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우경임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64

추천

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취재분야

2026-04-15~2026-05-15
칼럼97%
사건·범죄3%
  • [오늘과 내일/우경임]필수의료 해법으로 ‘병원 간 빅딜’은 어떤가

    전공의들이 복귀했고 의정 갈등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필수, 지역 의료의 고사 위기라는 현실은 바뀐 것이 없다. 전공의들은 응급실, 수술실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으로도 가지 않았다. 당정 논의대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든, 공공의료사관학교를 설립하든 의사가 배출되려면 지금부터 10년은 걸린다. 그동안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가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복권 당첨만큼 희박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에는 당장 필수, 지역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무한 경쟁에 장비 과잉-의사 고용 기피 우리나라 병원의 95%는 민간병원이다. 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 아래서 민간병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덕분에 한국 의료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구조가 한계에 달했다고 본다. 병원 간 과잉 경쟁으로 의료 자원이 심각하게 낭비되고 있다. 건보는 진료의 질보다는 양이 많을수록 수익이 나도록 설계돼 있다. 병원마다 수십 개 진료 과목을 운영하고, 최신 의료 장비를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는 인구 100만 명당 38.7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는 45.3대로 각각 OECD 평균 대비 1.8배, 1.4배에 달했다. 암 치료를 위한 중입자 가속기는 전 세계 14기 남짓인데 우리나라에만 3기가 있다.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6개로 OECD 평균의 3배다. 환자 1명을 두고 동네의원, 전문병원, 상급종합병원이 무한 경쟁을 벌이면서 병상, 장비 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진 탓이다. 최근 병원 간 무한 경쟁 구조를 바꿔 필수 의료 의사 부족을 해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A병원에 뇌혈관센터, B병원에 심혈관센터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의사가 부족한 필수 의료 진료 과목에 ‘규모의 경제’를 도입하면 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과잉 투자를 해소해 산업 경쟁력을 키웠던 ‘기업 간 빅딜’처럼 ‘병원 간 빅딜’을 하자는 것이다.뇌혈관 전문의 몰아주는 ‘규모의 경제’ 3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인데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했다. 뇌혈관 전문의가 2명뿐인데 마침 1명은 해외 학회,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서울 주요 대형 병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강북권역의 상급종합병원 4곳의 뇌혈관 전문의를 A병원 뇌혈관센터로 모아보자. 전문의 10명이 당직을 돌면 ‘워라밸’ 확보가 되니 전문의 수급이 수월해진다. 하 교수는 “보상이 적은 것을 알고도 그 과목을 선택한 사람들이니 주 60∼70시간만 일한다면 올 것”이라고 했다. 고가 검사, 치료 장비를 병원마다 중복 투자할 이유도 없다. 각 병원이 한 해 200번씩 하던 수술을 센터 1곳으로 몰면 800번이 된다. 투자 비용 회수가 빨라진다. 임상이 축적되므로 숙련된 의사 양성도 된다. 지역 의료 공백의 해법도 될 수 있다. 대구에는 상급종합병원 5곳이 있지만 뇌혈관 전문의가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데 포항 전문병원에는 10여 명이 근무 중이다. 경직된 행정체계가 아니라 질병의 발병률, 이송 가능 시간을 따져 질병 권역으로 묶어 필수 의료 특화센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수천억 원을 들여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정부가 병원 간, 의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민간병원에 개입한다는 부담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을 협력의 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정부, 병원, 의사, 환자 모두 패자가 될 상황이다. 지금까지 필수, 지역 의료 대책은 예산은 흩어지고 효과는 없었다. 관성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아픈 사람 안 받는 동네 의원 2300곳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마다 병원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막상 아프면 갈 만한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피부과 간판을 내걸었지만 정작 건선, 습진 같은 피부질환 환자는 받지 않는다. 아이가 뛰어놀다 상처가 나면 예전 같으면 동네 피부과나 외과에서 간단히 봉합했지만 요즘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밟지 않은, 임상 경험이 전무한 일반의의 개원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진료 수가가 낮아 기피하는 탓도 있다. 병원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환자들은 피부과 대신 피부관리과, 성형외과 대신 미용외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아픈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운영 중인 의원 가운데 건강보험 청구 실적이 ‘0건’인 곳은 2304곳이었다. 2022년(1540곳)에 비해 50%나 늘어났다. 폐업이 아닌데도 건보 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건 질병 진료나 치료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부분 피부 시술이나 미용 성형에 집중하는 병원들이다. ▷피부과,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의 경우 성형외과의 79%(358곳), 일반의원의 42%(311곳)에서 건강보험 청구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많은 중구(명동), 젊은 인구가 많이 찾는 마포구(홍대 앞)도 건보 급여를 청구하지 않는 의원 비율이 높았다. 필러나 리프팅 등 ‘쁘띠 성형’과 레이저 스킨부스터, 제모 등 미용 시술만 하는 의원들로 추정된다. ‘1만 원 보톡스’ ‘5만 원 필러’ 같은 미끼 상품을 내세운 공장형 의원도 많다. ▷피부 5cm 열상을 봉합하면 수가는 최대 3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필러 주사를 놓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지만 보상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러니 미용, 성형 시장에 의사들이 몰려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도수치료, 수액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가 팽창하는 이유다. 이제는 건보 체계를 아예 이탈해 고가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제3의 시장이 형성됐다. 지난해 의료 미용 시장은 3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가 부족한데 피부, 성형 시장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하며 의사 배분도 왜곡됐다. 면허 제도를 통해 의사 공급을 제한하고 의료 행위를 독점할 권한을 부여하는 건 국민 건강이라는 공익에 종사하는 대가다. 그런데 아픈 사람을 외면하는 의사도 이런 특권을 누리며 수익을 보장받는 것이 맞나.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선 추가적인 교육과 임상을 거친 간호사가 필러, 보톡스, 제모 등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정부는 이와 비슷하게 미용 시장 개방을 추진했다가 의정 갈등 속에 포기하고 말았다. 병을 고치는 의사다운 의사에게 박탈감만 안겨주는 잘못된 보상 체계는 바로잡아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우경임]‘트럼프 쇼’ 무대된 조지아주 한국 공장

