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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의 질이 곧 삶의 질이다. 최근 중국발 스모그 재앙으로 우리 국민은 불편과 불안에 시달렸다. 중국의 산업 개발이 본격화된 1990대 초부터 예견된 사태였지만 20년 넘게 방치해 이제 와선 마땅히 손을 쓰기가 어렵게 됐다. 환경과 기후 문제는 중장기적 대비 없이 일단 문제가 닥치면 해결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이번에 경험한 ‘회색 공포’가 이미 오래전 예고됐듯이 온실가스 위기도 머잖아 닥칠 현실이다. 2015년부터 국내에 도입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그런 면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이 국가에서 할당받은 배출량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으면 그만큼 배출권을 사게 하고, 덜 배출하면 시장에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한 제도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친환경 대체에너지 사용을 늘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다. 중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홀로 쏟아내 우리에겐 지속적인 위험 요인이다. 동아일보는 2005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해 온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을 찾아 이 나라 기업들이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지 점검했다.배출권 거래제로 바뀐 일상 런던 외곽에 사는 영국의 라디오 진행자 마크 구디어 씨(52)는 승용차 보닛에 꽂힌 전기 충전호스를 빼는 것으로 출근 준비를 마무리한다. 구디어 씨의 ‘애마’는 닛산의 전기차 리프. 그의 집 지붕에 있는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날 낮 동안 충전된 전기가 이 차의 연료다. 차를 충전하고 남는 전기는 다른 일상생활에 쓴다. 그가 리프를 몰고 런던 시내에 진입하면 혼잡통행료를 면제받는다. 하루 16파운드, 우리 돈으로 2만7000원꼴이다. 전기차는 시내 주차료도 무료다. 구디어 씨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수혜자다. 그의 집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회사는 영국 최대 전기회사인 브리티시가스(BG)다. 전기를 많이 팔수록 수익이 많을 텐데 이 회사는 전기 소비를 떨어뜨리는 태양광판을 앞장서 보급하고 있다. 태양광판 설치 후 25년간 품질을 보증하고 5년간 유지 보수를 책임진다. 이 회사가 고객들의 전기 소비를 줄이는 ‘역주행’을 감행하게 된 주요인이 바로 배출권 거래제다. 영국은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원의 70%가 석탄과 천연가스다. 전력을 많이 생산할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는다. 공장 가동을 다소 줄이면서 이를 만회할 대안으로 찾은 게 바로 태양광이다. 기존 고객을 자사의 태양광 고객으로 붙잡아 장기적으로 영국의 태양광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구디어 씨가 전기차 리프를 타게 된 것도 배출권 거래제의 영향이 적지 않다. 지난해 닛산은 영국 선덜랜드 공장을 폐쇄하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 전기차 생산 기지로 전환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에 배출권 거래제 시행 후 각종 ‘이산화탄소 줄이기(저탄소)’ 대책이 쏟아지면서 유럽의 전기차 수요가 급속히 늘었다는 판단에서다. 노르웨이에선 올해 4월 판매된 차 중 리프가 두 번째로 많이 팔렸을 정도다. 닛산의 공장 잔류 결정으로 사라질 뻔했던 선덜랜드 공장의 일자리 2250개는 그대로 유지됐다. 배터리 공장이 생겨 500명이 새로 고용됐다.英 기업들 “어차피 할 바엔 거래제가 낫다” 영국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저탄소 경제로 잘 대응할 경우 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상공회의소 격인 영국산업연맹(CBI)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산업은 연간 4%씩 성장했으며 배출권 거래제 시행 이후 일자리가 약 100만 개 창출됐다고 보고 있다. 세계적 석유회사 BP의 기후변화대응팀장 빌 톰슨은 “어차피 뭔가를 해야 한다면 탄소세 같은 직접 규제보다 시장 기능을 활용한 배출권 거래제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BG는 도요타 등 기업 고객에게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의 대응책을 선보였다. 도요타 더비 공장 인근에 태양광판 1만7000개를 설치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다. 연간 전기 사용량의 5%를 이런 방식으로 충당해 이산화탄소 2000t 저감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사업에 든 210억 원은 BG와 도요타가 공동 부담했다. 도요타 역시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독일계 기업 지멘스는 영국 맨체스터에 신재생에너지공학센터를 설립해 해상풍력발전소 전력을 전송하는 고압전송 시스템을 개발했다. 배출권 거래제 시행 후 영국 기업들이 태양광과 풍력 등 대체에너지를 쓰려는 수요가 늘자 이를 기회 요인으로 본 것이다. 글로벌 정유업체인 셸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공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화훼농업에 필요한 비료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공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600만 t의 이산화탄소는 네덜란드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3%를 차지한다. 이 중 매년 30만∼40만 t을 포집해 재활용한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개발 투자 분야에서 전 세계의 13%를 차지하는 강국이다. 독일은 배출권 거래제 도입 후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 지난해 전체 에너지원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22%에 이른다. 민간 영역에서도 배출권 거래제 이후 저탄소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영국에선 학부모와 교사들이 돈을 모아 학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태양광 학교’ 프로젝트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내 전기를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하고 기존에 부담하던 전기료를 도서 구입 등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전기료 부담 때문에 난방시설을 하루 1∼2시간만 가동하는 우리나라 중고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영국은 이케아 킹피셔 등 가구나 건축 자재 전문 매장에 태양광 패널이 구비돼 있어 고객들이 장을 보다 손쉽게 구입할 정도로 자연 에너지 활용이 일상화돼 있다. 독일은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라인 강변에 설치된 대형 교각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해 다리 가로등 전기로 활용한다. 2011년 4월 본에 있는 케네디 다리에 처음 설치된 이후 다른 도시들로 확산되고 있다.한 줌의 햇볕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유럽의 기업들 사이에서도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20∼30유로(이산화탄소 t당) 선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이 5유로 수준(7000원)으로 급락했다. 배출권 거래를 염두에 두고 공격적 투자에 나선 기업들로선 기대했던 이익을 거두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올해 거래제 시행 3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별 배출권 할당량이 상당 부분 줄어 시장가격이 다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배출권 거래 관련 민관협의체인 ETG의 존 크레이븐 의장은 “아직까지 거래제 때문에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긴 사례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산업 구조 특성상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중화학공업 비중이 크고 무역 의존도가 높아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포스코 환경에너지기획실 정용식 팀장은 “EU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는 상당 부분 생산량 감소에 따른 것이어서 국내 제조업의 성장잠재력을 해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 배출권 할당 등 정책이 투명하고 일관돼야 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위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김지석 주한 영국대사관 선임기후변화담당관은 “최근 영국과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매년 1.5∼2배 급증하고 있다”며 “배출권 거래제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한다는 게 실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배출권거래제준비기획단 유범식 팀장은 “정부가 부여한 배출 할당량을 초과하면 불이익을 줬던 기존 제도와 달리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오히려 시장친화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영국과 독일의 도시를 둘러보면서 이곳 사람들이 한 줌의 햇볕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로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난달 마지막 주 영국 런던과 독일 본은 일조시간이 오전 9시∼오후 3시로 6시간에 불과했고 낮에도 대부분 흐렸다. 그런 환경에서도 각 가정과 사무용 건물, 다리 등에 달린 태양광판을 통해 얼마 안 되는 햇볕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기자가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눈이 부셨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햇볕은 화창하지만 주변에서 태양광판을 보기란 쉽지 않다. 독일에서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시간은 하루 평균 2.9시간. 