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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전해진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1명이 머무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는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들은 함께 거주하던 배춘희 할머니가 나흘 전 별세하면서 이미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 문 후보자의 발언까지 더해지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날 TV 뉴스를 통해 그의 발언을 들은 일부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이 이 발언을 알고 충격을 받을까 봐 쉬쉬하며 한숨만 내쉬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일본의 잔인한 전쟁범죄를 ‘뒤끝 없이 잊으면 되는 문제’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총리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이날 문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놨다.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는 수많은 국제인권기구가 국제인권법 위반 사례로 규정하는 등 국제사회가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인데 기본도 모르는 자가 총리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정대협 쉼터에 거주하는 김복동 할머니(89)는 “일본을 두둔하는 사람이 총리가 되면 나라를 팔아먹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 후보자의 발언을 전해 들은 일본 누리꾼들은 이날 일본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2채널’ 등에 한국과 한국인을 조롱하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한 누리꾼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구한 것은 일본”이라며 “게으르고 자립심이 없는 민족이라는 점은 맞는 말”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한국은 식민지가 아니었다니까. 식민지였으면 노예 취급 받았을 텐데 생활이 점점 더 좋아져 행복했잖아”라고 비꼬았다. 일부 누리꾼은 “바른말을 하면 실각하는 나라”라며 한국을 야유했다. 한 재일교포는 “일본 사회의 차별에 그만큼 시달려왔는데 고국의 총리 후보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며 분노했다. 일본 언론도 문 후보자의 발언이 한국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며 12일 일제히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문 후보자의 사퇴 가능성을 거론하며 “2명 연속으로 총리가 취임할 수 없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구심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10일 경기 고양시에서 강한 회오리 바람인 '용오름(저기압성 소용돌이)' 현상이 발생한데 이어 11일에는 수도권에 우박이 쏟아지는 등 이상 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1일 기상청에 따르면 10일 오후 7시 30분경 고양시 장월나들목 인근 한강둔치 일대에서 성층권 하부인 지상 12km까지 도달하는 용오름이 발생해 농가 비닐하우스 20여 채가 날아갔다. 국내에서 용오름이 발견된 건 울릉도, 제주도에 이어 이번이 여덟 번째지만 육지에서 발생한 건 처음이다. 이번에 측정된 풍속은 초속 13m로 미국 토네이도 등급인 후지타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인 EF제로(0) 이하에 속한다. EF는 0~5단계까지 있으며 제로는 초속 29~38m 풍속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간판 날아가는 정도다. EF5는 풍속이 초속 90m 이상이며 자동차 크기의 구조물이 100m 이상 날아가는 수준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기 상층에는 영하 15도 안팎의 차가운 공기가 있지만 하층에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있어 대기가 매우 불안정하다. 용오름과 최근의 강한 소나기, 우박 모두 이 같은 원인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10일 서울 금천구와 은평구에 지름 0.5~0.7cm의 우박이 쏟아진 데 이어 11일 오후 에도 서울 금천구, 은평구, 서대문구 등과 김포공항 인근, 인천 남동구 일대 등에도 강한 소나기와 함께 0.5cm 이하의 작은 우박이 떨어졌다. 기상청은 13일까지 전국적으로 강한 소나기가 자주 내리고 우박이 떨어지는 지역이 있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권순중 서울메트로 역무원(47·사무 5급·사진)이 ‘용감한 의인’으로 인정받아 9일 소방방재청장 표창을 받는다. 권 역무원은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해 도곡역을 향해 가던 오금행 열차 내에서 조모 씨(71)가 불을 지르자 곧바로 소화기를 분사해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권 역무원은 신속한 초동 진화로 수백 명의 인명을 구한 의인”이라고 말했다. 방화 당시 권 역무원을 도와 화재 진화에 나섰던 승객 이창영 씨(75)도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경기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불이 나 8명이 사망한 지 이틀도 안 돼 수십 명 규모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대형 화재가 또 발생했다. 28일 오전 0시 27분경 전남 장성군 삼계면 효사랑요양병원에서 불이 나면서 사망자 10명 등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불로 2층짜리 별관 건물이 탔으며 2층에 있던 노인 환자 상당수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질식하면서 인명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이 난 병동에는 30∼40명이 있었으며 오전 2시 현재까지 23명이 인근 장성병원 등 6곳으로 옮겨졌으나 이 중 10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의식불명인 것으로 알려져 추가 사망자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 7명이 옮겨진 장성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 병원에선 치료할 수 없어 응급처치만 한 뒤 큰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며 “대부분이 위독한 상태”라고 말했다. 건물 2층 빈방에서 시작된 불은 30여 분 만에 큰 불길이 잡혔다. 그러나 건물 안에 연기가 심하고 70대 고령 환자가 많아 질식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 효사랑요양병원은 치매, 중풍, 노인성 질환 환자들이 주로 치료받고 기거하는 곳으로 3층짜리 본관과 2층짜리 별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 병원에는 모두 320명의 환자가 있었으며 불이 난 병동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아 신속히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2층에서 화재 비상벨이 울렸고 1층에 있던 당직 간호사가 올라갔을 땐 이미 불길이 퍼진 상태였다”며 “이 간호사도 위독한 상태여서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불은 발생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난 오전 2시 현재까지도 완전히 진화되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은 현재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실내에 남아 있는 환자가 있다고 보고 수색 중이어서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장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2일 대구 최고기온이 올 들어 가장 높은 31.3도까지 오른 데 이어 23일에는 서울이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평년 7월 상순 기온과 비슷한 29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20일(28.4도)을 웃도는 올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이다. 평년 5월 23일 기온(30년 치 평균)인 24도보다 5도나 높다. 