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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교사 이모 씨(72)는 지난해 12월 12일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두 통을 받았다. 각각 경찰청과 금융감독원 소속이라고 밝힌 상대방은 “당신의 개인정보가 도용됐으니 은행계좌에 있는 돈이 모두 인출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연달아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오자 이 씨는 의심보다 덜컥 겁부터 났다. 금감원 직원이라는 상대방이 친절하게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해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면 금감원 안전금고로 옮겨 집중 관리해주겠다”고 제안한 내용에 믿음이 갔다. 이 씨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적금(3000만 원)을 해약했고 생활비에 쓰려 개설했던 마이너스 통장에서도 2770만 원을 인출해 모두 5770만 원을 집 근처 서울 중랑구 중화역 물품보관함에 보관했다. 경찰청과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두 사람은 모두 중국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일당이었다. 이 씨는 뒤늦게 사기임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한발 늦었다. 이 씨의 돈은 이미 국내 인출책 윤모 씨(48)의 손을 거쳐 서울 관악구의 송금책에게 전달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윤 씨와 국내총책 주모 씨(46)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조선족인 주 씨와 윤 씨는 취업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범행에 성공할 때마다 건당 100만 원, 2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쓰레기 상습무단투기 지역에 이런 푯말을! ‘당신의 양심카메라가 찍고 있습니다.♥’” ―“사고위험 있는 도로상황 신고하면, 범칙금에 쓸 수 있는 ‘마일리지’ 주기 어때요?” ―“스마트폰 보면서 걷는 사람 많은데 ‘안전 메시지’가 가끔씩 나오면 좋겠네요.” 5일 매년 연말이면 반복되는 무질서한 거리 풍경에 이어, 6일에는 가장 기초적인 집단인 가족 안에서도 실종된 ‘배려 문화’를 보도했다. 이틀 동안 e메일(change2015@donga.com)에는 ‘취지에 공감한다’는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기성세대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렸지만, 이제는 국민의 품격을 생각할 때라는 것. “선진국으로 가는 것, 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 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안전과 질서가 없는 사회가 무슨 선진국인가”(권현택), “내게 이익이 되면 잘못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사회라면 질서와 도덕이 전무한 불량사회일 것”(강수원)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신혜수 씨는 “물이 샌다고 구멍 난 천장 아래에 양동이만 갖다 대지 말자. 낡은 수도관을 손보기 위해서는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제언도 잇따랐다. 폐차처럼 방치된 차를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경찰서나 도로공사에 신고해 교통사고를 방지하자거나(김용겸), 술집이나 학원 대출업체의 무분별한 홍보문자와 전화에 벌금을 부과하자(chungjs53)는 의견도 있었다. ▼ ‘안전’보다 ‘보고’에 더 신경쓰는 공무원들 ▼공감의 뜻을 전한 일반 독자들과 달리 일부 공무원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5일 취재팀은 경기 가평소방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본보는 이날 화재 위험에 노출된 펜션들의 안전 실태를 보도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국민안전처로부터 ‘사실 관계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통화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사진 속 펜션의 위치와 상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본보의 기획 보도는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시설의 종합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취재팀은 “이번 보도는 특정 펜션을 겨냥한 기사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상호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상부에) 보고를 하려면 펜션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며 거듭 요청하다 끝내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자 “(알려줘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가평소방서는 이날 기사 속 사진을 토대로 해당 펜션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직원들을 현장에 보내 점검했다. 해당 지역은 비슷한 숙소가 밀집한 펜션촌이다. 당연히 다른 펜션의 안전관리 실태를 들여다봐야 하지만 소방서는 본보 기사에 거론된 펜션의 상황만 점검한 뒤 돌아갔다. 문제가 된 펜션에는 전체 벽면이 비닐로 된 야외 바비큐장이 있었다. 그러나 점검은 소화시설에 국한해 이뤄졌다. 전남 담양군 펜션 화재 때 불거졌던 불법 건축물 문제도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라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진짜 안전점검보다 상부의 지시에 어떻게 보고할지에 더 민감한 것이 우리 공직사회의 실정이다.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에서 ‘국가 개조’의 일환으로 다양한 제도 개선책을 제시했다. 이튿날 정부는 해경 해체부터, 사고 기업 재산 환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27가지 제도 개선 과제를 내놨다. 지난해 10월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이후 국토교통부는 환풍구 높이를 최소 2m 이상으로 만들고 공중 노출 시 투시형으로 바꾸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반복된 사고에 가장 먼저 내놓는 대책은 제도 개선이다. 하지만 이처럼 제도부터 손대는 접근 방식은 현실과 동떨어지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동아일보 취재팀이 다중이용시설, 선박, 펜션 등 지난해 안전사고가 발생했던 시설물을 점검한 결과 제도 개선 이후에도 여전히 안전에 취약한 부분이 다수 발견됐다. 