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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구속 여부를 놓고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 측이 또다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양측은 지난달 18일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때 삼성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에게 준 돈이 뇌물인지 등을 놓고 4시간 가까이 다퉜다. 특검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인 이날도 7시간 10분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설전을 벌였다. 이 부회장은 오전 10시 3분경 특검 수사관과 함께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법정 입구 부근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영장 기각’을 연호하는 보수 성향 시민 30여 명과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외치는 노조 관계자 10여 명이 몰려 매 주말 이어지고 있는 보수·진보 집회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었다.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심사에 특검 측에서는 양재식 특검보(52·사법연수원 21기)와 윤석열 수석파견검사, 한동훈 부장검사, 박주성 김영철 김해경 검사 등 모두 6명이 참석했다. 특검 파견검사 20명 중 최고참인 윤 부장검사와 한 부장검사가 함께 나선 것은 특검이 이 부회장의 구속에 수사의 명운을 걸었음을 보여준다. 삼성 측에서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송우철 변호사(55·16기)와 부산고검장 출신인 조근호 변호사(58·13기) 등 7명의 변호인이 나섰다. 윤 부장검사와 절친한 사이인 판사 출신 문강배 변호사(57·16기)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양측은 점심 식사조차 걸렀다. 한 판사는 오후 3시 반경 잠시 휴정했다가 20분 만인 오후 3시 50분부터 심리를 재개했다. 이 부회장의 영장심사는 오후 6시경 끝났다. 이 부회장은 심문이 끝난 뒤 특검이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64)에 대한 영장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법원에서 대기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오후 7시경 박 사장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이튿날 새벽까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렸다. 규정에 따라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은 뒤 수의로 갈아입고 6.56m² 크기의 독방에서 대기했다. 법정에서 특검은 지난달 말 새로 확보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의 수첩 39권을 근거로 이 부회장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첩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을 돕도록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측은 “앞서 기각된 1차 구속영장과 비교해 봐도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다”며 특검의 수사가 무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 씨 모녀에 대한 지원은 박 대통령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최 씨 일가 지원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0일 “청와대의 경내 압수수색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과 박홍렬 대통령경호실장을 상대로 행정소송 및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청와대가 직접 압수수색을 허용하지 않고 버티자 소송으로 청와대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전례는 없지만 법리 검토 결과, 청와대의 압수수색 불승인 행위가 행정법상 ‘처분’에 해당돼 항고 소송(결정, 명령에 대한 불복 소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검이 이날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은 청와대와 압수수색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특검은 3일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형사소송법상 군사상·직무상 비밀 관련 장소 압수수색은 책임자 승낙이 필요하다”며 특검에 ‘압수수색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했다. 특검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황 권한대행은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받겠다던 특검과의 합의를 번복하면서 대면조사가 실제 이뤄질지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대면조사를 거부한 것은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3차례 대면조사 시도를 포함해 이번이 4번째다. 청와대 경내에서 비공개로 할 예정이던 대면조사를 단지 조사 날짜가 사전에 보도됐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박 대통령 측이 이번 대면조사에 얼마나 큰 부담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靑 “특검 언론 플레이”…특검 “일정 노출 안 해” 청와대와 특검은 비공개 조사를 전제로 구체적인 조사 장소와 양측의 배석 인원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해 왔다. 특검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관의 첫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 박 대통령 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왔다. 이규철 특검보는 7일 브리핑에서 “10일 언저리에 대면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나 누가 박 대통령 조사를 담당할지 등 구체적 내용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 기소)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대면조사를 앞둔 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였다. 박 대통령이 ‘공모자’로 적시된 공소장이 공개될 경우 박 대통령 측에서 이를 빌미로 대면조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 7일 저녁 일부 방송에서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9일로 확정됐고 조사 장소는 청와대 위민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특검에 각 언론의 사실 확인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특검 측은 “일절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출입기자단에 전달했고 일부 특검 관계자들은 아예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8일 청와대는 ‘9일 대면조사’를 보도한 특정 언론사를 언급하면서 특검보 1명이 대면조사 사실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면조사와 관련한 세밀한 부분까지 논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특검에서 먼저 언론 플레이를 했다”며 “(대면조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반면 특검은 이날 “대면조사 일정을 외부에 일절 노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 측이 대면조사를 무산시키기 위해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까지 옹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박 대통령 변호인단은 ‘9일 대면조사는 받지 않고 일정을 다시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특검에 전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변호인단이 그동안 특검의 피의 사실 공표 사례와 신뢰를 깨뜨린 특검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내부적으로는 “특검이 완장을 찬 것 같다”는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 나왔다.