 영감하고는 연락하나?" 민철은 윤창주와 다시 연락하고 싶었다. 한 때 자기를 보호해준 사람이었다. 가족을 부탁하기엔 그만한 '빽'이 없었다. 석 달 뒤인 12월 12일, 민철은 윤창주의 전화를 받았다. 영감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상했다. "채 동무, 가족은 안 데리고 갔더라. 나를 믿는다면 한 번 왔다가라." '가족은 안 데리고 갔더라'는 말의 속뜻을 민철은 여러 번 되새겼다. 윤창주는 공작원 교육 때 "체포할 땐 억지로 끌어오기 보단 스스로 찾아오게 하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한 번 가면 못 올 수도 있었다. 이튿날 오후 8시 민철은 꽁꽁 언 두만강을 혼자 건넜다. 약속장소는 근처 기차굴이었다. 민철은 전날 윤창주와 통화하며 "남한에 귀순하려는 북한 탈영병 둘을 알고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탈영병 두 사람은 명호가 민철에게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잡으려면 윤창주가 자신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민철은 생각했다. 새카만 굴 안에서 라이터 불빛이 번쩍했다. 윤창주였다. "부탁이 있습니다." "가족들? 걱정마라. 잘 돌봐줄게." "온성에 아내가 애가 둘 있습니다. 잘 좀 막아주시기요." "채 동무는 내 일만 잘 도와주면 돼. 군인들 며칠 있다 체포하고."○ 잠든 아기 얼굴 문 밖에서 잠겨있는 자물쇠를 열자 안에서 '털컥'하며 총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채민철이야." 안에 있던 두 남자는 문틈으로 민철의 얼굴을 확인하고 총을 거둬들였다. 명호가 숨겨주는 북한 국경경비대 탈영병들이었다. 민철은 조금 전 명호에게서 자물쇠 열쇠를 건네받았다. "오늘 (남한) 간다. 짐 챙겨." 민철은 김용식이 끌고 온 회색 지프차에 탈영병들을 태워 두만강변의 보위부 요원들에게 넘겼다. 그런데 용식이 당초 계획에 없던 요구를 했다. "이명호 식구들도 넘기자." "가는 안 돼. 여자랑 갓난애가 있다고." "윤 영감 지시다." 탈영병 체포 계획을 짜며 명호 가족 얘기를 슬쩍 했는데 용식이 윤창주한테까지 보고 한 것이었다. "여자랑 애기를 어떻게 넘기나." 결국 명호만 넘기기로 마음먹은 민철은 명호에게 전화를 걸어 "너만 먼저 가자. 내려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용식이 민철을 비웃듯 바라봤다. "간나 새끼, 너 남한 간 거 우리가 모를 줄 아나!" 민철은 심장이 죄어왔다. 윤창주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북한의 가족들은 더욱 위태로웠다. 용식은 윤창주에게 전화를 걸어 민철을 바꿔줬다. 영감의 중저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채 동무 새끼집(자식 사랑) 큰 거 내 잘 안다. 애들만 생각해." 이 때 명호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마누라가 왜 자기 안 데려가느냐고 난리요." 민철은 명호의 천진한 목소리에 숨이 막혔다. 한국에 간다고 들떠할 명호 부부의 얼굴 표정이 눈에 선했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오라. 다같이." 민철은 차 뒷좌석에 탄 명호 가족을 백미러로 쳐다봤다. 방금 전 북한에 넘긴 군인 두 명이 앉았던 자리였다. 명호 아들 현준이가 눈을 감고 아빠 가슴팍에 안겨있었다. 민철은 여권 사진을 찍으러 명호 부부를 사진관에 데려간 날이 떠올랐다. 그날 현준이는 지금 같은 표정으로 민철의 품에서 잠들어있었다.신광영·손효주 기자 neo@donga.com   ※논픽션 드라마는 사건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기사입니다. 공식 기록과 당사자 증언을 검증해 재연한 100% 실화(實話)입니다.}

    •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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