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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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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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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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票心 유혹하는 5人 5色 ‘이미지 정치’…대선후보 2차 토론 스타일 분석

    다음 달 ‘장미대선’을 앞두고 TV토론의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19일 KBS 1TV에서 방송된 ‘대선후보 초청 토론’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26.4%(닐슨코리아)로 첫 번째 TV토론(11.6%)보다 2배 이상으로 높아진 수치다. 특히 이번 대선은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아 TV토론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2시간 남짓 진행되는 TV토론은 5명의 주자가 나서 구체적인 정책 대결을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결국 각 후보가 표출한 ‘이미지’가 메시지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토론 내용을 떠나 후보의 패션이나 화법 등은 시청자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했을까? 정재우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와 이상철 성균관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영욱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 정연아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에게 각 후보(기호순)의 ‘스타일’ 분석을 들어봤다. ①문재인 후보=패션은 일단 합격점. 재킷과 셔츠, 넥타이가 단정하게 조화를 이뤘다. 1차 토론 때와 비슷한 톤을 유지해 안정적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다만 블루 셔츠는 젊어 보이긴 했으나 선명한 기운은 약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목사님’이란 촌평이 많이 나왔는데 그만큼 강렬함은 부족했다. 표정은 1차보다 훨씬 나아졌다. 앞선 토론의 ‘너털웃음’에서 벗어나 가벼운 미소를 유지해 편안했다. 다만 질문에 대답할 때 몇 차례 상대방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실수가 아쉬웠다. 타 후보의 공세가 몰려서인지 말을 고르는 시간이 길었던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신중한 점은 좋으나 맥이 빠지는 모양새. 그러나 토론이 진행될수록 차분하고 논점도 명확해졌다. ②홍준표 후보=관전평은 극과 극을 오갔다. ‘확실하게 집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의 극대화’와 ‘시청자에게 불쾌함마저 주는 매너 부족’으로 의견이 갈렸다. 일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한 듯한 패션은 메시지는 분명했으나 세련미는 떨어졌다. 붉은색 타이 역시 인상적이나 광택이 심해 화면에서 번져 보였다. 체형보다 재킷도, 셔츠도 커서 엉거주춤. 화법은 1차 때보다 여유가 생겼다. 노선을 확실하게 드러내 시청자로선 이해하기 쉬웠다. 다만 상사가 지시를 내리는 듯한 말투는 여전했다. 게다가 상대 후보를 손가락질하는 습관은 매우 위험하다. 카메라 각도상 시청자를 향한 손가락질로 보일 때도 있다. 물을 마신 뒤 무의식적으로 ‘캬’ 소리를 내는 건 너무 ‘아재’스럽다. ③안철수 후보=패션은 무난했다. 좋은 점수를 주기도 나쁜 점수를 주기도 애매하다. 다소 화사해진 넥타이는 잘 선택했으나 여전히 재킷은 ‘빌려 입은 듯’ 헐렁하다. 여전히 목 단추를 풀고 있는데 정갈해 보이진 않는다. 표정은 확실히 좋아졌다. 경직되기보단 웃으려고 노력한 것도 좋다. 다만 초반에 구사한 ‘썰렁한 농담’은 득실이 공존했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측면은 있었지만 생뚱맞았다. 유머도 자연스러워야 효과가 배가된다. 진지하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경청하는 자세는 높이 살 만하다. 반면 너무 차분하려다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산만했던 전반부보단 전달력이 살아난 후반부가 나았다. ④유승민 후보=남성 후보 가운데 패션은 가장 나았다. 체형에 맞는 슈트에 넥타이 폭도 적절했다. 상대적으로 ‘젊고 해박한 전문가’ 이미지를 잘 구현했다. 다만 타이를 끝까지 올리지 않아 셔츠와 공간이 생긴 건 옥에 티. 화법도 적절했다. 왜 대통령 후보가 TV토론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뛰어났다. 동의하건 안 하건 타 후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건 좋은 자세다. 다만 자신이 지닌 콘텐츠를 얼마나 잘 전달했는가는 의문이 남는다. 너무 감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왠지 메마르고 딱딱한 분위기는 여전히 나아지질 않고 있다. ⑤심상정 후보=TV토론의 ‘최고 수혜자’라 할 만하다. 일단 패션부터 앞섰다. 진한 레드재킷과 목이 파인 아이보리 계열 라운드셔츠가 잘 어울렸다. 1차도 나쁘지 않았지만 더 깔끔해졌다. 다만 목 주위로 넓게 파인 셔츠가 살짝 허전해 보였다. 화법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이롱 맨’처럼 강력한 한방을 구사하면서도, 자칫 중구난방으로 흐르던 토론 분위기를 정리하는 사회자(?) 능력도 과시했다. 노동과 같은 무거운 이슈도 편안하게 전달하는 ‘3초 김고은’. 다만 지지율에서 열세다 보니 비전 제시보단 공세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정양환 ray@donga.com·김정은 기자}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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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오! 수지, 영화 한 방으로 뜬 만인의 첫사랑

