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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42년 강원 강릉에 들어선 옛 함외과의원 건물. 2층짜리 벽돌집 내부로 들어서면 여러 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 벽, 계단과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직사각형 창문이 그대로 남아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평소엔 개방되지 않는 이곳이 현대미술 작품 전시장이 되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14일 개막한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5) ‘에시자, 오시자’는 강릉의 숨은 보석 같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옛 병원과 여관올해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은 모든 전시 장소가 걸어서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1957년 생겨난 여인숙인 ‘일곱칸짜리 여관’, 1958년 교회 건물로 지어졌다가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작은공연장 단’, 강원도 유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이 대표적이다. 명주동 가구 골목을 중심으로 전시장인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일곱칸짜리 여관’ ‘창포다리’ 등은 모두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명주동은 1950년대 교회와 여인숙, 병원이 있는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오래된 공간을 개조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띈다. 천천히 걸으며 특색 있는 건축물과 골목길이 있는 동네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GIAF는 2023년 2회 전시에서도 도시의 숨은 장소를 발굴해 눈길을 끌었다. 강릉의 가장 오래된 시장인 동부시장의 옛 해물탕집, 과거 양곡창고로 쓰였던 ‘옥천동 웨어하우스’ 등이 화제를 모았다.● 버려진 강아지, 목조각으로 살아나다전시작 중에선 윤석남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가 눈에 띈다. 유기견을 돌보며 살아가는 이애신 할머니로부터 영감을 얻어 버려진 강아지 1025마리를 채색 목조각으로 만들었다. 그중 367점이 강릉대도호부 관아 옆마당에 설치됐다. 그간 미술관에서 대규모 설치로 선보인 적 있지만 야외에서 보면 느낌이 색다르다. 개막 첫날부터 작품 옆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홍이현숙, 흐라이르 사르키시안의 작품도 이곳에서 전시된다.미술인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작품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상영되는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추니엔의 영상 작품 ‘변신술사’(2025년)다. 호추니엔은 ‘변신’을 주제로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 5점을 엮어 총 99분 길이로 상영한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스파이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감각적인 편집으로 엮었다. 이 밖에 정연두, 이양희, 서다솜, 안민옥, 이해민선, 키와림(김기훈 김들림), 김재현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GIAF는 지역민이 공간과 전시를 설명하는시티도슨트와 시티가이드 서비스가 운영된다. 전시 기간 일부 참여 작가들의 공연과 워크숍엔 지역민들도 참여할 수 있다. 흑표범 작가가 지난해 선보인 퍼포먼스 워크숍 ‘뱀, 물, 새의 연습’은 올해부터 지역 초등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 운영된다. 전시 기획은 3회째 박소희 총괄감독이 맡았다. 페스티벌 제목은 강릉 단오제에서 하늘과 땅의 존재들을 불러 모으는 구호에서 따왔다. GIAF를 주최하는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의 박필현 이사장은 “미술이 도시재생에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며 “예술을 매개로 강릉의 매력과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4월 20일까지.강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몰려든 부서(물고기)떼는 작은 어촌을 희열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가난한 곰치 일가에도 만선의 행운이 찾아오지만 기쁨도 잠시. 선주 임제순이 밀린 뱃삯 반값으로 고기를 모두 빼앗고 내일부터 배를 묶겠다고 통보하는데….’1964년 7월 국립극단의 제37회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던 ‘만선(滿船)’의 당시 프로그램 북에 실린 줄거리 일부다. 표지엔 쓰러져 갈 듯한 어촌 풍경과 함께 ‘1964년도 10만 원 현상 희곡 당선작!’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극작가 천승세(1939∼2020)의 작품으로 문학 교과서에도 실린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창작희곡 ‘만선’. 올해로 초연 61년을 맞은 이 작품이 6일부터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환갑의 세월 동안 내공을 쌓은 ‘만선’은 무얼 가득 싣고 2025년 항구로 돌아왔을까.●올가미 같은 현실에 맺힌 비극7일 찾은 연극 무대는 여전히 인물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곰치네 초가집은 삐뚤어져 있고, 무대 바닥은 경사를 넣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표현돼 있다. 언덕 위에서 임제순이 흰옷을 입고 걸어 내려와 불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모습, 바람이 세게 부는데도 곰치가 욕심을 부리며 돛을 두 개나 이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 등은 곰치 일가가 맞닥뜨린 ‘올가미 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올해 무대는 사실주의적 연극을 주로 선보여온 심재찬 연출에 제31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무대를 맡았다.곰치 일가가 맞닥뜨린 조건은 ‘만선’을 해야만 벗어날 수 있지만, 극복해야 하는 변수는 너무나 많다.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물고기 떼의 움직임, 몇십 분 단위로도 바뀌는 파도와 바람, 그리고 날씨까지. 그럼에도 곰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만선만 하면 된다,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합리한 계약을 받아들인다.더 빛나는 건 배우들이었다. 배우 김명수는 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곰치’의 고집을 잘 보여줬다. ‘구포댁’을 연기한 정경순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며 자식까지 잃는 어머니의 한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악덕 선주 임제순’으로 열연한 원로 배우 김재건의 노련함 역시 돋보였다. ●60년 세월, 삶은 나아졌을까극 중 곰치의 아들 도삼은 “외국 사람들은 배에 기계를 달아 고기 떼를 훤히 보고, 날씨도 탐지한다”며 “원시적으로 고기를 잡으려면 남의 큰 배보다 작더라도 내 배를 타자”고 아버지에게 반항한다. 하지만 곰치는 “뱃놈이 물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 “큰 고기로 만선 하는 맛은 역시 중선배다”라며 이를 무시한다. 급격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빚어지는 세대 갈등과 빈곤과 같은 비극적인 서민의 현실이 잘 버무려졌다. 올해 연극은 굳이 대사를 현대화하지 않고 60년 전 쓰였던 그대로 살려냈다. “쐐기처럼 톡톡 쏜다”, “임제순이 속도 칡넝쿨이제”, “아저씨 넉살엔 얼음 속 굼벵이도 춤춘당께” 등에선 오리지널의 말맛이 여실히 살아있다. ‘만선’의 꿈을 산산조각 낸 폭풍우가 부는 장면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거센 비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 몰입감 있는 연출을 보여줬다. 바뀐 대목도 있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슬슬이나 구포댁 등 여성 캐릭터는 원작보다 훨씬 주체적인 면모를 보인다. 다만, 60년 전 곰치의 모습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의지’와 ‘고난’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2025년 관객들에겐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는 ‘고집’으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30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통통하고 빨간 볼에 동그란 눈매의 사랑스러운 코흘리개 아이를 카메라에 담은 ‘미라이짱’. 2011년 일본에서 사진집으로 발간돼 12만 권 이상 팔리며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연작을 찍은 사진가 가와시마 고코리의 작품 30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 ‘사란란’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했다.‘미라이짱’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가섬의 시골 마을에 사는 당시 세 살배기 단발머리 소녀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아이는 가와시마 작가의 친구의 딸. 작가는 짧게는 3일, 길게는 열흘씩 친구 집에 머물며 일상을 담았다. 이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화제가 되자 사진집까지 발간하게 됐다. 이번 전시는 미라이짱이 프랑스와 영국, 핀란드 등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모습을 담은 ‘보컬리즈(Vocalise)’ 연작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서울에 머물면서 촬영한 사진들도 선보인다. 