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이새샘 차장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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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과 시장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부알못’과 ‘부잘알’ 사이, 보통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부동산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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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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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남선, ‘논어’ 통해 근대적 가치 심어”

    “고전을 읽으려면 번역을 해야 하죠. 조선시대 때도 사유의 수단은 우리말이었습니다. 번역을 하며 그 과정에 번역자의 고유한 정신세계가 반영됐고,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동양철학 전통이 쌓인 겁니다.”(전호근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두 소장 동양철학자가 함께 동양철학 고전의 ‘번역사(史)’를 다룬 책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를 냈다. 구한말부터 현대까지를 중심으로 최남선, 함석헌 등 당대 지식인들이 ‘논어’ ‘노자’ 등을 어떻게 번역해왔는지를 살핀 책이다. 최남선은 20세 때인 1908년 자신이 창간한 잡지 ‘소년’에 논어를 번역해 ‘소년 논어’를 연재했다. 전 연구원은 “최초의 근대적 동양철학 번역”이라며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던 최남선은 번역을 통해 전통적 가치를 근대적 상황에 맞추는 가치 전환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 △독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등 계몽적인 태도를 극복했다는 점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공동저자인 김시천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함석헌의 ‘노자’와 ‘장자’ 번역을 번역자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반영한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김 교수는 “함석헌은 ‘무위자연’을 당대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 담론으로 읽었다”며 “오늘날 우리가 노장사상에서 자연주의나 평화주의를 연상하는 것은 함석헌의 번역 이후부터”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현재 학계는 원전 중심주의로 인해 번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원문을 읽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풍토 때문에 서구 학계의 동양철학 연구 성과가 국내에서 무시되는 일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 역시 “번역은 흔히 뜻을 바꾸지 않고 옮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 분명 번역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번역자의 가치관도 개입한다”며 “번역은 결국 고전 속의 영원한 진리를 옮기는 작업이라기보다는 현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고전 속에 새겨넣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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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장르문학 안 따지고 대중성 초점”

    ‘요무요무(yom yom).’ 일본어로 ‘읽다 읽다’라는 뜻을 가진 이 잡지는 최근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일본의 문예지다. 단편소설, 에세이 등을 수록한 대중소설 잡지로 2006년 신초샤(新潮社)에서 창간된 이래 한 호에 8만 부씩 발행되고 있다. 초판도 다 나가지 않아 잇달아 폐간되거나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의 문예지 시장에서 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매년 다섯 차례 발행되는 이 잡지는 성향이나 독자, 수록 작품 등에서 다른 문예지와 차별되는 면모가 있다. 일본에서도 문예지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며 ‘발명에 가까운 잡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6일 오후 일본 도쿄 신초샤에서 ‘요무요무’ 부편집장 구스노세 히로유키 씨(사진)를 만났다. ―신초샤에서는 순수문예지인 ‘신초’, 장르문학 잡지인 ‘소설신초’를 발간하고 있다. 문예지가 침체되는 시기에 새로 창간한 이유는…. “일본도 문예지 독자가 줄고 있다. ‘신초’는 1만 부 안팎이며 한때 30만 부까지 팔렸던 ‘소설신초’도 3만 부로 줄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은 문예잡지를 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잡지는 대부분 적자이지만 ‘요무요무’는 호응이 좋아 완판도 된다.” ―‘요무요무’에는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는가.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온다 리쿠, 모리미 도미히코 등 젊은 층이 흥미를 가질 만한 대중적인 작품을 싣고 있다. 순수, 장르문학을 따지지 않고 가독성, 대중성에 초점을 둔다. 잡지 성격을 규정하지 않기 위해 특집이나 평론은 싣지 않는다.” 특집-평론 없이 오직 작품만유명작가 신작 신속히 소개부담없이 읽게 문고 형태로 ―수록 작품 외에 다른 문예지와 구분되는 특색은 무엇인가. “단편, 에세이만 싣기 때문에 다음 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단행본을 사기엔 돈이 아깝지만 어떤 글을 쓰는지는 궁금한 유명 작가의 신작을 두루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를테면 작가들의 ‘쇼케이스’ 같은 개념이다.” ‘요무요무’의 또 다른 특징은 문고본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구스노세 씨는 “젊은 독자들은 문예지 판매대 쪽으로 거의 오지 않지만 발상을 전환해 문고본 판매대에 진열했다”고 말했다. 들고 다니기 쉽고 가격이 저렴해(600엔대) 다 읽고 난 뒤에는 부담 없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고본과 흡사하다. 문고의 독자층인 20, 30대 여성을 겨냥한 점도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앙증맞은 판다 캐릭터가 그려진 선홍색 표지의 ‘요무요무’ 최근호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표지 디자인, 손에 잡히기 쉬운 판형 등 젊은 여성들을 주 독자로 겨냥했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이 지하철에서 ‘신초’를 읽고 있다면 어딘지 이상하지만 ‘요무요무’를 읽고 있다면 그럴듯해 보인다.(웃음) 일종의 액세서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형태의 대중문예지가 필요한 이유는…. “일본에서는 출판사라면 당연히 잡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작가 발굴과 지면 제공, 출판사의 권위를 위해 문예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 독자들은 순수문학에도 장르문학에도 진입장벽을 느낀다. 과거에 문학이 담당했던 역할을 만화, 드라마, 영화가 대체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적 요소를 넘나드는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일본 작가는 두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요무요무’다.”도쿄=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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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지역 이 연구]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이윤선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민속학)는 설, 추석, 정월대보름 같은 명절마다 섬으로 달려간다. 명절을 맞아 열리는 마을 제사나 잔치, 각종 행사는 ‘살아 있는 민속’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각 섬에서 장례나 혼인 같은 행사가 있다는 제보전화 한 통이면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곧장 섬으로 향하는 ‘5분 대기조’다. 전남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는 이처럼 섬과 바다에 푹 빠진 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역사학, 민속학, 고고학, 생태학, 공학, 건축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가 소속돼 있다. 도서문화연구소가 생긴 것은 1983년. 우리나라 섬의 절반 이상이 분포돼 있는 서남해안에 있다는 지리적 장점을 살렸다. 실제로 목포대에서 바다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설립 당시 연구소의 두 축은 민속학과 역사학이었다. 매년 여름에 3∼7일간 섬 하나를 방문해 조사를 한 뒤 세미나를 거쳐 학술지를 내오고 있다. 각 섬의 설화, 역사, 고유풍습부터 마을의 독특한 구조와 건물 배치, 섬의 동식물까지 연구한다. 한 번에 각 분야 학자들이 모두 참여하기 때문에 답사 인원만 20∼30명에 이른다. 섬 연구는 곧 우리 문화의 원형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섬에는 유교 영향을 받기 전의 전통문화가 살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금도와 도초도에는 강강술래의 원형이 남아 있는데 실은 남녀가 함께 땀에 흠씬 젖을 때까지 춤을 추는 교제의 장이죠.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이런 문화를 ‘음사(淫事)’라거나 ‘천하다’고 배척하면서 지금은 섬에만 남아 있는 겁니다.”(강봉룡 도서문화연구소장)마을 제사 등 전통문화 남아설-추석 등 명절마다 달려가“관련 문화콘텐츠 무궁무진해양시대 새 패러다임 제시” 도서문화연구소는 1999년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중점연구소로 선정된 뒤 전국의 섬으로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 2002∼2003년, 2004∼2006년에는 중국 보하이 만과 저우산 반도 조사에도 참여했다. 최근 동남아 지역으로도 연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33집까지 발간된 학술지 ‘도서문화’ ‘도서해양문화연구총서’ ‘아시아해양문화총서’ 등 학술총서는 이 같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도서문화연구소가 28년째 쌓아온 연구 성과는 최근 크고 작은 결실을 보고 있다. 2009년 전남 신안군 다도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선정됐을 때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홍선기 HK연구교수(생태학)는 “민속학,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된 자료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를 보고서 형식으로 잘 엮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연구소가 만든 13부작 애니메이션 ‘꼬치의 해양영웅탐험’이 MBC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이순신, 장보고 등 역사적 인물 외에도 뽕할머니, 개양할미 등 그동안 연구소가 발굴한 각 섬의 설화를 문화콘텐츠로 되살렸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던 원용태 HK연구교수(IT)는 “5년 전 처음 연구소에 올 때만 해도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문화콘텐츠로 만들 만한 연구 성과가 무궁무진했다”며 “다양한 분야의 학자가 모여 있다 보니 새로운 관점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09년 인문한국지원사업단으로 선정됐다. 연구주제는 ‘섬의 인문학-문명사적 공간인식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문학, 역사, 종교, 생태 등 섬에 관한 연구는 물론, 연구성과를 문화콘텐츠로 만들거나 섬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정책 제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일본 오키나와국제대 남도문화연구소, 중국 해양대 해양문화연구소 등도 협력기관으로 참여한다. “바다로 함부로 나가는 것을 막았던 조선시대의 해금정책 이후 섬과 바다는 줄곧 배척과 두려움의 대상, 메워서 육지로 만들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21세기에는 이 같은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궁극적 목표입니다.”(강 소장)목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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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나온 책]‘사라진 편지’ 外

