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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기관의 공직자일수록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고위참모 13명 가운데 6명(46.1%)이 올해 재산변동 신고 때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국무총리와 장관 등 내각 역시 재산 고지 거부 비율이 43.7%나 됐다. 전체 정부 고위 공직자 가운데 부모 자녀 등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비율이 27%인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고위 공직자는 재산변동을 신고할 때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부모 자식 등 직계가족의 재산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다만 가족 가운데 결혼해 분가하는 등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 개인정보 침해를 막기 위해 사전 허가를 받아 재산등록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직계 존비속의 고지 거부제는 공직자의 재산은닉 방편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실 등의 고위 공직자(13명) 가운데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참모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이정현 홍보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등 6명이었다. 국무총리와 각부 장관 15명(보건복지부·해양수산부 장관은 올해 공개 대상 아님)의 경우 전체 16명 중 정홍원 국무총리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서남수 교육부, 황교안 법무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방하남 고용노동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지난해에 고위공직자 10명 가운데 6명은 전년보다 재산이 증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 신고액은 28억3358만 원으로 1년 사이 2억7497만 원이 증가했다. 급여와 인세 수입이 늘어나서다. 정부와 국회 대법원 등이 28일 공개한 행정·입법·사법부 고위공직자 2380명의 재산변동 신고 내용에 따르면 평균 재산(재산 500억 원 이상 국회의원 4명 제외)은 약 13억2000만 원(지난해 말 기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전체 고위공직자의 60.8%(1423명)가 재산이 늘어난 것은 급여 저축 등으로 재산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앙 및 지방정부, 산하 기관 등 행정부 공개대상 1868명 가운데 62%(1152명)가 재산이 증가했다. 국회의원은 전체 295명 가운데 64.5%인 190명의 재산이 늘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자살자 10명 중 6명은 부모나 배우자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 분위기가 억압적이어서 가족 간 교류가 적었을 때도 자살 확률이 높았다. 동아일보 탐사보도팀은 2011년~2013년에 발생한 자살사건 60건을 대상으로 심리학 전문가들과 심리적 부검을 진행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의 생애를 되짚어가며 절망에 이르게 된 경로와 고통의 실체를 찾는 작업이다. 한국은 하루 평균 43명(2011년 기준)이 자살하는 나라다. 인구 10만 명당 31.7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인구 10만 명당 12.6명(2011년). 우리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자살률 세계 1,2위였던 핀란드는 1986년 국가 차원의 심리적 부검 프로젝트를 세계 처음으로 시도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30.3명을 2012년 17.3명으로 줄였다. 취재팀은 자살의 씨앗이 폭력적인 가정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장기간 학대 및 방치된 사례, 결혼 후 남편한테 상습적인 신체·언어폭력을 당한 경우를 합치면 65%(39건)에 달했다. 가족 간 관계가 권위적이고 경직돼있어 교류가 적었던 사례도 63.3%(38건)였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고인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출해주지 않았다는 무력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성장한 뒤 실직이나 채무누적, 이혼 등 고난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쉽게 빠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증오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허우적대다 우울증 같은 정신적 후유증도 남았다. 이 때문에 가정 밖에서도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부모와 건전한 신뢰관계를 맺은 경험이 없어 주변의 호의도 잘 믿지 못했다. 고민이 생기면 나누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이 낮아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마저 강했다. 대구의 한 30대 여성은 아버지의 학대 후유증으로 말을 더듬고 손을 떠는 강박장애를 안게 됐다. 처음엔 참아주던 남편도 이 증세를 볼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다. 이 여성은 결국 자살했다. 어릴 적 가정폭력을 당한 남성 상당수는 폭력성향을 대물림 받았다. 이들은 아내와 자녀를 괴롭히다 외톨이가 됐고, 자살로 내몰릴 때까지 외면 받았다. 아버지가 폭력으로 가족을 휘어잡는 걸 봐온 사람은 자기 문제도 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고비가 왔을 때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벗어나려 했다. 자살은 대표적인 자기파괴 행위다. 가족간 의사소통이 취약한 가정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는 가족끼리 어려운 상황을 공유해본 적이 드물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직전에는 소외감이 극도에 달하는데 성장과정에서 가족의 지지와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살을 더 쉽게 결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삭막한 가정일수록 서로의 감정에 무관심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족이 신호를 보내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어쩌다 힘들다고 토로했을 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도 힘들어" "이겨내야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접한 고인들은 한 번 닫힌 대화창구를 좀처럼 다시 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처음으로 8개월에 걸쳐 체계적인 심리적 부검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달 말경 최종 보고서와 함께 종합적인 자살 방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신광영 기자neo@donga.com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시장에 모인 300명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칠 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한 명이 즉사하자, 피고인 공재익은 헌병에게 사람을 살해하고 그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피고인 조기시 최덕용 이금봉은 헌병 주재소로 돌을 던졌다. 이 죄를 물어 각각 징역 2년과 3년에 처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만세 투쟁을 하다 검거된 조선인들에 대한 판결문이다. 당시 일제 조선총독부는 무고한 백성들을 치안방해 세력으로 몰아 처벌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3·1운동으로 재판을 받은 55건(220명)을 선별해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을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빙이 충분하지 않다’고 스스로 밝히면서도 ‘여러 죄명이 겹쳐 있어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며 징역형을 남발했다. 이번에 공개된 판결문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유관순 열사보다 열흘 먼저 만세운동을 주도한 여학생들도 있었다. 충남 천안 광명학교 여학생 민옥금(당시 17세) 한이순(18) 황금순(18)은 1919년 3월 20일 양대리 시장에서 학생 80명을 인솔해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모두 징역 1년에 처해졌다. 이은선은 그해 3월 24일 인천 계양 장기리 시장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하던 중 체포된 동료를 구하려다 일제 순사의 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3·1운동 참가자들은 16세 학생부터 70세 노인까지 노소 구분 없이 연령이 고루 분포돼 있었고 직업도 다양했다. 