    “그녀를 잊어 보려 하지만/비가 또 내려 모르는 이 맘/난 지금 비가 오면 떠올라/네가 더 내려오려는 이 밤.”(장범준 노래 ‘봄비’) 꼭 비가 와서만은 아닐 게다. 그곳에 가면 그 소절이 들리면 떠오르는 걸. 그게 그인지, 바라보는 나인지는 모르겠다. 뿌옇다가도 선명해지고 따스했다가 시려지니. 처음이라 맘에 남는 줄 알았더니, 이리 오래 남은 하나인 것을. 장기전세 시프트도 아니면서 좌심방우심실에 똬리를 튼 그 사람. 6∼9일 조사업체 엠브레인을 통해 남녀 1000명에게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 )는?’을 물어봤다. 이미 울컥한 요원들은 진작 자리를 비웠다. 그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첫눈 오는 날 그곳에서 만날래?”(영화 ‘건축학개론’) 영화 한 방이 무지 셌다. 2012년 약 412만 명을 모았던 영화 ‘건축학개론’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컸지만, 배우 수지를 단숨에 ‘국민 첫사랑’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껏 이어졌다. 응답자 26.3%가 첫사랑 국내 연예인으로 수지를 꼽았다. 2위 배용준(3.9%)과 큰 격차를 보인 수지는 성별과 세대를 아우르는 1위였다. 50대 이상 여성에서만 배용준(14.4%)이 수지(8.8%)를 앞섰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수지는 걸그룹 ‘미쓰에이’ 출신임에도 큰 일탈 없이 ‘건축학개론’ 이미지를 잘 유지해왔다”며 “시대적 배경이 1990년대라 위아래 어느 연령대도 받아들이기 편했던 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욘사마’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2002년 작품인 점을 감안하면 15년째 첫사랑 이미지를 이어온 셈이다. 영화 ‘클래식’ 등에서 청초한 매력을 발산했던 손예진은 모든 연령의 남성에게 고루 지지를 얻으며 3위에 올랐다. 4, 5위는 최근 신드롬이 반영됐다. 드라마 ‘도깨비’로 대박을 친 공유와 ‘응답하라 1988’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박보검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몰림이 심했던 국내에 비해, 해외 연예인은 경쟁이 치열했다. 3파전 양상을 띠었지만 결국 ‘80년대 책받침 소녀’ 소피 마르소(7.4%)가 1위를 차지했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피비 케이츠, 브룩 실즈, 다이앤 레인과 함께 지금은 40대 이상 중년이 된 소년들의 사춘기를 지배하던 브로마이드 4대 천왕”이라며 “특히 소피 마르소는 첫사랑 이미지가 강해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2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6.4%)는 여성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다. 남성은 딱 1표뿐이었다. 영화 ‘해리 포터’의 헤르미온느인 에마 왓슨(6.0%)은 20대 남녀에게 고른 표를 얻으며 3위에 올랐다. 이 밖에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 멕 라이언 등이 순위에 올랐다. ○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황순원 소설 ‘소나기’) 수지보다 압도적인 강자는 따로 있었다. 첫사랑 문학작품으로 1위에 오른 ‘소나기’는 53.6%로 과반수였다. 이번 설문이 보기 없이 ‘오픈형’으로 진행됐단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쏠림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물론 훌륭한 작품이나 다소 씁쓸한 결과”라며 “콘텐츠의 힘도 강했지만 획일적인 공교육의 영향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순위를 살펴봐도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피천득의 ‘인연’이나 알퐁스 도데의 ‘별’ 등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이 대다수다. 첫사랑 노래는 ‘청년 vs 중장년’ 구도가 확실했다. 40대 이상은 이문세의 ‘옛사랑’, 30대 이하는 버스커버스커의 ‘첫사랑’을 열렬히 응원했다. 1, 2위 차이는 겨우 0.1%포인트였다. 특히 두 뮤지션은 3위(벚꽃 엔딩)와 9위(광화문연가)에도 올라 당대를 대표하는 ‘첫사랑 노래꾼’들임을 증명했다. 드라마는 역대 최고 시청률(65.8%)을 찍었던 ‘첫사랑’이 비교적 손쉽게 1위에 올랐다. 이름 덕도 봤다는 게 중론. ‘영상의 마술사’라 불렸던 윤석호 PD의 ‘겨울연가’와 ‘가을동화’가 2, 3위에 올랐다. 영화는 역시 ‘건축학개론’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곽재용 감독 작품이 2편(‘클래식’ ‘엽기적인 그녀’)이나 톱10에 이름을 올렸다.(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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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알고 가면 몇 배 즐거운 ‘고꽃놀이’

    15일 채널A ‘사심충만 오!쾌남(오쾌남)’을 봤다. ‘본격 역사 예능’을 지향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찾아가 우리 역사를 배운다. 이날 3회에선 걸그룹 다이아의 채연 은채와 함께 봄꽃이 만발한 창경궁을 찾았다. 곱디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최근 본보에 실렸던 ‘울긋불긋 꽃대궐서 고꽃놀이’란 제목의 기사가 떠올랐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궁에서 ‘사진발’ 좋은 명당을 찾아 꽃놀이를 즐긴다는 내용이다. 궁마다 피는 꽃도 달라 미리 정보를 얻어 가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단다. 알아두면 좋은 팁이 또 하나 있다. 채널A 홈페이지에 가거나 한국관광공사의 ‘스마트 투어 가이드’란 앱을 내려받으면 오쾌남 출연자들이 재능 기부한 음성 정보를 제공받는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현장에서 연예인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니. 조만간 아이가 졸랐던 강화도에 가서 EXID 하니 혜린(1회 출연)에게 병인양요 신미양요 얘기나 들어봐야겠다. 근데 애는 고인돌 보고 싶다던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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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산돼 있는 미디어정책 부처 하나로 통합해야”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의 공적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현재 분산돼 있는 관련 부처를 차기 정부에서 하나로 통합해야 효과적인 미디어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이병규)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위원장 유성엽) 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및 정부 조직개편 방안’ 세미나에서 김동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미디어의 공공성과 산업적 발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정부조직 개편이 꼭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 원장은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미디어 정책 영역은 플랫폼의 공공성 강화와 콘텐츠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산업적 경쟁력에 강점을 지닌 ‘독임제(獨任制·하나의 행정관청에 그 권한을 일임하는 조직제도)’ 부처와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를 병존하는 시스템을 고려해봄 직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문화미디어부+시청각최고위원회’나 영국의 ‘문화부+오프콤’처럼 다수의 유럽 국가는 독임제 부처와 위원회를 함께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이미 신문 산업을 위해 정부 예산 혹은 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정착된 상태다. 프랑스의 경우 2015년 인쇄매체에 직간접적으로 국고를 지원한 규모가 3만7300만 유로(약 4522억 원)에 이른다. 이날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한 교문위의 유 위원장은 “미디어 산업을 담당하는 정부조직의 권한과 기능이 혼재돼 정책적 혼선이 많다”며 “신문과 방송·통신을 분리 운영하다 보니 매체의 균형 발전도 저해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조직개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국회의원들도 신문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며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된 관련 부처를 통합하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도 “언론진흥기금이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며 “통합 미디어 부처를 만들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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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꽃이 피면 생각나는 그사람… 끝내 못이룬 쓰라린 추억

