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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6개월 이상 미뤄졌던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28일 온라인 비대면으로 열린다. 기도회 주최 측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제52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28일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이용한 온라인 기도회로 개최된다고 밝혔다. 1968년 시작된 이 기도회는 한 해도 빠짐없이 개최됐으며 온라인으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올해 주제는 ‘회개와 일치, 그리고 회복’이다. 기도회는 23일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에서 사전 녹화돼 28일 오전 7시 개신교계 방송을 통해 방영된다. 이 기도회에는 매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교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인사말로 영상 인사를 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주요 교단 총회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장로회(기장)와 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에 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도 21일 오후 2시 새에덴교회를 거점으로 전국 35개 교회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예장 고신과 개혁, 합신도 22일 일제히 온라인 화상총회를 개최한다.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는 9월 예정이었던 총회를 10월로 연기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8일 설악산 신흥사는 경사를 맞았다. 1954년 미군이 무단 반출한 것으로 추정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시왕도(十王圖)가 66년 만에 돌아오는 이운식(移運式)이 열린 것. 영산회상도는 1755년(영조 31년) 그렸다는 발문(跋文)이 있는 가로 4m, 세로 3.3m의 대형 불화다. 신흥사 극락보전(보물 제1981호)의 후불화로 조선 후기 불화의 수작이라는 평가다. 시왕도는 1798년(정조 22년) 조성된 것으로 전체 4화폭 10대왕 중 이번에 3화폭 6대왕이 돌아왔다. 10일 신흥사에서 만난 회주(會主·큰 사찰의 어른 스님) 우송 스님은 “큰 기쁨 속에도 신흥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태풍과 폭우 피해가 커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난달 이운식을 거행했다. “환영 법회를 크게 해야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건이 좋지 않아 이운식을 통해 인사했다. 두 불화는 유물전시관에 보관 중이다.” ―환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 불화는 6·25전쟁 뒤 혼란기에 사라졌다 이번에 제자리를 찾는, 환지본처(還至本處)했다. 우리 불교문화와 민족문화의 정수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무단반출에 관한 기록은 있었나. “기록은 특별히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과 탱화는 같이 조성하기 마련인데 극락보전 탱화는 시기가 맞지 않고, 명부전 벽면은 비어 있었다. 그러다 2007년경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 있는 불화에 ‘설악산 신흥사’라고 써있다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신흥사와 조계종은 물론 강원도와 속초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LACMA와 CJ그룹이 환수에 힘을 합쳤다.”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나. “두 불화가 본래 있던 산사로 돌아가고 특히 불자들의 신행(信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게 LACMA 측의 뜻이다. 귀한 뜻이라 영산회상도는 청동대불 앞에 통일대법당을 조성해 모시려고 한다. 내년 초 착공해 2022년 완공할 계획이다. 시왕도는 명부전을 정비해 비어 있는 벽면에 복원한다.” ―오현 스님 2주기가 지났는데…. “스님의 그늘이 그렇게 넓고 깊은 줄 몰랐다. 스님의 평소 가르침과 말씀들이 많이 생각난다. ‘많이 베풀어라’ ‘인재를 길러라’ ‘설악산과 신흥사를 잘 지켰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신흥사 주지로 10년이 넘었다. “가람은 많이 정비됐으니 포교에 앞장서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지역 주민의 어려움도 어루만지겠다. 또 절 집안은 수행 풍토를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 신흥사 선방 옆에 무문관을 조성할 생각이다. 관광객이 많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바깥세상 얘기도 자주 접하나. “산중에서는 안 듣고 안 봐야 하는데…. 법구경에 ‘면상무진공양구 구리무진토묘향(面上無瞋供養具 口裏無瞋吐妙香),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라고 했다. 화합해도 힘든데,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자신만 시원하려고 쏟아내는 독설이 세상을 더욱 어지럽고 힘들게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이들을 위해 조언해주신다면…. “이 고통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가 겪고 있다. 자신뿐 아니라 남도 안전하도록 마음을 쓰고 배려해야 한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초심을 지키면 언젠가 바른 깨달음, 정각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초심을 잘 지켜야 승속을 막론하고 어려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속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암각화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존재할 뿐입니다. … 마음을 비우고 그저 암각화를 바라봅니다. 한참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최근 출간된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불광출판사)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뜻밖에도 학자가 아니라 대한불교조계종 기획실장을 지냈고 현재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일감 스님이다. 저자는 2005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의 권유로 경남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를 본 뒤 그 인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암각화에 대한 ‘몰래한 사랑’은 종단 내 여러 소임 때문에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2016년 다짜고짜 러시아 알타이에 가자는 김 화백의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왔다. 이후 휴가 때마다 러시아와 몽골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10차례 오가며 암각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 암각화 명상록이다. 스님은 선인들이 남긴 태양과 물고기, 사슴 같은 그림뿐 아니라 극도로 절제된 선과 도형 앞에서 ‘시인’이 됐다. 