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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 딸을 안아보면 소원이 없겠어요.” 25일 유전자(DNA) 검사 결과 세월호 4층 선미에서 수습된 유해가 조은화 양(사진)이라는 통보를 받은 엄마 이금희 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 씨는 11일 세월호 4층 선미에서 조 양의 가방과 부근에서 유해가 발견되자 ‘3년 만에 딸을 찾았다’고 느꼈지만 DNA 결과를 기다리며 눈물을 꾹 참아 왔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10∼13일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수습된 유골이 단원고 고창석 교사와 허다윤 양에 이어 조 양으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이 씨는 “가족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딸을 찾았다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은화의 아직 다 못 찾은 나머지 유해를 찾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혈육을 찾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며 “지켜봐주신 시민들께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조 양은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엄마 이 씨와 함께 짐을 챙겼다. 하지만 ‘세월호가 안개 때문에 출항을 못 할 수 있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조 양은 수학여행 당일 집을 나서면서 수습된 가방에 들어 있던 입술보호제를 바르면서 ‘잘 다녀올게’라는 말을 했다. 세월호에 탑승한 뒤 즐거운 수학여행을 꿈꾸며 친구 2명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휴대전화로 보냈다. 하지만 사진을 보내고 잠시 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변을 당했다. 조 양은 아빠에게 받은 용돈의 절반을 항상 엄마에게 준 효녀였다. 아빠가 새우를 먼저 까서 주면 ‘엄마부터 챙기라’는 핀잔을 잊지 않았다. 전교 1등을 좀처럼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면서 친구들과 사이도 좋았다. 1, 2시간씩 쉬지 않고 수학 문제를 풀 만큼 수학을 좋아했고, 회계공무원을 꿈꿨다.최혜령 herstor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1980년 신군부가 미국에 5·18에 대한 터무니없는 거짓정보를 흘려 지지를 끌어내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미국 언론인 팀 셔록 씨(66)는 24일 광주시청에서 1979∼1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결과 설명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1996년 미국 정부의 5·18 관련 기밀문서를 처음으로 공개해 주목을 받은 셔록 씨는 4월 10일부터 광주에 머물면서 그가 기증한 기밀문서(3500쪽)에 대한 분석 작업 등을 했다. 설명회에서 밝힌 신군부의 첫 번째 왜곡된 정보는 미군 정보원의 첩보 형태로 1980년 5월 21일 작성됐다. 왜곡된 내용은 ‘광주 세무서와 관공서를 파괴한 폭도들이 인질을 붙잡고 있다. 인질 가운데 몇 명은 도청 공무원’이라는 내용이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관공서를 파괴하거나 인질을 잡은 적이 없다. 두 번째 왜곡된 정보는 1980년 5월 27일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문으로 ‘광주에서 인민재판과 사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은 신군부가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을 진압한 상황이었다. 세 번째 왜곡된 정보는 1980년 6월 2일 미국 국방부에 보고된 것으로 ‘광주 인근 산에 시민군 2000명이 숨어 게릴라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밖에 왜곡된 정보는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을 불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또 폭도들이 초등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내용도 있었다. 5·18 당시 시민들은 시위참여를 강제하거나 초등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다. 다른 왜곡된 정보는 또 ‘폭도들이 전투경찰에게 무차별 사격,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시민들에게 사격, 군중을 향해 쏠 기관총을 설치, 좌익 300명이 수감된 교도소 공격’ 등의 내용을 담았다. 5·18 당시 시민군은 경찰이나 시민들에게 사격을 한 적이 없다. 신군부는 이런 왜곡된 정보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셔록 씨는 “신군부의 왜곡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다양한 정보채널을 확보해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집단발포 등 5·18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국가 이익 등을 위해 묵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5월 광주 진실을 담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 등에 지워진 문장이 많은 만큼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 기밀해제 요청을 통해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5·18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 이후 광주의 한 식당에서 가진 5월 단체와의 오찬에서 5·18 진상규명은 법을 제정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정치권에서는 5·18 진상규명이 특별법 제정을 통해 추진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40여 명의 서명을 받은 5·18 헬기사격특별법안을 발의해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별도의 특별법안을 만들 개연성이 있지만 국민의당 특별법안을 수정해 함께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5·18 헬기사격특별법안에는 조사·수사권을 가진 조사위원회에서 5·18 진상규명 작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23일 오후 3시 5분 전남 무안군 현경면 편도 1차로 도로에서 중국동포 전모 씨(55)가 몰던 1t 화물차가 마주오던 25t 덤프트럭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전 씨와 함께 탔던 중국동포 류모 씨(31)가 숨졌다. 