기상 관측 사상 5월에 서울이 가장 더웠던 날은 1950년 5월 30일의 34.4도였다. 23일에는 경북, 호남 지역도 낮 최고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구 전주 광주는 30도, 대전 청주는 29도까지 오를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조구희 기상청 통보관은 “우리나라가 고기압 영향권에 있어 따뜻한 남서기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데다 햇빛을 막는 구름마저 없어 기온이 올라갔다”며 “다음 달 22일까지 평년 기온을 웃도는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더위는 24일까지 이어지다 25일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잠시 기온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낮 최고기온은 서울 22도, 대구는 24도, 광주는 23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생일날 제자들과 케이크 장난친 ‘남쌤’ ▼학생들 대피시킨 남윤철 교사점심 직후 나른한 5교시, 영어담당 남윤철 선생님이 칠판에 ‘while’이라고 쓰며 물었다. “이 단어 무슨 뜻이지?” “∼하는 동안요.” “딱 선생님 단어네. 선생님도 동안(童顔)인데.” 남 선생님은 졸고 있는 제자를 깨울 때도 웃기려 공을 들였다. 출석을 부를 땐 이름 석 자만 읊고 넘어가진 않았다. ‘애들이 말장난을 만들어와 평가를 받고 간다. 그중 최우수작. 예수님이 제자와 쇼핑하다 맘에 드는 옷이 있어 하는 말… 예루살렘(얘로 살 거야라는 뜻).’(2011년 10월 페이스북 게시글) 남 선생님이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맡는 날 학생들은 평소보다 많이 남았다. 어느 땐 느닷없이 들어와 ‘1’을 외쳤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2’ ‘3’ 이어가면 주머니에서 떡을 꺼내줬다. 그의 생일날 학생들은 교단으로 몰려가 케이크 생크림을 그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는 생크림 범벅인 채로 다시 제자들 얼굴을 비비는 스승이었다. 그는 수업시간 학생들 질문에 길게 답하는 편이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남쌤은 항상 기본부터 설명해주셨다. 다른 선생님은 ‘다 알겠지’ 하고 건너뛰는 부분을 쌤은 지나치지 않았다”고 했다. 제자들 성적이 50점에서 55점으로 오르든, 80점에서 100점으로 오르든 그는 똑같이 말했다. “많이 올랐네.” 교실에서 그의 별명은 ‘송일국’이었다. 한 여학생은 그가 ‘○○아, 생일 축하한다. 요즘 영어공부 열심히 하던데 계속 열심히 하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고 써준 메모를 1년 넘게 지갑에 넣고 다녔다. 미혼의 아들을 떠나보내던 날 남 선생님의 어머니는 “의롭게 갔으니 됐다. 아이들 놔두고 살아나왔어도 못 견뎠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학생들이 많이 희생돼) 아들 장례 치르는 것조차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남 선생님의 발인 직전 그의 아버지는 “사랑한다. 내 아들. 잘 가거라. 장하고 훌륭한 내 자식”이라고 다 들리게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엄하지만 맞장구 잘 쳐주던 ‘왕언니’ ▼아이들 먼저 내보낸 최혜정 교사지난해 단원고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최혜정 선생님은 올해 담임을 맡은 2학년 9반 학생들과 일곱 살 차였다.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공감해주는 ‘왕언니’ 같은 교사였다. 최 선생님의 교무일지에는 제자들의 가정형편이나 말할 때 특징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카메라를 장만해 틈나는 대로 제자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의 카카오스토리에는 학생들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 최 선생님은 야간 자율학습 때 휴대전화를 만지는 아이들을 보면 불쑥 다가가 ‘핸드폰!’ 하고 인상을 쓰며 엄하게 보이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한테는 “내가 어린 걸 알면 무시할까 봐 나이는 비밀로 하는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강한 척해도 속이 여리다며 친구들은 그를 ‘외강내유(外剛內柔)형’이라고 놀렸다. 생일이었던 지난해 11월 26일 한 제자가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제 생일 때 주신 핸드크림 잘 쓰고 있어요. 나이 차가 별로 안 나 편한 것 같아요. 선생님, 학기 마지막 날엔 나이 알려주세요!’ 최 선생님은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에 두 동생 아침밥을 챙겨주는 맏이였다. 동생들 진학 상담도 전담했다. 사촌동생들에게도 대입 자기소개서를 보내라고 해 일일이 첨삭했다. 고모에게는 뱃살을 만지며 ‘언제 뺄 거냐’고 농담을 하고, 삼촌이 담배를 피우면 엉덩이를 툭 차며 ‘내가 끊으라고 했지’ 하고 너스레를 떨던 조카였다. 아버지 최재규 씨(53)는 “학교 다닐 때 용돈 30만 원을 주면 5만 원은 저축하고 돈을 남겨서 나한테 등산 장비를 사주곤 했다”고 말했다. 최 선생님은 집에서 부모와 복분자주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 최 씨는 지난달 전북 고창에 놀러갔다가 딸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함께 마시려 특산품인 복분자주를 여러 병 사왔다. 이 복분자주는 지난달 19일 고인의 빈소 영정 옆에 놓여 있었다.임현석 기자 ihs@donga.com ▼ 학교에선 ‘딸바보’… 집에선 ‘제자바보’ ▼선실 다시 내려간 박육근 교사8일 밤 12시 박육근 선생님의 빈소에 20대 청년이 한쪽 다리를 절며 들어왔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박 선생님의 제자였다. 장애가 있었던 이 제자는 영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돼 찾아오면 웃으며 맞아준다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선생님이 되라’고 먼저 말씀하셔 놓고 약속을 깨면 어떡해요.” 몸집이 큰 한 제자도 영정 앞에서 입을 열었다. 용인대 태권도 선수였다. “선생님 저 경기 있어서 공항 가는 길이에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서 싸움을 자주 했던 이 제자는 박 선생님의 조언으로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제자들은 토요일 오후 운동장에서 박 선생님과 축구 했던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말썽부린 아이들에게 박 선생님이 내건 벌칙은 ‘토요일에 나랑 공차기’였다. 학생부장을 오래 맡아 사달이 나면 경찰서에 달려가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학교폭력 대책 회의 건으로 저한테 전화할 때마다 ‘죄송하다’며 몸을 낮추셨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박 선생님의 친형 박춘근 씨(61)는 “육근이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시골에서 어렵게 성장해 넉넉지 않은 집 아이들을 많이 챙겼다. 사고 친 애들 직접 합의해 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한 단원고 학생은 “선생님이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돈 안 내도 수학여행 갈 수 있으니 걱정마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집에서 박 선생님은 두 딸에게 ‘서운하다’는 불평을 듣는 아버지였다. 아내는 “학생들한테 하는 만큼만 애들한테 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박 선생님은 ‘딸 바보’로 통했다. 학생들 앞에서 “우리 둘째딸이 너희들과 동갑인데…”란 말을 습관처럼 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처음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딸 얘기를 꺼냈다가 결국 매번 딸 자랑으로 끝났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세월호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보다 남을 먼저 구하려 한 의인들은 평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들은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별다른 구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고 대단한 의협심을 발휘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던, 기본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의로운 선택을 한 분들을 취재해 왔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 못지않게 의로운 희생자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 역시 살아남은 이들의 중요한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영 정현선 김기웅 안현영 양대홍(이상 승무원), 남윤철 박육근 최혜정(이상 교사), 양온유 정차웅 최덕하(이상 학생), 이광욱(잠수사) 등 12명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의 부모님, 친구, 제자와 스승 등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면서 취재팀은 고인들의 진솔했던 삶의 조각들을 맞춰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등산복은 척척 사도 자기 물건은 단돈 1만 원에 벌벌 떠는 딸, 뒷주머니에 공구를 꽂고 다니며 배 안의 고장 난 곳을 척척 고치던 여(女)선원, 홀어머니와 포장마차를 하며 익힌 솜씨로 틈틈이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던 청년, 체중 102kg에 검도 유단자지만 딸 같았던 ‘애교쟁이’ 아들, 유머가 무기였던 미남 총각 선생님, 집에선 무뚝뚝해도 학교에선 딸 자랑으로 말을 맺던 아버지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유족들은 “의롭게 죽고도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있을 텐데 왜 우리 아이만 의인이냐” “아직 시신도 못 찾은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주목받는 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12명에 포함되지 않은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살아있는 목격자가 없을 뿐 우리 아이도 살신성인했을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2명을 시작으로, 뜨겁고 의롭게 살다간 세월호 희생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유족이나 지인이 요청해 주시면 고인의 생전 행적을 경건한 자세로 되짚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준 세월호의 의인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김성모 기자}