현지에서 탁본을 뜬 암각화 사진과 선시(禪詩), 체험이 담긴 에세이들이 어우러졌다. “암각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낸 화엄(華嚴)만다라입니다. 암각화를 보는 것은 맑고 오래된 거울, 고경(古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은 ‘기도하는 밤’이라는 제목을 붙인 암각화를 보면서 “이렇게 철학적인 밤하늘을, 누가 다시 그려 낼 수 있을까”라고 썼다. 15∼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60여 점을 모은 전시회도 열린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4일 찾은 인천 주안장로교회 부평성전은 큰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 교회는 인천 지역의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자 지난달 23일부터 현장 예배를 중단했다. 이곳은 주기철 목사(1897∼1944)의 손자인 주승중 목사(62)가 목회를 하고 있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는 6·25전쟁 때 희생된 손양원 목사(1902∼1950)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순교자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꼽힌다.》 ―지난달 인천지역 일부 교회를 매개로 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했다. “인천 지역에 개척 교회들이 많다. 우리 교회가 교단(예장 통합)의 인천 노회 중 서부 지역에 속해 있는데 32곳 중 22곳이 미자립 상태다. 신자 수도 적고 재정이 어려워 방역과 온라인 예배를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염병이 무서워 현장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을 신앙 포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안서교회(충남 천안) 고태진 목사의 말씀이 마음에 닿아 옮긴다.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학적 접근은 어떤가? “성경 가르침의 핵심은 이웃 사랑이다. 요한 1서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이라고 했다. 가까운 이웃의 안전과 생명을 못 지키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1527년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를 썼다. 당시 어떤 이들은 이 병이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치료약 사용을 반대했고, 흑사병에 감염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약을 먹으라. 집과 마당과 거리를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구별하라. … 나의 무지와 태만, 불청결로 이웃이 고통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통합 교단이 사상 첫 온라인 총회를 최근 결정했다. “총회는 대의원 1500명 정도가 모여 3박 4일 일정으로 치러져왔는데 신임 교단장 선출뿐 아니라 중요 이슈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올해만 해도 목회자 연금과 명성교회 세습 문제 등 큰 이슈가 많다. 온라인 총회 결정은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잘한 일이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교회의 정치적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목사의 이단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복음을 이념에 예속시키고, 교회를 정치 도구화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단 시비를 떠나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 사죄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 비신자 분들의 눈으로 볼 때 이단인가 아닌가, 사랑제일교회냐 일반 교회냐는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 교회이고, 예수 믿는 사람일 뿐이다. 검사 받지 않고 방역 요원들에게 침 뱉는 행위까지 나오는데 ‘우리는 다르다’고 해서 통하는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시대의 영성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나? “진짜 예배는 무엇이고, 성전(교회)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주일(일요일) 예배에 출석하면 하나님 사랑을 다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목사의 축도가 끝나고 월요일이 시작될 때부터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초대 교회를 보면 박해로 성전 예배가 불가능해지자 곳곳으로 흩어졌고, 다른 지역으로 복음 전파가 이뤄졌다. 이런 위기를 통해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고 교회 본질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이 계신다면 이런 시기 어떤 말을 했을까? “무엇보다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다.”인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4일 찾은 인천시 주안장로교회 부평성전은 큰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 교회는 인천 지역의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재확산되자 지난달 23일부터 현장 예배를 중단했다. 이곳은 주기철 목사(1897~1944)의 손자인 주승중 목사(62)가 목회를 하고 있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는 6·25전쟁 때 희생된 손양원 목사(1902~1950)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순교자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꼽힌다. ―지난달 인천지역 일부 교회를 매개로 한 코로나 19 확산이 심각했다. “인천 지역에 개척 교회들이 많다. 우리 교회가 교단(예장 통합)의 인천 노회 중 서부 지역에 속해 있는데 32곳 중 22곳이 미자립 상태다. 신자 수도 적고 재정이 어려워 방역과 온라인 예배를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염병이 무서워 현장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을 신앙 포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안서교회(충남 천안) 고태진 목사의 말씀이 마음에 닿아 옮긴다.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학적 접근은 어떤가? “성경 가르침의 핵심은 이웃 사랑이다. 요한 1서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이라고 했다. 가까운 이웃의 안전과 생명을 못 지키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1527년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를 썼다. 당시 어떤 이들은 이 병이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치료약 사용을 반대했고, 흑사병에 감염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약을 먹으라. 집과 마당과 거리를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구별하라.…나의 무지와 태만, 불청결로 이웃이 고통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통합 교단이 사상 첫 온라인 총회를 최근 결정했다. “총회는 대의원 1500명 정도가 모여 3박 4일 일정으로 치러져왔는데 신임 교단장 선출 뿐 아니라 중요 이슈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올해만 해도 목회자 연금과 명성교회 세습 문제 등 큰 이슈가 많다. 