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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국의 11개 시도(市道)에 경제 및 관광 개발을 위한 특별행정구역(특구)을 하나씩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역별로 경제 개발의 거점을 마련하고 북한 전역에서 대대적인 외자 유치에 나서겠다는 의도여서 향후 북한 경제의 개방 범위와 속도에 관심이 쏠린다. 3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등 9개 도와 평양특별시, 남포특별시 등 총 11개 시도에 새로운 경제특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미 중국의 투자를 받아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나선경제특구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이런 대대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해외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신설된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인사들이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1.5트랙(반관반민) 형식의 ‘동북아지구 경제성장 세미나’에 참석해 이런 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7월 방북했던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등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은 원산과 백두산, 칠보산 등에 모두 6개의 관광특구를 만들려고 시도 중이다. 이 관광특구들이 11개 시도의 신설 추진 특구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대적인 외자 유치를 시도하자 싱가포르와 홍콩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의 경우 원산 쪽에 적극적으로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북소식통은 “일본도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남포 지역을 중심으로 거액을 투자하려 한다는 말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북한이 최근 자신감을 갖고 경제 분야의 변화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해외 자금의 이런 흐름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대북 경협분야 전문가인 유완영 유니텍코리아 회장은 “북한이 특구 신설을 위해 지역별로 이미 거점도시를 다 정해 놓은 것으로 안다”며 “관련법과 제도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일단 연말까지 이를 완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관련 조치에 나선 상태”라고 전했다.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과 해외 자금의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개혁개방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외자 유치 시도는 북한이 지난해 6·28경제개선관리조치에 이어 최근 공장과 기업소를 대상으로 자율성을 확대하는 일련의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새로운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려는 조짐은 아직 없지만 특구 추진 등을 포함해 경제에 크게 신경을 쓰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투자 유치가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국제적으로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이 해외투자 유치와 함께 외국 관광객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과거 김정일 시대에도 여러 경제개발 시도를 했지만 기본 체제의 한계 때문에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공장과 기업소를 중심으로 시장경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한다는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정부가 “북한의 경제 자율성을 확대하는 큰 흐름은 맞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에서 잇따르고 있는 북한 경제분야의 개혁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향후 진행 가능성과 성과 여부를 분석하고 있다.본보 1일자 A3면 北 신경제체계 도입 추진 통일부 당국자는 1일 “북한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부터 시작해 공장이나 기업소, 농장 같은 곳에 자율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해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관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시기와 관련해서는 “내년 1월부터 그런 시도를 본격화하려면 지금부터 내부 시스템과 정책 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게 파악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지금쯤 (가격 결정, 경영과 고용의 자율화 같은) 그런 조치를 취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북한대학원대 양문수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농업 분야에서 6·28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도한 데 이어 올해 공장과 기업소를 중심으로 자율성을 확대하는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북한에서 ‘큰 풍년’이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지난해 6·28 조치의 성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결과”라고 분석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에서 짐승처럼 살았던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모시고 들어와서 한국 땅에 묻게 되면 ‘내 아버지는 영웅이었고 대한의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국군포로 2세 탈북자인 손명화 탈북민복지연합회장(51)은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사단법인 물망초의 주최로 열린 탈북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이날 현재 중국 모처에 국군포로의 유해가 보관 중이고 자신이 그의 딸임을 스스로 공개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이 내용을 단독보도하면서 손 회장의 요청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손 회장은 “아버지는 3년간 (6·25)전쟁에서 싸우다가 휴전을 3개월 남겨놓은 상태에서 포로가 됐다”면서 “이후 평생을 국군포로라는 딱지를 단 채 아오지탄광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며 울먹였다. 그는 “아버지는 임종 직전 맏딸인 나를 따로 불러 고향이 경남 김해라고 알려주며 ‘너만이라도 꼭 그곳으로 가고 (나중에) 내 유해도 묻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6년 탈북한 손 회장은 “유해를 모셔올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국군포로임을 몰랐으나 대학 진학 등에 제한을 받게 됐을 때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포기해라. 내가 국군포로여서 너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고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왜 이렇게 사느냐’며 괄시한 적도 많았다”면서 “한국에 와서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그랬던 내가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고 고백했다. 