지난해 취재팀이 탑승했던 한 선박은 신분 대조 작업을 꼼꼼히 한 반면 별도의 수하물 점검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선박 운항관리감독이 아직도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상인들이 소화기와 대피로의 위치 등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 상인은 “가게 주인들은 참여 못하는 형식적 훈련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사고 수습을 위한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지하철 화재 이후에도 제도는 정비됐지만 참사는 되풀이됐다”며 “안전에 대한 실천적 학습 과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지난해 잇단 대형 사고로 대한민국은 아직도 집단적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사고 때마다 갖가지 대책을 내놓으며 재발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국민안전처가 생겨났고,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후에는 환풍구 높이를 2m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여객선, 환풍구, 펜션 바비큐장(전남 담양 펜션 화재) 등 지난해 대형 사고가 발생했던 시설들을 점검한 결과 구호와 정책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힘들어 보였다. 안전교육은 헛돌고 시민 안전의식은 여전히 제자리다. 숱한 참사를 목격했고, 심지어 스스로 상당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여전히 ‘설마’ 하는 국민이 태반이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시민의식 변화와 사고 위험 현장의 세밀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거시적 정책 변화만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보고도 안전 무시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사고 후 선박 안전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온갖 대책이 쏟아졌다. 취재팀은 8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23일 전남 완도와 제주도를 오가는 23년 된 한 여객선(6000t)에 직접 탑승해 안전실태를 점검해 봤다. 하지만 선박 관계자와 승객 안전의식은 세월호 참사 당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이 대형 참사로 이어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사고 발생 후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나왔을 뿐 비상 탈출 매뉴얼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이 여객선 선실에서 나오는 안전 영상을 보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승객 이모 씨(45)는 “매일 같은 영상인 데다 꼭 보라는 법도 없다”며 잠을 청했다. 4시간의 항해 내내 승무원이 구명조끼 착용법을 알려주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선체가 균형을 잃은 원인으로 지목된 화물 고정 작업(고박)의 문제점도 그대로였다. 객실 아래 화물칸에 적재된 화물차 58대의 아랫부분은 쇠사슬로 총 8곳을 고정했지만 위쪽은 고정되지 않았다. 차량 위쪽이 고정되지 않으면 배가 한쪽으로 쏠릴 때 아래쪽 고박이 끊기거나 풀려 배가 기울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화물차 위쪽을 고정할 쇠사슬 장비와 규정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교수는 “대형 참사 후에도 선박 안전이 크게 개선된 부분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16명 죽었지만 올라가도 괜찮은 환풍구 지난해 10월 관람객 16명이 숨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사고 현장을 2개월여 만에 다시 찾았다. 관리사무소는 사고 환풍구 주위에 철제 펜스를 둘러 접근을 차단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 반경 200m 이내의 환풍구 2곳에는 출입을 막는 ‘경고 문구’조차 없었다. 1.3∼1.5m 높이의 이들 환풍구는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환풍구는 공연이라는 상황 때문에 ‘관람 장소’로 전용되면서 사고가 난 것”이라며 “환풍구 높이에 관계없이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분당선 정자역과 서현역 인근 환풍구에서도 위험이 감지됐다. 정자역 앞 환풍구는 인도와 약 10cm 높이 차만 있을 뿐 사실상 인도나 다름없었다. 기자가 환풍구 위에 올라보니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덮개에 연결된 나사는 반쯤 풀린 채 튀어나와 있었다. 서현역 인근 환풍구도 시민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김모 씨(20)는 “판교 사고는 여러 명이 환풍구 위에 함께 올라가서 (덮개가) 하중을 못 견딘 것이다. 나 한 명쯤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진 불 안 났어요!” 경기 가평군 A 펜션의 바비큐장은 천장과 외벽 모두 비닐로 덮여 있었다. 지난해 11월 사상자 10명(사망 4명, 부상 6명)을 낸 전남 담양 펜션 화재 현장은 지붕이 억새로 돼 있었다. 억새보다 불이 더 잘 붙는 비닐로 덮여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는 고기 굽는 화로가 놓여 있었다. 불티가 비닐로 튀면 ‘제2의 담양 화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A 펜션 주인은 “싼 비닐을 사용하지만 아직까지 화재가 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담양 펜션도 참사 이전까지는 불 한 번 나지 않았다. 취재팀이 지난해 12월 23일 펜션 밀집 지역인 경기 가평군과 강원 춘천시의 펜션 바비큐장 10곳을 둘러본 결과 모든 바비큐장이 비닐로 덮여 있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닐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데다 유독가스 발생의 주원인이다. 불길 확산 속도도 빨라 비상 상황 발생 시 탈출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재경보기와 탈출구 안내 비상등이 설치된 펜션 바비큐장 역시 단 한 곳도 없었다. 펜션 3곳은 소화기도 아예 없었고, 나머지 7곳도 소화기의 위치 안내를 찾을 수 없었다. 운동기구 사이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소화기를 둬 화재 발생 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올해도 “예고된 참사” “반복된 지적에도 고쳐지지 않는 안전불감증” 이런 제목의 언론 보도가 반복될 것 같아 취재팀은 안타깝고 두렵기만 했다.성남=정윤철 trigger@donga.com / 제주=이철호 / 가평=강홍구 기자}