○ 안종범 수첩 39권…대면조사에 부담 박 대통령 측은 특검의 대면조사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 신분은 대면조사 일정과 방식을 조율할 때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정작 직접 조사 장소에 나서는 순간부터 약점이 된다. 국가원수의 신분상 이미 사건 관련자들이 검찰이나 특검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해 일반 피의자처럼 묵비권을 행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건 해명을 하다 보면 약점을 잡히기 쉽다는 게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의 분석이다. 특검이 조사 장소를 청와대가 원하는 곳으로 양보하면서까지 대면조사를 성사시키려 한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설 연휴 직후 특검 수사가 확대되는 기류도 박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특히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 39권을 특검이 입수한 게 결정적이다. 이 수첩 39권에는 박 대통령이 2년여 동안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특검의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마무리되면 헌법재판소는 특검에 박 대통령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특검 대면조사에서 변호인을 입회시키면 헌재는 특검이 작성한 박 대통령의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 “박 대통령, 대면조사 거부 명분 쌓나” 특검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조사에 불응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처럼 언론 보도 등을 핑계로 몇 차례 더 시간을 끈 뒤 특검의 공정성 등을 문제 삼아 대면조사를 아예 거부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에도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며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까지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검은 이달 말 끝나는 수사 기한 연장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요청키로 했다.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에 불응해 여론이 악화되면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수사 기한 연장을 거부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청와대도 아직 대면조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면조사 시점이)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 주 초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특검 조사에는 임하려 한다”고 밝힌 만큼 대면조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각에서 지연 전술이니, 대면조사 회피 전술이니 하는데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헌정 사상 첫 대통령 대면조사인 만큼 예의를 지켜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우경임·허동준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달 설 연휴 직전 확보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 39권은 청와대 경내에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5일 확인됐다. 특검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안 전 수석을 보좌했던 A 씨는 지난달 26일 청와대에 보관 중이던 안 전 수석의 수첩 39권을 특검에 제출했다. 안 전 수석이 대통령경제수석에 임명된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 구속되기 직전까지 쓴 수첩들이다. 안 전 수석은 지난달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 김영재 씨의 부인 박채윤 씨(48·구속)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자 선처를 호소하면서 A 씨를 시켜 수첩 39권을 특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청와대에 직접 들어가 수첩들이 든 쇼핑백을 갖고 나와서 특검에 건넸다. A 씨는 수첩들을 청와대에 보관한 배경에 대해 “경내 압수수색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특검 측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A 씨가 특검에 수첩을 제출한 사실을 파악한 뒤 A 씨를 심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이 수첩들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입증할 단서 등 핵심 증거 상당수가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것으로 보고, 3일 무산된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다시 시도할 방침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5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은 보여주기 식 수사가 아니라 필수적인 증거 수집을 위한 절차”라고 밝혔다. 특검은 압수수색 영장에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것을 청와대가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이미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해 (최 씨 등을) 기소했다. 피의자 적시를 헌법 위반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또 특검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 승인을 요청한 공문을 보낸 데 대한 답변을 6일까지 기다린 뒤 후속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의 독일 현지 대출을 도운 이상화 KEB하나은행 글로벌본부장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려고 외압을 행사한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를 소환키로 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던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에게 당시 KEB하나은행 삼성타운지점장이던 이 본부장의 승진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의 의사를 정찬우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54·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통해 김 회장에게 전달한 정황을 확보했다. 특검은 최근 정 전 부위원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하나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를 소환하게 되면 이 본부장 승진과 관련한 정 전 부위원장의 구체적인 요청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이 관계자가 박 대통령의 지시나 최 씨의 개입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특검은 또 최 씨가 한국 정부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지난해 5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에 김인식 전 킨텍스 사장(68)이 임명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도 확인했다. 