덤프트럭 운전자 양모 씨(50)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전 씨가 몰던 1t 화물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다 중앙선을 침범해 덤프트럭을 충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졸음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숨진 전 씨 등은 이날 오전 4시부터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서 양파 수확 현장에서 일을 한 뒤 귀가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파 주산지인 무안 등지에선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수확이 힘들 정도로 인력난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전 씨는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을 했고 부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년 전 한국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국제 세미나가 유엔 본부에서 처음으로 열려 5월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린다. 5·18기념재단은 26일 유엔 본부에서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세미나가 ‘광주일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기억’이라는 주제로 개최된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유네스코는 2011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시원(始原)이자 촛불시위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세미나에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와 정치학 국제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교수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토론을 한다. AP통신 특파원으로 ‘5월 광주’를 취재한 테리 앤더슨 기자가 광주의 진실을 증언한다. 광주대 교수이자 난민 운동가인 욤비 토나 씨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 영문판 번역자인 설갑수 씨와 닉 마마타스 씨도 참여한다. 이날 ‘넘어넘어’ 영문 개정판도 공개된다. 넘어넘어는 1985년에 출간된 5·18 최초 백서다. 당초 소설가 황석영 씨 명의로 출간됐으나 당시 광주의 재야 활동가였던 이재의 씨가 썼다. 책은 출간 즉시 판매 금지됐고 수십만 부가 은밀히 유통됐다.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 이후 100만 부 이상 팔렸다. 넘어넘어 영문판은 1999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출간됐다. 영문판은 커밍스 교수의 서문과 1980년 당시 미국 기밀문서를 분석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 씨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미국, 캐나다의 40여 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다 2005년 절판되자 5·18기념재단은 2015년 번역자로부터 판권을 확보한 뒤 재출간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유엔에서 개최되는 5·18 국제 세미나는 ‘민주·인권·평화’의 5월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 선체에서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유해는 일반인 미수습자 이영숙 씨(당시 51세·사진)로 추정된다. 23일 오후 수습을 마무리한 유해에서 이 씨의 신분증이 나온 것이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23일 오후 현장 수습 후 임시안치실로 운구한 유해에서 이 씨의 신분증이 나왔다”며 “하지만 유전자(DNA) 분석 결과가 나와야 신원을 최종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수습본부는 장례 때 쓰는 관을 이용해 유해를 안치실로 옮겼다. 유해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에 이 같은 운구 방식을 선택했다. 앞서 유해는 22일 오후 4시 40분경 세월호 선체 3층 선미 왼쪽(3-18구역)에서 발견됐다.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옷과 붉은색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였다. 유해가 발견된 구역은 화물기사와 승무원 객실, 휴게실 등이 있던 곳이다. 유해가 이 씨로 판정되면 일반인 미수습자 중 처음이다. 미수습자 9명 가운데 단원고 교사와 학생은 6명이고 일반인은 이 씨와 권재근 씨, 권 씨의 아들 혁규 군 등 3명이다. 미수습자 가운데 현재까지 단원고 고창석 교사와 허다윤 양의 유해가 확인됐다. 이 씨는 10여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뒤 생계를 위해 아들을 시댁에 맡기고 타지에서 일했다. 2013년 여름 제주의 유명 호텔식당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 아들과 같이 살 생각으로 서귀포에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다. 이 씨는 본가가 있는 인천에서 제주로 짐을 옮기기 위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최혜령 herstor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인양된 세월호 선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미수습자 중 가장 온전한 형태의 유해가 발견됐다. 주변의 진흙과 잡동사니 등과 함께 발견돼 수습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22일 오후 4시 40분경 세월호 선체 3층 선미 왼쪽(3-18구역)에서 사람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형태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해는 옷과 붉은색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발견됐다. 수습본부는 3층 선미 부분이 압착돼 유골이 흩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해가 발견된 3-18구역은 화물기사와 승무원의 객실, 휴게실 등이 있던 곳이다. 이르면 23일 오전경 유해가 모두 수습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진흙이나 잡동사니 등과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수습본부는 유해를 모두 확보하는 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신원 확인을 위한 정밀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유해가 발견되면서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이후 발견된 유해는 모두 4명으로 늘어났다. 앞서 17일에는 고창석 단원고 교사, 19일에는 단원고 허다윤 양의 신원이 확인됐다. 12, 13일 이틀에 걸쳐 수습된 또 다른 유해는 현재 국과수에서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식이 진행 중이다. 