우리는 이보다 24% 많은 3.6시간이지만 지난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2763GWh)는 독일(2만8000GWh)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런던·본·푈클링겐=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백발의 파마머리를 한 그녀는 키가 150cm쯤 돼 보였다. 80년을 버틴 얼굴 피부는 고목 껍질처럼 억셌다. ‘○○노인복지센터’라고 쓰인 형광색 조끼에 검은색 털신. 배꼽까지 올려 입은 바지의 고무줄이 볼록 나온 배를 이등분했다. 시골 ‘우리 할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신모 할머니(80)는 ‘그놈’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빛이 변했다. 5일 충남의 한 읍내에서 만난 그녀는 “나한테 그놈을 데려와. 칼로 콱 찔러 죽일 겨”라며 격분했다. 신 할머니는 지난해 여성 노인 상습 성폭행범인 양모 씨(49)에게 자신의 집에서 두 차례 성폭행당한 피해자였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도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 성범죄자들이 젊고 매력적인 여성만 노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약한 상대를 선호한다. 여성 노인은 제압이 쉽고 특히 신고를 꺼려 성범죄자에게 손쉬운 공격 대상이다. 2008년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피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보호망이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약자인 여성 노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아동(만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는 2009년 1017건에서 지난해 1123건, 올해 1039건(11월 현재)으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노인(만 60세 이상) 대상 성범죄는 2009년 244건, 지난해 320건, 올해 370건(11월 말 기준)으로 늘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사 당국의 관심이 아동, 장애인에게 집중되면서 남은 약자인 노인 성범죄가 늘어나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신고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경기도의 A요양원에서 지내는 김모 할머니(63)는 요양원 총무 김모 씨(48)에게서 지난해 11월부터 9개월간 70여 차례나 성폭행당했다. 하지만 신고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가족 없이 기초생활수급비 45만 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A요양원은 월 15만 원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할머니는 “신고하면 원장님이 날 쫓아낼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범행은 할머니의 하소연을 전해 들은 요양원 여직원이 수사기관에 제보하고 나서야 끝났다. 지난달 구속 기소된 김 씨는 검찰에서 “할머니가 신고도 안 하고 저항도 안 했다”며 “할머니도 좋아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할머니는 4년 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은 이후 몸 오른쪽이 마비돼 있었다. 김 할머니의 법률 조력인을 맡은 류승언 변호사는 “노인 상당수는 피해 사실을 신고해 소문이 나면 현재 거주지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신고율이 10%가량으로 추정되는데 노인의 신고율은 5%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인은 성폭력은 여자가 잘못해 발생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세대여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을 더 수치스러워한다는 것. 이 때문에 노인 대상 성폭력은 실제론 연간 수천 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지숙 평택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노인은 강간을 당하고도 당할 뻔했다거나 도둑이 들었다고 축소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놈이 밤에 얼굴에 뭘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왔는데 생각하면 시방꺼정 무서워.” 지난달 충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박모 할머니(82)는 기자가 ‘그날’ 일에 대해 묻자 “부끄럽다”며 말을 아꼈다. 마을 어귀 외딴집에 혼자 사는 박 할머니는 지난해 5월 초 오전 2시 양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양 씨는 토시로 복면을 한 채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는 호통을 쳤다. “다 늙은 사람에게 뭐하는 짓이여.” 양 씨가 맞받아쳤다. “늙으면 여자 아니여?” 할머니는 신고하지 않았다. “뭐 좋은 일이라고 신고를 햐. 아들한테도 ‘도둑이 들었는데 훔쳐간 건 없다’고만 혔어. 아들도 ‘크게 다친 데 없으면 그냥 넘어가자 혀.” 피해 사실을 묻어두려는 노인의 특성을 성범죄자는 교묘히 파고든다. 가해자들은 ‘노인은 신고당할 걱정 없이 성폭행해도 되는 대상’이라는 그릇된 확신을 갖는다. 박 할머니의 망설임은 4건의 노인 연쇄 성폭행이 일어나는 단초가 됐다. 한 달 뒤인 지난해 6월 17일 오전 2시 양 씨는 다시 할머니를 찾았다. 한층 과감해진 양 씨는 방 창호지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섰다. 복면을 한 그가 박 할머니의 두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신고 안 했지?” 할머니는 대꾸를 못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네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또 왔어.” “왜, 두 번 오면 안 돼?” 연이어 성폭행에 성공한 양 씨는 활동 무대를 넓혔다. 양 씨는 인근 충남의 한 외딴집에 혼자 살던 신 할머니를 지난해 7월과 9월 두 차례 성폭행한 뒤에야 경찰에 붙잡혔다. 폐지를 모아 팔며 혼자 살던 84세의 김모 할머니는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들 사이에서 ‘민원왕’으로 불렸다. 폐지가 조금 없어지기만 해도 바로 경찰서에 달려와 “빨리 범인을 잡아 달라”고 소리쳤다. 이런 할머니가 3개월 넘게 침묵을 지킨 일이 있었다. 무료 급식소에서 만난 오모 씨(49)에게 폐지 수거를 도와달라고 한 것이 비극의 발단이었다. 할머니가 내어준 옆집에서 지내던 오 씨는 ‘야수’로 돌변했다. 그는 4월∼6월 말 4차례에 걸쳐 할머니 방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했지만 할머니가 완강히 저항해 미수에 그쳤다. 할머니는 오 씨가 잡혀 들어가면 폐지를 모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다 7월 11일에야 경찰에 신고했다. “이 나이에 젊은 놈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 카면 아무도 안 믿을 거 같고…. 그놈을 빨리 쫓아내주소.” 본보가 2004년부터 올해 11월 말까지 발생한 노인 대상 성폭력 사건 2000여 건 중 당사자 인적 사항과 사건 개요가 확인된 85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평균 나이는 44.9세, 피해자는 74.6세였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행이라도 상대가 젊은 남자면 ‘늙은 여자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는 식의 어이없는 편견이 뿌리 깊다”며 “이런 상황에서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노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죽음보다 더한 상처 충북의 박 할머니와 충남의 신 할머니를 연쇄 성폭행한 양 씨에 대한 1심 재판이 2월 대전지법에서 열렸다. 당시 변호인은 “이 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통상적인 피해자보다 정신적인 피해가 적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본보 취재 결과 노인의 상처는 심각했다. 노인은 피해 이후 4가지 감정에 시달린다. 자신이 가장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안 뒤 느끼는 무력감, 자식 나이의 남자에게 당한 수치심,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모욕감, 신고한 다음엔 ‘젊은 남자의 인생을 망쳤다’라고 생각하는 죄책감이 뒤섞인다. 각계의 후속 조치가 이어지는 아동·장애인과 달리 노인은 소외돼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다. 지난해 8월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남성 간호조무사(33)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한 서모 씨(62)는 같은 해 10월 투신자살했다. ‘민원왕’이었던 부산 김 할머니의 아들(54)은 올해 9월 7일 어머니 집을 찾았다가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대문 철침에 묶은 끈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 할머니는 자살 직전 10여 일을 악몽의 현장인 자신의 집에 혼자 방치돼 있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양형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할머니는 밥을 거의 먹지 못해 아사(餓死) 직전까지 갔다. 처지를 비관해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행인이 발견해 신고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3주간 입원할 때는 “내가 몇 달 동안 그놈한테 시달림을 받았다”란 말을 반복하며 덜덜 떨었다. 본보가 최근 발생한 노인 성폭력 사건 10건(피해자 15명)을 심층 취재한 결과 피해자 중 2명은 자살했다. 7월 폐지를 모으던 중 이모 씨(35)에게 성폭행당한 A 할머니(69)는 사건 발생 7일 만에 숨졌다. 흉부 및 두안면부 다발성 손상이 원인이었다. 지난해 8월 자신이 혼자 살던 집에서 이웃(40)에게 성폭행당한 소모 할머니(77)는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충남의 신 할머니는 최근 경로당으로 속옷을 팔러 온 남자를 보고 놀라 도망쳤다. 체격과 생김새가 가해자와 비슷했던 것. 할머니는 “가해자가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다”란 기자의 설명에도 “그놈이 틀림없다. 날 해코지하러 온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신 할머니는 기자가 찾아간 5일, 집에 숨은 ‘나쁜 놈’을 찾는다며 장롱을 다 헤집어 놓았다. “집에 그놈이 숨어 있나봐. 내가 오줌 눌 동안 숨었을까봐 무서워. 그놈이 또 올까봐 무서워.”○ 문 열린 곳에서 아직도 혼자 산다 최근 충북의 박 할머니 집을 찾아 문을 두들겼다. 집은 대문이 따로 없었다. 도로를 향해 난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거실로 쓰이는 6.6m²(약 2평) 남짓한 공간이 나오는 구조로 범죄에 취약했다. 문은 사건 당일처럼 잠기지 않았다. 기자는 “왜 문을 고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두 번이나 나쁜 짓을 당했는데 또 당하겄어.” 경남의 한 읍내에 혼자 사는 노모 할머니(82) 집 현관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 닫히지 않았다. 노 할머니는 10월 15일 옆집 세입자 윤모 씨(49)에게 성폭행당할 뻔했다. 사건 당일 오후 2시 윤 씨는 열린 문으로 들어선 후 공격했다. 노 할머니는 “문을 고치려면 100만 원 넘게 든다고 해서 자식들한테 미안하다”라고 했다. 취재 결과 피해자 15명 중 사망한 4명을 제외한 11명 중 10명은 사건 발생 현장인 집이나 요양원에 혼자 방치돼 있었다. 노인 성폭력 사건 중 67.8%가 피해자 집에서 발생하는 등 혼자 사는 노인은 성폭력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이렇다 할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 할머니는 “사건 당일 밤 딸에게 자고 가라고 했지만 바쁘다며 가버렸다”고 했다. 사건 현장을 떠난 노인은 충남의 신 할머니뿐이었다. 그 역시 차로 10여 분 거리인 다른 빈집으로 이사했을 뿐 혼자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사건 이후 마련한 방범 대책은 장에서 사온 생후 6개월 된 강아지 ‘복실이’ 한 마리였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광영 기자}

