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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의대 증원을 철회했는데도 의대생은 꿈쩍하지 않는다. 전공의 추가 모집에 필기시험 면제, 입영 특례까지 안겨줘도 전공의 복귀율은 미미하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것 같다. 의정 간 협상이 시작돼도 2000명 증원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10명 중 6명은 취업을 했다. 병원도 전공의 없는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차라리 이런 ‘뉴노멀’을 의료 시스템을 개혁할 적기로 삼아야 한다. 어차피 고장 났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한국 의료 기적 뒤엔 전공의 희생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48년간 한국 의료는 기적적인 성공을 이뤘다. 환자들은 쉽게 병원에 갈 수 있고, 덕분에 의술도 집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낮은 보험료-낮은 수가’로 인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고 미용·성형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은 수익 보전을 위해 전공의를 저임금으로 희생시켜 왔다. 의대 졸속 증원이 기폭제가 됐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터진 것이다. 올해 상반기 인턴 모집 정원은 3356명이다. 의대 졸업생보다 많다.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정원은 3954명이다. 역시 인턴 정원보다 많다. 전공의를 싼 인력으로 보고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모집하려 한 탓이다. 올해 전공의 모집 인원은 소아청소년과 206명, 산부인과 188명이었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 과가 없어질 판인데 관성적으로 많이 뽑는다. 이러니 주당 80시간씩 일하며 수련을 마쳐도 병원에 남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올해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모집 정원은 164명이다. 전부 교수로 임용되기 어려운 규모다. 전공의들은 양질의 교육보다 장시간 근무만 강요하는 고된 수련 과정을 참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한다.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순순히 수용해도 취업한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은 적다. 결국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 대신 전공의는 적정 숫자를 선발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최근 대한의학회는 ‘중구난방’ 수련 과정을 표준화하고, 수련병원을 평가·인증하는 전공의 수련교육원 도입을 제안했다. 아울러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는 지도전문의를 충원하고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전공의 이탈로 교수가 기존처럼 진료, 임상, 교육이라는 ‘1인 3역’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에서 수련 과정의 질을 담보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고질병 고치려면 과감한 집도를 정부는 전문의 양성 트랙의 이원화도 검토했다. 종합병원 이상에 근무할 세부 과목 전문의와 개원가로 나갈 일차 의료 전문의를 분리 양성하는 것이다. 의정 갈등 와중에 설익은 채로 발표돼 ‘인턴 2년제’라는 의료계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하지만 일차 의료 전문의가 굳이 중환자실 당직 근무를 서거나 뇌수술을 배워야 할까. 고령화로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주치의 등 일차 의료 수요는 폭증할 것이다. 만성질환자가 지금처럼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반복하고 진료과를 전전한다면 환자도, 의사도, 건보 재정도 손해다. 수련 기간을 단축해 일차 의료 전문의를 배출하고 미용, 성형에 쏠리지 않도록 수가 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우리 의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을 몰랐으며 의료계가 이런 수술법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막대한 비용 투입과 건보료 인상으로 귀결되므로 대증요법만 썼을 뿐이다. 그래서 새 정부의 의료 개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적 부담을 덜고자 의정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전공의 복귀로 끝이 아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요즘 미국 뉴스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 정권 선전이나 내부 결속을 위해 열리던 열병식이 14일 미국에서 열렸다. 이라크전 승전을 기념했던 열병식 이후 34년 만이다. 미국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해 에이브럼스 탱크,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이 워싱턴 중심부를 관통했고 B-25 폭격기, 블랙호크와 아파치 헬기가 뜬 공중쇼도 화려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행사 마지막에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가 웅장하게 흘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이어서 ‘600억 원짜리 생일 축하 공연’이란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자부심을 느꼈다는 미국인도 많았다. 실제 미국인을 뭉클하게 할 만한 요소가 골고루 포진된 잘 기획된 쇼로 보였다. 열병식 영상에는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시민들이 포착됐고 속된 말로 ‘국뽕’이 차오른다는 감상평도 줄줄이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은 승리를 기념한다. 미국도 그럴 때가 됐다. 바로 오늘 밤”이라고 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병식이 열리는 동안, 독립혁명 이후 신생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는 약 8만 명이 모여 “절대 권력은 없다(No Kings)”를 외쳤다. 뉴욕 5만 명, 로스앤젤레스 2만5000명 등 50개 주 200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동기가 농후한 이민 단속에 군을 투입하고, 생일날 열병식을 열어 군을 정치화하는 위험한 불장난까지 벌이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극단적으로 쪼개진 미국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이날, 미네소타주에서 총성이 울렸다. 미네소타 주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인 멀리사 호트먼 주 하원의원과 그 배우자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범인은 이들을 쏘기 직전에 존 호프먼 주 상원의원 부부에게도 총을 쏘았다. 이들도 중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다. 경찰로 위장한 채 접근한 범인의 차 안에서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 70여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은 “정치적 신념에 따른 전형적인 표적 살인”이라고 했다. ▷이념 갈등이 인명을 뺏는 폭력으로 비화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대화는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총으로는 의견 차이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들을 애도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에 따른 백인 ‘블루칼라’의 좌절,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에 올라탄 트럼프 대통령의 ‘혐오 정치’가 분열을 조장하고 증오에 면죄부를 줬다. 그 결과, 미국 사회가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6일 한낮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 한인 의류업체 ‘앰비언스’에 중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일터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ICE 요원들은 체류 자격을 증빙할 서류를 갖추지 못한 중남미 출신 직원 14명을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려 트럭에 실었다. 이날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홈디포 주차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 20여 명도 체포됐다. 