    미국 조지아주 친(親)트럼프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을 자신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신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공장은 우리에게 자산이 아닌 부담”이라고 했다. 극우 성향을 가진 ‘관종’ 정치인의 말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미국인은 고용하지 않으면서 우물을 마르게 하고 세금 면제까지 받는 한국 공장에 대한 백인 저소득 노동자의 반감을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한국 공장은 어쩌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표적이 된 것일까.불법 고용-안전사고 증거 모은 노조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이번 단속이 수개월간 수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꼭 6개월 전인 올해 3월 CBS 계열 조지아주 서배너 지역 방송인 WTOC는 현대차 메가 사이트에 대해 보도했다. 이번에 단속된 배터리 공장과 앞서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 전기차 공장 부지다. 현지 업체를 쓰지 않는다는 지역 건설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5월에는 배터리 공장의 안전사고도 다뤘다. 이번 단속은 친트럼프 정치인 1명의 제보가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이 아니다. 지역 노조와 방송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 구금됐던 한국인은 대부분 전기 설비 관련 인력이다. 배터리 공장이 없는 미국에선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숙련공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들어 전문직 취업비자(H-1B), 주재원(L) 비자, 투자사 직원(E2) 비자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단기 상용(B1) 비자조차 한꺼번에 직원 수십 명이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 공장을 세워야 일자리를 만들 텐데 투자는 하라면서 비자는 틀어막았다. 미국이 뒤늦게 구금된 인력이 남아 미국인을 훈련하라고 권한 건 이런 사정을 파악해서일 것이다. 중간선거 최대 접전지에서 벌어진 쇼 우리 기업이 빌미를 줬다 하더라도 ICE, HSI,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국세청(IRS)까지 연방 및 주 정부 10개 기관에서 400명 넘게 투입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말대로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까. 내년 중간선거에서 조지아주는 최대 접전지로 꼽힌다. 현직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는 이민자가 늘며 선거마다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주를 사수해야 상원을 장악할 수 있고, 비(非)트럼프계인 브라이언 캠프 주지사 교체까지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프 주지사의 업적이자 지역 노조의 표적이 된 현대차 공장을 급습했고 전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지에서 트럼프의 최대 지지 세력인 백인 노동자 결집을 기대하고 철저히 기획된 쇼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지아주 바닥 민심을 읽은 민주당 의원까지 이번 단속의 무도함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 공장 단속은 ‘마가’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미국 정치가 어디로 내달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 줬다. HSI는 “조지아주 주민과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며 불법 고용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피하려다 ‘마가 리스크’를 마주한 셈이다. 숨을 고르고 대미 투자의 손익을 냉정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당장 317명의 구금 한국인이 풀려난 것을 두고 “양 정상의 신뢰 관계가 쌓이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포장할 때가 아니다. 이번 단속 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향후 파장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9-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미국행 공포증

    최근 미국 방문자들 사이에서 도착 공항에서 ‘진실의 방’이라 불리는 집중조사실(Secondary Inspection Room)에 끌려갔다는 공포스러운 경험담이 넘쳐난다. 주로 입국 목적이 의심스러울 때 추가적인 조사를 받는 곳이다.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조사관이 “거짓말하지 말라”며 집요하게 추궁하기 때문에 ‘진실의 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관광지가 아닌 곳을 방문하는 기술 인력이나 20, 30대 여성들이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되돌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5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이 급습당하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 출장 경계령은 울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전문직(H-1B) 비자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매년 3월마다 신청해야 하므로 건설 공정에 따라 적시에 인력을 파견할 수 없고 이마저도 신청자 10명 중 1명도 받지 못한다. 주재원(L) 비자는 미국 법인이 있어야 발급돼 협력사들은 애초에 해당 사항이 없다. 마지막 선택지가 단기 상용(B1) 비자인데 지난해 거절률이 27.8%에 달한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길이 막혀 있으니 관광·상용·경유 목적으로 최대 90일까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이스타(ESTA)로 입국하는 편법이 쓰였다. 그런데 미국 국토안보부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6월 미국 미시간 공장에 생산라인 설치 및 점검을 하기 위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한 LG에너지솔루션 엔지니어가 무더기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B1 비자를 다시 신청했지만 발급을 거절당했다. 5월에는 현대차 기술 인력이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서 돌아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직전 이스타 거절이 통보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 비자 장벽을 높게 쌓으면서 유학생 사회도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학생(F) 비자의 거부율은 41%로 역대 최고였다. 어렵게 학생 비자를 받아 입국했더라도 과속 딱지 같은 경범죄 기록만으로 추방당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1600명이 F 비자를 취소당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인도, 중국, 한국인 유학생이 많았다. 최근 국토안보부는 F 비자 유효 기간을 4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무자비한 불법 이민 단속은 아무리 인건비가 비싸고 숙련도가 떨어지더라도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압박이다. 깐깐한 유학 비자 발급은 비싼 등록금은 내되 일자리를 구할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일자리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외국인 차별과 다름없다. 미국은 다양성과 포용성의 힘으로 혁신을 창출했고, 그 덕에 부유해졌다.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 White Again)’란 말이 더 들릴수록 미국은 경쟁력을 잃어갈 수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9-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수출 효자로 떠오른 K농산물

    여행 가서 과일만 실컷 먹고 와도 남는다는 나라가 베트남, 태국, 대만 등이다. 종류도 많고 값도 싼 ‘과일 천국’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성주 참외, 태국에선 논산 딸기, 대만에선 경북 샤인머스캣이 최고급 과일로 대접받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한 것이 비결이다. 한국 과일은 안전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현지 과일보다 몇 배나 비싼데도 매년 수출 물량이 늘고 있다. ▷2001년 농축산물 시장을 대폭 개방했을 때만 해도 국내 한우 농가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으로 봤다. 24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수출 품목이 됐다. 두바이 5성급 호텔 한식 레스토랑에 공급되고, 말레이시아에선 할랄 인증을 통과했다. 구웠을 때 일본 와규보다 스르르 녹는 감칠맛이 일품이라는 평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경남 합천군 축산 농가에선 변정일 씨(47)가 인공지능(AI)으로 사육 환경을 모니터링해 육질 1++ 이상의 고급 한우로 키우고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김밥 따라 먹기처럼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자 올해 상반기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1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역대 최대다. 쌀 가공식품 60%가 미국에 수출된다. H마트 등 한국 마트뿐만 아니라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등 현지 마트에서도 김밥, 햇반이 팔려 나간다. 글루텐프리(gluten-free)를 내세운 쌀과자나 떡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밀가루 속 단백질인 글루텐은 미국에선 흔한 알레르기 물질이라 쌀로 만든 음식은 건강식으로 통한다. ▷K팝, K드라마가 K푸드를 ‘힙’한 음식으로 만들었고 덩달아 K농산물의 수요도 급증했다.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신토불이(身土不二)를 강조하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농업에 로봇, AI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접목되기 시작한 것도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기회다. 노동집약적이고 고령 농부가 종사하는 농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찬 씨(38)의 경남 함양군 과수원에선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방제 로봇이 구불구불한 길을 돌며 농약과 영양제를 척척 투입했고, 이규화 씨(30)의 경기 화성시 스마트팜에선 로봇이 센서를 통해 숙성도를 판단해 잘 익은 딸기를 땄다.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로 K뷰티 인기를 업은 한국 화장품 수출액(102억 달러)에 맞먹는다. 그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제조업 리쇼어링과 관세 장벽 등 세계 무역 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 농업이 수출 효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식량 안보 확보 차원에서도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창농, 귀농을 택한 청년 농부들이 귀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수출 역군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급증하는 남성 난임 환자