    그래, 기어코 봄이 왔구나. 따스한 봄볕은 많은 걸 품고 있다. 희망도 추억도 망울망울 피어오른다. 에이전트2(정양환)도 오늘 따라 맘이 둥실둥실. 마침 주머니에서 퍼지는 ‘까똑’ 소리. 청명하고 발랄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문자 청첩장. 젠장, 봄은 나갈 돈도 한 소쿠리다. 근데 요 청첩장, 그냥 못 넘길 글귀가 있다. ‘어렵사리 결혼까지 이룬 첫사랑을 축복해 주시길….’ 뭐, 천(1000) 사랑이 아니고? 급하게 요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본인이 첫사랑이라 믿으면 그게 맞는 거지. 별 의미 있나?”(에이전트26·유원모) “아니지. 첫사랑은 첫눈을 홀로 밟는 거야. 소중하고 아련한.”(에이전트7·임희윤) 흐음. 첫사랑에 이리도 생각이 다를 줄이야.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0명에게도 질문을 퍼부어 봤다. 당신에게 첫사랑은 무엇이었느냐고. 그 시절은 우리에게 어떤 화인(火印)을 새겨 놓았을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이문세의 ‘광화문연가’) 먼저 간단한 수치부터 보자. 6∼9일 20대 이상 남녀 500명씩 모바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첫사랑 경험 연령은 ‘20∼23세’(34.4%)가 가장 많고, ‘17∼19세’(26.0%)가 그 뒤를 이었다. 첫사랑 대상은 ‘동갑내기나 친구’가 남성(62.8%)은 압도적인 반면, 여성은 46.2%로 ‘선배 등 연상’(45.0%)과 엇비슷했다. 그럼 첫사랑이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일까. 남녀 모두 ‘함께 갔던 장소를 다시 가게 됐을 때’(33.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남성은 ‘외롭고 쓸쓸할 때’(26.8%)도 적지 않았다. 또 ‘술에 취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를 고른 비율이 8.0%로 여성(3.8%)의 2배를 넘었다. 여성은 ‘현 애인(혹은 배우자)이 맘에 안 들 때’(12.4%)와 ‘거의 떠오른 적 없다’(13.2%)를 남성보다 훨씬 많이 선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은 위기 상황에서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첫사랑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은 공감을 중요시하는 사회화 과정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서적 이유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첫사랑에게 받거나 준 선물에 대한 기억도 남녀 차이가 뚜렷했다. 남성은 ‘초콜릿이나 사탕 등’(26.6%)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응답했고, ‘직접 만든 종이학이나 십자수 등’(15.6%)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반지나 목걸이 등 장신구’(19.0%)가 가장 많았다. 특히 종이학·십자수는 5번째(12.8%)로 낮은 순위였다.○ “Dreams are my reality”(영화 ‘라붐’ 주제곡 ‘리얼리티’) 첫사랑에 대한 오랜 속설도 궁금했다. 가장 대표적인 ‘첫사랑은 결국 헤어진다’는 과연 사실일까. 응답자들을 보면 이는 얼추 들어맞았다. 88.1%가 현재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첫사랑이 아니라고 밝혔다. 20대는 75.6%로 비교적 낮았지만 30대 이상은 모두 90%를 넘었다. 흥미로운 것은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가를 O×로 물었을 땐 59.1%가 ‘아니다. 이뤄질 수 있다’고 답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첫사랑은 가장 처음이 오래 기억되는 ‘초두효과(初頭效果)’를 지녀 오랫동안 마음에 품는다”며 “순수한 사랑만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대한 호감이 현실과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첫사랑과 헤어진 이유는 뭐라고 기억할까. 남녀 모두 ‘그땐 철이 없어서’(37.9%)가 1순위를 차지했다. 특이한 점은 여성은 ‘마음이 식어서’(20.2%)와 ‘사랑보다 중요한 게 많아서’(13.4%)가 상당히 많은 데 비해, 남성은 ‘상대가 일방적으로 떠나서’(14.0%)와 ‘내가 잘못해서’(5.0%)가 여성보다 높았다. 헤어진 상대를 다시 만나면 해 주고 싶은 말도 남녀 차이가 컸다. 남성은 ‘잘살라고 덕담을 전한다’(43.8%)가 많았지만, 여성은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피한다’(31.6%)가 더 많았다. 여성은 ‘모른 척 지나간다’(22.6%)도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남성은 ‘그때 미안했다고 사과한다’(9.0%)와 ‘다시 사귀자고 졸라 본다’(2.4%)가 여성보다 3배 정도 많았다. 어떤 식으로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자리 잡는 이유는 뭘까.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왜곡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실은 첫사랑보단 그 시절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가장 아름답게 떠올리는 것”이라며 “순수했던 시절의 음악이나 영화 심지어 정치 체제를 지금도 좋아하고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하편에서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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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독립 길 연 송진우 선생은 언론인의 귀감”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며 조국을 위해 몸 바쳤던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1890∼1945·사진) 선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민족 언론인으로 모든 이의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남시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정치가였던 고하 송진우 선생에 대한 ‘민족 언론인 동판 헌정식’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재단법인 서재필기념회(이사장 안병훈)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김병호)이 주최한 헌정식에는 유족 대표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비롯해 각계 인사 50여 명이 참석했다. 민족 언론인은 2011년부터 선정해 왔으며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를 필두로 이승만 박은식 배설 남궁억 양기탁 이종일 오세창 등이 선정됐다. 안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언론재단과 함께 민족 언론인 초상의 부조를 동판으로 만들어 한국프레스센터 ‘명예의 전당’에 모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민족지 동아일보를 지켰던 ‘민족의 거목’ 송진우 선생을 선정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올해 민족 언론인 선정위원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남 이사장은 “최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는 물론 언론이 엄청난 파동을 겪고 있다”며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을 지닌 고하 선생과 같은 훌륭한 분을 민족 언론인으로 선정하는 건 지금의 언론인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 대표인 송 회장은 고하의 민족 언론인 선정과 헌정식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고하는 일제강점기 암흑 시절에 동아일보를 짊어지고 당시 2000만 민중의 등불로 줄기찬 항일 독립의 길을 걸었다”며 “국제정세를 고루 살피며 국권 회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민족 지도자의 공적을 또 한번 되새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 김창식 이사장도 “고하 탄생 127주년을 맞는 올해 이런 큰 상이 주어져 기념사업회 일원으로 영광스럽다”며 “선생은 정부가 없던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가 민족을 이끄는 정부의 역할을 하도록 방향을 제시했던 분”이라고 했다. 고하는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을 지내며 국내외 각계 지도자와 제휴해 3·1운동을 계획했고 동아일보 사장을 세 차례 지냈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 위원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1945년 12월 극우 청년들에게 암살됐다. 정부는 1963년 고하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정양환 ray@donga.com·이지훈 기자}

    • 20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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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청자 우롱” vs “예능일 뿐”… 도마에 오른 ‘가상연애’ 방송