비인도적 구금 과정,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한 그 가족과 이민자들의 시위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연간 불법 이민자 100만 명을 추방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 공약 실행에 속도가 붙지 않자 지난달부터 하루 3000명씩 체포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평소 5배에 달하는 숫자다. ICE는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불법 이민자가 일할 만한 직장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단속을 하고 있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가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주 방위군 300명을 투입했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으면 해병대원 700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한다. ▷LA 한인타운에는 불안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1992년 흑인 로드니 킹을 마구 폭행한 백인 경찰의 무죄 판결로 촉발된 LA 폭동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SNS에 LA 폭동 당시 한인 남성이 총기를 든 사진을 올리며 “루프톱(옥상)의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 “한인들이 옥상에 오르자 폭동이 멈췄다”고 썼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진압을 옹호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LA 한인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루프톱 코리안’은 LA 폭동 당시 약탈과 방화로 한인타운이 폐허가 되자 꾸려진 자경단을 뜻한다. LA 경찰이 ‘부자 백인 동네’인 베벌리힐스, 할리우드를 방어선으로 구축하며 사실상 한인타운을 포기했고 나중에 한인과 흑인 간 충돌을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인 자경단이 폭도를 막기 위해 총을 들고 옥상에 오르면서 “선제공격은 안 돼” “절대 사람한테 쏘지 마!”라고 서로 다짐하는 비장한 모습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런 슬픈 역사가 백인 극우 남성들 사이에서 종종 ‘밈’으로 소환돼 유색 인종 갈라치기에 쓰이고 있다. ▷LA 폭동 나흘째인 1992년 5월 2일 한인 10만 명이 모여 평화 행진을 했다. 당시 자료를 보면, 한인들이 눈물 범벅인 채로 ‘평화(peace)’가 적힌 흰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장구, 꽹과리를 치며 “함께 나아가자” “평화를 원한다”고 외친다. 이민자의 서러움을 삼키고 전 재산을 잃은 미움을 녹이며 ‘화해’를 이야기하는 행진에 다양한 인종이 동참하면서 LA 폭동은 끝났다. 트럼프 주니어가 진짜 소환했어야 할 장면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요즘 천국보다 미국 가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비자 정책이 발표된다. 지난달 27일부터 미국 공관 270여 곳이 학생비자 신규 발급을 위한 인터뷰를 중단했다. F(유학·어학연수), M(직업훈련), J(방문연구원) 비자가 그 대상이다. 비자 심사 과정에서 SNS 검증을 의무화하는 절차를 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이튿날에는 중국 유학생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4일에는 하버드대 유학생을 콕 집어 6개월간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고, 9일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소말리아 등 19개국으로부터 미국 입국을 제한한다. ▷2023∼2024학년도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은 4만3149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당장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비자 발급을 준비하던 유학생과 교환학생, 박사후 연구원 등이 날벼락을 맞았다. 이미 거액의 학비를 냈는데 출국을 장담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 아예 재수나 입대를 고민하는 학생도 있다. 보딩스쿨에 합격한 중고생까지 비자가 거절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안식년을 맞은 교수들은 미국행을 포기하고 유럽 대학 문을 두드린다. ▷차근차근 준비한 인생 계획이 틀어질까 초조한데 트럼프 정부가 이를 이용해 급행료 장사에 나선다고 한다. 비(非)이민 비자 신청 시 1000달러를 내면 비자 인터뷰를 앞당겨 주는 프리미엄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실제로 시행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비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제 비용보다 수수료를 높게 책정해선 안 된다는 연방대법원 판례가 있어서다. 현재는 비자 수속 비용으로 185달러를 받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는 동시에 이미 거주 중인 외국인도 내쫓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적발 후 취소’(Catch and Revoke)라는 인공지능(AI) 기반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생의 SNS 활동을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비자를 취소하고 있다. 4월까지 유학생 약 1200명의 비자가 취소됐다. 반미 성향이나 반유대주의 시위 참여 등을 문제 삼거나 음주운전, 과속 같은 경범죄 기록만으로 비자가 취소된다. 심지어 구금된다. 위헌적,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강행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유학생이 진학한다. 이들은 내국인보다 비싼 학비를 포함해 약 440억 달러를 쓴다. 유학생이 줄면서 대학들은 재정적 타격, 연구 역량 위축을 우려하고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대학은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는 플랫폼이었다. 이런 소프트 파워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인재를 블랙홀처럼 끌어모은 덕분에 미국은 번영을 누려 왔다. ‘쇄국’으로 흥한 나라는 없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통상 호흡기 바이러스가 사납게 구는 건 겨울이다. 하지만 다시 ‘한여름’ 코로나19 유행을 경고하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유행 주기가 딱 맞아떨어진다. 오미크론 이후 백신 접종으로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코로나19가 9∼10개월마다 다시 유행하고 있다. 그 시점이 6, 7월경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만 중국 홍콩 태국 등 인접 국가에서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NB.1.8.1)를 오미크론 변이의 하위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할수록 감염력이 강해지고 독성은 약해진다.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이다. 이번 바이러스 역시 백신 접종에 따른 면역을 회피하는 능력을 개량한 덕분에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다. 5월 들어 코로나 감염률(호흡기 환자 가운데 코로나 환자 비율)을 보면 홍콩은 13.66%, 중국은 16.2% 등으로 치솟았다. 대만은 5월 넷째 주 코로나 환자가 4만1000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전주보다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전파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다만 중증도나 치명률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오미크론 치명률은 A형 독감(0.1∼0.2%)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대만에선 올해 코로나 환자 가운데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가 330명이었고, 그중 47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65세 이상 고령자이거나 만성질환자, 면역질환자 등 고위험군이었다. 중증 환자 수나 사망자 수는 지난해 유행 당시보다 낮다고 한다. ▷우리나라 코로나 감염률은 아직 들쑥날쑥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NB.1.8.1)가 우세종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면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에어컨도 위험 요소다. 자주 환기를 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은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쉬운 조건이다. 지난해 고위험군 백신 접종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 점도 걱정스럽다. 코로나19가 풍토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고위험군에는 여전히 무서운 질병이다. ▷의정 갈등이 끝나지 않았는데 코로나19 환자 폭증으로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다면 ‘나을 병’도 자칫 ‘죽을 병’이 된다.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 기침할 때 옷소매로 가리기, 마스크 착용하기 등 위생 수칙을 준수해 예방해야 한다. 영원하거나 완벽한 면역은 없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서 바이러스를 멀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고위험군은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한다. 기존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증 진행을 막아준다는 것이 검증된 사실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세계 200여 개국과 무역하는 경제 대국이다. 