미술관 측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섭외 요청을 했는데, 작가가 마침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가의 친구이자 배우인 우스다 아사미와 겨울을 배경으로 찍은 ‘S(e)oulmate’ 연작, 최초 공개하는 ‘사랑랑’ 연작 등이 전시된다. ‘사랑랑’이란 제목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사랑’과 ‘사람’을 조합해 만들었다. 다만 전시 제목은 한국어가 서투른 작가의 귀에 들렸던 대로(사란란) 썼다고 한다. 을지로 골목길의 풍경 사진도 눈에 띈다. 10월 1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통통하고 빨간 볼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한국에서도 사랑을 받았던 ‘미라이짱’의 사진가 가와시마 고토리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최근 서울에서 개막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사란란’전은 가와시마의 작품 300여 점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사진집이 12만 권 이상 판매되고 한국에서도 수년간 일본 도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연작 ‘미라이짱’도 포함된다.‘미라이짱’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가섬 시골 섬마을에 사는 세 살배기 단발머리 소녀의 일상을 담고 있다. 이 소녀는 가와시마 작가 친구의 딸로 작가는 짧게는 3일, 길게는 열흘 동안 친구의 집에 함께 머물며 아이의 일상을 담았다. 이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화제가 되면서 사진집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전시장에서는 ‘미라이짱’이 프랑스, 영국, 핀란드 등 유럽 여행을 떠난 모습을 담은 ‘보컬리즈’(Vocalise) 연작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풍경에 놓여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미라이짱’, 그런 아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지하 1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BABY BABY’ 시리즈는 대학생 시절 작가가 친구의 모습을 4년 동안 담은 것으로, 작가가 처음으로 낸 사진집이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매력적인 얼굴과 이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 햇빛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작가 특유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일본 배우 나가노 타이가, 대만 배우 야오 아이닝과 함께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등의 연작으로도 이어진다.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서울에 머물면서 기록한 사진들도 함께 선보인다. 미술관 측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에게 섭외 요청을 했는데, 작가가 마침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작가의 친구이자 배우인 우스다 아사미와 겨울을 배경으로 찍은 ‘S(e)oulmate’ 연작, 또 최초 공개하는 연작 ‘사랑랑’ 등이 전시된다. ‘사랑랑’이라는 제목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사랑’과 ‘사람’을 조합해 만들었다. 다만 전시 제목은 한국어가 서투른 작가가 처음 적었던 대로(‘사란란’)다. 을지로 골목길을 다니며 담은 풍경, 서울에 머물며 팬에서 친구가 된 양익준 감독의 모습 등이 눈에 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파키스탄계 미국인으로 희곡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엘리트’. 그러나 현실에서는 백인들에게 ‘테러리스트의 민족’으로 배척당하는 이민자. 그리고 또 한쪽에선 무슬림의 배타적 면모를 비판했단 이유로 ‘무슬림의 정체성’을 지지하지 않는 미국인이라 비판받는 인물. 소설의 주인공은 아야드 악타르. 9·11테러 이후 심해진 이슬람 혐오로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희곡 ‘수치’로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처럼, 악타르도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다. 결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인물. 저자와 이름이 같다 보니 독자는 마치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착각에 자꾸 빠진다. 하지만 실은 교묘히 허구가 섞여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창작은 바로 저자의 아버지다.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는 1993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심장 주치의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투자에 손을 대며 언제나 ‘돈’과 ‘실익’을 따진다. ‘기회의 땅’ 미국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이민자를 배척하는데도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남몰래 그에게 표를 던진다. 그런 아버지는 “불가능하리만큼 강해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자신, 부채나 진실, 역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자신”과 “고국에 버리고 온 파키스탄 자아보다 더 많은 걸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줄 이미지”를 트럼프에 투사하는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와 더불어 빚으로 돈을 버는 무슬림 ‘리아즈’도 있다. 리아즈는 대출 평가 사업을 하며 빚을 팔아 자본을 굴리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를 통해 빚과 자본이 국경을 넘는 권력이자 논리가 돼 하층 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동시에 악타르 역시 리아즈가 소개한 주식으로 커다란 부를 거머쥔다. 이렇게 “성장하는 건 공동체가 아닌 자본 자체이며, 빚이 수단이자 지배 논리인” 시스템(리아즈)과 그 환상을 좇는 사람(아버지)을 보여주며, 소설은 “돈이 활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제는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게 된” 미국 사회를 비춘다. “이제 우리에게 돈은 노동의 목적이 아니라 여가의 목적”이며 “영화 줄거리를 말하기 전에 박스오피스 순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외야수의 타율을 보기 전에 그가 받는 보너스에 관심 갖는” 사회 말이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에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무슬림의 독립을 지지했던 ‘라피트’도 있다. 이 인물을 통해 소설은 미국과 파키스탄의 약탈적인 관계를 역사적인 르포로 풀어낸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악타르를 중심으로 ‘이민자의 나라’로 여겨졌지만 거대한 벽이 도사린 미국의 실상을 그려내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조명하는 것은 뭘까. 트럼프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 사회 혹은 자본주의의 복잡한 양상이다. 이른바 ‘아메리칸드림’을 둘러싼 환상과 적나라한 민낯. 주인공은 이렇게 되뇐다. “트럼프는 일탈이나 이상 현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것을 보여주는 인간 거울이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은 이집트 출신 현대미술가 와엘 샤키와 나눈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샤키는 십자군 전쟁을 마리오네트로 재현한 연작 ‘십자군 카바레’(2010~2015), 신화를 재구성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2012~2016) 등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카셀 도큐멘타, 샤르자 비엔날레,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등 주요 국제전이나 기관에서 전시했고,지난해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역사를 주제로 한 대규모 음악극 ‘드라마 1882’(2024)를 공개했죠.감각적인 영상미와 스토리, 또 수십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규모로 눈길을 끌었고, 프리뷰 기간에는 이집트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기도 했습니다.그런 그가 한국에 들고 온 작품들은 이들과는 사뭇 다른 초기작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슈퍼마켓에서 꾸란을 외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20년 전 작품 ‘동굴’, 유명 TV쇼를 패러디해 정치적 사건을 다룬 ‘텔레마치’ 시리즈 등인데요. 최근의 대규모 프로덕션과 다른 작은 규모에 날것의 화면이 전시장에 펼쳐집니다.처음엔 ‘내가 알던 샤키의 작품이 맞나?’ 싶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런 출발점에서 대표작이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인터뷰였습니다.20년 전 만든 ‘동굴’,내 자화상 같은 작품- 20년 전 만든 작품 ‘동굴’을 한국에서 다시 보니 어떤가요?“기쁘고 즐거워요. 이 작품은 자화상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고, 제 직접적인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2004년 터키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잠시 살았는데, 이때 터키는 유럽 연합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충돌하며 큰 정치적 긴장이 생겨나고 있었어요.이 무렵 저도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죠. 나의 종교적인 배경(이슬람)과 세속적인 세계(유럽 연합)를 관련지으려다 나온 것이 이 작품입니다.