    ◇ 사라진 편지(류지용 지음·동아일보사)=섬세한 시를 남겼지만 요절한 허난설헌의 삶을 그렸다. 그녀의 아버지 허엽, 동생인 균, 우정을 나눴던 서얼 출신 시인 이달 등 주변 인물들의 삶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작. 1만1000원. ◇ 일본, 조선 총독부를 세우다(허영섭 지음·채륜)=조선 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을 파헤치며 건립됐고, 일본 내 비슷한 규모의 건물에 비해 턱없이 작은 건축비가 사용됐다. 이 같은 조선 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을 통해 나타난 일제 식민정책의 모습을 그렸다. 1만9000원. ◇ 원데이(데이비드 니콜스 지음·리즈앤북)=1988년 7월 15일, 대학교 졸업 파티에서 만나 하룻밤을 보낼 뻔한 엠마와 덱스터. 두 사람은 그날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다. 199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2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의 밀고 당기기를 그렸다. 1만6800원. ◇ 오리온의 후예(찰스 버그먼 지음·문학과지성사)=신화와 예술 속에 나타난 사냥꾼으로서의 남성 모습을 추적한 책. 이를 통해 공격과 지배, 승리와 과시 등 남성성의 실체와 변화상을 짚어내고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2만5000원. ◇ 렘브란트의 웃음(문광훈 지음·한길사)=렘브란트와 베르메르의 그림, 무용수 블라디미르 말라코프의 움직임, 사진작가 강운구의 작업 등 다양한 대상을 통해 저자 고유의 예술론을 펼친다. 저자는 예술이 “매일매일 생활을 쇄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만 원. ◇ 기호와 상징(미란다 브루스 미트포트, 필립 윌킨스 지음·21세기북스)=2000여 가지의 기호와 상징을 다양한 도판 자료와 함께 설명한 책. 상형문자, 국기, 세계적 브랜드의 로고 등 각종 기호와 상징의 의미와 생겨난 배경을 엮었다. 4만5000원. ◇ 안중근, 하얼빈의 11일(원재훈 지음·사계절)=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책. 특히 1909년 10월 22일 하얼빈 도착부터 1909년 11월 1일 뤼순감옥 이송까지를 중점적으로 담았다. 1만3000원. ◇ 남극 세종기지 북극 다산기지(김창덕 지음·W미디어)=남극과 북극의 환경과 기후, 세종기지와 다산기지 연구원들의 생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극지의 중요성 등을 담은 책. 세 번에 걸쳐 극지를 방문했던 저자가 당시 체험과 극지에 관한 여러 정보를 엮었다. 1만2000원. ◇ 엉뚱한 발명연구소(강태진 감수·P당)=‘2009년 청소년미래상상기술경진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발명품 39가지를 엮었다. 아이디어 발상부터 발명 계획, 실패와 수정, 완성까지 발명의 전체 과정을 담고 있다. 1만4000원. ◇ 기술의 대융합(이인식 엮음·고즈윈)=생명공학, 나노기술, 문화기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 39인이 기술융합현상에 관해 쓴 글을 엮었다.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기술이 융합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분야를 창출해내는지, 이 핵심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담았다. 1만9800원.}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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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 인공호흡기 단 나약한 삶, 더 숨쉬려는 처절한 몸짓

