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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해 왔는지.” 3일 충북 청주시 은세계작은도서관. 매주 화요일 진행되는 ‘1인 1책 펴내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에선 수강생 박영순 씨(79)의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그는 지난해 인생 첫 자서전 ‘그리움이 닿는 곳’(일광)을 펴냈다. 이 책엔 6·25전쟁으로 피란할 당시 집에서 키우던 백구와의 이별, 3개월 만에 돌아온 집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이야기 등이 담겼다. 가족끼리 조촐한 출간기념회도 열었다는 박 씨는 “시숙이 ‘제수씨 책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등단 작가로 박 씨의 자서전 작성을 지도한 임미옥 강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진짜 삶’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고령 수강생 이명욱 씨(81)는 자서전 ‘사랑이었나’(일광)에 남편과 연애 시절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시 남편의 애칭이 ‘승우 오빠’였다고. 이 씨는 “그 얘기를 여든 넘어서 책에 쓴 이후로 집에서 남편을 ‘승우 오빠’라고 부른다. 맨날 폭소가 터지니 집 안에 활기가 돈다”고 했다. 이날 수업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은세계작은도서관의 인기 강좌다. 수강생 13명은 40대 젊은 엄마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돼 있다. 남녀 비율은 4 대 9. 세대도 다르고 문체도 서로 다르지만 ‘글동무’로서 깊이 소통한다. 수강생들은 매주 2쪽씩 글을 써서 강사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이를 13부씩 출력해 나눠 읽고 수업시간에 토론한다. 2017년부터 은세계작은도서관에 출강하며 34명의 자서전 출간을 도운 임 강사는 “두서가 없더라도 일단 쓰라고 조언한다”며 “처음엔 카톡 메시지도 길게 못 쓰던 분들이 2, 3년 꾸준히 배우면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낸다”고 했다. 청주시에서 출판비로 인당 50만 원을 지원하고, 여기에 사비 100만 원을 보태 초판(200권)을 찍는다. 시판되는 책은 아니지만 여러 기관에서 찾는단다. 이 씨의 자서전은 초판에 이어 최근 재판(200권)도 찍었다. 2013년 청주가경노인복지관 안에 들어선 은세계작은도서관은 연면적 107㎡ 규모로 6893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강생들은 “문학이라는 평생 친구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희 씨는 2018년부터 7년째 수업을 듣고 있다. 4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퇴직한 김재범 씨는 지난해 자서전을 완성한 데 이어 요즘은 수필집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김 씨는 “한번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 평생 공부가 아니겠느냐”며 웃었다.청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감상을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친 특이한 도둑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인 스테판 브라이트비저(1971∼).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내다 팔기 위해 훔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꼽는 작품은 남겨두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만 골라서 털었다. 그러곤 장물들을 집 다락방에 고이 보관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방 안을 모두 그림으로 채웠다. 그림이 하도 많아 방 전체가 색색의 소용돌이를 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라나흐, 브뤼헐, 부셰, 와토, 호이옌, 뒤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 ‘보물상자’ 안에 사는 삶이었다. 이 흥미로운 범죄자의 이야기가 저널리스트이자 회고록 작가인 저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신간은 브라이트비저의 삶을 연대순으로 추적한 38개 장으로 구성됐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어떻게 작품을 훔치고 보관했으며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각 장이 10쪽 내외로 짧고 술술 읽힌다. 저자는 브라이트비저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면 인터뷰를 하는 등 집필에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 중 비좁은 호텔 방에서의 인터뷰 일화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잠시 눈길을 돌린 사이 그가 노트북을 낚아챘는데 저자는 노트북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브라이트비저가 도둑질 기술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음을 이해했다”고. 브라이트비저에게 박물관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자세히 보려고 집중하면 등 뒤에서 셀카봉이 쿡쿡 찌르고, 온갖 잡담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일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단다. 책은 그의 독특한 범죄 행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가 저지른 도둑질을 방치했다. 10대 때 발병한 우울·불안증의 여파로 도벽에 빠진 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성인이 돼선 연인 앤 캐서린이 그가 도둑질을 할 때 망을 봐주며 이를 도왔다. 브라이트비저와 달리 심미안이 없던 그녀는 예술보다는 애인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그녀를 면담한 심리학자들은 “혼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형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범죄에 동조하게 됐는지 그 과정도 흥미롭게 그렸다. 책 말미에 브라이트비저가 21년 만에 벨기에 미술관 ‘루벤스의 집’을 다시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 책자에는 독일 조각가 게오르크 페텔의 ‘아담과 이브’를 도난당했다 되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훔친 장본인은 예상대로 브라이트비저. 책자 한 페이지에 걸쳐 ‘아담과 이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조각상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늘 하던 대로 경비원과 관람객을 따돌리고 4달러(약 5500원)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한다. ‘정말 지독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될 것 같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시인 이상(1910∼1937)이 직접 쓴 창작노트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일본어로 쓴 70여 쪽 분량의 노트로 ‘공포의 기록’, ‘1931년’ 등 총 23편의 습작이 담겼다. 