새해 첫날 담뱃값이 1갑당 평균 2000원 인상되자 가격이 오르기 전 매입한 담배를 정가보다 싸게 파는 불법 거래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담배사업법 제12조 2항은 ‘소매인이 아닌 자는 담배를 소비자에게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일 본보 취재팀이 유명 온라인 물품거래 커뮤니티인 ‘중고나라’ 카페에 담배 구입 문의 글을 올리자 30분 만에 4명에게서 ‘담배를 개인적으로 팔겠다’는 연락이 왔다. 1갑에 4500원으로 가격이 오른 ‘레종 블루’ 20갑을 6만3000원(정가 9만 원)에 팔겠다는 제안이었다. 현재 정가보다 30% 낮지만, 오르기 전 가격보다는 26% 비싼 값이다. 아직 값이 오르지 않은 외국계 담배 ‘뫼비우스’(갑당 2700원) 10갑을 3만 원(정가 2만7000원)에 팔겠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사재기 물량을 해소하려는 듯 이들은 적게는 2보루(20갑), 많게는 20보루(200갑)까지 보루 단위로 담배를 팔겠다고 했다.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직접 만나거나 제품 종류를 다르게 기재해 택배를 보내는 방식으로 담배를 전달하겠다고 제안했다. 커뮤니티 측은 담배 판매 관련 게시물을 올리면 사전 경고 없이 글을 삭제하겠다고 밝혔지만, 불법 거래를 완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익을 노린 사재기 물량 때문에 온라인 불법 거래가 판을 친 반면 판매 매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A 편의점의 1일 담배 판매량(갑 기준)은 지난해 1월 1일보다 58.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B 편의점의 1일 담배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54% 감소했다. 롯데마트에서는 지난해 신정보다 담배 판매량이 49% 줄었다. 흡연자들이 사재기에 나섰던 지난해 12월 31일 매출과 비교하면 감소 폭이 더욱 크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원래 1월 1일에는 새해 금연 결심을 하는 이들이 많아 담배 판매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지만, 이번에는 가격 상승 영향으로 감소 폭이 유달리 크게 나타났다”고 말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최고야 기자}
새해를 한 시간여 앞둔 시각. 보라색 두루마기를 입은 한 남성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 나타나 양팔을 벌려 보신각종을 껴안았다. 이내 왼쪽 귀를 붙이고는 오른손으로 종을 가볍게 두드렸다. ‘종 몸풀기’라고도 불리는 이 작업은 영하의 날씨에 노출돼 있던 종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도록 하는 준비 과정이다. 종을 껴안은 이 남성은 신철민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주무관(41). 2006년부터 매년 보신각 타종식을 돕는 제5대 종지기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을미년 새해가 열리는 순간, 현장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이들을 만나 새해를 맞는 소감과 소망을 물었다. 신 주무관은 “종을 치는 데 집중하다 보니 막상 33번 종이 울릴 때는 소원을 못 빈다”며 “매년 올해보다 새해에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같은 시각, 보신각 인근 종각역 4번 출구 앞에는 이상일 서울 은평경찰서 방범순찰대 경장(38)이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몰리면서 불가피하게 일부 인도를 통제하자 상인, 취객 등의 불만이 쏟아졌지만 이 경장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 경장은 “미뤄 둔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새해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5619번 버스를 운전하는 범일운수 소속 신창균 씨(60)는 운전대를 잡은 채 새해를 맞았다. 30대 아들과 딸을 둔 신 씨는 “정년이 다섯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두 아이 결혼은 시키고 그만둬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20대 청년들의 고민도 깊었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중앙도서관에는 22명의 학생이 남아 있었다. 23일 있을 간호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는 간호학과 4학년 조윤지 씨(24·여)는 “마음이 급해 어머니의 만류에도 도서관에 왔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형우 씨(25)는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못해 지난 한 해 PC방, 술집, 편의점 등을 돌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 씨의 새해 소망 1순위는 단연 ‘취업’이다. 오전 1시 30분경, 타종 행사가 끝나고 보신각 앞에 모인 이들이 흩어지는 시간에도 신 주무관은 보신각종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새해의 시작을 알린 보신각종에 맨손을 대고 선 채 그는 “모든 사람의 소원을 이뤄 달라”고 빌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名將),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이번 주에도 승점 쌓기에 바빴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지 벌써 1년 8개월이 돼 가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요? 이는 그가 남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명언(?) 때문인데요. 이 발언이 유명해지면서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올라온 글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황당해 구설수에 오를 때면 여지없이 ‘퍼거슨 감독이 승점을 쌓았다’는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명언이 증명됐다는 일종의 조롱인 셈입니다. 이번 주 퍼거슨 감독의 ‘최전방 공격수’는 단연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였습니다. ‘땅콩 회항’ 논란의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최근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언니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평소 SNS를 즐겨 하며 소통의 이미지를 쌓아온 그답게 문제가 불거진 당일 오전 7시경 트위터를 통해 “치기 어린 잘못이었다”며 신속하게 사과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조 전무가 썼다가 지운 글(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다 누군가 너무 극악한 내용을 올려 잠시 복수심이 일어 속마음을 언니에게 보냈다는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한 누리꾼은 “막장 재벌 3세”라며 날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7일 담당부서 직원 40여 명에게 땅콩 회항과 관련해 “회사의 모든 잘못된 부분은 임직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e메일을 보냈던 조 전무가 또다시 문자메시지로 논란을 일으키자 대중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의 연이은 득점에 퍼거슨 감독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입니다. 