    지난해 난임을 진단받은 남성 환자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6년 새 38% 급증했다. 일단 난임 검사를 받는 남성이 늘었다. 난임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3분의 1씩 그 원인이 있고 나머지 3분의 1은 이유를 잘 모른다. 여성 탓만 하던 과거와 달리 남성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환자가 늘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 영향도 크다. 통상적으로 35세가 지나면 정자 운동성, 정액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 난임은 정자가 생산되지 않거나 돌아다니지 않아서 발생한다. 고환 주변 정맥이 늘어나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해진 ‘정계정맥류’가 남성 난임의 35∼40% 정도를 차지한다. 고환이 따뜻해져 정자 생성 능력이 떨어진다. 그다음은 무정자증이 10∼15% 정도를 차지한다. 정관이 막혀 정자가 배출되지 않거나, 호르몬 이상 등으로 정자 생성이 아예 안 되는 경우다. 이렇게 원인이 분명하면 약물 치료나 외과적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잘못된 식습관에 따른 환경적 요인도 남성 난임의 주요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비만 상태이거나 고혈압, 당뇨 등 대사 질환을 앓게 되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저하시키고, 고환 온도를 높여 정자 생성을 방해한다. 성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전립샘비대증이나 고혈압, 당뇨 환자가 늘어나는 30대 후반 결혼이 늘어난 것도 남성 난임 환자 증가의 한 원인이다. 흡연이나 음주가 정자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남성 난임 환자들은 여성 난임 환자들 못지않게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난임을 단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성 상실이라고 여겨 우울증을 앓거나 자존감이 저하된다고 한다. ‘미안해서 아내를 못 보겠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남성 난임이라고 할지라도 체외수정, 인공수정 같은 보조생식술로 연결되므로 배우자도 신체적인 부담을 나눠 갖는다. 아직 생식 능력을 남자다움으로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어 숨기고 싶어 하는 남성이 많다고 한다. 최근 난임 시술을 받는 남성 환자가 크게 늘었는데도 남성은 난임 휴가를 받는 경우도 드물다. ▷남성 난임을 공개하기를 꺼리다 보니 정부 지원에서도 소외돼 있다. 남성 난임 환자의 치료 및 수술은 부부가 함께 시술받지 않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무정자증 환자는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지만, 정자가 발견돼 보조생식술로 연결되지 않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자채취술은 최대 300만 원까지도 들고, 여러 번 받아야 해서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아이가 간절한 마음은 아빠도 엄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성 난임 환자의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줄 지원이 필요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극한직업’ 아파트 경비원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찾는 일자리가 경비원이다. 최저임금을 받고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일이다. 궂은일을 도맡아 몸도 힘든데 입주민을 상대하는 감정 노동도 고되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일자리’로 통한다. 최근 경기 부천시 한 아파트에 ‘선풍기를 치우라는 주민이 있다. 최소한의 일할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경비원의 호소문이 붙어 그 열악한 근무 환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요즘 같은 폭염에 에어컨도 없는 경비실의 선풍기를 끄라고 했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가 2023년 발표한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에는 입주민의 폭언, 폭행을 마치 업무처럼 견뎌내는 경비원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XX야, 일 안 하고 뭐 하냐” 같은 고성 섞인 욕설이나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직원으로 채용했냐”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분리수거 차량 진입을 위해 차를 옮겨달라고 했거나 차단기를 늦게 열어줬다고 행패를 당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내용도 많았다. ▷입주민의 이런 갑질에 대한 대처법은 ‘무대응’이었다. 경비원들은 “아무 힘이 없다”고 했다. 입주민과 싸우려면 사직을 각오해야 하고, 관리소장에게 말해 봤자 괜히 찍힐 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라 상처를 꾹꾹 눌러 담는다. 근무 환경 개선은 감히 요구하지도 못한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매달 주던 식비 5만 원을 삭감하거나 경비원끼리 에어컨 비용을 걷어 설치하고 전기요금을 자비로 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경비원이 업무상 사고와 질병 등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4984건이었다. 상반기 추세를 볼 때 올해 5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비용 절감을 위해 1개월, 3개월 ‘쪼개기’ 계약이 성행하는 계약직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입주자 대표 회의가 직접 고용하든, 경비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이든 일자리가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다. 이러니 경비원을 보호할 법을 만들어도 현장에선 ‘종이호랑이’가 된다.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주세요.’ 2020년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모멸감과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주민 갑질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졌고 정부는 부랴부랴 경비원 근무 환경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경비원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아파트와 빌딩에 대략 150만 명 이상 경비원이 근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이가 들어 ‘마지막 일자리’까지 밀려났다고 해서 평생 능력이 없었던 것도, 성실하지 않았던 것도, 멸시가 당연한 것도 아니다. 존엄하지 않은 직업이란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위험천만한 이륜차 리튬배터리 집안 충전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17일 서울 마포구 아파트 화재는 아들 방에서 충전 중이던 전동 스쿠터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불이) 석유를 부은 것처럼 확 올라왔다”고 했고, 이웃 주민은 “펑, 펑, 펑 폭발음이 세 번 반복됐다”고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의 특징인 ‘열폭주’ 현상이다. 꼭 닮은 사고가 한 달 전 부산 북구 아파트에서도 있었다. 전동 스쿠터 배터리, 에어컨,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보관했던 현관 바로 옆방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솟구쳐 미처 대피하지 못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졌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작고 강한 심장에 비유할 수 있다. 부피당 전기 에너지 밀도가 높아 크기가 작고 충전이 빠르다. 수명도 길다. 그래서 스마트폰, 노트북 등 소형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전동 스쿠터와 킥보드, 자전거 등 전기 이륜차에도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온도, 습기, 충격에 아주 민감해서 잘못 관리하면 불이 나기 쉽다.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야외에 대충 세워 둔 전동 스쿠터나 킥보드에 갑자기 불이 붙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배터리 내부에 양극(+)과 음극(―)을 나누는 분리막이 온도가 높거나 습기가 차면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으면 온도가 1000도까지 올라가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난다. 배터리가 전소할 때까지 진화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은 통계적으로 화재 발생률이 가장 낮은 계절이었는데,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빈번해지면서 화재에 계절도 없어졌다. ▷최근 5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10건 중 9건은 킥보드, 자전거 등 전기 이륜차가 그 원인이었다. 전기차와 달리 전기 이륜차는 과충전을 막아주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탑재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집에서 직접 충전하는 경우가 많아 화재 피해를 키우고 있다. 주로 공동주택 생활을 하는 국내에서 실내 충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올바르게 사용하면 안전한 기술이다. 품질 인증을 받은 정품 배터리와 충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취침이나 외출 중에 충전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과충전은 화재를 부른다. 충전이 완료되면 즉시 플러그를 뽑는다. 불씨를 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꺼번에 여러 기기를 멀티탭에 꽂아두는 것도 금물이다. 배터리 제품을 차량 내부, 창가, 베란다 등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지 않은 곳에 두면 안 된다. 배터리가 충격을 받았다면 분리막이 변형될 수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수리를 받아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우경임]‘권력형’ 재테크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대통령의 부인이 반클리프아펠, 샤넬, 디올 등 명품을 받고 공직을 넘기거나 예산을 줬다고 한다. 그 뒤에는 무속인이 있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여성, 명품, 종교 등 흡입력 있는 줄거리에 ‘눈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자괴감이 더해지며 김건희 여사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다. 그에 비해 남성, 주식, 정책 등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 이춘석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는 금세 분노가 휘발된 것 같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가 우리 사회에 덜 해롭다고 할 수 있을까.권력이 돈을 탐할 때 이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 의혹은 고약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4일 오후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 발언 중 고개를 푹 숙인 채 주가 호가창을 띄워 네이버 주식을 5주씩 거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본업을 팽개치고 주식 거래를 한 것부터 성실 의무 위반인데 알고 보니 보좌관 명의 주식 계좌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도중에도 보좌관 명의로 주식 거래를 하다 들킨 적이 있다. 만약 차명 거래로 확인된다면 국회 법사위원장이 금융실명제법과 공직자윤리법을 대놓고 위반한 셈이다. 주식 거래 내용은 더욱 놀랍다. LG CNS 420주와 네이버 150주, 모두 6400만 원어치를 신용 매수했다. 지난해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약 373만 원) 17개월 치를 ‘빚투’한 것인데 보통 사람이라면 함부로 베팅할 수 없는 돈이다. 그는 인공지능(AI) 국가대표 기업 발표 직전에 이들 주식을 매수했다. 국정기획위원회 AI 정책 담당 분과장이었으니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지금까지 정황만으로도 이해 충돌 소지가 다분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이 의원은 “보좌관 전화를 잘못 들고 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분증과 다름없는 휴대전화를 바구니에 두고 같이 쓰기라도 한다는 건가. 만약 거짓말이라면 보좌관은 이름까지 뺏긴 갑질을 당한 셈이다.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 더 위험 이 의원은 주식 창을 여는 수고라도 했지만 새 정부 인사청문회 과정을 보면 돈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배추 농사에 2억 원을 투자하고 미국 유학 2년간 매달 450만 원을 받았다. 연간 수익률이 27%다. 축의금, 부의금, 출판기념회로는 수억 원을 벌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2023년 5곳, 2024년 4곳의 기업과 대학에서 약 1억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김 총리와 권 장관 모두 십수 년간 공천을 못 받거나 낙선을 했는데도 일종의 명예로 그만한 돈을 벌어들였다. 낙선 의원도 이런데 현직 의원은 어땠을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하면서 묻혔지만 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남편이 보유한 주식도 석연치 않다. 강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이었던 2020년부터 그의 남편은 바이오 업체 감사로 일했고 2022년에는 스톡옵션 1만 주를 받았다. 재산 신고에도, 인사청문회 자료에도 누락된 주식이다. 강 의원은 “스톡옵션 거부 의사를 밝혀 취소된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정부 규제에 민감한 바이오 업체가 국회의원의 남편을 월급도, 주식도 주지 않고 무보수로 부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자리에서 사익을 좇기 시작하면 정책 결정은 왜곡되고 줄을 대려는 반칙이 난무한다. 권력을 쥐고 돈을 벌기로 작정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를 스스로 경계할 수 없다면 제발 경계할 수밖에 없도록 장치를 만들라.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권력형 재테크’를 엄벌하는 선례를 남겨야 하는 건 물론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부패 방지에 바친 내 한평생이 부정당했다”