▼ 아버지 돌아가신 뒤 대학 휴학하고 가장 역할 ▼학생들 먼저 탈출시킨 女승무원 박지영씨최성덕 할머니(75)는 지난달 16일 손녀의 사망 소식에 “오늘이 지 아비도 그렇게 된 날”이라며 통곡했다. 3년 전인 2011년 4월 16일, 박지영 승무원의 아버지 박유식 씨(당시 45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반년 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자 박 승무원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됐다. 대학 1학년 때였다. 이듬해 학교를 휴학하고 PC방과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에게 사촌오빠 박현준 씨(30)가 여객선 승무원 일을 권했다. 박 씨는 “고민하던 지영이가 월급 200만 원에 숙소, 유니폼, 밥이 공짜로 나와 돈 쓸 일도 없다고 하니까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은 스무 살이던 2012년 봄 세월호의 쌍둥이선 오하마나호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 뒤 세월호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 선원이 드문 배 안에서 그는 ‘남자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오하마나호 고홍근 사무장은 “한 승객이 뱃멀미를 했는데 지영이가 밤을 꼬박 새우며 아침까지 옆에서 얼음찜질하고 혈압 재면서 간호했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의 친구는 “지영이가 엄마 등산복 살 땐 몇십만 원씩 쓰는데 자기 옷은 1만 원짜리 티셔츠 살 때도 망설이다 안 샀다”고 했다. 다른 대학친구 A 씨는 “지영이가 지난해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돼 월급을 꼬박꼬박 부었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경기 시흥시의 42.9m²(13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하루는 인천항에 자주 가던 사촌오빠 박 씨가 정박해있는 세월호에 올라탔다. 사고 3주 전이었다. 사촌오빠가 “할 만하냐”고 물었을 때 박 승무원은 “힘들면 이 일 하겠어? 근데 배가 너무 흔들려서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무서워”라고 말했다. 남편 잃은 지 3년도 안 돼 큰딸을 빼앗긴 박 승무원 어머니의 카카오스토리에는 바다에 배가 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늘 안녕과 행운이 가득하길’이란 문구가 있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여학생들 다칠까봐 날아오는 공 얼굴로 막아 ▼학생들 구하러 식당 달려간 승무원 안현영씨안현영 씨는 열두 살 때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말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은 발을 굴렀다. 3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옷이 땀에 절어 있었다. 어머니 황정애 씨(55)가 “집에도 못 가고 걱정했잖아” 하고 호통을 치자 그가 말했다.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기에 집까지 들어다 드렸어요. 저희가 집에 가는 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안 씨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 안규희 씨(57)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들 뺨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안경 파편이 얼굴에 박혀 있었다. 남학생들이 장난을 친다며 여학생들 쪽으로 축구공을 찼는데 공을 막아서다 얼굴에 맞은 것이었다.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괜찮아’ 하더라고요.” 그는 중고교 동창들과 만든 친목 모임 ‘MUR(망우리)’에서 인맥의 중심이었다. 친구 김재홍 씨(28)는 “현영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그는 자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똑같지”라고 답한 뒤 상대방 얘기를 물었다. 남 이야기를 자기 일처럼 듣고 반응해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그런 그가 냉정해질 때가 있었다. 안 씨는 대학 시절 호프집, 액세서리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들이 찾아가 ‘서비스 안주 좀 달라’ ‘액세서리 하나만 달라’고 하면 안 씨는 “안 된다. 내가 돈 줄 테니 그걸로 사라”고 잘랐다. 김 씨는 “호프집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를 잠깐만 쓰자고 했더니 ‘외부인은 못 들어가는 게 원칙’이라고 해 섭섭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사고 사흘 전, 그는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부탁을 했다. 스무 살 이후 내내 돈을 벌어 쓴 안 씨는 부모에게 작은 부탁도 거의 하지 않았다. “배드민턴 라켓 살 수 있는 곳 좀 알아봐 주세요. 수학여행 가는 애들이 14시간 배타고 가다 보면 심심해하거든요. 배에 몇 세트 있으면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드라이버 갖고 다니며 수리 척척 하던 女장부 ▼탈출기회 마다하고 남은 女승무원 정현선씨3년 전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오하마나호 갑판. 한 승객이 불꽃놀이를 구경한다며 무대 앞 바리케이드 위에 앉아 있다가 뒤로 자빠졌다. 깜짝 놀란 정현선 씨는 기절한 승객에게 응급처치를 한다며 뛰어가다 넘어졌다. 이 일로 발목 인대가 끊어져 3개월간 깁스를 했다. 승객은 기절한 게 아니라 만취해 누워있었다. 정 씨는 다음 날 절뚝거리며 나타나서는 ‘헤헤헤’ 웃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뭔 일만 생기면 일단 뛰고 보는 사람”으로 통했다. 정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스무 살에 배를 탔다. 오하마나호 카페 직원이던 어머니가 병으로 일을 그만두자 대를 이어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정 씨가 초등학생일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 윤선 씨(35)는 “집 사정을 생각해 일을 일찍 시작했다. 당시 인천∼제주를 오가는 배가 하나뿐이었는데 그 배를 탄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했다. 배에서는 ‘정 장군’으로 불렸다. 옷 뒷주머니에 몽키 스패너나 드라이버를 꽂고 다녔다. 수리할 곳이 보이면 바로 공구를 꺼냈다. 담요는 15장씩 한 번에 날랐다. 동갑 연인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 씨가 술 상자를 옮기고 있으면 “한 번에 두세 상자씩 옮기라”고 말하며 아웅다웅했다. 동료들은 정 씨에게 ‘해군 부사관을 하면 잘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부사관 시험을 두 차례 쳤다 떨어졌다. 정 씨는 “배 타는 게 천직인가 봐요”라며 웃곤 했다. 지인들은 정 씨가 원피스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천생 여자지만 배에 오르면 대장부가 된다고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침몰 당시 한 발짝만 옮기면 탈출할 수 있는 3층 출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연신 학생들을 내보냈다. 정 씨를 마지막으로 본 화물기사는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하던 도중 정 씨와 눈이 마주쳤다. 원망하는 눈빛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눈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임현석 기자▼ 친구들 집에 불러 직접 요리해주는 것 좋아해 ▼애인과 끝까지 남은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학창 시절부터 김기웅 씨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손수 만든 요리를 먹이는 걸 좋아했다. 