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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4시 반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영화관. 평소 한산한 시간대인데도 한 관은 꽤나 붐볐다. 진한 팝콘 냄새를 풍기는 20대 연인부터 왁자지껄한 40대 여성들, 그리고 백발을 빗어 넘긴 노부부까지. 영화 속에서 98세 남편이 시름시름 앓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효과음처럼 퍼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눈가가 벌겋던 관객 강모 씨(29·회사원)는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에 부모님, 미래의 내 모습까지 떠올라 남자친구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76년을 해로한 황혼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잔향이 갈수록 진해진다. 휴일엔 하루 30만여 명이 몰리며 23일까지 263만 명이 관람했다. 홍보사 영화사하늘은 “이 추세라면 크리스마스(25일)에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작인 ‘워낭소리’(약 293만 명) 기록을 깰 것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역대 다양성영화 1위인 ‘비긴 어게인’(약 343만 명)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님아…’의 제작비는 약 1억2000만 원. 23일 현재 누적 매출은 204억3000여만 원으로 제작비의 170배 넘게 벌어들였다. 영화사하늘의 최경미 실장은 “중장년층은 비슷한 경험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청년층은 보편적 정서에 공감하며 76년을 해로한 노부부를 통해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님아…’ 돌풍은 올해 문화계 전반을 흔드는 ‘어르신 신드롬’과 맞닿아 있다. ‘어르신 신드롬’은 그동안 비주류로 여겨지던 노년세대를 전면에 내세운 문화콘텐츠들이 ‘대박’을 치는 현상을 일컫는다. 중장년층 이상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판매하는 실버마케팅과는 결이 다르다. ‘돌아온 봄(回春)’은 특정 문화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다. TV는 예능이 불을 댕겼다. 지난해부터 탄력 받은 tvN ‘꽃보다 할배’ 시즌2와 ‘꽃보다 누나’가 뜨거웠다. 하반기 최고 인기 예능인 ‘삼시세끼’ 역시 백일섭 윤여정 등이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에선 63세 가장 차순봉(유동근)이 중심인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시청률 40% 안팎에 이르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영화에선 ‘님아…’ 이전에 70대 할머니의 회춘을 다룬 ‘수상한 그녀’가 약 866만 명을 끌어모았다. 6월 스웨덴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화제였다. 동명소설은 올해 교보문고 집계 종합베스트셀러 1위(45만 부)에 올랐다. 공연에서도 이순재 신구 나문희 씨가 출연한 연극 ‘황금연못’(9∼11월)이 인기를 끌었다. 어르신 신드롬의 특징은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CGV에 따르면 ‘님아…’는 관객의 약 70.6%가 10∼30대였다. 연극 ‘황금연못’도 30대 이하가 65.7%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드롬의 바탕엔 ‘진정성’에 대한 사회적 목마름이 배어 있다고 분석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에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는 경험치를 배울 수 있고, 골치 아픈 정치색이나 계층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어느 나이대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며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문화를 통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노년의 삶을 매력적인 부분만 부각시키거나 노인을 친근한 캐릭터로 포장함으로써 노년의 현실을 다소 왜곡해서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ray@donga.com·이새샘 기자}

tvN 화제의 드라마 ‘미생’이 20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8.4%를 기록하며 종영했다(닐슨코리아 자료). 주요 에피소드와 대사까지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에서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던 것과 달리 마지막 회는 오상식(이성민)이 창업한 회사에 합류한 장그래(임시완)가 요르단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스펙이 전무했던 고졸 사원 장그래가 요르단을 누비며 유창한 영어를 뽐내고, 산업스파이와 거친 추격전을 벌이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신공’을 발휘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왔다. “미생이 갑자기 ‘본 아이덴티티’가 됐다” “장그래가 아니라 본그래다” “직장인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리다 왜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로 마무리하느냐”는 것이다. tvN은 “요르단 장면은 올해 8월 미리 촬영한 것으로 드라마 초반부터 결말은 예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생은 ‘옥에 티’와 함께 주목할 만한 기록도 여럿 남겼다. △10.3=마지막 회에서 산업스파이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오상식과 장그래가 나란히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순간 최고 시청률인 10.3%를 기록했다. 장그래가 “차장님, 저 홀려보세요. 차장님의 뭘 팔 수 있어요?”라고 묻는 장면이다. 1회에서 낙하산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장그래에게 오상식이 같이 차를 타고 가며 했던 질문을 장그래가 되돌려 주는 장면이었다. 당시 장그래는 “뭘 팔 수 있느냐”는 오상식에게 “노력”이라고 답했다. “전 지금까지 제 노력을 쓰지 않았으니까 제 노력은 쌔빠진 신상입니다.” △23억=18일까지 미생의 주문형비디오(VOD) 판매 수익 추산치다. 19, 20일에 방송된 마지막 2회분의 판매 수익까지 합치면 30억 원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미생의 편당 제작비는 3억 원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VOD 판매만으로도 제작비의 절반가량을 회수한 셈이다. △20억=미생이 푸티지 광고(드라마의 실제 장면을 광고에 삽입하는 광고 기법)로 벌어들인 수익이다. 화장품, 통신사 등이 푸티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미생은 본방송 앞뒤에 붙는 프로그램 광고를 완판하고 커피, 복사용지, 홍삼 등 다양한 제품의 간접광고를 드라마에 삽입했다. 주연인 임시완도 자동차, 통신사, 치킨업체를 비롯해 10개 브랜드와 새로 광고 계약을 했다. 이성민 김대명(김동식) 변요한(한석률) 강소라(안영이) 강하늘(장백기) 등 주조연급 출연진도 주류, 음료, 피자, 통신사 CF 모델로 나서게 됐다. △100=미생의 전체 출연진 수로 웬만한 사극보다 많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대사 없이 키보드를 치거나 전화를 받는 배역에도 엑스트라가 아닌 배우를 기용했다. 그 대신 톱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아 편당 제작비가 4억 원에 육박하는 사극에 비해 낮은 제작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6=미생은 종영 전 미국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대만 캄보디아 등 6개국에 판매됐다. 리메이크 문의도 많다. 특히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여서인지 중국에서는 정식 방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국중앙(CC)TV가 14분짜리 특별 프로를 내보내는 등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tvN은 “한류 스타를 내세운 일부 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 드라마가 종영한 뒤 판권이 판매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미생의 기록은 이례적”이라고 밝혔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미생’의 홍보 문구가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었지만 저희가 하려던 얘기는 반대였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김원석 PD)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엠큐브에서 만난 tvN 드라마 ‘미생’의 정윤정 작가는 무릎 위에 백과사전 두께의 A4용지 세 묶음을 올려놓았다. 