    지난해 8월 8일, 20년간 부패 방지 업무를 담당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김모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권익위가 김건희 여사의 디올 명품백, 이른바 ‘그 쪼만한 백’ 수수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를 제재할 법적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준 지 두 달 만이었다. 당시 이 사건의 실무자였던 그는 “부패 방지에 한평생을 바쳐 온 과거가 부정당했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유족들이 그의 죽음 1주기를 앞두고 카카오톡에 남긴 유서 형식의 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가 카카오톡에 ‘김OO 남기는 글입니다’라는 대화방을 만든 건 숨지기 9일 전인 지난해 7월 30일이었다. 전날부터 전국을 돌며 식사비 한도를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간담회를 갖던 중이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담당했던 업무였다. 이 간담회를 두고 ‘가방 건의 여파가 크다’고 적었는데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그가 어떤 항의를 들었을지, 어떤 자괴감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메시지다. 8월 2일에는 ‘지난 20년간 만든 제도를 제 손으로 망가뜨릴 줄이야’, ‘법과 논리의 무게보다 양심의 무게가 크다는 교훈을 공직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사망 하루 전인 8월 7일에는 6개의 메시지를 잇달아 남겼다. “제 잘못은 목숨으로 치르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뿐”이라며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평생을 바친 소신이 무너졌다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되는 메시지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어쭙잖은 정의감과 무능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며 자책했다. ▷그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 여사 사건의 수사기관 이첩을 주장했지만 윗선에서 종결 처리를 밀어붙였다며 “실망을 드려 송구하다”고 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원래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 이 결정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힘들어했다고 증언했고, 가족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갈등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지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였던 위원장, 후배였던 부위원장 등은 외압은 없었다며 그의 죽음을 덮기에 급급했다. ▷물이 더러워지면 살 수 없는 산천어처럼, 양심에 어긋난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만큼 도덕적 잣대가 오염된 사회란 뜻일 것이다.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가진 자와 권력자에겐 더 엄격하고, 약자에겐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률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의 마지막 항변이자 당부였다. 유서가 공개된 6일, ‘그 쪼만한 백’을 받은 김 여사가 특검 조사에 출석하며 포토 라인에 섰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우경임]죽지 않는 일터, 서류로부터 오지 않는다