외교부 산하 기관인 KOICA 이사장엔 통상 외교부 출신 공무원들이 임명됐는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KOTRA 출신인 김 전 사장이 임명되자 뒷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가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유재경 전 삼성전기 전무를 주미얀마 한국대사로 청와대에 추천한 것과 비슷한 구조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최 씨와는 일면식도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특검은 청와대가 경내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데 대해 “법리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관련 법에 따라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군사상·직무상 비밀과 관련한 장소’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경내 압수수색을 최대한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특검은 박 대통령의 혐의와 관련된 대통령비서실과 청와대 의무실, 경호실,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 등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 특검은 10일경으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비공개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박 대통령 측과 대면조사의 시기와 세부 절차를 조율해 대면조사를 성사시킬 방침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대면조사 시기에 대해 “대면조사가 가능한 방향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장관석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박근혜 대통령 측이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앞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일 특검과 박 대통령 측에 따르면 발단은 최근 특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운용 혐의로 구속 기소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0) 등의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특검의 공소장 내용 중 박 대통령이 2013년 9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고 발언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문제 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기류는 특검에 대한 정면 대응을 강조하는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특검 조사를 받은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검 수사에서 문체부 대외비 문서(블랙리스트) 작성의 정당성 주장 등 목표를 모두 수행했다. 박 대통령을 지켜 달라”는 글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가 특검의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특검과 협의는 하겠지만 전례에 따라야 할 것”이라는 자세를 고수하는 것. ‘전례’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해 10월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청와대의 반발에 밀려 결국 자료를 ‘임의 제출’ 받았던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특검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압수수색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박 대통령 대면조사도 청와대 경내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대법원은 31일 사법연수원장에 최재형 서울고법 부장판사(61·사법연수원 13기), 서울고등법원장에 최완주 서울고법 부장판사(59·13기), 대구고법원장에 사공영진 대구고법 부장판사(59·13기), 부산고법원장에 황한식 서울고법 부장판사(59·13기)를 임명하는 등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 법관 74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다음 달 9일자로 단행했다. 또 3월 개원하는 서울회생법원 초대 법원장에는 이경춘 서울고법 부장판사(56·17기)가 임명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고법 부장판사와 일선 법원장을 거친 법조 경력 30년 이상의 고위 법관을 다시 1심 법원에 배치하는 ‘원로법관제’가 처음 도입됐다. 이에 따라 조용구 사법연수원장과 심상철 서울고법원장 등 현직 법원장 2명과 조병현 강영호 성기문 서울고법 부장판사 3명 등 모두 5명이 원로법관으로 지명됐다. 특히 조 원장과 심 원장은 ‘법원장-일선 재판부-법원장’을 거친 뒤 다시 재판 업무로 복귀한 첫 사례다. 원로법관에 지명되면 지방법원과 시법원 등에서 소액사건 재판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인사발령 이후 3년 동안 정부 부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 법관 직위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원로법관에게 고법 부장판사와 검사장 등 차관급 이상 판검사에게만 적용되는 ‘퇴직 후 3년간 로펌 또는 기업체 취업제한’을 그대로 적용하기 위한 조치다. 원로법관은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에도 포함되지만 일선 법원장이나 고법 부장판사에게 제공되는 관용차량 등의 예우는 사라진다. 전관예우는 막고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키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에 따라 의무는 남고 특혜는 없앤 것. 하지만 이번에 지명된 5명은 모두 원로법관을 자원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지식재산권 사건 심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신설된 민사제2수석부장에는 김형두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임명됐다. 조용현 대전지법·가정법원 천안지원장 등 13명은 이번 인사에서 새로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과 김문석 서울행정법원장 등 현직 법원장 8명은 법원장 순환보직제에 따라 고법 재판부로 복귀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월 둘째 주 후반(8∼10일) 박근혜 대통령을 대면 조사키로 하고 청와대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특검은 당초 청와대 측에 2월 둘째 주 초반(6, 7일)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 청와대 측에서 조사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주 후반으로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특검은 이를 수용하고 청와대 측과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 중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을 특검 사무실이나 청와대 경내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대면 조사하기로 청와대 측과 합의했다. 