미생을 쓰며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라고 했다. 김원석 PD는 “오늘 오전 6시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마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생은 20일 오후 20회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기획부터 시작해 1년 2개월 동안 미생에 매달렸다. 엠넷 뮤직드라마 ‘몬스타’(2013년)에서 호흡을 맞춘 뒤 두 번째 작업이다. 김 PD는 “정 작가는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며 “원작은 지적이고 철학적이지만 드라마는 코미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미생을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창작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덤볐다”며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는 장그래가 돼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유명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부담은 컸다. 어떤 드라마를 만들지 얘기하는 데 첫 한 달을 보냈고 한 달 반 이상 자료 조사에 매달렸다. 1회 대본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김 PD는 “1회 마지막 대사는 장그래가 울분을 간직한 채 독백하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 버려졌다’로 미리 정했다. 그런데 그 대사로 가기 위한 오징어젓갈 에피소드가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했다. 미생은 선과 악이 “49 대 51”(정 작가)로 섞인 평범한 인물들이 격렬한 감정 기복 없이 드라마를 끌어간다. 정 작가는 “원래 남녀 멜로에 약하다. 키스신이 제일 힘들다. 그 대신 전략적으로 ‘브로맨스’(남자 간의 우정)를 많이 넣었다”고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이 있잖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 역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이 있고요. 늘 혼자였던 장그래가 ‘우리 애’가 되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어요.”(김 PD) “40대 남자 직장인이 술 마시고 택시 잡다가 넘어지는 모습, 큰 양복 안에 들어 있는 초라한 몸, 그럼에도 식판에 밥을 먹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어요. 사람들이 미생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연민을 느끼며 위로받았다고 생각합니다.”(정 작가)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4년 방송계는 불황에 허덕였다. 2월 종영한 SBS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가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4월 세월호 참사 후엔 아침 주말 일일 드라마를 제외한 드라마 대부분이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5∼10월 방영돼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 정도가 예외였다. 10월 방영을 시작한 tvN ‘미생’은 러브라인이나 출생의 비밀 없이도 히트한 드라마로 꼽히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예능도 강호동 유재석이 나오는 프로조차 낮은 시청률로 고전했다. KBS ‘1박 2일’은 10%대 시청률을 회복했지만 MBC ‘무한도전’은 멤버 길과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잇따라 하차하며 우울한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시청률도 낮고 화제작도 드문 한 해였지만 시청자를 울고 웃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 없진 않았다. 》△욕해줘서 고마워=2014년의 문은 ‘별그대’가 열었다. 주인공 천송이 역의 전지현은 “븅자(병자)년에 쭉빵(죽방)을 날릴∼” 같은 차진 욕설과 푼수 연기로 여배우 전지현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안겼다. 립스틱부터 치킨까지 그가 바르고 입고 먹는 모든 것이 화제가 되며 중국에서까지 별그대 열풍을 일으켰다.△‘잘못된 만남’ 고마워=KBS 정통사극 ‘정도전’의 조재현(정도전), 유동근(이성계), 임호(정몽주). ‘명대사 제조기’였던 박영규(이인임)도 인상적이었지만 극은 3인방이 끌고 갔다. 특히 정도전을 제 사람으로 만들며 정몽주도 놓지 않으려던 이성계의 ‘밀당 스킬’이 돋보였다.△악 써줘서 고마워=MBC ‘왔다! 장보리’의 이유리(연민정). 이유리 본인조차 “연민정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할 정도로 극단적인 캐릭터였지만 그가 데시벨을 높일수록 시청자들의 막힌 가슴은 확 뚫렸다.△아빠 양복 입어줘서 고마워=tvN ‘미생’의 임시완(장그래). 몸에 안 맞는 구식 아빠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한 그의 뒷모습이 화면에 비치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왜소한 체격과 처연한 눈빛은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는” 장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삼시세끼’ 챙겨줘서 고마워=나영석 PD는 올 한 해를 tvN ‘꽃보다’ 시리즈로 시작해 ‘삼시세끼’로 마무리했다. 출연자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시골집에서 함께 먹고 잔다는 무지 평범한 소재를 적절한 캐스팅에 깨알 같은 편집으로 버무려 맛난 프로를 만들어 냈다.△‘투잡’ 뛰어줘서 고마워=불황의 여파일까, 작가가 자기 프로에 출연하거나 배우가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투잡’족이 유난히 많았다. tvN의 ‘SNL’에 고정 출연하며 CF까지 찍은 유병재 작가가 투잡족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흔들어줘서 고마워=올해의 ‘대세 예능인’은 이국주다. 배우 김보성의 ‘의리’를 ‘으리’로 재해석하고 ‘먹방’ 트렌드에 맞춘 유행어 ‘호로록’으로 인기를 끌었다. 출렁이는 뱃살을 의식하지 않는 그만의 춤사위는 시청자들도 흔들어 놓았다. △똑똑해서 고마워=tvN ‘더 지니어스-블랙 가넷’의 장동민. 데뷔 10년 차인 그는 순박하고 어눌한 이미지를 벗고 호통과 막말로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했다. 지니어스에선 화려한 스펙의 출연진을 압도하는 두뇌 회전과 상황 장악력으로 게임을 지배하며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반듯해서 고마워=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송일국의 삼동이 대한, 민국, 만세. MBC ‘아빠! 어디가?’의 아류라는 비판 속에 출발한 ‘슈돌’의 인기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형제끼리 아끼고 배려하는 의젓함은 특히 엄마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너희가 어른보다 낫다!”△특별상 ‘그동안 고마웠어요’=고(故) 배우 김자옥.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11월 별세한 그를 “우리 세대의 애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추모했다. 1970년대 멜로 연기의 1인자였던 고인은 1990년대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며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배우가 됐다.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던 그에게 전한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정의감이 넘치는 ‘완벽남’(‘웨스트 윙’의 제드 바틀릿 대통령)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가(‘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도 없다. 그 대신 틈만 나면 말실수를 하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과 그보다도 못난 참모진이 있다. 미국 HBO가 시즌3까지 내보낸 정치시트콤 ‘빕(Veep·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이 주인공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손꼽혔던 전도유망한 여성 정치인 셀리나 메이어(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가 부통령직을 수락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국 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2인자지만 실제로는 웬만한 상원의원보다 못한 자리다. 