    5월 19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 뜨거운 빵을 올려 식히는 3.5m 높이 나선형 냉각 컨베이어 벨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 중인 50대 양모 씨가 윤활유를 뿌려 주러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상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 과실로 묻힐 뻔했던 양 씨 죽음은 이재명 대통령이 공장을 찾으면서 그 배경이 드러났다. 삼립에서 형님이 일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이 대통령은 SPC 경영진에게 “몇 교대 했어요?” “왜 12시간씩 했어요?”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이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 아니냐”고 했다. 이틀 뒤 SPC는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3년간 3명이 죽고 5명이 다쳐도 꿈적하지 않던 SPC가 대통령 한마디에 초과 야근을 없애 버린 것이다.야근 줄어야 하는 건 맞지만 12시간 맞교대 근무는 임·단협 사항이었다. 고용을 줄이려는 경영자와 시간외수당을 받아 저임금을 벌충하려는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SPC가 신속하게 초과 야근을 폐지한 건 그다지 손해가 크지 않아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히려 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가 “SPC는 저임금 해소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며 임금 삭감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3년간 SPC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3건의 공통점은 야간 근무가 아니다. 2022년 10월 15일 경기 평택 SPL 공장에선 샌드위치 소스 배합 작업을 하던 20대 박모 씨가 교반기(젓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 즉사했다. 밤샘 근무 중이었던 것은 맞지만 고작 수십만 원짜리 자동멈춤 장치(인터록)가 설치되지 않았다. 이듬해 8월 8일에는 경기 성남 샤니 공장에서 50대 고모 씨가 빵 반죽 도중에 반죽 통을 옮기는 리프트 사이에 끼여 숨졌다. 사고 시간은 낮 1시경이었다. 리프트 하강 시 경보음만 울렸어도 살 수 있었다. 올해 5월 19일 양 씨의 죽음은 새벽 3시경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실에 따르면 사고 기계는 시화 공장이 설립된 1995년 도입된, 최소 30년 이상 사용한 노후 기계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윤활유를 뿌려 주는 자동분사장치가 제 기능을 못 했다고 밝혔다. 망가지기 직전의 기계를 바꾸기는커녕 기계 값보다 싼 사람을 밀어 넣었고 인터록 같은 안전 장치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인터록을 설치해 자주 기계가 멈추면 빵 생산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라고 동료들은 말했다. 근로감독관 늘었지만 산재 줄었나 SPC 초과 야근 폐지로 노동자는 위험한 환경은 바뀌지 않는데 임금이 줄어든 채 일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 대통령은 또 “300명 근로감독관 증원도 신속히 해 달라”고 주문했다. 우리나라 근로감독관은 지난해 기준 약 3100명으로 노동자 1만 명당 1명인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웃돈다. 문재인 정부 동안 근로감독관을 1000명이나 늘렸지만 산재는 줄어들지 않았다. 2020년 경기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38명 사망), 지난해 경기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폭발(23명 사망) 등 대형 산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늘어난 근로감독관은 놀고 있다는 뜻인가. 30년 경력 건축 감리사인 유모 씨는 근로감독관 증원을 두고 “‘사진 찍어와라’ ‘공문 달라’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안전 담당자가 현장 대신 서류만 쳐다본다”며 “실무형 안전이 아니라 서류형 안전만 양산하면 사고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년공’으로 10대를 보냈고 산재를 경험한 이 대통령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말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처럼 모호한 법령으로 겁박하거나, 근로감독관 같은 사후 행정으로는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의 본능을 제어할 수 없다. 현장에선 차라리 안전 관리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한다. 정부가 정의감만 넘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란 얘기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데이터센터도 전기 부족한 수도권에만 몰려서야

    인공지능(AI)의 성능은 6개월마다 두 배씩 높아지고 있다. 이 경이로운 속도가 기술의 한계가 아닌 전기 부족으로 멈출 것이란 테크업계의 우려가 나온다. AI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현재 발전량을 넘어설 순간이 곧 다가온다는 것이다. 미국만 해도 ‘AI의 심장’이라 불리는 데이터센터의 전기 소비량이 전체 전기 소비량의 4%쯤 차지한다. ▷에너지 수급이 지역마다 들쑥날쑥한 우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기업이 전기 사용 신청을 하면 전력망의 안정성 등을 따져 승인하는 전력 계통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 공급이 포화되거나 송전 인프라가 과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도 도입 이후 데이터센터 운영 목적으로 모두 290건의 신청이 접수됐는데 195건(67%)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들 데이터센터가 사용할 전기를 합치면 20GW(기가와트), 보통 원자로 1기 설비 용량이 1GW이므로 원자로 20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지금도 데이터센터 10곳 중 7곳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만약 기업의 신청을 다 들어주면 수도권 일대에 전력 마비를 불러올 것이다.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인력이 충분하고 고객이 두터운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싶어 하지만 이를 가동할 전력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세우면 수도권까지 그 망을 연결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지난해 전력 자립도는 서울 11.6%, 경기 62%에 불과하다. 전기가 남아 도는 지역도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북은 228%,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전남은 213%다. 생산만 되고 사실상 버려지는 전력이 8.9GW에 달한다고 한다(5월 기준). 상식적으로 이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면 될 테지만 곳곳이 가시밭길이다.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발전소, 변전소, 데이터센터를 잇는 송·변전 설비가 필요한데 주민 반대로 지연되기 일쑤였다. ▷동해안 화력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동해안∼동서울’ 송전선로 280km 구간은 79개 마을 설득에 성공했지만, 마지막 종착점인 경기 하남시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공사가 중단됐다. ‘당진화력발전소∼신송산’ 송전선로는 당초보다 7년 6개월이 미뤄진 2028년 말 준공된다. AI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하면 느려도 너무 느리다. ▷최근 아마존과 손잡고 울산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발전소에서 가까운 곳은 전기료가 싸고, 거리가 멀수록 비싸져야 한다”고 했는데 일리 있는 제안이다. 결국 정부가 데이터센터를 분산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 에너지 병목을 풀 수밖에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7-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김 여사 집에선 샤넬 12켤레, 오빠네선 명품 목걸이

