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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하게 손이 떨렸다. 침도 자주 삼켰다. 이런 긴장감은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인지…. 심사위원 질문에 답하던 중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흘렀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청춘 이야기가 아니다. 6일 전국에서 열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선발에 지원한 우리 할머니들(만 56∼70세)의 모습이다. 이야기 할머니는 세대 간 소통과 인성교육을 위해 ‘어르신 무릎교육’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취지로 2009년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이다. 서류심사와 면접, 교육을 통과한 할머니들은 유아교육 기관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할머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경쟁률이 6.6 대 1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700명 선발에 무려 3975명이 몰렸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6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서울여대 면접장을 찾았다. ○ 열정적인 그녀들 이날 오후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할머니 60여 명은 긴장한 듯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이야기할머니사업단’ 면접 진행 담당자가 “합격은 조상, 하나님, 부처님 덕”이라며 농담해도 웃는 이가 없었다. 분홍빛 한복부터 구치 백, 이탈리아 패션모자까지 한껏 멋을 낸 할머니들은 면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호명되자 얼굴이 굳었다. 총 7개 면접장마다 심사위원(2명)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할머니들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보고 있었다. 심사위원 손에는 △적합성 △인성교육자 자세 △활동 의지 △언어 기본 능력 등 심사 항목이 적힌 면접심사표가 놓였다. 제2면접장에 들어선 황옥순(65) 윤기남(63) 조영진 씨(58)가 지원 동기를 밝혔다. “정년퇴직 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정말 그립습니다. 쿨럭. 양해를 구하겠는데 제가 감기가 걸렸어요.” 제1면접장에서는 한 할머니가 “아이들 인성 교육을 위해 지원했다”고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려 면접이 중단됐다. 잠시 후 그는 “사실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 살다 보니 손자, 손녀 보기가 어려워 외로움이 컸다”고 지원 동기를 털어놨다. 한 심사위원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장기가 있느냐”고 묻자 할머니들은 흉내 내기부터 동화 구연, 연주 등 자신들의 특기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할머니 호칭을 쓰기가 미안하다”는 심사위원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오늘날 노년층의 자화상 면접을 본 할머니들은 평소 육아를 많이 해봤다고 강조하는 ‘현장파’와 교사, 교수 등 경력으로 교육 관련 이론을 줄줄 이야기하는 ‘이론파’로 나뉘었다. 할머니들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한 할머니가 “동화구연 학원을 다녔다”고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는 “난 마술로 눈길을 끌겠다”고 응수했다. 이야기 할머니에는 재수, 삼수, 심지어 5수한 할머니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현장 교사 등과의 화합을 위해 인품이 합격의 중요한 기준이고, 매월 동화 한 편(A4용지 3장)을 외워야 하므로 건강과 암기력도 필수다. 면접을 끝낸 할머니들은 열정 이면의 인간적 욕구와 어려운 경제 현실도 호소했다. 김모 씨(60)는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 손녀들과 ‘자소서’ 작성법, 면접 의상 등을 이야기하면서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봉사를 통해 자아를 찾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 씨(62)는 “몇 년 사이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다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박모 씨(64)는 “주 2, 3회(매회 1시간 20분) 활동을 하면 한 번에 3만5000원이 지급된다니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TV를 보다 보니 ‘차셰프’ 좀 따라해 볼까’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회사원 박진석 씨(40)는 최근 서점에서 요리책 3권을 구입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배우 차승원이 제육볶음부터 각종 무침, 오렌지잼까지 척척 만드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함께 TV를 보던 아이들도 ‘아빠는 왜 요리를 못 하냐’고 핀잔을 줬다”며 “학원을 다니긴 어려워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식사용 요리책을 샀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자의반타의반 ‘제2의 차승원’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점가 베스트셀러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맛집 소개나 어려운 요리 교습을 하던 기존 요리프로그램과 달리 간단한 주변 재료를 활용하는 ‘쿡방(Cook+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집밥’을 잘 만드는 방법을 다룬 요리책이 인기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와 함께 3월 셋째와 넷째 주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를 보면 ‘반찬이 필요 없는 밥 요리’(1위) ‘병 속에 담긴 사계절’(2위) ‘진짜 기본 요리책’(4위) ‘메이스테이블’(5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초보자나 자취생이 손쉽게 한 끼 먹을 밥을 만들거나 잼, 소스, 젓갈 등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먹을거리 요리법을 알려주는 책들이다. 아예 집밥이란 키워드를 제목에 넣은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도 5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은 물론이고 올해 초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던 ‘한비네 집 맛있는 이야기’ ‘아기가 잘 먹는 이유식은 따로 있다’ ‘2∼11세 아이가 있는 집에 딱 좋은 가족밥상’ 등은 순위가 떨어졌다. 교보문고도 마찬가지. 3월 한 달간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는 ‘진짜 기본 요리책’ ‘반찬이 필요 없는 밥 요리’ ‘병 속에 담긴 사계절’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가 1∼4위를 차지했다. 예스24 김수연 가정살림 MD는 “요리책은 수년째 이유식과 아이용 먹을거리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며 “하지만 ‘삼시세끼’ ‘오늘 뭐 먹지’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쿡방 프로들이 인기를 끌면서 집밥 조리법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유식과 아이용 먹을거리 책들의 주 독자층이 30대인 반면 집밥용 책들은 40대가 많다. 실제 동아일보가 예스24와 함께 2010년부터 2015년(1분기) 사이 요리책 독자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30대 비중은 51.8%(2010년)에서 올해 1분기 48.5%로 하락한 반면 40대는 같은 기간 22.8%에서 32.2%로 10%포인트 가깝게 늘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TV를 보다보니 ‘차셰프’ 좀 따라해 볼까‘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회사원 박진석 씨(40)는 최근 서점에서 요리책 3권을 구입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요리를 한번도 해본 적 없지만 배우 차승원이 제육볶음부터 각종 무침. 