노인을 범하려는 성범죄자의 왜곡된 욕구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심리와 유사하다. 성폭력은 성충동을 주체하지 못한 결과라기보다 억눌린 분노를 약자를 향해 표출하는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범죄자 입장에서 노인과 아동은 물리적으로 제압하기 쉽고 상황 대처능력이 취약해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아동 성범죄자 가운데 상당수는 노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을 함께 갖고 있다. 지난해 경남 통영에서 여자 초등생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범인 김점덕(46)은 7년 전인 2005년에 62세 노인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전과가 있다. 김은 당시 선원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할 일 없이 지내며 동네를 배회하다 냇가에서 다슬기를 채취하던 할머니를 공격했다. 강간미수·상해 등으로 5년간 복역하고 나온 김은 얼마 후 10세 소녀를 다음 희생양으로 삼았다. 통영 사건 때 김을 심층 면담한 경남지방경찰청 조혜란 프로파일러는 “김 씨가 특별히 아동이나 노인을 선호하는 성적 기호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기가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상대를 찾았던 것”이라며 “범행 당시 10세 소녀나 할머니가 홀로 방치된 상황이었고 이들이 자신을 경계하지 않아 성폭행을 해도 별 탈이 안 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7세와 8세 여아를 3차례 강제추행했던 화물차 운전사가 70, 80대 할머니를 성폭행한 사례도 있다. 조모 씨(57)는 지난해 2월 경기 의왕시에서 88세 여성을, 그해 10월 부산에서 77세 여성을 성폭행해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조 씨의 변호사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조 씨가 당뇨가 심해 성기능 장애가 있었다. 또래나 젊은 여성들한테는 접근할 엄두도 못 낼 만큼 자신감이 없다 보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이나 노인을 노리는 성범죄자들은 자존감이 낮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평소 열등감과 불만을 품고 있다가 주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상대로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경찰수사연수원 권일용 경감(프로파일러)은 “이들 성범죄자는 강간을 통해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희열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며 “정서적으로 미성숙해 동년배 여성들과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기 때문에 노인과 아동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노인들 사례를 보면 파지를 수집하러 다니는 등 외부에 자주 노출되거나 문단속을 잘 하지 않는 홀몸노인이 70%에 이른다. 피해 아동들 역시 대체로 가정에서 방치되거나 우범지역에 사는 빈곤층 아이들이다. 주변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해 조금만 친근하게 다가가면 경계심을 풀어버리는 이들의 약점을 성범죄자들은 파고든다. 전문가들은 노인과 아동 성범죄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만큼 노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동 성범죄까지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울에 사상 첫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던 5일. 서울시민들은 이날 오후의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일 것”이라는 잘못된 예보를 믿었다가 유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이런 오류를 범한 건 전날 오후 5시를 기준으로 다음 날 미세먼지 농도를 딱 한 차례 예견하는 현행 예보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었다. 호남 영남 제주지역에는 이 정도 예보마저 제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는 전국 어디에서나 오전과 오후, 하루 2차례 미세먼지 농도가 예보된다. 환경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대기상황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미세먼지 예보 횟수를 늘리고 예보 지역도 기존의 수도권 충청 강원에서 올해 안에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 현재는 미세먼지 농도 5단계 등급 가운데 ‘약간 나쁨’ 이상일 때만 예보하지만 16일부터는 예보 등급과 무관하게 매일 예보한다. 지름이 미세먼지(PM10)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해 폐까지 침투하는 초미세먼지(PM2.5) 예보 시기도 당초 2015년에서 내년 5월로 앞당긴다. 정부는 예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3명뿐인 예보인력을 12명으로 늘렸다. 환경과학원이 예보에 활용해온 미국 해양대기청 자료에 기상청 예보 시스템도 접목할 계획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9일 미세먼지 관련 예산을 17억 원에서 119억 원으로 대폭 늘려 이 같은 인프라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국발 스모그의 유입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의 대기 분야 정책대화를 내년 3월 중국에서 열기로 확정했다. 12일부터는 중국에서 한중 민관 환경협력 간담회 등 관련 포럼을 열고 미세먼지 문제를 논의한다. 1996년 우리 주도로 만든 ‘장거리이동물질 한중일 3국 공동연구 협력체(LTP’)에서도 미세먼지를 다음 주제로 정하고 상호 영향을 분석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협력이 잘될지는 미지수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중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다. 미세먼지 관련 자료도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스모그의 심각성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도 주중 미국대사관이 올해 1월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886μg까지 올라갔다”고 자체 측정 결과를 공개하면서부터다. 유경선 광운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최근 사태는 중국 스모그의 영향도 있지만 국내 배출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 작업이 선행되지 않은 채 ‘아무래도 중국 탓 같다’고 압박해서는 중국 정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줄여갈 계획이다. 배출가스저감장치 부착 등 경유차에만 적용했던 규제를 휘발유차와 건설기계, 선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공공기관에 한정돼 있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2015년부터는 민간인까지 혜택이 넓어진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산업재해 대책이 아직까지 효과를 보지 못하는 건 기업들이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투자’가 아닌 ‘손실’로 보기 때문입니다. 돈을 들여 예방하는 것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적당히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죠.” 백헌기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58·사진)은 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최근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엄정한 법집행을 하고 있는 것에 공감한다”며 “산재가 발생했을 때 지불해야 할 비용을 높여 기업이 예방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 26일 하루 동안 충남 당진에서 독성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졌고 서울 구로 공사장에서도 화재로 2명의 숨지는 등 산업재해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화학물질 누출이나 폭발사고가 빈번해지면서 5일 경북 구미에 화학사고 합동방재센터가 처음으로 문을 여는 등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 이사장은 “화학사고는 작업장 내 근로자의 안전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화학사고 조사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재발 방지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은 화학사고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위기 대응 행동매뉴얼’ 시스템을 보완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산재 사망률이 2∼4배 높은 편이다. 백 이사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산재 통계가 시작된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모두 430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8만 명이 넘습니다. 