유엔, G20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그 역할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이 K-팝을 한국어로 떼창한다. 이런 ‘글로벌 한국’에 살면서 나라 밖을 보지도, 미래를 보지도 않겠다는 건가. 6·3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을 보며 암담했던 이유다. 아무리 급하게 치러지는 대선이라지만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열겠다는 것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12·3 계엄은 단죄해야 마땅하지만, 국민은 그로 빚어진 극심한 분열 역시 통합되기를 바란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지정학적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더 이상 남북 관계를 독립변수로 다루기 어렵게 됐다. 통상 환경은 급변하고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로 주저앉을 판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의 해법은 들을 수 없었고 “내란 세력 척결” “괴물 독재 저지”처럼 상대를 적으로 보고 퇴치하겠다는 언어만 난무했다.‘죽음의 정쟁’ 끝은 인재 고갈과 가난 1세대 사회학자이자 보수주의 이론가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중용의 길: 류성룡 리더십’ 봉정(奉呈)식에 최근 다녀왔다. 2007년 ‘위대한 만남: 서애 류성룡’으로 시작해 류성룡을 연구한 다섯 번째 책을 제자들이 묶어 출판했다고 한다. 89세 노학자는 “마지막 저서일 것 같다”며 담담하게 알려왔다. 그 자리에서 한국 정치의 지독한 과거 지향성에 대한 원형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미래로 가지 못하나. 송 교수는 그 원인을 여전히 동질성에 기반한 농업사회에 사는 것처럼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다름은 틀린 것이고 고쳐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폐쇄성이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 인조반정을 거쳐 그 후 300년 이상을 조선의 정치는 ‘더 낫고 못하고’의 집권 능력 경쟁이 아닌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만 있었다. 죽음의 정쟁, 그 끝은 인재의 고갈이고 가난의 지속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망했다. 송 교수는 “다름이 같음을 압도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다름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병리”라고 했다. 민주주의 제도를 갖췄더라도 다원성을 부정하면 병리 현상이 나타난다. 12·3 계엄은 국정을 일방통행하다 가로막힌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을 힘으로 제압하려다 일어난 일 아닌가. 예외적인 시기가 있다면 류성룡이 재상으로 있었던 선조 초기부터 1598년까지 30년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망국 위기 속에 동인과 서인이 번갈아 집권, 정책적 협의를 했던 드문 시기였다. 이는 류성룡 리더십 덕분에 가능했고 그 핵심이 중용(中庸)이라는 게 송 교수의 해석이다. 중용은 ‘한가운데’라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인 발전을 뜻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양쪽 끝을 가 보고 가장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용이다.그래도 노학자는 미래를 낙관했다 이날 봉정식에서 질문이 나왔다. 지금의 정치가 조선의 당파 싸움과 닮았다고 하면서도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연 시간이 부족해 듣지 못한 답을 따로 물었더니 송 교수는 “관(官)을 견제할 민(民)의 성장”이라고 답했다. 조선과 달리 산업화로 기업이, 민주화로 언론이 생겼다. 정치가 잘못하더라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12·3 계엄으로 탈선한 ‘한국호’를 제 궤도로 돌린 건 국민이었다. 송 교수는 꼿꼿이 서서 강의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요즘은 노환을 앓는 아내를 직접 돌본다고 했다. 제자들이 청소라도 돕겠다고 했더니 소학의 한 구절인 ‘쇄소응대’(灑掃應對·물 뿌려 비로 쓸고 응하고 대답한다)를 들어 “학문의 기본은 청소”라며 뿌리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류성룡에 천착해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가 400여 년 전 류성룡을 소환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문을 닫아걸고 우리끼리 싸운 나라는 망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인 2022년 5월 3일 김건희 여사가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했다. 당시 하얀색 셔츠와 함께 입은 검은색 A라인 치마가 5만4000원짜리여서 화제가 됐다. 2022년 4월에는 3만 원짜리 흰색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모두 김 여사 팬카페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이다. 정작 그 시간 통일교 전직 간부 윤모 씨가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전달해 달라”며 1000만 원대 샤넬 백을 건넨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윤 씨는 2022년 4월, 7월 등 두 차례 전 씨에게 샤넬 백을 전달했다. 그런데 전 씨는 준 적이 없고, 김 여사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행방이 묘연했던 백이 김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던 전 대통령실 행정관 유경옥 씨를 거쳐 간 사실이 확인됐다. 전 씨는 “개인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바꿔 오라고 부탁했다. 돌려받은 후 잃어버렸다”고 했다. 유 씨 역시 “김 여사 모르게 전 씨 심부름을 했다”고 했다. 결국 김 여사는 모른다는 주장인 셈이지만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 씨는 각각 웃돈을 더해 샤넬 백 상위 모델로 교환했다. 대통령 부인에게 전달될 선물을 수행비서가 임의로 교환한 것도, 공무원 신분으로 무속인의 심부름을 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는 않는다. 더욱 수상한 건 은밀한 심부름을 시킬 만큼 가까운 사이라면서 ‘법사 폰’ 3개에 둘의 문자나 전화 기록 등 뚜렷한 소통 정황이 없었다는 거다. 둘 사이에 누가 있었나 의심이 드는 정황이다. ▷윤 씨가 김 여사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던 선물 리스트에는 6000만 원 상당의 영국 명품 주얼리 그라프(Graff)사 다이아몬드 목걸이, 고가의 건강식품인 천수삼 농축차도 있었다. 전 씨는 그라프 목걸이 역시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윤 씨가 목걸이와 가방을 돌려받고 싶다고 전 씨에게 보낸 문자도 남아 있다.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 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시기에 이런 문자를 주고받았다. 검찰은 유 씨가 증발한 목걸이의 소재를 알고 있는지도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통일교의 청탁 내용은 유엔 제5사무국 유치, 통일교의 YTN 인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이었다. 무속인 전 씨는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팔아 호가호위하던 인물이었다. 윤 씨와 전 씨가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말을 맞추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부박한 ‘이익공동체’에 금이 가는 건 순식간이다. 300만 원 ‘쪼만한’ 백부터 6000만 원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명품 스캔들이 내내 따라다니던 대통령 부인이 그 중심에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진짜 비극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오후 11시 3분 국회→11시 9분 당사 3층→11시 33분 국회 예결위 회의장→0시 3분 당사 3층.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은 비상의원총회를 소집하고는 네 차례나 장소를 번복해 공지했다. 의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오전 1시경 이뤄진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단 18명뿐이었다. 그날 밤 추 의원의 행적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추 의원은 오후 11시 33분 국회로 향해 오전 2시가 넘도록 국회 원내대표실에 머물렀다. 의총 소집을 공지했으나 의총을 열지 않았고, 국회에 있으면서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의로 표결을 방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추 의원은 시간대별 상황을 공개하며 이를 반박했다. 국회가 통제돼 당사로 변경했고, 도로 출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국회로 모이자고 했다가 다시 출입이 막혀 당사로 안내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과 추 의원이 의총 소집 장소를 다시 바꾸기 11분 전, 국회에 계엄군 헬기가 도착하기 26분 전인 오후 11시 22분경 1분가량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추 의원은 “대통령이 (계엄을) 미리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긴박한 순간에 단지 사과만 했을지 의문이다. 