오렌지 잼까지 척척 만드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함께 TV를 보던 아이들도 ’아빠는 왜 요리를 못 하냐‘고 핀잔을 줬다”며 “학원을 다니긴 어려워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식사용 요리책을 샀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자의반타의반 ’제2의 차승원‘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점가 베스트셀러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맛집 소개나 어려운 요리 교습을 하던 기존 요리프로그램과 달리 간단한 주변 재료를 활용하는 ’쿡방(Cook+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집밥‘을 잘 만드는 방법을 다룬 요리책이 인기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와 함께 3월 셋째와 넷째 주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를 보면 ’반찬이 필요 없는 밥 요리‘(1위) ’병 속에 담긴 사계절‘(2위) ’진짜 기본 요리책‘(4위) ’메이스테이블‘(5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초보자나 자취생이 손쉽게 한 끼 먹을 밥을 만들거나 잼, 소스, 젓갈 등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먹을거리 요리법을 알려주는 책들이다. 아예 집밥이란 키워드를 제목에 넣은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도 5위 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은 물론 올해 초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던 ’한비네 집 맛있는 이야기‘ ’아기가 잘 먹는 이유식은 따로 있다‘ ’2~11세 아이가 있는 집에 딱 좋은 가족밥상‘ 등은 순위가 떨어졌다. 교보문고도 마찬가지. 3월 한 달 간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는 ’진짜 기본 요리책‘ ’반찬이 필요 없는 밥 요리‘ ’병 속에 담긴 사계절‘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가 1~4위를 차지했다. 예스24 김수연 가정살림 MD는 “요리책은 수년째 이유식과 아이용 먹을거리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며 “하지만 ’삼시세끼‘ ’오늘은 뭐 먹지‘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쿡방 프로들이 인기를 끌면서 집밥 조리법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유식과 아이용 먹을거리 책들의 주 독자층이 30대인 반면 집밥용 책들은 40대가 많다. 실제 동아일보가 예스24와 함께 2010년부터 2015년(1분기) 사이 요리책 독자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30대 비중은 51.8%(2010년)에서 올해 1분기 48.5%로 하락한 반면 40대는 같은 기간 22.8%에서 32.2%로 10%포인트 가깝게 늘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한 한옥. 지난달 4일 문을 연 건명원(建明苑·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 수업이 열리는 곳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회장 후원으로 설립된 건명원은 원장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를 비롯해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등 8명이 인문학, 철학, 과학, 예술을 융·복합적으로 가르친다. 올해 초 1기 수강생 30명 모집에 지원자격 제한(만 19∼29세)에도 불구하고 900여 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연말까지 매주 한 번씩 수업이 진행되며 전 과정이 무료다. 기자는 이날 ‘건명원 일일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체험했다. 》○ 강의 콘텐츠보다 강의 방향성이 중요 강의실에는 양복 차림에 ‘도덕경’을 든 남성과 스타벅스 커피, 맥북을 책상에 둔 스키니진 차림의 젊은 여성 등 다양한 학생이 모여 있었다. 이날 수업의 전체 주제는 ‘사유와 정신’. 1교시 강사인 최진석 교수가 컵을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걸 컵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은 ‘컵’이라고 판단하고 시선을 거둡니다. 반면 시선을 끝까지 붙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을 봐요. 함민복 시인의 시를 보면 섬을 ‘물 울타리를 둘렀다’고 표현하죠. 남들이 그냥 섬이라고 판단할 때 그는 집요한 관찰과 사색으로 ‘물 울타리’라는 새로움을 창조한 겁니다.” 그는 탈레스, 공자, 노자 등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독립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가 1시간을 넘어가자 최 교수의 말을 불쑥 자르고 질문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오후 8시부터는 아예 책상을 마주보게 배치한 후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독립적으로 터득하면 객관적인 것과 거리가 멀 텐데 어떻게 검증하나요” “건명원도 기존 것에 대한 교육이 아닌가요.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죠” 등과 같은 공격적 질문이 이어졌다. 2교시가 시작된 오후 8시 반. 김대식 교수가 등장해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름답죠? 그런데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전 인류가 모두 죽는다면? 피아노 선율은 공기의 압축된 파장에 불과합니다. 파장에 의미를 부여해줄 호모사피엔스가 없다면 음악도 없죠. 뇌 역시 고깃덩어리인데 어떻게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는 골상학, 뇌신경, 뇌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수업은 오후 10시 반까지 이어졌다.○ 30 대 1 뚫은 ‘고(高)스펙’ 학생들 쉬는 시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절반가량은 대학생. 나머지는 대기업 회사원, 군인, PD 등 다양했다. 건명원은 “스펙은 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서울대 졸업생 등 전반적으로 ‘고스펙’ 보유자가 많았다. 건명원 ‘입학’ 목적은 다 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정윤 씨(29·여)는 “개인사업을 위한 통찰력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업가 강신우 씨(29)는 “도시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배양할 수 있을지 근원적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고 밝혔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오승목 씨(28)는 “동료가 사회 불공평을 ‘가속도 법칙’인 F(힘)=m(질량)a(가속도)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자극이 됐다”고 했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는 건명원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론을 내긴 이르지만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들이 이미 만든 것을 주입받는 식이 아니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 교수는 “건명원의 강의는 사유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데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는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또 한 번의 ‘대멸종’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영국에서 과학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인 캐스파 헨더슨 씨(52)의 말이다. BBC 환경프로그램 PD, ‘파이낸셜타임스’ ‘뉴사이언티스트’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전 운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의 저서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행나무·사진)이 최근 국내에 발간됐다. 