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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았다. 주말에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밀린 일을 했다. 40대 중반이 되니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들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선뜻 시작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운동은 힘만 들고 재미가 없었다. 불과 3년 전 김성헌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48)가 이랬다. 환자 진료나 학회 활동 외에는 관심을 뒀던 분야가 별로 없었다. 이 교수는 이석증과 메니에르증후군, 편두통성 어지럼증 등의 어지럼증 분야와 난청 치료의 전문가다. 현재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진료지침위원장이다. 대한이과학회와 대한평형의학회 학술이사도 맡고 있다. 운동을 싫어했던 김 교수가 지금은 자전거 마니아가 됐다. 변화의 계기를 물었다. ● 어쩌다 ‘괴롭게’ 시작한 운동 2018년 어느 일요일 새벽이었다. 당시 중3이던 아들이 김 교수를 깨웠다. “아빠, 자전거 타러 가요.” 그동안 몇 번을 거절했는데 이날은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마침 김 교수의 아들이 자전거를 바꾼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아들의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함께 집을 나섰다. 한강을 따라 왕복 7㎞를 탔다. 너무 피곤했다. 휴일 새벽에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아했다. 그 후로도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지못해 자전거를 탔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 힘든 걸 왜 하지?’ 1년이 지났다. 학술 모임에서 만난 의대 동문 선배들이 달리기 모임에 나오라고 했다. 선배들 말을 거역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가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 6시에 남산 둘레길을 뛰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달리기는 자전거보다 더 싫었다. 그래도 억지로 뛰다 보니 익숙해졌다. 중간에 조금씩 쉬면서 10㎞까지 달릴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이 교수는 두 달 동안 이 모임에서 달렸다. 울며 겨자 먹는 기분으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신체 변화가 생겼다. 배만 볼록하게 나오는 마른 비만 체형이었는데, 배가 홀쭉해졌다. 체중도 70㎏에서 66㎏으로 빠졌다. 체력도 강해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운동의 효과를 체험한 것이다. 하지만 안 하던 운동을 하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갔다. 달리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 동료들 모아 자전거 타기 시작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일단 살이 찌는 게 싫었다. 둘째, 체력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계단만 올라가도 힘들고 조금만 집중해도 쉽게 피곤해졌다. 그런 증세가 싹 사라졌다. 무릎에 부담이 덜 가는 종목을 골라 꾸준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달리기를 중단하고 채 한 달도 안 돼 자전거 타기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홀로 자전거를 타는 게 재미없었다. 고교 후배를 끌어들였다. 매주 2회 정도 밤에 만나 왕복 28㎞ 정도 한강 둔치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라이딩을 멈춰야 했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 한강 둔치로 달려갔다. 지난해 4월 이 교수는 ‘자전거 동료’ 4명을 추가로 영입했다. 주로 현직 의사들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말마다 자전거를 탔다. 코스 난이도에 따라 왕복 50~100㎞를 주행했다. 가끔은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더 먼 곳으로 가 라이딩을 시작했다. 금요일 밤에 강원 속초에 도착한 뒤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타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강원과 경기 일대에서 자전거를 탔다. 올여름에는 제주도 일주에 도전한다. 고3 수험생이 된 아들과는 요즘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그 대신 대학생이 된 내년 봄에는 함께 국토 종주를 하기로 약속했다. 4박 5일 일정으로 코스를 짜기로 했다. 김 교수는 “해보지 않은 도전이라 조금은 두렵지만 설렘도 생긴다”며 웃었다. ● 콜레스테롤 수치 정상 수준으로 떨어져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탄 지 1년이 지났다. 체력이 가장 먼저 좋아졌다. 처음에는 오르지 못했던 급경사 언덕도 거뜬히 올랐다. 100㎞를 주행하고 난 후에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쌩쌩하다. 이 교수는 “딱 어느 시점부터 체력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3~4개월 후부터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떨 때 체력이 좋아졌음을 느낄까. 이 교수는 “체중이 늘어나면 어딘가 거북하고 움직임이 불편한 듯했다. 그런 느낌이 사라졌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전거를 탄 이후로 65~66㎏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 지표도 좋아졌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종합 콜레스테롤 수치는 ‘위험’ 수준이었다. 고콜레스테롤혈증까지는 아니었지만 정상과 질병의 경계선에 있었다. 지금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져 정상 수준을 유지한다. 게다가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지단백) 수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이제 자전거 타기는 일상생활의 활력소가 됐다. 이 교수는 “고3 수험생이 집에 있으면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럴 때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면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주말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어느 곳으로 갈까, 그런 생각에 금요일 저녁에는 설레기까지 하단다. 이런 생활,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할 거라고 한다.자전거 초보자를 위한 꿀팁 가이드자전거 타기는 체중 감량은 물론이고 만성질환 관리에도 좋은 운동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은 좋지 않다. 초보자일수록 신경 써야 할 점이 많다. 김성헌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자전거를 구입하는 단계부터 차근차근 생각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무리한 도전은 금물이다”라고 조언했다. 자전거를 장만하는 데도 경제적 부담이 생긴다. 웬만한 자전거는 대부분 30만 원을 넘는다. 조금 좋아 보이는 자전거는 50만~100만 원에 이른다. 100만 원을 훨씬 넘는 자전거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30만 원 내외, 조금 더 투자한다면 50만 원 내외의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자전거가 자신의 몸에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숍에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 안장이나 페달 등의 위치를 정확히 조절하는 게 좋다. 만약 평소에는 몸에 이상이 없는데 자전거만 타면 무릎, 허리, 목, 어깨 등 특정 부위가 아프다면 전문적인 자전거 피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라이딩 전후에는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또한 라이딩은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처음에는 5~10㎞의 짧은 거리에 도전한다. 이게 자연스러워지면 여러 차례 왕복한다. 이 과정을 거쳐 라이딩이 능숙해지면 장거리 주행에 도전하도록 한다. 조금 실력이 붙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속도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이 경우 근육이 경직돼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대략 5㎞ 정도까지는 속도를 줄여서 타고, 그 다음부터 속도를 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라이딩을 권했다. 혼자 자전거를 타면 금세 싫증이 날 수도 있다. 게다가 여러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앞에서 타면 그 뒤 사람들은 바람의 저항을 덜 받아 힘이 상대적으로 덜 든다는 것이다. 일단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으면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2~3주 정도 자전거 타기를 거르면 그 다음에 다시 탈 때 초보자처럼 몸이 힘들어진다. 자전거를 탈 때 강해졌던 근육이 그 사이에 경직돼 몸에 쌓인 피로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이광웅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54)는 2019년까지만 해도 1년에 100∼150일을 외국에서 지냈다. 병원의 국제사업본부장을 맡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에서 병원 위탁 운영 책임자로 일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도 찾는 간이식 분야 베스트 닥터다. 카자흐스탄과 조지아, 미얀마 등을 여러 차례 다녔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매년 10건 이상의 수술을 시행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졌다. 해외 프로젝트와 원정 수술이 모두 취소됐다. 쿠웨이트에서는 병원 건물이 완공됐지만 의료인을 채용하고 교육시키는 이 교수팀의 업무가 중단되는 바람에 개원이 무기한 연기됐다.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 교수는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졌다.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짜증이 치밀어오를 때가 종종 있었다. 술을 마셔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도 팀원들에게 고압적으로 변했다. 그런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의 연속. 그러다가 돌파구가 생겼다. 테니스였다.●테니스로 코로나 우울감 날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9월 말에 동료 교수가 테니스를 권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엔 망설였다. 그 동료 교수가 “라켓은 휘두를 줄 아나?” “공이나 제대로 맞히겠어?”라고 농담한 게 이 교수를 자극했다. 은근히 승부욕이 발동했다. 사실 이 교수는 중학교에 다닐 때 테니스 선수를 했다. ‘덕분에 헛스윙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의외로 공이 잘 맞았다. 금세 빠져들었다. 병원 교수와 직원들이 만든 테니스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이 교수는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뒤론 매일 오전 5시 15분에 일어난다. 가방에 운동복을 챙겨 넣고 오전 5시 40분 버스를 탄다. 오전 6시 10분부터 8시까지 거의 2시간 동안 테니스를 한다. 이 생활 패턴은 비가 와 테니스를 할 수 없을 때가 아니라면 완벽하게 지킨다. 눈이 쌓이면 눈을 치우고 얼어붙은 공을 난로에 녹인 후 테니스를 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이 패턴을 지킨다. 이 교수는 상당히 시끄러운 플레이어다. “나이스!” “아싸” 하며 괴성에 가까운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는다. 동료들이 “네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다. 이 교수는 “이렇게 해야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쾌감이 증폭되는데, 조용조용 플레이할 이유가 있나”라며 웃었다. ●육체와 정신 모두에 나타난 긍정적 변화 테니스에 빠져든 지 6개월이 넘었다.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이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일단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교수는 전에도 수영이나 골프 같은 운동을 가끔 즐겼다. 그 운동과 비교해도 테니스는 확실히 강점이 더 많단다. 이 교수는 “공을 잘 치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 골프는 10∼20분마다 그런 순간이 오는데 테니스는 30초에 한 번은 온다. 골프가 재미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신체적 변화도 많았다. 일단 체중이 확 줄었다. 테니스를 시작하기 전 이 교수의 체중은 82∼84㎏이었다. 현재는 76∼77㎏이란다.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최대 7kg을 감량한 셈이다. 허벅지에 단단한 근육도 생겼다. 뱃살은 쏙 빠졌고 대신 희미하게나마 임금 왕(王)자가 생겨났다. 이 교수는 “피부까지 좋아졌다. 주변에서 젊어졌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이 교수는 “더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 개선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운동하기 전에는 종일 피곤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가 맑아졌다. 이런 심적 상태는 수술에 임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간이식 수술을 많이 한다. 수술 시간이 3∼4시간이나 걸리며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수술 도중에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수술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최근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체력이 좋아진 덕에 긴 수술이 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일 생각이 들지 않더란다. 이 교수는 “팀원들이 앞으로도 테니스를 오래 하라고 농담할 정도”라고 말했다. ●운동 더 잘하고 싶어 건강관리도 열심히 테니스를 시작한 초기에는 공을 받아넘기기에 바빴다.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한 게 이유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무나 약해진 체력이었다. 운동을 더 잘하고 싶었기에 체력을 강화하는 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나 별도 시간을 내 헬스장에 갈 시간은 없었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뒤져 저렴한 실내용 자전거를 샀다. 3개월 이상 자전거를 탔더니 무릎도 강해졌다. 처음 테니스를 시작할 때 나타났던 무릎 통증도 사라졌다. 요새 이 교수는 테니스 예찬론자가 됐다. 이 교수는 미국의 의료 전문 비영리단체인 텍사스메디컬협회(TMA)의 지난해 발표를 인용하며 “테니스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운동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TMA는 총 37개의 활동을 감염 위험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눴다. 감염도가 가장 낮은 활동이 1등급, 가장 높은 활동이 9등급이다. 이에 따르면 테니스는 2등급으로 모든 스포츠 종목 중에 위험도가 가장 낮은 등급으로 나타났다. 식당에서 음식을 사 갖고 나오는 활동,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활동이 2등급으로 분류됐다. 운동 전후 꼭 스트레칭하고 팔꿈치 통증 생기면 강도 낮춰야라켓 잡기 전 조언 한마디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테니스 또한 ‘시작’이 가장 어렵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도 그토록 많이 병원 테니스장 주변을 다녔지만 ‘테니스는 나와 무관한 운동’이라 여겼다. 퇴근 후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했지 오전 일찍 해 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이 교수는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새로 먹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해도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곧 피로감이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이 교수도 처음 2∼3주 동안은 상당히 피곤했다. 피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줄었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지속된다.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교수의 경우 ‘테니스 엘보’라 부르는 팔꿈치 통증이 나타났다. 수술 도구를 꽉 쥐지 못할 정도였다. 진통제 작용을 하는 패치를 붙이거나 통증을 차단해주는 벨트를 팔뚝에 착용했다. 이 벨트를 착용하면 팔꿈치에 힘이 덜 들어가기 때문에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대체로 한 달이 지나면 운동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다만 하체 근력이 약하면 그 이후로도 무릎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교수 또한 무릎 관절 위쪽 근육에 통증이 생겼다. 이는 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통증이 아주 경미하다면 강도를 낮춰 운동을 계속하는 게 좋다. 다만 통증이 심하다면 골절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전거 타기 등을 통해 하체 근육을 키울 것을 이 교수는 권장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이광웅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54)는 2019년까지만 해도 1년에 100~150일을 외국에서 지냈다. 병원의 국제사업본부장을 맡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에서 병원 위탁 운영 책임자로 일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도 찾는 간이식 분야 베스트 닥터다. 카자흐스탄과 조지아, 미얀마 등을 여러 차례 다녔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매년 10건 이상의 수술을 시행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졌다. 해외 프로젝트와 원정 수술이 모두 취소됐다. 쿠웨이트에서는 병원 건물이 완공됐지만 의료인을 채용하고 교육시키는 이 교수팀의 업무가 중단되는 바람에 개원이 무기한 연기됐다.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 교수는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졌다.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짜증이 치밀어오를 때가 종종 있었다. 술을 마셔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도 팀원들에게 고압적으로 변했다. 그런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의 연속. 그러다가 돌파구가 생겼다. 테니스였다.●테니스로 코로나 우울감 날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9월 말에 동료 교수가 테니스를 권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엔 망설였다. 그 동료 교수가 “라켓은 휘두를 줄 아나?” “공이나 제대로 맞히겠어?”라고 농담한 게 이 교수를 자극했다. 은근히 승부욕이 발동했다. 사실 이 교수는 중학교에 다닐 때 테니스 선수를 했다. ‘덕분에 헛스윙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의외로 공이 잘 맞았다. 금세 빠져들었다. 병원 교수와 직원들이 만든 테니스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이 교수는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뒤론 매일 오전 5시 15분에 일어난다. 