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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묘지석(墓誌石·고인의 행적을 기록해 묘에 묻는 돌이나 도자기판)이 우리 박물관에 있어요.”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 이런 e메일이 왔다. 한국 컬렉션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해외 한 박물관의 학예연구사가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존재를 알려온 것. 묘지석은 원래 고인과 함께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할 유물이다. 이 연구사는 “묘지석의 반출 경위를 함께 조사해 보고, 불법성이 드러날 경우 한국 반환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일은 지난해 2월에도 있었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조선 후기 무신 이기하(1646∼1718)의 묘지석 18점을 자진 반환한 것. 이 미술관은 해당 유물의 불법 반출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선뜻 반환을 결정했다. “후손들을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이유였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으로서는 조상의 묘지석이 해외에 반출돼 있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4,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치 시대 약탈 문화재 반환하는 독일 과거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외국 박물관에 연락해 “한국 컬렉션을 조사하고 싶다”고 밝혀도 날 선 반응만 하기 일쑤였다. 재단이 유물 반출의 불법성 여부를 조사해 반환을 요구할까 봐 꺼렸던 것이다.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고 박병선 박사(1923∼2011)가 파리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공개하자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당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장은 “외국 박물관이나 연구기관이 자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연구 조사를 진행하자고 먼저 제안하고 있다”며 “문화재를 약탈했던 각국 소장처가 앞장서 반환을 검토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 나치 시대(1933∼1945년) 유대인 소장자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자성하며 반환에 나선 것. 2000년대 초부터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서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에 대한 연구를 벌이고 있다. 출처 연구는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현재까지 소유권 변화 내력과 수집 정보를 모두 추적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단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탈 여부 등 문화재의 불법 반출 정보까지 ‘분실미술품 데이터베이스’에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게르만국립박물관은 2014∼2018년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이 나치 시대에 입수한 유물 1200여 점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유물 중 약 10%의 출처를 새로 밝혀낸 박물관은 약탈한 것으로 입증된 33점을 원소장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프랑스도 동참했다. 2021년 3월 프랑스 문화부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걸작 ‘나무 아래 핀 장미’(1905년)를 원소장자인 유대인 가문 후손에게 돌려줬다. 1938년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여성 노라 스티아스니가 이 그림을 나치에 강제로 헐값에 팔아야 했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로즐린 바슐로나르캥 프랑스 문화장관은 반환 당시 “이번 결정은 정의에 대한 우리의 결의를 보여준다”고 했다.● 식민지배 자성 속 출처 연구 확산 나치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성은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베닌 청동’ 컬렉션을 둘러싼 유럽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이 컬렉션은 1897년 영국군이 현 나이지리아 일대에 있던 베닌왕국을 점령해 왕궁에서 약탈한 유물이다.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은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 기관과 협업해 영국군에 약탈된 뒤 세계로 흩어진 베닌 청동 유물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독일은 2021년 4월 “식민지 과거를 재조명하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도덕적 책임이 있다”며 독일 내 베닌 청동 1130여 점의 소유권을 모두 나이지리아 정부에 넘겼다. 지난해 8월 영국 런던 호니먼박물관도 베닌 청동 컬렉션 72점의 소유권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이양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도 베닌 청동 29점의 소유권을 모두 넘겼다. 교황청도 문화재 반환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교황청은 바티칸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을 그리스 정교회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교황청은 “진리의 세계적인 길을 따르려는 교황의 진정한 열망의 구체적인 표시”라고 설명했다. 문화재 반환에 회의적이던 영국 역시 19세기 초 떼어가 런던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부속물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 반환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12개국 300여 개 기관이 약탈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불법 반출돼 경매 시장에 나온 유물을 대량 소장한 미국 박물관들이 최근 출처 연구에 적극 나서면서 약탈 문화재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해외 소재 문화재 출처 연구 확대돼야” 문화재 반환은 국외 소재 문화재가 22만9655점(15일 기준)에 달하는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움직임이다. 한국은 조선 말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 6·25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15일 현재 문화재 반출이 확인된 국가와 문화재 수는 일본 9만5622점, 미국 6만5241점, 독일 1만4286점, 영국 1만2804점이다. 이 밖에도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모두 27개국에 달한다. 우리 정부도 세계 각국의 기관과 협업해 한국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분석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올해부터 미국 다트머스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대학(SOAS)과 협업해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등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출처 연구를 벌인다. 독일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 미국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독일은 박물관들이 협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향후 5년간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 국외로 넘어간 문화재를 대상으로 연구를 벌이고, 추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에는 꾸준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 연구 지원에 2008년부터 연간 150억 원가량을 투입했다. 베닌 청동 컬렉션 반환 역시 소장 기관들과 나이지리아 정부 등으로 2010년 결성된 ‘베닌 대화 그룹’이 10년 넘게 연구와 논의를 한 끝에 최근에야 결실을 맺었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 문화재를 소장한 외국 기관과 지속적으로 함께 연구하고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내다보며 문화재 환수를 위한 장기전을 벌이려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

