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신규진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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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newj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9~2025-12-19
대통령70%
정치일반7%
국방7%
사건·범죄7%
남북한 관계4%
칼럼2%
학술2%
검찰-법원판결1%
  • 성희롱 판치는 ‘예비 고교생 단톡방’

    “귀여운 ×아, 왜 대답 안 하냐?”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이런 메시지가 뜨자 활발하던 채팅방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서울 A고교 예비 입학생 150여 명이 참가하는 채팅방이다. 비속어 메시지를 올린 건 이 학교 입학을 앞둔 B 군(16)이었다. 이름이 언급된 C 양(16)은 곧바로 채팅방에서 퇴장했다. C 양은 “메시지가 불쾌했지만 대꾸하면 (B 군이)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입학을 앞둔 예비 고교생 사이에 이런 단톡방 개설이 유행이다. ‘예비 ○○고’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만든 뒤 서로서로 친구를 초대한다. 학교 오리엔테이션 일정이나 선생님 평판 등을 공유하고 친해지려는 목적이다. 일종의 ‘셀프 예비 소집’인 셈이다. 물론 해당 학교는 전혀 상관없다. 문제는 채팅방이 성희롱이나 ‘일진놀이’ 공간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비 A고교 단톡방에서는 일부 남학생이 여학생 프로필 사진을 놓고 “여기 여자들 노잼” “내가 귀엽다고 하는 여자 손 들어라”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여학생도 참여 중이지만 얼굴과 신체를 언급하며 노골적인 성적 표현도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술을 마시고 흡연하는 내용이 마치 자랑하듯 올라온다. 몸에 새긴 문신 사진을 올린 남학생도 있다. 채팅방에 초대돼 참가한 이모 양(15)은 “입학도 하기 전인데 소위 일진들이 나타난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채팅방에서 퇴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채팅방 초대 여부 자체가 진학할 학교에서 마치 편 가르기나 서열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경기 D고교에 진학할 예정인 박모 군(16)은 “100명이 넘는 학생과 굳이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혹시나 나만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워서 채팅방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예비 고교 단톡방의 부작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부장교사는 “예비 입학생 채팅방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바로 신고하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힘의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청소년의 욕망과 소셜미디어가 만난 새로운 사이버 폭력의 공간이다. 일시적으로 관리가 약해지는 시기인 만큼 학교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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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같은 연수, 억지 춘향 장기자랑… 나 취직했다! 나 사표냈다

    ‘불참은 없다. 전원 참석!’ 입사한 지 한 달 만인 2016년 중반경 총무팀에서 받은 e메일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신입사원인 우리의 임무는 회사 체육대회에서의 장기자랑. 혹독한 취업관문을 거치느라 노는 법조차 잃어버린 미생(未生)들에게 담당자는 “분위기가 썰렁해지면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업무를 마친 우리들은 한밤중에 모여 춤을 연습했다. 아이돌 춤을 따라 하느라 야근을 하게 될 줄이야….연습하느라 풀어놓은 넥타이를 보니 입사 첫날이 떠올랐다. “근속연수 35년을 채우겠습니다. 신입사원 박정후(가명·30)입니다.” 회사 로고와 같은 색깔의 넥타이를 하고 간 나의 자기소개에 임원들은 박장대소했다. 그땐 진심이었다. 40여 곳을 탈락한 끝에 합격한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가 돼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엉뚱한 곳에 ‘신입의 열정’을 요구했다. 1000여 명이 모인 회사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신입사원 장기자랑’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될 수 없다면 선택은 하나였다. 반짝이 재킷과 핫팬츠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로 신고식을 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괴감이 이후 1년 넘게 나를 괴롭혔다. 돌이켜보면 입사 직후 연수원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10일간 외부와 차단된 채 합숙훈련을 했다. 아침엔 구보, 저녁엔 점호를 하는 게 흡사 군대 같았다. 주말 외출도 금지됐다. 오죽하면 취업사이트에 이런 질문들이 올라올까. ‘가족 결혼식인데 외출하겠다고 말하면 찍힐까요?’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어요. 연수원에서 외출을 허락할까요?’ 경조사 참석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연수원에서 배운 건 업무가 아니었다. 신입연수란 창업주의 정신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세뇌당하는 과정 같았다. ‘창업주의 자서전을 읽고, 그 일화를 연극으로 만드시오.’ 이런 과제를 받을 땐 한숨만 푹푹 나왔다. 입사 초기 이 고비만 넘기면 ‘정상적인 회사생활’이 기다릴 줄 알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근로계약서상 출근시간은 오전 8시지만 간부들은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하듯 새벽 출근을 미덕으로 여겼다. 업무는 오전 9시 넘어 시작하더라도 사무실 ‘착석’은 오전 7시를 넘겨선 안 됐다. 신입사원 정신교육을 한다며 새벽 조깅을 하는 회사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해 한 동료가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냈다. ‘사장과 사원대리급 사원 간담회’에서다. 사장은 어떤 건의사항이라도 허심탄회하게 해 달라고 했다. 동료는 “해외 영업 업무로 오전 5시경 출근할 때가 있다. 그때만이라도 오후 5시에 퇴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어진 사장의 답변에 모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자네는 회사에 대한 희생정신이 없군.” 입사한 지 1년 반이 된 올해 초 나는 결국 사표를 냈다. 업무효율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윗사람 보여주기식 새벽출근과 야근, 단체행사의 강압적 참여에 심신은 지쳐갔다. 성과 없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만 갉아먹는 행동을 강요당할 때마다 ‘퇴사 마일리지’가 쭉쭉 쌓였다. 어쩌면 열심히 업무를 배우겠다며 눈을 반짝이던 신입사원에게 반짝이 의상을 나눠주며 야간 춤 연습을 시킬 때 이미 퇴사를 예약했는지 모른다. 실제 몇몇 동기가 그 일 이후 이직을 공공연히 얘기했다. ‘퇴준생(퇴직준비생)’ 중 내가 먼저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향해 나약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조차 분명치 않은 강압적 교육과 단체활동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게 패기이고 열정일까. 그것을 미생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우린 너무 젊다.▼군대식 신입교육… “애사심? 관두고 싶어져”▼지난해 말 KB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중 100km 행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여직원에게 피임약을 권해 물의를 빚었다. 행군 때 생리로 고생하지 않도록 한 조치지만 오히려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번졌다. ‘신입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군대식 점호 등 무리한 훈련에 사회 초년생들의 불만이 크다. 지난달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회원 4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인 261명은 기업연수원 입소 경험이 있었다. 이 중 34%는 연수원 교육을 받은 뒤 입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실제 퇴사를 했다고 응답했다. 신입사원들은 ‘매 시간 꽉 채워진 빈틈없는 일정’(18%) ‘집체교육 등 지나친 단체생활 강조’(12%) ‘이른 기상시간’(10%) 등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들은 입사 초부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회사의 강압적 교육방식을 ‘갑질’에 비유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군대식 신입교육이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이유에 대해 “사람을 뽑았으면 회사도 그 사람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힘든 교육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원이 있다면 일찌감치 걸러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B기업 인사 담당자는 “함께 일하려면 기업의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보니 기업도 많은 비용을 들여 신입연수를 하는 것”이라며 “다만 장거리 행군 등 무리한 프로그램은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근로자의 단결심 고양과 체력단련 등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군대식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 의원은 “직원들의 자율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잡학사전 : 수습사원의 법적 신분최저임금의 90% 보장…이유없이 해고 못해근로기준법에 수습사원 규정은 별도로 없다. 수습기간과 처우는 사업장마다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단체협약으로 정한다. 수습사원의 월급은 일반 직원보다 적어도 상관없지만 최저임금의 90%는 돼야 한다. 올해 최저월급(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은 157만3770원이므로 141만6393원 이상은 줘야 한다. 수습사원도 엄연한 근로자다. ‘근무태만’ 같은 정당한 사유(근로기준법 23조) 없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특히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최저임금법 5조에 따라 수습기간이 3개월 이내여야 한다. 1년 미만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상대로는 수습기간을 둘 수 없다. 월급 감액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기 근로자를 대상으로 수습기간을 둬 월급을 깎는 ‘꼼수’를 막기 위한 조치다.김수연 suyeon@donga.com·신규진 기자 김수연 sykim@donga.com·서동일 기자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여러분의 ‘무너진 워라밸’을 제보해 주세요. 설문 링크()에 직접 접속하거나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블라인드’를 통해 사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동아닷컴() 내 ‘2020 행복원정대: 워라밸을 찾아서’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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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강기, 줄 잡지 말고 벽보며 내려오세요