손 씨는 이날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인 ‘그리운 내 고향 사모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해 행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손 회장은 정부에 “유해 송환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부는 관련 대책회의를 몇 차례 가졌으나 ‘유해의 진위 여부가 확인된 뒤에야 예우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손 회장은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는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직접 유해를 국내로 옮겨오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명박 정부·사진)은 26일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신뢰를 쌓으려다간 5년 내내 아무것도 못한 채 끝나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천 전 수석은 이날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주최로 열린 ‘북핵 문제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학술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전제로 협상과 대화, 군사적 대응 등의 전략을 (다각도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상호 신뢰가 바닥일 때 오히려 가장 많은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재래식 무기와 달리 핵무기는 공격받은 이후 반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할 군사적 대비책으로 ‘킬 체인(kill chain·핵미사일에 대비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목표물을 탐지한 뒤 선제 타격하는 것)’ 구축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천 전 수석은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오키나와 및 괌 기지 방어를 위한 역내 MD 체제 구축에 협력할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는 두 기지가 공격당하면 한미연합 방어체제에 큰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는 “MD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공세에 수세적으로 방어하는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26일 개성공단에서 열릴 예정이던 통행·통신·통관(3통) 분과위원회를 갑자기 연기했다. 통일부는 “북한이 25일 오후 늦게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3통 분과위의 연기를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25일 예정됐던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두고 전격 무산시킨 뒤 남북 관계를 긴장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전술의 연장선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출입체류 분과위는 26일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북관계발전위원회(위원장 류길재)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을 바탕으로 한 향후 5년간(2013∼2017년)의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기반 구축’이란 비전 아래 남북 관계 발전 및 실질적 통일 준비라는 2대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 기본계획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이나 개성공단 정상화 같은 구체적인 사안들을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비핵화 관련 내용은 별도의 항목으로 담지 않아 그 배경이 주목된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향후 5년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평화체제 전환 추진 등 1차 계획에 포함됐던 주요 내용이 상당부분 빠질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반한 원칙론적인 대북정책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북관계발전위원회는 25일 회의를 열고 2013∼2017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략목표와 추진 계획 등을 담은 이런 내용의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심의해 확정할 계획이다. 외교안보 관련 부처 당국자 및 민간 전문가 등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 이 계획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1월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 1차 계획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면당했고, 내용 개정이 몇 차례 시도됐으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12년 11월경 2차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했지만 대선으로 인해 해를 넘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구상이나 평화체제로의 전환 추진 등은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10·4공동선언’을 적극 반영한 것이고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과도 맞물려 있어서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대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원칙론적 대북정책과 관련된 국정과제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논의해 나간다’는 식으로 짧게만 언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관련 부분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안보상황을 반영하되 남북대화와 비핵화 대화(협상)의 선순환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기존 틀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인민군 상장(우리의 중장)인 고수일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외삼촌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2일 연합뉴스는 복수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고수일 상장이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의 남동생이라고 보도했다. 고수일은 지난해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생일을 맞아 제정된 ‘김정일 훈장’의 첫 수훈자 중 한 명으로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에는 호위사령부에서 김 위원장과 고영희의 관저 경호를 주로 맡았고 최근에는 김정은의 근거리 경호를 하고 있다. 고수일이 북한 매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 그해 4월 14일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던 우동측과 함께 군 상장 칭호를 받았다. 그 이전까지는 1992년 공개된 소장(우리의 준장) 진급 명단에 포함됐을 뿐 북한 언론에 거의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후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됐고,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국가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약하다 보니 경호가 더 중요해지면서 외삼촌 고수일의 역할도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걸고 넘어져선 절대 안 되는 게 있다.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애타는 마음을 사실상 인질로 삼은 것인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22일 한 정부 당국자는 전날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연기 통보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 내에서는 격앙된 반응 속에서도 “시간에 쫓기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의 싸움”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에 참여하는 대상자 중 90대 이상의 고령자는 28명으로 역대 상봉 행사 중 가장 많았다. 