수술 중 사진을 올린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 간호조무사도 뛰어난 경기 지배력을 자랑했습니다. 이 간호조무사는 환자가 수술대에 있는 상황에서 초에 불을 켠 채 의사에게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누리꾼들의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간호조무사들끼리 수술 중에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가슴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사진 등을 보면 의료인의 품위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간호조무사의 ‘활약’에 대중은 ‘열띤 성원’을 보냈습니다. 해당 병원 홈페이지는 한때 해커그룹의 공격을 받았고 누리꾼들의 접속도 폭주했습니다. 병원 측은 결국 12월 31일 홈페이지를 폐쇄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 하나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전략으로는 절대 리그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을 명장 퍼거슨 전 감독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경기장을 누비던 ‘퍼거슨의 아이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지난해 4월에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게시물을 작성해 도마에 올랐습니다.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 후보가 교육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고 후보가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왼손을 들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패러디물의 전설로 SNS 세상에 자리매김했습니다. 입대를 피하기 위해 고의 발치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가수 MC몽의 복귀에 군가 ‘멸공의 횃불’이 순위권에 올랐고 가수 강원래 씨는 가수 고(故) 신해철 씨의 추모 분위기를 비난하는 글에 댓글로 동조했다는 이유로 결국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독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 지난해, SNS 세상도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말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SNS가 인생의 낭비라며 혀를 찼지만 SNS 공간은 그의 발언마저도 하나의 문화로 껴안았습니다. 실제로 저 또한 새해 첫 일출을 뒷산 정상이 아닌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으로 봤을 만큼 기꺼이 인생의 낭비를 즐겨 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새해에는 다만 SNS에서 퍼거슨 감독이 승점을 올릴 일이 적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타임라인을 수놓은 첫 태양처럼 올 한 해 늘 밝고 환하게 웃을 일만 있기를 기대합니다. 퍼거슨 감독도 그러기를 바랄 겁니다.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여행 가방 속 할머니 시신 사건’의 피의자 정형근 씨(55)가 구속됐다. 인천지법 최의호 부장판사는 인천 남동구 자신의 집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전모 씨(71·여)를 집에 있던 흉기 등으로 살해한 뒤 여행 가방에 담아서 버린 혐의(살인 및 시체 유기)로 정 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지난해 12월 31일 밝혔다. 정 씨는 애초 말다툼으로 빚어진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다 프로파일러의 심문 끝에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성폭행하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강력하게 반항해 물컵과 흉기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마련했다. 약을 타러 정기적으로 병원에 갔고 구청에서 하는 특강도 챙겨 들었다. 겨울을 맞아 공사장 일거리가 줄자 이달 15일에는 다시 공공근로를 신청했다. 일한 날 바로 임금을 주는 공사장과 달리 공공근로는 한 달을 기다려야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모 씨(58)에게는 그마저도 절실했다. ‘건강관리가 최우선. 모든 유혹에 빠지지 않고 손해나는 일 하지 않기’라고 일기를 쓰며 스스로 의지를 다잡았다. 가진 건 세 평 남짓한 월세방뿐이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8년째 이 씨를 봐 왔다는 월세방 관리인 임모 씨(68·여)는 “이 씨가 돈이 없다는 사실에 민감해했지만 자살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의지를 불태웠지만 눈앞의 현실은 차가웠다. 통장 잔액은 46원. 당장 이달 월세 30만 원을 낼 방법이 없었다. 이 씨는 생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집 근처에 있는 동대문구청을 찾았다.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려 했지만 고용임금확인서를 제출해야 했다. 담당 공무원은 “원한다면 직업소개소에 대신 전화해서 서류를 요청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 씨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하루 일거리를 찾아온 입장에서 소개소에 서류까지 발급해 달라고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 한 시간여 구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8층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본보 26일자 A12면 참조) 이 씨는 2004년 한때 서울 동대문구에서 슈퍼를 운영했다. “열심히 해서 될 수 있는 한 손해 보지 말자”고 일기장에 목표를 적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로 사람이 몰리면서 점점 가게를 찾는 발길이 줄었다. 사업은 망했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삶이 시작됐다. 일용직 노동으로 삶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다. 오전 4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그마저도 일거리가 없어 공치는 날이 허다했다. 올 5월 자립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해지하고 공공근로를 신청했지만 바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도리어 상황이 나빠졌다. 