책은 외계인같이 생긴 분홍빛 도롱뇽을 비롯해 우주여행까지 한 곰벌레 등 ‘듣도 보도’ 못한 진기한 동물을 다뤘다. 5일 헨더슨 씨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신기한 동물을 연구한 계기부터 물었다. “할아버지가 영국 남부 햄프셔의 작은 마을에 시골 정원을 갖고 있어요. 어릴 적 정원 뒤 숲을 탐험했죠. 이후 2000년 인도네시아에서 자이언트 만타 가오리, 업사이드다운 해파리 등 너무도 신기한 생물을 본 순간 깨달음이 있었죠. 현실 속 생물들은 신화에 나오는 상상체보다 더 경이롭다는 것을…. 이후 도서관에 파묻혀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이 본 가장 독특한 생물로 팔 한 쪽만 남아도 몸뚱이 전체를 재생시키는 ‘큰넓적다리불가사리’, 포식자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머리를 하나 더 가진 ‘가시도마뱀’, 사람 머리만큼 커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세포동물 ‘제노피오포어’를 설명했다. 그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질문에 우려를 표시했다. “기후 변화나 생물다양성 파괴가 내 일상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불행이 올 겁니다. 2억5000만 년 전 95%의 종을 쓸어버린 대멸종, 65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공룡 멸종처럼 또 한 번의 대멸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환경 훼손을 멈춰야 합니다.” 헨더슨 씨는 또 “속칭 ‘카리스마 동물’, 즉 대중적 호소력이 있어 모금 운동이나 캠페인에 등장하는 동물인 판다, 호랑이, 고래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덜 예쁘고 작은 동물들도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며 “이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서식지들을 충분히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자연의 세계에 공간을 남겨놓는다면 자연은 스스로 복원합니다. 또 인류는 사회를 다시 디자인할 필요가 있어요. 에너지 소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고 아이들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술적 발전, 경제적 성장이 굉장히 놀랍죠.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인간의 웰빙뿐 아니라 다른 생물을 보호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과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지도 검토해야 합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복촌로의 한 한옥. 지난달 4일 문을 연 건명원(建明苑·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 수업이 열리는 곳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회장 후원으로 설립된 건명원은 원장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를 비롯해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등 8명이 인문학, 철학, 과학, 예술을 융·복합적으로 가르친다. 올해 초 1기 수강생 30명 모집에 지원자격 제한(만 19~29세)에도 불구하고 900여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연말까지 매주 한번씩 수업이 진행되며 전 과정이 무료다. 기자는 이날 ‘건명원 일일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체험했다. ○교수 말 자르고 질문… 강의 콘텐츠보다 강의 방향성이 중요 강의실에는 양복 차림에 ‘도덕경’을 든 남성과 스타벅스 커피, 맥 북을 책상에 둔 스키니진 차림의 젊은 여성 등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 수업의 전체 주제는 ‘사유와 정신’. 1교시 강사인 최진석 교수가 컵을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걸 컵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은 ‘컵’이라고 판단하고 시선을 거둡니다. 반면 시선을 끝까지 붙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을 봐요. 함민복 시인의 시를 보면 섬을 ‘물 울타리를 둘렀다’고 표현하죠. 남들이 그냥 섬이라고 판단할 때 그는 집요한 관찰과 사색으로 ‘물 울타리’라는 새로움을 창조한 겁니다.” 그는 탈레스, 공자, 노자 등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독립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가 1시간을 넘어가자 최 교수의 말을 불쑥 자르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오후 8시부터는 아예 책상을 마주보게 배치한 후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독립적으로 터득하면 객관적인 것과 거리가 멀 텐데 어떻게 검증하나요.” “건명원도 기존 것에 대한 교육이 아닌가요.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죠” 등과 같은 공격적 질문이 이어졌다. 2교시가 시작된 오후 8시 반.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등장해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름답죠? 그런데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전 인류가 모두 죽는다면? 피아노 선율은 공기의 압축된 파장에 불과합니다. 파장에 의미를 부여해줄 호모사피엔스가 없다면 음악도 없죠. 뇌 역시 고기 덩어리인데 어떻게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는 골상학, 뇌신경, 뇌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수업은 밤 10시 반까지 이어졌다. ○30대 1 뚫은 ‘고(高) 스펙’ 학생들 “스스로 생각케 하는 교육 원해” 쉬는 시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절반가량은 대학생. 나머지는 대기업 회사원, 군인, PD 등 다양했다. 건명원은 “스펙은 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서울대졸업생 등 전반적으로 ‘고 스펙’ 보유자가 많았다. 건명원 ‘입학’ 목적은 다 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정윤 씨(29·여)는 “개인 사업을 위한 통찰력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업가 강신우 씨(29)는 “도시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배양할 수 있을지 근원적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고 밝혔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오승목 씨(28)는 “동료가 사회 불공평을 ‘가속도 법칙’인 F(힘)=m(질량)a(가속도)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자극이 됐다”고 했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는 건명원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론을 내긴 이르지만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들이 이미 만든 것을 주입받는 식이 아니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 교수는 “건명원의 강의는 사유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데 방법을 몰라 답답한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또 한번의 ‘대멸종’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영국에서 과학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인 캐스파 헨더슨 씨(52)의 말이다. BBC 환경프로그램 PD, ‘파이낸셜 타임스’ ‘뉴 사이언티스트’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전 운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의 저서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이 최근 국내에 발간됐다. 