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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는 올해부터 학생들의 경력을 개발하고 취업을 지원하던 학생경력개발원을 미래인재개발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동국대는 다양한 취업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표 프로그램은 인적자원개발(HRDP) 캠프다. 지난 8년 동안 30회 이상 시행한 취업지원센터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만족도가 95%를 넘는다. 참가자의 취업률은 88%로 매우 높다. 희망 멘토와 함께하는 ‘꿈 찾기’ 캠프도 주목할 만하다. 경력 10년 이상의 대학청년고용센터 전문컨설턴트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주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1박 2일로 진행되며 상담 만족도는 95% 이상이다. 취업교육 관련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취업지원센터는 취업을 위한 가장 기본적 토대인 ‘직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올해 여름방학에 실시한 하계 직무스쿨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프로그램은 이론교육과 기업 현장방문 및 해당 직무 모의면접 등으로 구성된다. 3회로 나뉘어 직무별로 진행된다. 경영지원(1회), 금융(2회), 영업직무(3회) 순으로 세부적인 강연이 이어지며 강사로는 주요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참여한다. 취업 스터디 ‘특공대’도 자랑할 만하다. 직무별로 스터디 그룹을 구성해 학생들이 자기소개서 작성 등을 할 때 도움을 준다. 특공대는 현직 채용 담당자에 의해 진행된다. 현재 특공대 2, 3기가 운영 중이다.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SSAT)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생 대상 온라인 모의테스트를 진행하고 이에 대한 해설도 해준다. 항목별 보충학습과 유형 분석 등도 포함된다. 서류 합격을 위한 열쇠인 자기소개서 프로그램도 동국대의 자랑이다. 첫 단추는 초보들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 워크숍이다. 취업지원센터는 자기소개서 경험이 없거나 반복된 탈락으로 고민하는 서류 초보자들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인 ‘동국인 입사 선호기업 자기소개서 뽀개기 특강’도 있다. 여기선 기업에 따른 맞춤형 자기소개서 전략을 소개한다. 항목이 어렵고 작성 분량이 많은 SK그룹, GS그룹, 신한은행 등의 자기소개서에 맞춰 작성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강연 등이 진행된다. 3, 4학년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전문컨설턴트가 직접 작성 전략을 소개한다. 국내 대학 최초로 학생들의 취업역량을 집중 관리해줄 수 있는 전산 프로그램도 개발해 현재 시험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이 현장에 적용되면 신입생 때부터 학생 개인별 역량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공교육과 교양과정 등 교과교육에서 담당하지 못하는 비교과영역에서의 학생 개인별 포트폴리오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외국어, 면접, 적성, 봉사활동 등 취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커리어 관리를 돕는 게 가능해져 취업률을 크게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서울과학기술대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올해 졸업생 2000명 이상 대규모 대학 취업률에서 전국 1위를 달성했다. 서울과기대 취업률은 2010년 69.4%, 2011년 73.5%, 올해 72.1%였다. 전국 4년제 대학 평균취업률보다 약 20% 가량 높다. 특히 공학계열이 취업에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전공지식 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서울과기대는 이러한 능력 향상에 집중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공분야별 자격증 취득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학교는 4학년 학생들이 졸업 전 팀을 구성해 작품을 기획, 설계, 제작, 시험하는 일련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 돕는다. 인턴 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6개월∼1년쯤 뒤엔 장기 인턴프로그램인 ‘Co-Op’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저학년에겐 체계적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제도적 지원을 한다. 또 고학년에겐 취업 준비에 필요한 다양한 훈련을 설계해 제공하고 있다. 또 최고 수준의 엘리트 학생 양성 프로그램인 ‘리더스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엘리트를 발굴·육성하는 한편 평판도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우수 학생들이 상호 교류하는 발판을 학교에서 마련해 준다. 취업 시즌을 앞둔 4학년을 대상으로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직무적성검사 훈련을 실시한다. 이력서클리닉을 열고, 기업인사담당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취업박람회도 운영 중이다. 상담기능도 강화했다. 경제적 여건, 학업, 취업 등과 관련해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학생생활연구, 심리상담, 소크라테스 프로그램(진로 집단상담)등을 운영 중이다. 셀프 모의면접이 가능한 영상 모의면접 기기 2대를 갖춘 ‘잡 카페(job cafe)’도 있다. 이곳엔 취업관련 전용 강의실, 스터디실, 개인 및 집단 상담실 등이 있다. 서울과기대의 가장 큰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신설된 ‘창업교육센터’다. 기업가 마인드 제고를 위해 필요한 관련 지식과 기술을 가르친다. 특허교육캠프를 구성해 전문 지식을 제공한다. 또 원스톱 컨설팅 자문단을 구성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 기업가 정신 교육프로그램, 홍보 서포터스·기자단 등을 운영하며 대학 내 창업교육 활성화도 꾀하고 있다. 