근처 한 식당 주인은 “평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쌀과 라면을 나눠줄 정도로 이 씨의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며 “밥값 외상이 밀리면서 눈치가 보였는지 식당 앞을 재빨리 지나쳐 가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4년 전 이 씨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그의 가족은 26일 이 씨의 장례를 치렀다. 가족이 월세방에 있던 이 씨의 짐을 챙겨가지도 않고 아무 연락도 없자 그가 남겨놓은 짐들은 29일 용달차에 실려 쓰레기장에 내다버려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사흘 전에 쓴 이 씨의 일기장 마지막 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쉬면서 내일을 기약.”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년 1월 1일부터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소득기준(현행 최저생계비 120~150% 이하에서 185% 이하로) 등을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주에 동대문구청의 민원 응대, 제도 안내 등에 대한 현장점검도 할 계획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크리스마스이브의 여파가 남은 25일 오전 5시 30분경. 서울 중구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앞 편도 2차로 한가운데에 회사원 임모 씨(36)가 탄 스타렉스 승합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 세워져 있었다. 임 씨의 스타렉스가 도로 한가운데 세워진 이유는 차량 고장 때문이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은 임 씨가 차를 세워둔 채 자고 있었기 때문. 기동본부 앞을 순찰 중이던 광희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확인한 결과, 임 씨는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하다 차량이 신호에 걸리면서 그대로 잠이 든 것이다. 임 씨는 전날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서 열린 회사 송년회에서 소주 1병 반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버텨낼 수 없었다. 결국 잠들어 버렸다. 임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09%로 면허취소 수준. 경찰 관계자는 “임 씨가 만취해 제대로 조사받지 못했다”며 “혈중 알코올 농도만 측정한 뒤 귀가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향후 임 씨를 재조사해 면허취소 처분을 하겠다고 25일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동대문구청에서 중년 남성이 이리저리 건물 내부를 헤매고 다녔다. 힘없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고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제자리에서 고민하듯 머물러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1시간 가까이 건물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남성은 오후 5시 30분경 8층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복도 끝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이 남성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20분 뒤 구청 건물 옆 좁은 인도 위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조금 전까지 구청 이곳저곳을 헤매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숨진 사람은 구청 근처에서 목욕탕 구석을 개조한 월세방에 살던 이모 씨(58)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이날 오후 4시경 구청 3층의 복지정책과를 찾았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수년간 월 30여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그러던 중 더이상 지원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공공근로에 지원키로 했다. 직접 돈을 벌어 자립하기 위해서다. 올해 5월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해지했다. 그래야 공공근로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청자가 많아 내년 2월에야 순번이 돌아온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도, 공공근로의 끈도 떨어져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한 달 30만 원인 방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10월엔 27만 원을 냈고 11월 치는 5만 원밖에 내질 못했다. 이달 방세는 한 푼도 못 냈다. 주인의 눈치 탓에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씨는 어디선가 들은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마지막 희망을 건 듯하다. 긴급한 상황에 놓인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자가 되면 6개월간 월 39만9000원을 받을 수 있어 당장 방값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어렵게 마음먹고 24일 구청을 찾았지만 그는 빈손으로 돌아섰다. 긴급복지지원을 받으려면 6개월 이내에 일한 경험을 증명할 ‘근로확인서’가 필요했다. 담당 공무원은 “다음에 서류를 챙겨 오면 신청을 받아주겠다”고 설명했다. ‘다음’은커녕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었던 그는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담당부서를 나오고 한 시간 가까이 구청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8층 복도 끝 가로 70cm, 세로 180cm 크기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현장에 유서는 없었고 창틀에 찍힌 이 씨의 발자국만 발견됐다. 이 씨는 가족과 왕래 없이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혼인 이 씨의 가족은 82세 노모와 여동생(56)뿐이다. 다들 형편이 어렵다 보니 같은 동대문구에 살면서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동생은 경찰 조사에서 “2년 전 오빠가 전화를 걸어 ‘5만 원만 보내 달라’고 해 부쳐준 것이 마지막 기억”이라고 진술했다. 얼굴을 본 것은 4년 전이었다. 그때도 이 씨는 “3만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은 2만 원을 더해 5만 원을 쥐여 보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해진 비보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노모와 함께 병원을 찾은 동생은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발인 일정만 정하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통진당(통합진보당) 해산,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19일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의 해산과 소속 의원의 국회의원직 박탈을 결정한 것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전망하기 위해서다. 