국립한국문학관은 5일 이상의 유고 노트를 공개하며 “번역이 개입되기 이전의 창작 형태를 알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애타게 찾던 자료”라며 “세필로 깨알같이 쓴 창작노트에서 이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노트는 1981년 작고한 조연현 문학평론가의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앞서 이상의 유고 노트는 김수영, 김윤성, 유정 등의 한글 번역으로 196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됐다. 하지만 일본어 원문이 실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검증에 참여한 김주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상의 일본어 필체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며 “다행히 이번 유고에는 이상의 자필 서명이 남아 있는데 그 필체가 그의 소장품인 ‘전원수첩’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상의 유고 노트는 28일 개막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희귀자료 전시인 ‘한국문학의 맥박’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1층에서 열린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도 성장이 한참 전에 끝났고 모두가 다 같이 추구하는 목표는 해체된 지 오래입니다. 동경하는 대상을 비롯해 모든 게 제각각 달라지게 된 사회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작가 우사미 린(25)은 한국, 일본 등의 10대들이 ‘아이돌 덕질’에 빠져드는 현상이 강화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과거 고도 성장기 ‘주문’처럼 지배했던 사회 발전이란 공동체의 목표가 사라진 현재, 개인화가 강화되는 측면에서 아이돌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2020년 스물한 살에 발표한 ‘최애, 타오르다’(미디어창비)는 아이돌을 우상화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이 그 아이돌이 각종 루머에 휩싸이며 은퇴를 하자 크게 방황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작품은 이듬해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는다. “지금까지 아이돌 문화는 존재했지만 순문학과 연결 지은 적은 없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자 신선해서 주목받은 것 같습니다.” 우사미는 서울국제작가축제(6∼11일) 참석차 6일 처음 방한한다. 그에 앞서 그를 4일 서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2019년 ‘엄마’(미디어창비)로 스무살에 등단한 그는 2020년 역대 최연소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인이다. 두 번째 작품인 ‘최애, 타오르다’는 2020년 9월 출간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 일본에서 5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는 이 작품에서 광적이기까지 한 ‘덕질’을 통해서만 삶의 감동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아이돌 덕질, 온라인 커뮤니티 등 10대 문화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틱톡 세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요즘 10대들의 성장통을 그린다는 점에서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별칭에 붙은 것. 하지만 정작 작가 본인은 “틱톡을 설치한 적이 없어서 저 자신이 틱톡 세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근사한 별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도, 젊지 않은 사람도 묘사해 가고 싶다”고 했다. 글의 소재를 10대 문화에만 한정 짓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 온라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젊은 작가로서 소설 쓰기의 의미를 묻자 “소설은 느리다는 점이 매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설은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에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느리니까 오히려 현상을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본질을 파악하는 데 적합합니다.” 한일 교류가 활발한 지금 그는 스물다섯에 처음 한국 땅을 밟는다. “해외에 가본 경험이 적어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문화적으로도, 근본적으로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어 기대가 됩니다.” 그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끝난 뒤에도 며칠 더 머물며 한국의 역사적 장소 등을 찾을 계획이란다. 그는 축제 둘째 날인 7일 소설가 이희주와 ‘죽도록 사랑해’라는 주제로 북토크를 연다. 그는 “사랑에는 무엇이든 구원하는 측면과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측면이 모두 있다”며 “이 모두를 받아들여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을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를 ‘해시태그’로 요약해 달라고 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 #무언가에 열중하고 싶은 사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마냥 걷고 싶은 순간이 있다. 걸으면 생각이 정리될 것 같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발밑에서 낙엽이 느껴질 때 마음은 비로소 차분해진다.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속 인물들도 내처 걷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가톨릭 사제도, 새아버지와 갈등하는 대학생 청년도 달빛 속에 마냥 걷는다.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국내 출판계에서도 주목받았던 소설가 키건의 초창기 단편선이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소개되는 키건의 작품이다. 1999년 ‘남극’으로 데뷔한 키건은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작품이 수록돼 있을 만큼 자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4월, 11월 국내 번역 출간됐던 작품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몇 주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선집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일랜드의 현실을 예리하게 그려낸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됐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여운을 남기는 특징은 여전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파고든다. 7편 중 6편이 아일랜드를 무대로 하는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남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고 고단하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 가톨릭 사제인 주인공은 성직자라는 역할과 세속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다. ‘작별 선물’ 속 아버지는 아내의 묵인하에 어린 딸을 성적으로 학대한다. 