군경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 시간대에 윤 전 대통령은 정치인 체포 명단을 불러주고 헬기 출동을 독촉하며 국회 봉쇄를 지시하고 있었다. 추 의원과의 통화 직후인 11시 26분경 윤 전 대통령은 나경원 의원과도 40초가량 통화했다. 나 의원 역시 “미리 상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짧은 통화였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사흘 뒤인 6일 오후 4시 37분부터 연달아 다섯 차례 극우 유튜버인 고성국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작 고 씨는 집회 참석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대통령이 전화를 건 것을 보면 상당히 가까운 관계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명태균 게이트’가 터진 뒤 윤 전 대통령은 휴대전화를 바꿨다. 여동생과 첫 통화를 했고 그다음 고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에는 이른바 삼청동 안가 모임에 참석했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과 통화했다. 그간 참석자들은 계엄 이후 대응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어 왔다. 하지만 삼청동 안가 모임이 열리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일일이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이라고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날의 실체가 하나씩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7개국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늘 최상위권이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22년 PISA에서 한국은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읽기) 3위였다. PISA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수학 성적이 올랐다’ ‘과학 성적이 떨어졌다’ 하며 학업 성취도에만 관심이 쏠렸는데 그 이면에 다른 지표들이 있었다.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PISA 데이터를 교과 지식, 학습 역량, 타자와의 관계, 주체적 자아라는 4개 영역(29개 세부 지표)으로 분류해 학생의 역량을 복합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는 우리 교육이 자기밖에 모르는 헛똑똑이만 길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이기적인 헛똑똑이 키우는 교육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과목별 학업 성취도는 매우 우수했다. 창의적·비판적 사고가 포함된 학습 역량도 양호했다. 하지만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서툴렀고(교우 관계 36위, 협력 26위)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능력도 부족했다(주체성 20위, 자주성 33위, 여가 생활 36위, 진로 탐색 29위). 공부는 잘하지만 그 능력을 남들과 나누거나 공동체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2018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4개국 대학생을 조사한 결과와도 상통한다. 각국 대학생에게 고등학교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골라 보라고 했더니 우리나라 대학생 80.8%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戰場)’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광장’은 12.8%뿐이었다. 중고교 시절 무한경쟁 속으로 떠밀려 각자도생만 배운 한국 대학생은 식수가 오염된 상황을 제시했을 때 집단적 해결보다 개인적 자구책 마련을 유독 선호했다.‘사활을 건 전장’의 대표적인 승자들이 우리 사회 집권 엘리트일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대선 정국으로 이어진 국가적 혼란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을 통과한 직업 관료, 법조인, 그리고 이들이 다수인 국회까지 이른바 집권 엘리트의 합작품이다. 시험 정답은 잘 맞히지만 상식에선 벗어난, 유능할진 몰라도 무책임한, 공익으로 포장해 사익을 추구하는, 국민을 말하지만 공감력은 상실한…. 그들만의 논리에 갇힌 ‘비장한 추락’을 보고 있기가 괴로운 요즘이다.엘리트의 타락이 부른 국가 위기지금도 우리는 지식만 달달 외우면서 자기 생존을 위해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 엘리트들만 길러내고 있다. 1점 차이로 내신 등급이 달라지고, 수능 1점 차이로 대학이 바뀐다.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선 섣불리 친구와 협업했다간 도태될지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까. 전국 학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면서 진로를 탐색하고 꿈을 키우라고 다그치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기만적인가.KEDI는 이번 지표 개발을 통해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 핵심 역량을 도출했다. 바로 자신의 능력과 지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자아 성찰 문해력),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전략적 학습 문해력),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중심으로 세계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능력(관계적 문해력)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에게 가장 결핍된 능력이기도 하다.그간 대학 서열이 사라지지 않고 일자리 시장이 바뀌지 않는데 과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엘리트들의 아찔한 민낯을 보고 나니 대입을 향해 일렬로 달리는 교실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치매가 찾아오고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 내 집도, 내 돈도 내 것인 줄 모르게 된다. 이렇듯 치매 환자가 스스로 쓸 수 없는 돈, 팔 수 없는 재산을 ‘치매 머니’라고 한다. 요즘 상속 분쟁은 치매 머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치매 걸린 아버지와 합가해 오랜 기간 모셨는데 유언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아 집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기도 하고, 반대로 허울뿐인 간병을 내세워 재산을 야금야금 빼돌린 형제와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간병인에게 횡령을 당한 재산을 찾으려는 분쟁도 자주 발생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우리나라 치매 노인이 보유한 부동산, 현금 등 자산을 처음으로 조사했다. 약 154조 원에 달한다. 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 가운데 약 76만 명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 규모가 1인당 평균 2억 원이었다.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으며 치매 머니도 10년마다 130조 원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2050년에는 488조 원으로 급증해 그해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어선다. 잠자는 돈이 많아지면 국가 경제의 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치매 머니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 등장한 용어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치매 환자의 통장에 1억 원이 넘는 현금이 있었다는 이야기며, 치매 부모의 자산이 동결돼 자녀가 간병비를 대다 파산했다는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넘쳐난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치매 머니 규모는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치매 노인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공공후견인, 공공신탁제도 등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법원이 법적 후견인을 지정하는 공공후견인 제도는 존재하지만 이용률은 저조하다. 최근 7년간 법원에 후견인 지정을 청구한 건수가 680건뿐이었다. 아직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부모님 통장에서 간병비를 인출할 때 금액이 크면 법원의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 책임은 크고 활동비 지원은 적어 후견인을 하겠다는 사람도 없다. 치매 환자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산을 관리해 주는 공공신탁 제도의 대상도 아니다. ▷이미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은 비영리법인, 은행 등이 복지 서비스 차원에서 치매 환자의 자산 관리를 해주고, 싱가포르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신탁 제도를 이용하도록 했다. 우리도 치매 환자 자산을 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평생 아끼고 모은 돈이 꽁꽁 묶이거나,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도 없다. 