현장수습본부는 선체 내부 수색과는 별도로 이날 오후부터 침몰 해역에 대한 음향탐지기(소나) 탐색도 시작했다.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침몰 해역에 쳐 놓은 펜스 내부를 50개 구역으로 세분하고 탐색도 병행하고 있다.최혜령 herstor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22일 정부가 4대강 보 개방 등의 방침을 밝히자 충남도는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충남도는 “그렇지 않아도 보에 문제가 많아 올 1월 4대강 보의 상시 개방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충남도의 속사정은 복잡해 보인다. 오래전부터 금강 물을 가뭄과 홍수 예방에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2012년 충남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닥치자 안희정 지사는 정부에 도수로 건설을 건의했다. 금강(공주지역)과 예당저수지(예산)를 잇는 도수로다. 현재 공정이 약 73%다. 충남도 관계자는 “정부가 마스터플랜 형태로 가지고 있던 사업이었는데 안 지사가 추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가 반대했지만 안 지사는 2015년 10월 “예당저수지∼공주 도수로 건설은 수년 전부터 제기해온 문제로 공감받을 때 신속히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보를 개방하면 사업 차질이 예상된다. 금강과 보령댐 상류까지 21km 구간에는 하루 11만5000t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도수로가 있다. 2015년 10월 가뭄 때 한 차례 가동했고 최근에도 물 공급이 이뤄졌다. 역시 안 지사가 2012년 시도지사 영상회의 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금강 물을 보령댐으로 끌어와 가뭄에 대비하자”고 제안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즉석에서 “좋은 아이디어”라며 내각에 실행을 지시했다. 충남도는 이 사업이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수량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보령댐 도수로의 취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지역사회의 평가다. 2010년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영산강이 썩어가는 것을 보면 4대강 사업에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처음 실시할 때부터 영산강은 분리해서 판단해 달라고 중앙당에 양해를 구했다”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홍성=지명훈 mhjee@donga.com / 나주=이형주 기자}

5·18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지핀 고 박관현 열사(사진)가 5월 광주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23개월간의 도피생활을 스스로 끝냈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다. 박 열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호명했던 4명 중 한 명이다. 박 열사는 1953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 박정환 씨(2014년 작고)의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영광 불갑초교, 광주동중, 광주고를 졸업했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뒤 1978년 전남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해 법조인을 꿈꾸며 고시공부를 했다. 1978년 6월 송기숙 명노근 씨 등 전남대 교수 11명이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성명을 통해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6·27 교육지표 사건이 터졌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연행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했다. 고시 공부와 현실을 고민하던 그는 1978년 12월부터 2개월 동안 광주 서구 광천동 노동실태조사에 참여하고 들불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광천동은 아시아자동차 하청업체가 많아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서울의 봄’이 찾아온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그는 같은 해 5월 14일부터 사흘간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진행된 ‘민족민주화성회’를 이끌었다. 비상계엄해제 등을 요구하며 횃불을 들던 성회는 5·18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됐다. 그는 신군부가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 인사들을 체포하자 주변 권유로 전남 여수로 도피했다. 한 달 뒤 서울의 동생 집으로 피신해 인근 친척집에서 1년간 은신했다. 제수인 유봉순 씨(62·여)의 소개로 유 씨의 6촌 오빠가 운영하는 서울 공릉동 한 공장에서 일했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 대학 후배 등을 만나 5·18 때 숨진 들불야학 선후배 윤상원 박용준 열사 이야기와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받은 다른 동료들의 사연을 들었다. 신분을 감추고 살던 그는 공장 동료에게 ‘나는 숨어 사는 놈’이라는 독백을 자주 했다고 한다. ‘5월 광주’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1982년 4월 5일 공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그는 TV에 자신의 사진이 나오는 것을 봤다. 당시 수사당국은 5·18 수배자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들의 얼굴과 현상금을 공개했다. 그는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묵묵히 일하러 가다 경찰에 붙잡혔다. 박 열사가 체포된 뒤 유 씨와 유 씨의 6촌 오빠도 검거됐다. 박 열사는 서울에서 광주로 이송되던 중 유 씨가 “왜 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죄인도 아닌데 왜 피하느냐. 죄인은 바로 신군부다. 5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답했다. 유 씨는 “당시 광주의 한 경찰서에서 한 달간 ‘아주버님이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500만 원을 받았다’는 거짓 진술을 하라며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의 6촌 오빠는 4개월간 실형을 살았다. 박 열사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진상 규명. 