교사, 농부, 인력거꾼, 잡화상, 이발사, 승려, 날품팔이, 수공업자, 의사, 시계수리공, 야채행상 등 거의 전 계층으로 3·1운동의 불길이 번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이 충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28일 퇴임하기로 했다. 정 사무총장은 2월 임시국회 일정이 마무리되는 28일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병길 국회 사무차장도 경기 여주시장 출마 준비를 위해 다음 달 초순 퇴임한다. 공직선거법상 현직 공무원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인 다음 달 6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두 사람이 사퇴하면 국회 사무처 설립 이래 처음으로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함께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강창희 국회의장의 임기가 5월 29일에 끝나기 때문에 차기 국회의장이 선출될 때까지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당분간 임병규 입법차장이 사무총장 권한대행을 맡는다. 한편 박찬우 안전행정부 제1차관(55)이 충남 천안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25일 사퇴했다. 현직 차관이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것은 처음이다. 박 차관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후회 없는 공직 생활을 했다. 33년간의 공직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천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매년 2월 전국의 대학과 초중고교에서 열리는 졸업식 1만여 건 가운데 대통령이 어느 곳에 참석했는지를 보면 당시 정부의 국정 철학이 보인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졸업시즌을 맞아 ‘대통령과 함께한 특별한 졸업식’을 주제로 사진 등 관련 기록물 23건을 대통령기록포털(pa.go.kr)에 24일 공개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4년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해 “조국 근대화와 민족 중흥을 위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취약한 정권 기반을 의식해서인지 1985년 경찰대 1기 졸업식을 방문해 ‘치안 강국’을 역설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이화여대 졸업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사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첫 사례였다. 그는 “세계화 시대에는 여성만의 직업이 따로 없고 모든 분야에서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며 여성의 경쟁력이 국가 발전의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불우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학업을 완수했거나 우수 벤처기업을 창업한 졸업생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각 대학의 수석 졸업자들이 초청되던 기존 관례를 깬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 이공계 우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 행사에서 “저는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반대하지만 우리 사회가 부득이 용인해야 할 엘리트 우대의 영역이 있다면 그 하나는 과학기술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성화고 육성에 관심이 많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3년 인천 전자마이스터고 1회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는 마이스터고 활성화를 주요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재임 중 입학식과 졸업식에 모두 참석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지방자치단체별 채무보증 한도액을 설정해 관리하고 (일부 지방 공기업의) 자산 유동화 방식에 대해서도 철저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법질서 및 안전 분야 업무보고에서 “지자체들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각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에 대해 안행부에서 채무 발행 한도액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업체의 대출금을 채무 보증하는 방식으로 과도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지방 공기업들은 안행부의 공사채 발행 승인을 회피하려고 자산 유동화 방식으로 기업 어음을 발행한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보증 채무 총액은 2012년 말 5조 원에 이르며, 지방 공기업이 자산 유동화 방식으로 발행한 기업 어음도 1조 원에 육박한다. 박 대통령의 지적은 안행부가 올해 도입할 예정인 ‘지자체 파산제’와 맥을 같이한다. 지자체 파산제는 채무불이행 등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지자체에 정부나 상급단체가 개입해 재정을 회생시키는 제도다. 정부는 지방정부 부채가 100조 원에 달해 재정이 극도로 악화된 만큼 파산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하고 비정상을 바로잡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기관부터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장애인을 외딴 섬으로 끌고 가 노예처럼 부려먹은 일명 ‘염전 노예 사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소설보다 현실이 더 기가 막힌다 하더니 정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하겠다”고 말했다.이재명 egija@donga.com·신광영 기자}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설악산 설원은 케이크의 하얀 생크림처럼 매끈했다. 12일 정오, 눈 위로 햇살이 반사돼 눈부시게 빛났다. 길과 길 아닌 곳의 경계는 사라지고 없었다. 발을 내디뎠다. 눈은 포근하게 등산화를 감싸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가슴까지 소리 없이 빨아들였다. 7일부터 계속된 폭설로 이날 설악산의 적설량은 저지대가 1.5m, 고지대는 2m까지 쌓였다. 전례 없는 ‘눈 폭탄’이었다. 설악산 비선대로 가는 길. 기자와 등반길에 동행한 사내들의 입에서 ‘아이쿠’ ‘아이 씨’ 하는 소리가 났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 사무소 재난안전관리반 대원들이었다. 폭설로 사라진 산길을 복원하는 작업을 대원들은 ‘러셀(Russel)’이라고 불렀다. 제설차를 발명한 미국인의 이름을 딴 것. 눈 덮인 산길을 미리 뚫어놓지 않으면 등반객들이 길을 잘못 들어 조난되거나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설악산 탐방로는 기상청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면 폐쇄되고 대원들이 길을 뚫어야 다시 열린다. 이날 재난안전관리반 대원 7명이 폭설 후 처음으로 나선 러셀 작업에 기자가 따라나섰다.하얀 암흑 선두에 선 대원이 삽을 들어올려 가슴팍까지 차오른 눈을 헤쳤다. 그러자 사방에서 눈이 모래처럼 흘러내려 빈 공간을 채웠다. 새로 내린 눈은 습기가 없어 사르르 부서졌다. 삽으로 눈을 걷어치우면서 상체를 앞으로 굽혀 눈을 짓눌러야 했다. 그러곤 다시 무릎으로 눈을 다지며 다른 쪽 발을 허리 높이까지 들어올려 한발자국 나아갔다. 앞사람이 그렇게 내놓은 흔적을 일렬로 선 뒷사람들이 따라 걸으며 길을 만들었다. 7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온전히 몸으로 길을 트는 이 과정을 거치자 50cm 정도의 길이 생겼다. “야, 얼마나 갔다고 옆으로 자빠지냐!” 30m쯤 나아갔을 즈음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맨 앞에 가던 대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으로 드러누운 것이다. 눈으로 막힌 길을 처음으로 열어야 하는 선두는 체력 소모가 가장 크다. 먼저 첫발을 내딛다 보니 눈 웅덩이도 자주 만난다. 바위틈을 잘못 디디면 자기 키를 훌쩍 넘겨 눈에 잠길 때도 있다. 한순간 ‘하얀 암흑’에 압도당하고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진다. 일반 등산객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살아나오기가 쉽지 않다. 위험하고 힘든 선두는 대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두 번째 대원이 선두가 되고, 맨 앞에 가던 대원은 맨 뒤로 가는 식이다. 7명이 몇 사이클을 돌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온 길을 되돌아보니 200m가 채 되지 않았다. 이날 목표량 500m를 채우려면 3∼4시간을 더 해야 했다. 설악산 탐방로의 총 길이는 90km. 겨울마다 설악산 관리사무소에 소속된 대원 20여 명이 하루 4∼8시간씩 몇 주간 러셀 작업을 한다.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대원들의 신경이 더욱 예민해졌다. 경사진 곳에서 눈을 뚫다 보면 아래쪽이 갑자기 푹 꺼지면서 눈사태가 덮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온 뒤 햇볕이 들어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고, 그 위에 새 눈이 쌓이면 미끄러운 얼음 위에 거대한 눈덩이가 얹어진 모양새가 된다. 