책은 외계인 같이 생긴 분홍빛 도롱뇽을 비롯해 우주여행까지 한 곰벌레 등 ‘듣도 보도’ 못한 진기한 동물을 다뤘다. 5일 헨더슨 씨와 이메일 인터뷰했다. 신기한 동물을 연구한 계기부터 물었다. “할아버지가 영국 남부 햄프셔의 작은 마을에 시골 정원을 갖고 있어요, 어릴 적 정원 뒤 숲을 탐험했죠. 이후 2000년 인도네시아에서 자이언트 만타 가오리, 업사이드다운 젤리피쉬 등 너무도 신기한 생물을 본 순간 깨달음이 있었죠. 현실 속 생물들은 신화에 나오는 상상체보다 더 경이롭다는 것을…. 이후 도서관을 파묻혀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이 본 가장 독특한 생물로 팔 한쪽만 남아도 몸뚱이 전체를 재생시키는 ‘큰 넓적다리불가사리’, 포식자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머리를 하나 더 가진 ‘가시도마뱀’, 사람 머리만큼 커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세포동물 ‘제노피오포어’를 설명했다. “워낙 특이한 동물을 많이 알다보니 주변에서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나 꼽자면 공룡의 시대에 번성했던 프테로사우루스 일종인 ‘케찰코아틀루스’입니다. 날개폭은 작은 비행기 수준인 8미터, 지면에 서면 키가 기린에 맞먹죠.” 그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질문에 우려를 표시했다. “기후 변화나 생물다양성 파괴가 내 일상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불행이 올 겁니다. 2억5000만 년 전 95%의 종들을 쓸어버린 대멸종, 65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공룡 멸종처럼 또 한번의 대멸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환경 훼손을 멈춰야 합니다.” 헨더슨 씨는 또 “속칭 ‘카리스마 동물’, 즉 대중적 호소력이 있어 모금 운동이나 캠페인에 등장하는 동물인 판다, 호랑이, 고래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덜 예쁘고 작은 동물들도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며 “이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서식지들을 충분히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자연의 세계에 공간을 남겨놓는다면 자연은 스스로 복원합니다. 또 인류는 사회를 다시 디자인할 필요가 있어요. 에너지 소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고 아이들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술적인 발전, 경제적인 성장이 굉장히 놀랍죠. 하지만 한국사회과 인간의 웰빙 뿐 아니라 다른 생물을 보호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과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그는 “‘불가사의의 새로운 지도’(The New Map of Wonder)란 책을 현재 집필 중”이라며 “당신이 사는 삶과 세상을 정말 경이롭게 만들고 싶다면 주변의 자연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1555년 이탈리아 피렌체. 아홉 살 소녀 마르게리타는 새로 건립된 ‘피에타의 집’에서 살게 돼 마음이 놓였다. 그녀에게 ‘그곳’은 이름 그대로 ‘피에타’(Pieta·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풀다’란 뜻)였다. 마르게리타는 고아였기 때문.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에선 극심한 기아와 열병이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모를 잃거나 가정에서 버림받은 수백 명의 소녀가 거리를 누볐다. 이에 1554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소녀 전용 보호시설’인 ‘피에타의 집’이 문을 연다. 헌신적인 피렌체인들은 운영기금 마련과 시설 운영을 위해 봉사에 나선다. 여기까지가 훈훈한 르네상스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미담을 급작스레 ‘미스터리 스릴러’로 반전시킨다. 마르게리타는 ‘피에타의 집’ 입소 한 달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뿐만 아니다. 10여 년간 ‘피에타의 집’에 수용됐던 소녀 526명 중 202명만이 살아남는다. 3명 중 2명이 죽은 셈이다. 토론토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미시사(微視史) 연구를 통해 1550∼1560년대 ‘피에타의 집’에서 살았던 고아들이 하나둘 사라진 역사적 비밀을 파헤친다. 당시 소녀들은 물레 앞에 앉아 종일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막노동을 했다. 후견인들이 내는 구호금만으로는 생활이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당된 양을 채우지 못하면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굽은 자세로 고치에서 실을 뽑아 물을 담그는 중노동을 하다 보니 다들 쉽게 폐결핵에 걸렸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매춘 등 성문화가 융성했던 당시 피렌체의 검은 속살에서 나온다. 피렌체 성인 남성은 소녀와의 성관계를 선호했다. 성병에 감염된 바람둥이들은 소녀의 순수한 처녀성이 유독성 물질을 흡수해 건강을 되찾게 해준다고 믿었다. 피에타 소속 소녀들은 일명 ‘처녀 치료’의 피해자가 됐다. 피에타 소녀 줄리아는 메디치 가문의 맏딸 엘레오노라의 결혼 상대인 만토바(도시 이름)의 태자 빈첸초 곤차가에게 겁탈당하기도 한다. 메디치가에서 곤차가의 생식 능력을 검증한다며 실험을 했을 정도로 소녀들의 인권은 유린됐다. 나아가 ‘피에타의 집’은 보호시설에서 점차 폐쇄적인 수녀원으로 변한다. 개방적 보육원이 아닌 강요적 훈육이 난무하는 밀폐적 공간이 되면서 소녀들의 피해는 더욱 깊숙이 숨겨지게 된다. 꽃 같은 소녀들이 아내로, 엄마로 누리게 될 삶을 잃었는데도 역사에서 그녀들은 사라졌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인본주의와 문화 황금기를 누린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 속 감춰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국내에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을 다룬 10여 종의 책이 출간됐다. 특히 메디치 가문 특유의 혁신이나 창의성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조명한 책이 많다. ‘메디치 효과’(세종서적)는 메디치 가문의 힘이 ‘교차적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지식과 기술을 혼합해 창조와 혁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것. 책은 건축가 믹 피어스를 대표적인 메디치 효과의 사례로 꼽는다. 피어스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한가운데에 에어컨 없는 빌딩을 짓겠다고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생물학자와 만난 뒤 흰개미가 자신들의 집을 일정 온도로 유지시키는 법에 착안해 에어컨이 필요 없는 빌딩을 건축했다. 생물학과 건축학을 결합시킨 셈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21세기북스)은 메디치 가문 특유의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열린 자세에 주목한다. 메디치 가문의 경영 원칙은 단순하고 확고했다. 이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시민의 지지’ 즉 마음, 인심을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돈에만 연연하지 않았다. 저자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메디치 가문은 인간성의 한 꼭짓점을 찍었던 시대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했다. ‘메디치 머니’(청림출판)는 메디치 가문을 인류 역사상 최강의 금융 권력으로 규정한다. 고리대금업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들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가문으로 알려지게 됐는지를 사업, 권력, 처세술, 인맥 등 다각도로 분석했다. 청림출판은 “메디치 가문은 록펠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독자들이 꾸준한 관심을 갖는 대상”이라며 “이들이 은행과 정부 등 당시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문학동네)은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들을 후원한 내막을 파헤친다. 