1416년 여름 독일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서가. 먼지 쌓인 장서가 가득한 이곳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필경사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가 ‘보물’을 찾고 있었다. 혹시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고대 그리스·로마의 명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운명처럼 ‘웅변가교육(Institutio Oratoria)’을 만났다. 고대 로마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가 연설 이론을 12권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500년간 자취를 감췄던 보물이었다. 그는 32일 만에 전권을 필사해 피렌체로 책을 들여왔다. 잠들었던 고대의 지혜는 이렇게 깨어났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15세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이 같은 이름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 이전에 ‘책’이 있었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15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필경사와 서적상 등 ‘책 파수꾼’의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 부흥사를 추적한다. 그중 중요한 인물은 피렌체의 서적상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 그는 모든 책을 손수 필사해 발간하던 시절 1000권이 넘는 고대 명저를 판매해 ‘세계 서적상의 왕’으로 불렸다. 11세 때부터 서점 조수로 일을 배운 그는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가의 대리인으로 유럽 수도원에서 막대한 양의 필사본을 사들였다. 시뇨리아 광장 인근에 있던 그의 서점은 지식인들이 매일 토론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었다. 저자는 “책을 모으고, 지키고, 퍼뜨린 이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강조한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메디치 가문이 정치적 혼란을 겪을 때에도 굳건했던 다 비스티치의 서점 자리에는 현재 피자 가게가 들어서 있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 255개가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며 고서를 필사하는 서점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15세기 ‘책 사냥꾼’이 다시 찾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은 무지를 밝히는 등대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혹시 세상 어딘가에 고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줄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에서 일하는 김민석 씨(30)는 서울시가 보낸 장례의뢰 공문을 받을 때면 서류에는 없는 고인의 인연을 늘 찾는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이 담지 못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 8월 서울 마포구 사무실로 도착한 장례의뢰 공문에도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다. 고인이 살았던 성동구 여관 주소가 유일했다. 한 줄뿐이었지만 고인을 알 만한 누군가에게 부고를 전해야 하는 김 씨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혹시 여관 주인이 고인과 생전 친분을 쌓지 않았을까. ‘고인의 죽음을 애도해줄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그는 그날 퇴근 뒤 여관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여관 주인을 만났어요. 고인은 ‘무연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최근 신간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지식의숲)를 펴낸 김 씨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로 부르며 애도 의식을 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해왔다”며 “공영장례를 통해 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고 했다. 공영장례는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등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등이 조례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김 씨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조례가 유명무실한 지자체도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제작하는 것도 김 씨의 일이다. 공영장례를 치르는 고인 중에는 생전 영정사진을 찍어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단체사진 속 고인의 얼굴을 확대해 쓸 때가 많다고 한다. 조문객이 장례식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 씨는 아주 작은 사진이라도 찾아낸 뒤 드로잉으로 얼굴 아래 양복이나 한복을 덧그린다. 고인에게 존엄한 모습을 선물하는 것이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에 놓인 영정사진을 보고 생전 일면식이 없는 시민들이 때로 찾아와 꽃을 놓기도 한다. “왜 그분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인을 위해 헌화를 할까요. 우리 모두가 마지막 순간 아무렇게나 처리되는 사물이 아닌, 누군가에게 애도받아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 중기 나전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이 지난해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나전함을 기증하는 기념식이 11일 열렸다. YFM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젊은 경영인 10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기증된 나전함은 세로 31cm, 가로 46cm로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만들어진 수작으로 평가된다. 상자 전체에 나전 연꽃 장식이 수놓아져 있고, 넝쿨 줄기와 잎사귀가 꽃 주변을 감싸 화려함을 더했다. 윤예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나전함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점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나전 칠 연화넝쿨무늬 상자’ 등 4점뿐이어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신성수 국립중앙박물관회 컬렉션 위원장은 “백제 후예로 알려진 일본 오우치(大內) 가문에서 오래 소유하다가 1991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것을 일본인 소장가가 30년 넘게 갖고 있었다”며 “지난해 일본인 소장가가 세상을 떠나며 미국 소더비 경매에 나온 나전함을 YFM이 구입해 고국으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날 조현상 YFM 위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셨다”며 “앞으로도 우리 문화재를 되찾고 박물관을 알려 우리 나라 문화의 힘을 높이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YFM은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구입해 기증하는 사업에 힘쓰고 있다. 2014년 고려나전경함을 일본에서 들여왔고, 2018년 일본에 유출됐던 고려 시대 불감을 구입해 기증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혹시 이 세상 어딘가에 외로운 고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줄 단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나눔’에서 근무하는 김민석 씨(30·사진)는 시가 보낸 장례의뢰 공문을 받을 때면 늘 서류에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고인의 인연을 떠올린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 혼인관계증명서가 담지 못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 8월 도착한 장례의뢰 공문 속에서도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다. 