    높이 6m 남짓한 난간에 서자 다리가 떨렸다. 의지할 건 완강기밖에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아래로 몸을 던지려던 순간 교관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절대 앞으로 뛰어내리시면 안 됩니다!” 9일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 난생처음 완강기 체험에 나선 기자의 몸을 김현선 교관(40·소방장)이 붙잡았다. 김 교관은 “일단 뒤돌아선 뒤 한 발만 뺀다고 생각하면서 하강하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자세를 바꿨다. 단 3초 만에 바닥에 발이 닿았다.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떨어지는 건 아닐까’란 걱정은 기우였다. 완강기 자체는 낯설지 않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숙박업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용법을 모른다. 소화기나 소화전에 비해 더 복잡해 보여서다. 하지만 화염과 유독가스로 실내 대피로가 차단됐을 때 바로 완강기가 ‘최후의 수단’이다. 완강기와 친해져야 할 이유다. 기자도 이날 세 차례의 하강훈련을 하면서 완강기에 익숙해졌다. 그만큼 사용하기가 어렵지 않다. 완강기함을 열면 우선 실패처럼 돌돌 말린 줄이 눈에 띈다. 양쪽 끝에 안전벨트가 달려 있다. 하강 때 속도를 조절하는 조속기(調速機)와 지지대에 거는 고리가 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고리를 조속기에 연결한 뒤 나사를 돌려 완강기 지지대에 결합한다 △머리 위로 겨드랑이 사이에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하강 지점에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발부터 밖으로 빼 벽면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전하게 하강한다. 완강기는 층마다 길이가 다르다. 보통 한 층당 3m로 계산하면 된다. 최소 25kg 이상의 하중을 받아야 내려간다. 최대 무게는 150kg 이하다. 가벼운 어린이는 안전벨트를 채워 위에서 줄을 당겨 내려보내야 한다. 안전벨트 착용이 불가능한 영유아는 아기띠 등으로 보호자 몸에 밀착시켜 함께 하강한다. 절대 아이를 손으로 안고 내려가선 안 된다. 사용법을 알아도 처음 완강기를 타면 당황한다. 우선 안전벨트 착용 때 겨드랑이에 팔을 붙이고 양손을 가슴 앞으로 펴야 한다. 하강 시 부딪힐 위험이 있는 장애물을 팔로 짚거나 쳐내기 위해서다. 팔을 십자로 벌리면 몸을 보호할 수 없고 양팔을 위로 들면 안전벨트가 벗겨질 위험이 크다. 줄을 최대한 팽팽하게 해야 한다. 내려갈 때 줄이 꼬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을 보고 뛰어내리면 안 된다. 건물 벽에 부딪혀 다칠 수 있다. 점프도 금지다. 줄을 잡아서도 안 된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 수 있다. 손이 쓸려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완강기, 어렵지 않아요[1] 지지대 위치 조정[2] 고리를 조속기에 끼워 지지대 결합[3] 안전벨트를 겨드랑이 사이에 착용[4] 팔을 겨드랑이에 붙임[5] 아래에 장애물 여부를 확인 [6] 발을 살짝 뒤로 빼면서 하강}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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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라밸]반짝이 재킷과 핫팬츠로 신입 신고식…쌓여가는 퇴사 마일리지

    동아일보는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웹뉴(웹툰·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취재팀이 찾은 일과 삶의 붕괴 실태를 웹툰 작가들에게 보내 매회 관련 웹툰을 4컷짜리로 싣는다. 7회 ‘취뽀생? 퇴준생!’ 웹툰은 ‘규찌툰’ 시리즈로 유명한 남현지 작가가 과도한 신입교육과 단체활동으로 워라밸을 잃고 사표를 쓴 회사원 박정후(가명·30) 씨의 사연을 토대로 그렸다. ‘불참은 없다. 전원참석!’ 입사한 지 한 달 만인 2016년 중순경 총무팀에서 받은 e메일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신입사원인 우리의 임무는 회사 체육대회에서의 장기자랑. 혹독한 취업관문을 거치느라 노는 법조차 잃어버린 미생(未生)들에게 담당자는 “분위기가 썰렁해지면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업무를 마친 우리들은 한밤중에 모여 춤을 연습했다. 아이돌 춤을 따라하느라 야근을 하게 될 줄이야…. 연습하느라 풀어놓은 넥타이를 보니 입사 첫 날이 떠올랐다. “근속연수 35년을 채우겠습니다. 신입사원 박정후(가명·30)입니다.” 회사 로고와 같은 색깔의 넥타이를 하고 간 나의 자기소개에 임원들은 박장대소했다. 그땐 진심이었다. 40여 곳을 탈락한 끝에 합격한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가 돼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엉뚱한 곳에 ‘신입의 열정’을 요구했다. 1000여 명이 모인 회사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신입사원 장기자랑’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될 수 없다면 선택은 하나였다. 반짝이 재킷과 핫팬츠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로 신고식을 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괴감이 이후 1년 넘게 나를 괴롭혔다. 돌이켜보면 입사 직후 연수원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10일간 외부와 차단된 채 합숙훈련을 했다. 아침엔 구보, 저녁엔 점호를 하는 게 흡사 군대 같았다. 주말 외출도 금지됐다. 오죽하면 취업사이트에 이런 질문들이 올라올까. ‘가족 결혼식인데 외출하겠다고 말하면 찍힐까요?’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어요. 연수원에서 외출을 허락할까요?’ 경조사 참석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연수원에서 배운 건 업무가 아니었다. 신입연수란 창업주의 정신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세뇌당하는 과정 같았다. ‘창업주의 자서전을 읽고, 그 일화를 연극으로 만드시오.’ 이런 과제를 받을 땐 한숨만 푹푹 나왔다. 입사 초기 이 고비만 넘기면 ‘정상적인 회사생활’이 기다릴 줄 알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근로계약서상 출근시간은 오전 8시지만 간부들은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하듯 새벽 출근을 미덕으로 여겼다. 업무는 오전 9시 넘어 시작하더라도 사무실 ‘착석’은 오전 7시를 넘겨선 안 됐다. 신입사원 정신교육을 한다며 새벽 조깅을 하는 회사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해 한 동료가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냈다. ‘사장과 사원대리급 사원 간담회’에서다. 사장은 어떤 건의사항이라도 허심탄회하게 해 달라고 했다. 동료는 “해외 영업 업무로 오전 5시경 출근할 때가 있다. 그때만이라도 오후 5시에 퇴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어진 사장의 답변에 모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자네는 회사에 대한 희생정신이 없군.” 입사한 지 1년 반이 된 올해 초 나는 결국 사표를 냈다. 업무효율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윗사람 보여주기식 새벽출근과 야근, 단체행사의 강압적 참여에 심신은 지쳐갔다. 성과 없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만 갉아먹는 행동을 강요당할 때마다 ‘퇴사 마일리지’가 쭉쭉 쌓였다. 어쩌면 열심히 업무를 배우겠다며 눈을 반짝이던 신입사원에게 반짝이 의상을 나눠주며 야간 춤 연습을 시킬 때 이미 퇴사를 예약했는지 모른다. 실제 몇몇 동기들이 그 일 이후 이직을 공공연히 얘기했다. ‘퇴준생(퇴직준비생)’ 중 내가 먼저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향해 나약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할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조차 분명치 않은 강압적 교육과 단체활동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게 패기이고 열정일까. 그것을 미생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우린 너무 젊다. ▼ 못 버티는 사원, 일찌감치 걸러내자? 워라밸 빼앗는 신입교육 ▼지난해 말 KB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중 100㎞ 행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여직원에게 피임약을 권해 물의를 빚었다. 행군 때 생리로 고생하지 않도록 한 조치지만 오히려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번졌다. ‘신입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군대식 점호 등 무리한 훈련에 사회 초년생들의 불만이 크다. 지난달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회원 4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인 261명은 기업연수원 입소 경험이 있었다. 이 중 34%는 연수원 교육을 받은 뒤 입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실제 퇴사를 했다고 응답했다. 신입사원들은 ‘매 시간 꽉 채워진 빈틈없는 일정’(18%) ‘집체교육 등 지나친 단체생활 강조’(12%) ‘이른 기상시간’(10%) 등에 불만을 나타났다. 이들은 입사 초부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회사의 강압적 교육방식을 ‘갑질’에 비유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군대식 신입교육이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이유에 대해 “사람을 뽑았으면 회사도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힘든 교육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원이 있다면 일찌감치 걸러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B기업 인사 담당자는 “함께 일하려면 기업의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보니 기업도 많은 비용을 들여 신입연수를 하는 것”이라며 “다만 장거리 행군 등 무리한 프로그램은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근로자의 단결심 고양과 체력단련 등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군대식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신 의원은 “직원들의 자율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잡학사전 : 수습사원의 법적 신분 근로기준법에 수습사원 규정은 별도로 없다. 수습기간과 처우는 각 사업장마다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단체협약으로 정한다. 수습사원의 월급은 일반 직원보다 적어도 상관없지만 최저임금의 90%는 돼야 한다. 올해 최저월급(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은 157만3770원이므로 141만6393원 이상은 줘야 한다. 수습사원도 엄연한 근로자다. ‘근무태만’ 같은 정당한 사유(근로기준법 23조) 없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특히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최저임금법 5조에 따라 수습기간이 3개월 이내여야 한다. 1년 미만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상대로는 수습기간을 둘 수 없다. 월급 감액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기 근로자를 대상으로 수습기간을 둬 월급을 깎는 ‘꼼수’를 막기 위한 조치다.● 여러분의 ‘무너진 워라밸’을 제보해주세요. 설문 링크()에 직접 접속하거나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블라인드’를 통해 사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동아닷컴() 내 ‘2020 행복원정대: 워라밸을 찾아서’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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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이냐, 재산권이냐

    비상구는 법을 어기고 설치해도 좋은 걸까. 법을 어겼다고 비상구를 막아도 좋은 걸까. 서울 도심 지하볼링장 주인이 공유(共有)부지에 승인을 받지 않고 만든 새 비상구를 놓고 다른 건물 소유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 건물주는 “공유부지에 공사하려면 소유주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일단 폐쇄를 요구한다. 종로구 지하 5층, 지상 15층 건물 지하 1층에서 약 1000m² 규모 볼링장을 2014년 6월부터 운영해온 이모 씨(34)는 2015년 9월 기존 출입문에서 30m 떨어진 맞은편에 비상구를 하나 더 만들었다. 기존 비상구는 이 씨가 운영하기 전부터 볼링 레인 뒤편에서 볼링 핀 설치기계로 막혀 있었다. 전 주인은 2014년 안전점검을 한 한국화재보험협회로부터 ‘비상출구를 보완하라’는 권고를 들었다. 나무로 된 16개 볼링 레인에는 항상 기름칠이 돼 있다. 한 번에 2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어 주말 저녁에 불이라도 나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이 씨는 주장한다. 이 씨는 “(공사를 해도) 건축법상 하자 없고 건물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조언을 받고 공사를 진행했다고 말한다. 자문에 응해준 측은 변호사가 아니라 건축업체였다. 건물 지분을 가진 다른 일부 소유주는 반발했다. 현재 이 건물은 137명이 구분 소유하고 있다. 비상구를 만들기 위해 개조한 지상 1층 화단은 공용부지여서 개조를 하려면 이들 구분 소유주의 정기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 이 씨가 “비상구를 새로 만들겠으니 심의해 달라”고 2015년 정기총회에 의뢰한 적은 없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총회 직후 구분 소유주 20명으로 구성된 임시 이사회에서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설치하라’는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이후 ‘안전검사에서 이상이 없어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우편으로 보냈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발하는 구분 소유주 가운데 볼링장 바로 옆에서 병원을 하는 A 원장과 다른 소유주 일부는 2016년과 지난해 볼링장을 실소유한 모 주식회사를 상대로 시설물 제거 등 청구 소송을 각각 냈다. 이 주식회사는 이 씨의 모친이 운영하고 있다. 소송을 당한 이 씨는 지난해 8월 관할 종로소방서에 새로 만든 비상구의 적합성을 판단해 달라고 민원을 냈다. 종로소방서 측은 “기존 비상구는 유사시 사용이 불가하다. 새 비상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문서로 답변했다. 종로소방서는 비상구가 적법한 절차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A 병원 원장은 “볼링장에서 1층으로 바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값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다. 본인 이익을 위해 공유부지를 침범해 놓고 안전을 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괘씸하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