당시 상인들은 사후의 안식을 위해 수도원 지하에 묻힌 수호성인들의 유골과 가까운 곳에 묻히길 바랐다. 이는 낡은 수도원을 예술가를 동원해 아름답게 꾸미려는 후원으로 이어진다. 당시 피렌체를 보석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 조토와 마사초,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등의 그림,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의 건축물에 담긴 시대정신도 생생히 전달한다. 이 밖에 1478년 메디치가를 겨냥한 파치 가문의 음모를 다룬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푸른역사), 메디치 가문의 딸로 프랑스 왕비가 된 카트린 드 메디치를 재조명한 ‘카트린 드 메디치’(들녘),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메디치 스토리’(생각의나무) 등도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 왔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마술(Magic)’? 이 단어에는 호기심과 함께 “결국 눈속임 아니냐”는 반응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마술사 오은영 씨(40)는 “마술은 단순한 쇼가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역사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얽혀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행위 중 하나”라고 말한다. 최근 그는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란 책을 최근 냈다.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처럼 인간은 마술을 하는 존재, 호모매지쿠스에요, 고대 문명 이래 마술은 인간의 다양한 부분과 연관을 맺어왔죠. 매직(Magic)이란 단어를 보세요. 고대 페르시아의 사제 계급을 뜻하는 마구스(Magus)에서 파생됐어요. 마구스의 복수형 ‘마기(Magi)’는 성직자 계급이에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동방박사는 성서에 마기로 기록돼 있죠.” 항공기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2000년 본격적으로 마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홍콩, 미국, 일본 등에서 선진 마술을 배운 뒤 국내에서 스토리텔링 마술 등을 선보여 왔다. “중세시대에는 마술을 탄압함으로써 권력과 기득권이 유지됐어요. 당시 인형을 바늘로 찌르는 부두교 의식행위가 ‘흑마술(Black magic)’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마침 기근과 전염병이 유행했죠. 사회가 피폐해지고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자 당시 가톨릭 기득권 세력은 이를 마술가 탓으로 돌리며 탄압하기도 했지요.” 반면 점성술 같은 ‘백마술(White magic)’은 17세기 계몽주의와 과학 기술의 발전에 초석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유령 마술이다. “17세기 벨기에 출신 로버트슨이란 과학자는 빛을 오목렌즈에 투과시켜 스크린에 투사하는 ‘매직랜턴’을 이용해 버려진 성당 등에서 유령이 나오는 ‘환영 마술’을 선보였죠. 19세기 영상기술과 영화의 모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탈출 마술의 대가 해리 후디니, 투시 마술의 창시자 로베르 후댕, 19세기 초 인도의 공중부양 마술, 미국 근대기 심령술 마술 등도 소개했다. “프랑스 마술사 로베르 후댕은 식민지 알제리로 가서 총알을 잡는 마술쇼를 선보였어요. 프랑스인은 우수하고 알제리인은 열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식민정책에 저항하는 알제리인을 정신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였죠.” 그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성취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투영된 것이 마술이라며 즉석에서 동전 바꾸기 마술을 보여줬다. 어떻게 하는지를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카드의 제왕’으로 불렸던 하워드 서스턴(1869~1936)의 마술의 3원칙이 있어요. 같은 마술을 반복해 보여주지 말 것, 마술을 하기 전에 미리 현상을 설명하지 말 것, 그리고 비법을 공개하지 말 것입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성공 법칙이 바뀌었나?” 국내 매출 5위권의 A출판사 직원들은 최근 워크숍을 가졌다. 이례적으로 소형 출판사들의 기획 방식과 독자 선호도를 연구하는 자리였다. 실제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국내 출판계를 주도해온 대형 출판사보다 생긴 지 2, 3년밖에 안 된 중소 출판사가 선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 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전국 대형서점 8곳의 판매를 합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3월 둘째, 셋째 주)를 보면 중소 출판사의 약진이 눈에 띈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인 ‘미움받을 용기’를 낸 인플루엔셜은 지난해부터 책을 내기 시작한 회사로 그 뿌리는 강연 컨설팅업체였다. 현재까지 출간한 책이 5종에 불과하다. 대표 문태진 씨도 비출판인 출신. 베스트셀러 3위 ‘하버드 새벽 4시 반’의 라이스메이커 역시 3년밖에 안 된 1인 출판사다. 베스트셀러 7∼13위를 오간 ‘비밀의 정원’을 낸 클 출판사도 설립 3년 차, 직원 수 3명에 불과하다. 10위권 내에 2권의 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을 올린 한빛비즈도 직원 9명의 소규모 출판사다. 이들 출판사는 일하는 방식도 기존 출판사와 다르다. ‘미움받을 용기’는 책 내용의 5분의 1이 담긴 ‘샘플북’을 만들어 서울 명동에서 무료로 나눠주며 책을 알렸다. 인플루엔셜 김혜연 편집장은 “대형 출판사들이 온라인 광고에 집중하던데 우리는 사람이 가는 곳에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클 출판사는 ‘국내에는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며 대형 출판사가 고사한 컬러링북을 도입해 43만 부의 판매량을 올렸다. 출판사의 브랜드 파워나 자본력이 중시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지난 10여 년간은 ‘선(先)인세 경쟁’ 시대였다. ‘유명 작가 섭외→높은 선인세→대규모 마케팅→베스트셀러’로 이어지는 대형 출판사의 성공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줄고 선인세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래서 요즘은 신인이 아니라 대형 작가가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출판사, 저자 명성보다 내게 꼭 맞는 책 선호” 출판사와 저자를 선택하는 독자들의 성향도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원 박재훈 씨(40)는 “과거엔 민음사, 창비 등 출판사 이름값을 중시했다”며 “요즘은 작은 출판사도 책을 잘 만드는 것 같아 출판사는 책을 고르는 데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작은 출판사들은 발 빠른 기획력으로 위험성을 줄이며 독자 맞춤형 책을 출간하고 있다. 직원 3명의 스윙밴드 출판사는 ‘더미북(Dummy Book·모형책)’을 먼저 만든다. 저자를 섭외한 뒤 원고가 오면 책 제작이 시작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기획 단계부터 판형, 원고량, 디자인을 작가와 정해 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또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살라는 ‘미움받을 용기’, 인문학 열풍 스트레스 속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을 포함해 고양이와 동거하는 법, 작은 동네 여행기 등 기존 출판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소재나 저자를 통해 독자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사 고세규 이사는 “요즘 독자는 내 마음을 모를 것 같은 유명 저자보다는 친구, 이웃처럼 공감과 위로를 줄 것 같은, 즉 자신과 비슷한 저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출판 마케팅’이란 책을 낸 김류미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팟캐스트에서 활동하는 저자는 이미 두꺼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데 대형 출판사는 속칭 ‘듣보잡’으로 여겨 섭외하지 않는다”며 “반면 작은 출판사들은 이들과 계약해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가격이 없는 겁니다.” 