    ◇ 바람이 분다, 가라/한강 지음/390쪽·1만 원·문학과지성사겨울 어느 날, 정희는 한 대형서점에서 화가였던 친구 인주의 추모특집이 실린 미술 월간지를 발견한다. 1년 전 눈 오는 설악산 미시령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그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은 글에 동의할 수 없었던 정희는 그 글을 쓴 미술평론가 강석원을 만난다. 정희는 강석원에게 인주의 유작이 실은 인주의 외삼촌 이동주의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인주의 평전 출간을 미룰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인주를 사랑한 나머지 집착했던 강석원은 자신의 뜻대로 인주를 ‘자살한 비운의 천재 화가’로 만들기 위해 오히려 정희를 협박한다. 결국 정희는 자신이 기억하는 인주의 모습을 담은 또 다른 평전을 쓰기로 결심한다. 표면적으로는 친구의 죽음 너머에 있는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 이면에는 과거에 사로잡힌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직하면서도 힘 있게 담아냈다. 정희와 인주는 중고교 시절부터 친구였다. 둘은 한 사람의 죽음을 공유한다. 병약했던 인주의 외삼촌 이동주다. 그는 먹을 입힌 한지에 물을 번지게 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별의 탄생과 소멸을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는 이름 없는 화가였다. 갑작스러운 이동주의 죽음은 정희와 인주의 삶을 뒤흔든다. 인주는 부상으로 육상을 그만둔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정희는 외삼촌을 닮은 남자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정희는 인주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가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희가 인주를 알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인주의 삶을 사로잡고 있던 과거의 뿌리가 있었던 것.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인주가 죽은 설악산 미시령이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브레스 파이팅(breath fighting)’은 인공호흡기를 낀 환자가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면서 벌어지는 충돌을 뜻한다. 호흡기의 들숨에 환자는 날숨을 쉬고, 호흡기의 날숨에 환자가 들숨을 쉬기 때문에 자칫하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팽팽하게 날을 세운 공간으로 그려지는 눈 덮인 미시령은 등장인물들의 브레스 파이팅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은 과거에 붙잡혀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모습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에도 또다시 살아가려 투쟁하는 모습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작가가 말하는 삶의 의지는 인주의 그림들이 별이 폭발하듯 불타는 마지막 장면, 정희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그곳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난다. “누군가가 부풀어 오른 팔로 물속에서 파란 돌을 건져 올린다.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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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美英中, 한국독립의 관문을 열다

    ◇ 카이로 선언/정일화 지음/568쪽·2만8000원·선한약속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 중국 총통이 모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이 회담의 결과로 나온 카이로 선언에는 “일본이 폭력과 야욕으로 점령한 모든 영토로부터 추방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연합국이 처음으로 일제로부터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책에는 카이로 선언이 나왔던 과정과 각국의 역할, 카이로 회담 이후 국제정세 변화와 한국의 독립 과정이 소개돼 있다.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 독립에 관한 조항은 선언문 초안에서부터 들어가 있었다. “한국을 적절한 순간에 독립시킨다”고 명확히 규정한 이 조항은 선언문이 수차례 수정을 거치는 중에도 확고하게 살아남았다. 선언문 초안을 작성했던 사람은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여러 업적을 밝히며 그를 한국 독립의 발단을 만들었던 카이로 선언의 숨은 주역 중 한 명으로 소개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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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아들 잃고 몽골로 떠난 아빠

    ◇ 낙타/정도상 지음/248쪽·1만 원·문학동네“짧은 유서를 남겨놓고 아들 규가 자살했다. 생의 파도가 내 옆구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소설가 ‘나’의 아들 규는 15년 6개월을 살고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 뒤 아들의 죽음을 이기지 못한 주인공은 몽골로 여행을 떠난다. 수천 년 전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를 보기 위해 떠난 여행.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 앞에 아들 규의 환상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주인공은 아들의 차가운 손을 잡고 길을 떠난다. 이들의 여행에 수천 년 전 암각화를 그렸던 흉노족 화가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역시 독사에게 아들을 잃은 예술가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압도적인 사막의 풍경과 그 위를 걸어가는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의 말미, 아들의 죽음을 직시하게 된 주인공은 다시 삶을 이야기한다. “생의 고비가 산맥처럼 높고 깊고 길겠지만, 낙타의 걸음걸이로 머무르지 않고 가야만 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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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30여년 만에 한국 찾은 ‘봄의 제전’ 특별할 것”

    ‘극예술의 지도를 새로 그린 인물.’(영국 일간지 가디언) ‘춤에 목소리를 준 안무가.’(프랑스 일간지 위마니테) 2009년 6월 30일 독일 출신 안무가 피나 바우슈가 사망했을 때 세계 언론이 쏟아낸 추모기사다. 바우슈가 세상을 떠난 지 약 8개월. 그를 세계적인 안무가로 알린 대표작 ‘봄의 제전’과 영화 ‘그녀에게’(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도입 부분에 나온 ‘카페 뮐러’가 3월 18∼21일 한국을 찾아온다. 바우슈의 뒤를 이어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끌고 있는 도미니크 메르시 예술감독(60·사진)을 2월 2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그는 “30여 년 만에 같은 작품으로 한국을 찾게 돼 기념일을 축하하는 기분이 든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봄의 제전’은 1979년 동아일보 초청으로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첫 내한했을 때 선보인 작품. 바우슈는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순수한 발레의 형식에서 벗어나 창조적이면서도 적나라한 인간의 율동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쳐보고자 노력했다”(1979년 2월 5일자)고 밝힌 바 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2000년과 2003년 등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바우슈는 2005년 서울을 소재로 한 무용 ‘러프 컷’을 안무하기도 했다. “피나는 언제나 힘이 넘치는 ‘경이적인 일꾼’이었습니다. 핵심으로 곧장 다가가는 안무가였어요. 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늘 무용단이 살아 움직이도록 하려고 노력했어요.” 메르시 예술감독은 밝은 목소리로 “한국의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우슈에 대해 묻자 “피나를 정확히 설명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1972년 바우슈를 처음 만난 뒤 부퍼탈 탄츠테아터 창립 멤버로 평생 함께 활동해왔다. “그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피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죠.” 바우슈는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닷새 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카페 뮐러’는 바우슈가 죽기 직전까지 직접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며,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메르시 예술감독에게 두 작품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피나의 공연 감상법’으로 답했다. “피나는 미리 공연을 소개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보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길 원했거든요.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공연을 보는 것, 열린 마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가 원하던 방법이죠.” 메르시 예술감독도 생전의 바우슈와 마찬가지로 현역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카페 뮐러’에 출연한다. 그는 “원동력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 몸이 내가 무대에 오르도록 허락할 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마지막, 그에게 ‘피나 바우슈 없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현재는 바우슈 생전에 예정됐던 공연을 그대로 소화하고 있다. 그는 “아직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말하는 건 시기상조”라면서도 “피나의 새 작품은 이제 없겠지만 무용단이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안무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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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절한 팬텀 씨]Q: 발레리나 되려면 언제부터 해야 하나요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데 너무 늦지 않았는지 걱정도 듭니다. 발레리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주배·16·서울 동작구 사당동)A: 유연성 감안 초등 저학년때 시작을 발레리나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발레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발레의 생명은 유연성인데,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죠. 어려서부터 발레에 맞춰 뼈와 골격,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발레리노는 고등학교 때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발레를 지망하는 이들은 대부분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입시나 콩쿠르 입상처럼 당장 성과를 보여야 하는 사설 학원과 달리 실력과 나이에 맞춰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국립발레단의 발레미스트리스(발레단의 지도나 규율, 무용수들의 수업 지도, 리허설 감독 등을 맡은 사람)인 오자현 씨는 “좋은 발레리나가 되려면 일주일에 최소한 6일 이상 연습을 해야 하고 평상시 자세에도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한다”며 “발레학교가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발레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예술중고교로 진학하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발레학교는 9∼10년 과정의 전문 교육기관을 말합니다. 러시아 미국 영국의 유명 무용단에는 대부분 부속 발레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를 나온 무용수들은 프로 발레단에 바로 입단합니다. 러시아의 볼쇼이발레학교, 바가노바발레학교,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의 SAB(School of American Ballet) 등이 대표적입니다. 국내 무용수들이 외국 발레학교에 오디션을 보고 입학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체계적, 집중적인 훈련을 할 수 있어 기량 향상에 좋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단점이 있죠. 국내 예술고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선 프로가 되기 위한 실기 훈련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은 학사 과정으로 여느 대학에 비해 실기 위주로 수업이 짜여 있죠.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려면 테크닉 외에 이론과 철학을 비롯해 세계적인 무용수와 안무가에 대해 공부하는 게 중요합니다. 같은 역할이라도 더 깊이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 인문학적 바탕을 갖춰야 하고 연기력도 필수입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연극 뮤지컬 무용 클래식 등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팬텀(phantom@donga.com)에게 e메일을 보내주세요. 친절한 팬텀씨가 대답해드립니다.}