가벼운 충격에도 순식간에 밀려 내려올 수 있다. 가슴까지 눈에 파묻힌 채 러셀 작업을 하는 도중엔 눈사태가 오는 걸 뻔히 보고도 피할 수 없다. 강한 눈사태에 휩쓸리면 순식간에 200∼300m를 떠내려간다. 러셀 도중 기자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대원들이 ‘쉿’ 하며 눈치를 줬다. 임준호 대원(구조경력 12년 차)은 “오르막에서는 최대한 정숙해야 한다. 목소리도 파동이 있어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입산이 전면 통제된 설산의 한복판에선 작은 말소리도 명료하고 크게 들렸다. 홀로 살아남은 자의 눈빛 폭설이 내린 직후엔 눈사태나 크고 날선 고드름이 떨어지는 낙빙 위험 때문에 러셀 작업을 가급적 자제한다. 하지만 설산에 고립된 등반객의 조난 신고가 들어오면 위험을 무릅쓰고 눈길을 헤쳐야 한다. 손경완 대원(구조경력 15년 차)이 2012년 2월 공룡능선에서 조난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의 일이다. 목적지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눈 속에 파묻힌 사람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인근 탐방로가 진작 폐쇄돼 사람이 들어와 있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거기 누구예요!” 50대로 보이는 남성은 눈이 풀린 채 손 대원을 쳐다볼 뿐 답이 없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정신 차려요!” 이 조난객은 함께 눈길을 헤매던 친구 2명을 조금 전 눈사태로 쓸려 보내고 혼자 남겨진 상태였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데다 저체온증으로 의식이 혼미해져 구조요청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함께 출동한 구조대원 절반은 원래 목적지로 가고 나머지는 그곳에 남아 사라진 2명을 수색했다. 하지만 곧 해가 저물고 바람까지 세게 불어 구조대원들마저 오도 가도 못하고 밤을 지새우는 비박을 해야 했다. “처음 들어온 신고만 생각해 비박 준비를 안 하고 올라간 터라 텐트도 없이 맨몸으로 버텼죠. 잠들면 얼어 죽기 때문에 서로 따귀를 때려가며 정신을 차리게 했습니다.” 비박은 요즘 낭만적 산행 방식 중 하나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피치 못할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지난해 겨울 비박 산행을 온 등산객이 바위 밑에서 추위를 달래려 불을 피웠다가 눈이 녹으면서 바위가 움직여 압사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대원들은 다음 날 아침 수색을 재개해 300m쯤 휩쓸려 내려간 시신을 발견해 업고 내려왔다. 나머지 시신 한 구는 석 달 뒤인 5월, 눈이 다 녹은 뒤에야 발견됐다. 처음 눈사태를 맞은 곳에서 무려 1km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다.고급 등산장비의 덫 조난객들 가운데는 고가의 등산장비만 믿고 섣불리 산행에 나선 경우가 많다. 고어텍스 등산화나 두꺼운 다운점퍼만 있으면 혹한에 끄떡없다고 주장하는 등산용품 업체들의 광고에 현혹된 탓이다. 하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고급 장비라도 오히려 독이 된다. 겨울 산에 오를 때 처음부터 두껍게 입는 건 금물이다. 경사를 오르다 보면 금세 땀이 맺히고 바깥의 추운 공기와 만나 얼어붙는다. 이 상태로 등산하는 건 대형 냉장고를 몸에 이고 가는 꼴이다. 초반부터 땀을 내며 체력을 소진시킨 데다 체온까지 떨어져 저체온증이 쉽게 올 수 있다. 저체온증이 오면 판단력이 흐려져 위급 상황에 대비한 장비를 챙겨오고도 필요할 때 활용하지 못한다. 손형일 대원(구조경력 10년 차)은 “탈진해 떨고 있는 조난객의 가방을 열어 보면 따뜻한 옷이나 비상식량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번 떨어진 체온은 다시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애초에 체온 관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가벼운 바람막이만 걸치고 올라가다 휴식을 취할 때 체온 유지용으로 두꺼운 점퍼를 입는 게 정석이다. 과시 목적으로 산에 오르다 위험을 자초하는 등산객도 많다. 일부 산악회 회원들은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들어가 사진을 찍은 뒤 동호회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자랑삼아 올린다. 얼마 전 얼어붙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추락해 중상을 입은 사례가 있었다. 손경완 대원은 “남들이 못 가는 데를 가고, 누가 빨리 정상에 오르느냐로 경쟁하는 잘못된 등산 문화 때문에 목숨을 위협하는 무모한 산행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단체로 불법 산행을 하다 조난된 일행 중에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좋은 경치 보겠다”며 무작정 따라온 사람들이 상당수다. 불법 산행 중인 사람이라도 조난당하면 구조해 하산시키는 게 급선무지만 상황이 끝난 뒤에는 규정에 따라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한다. 목숨 걸고 구조해놓고 딱지를 끊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못 낸다”고 버티거나, 대원들에게 “에라,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한 놈아” “평생 그러고 살아”라며 경멸하듯 쏘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못 걷겠다는 거구 남성 업고 하산했더니… 무엇보다 대원들이 씁쓸해 하는 건 위급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간사한 단면이다. 손경완 대원은 출입통제구역에서 허리 부상을 입고 쓰러진 조난객을 구하러 갔다가 자초지종을 듣고 기가 찼다고 했다. 아무리 “도와 달라”고 소리쳐도 등산객들이 “힘내라”는 말만 하고 다들 내빼더라는 것이다. 매서운 눈바람을 견디다 못해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한 등반객은 “나도 불법 산행 중이라 신고하면 과태료를 내야 해서…”라며 지나쳐갔다. 다행히 누군가 구조신고를 하긴 했지만 접수요원이 자세한 위치를 물으려 하자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걸려온 번호로 다시 걸어 보니 발신자 추적이 안 되는 공중전화였다. 산에서 편하게 내려오려고 환자 행세를 하는 ‘나이롱 조난객’들도 많다. 중상자는 헬기로 이송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대원들이 등에 업고 하산하는데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손형일 대원은 “양 발목이 다 삐었다”며 주저앉은 체중 90kg의 남성을 2시간 동안 혼자 업고 내려왔다. 거구의 남성은 “조금도 못 걷겠다”고 하소연했다. 손 대원이 주차장까지 업고 가 “여기 맞죠” 하며 내려주는 순간 그 남성은 “아이고, 고생하셨네”란 인사만 남기고 관광버스로 뛰어 올라갔다. 러셀 작업은 허리와 무릎에 하중이 많이 가 대원 대부분은 무릎 관절이 좋지 않다. 손 대원 역시 무릎 연골이 거의 닳아버린 상태다. 손 대원은 “내 무릎이 나가는 것도 억울하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정말 위급한 신고가 들어와도 빨리 출동을 못하는 게 더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부상 신고가 들어와 “병원 응급실까지 모셔드리겠다”고 안내하면 “그럼 올 필요 없다”며 물러나는 신고자도 상당수라고 한다. 조난 신고를 해 대원들을 올라오게 한 뒤 물이나 비상식량만 받고 “알아서 가겠다”고 하는 등산객도 있다. 유규하 대원(구조경력 9년 차)은 “무거운 응급장비까지 다 메고 올라갔는데 ‘물셔틀’ ‘밥셔틀’을 당하고 나면 다시 내려오기 힘들 만큼 기운이 빠진다”고 말했다.사망자 발견 순간 날아든 비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을 대원들은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한겨울 드넓은 설산에서 ‘김서방’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난자를 찾아 헤매다 미세한 발자국을 봤을 때, 치명상을 입은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상태가 좋을 때, 구급차에 태워 보낸 중상자가 의식을 회복해 감사 연락을 해 왔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생각을 해봐요. 내가 사람을 살렸는데…. 평생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대원들은 조난 현장에서 감동적인 순간과 종종 맞닥뜨린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흘러든 두 등반객이 서로 처음 보는 사이에도 손을 잡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구조대를 기다렸던 사례도 있었다. 손형일 대원은 몇 년 전 이틀간의 수색 끝에 사망자를 발견한 순간 무전을 통해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운명 소식을 전해 들었다. 손 대원은 “그날 이후 사망한 조난객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모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민간구조대 경력까지 포함하면 20년 가까이 설악산을 터전으로 살아온 대원들에게 “산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뭔가 그럴 듯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대원들의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모르겠어요. 느끼는 게 매번 다르니까.”“산…. 좋고 또 무섭죠. 감히 뭐라고 얘길 못하겠어요.” “뒷산 가듯 설악산에 오는 분들도 있지만 저에겐 한없이 거대한 존재죠.”러셀 작업을 마치고 대원들과 숙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무전이 울렸다. ‘조난자 발생. 