사체검안서에는 ‘기타 및 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인을 알 수 없다는 뜻. 공문에는 고인이 살았던 서울 성동구의 한 여관 주소가 나와 있었다. 한 줄뿐이었지만 고인을 알 만한 누군가에게 부고를 전해야 하는 그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혹시 여관 주인이 고인과 생전 연을 맺지 않았을까. 그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그날 퇴근 뒤 여관을 찾아갔다. “고인에 대해 아는 건 주소뿐이지만 찾아갔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고인이 애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기도해주는 여관 주인을 만났어요. 그는 ‘무연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최근 신간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지식의숲)을 펴낸 김 씨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죽음 이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라고 부르며 애도의 의식을 제공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해왔다”며 “공영장례 제도는 장례를 치르며 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영장례’는 가족 등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대신 장례를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씨는 “조례는 있지만 인력과 지원 예산이 부족해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는 지자체도 많다”며 “특히 고인의 부고를 온라인 뉴스 등을 통해 알려 고인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서울시뿐”이라고 했다. “공영장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장례 공간뿐 아니라 고인이 누군가에게 애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까지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김 씨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얼굴을 마주할 지인들을 위해 영정사진도 만든다. 김 씨는 “대부분 영정을 미리 찍어두지 않기 때문에 단체 사진 속에 아주 작게 나온 고인의 얼굴 일부분을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런 사진을 찾게 되면 사진 위에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양복이나 한복을 덧그린다”고 했다. “혹여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합니다. 화장장에 고인의 위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외로워 보이니까요. 어떻게든 얼굴이 나온 작은 사진이라도 찾아서 가장 멋진 옷을 입혀 영정을 만들어드립니다.” 때로 고인의 영정을 보고 생전 일면식이 전혀 없는 시민들이 찾아와 헌화를 하기도 한다고. 그는 “왜 이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누군가를 위해 헌화를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그건 아마도 ‘믿음’ 때문일 것 같다”고 했다.“우리가 마지막 순간 아무렇게나 처리되고 버려지는 사물이 아니라,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애도를 받을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믿음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설, 추석 등 명절과 세배, 성묘 등 ‘명절 세시풍속’이 올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설,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등 명절과 세배, 성묘 등 명절 세시풍속의 가치에 대해 올해 7월까지 연구 용역을 마친 뒤 9월 이들을 함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명절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자문회의’를 열고 명절과 명절에 행하는 세시풍속을 아울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명절은 역사성만큼이나 오늘날까지 공동체에서 전승돼온 사회·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자문회의에 참석한 배영동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은 “명절 세시풍속은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며 개인화되는 오늘날에도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탱해주고 있는 전통”이라며 “오늘날은 그 의미가 옅어졌다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이 다시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추석은 앞선 2021년 12월 연구용역을 통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 바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추석을 뜻하는 ‘가위’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가배(嘉俳)’가 기록된 사실에 미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추석 명절을 지내는 풍습이 전해 내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명절의 무형문화재 지정 추진은 속칭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기술·예능 보유자뿐 아니라 국민이 함께 전승해온 지식이나 의식주 등 공동체의 생활 관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최근 무형문화재 체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화재청은 2015년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 전승되는 ‘공동체 종목’을 지정할 수 있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했다. 이어 최근까지 아리랑, 김치 담그기, 온돌문화, 장 담그기, 한복생활, 윷놀이 등 16개 종목을 지정했다. 공동체 전수 종목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규정하는 유네스코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한민족의 전통 문화를 자국 고유문화라고 주장하는 중국 일각의 왜곡에 맞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비물질문화유산’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이 지정한 조선족 관련 무형유산은 널뛰기, 아리랑, 김치 담그기 등 국가 지정 무형유산 17개 종목과 동북삼성이 지정한 성급 무형유산 81개 종목 등 모두 98개 종목에 이른다. 한민족의 문화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지만 최근 한복 논란에서 보이듯 중국의 고유문화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중국이 조선족 관련 문화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자국 고유문화로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 그때그때 맞대응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공동체 문화유산을 검토해 문화재 지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명절 세시풍속의 문화재 지정 추진에 관해 “우리의 공동체 무형문화유산을 선제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며 “내년에는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와 구전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전통시대 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설치된 군사 통신수단인 ‘봉수(烽燧)’ 유적 14곳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부산 응봉에서 서울 남산까지 이어지는 ‘제2로 직봉(直烽)’ 노선에 있는 44개의 봉수 유적 가운데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 등이 양호한 14곳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통신체계인 봉수는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외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는데 쓰였다. 