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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아시아 이웃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들이 동시에 국내 관객을 만난다. 5일 개봉하는 중국 영화 ‘난징사진관’과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모두 각 나라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흥행작들이다. 최근 상당수 중국 영화는 너무 ‘국뽕’(자국 찬양)이 물씬해 국내 팬들이 등을 돌린 지 오래. 게다가 베트남 영화는 국내에서 수익적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다. 하지만 두 작품은 나름 자기만의 색채와 스토리텔링을 갖춘 데다, 각 나라 고유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 평범한 이들의 삶과 존엄에 집중‘난징사진관’은 7월 25일 중국에서 개봉해 1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올여름 중국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의 누적 흥행 수익은 약 30억 위안(약 6012억 원). 인기에 힘입어 상영 기간도 10월 24일까지 연장됐다. 내년 미국 아카데미상의 국제 장편영화 부문에 중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영화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1937년 12월부터 1938년 2월까지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이 배경. 학살을 피해 사진관 수습생으로 일하던 청년 ‘아창’이 일본군 사진작가의 필름을 현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제에 협력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부역자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하며, 학살 장면이 담긴 사진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이 중심 서사를 이룬다. 물론 난징사진관도 국뽕 영화란 비난을 온전히 피해 가긴 어렵다. 9월 3일 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개봉했는데, 반일 감정이나 애국심 고취를 강조하는 대목이 분명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선전물에 가깝던 영화 ‘전랑(戰狼·늑대전사)’ 등과 비교하면 훨씬 덜 불편하고 설득력도 갖췄다. 수입사 콘텐츠존 측은 “과거 액션 위주의 중국 영화들과는 작품성이나 연출력 측면에서 굉장히 다르다”며 “중국 영화는 무조건 국뽕이란 선입견을 깨고 싶어 수입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나라나 가장 위대한 건 가족”‘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8월 베트남에서 먼저 공개됐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양국 제작사가 공동 참여했으며, ‘널 기다리며’(2016년) 등을 연출한 모홍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현지에선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크게 흥행했다. 영화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다오)을 홀로 돌보던 아들 ‘환’(뚜언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에게 엄마를 데려다주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두 주인공 모두 베트남 유명 배우로, 모자의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현시점 국내 관객에겐 다소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련된 최신 연출기법과 비교하면 다소 거칠게 여겨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기교 없이’ 오로지 이야기에만 집중했다는 강점이 되기도 한다. 모 감독도 지난달 29일 국내 간담회에서 “가장 위대한 건 가족임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며 “기교나 세련됨을 걷어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합작 영화답게 양국의 풍경과 언어가 자연스레 공존하는 점도 매력. 국내 팬들에겐 배우 정일우와 고경표의 등장도 반갑다. 특히 레티한의 젊은 시절 다정한 연인 ‘정민’을 연기한 정일우는 짧은 분량에도 존재감이 돋보인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인기 덕에 베트남 아들로 불렸다는 그는 “현지에서 받았던 사랑에 감사하는 뜻에서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일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한미 정상회의, 한중 정상회의 등이 개최되며 주목받았던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이 2일 아침 일찍부터 많은 인파가 몰리며 뜨거운 열기가 이어졌다. 이날부터 현전하는 신라 금관 6점을 모두 만날 수 있는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의 일반 관람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신라 금관전은 이날 동이 트기 전부터 관람객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엔 이미 수많은 이가 길게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졌다. 사전 예약을 받지 않은 전시는 결국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이날 2700명만 수용하기로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금관전을 보기 위해 오전 4시에 집을 나선 관람객까지 계셨다”며 “안전한 관람을 위해 제한된 인원만 순번제로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선물 받은 금관에 매주 만족한 트럼프 대통령은 수행원들에게 “특별히 잘 챙기라”며 전용기에 실어갔으며, 조만간 백악관에 전시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5∼6세기 약 100년에 걸쳐 제작돼 현재까지 발굴된 신라 금관 6점이 모두 모인 게 사상 처음이란 점도 관람 열기를 높이고 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열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외계인은 있을까? 있다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일까?’ 밤하늘을 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떠올려 봤을 수 있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오래된 호기심을 파고든다. 생물학자, 역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취재하면서 인류가 외계 생명을 찾아온 여정을 보여준다. 외계 생명을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은 근본적인 역설을 안고 있다. 아직 그 연구 대상인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래전부터 지구 밖 생명을 꿈꿔왔다. 르네상스 시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별이 사실은 행성이란 걸 깨달았을 때 인류의 시야는 지구 너머로 확장됐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타원 궤도를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는 우주에 생명체가 풍부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17세기에 외계 세계에 대비하기 위해 공상과학(SF)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낙관은 지난 150년 동안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주 망원경이 수천 개의 행성을 찾아냈지만, 그 어디에서도 생명의 흔적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학자들은 “우리 은하에서 우리가 유일한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요한 건 “탐구 그 자체”라고 말한다. 