김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한승호 씨(27)는 “기웅이에게 처음 들은 말이 ‘우리 집에 삼겹살 있으니까 놀러와’였다”고 했다.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 씨는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아 친구들을 집으로 자주 불렀다. 시간이 늦어지면 자신의 방에서 자고 가라고 한 뒤 자신은 늘 거실에서 잤다. 김 씨 방은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김 씨 상사였던 선상 불꽃놀이 이벤트 업체 김상석 대표(41)는 “기웅이가 포장마차 일을 하던 어머니를 줄곧 도와서 그런지 곱창볶음 같은 요리를 잘했다”고 했다. 김 씨는 배에서도 한번 요리를 하면 10인분 넘게 해서 나눠 먹었다. 집에 있는 묵은지, 곱창 같은 재료들을 늘 챙겨왔다. 김 씨는 불꽃놀이 담당이었지만 주방 일을 거들어 주방 아주머니와도 친했다. 김 씨는 ‘빌게이츠’로도 불렸다. 기계 지식에 해박해 컴퓨터를 잘 고쳤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컴퓨터 살 때는 김 씨를 먼저 찾았다. 컴퓨터 용도와 예산을 말해주면 김 씨는 최저가로 부품을 구해와 컴퓨터를 뚝딱 조립해냈다. 친구들은 올해 초 친목 모임에 김 씨를 불렀다. 모임 회비는 10만 원이었다. 김 씨는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회비가 부담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생활비를 벌려면 배를 타야 돼서 참석을 못 하겠다”며 사과했다. 친구들은 “돈 안 받을 테니 걱정 말라”며 가까스로 김 씨를 설득해 인천 을왕리에 갔다. 이날 저녁 김 씨는 동갑내기 연인 정현선 씨와 통화하며 “일을 거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돌아와서는 친구들에게 “올해는 꼭 취업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인천대 도시건설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김 씨는 올해 연인인 정 씨와 결혼할 예정이었다.임현석 기자 ihs@donga.com▼ 취객 달래고 변기 수리… 세월호 해결사 ▼학생 구하러 간 양대홍 사무장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의 어릴 적 꿈은 개그맨이었다. 스스로를 낮추고 익살을 부려 남을 웃게 하고 싶었다. 그 꿈을 배에서 이뤘다. “얼굴 둥그스름하고 재밌고 여기저기 나타나던 그 직원요?” 배를 탔던 승객들이 양 씨의 실종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양 씨는 웃음을 머금고 잰걸음으로 배 안을 돌아다녔다. 그가 농담을 던지면 승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비스 책임자로 고위 승무원이었지만 변기 수리, 전기배선 공사,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밤 12시에야 업무가 끝나지만 로비에서 잠든 승객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술 취한 승객 말상대를 하느라 오전 3시까지 일했다. 오하마나호 라이브 가수로 일했던 형 석환 씨(48)는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는 14시간 동안 동생은 승객들과 정이 깊게 들곤 했다”고 했다. 2011년 한 여성 승객이 남편과 다툰 뒤 바다에 뛰어들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이런 일이 매년 4, 5차례 있었다. 양 씨는 자살 소동이 있는 날은 잠을 안 잤다. 고홍근 오하마나호 사무장은 “자기가 잠들면 승객이 또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승객과 이야기하면서 밤을 새운다고 하더라”고 했다. 고 사무장은 “승객들 얘기를 밤새 들어줘 배 탄 지 4년 됐지만 대홍이를 못 잊는 승객이 많았다”고 했다. 3남 2녀 중 막내지만 줄곧 부모를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머리를 밀고 나타나 “내 머리카락을 무덤에 넣어 달라”며 울었다. 이후 청각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모셨다. 그는 각각 고교생, 중학생인 두 아들이 있다. 아들들과 2 대 1로 씨름하는 걸 좋아했고 “형이라고 불러”라고 할 정도로 친했다. 형에게 늘 “학생들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던 그는 학생들을 구하다 끝내 나오지 못했다. 박지영 안현영 정현선 씨 모두 그와 함께 일하던 사무부 승무원이었다. 손효주 hjson@donga.com / 진도=여인선 기자}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침몰하는 세월호에 끝까지 남아 승객 구조 작업을 하다 실종된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46)가 15일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양 씨는 선장 등 고위급 승무원 가운데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남았던 유일한 인물이다. 양 씨의 시신은 16일 오전 헬기로 인천으로 운구돼 길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될 예정이다. 양 씨는 지난달 16일 오전 10시 3분경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자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통장에 돈이 있으니 아이들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가장(家長)이었다. 그는 두 아들에게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할 정도로 친구처럼 지냈다. 양 씨와 친했던 고홍근 오하마나호 사무장(59)은 “생존 승무원들에 따르면 양 사무장이 배 3층 안내소에서 학생들을 갑판으로 올려놓은 다음 조리실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를 듣고 조리실 직원들을 구하러 가다가 이들과 함께 탈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백화점 총무팀 직원, 대형마트 점장 등으로 일하다 2010년 청해진해운에 입사했다. 오하마나호에서 사무부 부사무장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봄 사무장으로 승진해 세월호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장은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책임지는 자리다. 양 씨는 승객 응대 외에도 화장실 변기 및 조명 수리, 배 페인트 칠, 배식 등 세월호 내 궂은일까지 도맡아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던 그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주로 승선하는 여객선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양 씨의 형인 양석환 씨는 “인천에서 제주까지 14시간이 걸리는데 동생이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랑 정이 들어 너무 좋다’고 늘 말했다”며 “침몰 당일에도 하룻밤 사이에 친해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홍근 사무장은 “대홍이는 새벽까지 로비에서 잠든 손님에게 일일이 모포를 덮어주느라 하루 2, 3시간밖에 못 자는가 하면 술 취한 손님이 뺨을 때려도 웃을 정도로 친절했다”며 “술에 취해 자살하려는 승객을 달래기 위해 승객의 하소연을 들으며 밤을 새우는 등 책임감이 투철해 초고속으로 승진했다”고 전했다. 이런 친절함 덕에 과거 오하마나호나 세월호를 탔던 승객들은 양 씨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친절하고 서글서글한 그 직원’으로 기억하곤 했다. 그는 가족에게도 강한 책임감을 보였다. 3남 2녀 중 막내였지만 줄곧 청각 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모셨다. 형제 중 양 씨를 특히 아꼈던 어머니는 충격 받을 것을 걱정한 형제들이 숨긴 탓에 아직 양 씨가 숨진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수색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1명이 머리 어깨 등에 마비성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고 밝혔다. 민간 잠수사 염모 씨(57)는 14일 수색을 마친 뒤 통증을 호소해 감압체임버에서 감압처치를 받았으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염 씨는 고압산소치료센터가 있는 경남 사천시 삼천포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민간 잠수사가 잠수병 때문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3번째다.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이동식 조립주택을 20일까지 마련하기로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 / 진도=이은택·여인선 기자}