직봉은 조선시대 전국 봉수망을 연결하는 중요 봉화대였다. 1908년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선 후기 5개의 직봉을 포함해 총 622개의 봉수가 운영됐다. ‘제2로 직봉’ 노선과 전남 여수 돌산도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제5로 직봉’은 남한에, 나머지 3개 직봉 노선은 북한에 있다. 문화재청은 “봉수는 최단 시간 외적의 침입을 알릴 수 있는 지리 정보를 나타내고 있어 학술적,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적 지정에 문화재청은 문화적·사회적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접하지 않은 유적을 묶는 ‘연속유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14개 봉수 유적은 소재지가 각기 다르지만 전체를 ‘제2로 직봉’으로 묶어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배와 성묘 등 ‘명절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올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26일 ‘명절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자문회의’를 열고 설,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등의 명절과 명절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아울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1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올 7월까지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가치 연구용역을 마친 뒤 9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추석은 이미 2021년 12월 전승 및 지정 가치를 판단하는 연구용역을 통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추석을 뜻하는 ‘가위’를 이두 식으로 표기한 ‘가배(嘉俳)’가 기록된 사실에 미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추석 명절을 지내는 풍습이 전해내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명절은 역사성만큼이나 오늘날까지 가족공동체에서 전승돼온 사회·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자문회의에 참석한 배영동 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는 “명절 세시풍속은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며 개인화되는 오늘날에도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탱해주고 있는 전통”이라며 “현재는 그 의미가 옅어지고 있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다시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무형문화재 체계는 속칭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기술·예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지정돼왔던 데서 나아가 온 국민이 함께 전승해온 지식이나 의식주 등 공동체의 생활관습까지 확장되고 있다. 2015년 문화재청이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도 전승되는 공동체 종목을 지정할 수 있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면서다. 최근까지 ‘아리랑’, ‘김치 담그기’, ‘온돌문화’, ‘장 담그기’, ‘한복생활’, ‘윷놀이’ 등 16개 공동체종목이 지정됐다. 공동체 전수 종목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전통 문화를 두고 중국의 고유 문화라고 주장하는 일부 중국인들의 왜곡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비물질문화유산 웹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지정된 조선족 관련 무형유산은 ‘널뛰기’, ‘아리랑’, ‘김치 담그기’ 등 국가 지정 무형유산 17개 종목, 동북삼성(東北三省) 지역에서 지정한 성급 무형유산 81개 종목 등 모두 98개 종목에 달한다. 한민족의 문화가 중국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한복 논란 등에서 보이듯 중국의 고유문화로 왜곡되고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중국에서는 국가뿐 아니라 성급 자치단체도 조선족 관련 문화를 공동체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중국 고유 문화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며 “중국의 무형문화재 지정 목록을 보며 맞대응하는 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지정 가치가 있는 공동체 문화유산을 검토하고 가치를 판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문화재청이 명절 세시풍속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건 중국과 별개로 우리의 공동체 문화유산을 선제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시도”라며 “내년에는 ‘연 날리기’를 비롯한 민속놀이와 구전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해 한국만의 무형문화유산 체계를 갖춰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계 최고령 애크러배틱 살사 댄서로 기네스북에 오른 패디 존스(89)는 새해에도 변함없이 무대에 선다. 구순을 앞둔 백발노인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골반을 비틀며 화려한 살사 댄스를 선보인다.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장생의 묘약이라도 마신 걸까. 그의 전성기는 80세부터 시작됐다. 또래들이 은퇴하고 집이나 병원에서 요양할 때 그는 영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티시 갓 탤런트’에 출연해 살사 댄스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나는 여든이라는 나이가 실감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내 나이를 변명거리로 삼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한다. 영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불로장생의 묘약은 없다. 다만 젊은 마음가짐이야말로 젊음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비단 나이 듦에 대한 마음가짐뿐일까. 저자는 최신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기대효과가 지닌 힘에 대해 풀어낸다. 책은 노화와 건강, 인지능력 등 생각의 전환으로 삶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과학적인 실험 결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하는 유사과학을 설파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우리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7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호텔 청소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실험 전 일상에서 운동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들에게 연구진은 “청소하며 쓰는 에너지만으로 권장 운동량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 결과 이들은 실험 시작 한 달 만에 체중이 줄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생각만으로 건강해지는 마법은 없지만, 이미 일상에서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라면 아주 작은 생각의 전환으로도 큰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생각의 전환을 거치면 스트레스도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제러미 제이미슨 뉴욕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0년대 대학원 진학 시험을 치를 예정인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절반은 평소처럼 시험을 치렀지만, 나머지 절반에게는 “시험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시험을 더 잘 보는 경향이 있다”는 안내문을 읽게 한 것. 