현직 대통령 예우와 경호 문제 등을 감안해 조사 장소는 청와대 인근 정부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은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박 대통령 측이 선택하는 장소를 수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특검과 청와대 측은 비공개 조사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사전에 언론에 조사 장소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실제 특검의 대면 조사를 받게 되면 수사기관의 직접 조사를 받는 첫 현직 대통령이 된다. 특검은 박 대통령 대면 조사에 앞서 이번 주 청와대를 압수수색할 방침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브리핑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수사팀이 직접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 압수수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특검 측에 “보안시설이라 수용하기 어렵다”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경내는 형사소송법상 ‘군사상·직무상 비밀과 관련한 장소’에 해당돼 직접 압수수색은 청와대의 사전 승인 대상이라는 것. 반면 특검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된 청와대 의무실 등 경내 일부는 군사상·직무상 비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직접 압수수색 대상이라며 맞서고 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 기자}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25일 오전 11시 16분. 정확히 한 달 만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강제 소환된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구치소 호송차에서 내려 걷다가 대기 중이던 취재진이 가까워지자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연달아 여섯 차례나 출석 요구를 거부한 끝에, 특검이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구인하자 반발한 것이다. “어린애(딸 정유라 씨)와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하고 이 땅에서 죄를 짓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데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 책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이것은 너무 억울해요. 우리 애들까지, 어린 손자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 호송 교도관의 제지에도 최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취재진의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석 달 전 검찰에 출석할 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죽을죄를 지었다”며 필사적으로 온 몸을 웅크리던 모습은 간 데 없었다. 최 씨의 돌발 행동에 취재기자들은 “대박이네”라며 실소했고 특검 사무실을 청소하는 용역업체 직원 임모 씨(65·여)는 말싸움을 하듯 “염병하네”라고 세 차례 소리치며 최 씨를 비난했다. 최 씨는 발언 직후 특검 사무실에 들어가 변호인과 만난 자리에서 “하도 억울해서 말을 했더니 조금 후련해졌다”며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 씨는 자신이 한 말을 복기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공동 책임을 밝히라고 했다는 말은 괜히 했나”라며 후회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솥밥 먹고 한 통장 쓰고 한 것을 (특검이) 마치 재산을 (완전히) 나눠 가진 것처럼 말한다는 뜻이었는데 괜히 오해받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 특검은 브리핑을 통해 “최 씨가 트집을 잡아 특검 수사에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최 씨는 9시간 넘게 이어진 특검 조사 내내 진술을 거부하다 밤늦게 서울구치소로 돌아갔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청와대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을 통해 보수단체 10여 곳을 지정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자금 지원을 요구한 정황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포착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특검은 최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58)으로부터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10여 곳을 찍어 구체적으로 금액까지 못 박아서 지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청와대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했다는 것.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청와대 요구를 거부하는 게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들어줬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정부 예산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반면 친정부 단체들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켜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전경련이 자체 재원으론 지원을 감당하지 못해 회원사인 대기업들로부터 매년 30억 원 이상을 걷은 사실도 확인했다. 또 화이트리스트 단체들에 대한 청와대의 지원 요구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대기업 출연을 압박한 과정과 비슷해 해당 관계자들을 직권남용이나 강요 혐의로 처벌할지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전직 관계자 등은 특검에서 “화이트리스트 단체 지원을 정무수석실이 주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4)과 후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구속)의 개입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특검 조사 결과 화이트리스트 단체들은 전경련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춘 전 실장은 특검에서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부 단체가 나를 직접 찾아와 ‘왜 약속한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화이트리스트 작성과 운용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청와대 압수수색 필요성을 누차 강조해 왔던 만큼 법리 검토는 마쳤다”고 말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 대면조사의 시기와 장소 등을 조율하기 위해 박 대통령 측과 비공개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부정에 관여해 업무방해 및 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55)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 기자}