온라인 총회 결정은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잘한 일이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교회의 정치적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목사의 이단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복음을 이념에 예속시키고, 교회를 정치 도구화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단 시비를 떠나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 사죄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 비신자 분들의 눈으로 볼 때 이단인가 아닌가, 사랑제일교회나 일반교회냐는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 교회이고, 예수 믿는 사람일 뿐이다. 검사 받지 않고 방역 요원들에게 침 뱉는 행위까지 나오는데 ‘우리는 다르다’고 해서 통하는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 19시대, 비대면 시대의 영성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나? “진짜 예배는 무엇이고, 성전(교회)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주일(일요일) 예배에 출석하면 하나님 사랑을 다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목사의 축도가 끝나고 월요일이 시작될 때부터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초대 교회를 보면 박해로 성전 예배가 불가능해지자 곳곳으로 흩어졌고, 다른 지역으로 복음 전파가 이뤄졌다. 이런 위기를 통해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고 교회 본질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이 계시다면 이런 시기 어떤 말을 했을까? “무엇보다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다.”인천=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적대적인 관계를 피하는 열쇠는 양쪽 모두에 득이 되도록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1999∼2006년)와 미국 재무장관(2006∼2009년)을 지낸 저자 헨리 폴슨 주니어의 말이다. 그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 ‘방화범이자 소방관’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금융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2011년)도 그를 책임져야 할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런 선입견을 지우면 ‘중국과 협상하기’는 미국과 중국, 주요 2개국(G2)의 갈등에 대한 해법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원제는 ‘Dealing with China’. 그의 ‘훈수’는 글로벌 기업 CEO이자 미국 경제정책의 책임자로 중국과의 산전수전 끝에 얻어진 것이다. 25년간 100차례 넘게 중국을 방문한 그는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국가주석 3명을 비롯해 중국 경제 엘리트들과 폭넓게 교류해 왔다. 2006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첫 중국 방문에서 그는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야 할지 고심했다. 그의 선택은 당시 저장성 서기였던 시진핑이었다. 이후 폴슨과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후진타오 주석과의 면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시진핑 역시 미 재무장관이 첫 중국 방문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만난 것을 고마워했다고 한다. 저자가 주도했던 중국 기업의 민영화와 글로벌화, 대학 개혁, 미중 경제 협상 등의 사례도 다뤘다. 최고위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뒷얘기와 중국을 움직이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흥미롭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가장 큰 악몽이 무엇이냐”고 묻자 후 주석은 “매년 2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에 서방의 은행가로 ‘자본주의의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를 자처하는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중국의 번영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계의 주요 교단들과 연합단체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요 행사를 잇달아 취소하거나 축소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개신교 최대 교단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이 교단 최대 행사인 총회를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3일 결정했다. 예장 통합은 이날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모임을 갖고 제105회 총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총회는 21, 22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에서 총대(대의원)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 총회는 차기 총회장 선출과 주요 현안을 다루는 교단의 가장 큰 행사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행사로 치르게 됐다는 게 교단 측 설명이다. 예장 통합은 총회를 21일 오후 반나절 동안 진행하고, 이를 전국 36개 교회에 생중계하기로 했다. 교회마다 참석자는 50명이 넘지 않도록 했고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의원 600명 규모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22, 23일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을 활용해 총회를 열기로 최근 결정한 바 있다. 개신교계에서 9월은 교단들이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총회의 계절’로 예장 통합의 온라인 총회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또 다른 최대 교단 중 하나인 예장 합동 측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총회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개신교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16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기도회를 3일 취소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거세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한교총으로서는 이례적 결정이다. 한교총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장기도회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 진보 계열 원로들이 전광훈 목사를 더 이상 목사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성명을 24일 발표했다. 