안내문을 읽는 데에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별다른 안내를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 점수는 800점 만점에 706점이었던 반면 안내문을 읽은 집단은 평균 770점을 받았다. 마음가짐은 인지능력과 건강뿐 아니라 ‘목숨’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2년 예일대 공중보건과학과는 1975년 50세에 접어든 110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20여 년간 추적 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여긴 이들은 연구를 시작한 때부터 평균 22.6년을 더 살았다. 이에 비해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프고 무력해진다며 부정적으로 여긴 이들은 평균 15년밖에 살지 못했다. 어쩌면 ‘노인이 되면 아프고 무력해질 것’이라는 편견이나 섣부른 우려야말로 여전히 젊고 강한 우리 몸을 노쇠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너무 어려서…. 나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면 아직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이 우리에게서 싹튼다”는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를 가뒀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먼저 그 틀을 깨야 한다. 그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계 최고령 애크러배틱 살사 댄서로 기네스북에 오른 패디 존스(89)는 새해에도 변함없이 무대에 선다. 구순을 앞둔 백발노인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골반을 비틀며 화려한 살사 댄스를 선보인다.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장생의 묘약이라도 마신 걸까. 그의 전성기는 80세부터 시작됐다. 또래들이 은퇴하고 집이나 병원에서 요양할 때 그는 영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티시 갓 탤런트’에 출연해 살사 댄스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나는 여든이라는 나이가 실감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내 나이를 변명거리로 삼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한다.5일 신간 ‘기대의 발견’을 펴낸 영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데이비드 롭슨은 “불로장생의 묘약은 없다. 다만 젊은 마음가짐이야말로 젊음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비단 나이 듦에 대한 마음가짐뿐일까. 저자는 최신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기대효과가 지닌 힘에 대해 풀어낸다. 책은 노화와 건강, 인지능력 등 생각의 전환으로 삶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과학적인 실험 결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하는 유사과학을 설파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우리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7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호텔 청소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실험 전 일상에서 운동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들에게 연구진은 “청소하며 쓰는 에너지만으로 권장 운동량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 결과 이들은 실험 시작 한 달 만에 체중이 줄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생각만으로 건강해지는 마법은 없지만, 이미 일상에서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라면 아주 작은 생각의 전환으로도 큰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생각의 전환을 거치면 스트레스도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제러미 제이미슨 뉴욕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0년대 대학원 진학 시험을 치를 예정인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절반은 평소처럼 시험을 치렀지만, 나머지 절반에게는 “시험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시험을 더 잘 보는 경향이 있다”는 안내문을 읽게 한 것. 안내문을 읽는 데에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별다른 안내를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 점수는 800점 만점에 706점이었던 반면 안내문을 읽은 집단은 평균 770점을 받았다.마음가짐은 인지능력과 건강뿐 아니라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2년 예일대 공중보건과학과는 1975년 50세에 접어든 110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20여 년간 추적 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여긴 이들은 연구를 시작한 때부터 평균 22.6년을 더 살았다. 이에 비해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프고 무력해진다며 부정적으로 여긴 이들은 평균 15년밖에 살지 못했다. 어쩌면 ‘노인이 되면 아프고 무력해질 것’이라는 편견이나 섣부른 우려야말로 여전히 젊고 강한 우리 몸을 노쇠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너무 어려서…. 나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면 아직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이 우리에게서 싹튼다”는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를 가뒀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먼저 그 틀을 깨야 한다. 그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미국 배우 에드워드 노턴(53)이 북미 원주민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1596∼1617)의 12대 후손으로 밝혀졌다. 4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노턴은 미 공영방송 PBS 역사프로그램 ‘당신의 뿌리를 찾아서’ 시즌9에 출연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역사학자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서류에 직접적인 흔적이 남아 있어 노턴과 12대 조모 포카혼타스의 관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포카혼타스가 1615년에 낳은 아들 토머스에서 노턴까지 계보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노턴은 “인간의 역사 전체에 비춰볼 때 우리는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다”고 밝혔다. 포카혼타스는 미 동부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연합체를 지배했던 추장 포우하탄의 딸이다. 1614년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서 영국인 개척자 존 롤프와 결혼했고, 1616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사교계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원주민에게 붙들려 처형될 위기에 놓였던 영국 탐험가 존 스미스의 목숨을 구해줬던 일화는 훗날 스미스가 출간한 책을 통해 밝혀지며 정착민과 원주민 간 교류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1995년 월트디즈니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를 만들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투우’를 폐지하라.” 