과거 ‘미스터 법질서’로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은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서울구치소 호송차에서 내렸다. 2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된 김 전 실장의 어깨는 처졌고, 얼굴은 흙빛이었다. 김 전 실장은 수의를 입지 않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당시 입었던 양복과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법꾸라지’ 자폭하라” “인간이 돼라”고 외쳤다. 앞서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핏기 없는 얼굴로 초라하게 법원을 빠져나오던 모습에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의 ‘왕실장’으로 군림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22일 김 전 실장과 같은 호송차를 타고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구속)은 김 전 실장에 앞서 호송차에서 내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굳은 표정으로 영장심사 때는 착용하지 않았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수의를 입지 않고 영장심사 때 입었던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초췌했다. 앞서 21일에도 특검에 소환된 조 전 장관의 왼쪽 가슴에는 전날 달려 있던 문체부 배지 대신 수형자 번호가 붙어 있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 석사, 변호사 출신 등 화려한 이력과 주목받는 외모로 “‘꽃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 조 전 장관.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그가 수의를 입고 포토라인에 서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조 전 장관은 21일 구속 직후 서울구치소에서 가족들과 면회하는 자리에서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특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로 구속된 공직자는 이 두 사람을 포함해 문체부 김종덕 전 장관(60)과 정관주 전 1차관(53),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56)까지 5명이다. 특검이 지금까지 구속한 10명의 절반이다. 특검 안팎에선 “블랙리스트가 만든 사람들의 ‘살생부’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구속된 직후 블랙리스트 작성이 자신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 측 황성욱 변호사는 21일 “허위 내용을 보도한 기자와 해당 기자에게 (김 전 실장 등의) 구속영장 범죄 사실을 넘겨준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명예훼손 및 피의사실 공표죄로 형사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낼 것”이라고 밝혔다. ▼ 불법 몰랐다는 ‘王실장 김기춘’ - 눈물 쏟은 ‘신데렐라 조윤선’ 결국 몰락 ▼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조심해 가며 반듯하게 살았는데….”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알았지만 작성이나 운용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다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들이 옆에 있었지만 변호사 자격이 있는 조 전 장관은 스스로 변론을 했다. ○ 울음 터뜨리며 스스로 변론했지만 구속 조 전 장관은 ‘현직 장관 신분으로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떠안는 게 큰 부담인 듯 “문체부 장관만큼은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문화체육에 관심이 많아 정말 잘해 보려고 했다. 평창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해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장관이 된 뒤 본연의 업무에 너무 바빠서 블랙리스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게 변론의 요지였다. 또 장관이 되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할 때도 세월호 참사 수습 등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블랙리스트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정무수석을 맡아 한 달 넘게 안산에 머무르며 피해자 유족을 위로했고, 그 이후로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와 연금개혁 등 현안이 많아 블랙리스트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장심사 내내 직접 타이핑해 온 메모지를 들춰가며 ‘셀프 변론’을 했지만 특검은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정황을 다수 제시했다. 자신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들의 증언 등 각종 기록 앞에서 조 전 장관은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영장심사를 한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 배척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불법인 줄 몰랐다” 주장했지만 구속 조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성 부장판사에게서 영장심사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일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불법인 줄은 몰랐다”고 부인하는 전략을 폈다. 김 전 실장은 영장심사에서 “좌파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는 일은, 문체부 장관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재판도 염두에 두고 ‘범죄인 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특검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했다.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과정에 최 씨가 개입했다는 문체부 관계자 등의 진술을 확보한 것. 방 대표는 지난해 10∼12월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통령문화특별보좌관을 지낸 보수 성향의 인물이다. 최 씨가 방 대표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킨 구체적인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특검은 방 대표 같은 인물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리스트 작성의 기준이 단순히 이념 성향이 아니라 최 씨와 주변 인물들의 이권 개입에 방해가 되는지 여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우경임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연이어 약 3시간씩 열린 영장심사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증거 인멸을 한 정황을 강조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25기)의 영장심사를 받은 김 전 실장 측은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정부 지원 예산이 배제되도록 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적도,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적도 없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반면 특검은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의 ‘밑그림’을 그린 뒤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리스트 작성에 개입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김 전 실장의 혐의 입증 증거로 제시했다. 또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해서도 특검은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들의 반박 진술을 근거로 맞섰다. 현직 장관 신분으로는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 장관은 김 전 실장의 영장심사가 끝난 직후인 오후 1시 40분쯤 피의자 대기실에서 영장심사가 열릴 법정으로 향했다. 조 장관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2014년 6월부터 2015년 초까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며 지원 배제 인사 명단을 늘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당시 정무수석실 주도로 시민단체들을 동원해 관제 시위를 유도하고 정부 비판 단체들을 고소 고발하도록 지시했고, 조 장관이 관련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는 관계자들의 진술 등이 담긴 기록을 성 부장판사에게 제출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실장의 영장에는 2014년 5월 박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문체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혐의도 적시됐다. 