유경재 안동교회 원로목사, 백도웅 전 NCCK 총무 등 21명은 이날 성명에서 “전광훈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광훈을 중심으로 한 사랑제일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거점이 됐다”며 “그런데도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정부의 방역활동을 왜곡하고 불신을 조장해 무력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의 방역 지침에 맞서 ‘신앙의 자유’를 운운하지만 기독교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자신을 제한하는 자유”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어 “무서운 범죄적 일탈에 대해 참회하는 심정”이라며 “기독교 진리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전광훈은 참회하고 사죄하는 한편 그를 더 이상 목사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당국에 법과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광훈과 그 추종자들은 더 이상 ‘기독교인’을 스스로 포기한 사교집단에 불과할 뿐”이라며 “방역을 거부하는 범죄집단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성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법 집행을 통해 보여 달라”고 주장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배론은 지형이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깝게는 이 지명을 짐작할 수 있는 주론산(舟論山), 멀게는 울고 넘는다는 박달재가 있다. 1791년 신해박해 이후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는 배론성지(충북 제천시 봉양읍)에는 3가지 보물이 있다. 먼저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1821∼1861)의 묘가 있다. 헌신적인 사목 활동으로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은 2016년 로마 교황청이 시복(諡福) 후보자에게 붙여주는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됐다. 또 하나는 1855년 프랑스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가 설립한 성 요셉 신학당으로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신학교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초기 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이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 실태를 설명하고 이를 막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취지의 백서(帛書)를 썼다는 토굴도 있다. 15일 봉헌식을 개최한 천주교 원주교구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21일 찾았다. 원주교구를 보호하는 수호성인은 모든 은총을 중재하는 성모 마리아다. 연면적 6900m²인 기도학교는 1층에는 나자렛홀과 190석 규모의 소성당, 요셉 대강당 등이 있다. 성체조배실(聖體朝拜室)과 객실 등이 있는 2층 입구에는 원주교구의 올해 사목 지침인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를 새긴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다. 왜 기도학교일까. 배론성지와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주임인 배달하 신부(57)는 “이곳은 신앙의 선조들이 삶을 도모하고, 기도하기 위해 일찌감치 찾아온 명당 중의 명당”이라며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됐다는 점과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다는 것도 기도학교가 세워져야 하는 역사적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2016년 원주교구장으로 임명된 조규만 주교는 부임 다음 날 이곳을 찾아 “기도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의 기본이지만 의외로 기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 주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하던 시절 “여건이 되면 기도학교를 꼭 세워 달라”는 은사의 유지를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있었다고 한다. 기도학교는 다양한 기도의 소개, 역사와 인물을 통한 학문적 심화, 기도 체험 등 3단계 과정을 통해 신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기도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배 신부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을 거닐면서 새나 나무와 교감하는 기도를 즐겼다”며 “자신에게 맞는 기도법이 없으면 기도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도의 시간과 형식 순서 내용에 따라 기도법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배론성지는 66만여 m²의 공간적 매력이 무엇보다 강점이다. 기도학교는 제천시와 함께 최양업 신부 묘로 향하는 길, 묵주기도를 하며 걸을 수 있는 ‘숲 터널’인 로사리오 길, 인근 파랑재 코스를 비롯해 다양한 치유와 기도의 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청년 묘지기’ ‘배론 배씨’라고 자처하는 배 신부는 기도학교를 이렇게 찬미했다. “이 어둡고 혼란한 시기에 고요한 자태로 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배론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는 진짜 아름다운 배론을 묵상으로 기도하듯,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섭리의 공간이다.” 내년은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선종(善終) 160주년이다. 기도학교는 12월부터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매월 1회 운영할 계획이다.제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직에서 사퇴했다. 23일 한기총 측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전 목사는 최근 측근 이은재 목사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한기총 대표회장 사퇴의 뜻을 밝혔다. 전 목사는 음성 녹음을 통해 “한기총 대표회장 직을 내려놓고자 한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위해 온 힘을 바쳐왔으나 불미스럽게도 외부 불순자들의 강력한 테러로 고난을 당하고 있다”며 “현재 상태로는 대표회장 직을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기에 사퇴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말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 목사는 올 1월 정기총회에서 반대파의 대회장 입장을 막고 대표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5월 법원은 선거 절차의 문제점을 인정해 전 목사의 직무를 정지한 상태다. 1989년 설립된 이래 보수 성향 개신교 목소리를 대변해 온 한기총은 현재 예장 통합과 합동 등 주류 교단 대부분이 탈퇴해 군소 교단만 남은 상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당신이 수렵채집시대에 사는 원시인인데 어제 사자를 가까스로 피했다고 상상해보라. 오늘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현명할까? … 위험징후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재빨리 집이나 안전한 장소로 달려가야 한다.” 