창업교육센터에는 현재 심사를 통해 선발된 10팀의 창업동아리와 7팀의 예비창업동아리가 있다. 이들 동아리 구성원은 일대일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특허교육캠프는 2차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7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3일 동안 지적재산권 이해부터 특허 출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최고경영자(CEO) 특강과 각계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오픈강의도 준비돼 있다.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20대는 불안하다. 지난해 미국 청년들은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거리를 점령했다. 영국 청년들은 폭동을 이끌었다. 높은 실업률, 이로 인한 좌절감이 원인이다. 대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이 청년 일자리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박근혜 후보는 ‘스마트 뉴딜 정책’으로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직속으로 청년일자리 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일자리 나누기를 전제로 ‘사회통합적 일자리 창출 정책’을 발표했다. 청년일자리 정책을 마련하려면 정확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동아일보와 민관 합동의 ‘빅데이터 국가전략 포럼’이 3개월에 걸쳐 ‘청년일자리’ 자료를 정밀 분석한 배경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청년 패널인 20대 8310명이 대상이었다. 이들의 직업이 2007∼2010년에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한 결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취업 사다리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은 대부분 대기업 등 대우가 더 좋은 곳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8.7%만 성공했다. 직장을 다니다 학생으로 되돌아간 이른바 ‘도돌이족’ 역시 눈에 띄게 많았다. 대기업에 다니던 청년의 34.0%,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의 36.3%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번 분석은 동일 집단의 구성원이 취업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계속 따라가며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정 시점에 성격이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취업률이나 실업률 통계와는 차가 크다. 분석팀의 결론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저성장이 계속되고, 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일자리는 늘어나기 힘들다. 파이 하나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년들은 학교로 회귀한다. 도전일까, 모험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김정현 씨(29). 회사를 6월에 그만뒀다. 사표를 쓰기 직전 월급명세서엔 340만 원이 찍혔다. 친구는 “직장 2년 차에 이 정도 받으면 영혼도 팔 수 있겠다. 한턱 쏘라”며 부러워했다. 김 씨의 생각은 달랐다. “최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직 따끈따끈한 토익 만점 성적표가 서랍 속에 있는데…. 난 이것보다 더 받을 자격이 있는데….” 인력이 차고 넘치는 현실. 그는 ‘가방끈’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지금 유학을 준비한다. 미련은 없다. 밝은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를 포함해 수많은 청년이 새 길에 들어서는 중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고교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3분의 1 정도는 3년간 할 일 없이 지낸다. 어렵사리 중소기업에 입사해서는 대기업 이직을 희망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취업시장에서 고전하다 구직활동 또는 이직 시도를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간다. 동아일보와 ‘빅데이터 국가전략 포럼’이 분석한 자료는 청년실업난의 심각성, 특히 고학력 무직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자료와 맥락을 같이한다. 2010년에 20세 이상 3676만5374명 가운데 대학 출신은 43.2%였다. 1970년에는 6.6%였다. 》 분석팀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청년패널에 속한 8310명의 2007년 취업 상태를 △대기업(200명 이상 사업장) △중소기업(200명 미만 사업장) △미취업 △학생으로 분류했다. 이들이 2010년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봤다. 다음은 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인 ‘테라데이터’의 도움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대기업 마다하고 학교 가는 도돌이족 20대 3명이 모였다. 모두 학생이다.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르다. 김성준 씨(28)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 지난해 그만두고 대학원에 갔다. 국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었다. “학력으로 경력 세탁 좀 해야죠. 나중엔 기회가 없을 것 같고….” 고졸 출신 조미영 씨(23)는 정보기술(IT) 관련 중소기업을 최근 그만뒀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니 항상 대졸자와 일할 때 콤플렉스가 있더군요. 성형수술을 하잖아요. 시간이 들고 고통이 따르더라도. 성형하는 기분으로 대학 원서를 냈죠.” 송재영 씨(28).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반 동안 취업원서를 냈다. 결과는 모조리 낙방. 그래서 지난해 대학원에 등록했다. “무직 상태로 있으니 불안하잖아요. 괜히 면접 볼 때 불이익을 받는 기분도 들고.”