그는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에는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작별 인사를 받는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 등장하는 디건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고 오로지 자기 땅에 집착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4년 외국 작가들의 단편을 엮은 선집을 출간하며 “따뜻하고 심오한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고 평했던 단편 ‘물가 가까이’도 실려 있다. 졸부 새아버지와 가난한 시골 농가 출신 엄마, 하버드대에 다니는 아들 간의 삼자대면이 언제든 툭 터질 듯 아슬아슬하게 묘사된다. 아들은 시골 촌부로 평생 남편에게 매여 산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중간중간 떠올린다. 언젠가 할머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보러 갔는데, 남편이 약속시간에서 5분이 지났다는 이유로 차를 출발시켜 버렸다. 할머니는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워야 했고, 자신을 버리고 가려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교차되며 답답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수록된 단편들에 기승전결이 명확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다. 인물들은 대체로 우유부단하거나 연약하다. 현실을 뒤바꿀 만큼 강하지도 않다. 다만 걷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 자체가 메시지인 듯하다. 짧은 단편은 고작 16쪽에 불과하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국가유산청이 ‘포항 용계정’과 ‘포항 분옥정’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696년, 1820년에 각각 지어진 두 정자는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 후기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용계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건축물이다.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뒀다. 창건 당시 여강 이씨 후손들이 수양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1779년 용계정 뒤편에 서원의 사당인 ‘세덕사’를 건립하면서 ‘연연루’라는 현판을 달아 서원의 문루(門樓)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루는 아래에는 출입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은 건물을 일컫는다. 분옥정은 ‘구슬을 뿜어내는 듯한 폭포가 보이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정자다. 정면에 용계천 계곡과 노거수가 있어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계곡을 조망할 수 있도록 윗부분에 누마루를 두고 아래에 온돌방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비롯한 명사들이 남긴 현판, 각종 문헌 기록이 남아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해 9월 소설가 정유정(58)은 이집트 북서쪽 바하리야 사막에 섰다. 수백만 년 전 바다였으나 지금은 모래 위 하얗게 굳은 물결의 흔적만 남은 사막.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을 보며 작가는 마음이 사막 같은 인간들을 떠올렸다. 불치의 병을 앓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 만약 이들에게 이승의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는 가상세계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고통이 사라진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그곳은 과연 천국일까. 신작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을 출간한 정유정은 26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삶이라는 게 사실 고통이 좀 더 많다. 하지만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야성이 인간의 기질 안에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2021년 ‘완전한 행복’(은행나무) 이후 3년 2개월 만에 선보인 이번 장편소설은 공상과학(SF)과 스릴러, 로맨스를 넘나든다. 주요 배경인 사막과 유빙(流氷)의 온도 차만큼이나 뜨겁고 차다. 예약 판매 일주일 만에 4만5000부가 나가 3만 부를 추가로 찍었다. 소설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상세계 ‘롤라’가 등장한다. 인간이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저장돼 영원히 살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실직, 불치병….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러나 완벽한 가상세계인 롤라행 티켓을 버리고 유한한 인간으로 고통에 맞서길 선택한다. 그 선택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소설 한 편을 쓰는 데 취재 노트 10권을 수기로 쓰는 그는 이번에도 유발 하라리와 칼 세이건,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의 저서를 공부했다. 지난해 2월에는 유빙을 직접 보기 위해 영하 20도 일본 홋카이도 북동부 아바시리를 다녀왔다. 유빙을 부수며 나아가는 쇄빙선도 탔다. 이때 작가의 머릿속에 각인된 풍경은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타격하는 유빙의 충돌음으로 형상화됐다. 전작들이 고유정 사건(‘완전한 행복’), 박한상 사건(‘종의 기원’) 등 주로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면, 이번 작품은 작가 내면의 질문에 좀 더 천착한다. 2012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 온 그는 재작년 암 환자 ‘졸업장’을 받았다. 10년 넘게 재발 및 전이가 안 돼 일반 건강검진만 받아도 된다는 진료 의뢰서를 받았다. 투병 기간 짧게 유지하던 머리도 처음 어깨까지 길렀다. 주 6회 7∼10km씩 달리고, 그 길로 체육관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한다. 내년 가을 하프 마라톤을 뛰는 게 목표다. 소설에서 가상세계의 유혹을 이길 힘으로 그려지는 ‘야성’은 사실 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세 동생을 둔 소녀 가장으로 지낸 20대, ‘11전 12기’ 끝에 공모전에 당선된 30, 40대를 거치며 회복탄력성이 길러졌어요. 