    •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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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금특명, 일폭탄을 피하라

    동아일보는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웹뉴(웹툰·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취재팀이 찾은 일과 삶의 붕괴 실태를 웹툰 작가들에게 보내 매회 관련 웹툰을 4컷짜리로 싣는다. 6회 ‘불타는 금요일’ 웹툰은 ‘파페포포’ 시리즈로 유명한 심승현 작가가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직전 상사의 업무지시로 괴로워하는 3년차 회사원 김현지(가명·여) 씨의 사연을 토대로 그렸다.금요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의 한 가구회사 디자인팀 사무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서둘러선 안 된다. 소리가 나지 않는 ‘금요일용’ 플랫 슈즈를 신고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K 선배도 까치발을 들고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첩보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바로 그때! “현지 씨 잠깐 와보세요.” 동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들의 눈빛에서 안도와 연민이 교차한다. 이번 주 ‘불금’도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사무실 숨바꼭질은 금요일 퇴근시간마다 반복된다. 술래는 팀장. 20명이 넘는 팀원은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말을 앞두고 ‘일 폭탄’이 날아들 수 있어서다. 왜 이번에도 나일까. “별 건 아닌데….” 등골이 오싹하다. 얼마나 대형 폭탄이기에 이런 밑밥을 까나. 문서 더미를 뒤적이던 팀장이 파일 하나를 건넨다. 어림잡아 80쪽은 돼 보인다. “내용 정리해서 월요일 오전까지 PPT(파워포인트) 만들어줘. 수요일 임원 보고야.” ‘화요일까지 만들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네” 하고 돌아서는데 팀장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데드라인 맞춰 PPT 만들 일이 많으니까 확실히 연습해 놓아야 해.” 주말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 불이 났다. ‘나 이제 출발! 다들 늦지 마.’ 불금에 들뜬 친구들의 채팅 수다에 스마트폰을 구석에 엎어 놓았다. ‘오늘 못 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연락이 오지 않을 게 뻔하다. 분명 ‘현지는 또 야근인가 보네…’ 하고 넘어갈 거다. 토요일 오전 11시. 스마트폰 너머로 남자친구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카페 데이트야?” 카페에서 나는 일하고, 남자친구는 영화 보고…. 주말 우리의 일상이다. 1시간 뒤 남자친구가 노트북을 들고 나타났다. 오늘은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를 다운로드해 왔단다. 옆에서 턱을 괴고 영화를 보는 남자친구 모습이 짠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팀장이다. “지금까지 한 것 좀 보내봐.” 중간점검이다. 잠시 뒤 팀장은 “검토해봤는데 4페이지에 PPT 효과를 줬으면 좋겠어. 손짓을 하면 글씨가 튀어나오는 거 있잖아.” 휴대전화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2년 전 파릇한 신입사원 때는 바쁜 시간을 쪼개 친구들을 만나 회사 ‘뒷담화’를 하는 게 낙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내는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더욱이 주말에도 일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일 있어? 얼굴이 흙빛이야”란 말을 듣기 일쑤다. 그때도 난 딴생각을 한다. ‘얼른 가서 자료 정리해야 하는데….’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심지어 회사는 휴가를 앞두고 일 폭탄을 날렸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다. “휴가 잘 다녀오고, 쉬다가 고객사 한번 만나봐.” 휴가 이틀 전 팀장이 말했다. 고객사와의 미팅은 휴가 기간 중간에 잡혀 있었다. 위약금을 물면서 코타키나발루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했다. 팀장만 ‘공공의 적’이 아니다. 금요일 오후 ‘이번 주말은 쉴 수 있겠지’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회사 선배가 화들짝 놀라 후배들을 소집했다. 월요일까지 보고할 수납장 디자인 자료를 깜빡 잊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건 꼭 금요일 오후에 생각날까. 서로 눈치를 보며 폭탄 돌리기에 들어가면 결국 팀 막내가 떠안는다. 후배에게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위로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저녁을 챙겨주며 물었다. “이제 좀 편해졌니?” 밥을 한술 떠 입에 넣는데 눈물이 났다.▼ 직장인 1007명 “팀장님 워라밸 노력 5.32점” ▼“상사병 때문에 ‘일하기실어증’에 걸릴 지경이다.” ‘상사병’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는 ‘상사(相思)’병을 직장 ‘상사(上司)’로 바꾼 신조어다. 과도한 업무 부담을 안겨 부하직원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직장상사 때문에 화병이 난다는 의미다. 그런 직장상사에 지쳐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을 ‘일하기실어증’이라고 한다. ‘싫어’와 ‘실어(失語)’의 발음이 유사한 데서 비롯됐다. 직장인 사이에서 이런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직장상사는 워라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생활균형재단 WLB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직장인 1007명을 대상으로 ‘직장상사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느냐’고 물은 결과 5.32점(10점 만점)에 그쳤다. 응답자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직장상사의 워라밸 노력 점수가 높았다. WLB연구소는 “고소득인 경우 관리자 집단이 많은 반면 저소득일수록 시간제 혹은 단기근로가 많다”며 “회사 내 위치와 채용 형태에 따른 복리후생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워라밸 붕괴를 직장상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팀장이나 부장 등 직장상사도 조직 내에서 누군가의 부하직원이기 때문이다. WLB연구소 안선영 연구원은 “직장상사가 개인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회사 내 워라밸 전담팀을 구성해 워라밸 제도가 정착하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잡학사전 : 신입사원휴가입사 1년 미만 근로자는 한달 개근하면 1일 휴가 ‘사용자는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근로기준법 60조 2항이다. 이에 따라 신입사원이 1년 개근하면 11일의 유급휴가가 생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0조 3항은 신입사원이 이 휴가를 사용하면 이듬해 연차휴가에서 차감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이 입사연도에 3일의 휴가를 사용했고, 이듬해 연차휴가가 15일 생겼다면 실제로는 3일을 차감한 12일만 사용할 수 있다. 올해 5월 29일부터는 이 3항을 삭제한 개정안이 시행돼 신입사원이 연차를 쓰더라도 이듬해 연차에서 차감하지 않는다. 신입사원도 ‘1년 차 휴가’를 온전히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여러분의 ‘무너진 워라밸’을 제보해주세요. 설문 링크()에 직접 접속하거나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블라인드’를 통해 사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동아닷컴() 내 ‘2020 행복원정대: 워라밸을 찾아서’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0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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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라밸] 금요일 퇴근직전 ‘일 폭탄’ 투척…‘불금’과 작별인사