가방에 운동복을 챙겨 넣고 오전 5시 40분 버스를 탄다. 오전 6시 10분부터 8시까지 거의 2시간 동안 테니스를 한다. 이 생활 패턴은 비가 와 테니스를 할 수 없을 때가 아니라면 완벽하게 지킨다. 눈이 쌓이면 눈을 치우고 얼어붙은 공을 난로에 녹인 후 테니스를 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이 패턴을 지킨다. 이 교수는 상당히 시끄러운 플레이어다. “나이스!” “아싸” 하며 괴성에 가까운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는다. 동료들이 “네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다. 이 교수는 “이렇게 해야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쾌감이 증폭되는데, 조용조용 플레이할 이유가 있나”라며 웃었다. ●육체와 정신 모두에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 테니스에 빠져든 지 6개월이 넘었다.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이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일단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교수는 전에도 수영이나 골프 같은 운동을 가끔 즐겼다. 그 운동과 비교해도 테니스는 확실히 강점이 더 많단다. 이 교수는 “공을 잘 치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 골프는 10~20분마다 그런 순간이 오는데 테니스는 30초에 한 번은 온다. 골프가 재미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신체적 변화도 많았다. 일단 체중이 확 줄었다. 테니스를 시작하기 전 이 교수의 체중은 82~84㎏이었다. 현재는 76~77㎏이란다.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최대 7㎏을 감량한 셈이다. 허벅지에 단단한 근육도 생겼다. 뱃살은 쏙 빠졌고 대신 희미하게나마 임금 왕(王)자가 생겨났다. 이 교수는 “피부까지 좋아졌다. 주변에서 젊어졌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이 교수는 “더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 개선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운동하기 전에는 종일 피곤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가 맑아졌다. 이런 심적 상태는 수술에 임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간이식 수술을 많이 한다. 수술 시간이 3~4시간이나 걸리며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수술 도중에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수술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최근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체력이 좋아진 덕에 긴 수술이 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일 생각이 들지 않더란다. 이 교수는 “팀원들이 앞으로도 테니스를 오래 하라고 농담할 정도”라고 말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건강관리도 열심히 테니스를 시작한 초기에는 공을 받아넘기기에 바빴다.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한 게 이유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무나 약해진 체력이었다. 운동을 더 잘하고 싶었기에 체력을 강화하는 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나 별도 시간을 내 헬스장에 갈 시간은 없었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뒤져 저렴한 실내용 자전거를 샀다. 3개월 이상 자전거를 탔더니 무릎도 강해졌다. 처음 테니스를 시작할 때 나타났던 무릎 통증도 사라졌다. 요새 이 교수는 테니스 예찬론자가 됐다. 이 교수는 미국의 의료 전문 비영리단체인 텍사스메디컬협회(TMA)의 지난해 발표를 인용하며 “테니스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운동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TMA는 총 37개의 활동을 감염 위험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눴다. 감염도가 가장 낮은 활동이 1등급, 가장 높은 활동이 9등급이다. 이에 따르면 테니스는 위험도가 낮은 2등급으로, 모든 스포츠 종목 중에 가장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당에서 음식을 사 갖고 나오는 활동,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활동이 2등급으로 분류됐다.통증 경미하다면 강도 낮춰서 강하다면 근력 키워야운동 주의사항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테니스 또한 ‘시작’이 가장 어렵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도 그토록 많이 병원 테니스장 주변을 다녔지만 ‘테니스는 나와 무관한 운동’이라 여겼다. 퇴근 후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했지 오전 일찍 해 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이 교수는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새로 먹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해도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곧 피로감이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이 교수도 처음 2~3주 동안은 상당히 피곤했다. 피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줄었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지속된다.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교수의 경우 ‘테니스 엘보’라 부르는 팔꿈치 통증이 나타났다. 수술 도구를 꽉 쥐지 못할 정도였다. 진통 작용을 하는 페치를 붙이거나 통증을 차단해주는 벨트를 팔뚝에 착용했다. 이 벨트를 착용하면 팔꿈치에 힘이 덜 들어가기 때문에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대체로 한 달이 지나면 운동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다만 하체 근력이 약하면 그 이후로도 무릎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교수 또한 무릎 관절 위쪽 근육에 통증이 생겼다. 이는 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통증이 아주 경미하다면 강도를 낮춰 운동을 계속하는 게 좋다. 다만 통증이 심하다면 골절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전거 타기 등을 통해 하체 근육을 키울 것을 이 교수는 권장했다.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베스트 닥터라 불리는 의사들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건강법을 만들어나가는 의사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2019년에 이어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시즌2를 시작합니다.》 매일 저녁에 와인 세 잔은 반드시 마신다. 지극한 와인 사랑이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60) 이야기다. 와인 세 잔이면 3분의 1병 혹은 절반 정도 양이다. 이 교수는 이를 “6년째 지속하고 있는 건강 습관”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백혈병 소아암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다. 현재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제대혈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원래 소주 마니아였다. 매주 3, 4회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다. 그때도 와인을 마시기는 했다. 단지 와인은 수많은 술 중 하나였을 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시는 빈도도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랬던 음주 습관이 바뀌었다. 지금은 소주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신다. 소주를 버리고 와인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이 교수는 “오래 건강하게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와인 덕분에 건강 체질이 됐다”고 했다. 이른바 ‘와인 건강법’이다. ○ 와인을 마신 후 몸이 달라졌다 폭음하던 시절 이 교수에게는 알코올성 간염 증세가 있었다. 와인을 마신 후로 폭음이 줄었다. 가장 먼저 이 증세가 사라졌다. 나아가 체중 조절에도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폭음을 하면 다음 날 ‘해장’을 위해 폭식했다. 2, 3회 술을 마시면 체중이 2∼3kg 불었다. 식사량을 줄여 체중을 줄여봤자 술을 마시면 다시 늘었다. 지금은 지겨운 체중 증감의 무한 반복에서 해방됐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6년 전부터 체중이 500g 이상 변화한 적이 없다. 완벽하게 체중을 조절하는 셈이다. 운동량을 늘린 걸까. 그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매주 1, 2회 동네 공원에서 4km 정도 걷는다. 출퇴근할 때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와인을 마신 후 식습관이 변한 게 체중 조절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와인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함께 먹는 음식도 담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덜 맵고 덜 짠 식단으로 바꿨다. 싱거운 김치찌개를 먹고 고추장을 넣지 않는 봄나물 비빔밥을 먹는다. 특히 멀건 봄나물 비빔밥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단다. 미각도 살아났다. 예전에는 음식이 나오면 그냥 먹기 바빴는데, 요즘은 향을 먼저 느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이 교수는 “아내와 함께 음식 평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고 했다. ○와인의 건강학 프랑스인들이 육류를 많이 먹는데도 다른 서양인보다 심장병에 덜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이를 ‘프렌치 패러독스’라 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레드 와인에 폴리페놀이나 레스베라트롤 같은 항산화 물질이 다량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물질들은 항암 효과를 내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당뇨병 환자의 경우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질단백질)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와인에 들어있는 이 성분들이 실제 인체에 작용해 이런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의학적 데이터는 부족한 편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과학적인 연구가 더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으로 체중을 관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 이 교수는 와인이 비만을 막아준다는 해외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이를테면 ‘엘라그산’이라는 식물성 페놀이 지방간과 비만을 막아주는데,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에는 이와 유사한 ‘엘라그타닌’이 존재한다. 오크 숙성이 잘된 와인을 마시면 지방간과 비만 위험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별도로 미국 퍼듀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레드 와인에 비만을 억제하는 물질인 피세아타놀이 들어있다. 이 물질은 지방세포가 생기거나 성장하는 것을 억제한다.○와인 전문 강사 자격증 따다 소주 마니아가 와인 마니아로 바뀐 계기는 6년 전이다. 사촌동생이 와인 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술을 좋아하니 재미로 참여했다. 처음엔 와인의 다양한 맛에 끌렸다. 때론 시큼하고 때론 달달했다. 와인마다 풍기는 향도 달랐다. 늘 같은 맛에 화학 물질 냄새가 나는 소주와 달랐다. 매번 다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와인에 호감이 생기자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당시 이 교수가 접한 프로그램은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가 제공하는 것이었다. WSET는 와인과 관련된 교육 및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글로벌 기관으로 세계 70여 개국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1∼3레벨로 나뉜다. 와인에 빠진 후 이 교수는 3레벨에 도전했다. 필기 시험을 준비하면서 와인 관련 정보를 빼곡하게 기록했다. 분량이 150쪽을 넘었다. 이 교수는 의대생 때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외웠다. 필기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하지만 향을 맡고 와인을 완벽히 구별해 내야 하는 실기 시험은 녹록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88종의 와인을 작은 병에 담아 향을 구별해내는 연습을 하는 ‘키트’를 샀다. 향을 맡고 또 맡았다. 지난해 1월, 마침내 세 번째 실기 시험에 합격하면서 레벨3 강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의학과 관련이 없는 이 와인 강사 프로그램에 왜 몇 년 동안 매달린 것일까. “알고 마시면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과 즐겁게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더 건강해지죠. 은퇴한 후에는 와인 강의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렵니다.”남은 병 세워서 냉장 보관하고 꺼낼땐 30분후 마셔야와인을 건강하게 마시려면건강하게 와인을 마시는 법은 없을까. 와인 초보자는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부터 고민에 빠진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서 파는 2만 원 내외 와인이라면 좋다”고 말했다. 이런 와인의 경우 병을 따면 바로 마셔도 된다. 와인에 따라 코르크 마개를 따고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 마트에서 파는 와인은 그런 절차를 안 거쳐도 된다. 잔에 와인을 따른 후에는 먼저 향을 맡을 것을 이 교수는 권했다. 그 다음에 잔을 슬슬 돌리며 와인과 공기가 섞이게 한다. 한 모금 마셔보고 좀 떨떠름하다 싶으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와인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게 적당할까. 과음은 당연히 좋지 않다. 이 교수는 혼자 마실 경우 3분의 1병에서 절반까지가 좋다고 했다. 먹다 남긴 와인을 보관하는 요령도 알아둬야 한다. 무엇보다 병 안에 들어있는 산소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와인과 산소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코르크 마개를 거꾸로 집어넣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이때 병은 반드시 세워야 한다. 병을 눕히면 와인과 공기가 접하는 면적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관한 와인은 3, 4일 후에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후로는 신맛이 강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식초와 같은 맛이 난다. 보관은 차게 하지만 다시 꺼내 마실 때는 실온과 비슷한 온도로 올려줘야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13∼15도, 화이트와인은 8∼10도일 때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따라서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냈다면 30분 후에 마시는 게 좋다. 와인을 마신 후 생기는 두통은 이유가 다양하다. 와인 속에 들어있는 방부제가 원인일 수 있지만 와인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나 히스타민 성분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레드 와인의 경우 타닌 성분이 혈관을 확장시켜 두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면서 물을 자주 마셔주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베스트 닥터라 불리는 의사들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건강법을 만들어나가는 의사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2019년에 이어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시즌2를 시작합니다.》 매일 저녁에 와인 세 잔은 반드시 마신다. 지극한 와인 사랑이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60) 이야기다. 와인 세 잔이면 3분의 1병 혹은 절반 정도 양이다. 이 교수는 이를 “6년째 지속하고 있는 건강 습관”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백혈병 소아암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다. 현재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제대혈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원래 소주 마니아였다. 매주 3, 4회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다. 그때도 와인을 마시기는 했다. 단지 와인은 수많은 술 중 하나였을 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시는 빈도도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랬던 음주 습관이 바뀌었다. 지금은 소주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신다. 소주를 버리고 와인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이 교수는 “오래 건강하게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와인 덕분에 건강 체질이 됐다”고 했다. 이른바 ‘와인 건강법’이다. ● 와인을 마신 후 몸이 달라졌다폭음하던 시절 이 교수에게는 알코올성 간염 증세가 있었다. 와인을 마신 후로 폭음이 줄었다. 가장 먼저 이 증세가 사라졌다. 나아가 체중 조절에도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폭음을 하면 다음 날 ‘해장’을 위해 폭식했다. 2, 3회 술을 마시면 체중이 2~3㎏ 불었다. 식사량을 줄여 체중을 줄여봤자 술을 마시면 다시 늘었다. 지금은 지겨운 체중 증감의 무한 반복에서 해방됐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6년 전부터 체중이 500g 이상 변화한 적이 없다. 완벽하게 체중을 조절하는 셈이다. 운동량을 늘린 걸까. 그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매주 1, 2회 동네 공원에서 4㎞ 정도 걷는다. 출퇴근할 때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와인을 마신 후 식습관이 변한 게 체중 조절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와인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함께 먹는 음식도 담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덜 맵고 덜 짠 식단으로 바꿨다. 싱거운 김치찌개를 먹고 고추장을 넣지 않는 봄나물 비빔밥을 먹는다. 특히 멀건 봄나물 비빔밥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단다. 미각도 살아났다. 