외계 생명에 대한 연구는 수학적 확률만큼이나 공상에 크게 의존한다. 연구자들은 먼 행성의 지형과 표면을 가정해 모형으로 만들어보고, 평행우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등 알 수 없는 영역을 상상한다. 이런 상상은 얼핏 비과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공상은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시도보다도 타당하다”며 “상상력은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미지의 세계에서 지식으로 이끄는 모든 가설, 도약의 원동력”이라고 단언한다. 상상력까지 동원해가면서 외계 생명을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우주를 희망하는 이유는 너무 외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희망이 결국 더 나은 인류로 이끌 것이라 말한다. “반가워하고, 웃고, 사랑이 퍼진 미래를 바라보며, 바깥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혼자가 아닌 인류”를 그려보자는 제언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드라이브 마이 카’(2021년), ‘괴물’(2023년), ‘해피엔드’(2025년)…. 요즘 애니메이션에 다소 밀리는 분위기지만, 일본 영화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일본 독립영화들. 이 영화들을 보며, 10여 년간 일본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던 ‘엣나인필름’의 주희 기획마케팅총괄이사(55)는 문득 궁금했다고 한다.“최근 한국 독립영화는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을까?” 그 질문에서 출발한 행사가 ‘커뮤니티시네마페스티벌’이다. 일본 관객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한국 독립영화를 선보이는 자리다. 일본 커뮤니티시네마센터와 한국예술영화관협회가 손을 잡고 다음 달 9일부터 20일간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에 있는 예술영화관 5곳에서 진행한다. 28일 서울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만난 주 이사는 “좋은 한국 영화들이 일본 시장에 소개될 수 있는 쇼케이스장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현지에 소개할 작품은 ‘성적표의 김민영’(2022년), ‘절해고도’(2023년), ‘장손’(2024년) 등 3편이다. 모두 한국예술영화관협회가 3년째 진행 중인 시상식에서 국내 작품상을 받은 영화들이다. 여기에 영화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무너지지 않는다’,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도 더해졌다. 주 이사는 ‘요즘 한국 독립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적은 예술영화관 수, 짧은 개봉 기간 등 구조적 한계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본은 한 영화가 도시 상영을 마친 뒤 지방 순회까지 2∼3달 동안 상영이 이어지는 반면, 한국은 2∼3주면 끝이 난다”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예술영화관은 66개뿐이다. 일본은 140개(지난해 9월 기준)에 이른다. 이번 페스티벌은 예술영화관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1995년 동숭시네마텍에서 출발한 한국 예술영화관은 2010년대 ‘박화영’ ‘메기’ ‘벌새’ 등 화제작으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위축됐다. 29일 문을 닫는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로 영화 전문 도서관을 함께 운영하며 시네필의 상징적 공간으로 버텨 왔지만, 결국 10년 만에 폐관한다. 그렇다고 주 이사가 예술영화관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재상영을 통해 관객의 ‘극장 경험’을 새로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주 이사는 “요즘 관객은 새로운 콘텐츠를 보기보단 ‘콘텐츠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며 “멀티플렉스가 돌비나 4DX 같은 체험형으로 전환한다면, 독립영화관은 취향이 뚜렷한 영화들을 재소개하면서 관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어두운 밤 형형색색으로 물든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부터 다채로운 문화유산과 미술품 전시까지.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아 경북 경주시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되고 있다. ‘천년 왕국 신라’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전시, 공연, 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21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단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우리 예술문화를 소개하는 무대다.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해 한반도 천문학의 상징인 첨성대는 밤마다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다. 국가유산청은 20일부터 첨성대 외벽에 신라의 문화유산을 담아낸 미디어아트 영상 ‘별의 시간’과 ‘황금의 나라’ 상영을 시작했다.경주 최고의 야경 명소로 꼽히는 ‘동궁과 월지’도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유산청 관계자는 “신라시대 왕자들이 머물던 별궁 자리로,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던 장소라 APEC이 지닌 의의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연못인 월지 수면과 전각을 비추는 경관 조명은 신라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2018년 복원된 길이 66m의 월정교에선 29일 오후 6시 30분 ‘한복의 멋’을 알리는 한복 패션쇼도 펼쳐진다. 경북도는 “각국 정상들의 숙소가 모여 있는 보문관광단지도 야간경관 개선사업에 150억 원을 들여 볼거리를 조성했다”고 전했다.문화체육관광부는 APEC을 기념해 한국 공예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전시 ‘미래유산-우리가 남기고자 하는 것들에 관하여’를 27일 보문단지 내 천군복합문화공간에서 개막했다. 36명(31팀)의 작가가 한국 공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 66점을 선보인다. 파트 1∼3으로 나눠 전통 기술과 현대 디자인·미술의 협업 등을 소개한다.공연예술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31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선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단심(單沈)’이 무대에 오른다. 고전 설화 ‘심청’을 바탕으로 한 단심은 심청의 내면을 발광다이오드(LED)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23일부터 경주 곳곳에서 ‘서라벌 풍류’를 통해 전통공연예술을 알리고 있다. 재단은 “31개 단체, 국악인 700여 명이 신라 화랑의 기상을 음악, 춤 등에 녹여냈다”고 밝혔다.현대미술 전시로는 보문단지 힐튼호텔 옆에 있는 우양미술관의 ‘백남준: Humanity in the Circuits’전이 눈길을 끈다. 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작품 12점이 수십 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세계적인 작가인 백남준은 텔레비전 등 새로운 미디어가 일상을 점령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 새로운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예술로 보여줬다. 