정부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0대 이상 상봉자들의 시급성을 감안해 선정 과정에서 최고 가중치를 부여한 결과였다. 3년 만에 열리는 행사인 데다 고령자가 많다 보니 통일부는 행사장에 들여놓을 간이침대까지 챙기고 있었다. 김동민 할아버지(79)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투병 중이고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95)도 상봉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한때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준 할아버지(91)는 상봉 예정일을 불과 엿새 앞둔 19일 별세했다.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2만9035명(8월 기준) 중 사망자는 벌써 5만6544명. 생존한 신청자 중에서도 70대 이상의 고령층은 전체의 80.1%에 이른다. 이 중 80대의 비율은 10년 전인 2003년 18.3%에서 40.3%로 22%포인트나 늘었다. 이산가족은 해마다 40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렇다 보니 이산가족 신청자 대비 사망자 비율도 계속 증가해 2003년 15.9%에서 올해 43.8%까지 높아졌다. 현 추세대로라면 3년 이내에 신청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50%를 넘길 것이라고 민주당 정청래 의원실은 분석했다. 그러나 이산가족들이 수십 년 쌓아 온 ‘한’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산가족들은 2000년부터 12년간 모두 18차례의 상봉 행사를 통해 2만1734명만이 가족과 재회했을 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 한 번이라도 상봉하려면 매년 7000명 이상으로 상봉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문제는 북한이 인도주의적 사안인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 무산된 19차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이미 여러 차례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2001년 4차 상봉 때에는 정부의 ‘비상경계조치’를 이유로 상봉 행사를 중단시켰고 12차와 13차 때에는 ‘납북’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남측 언론의 취재를 제한했다. 그런가 하면 2006년 7월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정부가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하자 금강산에 짓고 있던 이산가족면회소의 건설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이산가족 문제를 대남 ‘카드’로 활용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일연구원의 임순희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쌀, 비료나 전력 지원 등과 연계하며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데 급급하다”며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라는 근본적 이슈가 아닌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북한을 상대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상봉이 어려울 경우 최소한 가족들의 생존 여부만이라도 확인하자”고 요구하며 이들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할 수 있는 장비 지원 등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 상태다. 통일연구원의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이산가족 문제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는 만큼 국제 여론을 움직여 북한이 약속을 지키도록 계속 촉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총회 및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 채택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계기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금강산에서 2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함에 따라 현지에 체류하며 행사를 준비하던 남측 선발대가 22일 전원 철수했다. 정부가 인도적 사안을 정치적으로 풀려는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강경한 원칙론으로 맞대응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오후 2시 동해선 육로를 통해 철수한 남측 인력은 상봉행사 선발대 13명과 시설점검 인력 등 모두 75명. 선발대를 이끌고 방북했던 대한적십자사 박극 과장은 “행사 준비는 거의 다 끝난 상황이었다”며 “북측 관계자들은 평양에서 행사 연기 통고를 받고 이를 (우리에게) 통보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사실상 무산시킨 북한이 향후 대남 비방을 이어가며 긴장 수위를 추가로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핵심 당국자들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이 조금이라도 도발 기미를 보이면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다. 이런 분위기는 전날 통일부가 발표한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성명에서 “북측이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 조치’를 운운한 게 또 다른 무력도발을 하겠다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행위는 우리의 단호한 응징과 국제적 제재만을 강화시킬 뿐”이라며 강한 톤으로 경고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일방적인 상봉행사 연기는 그 어떤 설명과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정부의 향후 대북정책 기조는 과거보다 더 강경하고 원칙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남 비방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서기국 보도를 통해 통일부의 전날 성명 내용을 반박하며 남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조평통은 통일부가 북측의 일방적인 상봉행사 연기를 ‘반인륜적 행위’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우리의 성의와 노력에 극악한 대결망동으로 도전한 괴뢰패당이야말로 용납 못할 반인륜적 범죄자들”이라고 공격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남한 언론이 일본 아사히신문을 인용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이설주의 추문 관련 의혹을 보도한 것 등을 문제 삼았다. 이 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괴뢰패당이 어용매체들을 통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하는 모략적 악담질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는 극악한 특대형 도발이자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고 존엄을 걸고드는 자들은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북한이 민족의 명절 추석 직후 이산가족의 부푼 마음에 못을 박았다. 북한이 25일로 예정됐던 이산가족 상봉을 불과 나흘 앞둔 21일 행사를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밝힌 것이다. 상봉 예정자들은 좌절했고, 개성공단의 재가동으로 고무됐던 남북 대화 모드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 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조평통은 이어 “우리를 모략중상하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미룬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덧붙였다. 추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련 회담의 날짜는 명시하지 않았다. 