인천과 대전 전체 인구만큼이 다쳤고 경기 과천시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위원과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한국노총 사무총장 등을 지낸 백 이사장은 국가 경쟁적 측면에서 산재 사고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8조 원이 넘습니다. 연봉 2000만 원 근로자 90만 명을 1년간 고용할 수 있는 돈, 자동차 120만 대 이상을 수출해야 벌 수 있는 돈이 산재로 사라지는 것이죠.” 공단은 사업장 차원에서 스스로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위험성 평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사업주가 작업장 내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평가한 뒤 노사가 협력해 재해를 예방하는 제도다. 백 이사장은 공단이 개발한 산재 예방 관련 다양한 스마트폰 앱들을 소개했다. 그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산업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1000개 문장을 13개 언어로 제공하는 ‘위기탈출 다국어회화’ 앱이나 산재 속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위기탈출 사고포착’ 앱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공단은 이와 함께 전 세계 대형사고의 원인과 예방법을 공유하는 ‘FIND ACCIDENT’, 날씨에 따른 산업재해 위험지수를 제공하는 ‘안전날씨’ 앱 등을 내놓았다. 앱 사용자는 20만 명에 달한다. 공단은 10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IBA국제비즈니스’ 대상에 이 앱들을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9일 오전부터 전국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10대 중 4대가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파업으로 멈출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파업이 시작되더라도 고속철도(KTX)와 수도권 지하철은 일단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노조는 8일 밤늦게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이날 밤 12시까지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철도노조는 이날 오후 9시 ‘필수유지업무 지명자를 제외한 전 조합원은 9일 오전 9시부터 파업에 돌입하라’는 내용의 파업 명령서를 하달했다. 이 시간 전까지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2009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철도 파업이 벌어진다. ○ ‘수서발 KTX’ 핵심 쟁점 떠올라 철도노조가 이번 파업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다. 코레일은 10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수서발 KTX 운영사를 독립 계열사로 출범시키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를 분리할 경우 다음 수순은 민영화”라며 “열차를 멈춰서라도 10일 이사회 의결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철도노조는 파업 철회 조건으로 이사회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코레일 사측은 “수서발 KTX 운영사를 출범시킬 때 코레일 지분 41%를 유지하고 나머지 59%도 연기금 등 공공 성격이 강한 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라며 “민영화를 위한 조치라는 노조 주장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임금 인상 문제도 파업 명분 중 하나다. 철도노조는 자연승급분 1.4%를 포함해 내년 8.1%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코레일은 임금 동결로 맞서고 있다. 코레일 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조3000억 원에 달해 전체 공공기관 중 8번째로 많다는 이유에서다. 코레일은 파업이 시작되면 비상수송 체제를 가동한다. 철도는 2008년 필수 공익유지사업장으로 지정돼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필수근무자 8418명은 정상 근무한다. 여기에 퇴직 기관사와 군인 등 대체인력 6035명을 투입할 계획이다. 코레일은 KTX와 수도권 지하철에 대체인력을 집중 투입해 파업이 시작되더라도 정상 운행시킬 방침이다. 다만,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평시 대비 운행률이 각각 57.7%와 60.5%로 떨어진다. 특히 화물열차는 평소 하루 289대가 운행하지만 파업 기간에는 104대만 운행하게 돼 운행률이 36.0%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강경대응 예고 정부는 이번 파업이 시작되면 불법 파업으로 규정할 방침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파업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파업이 시작될 경우 전체 공공기관에 미칠 여파도 주시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등도 ‘민영화 반대’ 등을 이유로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정부 당국자는 “과도한 복지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공기업들이 명분 없는 파업을 벌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11일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고 과도한 복지 혜택을 없애는 내용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 / 신광영 기자}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5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상당수 지역을 뒤덮으면서 겨울철 우리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됐다. 올해 m³당 10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이상의 미세먼지가 12시간 넘게 이어지는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나타난 건 모두 21회. 지난해(3회)보다 무려 7배나 많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심장과 폐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발 대기 오염은 봄철 황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겨울부터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로 자주 이동하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수년간 중국의 산업화로 오염물질 발생량이 급격히 증가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올해는 11월 초부터 겨울 추위가 시작돼 중국에서 난방을 일찍 시작했다. 중국은 난방용 에너지의 70%를 석탄으로 충당하고 있어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다. 김준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11월에도 난방을 하는 인구가 늘어난 데다 승용차 이용자까지 늘어 미세먼지의 양이 급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31개 성시 자치구 중 25곳에서 스모그가 발생할 정도로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2일부터 사흘 연속 스모그 경보를 발령했다고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5일 전했다. 중앙기상대 관계자는 “올해 입동(11월 7일) 이래 가장 넓은 범위에서 스모그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심한 곳은 가시거리가 50m에 불과해 일부 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을 불허했다. 고속도로들도 봉쇄됐다. 장쑤 성 난징(南京) 시는 4일 m³당 초미세먼지(PM 2.5 이하) 농도가 12시간 넘게 300μg 이상을 기록하며 스모그에 태양빛이 반사돼 태양이 두 개로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겨울철 우리나라에 북서풍이 불면서 중국의 대기 오염 물질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환경부 조사 결과 서풍 또는 북서풍 계열의 바람이 불 경우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평균 44.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우리나라 대기에 떠 있는 미세먼지 대부분이 중국에서 날아왔다고 보긴 어렵다. 최근 한중일 과학자들이 참여한 장거리이동오염물질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발 오염물질이 국내 대기환경 악화에 끼친 영향은 30∼40%인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의 대기가 예년에 비해 지나치게 안정돼 있는 것도 미세먼지 오염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대기의 흐름이 활발해야 오염물질이 흩어져 미세먼지 농도가 내려가는데 지금처럼 대기가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중국에서 온 미세먼지가 막다른 골목에 묶이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천 등 국내의 공장 밀접지역이나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물질이 대기 중에 갇혀 미세먼지 농도가 높게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19)에서 발표된 ‘중국 미래 기후전망 시나리오’에 따르면 중국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2022년까지, 최악의 경우에는 2050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어 대기가 정체된 상태다. 여기에 최근처럼 안개 끼는 날이 잦으면 오염물질이 안갯속 물방울에 달라붙어 미세먼지가 한 지역에 오래 머물게 된다. 환경부는 단기 대책으로 대기 상태를 날씨처럼 예보하는 ‘미세먼지 예보제’를 8월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 2월부터 전면 시행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지난달 바르샤바 COP19에서 중국 측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했으며 이달 베이징에서 열릴 한중일 환경협력포럼 때도 스모그 저감을 위한 3국 간 협력을 제안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이 임기응변에만 급급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한다. 