공황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된 책의 구절이다. 오늘날 공황장애 환자는 야생의 사자와 마주친 경험은 없다. 공황발작은 위험 앞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시스템이 잘못 울린 경보라는 것이 저자 랜돌프 M 네스의 비유다. 이 거짓정보들이 몸 상태를 계속 살피고 흥분의 수위를 높이며 시스템을 민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왜 자연은 인간에게 나쁜 감정을 심었는가.’ 진화의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저자의 질문이자 책의 화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이자 ‘진화와 의학 연구센터’ 소장인 그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쓰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와 1994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를 출간했다. ‘이기적 감정’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이기적 유전자’의 후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책의 원제는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s from the Frontier of Evolutionary’다. 한국어판 표지에 부제로 써 있는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가 저자의 답변에 가깝다.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다. 전문적인 분야인 데다 진화생물학의 원리를 활용해 의학, 특히 정신의학에 접근하는 진화정신의학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책은 ‘왜 인간의 마음은 쉽게 무너지는가’ ‘감정의 이기적 기원’ ‘사회적 삶의 기쁨과 슬픔’ ‘고장 난 행동과 심각한 정신질환들’ 4부로 구성돼 있다. 그가 말하는 진화정신의학의 키워드는 불안 우울 슬픔 같은 감정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우리가 겪는 고통이 인류의 유전자에는 이로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감정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진화했으리라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신경성폭식증과 식욕부진증,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조현병, 자폐 등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 문제들을 다룬다. 기존 정신의학이 뇌 질환 위주로 진단하고 있는데 진화생물학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생생한 임상사례와 묵직한 철학적 질문이 주제의 생소함과 전문용어의 장벽을 어느 정도 무너뜨린다. 특히 진화정신의학이 진화생물학과 정신의학으로 갈라진 협곡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강조한 에필로그가 흥미롭다. 오늘날 싯다르타가 살아 있다면 그의 질문은 이렇게 바뀔 것이다.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욕구라는 것이 왜 생겨났으며, 욕구를 좇으면서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유쾌한 감정은 왜 아직도 남아 있는가?”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최근 일부 교회를 둘러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참담한 심경이다.” 작고한 옥한흠 하용조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74)와 함께 국내 개신교의 복음주의를 이끌어 ‘복음주의의 맏형’으로 불리는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78·사진)는 최근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홍 목사는 교계 내 보수 진보 성향에 관계없이 드물게 존경받는 원로다. 그는 장애인 학교인 밀알학교를 설립했고, 북한을 돕기 위한 최초의 민간단체 ‘남북나눔’ 이사장으로 30년 가깝게 활동했다. 코로나19로 지역 경제와 작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자 중견 목회자 30여 명이 참여하는 초교파모임 ‘말씀과 순명’을 결성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적 구호가 뒤덮은 교회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바람과 다른 길”이라고 했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생명의 거리 두기’다. 실제 대부분의 교회가 방역 당국의 지침을 잘 지켰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성가대 찬양이나 큰 소리를 내는 통성 기도, 밀집 예배 등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작은 교회의 경우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비상 상황인 만큼 방역 당국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사회규범을 잘 지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본 것을 행하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당시의 가장 좋은 그 시대의 규범을 지키라’고 했다.” ―개신교 최대 협의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최근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백번 잘한 일이다. 한 차례 진솔한 사과의 시기를 놓치면 10차례의 구차한 변명과 궤변이 필요하게 된다. 교회나 정부 모두 잘못이 있다면 마음이 담긴 사과가 최우선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지나친 정치 구호가 나오고 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분들이 있는데 몇몇 교회가 불만 표출의 창구가 됐다. 세상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한국 교회 전체의 모습으로 인식할까 봐 걱정이 컸다. 과거 독재 시기도 아닌데 교회가 정치적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교회의 권력화, 정치세력화로 인한 폐해는 기독교를 포함한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코로나19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정한 기독교 신자, 크리스천이라면 지금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한 교회도 많지만 비용이 줄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교회도 있다. 이런 시기야말로 교회의 자원을 민족과 동포를 위해 써야 한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야 하는 시기다.” ―말씀과 순명 모임에서도 방역 일선의 의료진을 돕기 위해 나선 적이 있다. “그분들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진과 방역 당국이 지금 이 시대 예수의 모습이다. 모두 성직자의 헌신처럼 귀하게 노력해주고 있다. 기독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재난과 질병 등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희생의 가장 앞자리에 서는 것이다. 지금이 그럴 때다.” ―지도자들을 위한 조언을 준다면…. “교회나 정치권 모두 개혁을 얘기하지만 정작 자신이 빠져 있다. 자신을 바꾸는 게 최선의 개혁이다. 그게 아니면 공염불이다.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나선 이들은 먼저 자신을 둘러보는 성찰을 해야 한다.”