북한은 성명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구속 수사 등을 언급하며 ‘남조선 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 소동’을 상봉 연기 이유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러나 북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북한이 지지부진한 금강산관광과 6자회담 재개 등의 현안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로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했다는 게 정부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를 개선했음에도 경제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인도주의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을 협상 카드로 쓰는 과거 행태를 다시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측이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자, 인도적 차원에서 준비해 온 이산가족 상봉을 불과 4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의도 대변인은 이어 “며칠 후면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200여 이산가족의 설렘과 소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이며 모든 이산가족과 우리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북측이 이석기 사건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의 헌법을 무시한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사건마저 남북 관계와 연결시키는 북측의 저의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 이산가족 볼모로 금강산관광-6자 재개 압박 ▼김 대변인은 “통일애국인사에 대한 탄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데, 소위 애국인사를 남한에 두고 지령을 주면서 조종한다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며 “우리 정부와 국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장관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통일부는 20일 금강산에 도착한 우리 측 사전선발대 13명과 기존 지원인력 62명을 22일 오후 2시에 귀환시킬 예정이다. ○ 이산가족 때려 금강산 얻으려는 성동격서? 이날 북한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구속 수사와 관련해 “남한의 보수패당이 우리와 끝까지 대결하겠다는 심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정상적인 대화와 북남 관계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상봉 연기를 감행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북한은 이석기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이산가족 상봉 준비 과정에서 이 사안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아 왔다. 북한이 주장한 남쪽의 전쟁 도발 책동 역시 결정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 올해 8월 치러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 군사연습 기간에 북한은 예년과 달리 대남 비방을 자제했고 훈련 기간에도 남북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논의를 했다. 따라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 결정적 이유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높다. 북한은 이날 조평통 성명에서 “민족 공동의 사업인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는 ‘돈줄’이니 뭐니 중상모략한다”며 지지부진한 금강산관광 회담 문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제 정부는 북한이 숙소를 문제 삼을 때부터 이를 빌미 삼아 막판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무산될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이 사안에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초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을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로 사용하자고 요구했지만 북측은 ‘사전 예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구슬려 왔는데 결국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 개선 등 노린 다목적 카드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를 발판으로 기대했던 국제 관계 개선이 북한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8일 중국에서 열린 ‘6자회담 당사국들 간 1.5트랙 대화’에 김계관, 이용호, 최선희 등 북핵 라인을 총출동시키는 등 6자회담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성의 있는 사전 조치를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의 기대를 꺾었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의도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7일 통일부 대변인에 임명된 뒤 첫 대북성명을 발표한 김 대변인은 매우 강경한 어조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는 “모처럼의 대화 분위기를 다시 대결 상태로 몰아가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북측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측이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 조치를 운운한 것은 또 다른 무력 도발을 하겠다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행위는 우리의 단호한 응징과 국제적 제재만을 강화시킬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실망은 이해하지만 시간에 쫓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기존 원칙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무산되거나 연기되더라도 당장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경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일단 ‘무산’이 아닌 ‘연기’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면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경우 북한도 대외 관계를 살피며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철중·이정은 기자 tnf@donga.com}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온갖 탄압’도 그 이유 중 하나로 내세웠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통일애국인사’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내란음모 사건을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마녀사냥극’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남한 내 공안사건을 남북관계에서 대남 압박카드로 내세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석기 사건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사건과 북한의 연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 남한 내 자기네 편을 은근히 격려하고 고무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건에 대한 북한의 그동안 태도는 ‘연관성 부인’에 초점이 있었다. 