쉽게 좌절하고 남 탓하는 사회,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이지만 내 인생에 집중하고 맞서다 보면 이겨내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올해 서른이 된 아들을 둔 작가는 특히 이번 책을 통해 20, 30대 독자들에게 가닿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은 사랑이 절망스러운 생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 그는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가치 중 하나가 사랑”이라며 젊은 독자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했다. “서로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짧으니까, 청춘이.”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쓴 신인 작가 이미리내 씨(41·사진)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5일 윌리엄 사로얀 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의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에 이 작가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광복, 6·25전쟁, 분단 등의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데뷔작이다. 심사위원들은 “강하고도 약한 인간 본성에 관한 아름답고도 복합적인 스토리”라며 “매력적인 인물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서정적인 문장들이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고 싶게 한다”고 평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이 상은 사로얀 재단과 미국 스탠퍼드대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2년마다 소설과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다. 역대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등이 있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이 작가는 이 작품을 영어로 집필해 영국, 미국에서 먼저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지난달 출간됐다. 이 작가는 “미국의 문학상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상을 수상하게 돼 신기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쓴 신인 작가 이미리내 씨(41)가 한국 작가 처음으로 미국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25일 윌리엄 사로얀 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의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소설 부문에 이미리내 작가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광복, 한국전쟁, 분단 등의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데뷔작이다. 심사위원들은 “강하고도 약한 인간 본성에 관한 아름답고도 복합적인 스토리”라며 “매력적인 인물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서정적인 문장들이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고 싶게 한다”고 평했다.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이 상은 사로얀 재단과 미국 스탠퍼드대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2년마다 소설과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다. 역대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등이 있다.모국어가 한국어인 이 작가는 이 작품을 영어로 집필해 영국, 미국에서 먼저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지난달 출간됐다. 이 작가는 “미국의 문학상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상을 수상하게 돼 신기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내 휠체어를 좀 밀어줄 수 있겠소?” 인적 드문 놀이터 앞 주차장에 밴 한 대가 서 있다. 뒷문을 열고 아스팔트 위에 휠체어 진입판을 연결한 채 80대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엔 그의 부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휠체어 배터리가 나가 수십 분째 진입판을 못 올라가고 있단다. 누군들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을까. 동네에서 조깅을 하던 젊은 남성이 기꺼이 나선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진입판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청년의 뒷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힌다. 눈앞이 흐려지고 팔에서 기운이 빠진다. 순간 휠체어에서 뛰어내려 남자를 내려다보는 노인.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반세기 동안 거의 매년 신작을 발표해 온 미국 추리소설 거장 스티븐 킹의 ‘홀리’가 16일 국내 번역 출간됐다. 1974년 데뷔작 ‘캐리’를 시작으로 ‘샤이닝’, ‘미저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을 쓴 그는 미국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작품마다 인상적인 악당 캐릭터를 만든 저자는 신간에선 누구든 도움의 손길을 건넬 만큼 연약해 보이는 80대 교수 부부를 내세웠다. 이들은 납치한 이들을 저택 지하실에 가두고 부패한 생간을 먹이는 엽기적인 고문을 벌인다.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 해결에 탐정 홀리 기브니가 뛰어든다. 중년 여성이 한 달 넘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홀리는 비슷한 실종자가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들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선량한 약자의 얼굴로 희생양을 끌어들이는 노부부 악당을 추적하는 홀리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된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을 받은 신간에는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 미 의사당 공격 등 최근 미국 사회를 흔든 첨예한 이슈들이 소재로 다뤄진다. 예컨대 작품 속 노부부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 혐오주의자다. 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배경으로 설정돼 백신 접종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다 죽음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온다. ‘2024년에도 트럼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홀리의 독백이 의미심장하다.