지난해 12월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의회 앞. ‘투우 금지’라고 쓴 팻말을 든 시민들이 “고문은 쇼가 아니다. 투우를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건너편에선 프랑스 투우협회 등 투우 지지자들이 “투우는 지역의 문화유산이자 경제 상품”이라고 반발하며 맞불시위를 벌였다. 의회에 발의됐던 ‘투우 금지 법안’이 이날 철회되자 투우 존폐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맞붙은 것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투우 종주국 스페인에서도 소싸움을 놓고 문화유산이냐 동물학대냐는 논란이 지속돼 왔다. 지난해 12월 전북 정읍시의회가 소싸움대회 개최를 명목으로 올해 시 예산안에 2억8500여만 원을 편성하면서 국내에서도 소싸움대회 존폐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소싸움은 전국적으로 열렸지만 특히 경남 일원과 경북 일부 등에서는 정월대보름 무렵 등에 연례 민속행사로 펼쳐졌다. 구비문학 및 민속학 전문가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소싸움에 대해 “서로 다른 두 마을을 대표하는 소가 맞붙으면서 마을을 단합시키고 농경 공동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는 물론 학계에서도 동물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소싸움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으로 소싸움은 동물학대가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지정한 11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관하는 소싸움 경기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권 논의까지 나오는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동물보호법 예외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민속유산이 자연 소멸하는 것 역시 민속의 생리”라며 “동물보호법상 예외 조항을 폐지한다면 소싸움 역시 ‘개고기 식용 문화’처럼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속 계승을 위해 소싸움을 이어가야 한다고 보는 이들 가운데서도 지금의 소싸움은 전통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북 청도 소싸움대회를 운영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8일∼7월 3일 열린 ‘청도소싸움대회 최강자전’은 ‘우권(牛券)’ 등으로 매출 147억 원을 올렸다. 소싸움이 승패에 적지 않은 돈을 거는 게임이 된 것이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소싸움대회는 사행성 게임처럼 변질돼 농경사회의 결속이라는 본래 소싸움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관은 이어 “민속유산으로서 소싸움은 보존 가치가 있다”면서도 “농촌 공동체를 한데 묶어주는 전통 가치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올해 5월부터 국가지정문화재를 소유한 사찰 등이 문화재 관람료를 안 받거나 감면하면 정부가 그만큼의 비용을 지원한다. 정부는 5일 발간한 ‘2023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책자에서 “5월 4일부터 이 같은 내용의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올해 관련 예산 421억 원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를 소유한 일부 사찰이 관람료를 징수하는 데 대해 등산객이 반발하며 빚어진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후 일부 사찰이 문화재관람료를 계속 받자 등산객이 불만을 나타내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문화재청의 ‘문화재관람료 징수 현황’에 따르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전국 사찰은 50여 곳이다. 관람료는 1인당 1000∼6000원 수준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투우’를 폐지하라.” 지난해 12월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의회 앞. ‘투우 금지’라고 쓰인 팻말을 손에 쥔 시민들이 “고문은 쇼가 아니다. 투우를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바로 반대편에선 프랑스 투우협회 등 투우 지지자들이 모여 “투우는 지역의 문화유산이자 경제 상품”이라고 반발하는 맞불시위를 열었다. 의회에 발의됐던 ‘투우 금지 법안’이 이날 철회되자, 투우 존폐를 둘러싼 찬반 갈등이 한 자리서 맞붙은 것. 프랑스뿐 아니라 투우 종주국 스페인에서도 소싸움을 놓고 민속유산이냐 동물학대냐는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전북 정읍시의회가 소싸움대회 개최를 명목으로 올해 시 예산안에 2억8515만 원을 편성하면서 국내에서도 소싸움대회를 둘러싼 존폐 논란이 제기됐다. 소싸움은 경북 등 가야문화권에서 정월대보름 무렵 행해지던 민속행사다. 민속 문화재 전문가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서로 다른 두 마을을 대표하는 소가 맞붙는 소싸움을 통해 마을이 단합돼 농경공동체를 지탱해왔다”고 평했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는 물론 학계에서도 동물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소싸움을 존치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됐지만 현행법상 동물학대는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이 법에 따르면 소싸움대회는 명백한 동물학대에 해당하지만 이 법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지정한 11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관하는 소싸움 경기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동물보호법 예외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는 민속유산이 자연 소멸하는 것 역시 민속유산의 생리”라며 “동물보호법 예외조항을 폐지한다면 ‘개고기 식용 문화’처럼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과연 소싸움대회가 오늘날 반드시 존재해야 할까요.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A 위원) 소싸움대회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역시 전통 가치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현재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소싸움대회는 자신이 응원하는 소에 돈을 거는 사행성 게임처럼 변질돼 본래 소싸움이 지녔던 농경사회 결속이라는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소싸움 중 가장 유명한 경북 청도 소싸움대회을 운영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열린 ‘청도소싸움대회 최강자전’에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14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민속유산이라는 가치보다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커진 셈이다. 정 학예연구관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민속유산으로서 소싸움은 보존 가치가 있다”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이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추수철 농촌 마을을 한 데 묶어주는 옛 가치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폴라로이드사는 60초 안에 흑인을 가둔다.” 1970년 10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라로이드사. 경영진이 드나드는 주차장과 출입문은 물론이고 회사 게시판과 화장실 곳곳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나붙었다. 전단을 붙인 이는 폴라로이드 컬러사진연구소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화학자 캐럴라인 헌터였다. 