정치는 결국 선거이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1인자의 그늘에 가린 2인자에게 그만큼 힘든 일도 없다. 친환경 직장 만들기나 비만 퇴치 같은,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해도 폼 안 나는 일만 떠안는다. 의회 개혁 같은 큰일을 하려 해도 의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어딘가 모자란 자리만큼이나 등장인물의 면면도 뭔가 부족하다. 부통령 메이어는 자기중심적이고 칭찬에 약한 인물이다. 정치적 신념 따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고 일이 틀어지면 보좌관을 탓하기 바쁘다. 보좌관들 역시 문제가 생기면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 하고, 부통령이 위기에 처하자 각자 살길을 찾는다. 이들은 인터뷰용 녹음기가 켜진 줄도 모르고 선거 후원자들을 실컷 비웃다가 언론에 그 내용이 낱낱이 보도돼 곤욕을 치른다. 백악관에서 의원 장례식에 보내는 추모 카드에 부통령이 서명을 잘못하자, 그 카드를 백악관에서 훔쳐내 대통령 서명을 위조하려는 내란 음모급 대책을 쓰기도 한다. 드라마 속 미국 정계는 인터넷 여론에 목을 매고 거래와 타협으로 적당히 문제를 넘기는 곳이다. ‘빕’은 2인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화장실 유머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정치 풍자와 버무려내는 대본과 배우들 간의 연기 호흡은 미국 시트콤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시즌3에서 메이어는 현직 대통령의 사임으로 첫 여성 대통령에 ‘급취임’한다. 잠깐 맛본 일인자의 권력을 시즌4에서 얼마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내년에 방영되는 시즌4에는 미드 ‘하우스’에서 닥터 하우스 역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휴 로리도 합류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5년의 저주’는 엠블랙도 비껴가지 않았다. 2009년 첫 싱글을 낸 5인조 엠블랙이 멤버 이준과 천둥의 탈퇴로 5년 만에 해체 위기에 놓였다. 둘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솔은 16일 “소속사와의 전속계약이 지난달 말 끝났다. 이준은 드라마에, 천둥은 음악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엠블랙처럼 결성 5년 만에 깨지는 그룹은 적지 않았다. 1996년 데뷔한 5인조 H.O.T.는 2001년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이 탈퇴하며 해체됐다. 1999년 데뷔한 god는 2004년 멤버 윤계상이 탈퇴한 뒤 이듬해 4인조로 앨범을 냈지만 이후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2004년 데뷔한 동방신기는 2009년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이 소속사에 소송을 제기하며 탈퇴한 후 2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이 깨질 때마다 팬들 사이에서는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씁쓸하고 속상하지만 양쪽을 모두 응원한다”는 ‘쿨’한 반응이 많았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모래시계’의 단짝 태수와 우석이 20년 만에 경쟁자로 재회했다. 1995년 모래시계에서 태수 역을 맡았던 최민수는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에, 우석 역의 박상원은 동시간대 경쟁작인 KBS ‘힐러’에 나온다. 힐러는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2012년 ‘신의’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다. 두 사람이 맡은 역할은 흐른 세월만큼 과거와 간극이 크다. 태수는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의 대표였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에서 최민수가 연기하는 문희만은 때론 불의와 야합하며 검찰총장을 꿈꾸는 야심가이다. 박상원이 연기한 우석은 정의의 편에 서려는 검사였지만, 힐러의 김문식은 권력과 야합하는 신문사 사장이다. 두 드라마의 줄거리는 태수와 우석 세대의 후일담으로 읽힌다. 문희만과 김문식 모두 한때 정의로운 사회를 꿈꿨던 청년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때가 묻는다. 이들의 과오는 드라마의 20, 30대 주인공들을 괴롭히고, 이 주인공들은 노회한 중년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성장한다. 둘의 연기 변신 경쟁도 볼거리다. 박상원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기존 이미지를 고수하면서도 속에는 칼을 감추고 음모를 꾸미는 캐릭터를 정교하게 연기한다. 최민수는 특유의 강한 이미지를 버리고 예능에서 종종 희화화됐던 독특한 말투와 행동을 연기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안혁모 캐스트연기아카데미 원장은 “모래시계의 태수 캐릭터에 갇혀 있던 최민수가 그 틀을 완전히 벗고 다면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소화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상원에 대해서는 “모래시계에서는 맛이 덜 든 건강하기만 한 연기를 했지만, 지금은 악역을 맡아 더 정교하고 안정감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 사회에서 음모론이 유행하고 음모론이란 딱지가 횡행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말 그대로 ‘음모론의 시대’다. 2008년 광우병부터 천안함 폭침, 디도스 공격, 최근의 세월호 참사까지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음모론이 제기된다. 저자인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음모론의 정의부터 유형, 정치적 효과와 여파까지 분석했다. 음모론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통치의 음모론과 저항의 음모론으로 나뉜다. 통치의 음모론은 말 그대로 기득권자의 음모론이다. 나치가 유대인 박해를 통해 그랬듯 자신의 책임을 음모 집단에 전가해 통치를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항의 음모론은 무기력하게 고통 받는 소수자, 약자들에게 그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는 일종의 대항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항의 음모론에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내재돼 있지만 동시에 “이상한 것에 우리를 몰두하게 만듦으로써 진정 필요한 실제적 탐구와 정치적 행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현대 정치에서 자주 목격되는, 서민이 우파 기득권을 지지하는 현상은 저항의 음모론이 통치를 위해 활용된 결과다. 기득권자는 서민의 적으로 이민자나 범죄자, 관료, 사회적 엘리트 등을 호명하고 자신과 서민이 함께 박해받고 있다고 선전한다. 자신은 희생자로 만들어 지지자를 끌어모으면서 상대는 악마로 만들어 제거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음모론은 이해하기 쉽고 또 흥미롭지만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서민들이 음모론에 경도될수록 가상의 적은 더욱 강력한 것이 되고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만 더 커진다. 대화와 합의가 아니라 상대를 제거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악마적 관점’으로 사회를 인식하게 된다. 그 대신 통치자와 기득권층은 쉽게 책임을 피해 간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음모론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질문을 제기한다.” 음모론 속에는 그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과 곤경이 드러난다. “그러나 음모론의 답변은 잘못된 것이다.” 음모론은 상상적 해결책일 뿐 진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음모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결론은 다소 힘이 빠진다. 분명 한국 사회에 관한 책인데도 사례들은 대부분 외국의 것이어서 ‘위험을 슬쩍 피해 갔다’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학계에서 “치명적인 위험물질”처럼 여기는 음모론을 정면으로 다뤄 유효한 분석을 내놨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북한 평양, 그리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까지 1만5000km를 자동차로 달렸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자동차 랠리를 떠난 고려인들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MBC 창사특집-카레이스키, 150년 만의 귀향’이 방송된다. 