지금처럼 미세먼지 이동 상황을 지상에서 관측해 하루 전에 예보하는 데 그칠 경우 정보를 신속히 전달받지 못한 시민들이 미세먼지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저지구궤도에 환경감시위성을 띄워 자국 지상에 미세먼지가 오기 전에 해상에서 사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며 “그만큼 예보가 빠르고 이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오염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시민들은 외출 전 대기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다. 환경부는 ‘에어코리아’(airkorea.or.kr) 사이트를 통해 지역별 실시간 오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의 실시간 대기 정보는 홈페이지(cleanair.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휴대전화 문자로 대기 질 정보 수신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중국에서 날아온 ‘스모그(대기 속 오염물질이 안개 모양의 기체가 된 것) 폭탄’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던 안개와 섞여 대기 중 미세먼지가 급상승하면서 5일 서울에 사상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 하지만 예보당국은 이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지름 2.5μm(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이날 오후 4시 기준 m³당 93μg(마이크로그램)을 기록해 ‘주의보’ 발령 기준(시간 평균 85μg 2시간 이상 지속)을 초과했다. 초미세먼지는 사람 머리카락의 6분의 1 굵기인 미세먼지(PM 10)보다 지름이 4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작다. 금속화합물 등 유해물질로 구성돼 있어 들이마시면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 깊숙이 침투해 심장 및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 역시 평소 3배 수준인 m³당 184μg까지 치솟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국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된 데다 국내 연무와 대기 정체 현상으로 초미세먼지 오염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 겨울 난방이 본격화하면서 미세먼지의 공습이 예상됐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날 오전에만 잠시 고농도 미세먼지가 예측될 뿐 하루평균 ‘보통’(m³당 81∼120μg)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잘못 예보했다. 기상청이 측정한 이날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오전 1시 m³당 153μg에서 오전 8∼10시 120μg으로 떨어졌지만 오후 3시 184μg까지 치솟았다.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중국발 오염물질이 바람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바람이 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기상청은 6일 전국이 대체로 맑겠다고 예보했지만 올겨울 내내 중국발 미세먼지 공습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신광영 neo@donga.com·이서현 기자}

“곰팡이가 싹 사라졌어요.” 경기 포천시에 사는 신모 씨(74)는 10일 깔끔하게 변신한 집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올여름 집중호우로 신 씨의 집이 침수돼 가족 6명은 벽지와 장판을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야 했다. 그의 집을 방문해 곰팡이를 없앤 뒤 친환경 벽지를 바르고 창문까지 새로 달아준 사람들은 환경산업기술원 소속 자원봉사 직원들. 신 씨의 집이 110가구째다. 환경산업기술원은 14일 “기초생활수급자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구 등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직원들 자원봉사뿐 아니라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 2200가구를 대상으로 곰팡이와 집먼지 진드기 등 실내공기오염물질을 진단하고 전문 청소기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환경 개선 컨설턴트가 진단 결과를 토대로 환기나 생활습관 개선 등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상태가 심각한 240가구에 대해선 벽지 장판 창문 변기 등을 친환경 자재로 교체해주고 있다. 기술원은 환경부와 함께 소외 지역 청소년들의 교육환경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선 물 부족이 심각한 전남 해남지역의 산이초등학교 등 학교 3곳에 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고 수도시설도 교체했다. 교실과 벽면은 친환경 페인트로 칠해서 아이들이 유해물질 걱정 없이 뛰놀 수 있게 했다. 홍천여고와 산청 간디학교 등 6개 학교에 대해선 기술원 직원들이 친환경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원 윤승준 원장은 “도시화로 실내 활동이 늘면서 천식이나 비염 아토피 같은 질환이 늘고 있다”며 “취약계층의 생활환경과 건강이 나아질 수 있도록 환경복지 실현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검찰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52)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수사해 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에 대해 11일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이 사건의 핵심 피해자가 “납득할 수 없다”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직접 기소를 신청하는 제도다. 피해여성 A 씨는 1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성접대 여부는 거의 안 묻고 다른 피해자들과 말을 맞췄는지에 초점을 맞추더라”며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A 씨는 검찰 처분에 항의하기 위해 재정신청 외에 탄원서를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낼 계획이다. A 씨와의 인터뷰는 12일 새벽 3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A 씨는 광고모델과 연기자 일을 하다 20대 중반이던 2006년 여름 지인에게서 윤 씨를 소개받았다. A 씨는 “얼마 뒤 윤 씨가 나를 강원도 원주 별장으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신고하면 연예계 활동을 못하게 소문내고 너도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유력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여성을 별장으로 유인해 성폭행하고 이를 약점 잡아 성접대에 동원하는 수법은 다른 피해여성들도 공통적으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윤 씨가 A 씨에게 유력인사 성접대를 상습적으로 강요하고 김 전 차관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11일 이들 혐의를 모두 무혐의 처분하면서 몇 가지 근거를 발표했는데 A 씨는 “실제 조사 내용과 많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우선 검찰은 윤 씨가 A 씨와 김 전 차관의 성관계 장면을 동영상으로 무단 촬영한 혐의에 대해 “A 씨가 해당 동영상 캡처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증거 확보에 협조하지 않아 성접대가 실제 있었는지, 이를 강제로 촬영했는지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A 씨에 따르면 윤 씨가 촬영한 뒤 협박용으로 A 씨의 휴대전화에 보낸 캡처 사진이다. A 씨는 “경찰 조사 때 해당 사진을 이미 지워버렸다고 얘기했고 애초에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한 적이 없고 검찰에서 제출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동생이 윤 씨에게서 이 사진을 받은 시기는 내가 윤 씨와 연락을 끊은 2008년 초이며 몇 년 보관하다가 2011년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에게 이 사진이 들통 나 파혼이 됐고 그 충격으로 유산까지 했다. 더이상 나쁜 기억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아 사진을 삭제하고 휴대전화도 바꿨다”고 말했다. 당초 경찰은 A 씨 조사 과정에서 이 사진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 대신 사진을 봤다는 A 씨 동생과 속기사(2008년 윤 씨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A 씨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피해 내용을 털어놓았던 인물)의 증언을 확보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사진을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내지 않았다”는 주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검찰은 또 A 씨가 윤 씨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경제적인 피해만 주장하고 강간이나 성접대 강요 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윤 씨에게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 씨는 “윤 씨가 나를 횡령으로 고소하려 했을 때 대응책을 알아보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에게 피해 내용을 e메일로 보냈다”고 반박했다. 본보가 A 씨에게서 해당 e메일을 전송받아 확인한 결과 피해 내용이 여러 군데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1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해당 e메일을 압수수색해 확인했는데 상습적으로 성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올 8월 검찰에서 10시간가량 조사받는 동안 핵심적 사안에 대한 질문은 거의 받지 않았다. 윤 씨에게 어떤 경제적 도움을 받았는지, 다른 피해여성과 연락을 하는지 등 본질과 거리가 먼 질문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A 씨는 8월 검찰 조사 때 피해 내용을 제대로 진술할 기회가 없었다고 느끼고 담당 검사에게 윤 씨의 강요로 피해를 본 정황을 자세히 설명한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다른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취재팀은 A 씨 주장에 대한 김 전 차관 측 반론을 듣기 위해 변호인에게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모르는 사람이고 성접대를 받은 적도 없으며 (성접대에 동원됐다는) 여성들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신광영 neo@donga.com·전지성 기자}