    동아일보는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웹뉴(웹툰·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취재팀이 찾은 일과 삶의 붕괴 실태를 웹툰 작가들에게 보내 매회 관련 웹툰을 4컷짜리로 싣는다. 6회 ‘불타는 금요일’ 웹툰은 ‘파페포포’ 시리즈로 유명한 심승현 작가가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직전 상사의 업무지시로 괴로워하는 3년차 회사원 김현지(가명·여) 씨의 사연을 토대로 그렸다. 금요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의 한 가구회사 디자인팀 사무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서둘러선 안 된다. 소리가 나지 않는 ‘금요일용’ 플랫 슈즈를 신고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K 선배도 까치발을 들고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첩보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바로 그때! “현지 씨 잠깐 와보세요.” 동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들 눈빛에서 안도와 연민이 교차한다. 이번 주 ‘불금’도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사무실 숨바꼭질은 금요일 퇴근시간마다 반복된다. 술래는 팀장. 20명이 넘는 팀원들은 머리를 책상에 쳐 박고 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말을 앞두고 ‘일 폭탄’이 날아들 수 있어서다. 왜 이번에도 나일까. “별 건 아닌데…” 등골이 오싹하다. 얼마나 대형 폭탄이기에 이런 밑자락을 까나. 문서 더미를 뒤적이던 팀장이 파일 하나를 건넨다. 어림잡아 80쪽은 돼 보인다. “내용 정리해서 월요일 오전까지 PPT(파워포인트) 만들어줘. 수요일 임원 보고야.” ‘화요일까지 만들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네”하고 돌아서는데 팀장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데드라인 맞춰 PPT 만들 일이 많으니까 확실히 연습해 놓아야 해.” 주말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 불이 났다. ‘나 이제 출발! 다들 늦지 마.’ 불금에 들뜬 친구들의 채팅 수다에 스마트폰을 구석에 엎어 놓았다. ‘오늘 못 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연락이 오지 않을 게 뻔하다. 분명 ‘현지는 또 야근인가 보네…’하고 넘어갈 거다. 토요일 오전 11시. 스마트폰 너머로 남자친구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카페 데이트야?” 카페에서 나는 일하고, 남자친구는 영화 보고…. 주말 우리의 일상이다. 1시간 뒤 남자친구가 노트북을 들고 나타났다. 오늘은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를 다운받아 왔단다. 옆에서 턱을 괴고 영화를 보는 남자친구 모습이 짠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팀장이다. “지금까지 한 것 좀 보내봐.” 중간점검이다. 잠시 뒤 팀장은 “검토해봤는데 4페이지에 PPT 효과를 줬으면 좋겠어. 손짓을 하면 글씨가 튀어나오는 거 있잖아.” 휴대전화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2년 전 파릇한 신입사원 때는 바쁜 시간을 쪼개 친구들을 만나 회사 ‘뒷담화’를 하는 게 낙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내는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더욱이 주말에도 일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일 있어? 얼굴이 흙빛이야”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그때도 난 딴 생각을 한다. ‘얼른 가서 자료 정리해야 하는데…’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심지어 회사는 휴가를 앞두고 일 폭탄을 날렸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다. “휴가 잘 다녀오고, 쉬다가 고객사 한 번 만나봐.” 휴가 이틀 전 팀장이 말했다. 고객사와의 미팅은 휴가 기간 중간에 잡혀 있었다. 고객사를 만나기 전 준비해야 할 자료가 산더미였다. 위약금을 물면서 코타키나발루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했다. 팀장만 ‘공공의 적’이 아니다. 금요일 오후 ‘이번 주말은 쉴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회사 선배가 화들짝 놀라 후배들을 소집했다. 월요일까지 보고할 수납장 디자인 자료를 깜빡 잊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건 꼭 금요일 오후에 생각날까. 서로 눈치를 보며 폭탄 돌리기에 들어가면 결국 팀 막내가 떠안는다. 후배에게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위로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저녁을 챙겨주며 물었다. “이제 좀 편해졌니?” 밥을 한술 떠 입에 넣는데 눈물이 났다. ■ 내 상사의 워라밸 노력점수는 “상사병 때문에 ‘일하기실어증’에 걸릴 지경이다.” ‘상사병’은 남녀 간 그리워하는 ‘상사(相思)’병을 직장 ‘상사(上司)’로 바꾼 신조어다. 과도한 업무 부담을 안겨 부하직원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직장상사 때문에 화병이 난다는 의미다. 그런 직장상사에 지쳐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을 ‘일하기실어증’이라고 한다. ‘싫어’와 ‘실어(失語)’의 발음이 유사한 데서 비롯됐다. 직장인 사이에서 이런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직장상사는 워라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생활균형재단 WLB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직장인 1007명을 대상으로 ‘직장상사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느냐’고 물은 결과 5.32점(10점 만점)에 그쳤다. 응답자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직장상사의 워라밸 노력 점수가 높았다. WLB연구소는 “고소득인 경우 관리자 집단이 많은 반면 저소득일수록 시간제 혹은 단기근로가 많다”며 “회사 내 위치와 채용 형태에 따른 복리후생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워라밸 붕괴를 직장상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팀장이나 부장 등 직장상사도 조직 내에서 누군가의 부하직원이기 때문이다. A기업 부장은 “워라밸을 지켜주고 싶어도 다른 부서는 야근하는데 우리 부서만 퇴근하면 눈치가 보인다”며 “성과가 떨어지면 결국 내 책임 아니냐”고 말했다. WLB연구소 안선영 연구원은 “직장상사가 개인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회사 내 워라밸 전담팀을 구성해 워라밸 제도가 정착하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잡학사전 : 신입사원도 휴가갈 수 있다 ‘사용자는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근로기준법 60조 2항이다. 이에 따라 신입사원이 1년 개근하면 11일의 유급휴가가 생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0조 3항은 신입사원이 이 휴가를 사용하면 이듬해 연차휴가에서 차감하도록 했다. 사실상 신입사원은 1년차에는 휴가가 없고 이듬해 연차를 당겨쓸 수만 있었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이 입사년도에 3일의 휴가를 사용했고, 이듬해 연차 휴가가 15일 생겼다면 실제로는 3일을 차감한 12일만 사용할 수 있다. 올해 5월 29일부터는 이 3항을 삭제한 개정안이 시행돼 신입사원이 연차를 쓰더라도 이듬해 연차에서 차감하지 않는다. 신입사원도 ‘1년차 휴가’를 온전히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 여러분의 ‘무너진 워라밸’을 제보해주세요. 설문 링크(bit.ly/balance2018)에 직접 접속하거나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블라인드’를 통해 사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동아닷컴(www.donga.com) 내 ‘2020 행복원정대: 워라밸을 찾아서’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김윤종기자 zozo@donga.com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유성열기자 ryu@donga.com}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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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窓]치우고… 막고… 대학서 ‘쓰레기 전쟁’

    “쓰레기 치우려고 그래? 절대 못 들어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 여자 화장실 앞에서 고성과 함께 실랑이가 벌어졌다. 소리를 지른 건 화장실 문 앞에 있던 한 60대 여성이다. 이 여성은 화장실로 다가오는 한 교직원 앞을 가로막았다. 이어 “화장실 이용도 안 되느냐”며 항의하던 교직원을 몸으로 밀어냈다. 요즘 동국대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다. 지난달 29일 이 학교 청소근로자 78명 중 47명이 파업을 시작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분회 소속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한파 속에 본관 로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는 다른 노조 소속 30명과 비노조원 1명이 맡고 있다. 청소 인력이 절반 이하로 줄면서 건물 14곳 중 9곳의 쓰레기 수거가 중단됐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 곳곳에 쌓여가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교직원들이 나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파업 중인 근로자들이 24시간 교대근무를 서며 쓰레기 수거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원들이 몰래 쓰레기를 치우면 근로자들이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황당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교직원들이 쓰레기를 모으고 있으면 근로자들이 달려와 쓰레기봉투를 발로 차는 일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교직원과 근로자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학교 관계자는 “기존에 없던 쓰레기까지 가져다 놓는 모습도 확인했다.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학교 구성원의 편의를 볼모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는 점점 ‘쓰레기 천국’으로 바뀌고 있다. 6일 찾은 동국대 문학관 1층 여자 화장실에는 휴지와 컵라면 용기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복도에도 음식물 찌꺼기와 페트병 등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영하 12도의 추위에도 악취가 풍겼다. 동국대 청소근로자는 2013년 107명이었다. 5년 사이 29명이나 줄었다. 지난해 말 8명이 퇴직했다. 학교 측은 다른 근로자를 채용하는 대신 근로장학생(학교 일을 하고 장학금을 받는 학생)으로 충원하기로 했다. 근로자들은 발끈했다. “이렇게 매년 퇴직자를 학생들로 대체해 결국 모든 청소근로자를 없애려는 것”이라며 정식 근로자 고용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10년간 등록금이 동결됐고 입학금도 폐지됐다.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청소근로자 문제는 동국대만의 일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전후로 주요 대학마다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견이 팽팽해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동국대의 경우 파업 후 지금까지 학교와 근로자 측이 협상조차 하지 않았다. 방학 중에도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를 찾은 많은 학생이 불편을 겪고 있다. 당장 신입생을 맞아야 하고 새 학기 개강이 다가왔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국대 4학년 김모 씨(26)는 6일 본관 곳곳에 쌓인 쓰레기를 바라보며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분들의 처지도, 학교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타협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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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단체 중심 ‘북한 찢기’ 퍼포먼스 확산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인공기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진을 훼손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있다. 일명 ‘북한 찢기’ 퍼포먼스다. 약 일주일 전부터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관련 퍼포먼스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현재까지 동영상은 300개가 넘는다. 영상에는 ‘#NO평양올림픽’ ‘#대한민국은자유국가다’ 등의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연령층은 20∼50대까지 다양하다. 일부 동영상에는 어린이도 있다. 한 남자아이가 “나는 여섯 살 ○○○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국가입니다”라고 외친 뒤 인공기가 그려진 종이를 찢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얼마 전 북한 현송월의 방남이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역 앞에서 대한애국당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이 현송월 방남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인공기와 김정은의 사진을 찢거나 불태웠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미신고 불법 집회라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하면서 북한 찢기 퍼포먼스는 확산되는 추세를 보인다. 1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집회를 연 보수단체 회원 중 일부는 차량 위에 올라가 대형 인공기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참가자들을 저지했다. 3일 서울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생일(2일)을 맞아 친박계 단체가 주최하는 대규모 태극기 집회가 열린다. 주최 측은 참가 규모를 5만 명으로 예상했다. 이 자리에서 인공기를 태우거나 찢는 집단 퍼포먼스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회원은 “대규모 인공기 화형식을 거행하자”고 말하고 있다. 경찰은 안전 우려 때문에 불을 붙이는 행위를 적극 제지할 방침이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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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에도 밤에도 하루 카톡 300개, ‘카톡 퇴근’은 언제…