올 6월 동아일보가 북한 종단을 포함한 대장정 계획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14일 오후 11시 15분 방송되는 1부 ‘출발! 유라시아 15,000km’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중간 지점인 우즈베키스탄을 향해 달리는 첫 여정이 공개된다. 광활한 대륙을 달리는 탓에 길을 잃고, 하루 종일 달려도 민가 하나 나오지 않아 길가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 이런 여정 속에서 랠리에 참여한 고려인들은 한국인의 언어와 음식, 노래를 지키고 있는 중앙아시아 한민족 공동체와 만나 조상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1부에 이어 연속 방송되는 2부 ‘고려인은 울지 않는다’에서는 강제 이주 생존자들의 기억을 집중 조명한다. 이주 당시 10세 미만이었던 생존자들은 잘 곳도 없이 버려져 토굴을 파거나 마구간에 몸을 누여야 했던 기억, 황무지를 농지로 개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16일 오후 11시 15분 방송되는 3부 ‘남북의 벽을 넘어서’는 이들이 1992년 첫 랠리가 열린 이래 처음으로 북한을 종단하고 군사분계선을 통해 남한에 도착하는 마지막 1000km의 여정을 담았다. 현장단장 김 에르네스트 씨는 첫 랠리에 참여한 뒤로 남북 종단의 꿈을 키워온 인물. 그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 들어서는 순간 150년 세월이 응축된 한마디를 외친다. “마침내 우리가 바라던 일을 해냈습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8일 시작한 KBS 월화극 ‘힐러’의 홍보용 영상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누리꾼들은 “KBS가 인터넷에 공개한 드라마 하이라이트가 미국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오프닝 영상과 흡사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두 영상을 비교해보면 위성사진과 폐쇄회로(CC)TV 화면 위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힌 연출 방식이나 특정 장면의 구도가 비슷하다.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은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를 포함해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등 여러 작품을 참고했다. 특정 작품을 베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올 7월에는 SBS ‘괜찮아 사랑이야’의 홍보용 영상이 미국의 필름 아티스트 첼리아 롤슨 홀의 작품을 베낀 것으로 드러나 제작진이 사과하고 원작자의 허락을 뒤늦게 받았다. SBS ‘별에서 온 그대’는 황무지가 점차 현대로 바뀌는 오프닝 영상이 미드 ‘뉴 암스테르담’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누리꾼들은 “조금만 참신했다 하면 미드 베낀 것” “예전엔 일본 것 베끼더니 이제는 미국이냐”며 꼬집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2014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net Asian Music Award·MAMA)가 열린 3일 오후 홍콩 아시아월드 엑스포. 리허설이 진행 중인 아레나 바로 맞은편 홀에서 서툰 한국어 발음의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부대행사로 열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팬미팅에 참석한 해외 팬 300여 명이 4일 생일을 맞는 멤버 진을 위해 부른 것이다. 상기된 표정의 팬들은 멤버들의 손짓 하나하나에 열띤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팬미팅 현장 바로 옆에는 한국 중소기업의 패션, 미용 관련 제품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됐다. ‘빅뱅’을 좋아한다는 엘레오노라 피비 양(17)은 “MAMA는 좋아하는 케이팝 스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며 “케이팝 스타만큼 한국 화장품도 좋아하는데 오늘 내 피부색에 맞는 BB크림을 찾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전시관과 함께 한국 중소기업 56곳이 참여한 박람회도 열려 중화권 업체 100여 곳과 수출 관련 상담 약 350건을 진행했다. 홍콩 온라인 의류유통업체 잘로라사의 나탈리아 코조우크호바 영업이사는 “한국 스타일이 중화권에서 인기가 높고 앞으로도 유행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한국 기업 제품 완성도가 높다”고 말했다. 신형관 CJ E&M 엠넷본부 상무는 “패션, 미용 등 음악과 관련 있는 다양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MAMA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대행사의 열기는 이날 오후 7시 시작된 MAMA 시상식장으로 이어졌다. 1만1000여 석을 꽉 채운 팬들은 수상자가 결정될 때마다 좋아하는 가수를 큰 소리로 응원했다. 올해 MAMA는 온라인 사전투표 수가 처음으로 6000만 건을 넘어섰다. 중국과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팬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세계적인 R&B 스타 존 레전드는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 ‘엑소’ 멤버 첸과 ‘그린 라이트’ 무대를 꾸몄다. 공연 중반에는 할리우드 배우 포리스트 휘터커가 “개발도상국 여자 어린이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유네스코 캠페인에 동참하자”고 호소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어 가수 이승철이 홍콩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은 ‘그날에’ 영어 버전을 불렀다. 공연 하이라이트는 서태지와 후배 가수의 합동 무대였다. 서태지는 아이유, 그룹 ‘블락비’의 리더 지코와 함께 ‘소격동’ ‘크리스말로윈’ ‘컴백홈’ 등을 불렀다. 아이유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불러 고(故) 신해철을 추모하기도 했다.홍콩=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 드라마 판권이 중국에 고가로 팔렸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언뜻 들으면 중국 사람들은 다 한드만 보는 줄 알 정도다. 하지만 중국도 다양한 드라마를 제작해 내수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2011년 방송된 ‘후궁견환전(後宮甄(현,경)傳)’은 국내 중드 팬들이 손꼽는 수작이다. 청나라 옹정제 시대에 후궁이 된 견환(쑨리)이 입궁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에서는 ‘옹정황제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고 일본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6부작으로 줄인 편집본 방영이 추진되기도 했다. 옹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견환의 이야기 자체는 허구다. 하지만 당대 궁중생활을 철저히 고증해 사실성을 높였다. 특히 그 인물의 신분과 성격을 드러내는 수단인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는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다. 이 드라마는 총 76부를 단숨에 몰아 보게 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데 그 원천은 후궁들의 암투다. 표독스럽게 소리 지르고 무당 불러 굿 하는 한국 사극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놓고 모함하는 대신 뒤에서 계략을 꾸며 물 흐르듯 상대를 처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웃으며 건넨 선물이 알고 보면 임신을 방해하거나 태아를 해치는 물건이기 일쑤. 황손마저도 필요하다면 암살의 대상이 된다. 영리하고 지혜롭지만 순수했던 견환이 암투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백미다. 견환의 신분과 심리 상태에 따라 의상과 머리 모양, 화장이 변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입궁 직후 권력다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황제를 피하던 견환은 눈 쌓인 홍매화 정원에서 처음 황제와 우연히 마주친다. 이후 봄이 온 황궁의 살구꽃 정원에서 피리를 불고 시상을 나누며 결국 황제의 총애를 사게 된다. 한번 얻은 황제의 총애를 잃으면 곧 목숨을 잃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견환은 자신을 해치려는 상대를 차곡차곡 정리해 나간다. 견환과 맞섰다 목숨을 잃거나 폐위된 비빈을 세는 데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그 와중에 견환 역시 유산과 폐위, 출궁 등 온갖 수난을 겪는다. 