    ‘건진법사 청탁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은 통일교 전직 간부 윤모 씨가 건진법사 전모 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하려던 그라프 목걸이, 샤넬 가방 2개의 행방을 쫓던 중이었다. 통일교의 각종 현안 청탁 의혹을 입증할 핵심 물증이지만 전 씨는 줄곧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그 실물을 찾기 위해 김 여사의 서울 서초구 자택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물건을 확보했다. 김 여사 오빠의 처가에서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순방 당시 김 여사가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발견한 것이다. ▷김 여사는 나토 순방 당시 70여 개 다이아가 촘촘히 박힌 6000만 원 상당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착용했다. 당시 재산 신고 목록에서 빠졌다는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에선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최근 김 여사 측은 “해외에서 모조품을 샀다”고 말을 바꿨다. 공직선거법상 500만 원이 넘는 보석류는 신고해야 하는데 그보다 싼 짝퉁이라는 얘기다. 특검이 이 목걸이에 대해 진품 여부를 검증한다고 한다. 진품이면 김 여사가 거짓말을 한 것이고, 짝퉁이면 불법이니 이런 국제적 망신이 없다. ▷역시 6000만 원 상당인 그라프 목걸이가 물밑에서 등장하는데, 나토 순방 직후였다. 통일교 전직 간부 윤 씨가 “앞으로는 빌려서 하지 마시라”며 비슷한 가격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전 씨에게 건넨 것이다. 그해 4∼7월 윤 씨가 김 여사 선물로 그라프 목걸이와 함께 샤넬 백 2개를 전달한 건 윤 씨도, 전 씨도 인정했다. 그런데 목걸이도, 가방도, 신발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윤 씨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김 여사가 목걸이를 착용하지 않자 전 씨에게 반환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전 씨는 “잃어버렸다”며 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샤넬백 2개는 김 여사를 지근거리서 보좌했던 유모 씨가 웃돈 300만 원을 주고 샤넬백 3개와 신발 1개로 교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웃돈은 대통령 관저 공사 특혜 의혹을 받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 대표의 아내가 냈다. 모든 정황이 김 여사를 가리킨다. 특검이 김 여사 서초동 자택 신발장에서 샤넬 신발을 12켤레 발견했는데, 발 크기가 260mm였다. 유 씨가 교환한 크기 250mm와는 달랐다. 샤넬백의 행방도 아직 모른다. ▷그만한 고가의 선물 전달 과정에서 ‘배달 사고’ ‘도난 사고’도 아닌 ‘분실 사고’를 냈다니 신빙성이 한참 떨어진다. 이번에 김 여사 오빠네 처가에서 들고 나온 특검 압수물에는 고가의 보석이 여럿 포함됐다고 하니 이런 숨바꼭질이 곧 끝날지도 모르겠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그 권력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데 대한 분명한 단죄가 있어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7-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법제처장까지 5명… ‘李 변호인 보은 인사’ 논란

    법제처장은 코드 인사 논란이 많았던 자리다.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정부 입법을 조정, 지원하는 ‘관리형’ 부처라 측근 임명에 따른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아예 대통령의 개인 변호인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신임 법제처장에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조원철 변호사가 임명됐다. 그는 이 대통령이 기소된 대장동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을 변호했다. 전임인 이완규 법제처장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직 당시 징계 취소 소송의 법률대리인이었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공직선거법 위반 외에도 이 대통령이 기소된 재판은 대장동 개발 사건 등 4건이 있다. 조 법제처장을 포함해 사건을 담당했던 이 대통령의 변호인 중 5명이 새 정부 요직에 포진했다. 김희수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변호인이다. 이 자리도 대통령의 변호인이 연달아 맡은 셈인데 윤 전 대통령은 검찰 출신 조상준 변호사를 앉혔는데, 그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변호했던 인물이다. ▷대통령실에는 이태형 민정비서관, 이장형 법무비서관,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이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다. 특히 사정 기관의 사정 기관이라 불리는 민정수석실이 대통령 부부의 사건을 맡았던 변호인으로 채워진 건 이해 충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에도 지난해 총선을 통해 이 대통령의 대장동 변호사가 입성했다. ‘대장동 5인방’으로 불리는 김기표, 김동아, 박균택, 양부남, 이건태 변호사가 의원이 됐고, 최근 출범한 ‘검찰 조작 기소 대응 TF’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TF는 “대통령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3년 전 대선 때 본인 수사와 재판에 “개인 변호사 4명, 법무법인 6곳, 사임한 법무법인 1곳, 전직 민변 회장 3명 등 14명이 이름을 올렸다”고 밝힌 적이 있다. “농협과 삼성증권 계좌로 다 송금해 2억5000만 원이 조금 넘는다”며 변호사비 출처도 공개했다. 그 후로도 수사와 재판은 계속됐으니 변호사 비용은 더 늘었을 것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면 파산하고도 남을 송사 건수와 규모라 야당에선 ‘이재명 변호인 사단’의 정부와 국회 진출이 낮은 수임료를 주고 일을 맡긴 대가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직으로 받는 연봉이 변호사 수임료보다 높을 리는 없다. 다만 미래 소득은 보장이 된다고 한다. 권력 핵심에서 쌓은 경험이나 인맥으로 변호사로서 ‘몸값’이 몇 배 뛴다니 이만큼 두둑한 보상이 없다. 대통령을 변호했다고 공직에서 원천 배제할 이유는 없겠지만 굳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자리마다 앉혀 논란을 자초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7-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우경임]서울대 10개 ‘표절’로 만들어질까

    논문 표절로 사퇴 압박을 받는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배추 총리’나 ‘갑질 장관’도 있는데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금을 체불하고, 법무부 장관이 범죄를 저지른 것과 다르지 않다.관행이었다고 둘러댈 수도 없는 2018년 논문이다. 그해 2월 한국색채학회지에 ‘조명의 면적 및 조도 연출 변화에 따른 피로감 평가 연구’라는 이 후보자의 논문이 실렸다. 한 달 뒤 ‘피로감’만 ‘불쾌글레어’로 살짝 바꿔치기한 논문이 한국조명·전기설비학회지에 실렸다. 두 논문은 실험 설계와 그 결과가 유사한 사실상 동일한 연구다. 아예 조사까지 똑같은 문장도 있었다.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상 부당한 중복 게재에 해당한다.‘복붙’한 논문을 다시 자기 표절두 논문의 자기 표절도 심각하지만 이조차 애당초 이 후보자가 쓰지 않은 논문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2018년 4월 이 후보자가 지도 교수로 이름을 올린 충남대 박사학위 논문이 제출됐고 이를 요약해 자신을 제1 저자로 학술지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물어보니 “이런 논문에 교수가 제1 저자로 들어가는 건 처음 봤다”는 교수들이 많았다.이 후보자의 제자들은 “해당 논문은 프로젝트 연구로 연구 기획부터 진행, 결과 검토, 세부 수정·보완까지 교수님이 직접 수행했다”며 “주 저자인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충남대 산학협력단이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4억2500만 원을 지원받아 국가 과제를 수행했고 연구 참여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는 주장이다. 한 이공계 교수는 “지도 교수가 선행 연구 찾아주고, 실험 설계하고, 논문 고쳐주고 해도 교신 저자로 올라가는 게 상식이고 또 보람”이라고 했다. 만약 제자들의 주장대로 이 후보자가 제1 저자가 돼야 한다면 이들은 학위를 반납하고 충남대는 감사를 받아야 할 일이다.“제자의 성장을 큰 행복으로 여겨 온 분”인 이 후보자를 제자들이 정말 돕고 싶었을지라도 이를 “일반적인 연구실 분위기였다”고 말한 건 더욱 놀라웠다. 공개적으로 연구 윤리 위반을 실토하고 학문적 엄밀성을 부정한 발언이었다. 그런 연구 풍토이니 제자 논문 속 비문을 복붙하고, 오타까지 베낀 이 후보자의 논문이 나왔나 싶었다. 성실한 동대학 연구자들은 기가 찼을 것이다. ‘예산 표절’로 서울대 만들겠다니이 후보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추진을 위해 발탁됐다고 한다. 거점국립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까지 올려 ‘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의 1인당 연간 교육비는 평균 6059만 원으로 지역거점대학 평균(2450만 원)의 2.5배가량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5년간 재정을 투자해 그 격차를 줄이고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예산을 표절한다고 서울대 10개가 뚝딱 만들어질 리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처음 제안한 건 김종영 경희대 교수다. 그는 저서에서 서울대 10개를 제안했을 때 주변 반응을 소개했다. A 대학같이 놀고먹는 교수들을 위해, B 대학같이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해 “왜 수조 원을 써야 하냐”는 냉소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산 투자와 구조조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서울대 10개’는 기만이라고 썼다.이미 거점국립대들은 특정 학과만 지원하면 매년 3000억 원, 대학을 지원하면 매년 3조 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혁 방안이나 전략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대학은 없고 ‘돈타령’만 들린다. 논문 표절같이 나태한 연구를 해 왔던 이 후보자가 이런 대학들에 구조조정이나 연구 성과를 요구할 수 있겠나. 아니 최소한 왜 수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답할 순 있나.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7-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부부 동반 치매 급증, 배우자가 치매면 나도…