희운각 대피소 1km 하단에 3명.’방금 전까지 무릎과 허리를 주무르며 “내 연골 다 어디 갔어?” 하고 타령하던 대원들이 말없이 젖은 등산복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설악산=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가난한 어린이, 부랑인, 일반 시민 등을 강제 수용한 뒤 중노동을 시키고 가혹 행위와 살인까지 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정부가 27년 만에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안전행정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복지부,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정부 합동 회의를 열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안행부 측은 우선 자료와 생존 피해자의 진술 등을 확보한 뒤 특별법 제정과 보상 문제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당시 정부가 부랑인 수용 인원에 따라 보조금을 주기로 하자 이를 타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수용자를 늘려 최대 3100명에 달하기도 했다. 복지원 측은 원생을 천막에서 생활하게 하고 벽돌 나르기 등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을 시켰다. 썩은 밥을 먹이고 달아나다 발각되면 곡괭이로 때리거나 살해한 뒤 뒷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기도 했다. 이 사건 공식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한다. 1987년 3월 탈출하려던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자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복지원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원장 박모 씨가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는 등 가벼운 처벌만 받았을 뿐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산기가 있으니 제발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윗집에 이런 거짓말이라도 하면 좀 나아지려나. 이웃 아줌마들 말마따나 말이다. 아니야, 관두자. 그 사람들 어차피 마주칠 텐데 나 임신 안 한 거 알아보겠지. 경기 화성시 향남주공아파트 5단지 1층에 사는 주부 김모 씨(33·여)에겐 이런 생각을 하며 윗집에 대한 불만을 누르며 살던 나날이 있었다. 2층에서 나는 ‘쿵쿵’ 소리는 오후 8시가 지나면 ‘마성’을 드러냈다. 그 시간은 김 씨의 일곱 살 아들이 잠드는 때였다. 아들을 깨우지 않으려 고요히 있다 보면 위층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애가 거실에서 부엌으로 쪼르르 달리네… 얼씨구 이젠 안방으로?’ 김 씨는 소리만으로 윗집 아이의 동선을 상상했다. ‘누구는 애 안 키워 봤나….’ 이가 갈렸다. 김 씨도 한때 층간소음 가해자였다. 아파트 5층인 친정에 아들을 데리고 가면 아래층 신혼부부가 “시끄럽다”며 올라와 친정아버지와 얼굴을 붉히곤 했다. 김 씨가 3년 전 지금의 1층으로 이사 온 건 층간소음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 씨는 자신도 한때 가해자이던 시절을 떠올리며 윗집 소음을 1년가량 참았지만 한계가 왔다. 김 씨는 일단 경비원에게 2층에 대신 항의해 달라고 했다.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김 씨는 경비실에 찾아가 항의를 제대로 전달하는지 통화 내용을 직접 확인했다. “그 집에 혹시 아이가 뜁니까?”(경비원) “안 뛰는데요.”(2층 집) 집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1시간 넘게 시달리다 2층 집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경비실로 달려간 김 씨로선 괘씸한 반응이었다. 김 씨는 2층 집에 직접 인터폰으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얼마 뒤 다른 이웃을 통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2층 집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저희 집은 조용한 집인데요.”(2층 집) 김 씨는 결국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 관리위원회에 도움을 청했다. 좀처럼 인터폰을 받지 않던 2층집 주인 이모 씨도 더는 어쩔 수 없었다. 인터폰 화면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서너 명이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리소장, 퇴직 교장 등 층간소음 관리위원들이었다. 문이 열리자 위원들은 굳은 얼굴로 현관에 서 있는 이 씨에게 안부부터 물었다. “요즘 층간소음으로 많이들 힘들어하던데 괜찮으세요?” ‘아래층의 메신저’를 자임하며 윗집을 가해자로 몰아갔다간 되레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었다. 이 씨는 “저희 집도 위층에서 많이 뛰는데 그냥 참아요. 올라가 봐야 싸움밖에 더 합니까”라고 했다. 이 씨의 집 거실에는 두께가 5cm쯤 되는 매트가 넓게 깔려 있었다. 그 위에 두툼한 이불까지 깔아 걸으면 푹푹 파였다. 24개월 된 딸이 자주 뛰어다녀 이 씨가 취한 조치였다. 위원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밑에 1층에서 아이 뛰는 소리 때문에 힘들다고 하던데….” 이웃 원로들이 전하는 말이라 이 씨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며칠 뒤 이 씨는 1층으로 걸어 내려오다 문을 열고 나오던 김 씨와 마주쳤다. “저희 집이 좀 시끄럽나요?” “저희 애가 저녁 8시면 자요. 그 후론 조용히 해 주시면 좋겠어요.” 2년 넘게 한 층을 사이에 두고 지낸 이웃의 첫 대화였다. 김 씨는 그동안 ‘2층 집 어디 만나기만 해 봐라’ 하고 별러 왔었다. 하지만 관리소장에게서 “2층에 가 보니 매트에 이불까지 깔고 살더라”라는 말을 전해 들은 뒤라 화가 누그러져 있었다. 윗집 이 씨는 아랫집 아이가 오후 8시에 잠든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이 씨 역시 잠든 딸이 깨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보통 부모였다. 얼굴을 몰라 스쳐 지나는 사이던 두 가족은 안면을 튼 이후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김 씨는 자연스레 윗집 아기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됐다. ‘윗집 사람’이란 호칭은 ‘OO이 아빠’ ‘OO이 엄마’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윗집 소음은 크게 줄지 않았다. 김 씨는 이 씨를 만날 때마다 ‘좀 더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씨는 “신경 쓸게요”라며 웃어넘겼다. 밤에 쿵쾅거리는 소음의 강도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소음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2시간 넘게 이어지던 소리가 30분으로 줄었다. 윗집 아이가 뛰면 부모가 자제시킨다는 의미였다. 김 씨는 윗집 소음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기가 신났나 보다’ ‘지치면 그만하겠지’ 하고 생각해요. 아이가 예쁘고 이름도 아니까 친구 아이가 뛰노는 것 같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소리가 작게 들려요.” 김 씨와 이 씨 가족의 갈등 탈출기에는 여러 시사점이 있다. 우선 갈등이 6개월 넘게 지속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경우는 이웃사이센터나 아파트 층간소음위원회 등 제3자를 경유하는 게 좋다. 감정이 격앙된 채 대면했다간 가벼운 말실수로도 상대를 자극하게 된다. 갈등의 실마리는 서로의 특수한 상황을 알게 될 때 풀린다. 김 씨는 윗집이 매트 위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지내는 등 소음을 줄이려 노력한다는 점을, 이 씨는 아랫집 자녀가 오후 8시에 잠을 잔다는 점을 알고 나서 적대감이 약해졌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서로 사정을 이해하면 소리에 대한 긴장도가 떨어져 같은 소리도 전보다 작게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 간에 소음이 나는 시간을 조율해 소음의 시작과 끝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면 듣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층간소음이 ‘고문’이 되는 건 불쑥 찾아오고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갈등이 심한 가정에선 공식 소음 피해 기준을 초과하는지 확인해 보자며 이웃사이센터나 주거문화개선연구소 등 중재기구에 소음 측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음 측정은 갈등을 오히려 부추길 소지가 크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소음 피해로 인정하는 기준은 1분간 평균소음이 낮에 40dB(데시벨), 밤에 35dB이 넘을 때다. 이 기준은 사람 귀에 들리는 소리만 측정한 것으로 청각뿐 아니라 촉감으로 진동이 전달되는 층간소음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실제 측정을 하면 대부분 기준치를 밑돈다. 이를 두고 가해자는 “그쪽이 예민하다”며 기세등등해 하고, 피해자는 “조사 결과를 못 믿겠다”고 반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로 사정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해법이 없는 것이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 독자제보 기다립니다내부 고발 및 이슈 제기가 필요한 사안이라면 동아일보에 제보해 주십시오. 