이달 6일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보인 첫 반응은 “괴뢰보수패당이 이 사건을 우리와 억지로 결부시켜 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대화 평화 노력과 북남관계 개선에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용납 못할 도발”이라는 주장이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남한 내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으니 북한으로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도 “북한이 남한 내에서 활동하는 진보단체, 반미 반보수 단체들을 통일애국단체라고 하면서 지원 사격해 온 것은 맞다”며 “이석기 사건은 이들에 대한 탄압의 일환이며 결국 그런 정부의 태도는 반통일적이라고 몰고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이날 대변인 성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킨 이유도 북한의 저의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 공안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은 ‘우리와 관계없다’며 무조건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마냥 꼬리 자르기를 하다가는 추종세력들의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도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사건을 조작해 남조선 각계의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일대 탄압소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진보세력들의 활동을 ‘친북’으로 몰아 말살해 보수 세력의 재집권을 실현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왕재산 사건을 비난했지만 이번처럼 대남 협상카드나 압박카드로 활용하지는 않았다고 정부의 다른 관계자가 전했다.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

1950년 6·25전쟁이 터진 직후 황해북도 개성시에 살던 22세의 청년 박태복 씨는 북한군에 강제로 징집됐다. 수용소로 끌려가던 날 어머니는 급히 싼 도시락과 함께 당시 돈으로 1000원을 박 씨의 손에 몰래 쥐여주었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북한군에서 포탄 나르는 일을 하던 박 씨는 강화도까지 내려왔을 때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탈출해 남한의 군인으로 전향했다. 이후 천신만고 끝에 북한에서 내려온 막내 남동생에게서 “어머니와 누이동생들이 강화도까지 왔다가 형이 북한으로 끌려간 줄 알고 다시 북쪽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63년. 85세 할아버지가 된 박 씨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단의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여동생 4명 중 2명은 살아 있고, 이 중 1명이 상봉 행사에 나오기로 했다는 연락이었다. 박 씨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며 “어머니 묘소를 썼는지가 제일 궁금한데 ‘동생분’을 만나면 울음부터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의 더께 속에 멀어진 관계가 어색했는지 그는 동생들을 ‘그분들’이라고 불렀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최종 확정 남북한의 적십자사는 16일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추석을 계기로 열리는 제19차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남측 상봉단이 96명, 북측 상봉단이 100명으로 정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1차 명단 교환 시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한 남쪽 인원이 167명이었는데 북측 가족과 관계가 소원하거나 건강상 이유 등으로 상봉에 응하지 않겠다는 후보자들이 있었다”며 “안타깝지만 96명으로 최종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96명 중에서도 추가로 상봉행사를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 최종 상봉단 규모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남측 방문단은 25일부터 27일까지 재북(在北) 가족을, 북측 방문단 100명은 28∼30일 재남(在南) 가족을 금강산에서 만나게 된다. 남측 최고령자는 김성윤 할머니(95)로 북측의 동생 김석려 씨(80·여)를, 북측 최고령자인 권응렬 할아버지(87)는 남측의 동생 권경옥 씨(83·여), 권동렬 씨(72)와 상봉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아들 고정삼 씨는 “어머니가 아주 기뻐하신다. 건강 상태도 좋으시다”고 말했다.○ “수십 년을 기다려서 이제야…”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 속에 선물 구입 등 재회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1·4 후퇴 당시 월남하면서 이산가족이 된 박춘재 할아버지(72)는 만나고자 했던 동생은 이미 사망했고 그의 아들 2명이 있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박 할아버지는 “조카들에게 화장품을 사다줄까 생각 중”이라며 “선물을 줘도 (북한 당국에) 바로 빼앗긴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래도 사가지고 가야지”라고 말했다. 2000년부터 상봉 신청을 했다는 그는 “조금만 일찍 행사가 열렸어도 동생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북한의 동생들을 만난다는 허경옥 할머니(85)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뭘 선물로 갖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달러를 가지고 가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김 할머니는 “1·4 후퇴 때 우리 영감이 먼저 북한에서 나오고 나는 이듬해에 아들 하나를 업고 강을 건너서 몰래 (남한으로) 왔다”며 “당시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친정에 있던 동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는데 수십 년을 기다려 이제야 만나게 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2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해 정부가 의뢰한 재북(在北) 가족 250명 중 167명의 생사를 확인해 알려왔다. 정부는 북측이 의뢰한 200명 중 생사가 확인된 149명의 재남(在南) 가족 명단을 북측에 전달했다. 통일부는 13일 남북한의 적십자사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이런 내용을 담은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의 생사 확인 회보서(回報書·질의 등에 대한 답신)’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한 남측의 최고령자는 김성윤 할머니(95)와 민재각 할아버지(95)이다. 이들은 각각 북측의 동생 김석려 씨(80·여), 손자 민지영 씨(45)와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최고령자는 조원재 씨(82)로 남측의 누나 이오순 씨(93·남한에 내려오기 전 이름은 조오순)와 상봉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상봉이 가능한 이산가족 중 90세 이상이 36명이고 80대가 56명으로 집계됐다”며 “최종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직계가족과 함께 이들 고령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생사를 확인한 167명 중 38명은 사망했고 12명은 상봉을 원하지 않거나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따라서 이번에 상봉이 가능한 인원은 117명에 그친다. 이들이 만나게 될 북쪽의 가족은 △형제자매 58명 △삼촌 이상 41명 △자녀 12명 △배우자 3명 △손주 3명 순이다. 