대학생 김성재 씨(28)는 요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80·사진)의 어록을 자주 되새긴다. 김 씨는 2월 무히카 전 대통령의 퇴임을 다룬 외신을 접한 후 그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무히카 전 대통령의 농장 생활 사진을 찾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곤 했다. 김 씨는 “취업도 막막하고 무언가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무히카의 말과 행동이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젊은이들이 퇴임한 남미의 대통령에게 열광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블로그와 트위터 등에 무히카 전 대통령 관련 글을 경쟁적으로 올리곤 한다. ‘무히카 어록’이란 글과 함께 재임 기간 중 대통령궁을 노숙인에게 내주고 농장에서 생활하는 사진, 대통령 월급의 90% 이상을 기부한 일, 낡아빠진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몰고 다니는 사진을 소개하며 ‘왜 우리나라엔 이런 지도자가 없냐’는 내용이 많다. 회사원 강지현 씨(33)는 “인터넷에서 무히카 대통령의 어록을 보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호응을 먼저 읽은 곳은 출판계다. 무히카 전 대통령 평전을 국내에 번역 출간하려는 출판사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A출판사 관계자는 “무히카 일생을 다룬 평전 ‘조용한 혁명’ 판권 경쟁이 붙어 선인세가 5만 유로(약 6000만 원) 이상으로 치솟았다”며 “최근 외국 서적 선인세로는 높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B출판사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가제)이라는 또 다른 평전을 준비하는 등 4월 중 무히카를 다룬 평전이 여러 권 발간될 예정이다. 한국과 먼, 그것도 퇴임한 우루과이 대통령이 국내에서 조명받는 것에 대해 국내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그의 선행을 다룬 책이 쏟아졌던 현상과 유사하다”며 “국내 정치인들에겐 없는 진정성과 헌신을 해외 지도자의 스토리에서 찾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도자에 대한 갈증은 평전에 대한 선호도에서도 드러난다. 동아일보가 인터넷서점 예스24와 2004∼2015년 11년간 해외인물 평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1위는 ‘스티브 잡스’(민음사), 2위는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이 차지했다. 실천문학사 이호석 팀장은 “취업, 고용불안, 양극화 등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다 보니 혁신적인 인물의 평전을 보면서 희망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신동해 편집부장은 “선진국에서는 해당 인물을 둘러싼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역사적 사료’로 평전을 보는 반면 국내에서는 평전 속 인물의 리더십을 통해 무언가 배우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Ravioli parmigiana, en casserole’와 ‘Flaming coffee diablo prepared en vue of guest’. 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을 보면 당황스럽다. 해석하자면 ‘캐서롤에 요리한 파르메산 치즈 라비올리’, ‘손님이 보는 앞에서 내린 불타는 악마의 커피’란 뜻일 거다. “나도 같은 걸로”라고 외치고 싶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영어에 프랑스어가 섞여 있으니 말이다. 레스토랑 메뉴판은 왜 어려울까? 이 책은 음식의 언어를 인류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을 동원해 파헤친다. 저자는 먹다(eat)와 어원학(etymology)을 합친 ‘먹기어원학(EATymology)’을 만든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 계량언어학의 세계적 석학인 그의 ‘음식 언어’ 강의는 스탠퍼드대의 최고 인기 교양과목이다. 저자에 따르면 메뉴판에는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사회 격차’ 욕망이 스며 있다. 1900년대 초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저렴한 식당보다 메뉴판에 적힌 프랑스어가 다섯 배나 많았다. ‘Herb roasted elysian fields farms lamb’(허브를 넣고 로스트한 엘리전 필즈 양고기), ‘Grass fed angus beef carpaccio’(풀 먹여 키운 앵거스 비프 카르파초). 요즘 최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에 적혀 있는 요리다. 저자가 미국 7대 도시 내 레스토랑 메뉴 65만 건을 분석한 결과 고급 레스토랑은 메뉴판에 이렇듯 농장 이름(‘엘리전 필즈’), 사육방식(‘풀 먹여’) 등 재료 출처를 거론한 횟수가 저렴한 곳보다 15배 많았다. 요리를 설명하는 단어가 하나씩 늘수록 음식 가격이 18센트씩 높아졌다. 반면 싸구려 레스토랑 메뉴에는 ‘Crisp golden Brown Belgian waffle with fresh fruits’ 즉 ‘바삭바삭’ ‘신선한’처럼 훌륭하지 못한 음식을 꾸미기 위한 인상 주입용 형용사가 많았다. 또 레스토랑 리뷰 1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관능적인’ ‘유혹적인’ ‘예쁘고 애무하는 듯한’ ‘끈적거리고 달콤한’ 등 음식 품평하는 데 섹스 은유가 자주 나올수록 음식값이 비싸졌다. 싼 레스토랑 음식이 마음에 들 경우에는 성적인 은유보다 ‘중독’ ‘마약’ 등의 표현이 늘었다. 책은 음식의 변천과 확대를 세계 문화사와도 연결한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케첩’은 중국에서 비롯됐다. ke(케)는 푸젠(福建) 성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 첩(tchup)은 소스를 뜻한다. 17세기 무역상을 통해 영국 등 유럽에 중국 생선소스가 비싸게 수입됐고 호두 케첩을 거쳐 19세기 토마토케첩이 완성된다. 영국의 ‘피시앤드칩스’는 페루 지역의 해산물 요리 ‘세비체’에서 비롯됐다. ‘마카롱’은 아몬드 가루에 설탕, 장미수를 반죽해 구운 시칠리아 과자 ‘라우지나즈’가 기원이다. 이 과자는 달게 먹는 파스타인 ‘마카루니’ 등과 결합되는 한편, 머리를 굴뚝처럼 세우는 허세적인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던 18세기 상류층 부자 ‘마카로니’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고급 디저트 문화 ‘마카롱’에 이르게 된다. 감자 칩에는 ‘계급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12종의 유명 감자칩 포장지 뒷면의 발췌문을 분석해 보니 상류층을 위한 고급 감자칩은 ‘천일염’ ‘인공성분이 없는’ 등 건강과 관련된 단어 비중이 노동자에게 인기인 싼 감자칩보다 6배 많았다. 이쯤 되면 음식은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나오는, 즉 평범한 일상의 매개체를 넘어선다. 사소한 음식이라도 인류 문명이 송두리째 녹아 있는 것이다. 주래프스키와 함께라면 마감 5분 전 분식집도 즐거울 것 같다. 그가 들려주는 분식 메뉴 얘기가 식탁에 올려진 떡볶이와 순대보다 푸짐할 테니까.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가 있는 날’ 관련 공연 및 전시 시설 전체를 모니터링했다고 23일 밝혔다. 문화가 있는 날의 부실을 심층적으로 지적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른 조치다. 문체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25일 열릴 문화가 있는 날 관련 간담회를 열고 “시민들에게 홍보한 내용과 다른 공연을 한 단체를 비롯해 이달의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참여하는 1541개 문화시설 전부를 사전 모니터링했다”고 밝혔다. 향후 문화행사의 내용이 공지 없이 바뀌지 않게 하고 부실을 줄이려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문화가 있는 날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 스며들도록 보완할 방침이다. 문체부 원용기 문화예술정책실장은 “기업 내 동아리 지원을 비롯해 여성가족부 등 다른 부처와 연대한 관련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문화가 있는 날 행사부터는 인터넷으로 콘서트와 강연 현장을 볼 수 있는 ‘집들이 콘서트’가 시작된다. 25일에는 가수 조규찬의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네이버 티브이캐스트로 생중계된다. 