    동반 치매를 앓는 노부모를 간병하는 아들이 찍어 올린 영상 속의 장면이다. 식사를 하던 부인이 “쟤 누구 아들이고?”라고 남편에게 묻는다. “모르지. 니 아들인지. 나 몰라.” 마주 앉은 남편이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자 아내는 “난 모르지. 아들이 괜찮아. 자상하고”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본다. 기억을 잃은 나는 내가 맞을까.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을까. 치매는 ‘장수의 저주’라더니 아들을 잊은 엄마의 텅 빈 눈동자가 그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가족 중 두 번째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가 5327명으로 2019년(2857명)에 비해 86% 증가했다. 치매가 노인성 질환임을 감안하면, 치매를 같이 앓는 노부부가 대략 5327쌍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의 1% 정도로 추산된다. 병원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인원만 집계된 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유타주립대 연구팀이 인근 지역 65세 이상 2442명(부부 1221쌍)을 9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배우자가 치매 진단을 받을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이 평균 6배나 높아졌다. 치매인 아내를 둔 남편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11.9배 높았고, 치매인 남편을 둔 아내는 그 비율이 3.7배 높았다. 다만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인지 기능 저하를 불렀는지,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공유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국내 연구서도 부부가 동반으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보고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배우자가 치매 환자인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약 2배 높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부부의 생활 습관 때문이었다. 부부 동반 치매 환자들은 흡연 과음 비만 우울증 신체활동 등 치매 위험 인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치매 발병 위험이 컸는데 간병으로 신체 활동이 줄고 우울증까지 앓다 보면 쉽게 치매에 걸린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부부 동반 치매 환자들은 처음에는 생계 수단부터 잃었고 차츰 식사나 병원 통원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치매는 인지 기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성격이 난폭해지는 경우도 많아서 부부가 잦은 싸움으로 동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요즘같이 자식 귀한 시대에 간병을 맡아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스스로 복잡한 복지 제도 신청도 불가능해 사실상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이들을 직접 찾아가 돌봄 대상자를 발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가족이 무너지는 슬픔까지 겪도록 해서야 되겠나.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6-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정권 끝나니 “김건희 논문 표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1999년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서 ‘파울 클레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윤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당시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숙명여대는 2022년 2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꾸려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40개월이 지난 24일 논문 표절을 이유로 석사 학위를 취소했다. 숙명여대는 총장이 바뀌고 표절을 인정했고, 정권이 바뀌고 학위를 박탈해 뒷말을 낳고 있다. ▷석사 학위가 취소되면 박사 과정 입학 자격도 자동 상실된다. 김 여사가 박사 학위를 받은 국민대도 박사 학위를 취소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김 여사는 2008년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 중에 ‘온라인 운세 콘텐츠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등 논문 3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학술적 가치를 따지기도 어렵지만 아예 단어를 바꿔 끼우는 수고조차 하지 않은 표절 논문이었다. ▷국민대는 “검증 시효가 지났다”며 논문 재심사를 미루다가 윤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인 2022년 8월 연구 부정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14개 교수 단체가 모여 김 여사의 박사 논문과 표절 대상 논문을 한 문장, 한 문장 수작업으로 비교했다. 860문장 중 220문장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8∼13쪽은 아예 리포트를 사고파는 사이트인 ‘해피캠퍼스’에서 구입한 리포트를 ‘복붙’했다. ‘회원 유지’를 ‘멤버 Yuji’로 표기했던 학술지 논문은 언론사 기사를 무단 인용하거나 점집 홈페이지같이 인용조차 할 수 없는 글을 베꼈다. ▷100% 대학 탓만 할 수도 없다. 교육부는 윤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1월 국민대를 특정 감사했다. 김 여사의 박사 학위 논문을 재심사하라는 압박이었다. 그 특정 감사 결과는 김 여사가 겸임교수 임용 당시 학력과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밉보였단 이야기가 돌았다. 교육부로서는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등록금 동결로 빈사 상태인 대학은 재정사업을 쥐고 있는 교육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대학이 외풍에 휘둘리더라도 학계는 학문적 양심을 성역으로 여겨야 한다. 김 여사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는 ‘멤버 Yuji’로 논란이 된 학술지 논문의 교신 저자였다. 논문을 한번 읽어보기라도 했다면 이런 기초적인 오류는 수정됐을 것이다. 아예 논문 지도를 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 논문들을 버젓이 실은 학술지 역시 과연 엄격한 심사를 했는지 의문이다. 성실히 학문에 정진하는 이들을 우롱하는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6-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클릭도 안 했는데 쿠팡으로… ‘납치 광고’였다