    《국내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75.6%)은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본다.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로 일주일에 10시간을 더 일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직장인 2402명을 조사한 결과(2016년 기준)다. 화장품 회사 영업팀에서 근무하는 3년차 직장인 장연주(가명·26) 씨는 하루 최대 300개가량의 업무 카톡을 받는다고 했다. 장 씨가 취재팀에 밝힌 ‘카톡과의 하루’를 재구성했다.》동아일보는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웹뉴(웹툰 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취재팀이 찾은 워라밸 붕괴 실태를 웹툰 작가들에게 보내 매회 관련 웹툰을 4컷짜리로 싣는다. 1회 ‘카톡지옥’은 웹툰 ‘여탕 보고서’로 유명한 마일로 작가가 회사원 장연주(가명) 씨의 사연을 듣고 그렸다.오후 11시 야근을 마치고 좀비처럼 집에 들어왔다. 샤워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챙긴 건 다름 아닌 스마트폰. 회사에서 카톡이 올까 싶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카톡! 카톡!” 세면대 위 스마트폰이 날 애타게 찾는다. 스마트폰에 왜 방수 기능이 있는지 한국 직장인들은 잘 안다. 샤워기를 끄고 젖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이게 웬일인가. 아무것도 온 게 없다. ‘아,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누군가는 이를 ‘유령 울림’ ‘디지털 이명(耳鳴)’이라고 했다. 퀭한 눈으로 세면대 거울 속 나를 본다. 막 잠이 든 밤 12시 반. 카톡 알림이 고요한 방을 뒤흔든다. 설마 이번에도 환청? 스마트폰 화면에 ‘팀장님’이란 글자가 보인다. ‘내일 상무께 보고드릴 자료 준비는 잘됐지?’ 긴 한숨과 함께 ‘넵, 준비됐습니다’라고 답 메시지를 보낸다. 회사원 사이에선 ‘넵병’이라고 부른다. 상사의 카톡에 기계적으로 ‘넵’이라고 답을 보내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넵이라고 다 같은 넵이 아니다. ‘넹’은 대답은 하지만 일은 이따 하겠다는 의미다. ‘네…’는 내키지 않지만 알았다는 뜻. 넵 옆에 느낌표를 붙이면(넵!) 지금 바로 하겠다는 얘기다. ‘앗! 네!’는 내가 일을 실수했다는 뜻이다. ‘심야 카톡’에 잠이 달아났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매장 수량 및 제품 보고’ 문서를 열어 빠뜨린 게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이제는 무뎌져 화도 나지 않는다. 오전 8시 출근 중 어김없이 단톡방(단체 카톡방)에 매출 보고서와 팀장의 지시가 올라온다. 이어지는 카톡의 향연…. ‘네’ ‘넵 알겠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지옥철’에서 누군가 대답이 늦으면 이번엔 팀장 없는 단톡방이 울린다. ‘○○ 씨 대답하라’는 과장의 성화가 이어진다. 현재 회사 단톡방만 8개다. ‘팀장 없음’ ‘팀장·과장 없음’ 등 단톡방 이름도 참 다양하다. 업무 관련 카톡은 하루 평균 300여 개. 업무 지시 외에 상사들의 농담까지 합하면 400개가 넘는다.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카톡’이 끊이지 않다 보니 소위 ‘안읽씹’(안 읽고 카톡을 씹는 일)이 불가능한 구조다. 10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숫자 9가 사라지지 않으면 팀장이 바로 묻는다. “누가 확인 안 했니?” 오후에 매장 4곳을 둘러보기 위해 외근을 나간다. ‘지금 어디 매장이니?’라는 팀장의 카톡이 온다. 1분 안에 ‘답톡’을 하지 않으면 또 온다. 지난주엔 5분 늦게 확인했더니 ‘외근한다면서 수면카페에서 자고 있는 것 아니냐’ ‘외근할수록 안(회사)과 소통이 잘돼야 한다’는 ‘잔소리 카톡’이 쏟아졌다. 업무 특성상 매장에서 바로 퇴근할 때가 많다. 이때마다 뒷골이 땅긴다. 단톡방에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겨야 하는데, 늘 독립운동 하듯 용기가 필요하다. 오후 8시 반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전송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이때부터 ‘갠톡’(개인 카톡)이 울린다. 오전 11시에 보고한 제품 수량 자료를 이제야 확인한 팀장이 꼬치꼬치 묻기 시작한다. 야심한 밤에 회사 카톡이 오면 급히 스마트폰을 ‘비행기 탑승 모드’로 바꿀 때가 있다. 카톡 내용을 확인하면서도 읽지 않은 상태로 숫자를 남겨둘 수 있어서다. 읽은 게 확인되는 순간 추가 카톡이 날아오는 걸 방지하는 ‘꿀팁’이다. 하지만 오늘 밤 날아든 카톡 내용을 확인한 뒤 ‘비행기 탑승 모드’를 바로 껐다. ‘연주 씨, 내일 오전까지 PPT(파워포인트) 준비해줘’라는 팀장의 카톡에 ‘넵!’이라는 답톡을 남기지 않을 수 없어서다.  ▼ “나도 상무님 카톡에…” 김부장의 항변 ▼“샐러리맨 처지에 피할수 없는 일”“전화대신 카톡… 일종의 배려” 반론도 퇴근 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업무 카톡(카카오톡)에 스트레스를 넘어 분노하는 젊은 직장인이 많다. 그렇다고 “왜 팀장님은 굳이 퇴근 후 카톡을 보내세요”라고 따질 수 있는 ‘간 큰’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이들을 대신해 주요 대기업 부장들에게 퇴근 이후 업무 카톡을 날리는 이유를 물었다. A기업 부장은 “누군들 하고 싶어서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팀원들은 팀장에게 카톡 받죠? 부장은 상무에게 받아요. 상무는 전무, 전무는 부사장에게 받겠죠. 상사도 다 같은 월급쟁이예요. 회사를 다니는 한 어쩔 수 없는 거죠.” 오히려 직원들을 위한 ‘배려’라는 반론도 나왔다. B기업 부장은 “부장 목소리 듣기 싫다고 하니까 전화 대신 카톡 하는 거예요. 그럼 차라리 전화할까요?”라고 했다. C기업 부장은 “밤에 카톡으로 ‘내일 오전 중 ○○ 자료를 준비해 달라’는 메시지를 종종 보낸다”며 “미리 알려줘야 업무에 차질이 없다. 과음을 하거나 늦잠을 자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퇴근 후 업무 카톡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퇴근 후 카톡 금지’ 법안을 발의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진은 “우리도 긴급한 일이 있거나 일이 많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밤 11, 12시에 업무 카톡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유사한 법안을 낸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대안으로 업무 카톡을 보고 일하면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수당을 더 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주 일생활균형재단 WLB 연구소장은 “법으로 금지해봤자 지켜지기 어렵다”며 “노사가 소통을 통해 퇴근 후 워라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사내 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동잡학사전 : ‘연결되지 않을 권리’퇴근하면 업무에서 해방…佛 작년 노동법에 첫 명시 퇴근 후 회사나 상사의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으로 주목받는 노동기본권이다. 프랑스가 지난해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세계 최초로 노동법에 반영해 시행했다. 퇴근 후 연락이 필요한 사업장은 노사 합의로 방법을 정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2016년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지난해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이 ‘퇴근 후 카톡(카카오톡) 금지법’을 발의했다. 다만 입법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현행법 내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고 보고 조만간 그 방법을 공개할 예정이다.신규진 newjin@donga.com·김윤종 zozo@donga.com·서동일 기자·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여러분의 ‘무너진 워라밸’을 제보해주세요.설문 링크()에 직접 접속하거나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블라인드’를 통해 사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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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기 습기 많은 곳에 두면 굳어버려…스프링클러, 캐비닛으로 막지 말아야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에 불이 났을 때 2층 비상구는 어른 키만 한 목욕용품 수납장에 가려 있었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중앙계단 입구에는 문이 없었다. 화재 때 불길과 유독가스를 막아줄 최후의 보루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런 초보적인 안전수칙을 무시할수록 참사는 더 참혹하다. 정답은 간단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을 확실히 지키는 것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제일 쉽게 쓸 수 있는 소방설비는 소화기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개정에 따라 모든 가정은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로 구성된 ‘주택용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 소화기는 초기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하는 데 가장 유용하다. 경우에 따라 소방차 한 대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소화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한다. 화장실처럼 습기가 많은 곳이나 30도 이상의 더운 공간은 금물이다. 녹이 슬거나 소화분말이 굳어져 분사가 어려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제조일자를 확인해 10년마다 교체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화재 때 전기가 끊기는 일도 흔하다. 연기 탓에 조명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비상구가 있어도 대피하기가 힘들다. 평소 ‘피난유도등’의 녹색불을 가장 밝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피난유도등은 반드시 비상구와 가까운 곳에 설치해야 한다. 빠른 대피를 위해 비상구 앞과 장애물을 놓아도 안 된다. 백화점과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과 공동주택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옥내 소화전이 화재 진압에 중요하다. 소방차에서 복잡한 건물 내부로 소방호스를 끌고 들어가는 어려움을 덜어준다. 소방대원 도착 전 일반인도 소화전으로 불을 끌 수도 있다. 그래서 소화전 주변에 사용설명서를 비치해 놓아야 한다. 호스도 꼬여 있으면 안 된다. 겨울에는 동파를 막기 위해 보온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에서 소화전 작동을 방해하면 누구나 관할 광역자치단체에 신고할 수 있다. 지자체 기준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한다. 스프링클러는 소화기와 함께 초기 화재 진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나오는 분사구(헤드)에 먼지나 이물질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 물이 실내 곳곳에 빠르게 퍼질 수 있도록 헤드를 캐비닛 등 높은 가구로 막지 말아야 한다. 전문업체에 의뢰하면 전원과 화재 감지, 물 공급 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문 관리도 중요하다. 항상 닫혀 있어야 하는 건 기본. 신속한 대피를 위해 대피 방향으로 열리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예상치 못한 재난에 대해 항상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불편함이 있겠지만 공익을 위해 기본부터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신규진 기자}

    •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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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철 31주기… “그대 이름이 곧 민주화입니다”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요. 종철이가 ‘그동안 다들 애썼습니다’ 하는 것 같습니다.” 14일 오전 11시경 박종철 씨 누나 박은숙 씨(55)가 추모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날은 31년 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인 박 씨(당시 22세)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받다 숨진 날이다. 영하의 기온은 겨우 벗어났지만 바람이 차갑던 이날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모란공원 박 씨 묘소 앞에는 200여 명이 모였다. 박 씨의 고교 동창이자 대학동기인 김치하 씨(54)는 “종철이,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술 많이 먹네. 오늘 취하겠다”라며 미소 지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에는 박 씨의 형 박종부 씨(60)와 1987년 6월 항쟁 도중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씨(당시 21세)의 어머니 배은심 씨(77), 경찰의 박 씨 고문 축소·조작 의혹을 교도소에서 밖으로 폭로한 이부영 전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이 전 의원은 “(한국 사회가) 시민운동을 통해 정치를 똑바로 지켜낼 것을 박 열사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이날 오후 3시경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에서도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곳에도 추모객이 적지 않았다. 인권센터를 찾은 시민 이영선 씨(33)는 “지난주 영화 ‘1987’을 보고 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민주화 산물이라 할 우리 세대가 박 씨에 대한 추모와 민주화에 대한 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이철성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방문해 헌화했다. 경찰 지휘부가 이 옛 대공분실을 찾아 박 씨를 추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씨에 대한 사회적인 추모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 영화 ‘1987’은 개봉 18일 만인 13일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날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윤석 강동원 등과 제작진은 모란공원 박 씨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추모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정다은 기자}