발표자로 나선 김상겸 동국대 법대 학장은 “그동안 논란이 돼온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헌재가 보다 선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질서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선언했다는 중요한 의미”라고 평가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한국 내 북한 추종 세력의 법적 근거를 박탈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약화에 기여하고 결과적으로 북한 민주화를 촉진할 만한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며 “진보세력이 서구적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해 우리 사회 내부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석진 교수(53)의 구체적인 혐의 내용이 드러났다. 서울대는 강 교수의 직위를 해제하고 징계절차를 밟기로 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부장 윤중기)는 2008년부터 올 7월까지 대학원생, 졸업생, 본인이 지도교수로 있는 학내 동아리 소속 학생 등 9명을 총 11차례 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강 교수를 22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교수는 올 7월 한 국제학술대회의 인턴 A 씨(24·여)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진 것을 비롯해 깊이 껴안거나 강제로 입을 맞추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상습 추행해왔다. A 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은 모두 서울대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달 1일 강 교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만 해도 4명의 피해사실만 파악했으나 이후 학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추가로 5명의 피해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모두 강 교수와 단둘이 있을 때 추행을 당했으며 그중 한 명은 강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껴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체 접촉은 없었지만 강 교수로부터 지속적으로 보고 싶다거나 일대일 만남을 요구하는 내용 등의 문자메시지를 받아 괴로움을 호소한 이들도 8명으로 확인됐다. 피해 학생들 중 교내외 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강 교수가 범행 사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범행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강 교수는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다만 학생을 껴안은 행동에 대해선 ‘미국식 인사 차원’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범행이 상습적으로 이어져온 만큼 앞으로도 추가 피해사례가 확인되면 적극 수사해 공소사실을 추가할 방침이다. 서울대는 이날 강 교수를 직위해제 조치하고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직위해제는 교수직만 유지한 채 수업권과 연구 등 학술활동을 중지시키는 것으로 정식 징계가 이뤄지기 전의 조치다. 김병문 서울대 교무처장은 “검찰 수사와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1월 중순 강 교수의 징계위원회를 열 예정”이라며 “정직, 해임, 파면 등의 중징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학내 피해자들의 진술을 확보 중인 서울대 인권센터는 내년 1월 초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강 교수를 직접 접견해 최대한 신속하게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강홍구 windup@donga.com·이철호 기자}

18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전남 여수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촬영한 전북 군산 새만금 인근. 이날 서울 최저온도가 영하 13도를 기록하는 등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19일에는 강원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이 오후부터 영상권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보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는 동생이 깡패한테 감금돼 있어요. 도와주세요.” 14일 오전 5시경 서울 도봉경찰서 소속 경찰관 11명은 도봉구의 한 상가 건물로 출동했다. 신고자와 평소 아는 사이인 김모 씨(36)가 깡패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맞고 감금돼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 김 씨를 구하기 위해 강력팀, 해당 파출소 야간 근무자들이 총출동했지만 막상 현장은 신고 내용과 딴판이었다. 감금돼 있다던 김 씨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고 함께 있던 남성 10여 명은 경찰이 도착하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전자제품을 보관하는 사무실 곳곳에서 트럼프 카드 뭉치가 발견됐다. 경찰이 출동한 곳은 바로 도박장이었다. 김 씨는 속칭 ‘바둑이’라는 카드 도박을 하다 자신이 가져온 250만 원은 물론이고 나모 씨(35)에게 빌린 돈 300만 원까지 모두 잃었다. 순식간에 수백만 원의 돈을 잃은 김 씨는 담배를 피우러 가겠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를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 씨에게 붙잡혀 수차례 뺨을 맞았다. 김 씨가 몰래 아는 형에게 ‘돈을 갚지 못해 감금돼 있다. 돈 300만 원만 갖다 달라’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 결국은 스스로 도박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꼴이 됐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김 씨 등 7명을 도박 혐의로, 나 씨 등 2명을 폭행 및 감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아는 동생이 깡패에게 감금돼 있어요. 도와주세요.” 14일 오전 5시경 서울 도봉경찰서 소속 경찰관 11명은 서울 도봉구의 한 상가 건물로 출동했다. 