고령화 시대에는 노후 재테크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다 쓰고 가라(Die with Zero).’ 돈을 쌓아두기보다 소비하는 것이 나도 위하고, 자식도 돕는 방법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국가적 위기가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내란죄로 기소돼 법정에 선 윤 전 대통령의 비겁하고 무도한 언어에 기함한 탓도 있고, 권력 공백 상태에서 국가 기관까지 기능 부전에 빠진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가 공익을 위한 국가 기관을 사익을 위해 동원한 순간,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사익, 사조직, 사병… 조롱당하는 기관들윤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원래 선거는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논란이 됐으나 국정도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할 줄은 몰랐다. 공사 구분조차 안 되는데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바란 건 무리였을까. 패밀리를 위해, 패밀리에 의해 국가 기관이 서슴없이 동원됐다.최재해 감사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통해 국정을 지원한다”며 감사원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남동 관저 공사를 김건희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후원업체가 수의계약으로 맡았고, 그 배경에 김 여사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은 “누가 추천했는지는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맹탕 감사’라는 지적이 이어지던 중에 나온 발언이다. 역대 정권마다 감사원은 ‘정치 감사’ 의혹을 피해 가지 못했지만, 헌법상 독립적인 기구라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건 놀라웠다.윤 전 대통령의 생일 잔치에서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경호처는 어떤가. 경호처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보호하는 기관이지,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조직이 아니다. 그런데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진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경호처는 사병 집단이 맞고,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정부 기관”이라고 당당히 말했다.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 일가 땅으로 변경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특혜와 외압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후 국토부가 자체 감사에 착수했지만 보고 누락, 부실 입찰로 애꿎은 공무원만 징계했을 뿐 노선 변경 과정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 이를 밝힐 용역 보고서 4쪽은 사라졌다.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를 구제한다는 사명을 저버린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보는 건 참담했다. 권익위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공직자의 배우자는 처벌할 수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 당시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외국인에게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이라는 궤변까지 폈다. 그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정작 명품백을 건넨 사람이 “청탁이 맞다”는데도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다.국가인권위원회는 12·3 계엄 선포에 따른 인권 침해에는 침묵했고, 최고 권력자였던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를 의결했다. 이를 두고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 떳떳하다”고 했다.‘선공후사’ 없으면 제도는 악용가장 안타까운 건 군이다. 친위 쿠데타에 동원돼 40년 쇄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군 장성 15명이 줄줄이 해임이나 직무 정지 상태다. 군에 대한 불신 속에서 대북 훈련까지 쭈뼛하게 되자 군 내부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명령을 내린 윤 전 대통령은 “(수사) 초기 겁을 먹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따라 진술한 것”이라며 군을 비난했다.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본질이 왜곡되고, 제도는 악용된다. 합법적으로 내 편에게만 공정한 사회가 도래한다. 권력자의 ‘선공후사’가 중요한 까닭이다.그래서 대통령 탄핵이 끝이어선 안 된다. 공공선에 충실한 대통령을 뽑든, 권력 남용을 막을 장치를 보완하든 우리 사회의 제도적 건강함을 회복시켜야 한다. 더 이상 헌정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의 빠른 실행을 약속하며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곤 했다. 그 시원한 외침은 ‘밈(meme)’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말 그대로 ‘빠르게 가’였다. 애초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했지만 당선 열흘 만에 용산 집무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50일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취임 당일 국방부 신청사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했다. 집을 이사해도 두 달은 더 걸릴 법한데, 국가 최고 보안시설이 ‘번개 이사’를 한 것이다. ▷폐쇄적인 공간인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집무실을 만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권위를 탈피한 일하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았다. 그런데 경호와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난데없이 용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화문은 경호에 수반되는 시민 불편이 크고 안보 시설 구축이 마땅치 않은 반면에, 용산은 지하 벙커 등이 이미 갖춰져 비용이 적게 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타당한 설명은 아니다. ▷당시 전 합참의장 11명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의 연쇄 이동으로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실제 미국이 대통령실을 감청한 사실이 드러났고, 북한 드론이 대공 방어망을 뚫고 침투했다. 이전 비용도 끊임없이 불어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까지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집행된 비용을 조사했더니 모두 832억 원이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얘기한 496억 원의 1.7배다. 야당에선 경기 과천으로 옮길 예정인 합참 신축 비용 등을 포함하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외교 행사는 청와대 영빈관, 상춘재를 계속 이용했고 대통령 동선이 복잡해져 시민 불편도 결코 줄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의 퍼즐은 ‘무속’으로 맞춰졌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명태균과 지인의 통화 녹음에서 명 씨는 대선 직후 김건희 여사에게 “경호고 나발이고, 거기(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김 여사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풍수가 백재권은 “청와대는 흉하다”, 무속인 천공은 “용산으로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백 씨는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용산 대통령실도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입주를 꺼리고 있어서다. “군사 쿠데타를 모의한 본산” “불통과 주술의 상징” “안보적 취약성”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3년 임차료로 832억 원이나 내고 방을 뺄 판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을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더니 정작 그곳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구중궁궐’이라던 청와대보다 더한 공간이었나.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의 3년을 요약한 듯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지난해 9월 2일 윤 전 대통령은 방한한 미국 상원의원단 부부를 청와대 상춘재 만찬에 초대했다. 마침 생일이었던 김건희 여사가 한 의원의 배우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히 웃고, 그 옆자리에선 윤 전 대통령이 박수를 치는 만찬 사진이 공개됐다. 참석자들은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김 여사가 “잊지 못할 생일”이라 했던 이날은 제22대 국회 개원식 날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설이 난무하고 특검·탄핵을 남발하는 국회 정상화가 먼저”라며 불참했다. 