작품 속에 등장하는 슈퍼마켓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거의 동일한 상품을 찾을 수가 있어요. 이런 세계의 똑같은 시스템 속에서 저는 꾸란의 ‘동굴’ 장을 연결하기로 했습니다.꾸란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는 자신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힘과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런 다음 자신의 땅으로 돌아와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입니다.그중에서도 ‘동굴’ 이야기는 마을에서 핍박받는 외부자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외부자들이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고, 신은 이들을 동굴에서 수백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들게 만듭니다.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이들이 깨어나자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신의 기적의 증거로 믿게 되었죠.“- 이 내용을 왜 슈퍼마켓에서 말하려고 한 건가요?“그게 나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로 다른 문화권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모든 것은 자본주의의 우산 아래 있어요. 마치 어느 나라나 상품이 똑같은 것처럼요.그런데 이집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살았던 저는 그것과는 다른 모든 기억을 내 안에 가지고 있죠. 그래서 꾸란의 내용을 끊기지 않고 원테이크로 외워서 말하는 제 모습을 담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에 중간에 틀리거나 까먹으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했죠.이 작품 속 모습이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약간 어려 보이기만 할 뿐…“- 그렇게 슈퍼마켓에서 꾸란을 외웠던 이유는, 당시 처했던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있었나요? “아니요. 제가 처한 상황이나 나에 대해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법이었어요. 다른 작품들도 기본적으로 ‘이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요.예를 들어 ‘텔레마치’ 연작은 제가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독일의 유명한 TV쇼인데요. 이런 TV쇼를 보는 것과 같은 시기에 이집트에서 대통령 암살 사건(안와르 사다트(1918~1981)가 제4차 중동전쟁 승리 기념 퍼레이드를 하다 습격당하는 것이 중계됐고, 그 후 호스니 무바라크(1981~2020) 독재 정권이 30년간 통치했다)이 일어났죠. 어린 시절 TV에서 그 두 가지를 보았던 느낌이 제 안에 남아 있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는 몰랐죠. 그걸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동굴’을 만들고 나서 나에 대해 좀 더 이해했다. 그런 만족감이 들었나요? “솔직히 말해서 제일 놀라운 건 처음 그 작품을 했을 때는 터키의 상황에 관해 표현한다고만 생각했는데요. 왜냐면 터키에는 인구 97%가 무슬림이고 어디에나 모스크가 있고 모두가 아랍어로 기도해요. 그런데 터키인들 대부분은 아랍어를 할 줄 모르죠.그러니까 그 언어를 모르면서 어떻게 신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거였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터키에서 전시했을 때 아주 많은 공감을 사고 인기를 끌었는데, 그 후 국제적으로도 아주 여러 곳에서 전시가 됐어요. 그 이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시한 작품보다 더 많은 반응을 얻었죠. - 저는 그러한 상황을 잘 모르지만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어요. 왜냐면 지금 광화문에 가봐도 성경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 맹목적이고 낯선 기분을 이 작품에서 느꼈습니다. “네. 다만 이 작품에서 제가 그 종교를 믿는지 안 믿는지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않았어요. 기자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꾸란을 암송하는 방식도 리포터가 말하듯이 건조하게 읊었죠. 또 종교적인 느낌이 아니라 텍스트의 내용 자체를 말하려고 했어요.”‘더 나은 곳 향한 욕망’,종교와 역사, 시대를 넘는 공통된 꿈- ‘동굴’ 작품은 슈퍼마켓에서 꾸란을 외는 모습을 라이브로 담아서 곁눈질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텔레마치 교외’는 독일 밴드를 이집트 마을에 갑자기 가져다 놓아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돌발적인 것을 넣어 반응을 보는 걸 즐기나요?“네, 그런 것이 항상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작품을 만들 때 저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가 “사회 시스템이 정말로 진화하고 발전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느냐”거든요.유목민 사회, 농경 사회, 도시 사회 사이의 시스템과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저는 유심하게 봐요. 그 변화는 흰색이 검은색이 되듯 갑자기 변화하는 건 아니고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죠.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제 성장 배경에도 영향이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농업사회인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사막 유목민 사회인 메카에서 성장기를 살았어요. 어린 시절의 겪은 다른 문화들이 항상 제겐 의문스러웠어요.”- 그래서인지, 서로 다른 문화에서 공통되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다는 느낌도 받아요. 실제로도 그런가요?“제 생각에 저의 작업에서 주된 것은 전환기의 사회, 전환기의 문화를 번역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진화하려는 꿈’이 있죠. 이 꿈은 항상 같은 것이에요.십자군 전쟁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사다트 대통령 암살에서도. 또 베네치아에서 선보였던 ‘드라마 1888’에서도 그래요. 항상 사회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해요.”- 결국 모든 것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군요.“발전하고 싶은 욕망은 인류의 공통된 것이죠.”- 그러니까 ‘동굴’에서 슈퍼마켓을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네요.“네. 이민이라는 것도 그래요. 한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민’가는 이유는 힘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심지어 꾸란에도 나와요. 꾸란에서 말하는 것도 결국은 ‘발전하려는 욕망’이죠.”- 그런 점에서 1층에 전시된 애니메이션 작품 ‘알 아크사 공원’이 생각나네요. 눈에 보이는 건물은 욕망이 응축된 것 같은데 그걸 위태롭게 만들고 있잖아요.“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물은 ‘바위의 돔’인데 이 작품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순환’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거예요. 우리가 놀이공원에 가면 기구가 멈춰야 입장할 수 있으니 그걸 계속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영상 속 놀이기구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고 돌죠.다른 작품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에도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나와요. 이야기가 약간씩 바뀌긴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가고, 약간 바뀌고 처음으로 돌아가요.그런 이야기 중 하나는. 마을 지도자가 여왕과 결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여왕은 지도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져요. 마을 전체가 날뛰며 여왕을 죽이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고, 죽은 지도자의 형제가 여왕과 결혼하기로 해요. 마을은 환호하고 결혼식을 올리면 여왕은 또 남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집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죠.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고요.“- 2025년에 당신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글쎄요. ‘동굴’ 작품의 의미가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우선은 가장 단순한 드로잉에서부터 시작해 볼 것 같아요.”-20년 전 작품과 지금이 변한 것 없다고 처음에 말했던 작가는 마지막엔 ‘많은 것에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지요. 크게 보면 달라진 게 없고, 가까이서 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한 것들이 돌고 돌면서 만들어지는 세상사. 그게 와엘 샤키가 보여주고 있는 인간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인터뷰였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 등에서 토르 역할을 맡았던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사진을 공개했다. 헴스워스는 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게재하며 “최근 촬영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리미트리스2’의 비하인드 신”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은 기대 이상이었다”며 “이번 시즌은 건강과 장수, 웰빙에 대한 지식을 찾아 떠난 놀라운 글로벌 여정이었다”고도 했다. 