다음 달에는 드라마 ‘미생’을 연출한 김원석 PD 강연, 5월에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콘서트가 방영된다. 자세한 내용은 문체부 통합정보 누리집(www.culture.go.kr/w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가 있는 날’ 관련 공연 및 전시시설 전체를 모니터링했다고 23일 밝혔다. 문화가 있는 날의 부실을 심층적으로 지적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른 조치라는 후문이다. 문체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25일 열릴 문화가 있는 날 관련 간담회를 열고 “시민들에게 홍보한 내용과 다른 공연을 한 단체를 비롯해 이달에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참여하는 1541개 문화시설 전부를 사전 모니터링했다”고 밝혔다. 향후 문화행사의 내용이 공지 없이 바뀌지 않게 하고 부실을 줄이려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문화가 있는 날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 스며들도록 보완할 방침이다. 문체부 원용기 문화예술정책실장은 “기업 내 동아리 지원을 비롯해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과 연대한 관련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문화가 있는 날 행사부터는 인터넷으로 콘서트와 강연 현장을 볼 수 있는 ‘집들이 콘서트’가 시작된다. 25일에는 가수 조규찬의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네이버 티브이캐스트로 생중계된다. 다음달에는 드라마 ‘미생’을 연출한 김원석 PD 강연, 5월에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콘서트가 방영된다. 이밖에 가평문화예술회관, 부안예술회관 등 전국 30여개 문예·시민회관에서 클래식 공연을 진행하는 ‘작은 음악회’ 야외공간에서 공연하는 ‘문화광장’ 사업도 이달부터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문체부 통합정보 누리집(www.culture.go.kr/w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윤종기자 zozo@donga.com}

시각: 미세한 표정 변화 읽기 훈련, 게임 안하기, 후각: 화장품 안 쓰기, 미각: 인공감미료 안 먹기, 청각: 사람 몸에서 나는 소리 듣기…. 책에 나오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수사관)’ 훈련법이다. 2004년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로 입사한 후 2009년까지 서울지방경찰청 등에서 일한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46·사진)를 18일 만났다. 그는 주요 범죄 수사 과정부터 범죄의 사회적 맥락까지 꼼꼼히 분석한 이 책을 최근 냈다. “미국 드라마 ‘CSI’의 인기로 프로파일러에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다”며 말을 걸었다. “프로파일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사이코패스처럼 생각하라’는 겁니다. 연쇄살인범, 소녀 성폭행범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죠. 2004년 이후 선발된 프로파일러 44명 중 남은 사람은 20명도 안 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있어요. ‘미드’와 현실은 다르죠.” 그는 연쇄살인범 정남규, 강호순 사건을 비롯해 안양 초등학생 살인범 정성현 사건, 마포발바리 사건 등에 참여해 용의자를 면담했다. “범인의 첫 두 시간의 이야기는 100% 거짓말이에요. 그런데 거짓말도 계속하기 힘들어요. 3시간 정도 지나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처음에 했던 말과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가족 상황, 성장 배경, 심리 등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부분도 비어 보이죠. 그 빈 부분이 범인이 감추려는 부분이자 범죄의 방아쇠죠. 외모도 봐요. 성폭행범은 방화범보다 잘생겼어요. 성폭행범은 대인(對人)범죄, 즉 사람에게 접근해야 하니 외모를 가꿉니다.” 그는 현장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인 뒤에 가려진 범인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그가 면담한 강호순 정남규 같은 연쇄살인범은 공통점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모나 이웃, 친구로부터 학대, ‘왕따’를 당한 불우한 성장기를 거쳤다. “여중생을 칼로 난도질해 죽인 고등학생을 만났더니 ‘뭐가 문제냐’며 태연한 반응을 보였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는 건실한 사업가였는데 알고 보니 이 학생은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면서 자랐더군요. 우리 사회는 범인만 잡길 바랍니다. 본질과 모순은 방치한 채…. 범인을 잡아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 빈자리에 들어와 범죄자가 됩니다.” 그는 “전국에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은 된다”며 “살인범 한두 명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미래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묻지 마 범죄’가 더 늘어날 수 있어 대비가 절실하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넷에서 범죄 방법을 쉽게 습득할 수 있고, 양극화, 인성교육 부재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아졌어요. 범죄 정책만 따로 수립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정책과 연관돼야 해요. 뉴욕 경찰청이 지역 내 가난한 구역의 개발을 지원하는 이유입니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미국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 시카고대 법학·윤리학 석좌교수(68). 생소한 이름이지만 세계적 석학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세 차례 선정됐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상가 22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이 책은 감정과 법의 관계를 분석했다. 보통 법과 정책은 감정을 배제한 ‘이성’으로만 접근됐다. 반면 저자는 법과 정책이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렵다. 기자의 ‘좁고 얕은 지식’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자. 법철학은 때론 이성, 때론 감정이 우세를 보이며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성에 대한 절망감이 커지면서 감정을 중시하는 철학사조가 강세를 보였다. 이성을 강조할 때는 이원론을 주장한 플라톤, 감정이 우위에 설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이론이 ‘떴다’. 너스바움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 중 특히 동물에 방점을 뒀다. 인간은 욕구를 가진 취약한 존재라는 것. 나아가 인간의 감정은 단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신념이 반영된 결과로 본다. 감정이 법과 정책 등 공적인 판단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같은 감정은 배제한다. 눈앞에 성폭행범이 있다고 치자. 대중의 감정은 혐오로 들끓을 것이다. 너스바움은 이런 심리를 자신이 지닌 인간적 약함을 숨기기 위해 범죄자의 ‘비정상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혐오만 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반성적으로 보지 못해 결국 인간의 존엄성도 부정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 ‘정치적 감정들’을 비롯한 너스바움의 저작 다수가 올해 국내에 소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혐오와 수치심마사 너스바움 지음·조계원 옮김728쪽·3만3000원·민음사 미국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 시카고대 법학·윤리학 석좌교수(68). 