    ‘솔직하지 못했다. 시청자를 우롱했다’ vs ‘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정색할 게 아니다’. 4일 배우 이준기와 전혜빈이 사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 반응은 뜨거웠다.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은 언제나 세간의 관심사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평소 같은 축하보다 이준기의 처신(?)에 대한 비난과 옹호가 함께 쏟아졌다. 실상은 이렇다. 최근 이준기는 tvN 예능 ‘내 귀에 캔디2’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내 귀에…’는 남녀가 통화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블라인드 소개팅’ 같은 느낌으로 진행하는 형식. 여기서 이준기는 근사한 모습으로 상대역인 배우 박민영과 달달한 분위기를 자아내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현실에선 다른 연인이 있단 사실이 밝혀지며 ‘진정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결국 tvN은 두 배우의 촬영 뒷얘기가 담긴 ‘내 귀에…’ 스페셜 방송을 8일 내보내려다가 취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엇비슷한 형식의 연예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소동은 자주 되풀이되고 있다. ‘가상 결혼’을 보여주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제작진이 출연 예정자의 사생활을 검증하는 게 ‘필수 절차’가 됐을 정도. 일반 예능도 자유롭지 않다. 최근 배우 한채아, 조우종 전 아나운서는 연애·결혼 사실이 알려지자 그간 몇몇 토크쇼 등에서 ‘싱글인 척했다’고 지탄을 받기도 했다. tvN 관계자는 “솔직히 ‘내 귀에…’는 가상 연애라기보다는 진솔한 대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 이번 사태가 상당히 안타깝다”며 “어쨌든 시청자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앞으로 더욱 신중히 방송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논박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예능 중에서도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 주로 일어난다. 상당수 시청자가 느끼는 배신감은 “리얼(real·실제)이라고 해놓고선 왜 거짓으로 방송했느냐”이다. 하지만 이는 방송가에서 통용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 장르에서 리얼은 짜인 대본을 따르지 않고 일정 정도 틀만 갖추고 그 안에서 출연자가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연기한다’는 의미가 크다”며 “제작진이 추구하는 진정성과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진정성의 괴리가 이런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시청자 탓으로만 돌려선 곤란하다. 아무래도 이런 가상 연애는 ‘진짜인 듯 아닌 듯’ 경계가 흐릿해야 관심을 모으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시청자가 실제라고 착각하게 만든 장치나 상황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방송사다. 한 예능 PD는 “아무래도 이런 프로그램은 보는 이들의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실망감을 더 세게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며 “시청률 경쟁을 이유로 방송 안팎에서 더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는 반성해야 한다”고 털어놨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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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을 펴는 즐거움, 정보를 향한 설레임’

    한국신문협회(회장 이병규)는 제61회 신문의 날 표어 대상으로 ‘신문을 펴는 즐거움, 정보를 향한 설레임’(이종근·53)을 선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우수상은 ‘진실을 담아 독자 곁으로, 꿈을 담아 세상 속으로’(배오현·64)와 ‘신문은 국민을 읽고, 국민은 신문을 읽습니다’(조경희·61)가 뽑혔다. 올해 신문의 날 표어 응모엔 모두 2986건이 참가했다. 대상엔 상금 100만 원과 상패를, 우수상엔 상금 50만 원과 상패를 준다.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신문의 날 기념대회에서 시상식을 갖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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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 부추기는 인터넷 정보 ‘위험 수준’

    “100% 확실, 고통 없는 ‘자살 세트’를 판매합니다.” 지난달 3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일명 ‘자살 세트’를 판매한 브로커 송모 씨(55)와 이모 씨(38)를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질소가스와 신경안정제 등으로 구성된 이 세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길 바라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됐다. 한국이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가 3일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는 ‘자살 조장 정보’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 현황을 공개했는데, 올해 1분기(1∼3월)에만 317건이나 됐다. 지난해 1년 전체 시정 요구가 276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방심위에 따르면 자살 조장 정보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같이 가실 분 연락 주세요’처럼 함께 자살을 시도할 사람을 구하는 내용 △‘연탄으로 고통 없이 가는 방법’ 등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자살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내용이다. 최광호 법질서보호팀장은 “지난해부터 관련 심의를 강화해 왔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며 “자살 정보라도 신세 한탄 수준의 경미한 케이스는 제외했음에도 이만큼 많은 사례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문서 위조 정보’ 역시 매우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인터넷과 SNS에선 주민등록증을 비롯해 인감증명서나 통장, 대학성적증명서 등 각종 불법 서류 위조를 알선하는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관련 시정 요구는 1년 동안 1493건이었는데 올해는 1분기에만 1156건이 나왔다. 3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대비 77.4%에 이른다. 방심위는 “두 정보 모두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만큼 경찰청과 대한의사협회 등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구가인 채널A 기자}

    •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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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남성이 열심히 하면 “능력男”… 여성이 일 잘하면 “독하네”

    《“이런 개소리 좀 시키지 마요. 지원동기? 몰라서 물어요? 먹고살려고 지원했습니다!”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지금 눈에서 흐르는 건 땀일 뿐이야. 야근을 하다 컵라면을 먹던 에이전트26(유원모 기자)은 순간 체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니, TV에서 저렇게 내 맘을 후벼 파다니. 갑자기 업무만 냅다 떠안기고 팔랑팔랑 퇴근한 에이전트2(정양환 기자)의 뒤통수가 떠올라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TV, 직장인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한때 사극과 판타지로맨스밖에 없더니 ‘현실의 회사’가 무대인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졌다. ‘자체발광…’을 비롯해 KBS2 ‘김과장’, SBS ‘초인가족 2017’, KBS2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뭐, 100% 리얼하진 않아도 평범한 직장생활의 애환을 조명하려는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하다. 진짜 직장인 눈엔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특히 최근 드라마엔 ‘자체발광…’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이나 ‘아버지…’의 늦깎이 인턴 변미영(정소민), ‘김과장’ 경리부 대리 윤하경(남상미), ‘초인가족…’ 모태솔로 대리 안정민(박희본) 등 사회생활에 고단한 여성 캐릭터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40대 실제 여성 직장인에게 촌평을 부탁해 봤다. ▽신모 팀장(44·유통 회사)=‘김과장’ 보면 나희용 윤리경영실장(김재화)이 나와. 학교로 치면 엄한 학생주임이랄까. 살짝 뜨끔했어. 평소 팀원들 복장이나 근태에 엄격한 편이거든. 아, 나도 저리 얄미운 시누이로 보이겠구나 싶었지. ▽이모 대리(32·공기업)=굳이 따지면 안 대리랑 비슷해. 미혼인 데다 감정 기복 별로 없고. 근데 확실히 남성 직원들은 여성 동료의 연애나 결혼에 쉽게 한마디씩 해. 항의하면 ‘농담인데 왜 정색하나’ 하지. 어느 순간 한 귀로 흘리는 게 신상에 이롭단걸 깨달았지. ▽김모 사원(25·호텔)=‘자체발광…’ 보며 3년 전이 떠올랐어. 그땐 취직만 시켜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수 있었는데…. 근데 사람 참 간사하지. 지금은 이 일이 적성에 맞나 고민이 커. 입사 동기들도 만나면 이직, ‘취집’(취업 대신 시집) 얘기야. ▽신 팀장=tvN ‘미생’(2014년) 때문인가. 한국 드라마도 확실히 달라졌어. 옛날엔 회사를 무슨 연애집합소로 그렸잖아. 요즘은 그나마 직장인 같더라고. 아, 변미영은 자신을 ‘왕따’시켰던 고교 동창을 상사로 만나잖아? 그 정돈 아닌데 지난해 대학동아리 후배를 클라이언트로 만났어. 정말 많이 혼냈던 앤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이 대리=정말 공감 가는 건 주인공이 아니야. ‘김과장’에서 다른 직원들은 상사한테 찍소리도 못 하잖아. 원래 사무실 분위기가 그래. 억울해도 조용히 넘어가고. 윤 대리처럼 임원한테 대드는 건 꿈도 못 꿔봤지. 그나마 옛날 드라마는 여성들이 ‘민폐 캐릭터’였잖아? 윤 대리는 일만큼은 딱 부러지게 잘해. 그게 이 시대 여직원의 사는 방식이야. ▽김 사원=그럴까? 작품에서 남녀가 꽤 동등한 것처럼 묘사되잖아.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야. 여성들이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는데. 승진이나 대우에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해. 그런 면에서 여직원이 주요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 여성으로서 느끼는 미묘함은 잡아내질 못하는 한계가 있어. ▽이 대리=맞아. ‘초인가족…’에서도 같은 대리지만 박원균(김기리)과 안정민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야. 여성은 2, 3배 더 노력해야 인정받아. 특히 육아휴직 같은 불가피한 경력단절이 있다 보니 밀리는 경우도 많고. 그걸 따라잡으려고 미친 듯 일하는 여성 선배들 많아. 근데 웃긴 건 남성이 열심히 하면 ‘능력 있다’ 그러면서, 여성에겐 ‘독하다’고 말해. ▽김 사원=딴건 몰라도 ‘여자의 적은 여자’란 프레임은 좀 부수고 싶어. ‘아버지가…’나 ‘자체발광…’도 그런 구도가 나오는데, 현실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 동료가 꽤 돼. 그건 여성이 가장인 남성 직장인보다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만큼 잘못된 거 아닌가. ‘김과장’에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란 말이 나오더라. 여성도 그런 연대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 ▽신 팀장=계약직인 은호원이 상상 속에서 ‘몰라서 그랬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라고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근데 돌이켜보면 20년 넘게 사회생활 했지만 누구도 뭘 가르쳐준 적은 없어. 실수하면 ‘왜 안 물어보고 맘대로 했나’였고, 질문하면 ‘바쁜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나’란 말을 들었지. 여직원에게 회사는 정글이야. 늪과 맹수가 가득한. 하지만 그거 알아? 남직원도 똑같아. 자빠지는 곳만 다를 뿐이지.(다음 회에 계속)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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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쿡방’ 가고 ‘사방’ 뜬다… 다섯 남자의 ‘史心’충만 역사여행