고교 선배(강원 동해시 북평고)인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과 박종기 전 태백시장 등에게서 5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56·사진)이 1년 8개월간의 법정투쟁 끝에 지난달 30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유 회장 등 이 전 청장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람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청장은 지난해 2월 대기발령 조치를 당하자 “결백을 입증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아직 출근을 하지 못한 채 경찰청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청장은 서울청장, 부산청장, 경찰청 차장, 경찰대학장과 함께 경찰총수(치안총감) 바로 밑의 5개 치안정감 자리 중 하나다. 7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난 이 전 청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에 앞장서다 검찰에 미운털이 박혀 표적수사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보는 이 사건 1, 2, 3심 판결문과 10일 검찰 수사팀 핵심 관계자 인터뷰 내용 등을 토대로 이 전 청장의 표적수사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확인해 봤다.○ “검찰, 돈 줬다는 진술 제대로 검증 안 해” 이 전 청장은 “유 회장의 진술이 나와서 수사가 시작된 게 아니다. 검찰이 저축은행비리 사건으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던 유 회장을 압박해서 마치 내게 뇌물을 준 것처럼 진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뇌물을 줬다는 유 회장의 진술과 객관적 상황이 거의 맞지 않는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진술을 끼워 맞췄다는 것이다. 일례로 검찰은 유 회장이 2008년 가을 자신의 집무실에 온 이 전 청장에게 서울 송파경찰서에 접수된 민원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지만 그해 11월 유 회장은 부정대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유 회장은 법정에서 “당시 그다지 중요한 민원이 아니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망이 옥죄어 오는 상황에서 유 회장이 급히 처리할 필요도 없는 민원 때문에 고위 공직자에게 거액을 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유 회장은 또 2010년 가을 이 전 청장의 집 앞에서 500만 원을 줬다고 여러 번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아파트 자동차 출입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 전 청장 집에 간 시기가 2011년 4월로 확인되자 “이전 진술은 착각이었다”며 말을 바꿨다. 검찰이 유 회장의 진술을 입증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재판부는 “유 회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사건을 마음대로 재구성한 뒤 내용을 끼워 맞추고 있다”며 이 혐의도 기각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 관계자는 11일 본보에 “유 회장 진술에만 의존한 건 아니고 기타 여러 증거와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핵심 관련자들 여러 번 입 맞춘 정황” 이 전 청장은 “유 회장이 공범인 측근들과 여러 번 입을 맞췄고 유 회장 스스로 ‘거짓 진술’이라고 시인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회장과 비자금 담당 임원 장모 씨, 유 회장의 아들, 행장 이모 씨 등 4명은 “이 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을 당시 대검찰청 대기실이나 빈 조사실에서 여러 차례 상의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또 법정에서 “유 회장이 이 전 청장에게 돈을 줬다는 내용은 검찰청 와서 유 회장 말을 듣고 알게 됐다” “경찰청 고위직에게 돈을 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구체적인 액수는 유 회장에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 대해 검찰은 “유 회장의 부하 직원들이 회장실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을 진술했기 때문에 그것을 추궁해 역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 회장이 이 전 청장에게 돈을 줬다는 다른 직원들의 진술은 유 회장 진술이 반복된 것일 뿐 증거 가치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전 청장은 또 “유 회장이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측근에게 ‘후배한테 뇌물을 줬다고 거짓 진술을 해 괴롭다’는 심경을 털어놓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유 회장은 이 전 청장 측 변호인이 당시 발언 내용을 물어보자 “그런 말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변호인이 “구치감 내부를 찍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보자”고 하자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유 회장 등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거나 수사상의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종기 전 태백시장 측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비슷한 사유로 기각했다. 무죄 결과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은 맞지만 이 전 청장을 표적수사하거나 수사권 독립 문제로 수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기소 검사였던 윤대진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 1팀장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 재직 중이다. 이은택 nabi@donga.com·신광영·유성열 기자}
필리핀의 태풍 강습은 최근 우리나라에 ‘가을 태풍’이 자주 불어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올여름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폭염이 오래 지속된 영향으로 지난달까지 태풍 발원지인 서태평양 열대 해상의 수온이 예년보다 1도가량 높았다. 과거에는 유례가 없던 수온 1도 상승에 기상학자들은 강력한 태풍 발생을 경고해왔다. 태풍은 고온의 바다가 머금은 수증기를 주에너지원으로 삼기 때문이다. 10일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9월과 10월 발생한 태풍은 13개로 한여름에 주춤했던 태풍이 가을에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발생한 태풍도 2004년 이후 가장 많은 28개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가을에도 태풍 발생 조건을 충족시키는 해역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태평양에서 북상한 태풍은 한반도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0월 들어 우리나라로 내려온 북쪽의 차고 건조한 대륙고기압이 태풍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태풍은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동남아나 일본 남부 해상으로 옮겨 다니고 있다. 하이옌은 서태평양에서 발원한 태풍이 위로 가지 못하고 서쪽인 필리핀 방향으로 이동한 경우다.기상청 관계자는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진행될수록 태풍은 더 강하고 더 늦게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11일 서울이 올 하반기 들어 처음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중부와 남부 내륙지방까지 아침에 서리가 내리는 등 초겨울 추위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1일 북서쪽에서 확장하는 대륙 고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이 대체로 맑겠지만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서울과 강원 지역 아침 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할 것이라고 10일 예보했다. 한낮에도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서울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낮 최고기온 6도의 분포를 보이고 춘천 영하 4∼영상 7도, 인천 2∼7도, 강릉 1∼8도, 세종 0∼7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상청은 11일 오전 3시부로 서해 5도와 충남(태안군 서산시 보령시)과 전남(무안군 목포시) 일부 지역, 흑산도 홍도 울릉도 독도에 강풍주의보를 발령했다. 강릉시와 동해시 산간지역 등 강원도 일대와 청주시와 영동군을 제외한 충북 전역, 경북 일부 지역에는 한파주의보를 내렸다. 다음 날인 12일(화) 역시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대전 영하 1도, 세종 영하 3도, 전주 영하 1도로 예상된다. 그러나 13일부터는 전국 아침 기온이 전날보다 2∼3도가량 오르고 14일부터는 평년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기상청 관계자는 “비 소식이 있는 목요일에 추위가 누그러지겠지만 다음 주 초 다시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생수병이 가벼워진다. 7일 환경부는 국내 주요 생수 제조사들과 '생수병 경량화 실천협약'을 맺고 생수 페트(PET)병 무게를 현재보다 최대 30% 줄여 폐기물을 줄이기로 했다. 참여 업체는 제주개발공사(삼다수), 풀무원(풀무원샘물), 롯데칠성(아이시스), 하이트진로(퓨리스석수), 동원 F&B(미네마인), 해태음료(평창수) 등 6곳이다. 협약사들이 지난해 판매한 생수는 500㎖ 5억6000만 개, 2L 4억1000만 개다. 빈 병 무게만 2만8000t을 초과한다. 이들은 3년 이내에 환경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생수병의 무게를 현재보다 최대 30% 줄인다. 환경부는 이로 인해 빈 페트병 무게를 7030t 줄이고 제조원가와 폐기물 처리비용을 더한 사회적 비용을 145억 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본도 2011년 페트병 17종의 평균중량을 2004년보다 13.3% 줄여 연간 폐기물을 6만8000t 감축했다"며 "생수병 경량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른 페트병도 경량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근로복지공단 ▽1급 △부산북부지사장 임한병 △창원지사장 이금호 ▽2급 △부산본부 재활보상1부장 이기호 △복지부장 김응도 △부산북부 재활보상부장 이승준 △진주 가입지원부장 홍봉의 △대구서부 재활보상부장 김종승 △광주본부 재활보상2부장 소진만 △여수 재활보상부장 이양민 △부장 김창년 △대구산재병원 이경옥 △대전산재병원 김경희 ▽1급 △서울관악지사장 △원주지사장 주병선 △고양지사장 이명수 △천안지사장 문우동 ▽2급 △안동지사장 김인준 △경영지원국 노사협력부장 김헌재 △보험급여국 보상부장 문병효 △서울본부 송무2부장 정규환 △서울동부 가입지원2부장 최순성 △서울관악 가입지원1부장 김석운 △부산본부 송무부장 이종철 △대구본부 재활보상1부장 최윤목 △대구본부 송무부장 이희대 △복지부장 강명희 △포항 재활보상부장 공영한 △구미 가입지원부장 이희순 △경인본부 복지부장 김은경 △수원 가입지원2부장 김효현 △부천 가입지원부장 신기창 △안산 재활보상1부장 함준식 △성남 재활보상부장 김영성 △대전본부 가입지원부장 주영수 △천안 가입지원1부장 김영두 △안산산재병원 이남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홍완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김승국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코리아중앙데일리 편집인 겸 경영총괄(상무) 유권하}