미술관 측은 “2025 APEC의 주제인 ‘연결, 혁신, 번영’의 키워드와 맞닿아 있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경주솔거미술관에선 신라 문화를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신라한향’전이, 플레이스C에선 APEC 부대 행사로 마련된 ‘판타스틱 오디너리’전이 열린다. 28일 개막한 ‘판타스틱 오디너리’전은 김수자, 하종현 등 한국 작가 10인의 작품 34점을 선보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14년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의 자녀들이 13년 만에 부활한 대학가요제 무대에 올라 아버지의 대표곡인 ‘그대에게’를 불렀다(사진). 26일 방송된 MBC ‘2025 대학가요제’ 특별 무대에 오른 고인의 딸 신하연 씨(19)와 아들 신동원 군(17)은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이기도 한 ‘그대에게’를 불렀다. 신 군은 이날 “벌써 아버지 기일이 10번 넘게 지나갔는데 아직까지 기억해주시고 챙겨주는 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신 씨도 “제 기억 속에 아빠 팬분들은 우는 모습으로 많이 남아 있다”며 “오늘 무대를 웃으면서 즐겨주셨다면 기쁠 것 같다. 이제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어두운 밤 형형색색으로 물든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부터 다채로운 문화유산과 미술품 전시까지.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아 경북 경주시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되고 있다. ‘천년 왕국 신라’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전시, 공연, 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21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단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우리 예술문화를 소개하는 무대다.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해 한반도 천문학의 상징인 첨성대는 밤마다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다. 국가유산청은 첨성대 외벽에 신라의 문화유산을 담아낸 미디어아트 영상 ‘별의 시간’과 ‘황금의 나라’ 상영을 시작했다.경주 최고의 야경 명소로 꼽히는 ‘동궁과 월지’도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유산청 관계자는 “신라시대 왕자들이 머물던 별궁 자리로,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던 장소라 APEC이 지닌 의의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연못인 월지 수면과 전각을 비추는 경관 조명은 신라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2018년 복원된 길이 66m의 월정교에선 29일 오후 6시 30분 ‘한복의 멋’을 알리는 한복 패션쇼도 펼쳐진다. 경북도는 “각국 정상들의 숙소가 모인 보문관광단지도 야간경관 개선사업에 150억 원을 들여 볼거리를 조성했다”고 전했다.국가유산청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3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를 연다.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신라 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쪽샘 44호분을 다시 쌓는 실험을 하고 있다. 현재는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2중의 덧널 일부를 만들고, 주변으로 돌을 쌓는 중이다. 연구소는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학예연구사 등의 해설을 들으며 축조 실험도 직접 볼 수 있다”고 했다.공연예술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3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선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단심(單沈)’이 무대에 오른다. 고전 설화 ‘심청’을 바탕으로 한 단심은 심청의 내면을 발광다이오드(LED)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23일부터 경주 곳곳에서 ‘서라벌 풍류’를 통해 전통공연예술을 알리고 있다. 재단은 “31개 단체, 국악인 700여 명이 신라 화랑의 기상을 음악, 춤 등에 녹여냈다”고 밝혔다.현대미술 전시로는 보문단지 힐튼호텔 옆에 있는 우양미술관의 ‘백남준: Humanity in the Circuits’ 전이 눈길을 끈다. 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작품 12점이 수십 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세계적인 작가인 백남준은 텔레비전 등 새로운 미디어가 일상을 점령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 새로운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예술로 보여줬다. 미술관 측은 “2025 APEC의 주제인 ‘연결 혁신 번영’의 키워드와 맞닿아 있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경주솔거미술관에선 신라 문화를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신라한향’전이, 플레이스C에선 APEC 부대 행사로 마련된 ‘판타스틱 오디너리’전이 열린다. 28일 개막한 ‘판타스틱 오디너리’ 전은 김수자 하종현 등 한국 작가 10인의 작품 34점을 선보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극장가에 자주 들리는 유행어가 하나 있다. ‘귀주톱.’ 최근 일본 소년만화 삼대장이라 불리는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 ‘체인소(전기톱) 맨’의 앞글자를 따 만든 신조어다. 이 세 작품은 올해 영화로도 선보이며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종이만화부터 시작된 압도적 팬덤이 극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흥행 성적만 봐도, 올가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공세가 엄청나다. 우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전체 흥행 2위를 달리고 있다. 26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51만 명으로, 1위 ‘좀비딸’(563만 명)마저 넘어설 기세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도 반응이 뜨겁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인 데다, 영화 주제가 ‘아이리스 아웃’은 국내 음원 플랫폼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6일 개봉한 ‘극장판 주술회전: 회옥·옥절’은 두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주목도가 높다. TV 애니메이션 2기 ‘회옥·옥절’ 에피소드를 극장판으로 재구성한 건데도 17만 명이 관람했다. 12월엔 후속편인 ‘극장판 주술회전: 시부야사변Ⅹ사멸회유’도 팬들을 찾아온다.‘귀주톱’의 인기는 한때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소년만화의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소년만화 삼대장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원나블’(원피스·나루토·블리치)이었다. 하지만 나루토와 블리치가 2010년대 완결되며 소년만화 애니메이션 붐도 살짝 주춤했다. 