특검에 따르면 당시 신동철 대통령정무비서관(56·구속) 주도로 지원 배제 인사 80여 명의 명단이 들어간 최초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이 리스트에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이 됐던 홍성담 작가 등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후 조 장관이 정무수석이 된 뒤 블랙리스트의 지원 배제 명단이 9000명을 넘어섰다는 게 특검의 수사 결과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각각 영장심사를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과 마찬가지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수의로 갈아입은 뒤 밤늦도록 법원의 구속 여부 결정을 기다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19일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법부가 삼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며 법원을 겨냥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일부 누리꾼은 이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24기)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명예훼손 수준의 악담을 하기도 했다.○ 조의연 부장판사 비난 ‘유언비어’ 확산 조 부장판사에 대한 무차별적 인신공격은 법원 안팎에서 “무슨 사고라도 터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로 심각했다. 하루 종일 조 부장판사의 이름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청원게시판’에는 “양심보다는 사익을 앞세운 판결을 했다”며 조 부장판사의 파면을 촉구하는 서명도 진행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조 부장판사가 ‘삼성 장학생’ 출신이다” “아들이 삼성에 취업할 예정이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 중에는 “조 부장판사가 앞으로 삼성그룹 법무실장으로 취업해 돈 방석에 앉을 것”이란 식의 인신공격이 넘쳤다. 또 일부 누리꾼은 SNS에 조 부장판사가 근무하는 서울중앙지법의 대표 전화번호와 영장계 전화번호를 올리고 “구속영장 기각에 항의하는 전화를 걸자”고 선동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 서울중앙지법에는 평소보다 많은 전화가 걸려와 업무에 방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는 “소신을 지킨 조 판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양심 있는 법조인을 지켜야 한다”며 조 부장판사를 치켜세우는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조 부장판사는 이날 담담한 자세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했고, 그 결과에 대한 비판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법원 “영장 기각, 예상된 결과”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예상했던 결과”란 반응이 많이 나왔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준 돈이 ‘뇌물’인가는 법률적으로 다퉈 볼 부분이 많다”며 “도주 우려가 없는 이 부회장에게 불구속 재판 기회를 보장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를 적용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다. 삼성이 최 씨 모녀에게 승마 지원 명목으로 송금한 돈을 박 대통령이 직접 받은 뇌물로 본 특검의 판단은 판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특검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과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연관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법원 일부에서는 “특검이 반기업 정서와 촛불 민심에 기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특히 특검의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직후 일부 언론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수사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한 데 대해 “법원을 협박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법조계 원로들은 대체로 법원의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대표 변호사는 “한 사람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여론과 거리를 두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배석준 기자}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로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필명 이인화·51·구속)가 재판에 넘겨졌다. 1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2015년 이화여대에 입학한 정 씨가 1학기 학사경고를 받게 되자 최 씨 모녀는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62·구속)에게 "강의에 나가지 않더라도 학점을 받게 해달라"고 청탁했다, 이후 김 전 학장은 류 교수에게 수차례 "체육특기자인 정 씨가 훈련도 받고 해외도 나가야 하는데 학점과 출석에 편의를 봐 달라"고 요청했고, 지난 해 4월 최 씨 모녀가 직접 류 교수를 찾아가 같은 요청을 했다는 것. 류 교수는 지난 해 1학기 '영화 스토리텔링의 이해' 과목에 출석도 하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은 정 씨에게 합격 성적을 부여했다. 류 교수는 교육부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조교들을 시켜 허위로 정 씨의 답안지를 작성하게 해 교육부에 제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검은 또 정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에 관여한 혐의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55)에 대해 금명간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뇌물 공여)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19일 기각됐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4시 53분경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에 비춰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내용 및 진행 경과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영장심사를 마치고 서울 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이 부회장은 이날 새벽 21시간만에 귀가했다. 영장심사에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다문 채 기다리고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앞서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는 최대 쟁점이었던 뇌물 혐의의 대가성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이 영장 기각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는 분위기다. 