    •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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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도 앞바다에 시신 4구 목선… 北선박 추정

    7일 경북 울릉군 북면 현포리 앞바다에서 시신 4구가 실린 소형 목선이 발견됐다. 북한 선박으로 추정된다.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0분경 길이 9m, 폭 2m, 높이 2m가량의 목선이 떠다니는 것을 주민이 신고했다. 배에서 발견된 시신 4구는 백골화가 진행 중이었다. 해경은 울릉항으로 목선을 예인한 뒤 울릉군 보건소에 시신을 보관했다. 해경은 해군, 울릉군 등 관계 기관과 합동조사반을 꾸려 목선 내부를 정밀 조사하고 시신의 신원을 파악 중이다. 합동조사반 관계자는 “대공 용의점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어선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선원들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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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준희양 친부-동거녀 “아이 때린적 있다”

    전북 군산의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준희 양(당시 5세)이 숨지기 직전인 지난해 4월경 아버지 고모 씨(37·구속)와 동거녀 이모 씨(36·구속)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1차 부검 결과를 토대로 몸 뒤쪽 갈비뼈 3개 골절이 폭행에 의한 것인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1일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고 씨는 경찰 조사에서 “손과 발로 준희를 때려 다치게 했다. 이때 동거녀 이 씨도 같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씨도 이날 “준희가 밥을 잘 먹지 않아 때린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씨가 친모(37)로부터 준희 양을 맡은 지난해 1월 말 이후부터 여러 차례 폭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씨가 진술한 “준희가 발이 접질려 피고름이 나오고 종아리가 심하게 부었다”는 증상도 이들이 지속적으로 폭행한 데 따른 것인지 확인 중이다. 경찰은 “숨지기 직전인 지난해 4월 25일 준희가 멀쩡하게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이 씨의 어머니 김모 씨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을 최면조사를 통해 확보했다. 경찰은 이들 내용을 토대로 건강하던 준희 양이 지난해 4월 26일 갑자기 숨진 것이 이들의 폭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준희 양이 숨지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했다. 그러다 선천성 갑상샘 기능 저하증을 앓던 준희 양에게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고 씨는 아버지 역할도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친모와 준희 양 담당 주치의 등에게 확인한 결과 준희 양은 24주 1일 만에 체중 640g으로 태어난 미숙아였다. 신체 발달이 늦은 데다 갑상샘 기능 저하증을 앓았지만 고 씨는 준희 양을 맡은 뒤는 물론이고 맡기 전에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준희 양의 주치의는 “석 달에 한 번 갑상샘 약을 타러 병원에 와야 하는데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늘 친모만 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준희 양이 동거녀 이 씨 아들한테도 폭행당하지 않았는지 수사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 씨 아들이 준희 양을 자주 때렸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한 고 씨의 휴대전화에는 준희 양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동거녀 아들 사진뿐이었다”고 말했다.전주=김단비 kubee08@donga.com·신규진 기자}

    •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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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친모 “딸 지병 약 친부가 안 먹였을 것”…준희 양 갈비뼈 골절-발목 중상 등 학대 정황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고준희 양(당시 5세) 부검 결과 갈비뼈 3개가 부러진 사실이 확인됐다. 또 지난해 4월 준희 양에게 대상포진 증세가 나타나는 등 몸 상태가 심각했지만 친부와 동거녀 모두 방치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31일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준희 양의 몸통 뒤쪽 갈비뼈 3개가 골절되는 등 심각한 외부 충격을 받은 흔적이 발견됐다. 아버지 고모 씨(37·구속)는 경찰 조사에서 갈비뼈 골절 원인에 대해 “쓰러진 준희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앞쪽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다. 몸통 뒤 갈비뼈가 부러진 점을 고려할 때 고 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고 씨와 동거녀 이모 씨(36)는 지난해 4월 10일 준희 양이 얼굴과 목, 가슴 등에 수포가 생기는 대상포진 증상을 보였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 준희 양이 발목을 접질려 피와 고름이 나오고 종아리까지 부어오르는 등 심각한 증세를 보였지만 치료를 받게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준희 양이 같은 달 25일부터 그 다음 날 숨질 때까지 여러 번 의식을 잃었지만 전북 전주시 완주군 집에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씨와 이 씨는 준희 양이 사망하자 시신을 이 씨 어머니인 김모 씨(62·구속)의 전주시 덕진구 집으로 옮겼다. 두 사람과 김 씨는 5, 6시간 동안 시신 처리 방안을 논의해 암매장하기로 결정했다. 김 씨는 준희 양을 수건 등으로 감싼 뒤 야삽 등 시신 유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이어 고 씨와 김 씨는 준희 양 시신을 김 씨의 차량에 싣고 전북 군산시 야산으로 옮겨 매장했다. 경찰은 이 씨도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준희 양의 친모 송모 씨(36)는 지난해 12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편 고 씨가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준희가 학대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 씨는 “2016년 초 고 씨로부터 갑자기 이혼 통보를 받고 혼자 2남 1녀를 키우다 생활고 때문에 올해 1월부터 준희를 남편에게 맡기게 됐다”고 밝혔다. 또 “올 2월 준희가 걱정돼 어린이집에 찾아갔지만 이미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상태여서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송 씨는 “남편과 헤어지며 준희가 먹어야 하는 갑상샘약 석 달 치를 전해 줬다”며 “남편은 준희가 갑상샘 치료를 받는 것을 알았지만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어 약을 챙겨 먹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고 씨 등이 준희 양이 숨진 사실을 8개월 넘게 숨기다가 지난해 12월 8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배경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올 4월 위기 아동 조기발견 시스템이 시행되면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스템이 시행되면 보건 당국이 장기 결석이나 병원 치료를 받은 아동의 실태를 파악해 학대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준희 양이 지난해 2∼3월 머리와 이마 상처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 제도가 시행되면 요주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전주=신규진 newjin@donga.com·김단비 기자}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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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귀순병 살린 ‘신의 손’ 이국종… 방탄소년단 “저스틴 비버 비켜”