생소한 이름이지만 세계적 석학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세 차례 선정됐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상가 22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 첫 번역된 이 책은 감정과 법의 관계를 분석했다. 보통 법과 정책은 감정을 배제한 ‘이성’으로만 접근됐다. 반면 저자는 법과 정책이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렵다. 기자의 ‘좁고 얕은 지식’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자. 법철학은 때론 이성, 때로 감정이 우세를 보이며 발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성에 대해 절망감이 커지면서 감정을 중시하는 철학사조가 강세를 보였다. 이성을 강조할 때는 이원론을 주장한 플라톤, 감정이 우위에 설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이론이 ‘떴다’. 너스바움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 중 특히 동물에 방점을 뒀다. 인간은 욕구를 가진 취약한 존재라는 것. 나아가 인간의 감정은 단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신념이 반영된 결과로 본다. 감정이 법과 정책 등 공적인 판단서도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같은 감정은 배제한다. 눈앞에 강간범이 있다고 치자. 대중의 감정은 혐오로 들끓을 것이다. 너스바움은 이런 심리를 자신이 지닌 인간적 약함을 숨기기 위해 범죄자의 ‘비정상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혐오만 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반성적으로 보지 못해 결국 인간의 존엄성도 부정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 ‘정치적 감정들’을 비롯한 너스바움의 저작 다수가 올해 국내에 소개될 전망이다.김윤종기자 zozo@donga.com}

“기사 보고 너무 놀랐어요. 후속 보도, 꼭 해주세요!” 학교에서 책 읽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따돌리는 교실 안 ‘책따’ 현상을 다룬 본보 보도(17일자 A1·2면)가 나가자 반응은 사뭇 뜨거웠다. 여러 언론에서 같은 내용을 다뤘고 포털사이트와 뉴스 게시판 등에 관련 댓글이 1000개가 넘었다. 시각은 다양했다. 일부 학생은 “우리 학교에는 이런 일 없는데, 특정 학교의 소수 케이스 아니냐” “원래 ‘왕따’라 친구가 없어 혼자 책이나 보는 것” 등의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은 “점심시간에 책 읽는데 친구들이 못 읽게 했다” “책 보면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씁쓸하지만 요즘 일반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맞다”며 공감했다. 부모들의 반응 수위는 한 단계 높았다. 주부들이 즐겨 찾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우리 아이도 책을 좋아하는데 혹시 ‘책따’당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분노하는 어른도 적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과거 고교생 대상 연설에서 “모범생 왕따에게 잘 보여라. 나중에 너희들이 왕따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청소년들의 ‘책따’ 행태를 비꼬는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책따’는 청소년 탓이 아니다. ‘책따’ 현상은 결국 공부만 강요해온 어른들 책임이다. ‘책 읽을 시간 있으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 아니었나. 서점에서 만난 한 고교생은 “교과서, 참고서만 내밀던 어른들이 이젠 책을 안 읽는다고 비난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책따’ 보도를 계기로 독서 경시 문화를 반성하고 새로운 독서운동이 싹트려는 희망도 보였다.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후속 기사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독자는 “아들이 다니는 A고교에서 아이들이 독서모임을 결성했다. 이런 긍정적 모습도 적극 보도해 달라”고 했다. e메일을 보낸 또 다른 독자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독서활동을 적극 실시해 학기 말에 학업성취도를 올린 B중학교의 담임선생님 사례를 소개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책과 가까워지는 독서교육 시스템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책과 멀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안타까워하고 고치길 바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책따’ 현상을 전하면서 생긴 답답함이 많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한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든 모습이 ‘엣지’ 있고 ‘쿨’해 보일 수 있게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김윤종기자 zozo@donga.com}
“기사 보고 너무 놀랐어요. 후속보도, 꼭 해주세요!” 학교에서 책 읽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따돌리는 교실 안 ‘책따’ 현상을 다룬 본보 보도(17일자 A1, 2면)가 나가자 반응은 사뭇 뜨거웠다. 여러 언론에서 같은 내용을 다뤘고 포털사이트와 뉴스 게시판 등에 관련 댓글이 1000개가 넘었다. 시각은 다양했다. 일부 학생들은 “우리 학교에는 이런 일 없는데, 특정 학교의 소수 케이스 아니냐”, “원래 ‘왕따’라 친구가 없어 혼자 책이나 보는 것” 등의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은 “점심시간에 책 읽는데 친구들이 못 읽게 했다”, “책 보면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씁쓸하지만 요즘 일반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맞다”며 공감했다. 부모들의 반응 수위는 한 단계 높았다. 주부들이 즐겨 찾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우리 아이도 책을 좋아하는데 혹시 ‘책따’ 당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분노하는 어른도 적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과거 고교생 대상 연설에서 “모범생 왕따에게 잘 보여라. 나중에 너희들이 왕따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청소년들의 ‘책따’ 행태를 비꼬는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책따’는 청소년 탓이 아니다. ‘책따’ 현상은 결국 공부만 강요해온 어른들 책임이다. ‘책 읽을 시간 있으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 아니었나. 서점에서 만난 한 고교생은 “교과서, 참고서만 내밀던 어른들이 이젠 책을 안 읽는다고 비난할 수 있나”라며 반문했다. ‘책따’ 보도를 계기로 독서 경시 문화를 반성하고 새로운 독서 운동이 싹트는 희망도 보였다.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후속기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독자는 “아들이 다니는 A고교에서 아이들이 독서 모임을 결성했다. 이런 긍정적 모습도 적극 보도해 달라”고 했다. e메일을 보낸 또 다른 독자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독서 활동을 적극 실시해 학기말에 학업성취도를 올린 B중학교의 담임선생님 사례를 소개해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책과 가까워지는 독서교육 시스템을 취재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책과 멀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안타까워하고 고치길 바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책따’ 현상을 전하면서 생긴 답답함이 많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한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든 모습이 ‘엣지’ 있고 ‘쿨’해 보일 수 있게 머리를 맞대야할 시점이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