정부는 확인을 의뢰한 후보자 중 북한이 과거보다 많은 67%에 대해 회신을 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해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남측에서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의 경우 149명 중 6명이 사망했고 16명은 건강상태 등으로 상봉행사 참가가 어려워 127명이 상봉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북 양측은 각각 100명씩의 최종 상봉 대상자를 확정해 16일 교환할 예정이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를 위해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관련 업무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단의 숙소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북측이 추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최근 정부가 숙소로 요구한 금강산, 외금강 호텔에 대해 관광객들의 사전 예약을 이유로 사용을 거부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은 “앞서 17차와 18차 상봉 행사 당시 쓰였던 이 두 호텔을 숙소로 상봉 행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며 “북한이 아직 특별하게 의견을 알려온 바가 없어 거기에 맞춰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너무 논리적으로만 설명하고 강의하는 통일교육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좀 더 문화적이고 생생한 현장 중심의 통일교육을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지난달 취임한 윤미량 신임 통일교육원장(사진)은 12일 통일부 출입기자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진화된 통일교육’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통일을 더이상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젊은 세대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과 내용의 통일교육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행정고시 30회 출신인 윤 원장은 통일부 최초로 여성 고위공무원 자리에 올라 ‘대모(代母)’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과 회담관리, 남북 사회문화협력 등을 담당할 때마다 홍일점으로 주목받았다. 탈북자 지원시설인 하나원장과 회담본부 상근회담 대표도 거쳤다. 윤 원장은 “과거의 통일교육이 어두운 분단 상황과 한반도의 비극에 집중돼 있었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통일될 경우 좋아지는 것들에 대한 비전을 꿈꾸는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교육을 받는 사람이 직접 통일 관련 스토리를 만들거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동영상을 만드는 식으로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윤 원장은 “일선 학교에서 비무장지대(DMZ) 방문 교육 같은 현장 체험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안보현장 체험 기회의 확대 의지도 밝혔다. 통일교육원은 박근혜 정부에서의 새로운 통일교육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최근 직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조만간 전문가들이 그 내용을 검토하고 정책자문회의 등을 거쳐 통일교육 발전계획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날 통일교육원이 배포한 2013년도 ‘통일문제 이해’ 책자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추가되고 변화된 주변정세와 남북관계 등을 반영했다. 일단 10만 부를 학교와 연구기관, 도서관 등에 배포하고 e-북(전자책) 형태로도 발간해 스마트폰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윤 원장은 ‘내정 상태에서 공식 발령이 많이 지연돼서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통일교육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범위가 넓고 대상 집단도 다양해 어려운 점이 있다”며 “(발령받기까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개성공단이 16일부터 재가동된다. 4월 3일 북한이 일방적인 출입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빚어진 지 166일 만이다. 남북은 10일 오전부터 11일 새벽까지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중 15일까지 시설 및 장비 점검을 끝낸 업체는 16일부터 공장 가동을 시작하고 예전처럼 개성공단 내에 체류할 수 있다. ○ 입주기업 보상 대책과 국제화 토대 마련 남북은 공단 중단 사태로 피해를 본 입주기업을 위해 2013년도 영업활동에 부과하는 재산세 기업소득세 등 6개 항목의 세금을 전액 면제해 주기로 했다. 최근 2년간 부과된 세금 총액은 연간 약 300만 달러(약 32억60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올해에는 개성공단 사태의 장기화 때문에 세금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통일부 관계자는 전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200만 달러(약 21억7000만 원) 안팎이 되지 않겠느냐”는 추산이 나온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개성공단 내 법인은 북한에 세금을 낸다. 정부가 입주기업들의 손실에 대한 북측의 성의 있는 태도를 요구했고, 북측이 이를 수용해 ‘올해 세금 면제’에 합의했다”며 북한의 변화된 자세를 평가했다. 올해 5월까지 내야 했던 2012년도 세금도 연말까지 걷지 않기로 했다. 또 공단이 멈춰선 4월부터 발생한 북측 근로자의 임금은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협의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통행 방식이 크게 개선된다. 무선주파수인식(RFID) 체계를 도입해 남측 인력들의 일일 단위 상시통행을 실시키로 했다. 지금까지는 북측이 출입사무소(CIQ)에 사전 통보된 명단을 문서로 일일이 확인한 뒤 사람을 들여보내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남측 인력이 예정된 시간에 CIQ에 도착하지 못하면 당일 공단에 들어갈 수 없고 다시 통행 계획을 북측에 통보해야 했다. 그 과정만 보통 사흘이 걸렸다. 그러나 RFID 체계를 구축하게 되면 그런 제한 없이 개성공단을 쉽게 오갈 수 있게 된다. 남북은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해 다음 달 개성공단에서 남한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과 상공인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공동 개최하기로 했다. 김기웅 남측 공동위원장은 11일 오전 브리핑에서 “개성공단이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공단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공단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의지가 중요하다. 합의서가 작성되기는 했지만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등을 빌미로 공단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는 상황 등이 재연된다면 남북 간 합의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 입주기업들, “떠난 바이어부터 되찾아 오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16일부터 공단이 재가동된다는 소식을 환영하며 개성공단이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자는 의지를 밝혔다. 한재권 개성공단 정상화촉구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재가동 날짜가 정해졌으니 기업들은 열심히 생산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123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분주하게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 개발권자인 현대아산은 ‘남북경협 재개 추진 태스크포스(TF)’의 소속 직원 13명을 지난달 22일부터 공단에 매일 출퇴근시키며 개성공단 사업 재개 준비를 해 왔다. 유창근 비대위 대변인은 “개성공단 출입이 허용된 날(8월 22일)부터 매일 설비팀을 보내 현재 설비의 60%는 당장이라도 돌릴 수 있다”며 “바이어를 되찾아 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김철중·강유현 기자 tnf@donga.com}