◇기상청 △차장 정홍상 ◇국민일보 ▽종교국 △부국장 겸 종교부장 염성덕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정진영 김준동 ▽편집국 △정치국제센터장 김의구 △산업경제〃 박정태 △사회〃 김용백 △편집〃 겸 종합편집1부장 김태희 △외교안보국제부장 한민수 △산업부장 노석철 △문화부장 손영옥 △온라인뉴스부장 고승욱 △체육부장 직대 김영석 △심의위원 박철화 △〃 겸 국차장 남호철 ▽경영전략실 △재무팀장(부국장대우) 김철수 △총괄데스크(총괄팀장) 강의형 △인사기획팀장 천성우 △경영지원팀장 권혜숙 ▽선교홍보국 △선교홍보팀(국장대우) 김태순 △선교홍보팀(부국장대우) 최병희 ▽광고마케팅국 △총괄데스크(부장) 김성호 △영업2팀장 호임수 ▽사업국 △사업팀장 최창범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겸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 겸 종교전문기자 조연현 ◇KBS ▽국장급 △보도본부 보도국 주간 홍기섭 △〃 디지털뉴스국장 김종진 △정책기획본부 방송문화연구소장 성창경 ▽보도본부 보도국 부장급 △뉴스제작2부장 유석조 △〃3〃 곽우신 △사회1부장 조재익 △국제〃 이재강 △중국지국장 오세균(7월 1일자)}
부처님오신날인 6일 강원 대관령에 눈이 흩뿌렸다. 적설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5월에 내린 눈으로는 1981년 5월 17일 이후 33년 만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대관령 상층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면서 기온이 낮아져 산발적으로 눈이 날렸다. 전날 오후 설악산 대청봉에서도 눈이 관측됐다. 7일 중부지방은 가끔 구름이 낀 후 차차 흐려지겠다.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 중북부, 충남에는 밤 한때 비가 조금 올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방은 대체로 맑다가 밤부터 구름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밤, 엄마는 꿈을 꿨다. 엄마는 망망한 바다,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물에 떠있는 끈을 잡으려 몸부림쳤다. 물에서 나오려 발버둥을 쳤다. 눈을 떠보니, 진도체육관이었다. "우리 아들, 꿈에서 한 번만 보면 좋겠는데 안 나타나요. 내가 물에 빠지는 꿈만 꾸고…." 황정애 씨(55)의 둘째 아들 안현영 씨(28)는 외주업체에 소속된 계약직 승무원이었다. 2012년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세월호를 탔다. 서빙, 승객 관리, 행사 MC.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다 지난해 8월 계약직이 됐다. 아르바이트와 다를 건 없었다. 배를 타며 정식 취업을 준비했다. 세월호 출항 하루 전날 아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화분 하나 내 방에 둘 테니까 엄마가 키워줘." "무슨 화분인데?" "잎이 길고 삐죽하네." "난초인가 보네." 잎 사이로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엄마, 난도 꽃이 펴?" "그럼. 꽃이 예쁘게 피지." 도란도란 대화가 오갔다. 화분은 아들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 화분은 학생들을 구하려다 실종된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46)가 준 것이었다. 사무장은 책임감 강한 안 씨를 아꼈다. 안 씨는 군복무 시절 사단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사무장님이 화분 두 개를 사서 우리 애 하나, 자기 하나 나눠 가졌대요. 자기들 가는 거 알아서 그랬나봐요." 세월호 출항 8시간 전 아들은 전화를 한 번 더 걸었다. 아들은 "제주에 도착하면 돌려줄테니 20만 원만 보내달라"고 했다. 평소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어디에 쓸 건지 묻지도 않고 돈을 보냈다. 어쩐지 묻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은 "돈 확인했어. 감사해용. 내일 줄게~"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고맙긴 뭘, 우린 가족이니까~^^ 아들! 수고해~"라고 답했다. 모자가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였다. "저승길에 노잣돈 하려고 돈을 받아갔나 봐요. 더 줄 걸 그랬어요." 둘째 아이로 딸을 원했던 엄마는 어릴 적 한때 아들을 딸처럼 키웠다. "어릴 때 생김새가 예뻤어요. 내가 분홍색, 빨간색 내복 입히고 핀도 꽂아주고 그랬어요. 여기서 아들 기다리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태어나서 기저귀 갈던 거, 편식하는 거 야단치던 거 다 떠올라요. 내 눈엔 지금도 아기 같고…." 첫날 황 씨도 여느 엄마들처럼 화를 냈다. 해경에게 울며 소리쳤다. "잠수사한테 물에 들어가서 망치로 배를 두드리라고 하세요. 그 소리 들으면 아들이 희망을 안 잃을 거 아니에요. 우리 애기 너무 아까우니까 살려주세요…." 그 다음에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를 원망했다. "다시는 제사를 지내지도, 산소에 가지도 않을 거라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어린 손주를 데려갈 수 있는 거냐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몰라요." 그 뒤부터는 죄인처럼 지냈다. 체육관에서 보름을 머물며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아들이 승무원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엄마는 속내를 수첩에 털어놨다. "저는 자식 잃은 어미로서 큰 목소리로 우리 아들 승무원인데 실종됐어요! 라는 말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갔을 우리 아들 너무 불쌍해서…." 200구 넘는 시신이 발견됐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해군 해난구조대 대원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승무원복 입은 아이가 있으면 꼭 좀 데려와달라"며 매달렸다. 엄마는 잠수부들이 아들 얼굴을 몰라서 못 데려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침몰 첫날부터 쓰기 시작한 수첩은 보름 동안 일기, 아들에게 쓴 편지로 빼곡히 들어찼다. "바다에서는 내 얘기가 안 들릴 거 같아서 쓰는 거예요. 우리 아들은 생김새는 예쁘지만 용기도 있고 의리도 있고 남자다웠어요. 그 애는 아이들 구하려다 같이 못 나왔을 겁니다. 우리 아들은 정직한 사람이었거든요."진도=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아이들 시신 상태를 직접 확인하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다른)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가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실종자 가족과 대화를 하겠다며 체육관을 찾았지만 해명이나 명확하지 않은 답변으로 일관해 화만 키우고 돌아갔다. 정 총리는 1일 오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각계 전문가와 함께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는 단상에 올라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색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물속 시야가 확보가 안 돼 강한 빛을 써보려 했으나 빛이 잠수부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빠른 조류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등 해명성 발표로 일관해 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분노는 질의응답 시간에 폭발했다. 한 실종자 가족이 “우리 아이들 시신이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꼭 확인하고 가라. 직접 봐야 심각성을 알고 대처 방식도 바뀔 것이다”라고 하자 정 총리는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올라가야 한다”며 얼버무렸다. 이후 두 번 더 같은 요구가 이어졌지만 그는 “일정이 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네 번째 요구가 나온 뒤에야 “일정이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라며 요구를 받아들인 뒤 이날 오후 팽목항에 가서 시신을 확인했다.진도=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동사무소입니다. 희생자 ○○○ 씨 가족이시죠? 시간 되면 보건소에 나와서 상담을 받으세요.” 28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소중한 딸을 잃은 김모 씨(55)에게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깊은 슬픔 속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김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보건소를 찾았다. 상담사는 처음 만난 김 씨에게 대뜸 집 주소를 묻더니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많이 힘드시죠”라는 식의 일상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김 씨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앉아있자 상담사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상담을 끝냈다. 