그 공백을 메운 건 주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거나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1위인 ‘스즈메의 문단속’(2023년) 같은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올해 ‘귀주톱’이 전통적인 소년만화 세계관을 부활시켰단 평가를 받고 있다.‘귀주톱’이 ‘원나블’ 등 이전 소년만화와 다른 점은 뭘까. 전문가들은 감각적 쾌감에 초점을 맞춘다는 걸 특징으로 꼽는다.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등 과거 애니메이션이 메시지 전달에 다소 집중했다면, 지금은 화려한 작화와 빠른 연출로 즉각적 반응을 유도한다. 유진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는 “영상미와 사운드 등에 특화된 제작 스킬이 현 세대의 소비 감각과 맞아떨어진다”며 “실사 영화 이상의 쾌감을 주는 작품들이라 영화관에서도 선택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신자(이민자). 그의 인생은 자신의 딸을 구해준 청년 택(이택균)을 만나면서 요동친다. 사랑에 모든 걸 건 신자는 심지어 택과의 동거를 위해 딸을 남의 집에 맡긴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택의 옛 연인이 돌아오면서, 택은 신자를 떠나게 되는데….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이 영화로 시작해 이 영화로 끝이 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1923∼2017)이 남긴 단 한 편의 작품, ‘미망인’이다.박 감독의 촬영 현장은 투혼 그 자체였다고 한다. 때는 1955년. 그는 한 살배기 딸을 등에 업은 채 한 손엔 장비를, 다른 손엔 기저귀 가방을 들고 현장을 지휘했다. 제작비가 모자라 아침마다 손수 장을 봐와 스태프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 애초에 언니에게 돈을 빌려 시작한 작업인지라 제작사 이름도 ‘자매영화사’였다. 주연으로는 개인적으로 친했던 배우 이민자를 앞세웠고, 스태프들 역시 지인들로 꾸렸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들어낸 ‘미망인’은 그해 4월 서울 중구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다. 다행히 개봉 전부터 평단의 반응은 준수했다. 1955년 2월 27일, 동아일보는 이렇게 소개했다.“여성감독이 아니면 착안하기 어려운 앵글의 각도와 사건의 템포, 리듬의 명쾌, 화면과 동작(연기) 등에 생활감정을 예리하게 융화하여 퍽 친근감을 자아냈다.”(기사 ‘미망인 여감독 박남옥 작’에서)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개봉 나흘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박 감독은 가정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았다. 결국 홀로 딸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 갔다. 이후로도 영화잡지 ‘씨네마팬’을 만드는 등 영화의 꿈을 놓지 않았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한 여성에게 당시 시대는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미망인’은 박남옥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됐다. 이 영화가 다시 주목받기까진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걸렸다.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첫해를 맞아 ‘미망인’을 개막작으로 재상영했다. 영화제 측은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돼 있던 ‘미망인’ 필름을 복원해 상영했다. 해당 필름은 1986년 국립영화제작소로부터 결말 일부가 유실된 상태로 기증된 것이어서, 복원본 역시 완전한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았다.이번 전시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바로 이 “잃어버린 결말”에서 시작됐다. 김태양, 손구용, 이미랑, 이종수 등 3040세대 감독 4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미망인’의 유실된 부분을 상상하는 등 뒷이야기 4편을 제작했다. 전시기획자인 문주화 영화평론가는 “영화 ‘미망인’은 한국 최초 여성 감독이란 봉인된 문을 열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며 “70년이라는 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박 감독님이 남긴 유작에 기대어 새로운 이야기를 덧대어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당시 신문 기사와 2017년 출간된 박 감독 자서전 등에 따르면 원작의 결말은 이렇다. 주인공 신자는 택에게 복수한 뒤 딸과 새 삶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이미랑 감독의 ‘미망인: 다시 맺음’에서 신자는 복수를 하지도, 딸을 데리고 떠나지도 않는다. 대신 모든 관계를 뒤로한 채 홀로 새출발하는 신여성으로 재해석한다. 반면 이종수 감독은 ‘이신자(異晨者)’에서 신자가 대장간에 들러 칼을 고르는 장면을 덧붙였다. 복수를 향한 신자의 내적 갈등에 집중한 것. 이들 작품은 조만간 여러 영화제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26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콘셉트는 ‘조금 이상한 영화’, 캐치프레이즈는 ‘은은하게 돌아 있자’.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이런 슬로건을 갖고 시작됐다.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성현 감독(45)은 “블랙코미디는 ‘진짜 선수들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되는, 감독으로선 꿈의 장르”라며 “겁이 나서 계속 못 하다가 이제야 시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굿뉴스’는 경쾌한 편집과 감각적인 화면 구성이라는 ‘변성현표 연출’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1970년 일본 적군파가 일본항공(JAL)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한 ‘요도호 사건’을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는 비행기 안 공포에 집중하지 않는다. 사건을 수습하려는 정보기관과 군 내부의 혼선, 납치범들의 엉뚱한 행동 등에 집중하며 독특한 유머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연출은 변 감독이 전작 ‘킹메이커’를 만든 뒤 후회가 남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근에 ‘킹메이커’를 다시 봤다는 그는 “좀 부끄러웠다”며 “너무 ‘내 생각을 알아줘!’ 하고 관객들에게 강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이번에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또 가볍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진지할 것 같으면 중반에 삐끗하자는 심정으로요. 이번 영화가 끝나고 한 가지 만족하는 게 있다면 ‘킹메이커’ 때의 실수를 만회한 것입니다.” 주연을 맡은 설경구 배우와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년), ‘킹메이커’(2022년), ‘길복순’(2023년)에 이어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농담을 섞어 변 감독을 “나의 영화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설 배우에 대해 그는 “경구 선배에게 영화의 아버지는 이창동 감독님이고, 저는 작은삼촌 정도가 아닐까”라며 “‘불한당’의 결과값이 신뢰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허무함이나 후회를 남겼다는 전작들과 달리, ‘굿뉴스’를 찍곤 해방감을 느꼈다는 변 감독. 그는 “이번 작품이 ‘나의 대표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설 배우도 그에게 “네 영화 중 제일 재밌다”며 웃었다고.“경구 선배는 ‘불한당’을 처음 보시고는 ‘이게 상업영화야?’라고 했어요. ‘킹메이커’ 때는 ‘좋네? 