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 등 팬데믹으로 달라진 미국 사회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스티븐 킹 팬이라면 올해 그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함께 출간된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황금가지)도 읽어볼 만하다. 생활고로 세탁일 등을 하며 글을 쓰던 킹이 쓰레기통에 버린 데뷔작 ‘캐리’ 원고를 아내가 출판사에 보내 스타 작가가 된 과정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대중적 장르소설에 대한 문단의 편견에 맞선 킹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미국 국립도서재단이 킹에게 공로상 메달을 수여하자, 저명 문학평론가로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해럴드 블룸은 “스티븐 킹은 문장 단위, 문단 단위, 책 단위 모든 측면에서 심히 미숙한 작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언론을 통해 밝힌 킹의 응수는 역시 그답다. “블룸이 진실을 자백할 수 있도록 정맥마취제를 주사한 뒤 ‘자, 해럴드. 실제로 스티븐 킹의 작품을 몇 개나 읽어보셨소?’라고 묻고 싶어요. 그러면 아마 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사진)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 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 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 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 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는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평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해경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의 다크 버전, 가족과 성장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신작을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가 김애란은 이같이 말했다. 신간은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이후 13년 만에 그가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달려라 아비’ 등으로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주목받는 작가인 만큼 신간은 13일 예약 판매가 시작된 직후 알라딘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신작에는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지우, 소리, 채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화목하고 풍족해 보이던 채운네 가족은 1년 전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다. 세 아이의 시점을 오가며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으로, 인물의 다면성을 김애란 특유의 간결하고 여운 있는 문장으로 그린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어 다시 한번 청소년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두 번, 세 번 쓰는 것을 좋아한다”며 “어떤 이야기를 하나 썼으면 시간이 지나 그것의 ‘다크 버전’을 쓴다”고 했다. 가령 단편 ‘칼자국’에서 모성의 건강함, 세 끼를 먹이는 일의 미덕에 대해 쓴 후 단편 ‘가리는 손’에선 세 끼를 먹이는 일의 끔찍함을 다루며 가족 중심주의를 뒤집어 보는 식이다. 그는 신작이 일반적인 의미의 성장과는 다른 시각을 담고 있다며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읽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신작에) 성취나 성공을 이루는 게 아니라 반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친구들, 그만둔 아이들이 나온다.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는 되지 않았으면 싶었다”며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 종래에는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 갖게 되고 내 고통만큼 다른 이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더불어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첫 장편에서 익히 알고 있는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 사람 못지않게 친밀감을 주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등장시켰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이상화된 4인 가족, 다인 가족 모델은 무너진 지 오래”라며 “어려운 순간 힘이 돼준 반려동물, 나랑 피는 안 섞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어떤 아저씨’ 또한 이제는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써봤다”고 말했다. 올해로 23년차 작가가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할까. 그는 이 대목에서 어린 시절 검은 개에 놀라 자신이 터뜨린 울음소리를 듣고 근처 칼국숫집 주방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식칼을 들고 쫓아 나온 일화를 들려줬다. “나이가 들어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 그때 칼을 들고 뛰어나온 엄마를 생각하면 덜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나이를 먹으니까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내용의 단편들을 종종 쓰고 있는데, 이젠 내가 부모 앞에서 검은 개를 쫓아내 줘야 하는 상황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쓸 소설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김홍(38·사진)의 신작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문학동네) 속 인물들은 변신의 귀재다. 야구공, 불상(佛像), 갤럭시폰 등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것들로 몸을 바꾼다. 영상화를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들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듯하다.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홍은 “영상으로 표현이 안 되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요즘 시대 소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작의 표제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성격유형지표(MBTI) ESFP로 에너지가 넘치는 빵집 알바생 산해 씨가 빛이 되는 판타지다. 산해 씨는 밝게 일하는 만큼 급여를 인상해 주겠다는 빵집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의 밝음은 조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럭스(lux)’로 수치화된다. 