국회를 경시하고 내심 계엄을 생각했던 대통령과 외교 사절로부터 당당히 생일 축하를 받은 영부인. 비극은 잉태되고 있었다. ▷윤 전 대통령 임기 내내 나라는 ‘영부인 리스크’로 시끄러웠다. 취임 초기부터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 후원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관저 공사를 맡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양평 고속도로 노선 특혜 변경 의혹으로 ‘김 여사 특검법’이 네 차례나 발의됐고, 국회 통과와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며 정국은 얼어붙었다. “뭐 쪼그만 백”이라던 디올백 수수 의혹은 지난해 4월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이었다. ▷‘진짜 권력’인 김 여사를 보호하려다 국가 기관은 참담하게 망가졌다. 감사원은 관저 공사 의혹에 대해 위법은 맞지만 누가 선정했는지는 모른다는 ‘맹탕 감사’를 했다. 국토교통부는 감사 시늉만 하고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과정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 배우자는 처벌할 수 없다며 ‘디올백 면죄부’를 줬고, 검찰은 김 여사의 도이치 사건 연루 의혹을 뭉개더니 4년이 지나 ‘알현 조사’를 했다. ▷공적 권한이 없는 영부인의 국정, 공천 개입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라인’이 장악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김 여사 전화를 직접 받았다는 공직자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9월에는 ‘명태균 게이트’가 터졌다. 김 여사가 2022년 재보선, 2024년 총선 때 공천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 주는 통화 녹취와 메시지가 공개된 것이다. 김 여사가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 했어”라고 윤 전 대통령에게 따져 묻고 “김영선 (공천) 걱정 말라고, 자기 선물”이라고 했다는 것이 명 씨의 전언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은 명 씨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날이다. 국정, 공천 개입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황금폰’ 폭로를 막기 위해 비상계엄을 실행한 건 아닌지 하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헌정사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은 따지고 보면 아내를 유독 사랑했든지, 외로운 처지의 남편을 돕고 싶었든지 간에 선출되지 않은 영부인이 권력을 공유했다 벌어진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한식(寒食)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올해는 5일이다. 봄철 성묘를 가는 날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한식에는 찰 한(寒), 밥 식(食)이라는 한자 그대로 찬 음식을 먹었고 불의 사용을 금했다. 이런 전통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건조한 봄철 화재를 예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31년 세종대왕이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왕명을 내린 기록이 있다. 봄철 실화 대책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식의 전통이 ‘불조심’의 경고를 담고 있지만 한식만 가까워져 오면 성묘객의 부주의로 인한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연간 산불 발생 건수의 절반 이상이 3∼5월에 발생한다. 건조한 대기, 강한 바람, 그리고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바싹 마른 나무까지 불이 나기 쉬운 조건을 고루 갖춘 시기다. 성묘를 와서 축문(祝文)을 태우거나 음식을 조리하고,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렸다간 삽시간에 산불로 번진다. ▷지난달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돼 149시간 35분 동안 서울 면적의 75%를 태운 ‘영남 산불’ 대부분은 실화가 그 원인이었다. 주불이 가장 크게 번졌던 경북 의성은 성묘객이 라이터로 묘지를 정리하다 불을 냈다. 경남 김해 산불은 문중 묘지에서 과자 봉지를 태우다가, 경남 통영 산불은 부모님 묘소 앞에 피운 초가 넘어지며 발생했다. ‘영남 산불’은 아니지만 전북 김제에서는 성묘객들이 부탄가스로 음식을 조리하다 산불을 냈다. 산림청의 최근 10년간 산불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발생 산불 546건의 원인은 입산자 실화(37%), 쓰레기 소각(15%), 논·밭두렁 소각(13%), 담뱃불 실화(7%) 순이었다. ▷산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명문 종가들부터 이미 성묘 절차를 간소화해 왔다. 광산김씨대종회는 향 피우기를 생략하고 있고, 안동김씨대종회는 산에선 축문을 태우지 않는다. 자식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향을 피우고 축문을 태우는 건 고인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조상들도 한식에는 불을 사용하지 않았다. ▷‘설마’ 하는 부주의가 산불로 번지면 사람도 다치지만 산속에 살던 식물, 동물까지 모조리 떼죽음을 당한다. 이번에 ‘영남 산불’로 잿더미가 된 산이 다시 회복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조차 어렵다. 더욱이 갈수록 산불이 대형화되고 있어 애초에 불씨를 만들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향 초 축문 등을 태우지 말고, 라이터 부탄가스 등도 휴대해선 안 된다. 담배도 금물이다. 산에 화기, 인화 물질, 발화 물질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산림보호법 위반이다. 쓰레기도 함부로 태우지 말고 가지고 온다. 만약에 대비해 통상 300∼500g 정도의 가벼운 휴대용 소화기를 지참하는 것도 방법이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의대 증원에 반발해 1년간 집단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입대자를 제외한 전원이 등록하기로 했다. 고려대·연세대 의대는 일부 강경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원이 복귀 의사를 밝혔다. 울산대 의대도 전원이 복학을 신청하기로 하는 등 지역 의대들의 기류도 바뀌고 있다. ▷꿈적하지 않던 의대생들을 움직인 건 대학이 일제히 제적을 통보하면서부터다. 연세대, 전남대 등 의사 출신 총장들부터 유급·제적 카드를 꺼내 들고 “원칙 처리”를 선언했다. 이젠 더 이상 사정을 봐주려야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다. 올해 신입생까지 휴학에 동참하면 내년에는 24·25·26학번을 한꺼번에 교육해야 한다. 의대생만 특혜를 준다는 학내 여론도 비등하다. 지난해 두 학기나 집단 휴학을 승인했고, F학점을 받아도 유급되지 않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다른 과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의대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지만, 실제 수업이 원활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유급·제적을 피하기 위해 일단 등록 후 휴학을 하고, 휴학이 반려되더라도 수업을 거부하자고 했다. 정부는 의대생 전원이 복귀하면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3058명)으로 동결하기로 했고, 반발이 극심했던 진료 면허제와 미용시술 개방은 철회했다. 그랬더니 실손보험 개혁을 포함한 필수 의료 정책 전부를 폐기해야 복귀한다고 한다. 수업 거부로 의대 교육이 파행되면 증원 철회도 없던 일이 되고 의정 갈등도 다시 ‘강 대 강’으로 치달을 우려가 크다. ▷그런데도 의료계를 대표한다는 대한의사협회가 28일 “의대생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공식 입장은 없다”고 했다. “의대 학장과 대학 총장은 학생의 재난적 상황에 더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뜬금없는 훈수도 뒀다. 의협 주류를 구성하는 개원의는 의정 갈등 동안 환자가 늘고, 수가는 오르고, 전공의가 쏟아져 나와 인건비는 줄어드는 수혜를 누렸다. 그러면서 의사 면허조차 없는 의대생을 대정부 투쟁에 앞세우는 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박단 의협 부회장 겸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이 뭘 하겠다고. 저쪽이 원하는 건 굴종 아닌가”라며 오싹한 선동을 했다. ▷의대생이 돌아온다면 정부는 약속대로 의대 교육을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 24·25학번 순차 졸업 등 커리큘럼, 시설과 교수 확보에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야 의료계와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의대생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굴종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고장 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무모한 정책을 추진한 건 의대생 잘못이 아니다. 세상을 고민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좋은 의사가 되면 될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이 넘도록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달 기준 전국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가 1672명이다. 