    괜한 손가락 탓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여름 OOO 추천’, ‘△△△ 솔직 리뷰’ 같은 정보성 게시물을 클릭했더니 막상 별 내용은 없고 갑자기 쿠팡 앱이 실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실수로 광고를 클릭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쿠팡 앱이 실행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뒤로 가기’를 눌러도 작동하지 않는다. 거머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았는데 특정 앱으로 강제 이동되도록 설정된 이런 광고를 ‘납치 광고’라고 한다. 소비자가 의도치 않은 소비를 하도록 교묘히 온라인 화면을 꾸미는 ‘다크 패턴’의 일종이다. ▷쿠팡의 납치 광고가 유독 심각한 건 ‘쿠팡 파트너스’라는 마케팅 프로그램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나 홈페이지 운영자가 쿠팡 파트너로 등록한 뒤 쿠팡에서 판매되는 특정 상품의 구매 링크를 올리면 그 링크를 통해 상품이 팔릴 때마다 구매액의 3%를 수익으로 얻는다. 꼭 그 상품이 아니어도 링크를 타고 들어온 사람이 24시간 내에 쿠팡에서 물건을 사면 구매액의 3%를 벌 수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수익을 올리려면 낚시성 글이나 허위 정보로 스크롤을 내려 보게 하면서 쿠팡 앱으로 강제 전환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튜브에는 ‘쿠팡 파트너스 활동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온라인 쇼핑은 편리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시키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 1월에 낸 관련 사례집을 보면 광고 표시가 없는 일반적인 링크를 클릭했음에도 광고가 등장하거나, 원치 않는 광고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광고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78%에 달한다. ▷쿠팡과 수익모델이 비슷한 아마존은 납치 광고 발견 시 해당 온라인 사업자와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력한 자율 규제를 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신이 쌓이면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해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광고임을 숨기거나, 사용자가 정보를 얻고자 클릭했는데 광고로 연결되는 경우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방통위도 쿠팡의 납치 광고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쿠팡은 납치 광고가 일부 광고 파트너들의 개별적인 부정행위라고 한다. 하지만 쿠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만들어 보내주는 등 사실상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쿠팡에서 구매하도록 연결해 주는 대가로 1억5000만 원을 번 파트너도 있다고 한다. 거꾸로 계산하면 쿠팡은 50억 원어치 매출을 올렸다는 얘기다. 납치 광고를 못 하도록 과연 적극적으로 관리했을까 싶다. 약 2000만 명이 쓰는 국민 쇼핑 앱이 이런 치졸한 마케팅까지 해야 하나.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6-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우경임]전공의 모두 돌아올 필요 없다

    의정 갈등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의대 증원을 철회했는데도 의대생은 꿈쩍하지 않는다. 전공의 추가 모집에 필기시험 면제, 입영 특례까지 안겨줘도 전공의 복귀율은 미미하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것 같다. 의정 간 협상이 시작돼도 2000명 증원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10명 중 6명은 취업을 했다. 병원도 전공의 없는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차라리 이런 ‘뉴노멀’을 의료 시스템을 개혁할 적기로 삼아야 한다. 어차피 고장 났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한국 의료 기적 뒤엔 전공의 희생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48년간 한국 의료는 기적적인 성공을 이뤘다. 환자들은 쉽게 병원에 갈 수 있고, 덕분에 의술도 집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낮은 보험료-낮은 수가’로 인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고 미용·성형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은 수익 보전을 위해 전공의를 저임금으로 희생시켜 왔다. 의대 졸속 증원이 기폭제가 됐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터진 것이다. 올해 상반기 인턴 모집 정원은 3356명이다. 의대 졸업생보다 많다.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정원은 3954명이다. 역시 인턴 정원보다 많다. 전공의를 싼 인력으로 보고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모집하려 한 탓이다. 올해 전공의 모집 인원은 소아청소년과 206명, 산부인과 188명이었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 과가 없어질 판인데 관성적으로 많이 뽑는다. 이러니 주당 80시간씩 일하며 수련을 마쳐도 병원에 남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올해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모집 정원은 164명이다. 전부 교수로 임용되기 어려운 규모다. 전공의들은 양질의 교육보다 장시간 근무만 강요하는 고된 수련 과정을 참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한다.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순순히 수용해도 취업한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은 적다. 결국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 대신 전공의는 적정 숫자를 선발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최근 대한의학회는 ‘중구난방’ 수련 과정을 표준화하고, 수련병원을 평가·인증하는 전공의 수련교육원 도입을 제안했다. 아울러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는 지도전문의를 충원하고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전공의 이탈로 교수가 기존처럼 진료, 임상, 교육이라는 ‘1인 3역’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에서 수련 과정의 질을 담보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고질병 고치려면 과감한 집도를 정부는 전문의 양성 트랙의 이원화도 검토했다. 종합병원 이상에 근무할 세부 과목 전문의와 개원가로 나갈 일차 의료 전문의를 분리 양성하는 것이다. 의정 갈등 와중에 설익은 채로 발표돼 ‘인턴 2년제’라는 의료계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하지만 일차 의료 전문의가 굳이 중환자실 당직 근무를 서거나 뇌수술을 배워야 할까. 고령화로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주치의 등 일차 의료 수요는 폭증할 것이다. 만성질환자가 지금처럼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반복하고 진료과를 전전한다면 환자도, 의사도, 건보 재정도 손해다. 수련 기간을 단축해 일차 의료 전문의를 배출하고 미용, 성형에 쏠리지 않도록 수가 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우리 의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을 몰랐으며 의료계가 이런 수술법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막대한 비용 투입과 건보료 인상으로 귀결되므로 대증요법만 썼을 뿐이다. 그래서 새 정부의 의료 개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적 부담을 덜고자 의정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전공의 복귀로 끝이 아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6-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우경임]트럼프 생일날, 한쪽선 열병식 한쪽선 노 킹스 시위

    요즘 미국 뉴스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 정권 선전이나 내부 결속을 위해 열리던 열병식이 14일 미국에서 열렸다. 이라크전 승전을 기념했던 열병식 이후 34년 만이다. 미국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해 에이브럼스 탱크,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이 워싱턴 중심부를 관통했고 B-25 폭격기, 블랙호크와 아파치 헬기가 뜬 공중쇼도 화려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행사 마지막에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가 웅장하게 흘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이어서 ‘600억 원짜리 생일 축하 공연’이란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자부심을 느꼈다는 미국인도 많았다. 실제 미국인을 뭉클하게 할 만한 요소가 골고루 포진된 잘 기획된 쇼로 보였다. 열병식 영상에는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시민들이 포착됐고 속된 말로 ‘국뽕’이 차오른다는 감상평도 줄줄이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은 승리를 기념한다. 미국도 그럴 때가 됐다. 바로 오늘 밤”이라고 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병식이 열리는 동안, 독립혁명 이후 신생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는 약 8만 명이 모여 “절대 권력은 없다(No Kings)”를 외쳤다. 뉴욕 5만 명, 로스앤젤레스 2만5000명 등 50개 주 200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동기가 농후한 이민 단속에 군을 투입하고, 생일날 열병식을 열어 군을 정치화하는 위험한 불장난까지 벌이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극단적으로 쪼개진 미국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이날, 미네소타주에서 총성이 울렸다. 미네소타 주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인 멀리사 호트먼 주 하원의원과 그 배우자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범인은 이들을 쏘기 직전에 존 호프먼 주 상원의원 부부에게도 총을 쏘았다. 이들도 중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다. 경찰로 위장한 채 접근한 범인의 차 안에서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 70여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은 “정치적 신념에 따른 전형적인 표적 살인”이라고 했다. ▷이념 갈등이 인명을 뺏는 폭력으로 비화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대화는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총으로는 의견 차이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들을 애도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에 따른 백인 ‘블루칼라’의 좌절,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에 올라탄 트럼프 대통령의 ‘혐오 정치’가 분열을 조장하고 증오에 면죄부를 줬다. 그 결과, 미국 사회가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6-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