3000럭스로 시작한 그의 밝기가 2만5000럭스를 돌파하자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그를 해고한다. 그런데 그의 엄청난 광원을 미국 핵융합 연구소가 탐낸다. 기상천외한 설정에 쿡쿡 웃다가도 돌연 씁쓸한 마음이 찾아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에 슬픔 한 스푼을 넣으려고 한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코미디로 위장한 소설 곳곳엔 현실에 대한 뼈아픈 풍자가 숨어 있다. 제목이 ‘여기서 울지 마세요’길래 등 두드려 주는 힐링물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는 블랙코미디다. 이런 엉뚱한 발상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휴대전화 앱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일견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이어붙여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그는 “별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사슴도 되고 곰도 되듯, 별을 최대한 많이 띄워놨다가 별자리로 만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급기야 소설에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차기작 역시 사물로 변해 버린 인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소설 안에서 허용되는 이야기의 최대 경계까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김홍(38)의 신작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문학동네) 속 인물들은 변신의 귀재다. 야구공, 불상(佛像), 갤럭시폰 등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것들로 몸을 바꾼다. 영상화를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들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듯하다.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홍은 “영상으로 표현이 안 되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요즘 시대 소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신작의 표제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성격유형지표(MBTI) ESFP로 에너지가 넘치는 빵집 알바생 산해 씨가 빛이 되는 판타지다. 산해 씨는 밝게 일하는 만큼 급여를 인상해주겠다는 빵집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의 밝음은 조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럭스(lux)’로 수치화된다. 3000럭스로 시작한 그의 밝기가 2만5000럭스를 돌파하자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그를 해고한다. 그런데 그의 엄청난 광원을 미국 핵융합 연구소가 탐낸다.기상천외한 설정에 쿡쿡 웃다가도 돌연 씁쓸한 마음이 찾아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야하는 감정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 “모든 소설에 슬픔 한 스푼을 넣으려고 한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코미디로 위장한 소설 곳곳엔 현실에 대한 뼈아픈 풍자가 숨어있다. 제목이 ‘여기서 울지 마세요’길래 등 두드려주는 힐링물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는 블랙코미디다.이런 엉뚱한 발상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휴대폰 앱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일견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이어붙여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그는 “별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사슴도 되고 곰도 되듯, 별을 최대한 많이 띄워놨다가 별자리로 만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그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급기야 소설에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차기작 역시 사물로 변해버린 인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소설 안에서 허용되는 이야기의 최대 경계까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극지방부터 온대지방까지 폭넓게 서식하는 곰은 여러 나라 신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등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체군이 급감하는 등 멸종위기에 직면했다. 기후 변화와 서식지 소실로 전 세계 곰 개체군 대부분은 크게 줄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곰은 8종에 불과한데, 과학자들은 이마저도 금세기 말을 넘기면 단 3종(대왕판다, 미국흑곰, 불곰)만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8종의 곰 이야기를 담은 과학서이자 탐사 보고서다. 로이터통신 세계기후 및 환경 분야 특파원인 저자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곰들의 서식지를 관찰하고 이들이 처한 환경을 탐사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을 찾아 안데스산맥에 오르고, 인도 아라발리 산맥에서 먹잇감을 먹고 있는 느림보곰도 만난다. 생생한 현장 탐사 기록과 함께 곰의 생태와 역사, 신화 이야기를 교차해 서술한다. 현존하는 곰 8종은 대왕판다(중국), 미국흑곰(미국), 북극곰(캐나다), 불곰(미국), 느림보곰(인도), 반달가슴곰(베트남), 안경곰(에콰도르, 페루), 태양곰(베트남)이다. 갯과 동물이 35종, 고양잇과 동물이 41종, 고래목이 90종, 영장류가 500종인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다. 전 세계 서식 범위에 걸쳐 생존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곰은 미국흑곰뿐이다. 개체 수가 90만 마리에 달해 다른 7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저자가 야생에서 만난 곰들은 대체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뚝 솟은 산과 연어가 뛰노는 세찬 개울 속 대신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 옆 공사현장 근처에서 나무뿌리를 파내고 있었다. 인간은 곰을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좁은 철장이나 우리에 가둬 생활하게 했다. 재갈을 물리려고 주둥이를 뚫거나 이빨을 뽑았고 덫에 걸린 곰의 발을 잘랐다. 배에 주사기를 수십 번 찔러 넣으며 웅담즙을 채취했다. 곰 8종은 생김새와 습성이 다양하지만 모두 저마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경곰과 미국흑곰은 배설물로 씨를 퍼뜨리는 숲의 정원사다. 미국 콜로라도주 로키산맥 국립공원에서는 곰의 똥 한 더미를 온실에 옮겨 심는 실험을 했는데 약 1200개의 묘목이 여기서 자라났다. 