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에 다니던 772명 중 34.0%는 3년 뒤에 학생이 됐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던 1864명 중 36.3%, 미취업자 3678명 중 35.5%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스펙을 더 쌓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문제는 더 좋은 직장으로 가는 길이 좁다는 점이다. 이모 씨(31)의 경우 2008년 독성학 분야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대기업 공채에서 떨어졌다. 중소기업 연구직으로 들어가 실무경력을 쌓고 대기업 여러 곳에 지원서를 냈으나 번번이 탈락했다. 중소기업 출신으로 3년 뒤 대기업에 들어간 비율은 8.7%에 불과하다. 이런 비율이 학생은 7.8%, 미취업자는 12.8%에 그쳤다. 또 중소기업 입사자 1864명 중 절반 정도는 계속 중소기업에 남았다.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는 “노동시장에 칸막이가 형성돼 초기에 어디에 들어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곳을 뛰어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미취업 상태로 머무는 캥거루족 정모 씨(26)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의 커피전문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고 손에 쥐는 월급은 150만 원. 2년 이상 일하면 정직원의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공채로 뽑힌 일반 대졸사원과는 업무와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고민한다. 결국 취업을 포기했다. 그는 “고졸 학력으로는 본사 직원으로 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은 뒤에는 자영업을 할 계획이다. 20대의 절반가량은 2007년에 미취업 상태였다. 3년 뒤에는 이들 중 12.8%가 대기업에, 22.4%가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29.3%는 여전히 무직. 상당수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 첫 조사에서 학생이던 1996명 중 58.9%는 마지막 조사에서도 여전히 학생 신분이었다. 취직하기 위해 어학점수를 높이는 등 실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면서 졸업을 연기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선임연구위원은 “첫 직장으로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개인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일자리가 있어도 첫 회사로 선택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은 결혼하면 구직활동 포기 결혼 여부가 취업에 미치는 영향은 남성과 여성이 크게 엇갈렸다. 여성은 결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남성은 취업 이후에 많이 결혼한다는 ‘통념’이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났다. 2007년을 기준으로 여성 미혼자 3553명 가운데 1242명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다녔다. 취업률은 35.0%. 반면에 기혼자 740명 가운데 취업자는 21.5%에 그쳤다. 김가경 씨(28·여)를 보자. 2008년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정보기술(IT)업체에 취업했다. 3년가량 일하다 지난해 11월 결혼을 앞두고 그만뒀다. 올해 아이를 낳으면서 재취업은 엄두를 못 낸다. 그는 “결혼을 전후해 잠시 여유를 가진 뒤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얘기했다.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연령은 평균 27세로 나타났다. 24∼26세에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지만 27세를 넘기면서 결혼하거나 출산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추세를 나타낸다. 남성은 정반대였다. 미혼 3730명 중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26.3%, 미취업자는 56.5%였다. 기혼 남성의 경우 88.5%가 직장인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직장 여성들이 결혼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3대 고비를 현실적으로 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크게 떨어지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현재보다 10% 정도 높여야 국가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빅데이터 국가전략포럼 분석팀 △종합기획: 김현곤 박정은(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전략연구센터) △청소년 자살: 권정은 정지선(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전략연구센터) 김정선 김현남(SK텔레콤 스마트인사이트 성장솔루션 사업팀) △청년 일자리: 이유택 백인수(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전략연구센터) 조인호 김형래(한국고용정보원 정보화사업본부) 구태훈 신중섭(테라데이터) △영유아 보육정책: 김정미 윤미영(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전략연구센터) 박영일(SM2네트웍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파와 좌파를 합쳐 10여 명이 출마를 선언했거나 검토 중인 가운데 단일화를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우파진영은 곽노현 교육감의 유죄가 확정된 지난달 27일 직후부터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다. 2010년 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후보가 6명이나 나온 바람에 곽노현 후보로 단일화한 좌파진영에 패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좋은교육감추대시민회의(시민회의)’와 ‘선택 1219 올바른 교육감 추대를 위한 교육계 원로회의(원로회의)’가 23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연대하기로 합의한 이유다. 