독자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프리미엄 리포트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PremiumReport)를 방문해 ‘게시물 작성’ 또는 ‘메시지 보내기’를 하시거나 e메일(ssoo@donga.com)로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도움주신 분들=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 정을규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차장,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세종대 교수), 손세관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이강원 경실련 갈등해소센터 소장,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서울 수락산 아래 고즈넉하게 터 잡은 A아파트(1997년 준공). 2008년 학원 강사 윤모 씨(45) 눈에 이 아파트가 들어왔다. 하루 8시간 넘게 강의를 한 뒤 돌아와 쉬기에 최상의 환경이었다. 그해 10월 윤 씨 부부와 아들(9)은 이 아파트 1108호(윗집) 주민이 됐다. “조용하고 여유로웠거든요. 그런데 아랫집이 이사 오면서부터…. 저희 가족은 공포에 질려 살고 있어요.” 지난해 5월 24일 주부 황모 씨(45·여)는 꿈에 부풀어 1008호(아랫집)로 이삿짐을 들였다. 황 씨는 1999년 43㎡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뒤 30년 넘은 낡은 임대아파트를 전전했다. 샤워기를 틀면 녹물이 나오는 곳이었다. A아파트는 전세였지만 결혼 14년 만에 입성한 민영아파트였다. “이사 온 날 밤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윗집에서 24시간 천둥치는 소리를 내면서 ‘우린 조용하다’고 발뺌하는데 미칠 지경입니다.” 평화로워 보였던 A아파트. 그 안에서 층간소음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 씨는 “윗집에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다”며 지난해 말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민원을 넣었다. 윗집에 항의하러 갔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최근 윗집 앞에서 신문지를 깔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7일과 8일, 윤 씨와 황 씨를 각각 만나 8개월간의 갈등기를 들었다. 그들은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이야기했다.》2013년 5월 31일 PM 9:00 딱 5분 윗집: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인데요.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아들과 아들 친구 2명이 집에 온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아랫집은 일주일 전 이사 오던 날 밤늦게까지 못을 박지 않았나. 우린 참았는데…. 아랫집: 일주일째 소음에 시달린다. 오늘 밤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쿵쾅거린다. 경비실을 찾았다. “애들 5분 있었다는데요.” 우리 집 천장에서 분명 30분 넘게 소리가 났는데 ‘딱 5분’이라고 거짓말이다. 일주일을 참은 나는 졸지에 5분도 못 참는 예민한 사람이 됐다. 6월 5일 낮 12:10 첫만남윗집: 초인종이 울렸다. “아래층에서 왔어요.” 아이 뛰는 소리가 나서 왔단다. “이사 온 뒤로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요.” 아이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웃으며 말했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고 있었어요. 저희 집 소리는 아닌 것 같아요.” 아랫집: 내가 다 잘못 들었단다. 아이가 없었더라도 그들이 집에 있었다면 아이 뛰는 소리와 비슷한 소음을 낸 건 사실 아닌가. 저들은 소음도 내지 않고 날아다닌다는 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걸 또 발뺌이다. 나를 소리의 근원도 구분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태도가 불쾌하다. 6월 13일 PM 8:00 햇볕 정책윗집: 아랫집에서 또 왔다. TV 소리가 꽝꽝 울린단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층간소음 실험’을 한다며 집에 들어와 식탁 의자를 끌더니 갑자기 “우리 애가 보던 책이 있는데 이 집 아이 줄게요”라고 한다. 누명을 씌우다 말고 돌변해 선물을 준다니. 당황스럽다. “괜찮아요.” 아랫집: 분명 TV 소리였는데…. 실험을 해 소음원을 명확히 해보면 오해가 풀릴 것 같다. 실험 결과 평소 듣던 소리인지 애매하다. 이참에 친해지면 소음도 달리 들리려나. 어렵게 책을 주겠다고 말을 꺼냈더니 “됐어요”하며 단칼에 거절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 번 차 마시러 오라고 제안했다. 그때마다 “재수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또 거절이다. 역시 상종 못할 사람이다.6월 14일 PM 8:00 자작극?윗집: 새벽녘. 어디선가 쿵쾅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녹음했다. 우리 집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다. 이날 저녁 아랫집에서 항의하러 왔기에 새벽에 녹음한 소리를 들려줬다. “부부끼리 소리 내고 녹음한 거죠?” 자작극이란다. 감정이 폭발해 따졌다. “저희 집에서 이상한 소리 낸다고 소문내시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아랫집 여자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항의를 받을 때마다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대화가 안 된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다. 아랫집: 오후 8시. 소음이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는 아이 뛰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다. 부부가 ‘쿵쿵’ 찧으며 뛰는 소리다. 몇 번 항의했다고 보복 소음을 내는 거다. 윗집은 의도적으로 베란다 문을 수십 번씩 ‘드르륵 쾅’ 닫는다. 볼링공을 내리꽂고 거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녹음한 걸 틀더니 자신들은 단 한 번도 소음을 낸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내가 다 잘못들은 거란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고소한단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7월 3일 PM 10:00 문 열어요윗집: 감정 통제를 못하는 아랫집.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층간소음 살인도 나지 않았나. 아내에게 당부했다. “나 없을 땐 문 열어 주지 마.” 며칠 후 아내는 샤워를 하다 말고 전화했다. “또 왔어. 무서워.” 10분 넘게 문을 두들긴단다. 부리나케 퇴근해 문을 열려는 순간 아랫집에서 올라온다. “당장 문 열어 봐요.”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린 일상적인 소음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문 앞에서 설명했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집에 있지도 않은 인라인스케이트, 볼링공 이야기를 하며 ‘보복 소음을 낸 걸 인정하라’는 말을 30분째 반복하더니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정신이 아픈 사람 같다. 아랫집: 망치로 내려치는 소리가 난다. 샤워기를 욕조에 대고 일러 두들기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 올라갔다. 없는 척이다. 화가 나 속이 터질 것 같다. 이 집 여자가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 아이를 우리 집 욕실에 세워 놓고 난 윗집 앞에 서서 휴대전화로 물었다. “윗집에서 물 쓰는 소리 나니?” 소리가 난단다. 보복 소음을 내더니 이젠 아예 없는 척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윗집 아저씨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올라갔다. 자기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시켰단다. 내가 환청을 듣는단다. 자신들은 한 번도 소음을 낸 적이 없다는 말만 30분째다. 윗집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7월 13일 PM 7:00 소음 실험윗집: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아파트 관계자 8명과 우리 부부, 아랫집 부부가 모여 층간소음 중재위원회를 열었다. 중재위원 절반은 우리 집에, 절반은 아랫집에 간 뒤 우리 집에서 소음을 낸 다음 그 소리가 아랫집에서 들린다는 소음이 맞는지 확인키로 했다. 문을 쾅 닫고 의자를 끌었다. 아랫집 여자가 말했다. “평소 듣던 소음이 아니네요.”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렸다. 아랫집: 그 소음이 아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윗집은 문을 닫고 목격자도 없이 고의적으로 소음을 낸다. 새벽에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마늘을 한가득 빻는다. 내가 가면 다 치워버린 뒤 말한다. “저희는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평소 하던 짓을 똑같이 했겠는가?