보건소를 방문한 지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김 씨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피해자 가족을 도와준다면 전문 상담사가 직접 방문해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10분 만에 끝내는 형식적인 상담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다 이런 식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현실과 거리 먼 피해자 가족 지원 엉터리 구조 현황을 발표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정부가 사후 대책을 시행하는 데에도 피해자 가족들의 현실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피해자는 정부의 지원대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안산과 진도 현장에 파견 나온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대응도 바뀐 게 없었다. 여성가족부 등 각 담당 부처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대책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팀이 만난 가족들은 “현수막에 이번 참사 피해자를 돕는다는 내용의 홍보 문구를 보고 연락해 봤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대책과 피해 가족의 기대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안산에는 피해 학생과 가정, 시민에 대한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이 마련됐다. 지원단 측은 “장례식장이나 피해자 가정을 파악 하고 있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보니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의 치료보다는 가족들의 상황에 맞춰 지속적인 접촉을 추진하는 데 방점을 두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의 반응은 냉랭했다. 단원고 희생자 임모 군(17)의 아버지는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황에서 찾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주위에서 다녀온 사람들 역시 ‘안 가느니만 못했다’더라”고 전했다. 심리지원단은 이번 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심리치료는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과 어떤 방식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추진할지 조율 중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대책 절실 여성가족부는 가족 돌보미 150여 명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을 투입해 피해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지원사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경황이 없어 신청조차 못한 경우가 많았다. 취재팀은 29일 진도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여성가족부의 ‘긴급 가족 돌봄 지원서비스’ 부스를 찾았다. 이 부스에 놓인 안내종이를 들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이 서비스를 알고 있는지 확인한 결과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실종된 단원고 교사의 한 어머니는 “체육관에 있을 때 신청서 같은 종이를 한번 나눠준 게 전부였다. 자식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가 그거 볼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종된 아들 이모 군(17)을 기다리는 한 아버지 역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어떤 지원책이 나와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공무원이 기부자의 연락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국화 2만 송이 기부가 무산된 일도 있었다.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59)은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전국에 분향소가 생기면서 국화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화훼 관련 단체 회장들과 상의한 끝에 국화 2만 송이를 기부하기로 했다.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였다. 임 회장은 25일 오후 6시경 교육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이 현장에 파견돼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장례지원단에 전화해 파견된 직원을 찾았지만 해당 직원이 자리를 비워 통화할 수 없었다. 결국 전화를 받은 현장 직원에게 ‘국화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메모로 남겼다. 그러나 현장 직원이 메모를 전달하지 않아 다음 날까지 답신이 오지 않았다. 꽃의 유통기한 때문에 준비했던 국화 2만 송이는 경매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안산시 합동분향소에 준비됐던 12만 송이 국화는 지난 주말 동이 나 ‘검은색 리본’으로 대체됐다. 임 회장은 “29일에야 교육부 담당 직원한테 사과 전화가 왔다. 공무원들이 이런 시기에 모두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안산=김수연 sykim@donga.com 진도=손효주 / 김성모 기자}

한 부모가 막 진도실내체육관 강당을 빠져나가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주환웅 상사(36)를 쫓아갔다. 주 상사는 25일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 상황에 대해 브리핑한 뒤 강당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는 이날 세월호 도면을 보여주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선체에서 시신을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미로와 부유물을 헤쳐야 하는지 등 구조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저희도 갑갑합니다. 유가족분들이 울면 저희도 웁니다. 군 생활 17년 동안 수심 318m까지 들어가 봤는데 40m밖에 안 되는 선체 수색이 이렇게 힘들지 몰랐습니다.” 이날 실종자 가족들은 해경, 해군 관계자에게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잘하셨어요.” 주 상사는 울음을 삼켰다. “제가 더 구조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브리핑이 끝나자 키 180cm인 주 상사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주 상사가 팽목항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려는 찰나 부부가 주 상사를 잡았다. 군복 상의 가슴팍 주머니에 쪽지 하나를 집어넣고 주 상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였다. 고개 숙이길 반복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수부님, 제발 우리 어린 아들 좀 데려와 주세요.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고개 숙인 엄마 목에 걸린 사진이 펄럭였다. 20대 초반, 앳된 남자였다. 이날 밤 침몰 해역에 떠있는 청해진함(해군 구조함)으로 돌아온 주 상사는 주머니 속 쪽지를 꺼냈다. 쪽지는 ‘훌륭한 잠수부님!’으로 시작됐다. “승무원복을 입은 우리 아들! 나이도 어린 우리 아들 학생들과 함께 구분하지 말고 어린 생명 같이 구해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학생들 인도하다 못 나왔을 겁니다. 평소 그런 애입니다. 승무원복 입은 아이 있으면 같이 구조해 주세요.” 아들은 세월호에서 근무한 서빙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부부는 체육관에서 죄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승무원’이라는 죄책감에 드러내놓고 슬퍼하지도, ‘내 자식은 이런 아이였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부부는 주 상사가 브리핑을 하는 동안 급하게 편지를 썼다. 이날이 아니면 ‘잠수부님’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부부는 고개 숙여 부탁하면 아들을 찾게 될 거라 믿었다. 편지를 다 읽은 주 상사는 한참을 울었다. 청해진함 해난구조대원들도 돌려가며 쪽지를 봤다. 바다 햇빛에 그을려 시커먼 장정들이 울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청해진함이 눈물바다가 됐다. “우리는 유가족 보는 게 가장 힘든 거 같아요. 너무 죄송하죠. 안에 지금 100명이 넘게 있어요.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으니까. 보이는 게 없어서 더듬으면 뭐라도 잡혀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 잡히니까….” “물속 시신은 손이 떠있어요. 