두 단체는 이돈희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포함한 10명의 후보자 추천심사위원을 확정하고, 다음 달 2일 단일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현재 거론되는 인물은 이규석 전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 이준순 서울교총 회장, 김진성 공교육살리기교장연합 대표, 홍후조 고려대 교수다.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부교육감)도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 및 진보진영도 단일화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민주노총서울본부 등 100여 개 단체가 참여한 ‘2012 민주진보진영 서울교육감 추대위원회(추대위)’는 다음 달 4일 단일 후보를 선출할 계획이다.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부영 전 서울시 교육위원, 송순재 전 서울시교육연수원장, 김윤자 한신대 교수 등 4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대학교수와 전 서울시의원 등 두세 명이 추가로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 일각에선 대선과 함께 치르는 선거라 정치권의 움직임도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사실상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 역할이 예상되므로 정치권에서 제3의 인물을 내세울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문제가 예상보다 어려웠지만 단서를 잘 찾아낸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1992년 7월 23일자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주인공은 당시 18세 박지웅 군. 그해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 학생으로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대학에 진학해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겠다던 고교 3학년 학생은 17년이 지난 뒤 동아일보 지면에 다시 등장했다. 2009년 7월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 100인’에 선정되면서였다. 미국 코넬대의 박지웅 교수(38) 이야기다. 그는 서울과학고 2기 졸업생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3년 만에 졸업했다. “과학고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 의사 가운을 입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서울과학고의 교육 방식은 끊임없이 그의 창의력을 건드렸다. 과학도가 되겠다는 그의 꿈을 계속 붙잡아준 힘이다. 서울과학고는 1989년 개교한 뒤 수많은 과학 인재를 배출했다. 특히 2009년 ‘과학영재학교’로 전환한 뒤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개교 이래 국제과학올림피아드 대표로 참가한 서울과학고 학생은 241명. 한국 대표의 44%에 이른다. 올 2월까지 서울과학고 졸업생 3105명 중 박사 학위 취득자는 522명.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졸업생만 131명이다. 유명 학자가 수두룩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조정후 교수(1기)는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구글 검색엔진 개발에 참여해 지명도를 높였다. 코넬대 서국원 교수(5기)는 2008년 미 공군과학연구단(AFOSR)이 뽑은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송은지 교수(1기)와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4기)도 동문이다. 비결이 뭘까. 우선 쌍방향인 교육원칙. 올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2위를 차지한 1학년 김동률 군은 학생의 답변을 유도하는 식의 학습에 익숙하지 않아 입학 직후 힘들어했다. 교사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입이 트이고,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성취도가 쭉 올라갔다. 신학수 서울과학고 융합인재교육기획부장은 “입학생은 최소 3개월 동안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때를 벗는 데 애를 먹는다”며 웃었다. 대학 수준을 뛰어넘는 연구 활동도 눈에 띈다. 연구 활동과 관련된 이수 학점은 30학점. 학생들은 2명이 팀을 이뤄 과제연구를 한다. 대학교수가 내놓는 주제를 몇 달 동안 고민하기도 한다. 결과물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2009년 이후 매년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게재된 10여 편의 논문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과학고는 올해 제26회 ‘인촌상’ 교육 부문을 수상했다. 교사의 우수한 자질도 중요한 점이다. 교사들은 3단계 공모절차를 통과해야 교단에 설 수 있다. 서류심사와 수업시연, 그리고 심층면접. 한 교사는 “약 30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시연 과정에서 실제 올림피아드 수준의 문제를 몇 개 풀었다. 대입시험 볼 때보다 더 떨렸다”고 말했다. 최병수 서울과학고 교장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과 평판도 등까지 세밀하게 조사해 임용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과학고가 또 한 번 쾌거를 이뤘다. 광주에서 열린 국제천문올림피아드(IAO)에서 1학년 최혁 군이 23일 금메달을 수상했다. 최 군은 “평소 학교에서 익힌 문제풀이 방식을 적용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한국에선 최 군을 비롯해 주성준 군(경기과학고 1학년), 박기영 군(신서중 3학년)이 금메달을 받았다. 김태욱 군(한성과학고 1학년)은 은메달, 조준혁 군(대구과학고 2학년)과 주원철 군(상계제일중 3학년)은 각각 동메달을 받았다. 한국은 주니어그룹(15세 이하)과 시니어그룹(17세 이하)으로 나눠 17일부터 진행된 이번 올림피아드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003년 제8회 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후 5번째 종합 1위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야, 문어대가리!” 이 말을 듣는 순간 지연이(가명)의 눈이 뒤집혔다. 뒤를 돌아 째려봤다.