근데 흥행은 안 될 것 같아’라고 했고, ‘길복순’을 보시고는 ‘변성현은 B급 감독’이라고 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답을 해줬어요. 너무 기뻤습니다.” 변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안 해본 장르를 할 것 같다”며 “제 스타일대로 비튼 스릴러나 멜로가 아닐까”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중국 원나라 때 중봉명본(中峰明本)이라는 한 선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제자가 많았는데, 제자들이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물을 때마다 선사는 “법당의 먼지를 닦으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에선 오래전부터 청소를 깨달음에 이르는 길 중 하나로 여겨왔다. 책은 일본 주지 스님인 저자가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진정한 풍요로움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한 기록이다. 저자는 “흐려진 마음을 닦아 반짝반짝 빛낸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하자”며 “청소란 더러움을 털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권한다. 책에는 실제 청소할 때 적용할 4개의 방법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거론한 ‘수행 청소법’은 일부러 애쓰지 않고, 순간순간 눈앞의 일에 전념하는 청소법이다. 저자는 하나하나 자신의 몸으로 확인하고 경험해 가는 게 ‘수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면 몸을 사용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고작 청소라도 한결같이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반드시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가장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는 ‘리셋 청소법’이 있다. 불교 수행승에게는 다다미 한 장 분량의 공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수행승은 이곳에서 좌선(坐禪), 식사, 수면을 모두 진행한다. 일반인이 보면 불편하게 느껴지겠지만 얼마 지나면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불필요한 게 없으니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이름 그대로인 ‘아침 청소법’과 ‘습관 청소법’ 등도 참고할 만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니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에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골든(Golden)’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이재(EJAE·34)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2개월 전만 해도 그냥 작곡가였는데, 갑자기 (가수로도) 사랑해 주시니 낯설고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가 참여한 곡 ‘골든’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각각 8주간 1위에 올랐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케데헌’ 곡 작업에 참여한 소감에 대해 “이제는 세계적으로 K팝뿐만 아니라 ‘K’의 모든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며 “한국 사람으로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재는 ‘골든’을 만들며 특히 중시했던 점이 있다고 한다. “후렴구에 한국어 가사를 넣는 것”이었다. 그는 “케데헌 노래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며 “미국 싱얼롱 상영에 갔더니 현지인들이 ‘영원히 깨질 수 없는’이란 후렴구를 한국어로 그대로 따라 불렀다. 너무 뿌듯했다”고 전했다. 배우인 신영균 전 국회의원의 외손녀인 그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당시엔 데뷔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재는 “성장하려면 당연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며 “그때 많이 거절당했던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어요. 더 중요한 건 성장이죠. 떨어지면 ‘오케이, 또 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 중요했어요. 그 마음으로 계속했고, 음악이 절 살렸어요. 가수를 꿈꿨지만 작곡가나 엔지니어도 있잖아요. 그때 저는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2시간씩요.” 이재는 케데헌 OST를 계기로 글로벌 음악 시장에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애니메이션 ‘케데헌’과 수록곡 ‘골든’은 벌써부터 내년 미 아카데미상과 그래미 어워즈의 강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솔직히 너무나 받고 싶다”며 “(받으면) 그냥 기절이다. 계속 울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 이재라는 아티스트가 걸어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계속 작곡가로서 성장하고 싶고, K팝과 미국 팝을 연결하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K팝 그룹으로 ‘에스파’와 ‘방탄소년단(BTS)’을 꼽았다. “에스파는 제가 추구하는 곡들의 느낌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BTS는 함께할 수만 있다면 너무 영광일 거예요. 특히 제가 작업한 곡에 정국 님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달부터 유튜브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35초 분량의 영상이 있다. 15일 기준 조회수 770만 회를 넘은 이 영상 제목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실사 영화 촬영 현장 유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와 닮은 배우들이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 앞에서 촬영하는 내용이었다. 스태프들이 배우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촬영 방향을 논의하는 장면까지 더해져 영락없는 비하인드 영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영상은 실제 촬영물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가상 콘텐츠였다. 이에 “이질감이 안 느껴져서 실제 배우들 같다”, “실제 배우 말고 AI로 실사영화 만드는 게 더 좋겠다”, “표정 몸짓 모두 완벽해서 소름끼친다”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AI 배우, 인간을 대체할까 영상 산업에서 AI의 활용은 활발해진 지 오래. 하지만 조만간 배우마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찬성하는 측은 스타의 출연료를 줄일 수 있고 다양한 연령대와 상황 속 인물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어 제작비 절감과 효율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 배우가 구현해 내는 창작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5일 CGV 단독 개봉한 강윤성 감독의 액션 블록버스터 ‘중간계’는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내용은 이승과 저승 사이인 중간계에 갇힌 이들을 저승사자가 추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변요한 등 실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사천왕과 같은 크리처는 물론 인간 캐릭터의 일부 표정 및 액션신도 AI로 제작됐다. 