재소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40일간 단식하다 1982년 10월 12일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2013년 박 열사가 무죄라며 광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 재판부는 박 열사가 무죄는 맞지만 1심 선고 이후 숨져 재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열사의 누나 행순 씨(68)는 21일 “조만간 동생에 대한 재심을 다시 청구해 동생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 3층 객실 중앙부에서 발견된 유골은 유치원 교사를 꿈꿨던 경기 안산 단원고 허다윤 양(당시 17세·사진)으로 확인됐다. 미수습자 9명 중에서 신원이 확인된 것은 17일 단원고 고창석 교사에 이어 두 번째다. 해양수산부는 16일 오전 8시 30분쯤 3층 객실 오른쪽(3-6구역)에서 수습한 치아와 치열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법의학 감정을 실시한 결과 허 양과 일치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구역에서는 14일부터 치아 등 유골 49점을 수습했다. 이번 감정은 법의관이 육안과 방사선 검사로 허 양의 치과진료기록부와 치과방사선 사진 사본 등의 자료와 비교분석해 유전자(DNA) 분석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해당 구역에서 발견된 다른 유골에 대해서는 DNA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허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53)는 확인 소식에 “다윤이가 오랫동안 교정을 받아 예쁜 치아가 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였다. 또 “수학여행 때 놔두고 간 치아교정기를 목포신항 내 임시숙소에 보관하고 있다”고도 했다. 허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47)는 참사 직후부터 전남 진도군 팽목항 컨테이너에 머물면서 실종된 딸을 간절히 기다렸다. 박 씨는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딸이 바닷속에 있는데 병원에 누워 있을 순 없다”며 수술을 미뤘을 정도다. 아버지 허 씨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수색작업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며 “유해를 아직 다 못 찾은 만큼 수색작업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장례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도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이 끝날 때까지 모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허 양은 중학교 때부터 학교나 교회 봉사활동을 즐겨 했다.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어른이 되면 유치원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갔다. 이런 성품은 사고 때도 드러났다. 세월호 생존자들은 허 양이 참사 당시 배에서 뒤늦게 빠져나온 친구 한 명을 먼저 헬기에 구조되도록 돕느라 정작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고 진술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버지 허 씨는 “다윤이가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을 생각해 한 번도 용돈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 양은 애초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모들이 모아준 돈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게 됐다.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2013년 5월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취임 첫해였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이하 5·18) 33주년 기념사를 하려고 연단으로 걸어가자 정적이 흘렀다. 박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박수가 나왔지만 의례적이었다. 기념사는 5·18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경제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등의 ‘비전 선포’에 무게를 두고 진행됐다. 기념사 중간에 참석자들은 한 차례 박수를 보냈을 뿐이다. 18일 5·18 37주년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기념식의 분위기는 4년 전과 완전히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13분에 걸쳐 기념사를 하는 동안 박수가 25차례 쏟아졌다. 문 대통령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도 지키겠다”고 말했을 때 박수 소리가 가장 컸다.○ 역대 최대 규모 기념식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줬고,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 준 힘이 됐다”고 밝혔다.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다 분신해 사망하는 등 유명을 달리한 전남대생 박관현 씨 등 4명의 이름도 불렀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정치적 실리보다 민주, 인권을 가장 많이 생각한 기념사”라며 “5·18정신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기념식 참석자는 1만여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대통령 참석 행사의 특성상 그동안은 입장이 제한됐지만 올해는 기본 검색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4년 만이고,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것을 포함해 9번째다. 문 대통령은 오전 9시 51분경 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에서 내려 200m를 걸어가며 시민과 유가족들을 만났다. 역대 대통령들은 행사장 옆 도로에서 내려 50m를 걸었다. 방명록에는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유가족 사연에 눈물 훔친 대통령 기념공연에서는 김소형 씨(37·여)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추모사 ‘슬픈 생일’을 낭독했다. 김 씨는 1980년 5월 18일 전남도청 앞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재평 씨(당시 29세)는 딸을 보려고 산부인과로 가던 길에 희생됐다. 김 씨는 “때로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행복하게 살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 모든 아버지들이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주셨다”며 추모사를 읽는 내내 울먹였다. 