그는 며칠 전 회사 실험실에서 흑인을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아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광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60초 안에 사진을 뽑아내는 신기술이 남아공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는 ‘유색인종 통행증’을 만드는 데 쓰였던 것이다. 헌터는 전단지를 뿌리며 회사에 맞서다가 해고됐지만 7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폴라로이드사를 남아공에서 철수시켰다. 사진 기술의 진보가 흑인을 차별 속에 가두는 현실을 바꾼 것이다. “폴라로이드와 같은 단순 기술 장치가 세상을 바꾼다면 인공지능(AI)이나 인터넷은 어떨까요. 우리는 과거보다 더욱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손에 쥔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흑인인 아이니사 라미레즈 전 예일대 재료과학부 교수(54)의 말이다. 라미레즈 교수는 어린 시절 헌터를 보며 과학의 윤리를 가슴속에 새겼다. 지난해 11월 번역 출간된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김영사·사진)의 저자인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과학기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은 무해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시계, 카메라, 전신 등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명사를 조명한 그의 메시지는 “인간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인간을 만든다”는 것. 일례로 그는 1927년 미국의 발명가 워런 매리슨(1896∼1980)이 만든 전자식 ‘쿼츠 시계’가 불러온 변화에 주목했다. 신기술로 값싼 손목시계가 대량생산되자 일상의 순간이 시간과 분, 초 단위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손목시계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며 “요즘 더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쉽게 예측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잘못된 정보가 움직이는 속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힘도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여론을 모으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과학기술을 바르게 사용하려면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영리하고 용감한 시민이 돼야 합니다. 제 책이 기술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새로운 렌즈가 되기를 바랍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폴라로이드사는 60초 안에 흑인을 가둔다.”1970년 10월 4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폴라로이드사. 경영진이 드나드는 주차장과 출입문은 물론이고 회사 게시판과 화장실 곳곳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나붙었다. 전단을 붙인 이는 폴라로이드 컬러사진연구소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화학자 캐럴라인 헌터였다. 그는 며칠 전 회사 실험실 문 옆에 붙은 게시판에서 흑인을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아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광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60초 안에 즉석 사진을 뽑아내는 신기술이 남아공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는 ‘유색인종 통행증’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단지를 뿌리며 회사에 맞선 캐럴라인은 결국 해고됐지만 7년간의 싸움 끝에 폴라로이드사는 남아공에서 철수했다. 즉석사진 한 장이 흑인들을 차별 속에 가뒀지만, 이런 현실을 바꾼 건 사람이었다.고작 폴라로이드와 같은 기술 장치가 세상을 바꾼다면 인공지능(AI)이나 인터넷은 어떨까. 흑인 소녀였던 아이니사 라미레즈 전 예일대 재료과학부 부교수(54)는 어린 시절 캐럴라인을 보며 과학의 윤리를 가슴속에 새겼다. 지난해 11월 30일 신간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김영사)을 펴낸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된 과학기술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즉석사진이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지탱하는 도구로 쓰였듯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은 무해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라미레즈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젊은 혁신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책에서 시계, 카메라, 전신 등 다양한 과학기술 발명사를 조명한 그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인간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인간을 만든다”는 것. 일례로 저자는 1927년 미국의 발명가 워런 매리슨(1896~1980)이 최초로 만든 전자식 ‘쿼츠 시계’가 불러온 변화에 주목했다. 신기술로 값싼 손목시계가 대량생산되자 일상의 순간들이 시간과 분, 초 단위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시간표’, ‘하프타임’, ‘타임아웃’과 같은 신조어도 이때 생겼다. 그는 “작은 손목시계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며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이 급변하는 요즘 우리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쉽게 예측조차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특히 인터넷은 우리의 삶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잘못된 점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내 손 안에 든 인터넷 세상에서 잘못된 정보가 움직이는 속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습니다.”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힘도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론을 모으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요즘 같은 ‘과학기술 황금시대’에 과학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토론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을 바로잡기 위해서 단순한 소비자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영리하고 용감한 시민이 돼야 합니다. 저의 책이 우리 주변의 기술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새로운 렌즈가 되기를 바라요.”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태초에 항문이 있었다. 입도, 뇌도, 심장도 아니다. 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은 바로 항문이다. 배아가 세포 분열을 하는 초기 단계에서 ‘원구’라는 중심이 생긴다. 태아는 이 구멍을 중심으로 성장하는데, 이 구멍이 태아의 항문이 된다. 뇌와 심장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항문이 태아 발달의 중심축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일부이지만 가장 말하기 꺼려지는 곳.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항문에 대한 모든 것을 전한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저자는 전공 분야인 미학뿐 아니라 정신분석학과 문화인류학을 넘나들며 언제나 인간의 중심축에 있었던 항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아가 항문을 중심으로 성장하듯 어린아이 역시 항문을 통해 성장한다. 태어나 처음 스스로 유아용 변기에 올라 변을 본 아이를 떠올려 보자. 아이는 마침내 혼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비단 성취감뿐일까. 저자는 인간 발달 과정을 설명한 정신분석학에서 항문이 갖는 중요성까지 짚는다. 항문은 어린아이에게 안과 밖, 나와 타자의 경계를 알려주는 핵심 기관이기도 하다. 내 몸 안에 간직하고 있던 무언가는 항문을 통해 몸 밖으로 배설된다. 