예전에는 음식이 나오면 그냥 먹기 바빴는데, 요즘은 향을 먼저 느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이 교수는 “아내와 함께 음식 평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고 했다. ● 와인의 건강학프랑스인들이 육류를 많이 먹는데도 다른 서양인보다 심장병에 덜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이를 ‘프렌치 패러독스’라 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레드 와인에 폴리페놀이나 레스베라트롤 같은 항산화 물질이 다량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물질들은 항암 효과를 내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당뇨병 환자의 경우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질단백질)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와인에 들어있는 이 성분들이 실제 인체에 작용해 이런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의학적 데이터는 부족한 편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과학적인 연구가 더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으로 체중을 관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 이 교수는 와인이 비만을 막아준다는 해외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이를테면 ‘엘라그산’이라는 식물성 페놀이 지방간과 비만을 막아주는데,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에는 이와 유사한 ‘엘라그타닌’이 존재한다. 오크 숙성이 잘된 와인을 마시면 지방간과 비만 위험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별도로 미국 퍼듀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레드 와인에 비만을 억제하는 물질인 피세아타놀이 들어있다. 이 물질은 지방세포가 생기거나 성장하는 것을 억제한다.● 와인 전문 강사 자격증 따다소주 마니아가 와인 마니아로 바뀐 계기는 6년 전이다. 사촌동생이 와인 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술을 좋아하니 재미로 참여했다. 처음엔 와인의 다양한 맛에 끌렸다. 때론 시큼하고 때론 달달했다. 와인마다 풍기는 향도 달랐다. 늘 같은 맛에 화학 물질 냄새가 나는 소주와 달랐다. 매번 다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와인에 호감이 생기자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당시 이 교수가 접한 프로그램은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가 제공하는 것이었다. WSET는 와인과 관련된 교육 및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글로벌 기관으로 세계 70여 개국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1~3레벨로 나뉜다. 와인에 빠진 후 이 교수는 3레벨에 도전했다.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와인 관련 정보를 빼곡하게 기록했다. 분량이 150쪽을 넘었다. 이 교수는 의대생 때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외웠다. 필기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하지만 향을 맡고 와인을 완벽히 구별해 내야 하는 실기 시험은 녹록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88종의 와인을 작은 병에 담아 향을 구별해내는 연습을 하는 ‘키트’를 샀다. 향을 맡고 또 맡았다. 지난해 1월, 마침내 세 번째 실기 시험에 합격하면서 레벨3 강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의학과 관련이 없는 이 와인 강사 프로그램에 왜 몇 년 동안 매달린 것일까. “알고 마시면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과 즐겁게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더 건강해지죠. 은퇴한 후에는 와인 강의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렵니다.”왕초보를 위한 ‘건강하게 와인 잘 마시는 법’건강하게 와인을 마시는 법은 없을까. 와인 초보자는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부터 고민에 빠진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서 파는 2만 원 내외 와인이라면 좋다”고 말했다. 이런 와인의 경우 병을 따면 바로 마셔도 된다. 와인에 따라 코르크 마개를 따고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 마트에서 파는 와인은 그런 절차를 안 거쳐도 된다. 잔에 와인을 따른 후에는 먼저 향을 맡을 것을 이 교수는 권했다. 그 다음에 잔을 슬슬 돌리며 와인과 공기가 섞이게 한다. 한 모금 마셔보고 좀 떨떠름하다 싶으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와인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게 적당할까. 과음은 당연히 좋지 않다. 이 교수는 혼자 마실 경우 3분의 1병에서 절반까지가 좋다고 했다. 먹다 남긴 와인을 보관하는 요령도 알아둬야 한다. 무엇보다 병 안에 들어있는 산소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와인과 산소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코르크 마개를 거꾸로 집어넣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이때 병은 반드시 세워야 한다. 병을 눕히면 와인과 공기가 접하는 면적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관한 와인은 3, 4일 후에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후로는 신맛이 강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식초와 같은 맛이 난다. 보관은 차게 하지만 다시 꺼내 마실 때는 실온과 비슷한 온도로 올려줘야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13~15도, 화이트와인은 8~10도일 때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따라서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냈다면 30분 후에 마시는 게 좋다. 와인을 마신 후 생기는 두통은 이유가 다양하다. 와인 속에 들어있는 방부제가 원인일 수 있지만 와인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나 히스타민 성분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레드 와인의 경우 타닌 성분이 혈관을 확장시켜 두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면서 물을 자주 마셔주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서울의 대형병원에만 베스트닥터가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 또는 나만 아는 실력이 대학병원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의원·병원이 적지 않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연구 능력을 갖춰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이런 의사들을 찾아내 ‘우리 동네 베스트 닥터’로 소개합니다.》 경기 광주시에 있는 SRC병원은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모든 질환을 다루지만 특히 재활치료로 유명하다. 환자들 커뮤니티에서도 이 병원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환자들이 각지에서 이 병원을 찾아온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 광주 출신 환자는 21%에 그친다. 경기도 전체로 넓힐 경우 64% 정도다. 나머지 36%는 전국 곳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이다. 올해 1월 이 병원에 새 원장이 취임했다. 김은국 병원장(49)이다. 다소 뜻밖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김 원장은 스포츠 의학으로 꽤 유명하다.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으로 근무하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건강관리를 오랫동안 책임졌다. SRC병원도 재활치료로 유명하다지만 스포츠 의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 병원에 오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한 병원에서만 계속 근무했더라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돈은 많이 벌었을 거예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하지 못했고 사는 재미도 없었겠죠.”○잘 나가는 병원 접고 체육회 의무실장으로 김 원장은 대학에서 재활의학과를 전공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꽤 접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선수들을 치료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다. 김 원장은 자신이 치료한 선수들이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TV로 지켜봤다. 김 원장은 “팔을 펴지 못했다가 내 치료를 받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전공의를 끝낸 뒤 김 원장은 의원을 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의 의원을 드나들었다. 김 원장이 병을 잘 고친다는 입소문도 퍼져 나갔다. 환자들이 넘쳐났다. 병원들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급여비’ 규모를 보니 전국의 재활의학과 의원을 통틀어 3위였다. 당시 김 원장은 상당히 힘들었다고 했다. 이러다가는 아무 발전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대한체육회가 의무실장을 모집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잘나가는 병원을 접고 2003년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이 돼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스포츠 의학에 발을 들여놓은 시점이었다. 그해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다. 김 원장은 대회 기간 내내 의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선수 진료는 물론이고 도핑 검사 같은 행정업무도 처리했다. 오전 6시에 시작된 하루 일과는 자정을 넘겨 끝났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김 원장은 14회에 걸쳐 국제대회에 선수단 주치의 자격으로 참가했다. 굵직굵직한 대회만 추리자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등이 있다.○국제대회 참가 중에 美 의사면허 합격 국제대회가 열리면 각국을 대표하는 의료팀이 종종 회의를 한다. 김 원장은 그들을 만나다가 문득 자신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알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잘한다고들 하지만 미국에서도 통할지 궁금했다. 미국의 스포츠 의학도 배우고 싶었다. 결국 미국 의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 의사 면허시험을 신청했고, 1차와 2차까지 모두 통과했다. 문제는 최종 3차 시험인데, 미국에 건너가 치러야 했다. 시험을 치르고 국내로 돌아온 김 원장은 2005년 터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주치의로 참가했다. 미국 의사면허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대회 현장에서 받았다. 이후 김 원장은 미국 의사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떠났다. 다양한 형태의 환자 진료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SRC병원(당시 삼육재활병원)으로 일터를 옮겼다. SRC병원의 재활 환자 수가 대학병원보다 최대 10배가량 많으니 아무래도 더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김 원장은 2008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리스트대 병원에서 근무했다. 현지 의사와 똑같이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당직 근무도 섰다. 물론 현지 의사와 똑같이 월급을 받았다. 김 원장은 “미국은 기초과학이 발달해 있어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튼튼하니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원칙적으로 풀어 나가는 게 인상에 많이 남았단다. ○국제빙상연맹 의료자문관 선정 영예 당초 미국 대학병원에 갈 때는 2년 근무가 계약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 원장은 1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대한체육회가 곧 국제대회가 열리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던 것이다. 미국 현지 대학병원은 김 원장의 귀국을 만류했다. 영주권 발급을 도와줄 뿐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변호사까지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급여를 30% 인상하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김 원장은 “고민이 됐지만 개인적으로도 부모님과 가족이 있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귀국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물론 그동안 미국에서 배운 것을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욕심도 강했다. 김 원장은 2010년 1월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으로 복귀한 후 밴쿠버 올림픽에 주치의로 참가했다. 그런데 느낌이 과거와 좀 달라졌다. 선수들의 부상만 걱정할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스포츠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했다. 2012년 김 원장은 한국체육대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동시에 스포츠클리닉 소장을 맡았다. 이후 김 원장은 한국체육대에 9년 동안 근무했다. 김 원장은 이 9년의 시간이 상당히 소중하다고 했다. 환자 진료에 얽매이지 않아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여러 학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2015년에는 국제빙상연맹으로부터 ‘메디컬 어드바이저(의료 고문)’로 임명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메디컬 어드바이저는 국제대회가 열리면 약물, 선수 안전 등 의학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을 한다. 세계에서 7명만 선택되며 임기는 종신제다. 스포츠 의학계에서는 최고의 명예직으로 여긴다. ○병원 인프라 활용한 장기적 재활치료 계획 2020년 초, 김 원장은 비보(悲報)를 접했다. 작가였던 누나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우울함을 떨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한국체육대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9년. 마침 약간의 ‘매너리즘’도 생겼던 차였다. 운동선수가 아닌, 재활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환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김 원장은 SCR병원을 택했다. 이유가 있다. 이 병원은 재활치료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암이나 뇌출혈 후유증과 같은 만성질환의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환자가 온다. 환자 수만 놓고 보면 웬만한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둘째,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인프라도 잘돼 있다. 김 원장은 이 인프라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스포츠 의학을 재활치료에 접목할 계획이다. 전문적인 운동선수 위주의 스포츠 의학을 학생이나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면 SRC병원은 만성질환의 전문 재활병원을 넘어 모든 종류의 재활이 가능한 병원으로 설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김 원장에게 ‘스포츠 재활’이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관절이나 근육에 손상이 갈 경우 다른 의사들은 쉬라고 한다. 김 원장에 따르면 스포츠 재활의 치료 방향은 좀 다르다. 김 원장은 “아프니까 무조건 쉬는 게 아니라 움직이면서도 아프지 않도록 치료하는 게 제대로 된 스포츠 재활 치료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뇌출혈 후유증이 있을 경우에도 스포츠 의학을 접목해 재활치료를 하면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그게 스포츠 재활의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대 남성 A 씨는 머리를 감은 뒤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마다 고통이 심했다. 팔을 올리면 저릿저릿한 증세가 더 심해진 것이다. 40대 여성 B 씨도 팔 저림과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편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의사에게 차라리 팔을 잘라 달라고 하소연했을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유학하는 C 군은 양쪽 팔이 모두 저렸다.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학업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귀국해 병원을 찾았다. 80세 남성 D 씨도 비슷한 증세로 여러 병원을 찾았고,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했고, 손가락 근육이 다 말라서 물건을 잡을 수도 없게 됐다. 네 사람은 대부분 정확한 병명을 몰라 고통받았다. 김지형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44)를 찾아간 후에야 병명을 알았다. 팔과 손목, 손 부위를 전문으로 다루는 김 교수는 이 분야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의사다. 김 교수의 진단은 흉곽출구증후군. 모두 김 교수에게 수술을 받은 뒤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 진단 어려운 흉곽출구증후군 분야 명의 흉곽출구는 가슴 부위에서 팔 쪽으로 나가는 부위를 가리킨다. 흉곽출구증후군은 바로 이 부위의 신경이나 혈관이 눌리면서 발생한다. 팔에서부터 손까지 저리거나 아픈 게 흔한 증세다. 때로는 팔과 손이 붓거나 피부색까지 변한다. 최근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며 20∼4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3배 정도 많다. 이 병은 정확한 진단이 무척 어렵다. 손과 팔이 저리거나 힘이 없는 증세가 나타나는 비슷한 질병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흉곽출구증후군의 경우 신경이나 혈관이 특정 자세에서만 눌리기 때문에 근전도 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타날 때도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동네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잖이 나온다. 이 경우 애먼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원칙이지만 스스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증세만 보고 유사한 질병을 어떻게 구별해 낼까. 손목과 손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똑같은 증세가 팔꿈치까지 나타난다면 일단 손목터널증후군은 아니다. 이때는 목 디스크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목 디스크에 따른 증세라면 통증이나 저림 증세는 엄지손가락에서 팔 바깥쪽으로 나타난다. 흉곽출구증후군이라면 새끼손가락에서 팔 안쪽으로 증세가 나타난다. 팔을 앞으로 쭉 뻗은 뒤 위로 올릴 때 아프면 흉곽출구증후군, 머리 뒤로 팔짱을 낄 때 좀 편한 느낌이 든다면 목 디스크일 가능성이 높다. ○ 흉곽출구증후군 진단 알고리즘 개발 현재까지도 흉곽출구증후군은 병명 진단의 정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2012∼2018년 이 병을 치료한 90명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 ‘흉곽출구증후군 진단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당장 마비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존 치료’부터 시행한다. 3개월 동안 약물 복용과 자세 교정, 물리 치료 등을 하는 것이다. 환자의 80% 정도는 이 보존 치료만으로도 증세가 좋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계에서는 환자 스스로가 증세를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손을 어깨 위로 뻗어 올리는 동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팔을 자주 올리면 신경이 늘어나 손상될 우려가 있다. 