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 거짓말하는 이들이 한 실험을 어떻게 믿나. 10월 30일 AM 1:00 현장 발각윗집: 장인어른 장례를 마치고 처가 식구가 모였다. 그녀가 또 올라와서 쏘아붙인다. “지금 몇 시인데 이렇게 떠드세요?” 내가 묻고 싶다. 지금 몇 시인데 남의 집에 오는 건가. 날이 밝은 뒤 와야 정상 아닌가. “죄송합니다.” 소음을 낸 건 사실이기에 일단 사과했다. 아랫집: 우당탕탕, 쾅. 새벽 1시에 미치지 않고서야. 중재위원이 속아 넘어가자 대놓고 보복 소음이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을 안 열어준다. 한참 뒤 열더니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본다. 친척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게 보이는데 가족회의 ‘좀’ 했단다. 저 입에서 언제쯤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까. 2014년 1월 4일 AM 6:00 노숙 시위윗집: 4일 오전 9시 전화가 왔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상담사입니다. 새벽부터 층간소음이 난다고 아랫집에서 민원이 들어와서요.” 무슨 소리인가. 우린 집에 없다. 4일째 집을 비우고 여행 중이다. 상담사에게 호텔에서 찍은 가족사진과 톨게이트 영수증을 찍은 사진을 증거로 보냈다.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우리 집을 오해했다는 걸 확실히 알았을 테지. 다음 날 오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앞집 아줌마가 우릴 잡는다. “이 댁 없는 동안 난리가 났었어요. 새벽에 동네 사람 다 깨고. 아침에 쓰레기 버리러 나오는데 시커먼 사람이….”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 집 앞에서 일어났다. 소름 끼친다.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랫집: 새벽 6시. 소스라치며 깼다. 돌덩어리를 들어올린 뒤 ‘꽝’ 내동댕이친다. 8개월을 시달린 소음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윗집에 가 문을 30분 넘게 쳤다. 없는 척이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윗집 문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노숙 3시간여. 전화가 왔다. 이웃사이센터다. “윗집 비었대요.” 그 말을 믿으라고? 윗집은 거짓말의 달인이다. 아이를 윗집 앞에 대신 앉혀 놓고 경비실로 갔다. 4일 치 폐쇄회로(CC)TV를 돌려 봤다. 1일 그들이 나간다. 돌아오는 모습은 없다. 노숙 5시간. 철수했다. 그날 난 윗집뿐 아니라 다른 집도 소음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해가 풀린 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범이다. 단독 범행에서 공동 범행으로 바뀌었을 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과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날 괴물로 만든 건 그들이다.손효주 hjson@donga.com·신광영 기자}

층간소음 갈등이 극한에 이른 이웃들은 대부분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 서로 다른 감정상태라는 점을 몰라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아랫집은 상당 기간 소음에 시달리며 항의할지 말지 고민하다 못 참겠다 싶을 때 윗집 초인종을 누른다. 반면 윗집으로선 난데없는 항의 방문이다. 윗집은 대체로 스스로를 ‘조용한 집’으로 여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쪽은 만성화된 문제를 제기하는데 상대는 급성으로 받아들이는 탓에 역지사지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한 첫 대면에 불꽃이 튀는 건 윗집이 소음 자체를 부인할 때다. 윗집은 아랫집 사람이 올라오기 직전 상황만 떠올리지만 아랫집은 그동안의 소음 피해를 모두 염두에 둔다. 온도차가 생기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연립주택에 사는 주부 정모 씨(43·여)는 “딸이 고3이라 조용히 해달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윗집에서 ‘저흰 집에서 발꿈치 들고 다녀서 아킬레스건이 아파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윗집으로선 선뜻 잘못했다고 하기가 쉽지 않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서로 정보가 없고 단절된 상태에서 불쑥 ‘조용히 살라’는 지적을 받으면 방어본능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항의 시간이 심야 또는 이른 아침일 경우 ‘사생활 침해’라는 반감은 더욱 강하게 든다. 첫 대화에서 서로 감정이 상하면 말문이 닫힌다. 윗집은 아랫집으로부터 언제 어떻게 시끄러운지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많아 어떻게 조용히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이런 가운데 소음이 계속되면 아랫집은 무시당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소음이 의도적이라고 느낄 때 분노는 배가 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에서 발을 밟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화가 덜 나지만 상대가 일부러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공격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윗집 사정을 알 기회가 없었던 아랫집은 상상의 날개를 편다. 아이가 매트도 안 깐 바닥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니도록 부모가 방치한다거나 한밤에 트레드밀(런닝머신)을 뛰는 등 몰지각한 짓을 한다고 추측한다. 상대가 가내수공업으로 귀금속 세공을 하며 소음이 심한 장비를 쓰고 있다는 등의 착각에 빠지는 사례도 있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관계자는 “가내수공업 소음에 시달린다는 민원들을 확인해 보면 거의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윗집은 갈등이 길어지면 아랫집이 과민반응을 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름대고 소음저감 노력을 해도 항의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때 아랫집은 실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이다. 한 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특히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이다.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자신이 관심 갖는 이야기를 할 때 그 부분만 선택적으로 잘 듣게 되는 현상이다. 윗집에서 나는 특정 소음에 오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불편을 느끼는 소음의 종류와 세기도 다르다. 신윤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개인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음역에 차이가 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소리는 크지 않아도 갑자기 ‘꽝’하거나 발로 ‘쿵쿵’ 하는 소리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음 피해는 주관적이어서 섣불리 피해정도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층간소음 갈등이 장기화되면 소음 자체보다 악감정과 불신의 문제로 본말이 전도된다. 아랫집에 직장인이 살 경우 ‘소음 피해→불면증→출근 후 히스테리→나빠진 평판에 또 스트레스→귀가 후 소음에 더 민감→불면증 심화’ 같은 악순환을 겪는다. 층간소음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면 다른 원인으로 생긴 문제까지도 이웃 탓을 하는 사례까지 생긴다. 인천 계양구의 윤모 씨(46)는 “층간소음으로 한참 골치 아플 때 회사가 부도나고 아들도 외국어고 입시에 떨어졌는데 이게 다 윗집 때문인 것 같았다. 칼부림까지 하는 심정이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유은정 정신과 전문의는 “소음에 오래 시달리면 피해의식이 생기고 충동 조절이 안 돼 다른 이유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때 갈등을 빚던 이웃을 향해 우발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단계에서 윗집은 대체로 아랫집을 외면한다. 마주쳐봐야 싸움만 날 거라고 생각해 인터폰이 오거나 초인종이 울려도 응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위협을 느껴 피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피할수록 불신은 커진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R아파트에 사는 박모 씨(38·여)는 “뻔히 베란다로 불 켜진 거 확인하고 갔는데 아무도 없는 척하면 ‘정말 못 믿을 사람들이구나’ ‘자기 집 애들 안 뛴다는 거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랫집에선 윗집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리거나 ‘보복 소음’을 내기도 하다. ‘선풍기 날개에 나무 빗자루나 추를 연결해 천장을 ‘자동 타격’하거나 화장실에 우퍼 스피커를 설치한 뒤 헤비메탈 음악을 올려 보내는 수법이 자주 쓰인다. ‘맞불 공격’은 엉뚱한 데까지 소음 피해를 준다. 스스로를 이웃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자충수다. 