주변 공기가 나쁘면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어린이들이 공기가 맑은 시골에서 지내면 호전될 수 있다는 가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 환경부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공동 연구한 결과 대기 중 미세먼지나 벤젠 톨루엔 총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농도가 높으면 아토피 피부염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2009년 7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삼성병원에서 치료 받은 아토피 소아환자 22명의 증상일지와 보건연구원이 측정한 대기측정소의 오염물질 농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m³당 1μg 증가하면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하루 전보다 평균 0.4% 나빠졌고 벤젠이 0.1ppb 증가하면 증상이 2.74% 심해졌다. 총휘발성유기화합물도 0.1ppb 증가하면 증상이 2.59%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별로도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봄에는 온도가 낮고 스타이렌 농도가 높을수록, 여름에는 이산화질소와 톨루엔 농도가 높을수록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악화됐다. 가을에는 온도가 높을수록, 겨울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증상이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59)가 환경부 신설 기관인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21일 부임했다. 최 원장은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4대강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참여형 생태인문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학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행동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30년 넘게 학자의 길을 걷다 행정가로서 첫발을 뗀 최 원장을 18일 서울 청계천에서 만났다. ―행정가로의 전향은 어떻게 하게 됐나. “거의 등 떠밀렸다.(웃음)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을 갓 출범시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지난 정부에서 너무 깨져 버린 개발과 생태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가 워낙 거셌다. ‘행정은 모른다’고 고사하려 하자 한 후배는 ‘언행불일치의 이기주의자’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환경 걱정하더니 일해야 할 때 발 빼려 한다고….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만드는 게 절실하다는 점에서 나도 그 후배와 생각이 같았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최근의 큰 사회적 갈등은 대부분 개발과 환경의 교감이 막힌 사례다. 그로 인한 갈등 비용이 너무 크다. 4대강은 말할 것도 없고 밀양 송전탑 사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원전 입지 선정 문제를 보자. 생태적 관점에서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주판알만 튕겨서 밀어붙이다 보니 환경단체들로선 드러누울 수밖에 없다. 그럼 공사가 지연돼 국민 세금이 줄줄 새고 결국 공사를 억지로 마친 뒤에는 소모적 갈등이 계속된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립생태원장으로서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나. “국가가 500억 원 이상 드는 사업을 할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적 관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듯 생태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 현재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를 같이 불러놓고 토론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최적의 안’이 나온다는 거다. 개발과 환경을 동등하게 놓고 따지는 게 궁극적으로 개발사업을 성공시키고 국민 예산을 아끼는 길이다.” ―선진국에도 그런 장치가 있나. “미국은 환경청이 대통령 직속이어서 생태 문제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제도화돼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일본이다. 오래전부터 전국 관공서의 말단직원 상당수를 생태학 전공자로 채용하고 있다. 개발하려는 쪽이 이 말단직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예 사업 접수가 안 되도록 만든 구조다. 이런 식으로 자연을 변화시키려는 쪽에서 개발의 이유를 설득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는 거꾸로다. 개발을 막는 사람이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유엔 ‘국가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기본 후생 수준인 인간복지는 180개국 중 28위지만 생태계복지는 거의 꼴찌인 162위다.” ―취지는 좋은데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를 함께 불러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왜 두 부처를 같이 부른 줄 아느냐. 개발과 보전이 계속 싸움만 했는데 이젠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나에게 ‘개발과 환경보전의 새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을 꼭 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게 대통령의 진심이라면, 그 원칙을 계속 지키시겠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 ―생태가치를 따지다 보면 아무 일도 못 한다고 공격받을 텐데…. “생태가 개발을 가로막는 게 결코 아니다. 4대강 사업을 보자. 생태학자로서 원론적으로 반대했지만 나를 포함해 상당수 생태학자는 사실 4대강 정비에 찬성할 수 있었다. 우리 강들은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생태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태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생태학적으로 수용 가능한 4대강 사업을 하려 했다면 나 역시 찬성했을 거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또 어떤가. 사업 당시엔 내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 파괴의 측면이 있지만 도심 한복판에 물길이 생겨 서울시민이 그만큼 행복해지지 않았나. 나는 자연의 행복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거기 국민의 행복도 있더라.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악마의 편지’가 도착한 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한국 교도소에서 10년 넘게 단련된 저도 태국 교도소에선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영어로 쓴 편지에는 불만 사항이 장황하게 적혀 있었다. ‘말이 안 통해 매점에 거의 못 간다’ ‘어쩌다 가면 뒤에 늘어선 죄수들이 소리를 질러 늘 싸움 직전까지 간다’ ‘재소자들이 내 소지품에 마약을 찔러 넣고 교도관에게 신고해 괴롭힌다’…. 현지 교도관이 우리말로 쓴 편지를 못 부치게 한 것에 대해선 ‘재소자가 모국어로 편지 쓸 권리는 전 세계 감옥의 상식’이라며 정부 차원의 항의를 요구했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찰 영사인 차경택 총경(51)은 편지를 읽다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경찰의 해외도피 흉악범 ‘1번 수배자(최우선 검거 대상)’ 최세용(47). 최세용은 차 총경을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경찰청 인터폴이 체포한 최세용을 신속히 한국에 보내는 게 차 총경의 임무였다. 최세용은 지난해 성탄절 첫 편지 이후 차 총경에게 1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모두 상당한 수준의 영어로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스스로 운명을 예견한 구절이 있었다. “한국에 가면 저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겠죠.” 최세용은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의 한 환전소에 들이닥쳐 현금 1억 원을 훔쳤다. 여직원(당시 25세)이 몰래 신고 벨을 누르자 칼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에는 2008∼2011년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납치했다. 필리핀 여행을 앞둔 한국인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여행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접근한 뒤 공항에 마중 나가 차에 태웠다. 납치한 뒤 석방비 명목으로 2억7000만 원을 뜯어냈다. 