제작비만 퍼부은 궁중 막장극 아니냐고? 배우들의 열연과 차분한 연출은 황제의 말 한마디에 폐위와 부귀영화 사이를 오가는 후궁들의 극적인 삶과 회한을 절절하게 담아내 모든 암투를 어느 정도 정당화한다. 드라마 말미, 마침내 거칠 것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견환이 주변에 마음 터놓을 이 하나 없는 외로움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짓는 묘한 표정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 프로는 망했어!” tvN ‘삼시세끼’ 첫 회에서 이서진은 이렇게 투덜댔다. 삼시세끼는 이서진과 2PM의 택연이 강원 정선의 두메산골 시골집에서 하루 세 끼를 직접 해 먹는 모습을 담은 관찰 예능프로그램. 이 심심한 프로가 망하기는커녕 7회가 지난 지금 시청률이 8% 안팎이다. ‘1박2일’, ‘꽃보다…’ 시리즈, 그리고 삼시세끼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린 나영석 PD는 삼시세끼에 대해 “그림도 단조롭고, 출연진도 2명뿐이어서 제작진도 첫 촬영 때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새로운 걸 하려면 위험 요소를 안고 가야 한다. 위험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뻔하다는 얘기”라고 했다. “여행 다음엔 농촌이라고 생각했어요.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잔하는 것. 일에 지칠 때 늘 떠올리는 그림이죠. 마침 귀농이나 텃밭이 유행하고 있어 삼시세끼 같은 프로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삼시세끼는 ‘편집 집약적’인 프로다. 내용이 밋밋한 만큼 편집으로 ‘양념’을 친다. 출연진이 요리하는 모습, 작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초고속 촬영해 넣고 자막에도 공을 들인다. 나 PD는 “열흘에 한 번 2박 3일 동안 찍고, 촬영이 없는 날 편집을 계속 한다. 편집 전 파일은 의미 없는 그림의 연속이다. 계속 돌려 보며 일정한 패턴, 이야기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서진과는 ‘꽃보다 할배’ 때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나 PD는 “좋아하는 게 화면에서 티가 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제작진 모두에게 고마운 출연자”라고 했다. “PD들은 자신이 만든 환경에서 피사체가 본인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단계를 헤쳐 나가길 바라죠. 어떤 상황에서든 대중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은 티를 내는 이서진 씨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아주 좋은 출연자죠.” 나 PD의 프로는 ‘캐릭터 예능’이다. 출연진의 특징을 살려 ‘숲 속의 친구’(꽃할배의 이순재) ‘구야형’(신구) ‘옥빙구’(삼시세끼의 택연) 등 캐릭터를 곧잘 만들어낸다. 삼시세끼에서는 강아지 밍키, 염소 잭슨, 고양이 멀랜다 등 동물에게까지 이름을 지어줬다. “자세히 보는 수밖에 없어요. 누굴 관찰하는 걸 계속하다 보니 버릇이 됐죠. 사람을 궁금해하는 게 직업병이에요. 상대의 과거나 인생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질문도 계속하고요.” 1년 사계절을 담는 삼시세끼는 방영 중인 가을편 8회만 할 예정이었지만 11부로 늘리고 이어 겨울편도 찍는다. 나 PD는 요즘 내년 방송될 ‘꽃보다 할배’ 새 시리즈의 기획회의까지 병행하고 있다. 나 PD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생님들이 싫어하시지 않는 한 1년에 한 번씩은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행, 농촌, 다음 소재는 뭘까. “아직 모르겠어요.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서 TV를 트는 분들이 삼시세끼의 정서와 맞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보다는 시골의 한적한 느낌,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그런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면 음식이든 농사든 뭐든 상관없습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 프로는 망했어!"tvN '삼시세끼' 첫 회에서 이서진은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출연진도, '복불복 게임'도 없는 밋밋한 예능 프로를 찍다 터진 걱정 섞인 불만이다. 삼시세끼에서 이서진과 그룹 2PM의 택연은 강원 정선의 두메산골 시골집에서 하루에 세 끼를 직접 해 먹는다. 이 밋밋한 콘셉트의 예능 프로는 6주가 지난 지금 8%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1박 2일',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린 나영석 PD를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만났다. -첫 촬영부터 '망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처음엔 이서진 씨도 제작진도 '망한 것 같다'고 의견일치를 봤다. 집에서 밥 해먹는 것만 찍으니까 그림도 단조롭고, 출연진도 2명뿐이고…. 위험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느리게 흘러가는, 정적이면서 깊이가 있는 예능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원래 새로운 걸 하려면 위험요소를 안고 가야 한다. 위험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뻔하다는 얘기니까."-이 '위험한 기획'은 어떻게 나온 건가."원래 저나 함께 프로를 하는 이우정 작가나 시골을 무척 좋아한다. 늘 여행 다음엔 농촌이라고 생각했다. 처마 밑에 빗물이 떨어지는데 툇마루에 누워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파전을 굽는 것. 일에 지칠 때면 늘 떠올리는 그림이다. 그러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프로로 옮기는 거다. 마침 요즘 귀농이나 텃밭이 유행이기도 하고 슬슬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편집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얼마나 걸리나."삼시세끼는 '편집 집약적'인 프로다. 열흘에 한번 2박 3일 동안 촬영하고 편집은 촬영이 없는 날 계속 한다. 처음에 편집 전 파일 보면 말 그대로 욕 나온다.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그림의 연속이다. 그걸 계속 돌려보며 일정한 패턴, 이야기를 찾는다."-'꽃보다' 시리즈에서는 헬리캠을 사용했는데 '삼시세끼'는 초고속 촬영이 많다."'꽃보다'시리즈가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로 훑고 지나간다면 삼시세끼는 깊이 있게,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디테일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다. 벌이 날아가는 모습이나 작물이 자라나는 모습처럼 천천히 가만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초고속 촬영을 했다."-인기에는 출연진의 힘도 크다. 이서진과는 '꽃보다 할배' 때부터 연달아 함께 하고 있다."이서진 씨가 사실 '싸가지'는 없다. 그런데 어른들께 굉장히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다. 연예인 중에 그런 사람 드물다. '꽃할배' 당시 출연진의 매니저들이 공통적으로 함께 해도 될만한 후배로 이서진 씨를 꼽았다."-이서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 그게 화면에서 티가 나면 안 되는데…. 제작진 모두에게 고마운 출연자다. PD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피사체들이 본인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단계를 해쳐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멋있거나 예쁘거나 웃기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서진 씨는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하고 티를 낸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아주 좋다. 연예인이지만 일반인처럼 행동을 하니까."-출연진 섭외 기준이 있나. "'급'을 보고 선택하지 않는다. 연예인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대중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 안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택연 씨도 그런 편이다. 섭외 전에 조사를 했는데 평소에 옷을 못 입는 것으로 유명하고, 또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 가서 일반인들이랑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들 인터넷에 있더라. 일을 할 땐 회사 지시대로 하더라도 평소에는 나름대로의 자율성이 있는 친구라고 판단했다."