오랜 갈등을 겪고 나면 상대가 이사를 가도 후유증이 남는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H아파트에 사는 윤모 씨는 “지난달 윗집이 이사를 가고 나선 그 윗집의 옆집(대각선 집) 소음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윤 씨는 “윗집 뛰는 소리에 2년 넘게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이젠 조그만 발자국 소리에도 귀가 쫑긋 선다. 소리 자체에 예민한 사람이 돼버려 집에 오는 게 고통이고 주말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아랫집의 항의를 받아온 윗집 역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는다. 인터폰만 울리면 아랫집인 줄 알고 자녀들이 벌벌 떨거나 서로 ‘조용히 하라’고 하도 다그쳐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진다. 소리를 안 내려 조마조마해하다 보면 자기도 민감해져 윗집 소음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웃의 해코지가 두려워 집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 사례도 많다. 이웃 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집은 감옥이 된다. :: 칵테일파티 효과 ::칵테일파티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유난히 잘 들리는 현상. 의사가 일반인보다 청진기를 통해 나는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이 효과에 따른 것이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지난해 설 연휴 첫날, 서울 중랑구 면목동 부모 집을 찾은 30대 형제가 아랫집 40대 남성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다.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말싸움이 빚은 참극이었다. 한국인이면 대부분 이런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 3명 중 2명꼴(62.5%)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산다. 층간소음 갈등의 73%는 아이들 뛰는 소리가 원인이다. 층간소음 문제는 살다보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우리 모두의 ‘시한폭탄’이다. 겨울은 실내 활동이 많아 층간소음 갈등이 격화된다. 층간소음 갈등 중재기관인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이웃사이센터에서 지난해 접수한 민원 1만3400여 건 가운데 37%가 겨울에 집중됐다. 친인척이 모이는 명절에는 이런 갈등이 절정에 이른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법정까지 간 이웃들은 승자든 패자든 씁쓸한 결말을 맞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에 사는 오모 씨(44)는 층간소음 ‘승소자’다. 지난해 위층 신혼부부를 상대로 5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법원 조정에 따라 위층 부부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이 부부는 사과 직후 자기 집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웃을 갈아 치운 오 씨는 ‘승자’일까. 서울 성북구 J아파트에 사는 박모 씨(48)는 아랫집의 층간소음 항의를 견디다 못해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2012년 4월 이 신청을 받아들여 아랫집 거주자에게 박 씨 집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판결했다. 중고교생인 박 씨의 두 딸은 요즘 엘리베이터를 탈 때 공포에 떤다. 아랫집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욕설을 퍼붓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집을 전세로 내놨다. 송사에 휘말린 집으로 소문 나 요즘 같은 전세난에도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하나의 거대한 진동판이다. 기둥을 많이 세워 소리가 분산되는 서구식과 달리 우리는 벽이 기둥 역할까지 하도록 만든 벽식 구조가 대부분이다. 소리가 벽을 만나면 ‘쾌속선’을 타는 격이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철근에 콘크리트를 덧입힌 고체 구조물은 소리의 크기를 보존한 채 먼 곳까지 고스란히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 ‘소음 유발형’ 공동주택은 압축 성장의 부산물이다. 건설사들은 가구 수를 늘리려 층간 높이를 최대한 낮췄다. 정부는 이런 돈벌이를 방관했다. 공동주택 거주자들은 층간소음을 안중에 두지 않았던 시대의 희생자인 것이다. 위층과 아래층 모두 피해자다. 층간소음은 자동차 경적소리와 비슷하다. 차 안의 운전자는 자기가 울리는 경적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지만 밖의 보행자에겐 급작스럽고 위협적인 괴성이다. 층간소음도 소음을 내는 쪽과 듣는 쪽이 겪는 경험의 격차가 크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살인 방화로 이어지는 극한의 투쟁이 시작된다. 한국인에게 집은 빚잔치까지 해가며 어렵게 마련한 재산 1호다. 척박한 경쟁의 장에서 탈출해 쉴 수 있는 마음속 대피소다. 집을 전쟁터가 아닌 안식처로 만들 비상구는 어디 있을까.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정부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지방자치단체를 파산시킨 뒤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 문제가 심각해 적절한 책임을 지게 하는 장치로 지자체 파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만기가 된 부채를 30일 이상 갚지 못하는 지자체에 대해 파산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 파산제도는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파탄 난 재정을 회복시켜 정상적인 행정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해당 지자체에 대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예산 편성 등 핵심 권한을 통제한다. 이 제도는 선거 때마다 선심성 또는 전시성 공약이 남발돼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관행을 견제하는 장점이 있다. 안행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채무 규모는 27조1252억 원(2012년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에 비해 49%나 늘었다. 여기에 지방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10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 수준이어서 지방재정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은 그대로 둔 채 파산제를 도입하면 지방자치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근의 지방재정 악화는 복지정책 확대와 무관치 않은 상황에서 이를 지자체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서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등 복지사업비 부담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고, 이 때문에 구조적으로 지방재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후 파산선고보다 사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지방재정을 관리해 위기를 예방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지방재정의 책임성을 높이는 지방파산제도를 깊이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과 맞물려 정부가 추진에 나선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여권이 철회하면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파산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때문에 야당과 지자체의 반발이 예상되고 지자체 파산제가 실제로 도입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 파산제는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추진한 적이 있으나 지자체와 야당 등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번번이 논란을 일으킨 끝에 유야무야됐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올해 지방공기업의 직원 보수는 1.7% 인상되고 기관장 및 임원의 보수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된다. 안전행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2014년도 지방공기업 예산편성 기준’을 마련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고 26일 밝혔다. 정부는 임원 보수 동결과 함께 임직원 대학생 자녀에 대한 학자금 무상지원을 없애고 특목고 학비 지원, 사교육비 지원 등 과도한 복리후생비를 폐지하기로 했다. 육아보육료와 양육수당 이중 지원, 직원능력개발비 등도 없어진다. 