    “예능을 통해 우리 역사를 배우는 본격 ‘사(史)방’이 온다.” 채널A의 신규 야외 버라이어티쇼 ‘사심충만 오!쾌남(오쾌남)’이 이번 주 토요일(4월 1일) 오후 11시 첫 방송을 시작한다. 역사를 테마로 한 본격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오쾌남’은 제목부터 ‘사심(史心)충만’, 즉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득 채우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최근 ‘먹방’(먹는 방송)이나 ‘쿡방’(요리 방송)이 입과 배를 채우는 방송이라면, ‘오쾌남’은 역사 현장을 직접 살펴보며 머리를 채우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출을 맡은 박세진 PD는 “학창 시절 수업은 들었지만 역사를 까맣게 잊고 산 ‘아재’들과 어릴 때부터 바쁜 연예계 생활로 기회조차 부족했던 ‘아이돌’들이 함께 역사를 배우며 얻는 감동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쾌남’ 진행을 맡은 5명의 MC는 프로그램 콘셉트에 최적화된 캐스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방송가에서 최고의 콤비로 꼽히는 방송인 김성주와 안정환 전 축구 국가대표가 다시 환상의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프로 불참러’로 불리는 개그맨 조세호가 성실한 개근을 약속했고, MBC 드라마 ‘이산’의 홍국영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한상진도 한 자리를 꿰찼다. 마지막으로 대세 아이돌 ‘몬스타엑스’의 카리스마 리더 셔누가 막내로 참여해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예정이다.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나온 출연진은 환상의 궁합을 보여줬다. 조세호는 “처음엔 부담도 많이 됐지만 ‘건강하고 의미 있는’ 예능에 참여해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셔누도 “솔직히 역사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오쾌남’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며 “형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1일 방송될 ‘오쾌남’ 1화의 목적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인천 강화군 강화도다. 인기 걸그룹 ‘EXID’의 하니와 혜린이 특별 게스트로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학원가에서 ‘한국사 스타강사’로 유명한 이다지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민족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꼼꼼하게 답사했다. 다섯 MC는 ‘명쾌 흔쾌 유쾌 통쾌 상쾌, 오쾌남(男)’란 닉네임에 어울리게 시종일관 쾌활함이 넘친다. 그렇다고 역사를 대하는 자세가 결코 가볍지도 않다. 가는 곳마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꼼꼼히 필기하고 열심히 질문한다. 여기에 홀로 경주로 역사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는 하니와 혜린의 반전 매력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오쾌남’은 그저 역사 상식을 훑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를 살았던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등사를 방문한 출연진은 대웅전 기둥에 병사들이 남긴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되짚기도 한다. 김성주는 “아직 초반이지만 여러 역사 현장에 갈 때마다 오늘날의 우리와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 깜짝깜짝 놀란다”며 “역사야말로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란 점을 깊이 새기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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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 이슈로 새 아침 깨우는 ‘알람시계’ 역할 톡톡