-출연자의 '캐릭터'를 살리는데 탁월하다. 이번엔 동물에게까지 캐릭터를 부여했다."자세히 보는 수밖에 없다. 요즘 예능은 대본 없이 먼저 찍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뽑아낸다. 누굴 관찰하는 게 일이다. 계속 하다보니 버릇이 됐다. 이제는 한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된다. 그러면서 사람을 궁금해 하는 일종의 직업병도 생겼다. 상대방 과거나 인생 이야기 듣는 걸 즐기고 질문도 계속 한다."-나 PD 본인도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특히 주부 팬이 많다."식당 아주머니들이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해주시곤 한다. 그럴 때 제일 뿌듯하다. CJ E&M에 몸을 담고 있지만 KBS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내가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대중은 서민이라고 할만한, 40, 50대 가정주부나 아버지들이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지쳐서 TV를 트는 분들이 삼시세끼의 정서와 맞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삼시세끼는 시작부터 1년 하겠다고 했다. 정말 1년 가는 건가."1년 프로젝트라고 1년 내내 방송하는 건 아니고 가을편, 겨울편 식으로 4계절을 담겠다는 의미다. 원래 겨울에는 쉬려고 했는데 찍다 보니 겨울 나름의 감성이 있을 것 같아 짧게라도 찍으려고 한다. 농한기고 텃밭 식물이 다 얼게 되니 한계는 있겠지만 얼음 언 동치미를 꺼내 먹는다던가, 눈을 뚫고 계곡에서 뭘 길어온다던가 그런 그림은 가능할 것 같다."-'꽃보다' 시리즈는 어떻게 되나."삼시세끼를 찍으면서 내년에 찍을 '꽃보다' 시리즈 기획회의를 함께하고 있다. 특히 꽃보다 할배는 제작진과 출연하는 선생님들 모두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생님들이 싫어하시지 않는 한 1년에 한번씩은 여행을 떠나자는 거다. 시청자들에게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여행 다음에 농사를 선택했다. 다음 소재도 생각하고 있나."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주제는 늘 비슷할 거다. 어떤 PD든 자기만의 정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계속 가져가게 된다.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 보다는 시골의 한적한 느낌, 화려함보다는 털털함과 소박함, 그런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면 음식이든 농사든 뭐든 상관하지 않고 택할 거다."-비슷한 정서를 계속해서 가져가는데 대한 두려움은 없나."두려움은 있다. 20대 때는 내가 청춘이고 내가 시청자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까. 인터넷도 남들보다 못하는 것 같고….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일이라는 건 팀과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못하는 걸 캐치할 수 있는 좋은 동료·후배와 일하면 된다. 혼자 다 할 생각만 접으면 방법은 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먹거리 X파일’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모큐드라마 싸인’…. 개국 3주년을 맞은 채널A에는 장수 프로그램이 많다. 출범 당시의 새로운 시도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다. ‘특별취재 탈북’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채널A는 1일 개국 3주년을 맞아 종합편성채널 최초로 영국 BBC와 공동 기획 및 제작한 다큐 ‘지구의 경고, 와일드 웨더’를 내놓는다. 1일 밤 12시 10분 처음 방송되는 ‘와일드 웨더’는 4부작 자연 다큐다. 지난해 12월 양국에서 ‘빅 웨더’라는 제목으로 프롤로그가 방영됐고 1일 ‘바람’, 8일 ‘물’, 15일 ‘열’ 편이 방송된다. 미국, 영국, 호주 등 8개국에서 1년간 약 30억 원을 들여 촬영했다. BBC 자동차 쇼 ‘톱 기어’의 진행자로 유명한 리처드 해먼드가 MC를 맡아 직접 모래사막에 뛰어들고 시속 100km가 넘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바람’ 편에서 제작진은 일본 연구진의 도움으로 불타는 회오리 기둥을 직접 만들어내고, 미국 연구팀과 대형 장갑차를 몰고 토네이도를 쫓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토네이도를 재현할 수 있는 캐나다 바람공학에너지환경연구소(WindEE·윈디) 내부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이만갑’과 ‘…탈북’ ‘신년특집 신혁이’는 그동안 방송의 관심 밖이었던 탈북자 문제를 새롭게 조명했다. ‘…탈북’은 종편 최초로 올해 4월 제47회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 부문 대상을 받았다. 11일 열리는 제19회 아시아TV어워즈에서도 ‘…탈북’과 ‘…신혁이’는 베스트 다큐와 베스트 커런트 어페어 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이만갑’ 출연진은 방송 밖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영국 의회 등 해외에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증언해 온 박연미 씨(21)는 BBC가 뽑은 ‘올해의 세계 100대 여성’에 선정됐다. 김명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그동안 지상파의 북한 관련 정보는 ‘통일전망대’식의 제한적이고 딱딱한 정보가 전부였다. 북한 정보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을 종편 채널이 해소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모큐멘터리(허구의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재구성한 다큐) 장르를 개척한 ‘모큐드라마 싸인’은 4% 안팎의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고 타 채널에서 유사 프로도 등장했다. 김진 채널A 제작4팀 PD는 “기존 시사고발 프로는 사례자가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허구를 가미한 것”이라며 “법과 제도의 허점으로 생긴 복지 사각지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개국 3주년을 맞아 새 예능 및 교양 프로도 선보인다. 1일 오후 11시 첫 회가 방송되는 ‘여변호사가 말한다-여자’는 신은숙, 임방글, 손정혜, 양지민 변호사 등 여성 변호사 4인방이 출연해 각종 사건을 드라마로 재구성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만의 건강 비결을 가진 일반인이 출연하는 ‘나는 몸신이다’, 희대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실화극장, 그날’도 이달 첫 전파를 탄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지상파 드라마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제작비의 경우 천정부지로 뛰는 배우 출연료와 작가 원고료의 상한선을 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2007년 드라마 제작사들이 출연료 상한선을 회당 1500만 원으로 정한 적이 있지만 방송사 간 경쟁으로 금세 무너졌다. 미국의 경우 출연료를 매출의 일정 비율로 정해 러닝개런티 식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한 수익이나 제작비 내용조차 공개되지 않는 국내 드라마 업계의 비밀주의로는 이 방식을 활용할 수 없다. 한 방송 관계자는 “출연료, 작가료, 매출과 순수익 등을 공개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 제작비 공개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남발되는 간접광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현재 간접광고의 내용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간접광고가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물리적 비중(상품의 크기와 방송 분량 등)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중앙전파관리소가 심의하는 등 규제 기관조차 통일되지 않아 혼선을 부추긴다. 협찬과 간접광고의 구분이 모호해 둘을 묶어 판매하는 ‘꼼수’가 가능한 것도 문제다. 한 드라마 제작사 프로듀서는 “간접광고 심의 기준이 협찬과 뒤섞여 적용되다 보니 심의 결과가 그때그때 다른 경우가 많아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은 간접광고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특정 제품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전개하거나 제품을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하기도 한다. 2010년 시트콤 ‘모던패밀리’의 한 에피소드는 출시를 앞둔 아이패드 신제품을 두고 가족들이 다툼을 벌이는 내용을 다뤘다. 