북한에 묻혀 있던 국군포로의 유해 한 구가 10일 북-중 접경지역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인 브로커가 이 유해를 운반해 와 중국 모처에 대기하던 한국 유가족에게 건넸다. 이 유가족은 현재 “유해가 한국으로 무사히 송환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정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군포로의 유해가 민간의 힘으로 온전하게 북한 땅에서 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국군포로 A 씨(1925년생)의 유해는 함경북도의 북-중 접경지역에서 강 건너 중국으로 옮겨졌고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그의 딸 측에 전해졌다. A 씨의 딸은 중국인 브로커에게 유해 운반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A 씨는 북한에서 결혼해서 살다가 1984년 1월 숨을 거두기 전 딸을 따로 불러 “너만이라도 꼭 한국 땅으로 가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20여 년이 지나 탈북한 딸은 A 씨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결국 북한에 남아 있는 친인척들이 한밤중에 무덤에서 A 씨의 유해를 수습한 뒤 배낭에 넣어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브로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해 송환에 관여한 한 인사는 “현재 유해는 (중국 내)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으며 관련자들이 모두 모처에서 향후 상황 추이를 보면서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A 씨의 딸은 유해의 한국 송환과 관련해 국방부 등 정부의 협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그는 최근까지도 유해 반출에 들어가는 비용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정부가 중국인 브로커 비용 같은 금전적 지원을 해 주진 못하더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안전하게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국내로 옮겨질 때 유해를 태극기로 덮어서 예우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가족의 바람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에서는 “일단 유해가 한국 땅으로 들어와 국군포로인지가 확인되면 그에 따른 예우를 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2004년 이연순 사단법인 6·25국군포로가족위원회 대표가 아버지 이규만 씨의 유해 반출을 시도했으나 당시 중국 공안에 적발되는 바람에 유해의 절반이 유실됐다. 이 외에도 한국으로 송환된 4구의 국군포로 유해가 더 있지만 북한에서 유골을 화장해 함에 담은 형태였다.이정은 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lightee@donga.com}
“국군포로의 생존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비겁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9일 탈북 국군포로들을 만나 이렇게 고백하고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관련 정책이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받고 있다. 남 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이제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국가답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독자와 누리꾼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 남재준의 반성, 국군포로 정책 변화로 이어질까 정부 고위 당국자는 10일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남 원장의 의지가 대단히 확고하다”며 “앞으로 정책적 측면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참전 전사자들의 유해를 끝까지 찾아내 예우하는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9월 25일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북한과 합의했을 때 생사 확인 요청 대상 규모를 기존 200명에서 250명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50명 가까이 포함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1∼18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 확인 요청을 받으면 대상자 25명 중 1명꼴(약 4%)의 회신율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망한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해를 북한에서 중국으로 반출한 뒤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탈북자 딸 손모 씨의 사례에 대해서도 지원 여부를 다각도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DNA) 감식 같은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이 유해를 국군포로로 인정해 예우할 수 있느냐가 1차 관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으로 송환된 12구의 유해에 대해 직접 서울공항에 나가 거수경례로 맞이하며 예우를 갖춘 전례가 있지만 이들 유해는 미군의 유해 발굴 과정에서 나온 한국인 전사자들이었다. 당시 한미 군사 당국의 DNA 감식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국군포로신고센터의 김현 센터장은 “군번 인식표와 가족의 증언, 유해 송환 과정의 전후 사정 등을 토대로 확인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생존한 국군포로 및 사망자 유해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와 가족이 직접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제라도 정식으로 문제 제기해야” 북한에는 500여 명의 국군포로 생존자가 있다는 것이 국방부의 추산이다. 평균 87세의 고령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그동안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2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공식 언급을 회피했다. 정부는 지금도 ‘전쟁 시기와 그 후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공식으로 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인 해결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서 국군포로 송환을 요청했지만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이후 진전을 보지 못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어 보이는 만큼 국군포로의 유해 송환 등을 국군포로 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

9일 오전 국가정보원 접견실. 국가정보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국군포로들을 만났다. 남재준 국정원장(사진)은 엉거주춤 서 있는 11명의 80대 탈북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에게 일일이 거수경례를 했다. 군 출신인 남 원장은 “지금도 저는 스스로 군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선배님들을 이제야 뵙게 돼 송구스럽다”며 깍듯한 예의를 갖췄다. 이날 면담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근본적 문제해결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국군포로신고센터를 운영해온 사단법인 물망초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남 원장은 북한 정권수립 65주년(9·9절)인 이날 북한의 동향분석 보고 등을 받느라 바빴지만 탈북 국군포로 할아버지들과의 대화는 당초 예정됐던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남 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 국가가 (국군포로 문제에) 너무 소홀했다. 잘못했다”며 사과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그는 “선진국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후대에도 가르치는 나라”라며 “그동안 섭섭하셨겠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국군포로 출신 할아버지들은 그동안 가슴에 담아둔 말을 다 쏟아내려는 듯 때론 책상을 쾅쾅 쳐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북한의 장기수 67명은 전부 돌려보냈으면서 왜 우리(북한 내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국정원조차 국군포로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을 몰랐을 수 있느냐”며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남 원장은 “몰랐던 게 아니다. 