    “오늘 하루는 분명 어제보다 나을 겁니다.”(마무리 멘트)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돌직구쇼)가 28일 방송 1000회를 맞았다. 2013년 7월 8일 첫 방송을 한 ‘돌직구쇼’는 평일 오전 9시 주요 시사 이슈를 꼼꼼히 짚어주며 시청자의 아침을 여는 채널A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이래 아침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이토록 롱런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약 3년 9개월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다양한 시사 이슈를 날카로우면서도 친절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왔다. 특히 가장 사랑받는 코너인 ‘신문 읽어주는 남자’는 미리 쓴 원고도 없이 그날그날 종합일간지의 주요 뉴스를 심층 분석하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알람시계’ 역할을 했다. ‘돌직구쇼’는 단지 오래되기만 한 게 아니다. 지난해 1월 기록한 최고시청률 4.119%를 비롯해 꾸준히 2∼4%대 시청률을 유지한다. 이 배경엔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 윤태곤 정치컨설팅업체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이승원 칼럼니스트 등 전문성과 입담을 고루 갖춘 패널의 힘이 크다. 1회부터 진행을 맡아온 김진 기자도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이다. 마무리 멘트 “오늘 하루는…”이 인상적인 그는 “정성 들인 손편지를 보내주시는 시청자도 여럿”이라며 “돌직구쇼 덕에 또 하루 신나게 출발한단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1000회를 이어가며 우여곡절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1층에 자리한 ‘오픈스튜디오’는 바깥 경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매력이 크다. 펑펑 쏟아지는 눈도, 시원하게 내리꽂는 빗줄기도 스튜디오 세트가 된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땐 그 행렬이 그대로 배경으로 잡혔다. 반면 방송 초기 스튜디오로 술에 취한 시민이 난입하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2014년 12월 1일 개국 3주년 특집방송에선 당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던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을 최초로 단독 인터뷰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팬을 자처하는 유명인사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바쁜 일정이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챙겨 본다”며 “못 보는 날에도 그날 돌직구쇼가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 확인할 정도”라고 ‘커밍아웃’했다. 채널A ‘외부자들’ MC인 개그맨 남희석 씨도 “아침마다 ‘돌직구쇼’를 보며 공부한다. 정치시사 분야에서 스승이나 마찬가지”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아침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답게 ‘고인 물’로 머물지 않는 것도 ‘돌직구쇼’의 매력이다. 최근에 방송하고 있는 코너 ‘대선 상황실’은 김 기자가 상황실장 역할을 맡아 패널과 함께 여러 캠프의 정책을 검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민희 PD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뉴스를 얼마나 친숙하고 맛있게 시청자에게 차려드릴지 늘 고민한다”며 “언제나 균형감 있고 정의로운 시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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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알 수 없는 일, 알아낼 수 있는 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세월호 구름’(사진)이 딱 그렇다. 1072일 만에 세월호가 돌아온 날. 누가 봐도 리본인 형상이 하늘에 걸리다니. 너무 뚜렷해 합성이란 의심이 들 정도다. 다행히 이 장면을 담은 증거 사진이 여럿이라 의혹은 사그라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건 ‘권운(卷雲)’의 일종이다. 새털구름, 꼬리구름이 여기 속한다. 바람에 휠 때도 있지만 이렇게 꺾인 경우는 매우 특이하단다. 혹시나 해서 국내외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이미지 수백 장을 뒤져봤다. 신기한 생김새가 적지 않으나 이만큼 놀랍진 않다. 우주의 기적, 천상의 조화…. 세상에 모를 일이 많다. 그러나 신계(神界)가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는 있다. 세월호 참화는 사람의 영역이다. 3년 아니라 30년이 걸려도 진실을 건져 내고 밝혀야 한다. 정말 아이들이 저 구름을 띄운 거라면, 그걸 우리한테 일깨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노란 꽃들이 흐드러질, 봄이 오고 있다. 퍼렇게 멍든 바다 저편에서.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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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적 재생 800만 회 이끈 ‘모난희’의 힘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2002년 국내 개봉) 노땅 같아 보이겠지만 네이버·MBC 웹 드라마 ‘반지의 여왕’을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다. 최면에 걸린 주인공 할(잭 블랙)의 눈에 엄청난 덩치를 지닌 여성이 절세 미녀(귀네스 팰트로)로 보인다는 내용. ‘반지의 여왕’엔 최면 대신 ‘절대 반지’가 등장할 뿐. 못난 외모로 연애는커녕 어딜 가도 구박받는 대학생 모난희(김슬기). 같은 학교 ‘킹카’ 박세건(안효섭)을 짝사랑하지만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그러나 집안의 마법반지를 끼면 그걸 끼워준 사람에겐 자신이 이상형으로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어렵사리 작전에 성공해 세건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는 자기를 절친 강미주(윤소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반지의 여왕’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 기시감이 크지만 그리 뻔하진 않다. 한 편 보고 나면 다음 편이 궁금해진다. 속도감이 관건인 웹 드라마답게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 물론 띄엄띄엄 넘어가는 대목이 잦지만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진 않다. 여기엔 모난희 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의 공이 크다. 2015년 웹 드라마 ‘퐁당퐁당 LOVE’에서 주인공 자질을 충분히 증명한 그는 평범한 장면도 맛깔 나게 살리는 재주를 지녔다. 2011∼2013년 tvN ‘SNL 코리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패러디 등을 통해 ‘쌈빡하게’ 욕설을 내뱉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반응도 뜨겁다. 현재 전체 21회 가운데 19회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누적 재생 횟수가 벌써 약 800만 회다. 1000만 회가 넘으면 ‘대박’이라 부르는 웹 드라마에서 엄청난 성적이다. 다만 9, 16일 MBC를 통해 방영한 TV판은 시청률이 1%를 겨우 넘는 수준. TV 주시청자들이 보수적인 편이란 걸 감안해도 아쉬움이 크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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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면 대신 ‘절대 반지’ 등장?…어디서 본 듯한 ‘반지의 여왕’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2002년 국내 개봉) 노땅 같아 보이겠지만, 네이버·MBC 웹 드라마 ‘반지의 여왕’을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다. 최면에 걸린 주인공 할(잭 블랙)의 눈에 엄청난 덩치를 지닌 여성을 절세미녀(기네스 펠트로)로 보인다는 내용. ‘반지의 여왕’엔 최면 대신 ‘절대 반지’가 등장할 뿐. 못난 외모로 연애는커녕 어딜 가도 구박받는 대학생 모난희(김슬기). 같은 학교 ‘킹카’ 박세건(안효섭)을 짝사랑하지만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허나 집안의 마법반지를 끼면 그걸 끼워준 사람에겐 자신이 이상형으로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어렵사리 작전에 성공해 세건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는 자기를 절친 강미주(윤소희)로 보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데…. ‘반지의 여왕’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 기시감이 크지만, 그리 뻔하진 않다. 한편 보고나면 다음편이 궁금해진다. 속도감이 관건인 웹 드라마답게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 물론 띄엄띄엄 넘어가는 대목이 잦지만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진 않다. 여기엔 모난희 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의 공이 크다. 2015년 웹 드라마 ‘퐁당퐁당 LOVE’에서 주인공 자질을 충분히 증명한 그는 평범한 장면도 맛깔 나게 살리는 재주를 지녔다. 2011~3년 tvN ‘SNL 코리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패러디 등을 통해 쌈빡하게 욕설을 내뱉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반응도 뜨겁다. 현재 전체 21회 가운데 19회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누적 재생수가 벌써 약 800만 회다. 1000만이 넘으면 ‘대박’이라 부르는 웹 드라마에서 엄청난 성적이다. 다만 9, 16일 MBC를 통해 방영한 TV판은 시청률이 1%를 겨우 넘는 수준. TV 주 시청자들이 보수적인 편이란 걸 감안해도 아쉬움이 크다. ★★★(별 다섯 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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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아낌없이 펑펑” 쌈짓돈 몇만원으로 즐기는 탕진의 행복