지난해 임용된 전공의(1만3531명)의 12% 수준이다. 이 중 절반은 지난해부터 수련을 이어 왔고, 절반은 올해 복귀했다. 뉴스에선 온통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그 “착취적”이라는 수련 환경을 묵묵히 견디는 1672명의 전공의는 “동료가 아니”라는 비난과 “감사한 의사”라는 조롱 속에 숨죽이고 있다. 이들은 왜 병원을 떠나지 않았을까.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인터뷰를 시도한 전공의들은 신원이 밝혀질까 거절하거나, 겨우 응하더라도 응급 상황이라며 통화가 미뤄지곤 했다. 지난해 2월 전공의 집단 사직 당시 병원을 떠났다가 복귀했다는 전공의 A 씨의 이야기를 어렵게 들었다.“숭고한 뜻 아니다… 할 일이니까” 전공의 A 씨 역시 2000명 증원이 무모하고, 수련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이 넘는 근무시간, 낮은 임금을 성토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동료들은 언제라도 응급 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장시간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간 “수술 등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양질의 트레이닝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A 씨는 열흘 만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참의사라고 또 조롱당할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치료가 필요한 소아 환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버리고 나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떠난 병원으로 돌아온 대가는 혹독했다.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공개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었다. 가족사진까지 올라오는 악의적인 공격도 당했다. 의정 갈등 초기에는 인턴, 레지던트 여럿이 나눠서 하던 업무를 혼자 감당하며 격무에 시달렸다. 내적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남아 있었던 이유를 묻자 A 씨는 “내가 하는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숭고한 뜻이 아닙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건, 그냥 할 일이니까요.”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도 이해한다고 했다. 복귀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많지만 웬만해선 집단의 압력을 이기긴 어렵다고 한다. 지금의 평판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교수 임용, 개원가 취업까지 좌우하므로 블랙리스트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0명 중 1명은 환자를 지켰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자 정부는 사실상 백기 투항 중이다. 전공의 면허 정지까지 거론하더니 결국 사직서를 수리했다. 수련 공백을 면제해 다음 연차로 승급시키고 입영 특례를 주면서 돌아오기만 해달라고 읍소한다. 하지만 병원에 남은 전공의에 대해선 어떤 정책적 배려도 들어보지 못했다. 의료 개혁이라도 성과를 내면 좋으련만, 줄줄이 후퇴 중이다. 의사 면허를 따고 1, 2년간 수련을 거쳐야 개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진료 면허제’ 추진은 접었다. 보톡스, 필러 등 일부 미용 시술의 의사 독점을 깨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기형적인 의사 쏠림을 막아 필수 의료를 살리려던 방안들이었다. 물론 병원을 지킨 전공의마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숭고한 소명 의식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환자 곁에 남은 이들이 오히려 숨어 지내고, 그 희생이 사회적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건 안타깝다. 전공의 10명 중 1명인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따돌림을 당하고, 동료 업무까지 떠맡으면서도 ‘그냥 해야 할 일이라 한다’며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이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22일 정오경 경남 산청군 구곡산 산불 현장에서 불을 끄던 진화대원 8명과 공무원 1명이 다급하게 산길을 뛰기 시작했다. 도깨비불처럼 불덩이가 날아다니더니 불길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 불덩이가 강풍을 타고 주불과 400m 떨어진 곳까지 날아들었고 역풍이 불며 순식간에 이들의 뒤를 덮쳤다. 움푹 팬 웅덩이로 피신한 5명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엎드려 불길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진화복을 입었는데도 온몸이 타들어 갔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남았다. 화마를 피하지 못한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산불이 나면 산림청 공중진화대와 특수진화대가 주불을 끄고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진화대원이 잔불을 잡는 식으로 진화 작업이 진행된다. 이번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 8명은 모두 60대였다. 창녕군 소속이지만 ‘산불 대응 3단계’ 발령에 따라 산청군까지 지원을 나섰다. 산길을 안내한 산청군 녹지직 공무원만 30대였다. 지자체 소속 진화대원은 보통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다. 평소 농사를 짓다가 농한기에 일당 8만 원 정도를 받고 진화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화조장이었던 고 이모 씨(64)는 홀어머니를 수발하며 농사를 지었다. 동네 어르신을 병원이며 읍내며 차에 태워 나르던 ‘동네 효자’였다. 고 공모 씨(60) 또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당일 아침까지 이웃 마늘밭에 물을 대주고 나올 정도로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 황모 씨(63)는 지난해 일을 시작한 새내기였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됐다. ▷전국 진화대원 9604명 중 70%가 60대 이상이고 70, 80대도 종종 있다고 한다. 만 18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지만 지역에 워낙 청년이 없기도 하고 처우도 열악해 사실상 고령자 일자리가 됐다. 선발 이후 받는 교육 역시 이틀 이내로 짧게 이뤄지고, 산림청 특수진화대원과 달리 갈퀴와 등짐 펌프 등 화재 진압 장비도 간소하게 지급된다. 문제는 겨울철 이상 고온과 봄철 가뭄으로 인해 산불이 잦아지고,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불 진화 자원을 총동원해도 불길이 빨리 잡히지 않으니 진화대원까지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주말 전국 42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축구장 1만2475개(8733ha)만큼의 면적을 태울 만큼 맹렬하고 난폭했다. 강풍을 타고 불이 자꾸 번지면서 사흘간 진화율은 71%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고령의 진화대원을 변변한 장비도 주지 않은 채 헬기를 띄워도 접근이 어려운 대형 산불 진압에 투입했다. “마지막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남은 가족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청년을 Z세대라 부른다. 스마트폰을 끼고 자란 첫 세대다. 다소 계산적이라는 의미에서 개인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욜로족’ ‘플렉스’처럼 소비지향적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닌다. 부유한 한국에서 태어난 철부지 같은 이미지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들을 설명하는 숫자를 보면 ‘절망’ 그 자체다. ▷딱 Z세대에 해당하는 15∼29세 청년층의 ‘그냥 쉬었음’ 인구가 지난달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다. 학업, 입대, 육아, 질병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조차 하지 않는 자발적인 취업 포기자들이다. 일할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이력서라도 넣는 실업자보다 심각한 문제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신규 채용은 줄고 있는데 경기 침체까지 겹쳐 좋은 일자리 입성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된 탓이다. ▷‘그냥 쉬었다’는 기간이 길어지면 대인관계가 단절된 ‘고립’이나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 청년이 되기 쉽다. 국무조정실의 ‘청년의 삶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고립·은둔 청년이 5.2%로 2년 전 조사 때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고립·은둔의 첫 번째 이유가 취업의 어려움이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학업 중단을 이유로 꼽은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깊어지면 도전을 회피하게 된다. 세상이 두려우니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것이다. ▷고립·은둔은 청년들이 겪는 극단적인 어려움이다. 