그 대신 사전 제작으로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도록 ‘품질관리’를 한다. 일본과 영국은 간접광고를 허용하되 BBC와 NHK 같은 공영방송에서는 엄격히 규제한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 드라마 업계는 2000년대 초반에는 정보기술(IT)업계의 투자, 그 후로는 일본 한류, 이제는 중국 자본에 기대고 있다. 한 마디로 거품에 기반을 둔 시장”이라며 “이제는 좋은 콘텐츠로 돈을 벌어 내실을 다질 때”라고 지적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북한 예술 공연 전문 단체인 백두한라예술단의 김현정 씨(35). 지난달 16일 지방 공연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는 휴대전화 소리에 잠을 깼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작가인데요, 동생을 안다는 분이 저희 프로그램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요. 직접 통화해 보시겠어요?” 제작진이 불러준 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눌렀다. “언니, 나 경이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동생이 맞구나.’ 15년 전 중국에서 헤어진 동생을 찾는다는 현정 씨의 호소가 지난달 12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서 방송된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현정 씨는 1999년 어머니 김진주 씨(60), 동생 경이(가명·33) 씨와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국경을 넘었다. 당시 18세였던 동생은 현정 씨와 어머니 김 씨가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현정 씨와 어머니는 “2006년 한국에 들어온 뒤로도 오로지 경이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현정 씨는 예술단 공연을 다니면서 탈북자만 만나면 다짜고짜 붙잡고 물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혹시 내 동생 알아요?” 현정 씨는 “방송 출연이 부담스러워 ‘이만갑’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엄마가 ‘거기 나가면 경이를 찾을지도 모르는데’ 하시기에 출연했다”고 했다. 오로지 동생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출연한 이 방송을 경이 씨의 지인이 봤고, 마침내 연락이 닿은 것이다. 통화한 지 약 3주 만인 이달 7일 모녀는 중국 톈진을 방문해 경이 씨를 만났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만난 경이 씨는 흰 얼굴에 동그란 눈까지 조금 통통해진 것 외에는 15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 언니, 왜 나를 버리고 갔어!” 셋은 그대로 얼싸안은 채 한참 동안 눈물만 흘렸다. 현정 씨는 동생을 만나고서야 15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브로커가 동생을 시골 농가에 1만5000위안(약 270만 원)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브로커는 “네 엄마와 언니가 널 돈 받고 팔았다”고 했다. 경이 씨가 팔려간 곳은 도심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외딴 마을로 이웃이 20가구도 되지 않았다. 경이 씨는 팔려간 집에서 만난 남편과 아이 둘을 낳고 살았다. “중국에 간 첫날 한침대에서 잤어요. 경이가 이젠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어요. 서툰 발음으로 ‘엄마, 이젠 헤어지지 말자. 영원히 같이 살자’고 해요. 또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죠.”(엄마 김 씨) 모녀는 경이 씨를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탈북자 신분인 경이 씨와 함께 한국에서 살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대부분 저희처럼 이산가족이에요. 저희 역시 ‘이만갑’이 아니었다면 15년이 아니라 35년이 걸려도 동생을 못 찾았을 거예요.” 15년을 기다린 세 모녀의 재회는 30일 오후 11시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볼 수 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판 노다메, 방 넓다!” KBS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고 원작 만화의 작가인 니노미야 도모코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원작에서 남녀 주인공은 학생답게 간소한 방에서 산다. 하지만 ‘내일도…’에서 주원과 심은경이 사는 방은 전문직 종사자의 널찍한 오피스텔 같다. 학생 혼자 사는 집에 대형 냉장고가 두 대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프랑스 요리를 즐겨 만들지만, 주원은 참치 캔으로 볶음밥을 해 먹는다. 심은경은 “(참치 캔을 내밀며) 오라방이 좋아하는 카레 참치!” 한다. 참치 광고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린다. 한국판 노다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에는 원작의 설정을 무시한 간접광고가 일정 몫을 했다. 프로그램에서 특정 상품을 보여주는 간접광고가 2010년 합법화된 후 지상파 간접광고 시장은 5년간 10배로 성장했다. 주문형비디오(VOD)와 인터넷TV(IPTV) 등을 통해 프로그램 광고를 건너뛰는 사람들이 늘면서 간접광고는 제작비 충당을 위한 필수 요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뜬금없이 끼어들어 몰입을 방해하는 간접광고는 시청자들을 등 돌리게 한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2014년)에서는 조인성이 광고모델로 활동하는 공기청정기가 계속 나와 빈축을 샀다. 조인성이 갓 이사 온 방에서 공기청정기를 켜자마자 옆에 있던 성동일은 광고문구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주인 없는 방에서 곰팡이 냄새도 안 나고. 아, 쾌적하다.” MBC ‘트라이앵글’(2014년)에서는 임시완이 물을 틀어놓은 세면대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뒤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주워 들어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스마트폰의 최신 방수 기능을 광고한 것이다. 협찬사의 제품을 드라마에 교묘하게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MBC ‘모두 다 김치’(2014년)는 ‘김치 따귀’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장모가 사위의 따귀를 김치로 때리는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우리뜰 김치’는 글씨체나 포장지의 디자인이 협찬사 제품과 비슷하다. 협찬은 본프로그램에서 특정 상표를 노출할 수 없기 때문에 비슷한 가짜 상표를 등장시키는 ‘꼼수’를 쓴 것이다. 최근에는 협찬과 간접광고를 묶어서 판매한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2014년)에서 미용제품 업체 사장인 주인공 장혁은 샴푸 광고를 찍기 싫어하는 여배우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3대째 내려오는 장인의 손길을 상한 머릿결 모근 끝까지”라고 외쳤다. 협찬사 제품이 소품으로 등장한 이 장면은 5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KBS ‘빅’(2012년)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간접광고 7000만 원, 협찬 6000만 원, 간접광고로 상품 노출 5회, 협찬에 따른 노출 5회’라는 특정 업체의 계약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보고서 ‘간접광고 도입 등에 따른 협찬제도의 효과적 규제방안 연구’(2013년)에 따르면 방송 횟수가 많은 주말드라마는 7억∼8억 원, 미니시리즈는 5억 원까지 제작비를 지원받는다. 간접광고를 전제로 한 액수다. 보고서는 “협찬 단가를 높이려고 제작사가 지나친 경쟁을 유도하면서 간접광고 비용까지 이중으로 지불한 광고주가 더 강한 수위의 노출을 요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간접광고는 해외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2012년 전 세계 간접광고 비용은 전년 대비 11.7% 늘어난 82억5000만 달러(약 9조1000억 원)였고, 2016년에는 이 금액의 두 배 가까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사전제작이 정착된 해외와 달리 한국 특유의 ‘쪽대본’ 시스템에서는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광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지면서 많은 광고주들이 시청률 추이를 본 뒤 계약을 맺는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본대본을 제때 쓰기도 힘든데 갑자기 계약된 광고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는 무리”라고 전했다. 