공개한 사진에서 헴스워스는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인 방송인 김동현을 상대로 복싱 연습(사진)을 하고 있다. 군복을 입고 한국 군인들과 씨름을 하거나 한국 길거리를 다니는 사진들도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즐거운 나의 집은 항상 즐겁기만 할까?’ 밥을 먹기 위해 온 식구가 모여 앉는 식탁 위 식기에 전선을 주렁주렁 연결해 전기를 통하게 한다. 치즈 강판을 커다랗게 만든 모양의 침대를 놓고, 무언가를 가려야 할 파티션에는 철조망을 달아 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비틀어 관객이 불안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의 작품들 이야기다. 일상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것들의 배신. 1980년대부터 그가 보여준 ‘불편함’은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영국 테이트모던과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뉴뮤지엄과 독일 카셀 도쿠멘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명되고 있다. 올해는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자코메티와 2인전을 앞둔 하툼이 갤러리 전시로 한국을 찾았다. 하툼은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져 보기 위해 일상의 사물을 활용한다”고 했다.“집에서 쓰는 가구는 ‘몸’과 관련 있죠. 앉거나, 눕거나, 기대도록 만든 것이니, 작품에 몸을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가구를 보고 저절로 자기 몸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툼의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상상에 잠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무제(휠체어 II)’(1999년)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차갑고 딱딱한 휠체어다. 특히 누군가 잡고 밀어야 할 손잡이는 칼날처럼 만들었는데, 보는 순간 ‘저 손잡이를 잡으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은 한 사람이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 갈 때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늘 살던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죠. 주변에 보이는 전부가 불확실하고, 이전엔 괜찮았던 것이 여기선 그렇지 않아요. 무언가를 마주할 때 ‘이게 나를 반길까? 아니면 거부할까?’라는 불안이 항상 있어요.”흥미로운 건 이런 불안한 감정이 수동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색색의 유리로 만든 수류탄이 있는 작품 ‘정물(의약품 캐비닛) VI’처럼, 가만히 있지만 함부로 만지면 폭발할 것 같은 폭력성이 있다. 하툼은 이런 요소들이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불길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정말로 항상 안정적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표면 너머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지고,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지며, 자고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건 이제 모든 세계인이 마주한 현실이 됐다. 팔레스타인인으로 레바논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하툼은 “작품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해서 출발하지만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하툼은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7차례 그룹전으로 국내에 작품을 선보였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그는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한지를 발견해 잔뜩 샀다”면서 “다른 골동품점에도 흥미로운 게 많았는데 문을 닫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일 말고 다른 건 한국에 궁금한 게 없었냐’고 묻자 그는 두 팔을 쫙 뻗더니 “다이소!”라며 웃었다. 한국의 일상 속 물건에서 하툼은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답은 새 작품이 나올 때쯤 알아볼 수 있겠다. 4월 1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즐거운 나의 집은 항상 즐겁기만 할까?’밥을 먹기 위해 온 식구가 모여 앉는 식탁 위 식기에 전선을 주렁주렁 연결해 전기를 통하게 한다. 치즈 강판을 커다랗게 만든 모양의 침대를 놓고, 무언가를 가려야 할 파티션에는 철조망을 달아 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비틀어 관객이 불안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의 작품들 이야기다.일상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것들의 배신. 1980년대부터 그가 보여준 ‘불편함’은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영국 테이트모던과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뉴뮤지엄과 독일 카셀 도큐멘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명되고 있다. 올해는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자코메티와 2인전을 앞둔 하툼이 갤러리 전시로 한국을 찾았다.하툼은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져 보기 위해 일상의 사물을 활용한다”고 했다.“집에서 쓰는 가구는 ‘몸’과 관련 있죠. 앉거나, 눕거나, 기대도록 만든 것이니, 작품에 몸을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가구를 보고 저절로 자기 몸을 떠올리게 됩니다.”하툼의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상상에 잠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무제(휠체어 II)’(1999)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차갑고 딱딱한 휠체어다. 특히 누군가 잡고 밀어야 할 손잡이는 칼날처럼 만들었는데, 보는 순간 ‘저 손잡이를 잡으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무언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은 한 사람이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 갈 때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늘 살던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죠. 주변에 보이는 전부가 불확실하고, 이전엔 괜찮았던 것이 여기선 그렇지 않아요. 무언가를 마주할 때 ‘이게 나를 반길까? 아니면 거부할까?’라는 불안이 항상 있어요.”흥미로운 건 이런 불안한 감정이 수동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색색의 유리로 만든 수류탄이 있는 작품 ‘정물(의약품 캐비닛) VI’처럼, 가만히 있지만 함부로 만지면 폭발할 것 같은 폭력성이 있다. 하툼은 이런 요소들이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불길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정말로 항상 안정적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표면 너머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지고,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지며, 자고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건 이제 모든 세계인이 마주한 현실이 됐다. 팔레스타인인으로 레바논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하툼은 “작품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해서 출발하지만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하툼은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7차례 그룹전으로 국내에 작품을 선보였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그는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한지를 발견해 잔뜩 샀다”며 “다른 골동품점에도 흥미로운 게 많았는데 문을 닫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일 말고 다른 건 한국에 궁금한 게 없었냐’고 묻자 그는 두 팔을 쫙 뻗더니 “다이소!”라며 웃었다. 한국의 일상 속 물건에서 하툼은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답은 새 작품이 나올 때쯤 알아볼 수 있겠다. 4월 1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가 피에르 위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휴먼 마스크’는 인간의 가면을 쓴 원숭이가 주인공이다. 긴 머리카락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있어 뒷모습만 보면 체구가 작은 소녀 같지만 팔과 다리엔 털이 수북하다. 이 원숭이가 돌아다니는 곳은 원전 사고로 황폐해진 일본 해안 도시 후쿠시마의 어느 식당. 그 안에서 원숭이는 훈련 받은 대로 부엌과 식탁을 오가며 의미 없는 일을 하거나 가만히 허공을 응시한다.‘휴먼 마스크’를 비롯해 위그가 최근 10여 년간 제작한 작품 12점을 공개하는 전시 ‘리미널(Liminal)’이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람이 아닌 원숭이처럼, 위그는 인간이 되려다 만 ‘이상하고 아름다운 괴물들’을 작품 속에 펼쳐 놓았다. 전시 제목 ‘리미널’은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일컫는다. 작가는 전시장 입구에 임신한 사람의 배를 본뜬 조각 작품(에스텔라리움)을 놓아뒀다. 앞으로 관객이 보게 될 작품들이 온전한 형태가 아닌, 배 속에서 무언가로 변하고 있는 ‘중간 상태’의 것들임을 암시한다. 이어 전시 제목과 같은 영상 작품(리미널)이 보이는데, 얼굴이 텅 빈 사람의 형체가 등장한다. 