삼성 측은 그간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으로 특검의 박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박 대통령 뇌물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늦어도 2월 초까지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하려는 특검의 수사 계획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은 박 대통령 조사에 앞서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과 최 씨 모녀에게 지원한 돈의 성격에 대한 보강 조사를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정황을 확보했다.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2014년 5월 박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문체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신동철 대통령정무비서관(56·구속) 주도로 지원 배제 인사 80여 명의 명단이 작성됐다는 것이다. 이 명단이 최초의 블랙리스트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 최초의 블랙리스트에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이 됐던 홍성담 작가 등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런 혐의 내용이 12일 구속된 신 전 비서관의 영장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14일 신 전 비서관의 상관이었던 박준우 전 정무수석(64)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신 전 비서관에게서 블랙리스트 작성 사실을 보고받았는지 조사했다. 특검은 또 박 전 수석 후임으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정무수석이 된 뒤 정무수석실이 주도해 블랙리스트 명단을 늘려 나간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지원 배제 명단은 9000명을 넘어섰다. 특검은 18일 조 장관과 블랙리스트 작성의 설계자로 지목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김 전 실장이 청문회에 출석해 “블랙리스트 존재를 몰랐다”고 한 발언이 거짓이라며 김 전 실장을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허동준 기자}

청와대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은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내며 법조계의 실세로 군림했지만 특검의 칼날은 피하지 못했다.○ “김기춘 소환은 ‘공안 통치’ 단죄의 의미” 특검의 김 전 실장 소환 조사는 단순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직권남용)를 확인하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따로 분류해 불이익을 주는 ‘편 가르기’ ‘공안 통치’의 책임을 묻겠다는 게 특검팀의 생각이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색깔을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 전반에 투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이용해 반(反)정부 성향이 강한 문화예술계의 지형을 바꾸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및 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인사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를 실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블랙리스트’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 특검 수사로 블랙리스트의 위헌성이 입증될 경우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그동안 블랙리스트에 대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우리 헌법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혀 왔다. 여기엔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총괄 지휘한 혐의를 받는 김 전 실장을 넘어서 박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특검이 김 전 실장을 상대로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운용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집중 추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개입 정황이 확인될 경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는 사유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특검은 김 전 실장뿐 아니라 함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에 대해서도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특검은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62)을 업무방해와 위증 등의 혐의로 18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 전 학장은 최순실씨(61)의 딸 정유라 씨(21)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특혜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권기범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1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다. 이규철 특검보는 “조 장관은 오전 9시 30분, 김 전 실장은 오전 10시에 소환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분류해 명단을 작성하고 해당 인사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배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를 받고 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을 위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비서실장에 재직하면서 블랙리스트의 ‘청사진’을 그리고 리스트 운용을 지휘한 ‘총책임자’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조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1년 가까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직 중 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를 전혀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 뒤 이달 9일 다시 청문회에 출석해 “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말을 뒤집어 국회로부터 위증 혐의로 고발됐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청와대 근무 기간이 겹치는 2014년 하반기 블랙리스트 작성 및 운용을 협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검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소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대질 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앞서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 운용에 관여한 혐의로 문체부 김종덕 전 장관(60)과 정관주 전 1차관(53),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56)을 구속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 외에도 문체부 고위 공무원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특검에 포착됐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 당시 김희범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국장 6명의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불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힌 배경은 뭘까. 