방송사가 따온 간접광고를 넣기 위해 현장에서 급히 대본을 고치거나 마지막 한두 회에 광고를 몰아서 내보내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간접광고를 잘 소화하는 연출자와 작가가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라며 “쪽대본으로 드라마를 찍고 시청률에 따라 광고 청약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제작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자연스러운 간접광고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지상파 드라마가 위기다. 진부하거나 막장이거나 둘 중 하나인 식상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시청률이 잘 나와도 배우와 작가들의 몸값이 치솟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정체 상태인 국내 드라마 시장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했던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 전망도 어둡다. 이대로라면 드라마 시장이 장기 불황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인 한류 상품인 드라마는 왜 실적 부진을 겪게 됐을까. 불황의 문턱에 선 드라마 시장을 3회에 걸쳐 진단했다.》 “드라마 편성 비중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드라마 한 편 잘 띄워 1년을 먹고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상파 국장급 관계자의 하소연은 격세지감이 들게 한다.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는 황금시간대인 평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미니시리즈에서 두드러진다. 높은 시청률과 참신한 소재로 한류 열풍을 견인했던 장르다. 그러나 올해 1∼10월 이 시간대 지상파 3사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 합계는 31.3%로 2010년(48.8%)보다 17.5%포인트나 떨어졌다. 채널별로는 KBS가 2010년 18.2%에서 올해 7.7%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닐슨코리아 자료) 짱짱한 원작이나 스타 배우로도 흥행을 보장할 수 없다. 일본의 인기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가 원작인 KBS ‘내일도 칸타빌레’는 시청률이 5∼6%대다. SBS ‘비밀의 문’은 ‘불멸의 이순신’의 윤선주 작가가 쓰고 한석규, 이제훈이 출연하지만 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히트시켰던 배우 이종석과 박혜련 작가의 SBS ‘피노키오’ 역시 10%를 간신히 넘겼다. 그나마 볼만하다는 MBC ‘오만과 편견’도 11%대를 못 넘기고 있다. 시청률 하락은 광고 판매 부진으로 이어진다. 올해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지난해 드라마 회당 평균 제작비는 △KBS 3억6700만 원 △MBC 4억2200만 원 △SBS 3억6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2012, 2013년 드라마 회당 평균 광고 판매 수익은 약 3억2000만 원이었다. 회당 수천만 원의 적자가 나는 셈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미니시리즈의 프로그램 광고가 예년에 비해 30∼40%밖에 유치가 안 된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한류 배우와 스타 작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송승헌과 장동건은 출연료가 회당 8000만∼1억 원 이상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박유천은 MBC ‘보고 싶다’(2013년)에서 1억5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주가가 높은 이민호의 몸값도 회당 1억 원에서 시작한다. 한류 열풍이 드라마 시장을 키우는 한편 제작비 상승이라는 역효과도 내고 있는 것이다. 해외 시장으로 진출한 톱스타들의 자리를 메우는 주연급 배우들의 몸값도 덩달아 뛰었다. KBS ‘굿닥터’(2013년)에서 회당 약 2000만 원을 받았던 주원은 KBS ‘내일도…’에선 6000만 원을, SBS ‘미녀의 탄생’에 출연 중인 주상욱은 전작에 비해 2배가량 오른 약 3000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년)과 SBS ‘별에서 온 그대’(2014년)를 잇달아 히트시킨 박지은 작가는 회당 원고료가 4500만 원까지 뛰었고, 차기작은 회당 1억 원까지 부르는 곳이 있다. 시청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스타 배우와 작가에만 의존하는 지상파 드라마는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시청률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방송사들은 더욱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신인을 기용한 새로운 기획은 먹히지 않고, 엇비슷한 기획에 스타 한두 명 꽂아서 제작하는 드라마만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타 작가와 연출자를 포함해 제작 인력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드라마 업계의 ‘인력 공동화 현상’까지 우려되고 있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중국이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통째로 수입해가고 있지만 국내의 신인 작가, 연출자 육성 시스템은 무너진 상태”라며 “이러다간 예전 외화를 수입해 방송하던 시절처럼 우리가 중국 드라마를 수입해 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뚱한 표정, 구부정한 자세, 무기력한 태도. 일본 미국 영국 드라마가 그려내는 요즘 청춘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다 다르다. 일본 드라마 속 청춘은 별다른 욕구도, 의지도 없이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른바 ‘초식세대’ 혹은 ‘사토리(깨달음, 득도) 세대’다. 초식세대란 연애와 일 모두에 의욕이 없이 초식동물처럼 연약한 세대를 가리키는 단어로 주로 남자를 가리킨다. 2010년 일본에서 방송된 드라마 ‘프리타, 집을 사다’는 “내 인생, 언제나 그럭저럭이었다”는 주인공 세이지(니노미야 가즈나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미생’의 장그래와 달리 세이지는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제 발로 걸어 나오고 프리타(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사람)로 살아간다. 니노미야는 특유의 뚱한 표정에 왜소한 체격으로 초식세대의 모습을 구현해냈다. 미국의 청춘 역시 취업 문제로 힘들긴 마찬가지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2012년 기준 18∼31세 미국 젊은이의 36%가 부모와 함께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트윅스터 세대’라는 신조어도 유행했다. ‘이도 저도 아닌’을 뜻하는 영어 단어 ‘betwixt’에서 나온 조어로 청소년기는 벗어났지만 자립한 성인도 아닌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내년 시즌4 방영을 앞둔 드라마 ‘걸스’의 주인공 한나(레나 더넘)는 이런 미국 청춘의 표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한 채 부모의 지원으로 살던 한나는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약물 중독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 줄 아느냐”며 큰소리친다. 어떻게든 자립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책임감과 열의가 부족하니 해고당하기 일쑤다. 영국의 청춘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일본의 청춘, 부모에게 기댈 여지라도 있는 미국의 청춘보다 더 암담한 ‘루저’들이다. 2007년 처음 방영돼 시즌7까지 나온 ‘스킨스’나 올해 시즌2가 방영된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영국 청춘들은 술과 담배, 약물에 절어 사는 것은 기본이고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부모들 역시 갑자기 가출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등 만만찮은 ‘문제아’로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절망을 이들 ‘루저’ 청춘이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킨스 시즌7은 시즌 초기에 등장했던 인물의 후일담을 그렸는데, 20대 초반을 갓 넘긴 이들의 직업은 금융회사 접수원, 웨이트리스 등이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