    • 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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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역사를 따라 문화를 따라]철도의 길 근대기 영욕의 흔적

    《‘경인 쳘도 회샤에셔 어졋긔 개업 례식을 거행하난듸 인쳔셔 화륜거가 떠나 삼개 건너 영등포로 와셔 경셩에 내외국 빈객들을 슈례에 영접 하여 안치고 오젼 9시에 떠나 인쳔으로 향하는듸 화륜거 구난 쇼릐는 우뢰 갓하야 텬디가 진동하고 긔관거(機關車)에 굴독 연긔는 반공에 쇼사 오르더라…’ (독립신문 9월 19일자)1899년 9월 18일,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개통식이 열렸다. 현재의 서울 노량진역에서 인천역 인근까지 약 33.2km 구간이었다. 이 구간을 기차로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40분. 지금과 비교하면 느린 속도지만 서울과 인천을 오가기 위해 반나절을 걸어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천지가 진동한다’고 느껴질 만한 사건이었다.》 조선 수탈 교두보불평등 조약 맺어 철도 부설쌀 수송 14배까지 늘어근대문물의 상징“반나절 거리가 1시간40분에”지식인들 문명의 충격한국 산업화에 영향철도따라 물류체계 형성21세기 ‘국토 대동맥’으로○ “증기와 전기기관 소리가 찬란한 문명을 낳는다” 도원역 인근, 예전에는 우각현(쇠뿔고개)이라 불렸던 곳에는 1897년 3월 경인선 기공식을 기념하는 ‘한국철도최초기공지’ 표석이 서 있다. 도원역 인근에서 옛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철로를 달리는 기차 역시 예전의 증기기관차가 아니라 전기를 이용하는 지하철이다. 그러나 역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배다리거리가 나온다. 한국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영화초등학교가 이곳에 남아 있다. 미국 존스 선교사 부부가 1892년 4월에 세운 매일학교의 후신 격인 학교다. “‘도회의 소리?’ 그러나 그것이 ‘문명의 소리’다. 그 소리가 요란할수록 그 나라는 잘 된다. 수레바퀴소리, 증기와 전기기관소리, 쇠마차소리… 이러한 모든 소리가 합하여서 비로소 찬란한 문명을 낳는다.”(이광수 ‘무정’)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에서 기차역은 주인공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무대다. 책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은 ‘무정’을 두고 “철도가 작품의 한가운데를 횡단하고 있다. …(작품에서) 기차는 근대성의 상징”이라고 분석했다. 이 책의 저자인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실장은 “이광수 등 당대 지식인들에게 철도는 근대 문물을 실어 나르는 통로로 인식됐다”며 “당시 문학작품에서는 ‘철도’를 보고 느꼈던 놀람과 경이, 전통의 파괴에 대한 두려움, 외부에 대한 경계 등 복합적인 감정이 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한 철도 부설 조선의 근대화는 외세에 의해 강제로 진행된, 왜곡된 근대화였다. 1898년 9월엔 일본이 조선 정부와 경부철도 부설권에 관한 조약 ‘경부철도합동’을 체결했다. ‘경부철도합동’은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이었다. △철도 용지 무상 제공 △철도 용품, 영업이익에 과세 금지 △완공 후 15년간 경부철도 영업권은 일본이 소유 등 한국에 불리한 조항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철도 부설 용지를 헐값에 매입한 것은 물론 전답의 곡물을 마음대로 베어내는 등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횡포를 부렸다. 철도 건설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은 하루 20∼30전. 일본인 노동자는 같은 직무라 하더라도 60∼100전으로 3배가 넘는 임금을 받았다. 철도 부설 과정에서 수탈을 견디지 못한 지역 주민들이 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04년 9월 15일 경기 시흥군 일대 주민 1만여 명이 당시 군수와 그 아들을 살해한 ‘시흥민란’이 대표적이다. 철도가 개통된 뒤에는 철로나 철도역이 독립군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갔고요/어랑어랑 어허야/이름 석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민요 ‘신고산 타령’) 조선철도는 쌀, 목재, 석탄 등 농수산품부터 지하자원까지 각종 국내 자원을 국외로 반출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저서 ‘일본침략과 한국철도’에 따르면 1911년 국유철도 전체의 쌀 발송량은 7만6757t. 1938년에는 약 14배인 108만7383t으로 늘어났다. 그 사이 일본으로 반출되는 쌀의 비율은 전체 14%(1915∼1919년)에서 전체 46%(1930∼1934년)로 늘었다.○ 철로 너비 1.435m의 비밀 당시 경부선 궤간(철길 궤도의 두 쇠줄 사이의 너비)은 표준궤인 1.435m였다. 당시 일본철도의 궤간은 약 1.066m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경비를 절약하고 조선의 물류 상황에 맞춰 일본과 같거나 더 좁은 궤간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은 표준궤를 채택했다. 조선철도를 통해 중국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철도의 궤간이 표준궤였다. 정 이사장(철도사)은 “일본의 대륙진출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조선철도의 궤간”이라며 “궤간은 열차의 폭을 결정하기 때문에 철도와 철도가 직접 연결되기 위해서는 궤간이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본의 의도는 경의선 건설에서도 드러난다. 경의선 착공 시기는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직전이었다.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도 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해 1905년 4월 대부분의 구간을 완공한다.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지원하는 것이 철도 건설의 실질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 경의선 완공으로 부산에서 서울, 다시 신의주로 이어진 철도는 두만강을 건너 중국 단둥과 연결됐다. 일본 도쿄에서 시모노세키로 가서 연락선을 타면 철도로 부산에서 만주까지 단숨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철도가 남긴 근대의 흔적 2월 23일 오후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중산(中山)공원에 있는 다롄빈관(大連賓館). 호텔 앞에서 일본인 관광객 10여 명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 르네상스식 건물의 1914년 축조 당시 이름은 야마토 호텔이다. 다롄 시에 본사가 있었던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설립 운영했던 호텔이다. 구시가지 중심가인 루쉰(魯迅)로의 만철 본사 건물은 옛 건물 그대로 다롄 시 철도국 사무소로 쓰이고 있다. 루신로에는 만철병원(현 다롄대 부속 중산의원)과 만철 직원들의 위락시설이었던 만철구락부(현 철로문화궁)가 함께 있다. 동행한 유병호 다롄대 한국학연구원장은 “중국 학계에서는 중국이 스스로 필요한 만큼 철로를 부설할 능력이 있었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자체적인 개발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본다”며 “당시 군벌 장쉐량(張學良)이 선양∼지린 구간 철로를 부설한 일이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다롄에는 여전히 만철의 영향이 깊숙이 남아 있었다. 다롄빈관은 관광 성수기면 62개 객실이 꽉 찬다. 대부분이 일본인 관광객이다. 현재 다롄 시 외국인 투자가 중 70% 이상을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만철이 세운 서양식 건물은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국도 일제가 부설한 철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등 산업화 과정의 물류체계는 일제가 건설한 철도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 이사장은 “일제는 경부선의 경우 주로 산업발전과 군사이동을 위해, 호남선 등 다른 지선은 수탈을 위해 사용했는데 이 같은 산업구조가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때 철도는 자동차 운수의 발달로 산업과 물류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20세기 초 근대의 영욕을 실어 날랐던 철도는 오늘날 경의선 일부 구간 재개통, 고속철도 개통 등으로 새롭게 주목받으며 ‘21세기의 길’로 떠오르고 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다롄=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20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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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네 남매, 엄마의 기억을 따라 어른이 되다