김갑식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20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교계 연합기관 중 하나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전날 소속 회원들에게 보낸 ‘한교연 긴급 공지사항’이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에서 “한교연에 소속된 교단과 단체는 현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지역 교회의 예배 금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교연에는 39개 교단과 10여 개 단체가 속해 있지만 구속력은 없다는 게 교계 설명이다. 한교연은 대표회장 명의의 이 문자에서 “모든 교회는 정부 방역 지침대로 철저히 방역에 힘써야 할 것이며, 우리는 생명과 같은 예배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한교연이 함께 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지침을 어기는 것이냐는 논란이 커지자 한교연은 다시 “비대면 예배가 어려운 작은 교회들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어서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보냈던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바로 수정 내용을 발송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정부 조치를 어기라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정부에 재고를 요청하는 등 힘쓰고 있으니 걱정 말고 목회하라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가 새로 발송한 공지사항에는 ‘예배를 멈춰서는 안 된다’ ‘모든 책임을 한교연이 지겠다’는 문구는 삭제됐고, 예배의 원론적 의미를 되새기는 한편 정부 방역 지침 준수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한국 가톨릭 103위 순교 성인들의 개별 초상화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9월 4∼27일 서울 명동대성당 입구 ‘갤러리 1898’에서 순교 성인화(聖人畵) 특별전 ‘피어라, 신앙의 꽃’을 개최한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는 1984년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됐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사업 등이 있어 26위의 개별 초상화만 제작됐다. 이번 전시를 위해 60여 명의 작가가 3년여에 걸쳐 성녀 이간난 아가타, 성 이광렬 요한 등 77위의 초상화를 새로 제작했다.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등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10명의 성인화도 볼 수 있다. 이들의 초상화에는 성인화의 특징인 둥근 원형의 후광(後光)이 없다. 프랑스 현지에서 실물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초상화 영인본을 가져와 이번에 작업했다. 당시에는 시성 이전이기 때문에 후광이 없다는 게 주교회의 설명이다.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문화예술위원회 총무인 정웅모 신부는 “이번 작업이 성인화 작업의 끝이 아니라 활성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성인화를 통해 신자들이 더욱 가깝게 성인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인화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성인들의 용모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부부와 자매, 형제 등 가족 모두가 박해 중 함께 숨진 사례가 많아 후손들이 없는 경우도 많다. 안병철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은 “전시는 기해, 병오, 병인박해의 동선으로 구성하고 순교(殉敎) 시기에 따라 초상화를 배치하되 가족인 경우 인접하도록 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회 개최가 어렵게 될 경우 온라인 공개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음 달 4일 오전 10시 반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축복 예식에 이어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린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 교단들의 최대 협의체인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가 일부 교회를 통해 코로나19 가 확산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한교총은 18일 발표한 김태영 류정호 문수석 목사 등 3인 대표회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최근 몇 교회가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고 교인들과 지역사회에 감염 확산의 통로가 된 데 대하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집회에 참가했거나 참가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격리하고 신속하게 검진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한교총은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관련해 “전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는 본연의 종교 활동을 넘어서 정치집단화돼 안타깝다”며 “조속하게 교회의 본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교인들이나 방문자들이 검진에 적극적으로 응해 방역에 협조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 교단들의 최대 협의체인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가 수도권 교회들을 상대로 앞으로 2주간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교총은 18일 발표한 김태영 류정호 문수석 목사 등 3인 대표회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최근 몇 교회가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고 교인들과 지역사회에 감염확산의 통로가 된 데 대하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향후 2주간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에서는 공예배(현장 예배)를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하여 온라인 예배로 진행하고, 일체의 소모임과 교회 내 식사, 친교모임을 중지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교총은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관련해 “전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는 본연의 종교활동을 넘어서 정치집단화돼 안타깝다”며 “조속하게 교회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교인들이나 방문자들이 검진에 적극적으로 응해 방역에 협조해 달라”고 촉구했다. 최근 3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18일부터 2주간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온누리교회와 소망교회, 영락교회, 잠실교회, 주안교회, 창동염광교회 등 대형교회들도 공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진행할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리산은 ‘지혜 지(智)’에 ‘다를 이(異)’자를 쓰니, 세상과 다른 지혜의 산이죠. 