저 좀 데려가라고 손짓하는 거예요. 이번에 세 명을 한 번에 몸에 묶어 데리고 나온 적도 있어요. 세 명을 데리고 나오다가는 제가 죽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꺼내달라고 손짓하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갑니까. 세 명이고, 네 명이고 보이면 데리고 나올 텐데 앞은 보이지 않고…. 자식 만나면 알아보게는 해드려야 할 거 아닙니까.” 27일 새벽 전화통화에서 주 상사는 거센 풍랑 탓에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 중이라고 했다. 방금 막내 대원이 잠수병에 걸려 안면마비가 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잠수부는 선상에 올라온 지 10분 만에 하지 마비가 왔다. 11일 동안 총 20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대원들을 지원한다며 먹을거리가 잔뜩 들어오지만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꼭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제가 다시 체육관에 못 갈 거 같아서요. 그 어머님, 아버님 보이면 대신 전해주세요. 꼭 아드님 찾아드린다고. 약속드린다고.”진도=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침몰한 세월호 선체에 처음 진입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인 지 6일이 지나도록 에어포켓(선체 중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이 발견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다. 에어포켓이 없다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실종자 가족에게 수습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시신이 미확인 상태로 병원에 안치되는 일까지 빚어져 절망을 가중시켰다.○ 에어포켓 한 가닥 희망 사라져 23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내 3, 4층의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배 선체가 뒤집히면서 집기가 섞여 엉망이고 부유물로 인해 선실 입구가 막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한 해군 고위관계자도 “침몰해 뒤집어졌던 선체가 좌현으로 다시 기울어져 넘어갔을 때 에어포켓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어포켓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격분할 힘도 잃은 채 절망한 모습이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정부는 있지도 않은 에어포켓 가능성만 반복하면서 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했다. 사실상 정부가 힘든 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더이상 화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고? 23일 오전 2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강당에 한 남성이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남성은 체육관 한편의 신원확인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22일 아침 시신으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박모 군(18)의 아버지였다. “학부모들은 이것만 쳐다보고 있어. 그런데 옷 색깔도, 머리 모양도 다 틀리면 아이를 어떻게 찾냐고.” 박 씨는 22일 오전 9시경 체육관 강당 앞 대형 TV 화면에 뜨는 수습된 시신 정보를 유심히 봤다. 91번째로 수습된 단원고 남학생 추정 시신의 인상착의가 공개되고 있었다. “키 174cm 추정, 검은색 반팔티·검은색 아이다스, 통통한 체격, 곱슬머리 단발….” 아들과 체격, 키, 옷 스타일이 같아 가슴이 덜컥했지만 곧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청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그러나 이날 내내 91번째 시신 정보가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박 씨는 22일 밤 미확인 시신이 안치된 목포 시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시신 얼굴을 확인한 결과 아들이었다. 시신의 머리 모양은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박 씨가 병원으로 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DNA 대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미확인 시신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상황. 박 씨는 “상식적으로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다. 현재 해경은 시신을 수습한 뒤 팽목항까지 이송하는 배 위에서 시신 인상착의를 보고 옷차림 등의 정보를 기록한다. 이 정보는 곧바로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소와 진도체육관 강당으로 전송된다. 가족들은 이 정보가 자녀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신원확인반을 찾아 시신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1차 인상착의 확인이 배 위에서 진행되는 데다 재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인상착의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해경은 향후 인상착의 게시물에 신체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게시하겠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23일 현재 만 하루가 지나도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시신은 10구에 이른다. 37번째로 발견된 남성의 시신은 발견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에게 인계되지 않고 있다. 미확인 시신이 나오는 것은 실종자 가운데 대다수가 주민등록이 되지 않아 등록된 지문이 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DNA 대조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23일부터는 검안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팽목항에 간이 영안실이 설치됐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손효주·이건혁 기자}
“서해훼리호 침몰 후 사흘이 지난 12일 오후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은 물론이고 승객 수조차 파악되지 않는 등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년 전 동아일보 기사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110t) 침몰 사고를 다룬 것이다. ‘서해훼리호’를 ‘세월호(6825t)’로만 바꾸면 지금 상황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두 사고는 쌍둥이처럼 보인다.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선박 안전 및 감독 부실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292명이 목숨을 잃으며 지적한 문제는 지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서해훼리호 침몰 직후 경찰이 밝힌 승선자 수는 14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수차례 번복했다. 정부는 시신 인양이 끝나고 나서야 362명으로 확정했다. 당시 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이 채용한 운항관리자가 주요 항구에 배치돼 승선자 수를 파악했다. 운항관리자가 선장의 보고를 믿는 허술한 구조였다. 서해훼리호 침몰 이후 정부는 운항관리자를 늘렸다. 현재 전국에 74명의 운항관리자가 있지만 여전히 출항 전 선장이 승선자 수를 문서로 보고하면 이를 승인하는 데 그쳐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세월호 선장은 출항 전 점검 보고서에 승선자 수가 450명이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47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번에도 477명→459명→462명 등 수차례 생존자 수를 번복했다.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원인 중 하나로 과적이 지목됐다. 정원이 221명이었지만 362명이 타는 등 화물을 포함해 6.5t을 과적한 상태. 물살이 거센 해역에서 급선회를 시도했고 화물과 사람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복원력을 잃은 뒤 침몰했다. 훼리호는 무자격 업체에서 복원력 검사를 받았다. 세월호도 비슷하다. 