이 형체는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가 감지하는 데이터에 따라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진다.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도 정해진 서사 없이 전시 기간 수집되는 데이터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로 제작됐다. 전시를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쓰고 걸어 다니는 금색 마스크 ‘이디엄’에도 센서가 달려 있다. 마스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는 듯 기존 언어가 아닌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시 소개 서문은 ‘변화’라는 설정을 강조하지만, 작품과 전시장이 빚어내는 불길하고 쓸쓸한 분위기도 흥미롭기가 그 못지않다.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게 만들어진 1층 블랙박스 전시장 한쪽 수조에는 콩스탕탱 브랑쿠시(1876∼1957)의 조각을 본뜬 얼굴 형상을 등껍데기 대신 메고 있는 소라게가 걸어 다닌다. 브랑쿠시의 조각조차도 소라게에겐 다른 소라 껍데기와 같은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하 1층 전시장의 대형 영상 작품 ‘카마타’는 흙 바닥에 놓인 해골을 기계가 관찰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 그 해골의 형상이 바닥을 향해 쓰러진 듯 엎드리고 있어, 화산재가 덮친 폼페이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 그 흔적만 남은 세계를…. 7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강서현의 개인전 ‘잃어버린 한쪽 다리와 태어날 천 개의 발’이 5일 서울 종로구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개막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와 장면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메다르도는 전쟁에 나갔다가 적의 포격으로 신체 상당 부분을 잃는다. 마을 사람들은 반쪽짜리 몸으로 돌아온 메다르도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조카에게 “나머지 반쪽이 더 깊고 값진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다”며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축하해주겠다”고 말한다. 작가는 선과 악, 인간과 동물이 결합한 듯한 형태의 인물을 회화로 표현하거나, ‘없어진 발’을 여러 가지 형태로 빚은 세라믹 작품으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유럽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남성이 걸어 다니며 아랍어로 경전을 암송한다. 정장 차림의 남성을 카메라는 생중계하듯 기록한다. 남자가 읊는 내용은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동굴의 장’. 소셜미디어도 본격화되기 전인 2005년, 장을 보던 마트 고객들은 힐끔힐끔 곁눈질한다. 이 남성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 와엘 샤키의 20년 전 모습이다. 이집트 출신인 샤키는 카셀 도큐멘타, 샤르자 비엔날레,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전시했고,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수십 명이 등장하는 감각적인 음악극 ‘드라마 1882’는 베니스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긴 대기 줄을 만들었다. 샤키의 초기작을 공개하는 전시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이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개최됐다.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샤키는 “20년 전 작품 속 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질적 문화의 충돌이 만든 의미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지하에 전시된 ‘동굴(암스테르담)’이다. 네덜란드의 슈퍼마켓에서 꾸란을 외는 낯설고 기이한 남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샤키는 “내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이집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자랐는데, 예술가로 활동하며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여러 나라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았습니다.” 세 가지 버전이 있는 이 작품의 출발지는 튀르키예. 당시 튀르키예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려고 했고, 찬성 의견과 무슬림 세계에 남아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대립했다. 샤키는 아랍어를 모르는 대다수 튀르키예 국민들이 아랍어로 된 경전을 믿는 현상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엔 자신의 성장 경험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어릴 때부터 달달 외웠던 꾸란을 원테이크로 읊으며,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슈퍼마켓에서 걷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이질적 문화를 충돌시키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샤키는 점차 더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로 발전시켰다. ● 같지만 다른 목소리가 담긴 순환지하 전시가 ‘충돌’을 다뤘다면 1층은 ‘순환’을 말한다. 입구에서 보이는 작품 ‘알 아크사 공원’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지 ‘바위의 돔’이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담았다.“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려면 그게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이 영상에선 ‘바위의 돔’이 영원히 회전합니다.” 이러한 ‘반복’의 테마는 지난달 23일 마무리된 대구미술관 전시에 선보였던 작품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과 연결된다. 샤키는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I’의 배경인 모하메드 무스타갑의 단편 소설 ‘Horsemen Adore Perfumes’ 속 이야기도 들려줬다.“마을 지도자가 여왕과 결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여왕은 지도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져요. 마을 전체가 날뛰며 여왕을 죽이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고, 죽은 지도자의 형제가 여왕과 결혼하기로 해요. 마을은 환호하고 결혼식을 올리면 여왕은 또 남자의 목을 베어 시장에 던집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죠.”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 순간.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닮은 이야기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바뀌면서 같지만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샤키는 인터뷰 초반 “20년 전 자화상 속 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막바지에 ‘2025년엔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 거 같냐’고 물어봤다.“지금은 그 작품이 많이 달라져서…. 우선 가장 단순한 드로잉에서 시작해 보겠어요.” 4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밤새 쏟아진 폭우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 2024년 가을 태국 치앙마이. 집 10만여 채가 물에 잠길 정도로 큰 홍수가 오자, 여행자들은 높은 건물이 많은 지역으로 숙소를 옮기기 시작한다. 이때 치앙마이에 머물던 저자는 여행자 카톡방에서 ‘홍수에도 열리는 야시장은 어디냐’ ‘수영장을 쓸 수 있는 숙소는 어디냐’고 묻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을 본다.‘한쪽에서는 재난이 벌어져 마실 물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다른 쪽에서는 수영장과 에어컨을 즐기는 것이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지구의 기후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은 “여행을 멈출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는 마음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의 여행, ‘기후 여행’을 소개한다.기후 여행은 여행자가 그 장소에 잠시 머물면서 좋은 것들을 독점하거나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생태적으로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지역을 함께 만드는 ‘책임 있는 여행’을 일컫는다. 영국 바이웨이 트래블이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 상품을 제안하며 비수기 여행, 늦여름 여행, 야간열차 여행 등의 흥미 있는 여행 상품을 제안한 것이 한 사례다.무료로 카약을 타면서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그린 카약’,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가면 같은 무게의 쌀로 바꿔주는 프로젝트,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는 비건 카페 겸 숙소 등 여행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알려준다. 공항은 규모를 넓혔는데도 갈수록 여행객으로 붐빈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등에선 수많은 여행 정보가 쏟아진다. 