무거운 짐을 들거나 배낭을 메는 것도 피해야 한다. 어깨가 눌리면 가슴 내부의 공간이 줄어들고, 신경과 혈관이 더 눌리기 때문이다. 어깨 스트레칭은 근육이 뭉쳤을 때 도움이 되지만 신경이나 혈관이 눌린 흉곽출구증후군의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흉곽출구 부위를 잡아당기는 방식의 물리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보존 치료를 해도 증세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수술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마비와 저림, 통증이 더 심해질 경우는 수술 외에 방법이 별로 없다. 이 상태에서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손가락의 작은 근육까지 손상돼 젓가락질도 힘들어지며 통증도 심해진다. 김 교수의 경우 흉곽출구증후군 환자의 75% 정도는 보존 치료로 끝냈지만 25%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할 때에는 쇄골 부위를 절개한 뒤 신경이나 혈관을 누르고 있는 근육의 일부를 잘라낸다. 이를 통해 신경과 혈관의 공간을 확보한다. 정교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김 교수는 3.5배 확대경을 쓰고 수술한다. ○선천성 손가락 기형 치료에도 관심 김 교수 환자의 35%가 선천성 손가락 기형이다. 손가락이 하나 더 많은 다지증, 손가락이 붙은 합지증, 그 밖에 엄지손가락이 덜 만들어지거나 특정 손가락이 크거나 굽은 아이들이다. 김 교수는 “이런 아기가 태어나면 거의 모든 엄마들이 눈물부터 보이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첫돌 이전에 수술하며 3, 4년이 지나면 어느 손가락이 수술한 부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뀐다고 한다. 다만 아기 손이 매우 작고 아직 해부학적 구조가 정상이 아니라서 수술 난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뼈 수술이 그렇다. 직경이 3mm 정도인 아기 손가락뼈에 0.7mm의 핀을 박아야 하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에 또 하나의 손가락이 달린 다지증의 경우 기형적인 손가락만 제거할지, 엄지손가락 뼈 수술까지 해야 할지는 논쟁거리다. 김 교수는 2011∼2017년 다지증 수술을 한 78명의 환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엄지손가락이 10.8도 이상 기울었을 때는 뼈 수술을 진행해야 정상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발표돼 다지증의 뼈 수술 기준으로 종종 활용되고 있다.손가락-손목운동 요령간혹 손가락이 뻣뻣할 때가 있다. 심하면 손가락을 구부릴 때 통증이 나타나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딸칵’ 소리가 난다. 이를 ‘방아쇠손가락’이라고 하는데, 방치하면 심한 통증과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폐경 이후 여성이나 노인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증세다. 김지형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손가락 신전 및 굴곡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손가락을 펴고 굽히면서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는 운동이다. 우선 준비 단계에서 할 일이 있다. 따뜻한 물에 10∼20분 정도 두 손을 담그는 온찜질이다.[1] 손가락을 펴는 신전 운동 요령이다. 운동할 손가락을 곧게 편다. 다른 손 검지로는 그 손가락 등 쪽의 가운데 관절을 누르고, 엄지로는 그 손가락의 안쪽 끝을 민다. 이렇게 하면 손가락이 활 모양이 되면서 근육이 펴진다. 돌아가면서 1분씩 손가락을 풀어준다.[2] 손가락을 굽혀주는 굴곡 운동은 다음과 같이 한다. 굴곡 운동을 할 손가락의 등 쪽 아랫부분을 다른 손 검지로 깊숙하게 민다. 이어 엄지로 손가락의 등 쪽 윗부분을 꾹 누른다. 이때 손가락 끝을 눌러서는 안 된다. 엉뚱한 부위의 근육이 늘어나거나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 또한 손가락마다 1분씩 한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한다면 또 다른 운동이 필요하다. 바로 손목 스트레칭. 이 스트레칭은 팔꿈치 통증에도 효과가 있다.[3] 손목 스트레칭 요령은 다음과 같다. 우선 스트레칭할 팔을 앞으로 뻗는다. 팔에 힘을 뺀 상태에서 손목을 아래로 늘어뜨린다. 다른 손으로 그 손목을 감싼 뒤 힘을 주면서 잡아당긴다. 1회 동작에 10초 정도 유지한다. 10회 이상 연속적으로 한다. 하루에도 수시로 쉬는 시간마다 이 동작을 하는 게 좋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사람의 뇌 아래에서부터 쇄골 위쪽까지를 보통 두경부(頭頸部)라고 한다. 말을 하는 발성 기관(후두), 맛을 느끼며 음식 섭취와 관련된 일을 하는 기관(구강, 구인두, 침샘), 음식물을 삼키는 기관(하인두), 냄새를 맡는 기관(비강, 비인두)이 두경부에 해당한다. 이 기관들에 생기는 암이 두경부암이다. 두경부암은 한국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10대 암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사실 만만치 않은 암이다. 발견 시기가 늦어지면 생존율은 확 낮아진다. 물론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도 높고, 치료 효과도 좋다. 두경부암 분야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44)를 만났다. 이 교수 환자의 60%가 두경부암이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구인두암 증가 추세 두경부암은 발생 부위가 다양해 종류가 꽤 많다. 혓바닥에 생기는 구강암, 목젖에서 목구멍 사이의 부위에 생기는 구인두암, 목구멍 안쪽 발성과 관련이 있는 곳에 생기는 후두암이 가장 많다. 이 세 종류가 전체 두경부암의 70∼80%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최근 환자가 늘고 있는 암이 구인두암이다. 특히 젊은 연령대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원래 이 암은 술과 담배가 큰 원인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바이러스가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구인두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바로 그 바이러스다. 암의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차단하면 발병률을 낮출 수도 있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려는 여성들이 주로 접종한다. 남자들도 접종하면 구인두암을 예방할 수 있다. 두경부암 중에서 가장 발견이 늦고 치료도 어려운 게 하인두암이다.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암이 발견되면 생존율은 30∼40%대로 낮아진다. 일반적으로 암이 임파선 전이가 일어나면 3기로 진단한다. 대체로 4기 이후에 멀리 떨어진 장기로 원격 전이된다. 이 경우 생존율은 30%대로 떨어진다. 치료 방법은 대체로 다른 암과 비슷하다. 초기의 경우 수술을 한다. 구인두암의 경우에는 수술 후에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한다. 후두암은 목소리와 관련이 있어 목소리 보전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수술을 한다. ○ 면역항암 기술 및 유전체 연구에 집중 과거에는 암을 직접 공격해 파괴하는 약을 주로 썼다. 이런 약은 내성이 생길 수 있고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면역시스템까지 망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면역 체계를 개선해 암과 싸우도록 하는 면역항암제가 주목받고 있다. 암세포와 열심히 싸우는 면역세포는 T세포다. 일단 암을 이기려면 T세포가 활발해야 한다. 다만 T세포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면역 밸런스가 깨져 인체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런 원리는 흑색종, 유방암, 폐암 등 일부 암에서는 규명됐다. 이 교수는 2005년 구인두암 환자 70명을 대상으로 두경부암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또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엔 암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암 치료가 효과를 보려면 T세포 수를 늘리거나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두경부암에 쓰이는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20% 정도에서만 효과를 본다. 나머지 80% 환자는 약물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교수는 “암세포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니 T세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암 세포의 존재를 T세포가 알아차리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동물 실험 단계로 지금까지는 결과가 좋은 편이다. 이 교수는 “암이 원격 전이된 환자에게 이 방법을 쓰면 치료 효과가 2, 3배 높아지고 생존 기간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교수는 침샘 암 중에서 특히 생존율이 낮은 몇몇 암과 관련해 암 유전체 분석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환자의 세포를 떼어내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밝혀내고, 그에 맞춰 최적의 약을 찾는 방법이다. 1차 연구는 상반기에 끝난다.○태아-소아의 ‘숨길’ 치료 탁월 이 교수는 7년 전 일을 잊을 수 없다. 기도(氣道)가 다 생기지 않은 태아의 수술이었다. 탯줄을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됐다. 그 상태에서 태아의 머리를 꺼낸 뒤 목에 구멍을 뚫어 숨길을 틔웠다. 이어 튜브를 삽입해 ‘인공 기도’ 역할을 하도록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기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두경부암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아기들의 기도 기형이나 결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7년 전 이 수술이 첫 수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적으로도 꽤 드문 수술이었다. 요즘엔 매달 한 명씩은 이런 수술을 한다. 1년에 한두 번은 아예 기도가 없거나 기형이 너무 심한 경우다. 이 교수 환자의 20%가 기도 기형이나 결손이 있는 아이들이다. 이런 식의 기형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까. 이 교수는 추가 수술을 통해 인공 기도를 떼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4세 이후에는 기도가 충분히 두꺼워지고 탄력도 생기기 때문에 기도의 일부를 당겨서 결손 부위를 메우는 수술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치료가 힘들더라도 서로 믿고 적극 임하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일반 병실에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기도 이상으로 호흡 곤란 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입속 한 부위 2주이상 통증땐 구강암 의심을”두경부암 주요 증세와 예방책입, 코, 목 어디에 암이 생기느냐에 따라 증세가 다르게 나타난다. 증세가 확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미 암이 꽤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미세한 증세를 초기에 찾아내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강암에 걸렸다면 입안에 통증이 나타난다.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구내염에 걸렸을 때도 통증이 나타나지만 구분법이 있다. 이 교수는 “구내염은 동일한 부위에서 지속적으로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한 부위에서 2주 이상 통증이 계속된다면 구강암 의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음주와 흡연을 하며 50대 이후라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후두암은 발성 기관인 성대 주변에 생기기 때문에 가장 먼저 목소리부터 변한다. 특히 쉰 목소리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삼키기 힘들거나 숨 쉬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후두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하인두에 암이 생기면 일단 목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미세하거나 혹은 거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혹이 도드라지는 느낌이 든다면 이미 3기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가는 게 좋다. 물론 목에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해서 모두 암은 아니다. 가령 목 안쪽이 바짝 마른 느낌이 들고, 술과 담배를 즐긴 후나 카페인이 든 차나 커피를 마신 후 이런 증세가 심하다면 위산 역류일 가능성이 있다. 식도를 거슬러 올라온 위산이 후두와 인두를 공격한 것이다. 이럴 때는 위산억제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면 증세가 개선된다. 두경부암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다. 후두 내시경 검사를 하면 입안부터 후두와 인두까지를 모두 볼 수 있다. 내시경을 코로 삽입할 경우에는 비강암부터 비인두암, 후두암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다만 검사 목적으로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질병 치료 목적일 경우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2013년 말 50대 초반의 여성 A 씨가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47)를 찾아왔다. 갑상샘(갑상선)에 양성 종양이 있는 환자였다. 피부가 울퉁불퉁해지거나 색깔이 달라지는 ‘켈로이드’ 체질인 A 씨는 수술 후 흉터가 크게 남을까 봐 걱정이었다. 김 교수는 흉터가 생기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로봇을 입안으로 집어넣어 수술하는 방식으로 김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병원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 승인 절차가 끝난 상황이어서 때마침 수술에 응할 환자를 찾고 있었다. 》 A 씨는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걱정했던 흉터는 생기지 않았고 피부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이 수술법은 ‘경구로봇갑상샘 수술’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수술을 배우겠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김 교수를 찾는 의사들이 잇따랐다.○ 갑상샘 로봇 수술의 신기원 열어 갑상샘암은 ‘순한 암’이라 할 만큼 다른 암보다는 덜 치명적이다. 그래도 갑상샘을 들어내는 수술은 괴롭다. 예전에는 목 아래쪽 피부를 절개해 흉터가 크게 남았다. 로봇 수술이 도입된 후로는 겨드랑이나 가슴에 구멍을 내 수술한다. 이 경우에도 가슴이나 겨드랑이에 흉터가 남아 소매 없는 옷이나 수영복을 입으면 그대로 노출된다. 김 교수가 개발한 경구로봇갑상샘 수술은 말 그대로 경구(經口), 즉 입을 통해 로봇 기구가 들어가는 방식이다. 입 안쪽에 로봇 팔이 들어갈 5mm 크기의 구멍 2개와 카메라가 들어갈 20mm 크기 구멍 1개를 뚫는다. 이 구멍들은 수술 한 달 후에는 사라진다. 물론 외부 흉터는 없다. 김 교수는 “기존 수술보다 통증이 줄어들며 후두 신경 보존에도 효과가 있어 수술 후 음성 변화가 거의 생기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80%를 이 방식으로 수술한다. 나머지 20%는 로봇 수술이 어려운 사례인데, 직접 절개하는 수술을 한다. 이를테면 암세포가 턱 밑의 림프샘(림프절)까지 전이됐을 경우 로봇 팔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 어렵다. 게다가 주변 조직까지 암으로 악화할 수 있어 직접 절개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최초의 미국-한국 동시 의대 교수 기록 김 교수가 개발한 로봇 수술법은 해외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 인도, 터키,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김 교수를 초청하거나 의료진이 한국에 건너와 수술법을 배웠다. 미국에서도 김 교수를 찾는 대학이 많다. 2015년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에서 ‘연구 교수’로 1년간 머물기도 했다. 배우는 신분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격으로 유학한 것이다. 이후 미국에 김 교수의 수술법이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김 교수는 미국 의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미국에서 공부해 시험을 보고 의사 면허를 딴 게 아니다. 일부 주(州)에는 외국 국적이지만 뛰어난 의사들에 한해 예외적으로 면허를 주는 제도가 있다. 그중 하나가 루이지애나주인데, 그곳의 툴레인대 의대가 김 교수에게 의사 면허를 발급했다. 툴레인대 의대는 2명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2019년 10월 현지 의대 교수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김 교수의 로봇 수술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미국 환자들을 자주 한국에 데리고 올 수 없으니 김 교수를 현지로 초청해 수술도 하고 기술도 배우자는 취지였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의대 교수로 동시에 활동한 인물은 김 교수가 처음이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 현지 수술의 길이 막혔다. 한 번 왕복에 최소한 한 달 이상 격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목소리 살리는 신경 모니터링 첫 도입 요즘에는 ‘로봇 수술의 대가(大家)’로 통하지만 김 교수는 원래 ‘목소리를 살리는 의사’로 유명했다. 수술 도중 신경 손상을 방지함으로써 목소리를 보존하기 때문이었다. 갑상샘암 수술을 하다 보면 간혹 후두신경이 손상된다. 성대 기능을 담당하는 후두신경이 손상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목에서 쉰 소리가 나거나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혹은 사레가 자주 들린다. 이런 부작용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목소리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수술 도중에 신경 손상을 찾아낸다면 즉각 대처할 수 있지만 이게 쉽지 않다. 김 교수는 “한 통계에 따르면 신경 손상이 생긴 환자의 10%만이 수술실에서 문제를 파악했고 나머지 90%는 전혀 문제점을 모른 채로 수술실을 나갔다”고 말했다. 2008년 김 교수는 독일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신경 모니터링’ 시스템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수술할 때 목에 삽입하는 튜브의 겉에 근육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막을 붙인다. 이어 수술하면서 이 막에 미세한 전기를 흘린다. 신경에 이상이 없다면 ‘삐’ 하는 소리가 나온다. 화면에는 근전도 수치와 파동이 표시된다. 이를 분석해 신경 손상 여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이후 이 시스템을 국내 대학병원 대부분이 도입했다. 2011년에는 대한신경모니터링학회도 창립됐다. 이 학회 또한 김 교수가 주도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이 학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갑상샘암 증세와 대처요령목에 잡히는 혹 갑자기 커지면 의심을갑상샘암은 1기와 2기에 발견될 경우 10년 생존율이 99%에 이른다. 게다가 이 암은 멀리 있는 장기로 원격 전이되는 확률이 낮다. 이 때문에 다소 늦게 발견되더라도 생존율은 여전히 높다. 다만 주변으로 암이 번질 수는 있어 기도와 식도 일부를 제거해야 하는 등 삶에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조기 발견이 그만큼 중요하다.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는 갑상샘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갑상샘 초음파를 찍을 것을 권했다. 다만 이 암은 진행 속도가 느리며 갑자기 악화되지는 않는 편이라 매년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김 교수는 4, 5년마다 검사받을 것을 권했다. 어떤 사람들이 갑상샘암 발병 위험이 높을까. 일단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된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어렸을 때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면 일단 갑상샘암 위험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여자가 갑상샘암에 걸릴 확률은 남자보다 4∼5배 높다. 요오드가 들어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적게 먹었을 때도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상샘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없다. 김 교수는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약 갑상샘에서 혹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정밀검사를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이 경우 혹의 크기, 위치에 따라 대처가 달라질 것”이라며 “만약 신경이나 기도, 식도와 접해 있다면 종양이 여기로 침범할 우려가 있어 정밀 검사를 통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때 갑상샘암을 의심해야 할까. 겉으로 증세가 드러나면 암이 꽤 진행됐을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거의 증세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목 주변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최근에 목 주변에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면, 그리고 그게 갑자기 빨리 커졌다면 갑상샘암을 의심해야 한다. 또 과거와 달리 음식물을 삼키는 게 어려워졌을 때도 암일 확률이 있다. 호흡 곤란이 나타나기도 한다.}