물론 업계에선 ‘AI 배우’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강 감독도 AI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선 배우를 AI가 대체할 수 없다”며 “인간은 같은 대사를 해도 매번 다르게 감정을 담아내는데, 그건 기계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최근 성우 쪽에서도 AI 논란이 벌어졌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에 흘러나오는 강희선 성우의 목소리를 AI로 대체하려 하자,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등이 “실연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며 크게 반발했다. 배우의 AI 대체 논란은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셈이다.● “AI, 현실 배우 일자리 뺏는다” 하지만 AI 배우의 본격적인 등장은 그리 머지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023년 드라마 ‘카지노’의 디에이징(De-aging·배우 얼굴을 젊은 시절로 복원한 시각효과 기술)이나 한 드라마에서 고(故) 송해 선생을 화면에 구현한 것처럼 AI의 활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표정과 동선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관객을 견인할 일부 톱스타를 제외하곤 대체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보수적인 방송계보다 유튜브 등 개인 창작자들이 먼저 이런 변화를 이끌 것 같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AI 배우 ‘틸리 노우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갈색 머리에 영국식 억양을 사용하는 노우드는 올 5월부터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고 가상의 일상을 공유해 왔다. 지난달 스위스 취리히 영화제 부대행사에선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식 소개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즉각 성명을 내고 “AI 배우는 현실 배우들의 연기를 훔쳐 그들을 일자리에서 몰아낸다”며 “이는 공연자의 생계를 위협하며 인간의 예술성을 평가절하하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반발했다. 반면 노우드를 만든 네덜란드 배우 엘리너 판 데르 펠던은 “AI 캐릭터가 실제 배우와 비교 대상이 되기보단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니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 뿐이에요.”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이재(EJAE·34)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물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2개월 전만 해도 그냥 작곡가였는데, 갑자기 (가수로도) 사랑해주시니 낯설고 신기하다”며 웃었다.그가 참여한 곡 ‘골든’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각각 8주간 1위에 올랐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케데헌’ 곡 작업에 참여한 소감에 대해 “이제는 세계적으로 K팝뿐만 아니라 ‘K’의 모든 것이 널리 알려져있다”며 “한국 사람으로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이재는 ‘골든’을 만들며 특히 중시했던 점이 있다고 한다. “후렴구에 한국어 가사를 넣는 것”이었다. 그는 “케데헌 노래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며 “미국 싱어롱 상영에 갔더니 현지인들이 ‘영원히 가질 수 없는’이라는 한글 후렴구를 한국어로 그대로 따라 불렀다. 너무 뿌듯했다”고 전했다.배우인 신영균 전 국회의원의 외손녀인 그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당시엔 데뷔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재는 “성장하려면 당연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며 “그때 많이 거절 당했던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어요. 더 중요한 건 성장이죠. 떨어지면 ‘오케이, 또 하면 되지’하는 마음이 중요했어요. 그 마음으로 계속했고, 음악이 절 살렸어요. 가수를 꿈꿨지만 작곡가나 엔지니어도 있잖아요. 그때 저는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2시간씩이요.”이재는 케데헌 OST를 계기로 글로벌 음악 시장에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애니메이션 ‘케데헌’과 수록곡 ‘골든’은 벌써부터 내년 미 아카데미상과 그래미 어워즈의 강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솔직히 너무나 받고 싶다”며 “(받으면) 그냥 기절이다. 계속 울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 이재라는 아티스트가 걸어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계속 작곡가로서 성장하고 싶고, K팝과 미국 팝을 연결하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K팝 그룹으로 ‘에스파’와 ‘방탄소년단(BTS)’를 꼽았다. “에스파는 제가 추구하는 곡들의 느낌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BTS는 함께할 수만 있다면 너무 영광일 거예요. 특히 제가 작업한 곡에 정국 님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저의 세 가지 소원은요. 첫 번째, 저를 포함해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기. 두 번째, 저를 포함해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이 100세까지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경제적 부를 갖기. 그리고 세 번째는….”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우빈(36·사진)은 소원 세 가지를 말하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1000여 년 만에 인간 세계로 돌아온 램프의 정령 지니를 연기한 김 배우는 “세 번째는 아껴두겠다”며 웃어 보였다. 이번 작품은 ‘미스터 션샤인’ ‘더 글로리’ 등을 쓴 김은숙 작가의 로맨스코미디 복귀작으로 공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내용 등이 다소 산만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김 배우는 이에 대해 “워낙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그런) 의견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며 “어떤 반응이든 드라마를 봐주시고 진심으로 대해주신 만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드라마로 데뷔한 그는 김 작가의 2012년 ‘신사의 품격’, 2013년 ‘상속자들’ 등을 찍으며 톱스타로 성장했다. ‘상속자들’ 이후 12년 만에 김 작가와 재회한 김 배우는 “작가님의 유머를 좋아한다”며 “이번 작품은 찍어나가는 게 아까울 만큼 좋았다”고 했다.“촬영 분량이 많으면 ‘이거 언제 다 찍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한 신 한 신 아껴 찍는 마음이 들었어요. 작가님도 오랜 시간 저를 봐오셨기 때문에 캐릭터를 상상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로서는 맞춤 대본을 받은 것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가상의 캐릭터 ‘지니’를 연기한 만큼 배우로서 고민도 컸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보니 외형, 의상, 말투, 리액션 모두 전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체형도 키워 인간 같지 않은 느낌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엔 김 작가의 전작인 ‘더 글로리’의 문동은, ‘상속자들’의 최영도 등을 패러디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에 대해선 “김은숙 작가님만 쓸 수 있는 신이라 생각했다”며 “문동은 신은 중간에 작가님이 없애셨는데 제가 전화를 드려 다시 촬영할 수 있었다”는 비하인드를 전했다. 