저자는 이런 ‘오버투어리즘’ 때문에 미래의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휴식과 즐거움, 경험과 배움의 기회까지 고갈시키는 건 아닌지 묻는다. ‘어디로, 어떻게’ 여행을 떠날지만 생각하지 말고, ‘덜 자주, 더 깊이, 더 오래 머무는 여행’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 미국은 국경을 더 강화하고, 관세를 높이며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장벽을 더욱 탄탄하게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최근 수 년간 관람객을 향한 문턱을 낮춰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2024년에는 매주 금요일 밤(오후 5~10시), 매월 둘째주 일요일을 무료 관람일로 지정하더니,최근에는 25세 이하 관람객이라면 거주지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휘트니 미술관 입장료는 30달러로 약 4만원. 뉴욕 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도 비슷한 수준이죠.이것을 가능케 한 사람, 스콧 로스코프 관장을 25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휘트니는 젊은 미술관,젊은 관객이 더 만나야“로스코프는 2023년 11월 휘트니미술관장에 취임했습니다. 전임 애덤 와인버그 관장이 미술관을 20년 넘게 이끌던 자리를 넘겨 받았죠.2009년 큐레이터로 미술관에 합류한 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 제프 쿤스, 글렌 라이곤 등 동시대 작가의 활력 넘치는 전시를 기획하며 빠르게 승진했습니다.그런 그에게 “관장이 된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가장 변한게 무엇이냐”고 묻자, 자신있게 “25세 이하 관객에게 무료 개방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미술관에서 15년 넘게 일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바로 입장료 문제에요.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나, 이제 막 첫 일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에게 입장료는 큰 문턱이죠.관객 조사를 해봐도 비용이 부담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휘트니미술관이 100년 전 문을 열었을 때부터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곳이었으니, 젊은 관객이 더 쉽게 오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이런 정책은 좋은 뜻만 있다고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이죠.로스코프 관장은 미술관 이사회의 부유한 후원자들은 물론 예술가까지 설득했습니다. 요즘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 줄리 머레투 같은 작가가 200만 달러를 이 정책을 위해 기부해 화제가 됐죠. 미술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다는 뜻에 공감해 사업가뿐 아니라 예술가도 발벗고 나선 것입니다.특히 25세 이하 무료 입장은 전세계 관객에게 해당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뉴욕 미술관 중 뉴욕 시민이나 학생에게 혜택을 주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로스코프 관장은 “언제라도 가능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라며 “특히 미술관이 오래 전부터 젊은 작가를 지원했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정치, 경제는 장벽 높여도문화는 활짝 연다로스코프 관장의 말처럼 휘트니미술관은 설립 될 때부터 ‘살아있는 미국 미술가’ 작품을 전시하고 소장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1930년 예술가 겸 후원자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설립했고, 이 때 유럽 미술가에 밀려 설 자리가 없었던 에드워드 호퍼 같은 작가를 지원했죠.호퍼의 유산이 전부 미술관으로 오면서 호퍼 작품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앤디 워홀, 알렉산더 칼더, 백남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중요한 작품들이 있습니다.흥미로운건 이 미술관이 ‘미국 미술’을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로스코프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도 미국 미술가로 본다”고 했습니다.“만약 어떤 작가가 잠시만 뉴욕에 살았더라도 그가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았다면 그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합니다.이를테면 일본 출신인 야스오 쿠니요시(1889~1953)도 당시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는데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죠.지금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이나 마이클 주, 바이런 킴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이죠.“로스코프 관장의 말에서 정치와 경제의 장벽은 높이더라도 문화 분야에서는 문턱을 낮춰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 인상깊었습니다.로스코프가 말하는현대미술가와의 소통로스코프 관장이 ‘살아있는 예술가’의 개인전을 계속해서 열어 온 것도 제겐 흥미로운 대목입니다.미술관에 관련한 여러 업무로 한국을 찾았다는 로스코프 관장은 전날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피에르 위그 개인전도 찾아 위그를 만났다고 합니다.하버드 대학원생일 때 위그의 전시를 열었고, 그것이 자신의 생애 두 번째 전시였다고 하네요. 서울에서 위그를 만나 무척 신기하고 기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작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야기도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 온 작가들과 일하기를 좋아하는데요. 재스퍼 존스도 2001년에 처음 만났는데 이제 5월이면 95세 생일을 맞아요.“작가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비평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선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겠죠. 그런 가운데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챌린지 하거나 여러 방면으로 검증해주는 사람을 작가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지금 미술관에선 크리스틴 선 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미국 미술에서 선 킴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선 킴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주고 받는지, ‘소통’에 관한 아이디어를 깊이 파고드는 작가에요. 문자부터 구어, 수어까지 다양한 언어 체계들에 새로운 감정을 불어 넣고, 이것을 드로잉이나 영상, 조각 등 시각 언어로 표현하죠.또한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조건, 그것을 위해 만들어내는 체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오류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이것을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한편으로는 깊은 아이러니와 냉소를 담아, 또 어떤 때는 분노하며 풀어내기도 하죠.“그러면서 한국의 젊은 관객들도 꼭 미술관에 와서 7층의 ‘미국 미술 정수’를 담은 소장품을 보고 또 다른 전시장들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발견을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테라스에서 볼 수 있는 뉴욕의 상징적인 풍경들(허드슨 강, 자유의 여신상, 하이라인 파크)도 놓치지 말라고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가 임민욱의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 ‘하이퍼 옐로우’가 2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임 작가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연 뒤 10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6·25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산가족 찾기 방송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의 작품들이 소개된다.전시는 입장하자마자 미술관 1층 전시실 전체를 사막처럼 만든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관객을 맞는다. 코르크 바닥 위에 구불구불한 언덕을 만들고 황토 분말, 테라코타 가루를 뿌려 모래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각 언덕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칠해져 있거나, 종교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조명이 놓여 있는데, 일본 유명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평면도를 참고했다고 한다.옛것을 연상케 하는 종교와 미래 행성이 떠오르는 전시장 분위기의 상반된 요소가 뒤섞여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방식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2층 전시실 중앙에 있는 영상 작업 ‘동해사’는 일본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를 담은 영상이 좌우로 상영된다. 가운데에는 얼굴 11개의 보살 ‘십일면관음상’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좌우 영상에선 불과 물이 대립하고,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가 섞인 모양새다.3층 전시실에선 흑과 백, 파랑과 분홍 등 상반된 색채나 형태를 대비시킨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 작품 ‘정원과 작업장’은 작가가 작업실 진열장에 보관하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와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검은 유리와 투명 유리를 교차해 올리고, 상판에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 모형과 물 위에 띄우는 부표를 함께 배치했다.