정부는 지방공기업이 이 같은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관련자를 징계 처분하고 경영평가에서도 감점을 주기로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닭고기와 오리고기 소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거 AI 사태와 비교하면 아직 소비 감소는 소폭에 그친다. AI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유통업계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일 이마트에 따르면 AI 발생 이틀째이면서 첫 토요일인 18일 닭고기 매출은 2주 전 토요일(4일)에 비해 2% 줄었다. 오리고기 매출은 8% 감소했다. 3일째인 일요일(19일)에는 닭과 오리고기 매출이 각각 14%씩 줄었다. 초기엔 미미했던 매출 감소 폭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17일과 18일 닭고기 매출이 1주 전(10일, 11일)에 비해 19%, 오리고기는 33% 줄었다고 밝혔다.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롯데마트 측은 “8∼14일 닭·오리고기 할인 행사를 벌여 1주 전 매출이 많이 늘었다”며 “지금의 감소 폭을 AI 영향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닭고기와 오리고기 조리 식품도 매출이 줄었다. 17∼19일 롯데마트 훈제치킨의 매출은 2주 전인 3∼5일에 비해 19%, 양념치킨은 69% 감소했다. 유통업체들은 최소한 한 달 정도는 AI가 닭·오리고기 소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확산 정도에 따라 소비자들이 얼마나 불안감을 느낄지가 관건이다. 한편 안전행정부는 AI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북에 5억 원, 전남에 3억 원, 광주에 2억 원 등 총 10억 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신광영 기자}
제주4·3사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 4·3사건은 광복 직후인 1948년 4월 3일, 경찰의 탄압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봉기한 제주도민들을 경찰 등 토벌대가 무력 진압해 수만 명이 희생된 사건. 우리 현대사의 주요 국민 저항운동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안전행정부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4·3희생자 추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17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공포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4월 3일 이전에 지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던 4·3 관련 행사는 올해부터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 행사로 격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제주도에서 “4·3사건은 우리 모두의 가슴 아픈 역사다. 제주도민의 아픔이 해소될 때까지 노력하겠다” 밝힌 바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정부가 방만한 경영을 하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군기 잡기’에 나섰다. 이를 위해 부채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경영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공기업 임원은 임금을 5∼10% 깎는 등 실질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안전행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2014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지표’를 13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신년구상 기자회견에서 “공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다. 정부는 지방공기업 전체 부채 중 60%를 떠안고 있는 도시개발공사 등 빚더미에 오른 공기업들의 경영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도시개발공사의 경우 지난해 설정했던 부채비율 목표 400%를 300%로 강화했다. 이후 매년 감축 비율을 강화해 2017년까지 부채비율을 200%로 낮출 방침이다. 기존의 부채관리 부문 점수 비중은 100점 만점에 6점이었는데 8점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지방 공기업의 ‘부채 감량’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미분양 부동산을 빨리 털어내는 등의 방법으로 재고 부담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순영업 자산 회전율’이나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인 ‘당좌비율’ 등의 지표도 신설해 재무건전성을 다각도로 평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지표를 3월 경영평가 때 지방공기업 330곳에 적용한다. 평가 결과 5단계(가∼마) 등급 중 최하등급을 받은 사장 등 임원은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고 임금도 5∼10% 삭감한다. 일반 직원도 최하등급을 받으면 성과급이 없다. 부실 공기업은 경영진단 대상에 선정돼 정원 감축이나 사업 구조조정 등 경영개선 명령을 받는다. 안행부 관계자는 “경영평가 결과를 지난해보다 한 달 앞당긴 7월에 발표해 공기업들이 보다 신속하게 경영개선에 나서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지난해 우리나라 공무원의 평균 나이는 43.2세로 해마다 늙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6월 기준 국가·지방공무원 경찰·소방공무원 교육공무원 등 근무 중인 공무원 88만7191명을 대상으로 한 ‘2013년 공무원 총조사’ 결과 이같이 분석됐다. 공무원 총조사는 5년마다 이뤄지는데 직전 조사 연도인 2008년(41.1세)과 비교해 평균 연령이 2.1세 높아졌다. 1993년 38.5세, 1998년 40.1세, 2003년 40.5세로 조사 때마다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다. 5년 전 조사 때와 비교해 20대와 30대는 각각 4%포인트가량 줄어든 반면 40대 이상은 8.8%포인트 늘어났다. 안행부 관계자는 “6급 이하 직원의 정년이 연장되고 사무기능직이 일반직으로 전환된 결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취업난으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치열해지면서 합격자 연령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지난해 9급 공채 합격자 평균 연령은 남성 30세, 여성 28세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9급 공채 출신이 전체 일반직 공무원(33만3998명)의 65.6%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초임은 월평균 156만 원(세금 공제 전)이었고 재직 10년차에 274만 원, 20년차에 356만 원, 30년차에 442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임금은 265만9000원. 9급 공무원이 5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평균 25.2년이 걸렸다. 7급 공채 합격자가 4급(서기관)까지 승진하려면 평균 22.1년, 행정고시 등 5급 임용자가 3급 이상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는 데는 21.2년이 소요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조사 대상자 88만7191명에 헌법기관 종사자를 합치면 전체 공무원 수는 100만6474명.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 대비 공무원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5%를 크게 밑도는 최하위권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야심한 시간 골목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은 20대 여성이 외마디 비명만 남긴 채 납치된다. 근처 가로등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만 CCTV 영상을 감시하는 관제센터 직원에겐 눈앞의 수십 개 영상 중 하나일 뿐이어서 급박한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다. 기존의 CCTV는 관제요원이 해당 영상을 보고 있을 때만 실시간 감시 효과가 있어 이런 상황에선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보완한 CCTV가 전국에 깔린다. 소리까지 감시하는 CCTV가 생기는 것. 안전행정부는 주변의 비명 또는 차량 충돌 소리를 감지해 현장에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하는 CCTV를 개발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고 8일 밝혔다. 이 CCTV는 특이한 소리를 감지하는 즉시 카메라 렌즈가 소리 나는 쪽으로 움직인 뒤 관제센터에 경보음을 울린다. 그러면 감시요원이 다른 CCTV를 보고 있던 중이라도 해당 CCTV 영상을 바로 확인해 경찰 신고 등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소리 감지형 CCTV’를 충북 진천군에 시범 설치해 운영한 뒤 전국 79개 지방자치단체의 통합관제센터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 관제센터 CCTV 감시 요원들은 평균 130곳을 동시에 모니터링해야 하는 실정이라 사고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알려 주는 지능형 CCTV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