이때 밖으로 배설된 변은 부모가 버려야 하는 쓰레기다. 저자는 “항문을 경계로 가치가 전도되는 과정을 깨닫게 된 아이는 훗날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어른이 된다”고 강조한다. 항문은 미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1926∼1997)는 1956년 발표한 시 ‘울부짖음(Howl)’에 대한 주석에서 ‘세상은 거룩하다. 영혼은 거룩하다. 살도 거룩하다. 코도 거룩하다. 혀와 성기와 손과 항문도 거룩하다’고 썼다. 일찍이 항문의 거룩함을 깨달은 그는 60대가 된 1980년대에는 아예 ‘괄약근’이란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벨기에의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빔 델보예는 자신이 묵는 호텔 메모지에 립스틱으로 항문 자국을 찍은 ‘항문 키스’ 연작을 2011년 발표해 항문에 대한 편견을 부쉈다. 저자는 “예술가들은 항문이야말로 인간의 공통분모이며, 인간의 본질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풀이한다. 정신분석학, 미학, 문화인류학 등 다채로운 틀로 항문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의 핵심은 “애초에 인간은 항문이었다”는 것.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항문이 지닌 인류 보편성에 주목한다. 돈이나 권력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가진 가장 취약한 이 구멍은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어릴 적 ‘똥침’ 당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같은 아픔을 느꼈던 것처럼. “똑같은 밑(항문)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준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태초에 항문이 있었다. 입도, 뇌도, 심장도 아니다. 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은 바로 항문이다. 배아가 세포 분열을 하는 초기 단계에서 ‘원구’라는 중심이 생긴다. 태아는 이 구멍을 중심으로 성장하는데, 이 구멍이 태아의 항문이 된다. 뇌와 심장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항문이 태아 발달의 중심축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일부이지만 가장 말하기 꺼려지는 곳. 23일 출간된 ‘애널로그’(문학동네)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항문에 대한 모든 것을 전한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저자는 전공 분야인 미학뿐 아니라 정신분석학과 문화인류학을 넘나들며 언제나 인간의 중심축에 있었던 항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아가 항문을 중심으로 성장하듯 어린 아이 역시 항문을 통해 성장한다. 태어나 처음 스스로 유아용 변기에 올라 변을 본 아이를 떠올려 보자. 아이는 마침내 혼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비단 성취감뿐일까. 저자는 인간 발달과정을 설명한 정신분석학에서 항문이 갖는 중요성까지 짚는다. 항문은 어린 아이에게 안과 밖, 나와 타자의 경계를 알려주는 핵심 기관이기도 하다. 내 몸 안에 간직하고 있던 무언가는 항문을 통해 몸 밖으로 배설된다. 이때 밖으로 배설된 변은 부모가 버려야 하는 쓰레기다. 저자는 “항문을 경계로 가치가 전도되는 과정을 깨닫게 된 아이는 훗날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어른이 된다”고 강조한다. 항문은 미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1926~1997)는 1956년 발표한 시 ‘울부짖음(Howl)’에 대한 주석에서 ‘세상은 거룩하다. 영혼은 거룩하다. 살도 거룩하다. 코도 거룩하다. 혀와 성기와 손과 항문도 거룩하다’고 썼다. 일찍이 항문의 거룩함을 깨달은 그는 60대가 된 1980년대에는 아예 ‘괄약근’이란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벨기에의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빔 델보예는 자신이 묵는 호텔 메모지에 립스틱으로 항문 자국을 찍은 ‘항문 키스’ 연작을 2011년 발표해 항문에 대한 편견을 부쉈다. 저자는 “예술가들은 항문이야말로 인간의 공통분모이며, 인간의 본질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 보여줬다”고 풀이한다.정신분석학, 미학, 문화인류학 등 다채로운 틀로 항문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의 핵심은 “애초에 인간은 항문이었다”는 것.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항문이 지닌 인류 보편성에 주목한다. 돈이나 권력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가진 가장 취약한 이 구멍은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어릴 적 ‘똥침’ 당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같은 아픔을 느꼈던 것처럼. “똑같은 밑(항문)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낸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간다.” 세종(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1490년대 함경도 변방에서 군관으로 일하던 남편이 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부칠 수 있었을까.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유물은 조선 초기 군관이었던 나신걸(1461∼1524)이 부인 신창맹 씨에게 한글로 써 보낸 편지글 2장이다.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 있는 신 씨의 묘를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관 속 신 씨의 머리맡에 편지가 여러 번 접힌 상태로 있었다. 편지를 넣은 보관함은 없었다. 아래, 위, 좌우 여백 없이 빼곡히 채워진 편지글에는 어머니와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없는 동안 가정을 잘 살펴 달라는 당부가 담겼다. 편지에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가 쓰인 점에 미뤄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하던 1490년대에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여 지난 시점에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의 하급 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낸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간다.” 세종(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1490년대 함경도 변방에서 군관으로 일하던 남편이 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부칠 수 있었을까.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사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편지는 조선 초기 군관이었던 나신걸(1461~1524)이 부인 신창맹 씨에게 한글로 써 보낸 편지 글 2장이다.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 있는 신 씨의 묘를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관 속 신 씨의 머리맡에 편지가 여러 번 접힌 상태로 있었다. 편지를 넣은 보관함은 없었다. 아래, 위, 좌우 여백 없이 빼곡히 채워진 편지글에는 어머니와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없는 동안 가정을 잘 살펴 달라는 당부가 담겼다. 편지에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가 쓰인 점에 미뤄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하던 1490년대에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약 45년이 지난 시점에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의 하급 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하급 무관 남성인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한글을 구사한 사실을 통해 한글이 여성 중심의 문자였다는 통념과 달리 조선 초기부터 남성도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임말과 호칭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