어느덧 14년 차 배우가 된 김 배우는 “이제 현장에서 감독님들 빼고는 웬만하면 다 동생들”이라며 웃었다. “더 모범을 보여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있어서 막내일 때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달라진 게 없죠.”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어머니다. 현대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흑인 남성으로서 겪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서사의 큰 줄기는 어머니와의 관계다. 저자와 어머니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였다. 그리고 이런 뒤엉킨 감정선은 저자의 ‘몸’을 통해 구체화된다. 어머니는 저자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속삭이면서도, 말대꾸를 하거나 성적이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로 온몸을 때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저자의 기억에 오래 남았던 건 어머니가 저자의 옷을 모두 벗기고, 침대에 엎드리게 한 날이었다.“당신은 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침대에 파묻게 했습니다. 매 맞는 건 물론 아팠지만, 아홉 살짜리의 벌거벗은 뚱뚱하고 검은 몸을 보면서도 그토록 세게 나를 때릴 수 있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훨씬 더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 상처와 결핍은 ‘헤비(Heavy)’라는 책 제목처럼 다시 ‘몸’의 무게로도 증명된다. 저자는 평생을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며 음식을 탐했다.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아질 때마다 부엌으로 가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특히 자신을 사랑해 줬던 할머니의 땅콩버터와 배잼을 비웠다. 키가 175cm인 저자는 한때 131kg까지 몸이 불어났다. 그런 저자는 스스로를 보며 “살찐 쓰레기 같다”고 여겼다. 탈진할 때까지 달리면서 살을 빼는 데 강박적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자기혐오로 몸을 벌하고, 흑인 남성의 신체를 위협적이라 보는 사회적 시선이 싫어 더 굶었다. 저자는 “체중계의 숫자를 통제하는 일은 사랑을 느끼거나 돈을 버는 일보다도 내 몸을 덜 역겹게 느껴지게 했다”고 했다. 숨김없이 상처를 드러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고백의 무게가 지닌 힘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2018년 첫 출간 뒤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최고상인 ‘앤드루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현재 세상의 상태를 생각하면 매우 슬프고, 그것은 글쓰기의 가장 깊은 영감이 됩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사진)는 9일(현지 시간) 노벨상 공식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영감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쓴맛(bitter)”이라며 “너무나 어두운 시기이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이 쓴맛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들의 문학에도 영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첫 수상 소감으로 “이건 그야말로 재앙 이상 이상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969년 사뮈엘 베케트(1906∼1989)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후 첫마디로 뱉은 “재앙이군”에서 따온 말이었다. 그는 “정말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며 “위대한 작가들과 시인들이 속한 그 계보에 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을 어떻게 축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수상 사실이 제대로 실감 나지 않아 별달리 달라질 게 없다”며 “아마 친구들과 와인이나 샴페인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감사하다”며 “책을 읽고, 즐기고, 풍요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이 지구에서 우리가 맞이한 매우 힘든 시기를 살아남게 해주는 더 큰 힘을 준다”고 말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수상 소식에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도 주목받고 있다. 전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부터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가 교보문고, 예스24 실시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대표작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세계는 계속된다’(2013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도 10일 기준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알라딘에 따르면 수상 전 한 달간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국내 번역서 판매량은 약 40부 수준이었으나 수상 이후 약 1800부로 느는 등 45배 증가했다. 국내에 미출간됐던 최근작 ‘헤르슈트 07769’도 내년 중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 2021년 출간된 이 작품은 우울감에 휩싸여 사는 주인공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과학적 발견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쓰는 동안 힘들기도 했고… 많은 걸 배운 작품이었어요.”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북극성’의 정서경 작가와 김희원 감독은 작품을 마친 소감에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이 작품은 영화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을 집필했던 정 작가와 드라마 ‘빈센조’를 연출했던 김 감독에게 “여러모로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북극성’은 “파워풀한 여성과 그를 지키는 남성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김 감독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정 작가가 “장르물이지만 멜로로도 풀고 싶었다”고 다시 의견을 냈다. 이에 문주 역은 배우 전지현, 산호 역은 강동원이 맡으며 ‘대작’으로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막상 작품이 공개되자 다소 아쉽다는 평이 적지 않았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거나 암살 사건의 증거가 드러나는 과정 등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작가는 이에 대해 “아직 드라마 작가로서의 ‘전환’이 덜 이뤄진 것 같다”며 “영화에 익숙하다 보니 사건의 길이가 2, 3시간에 맞춰져 있다”고 자평했다. 다만 “이전에도 그리 개연성 있는 작품을 써오진 않았다”며 “저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면 흥미를 못 느끼는 작가 같기도 하다”고도 했다. 