    “F=ma(힘=질량×가속도)니까 중력과 마찰력을 고려한 뒤, 삼각측량법으로 계산하면….” 대기오염 세계 2위란 ‘쾌거’가 전해진 날. 골방에 틀어박힌 에이전트2(정양환)는 뭔가를 끼적거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요원7(임희윤)과 26(유원모)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따져 물었다. “으응? 심, 심오한 물리학의 세계에 취해 있었다네.” “근데…, 뒤춤에 숨긴 건 뭐죠?” 재빨리 종이 한 장을 낚아챈 26. 넘겨받은 요원7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요새 ‘인형 뽑기’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요? ‘탕진잼’에 빠졌구먼.” 오호통재라. 탕진잼은 또 뭐기에 외계요원마저. 혹시 한때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며 ‘악마의 잼’으로 불린 누텔라의 부활인가. 위기감을 느낀 에이전트26은 2의 뒷덜미를 질질 끌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아낌없이 펑펑 써라, 단 3만 원 이하로 “최근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가진 돈을 다 써 버리며 재미를 찾는다는 뜻의 ‘탕진잼’(탕진 재미)이란 말이 유행이다.”() 탕진(蕩盡)이라…. 그 옛날 동화책에서나 접하던 단어가 21세기에 인기라니. 일단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의 도움을 얻어 탕진잼의 실체부터 파악해 봤다. 10∼30대 남녀 6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9%가 탕진잼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한국 청년층 둘 중 하나는 해본 적이 있다는 소리다. 경험자로 범위를 좁혔더니 20.3%는 ‘최소 주 1회 이상’ 탕진잼을 맛보고 있었다. ‘주 3회 이상’도 4.2%나 됐다. 탕진잼을 즐기는 분야(복수 응답)는 무척 다양했다. 남녀 모두 먹는 걸(71.3%)로 돈 써본 경험이 가장 많은 가운데, 여성은 의류(66.7%)와 미용(57.1%)이 뒤를 이었다. 남성은 전 분야가 엇비슷했으나, 최근 번화가에 급속도로 늘어난 ‘인형 뽑기방’(27.1%)을 즐기는 비율이 여성(17.9%)보다 훨씬 높았다. 에이전트26이 만난 금융사 직원 이모 씨(31)도 1주일에 두세 번씩 인형 뽑기방을 찾는 덕후. 지난 3개월 동안 50만 원 이상 썼다. 하도 갔더니 알바생이 공짜로 횟수도 늘려주고 대신 뽑아준 적도 있단다. 그는 왜 이런 탕진잼에 빠졌을까. “직장인이 스트레스 풀 방법이 별로 없잖습니까. 술 먹는 것도 지겹고. 우연히 해봤는데 어릴 때가 떠오르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2만∼3만 원어치 동전 쌓아놓고 딱 하면 라스베이거스에 간 느낌이랄까, 하하. 어차피 월급 사정 뻔하니까 기분 한번 내는 거죠.”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그들의 탕진은 탕진이라 하기도 멋쩍었다. 1번에 ‘3만 원 이하’가 48.3%였다. 그저 주머니에 가진 돈 털어 흥 한번 내는 찰나의 만족. 그들은 그걸 스스로 탕진이라 부르고 있었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와 그걸 지켜보는 너 왜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탕진잼을 좋아할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과 탕진재머(탕진잼을 즐기는 사람)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 다 불확실한 미래보단 현재의 만족을 지향하는 공통점은 있죠. 허나 해외에서 들어온 개념인 욜로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과소비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반면 탕진잼은 장기 불황에 청년 실업난이 겹친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거예요. 쌈짓돈 쓴 것도 탕진이라 부르는 일종의 반어법이죠. 청년세대의 박탈감이 깊게 깔려있다고 봐야 합니다.” 문구점에서 필기구 등 사무용품을 사며 탕진잼을 즐긴다는 서모 씨(28·여)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1주일에 최소 한 번씩 가는데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는 기쁨이 너무 크다”며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조사도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났다. 탕진잼을 즐기는 이유로 ‘현재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30.1%)라거나 ‘어차피 돈이 모이지도 않으니 아낌없이 쓰고 싶다’(14.0%)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건 겨우 ‘몇만 원의 사치’를 부린 것임에도 ‘탕진잼을 벌인 뒤 후회가 밀려온다’(23.8%)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에이전트26은 그제야 잡았던 요원2의 뒷덜미를 놓았다. 나름 거기서 위안을 찾는지도 모르고. 26은 따뜻한 눈길로 2를 일으켜 세웠다. “뽑기가 그리 재밌어요? 그간 인형은 얼마나 모았는데요?” “어…, 자취방에 200개쯤? 근데 월급 가불한 거 다 썼는데 돈 좀 꿔줘라.” 그래, 선배를 위해 뭐가 아까우랴. 얼른 병원에 방 하나 잡아야겠다.(다음 회에 계속)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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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자들’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 8위

    채널A 시사예능 ‘외부자들’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3월 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시청률 4% 안팎을 유지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했지만 1월에 18위에 진입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여론조사회사 한국갤럽이 시청률과 별개로 시청자들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해 발표한다. 시사 정치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송 시작 3개월도 안 돼 톱10에 든 것은 이례적이다. 이 프로그램의 패널인 전여옥 전 의원은 “방송이 나갈 때마다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열정을 가진 제작진과 애정 어린 시청자들 덕분에 패널들도 더 열심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논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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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족 “나이 들고 보니 철없던 시절”, 흙수저 “기회마저 사라지니 박탈감”