세월호 선장은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 화물 657t을 실었다며 운항관리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밝혀진 화물량은 차량 180대, 화물 1157t. 50t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정원은 921명. 승선자 수는 이에 훨씬 못 미쳤지만 화물이 이를 상쇄하고 남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복원력이 떨어진 세월호가 과적 상태에서 급선회를 하면서 복원력을 쉽게 잃고 침몰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과적이 가능한 이유는 운항관리자가 배가 물에 잠긴 정도를 보고 과적 여부를 판단할 뿐 화물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항관리자가 해운조합 소속이어서 감시자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운항관리자의 구명장비 점검도 형식에 그치는 실정이다.손효주 hjson@donga.com·신광영 기자}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꿨다. ‘국민안전을 중시한다’는 국정 목표에 따른 것이다. 부처 이름을 ‘행정’과 ‘안전’이란 단어의 위치만 바꾸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안행부를 국민안전의 통합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름이 바뀐 뒤 안행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부처별 기관별로 나뉜 재난안전관리를 총괄 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중심으로 관계기관과 공조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초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해 5월에는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안전정책조정회의도 신설했다. 그러나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대응 과정을 놓고 “대체 무엇이 바뀐 것이냐”란 지적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여객선 침몰 사고라는 참사가 발생하자 중대본은 우왕좌왕했다. 승선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자 수도 오락가락하면서 혼선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많다. 중대본은 당초 승선자를 462명으로 발표했지만 화물차 운전기사 13명이 표를 끊지 않고 승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승선자 수는 475명으로 정정됐다. 해명도 엉성하기 짝이 없어 ‘대책 없는 대책본부’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중대본부장인 강병규 안행부 장관은 ‘엉터리 집계 논란’을 의식한 듯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A4용지 한 쪽짜리 자료만 읽고 자리를 떴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도 않았다. 이후 중대본은 “모든 구조와 수색에 관한 공식 브리핑은 해양경찰청이 한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스스로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행부는 올해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안전조끼 착용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안전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내놓은 수습책이었다. 그러나 이번 진도 여객선 참사에서도 안전조끼 착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뒷북만 치는 것 아니냐”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재명 egija@donga.com·손효주 기자}

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인양작업이 18일 오전 시작될 예정이지만 배를 끌어올리는 데 두 달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2010년 3월 백령도 해역에서 침몰한 천안함은 함미 인양에 3주, 함수 인양에 30일이 걸렸다. 세월호 인양이 천안함보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우선 배의 크기가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국내 여객선 최대 규모인 6825t, 천안함은 1220t이다. 천안함은 선체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하나씩 끌어올렸기 때문에 인양 크레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세월호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박종환 목포대 조선공학과 교수는 “배 안에 차량 등 화물이 많이 실려 있는 데다 물까지 가득 차면 무게가 1만 t 이상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으로 이동 중인 크레인 3대의 인양 가능 무게는 총 9200여 t. 크레인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해양경찰 등 구조당국은 배 안에 공기주머니 등을 집어넣는 등의 방법으로 무게를 최대한 줄일 계획이다. 세월호의 선체가 거의 180도 뒤집혀 있는 것도 문제다. 이 상태로 끌어올렸다간 인양 과정에서 취약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추락할 수 있어 일단 배를 바로 세워야 한다. 천안함 인양에 참여했던 정승계 유일수중공사 사장은 “배를 일으켜 세우려면 배 표면에 용접을 해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작업에만 20일가량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업은 바닷물이 빠지는 정조시간에만 가능한데 6시간 주기로 1시간 남짓 오기 때문에 길어야 하루 4시간 정도 작업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지점의 수심이 최고 37m로 천안함 침몰 수심(25m)보다 10m 이상 깊다는 것도 인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조규남 홍익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잠수부들이 일할 수 있는 최대 수심이 30m 정도다. 물 속은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올라 작업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해역은 국내에서 물살이 세기로 손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 구조작업을 총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본부장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는 구조자와 실종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는 등 하루 종일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오후 한때 구조자 수를 실제보다 200명 넘게 잘못 발표했다가 얼마 뒤 대폭 수정하는가 하면 실종자 수는 3분의 1이나 적게 발표하는 등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중대본은 이날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1시 현재 세월호 승선자 수는 477명으로 2명이 사망하고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실종자 수는 107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오후 4시 30분 브리핑에서는 말이 바뀌었다.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중대본 차장)은 “구조자가 368명이 아니라 164명”이라며 “실종자 수가 107명에서 293명”이라고 바로잡았다. 이 차관은 “해경, 해군, 소방, 민간 등 여러 기관에서 동시에 구조를 하다 보니 구조자 수가 중복 집계됐다”고 해명했다. 중대본은 세월호의 총 승선 인원이 몇 명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당초 승선자 수를 477명이라고 했다가 오후 4시에는 459명으로 수정해 발표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측이 밝힌 승선자 수는 462명으로 중대본 발표와 달랐다. 이날 오전 11시경 경기도교육청과 안산 단원고교 측이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과 학부모에게 발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해경이 단원고 행정실로 전화를 걸어와 ‘전원 구조된 것 같다’고 말했고 학교 측이 이를 도교육청에 보고해 교육청이 ‘전원 구조됐다’라고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와 경기도교육청의 부정확한 발표 때문에 단원고 학부모들은 분개했다. 이날 단원고 에 모여 자녀의 생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우리는 이렇게 애가 타는데 정부고 교육청이고 다 거짓말만 한다. 구조자 수 파악은 구조작업의 기본인데 구조를 할 의지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안산=남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