고기를 많이 먹는 곰은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의 개체 수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곰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먹이사슬에서 곰 하위에 있는 모든 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곰 8종을 보존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곰이 생존할 수 없는 생태환경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것. 곰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생태 육교를 설치하고, 서식지 내 인공 수원과 흰개미 둔덕을 조성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곰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취재기도 눈길을 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수년 전 출간됐지만 시대 흐름과 맞는 책들을 다시 펴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MZ세대의 레트로 선호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소설 부문 상위 30권 중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은 11권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6권, 2022년 상반기 4권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올 상반기 기준 교보문고 소설 1위는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사진)이다. 이 책은 2022년 25위, 지난해 7위에 이어 올 들어 1위로 급상승했다. 역주행 현상과 맞물려 절판된 도서를 재출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넥서스북은 ‘엔드리스’ 시리즈란 이름 아래 지난달 31일 김미진의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1995년), 한지수의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2006년), 정영문의 ‘겨우 존재하는 인간’(1997년)을 재출간했다. 민음사는 1990년 초판이 나온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을 9일 다시 펴냈다. 젊은층이 읽기 쉽게 한자어, 일본어 등을 우리말로 풀어 썼다. 박지영 창비 문학출판부 차장은 “판매량 등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게 리스크가 적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올해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년)이나 ‘불편한 편의점’(2021년) 같은 신간 베스트셀러가 드문 데다 젊은층의 레트로 선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양귀자 ‘모순’의 20대 구매 비율이 3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현실과 몽상 사이를 저울질하다 현실을 택하는 내용(‘모순’) 등이 젊은 세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화도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비는 올 하반기(7∼12월) 공개되는 공유, 서현진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인 김려령의 ‘트렁크’(2015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앞서 창비는 송중기 주연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개봉을 맞아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년) 개정판을 올 2월 펴냈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이런 흐름이 변할 수도 있다. 기대작들이 줄줄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 이달 말 김애란 작가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에 이어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 황석영의 ‘할매’(창비),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등이 연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수년 전 출간됐지만 시대 흐름과 맞는 책들을 다시 펴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MZ세대의 레트로 선호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소설 부문 상위 30권 중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은 11권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6권, 2022년 상반기 4권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올 상반기 기준 교보문고 소설 1위는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이다. 이 책은 2022년 25위, 지난해 7위에 이어 올 들어 1위로 급상승했다. 역주행 현상과 맞물려 절판된 도서를 재출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넥서스북은 ‘엔드리스’ 시리즈란 이름 아래 지난달 31일 김미진의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1995년), 한지수의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2006년), 정영문의 ‘겨우 존재하는 인간’(1997년)을 재출간했다. 민음사는 1990년 초판이 나온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을 9일 다시 펴냈다. 젊은층이 읽기 쉽게 한자어, 일본어 등을 우리말로 풀어썼다. 박지영 창비 문학출판부 차장은 “판매량 등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게 리스크가 적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올해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년)이나 ‘불편한 편의점’(2021년) 같은 신간 베스트셀러가 드문 데다 젊은 층의 레트로 선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양귀자 ‘모순’의 20대 구매 비율이 3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민음사)’이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민음사)’도 20대 구매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현실과 몽상 사이를 저울질하다 현실을 택하는 내용(‘모순’) 등이 젊은 세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화도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비는 올 하반기(7~12월) 공개되는 공유, 서현진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인 김려령의 ‘트렁크’(2015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앞서 창비는 송중기 주연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개봉을 맞아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년) 개정판을 올 2월 펴냈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이름 흐름이 변할 수도 있다. 