부처님의 자비처럼 산의 품이 넓어요. 운봉(雲峰)이란 말도 시적이라 좋습니다.” 2018년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宗法師)에서 퇴임한 경산(耕山) 장응철 상사(上師·80)의 거처는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있다. 상사는 퇴임 종법사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종법사에 준한 예우를 받는다. 2006년부터 12년간 종법사로 재임한 그는 150만 원불교 교도들의 정신적 지주로 신앙과 수행을 이끌며 원불교 100년 사업을 마무리 짓고 교단의 세계화와 사회적 활동에 힘썼다. 6일 상사원에서 만난 그의 자리는 바뀌었지만 특유의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 등 도인(道人)의 풍모는 여전했다.》 ―퇴임 뒤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보시다시피 자연을 벗 삼아 모처럼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시간처럼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100시간을 1시간, 1시간을 100시간처럼 쓸 수도 있겠죠. 이제 여유가 생겨 글씨와 그림, 필묵과 동행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종법사에서 물러난 아쉬움은 없습니까. “지금이 좋습니다. 그때는 일정이 저를 운전했어요(웃음).” ―재임 중 아쉬웠던 일, 그리고 성과는 무엇입니까. “잘한 것부터 물어보시지, 하하. 교단이 교역자 인건비를 절약해서 운영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박봉입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의 소태산기념관 건립으로 교단 위상을 높일지, 젊은 교역자의 후생복지를 개선할지 막판까지 고심했어요. 교단 세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해 기념관 건립으로 결단을 내렸죠. 교역자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하고, 이해를 바랍니다.” 원불교 교도들은 남자는 산(山), 여자는 타원(陀圓)이란 법호(法號)를 받는다. 입교 후 최소한 20년 이상 열심히 적공(積功)하여 진리를 깨친 사람에게 내리는 명예로운 법력의 상징이다. 그가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는 밭가는 소, 경우(耕牛)였다. ―법호에 얽힌 일화가 궁금한데요. “제가 느리고 판단이 빠르지 못하다는 뜻을 담아 호를 지었는데 스승이자 3대 종법사이신 대산(大山) 종사(김대거·1914∼1998)께서 산(山)자를 붙여 주셨죠. 원불교가 일이 많아요. 그래서 밭가는 소처럼 살자고 다짐을 했죠. 그런데 밭갈이가 끝나니, 지금 풀을 뜯고 있는 한가로운 소, 초우(草牛)로 살고 있는 듯해요.” ―원불교는 종권(宗權)을 둘러싼 잡음이 없는 교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대종사님(소태산 박중빈·1891∼1943)으로 시작된 가르침, 바로 교육 덕분이죠. 난득호도(難得糊塗), 총명해지는 것이 어렵지만 바보스러워지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 어리석음의 지혜가 필요해요. 실제 종법사를 해보니 바보 노릇도 필요하더군요. ‘니 말도 네 말도 맞는데, 조금 시간을 두고 보자’는 식인데…(웃음). 그러면 의견이 달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더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이 언젠가 나오겠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처방 아닐까 합니다. 백신이 코로나19에는 대응하겠지만 인간중심 문명이 야기한 위기에 대한 ‘근본 백신’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종교계의 근본 대처법은 무엇입니까.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심지어 미물까지 배려하는 생명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처처불상(處處佛像), 만물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인과로 봐서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자세로 살아야죠.”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책도 내고 오랫동안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구절이 궁금합니다. “스승께서 도덕경을 보라며 ‘앞으로 서울 가서 방귀깨나 뀌는 분들 교화하려면 문자를 좀 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인연이 됐습니다. 도덕경 67장에 세 보물을 언급해요. 첫째는 자애로움, 둘째는 검약, 셋째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천하에 앞서려 하지 않는다)이죠.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감하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감히 앞서려 하지 않아 세상을 키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요. “대종사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 이상의 식견을 가져라, 그래야 남의 지식을 알아보고 사람을 쓸 수 있다는 의미죠. 신뢰를 잃지 말라, 신뢰의 끈은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말라, 그리고 앎과 행동이 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죠. 지행합일은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 합니다.”남원=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0년 전 청주교구에서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았을 때 주교님께 성직자 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말해 허락을 받았다. 올해 60주년이 됐는데 저는 뚱뚱하니까 2인용 묘지를 다시 부탁드리고 싶다. 여기 계신 분들도 나중 묘에 오시면 소주 한 병에 오징어 드시고 가면 된다. 하하.” 올해 사제 서품 60주년인 회경축(回慶祝)을 맞아 ‘선교사의 여행’(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사진)을 출간한 함제도(미국명 제라드 해먼드·87) 신부의 말이다. 이 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구술사 채록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함 신부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살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본명의 성(姓)인 해먼드를 줄인 ‘함’에 이름 제라드를 줄여 ‘제도’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30년 가깝게 산 청주가 자신의 고향이라며 자신을 ‘청주 함씨’의 시조로 여긴다. 함 신부는 1960년 27세 때 배를 타고 한 달 반 걸려 한국에 도착했다. 그가 선교지로 한국을 택한 것은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자 이달 5일 선종한 장익 주교가 “한국에 가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장) 주교님 선종 전에 여러 차례 만났다. 그분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바로 무관심이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함 신부는 청주 교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청주 수본성당을 건립했고 북한 결핵환자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60여 차례 방북하기도 했다. 