신고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씨(36)가 깡패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맞고 감금돼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 김 씨를 구하기 위해 강력팀, 해당 파출소 야간 근무자들이 총 출동했지만 막상 현장은 예상과 달랐다. 감금돼 있다던 김 씨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고 함께 있던 남성 10여 명은 경찰이 도착하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전자제품을 보관하는 사무실 곳곳에서 트럼프 카드 뭉치가 발견됐다. 경찰이 출동한 이곳은 사실 도박장이었다. 김 씨는 속칭 ‘바둑이’라는 카드 도박을 하다 자신이 가져온 250만 원은 물론 나모 씨(35)에게 빌린 돈 300만 원까지 모두 잃었다. 순식간에 수백만 원의 돈을 잃은 김 씨는 담배를 피우러 가겠다며 밖으로 나가려했다. 하지만 이를 도망가는 것으로 안 나 씨에게 붙잡혀 수차례 뺨을 맞았다. 김 씨는 머리를 굴려 몰래 아는 형에게 ‘돈을 갚지 못해 감금돼 있다. 돈 300만 원만 갖다달라’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냈지만 결국 고스란히 본인의 도박 사실을 경찰에 털어놓는 꼴이 됐다. 돈을 가져오길 기대했던 지인이 현장에 오는 대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김 씨 등 7명을 도박 혐의로, 나 씨 등 2명을 폭행 및 감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사무실을 빌려 도박장을 연 이모 씨(38)와 도박을 방조한 김모 씨(36) 등 4명도 함께 입건됐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어머니는 형편이 나아지면 꼭 데리러 오겠다며 네 살배기 셋째 딸을 친척집에 맡겼다. 어머니 기억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이정미 씨(44·여)는 친척 손에 이끌려 이집 저집을 돌다 전남 구례군의 한 노부부 집에 입양됐다. 호적상 이름도 윤정미로 바꿨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 두 언니의 얼굴도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막연히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리란 생각뿐이었다. 15일 이 씨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40년 전 생이별한 어머니 최순자 씨(70)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 유전자가 99.9% 일치한다고 했다. 이 씨는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네 살짜리 꼬마였던 이 씨는 그사이 스물두 살 아들과 열일곱 살 딸을 둔 어머니가 됐다. 16일 서울 중구 어린이재단에서는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모녀가 만났다. 상봉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알아본 모녀는 그동안의 회한을 풀어내려는 듯 20여 분간 내리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딸 이 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 고생 많았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이 씨는 채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다. 한 음절씩 끊어 ‘엄마’라고 말문을 뗀 이 씨는 이내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모녀가 40년 만에 상봉을 하게 된 데에는 실종가족을 찾기 위한 재단 산하 실종아동전문기관의 도움이 큰 몫을 했다. 최 씨는 딸을 찾기 위해 방송에도 출연하고 지역 신문에 광고도 내봤지만 소득을 얻지 못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이 씨가 가족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이 씨는 시댁 친척의 제안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난해 8월 유전자 등록을 했다. 이후 최 씨가 올 10월 경찰에 유전자 등록을 하면서 실종아동전문기관이 두 모녀의 유전자 대조를 의뢰하게 된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전날 밤잠을 설쳤다는 이 씨는 어머니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오른손으로 훔쳤다. 그는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를 보여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젠 보여주게 돼 기쁘다”며 가슴 벅차 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어머니는 형편이 나아지면 꼭 데리러 오겠다며 네 살배기 셋째 딸을 친척집에 맡겼다. 어머니와의 기억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이정미 씨(44·여)는 친척 손에 이끌려 이집 저집을 돌다 전남 구례군의 한 노부부 집에 입양됐다. 호적상 이름도 윤정미로 바꿨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 두 언니의 얼굴도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막연히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리란 생각뿐이었다. 15일 이 씨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40년 전 생이별한 어머니 최순자 씨(70·여)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 유전자가 99.9% 일치한다고 했다. 이 씨는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4살짜리 꼬마였던 이 씨는 그사이 22살 아들과 17살 딸을 둔 어머니가 됐다. 16일 서울 중구 어린이재단에서는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최 씨 모녀가 상봉을 했다. 상봉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알아본 모녀는 그동안의 회한을 풀어내려는 듯 20여분 간 내리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딸 이 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 고생 많았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이 씨는 채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다. 한 음절씩 끊어 ‘엄마’라고 말문을 뗀 이 씨는 이내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모녀가 40년 만에 상봉을 하게 된 데에는 실종가족 찾기 위한 재단 산하 실종아동전문기관의 도움이 큰 몫을 했다. 최 씨는 딸을 찾기 위해 방송도 출연하고 지역 신문에 광고도 내봤지만 소득을 얻지 못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이 씨가 가족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이 씨는 시댁 친척의 제안으로 ‘혹시나’하는 생각에 지난해 8월 유전자 등록을 했다. 