《5년 전 40대 여성 A 씨가 홍성후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50)를 찾아왔다. 다른 병원에서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10cm 크기의 암 덩어리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수술 직전에 A 씨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결혼하면서 남편과 약속했습니다.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는 날은 함께하기로. 그 약속을 못 지킬까 두렵습니다.” 늘 수술에 집중하는 홍 교수이지만 이번 수술만큼은 더욱 집중해야 했다. 그 덕분에 복강경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A 씨는 종양내과에서 후속 항암치료를 받았다. 홍 교수는 A 씨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60대 여성 B 씨는 3년 전 홍 교수를 찾아왔다. 그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더 이상 해 줄 게 없으니 홍 교수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 당시 B 씨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일단 콩팥이 하나뿐이었다. 이미 신장암으로 한쪽 콩팥을 들어낸 상태였다. 나머지 콩팥에도 암세포가 번진 것. 설상가상으로 암세포는 깊이 박혀 있었고 혈관에 닿아 있었다. 게다가 B 씨는 체중이 100kg이 넘는 초고도 비만이었다. 이 때문에 심혈관계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 약물로 인해 수술 도중 피가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콩팥을 적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B 씨는 그럴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콩팥을 들어내면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난도의 수술이 시작됐다. 홍 교수는 로봇으로 암 덩어리를 절제했다. 평소보다 30분 정도가 더 걸렸지만 수술 결과는 좋았다. B 씨는 평생 투석의 고통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난치성 신장암 로봇 수술의 대가 암이 전이되지 않았을 경우 암 덩어리만 부분 절제하거나 그 암 덩어리가 있는 콩팥을 통째로 들어낸다. 과거에는 모두 개복 수술을 했지만 최근에는 복강경과 로봇 수술이 많이 시행된다. 로봇 수술은 개복 수술에 비해 절개 부위가 작다. 출혈과 통증도 적다. 로봇 수술로는 콩팥을 살리면서도 깊이 박힌 암세포나, 덩어리가 큰 암세포(최대 8cm)를 제거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콩팥을 들어내야 했다. 대정맥은 온몸의 피를 심장으로 보내는 혈관이다. 이 대정맥에 붙어있는 혈전이 떨어지면 혈관을 타고 폐와 심장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다. 이 혈전이 온몸으로 퍼지면 갑자기 사망하기도 한다. 이게 ‘대정맥혈전증’인데 신장암 환자의 4∼10%에게 동반되는 병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1년 생존율이 30%가 안 된다. 이 수술은 비뇨의학과에서 가장 어려운 수술로 여겨진다. 심지어 수술 도중에 혈전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런 환자의 수술은 비뇨의학과 외에도 흉부외과, 혈관외과 의사도 참여한다. 이 수술은 대부분 개복 수술로 진행된다. 하지만 홍 교수는 이런 환자도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을 시행한다. 정교함이 필요해 국내외를 통틀어 이런 환자를 복강경이나 로봇으로 수술하는 의사는 드문 편이다. 이처럼 홍 교수는 로봇 수술의 대가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의 경지에 오른 건 아니다. 2009년 병원에 처음 수술용 로봇이 들어왔을 때부터 수없이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로봇팔로 고리를 옮기고 매듭을 만들거나 봉합을 하는 연습을 했다. 그 다음에는 종이학 접기에 도전했다. 한 변이 1.5cm 정도인 정사각형 종이로 20분 만에 종이학을 접었더니 쌀 한 톨 크기가 됐다. 정교한 수술에는 최적의 훈련이었다. 이후 계속 종이학을 접었고 나중에는 10분으로 단축했다.○인공지능 기술 신장암 치료에 도입 홍 교수는 신장암 진료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안을 요즘 연구하고 있다. AI가 실제 진료에 활용되려면 무엇보다 AI를 학습시킬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아직까지는 신장암 환자의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았다. 홍 교수는 바로 이 작업부터 시작했다. 일단 서울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신장암 환자 2000여 명의 데이터를 추렸다. 이들의 데이터를 모두 살핀 후 AI 학습용 데이터로 적합한 500명의 환자를 최종 선별했다. 환자별로 100장의 영상 이미지를 데이터화했다. 총 5만 장의 이미지를 AI 학습용 데이터로 구축한 것이다. 딥러닝을 통해 AI를 학습시킨 뒤 테스트에 들어갔다. 실제 의사 6명과 AI의 진료 실적을 비교한 것. 대결 분야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가 양성 종양과 암을 구별해 내는 것이었고, 둘째가 신장암의 여러 유형을 정확히 맞히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사람과 AI 모두 80%를 조금 넘는 정확도를 보였지만 미세하게 AI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AI의 정확도가 뛰어난 점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신속한 판단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의사가 1시간 정도 걸려서 판단할 것을 AI는 단 몇 분 만에 판단한다는 것. 게다가 진료 데이터가 쌓이면서 정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연구는 5년 단위의 국책 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홍 교수의 최종 목표는 임상시험을 끝내고 실제 진료에 도입하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이를 위해 영상 이미지 위주의 현재 데이터에 조직검사, 임상정보, 유전체 등 데이터를 추가할 계획이다. 이 네 가지 데이터를 융합하면 AI의 진단 정확도가 더 높아지고 향후 질병 상태 예측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신장암 구별법과 예방요령옆구리 통증-혈뇨땐 의심, 건강한 생활습관 중요40代이후 매년 초음파검사를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신장암 또한 병기별로 생존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암세포가 콩팥을 벗어나지 않은 1기에 암을 발견한다면 5년 생존율은 97%에 이른다. 하지만 암세포가 콩팥 주변 조직이나 림프샘(림프절)을 침범한 2기 이후로는 생존율이 70%대로 떨어진다. 만약 암세포가 멀리 떨어진 장기로 원격 전이됐다면 생존율은 10%대로 뚝 떨어진다. 홍성후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암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인 셈”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신장암에 걸릴 위험은 여자보다 남자가 크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신장암 발병 확률은 여자의 2배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 환자도 신장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신장에 낭종이 있거나 투석을 받는 환자도 신장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신장암에 걸리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 홍 교수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 말고는 절대적인 비결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담배를 끊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항산화 영양소가 많은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것.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부어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콩팥 기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다만 신장암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신장암에 걸렸다면 대체로 △옆구리에 통증이 있거나 △혹이 만져지거나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 홍 교수에 따르면 신장암 환자의 40% 정도는 세 가지 증세가 다 나타나며 나머지는 대체로 한두 가지 증세가 나타난다. 홍 교수는 “환자에 따라 전혀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신장암을 ‘소리 없는 암’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40대 이후라면 가급적 매년 신장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SPC삼립이 ‘56시간 저온숙성 부드러운 숙식빵(숙식빵)’ 20주년을 맞아 단일 브랜드로서 2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식빵으로 KRI한국기록원 공식 인증을 추진 중이다. 숙식빵은 20년 동안(2002년 3월 1일∼2020년 12월 31일) 1억2857만 개 팔렸다. 길이로 환산하면 약 2만2000km로 에베레스트산(8848m)을 1235회 왕복할 수 있는 수치다. 숙식빵은 56시간 저온숙성하고 탕종기법(뜨거운 물로 익반죽하는 방식)을 적용해 촉촉함과 쫄깃한 식감을 함께 느낄 수 있다. KRI한국기록원은 우리나라의 우수 기록을 공식 최고 기록으로 인증하는 전문기관이다. 미국 세계기록위원회(WRC·World Record Committee) 등 해외 기록 인증 전문기관에 도전자를 대신해 인증 심의를 요청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지난해 2월 이성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50)는 우즈베키스탄의 한 병원으로부터 척추협착증 수술 의뢰를 받았다. 환자는 은퇴한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고위 인사 A 씨였다. 이 교수는 현지에서 다른 환자의 척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 교수의 이름이 현지에서 꽤 알려졌던 것이다. 한 달 후인 3월 11일로 수술 날짜를 정했다. 하지만 곧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하늘 길이 끊겼다. A 씨는 모스크바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얼마 후 A 씨 측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코로나 위기’를 감수하더라도 이 교수에게 수술 받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단다. A 씨는 전용기를 타고 입국했다.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자 4월 초 VIP 병실에 입원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보름 정도 지난 후 A 씨는 출국했다. 이 기간에 A 씨가 지출한 의료비는 1억 원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 중등도 이상의 척추 질환자 주로 치료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해외에서까지 찾는 의사. 이 교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환자의 70%는 허리와 목디스크, 혹은 협착증 환자다. 전문병원과 달리 중등도 이상 환자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수술 후 7, 8년이 경과한 후의 재수술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런 경우 발생하는 이상 증세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술 직후 혹은 2, 3개월 이후부터 통증이 나타난다면 수술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원인을 밝혀내기도 쉽지 않고 재수술의 난도는 상당히 높아진다. 이 교수가 집도하는 수술의 10%가 이런 유형의 재수술이다. 70대 후반 환자 B 씨가 그런 사례다. 다른 병원에서 2년 전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직후부터 2년 동안 계속 아팠다. ‘수술을 왜 했나’ 후회가 될 정도였다. 이 교수가 확인해보니 신경 일부가 손상돼 있었다. 신경을 복원하니 통증이 사라졌다. 척수 내 악성 종양인 ‘신경교종’은 생존 기간이 세계 평균 9개월에 불과할 만큼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은 3, 4시간이 걸릴 만큼 난도가 높다. 미세한 척수의 신경에서 일일이 악성 종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분야에서 특히 유명하다. 생존 기간을 평균 37개월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 교수는 “생존 기간은 앞으로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며 “절대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 “척추 수술용 로봇 정확도 높아” 지난해 10월 이 교수는 ‘실험적인’ 수술을 시행했다. 환자는 60대 초반의 남성으로 퇴행성 ‘척추 전방전위증’ 환자였다. 위쪽 척추 뼈가 아래쪽 척추 뼈 앞쪽으로 튀어나오는 병이다. 이 남성의 경우 3번 척추 뼈가 4번 척추 뼈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수술의 마지막 단계는 나사못으로 수술 부위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나사못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신경과 척추가 손상돼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나사못을 얼마나 정확하게 삽입하느냐가 수술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교수는 로봇으로 나사못을 고정했다. 이 로봇은 이 교수와 국내 의료기기 업체가 공동으로 개발한, 국내 첫 척추 수술용 로봇이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로 확인해 보니 로봇은 ‘인간 의사’ 못잖게 정확하게 나사못을 고정했다. 환자는 5일째 퇴원했다. 이 교수는 이 로봇 연구를 2017년에 시작했다. 3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세계적으로 따지면 이 척추 수술 로봇은 다섯 번째 개발됐다. 이 교수는 “정확도만 놓고 본다면 현재도 1, 2위를 다툰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 교수는 정확도를 더 높이기 위한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이 로봇이 실제 수술 현장에 도입되면 아주 숙련된 의사가 아니더라도 정확한 수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노인 팬들의 감사편지 많아 얼마 전 100세 된 할머니가 외래 진료실로 이 교수를 찾아왔다. 8년 전에 퇴행성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다. 이후 6개월마다 진료실을 찾는다. 진료실에 올 때마다 할머니는 “아프다”며 찡그린다. 그러면서도 웃는 표정이란다. 이날 진료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10분이 지나갔다. 진료가 끝나자 할머니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꼬깃꼬깃 구겨진 1만 원권 지폐 두 장. “고마워서”라면서 할머니는 재빨리 진료실을 나갔다. 이 교수는 이처럼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팬’들이 많다. 어떤 환자는 이 교수를 “믿을 만한 자식 같다”고도 한다. 이 교수 환자의 80% 정도가 노인이다. 어떤 날은 환자 100%가 노인일 때도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진료 후일담’을 종종 받는다. 여기에도 이 교수에 대한 칭찬이 상당히 많이 접수된다. 이 교수를 미래의 병원장으로 추천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모범의사상’을 줘야 한다는 글도 있다. 후일담에 들어있는 공통된 내용이 있다. 이 교수가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환자를 가족처럼 돌봐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환자의 불안함을 없애주는 게 치료의 시작이다. 가급적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코어 근육 강화를 위한 동작 요령이성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척추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이라고 했다.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70대 이후라도 하루에 30분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탈 것을 권했다. 70대 이전이라면 가급적 근육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이 교수는 특히 ‘코어 근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운동이 있는데,이 교수는 다음의 네 가지 동작을 수시로 반복할 것을 권했다. ① 다리 끌어당기기운동 전 스트레칭이다. 바닥에 누워 한쪽 다리를 양손으로 껴안는 것처럼 잡은 뒤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 상태에서 10∼15초 멈춘다. 이어 반대쪽 다리로 자세를 바꿔 같은 요령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5∼10회 반복한다. ② 스쾃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앉는다.이때 무릎이 앞쪽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어 발뒤꿈치로 미는 듯한 느낌으로 일어선다. 최소한 10회 이상 반복한다. ③ 브리지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뒤 무릎을 세운다. 이어 배와 엉덩이에힘을 주면서 배와 엉덩이를 천장 쪽으로 들어올린다. 천천히 원래 자세로 돌아온 뒤 같은 동작을 10회 이상 반복한다. ④ 버드독기는 자세를 취한다. 이때 무릎은 엉덩이 너비만큼, 양팔은 어깨너비만큼 벌린다. 이어 한쪽 팔을 앞으로 뻗는다. 동시에 반대쪽 다리를 뒤쪽으로 뻗는다. 5초 정도 유지한 뒤 자세를 바꿔 시행한다. 5∼10회 반복한다.}