추모사를 듣던 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문 대통령은 퇴장하는 김 씨에게 다가가 15초간 안아줬고 “아버지 묘에 같이 가자”고 위로했다. 김 씨는 문 대통령에게 안겨 흐느껴 울었다. 김 씨는 “아빠가 안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 후 김 씨 가족과 함께 김재평 씨 묘를 찾아 참배했고, 다른 희생자 묘역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긴 1시간 20분을 민주묘지에 머물렀다. 묘지 내 765기의 묘에는 ‘追慕(추모)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힌 하얀 리본이 달린 국화가 놓였다.○ 9년 만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이명박 정부 첫해였던 2008년이 마지막이었고, 이후에는 합창으로 대체됐다. 9년 만의 제창이다. 문 대통령은 이 곡 작곡자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등과 손을 잡은 채 앞뒤로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화합의 의미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손을 잡고 부르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들은 “한이 풀렸다”고 말했다. 대선 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가수 전인권 씨는 무대에서 ‘상록수’를 열창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 등 일부 참석자는 입을 꾹 다문 모습이었다. 정 원내대표는 “5·18 민주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없지만 제창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부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보훈·보수단체는 이 노래 제창에 반대하고 있다.손효주 hjson@donga.com / 광주=이형주 / 문병기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들에게 주고 “빨리 나가라”면서 탈출을 도운 ‘또치쌤’이 1127일 만에 돌아왔다.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발견된 유해가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교사(당시 40세·사진)로 확인됐다. 해양수산부는 이달 5일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발견된 유골 1점이 고창석 교사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세월호 인양 후 나온 유해에서 신원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 교사의 유골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뒤 침몰해역(SSZ-2구역)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세월호 선체가 해저면에 맞닿아 있던 곳으로 유골 발견 가능성이 커 집중 수색이 진행돼 왔다. 당초 DNA 검사에는 1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유골이 발견된 지 12일 만에 신원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발견된 고 교사의 유해는 정강이뼈로 유전자 채취와 분석이 수월한 부위다. 참사 한 달 전인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교사로 부임한 고 교사는 제자들을 각별히 아꼈다. 술·담배를 하며 엇나가는 제자들을 엄하게 꾸짖는 대신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제자들은 고슴도치 머리를 한 고 교사에게 ‘또치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친근하게 따랐다. 학교에 출근할 때는 꼭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체육교사가 왜 운동복을 입고 출근하지 않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체육도 학문이고 절대 가볍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고 교사는 가족을 유난히 아꼈다. 쉬는 날이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캠핑을 자주 다녔다. 매년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면 교사였던 아내 민모 씨(39)의 사무실에 꽃바구니를 보낼 정도로 자상했다. 생존 학생들은 고 교사가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들에게 던져주며 구조를 위해 뛰어다녔다고 증언했다. 대학 시절 바다에서 인명구조를 할 정도로 수영을 잘한 그였지만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고 교사의 유족들은 영안실에 보관 중인 유해를 넘겨받는 대로 장례를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 선체가 아닌 가라앉았던 해역에서 발견된 유해가 고 교사로 확인되자 “우려했던 미수습자 유실이 현실화된 것”이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는 한 상원이는 살아있습니다.” 17일 광주 광산구 임곡동 창동마을에서 만난 윤석동 씨(91)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윤 씨는 윤상원 열사(사진)의 아버지다. 윤 열사는 3남 4녀 중 장남이었다. 윤 열사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은행에 취업했다가 광주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1980년 5월 27일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이 쏜 총에 숨졌다. 윤 열사 시신은 다음 날 청소차에 실려 광주 망월묘역에 안장됐다. 관 번호 57, 검안 번호 4-1, 묘지 번호 111이 기록의 전부였다. 윤 열사의 신원은 한 달 뒤에야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하루 앞두고 만난 윤 씨는 18일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신장염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았지만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위해 노력해 주신 사람들이 고맙다. 특히 제창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 열사와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열사(당시 21세)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2년 2월 만들어진 노래다. 두 사람은 광주 들불야학에서 함께 강사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양쪽 집안은 영혼결혼식 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 열사가 역사 속에 부활했다는 희망이 담긴 노래였다. 