    “대단한 유산을 받은 거지! 십 에이커나 되는 황량한 모래밭에다, 야산 비탈진 언덕 위에 붙어있는 집이니, 엄마가 ‘골고다 언덕’이라고 부를 만했지.” 연극 ‘고아뮤즈들’의 고아 남매 중 첫째 카트린느(김소희)와 넷째 이자벨(강영해)은 황량한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집에서 산다. 마을에서 걸어서 30분은 걸리는 곳. 문만 열어도 모래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부활절 전날, 몇 년째 떨어져 살던 셋째 뤽(윤정섭)과 둘째 마르틴느(함수연)도 이자벨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네 남매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남매를 버리고 스페인 남자를 따라 떠난 엄마 때문이다. 카트린느는 벅찬 어머니 역할을 해야 했고 뤽은 엄마에 관한 책만 10년째 쓰고 있다. 엄마가 남겨준 스페인 옷을 입으며 엄마 행세를 하기도 한다. 마르틴느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처럼 군인이 됐다. 남매는 한자리에 모여 엄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열정적이고 자유를 원했던 엄마, 그런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괴롭혔던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 무기력했던 아버지까지. 뤽이 완성한 책을 읽으며 남매가 역할극을 하는 장면은 사이코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고아뮤즈들’은 캐나다 퀘벡 출신 극작가인 미셸 마크 부샤르의 작품이다. 1988년 작품으로 2009년 국내 초연됐다. 올해 공연에서는 무대세트가 크게 바뀌었다. 1965년 캐나다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살리는 대신 2층 높이에 달린 문, 가파른 계단, 객석 앞에 깔린 모래 등 단순하고 상징적인 연출을 택했다. 무대를 앞뒤로 사용하기보다 수직적으로 활용해 엄마의 깊숙한 품 안, 혹은 남매의 상처받은 감정이 찌꺼기처럼 고여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남매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자유를 찾아 스페인으로 떠난 독립적인 여성이다. 상처를 줬지만 동시에 살아갈 영감을 주는 뮤즈였던 셈이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는 아이들을 떠난 뒤 엄마의 행로에 대한 반전이 준비돼 있다. 남매가 엄마에 대한 환상을 깨고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다. 극 역시 한 겹의 갈등을 추가한 결과 좀 더 탄탄해진다. 캐나다의 마을,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한국 관객에게 낯설지만 가족이라는 보편적 소재, 그리고 배경을 탈색시킨 상징적 무대 연출이 그 낯섦을 중화시킨다. 1만∼2만 원.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게릴라극장. 02-763-1286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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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 째깍째깍… 석유 없는 지구의 미래는?

    ◇ 석유종말시계/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박산호 옮김/356쪽·1만5000원·시공사2008년, 미국 내 유가가 1갤런(약 3.78L)에 약 4달러까지 치솟았다. 금융위기의 여파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가는 갤런당 약 1달러였다. 유가 앙등의 결과는 명백했다. 자동차 판매량, 특히 연료 소모가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량이 급감했다. 미국인의 대중교통 이용 횟수는 전년 대비 3억 회가 늘었다. 포브스지의 수석기자인 저자는 “장기적으로 유가에 대한 예측을 진지하게 해보면 결론은 단 하나,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가가 오른 뒤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유가가 갤런당 4달러일 때부터 20달러일 때까지,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석유 없는 세계’의 미래를 그렸다. 저자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때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나 둘은 이미 2008년의 고유가와 경기후퇴 효과가 합쳐져 무릎을 꿇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는 2009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유가가 갤런당 8달러가 될 경우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것은 항공업계다. 전체 운영비의 60%가 연료비로 들어가게 된다. 항공운임이 크게 오르기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해 가족을 방문하거나 휴가를 보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고유가가 자동차산업 몰락 같은 부정적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그라보스키 하버드대 교수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2.3%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더 많은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비만율도 낮아진다. 대기오염도 ‘어쩔 수 없이’ 줄어든다. 요즘도 상점에서 비닐봉투에 값을 매기거나 종이봉투와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지만 유가 10달러 시대가 오면 석유를 원료로 한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용기는 사라질 것이다. 이미 곡물과 설탕을 재료로 한 바이오플라스틱이 개발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갤런당 12달러가 되면 사람들이 자동차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교외에서 다시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뉴욕처럼 건물들이 조밀하게 배치돼 이동거리가 짧고 대중교통이 잘 정비된 곳이 살기 좋은 곳으로 떠오른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모델로 저자는 현재 건설 중인 한국의 송도신도시를 꼽는다. 고층빌딩이 한가운데의 공원을 둘러싼 가운데 건물마다 에너지와 물을 절약하기 위한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유가가 갤런당 16달러로 오르면 식탁에서 초밥, 특히 참치초밥 찾기가 어려워진다. 참다랑어를 잡기 위한 원양어업은 연료가 많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주로 집 근처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기 시작한다. 평생 농부로 일해 온 팀 풀러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시카고 같은 도시들은 10에이커(약 4만469m²)에서 100에이커, 심지어 500에이커까지 되는 농장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가 18달러 시대가 오면 그것은 곧 철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전 세계에서 전기를 이용한 고속철도 건설이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유권자들은 2008년 말 철도 건설 활성화를 위한 100억 달러짜리 주 정부 채권 발행에 동의했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도 철도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어 갤런당 유가 20달러 시대. 석유의 종말이 보이더라도 세계는 종말과 거리가 있다. 태양, 수력, 원자력 등 다양한 에너지의 개발이 촉진돼 석유의 자리를 대신한다. 무엇보다 인류는 석유를 아끼는 방법을 실천하게 된다. 철도와 지역농장, 에너지 절약 시스템이 보편화된다. 저자는 말한다. “미래의 에너지 세계는 단순히 ‘지금 효과가 있으니 굳이 뜯어고칠 필요 없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능률과 효율을 따지는 방식에 따라 지배될 것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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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최초의 서양식 병원, 뿌리 캐보니 ‘실학’