일본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 작가의 최근작들을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의 돌연한 변화가 이런 ‘어려움’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임 작가가 작가 노트에서 “관광객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어적 소통 없이도 포용성과 자비를 베푼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뭔가 ‘의미를 지우려는’ 태도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미술관은 3월 마지막 주 ‘아티스트 토크’에서 임 작가와 우카이 사토시의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가 임민욱의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 ‘하이퍼 옐로우’가 2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임 작가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연 뒤 10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6∙25 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산가족 찾기 방송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뒀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의 작품들이 소개된다.전시는 입장하자마자 미술관 1층 전시실 전체를 사막처럼 만든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관객을 맞는다. 코르크 바닥 위에 구불구불한 언덕을 만들고 황토 분말, 테라코타 가루를 뿌려 모래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각 언덕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칠해져 있거나, 종교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조명이 놓여 있는데, 일본 유명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평면도를 참고했다고 한다.옛것을 연상케 하는 종교와 미래 행성이 떠오르는 전시장 분위기의 상반된 요소가 뒤섞여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방식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2층 전시실 중앙에 있는 영상 작업 ‘동해사’는 일본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를 담은 영상이 좌우로 상영된다. 가운데에는 얼굴 11개의 보살 ‘십일면관음상’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좌우 영상에선 불과 물이 대립하고,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가 섞인 모양새다.3층 전시실에선 흑과 백, 파랑과 분홍 등 상반된 색채나 형태를 대비시킨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 작품 ‘정원과 작업장’은 작가가 작업실 진열장에 보관하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와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검은 유리와 투명 유리를 교차해 올리고, 상판에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 모형과 물 위에 띄우는 부표를 함께 배치했다.일본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 작가의 최근작들을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의 돌연한 변화가 이런 ‘어려움’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임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관광객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어적 소통 없이도 포용성과 자비를 베푼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한발짝 물러서서 뭔가 ‘의미를 지우려는’ 태도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미술관은 3월 마지막 주 ‘아티스트 토크’에서 임 작가와 우카이 사토시의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뉴욕엔 평소 미술에 그닥 관심 없는 여행자라도 찾게 되는 미술관들이 많다. 하지만 성인 기준 30달러(약 4만3000원) 안팎인 입장료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학생 할인 등이 있지만 청년들에겐 꽤 부담스럽다.하지만 최근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휘트니 미술관은 국적 상관없이 25세 이하는 ‘무료 관람’을 시행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알렉산더 콜더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이 왜 이리 과감하게 문턱을 낮춘 걸까. 최근 한국을 찾은 스콧 로스코프 미술관장은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꿈꿨던 숙원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한국 청년도 무료입장2023년 11월 취임한 로스코프 관장은 2009년 큐레이터로 합류해 15년 넘게 휘트니 미술관을 지켜왔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이고 제프 쿤스나 글렌 라이곤 등의 활력 넘치는 전시들을 유치해 인정받았다. 20년 동안 관장 자리를 지켰던 애덤 와인버그 전 관장의 후임인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정책이 무료입장”이라고 했다.“공부하는 학생이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미술관 입장료는 상당히 높은 장벽입니다. 관객 반응도 비용이 부담된단 의견이 많았죠. 휘트니는 1930년 설립 때부터 젊은 미술가 지원이 목표였어요. 당연히 젊은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 마련이다. 큐레이터 때부터 미술관 이사회나 예술가들과 활발히 소통해 온 로스코프 관장은 취임 직후 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턴의 딸 앨리스 월턴이 이끄는 이사회를 비롯해 여러 후원자가 도움을 줬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줄리 머레투는 무려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뭣보다 뉴욕 다른 미술관들은 뉴욕 거주자만 입장료를 면제해 주지만, 휘트니는 25세 이하면 세계의 모든 관객이 공짜다. 심지어 매주 금요일 오후 5∼10시와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은 나이 불문 무료다. 지난해에만 약 20만 명이 혜택을 누렸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프랑스에서 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며 “휘트니 작품을 ‘더 민주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비전에 후원자들이 공감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청년 작가 후원이 휘트니의 정신”휘트니 미술관의 청년 배려 정책은 설립 당시의 취지와 관련이 깊다.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는 당시 유럽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미국 청년 작가를 지원하려 이 미술관을 세웠다.로스코프 관장은 “에드워드 호퍼가 무명의 일러스트 화가였을 때에 휘트니는 작품을 사준 것은 물론이고 생활비나 여행비도 후원했다”고 했다. 휘트니 여사는 생전 자기 작업실에서 파티를 열어 작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후원했던 인물. 그 정신을 받들어 미술관은 생존 작가의 전시를 발굴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데 적극 투자해 왔다.눈길을 끄는 대목은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가’에 대한 정의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라도 미국 미술가로 볼 수 있다”며 “그가 뉴욕에 살며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아냈다면 미국 작가로 본다”고 했다.“미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던 구니요시 야스오(1889∼1953)도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어요. 현재 휘트니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김은 물론이고 마이클 주나 바이런 김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당연히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입니다.”한국 관객들에게 로스코프 관장이 가장 추천하는 미술관 명소는 어디일까.“7층 전시장이죠. 휘트니가 가장 많이 소장한 호퍼의 작품부터 조지아 오키프, 워홀, 콜더,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뒤에 미술관 곳곳에 산재한 젊은 작가 작품에서 ‘새로운 발견’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아, 미술관 야외 테라스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허드슨강, 그리고 하이라인 파크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거든요, 하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와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뉴욕엔 평소 미술에 그닥 관심 없는 여행자라도 찾게 되는 미술관들이 많다. 하지만 성인 기준 30달러(약 4만3000 원) 안팎인 입장료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학생 할인 등이 있지만 청년들에겐 꽤나 부담스럽다.하지만 최근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휘트니 미술관은 국적 상관없이 25세 이하는 ‘무료 관람’을 시행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알렉산더 칼더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이 왜 이리 과감하게 문턱을 낮춘 걸까. 