《나이가 들어 관절 부위가 아프면 퇴행성 관절염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지독한 관절 통증을 겪는 이들도 있다. 류머티스 관절염(관절 류머티즘)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류머티스 관절염은 생소한 질병이었다. 1998년 한양대병원이 국내 최초로 류머티즘 전문병원을 열었다. 관절 부위가 아픈데 원인을 못 찾은 환자들이 몰리면서 이 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대학병원이 류머티스 관절염을 진료한다. 성윤경 한양대 류마티스내과 교수(49)는 류머티스 관절염, 루푸스, 셰그렌 증후군 등의 자가면역 질환을 전문으로 다룬다. 자가면역 질환은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80여 종의 질환이 있다.》 ○ 류머티스와 퇴행성 질환 구분해야 성 교수 환자의 60% 정도는 류머티스 관절염이다. 류머티스 관절염과 퇴행성 관절염의 차이는 뭘까. 성 교수는 “두 질병의 구분은 쉽지 않다. 증세를 종합 검토한 후에 최종 진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다만 개괄적인 자가 진단은 가능하다. 두 질병 모두 통증이 나타난다. 다만 통증의 양상은 좀 다르다. 퇴행성 관절염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졌을 때 통증이 나타난다. 가만히 있거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통증이 없을 수 있다. 다시 걷거나 손과 팔을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나타난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정반대다.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으로 인해 생긴 염증이 통증의 원인이므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움직일 때가 아니라 가만히 있거나 멈췄을 때 통증이 생긴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순간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통증이 나타나는 시간대도 다르다. 퇴행성 관절염이라면 일을 끝낸 저녁 이후에 아플 때가 많다. 반면 류머티스 관절염이라면 자고 일어난 아침 시간대에 통증이 더 심하다. 아프거나 붓는 관절의 위치도 약간씩 다르다. 손가락을 예로 들자면 퇴행성 관절염일 때는 손가락 마디 끝 부분이 주로 아프다. 반면 류머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마디의 중간 부위와 손가락과 손등이 연결되는 부위가 주로 아프다. 퇴행성 관절염이라면 관절 부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일을 줄여야 한다. 류머티스 관절염이라면 일단 염증을 가라앉히면 통증이 약해진다. 이 단계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소홀히 하기 쉽다. 성 교수는 “류머티스 관절염은 치명적인 합병증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뼈엉성증과 폐 섬유화 합병증 연구” 성 교수는 류머티스 관절염의 가장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뼈엉성증(골다공증)과 폐 섬유화(폐가 딱딱해지는 병)를 꼽았다. 성 교수는 이 합병증에 대한 역학 연구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에게는 스테로이드 약물을 처방한다. 문제는 적은 양만 쓰더라도 골절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활용해 이를 증명했다. 당시 13만8000명의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를 분석해 보니 68%가 스테로이드를 쓰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이 환자들이 하루에 7.5mg 이상의 스테로이드를 쓸 때 골절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성 교수가 분석해 보니 2.5mg 이상만 쓰더라도 골절 위험이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6개월 동안 약을 쓰면 골절 위험은 1.5배 증가했다. 성 교수는 “가급적 치료를 빨리 끝내 스테로이드 약물을 끊는 게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써야 한다면 골절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 이후 심평원은 골다공증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하루 기준 7.5mg에서 5mg으로 낮췄다. 성 교수의 연구를 간접 반영한 것이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 3550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폐 섬유화 진행 정도도 연구했다. 그 결과 류머티스 관절염의 합병증으로 폐 섬유화가 진행될 경우 사망률은 8배로 높아졌다. 성 교수는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2∼5%가 폐 섬유화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두 질환의 상관관계를 실제 데이터로 규명한 것은 성 교수가 처음이다. ○루푸스 꾸준한 치료 필요 루푸스 환자도 성 교수를 많이 찾는다. 이 병은 장기, 관절, 피부 등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 환자의 50∼60%는 콩팥(신장)으로 병이 번지는데, 이를 루푸스 신염이라고 한다. 20대 초반 환자가 이 병에 걸릴 경우 5∼10%는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성 교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간 환자들이 더 많다.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10년 전 찾아왔던 당시 20대 초반의 여성 A 씨 사례를 들었다. 단백뇨 수치는 보통 200mg 이하를 정상으로 여긴다. A 씨는 1만 mg을 넘겼다. 폐에도 물이 찼고, 체중은 10kg 이상 불어나 있었다. 심각한 상태였다. 성 교수는 강력한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를 동시에 투여했다. 이후 기나긴 투병이 이어졌다. 다행히 A 씨 상태는 점점 좋아졌다. 마침내 결혼도 하게 됐다. A 씨는 임신을 원했다. 치료를 시작하고 만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임신을 위해 면역억제제를 끊었다. 성 교수는 “상태가 좋아지고 5년 정도 경과하면 상황을 보고 면억억제제를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순조롭게 아기를 출산했다. 요즘도 A 씨는 3개월마다 성 교수를 찾아 몸 상태를 체크한다. 성 교수는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지만 50세를 넘어서고 폐경 이후가 되면 사실상 완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병은 여성 호르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성 교수가 권하는 관절건강법근력 유지하며 체중조절… 금연으로 폐 섬유화 막고 정기적 치아 스케일링을류머티스 관절염이 유전될 확률은 30∼50%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윤경 한양대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실제 확률은 이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했다. 성 교수는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이를테면 식습관과 생활 패턴이 비슷하면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유전적 요인을 탓하기보다는 관절 건강부터 챙길 것을 주문했다. 그는 크게 세 가지를 권했다. 첫째가 체중 조절이다. 과체중 상태가 되면 특히 무릎 관절이나 발목에 퇴행성관절염이 생기기 쉽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에게도 과체중은 병을 악화하는 요인이 된다. 성 교수는 “체중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적당한 근력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둘째는 금연이다. 성 교수는 “흡연은 류머티스 관절염과 연관된 항체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항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류머티스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 중에서 폐 섬유화 합병증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흡연과의 연관성이 더욱 크다. 성 교수는 “간접흡연도 질병 유발 요인이 되기 때문에 가족 모두 금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구강 위생이다. 성 교수는 “류머티스 관절염의 발생이 치주염과 관계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경우 젊은 나이에 치주염이 생기고 치아까지 심하게 손상될 때가 많다. 또 구강 건조를 일으키는 자가면역 질환인 셰그렌 증후군에 걸릴 확률도 정상치보다 10배 높다. 성 교수는 특히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라면 정기적으로 치아 스케일링을 받을 것을 권했다.}

《정형외과 진료 분야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릎과 허리다. 이 두 분야의 환자가 가장 많다. 정형외과 의사들 또한 두 분야를 ‘메인’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석원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44)는 어깨를 선택했다. 정 교수는 2007년부터 3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집단 거주 지역에 있는 사회사업 시설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매일 2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깨 환자도 무릎이나 허리 환자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라는 것 외에는 처방해 줄 게 없었다. 그만큼 어깨 분야를 잘 몰랐다.》 정 교수는 공중보건의를 끝내고 대학병원 전임의를 시작하면서 어깨를 전공으로 택했다. 현재 정 교수 환자의 80%가 어깨 질환자다. 정 교수는 “이 환자에게 내가 마지막 의사라는 생각으로 진료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다른 병원, 다른 의사에게 가지 않아도 될 수준까지 고쳐놓겠다는 뜻이다.○ “어깨 분야는 비수술 치료가 원칙” 수술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 환자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정 교수는 재활치료를 먼저 권한다. 환자들은 그러다가 수술 시기를 놓치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정 교수는 “지금이 아니라 1년 후에 수술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실제로 어깨 분야는 비수술 치료가 원칙이라고 말한다. 수술은 △다른 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직업을 포함해 수술 후 관리를 잘할 수 있을 때 △불편함의 정도가 상당히 클 때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단 수술에 돌입하면 수술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정 교수의 철학이다. 일반적으로 똑같은 수술이라도 수술 시간이 짧으면 그만큼 수술 결과도 좋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는 안 좋은 영향이 커진다. 바로 이 때문에 수술 시간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수술 전에 시뮬레이션을 한다. 3D 프린터로 수술 재료를 출력한 뒤 미리 점검하기도 한다. 절개 부위도 최소화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평균적으로 1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정 교수는 40분 이내에 끝낸다. 또한 어깨 관절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인공 관절로 대체하기보다는 힘줄을 이용하거나 패치를 쓰는 식으로 가급적 본인의 관절을 살리려고 하는 편이다. ○ 중증 질환 겹친 어깨 질환자 많이 치료 정 교수는 “개인병원과 달리 대학병원 정형외과에는 여러 질병을 가지고 있어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만 하더라도 수술 환자의 20% 정도는 중증 만성 질환자다. 5년 전 정 교수가 치료한 20대 후반의 여성 A 씨는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 환자였다. 발작 과정에서 어깨 탈골이 자주 일어나 우울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정 교수는 뼈 주변의 느슨해진 연부 조직을 단단하게 하는 수술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발작 과정에서 어깨가 빠졌다. 다른 해법이 필요했다. 정 교수는 쇄골 주변에 있는 ‘오구돌기’라는 뼈의 일부를 옮기는 수술을 결정했다. 이렇게 하면 어깨뼈가 넓어지는 효과를 내 탈골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 수술은 어깨뼈가 손상됐을 때 시도한다.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2년 후 정 교수는 병원에서 우연히 A 씨를 만났다. 또 발작이 왔나 싶었는데 아니란다. 그 사이에 A 씨는 결혼을 했고, 임신도 했다. 출산하러 병원에 왔다고 했다. 뒤늦게 A 씨는 정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3년 전에는 20대 초반의 자폐증 환자 B 씨가 쇄골 골절로 부모에게 이끌려 정 교수를 찾았다. B 씨는 불안하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 경우 수술 후 관리가 힘들어 수술 실패율이 높다. 하지만 B 씨의 폭력성이 더 커지면서 결국에는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오는 지경이 돼 버렸다. 피부 감염도 발생했다.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 교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병상에 묶은 채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에는 상체 전체를 깁스했다. 몇 차례의 수술과 긴 치료가 이어졌다. 6개월 후 B 씨는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다.○ 수술 후 어깨 근육 강화하는 약물 개발 중 어깨 수술을 받은 환자의 일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어깨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정 교수는 “외상이나 노화로 인해 어깨에 지방이 쌓이거나 근육이 지방층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수술 후에도 어깨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근육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를 진행 중이며 신규 물질을 찾아냈다. 나아가 국내 바이오기업과 함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동물실험 단계다. 사고로 어깨 힘줄이 끊어진 쥐, 노화로 근육에 변성이 온 쥐 등 상황별로 근육을 강화하는 물질과 약을 주사했다. 정 교수는 “5년 이내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며 최종적으로 주사제 형태의 약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어깨 치료에 도입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정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팀과 함께 2124명의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로 AI를 활용했을 때 진단과 분류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진단 정확도는 93%, 분류 정확도는 87%였다. ‘인간 의사’가 직접 병을 진단하고 분류할 때와 비교해도 이 수치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깨통증 예방을 위한 스트레칭 요령정석원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어깨 질환을 예방하려면 등이 굽은 채로 앉아있는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스트레칭을 권했다. 뻐근하거나 통증이 있다는 이유로 스트레칭을 중단하면 2차 강직으로 인해 증세가 악화할 수 있다. 단, 통증이 있을 때는 근력 운동은 피해야 한다. 어깨와 그 주변이 아프다면 정 교수가 제안하는 세 가지 스트레칭을 시도해볼 만하다. 관절의 운동 범위를 넓혀준다. 하루에 3, 4회 지속적으로 하되 몸의 반동을 이용하면 운동 효과가 떨어지니 천천히 동작을 해야 한다. [1] 팔 올리기베개를 베지 않고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아픈 팔을 머리 위로 올린다. 통증이 느껴지는 수준까지 팔을 뻗는다. 이때 팔꿈치를 펴야 하며 다른 손으로 20초 정도 지그시 눌러준다. 15회 반복한다. [2] 벽에 팔 대고 상체 밀기아픈 쪽 팔을 옆으로 직각이 되게 꺾은 후 벽에 댄다. 팔꿈치부터 손까지 벽에 밀착한 후 몸통을 서서히 앞쪽으로 민다. 20초씩 15회 반복한다. [3] 옆으로 누워서 팔 누르기베개를 베고 아픈 어깨가 바닥 쪽으로 가도록 옆으로 누운 뒤 팔을 앞으로 뻗는다. 이어 아픈 팔의 팔꿈치를 수직으로 세웠다가 다른 손으로 아픈 팔의 손목을 잡고 누른다. 20초씩 15회 반복한다. 등 뒤로 팔이 뻗어지지 않을 때 특히 좋은 스트레칭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정형외과 진료 분야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릎과 허리다. 이 두 분야의 환자가 가장 많다. 정형외과 의사들 또한 두 분야를 ‘메인’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석원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44)는 어깨를 선택했다. 정 교수는 2007년부터 3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집단 거주 지역에 있는 사회사업 시설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매일 2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깨 환자도 무릎이나 허리 환자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라는 것 외에는 처방해 줄 게 없었다. 그만큼 어깨 분야를 잘 몰랐다. 정 교수는 공중보건의를 끝내고 대학병원 전임의를 시작하면서 어깨를 전공으로 택했다. 현재 정 교수 환자의 80%가 어깨 질환자다. 정 교수는 “이 환자에게 내가 마지막 의사라는 생각으로 진료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다른 병원, 다른 의사에게 가지 않아도 될 수준까지 고쳐놓겠다는 뜻이다. ● 비(非)수술 선호, 수술 시간은 짧게수술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 환자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정 교수는 재활치료를 먼저 권한다. 환자들은 그러다가 수술 시기를 놓치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정 교수는 “지금이 아니라 1년 후에 수술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실제로 어깨 분야는 비수술 치료가 원칙이라고 말한다. 수술은 △다른 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직업을 포함해 수술 후 관리를 잘할 수 있을 때 △불편함의 정도가 상당히 클 때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단 수술에 돌입하면 수술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정 교수의 철학이다. 일반적으로 똑같은 수술이라도 수술 시간이 짧으면 그만큼 수술 결과도 좋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는 안 좋은 영향이 커진다. 바로 이 때문에 수술 시간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수술 전에 시뮬레이션을 한다. 3D 프린터로 수술 재료를 출력한 뒤 미리 점검하기도 한다. 절개 부위도 최소화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평균적으로 1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정 교수는 40분 이내에 끝낸다. 또한 어깨 관절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인공 관절로 대체하기보다는 힘줄을 이용하거나 패치를 쓰는 식으로 가급적 본인의 관절을 살리려고 하는 편이다. ● 중증 질환 겹친 어깨 질환자 치료 많아정 교수는 “개인병원과 달리 대학병원 정형외과에는 여러 질병을 가지고 있어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만 하더라도 수술 환자의 20% 정도는 중증 만성 질환자다. 5년 전 정 교수가 치료한 20대 후반의 여성 A 씨는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 환자였다. 발작 과정에서 어깨 탈골이 자주 일어나 우울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정 교수는 뼈 주변의 느슨해진 연부 조직을 단단하게 하는 수술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발작 과정에서 어깨가 빠졌다. 다른 해법이 필요했다. 정 교수는 쇄골 주변에 있는 ‘오구돌기’라는 뼈의 일부를 옮기는 수술을 결정했다. 이렇게 하면 어깨뼈가 넓어지는 효과를 내 탈골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 수술은 어깨뼈가 손상됐을 때 시도한다.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2년 후 정 교수는 병원에서 우연히 A 씨를 만났다. 또 발작이 왔나 싶었는데 아니란다. 그 사이에 A 씨는 결혼을 했고, 임신도 했다. 출산하러 병원에 왔다고 했다. 