    ◇ 제중원 이야기/김상태 지음/291쪽·1만3000원·웅진지식하우스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약용은 홍역 치료법을 다룬 ‘마과회통’을 저술했고, 박제가는 천연두 예방을 위한 인두법을 연구했다. 제중원이 단지 서양인 선교사의 힘만으로 어느 순간 설립된 것은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1885년 4월 ‘광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한 뒤 2주 만에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 병원은 한 양반의 집에 첫 터를 잡았다.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살해당한 홍영식의 집이었다. 이처럼 제중원을 둘러싼 인물과 풍경, 이 병원이 한국 근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책은 다양한 자료와 함께 생생하게 복원한다. 저자는 제중원을 ‘고종과 조선 정부가 구상했던 근대화 프로젝트의 하나’이자 ‘조선이 찾고자 했던 길을 여는 핵심적 열쇠’로 파악한다. 한 예로 제중원 업무를 담당했던 주사들의 진로를 들 수 있다. 국립 영어 교육기관인 동문학 출신이 많았고, 이후 상당수가 기기국, 육영공원, 개항장 등 서양 근대 문물과 관련된 기관으로 파견되거나 외교관이 됐다. 제중원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근대화를 이뤄낼 인재를 키우는 곳이기도 했던 것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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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lture]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무용가 14명의 춤사위

    “네가 이 세상에 나서려거든/일곱 번 태어나는 것이 나으리라/한 번은, 불타는 집 안에서/한 번은, 얼어붙은 홍수 속에서… 여섯 아기들이 울어도 충분치 않아/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틸라 요제프, ‘제7의 인간’ 중) 배우 출신 안무가 정영두 씨의 창작무용 ‘제7의 인간’이 3월 10, 11일 LG아트센터 1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오른다. 영국 작가인 존 버거와 사진작가 장 모르가 유럽 이민노동자의 체험을 다큐멘터리 기록 형식으로 담아낸 책 ‘제7의 인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아틸라 요제프가 지은 동명의 시가 이 책의 서문으로 실려 있다. 이주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는 않는다. 고향, 가족, 직장, 나라들로부터 떠나고 머물기를 강요받아 온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다. ‘제7의 인간’이란 모든 권력들로부터 소외받아 오고 의무만 강요받아 온 사람을 지칭하는 말. 정 씨는 2003년 발표한 ‘내려오지 않기’로 2004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 참가해 대상과 특별상을 수상하고 현재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안무가다. 2009년 9월 오디션에서 60여 명의 지원자 중 14명의 무용수를 선발했다. 공영선, 곽고은, 권영호 씨 등이 출연한다. 12월 연습을 시작한 뒤 직접 이주노동자센터를 방문하거나 철새도래지인 주남 저수지로 답사를 떠나고 책을 읽고 토론도 펼쳤다.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 3악장, 말러의 교향곡 1번 3악장,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고레츠키의 음악 등을 사용한다. 힘 있고 강렬한 음악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로 정신적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표현한다. 정 씨는 “떠나고 머무는 행위의 근원을 자연에서 찾던 중 철새들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언어적이거나 연극적인 동작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만 원.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02-2005-0114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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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정, 빼어난 문장가이자 진정한 국제인”