    《지드래곤은 노래 ‘삐딱하게’에서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외쳤다. 그러나 인간에겐 그럴 때가 있다. 순간을 마치 영원처럼 거머쥐는 순간. 꽃보다 아름답게 피고, 별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지점. 하나의 삶은 유한하나 순간의 반짝임은 별이 돼 마음에 박힌다. 때로는 인간사가 돌아가는 수레바퀴의 방향이나 속도를 바꾸기도 한다. 문화, 사회, 스포츠, 경제, 산업 분야에서 올 한 해 동안 가장 크고 높게 떠올라 반짝인 사람들을 돌아봤다. 2018년에는 또 어떤 이가 별처럼 떠오를까. 그 가운데 나와 내 지인도 있을까. 자, 아래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사회]15일 오후 6시 반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옥상 헬기장. 이국종 교수(권역외상센터장)가 줄곧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상공을 나는 헬기 한 대를 향하고 있었다. 북한 귀순병사 오청성 씨(25)를 아주대병원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하고 온 군 의무헬기 ‘메디온’이었다. 이날 낮 이 교수는 오 씨와 함께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하는 메디온에 올랐다. 두 사람이 수술실에서 처음 만난 지 32일 만이다. 한 달 넘게 병실과 수술실을 오가며 죽음과 싸운 두 사람은 전우(戰友)나 다름없었다. 메디온이 아주대병원을 출발하자 이 교수는 새로운 환경을 앞둔 오 씨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앞서 오 씨는 병원을 떠나기 전 ‘아주대병원 안의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치료를 잘해준 데 대하여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자필 메모를 남겼다. 무사히 오 씨를 이송한 뒤 병원으로 돌아온 이 교수는 “오 씨가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수원 오씨’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7년 한국 사회는 다시 ‘이국종’이라는 이름에 주목했다. 2011년 1월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 정확히 6년 10개월 만이다. 동아미디어그룹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 투표에서도 1위(문재인 대통령)에게 10표 차 나는 2위(96표)에 올랐다. 올해 이 교수의 ‘석 선장’은 오 씨였다. 그는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했다. 이때 북한 추격조가 쏜 총탄 5발을 맞고 쓰러졌다. MDL 앞에서 목숨을 걸고 포복으로 다가간 한국군에게 극적으로 구조됐다. 곧바로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된 오 씨는 생명이 위태로웠다. 이 교수 집도 아래 악전고투 같은 수술을 여러 번 받은 뒤 지난달 말 오 씨는 의식을 회복했다. 이를 계기로 중증외상환자 치료체계의 열악한 실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그리고 이 교수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6년 전과 다를 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2011년 석 선장 치료를 위해 오만에 간 이 교수는 에어앰뷸런스를 빌려 한국으로 이송할 것을 주장했다. 에어앰뷸런스 임차료는 약 40만 달러. 결정이 지연되자 이 교수가 “내가 돈을 내겠다. 일단 이송부터 하자”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2012년 5월 마침내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올해 다시 확인된 중증외상환자 치료체계의 민낯은 6년 전보다 더 심각했다. 급기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중증외상센터 지원을 청원하는 글이 올랐다. 국민 27만 명이 화답했다. 정부는 삭감했던 외상센터 예산을 다시 살려 601억 원을 편성했다. 이 교수는 요즘도 외상센터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항상 파란색 수술 모자를 쓰고 다닌다. 왼쪽 손목에는 민감한 외과 수술에 방해가 될까 봐 시곗줄 끝에 흰 의료용 테이프를 붙인 시계를 찬다. 오 씨는 최근 국군수도병원에서 진행된 정부합동신문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도 종종 오 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도 전해 듣는다고 한다. 오 씨를 치료할 당시 이 교수는 “앞으로 직장 다니며 번 돈으로 세금을 내 국가 경제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들 역시 이 교수의 당부가 하루빨리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워너원 ‘연습생 신화’… “돈은 안쓰는 것” 김생민의 재발견[문화]7인조 남성그룹 방탄소년단은 1년 내내 기록 잔치를 벌였다. 5월 빌보드뮤직어워즈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수상했다. 9월 낸 ‘LOVE YOURSELF 承-Her’ 음반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7위, 11월 신곡 ‘MIC Drop’ 리믹스 버전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28위까지 올랐다. 11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축하무대, 12월 NBC ‘엘런 디제너러스쇼’ 등이 TV와 소셜미디어로 전파되며 세계적으로 인기가 확산됐다. 미주 지역의 팬들이 이들의 여러 곡에 걸쳐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한국어로 멤버별 응원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미국의 공중파를 강타했다.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배출한 프로젝트 남성그룹 워너원은 젊은이들은 물론 평소 아이돌에 관심이 적었던 일부 중장년층의 마음까지 팬덤의 영향권으로 포섭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연습생 신분이던 이들은 데뷔음반을 100만 장 이상 팔며 아이돌 가요계의 최상위권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국민 남자친구가 된 강다니엘을 위시해 다양한 매력을 가진 그룹 멤버들은 청소년을 겨냥한 교복, 치킨뿐 아니라 커피, 맥주, 화장품까지 다양한 상품의 모델로 활약했다. 이들의 팬덤이 TV를 통해 전 연령대로 확장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은 6월 북미 최고 권위의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16세 때부터 1년에 2∼4번씩 국제콩쿠르에 출전해온 선우예권은 총 8개 대회에서 우승해 ‘콩쿠르 부자’로 불리게 됐다. 밴 클라이번 우승으로 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국내 클래식을 이끌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콩쿠르 출전의 연령 마지노선인 29세에 출전한 그는 늦게 빛을 본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2019년까지 연주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발돋움했다. 방송인 김생민(44)은 데뷔한 지 무려 25년 만에 ‘뜬 별’이 됐다. 시작은 청취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이었다. 화려할 것만 같은 연예인이 ‘돈이란 원래 안 쓰는 것’이라거나 ‘커피 대신 면수를 먹어라’는 둥 짠내 가득한 경구를 늘어놓자 폭발적 반응이 일었고 곧 지상파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스스로 꾸준히 아끼고 저축해 자산을 모았다는 김생민의 모습은 팍팍한 삶이라도 노력하면 보상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올 한 해 영화계에서 가장 뜬 별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매력 넘치는 연기로 ‘마블리(마동석+러블리)’라는 애칭을 얻은 배우 마동석(39)이다. 그가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주연한 영화 ‘범죄도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깜짝 흥행에 성공하면서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추석 연휴 ‘남한산성’ ‘킹스맨: 골든 서클’ 등 쟁쟁한 경쟁작 사이에서 초반 흥행은 주춤했지만, ‘마동석의 힘’으로 역주행하며 68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부산행’에서도 좀비 떼를 무찌르는 액션을 선보여 사랑받은 데 이어 ‘굿바이 싱글’ ‘부라더’ 등 코미디 영화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는 최근 팔씨름 선수로 등장하는 영화 ‘챔피언’의 촬영을 마쳤고, 내년 8월 개봉할 예정인 ‘신과 함께 2’를 통해서도 관객과 만난다. 서경배 ‘세계 100대 CEO’ 선정… 방준혁, 게임으로 자수성가[경제-산업]그동안 대학 강단과 시민단체 등 재야에서 주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64)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55)은 경제 분야의 핵심 관료로 변신해 새 정부의 각종 정책을 이끌었다. 장 실장은 소득 주도 성장 등 새 정부의 경제 기조를 이끄는 데 선두에 섰고, 김 위원장은 가맹점, 유통, 하도급 분야의 불공정거래 대책을 쏟아냈다. 스타일과 노선에 대한 적잖은 논란도 있지만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분야의 실세로 자리매김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김동연 경제부총리(60)는 6월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 수장으로 임명됐다. 처음에는 현 정부 출범에 ‘지분’이 없는 정통 관료 출신이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여당과 청와대가 중심이 된 법인세 및 소득세 인상 논의에서 배제되면서 ‘김동연 패싱(건너뛰기)’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3%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각종 경제 현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경제 수장으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62)은 올해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도맡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원래 재계의 축은 주요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였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인을 아우르는 대한상의의 상징성이 부각되며 정부 경제정책의 기업 측 파트너 자리를 공고히 했다. 박 회장은 문재인 정부 초기 “기업만 대변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최근 들어 친노동에 치우친 정부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두고 ‘국회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54)은 올해 대표이사 취임 20주년을 맞았다. 그간 성과는 눈부셨다. 취임 직전 해인 1996년과 2016년을 비교해 보면 매출은 10배, 수출액은 181배 늘었다. 세계적인 경영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2017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100대 최고경영자(CEO)’에 한국 기업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서 회장을 선정한 것은 이 같은 성과 덕분이었다. 20위를 차지한 서 회장에 대해 HBR는 ‘끊임없이 혁신을 이뤄온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11월 서울 용산 신사옥 완공에 따라 새로운 용산 시대를 선포했다. 서 회장은 용산 사옥을 ‘미(美)의 전당’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 올해 게임업계에선 ‘흙수저’ 출신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49)의 자수성가 스토리가 화제가 됐다. 그는 넷마블 최대주주로서 올해 넷마블 기업공개(IPO)를 통해 3조 원대 주식거부로 이름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 2학년 중퇴 이력과 2차례 창업에서 실패한 개인사가 재조명됐다. 2000년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넷마블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긴 침체를 겪다가, 최근 모바일 게임 분야로 빠르게 사업을 확대하면서 성공신화를 새로 쓰고 있다. 넷마블의 간판 게임인 ‘리니지2 레볼루션’은 2017년 9월까지 누적 매출이 9608억 원을 기록해 연말까지 단일 매출로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60)이 올해 주목받은 인물이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키며 주식 부호 대열에 합류했다. 서 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22일 기준 4조7427억 원에 이른다. 지분을 증여받지 않고 자수성가로 주식 부자 5위 안에 든 인물은 서 회장이 처음이다. 설립 15년째를 맞은 셀트리온은 2012년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복제약) ‘램시마’를 개발하며 성공 가도를 달려 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임현석 기자}

    • 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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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바생이 소방점검… 대행업체가 소화기 사다놓고 “이상무”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은 지난해 7월 소방점검을 받았다. 지적사항은 단 2건. 소화기 압력 조정과 휴대용 비상등 교체 같은 사소한 문제였다. 소방점검을 실시한 사람은 당시 건물주 박모 씨(58)의 아들. 그는 소방안전자격증 보유자였다. 소방 당국은 별다른 이의 없이 점검 결과를 수용했다. 1년 뒤 건물주는 이모 씨(53)로 바뀌었다. 이어 지난달 소방점검이 실시됐다. 무려 67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화재 감지기와 경보기, 스프링클러 등 방화시설 대부분이 불량이거나 관리 부실이었다. 1년 4개월 전 완벽에 가깝게 안전했던 건물이 갑자기 위험천만한 건물로 바뀐 것이다. 두 차례 점검 결과를 살펴본 한 소방 전문가는 “소방설비 수십 개가 1년 사이 동시에 망가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점검이) 부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건물주 심기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 화재 예방에 필수적인 소방점검은 현재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진행된다. 건물주가 돈을 내고 맡긴다. 솜방망이 점검, 봐주기 점검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5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접촉한 소방점검 업체들은 “건물주 입맛을 고려한 ‘맞춤형 점검’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각한 문제도 가벼운 걸로 축소하거나 아예 눈감아주는 것이다. 업체가 비용을 아끼려 자격 미달의 값싼 인력을 동원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A 씨(55)는 서울에서 10년 넘게 소방점검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그는 서울 도심의 한 건물을 점검했다.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난 건물주는 다짜고짜 “내용을 확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 ‘갑(甲)’의 요구였다. A 씨는 점검 결과를 손에 쥐고 고민에 빠졌다. A4 용지 5쪽 분량의 결과서에는 어림잡아 100건 가까운 지적사항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소화기 안내 표시 미부착’ 등 대부분의 항목을 빼고 20건 안팎의 지적만 남은 결과서를 건넸다. 또 다른 점검업체 관계자 B 씨는 건물주의 요청을 받기 전에 알아서 조치한다. 그가 직접 점검했던 한 건물의 경우 소화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소화기 비치 불량은 중요한 지적사항이다. 하지만 B 씨는 직접 모자란 소화기를 구입해 갖다 놓았다. 그러고는 ‘이상 없음’으로 처리했다. 방화문은 항상 닫아놓아야 한다. 만약 ‘말발굽(문 고정 장치)’을 달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B 씨는 늘 “꼭 제거하시라”는 구두경고로 마무리한다. B 씨는 “건물주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음 검사 때 업체를 바꾸려고 할 것이 뻔하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점검 중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래오래 함께 갑시다”라는 건물주의 말은 압력이나 다름없다.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관리인은 “어차피 계약하고 가장 편한 일정에 맞춰 점검한다. 평상시에 관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 비상시에 대비한 소방점검을 서로 의논해서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 주인은 “건물주가 불러서 점검을 하긴 하는데 소속이 어딘지도 모르고 누군지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있는 소화기 최종 점검 일자는 7년 전으로 표기돼 있었다.○ 점검은 보조가, 관리사는 해외로 이런 상황에서 소방점검 업체의 도덕적 해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소방점검에는 규정상 소방시설관리사 1명과 보조인력 2명을 투입한다. 하지만 점검 서류를 미리 만들어놓고 보조인력만 현장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점검 당일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소방 당국 단속에 적발돼 처벌받은 관리사도 있다. 충북의 한 점검업체 관계자는 “관리사 중 과태료 한 번 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을 아끼려고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하는 업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현행법상 관리사 1명에 보조인력 2명이 투입되면 하루 최대 1만2000m²까지 점검할 수 있다. 여기에 보조인력을 1명씩 추가할수록 3000∼3500m²씩 대상 면적이 늘어난다. 업체들은 물량을 늘리기 위해 자격 미달 인력을 고용한다.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는 ‘소방점검 알바 구한다. 학력 자격 따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자주 올라온다. 업체 관계자는 “보조인력을 정규직으로 쓰면 2000만∼3000만 원은 줘야 하지만 알바는 일당 5만 원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점검업체가 난립하면서 ‘저가 경쟁’이 부실 검사를 부추기고 있다. 한 점검업체 대표는 “과거 인맥으로 알음알음 검사했는데 요즘은 공개입찰로 업체를 고르다 보니 덤핑이 심하다. 3, 4년 전보다 점검 비용이 30∼40%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불이 난 스포츠센터의 소방점검 비용은 80만 원이었다. 전문가들은 “해당 건물 규모를 고려할 때 최소 150만 원 이상이어야 정상 검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권기범 kaki@donga.com·신규진 / 제천=김자현 기자}