이후 최 씨가 올 10월 경찰에 유전자 등록을 하면서 실종아동전문기관이 두 모녀의 유전자 대조를 의뢰하게 된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전날 밤을 설쳤다는 이 씨는 어머니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오른손으로 훔쳤다. 그는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를 보여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젠 보여주게 돼 기쁘다”며 가슴벅차 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경락 경위(45)의 유서가 공개됐다. 최 경위의 유가족은 14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동구 명일동성당에서 전체 14장 가운데 가족 관련 내용을 제외한 8장을 공개했다. 유서에는 문건 유출 주범으로 몰린 데 따른 억울함, 동료를 비롯한 주변 사람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유서는 A4용지 절반 크기의 스프링노트에 쓰였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경찰 생활 16년 동안 월급만 받아 가정을 꾸리다 보니 대출 끼고 현재 전세를 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이라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경찰이)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힘없는 조직의 일원으로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회한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당당하게 공무원 생활을 했기에 지금도 행복하다. 감사한다”고 적었다. 최 경위는 동료와 언론사 기자 등 주변 인사를 언급한 뒤 “이제라도 우리 회사(경찰)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 너무 힘들었고 이제 평안히 잠 좀 자고 쉬고 싶다”고 덧붙였다. 특히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정보1분실 동료 한모 경위에게는 “내가 없는 우리 가정에 네가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너를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적었다. 최 경위의 친형 최요한 씨(56)는 유서를 공개하며 “동생이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세상을 떠났기에 이렇게 나서서 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경기 이천시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그는 “(검찰 수사 관련) 압박감 때문에 세상을 뜨게 됐다” “동생이 전화통화에서 (이번 수사를) ‘퍼즐 맞추기’라고 말했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앞서 최 경위는 12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 귀가했다. 집에서 취침을 하는 등 휴식을 취한 최 경위는 이날 오전 9시경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한 뒤 연락이 끊겼다가 13일 오후 2시 30분경 경기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의 한 주택 앞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조수석 자리에는 화덕이 있었고 번개탄 1개가 완전히 탄 상태였다.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며 발견되기 최소 10시간 이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숨진 최 경위는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학원 논술 강사생활을 하다 1999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정보1분실로 오기 전에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당시 청장 부속실에서 근무했다. 최 경위와 함께 수사를 받고 있는 한 경위는 경찰이 소재를 확인하고 별도로 보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강홍구 windup@donga.com·박성진 기자}

경찰이 ‘종북 콘서트’ 논란을 빚고 있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40·여)의 자택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사무실을 11일 압수수색했다. 황 씨는 재미교포 신은미 씨(53·여)와 지난달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방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일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경찰은 활빈단 등 보수단체가 이들이 북한을 미화했다며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토크콘서트 홍보물에는 ‘6·15남측위 서울본부’가 주최로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6·15남측위가) 주최자로 돼 있어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며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콘서트를 올여름부터 기획했다고 밝혔기에 그 시점부터의 관련 문건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신 씨에게 이날 오후 2시까지 피고발인 자격으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지만 신 씨는 불응했다. 법무부는 경찰의 요청에 따라 이날 신 씨에게 20일까지 열흘간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수사당국은 범죄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내국인에 대해서는 출국금지를, 외국인에 대해서는 출국정지를 법무부에 요청할 수 있다. 신 씨는 미국시민권자다. 당초 황 전 부대변인과 신 씨는 이날 부산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전날 전북 익산시에서 토크콘서트 행사 중 벌어진 ‘사제폭발물 테러’ 사건 때문에 취소했다. 그 대신 황 전 대변인은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 전 부대변인은 “테러의 주범은 그간 숱하게 진행해온 통일콘서트를 갑자기 종북으로 몰아 내란이라도 일어난 듯 호들갑을 떨며 종북 마녀사냥을 자행한 언론과 그에 부화뇌동해 법도 원칙도 무시하고 움직여 온 공안기관”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순실 씨 등 탈북자 5명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전 부대변인과 신 씨에게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라”며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영도 경민대 교수는 이들이 토크콘서트에서 탈북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19개 탈북 단체를 대표해 이날 두 사람을 의정부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