    《“초정(楚亭) 박제가(사진)는 동국(東國)에서 문장으로 빼어난 자다. 그 사람은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굳세고 날카로우며, 재치 있는 생각이 풍부하다.”(청나라 학자 이조원) ‘북학의’의 저자로 18세기 조선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박제가(1750∼1805). ‘북학의’를 제외한 초정의 시와 산문을 모두 담고 있는 ‘정유각집’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이 문집은 영인본이 세 차례 만들어졌으나 완역은 처음이다. 번역본(돌베개)은 시 1721수, 산문 123편을 상, 중, 하 세 권에 나눠 실었다.》 ○ 학자 7명이 6년간 정성 들여이번 번역 작업에는 정민 한양대 교수를 비롯해 이승수 한양대 교수, 박수밀·이홍식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박종훈 전남대 호남한문학연구소 연구원, 황인건·박동주 한양대 국문학과 강사 등 7명이 6년간 정성을 들였다. 2004년에 처음 작업을 시작해 2006년에 끝냈으며 각주를 달고 수정하는 데만 4년이 더 걸렸다. 각종 고사에서 전거(典據)를 끌어오는 게 이 시기 글쓰기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23일 인터뷰에서 “번역 전에는 왜 번역이 안 됐나 의아했는데 번역을 하며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끊임없이 주석이 추가돼 나중에는 책을 보기도 싫을 정도였는데 마침내 출간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고사 인용 글쓰기가 당시 특징… 수많은 원전 찾아내느라 고생”○ 기인(畸人), 국제인, 자존심이 강했던 문인‘정유각집’에는 박제가가 왕에게 올린 상소문,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시, 일찍 죽은 둘째 딸에게 바친 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실렸다. 박제가는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조선의 기인(畸人·세속과는 맞지 않지만 하늘과는 화합하는 사람)”으로 칭했다. 정 교수는 “서얼 출신으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위치 지었던 그의 독특한 사유세계가 젊은 시절의 글에서부터 보인다”고 말했다. 20대 초에 지은 산문 ‘바다의 고기잡이’에서는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을 보고 “어쩌다 보니 물고기가 되고, 어쩌다 보니 내가 된 것이다”라며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벗어난 상대주의적 사고를 떠올리기도 했다. 정 교수는 “박제가가 지은 회인시(懷人詩·사람을 그리며 지은 시)만 100수가 넘는데 일본이나 중국의 학자를 만난 뒤 지은 시가 교유의 폭과 깊이에서 진정한 국제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제가가 교유한 학자는 청나라에서만 100명이 넘었다. 자존심이 강했고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윗사람에게 굽히지 않았던 박제가의 성품도 읽을 수 있다. 정조가 1792년 문체반정 당시 박제가를 견책하며 받은 자송문(自訟文·반성문)인 ‘비옥희음송(比屋希音頌)’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글에서도 “지금 사람들은 신의 반 토막 원고조차 본 적이 없으면서, 무엇으로 신에 대해 논한단 말입니까”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세 번이나 발탁한 정조에 대한 충심도 깊었다. 박제가는 정조가 죽은 뒤 시 ‘정종대왕 만사(正宗大王 挽詞)’에서 “하물며 이러한 임금의 은혜/천 년이 지나도록 다시 없으리”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조선 지성사의 전환기를 확인하다정 교수는 “이번 번역으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 그룹의 내부 동향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제가는 북학파의 핵심 인물로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홍대용 등 여러 학자들과 편지와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했다. “당시 형암 이덕무의 집이 (박지원의 집과) 북쪽으로 마주 보고 있었고, 낙서 이서구의 사랑은 그 서편에 솟아 있었다…북소리가 삼경을 알리기에 마침내 여러 벗의 집을 거쳐 백탑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박제가가 지은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의 서문이다. ‘백탑청연집’은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의 학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를 엮은 책으로 ‘백탑’은 박지원이 살던 곳을 가리킨다. 이 책의 실물은 전하지 않지만 ‘정유각집’에는 박제가가 지은 서문이 실려 이들의 친분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가는 1778년 첫 방문 이후 연경을 네 번 여행했다. 첫 방문은 시기적으로 연암 박지원보다 앞선다. 정 교수는 “박제가는 조선시대 지성사의 전환기에 서 있는 인물로 그의 경험이 박지원의 ‘열하일기’, 추사 김정희의 연경 체험으로 이어졌다”며 “그동안 ‘북학의’의 저자로만 평가받았던 박제가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이번 번역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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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7인의 女죄수가 사는 곳…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극단 골목길의 신작 연극인 ‘프랑스 정원’의 배경은 감옥이다. 감방 두 곳에 여자 죄수 알곱 명이 갇혀 있다. 첫 번째 감방의 죄수는 이모와 조카들, 두 번째 감방의 죄수는 엄마와 세 딸이다. 감옥과 여자 죄수라는 설정이지만 연극은 이들의 사연을 줄줄이 풀어놓는 손쉬운 선택 대신 감옥이라는 공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1막에서 딱딱하게 구령을 외치는 죄수들을 향해 간수가 “여긴 이상한 별세계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 사는 데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연극의 목적은 분명해진다. 감옥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은유인 것이다. 그 세계는 감시와 처벌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두가 그 사실을 외면하는 곳,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 위해 꿈속으로 도피하는 곳이다. 교도소장은 스스로 “나는야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을 주는 오아시스”라며 죄수들에게 마치 가족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역시 동성애자란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한 죄수이고, 감시의 끈을 놓지 않는 ‘불사신’이다. 죄수들이 죽은 뒤 묻힐 거라고 생각했던 구덩이는 실제로는 그들의 시간을 빼앗기 위한 아무 의미 없는 노동의 산물이다. 죽은 죄수는 교도소 하수구의 개들에게 뜯어 먹힌 채 흔적 없이 사라질 뿐이다. 첫 번째 감방의 이모는 꿈 해몽을 하고 예지력을 가진 인물인데도 감옥에 안주하기를 택한다. 두 번째 감방의 딸들은 몽유병을 겪으며 가본 적 없는 프랑스를 꿈꾸거나, 아이를 임신했다고 착각한 채 수면제로 고통을 잠재우며 살아간다. 두 번째 감방의 막내딸만이 현실을 직시한다. 1막에서 그는 교도소장의 목을 조르지만 실패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의 저항은 이모와 교도소장의 목조르기 놀이로 치환되며 조롱당한다. 막내는 감옥 안의 사람들과 관객을 향해 말한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있어. 가짜 꿈을.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젠 그 꿈속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지. 두려워하는 거야, 현실을. 이 삽의 무게에 눌려.” 1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고 저마다 강렬한 사연을 갖고 있어 극의 초점이 흐려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서 “시궁창 안에서 마음껏 프랑스를 즐겨. 마음껏 프랑스 정원을 산책하라고!”라는 교도소장의 대사는 현실을 외면하며 일상에 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뼈아픈 한마디가 된다. 1만∼2만 원.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정보소극장. 02-6012-2845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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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나온 책]‘내 안의 아바타를 찾아서’ 外

    ◇내 안의 아바타를 찾아서(최준식 지음·북성재)=타율적인 습관과 주변의 간섭,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잊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최면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1만2000원.◇생명과 장소(시미즈 히로시 지음·그린비)=생명을 세포나 시스템 같은 고정된 틀로 설명하는 대신 관계자들의 네트워크 구조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과정 자체로 정의하는 책. 생명과학 분야에 화엄철학 등 동아시아 철학 개념을 끌어들였다. 2만5000원.◇문화적 혼혈인간(박희권 지음·생각의나무)=직업 외교관인 저자가 밖으로는 세계화, 안으로는 다문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설명했다. 개성, 이성과 감성의 조화, 법치의식, 음주습관, 협상능력 등을 꼽았다. 1만3500원.◇과학인문학(김병호 지음·글항아리)=물리학과 출신으로 2006년 등단하며 전문적인 과학 개념과 이론을 시에 담아온 저자가 질량, 상수, 시간 등 과학적 기본 개념을 인문학으로 끌어들여 설명했다. 1만3500원.◇마오의 제국(필립 판 지음·말글빛냄)=워싱턴포스트 중국 특파원이었던 저자가 7년간 중국 전역을 다니며 중국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했다. 특히 톈안먼(天安門) 사태 세대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주목했다. 1만6500원.◇인권을 생각하는 개발 지침서(보르 안드레아센, 스티븐 마크스 엮음·후마니타스)=‘인권적 개발’이라는 개념으로 개발의 방향과 의미를 짚어본 책. 모든 사람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사회 역량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개발이라고 주장. 2만3000원.◇기만의 정권(미셸 말킨 지음·시그마북스)=미국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바마 정권이 주변 인물에 특혜를 안기고 경제에 위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1만8000원.◇절대 빈곤(이시이 코타 지음·동아일보사)=세계 빈곤층에 관한 보고서. 많은 연구가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 하는 식인 반면 이 책은 노숙인의 성생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의 하루벌이, 매춘부의 아이들의 실생활 등을 클로즈업한다. 1만2000원.◇파이의 시학(정끝별 지음·문학동네)=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의 신작 비평집. 원의 둘레, 넓이를 알기 위해 상수 파이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 시의 둘레와 넓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도 ‘시적인 발견’, 즉 ‘파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정주, 김소월, 황동규, 오세영 등에 대한 비평 수록. 1만5000원.◇절망 너머 희망으로(니콜라스 크리스토프, 셰릴 우던 지음·에이지21)=어릴 때 납치돼 사창가로 팔려간 여인, 성폭행한 남자를 고소했는데 주변의 비웃음만 산 여성…. 뉴욕타임스 기자를 지낸 저자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여성 학대를 고발했다. 1만6000원.}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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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매력 능력 권력… 카리스마는 神의 선물