그래서 윤 씨는 아들의 영혼결혼식에 참석해 노래를 처음 들은 뒤 생각날 때마다 불렀다. 그는 1990년대 중반 5년 동안 5·18유족회 회장을 맡는 등 5월 진실 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을 떠올리며 윤 씨는 “신군부라는 불법 정권과 불의에 항거한 청년을 간첩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런 왜곡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리자 ‘정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기념식에서 다시 제창된다는 소식에 ‘상원이는 죽지 않았다. 노래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윤 씨는 16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75년 동안 이어가고 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범한 농사꾼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뒤 가슴속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일기에 담고 있다. 하지만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은 몸이 불편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씨는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소식을 들었으니 마음이 놓인다”라며 “살아있는 동안 상원이 기념관이 완공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지난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기념식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행사장에 들어서자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박 처장은 쫓겨났다. 참석자는 3000여 명에 그쳤다. 정부의 제창 불허 방침에도 당시 여야 지도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자진해 따라 부르는 ‘셀프 제창’을 했다. 반면 황교안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입을 꾹 다물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불참하면서 추모 분위기는 증발된 채 국론 분열의 민낯만 드러내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올해 열리는 37주년 기념식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오전 10시부터 5·18민주묘지에서 ‘5·18 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진행될 기념식에는 1만 명 이상이 참석할 예정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 이후 최대 규모다.○ 문재인 정부 첫해 ‘화합’에 중점 이번 기념식에는 5·18 민주유공자 및 유가족뿐만 아니라 4·19혁명 등 역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단체 관계자들도 대거 초청됐다. 일반 시민도 신분증만 있으면 참석할 수 있다. 과거엔 사전 등록을 하거나 초청장을 보유한 사람 등에 한해 입장할 수 있어 다소 폐쇄적이었다. 기념식은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하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훈처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올해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 포함하고 참석자가 모두 따라 부르는 제창 형식으로 진행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까지 공식 식순에 포함돼 제창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다음 해인 2009년부터 식전 비공식 행사로 진행됐다. 2011년부터는 공식 식순에 다시 포함됐지만 합창단이 부르고 참석자의 경우 희망자에 한해 따라 부르는 합창으로 변경됐다. 이후 “5·18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창해야 한다”는 광주시민 및 유가족, 당시 야권과 “제창이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킨다”며 불허한 보훈처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 여야 지도부 광주 총출동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약속하며 5·18 정신을 강조했던 만큼 행사 참석 여부도 관심거리다. 문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할 경우 4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다. 기념식엔 17일 임명된 피우진 신임 보훈처장, 여야 5당의 지도부와 전 대선 후보(미국 체류 중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후보 제외)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 중 진행될 기념공연에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가수 전인권 씨도 참석한다. 전 씨는 가수 양희은 씨 노래 ‘상록수’를 부를 예정이다. ‘상록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래로도 유명하다.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 영상이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국민 대통합’ 전략의 하나로 전 씨를 섭외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선 전까지만 해도 초대 가수 명단에 없던 전 씨는 16일 기념식 참석 요청을 받았다. 공연 리허설을 위해 17일 5·18민주묘지를 찾은 전 씨는 “의미 있는 무대라고 생각해 기념식 초대를 흔쾌히 수락했다”며 “5·18(기념식)에 국민 모두가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시 타오르는 민주주의’ 전야제 17일 오후 8시부터는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시민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전야제가 열렸다. 옛 전남도청 앞은 1980년 5월 16일 ‘민주화대성회’에 나선 시민들이 횃불을 든 곳이다. 전야제는 ‘촛불로 잇는 오월, 다시 타오르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그날의 기억’, ‘지금 여기 우리는’, ‘민중의 함성’ 등 3부로 나눠 진행됐다. 행사는 내벗소리 민족예술단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됐다. 문화예술인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친 가운데 5·18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이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5·18 희생자 권호영 씨 어머니는 “나는 무명열사의 묘에 있던 아들을 22년 만에 찾았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도 빨리 가족을 찾았으면 한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무대에서는 27년 전 당시처럼 횃불 37개가 타오르는 모습도 연출됐다. 