앞서 9일 특검에 소환된 최 실장은 “최순실 씨 모녀 지원과 관련한 모든 결정은 내가 다 했다”라고 진술했다. 또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한 뒤 “‘승마 지원’ 등 박 대통령의 요청을 모두 최 실장 등에게 전달했다”라며 “당시 박 대통령의 요구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라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특검은 최 실장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이 ‘뇌물’로 판단한 삼성의 최 씨 모녀 지원을 최 실장이 결정하고 실행한 것으로 정리할 경우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뿐 아니라 처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연쇄적으로 특검의 최종 목표인 ‘박 대통령 뇌물 혐의’ 규명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박 대통령 뇌물죄 입증의 가장 중요한 단서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최 실장 등에게 박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한 것 자체를 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봐야 한다”라는 특검 관계자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특검은 삼성의 최 씨 모녀 지원에 관여한 최 실장과 장 차장, 박 사장을 모두 형사처벌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을 22시간 동안 ‘밤샘 조사’ 하고 돌려보낸 뒤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특검 수사팀은 삼성전자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딸 정유라 씨(21) 모녀를 지원한 것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보고 있다. 특검이 만약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박 대통령에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다. 반면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특검이 뇌물죄를 적용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 박 대통령-최순실 ‘공동 지갑’ 인정돼야 ‘포괄적 뇌물죄’ 성립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 중 한 가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뇌물 혐의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 가운데 법정 형량이 가장 무겁다. 특검 내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 논의는 삼성 측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은 2015년 3월 이전부터 이뤄졌다는 게 특검의 시각.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점부터 삼성은 계열사 합병을 통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검토했고, 박 대통령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2015년 7월 청와대에서 독대를 한 직후 삼성전자가 최 씨 모녀 소유인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78억 원을 송금한 사실을 가장 중요한 증거로 생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도록 해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도왔고, 그 대가로 삼성은 최 씨 모녀를 지원했다는 것. 이 부회장도 여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따라서 특검은 삼성 측에서 특별하게 청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공무원의 포괄적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는 뇌물죄를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자세다. 하지만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최 씨 모녀가 지원받은 돈을 박 대통령이 취한 이득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최 씨가 이른바 ‘공동 지갑’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하지만 특검이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나 진술을 확보했는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제3자 뇌물죄’ 적용하려면 ‘분명한 대가성’ 입증돼야 이 때문에 특검은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한 뒤 하루, 이틀 시간을 갖고 영장 청구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괄적 뇌물죄’ 대신 ‘제3자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제3자 뇌물죄’는 대가 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 지원이 박 대통령의 삼성 계열사 합병 지원 대가라는 인과 관계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된 시점은 2015년 7월 17일이고, 일주일 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졌으며,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송금은 같은 해 9월 이후라는 점이다. ‘독대-돈 전달-합병 성사’의 순서가 일반적인 뇌물 범죄의 경향인데, ‘합병 성사-독대-돈 전달’로 순서가 꼬여 있는 것이다. 삼성 측이 “최 씨의 독일 법인에 돈을 송금한 것과 그보다 앞선 계열사 합병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강요받아 돈 준 게 구속 사안인가” 이 부회장은 특검에 소환돼 “박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승마 지원이 부실하다고 질책한 사실을 삼성 임원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지원을 요구했는지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특검이 뇌물죄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압박에 못 이겨 돈을 보낸 게 구속까지 될 사안이냐는 항변이 깔려 있다. 뭔가 바라는 쪽에서 먼저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면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부회장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여러 대기업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이 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번 사건은 통상적인 뇌물 사건과 달리 금품을 주고받은 측이 그 성격을 놓고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삼성은 ‘강요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박 대통령과 최 씨 모녀 측은 ‘단순한 지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뇌물죄 적용은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또 법원이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거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한 점도 특검의 부담이다. 지난해 9월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법원은 “법률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할 경우 특검 수사 전반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다른 분야 수사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