    강산이 두 번 하고도 반쯤 바뀌었다. 1992년 ‘오렌지족(族)’이 등장한 지 25년. 당시 피 끓던 청춘은 이제 40대 중후반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2007년 테이크아웃 커피 잔만 들어도 눈총을 받았던 ‘된장녀’들도 벌써 30대 초중반. 그리고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은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흙수저’ ‘금수저’란 소릴 들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세대지만 20대에 한국 사회가 만든 신어(新語)에 자신이 규정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을까. 또 그들의 눈에 다른 세파를 거친 족(族)과 여(女)는 어떻게 보일까. 덤덤하나 뾰족했던, 여섯 명과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으로 꾸몄다. ▽오렌지족A(44·자영업)=당시엔 좀 황당했다. 물론 부모 덕에 누린 게 많다. 그땐 해외 유학이 흔치 않았고. 하지만 범죄자 취급까지 당했다. 같이 놀다가도 뒤에서 딴소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사고를 확대 해석하며 모두 싸잡아 비난했다. ▽된장녀Ⅰ(30·금융사 직원)=100% 공감한다. 내 인생인데 왜 난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빚을 냈든, 남친이 사줬든 자기 선택 아닌가. 복학생 오빠한테 공개적으로 욕먹은 적도 있다. 겉멋 들었다고. ××월드로 쪽지 보내 사귀자고 조를 땐 언제고. 그런 남성의 이중잣대가 크게 작용한 말이 된장녀라고 본다. ▽오렌지족B(47·공무원)=나이 먹고 생각도 좀 바뀌더라. 사회 나와서 돈 벌기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평범한 직장인 월급을 하루 술값으로 날린 적도 있으니. 자식(중학생)한테 떳떳하게 말하긴 힘들지 않나. ▽흙수저㉠(32·S사 근무)=배부른 소리 한다 싶다. 직장 생활 몇 년째인데 학자금과 전세 대출이 1억 원쯤 된다. 죽어라 공부해 취직했는데 매달 몇십만 원만 손에 남는다. 소개팅 들어와도 누굴 만나기가 두렵다. 결혼도 빚내서 할 판이다. ▽흙수저㉡(28·중소기업 근무)=홀어머니랑 TV를 보는데 ‘수저 계급’ 얘기가 나왔다. 엄마가 “우리 딸, 뒷바라지 못 해줘 미안해” 하시더라. 오렌지족이건 된장녀건 탓할 맘은 없다. 다만 쳇바퀴 돌듯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된장녀Ⅱ(35·L사 간부)=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난 최소 ‘은수저’는 됐다. 그런 입장에서 봐도 요즘 한국 사회는 너무하다. 흙수저였다면 잘됐을 거란 자신이 없다. 근데 오렌지족은 그 정도 비난은 감내할 수준 아닌가. 된장녀는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오A=글쎄, 허세 심한 된장녀야말로 욕먹을 만했지. 오렌지족은 비교적 솔직했다고 본다. 흙수저는…,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빈부격차는 있어 왔다. 금수저라 뭐라 하는 건 역차별이다. ▽흙㉡=그만큼 한국 상류층이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가졌기 때문에 시기하는 게 아니다. ‘갑질’과 부정부패를 욕하는 거다. 기회마저 사라지니 박탈감을 느낀다. ▽된Ⅰ=‘편 가르기’가 더 문제다. 한국엔 자기와 다르면 삿대질부터 하는 문화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오B=맞다. 20여 년 전 무조건 혀를 끌끌 차던 시선들이 싫었다. 이젠 내가 ‘꼰대’라 불리는 나이가 됐다. 적어도 서로를 단정 짓진 말았으면 좋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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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드뉴스]‘X세대’부터 ‘흙수저’까지…신어로 본 한국사회

    #1.‘신어(新語)’로 본 한국사회-사회 불만 표현 수위 높아졌다#2.“방학이 되면 국내파와 해외파 오렌지족이 어울려 사치 퇴폐 행각을 일삼는다. (중략) 종전엔 식당이나 록카페에서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요즘엔 그랜저 승용차 등을 몰고 가다 길가는 여학생 옆에 세워놓고 ‘야, 타라’ 하며….”(동아일보 1994년 1월 22일자)“1990년대 초반 오렌지족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던 이유는 당시 급격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3.사람·세대를 지칭하는 신어(新語)가 한 해 수백 개씩 쏟아집니다. 동아일보가 당대 혹은 지금까지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말을 중심으로 최근 25년(1992~2016년) 동안 시대를 따라 흐른 신어 211개를 정리했습니다. 오렌지족 이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거울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4.1994년 국내에 ‘X세대’가 등장했습니다. 한 화려한 TV 광고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X세대는 통통 튀는 ‘신세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정착했죠. 정치적 신인류라 할 ‘386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죠.“가난 탈출이나 군사독재가 시대적 화두였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는 경제적 안정과 민주화가 함께 발흥한 시기다. 본격적으로 소비문화가 발흥한 시점에 두 신어(오렌지족, X세대)가 유행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5. 신어들을 보면 1990년대는 낙관과 비관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던 시기였습니다.긍정 혹은 가치중립적 신어(15개)와 부정적 신어(16개)의 비율이 거의 동일했죠.하지만 1997년경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신어 ‘왕따’도 탄생했습니다. 왕따는 점차 과열돼 가던 경쟁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죠.#6.21세기 초반 신어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세대’가 확산됐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족’이 인기를 끌었죠. 반면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에 회사 다니면 도둑)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 등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 신어도 많았습니다. ‘얼짱’ ‘몸짱’ ‘꿀벅지’ ‘베이글녀’ 등은 한국적 외모지상주의를 그대로 반영했죠.#7.최근 신어들은 파괴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라도 ‘성형미녀’가 아닌 ‘성괴’(성형괴물)로 더 파괴적이죠. 부모 신세를 지는 젊은이들을 부른 ‘캥거루족’(1990년대 후반) ‘연어족’도 ‘빨대족’ ‘등쳐족’(부모 등쳐먹는 족속) 등 공격적으로 변모했습니다.계층·계급적 불만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태백’ ‘88만원 세대’ ‘n포세대’ ‘헬조선 세대’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으로 신어의 의미는 갈수록 더 과격해지죠.#8.“신어는 당대의 사회 구성원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정의 가치가 점점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앞으로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신어가 쏟아지는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까요?원본: 정양환·유원모·이지훈 기자기획·제작: 이유종 기자·신슬기 인턴}

    •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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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족 vs 흙수저… 한세대만에 딴세상

    ‘오렌지족’부터 ‘된장녀’를 거쳐 ‘흙수저’까지. 1992년 방탕한 소비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컬었던 ‘오렌지족’이 등장한 지 올해로 25주년이다. 동아일보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오렌지족 이후 2016년까지 사람(혹은 세대)을 지칭하는 주요 신어(新語) 211개를 분석한 결과 21세기에 들어 점점 공격적이고 비관적인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어는 수만 개에 이르지만 △포털사이트 시사용어집이나 오픈사전에 등재됐고 △언론매체에서 최소 10회 이상 사용했던 단어들을 뽑았다. 조사 기간인 1992∼2016년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눌 경우 90년대는 부정적 신어(52%)와 긍정적·가치중립적 신어(48%) 비율이 엇비슷했다. 하지만 2000년대는 부정적인 비율이 62%, 2010년대 이후엔 70.5%로 급격히 높아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로 신어를 생산하는 주체인 청년세력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절망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똑같은 상황을 지칭하는 신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대표적 사례가 미용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은 이들을 조롱하는 표현들이다. 90년대 말 등장한 ‘성형미인’은 2000년대 ‘성형중독녀(남)’로 바뀌더니 2010년대 전후에는 ‘성괴(성형괴물)’란 표현까지 나왔다. 경제 상황과 연관된 신어들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90년대엔 4개에 머물렀으나 2000년대 13개, 2010년대 16개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2000년대만 해도 부정적 신어가 6개(46.2%)로 균형을 이뤘으나 2010년대는 ‘n포세대’ ‘흙수저’ 등 부정적 신어가 15개(93.8%)로 훨씬 많았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먹고사는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불황이나 취업난 등에 대한 시대적 절망, 불안이 깊숙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이지훈 기자}

    •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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