최근 한국을 찾은 스콧 로스코프 미술관장은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꿈꿨던 숙원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 한국 청년도 무료 입장2023년 11월 취임한 로스코프 관장은 2009년 큐레이터로 합류해 15년 넘게 휘트니미술관을 지켜왔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 제프 쿤스나 글렌 라이곤 등의 활력 넘치는 전시들을 유치해 인정받았다. 20년 동안 관장 자리를 지켰던 애덤 와인버그 전 관장의 후임인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정책이 무료 입장”이라고 했다.“공부하는 학생이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미술관 입장료는 상당히 높은 장벽입니다. 관객 반응도 비용이 부담된단 의견이 많았죠. 휘트니는 1930년 설립 때부터 젊은 미술가 지원이 목표였어요. 당연히 젊은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 마련이다. 큐레이터 때부터 미술관 이사회나 예술가들과 활발히 소통해 온 로스코프 관장은 취임 직후 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튼의 딸 앨리스 월튼이 이끄는 이사회를 비롯해 여러 후원자가 도움을 줬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줄리 머레투는 무려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뭣보다 뉴욕 다른 미술관들은 뉴욕 거주자만 입장료를 면제해 주지만, 휘트니는 25세 이하면 세계의 모든 관객이 공짜다. 심지어 매주 금요일 오후 5~10시와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은 나이 불문 무료다. 지난해에만 약 20만 명이 혜택을 누렸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프랑스에서 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라며 “휘트니 작품을 ‘더 민주적으로 보여주고자’는 비전에 후원자들이 공감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청년 작가 후원이 휘트니의 정신”휘트니 미술관의 청년 배려 정책은 설립 당시의 취지와 관련이 깊다.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는 당시 유럽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미국 청년 작가를 지원하려 이 미술관을 세웠다.로스코프 관장은 “에드워드 호퍼가 무명의 일러스트 화가였을 때에 휘트니는 작품을 사준 것은 물론 생활비나 여행비도 후원했다”고 했다. 휘트니 여사는 생전 자기 작업실에서 파티를 열어 작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후원했던 인물. 그 정신을 받들어 미술관은 생존 작가의 전시를 발굴하고 작품 소장에 적극 투자해 왔다.눈길을 끄는 대목은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가’에 대한 정의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라도 미국 미술가로 볼 수 있다”며 “그가 뉴욕에 살며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아냈다면 미국 작가로 본다”고 했다. “미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던 야스오 쿠니요시(1889~1953)도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어요. 현재 휘트니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은 물론 마이클 주나 바이런 킴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당연히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입니다.”한국 관객들에게 로스코프 관장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미술관 명소는 어디일까.“7층 전시장이죠. 휘트니가 가장 많이 소장한 호퍼의 작품부터 조지아 오키프, 워홀, 칼더,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뒤에 미술관 곳곳에 산재한 젊은 작가 작품에서 ‘새로운 발견’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아, 미술관 야외 테라스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허드슨강, 그리고 하이라인 파크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거든요, 하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디어 아티스트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아영 현대미술가(46·사진)가 올해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LG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24일(현지 시간)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로 유명한 김 작가를 제3회 수상자로 발표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기술을 활용해 현대 미술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상이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4300만 원).심사단은 김 작가에 대해 “영화나 그래픽 디자인의 전통적 제작 방식을 가상현실, 게임 엔진 등의 새로운 기술과 매끄럽게 결합했다”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윤리적 문제나 감정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끌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김 작가의 대표작인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는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배달 라이더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김 작가는 “기술 발전에 잠재된 불확실한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올해 심사단엔 모하메드 알무시블리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 디렉터, 노엄 시걸 구겐하임 뉴욕 아트&테크 큐레이터 등이 참여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1회는 미국의 스테퍼니 딩킨스, 2회는 대만 출신 미국 작가 슈리 칭(정수리·鄭淑麗)이 받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5월 8일 김 작가의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3년 세상을 떠난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장국영). 그를 사랑하는 모임 ‘장사모’ 회원들이 고인의 기일이자 만우절인 4월 1일 홍콩으로 추모 여행을 떠난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영화 속 장면을 거리에서 재연하던 회원들은 어쩌다 시위대에 휩쓸리게 되는데….장사모 회원과 시위대, 경찰까지 등장인물만 20명에 이르는 연극 ‘굿모닝 홍콩’은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배역이 많다 보니 배우들은 1인 다역을 하고, 스태프들까지 극단 전원이 출연해야 한다. 여러모로 난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지난해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지원 사업 선정작에 뽑히며 올해도 다음 달 3일부터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어렵사리 무대를 이어 가는 최원종 연출가는 20일 ‘굿모닝 홍콩’을 “잃어버린 낭만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1980∼1990년대 홍콩 영화는 한국인에겐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였어요. 정치 문화적으로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홍콩 영화를 보며 해방감을 느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고 자유를 쟁취했는데, 정작 홍콩에선 우리가 알던 자유가 없어져 버린 거죠.”연극에서 장사모 회원들이 홍콩을 방문한 시기는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범죄인의 중국 본토 강제 이송 법안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거세던 2019년이다. 딱히 접점이 없던 회원들과 시위대가 이어진 매개체는 ‘나이키 운동화’다. 회원 ‘기찬’은 홍콩에서 한정판 나이키 에어조던을 샀다가 한 짝을 잃어버린다. 이 신발을 피투성이가 된 시위대로부터 돌려받으며 회원들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저 역시 한동안 자유라는 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고하고 튼튼해서 늘 옆에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피 묻은 나이키’를 보며 자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죠.”사실 ‘굿모닝 홍콩’은 기본적으로는 웃으며 보는 코미디극이다. ‘영웅본색2’의 총 100발 맞아도 죽지 않는 액션 등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장된 설정이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후반부에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있었다.“이시원 작가가 각본을 쓴 계기가 2019년 시위였어요. 홍콩 시위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뒤, 이 이야기를 극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장치로 ‘홍콩 영화’를 덧입혔죠.”그 결과가 장궈룽과 나이키, 시위대란 독특한 조합이 빚어낸 ‘굿모닝 홍콩’으로 탄생했다. 최 연출은 “경제적 여건상 지난해가 마지막 공연일 줄 알았는데, 정동에서 ‘내년에도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했다”며 “2025년 버전은 여러 개선 과정을 거친 만큼 더 새롭고 짜임새 있는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4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