그는 장 주교와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기억을 언급했다. “그분들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신이 북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남북 교류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에 대해 그는 우려를 표시했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고 물으면 ‘그리스도 사랑을 전하는 가톨릭’이라고 대답한다. 교회 나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 함 신부에 대한 사제 서품 60주년 감사 미사는 13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열린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광복 75주년을 앞둔 10일 개신교계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날 회원 교단장과 기관장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75주년 광복절 선언’을 발표했다. NCCK는 이 성명에서 “광복 75주년이 일본에 과거사 직시를 요청하고 있다면, 한국에는 온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라는 역사적 사명을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어 “한국 교회는 분단 질서의 포로가 아닌 평화 질서의 개척자가 되자”며 “남북 정부는 한국전쟁 당사국들과 공식적인 종전을 선언하고, 항구적 평화체제의 제도적, 법적 기반이 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신교계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도 같은 날 광복 75주년을 기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교총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며 “국회에서 다수의 힘만으로 일방적인 입법을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 거리가 멀다. 모든 정치지도자는 대화와 합의를 통해 국민의 분노와 분열을 치유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교총은 “동성애를 법으로 보호하고 조장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본연의 사명인 여성과 장애인, 노동자와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주장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가노라 通度寺(통도사)야 잘 있거라 戰友(전우)들아, 情(정)든 通度(통도)를 두고 떠나랴고 하려마는,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 경남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의 벽면에 쓰인 낙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가 6·25전쟁 당시 육군병원의 분원(分院)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찾은 통도사의 대광명전 벽면에는 입원 중인 병사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들이 여럿 보였다. “통도사와 이별한다” “停戰(정전)이 웬 말?” 등의 문구뿐 아니라 탱크와 트럭, 아이 얼굴 등 다양한 그림들도 있었다. 대광명전에 낙서가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전각과 달리 개·보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찰 전각과 어울리지 않는 이 낙서들은 미스터리였다. 뜻밖에도 실마리는 지난해 9월 인근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대의 고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구하 스님(1872∼1965)이 붓글씨로 쓴 연기문(緣起文)이 나온 것. 연기문에는 불상과 전각 조성 과정뿐 아니라 당시 상황을 언급했는데,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해 퇴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연기문이 나오자 분원 설치를 확인하는 작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관련자들의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분원을 운영한 제31육군병원(육군정양병원)은 1950년 12월 대전에서 창설한 부대였다. 정양원(靜養院)은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부상병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이 병원은 1951년 1·4후퇴 뒤 부산으로 옮겨 운영됐으며 부상병이 증가하자 지리적으로 가까운 통도사와 부산 범어사에 분원을 설치했다. 김진조 부산 김내과 원장은 1951년 2월 군의관으로 입대해 통도사 분원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원장은 “부산 제5육군병원으로 발령받아 구하 큰스님께 인사드리러 통도사를 방문했는데, 당시 제31육군병원 분원이 주둔하면서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구하 스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도 전했다. “제31육군병원이 통도사에 들어와 스님들을 사찰에 머물지 못하게 하였으나, 일부 스님들은 남아 있었다. 산문 밖을 나간 스님들은 부상 군인들의 각종 병 수발 및 뒷바라지, 허드렛일을 하고,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을 종교의식으로 장례하는 역할을 했다.” 올 2월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6·25전쟁 때 경북 영천 전투 중 중상을 입고 통도사에서 치료받다가 숨진 박모 소위를 전사자로 인정했다. 사망 당시는 소집 해제돼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전투 중 사망을 뜻하는 전사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동아일보 1951년 10월 24일자도 분원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31육군병원 통도사분원에 정양(靜養) 중인 상이장병들에게 양말 1600족(足)을 대통령비서실로 하여금 동(同)병원 통도사 분원장 장○○ 군의(軍醫)중령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제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은 전쟁 중 자료 소실 등으로 공식적인 확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 긍정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4일 보낸 공문을 통해 “국내와 미국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에서 추진하는 6·25전쟁사 연구에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보내왔다. 통도사 측은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이 군과 사찰, 나아가 정부와 민간이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한 소중한 사례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지 현문 스님은 “무슨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군병원으로 사용돼 스님들이 절을 비우다시피 하며 희생했고 사찰 훼손도 적지 않았는데 기록 자체가 없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통도사는 국가 차원의 분원 인정이 확정되면 사찰을 찾는 이들이 이를 알 수 있도록 기념물을 만들고, 내년 6·25전쟁 71주년을 앞두고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대재도 지낼 계획이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