하지만 보통의 청년들도 과도한 경쟁 압박에 시름시름 앓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최근 1년간 번아웃(소진)을 경험했다는 청년은 32%였는데 진로 불안, 업무 과중, 일에 대한 회의감 등이 그 이유였다. ‘우울증을 겪었다’는 청년은 8.8%였고, ‘자살을 생각했다’는 청년은 2.9%였다. 실제 2023년 자해나 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방문한 4만6000여 명 가운데 10, 20대가 45%를 차지했다. 인생의 봄을 막 지나는 청년들이 죽음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청년에게 간절한 삶의 요소는 무엇일까. ‘원하는 일자리’였다. 고도성장 시대를 살았고, 고임금-정규직 1차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한 기성세대가 ‘눈높이를 낮추면 된다’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1차 노동시장의 성벽은 너무도 높아서 개인이 아무리 스펙을 쌓고 또 쌓아도 넘기 어려운 수준이다. 더욱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각종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고, 실패하면 게으르고 나약하다는 비난까지 받는다. 청년 세대에 최소한 젊어서 고생할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연금 개혁이 순조롭지 않으리란 징조는 있었다. 4일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기구인 전국노동위원회를 새로 출범시켰다. 이날 출범식에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의 주 52시간 노동 예외 조항, 연금 개혁의 자동 안정화 장치 등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 권익이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노동계 표심을 향한 공개 구애였다. 그로부터 6일 뒤 여야는 국정협의회를 열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올리는 방안을 두고 합의를 시도했으나 결국 파행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42%, 더불어민주당은 44%를 주장했고, 그 중간선이 43%다. 하지만 민주당이 44%에서 물러서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간신히 불씨가 살아났던 연금 개혁이 다시 무산될 위기다.정규직-고소득 근로자를 위한 개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연금은 오래 부을수록, 임금이 높을수록 많이 받는 구조다. 바로 정년을 보장받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3%, 그런데 공공 부문은 72%, 공무원 부문은 67%다. 민간 부문은 9.8%에 불과하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가면 37%로 뛴다. 이들이 주요 구성원인 양대 노총이 소득대체율 인상에 집착하는 이유다.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 임금은 362만 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195만 원)의 1.8배였다. 연금도 임금만큼 더 받게 된단 뜻이다.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연금이 임금보다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후 적정 생활비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150만∼200만 원을 받는 수령자는 평균 32년을 납부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비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 등은 이렇게 오래 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입 규모가 들쑥날쑥하고, 꼬박꼬박 내기도 어렵다. 세대 내 불평등뿐만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도 악화시킨다. 먼저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인 빈곤을 해결하자는 주장은 기만에 가깝다. 현재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만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가난한 노인들은 애초부터 국민연금 수령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청년은 어떤가. 국세청 소득 신고를 기준으로 보면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가 86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4명 중 1명이 청년이다. 구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은 50만 명까지 늘었다.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청년들이 나중에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까지 보전해야 할 처지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청년을 희생시켜 현재 40, 50대가 혜택을 누리겠단 것이다. 여야, 연금 개혁 진정성 있었나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연금 개혁만 본다면 꼭 들어맞는 말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연금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소득대체율을 올려 불어난 빚더미는 가난하고 숫자도 적은 청년 세대에 전가되는 반면에 그 혜택은 공기업과 대기업, 은행 등 고소득 정규직에 돌아간다. 지금의 연금 개혁안은 ‘상위 10%’ 근로자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할 뿐이다. 여야에 그런 연금 개혁안이라도 좋으니 처리를 촉구했던 건 개혁의 시급성 때문이다. 하루 885억 원씩 적자가 쌓이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양보하고 서둘러 초당적 합의를 끌어내 개혁의 시간을 벌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단 1%포인트 차이로 그조차 불발됐다. 여야가 연금 개혁에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수권 정당 자격을 연기하면서 결국은 조직화된 노조 표심에 ‘소득대체율 최소 43%’를 약속하는 현란한 구애를 펼쳤을 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일론이 미치기 전에 샀다고요’ ‘반(反)일론 테슬라 운전자 연합’…. 전 세계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반일론 머스크’ 차량용 스티커들이다. 테슬라를 타고 다니다 야유를 듣거나 봉변을 당한 소유주들이 주로 구매한다. 테슬라를 처분하고 싶어도 워낙 헐값이 되어 팔 수도 없고, 그냥 타고 다니자니 머스크 지지자로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차량 범퍼를 전부 가릴 만한 대형 스티커가 잘 팔린다고 한다. ▷신드롬에 가깝던 인기를 누리던 일론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돌격대장 역할을 자임하면서 국제적 밉상으로 등극했다. 미국 내에선 그의 무자비한 정부 예산 삭감과 해고가 역풍을 부르고 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연방정부 개혁에 나서면서 2월에만 무려 6만 명이 넘는 공무원이 해고됐다. 미국 보스턴, 오리건 등에서 충전소가 불타거나 대리점을 향해 총격이 일어났다. 뉴욕 테슬라 쇼룸에선 시위대가 모여 “아무도 머스크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유럽에선 각국 정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내정 간섭 발언으로 반머스크 정서가 고조됐다. 노동당 소속인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독일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치식 경례와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극해 독일인들은 경악게 했다. 독일 베를린 테슬라 공장 공사 현장에선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고, 프랑스 툴루즈에선 테슬라 차량이 불에 탔다. 1월 유럽의 테슬라 판매량은 절반으로 급감했다. ▷머스크의 딴짓에 테슬라 투자자들은 울고 싶다. ‘오너 리스크’ 때문에 테슬라 주가는 7주 연속 하락했다. 공교롭게도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워싱턴에 간 시점부터 주가가 뚝뚝 내려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역대 최고점(479.86달러)을 찍었던 테슬라 주가는 7일(현지 시간) 262.67달러로 마감했다. 최고점 대비 44%나 하락한 것이다.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인 반머스크 현상으로 테슬라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판매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크에 대한 반감은 개혁에 따르는 진통 이상이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들에게 전기톱을 흔들어 대거나, 역사적 상처를 들쑤시고도 태연한 그의 ‘공감 능력 결여’는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머스크는 친트럼프 성향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민과 사회보장 제도를 언급하며 “서구 문명의 근본적인 약점은 공감이고, 그 공감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냉혹한 내면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기업 경영에는 공감보다 효율이 우선이겠지만 낙오자도 포용해야 하는 정부 운영은 다르다. 그가 워싱턴에 집착하는 한, 반머스크 물결이 쉽게 잦아들 것 같지 않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