납치된 이들 중 홍석동 윤철완 씨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홍 씨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31일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최세용이 ‘이역만리 감옥에 갇힌 자국민 인권’을 운운하며 차 총경에게 처음 편지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아내 만나러 간 길이 ‘저승길’ 지난해 7월 8일, 태국 경찰에서 넘겨받은 얼굴사진 40장 가운데 한 장이 차 총경의 눈에 들어왔다. 장발에 야윈 얼굴, 뿔테 안경. 수배전단과는 달랐지만 분명 ‘그놈’이었다. 2007년 필리핀으로 도주해 5년 동안 행적이 오리무중이었던 최세용. 당시 우리 경찰은 최세용이 2011년 가을 태국으로 도망갔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어 아내 시모 씨(45)가 2011년 12월 이후 세 차례 태국에 출입국한 기록을 확인했다. 시 씨는 석 달마다 태국 국경을 잠시 넘었다 들어오며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었다. 이른바 ‘비자런(Visa Run)’ 방식이었다. 최세용이 아내를 도피처로 불러 함께 살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차 영사가 받은 사진 40장은 시 씨가 지난해 5월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치앙라이 국경을 다녀왔던 날 검문소를 통과한 한국인들의 얼굴이었다. 그중 최세용이 있었으니 악마의 꼬리를 찾은 셈이었다. 경찰은 아내 뒤를 밟아 그를 잡기로 했다. 시 씨가 다음 ‘비자런’을 할 것으로 예상된 지난해 8월 경찰청은 치앙라이 국경에 경찰관을 보냈다. 하지만 그땐 최세용 부부가 이미 2주 전 태국으로 입국한 후였다. 경찰은 국경관리소 측에 시 씨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쪽에선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치앙라이에 주재관을 보내 국경관리소 직원들에게 여러 번 식사와 술 대접을 했다. 그때부터 검문소 직원들은 책상 위에 최세용 부부의 사진과 수배 전단을 붙였다. 다시 석 달 뒤인 지난해 11월 3일 차 총경은 태국 이민국의 전화를 받았다. “시○○가 나타났다.” 시 씨가 오전 10시경 검문소를 나갔다가 3시간 뒤 다시 입국해 이민국 직원 5명이 사복차림으로 시 씨를 쫓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마침 한국 경찰관들이 최세용을 잡으러 방콕에 도착한 날이었다. “미행만 하고 절대 체포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랑 같이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차 총경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강조해서 말했다. 국경을 넘을 땐 가족을 먼저 보내 동태를 살핀 후 유유히 들어오는 게 해외도피범들의 수법이었다. 이민국 직원 2명은 시 씨가 탄 버스에 함께 탔고 3명은 승용차를 타고 버스를 뒤따랐다. 시 씨는 버스에서 내려 치앙라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안으로 따라 들어가기 직전 이민국 직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차 총경이었다. “최세용은 분명 다른 사람 이름을 댈 겁니다. 무조건 잡으세요.” 시 씨는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귀퉁이에 앉은 한 남자와 마주앉았다. 이민국 직원 2명은 커피숍 문 앞을 지키고 3명은 시 씨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여권 좀 봅시다.” 최세용은 태연한 얼굴로 ‘송OO’ 명의로 된 가짜 여권을 내밀었다. 필리핀에서 납치했던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빼앗은 여권이었다. 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이민국 직원들은 수배전단을 들이밀며 수갑을 채웠다. 5년 4개월의 도피 행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현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최세용에겐 그날 밤 마지막 탈출 기회가 있었다. 최세용을 감시하던 태국 경찰관 중 한 명이 “풀어주면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온 것. 하지만 오랜 도피생활로 돈이 떨어진 최세용은 꼼수를 부리지 못했다. 태국 감옥에 수감된 최세용은 차 총경에게 아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자주 했다. 그는 편지에서 “아내는 저 때문에 모든 걸 잃었습니다. 아내는 한 불쌍한 범죄인의 여인일 뿐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최세용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아내와의 관계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에 발목을 잡히는 단초가 됐다.○ 한국 송환 직전 “옷 사 주세요” 최세용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를 한국에 데려오려면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었다. 최세용이 태국 1심 법원에서 징역 9년 10개월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위조여권 사용과 공문서 허위 기재 등의 혐의였는데 예상외의 중형이었다. 우리와 태국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르면 현지에서 형을 다 치른 범죄자만 인도가 가능했다. 최세용이 출소할 때까지 10년이 지나버리면 그의 죄를 입증할 증거와 목격자들이 사라질 수 있었다. 납치 실종자 가족들도 그가 빨리 입을 열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임시 인도 청구’ 조항에 희망을 걸었다. 현지에서 징역을 살기 전에 본국에 송환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한 예외조항이었지만 전례가 없어 사문화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또 태국 정부가 거절하면 대책이 없었다. 전재만 주태국 대사와 차 총경이 쁘라차 쁘롬녹 법무장관을 찾아가 협조를 사정했다. 다행히 쁘롬녹 장관은 “한국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반가워했다. ‘근면 자조 협동’을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이 ‘친한파’ 법무장관은 최세용에 대한 임시 인도 청구에 합의해줬다. 하지만 최세용이 태국 1심 판결에 항소와 상고를 하며 시간을 끌면 인도 절차를 시작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는 감옥에 면회 온 차 총경에게 “한국에 가면 여론재판이 열릴 것이고 내가 안 한 것까지 덮어씌워 법정 최고형을 받게 될 것”이라며 안 가겠다고 버텼다. 최세용은 안양 환전소 직원 살해와 필리핀 관광객 몇 명을 납치한 것은 시인하면서도 실종자들에 대해선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제가 됐든 한국에 갈 테니 괜히 외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가는 게 좋다”는 차 총경의 설득에 최세용은 동요했다. 몇 달 뒤 면회에서 그는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살아갈 시간도 별로 없고 몸도 안 좋고…. 삶이 공허합니다.” 최세용은 항소를 포기하고 한국에 가기로 했다. 죗값을 치르려는 생각보단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간 자충수였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 장기간 수감생활을 하다 보면 태국에서 받았던 9년 10개월형은 흐지부지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형이 확정되면 일단 태국에서 9년 10개월을 다 산 뒤 다시 한국에 들어와 새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한국 송환이 이뤄진 이달 15일 태국 방콕 공항에서 최세용은 수갑을 찬 채 현지 경찰관 전화로 차 총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행색으로 한국에 들어가려니 부끄럽습니다. 옷 한 벌만 사주세요.” 당시 최세용은 남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차 총경은 차갑게 말했다. “그냥 들어가라. ‘금의환향’하는 거 아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친환경으로 홍보하는 유아용품 8종을 직접 구해서 실험해 봤더니 5종에서 유해물질이 나왔습니다.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5일 정부세종청사 내 환경부 국정감사장.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부산 남을)이 윤성규 장관에게 이같이 질의하며 ‘그린워싱(Green-Washing)’ 실태를 지적했다.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상품의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로 꾸미거나 과장 광고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서 의원은 이날 인형과 배변훈련팬티, 놀이매트 등 친환경이라고 광고하는 유아용품 8종에 대해 국가공인시험검사기관인 FITI시험연구원에 성분 조사를 의뢰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이 중 5종에서 환경호르몬인 노닐페놀과 합성수지 제조 때 사용되는 디메틸포름아미드 등 유해성 물질이 검출됐는데 독일 연방환경청 친환경 인증 기준 대비 4∼7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 의원은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들 제품 표지에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더욱 안전하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은 무해무독한 제품’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는 것”이라며 강력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환경부가 친환경 사칭 제품을 검증하고 허위 과장 광고로 판명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정 조치 의견을 통보토록 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을 이달 발의할 계획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은 정부가 그린워싱을 규제하기 위해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친환경마케팅 표시사용 지침’, 영국은 ‘녹색 주장 지침’, 일본은 ‘환경표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놓고 기업들이 친환경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품목의 사실 여부를 가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정위가 감독 권한을 갖고 있지만 단속 여력 부족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주관부처인 환경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