알았지만 행동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비겁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들의 말이 계속 길어지자 면담 중간에 배석자들이 ‘시간상 이유’로 발언을 끊으려 했다. 이에 남 원장은 “그냥 놔두시라”며 끝까지 묵묵히 들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날 국군포로 방문자들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고 국정원 입구에는 환영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또 접견실에도 ‘사선을 넘어 귀환해 오신 국군포로 어르신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따로 준비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쓴 것 같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국정원 간부들도 대부분 배석했다. 국정원은 이날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의 배우자들까지 초청해 오찬을 대접했다. 할아버지들 사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면담에 참석한 유영복 6·25국군포로가족회 명예회장(84)은 국정원 방문에 마음이 설레 오전 4시 반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이 한 번도 우리를 만나준 적이 없었는데 우리 용사들을 따뜻하게 맞아줘서 감사했다”며 “진정성 있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것을 보고 이 나라가 아직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유 명예회장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는 함경남도의 검덕광산에서 50년간 강제노동을 하며 노예같은 비참한 삶을 살다가 2000년에 탈북해 조국으로 귀환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1983년 10월 북한의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역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 고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지인들은 당시 대학생이던 그의 큰아들 한회 씨가 한 손으로는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묵묵히 서 있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김한회 씨(50)는 변호사가 되어 30년이 지난 지금 김한회 씨(50)는 변호사가 되어 북한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아웅산 테러 사건 30주년이 되는 다음 달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가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제소하려는 사단법인 물망초 등 사회단체들의 막바지 준비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강제 억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김 변호사는 최근 동아일보와 진행한 e메일 및 전화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린 동생과 80세 넘으신 할머니가 제일 걱정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6·25전쟁 때 남편을 인민재판으로 잃고 아들 3명도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북한 때문에 피해를 본 가족들이 우리뿐이겠느냐”며 “국립묘지만 가 봐도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묻히지 못한 피해자는 실제로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요즘 북한이 회원국이 아닌 ICC의 관할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며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인사들을 제소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 중이다. 그는 “북한 내의 일반적 인권유린과 달리 국군포로의 경우 휴전 당시 포로 송환을 담당했던 중립국 송환위원회와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ICC에도 관할권을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탈북자 증언이나 역사 자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소련의 옛 외교문서에 기록된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 간 회담 내용 중 “국군포로들의 탈출을 막고 중립국 감시단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북쪽 지역으로 보냈다”는 김일성의 발언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떳떳하게 정식으로 제기하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김정일과 만났을 때 한국의 정치인들 중 유일하게 이 문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긍정적 약속을 받아낸 분인 만큼 앞으로 더 발전된 대안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국군포로의 수기를 영어로 번역해 화제를 모은 아들 태완 군(17)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마음을 열어두어라. 가능한 한 많은 각도에서 사실을 직시하라’고 강조하셨다”며 “그 가르침을 내 아이에게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최근 한국에서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12∼17일 평양에서 아시아역도연맹(AWF) 주최로 열리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개성공단 재가동 및 이산가족 상봉 논의에 이어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북한의 대남 유화공세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통일부는 6일 북한이 이번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남한 선수들의 방북을 승인했다는 사실과 함께 태극기 게양 등을 허용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 선수들이 우승할 경우 북한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가 사상 처음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모든 초청국에 보낸 공지문에서 “국제대회 관례에 따라 모든 참가국의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고, 대한역도연맹이 이에 대한 확인을 추가로 요구하자 별도의 확인서를 보내 이를 약속했다고 한다. 방북하는 선수단은 대한역도연맹 소속 7개 클럽팀 선수와 임원, 역도연맹 관계자 등 41명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별도로 우리 선수단의 신변안전에 대해서도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 조짐 속에 정부는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준비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중국은 물론 유럽연합(EU) 등 북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지역의 정부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개성공단 투자 유치를 위한 국가 투자설명회(IR) 개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당국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먼 유럽의 이탈리아에 개성공단 투자 참여를 요청한 것은 개성공단 국제화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는 북쪽에도 약속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국 외에 다른 나라의 기업도 있어야 ‘국제화’라는 명분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개성공단의 국제화가 어차피 북한의 일방적인 전횡을 막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인 만큼 2, 3개 기업만 들어와도 충분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남북한은 이날 북한이 서해 군 통신선을 끊어버린 지 163일 만에 이를 복구하고 통화를 재개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