뒤늦게 A 씨는 정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3년 전에는 20대 초반의 자폐증 환자 B 씨가 쇄골 골절로 부모에게 이끌려 정 교수를 찾았다. B 씨는 불안하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 경우 수술 후 관리가 힘들어 수술 실패율이 높다. 하지만 B 씨의 폭력성이 더 커지면서 결국에는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오는 지경이 돼 버렸다. 피부 감염도 발생했다.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 교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병상에 묶은 채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에는 상체 전체를 깁스했다. 몇 차례의 수술과 긴 치료가 이어졌다. 6개월 후 B 씨는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다. ● 수술 후 어깨 근육 강화하는 약물 개발 중어깨 수술을 받은 환자의 일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어깨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정 교수는 “외상이나 노화로 인해 어깨에 지방이 쌓이거나 근육이 지방층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수술 후에도 어깨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근육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를 진행 중이며 신규 물질을 찾아냈다. 나아가 국내 바이오기업과 함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동물실험 단계다. 사고로 어깨 힘줄이 끊어진 쥐, 노화로 근육에 변성이 온 쥐 등 상황별로 근육을 강화하는 물질과 약을 주사했다. 정 교수는 “5년 이내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며 최종적으로 주사제 형태의 약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어깨 치료에 도입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정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팀과 함께 2124명의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로 AI를 활용했을 때 진단과 분류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진단 정확도는 93%, 분류 정확도는 87%였다. ‘인간 의사’가 직접 병을 진단하고 분류할 때와 비교해도 이 수치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깨와 주변이 아프다면…세 가지 스트레칭 방법 정석원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어깨 질환을 예방하려면 등이 굽은 채로 앉아있는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스트레칭을 권했다. 뻐근하거나 통증이 있다는 이유로 스트레칭을 중단하면 2차 강직으로 인해 증세가 악화할 수 있다. 단, 통증이 있을 때는 근력 운동은 피해야 한다. 어깨와 그 주변이 아프다면 정 교수가 제안하는 세 가지 스트레칭을 시도해볼 만하다. 관절의 운동 범위를 넓혀준다. 하루에 3, 4회 지속적으로 하되 몸의 반동을 이용하면 운동 효과가 떨어지니 천천히 동작을 해야 한다. ① 팔 올리기=베개를 베지 않고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아픈 팔을 머리 위로 올린다. 통증이 느껴지는 수준까지 팔을 뻗는다. 이때 팔꿈치를 펴야 하며 다른 손으로 20초 정도 지그시 눌러준다. 15회 반복한다. ② 벽에 팔 대고 상체 밀기=아픈 쪽 팔을 옆으로 직각이 되게 꺾은 후 벽에 댄다. 팔꿈치부터 손까지 벽에 밀착한 후 몸통을 서서히 앞쪽으로 민다. 20초씩 15회 반복한다. ③ 옆으로 누워서 팔 누르기=베개를 베고 아픈 어깨가 바닥 쪽으로 가도록 옆으로 누운 뒤 팔을 앞으로 뻗는다. 이어 아픈 팔의 팔꿈치를 수직으로 세웠다가 다른 손으로 아픈 팔의 손목을 잡고 누른다. 20초씩 15회 반복한다. 등 뒤로 팔이 뻗어지지 않을 때 특히 좋은 스트레칭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3년 전 부정맥에 고혈압까지 겹친 50대 남성 환자 A 씨가 김현직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50)의 진료실을 찾았다. A 씨는 심장내과의 진료를 받고 있었다. 여러 약물을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의사가 확인한 결과 환자는 심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김 교수가 진료하게 된 것이다. 수면다원검사를 해 보니 A 씨는 상체를 반쯤 세워 잠을 청했다. 누우면 숨이 차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예상대로 코골이는 상당히 심했고, 자다가 수시로 벌떡 일어나곤 했다. 중증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었다. 김 교수가 A 씨의 코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유독 통로가 좁았고 편도샘(편도선)이 비대했다. 일단 양압기를 처방했다. 이것은 공기 압력을 조절해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기구다. 다만 잠을 잘 때 계속 부착해야 해 불편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A 씨도 채 3일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부정맥과 고혈압이 있어 전신마취는 위험했다. 딱 코만 마취한 후 콧속의 부어 있는 부위와 휜 부위를 잘라냈다. 이 수술만으로 A 씨는 비로소 코로 숨 쉬게 됐다. 코로 숨을 쉬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게 되자 혈압이 떨어졌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도 3개에서 1개로 줄었다. ○ “코골이 환자에서 코골이 베스트 닥터로” 김 교수 환자의 60% 정도가 A 씨와 같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혹은 코골이 환자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잠잘 때 기도가 막히면서 호흡이 자주 끊기는 병이다.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고혈압, 부정맥, 당뇨병, 뇌질환, 성기능 장애 등 합병증을 유발한다. 일반적으로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잠잘 때 10초 이상 호흡하지 않는 횟수가 5회 미만이면 정상이지만 그 이상은 병으로 본다. 이 횟수가 30회 이상이면 중증으로 간주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국내 남성의 10%, 여성의 5%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앓고 있다. 그만큼 흔한 질병이란 얘기다. 김 교수 또한 한때 코골이가 심해 아내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새벽에 침실에서 쫓겨나 거실에서 잤던 적도 적지 않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아예 연구실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코골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코골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양압기를 썼다. 하지만 상당히 불편했다. 환자들에게 참고 착용하라고 했는데, 실제 경험해 보니 환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편도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그제야 코골이의 ‘고통’에서 해방됐다.○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연구 성과 많아 김 교수는 자신을 포함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양압기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루 이틀 만에 양압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2017년 김 교수는 양압기에 잘 적응하는 24명, 그렇지 못한 2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수면다원검사 결과 무호흡증이 경증이냐, 중증이냐는 큰 상관이 없었다. 내시경으로 코 내부와 기도, 편도샘 등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콧속 내부가 많이 좁아 공간이 적거나 편도샘이 큰 사람일수록 양압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이런 사람들은 1차 수술을 한 뒤 양압기를 착용할 때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코골이를 종종 수술로 치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치료 범위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김 교수는 코 부위만 수술한 25명과 편도샘 목젖까지 광범위하게 수술한 25명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 결과 수술 범위가 클수록 무호흡 수치가 더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코 부위만 수술하더라도 잠을 잘 자고 무호흡 수치의 30% 이상이 줄어들었다. 수술 범위를 무조건 넓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로봇 수술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로봇 수술을 시행한 15명을 분석한 결과 혀뿌리에 편도샘이 상당히 비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고주파 수술과 큰 차이가 없었다. 김 교수는 “로봇 수술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650만 원 정도 한다. 로봇 수술을 무조건 선호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콧속 미생물로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중 김 교수는 기초의학 연구에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호흡기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2009년부터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건강한 성인 37명을 대상으로 콧속 미생물을 분석했다. 코 점막에 3000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중에서 ‘표피포도상구균’이란 세균에 주목했다. 이 세균은 평상시엔 활동하지 않다가 외부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 물질인 ‘인터페론’을 만들어낸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지 않고 상생하는 이런 미생물을 ‘공생 미생물’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공생 미생물은 소화기에 주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가 호흡기에도 존재하며 면역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김 교수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 그룹에만 이 균을 코 점막에 이식했다. 이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주입했다. 그 결과 표피포도상구균을 이식한 쥐의 90% 이상에서 바이러스가 줄어들었다. 반면 이 균을 이식하지 않은 쥐들은 폐 감염이 나타났다. 현재 동물 실험은 거의 막바지 단계다. 김 교수는 2, 3년 이내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10년 이내에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바이러스 질환, 그중에서도 호흡기 바이러스에 맞설 ‘점막 백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교수가 조언하는 건강 수면법"취침-기상시간 일정하게… 잠자리선 스마트폰 NO체중감량도 코골이 줄여"건강한 수면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평일에 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말에 몰아서 자면 수면 리듬이 깨질 수 있다. 술은 숙면을 방해하니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이 든 음료도 뇌를 각성시키므로 오후 3, 4시 이후로는 마시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지켜야 할 생활 수칙은 더 있다.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잠이 안 올 때는 마냥 누워있기보다는 일어나 거실을 서성이다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도 방법이다. 외부 빛을 차단하기 위해 커튼은 반드시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현직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 경우 배우자나 같이 자는 사람에게 자신이 코를 고는지부터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코골이 환자 대부분이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한다. 만약 배우자가 코를 심하게 곤다고 말하면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일 확률이 높다. 이 밖에도 △잠을 잘 때 자주 깨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로도가 높고 두통이 있거나 △특정 시간대에 심하게 졸릴 경우에도 수면무호흡증을 의심해야 한다. 김 교수는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면다원검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1회 검사로 대부분 수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체중 감량만으로도 코골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김 교수는 강조했다. 체중이 늘면 혀의 지방층이 두꺼워질 뿐 아니라 탄력도도 떨어진다. 잠자는 동안 혀가 늘어지면서 기도를 막게 된다. 체중을 줄이면 이런 문제가 해결돼 코를 덜 골게 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코골이 수술을 하는 환자들에게도 먼저 체중을 줄인 후 수술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간편식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오뚜기는 중국, 스페인, 영국,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요리를 간편식으로 내놓았다. ‘오즈키친 멘보샤’는 멘보샤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제품이다. 통통한 새우 살과 바삭한 식빵의 조합으로 풍부한 식감이 특징이다. 유탕 처리가 된 에어프라이어 전용 제품이다. 아이들 간식이나 어른들의 맥주 안주로 어울린다고 한다. ‘오즈키친 칠리새우’는 매콤달콤한 칠리소스를 곁들인 정통 중식당 수준의 간편식이다. 새우의 꼬리 부분을 떼어낸 제품으로 쉽게 먹을 수 있다. 에어프라이어 조리법을 기본적으로 적용했다. 덕분에 가정에서 기름 튈 일 없이 바삭한 새우튀김을 즐길 수 있다. 오뚜기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이른바 ‘혼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 안주 제품들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특히 닭발과 곱창류의 한식 소주 안주에서 벗어난 다양하고 특색 있는 안주류 제품이 많다. ‘오감포차 새우감바스’는 올리브유에 매콤한 마늘과 새우를 듬뿍 넣은 스페인식 정통 타파스 요리다. 다양한 주류와 어울린다. 취향에 따라 파스타, 빵 등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오즈치킨 피쉬앤칩스’는 부드러운 대구 살에 반죽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피쉬스틱과 감자튀김이 어우러진 제품이다. 타타르 소스나 아이올리 소스와 함께 먹으면 좋다. ‘오즈키친 쉬림프앤칩스’는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을 살린 쉬림프스틱과 감자튀김이 어우러졌다. 이 제품들은 에어프라이어 전용 제품으로 나왔다. 또띠아의 쫄깃하고 담백한 맛과 치즈의 고소함을 살린 ‘리얼 멕시칸 브리또’ 3종은 모짜렐라 치즈가 더해져 입안 가득 풍미를 채워준다. ‘리얼 멕시칸 브리또 치폴레 치킨’은 담백한 닭 가슴살에 할라피뇨로 만든 멕시코식 치폴레 살사 소스가 어우러져 정통 오리지널 멕시코 음식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리얼 멕시칸 브리또 페페로니 트리플 치즈’에는 각종 치즈가 듬뿍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리얼 멕시칸 브리또 베이컨 마카로니’에는 오뚜기 골드 마요네즈와 소이소스가 들어갔다. 전자레인지 조리로 쫄깃하게 즐기거나 에어프라이어 조리로 바삭하게 즐길 수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부모가 특정 질병에 걸렸을 경우 그 자식이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은 높아진다. 이른바 ‘가족력’ 때문이다. 그 질병에 정통한 의사라 하더라도 가족력을 완벽하게 피하기는 어렵다. 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48)의 할아버지는 대장암에 당뇨병이 겹쳐 돌아가셨다. 이 교수 아버지 다섯 남매 중 3명이 당뇨병에 걸렸다. 현재 50대 초반인 사촌오빠도 10년 전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당뇨병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 교수에게도 이 병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질병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한다. 당화혈색소 수치를 매년 2회씩 꾸준히 체크한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의 혈색소가 어느 정도 ‘당화(糖化)’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5.6 이하가 정상이며 5.7∼6.4는 당뇨병 전 단계, 6.5 이상은 당뇨병 단계로 본다. 이 교수는 5.3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자” 이 교수는 ‘걷기 마니아’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어쩌다 걷기 운동을 못 한 날은 몸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걷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2007년이었다. 이 교수는 약간의 우울 증세를 느끼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도 떨치고, 당뇨병에도 대비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찾아낸 것이 걷기였다. 처음에는 출근하기 전에 공원 주변을 걸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약속이 잡히면 30분 먼저 나가 걸었다. 일주일에 최소한 5일은 하루 30분 이상 걸었다. 조금 덜 걸었다 싶으면 집에서 실내용 자전거를 탔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수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편도 40분 걸리는 학교까지 매일 걸었다. 허벅지까지 눈이 쌓인 날에도 걸었다. 요즘도 이 교수는 매일 새벽 집 주변 공원에 가 최소한 3km를 걷거나 뛴다. 환자들에게도 걷기를 적극 권한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꾸준히 걷는 일 자체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2, 3개월만 계속하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엄한 의사 이 교수는 환자들에게 ‘엄한 의사’로 소문 나 있다. 환자를 혼내기도 한다. 특히 당화혈색소 같은 지표가 악화할 때 그렇다. 당뇨병 환자가 지켜야 할 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며 “벽에 붙인 후 이대로 하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엄한 걸까. “당뇨병에 관한 한 명의도 없고 명약도 없습니다. 환자가 자기관리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치료 결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자기관리를 못하는 환자는 따끔하게 잡아줘야 합니다.” 매번 혼만 내지는 않는다. 위로가 필요한 환자들도 있다. 그럴 때는 환자 편에서 이해해 주는 게 중요하다. 2010년경 당시 20대 중반이던 여성 환자 A 씨가 그 경우다. A 씨는 1형 당뇨병 환자였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 1형 당뇨병은 난치병에 속한다. 매일 4회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며 먹어선 안 되는 음식도 많다. 10대와 20대 환자들은 친구와 어울리면서 떡볶이나 피자 같은 것도 먹을 수 없다. A 씨는 이 병 때문에 파혼을 당했다. 그 전에 A 씨를 진료했던 의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 말이 A 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 교수는 A 씨를 위로하며 “본인의 의지만 강하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를 악물고 운동했고, 식단을 조절했다. 