기대작들이 줄줄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 이달 말 김애란 작가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에 이어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 황석영의 ‘할매’(창비),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등이 연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달 말 국내 출간된 자기계발서 ‘섀도 워크 저널’(푸른숲)은 언뜻 보면 메모장 같다. 전체 240쪽 중 불과 30쪽에만 글이 쓰여 있고, 나머지는 독자가 직접 채워야 하는 빈칸으로 돼 있다. 첫 장엔 ‘나 ○○은 오늘부터 개인적인 성장과 수용을 위해 노력하기로 맹세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명란이 있다. 이어 ‘내게 나의 행복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나를 아끼는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 ‘어떨 때 화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느끼는지 써보자’ 등의 질문에 대해 독자가 답을 쓰도록 돼 있다. 이는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그림자’ 개념에 따라 독자가 무의식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21년 출간 후 100만 부 이상 팔려 아마존 종합 순위 1위에 올랐다. 최근 독자가 스스로 빈칸을 채우는 독특한 자기계발서가 속속 출간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베스트셀러 ‘거인의 노트’(다산북스)의 저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마인드 박스’(다산북스)도 독자들이 직접 채우는 문답지가 포함돼 있다. 나만의 인생관을 만드는 6단계 ‘생각 정리법’을 소개하면서 독자가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 이 책은 출간 2주 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자기계발서 부문 2위에 올랐다. 문답지만 따로 빼서 만든 부록은 하루 만에 완판돼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 프로게이머 페이커 등의 심리상담을 맡은 김미선 박사의 신간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쌤앤파커스)엔 ‘실전 멘털 강화’ 기록지가 들어갔다. 뇌 구조를 묘사한 그림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으며 내용을 익히도록 한 것. 문답형 자기계발서의 원조로 2015년 출간된 ‘5년 후 나에게 Q&A’(토네이도)는 최근 3년 동안 한정판 에디션이 완판됐다. 이 책은 매일 그날의 질문에 답을 하는 일기장 형식이다. 5년간 같은 질문에 각기 다른 5개의 답을 적을 수 있어 어떤 성장과 변화를 거쳐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출판계는 문답형 자기계발서가 느는 것은 체험형 콘텐츠를 선호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은 저자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보다 스스로 체험하고 효과를 깨우치는 걸 선호한다”며 “문장과 책의 구성이 독자 친화적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단비 다산북스 콘텐츠사업7팀장은 “자기계발서 애독자들은 직접 기록한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드디어 아버지가 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뻐요.”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헤쳐 온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첫 장편소설을 영국, 이탈리아 등 10여 개국에서 출간하며 주목받은 신인 작가 이미리내(41)를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영문으로 쓰인 데뷔작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위즈덤하우스)은 미국에서 억대 선인세를 받으며 계약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그는 “아무런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책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라서 더 떨린다”고 말했다. 2021년 하퍼콜린스가 이 작가의 데뷔 소설을 2억 원에 사들인 것은 출판계 큰 이슈였다. 하퍼콜린스는 ‘앵무새 죽이기’, ‘모비딕’ 등 영미문학 고전을 다수 낸 출판사다. 아시아계 등 외국인 작가의 작품을 주로 내는 하위 브랜드가 아니라 본사 브랜드로 출간됐다. 이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한국에서 마쳤다. 미국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가족과 홍콩에서 13년째 거주 중이다. 한국어로도 소설을 써 봤지만 잘 안 됐단다. 이 씨는 “영어가 공용어인 곳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설을 쓰게 됐다”며 “모국어가 아니어서 오히려 자기 검열 없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경기 파주에서 대인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친할아버지, 탈북자였던 이모할머니 등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20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 영어로 쓴 소설의 장점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동서양의 정서를 넘나들며 자유자재의 문장을 구사한다. 민들레 홀씨를 ‘묽게 쑨 흰쌀죽을 토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지뢰가 터지는 순간은 ‘네온빛 페이즐리 문양이 시야를 채웠다’고 썼다. 이 작가는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특이한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게 (다양성 면에서) 좋은 신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판문점’, ‘비무장지대’ 등 외국인에게 낯선 지명과 용어가 많지만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져 출간에 장벽이 되지 않았다. 이 씨는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서양 에디터들도 이전에 맡은 한국 작품이 인기를 끌어서인지 한국 작가들에게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영국에서는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 출간을 담당했던 에디터가 이 씨의 책을 맡았다. 최근 미국 유명 에이전시와 영상화 가능성도 검토 중인 그는 “책을 쓰던 중 ‘한공주’를 봤다”며 “아직은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주인공 역할에 천우희 배우가 어울릴 것 같다”며 웃었다. 발표와 동시에 지명도를 얻게 된 이 작품은 마흔을 넘긴 그의 데뷔작이자 첫 장편이다. 그는 “아주 천천히, 조용히 발전하는 예술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