주최 측 관계자는 “다시 힘을 모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자는 뜻을 담아 공연을 준비했다”고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 / 광주=이형주 / 임희윤 기자}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참석자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기념식이 끝나고 ‘5월 단체’ 회원들과 만나 소통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16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은 식전행사, 국민의례, 묵념과 헌화, 경과보고, 기념사, 기념공연,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40분간 거행된다. 기념식장 좌석도 4330석으로 지난해 2500석에 비해 크게 늘었다. 경과보고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5월 단체 회원인 김후식 5·18부상자회 회장이 한다. 합창단의 합창으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은 9년 만에 참석자 모두가 부르게 됐다. 기념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면 행사가 끝난 뒤 5월 단체 회원들과 5·18 진실 규명 및 정신 계승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오찬이 마련될 것으로 관측된다. 만남이 성사된다면 정부 주관으로 5·18 기념이 열린 1997년 이래 처음이다. 한편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와 5·18민주광장에서는 ‘촛불로 잇는 오월, 다시 타오르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5·18 전야제가 열린다. 세월호 일부 유가족도 전야제와 기념식에 참석한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 선체 3층에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사흘째 수습됐다. 미수습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첫 유전자 검사결과는 다음 달 초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세월호현장수습본부는 16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3층 중앙 우측구역(3-6)을 수색하다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9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같은 구역에서 수거한 진흙덩어리를 세척하던 중 역시 인골(人骨) 추정 뼈 2점을 수습했다. 14, 15일에도 같은 구역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20여 점을 발견했다. 수습본부는 3-6 구역에서 수습된 이들 뼈를 동일인의 유해로 추정하고 있다. 세월호 4층 선미(船尾) 구역(4-11)에서 미수습자 유해가 발견된 뒤 두 번째 유해다. 세월호 선체 3층과 4층 다른 구역에서도 잇따라 미수습자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나오고 있다. 수습본부는 이날도 한 달가량 걸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나와야 희생자 신원을 최종 확인할 수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이에 앞서 5일 세월호 선체가 침몰했던 해저면에서 유해가 처음 발견된 것을 감안하면 첫 번째 유전자 검사 결과는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나올 확률이 높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전화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청와대는 15일 문 대통령이 송하진 전북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윤장현 광주시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 지사와 윤 시장과는 10일에, 송 지사와는 14일에 각각 통화했다. 송 지사도 이날 전북도청에서 간담회를 열고 문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밝혔다. 송 지사는 “문 대통령이 14일 오전 10시 50분경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해오셨다”며 “문 대통령이 ‘인사를 포함해 전북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으며 이후에도 자주 소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새만금 사업,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전북 유치 등 지역 현안 등을 주제로 10분가량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5·9대선 개표 결과 전북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64.8%)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당선 뒤 주변 측근들에게 “언제나 조용히 힘을 보태주는 전북 유권자들이 참 감사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10일에는 윤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 대통령이 윤 시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임박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문제를 상의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는 최근 청와대에 5·18 행사 계획 및 지역 현안 등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최 지사와의 통화에서는 감사 인사와 함께 평창 겨울올림픽 지원 문제 등을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른 광역시장, 도지사들과도 순차적으로 통화할 예정”이라며 “시도지사들이 참석하는 ‘제2국무회의’를 열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지방 분권에 관심이 많은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문 대통령도 앞으로 다양한 인사와 직접 통화하면서 소통할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 / 광주=이형주 / 춘천=이인모 기자}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기업들이 지역사회 상생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수시는 여수국가산단과 지역사회의 공동 발전을 위한 ‘여수시·여수산단 상생발전 공동업무협약’에 기업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협약에는 현재 GS칼텍스, LG화학 여수공장, 한화 여수사업장, 금호석유화학, 대림산업 등 22개 기업이 참여했다. 2014년 10월에 체결된 협약은 기업체 임직원들의 주거지 여수 이전, 지역인재 채용 확대, 지역 농수축산물 구입 확대, 지역 건설사·용역업체 참여 증대, 사회공헌 활동 강화 등 5개 내용을 담고 있다. 