두 사람이 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추구한 건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그려 보겠다’는 것이었다. 정 작가는 “전통적 의미에서 여성 주인공이 맡았던 역할과는 반대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여성인 문주에, 따뜻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남성인 산호에 뒀다”고 했다. 김 감독도 “남성 먼치킨물(압도적인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사)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여성 캐릭터로 도전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작은 아씨들’(2022년)과 이번 ‘북극성’에 이어 차기작인 드라마 ‘형사 박미옥’도 함께 할 예정이다.“영화에서 드라마로 넘어오면서 죽고 사는 것 같은 (치열한) 현장을 보게 됐어요. 암벽 등반할 때 서로를 의지하는 종류의 유대감이 생긴 것 같아요.”(정 작가)“우리는 좋았는데 대중의 반응이 다를 때도 있었고, 못 해본 도전들도 있었어요. 세 번째 작품을 할 때는 아쉬웠던 부분을 다시 정립해 보려고 해요.”(김 감독)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쓰는 동안 힘들기도 했고… 많은 걸 배운 작품이었어요.”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북극성’의 정서경 작가와 김희원 감독은 작품을 마친 소감에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이 작품은 영화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을 집필했던 정 작가와 드라마 ‘빈센조’를 연출했던 김 감독에게 “여러모로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북극성’은 “파워풀한 여성과 그를 지키는 남성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김 감독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정 작가가 “장르물이지만 멜로로도 풀고 싶었다”고 다시 의견을 냈다. 이에 문주 역은 배우 전지현, 산호 역은 강동원이 맡으며 ‘대작’으로 기대감을 모았다.하지만 막상 작품이 공개되자 다소 아쉽다는 평이 적지 않았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거나 암살 사건의 증거가 드러나는 과정 등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작가는 이에 대해 “아직 드라마 작가로서의 ‘전환’이 덜 이뤄진 것 같다”며 “영화에 익숙하다 보니 사건의 길이가 2~3시간에 맞춰져있다”고 자평했다. 다만 “이전에도 그리 개연성 있는 작품을 써오진 않았다”며 “저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면 흥미를 못 느끼는 작가 같기도 하다”고도 했다.두 사람이 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추구한 건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그려보겠다’는 것이었다. 정 작가는 “전통적 의미에서 여성 주인공이 맡았던 역할과는 반대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여성인 문주에, 따뜻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남성인 산호에 뒀다”고 했다. 김 감독도 “남성 먼치킨물(압도적인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사)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여성 캐릭터로 도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이러한 문제의식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작은 아씨들’(2022년)과 이번 ‘북극성’에 이어 차기작인 드라마 ‘형사 박미옥’도 함께 할 예정이다.“영화에서 드라마로 넘어오면서 죽고 사는 것 같은 (치열한) 현장을 보게 됐어요. 암벽 등반할 때 서로를 의지하는 종류의 유대감이 생긴 것 같아요.”(정 작가)“우리는 좋았는데 대중의 반응이 다를 때도 있었고, 못해 본 도전들도 있었어요. 세 번째 작품을 할 때는 아쉬웠던 부분을 다시 정립해보려고 해요.”(김 감독)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무대에서 죽는 것. 그게 로망이죠. 노래하다 죽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제 꿈이죠.” 추석 당일인 6일 한가위 특집으로 방송된 ‘가왕’ 조용필(75)의 콘서트 실황이 연휴 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오후 KBS 2TV에서 방영된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에서 선보인 70대 중반에 이른 거장의 탄탄한 라이브 실력에 “역시 조용필” “추석 최고의 선물”이란 시청자 호평이 쏟아졌다. 이날 방송은 조용필이 지난달 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최한 콘서트를 녹화해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관객 1만8000여 명이 모인 콘서트에서 그는 3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온 밴드 ‘위대한 탄생’의 연주와 함께 2시간 반 동안 ‘고추잠자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운스’ 등 28곡을 선보였다. 조용필의 열창도 뜨거웠지만, 1993년부터 호흡을 맞춰 온 기타리스트 최희선(64)과 베이시스트 이태윤(61)의 농익은 연주도 눈길을 끌었다. 8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그날의 기록’에 따르면 조용필은 공연을 앞두고 귀울림과 구강건조증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연습 때조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이태윤도 “연습을 실전처럼 하는 가수는 조용필 외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용필은 이번 콘서트에 대해 “지금이 아니면 여러분들을 뵐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며 “목소리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 그전에 빨리 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변함없는 가창력의 비결로는 ‘꾸준한 연습’을 꼽았다.“목소리는 노래하지 않으면 늙기 때문에 단단하게 만들어 놓아야 해요. (그 방법은) 연습이죠.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정말 ‘빡시게’ 합니다. 음악밖에 아는 게 없어요, 제 일생에.” 조용필은 추석날 콘서트 방영에 대해 “가족들이 같이 노래하고 춤도 추는 건 저에게 크나큰 보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대로 이날 방송은 전국 평균 시청률 15.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당일 방송 중 1위를 차지했다. 가왕의 콘서트가 TV로 방영된 건 1997년 ‘빅쇼’ 이후 28년 만. 선배의 뜨거운 무대에 후배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가수 이승철은 “조용필은 하나의 장르”라 했으며, 신승훈은 “나도 할 수 있단 자신감을 주는 지표”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나의 영웅”이라 불렀으며, 아이유는 “전 세대가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가수”라고 존경을 표했다. 조용필은 이날 콘서트에 대해 “지금까지 오래 노래할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노래할 것이고, 하다가 안 되면 2, 3년 쉬었다가 나오고 안 되면 또 4, 5년 쉬었다가 나오겠다”며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제목처럼 이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으면 좋겠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