    •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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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횡단보도에 ‘그린벨트’… 방지턱처럼 보이는 페인팅도 사고 줄여

    일본 동북부 아키타(秋田)현 다이센(大仙)시에는 ‘그린벨트’가 있다. 한국의 개발제한구역 이름과 같다.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그린벨트는 녹지 보호를 위해 개발을 억제한 곳. 그러나 다이센의 그린벨트는 보행자 안전을 지키는 ‘마법의’ 횡단보도다. 지난달 28일 다이센시의 한 주택가 이면도로. 5년 전 한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곳이다. 이곳의 횡단보도는 다른 곳과 달리 굵은 녹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스팔트와 선명한 대비를 이뤄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과속방지턱처럼 솟아 있는 효과를 주는 페인팅도 있다.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약 10m 앞에 이르자 속도를 20km로 줄였다. 다른 차량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린벨트 횡단보도가 다이센 전역에 1000여 개나 있다.○ 생명 구하는 교통 투자 다이센 지역은 해가 일찍 진다. 겨울에는 오후 4시에도 어둑하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 세워진 전봇대에는 노란색 띠가 둘러져 있다. 운전자에게 위치를 알리는 반사판 역할을 한다. 다이센시는 매년 2차례나 도로 위 페인트를 새로 칠한다. 그 덕분에 칠이 벗겨진 횡단보도를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스즈키 이코(鈴木一幸) 다이센시 환경교통안전과 직원은 “도로 위 표시 정리만 제대로 해도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이센시의 올해 교통안전시설 개선 예산은 4284만4000엔(약 4억809만 원)이다. 정부가 지원한 교통안전 교부금이 1760만1000엔(약 1억6765만 원)이나 포함됐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지원받은 덕분에 다이센시는 자체 예산을 다양한 교통안전 프로그램에 투입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교통사고 예방교육이 대표적이다. 2주일에 한 번씩 32개 초중등학교에 가상현실 장비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횡단보도 건너는 법’ 등을 마치 실제처럼 체험토록 한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도로 주변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 등의 시뮬레이션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다이센시의 교통사고 사상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구 8만7000명의 중소도시인 다이센시의 2014년 교통사고 사상자는 317명. 지난해 197명으로 37.9%나 줄었다. 다이센시와 인접한 요코테(橫手)시의 한 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이 작다는 이유로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었다. 하지만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어린이 통행이 많다. 올 8월 이곳에 신호등이 설치됐다. 지역 경찰과 주민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한 건 총무성의 교통안전 교부금 덕분이었다. 사토 요시히토(佐藤良人) 요코테시 재산경리과 직원은 “교통안전 교부금을 가장 시급한 안전 사업에 집중적으로 쓸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공짜 안전은 없다 일본의 교통안전 교부금 제도는 196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 수입은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교부금은 매년 3월과 9월 2회에 걸쳐 지자체에 지원된다. 지원 규모는 각 지역의 교통사고 현황, 인구 밀도, 도로 총길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진다. 교부금의 25%는 경찰청, 나머지는 지자체에 지원한다. 교부금은 횡단보도 신호등, 노면 표시, 가드레일 정비 등 교통안전 관련 설비에만 투자할 수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 내 지자체가 지난해 교통안전 사업에 투자한 비용은 약 1500억 엔(약 1조4287억 원). 이 중 특별교부금은 580억 엔(약 5524억 원)이다. 스즈키 겐이치(鈴木健一) 총무성 이사관은 “보통 지자체마다 교통안전 예산의 40% 정도를 교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선진국들은 교통 벌금을 교통안전시설에 투자하는 특별회계를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도 예산법에 따라 교통안전시설 특별회계가 있다. 지난해 특별회계 규모는 9억4000만 유로(약 1조1000억 원)로 무인단속장비나 면허관리 시스템 개선에도 쓰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도로법에 따라 국가공무원의 교통 단속 벌금은 중앙정부가, 지자체 공무원이 단속한 교통 벌금은 각 지자체가 교통안전시설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교통안전 특별회계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통안전 정책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다이센·요코테=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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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구 미로찾기… 표시도 없이 되레 ‘통제구역’ 써놓기도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우나. 3층 남탕을 둘러보던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330m² 크기의 사우나를 10분 가까이 둘러봤는데 비상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중앙 벽에 부착된 피난 안내도엔 ‘현 위치’ 표시가 없었다. 건물 구석 흡연실을 지나 좁은 통로로 들어가자 그제야 철문이 나왔다. 문을 열자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였다. 비상구 표시가 없거나 ‘통제구역’이라고 적힌 문도 있었다. 박 교수는 “불이 나면 현장은 아비규환”이라며 “평소에도 이렇게 찾기 힘든 비상구와 대피로는 화재 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로 숨진 29명 중 20명의 시신이 발견된 여성 사우나처럼 비상구가 있어도 사실상 무용지물인 건물은 부지기수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2일 서울과 제천시의 대형 사우나와 스포츠센터 8곳의 비상구를 직접 확인한 결과 모두 ‘무늬만 비상구’였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야 하거나 구석에 있어서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사우나 겸 찜질방. 대형 휴게실 한쪽에 비상구를 나타내는 녹색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하지만 대형 온열기가 비상구 문의 절반을 가로막고 있었다. 온열기 뒤쪽으로 힘겹게 몸을 집어넣어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바깥쪽에서 잠겨 있었다. 열쇠 없이는 나갈 방법이 없었다. 단 몇 초가 생사를 가르는 화재 발생 시 탈출을 지연시켜 대량 사상자를 낼 것이 우려됐다. 제천시 주택가의 한 스포츠센터 2층 사우나에는 비상구는 있었지만 ‘비상구’ 표시가 없었다. 문을 여니 바로 허공이었다. 건물 외벽 3m 높이에 계단도 없이 비상구 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건물 관리인은 “평소에 나갈 수 없도록 잠가놨다가 이번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뒤 부랴부랴 열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우나와 스포츠센터의 비상구 주변 공간은 사실상 창고나 흡연실로 쓰이고 있었다. 서울 신촌의 한 헬스클럽 지하 3층 스크린골프장의 비상 통로는 문 2개를 열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첫 번째 문을 열자 운동화와 운동복, 청소도구가 가득 담긴 대형 비닐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두 번째 문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지하 1층 사우나에는 비상구가 세 개나 있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조리실 내부 비상구 앞에는 큰 냄비 등 조리도구가 가득 쌓여 있어 비상구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휴게실의 비상구 앞은 아예 의류 판매장이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 앞엔 의류 매장용 옷걸이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종로구 한 찜질방 지하 2층 비상문은 20∼30cm밖에 열리지 않았다. 문 바로 뒤에 플라스틱 의자와 선풍기 등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 4월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 안전 불량사항이 적발된 290개 영업장 대부분은 유도등이나 감지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구가 닫혀 있어 과태료를 부과받은 곳은 29곳이었다. 박 교수는 “대형 사우나와 찜질방은 좁은 방이 많은 구조라 화재 시 대피로에서 먼 방에 들어갔다 갇혀 변을 당하기 쉽다”며 “다른 다중이용시설보다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최지선·김예윤 기자}

    •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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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대학가는 길]다이아몬드7 학과에 4년 반액장학금 혜택

    한양대는 정시에서 분할모집으로 가군 262명, 나군 523명 총 785명을 선발한다. 학생부 교과 비중은 적은 편이다. 가군에서는 수능 100%가 적용된다. 나군에서는 학생부 교과 10%+수능 90%로 선발한다. 계열에 따라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이 달라 잘 살펴봐야 한다. 인문·상경계는 국어(30%) 수학 나형(30%) 영어(10%) 사회탐구(30%)가 반영된다. 자연계는 국어(20%) 수학 가형(35%) 영어(10%) 과학탐구(35%)로 과탐Ⅱ는 3% 가산점이 부여된다. 2018학년도부터 한양대는 자연계열에서도 파이낸스경영학과를 선발한다. 상경계열에서 선발하는 것과는 별도다. 또 나군에서 의예과 66명을 선발한다. 한양대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인문·상경계와 자연계 학과들로 구성된 ‘다이아몬드7’ 학과에 장학금 혜택을 준다. 다이아몬드7 학과는 융합전자공학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에너지공학과, 미래자동차공학과, 파이낸스경영학과, 정책학과, 행정학과다. 이 학과에 합격하면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또 가군 최초합격자 전원을 대상으로 4년 반액장학금이 지급된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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