협약에 따라 기업들은 현재까지 지역 인재 545명을 채용하고 임직원 714명이 여수지역으로 전입했다. 또 지역 농축수산물 등 생산품 1674억 원 구매, 지역기업을 통한 3조 원 상당의 공사자재 구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여수시는 협약에 참여한 기업들의 홍보와 함께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등 상생발전에 화답하고 있다. 여수시는 내년까지 여수국가산단 내 규모가 큰 기업 37곳 전부가 협약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전일빌딩 계엄군 헬기사격은 10일간의 항쟁 마지막 날, 최후 항쟁을 하던 시민군 기선제압을 위해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광주시 5·18진실규명지원단은 3개월간 5·18관련 군 문서와 검찰 수사 기록, 헬기부대 출신 장교 증언 등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15일 밝혔다. 지원단은 전일빌딩 헬기 사격이 육군본부 1항공여단 소속 202·203대대 소속 UH-1H 헬기에서 1980년 27일 오전 4시부터 1시간 반 사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탄흔은 정지비행(호버링) 상태 헬기에서 M60기관총을 발사한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토대가 됐다. 당시 육군 헬기부대인 1항공여단 산하 202·203대대는 M60을 기체 옆으로 설치할 수 있는 헬기(UH-1H)를 유일하게 보유했다. 이들 부대 헬기(UH-1H) 10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투입됐다. 일부 시민들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진압작전 당시 헬기에서 계엄군이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당시 헬기에서 사격을 이뤄졌다는 증언도 했다. 그때 병력 수송과 헬기사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헬기 기종은 UH-1H가 유일했다. 지원단은 헬기(UH-1H)의 M60사격은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일빌딩을 점령하면서 시민군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며 사격명령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치밀한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맡았던 육군 20사단 작전일지에는 ‘27일 오전 5시 13분 전일빌딩에서 총성 소리가 들렸다’, ‘27일 오전 5시 18분 헬기 무력시위 전개’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윤장현 시장은 “전일빌딩 헬기 사격을 조사했지만 진실의 벽은 여전히 높고 멀다”며 “국가가 나서서 5월 진실 규명을 통한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의 296번째 희생자의 유해가 수습됐다. 2014년 10월 해저면(海底面)에 가라앉은 세월호 선체에서 황지현 양의 시신을 발견해 인양한 지 929일 만이다. 미수습자는 9명에서 사실상 8명이 됐다. 세월호현장수습본부는 13일 오후 3시경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4층 선미 좌현 구역 4-11에서 사람의 상반신 뼈를 수습했다고 14일 밝혔다. 앞서 12일에는 이 지점에서 1∼2m 떨어진 곳에서 하반신 뼈를 수습했다. 이 상반신과 하반신은 동일인의 것으로 판단돼 유해(遺骸) 대부분을 수습한 것으로 보인다. 수습된 치아의 오른쪽에 금니가 한 개 있었으며, 청바지와 양말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당시 세월호 일부 생존자는 여학생 객실이 있던 구역 4-11에서 조은화 양과 허다윤 양을 마지막으로 봤다고 진술했다. 조 양은 당시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허 양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4일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교적 온전한 유해로 수습된 296번째 희생자의 신원을 추정으로라도 밝히지 말아줄 것을 해양수산부와 언론에 요청했다. 이들은 3월 28일 세월호를 인양해 임시 거치해 뒀던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 말린’ 갑판에서 발견된 ‘돼지 뼈’ 오인 사건 이후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100% 정확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수습자 인적 사항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포지청은 미수습자 신원 확인을 지휘하고 있다. 14일 목포신항에서 만난 조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아직 미수습자 8명이 남았다. 8명 모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도 “100% 확실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신원 확인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선체 수색 작업이 속도를 내 유전자 검사 결과 발표 전에 모두 수습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권재근 씨의 형이자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인 권오복 씨는 “미수습자 가족 9명은 2년여 동안 슬픔과 기쁨을 함께했다”며 “‘가족’을 찾더라도 우리가 미수습자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원 추정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해수부는 “유골의 치아 상태와 치과 기록을 비교하는 절차는 진행하지 않았다”며 “정확한 신원은 유전자 검사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세월호 선미(船尾)에서 40∼50m 떨어진 3층과 4층 중앙구역에서는 13일부터 이틀 동안 육안 감식을 통해 인골(人骨)로 추정되는 뼈 19점이 발견됐다. 이 유골도 유전자 검사를 거쳐 신원이 확인돼야 가족 품에 안길 수 있다. 현장수습본부는 미수습자 유해가 발견된 3층과 4층에 대한 정밀수색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이르면 15일 세월호 선체 수색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목포=이형주 peneye09@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11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4층 여학생 객실에서 발견된 안산 단원고 조은화 양의 소지품. 평소 조 양이 즐겨 쓰던 각종 색깔의 필기도구와 지갑 등에 펄이 잔뜩 묻어 있다. 조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공부하겠다고 색색 다 가지고 갔는데”라며 탄식했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