얼마 후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다시 생긴 출산의 고민. 이번에도 이 교수는 의지를 강조했다. A 씨는 독하게 당뇨병과 싸웠다. 그 결과 신장 합병증도 거의 사라지고 당화혈색소 또한 8점대에서 5점대로 떨어졌다. 아이도 셋이나 출산했다. 지금도 A 씨는 진료일이 되면 웃는 얼굴로 이 교수를 찾아온다. ○“연구와 논문 쓰기는 가장 즐거운 일” 이 교수는 현재까지 25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이 중 150여 편에 주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논문은 하나의 작은 책이다. 그것을 완성할 때 큰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 시절에도 4편의 논문을 썼다. 당뇨병은 갖가지 합병증을 유발한다. 이 교수는 당뇨병과 합병증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심장동맥(관상동맥)의 내벽에 낀 혈전 속 칼슘 농도를 측정해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를 측정하는 식이다.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추적한 결과 이 ‘칼슘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높았다. 이 교수는 2009년과 2010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1500만 명을 △당뇨 △당뇨 전 단계 △비(非)당뇨 등 세 그룹으로 나눠 2016년까지 추적하기도 했다. 그 결과 당뇨 전 단계일 때 파킨슨병 발병 확률은 4%로 나타났다. 이미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5년 이내 파킨슨병이 생길 확률은 19%, 5년 이후에 생길 확률은 60%였다.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겐 하루에 수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은 큰 불편이자 고통이다. 인슐린 펌프나 패치 형태의 도구가 이미 나와 있지만 몸 혈당치를 완벽하게 측정해 자동적으로 인슐린을 투입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교수는 이 기술을 국내 바이오기업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향후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 당뇨병 예방 위한 조언“과일 대신 채소… 매일 30분 이상 연속적-반복적 운동을”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당뇨병 환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이 있다. “밀가루, 빵, 쌀, 떡, 감자, 고구마, 국수, 과일을 먹지 말고 만약 먹더라도 최소한으로만 먹어라.”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는 당뇨병 환자의 적(敵)이다. 하지만 과일까지 먹지 말라는 것은 좀 과한 게 아닐까. 이 교수는 “과일 대신 채소를 먹으란 뜻이다. 식사 대용으로 과일을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양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식사 대용으로 아침에 바나나 한 개, 점심에 사과 한 개를 먹을 뿐 그 외에는 일절 과일에 손대지 않는다. 이 교수는 흰 쌀밥도 먹지 말라고 한다. 현미로 지은 밥이 좋다는 것이다. 다만 현미밥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흰쌀을 추가하되 그 비율이 3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가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게 운동이다. 매주 등산을 가거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영을 하는 식이 아니다. 가급적 매일 30분 이상 하라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연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운동을 해야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걷기를 추천한다. 다만 노인,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 혹은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실내용 자전거를 이용할 것을 권했다. 지겹더라도 처음에는 10∼15분을 채우도록 한다. 이후 점차 시간을 늘려 최종 30분 이상 자전거를 타는 게 좋다. 특히 폐경을 맞은 여성에게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호르몬이 당뇨병과 비만을 어느 정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 호르몬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급적 폐경 이전부터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46)는 퇴근 후나 휴일에도 맘 편하게 쉬지 못한다. 늘 휴대전화를 곁에 둔다. 언제 병원에서 콜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산이나 산후 출혈로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휴대전화가 울리자마자 받아야 한다. 조 교수 환자의 70% 이상이 고위험 임신부다. 나이가 많거나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같은 질병이 있는 환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고위험 임신부들은 보통의 임부보다 궁금한 것도 많고 두려움도 크다. 》 조 교수는 오전 회진을 끝낸 후 따로 환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위로하고 궁금한 것에 답한다. 설명을 잘하는 데다 친절하고, 실력까지 있으니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다.조 교수에게 진료를 받겠다며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환자들도 적잖다. ○ “출산은 큰 행복” 아이 좋아하는 다둥이 아빠조 교수에게 왜 산부인과를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아이들을 상당히 좋아한단다. 게다가 출산 그 자체가 모두에게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산부인과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조 교수는 5명의 자식을 둔 다둥이 아빠였다. 의대 본과 3학년 때 의대 동기였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이후 자신은 산부인과, 아내는 소아과를 택했다. 전공의를 거의 마칠 무렵인 결혼 6년 차부터 아이를 가지려 했다.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일까. 임신이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했을 때도 순탄하지 않았다. 아내는 세 번이나 유산했다. 2008년, 임신을 시도한 지 4년 만에 첫 아기가 태어났다. 실로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고, 그토록 바라던 축복이었다. 2년 후 조 교수 부부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다시 2년 후 또 아이를 낳았고, 3년 후 넷째를 낳았다. 이후 미국 연수를 가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지금 세 살이 된 다섯째 막내다. 조 교수는 첫째부터 넷째 아이를 모두 직접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아빠이자 세상을 보게 해 준 의사인 셈이다. 요즘은 육아 문제로 조금 힘들다고 한다. 일단 아내에게 미안하다. 도우미를 쓰고는 있지만 다섯 아이를 챙기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아내는 당분간 소아과 의사로서의 삶을 내려놓았다. 파트타임제로 잠깐 의사 일을 할 뿐 나머지 시간에는 내내 엄마로서 육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아이들이 빨리 커서 아내가 의사로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임신 전 건강 상태가 평생 좌우”조 교수는 현재까지 논문 110여 편을 썼다. 이 중 70여 편에 주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주로 임신 관련 질병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군의관 시절인 2011년부터 현재까지 9년째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임신하기 전 산모의 건강 상태가 출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밝혀냈다. 연구는 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건강보험공단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간 내부의 효소 수치를 ‘간수치’라고 한다. AST나 ALT가 대표적이다. 이 수치가 높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간염, 간경화나 다른 만성 질환에 걸릴 수 있다. 임신하기 전에 이 간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선다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2018년 조 교수는 임신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은 임산부 19만여 명의 임신 후 상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임신하기 전에 이미 간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면 임신성 고혈압이 발생할 위험도가 21%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9년에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 임신하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은 임산부 16만여 명의 혈당치를 체크했다. 그 여성들을 추적한 결과 임신 전에 혈당 변동치가 큰 임산부의 임신성 당뇨병 발생 위험이 20% 정도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조 교수는 다시 임신 전에 건강 검진을 받은 12만여 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충치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임신 전에 충치가 있을 때 거대아를 출산할 위험이 15% 증가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임신부의 불편 줄이는 제품 개발”조 교수는 미국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크게 놀랐다고 한다. 산모를 위한 편의 시설이 너무 잘돼 있었다는 것. 몸에 착용하면 차가워지는 1회용 패드가 복도 곳곳에 비치돼 있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다. 국내에서는 출산을 끝낸 산모들은 염증 등을 억제하기 위해 얼음주머니를 쓴다. 조 교수는 “산모라면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알고 있던 것들이, 거기서는 참지 않아도 해결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현재 사내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벤처기업에서 이 ‘쿨링 패드’를 도입하기로 하고 몇몇 업체에 타진했다. 하지만 주문량이 5만∼10만 개는 돼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의 자금력으로는 불가능해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여건만 되면 쿨링 패드를 도입하겠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산모를 위한 1회용 팬티도 만들 생각이다. 현재 디자인까지 나왔으며 곧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단다. 태아를 단단히 받쳐줘야 할 자궁 경부가 임신 중 힘없이 열릴 때가 있다. 이 경우 현재는 자궁 경부의 주변을 실로 묶는 수술을 하지만 염증, 출혈, 합병증의 위험이 있다. 조 교수는 부작용 없이 실리콘 밴드로 자궁 경부를 묶는 방법을 개발했다. 현재 시제품 개발 직전 단계에 있다. 이 밖에도 일찍 양막이 터질 때를 대비해 홍합 추출물을 이용한 치료제 등도 개발 중이다. 조 교수는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도 좋지만 임산부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연구를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조 교수의 임신부 건강 조언태아 염려해 약 끊거나 고위험 임신 자책 말길임신 前부터 몸 관리를고위험 임신부들을 볼 때마다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의외로 많은 임신부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자신이 너무 화를 내서 혹은 너무 관리하지 않은 게 ‘고위험’의 원인이 됐다고 자책하는 것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런 자책감은 본인은 물론이고 태아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편안하게 마음먹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위험 임신부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임신부들이 임신한 후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한다. 고열이 나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약을 먹지 않는 임신부도 많다. 조 교수는 이 또한 옳지 않다고 했다. 조 교수는 “고열이 지속되면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참는 것보다는 의사와 상의해서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특정 질병의 경우 임신 후에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을 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임신중독증을 낮추려면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할 때도 있다. 조 교수는 “임신했다고 해서 모든 약을 끊기보다는 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임신 계획을 세우기 이전에 건강관리 계획부터 세울 것을 조 교수는 권했다. 임신하면 대체로 10주 이내에 태아의 기관들이 만들어진다. 이미 몸속에는 태아가 자라고 있지만 임신 사실을 모를 때도 많다. 이때부터 ‘몸 관리’를 하면 늦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소한 임신 계획을 세우기 한 달 이전에 임신에 대비한 건강관리 계획부터 세우라는 것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50대 직장인 강일우(가명) 씨는 현재 다이어트 중이다. 키가 173cm인데 체중이 80kg을 넘어서자 화들짝 놀라 지난해 9월 초부터 시작했다. 현재 강 씨의 체중은 74kg. 4개월 동안 6kg을 줄였다. 강 씨는 원래 헬스장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후로 헬스장에 가는 게 겁이 났다. 게다가 12월 이후에는 헬스장이 집합금지 시설이 되면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강 씨는 다이어트 장소를 집으로 옮겼다. 강 씨의 다이어트 방법은 단순했다. 기왕이면 누워 있지 말고, 마구 움직여 보자는 것. TV를 볼 때도 거실에 매트를 깔고 제자리 뛰기를 했다. 귀가 시간이 빨라진 후로는 아내의 집안일도 도왔다. 식사량은 4분의 3으로 줄였다. 체중계를 사다가 매일 측정했다. 그 결과 한 달이 지나자 2kg 정도 빠졌다.》그 다음부터는 체중 감량 속도가 더뎠다. 그래도 꾸준히 움직였다. 그 덕분에 체중은 다시 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빠졌다. 강 씨는 “딱히 다른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체중이 빠져 놀랐다”며 “향후 4개월 동안 4kg을 더 줄여 최종 70kg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 안 일상생활이 다이어트?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야외 활동이 더욱 어려워졌다. 평소 꾸준히 운동하던 사람도 집에 처박혀 있으니 운동 부족을 실감한다. 운동과 담을 쌓았던 사람은 더 심각하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기 일쑤다. 식탁 차리는 것도 귀찮아 배달 음식을 먹는다. 계속 누워 있다 보니 잠만 늘어난다. 활동량이 턱없이 부족해 ‘시체’ 수준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강 씨처럼 발상의 전환을 하자. ‘집콕 생활’에서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 따로 고강도 운동을 하지 않아도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다이어트 전문가인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를 ‘운동 안 하고도 일상생활만으로 살을 빼는 다이어트’라고 불렀다.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가장 슬기로운 ‘집콕 다이어트’인 셈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을 기초대사량이라고 하는데, 하루 기준 1000∼1700Cal다. 성별, 나이, 체중, 키 등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젊을수록 높고, 남성이 여성보다 높다. 대체로 1400Cal 정도를 평균치로 잡는다. 이 기초대사량에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작업대사량)을 합한 것이 1일 대사량이다. 대체로 2000∼2700Cal가 된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의 원리는 단순하다. 일상생활에서 활동량을 늘려 먹는 것보다 더 열량을 소비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루 권장 섭취 열량은 남성 2700Cal, 여성 2000Cal 내외다. 강 교수에 따르면 섭취하는 열량보다 소비하는 열량이 많으면 체중은 빠진다. 2000Cal의 음식을 먹었는데 2300Cal를 소비한다면 300Cal에 해당하는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 강 교수는 미국 다이어트 교과서를 참고해 한국인의 신체 활동별 소비 열량을 계산한 뒤 활동 강도를 나눴다. 활동이 전혀 없는 수면 상태는 0등급이며, 빠른 속도의 달리기는 최고 강도인 9등급이 된다. ○ “눕기보다 앉고, 앉기보다 서라”강 교수가 만든 표에는 등급별로 체중 1kg당 1분 소비 열량이 제시돼 있다. 활동별로 실제 소비 열량을 알고 싶다면 1분당 소비 열량에 체중과 활동시간을 곱하면 된다. 예컨대 70kg의 성인이 1시간 동안 집 안 구석구석 창문을 닦았다면(5등급 활동) 소비 열량은 294Cal(0.07×70×60)가 된다. 밥 한 공기 열량을 소비하는 셈이다. 낮은 등급의 활동을 높은 등급으로 의도적으로 올리는 게 중요하단다. 눕기보다는 앉고, 앉기보다는 서며, 멀뚱히 서 있기보다는 서서 무슨 일이든 하라는 얘기다. 제자리걷기와 뛰기를 하거나 집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다이어트가 된다. 60kg인 여성이 2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 3시간 동안 소파에 누워서 TV를 봤다고 치자. 5시간 동안 이 여성이 소비한 열량은 288Cal에 불과하다. 잠자는 활동은 강도가 아예 없으며, 누워서 TV를 시청하는 활동은 가장 강도가 낮은 1등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여성이 TV를 시청하는 3시간 동안 줄곧 서 있었다면 소비 열량은 396Cal로 늘어난다. 만약 이 여성이 좀 더 부지런해지자고 마음먹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질까. 낮잠을 1시간으로 줄이고, 1시간 동안은 의자에 곧추 앉아서 TV를 시청했다. 1시간은 다림질을 하며 TV를 봤다. 나머지 2시간 동안 손빨래를 하거나 청소기로 카펫 청소를 했다. 이렇게 하면 소비 열량은 774Cal가 된다. 낮잠 자고 누워서 TV 볼 때의 2배 가까운 열량을 소비한 것. 활동을 조금 늘렸을 뿐인데, 웬만한 한 끼 식사에 해당하는 열량을 줄일 수 있다. 운동을 얼마나 오래하는 게 좋은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강 교수는 “북미스포츠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똑같은 강도의 운동이라면 1시간을 이어서 하나 10분씩 6회 나눠 하나 소비되는 열량은 같다”고 말했다. 굳이 힘겹게 1시간의 운동 시간을 채우려 하지 말고 나눠서 해도 다이어트 효과는 같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5분, 10분의 자투리 시간을 그냥 허비하지 말고 움직이는 게 이 다이어트의 또 다른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식의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이 목적일 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심폐지구력 향상이 목적이라면 운동 강도를 높여야 한다. 드라마틱한 체중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 교수는 “이 다이어트는 몇 달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평생 지속하는 다이어트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