    ◇카리스마의 역사/존 포츠 지음·이현주 옮김/544쪽·2만5000원·더숲‘카리스마’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 두 번째,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 사회에서 통용되는 카리스마의 뜻은 보통 두 번째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의미는 언제 생겼을까. 이 책은 사도 바울이 기원후 50∼62년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부터 막스 베버가 20세기 초 이 단어를 새롭게 사용하기까지 약 2000년에 걸친 카리스마의 역사를 추적해 이 같은 궁금증에 답한다. “아테네는 그에게 초자연적인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그러자 그가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은 탄복하며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중에서) 카리스마의 어원은 그리스어 카리스다. 카리스의 뜻은 영어의 ‘grace’와 비슷하다. 아름다움, 매력, 특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결속시키는 호의를 뜻한다. 저자는 “은혜를 베푸는 행위와 그에 대한 감사라는 상호존중의 체계가 이 단어 속에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후원자(patron)와 의뢰인(client) 사이 상호존중의 체계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관습이자 사회체계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리스’에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바울은 ‘카리스’에 행위의 결과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접미사 ‘마(ma)’를 붙인 단어 ‘카리스마’를 이 편지에서 16차례 사용한다. 신의 카리스(은총)의 직접적인 결과물, 즉 신의 은사를 뜻하는 단어다. 이방인들에게 익숙한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리스’를 끌어들인 것이다. 바울은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고 결속하라고 주문했다. 저자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에 맞게 카리스라는 종교적 개념을 재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면서 즉흥적 영감에 의한 설교보다는 성서가, 예언자보다는 주교가 교회의 중심이 됐다. 영적 능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카리스마라는 단어도 잊혀져 갔다. 이 단어를 세상에 새롭게 끌어낸 것이 바로 막스 베버다.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카리스마를 권력 혹은 지배의 형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여기서 뛰어난 지도자에 대한 추종자들의 개인적 신뢰에 바탕을 둔 ‘카리스마적 지배’라는 개념이 생겼다. 합법적 지배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베버는 초대 교회 당시 사도와 예언자들이 합법적인 권력 없이도 신의 은총으로 받은 영적인 능력을 통해 공동체를 통치했다는 데 착안했다. 이후 카리스마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존 F 케네디 등 강력한 권위를 발휘했던 독재자나 뛰어난 매력을 지닌 정치인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며 ‘계발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받는다. 베버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종교적 색채가 남아 있었지만 현대로 접어들며 이 같은 색채는 대부분 제거됐다. 합리성과 서민적 면모가 정치인의 중요한 자산이 되면서 ‘카리스마적 지배자’는 현대 정치에서 찾기 힘든 것이 됐다. 그러나 저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여전히 베버가 제시한 카리스마의 개념이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한다. 존 F 케네디를 언급하고, 열정적인 연설과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이 모두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는 종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왜 몇몇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가. 저자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카리스마’라고 답하는 것은 그 안에 내포된 비합리성과 신비로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위신, 유명인, 권위 등의 단어와 카리스마는 다르다. 카리스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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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유별난 네 식구의 가족이야기

    ◇소문난 하루/마크 해던 지음·신윤경 옮김/640쪽·1만3800원·문학수첩직장에서 갓 은퇴한 조지는 친구의 장례식 때 입을 양복을 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아내 진은 남편의 옛 동료와 불륜 관계다. 딸 케이티는 사랑보다는 안정을 택해 재혼하려 한다. 아들 제이미는 동성애자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지 못하고 애인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족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는 만만치 않다. 결국 딸의 결혼식 준비가 진행되며 각자가 지닌 문제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삶의 문제를 네 주인공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해결해 나가는지를 그렸다. 2003년 청소년 소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으로 휘트브레드 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던 영국 작가의 첫 번째 성인 대상 장편소설이다. 특유의 유머와 섬세한 묘사로 삶의 치부까지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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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금 대사 중 ‘소리’ 뜻 몰라 오역”

    “한국어는 길고, 중국어는 짧아요. ‘안녕하세요’도 중국어로는 ‘니 하오’죠. 그럼 더빙번역일 경우 입 모양이 안 맞아요. 그러니 ‘니 하오’ 대신 글자 수에 맞게 ‘칭 톈 하오’(‘날씨가 좋다’는 뜻의 인사말)라고 번역을 해야 하죠.” ‘명성황후’ ‘대장금’ ‘장희빈’ ‘황진이’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 ‘커피프린스 1호점’…. 이 모든 드라마를 중국어로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대만 출신의 둥원쥔(董文君·50) 씨다. 10여 년간 80편이 넘는 드라마를 번역했다. 둥 씨는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논문 ‘한국드라마의 중국어 번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번역은 문화의 매개자”라는 그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생각에 2006년부터 한국에 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둥 씨는 한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번역할 때는 고전소설 속에도 남장 여자가 자주 등장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옛 여인들을 그린 고전소설도 읽었다. 그는 “이런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극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드라마, 고전소설을 통틀어 한국 여성들이 강인하게 그려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은 흡인력 있는 대사예요.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중화권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기 힘들죠.” 둥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대만정치대로 진학했다. 대학을 나온 뒤 한국 기업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다 1990년대 말부터 드라마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2006년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번역에 실수를 한 적도 있다. “‘대장금’(2004년) 중에 연생이가 ‘우리 마마님은 소리도 하셔’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어요. 그 ‘소리’가 판소리라는 것을 몰라 다른 말로 대체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어요.” 의학드라마 ‘뉴하트’를 번역할 때는 의학 용어가 모두 영어로 나와 고생했다.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영어 단어의 정확한 표기를 찾고 다시 중국어 음역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둥 씨는 “70분짜리 드라마 번역에 7시간 정도 걸리는데 외래어가 많으면 하루 한 편 끝내기가 벅찰 때도 많다”고 말했다. ‘방심’ ‘심각’처럼 똑같은 한자어인데 중국어와 한국어의 뜻이 다른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번역의 질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방송국들이 판권을 판 뒤에는 현지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방영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둥 씨는 이달 말 학위 수여식을 마친 뒤 대만으로 돌아가 번역 일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좋은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대만 대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울 때 유용한 책도 번역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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