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었다. 머릿속 회로가 끊겨버린 느낌.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엔 이미 평정심을 잃은 후였다. 친구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마가 책상에 부딪쳤다. 피가 보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미안해서일까, 화가 나서일까. 눈에선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불면증과 우울증 부르기도 지연이는 내성적인 고3 수험생이다. 친구들과 크게 말다툼을 한 적도 없다. 그런 아이가 얼마 전 교실에서 친구를 다치게 했다. 이유가 뭘까. 사건의 발단은 3개월 전. 아침에 머리를 감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 손에 쥐어졌다. 탈모는 멈추지 않았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동그랗고 하얀 자국이 머리 곳곳에 생겼다. 병원에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 예민하고 걱정이 많긴 했지만…. 이후 불면증과 우울증이 생겼다. 성격도 공격적으로 변했다. 친구가 문어대가리라고 놀리자 발끈하고 일을 저지른 이유다. 지연이의 어머니는 “수능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애가 학교에도 안 가려고 한다. 가족 모두 애만 태우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연이처럼 탈모로 고민하는 10대가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0대 탈모환자는 전체 환자의 10%를 이미 넘었다. 진료를 받은 10대 환자가 계속 늘어 2만 명에 육박한다. 특히 최근엔 여고생 탈모 환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탈모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이문원 원장(이문원한의원)은 “5년 전만 해도 치료받으러 오는 여고생은 남학생의 20% 정도였다. 최근에는 절반 이상이다”고 말했다. 서울 A여고 인근 미용실의 이모 원장은 “요즘 여학생들이 탈모 상담을 많이 해서 본의 아니게 두피 관리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나친 다이어트도 문제 본보 기자는 17일 오후 서울 강동구 B여고 학생 80명을 직접 만났다. 머리가 빠져 고민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8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탈모 클리닉이나 병원에 가본 적이 있다는 학생이 6명이었다. 최민서 양(고3)은 “반 년쯤 전부터 머리가 빠졌다. 뒤에 앉은 친구가 내 머리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아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고교생 탈모 환자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학업 스트레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0여 일 앞둔 지금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점. 서울 세화여고의 원유신 교감은 “여고생은 입시철에 아주 예민하다. 고2 후반기쯤부터 탈모 증세와 불면증을 호소하는 학생이 늘어난다”고 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입시 제도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 수능, 논술, 면접, 자기소개서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다. 그만큼 늘어난 스트레스는 탈모에 직격탄이 된다. 여고생 사이에 부는 다이어트 열풍도 원인이다. 김도영 교수(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피부과)는 “지나친 다이어트는 성장기 호르몬 분비에 악영향을 준다. 또한 불규칙한 식생활로 이어져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 모든 게 탈모의 직접 원인이다”고 말했다. 무의식 중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말아서 꼬는 습관도 좋지 않다. 두피를 긴장시켜 탈모를 부추긴다. 또 시간이 없다고 머리를 대충 말리는 습관, 제대로 감지 않는 습관도 탈모 가능성을 높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수학이랑 과학이 어렵긴 하지만, 이과에서 올(all) 1등급은 대학 자유이용권이라고들 하니까요. 취업에도 이과가 유리할 것 같아요.”(고등학교 1학년 김모 양) ‘이과’ 바람이 여학생들에게까지 불고 있다. 현재 고교 1학년은 올해 안에 문·이과를 결정해야 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문·이과 구분이 없어졌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편의상 학생들을 두 계열로 나눈다. 최근 학교들이 예비조사를 한 결과 여고에서도 이과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숙명여고에서는 내년 2학년부터 이과가 1개 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15개 반 중 5개뿐이다. 차세일 교감은 “예비조사를 해보니 이과를 택하겠다는 학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여고도 내년에 11개 반 중 5개가 이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4개다. 안연근 진로지도교사는 “남고처럼 절반을 훨씬 넘는 수준까지는 되지 못하지만, 이과를 기피했던 여고에서 이 정도 변화는 큰 것”이라고 했다. 광주 대광여고도 현재는 이과가 12개 반 중 5곳뿐이지만, 내년에는 6곳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개 반을 늘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학급당 인원이 늘어나는 학교도 있다. 대구 효성여고는 내년에도 올해처럼 10개 반 중 4개가 이과다. 하지만 이동완 교무부장은 “과거에는 문과는 학급당 53명, 이과는 43명 정도였는데 이제 그 차이가 없어질 것 같다. 그만큼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같은 성적이라도 이과가 대학 가기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때문이다.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대학 정원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과 수능 응시생이 문과보다 훨씬 적다. 지난해 수능에서 이과형인 수리‘가’형을 고른 수험생은 25.1%(16만2113명)였고 수리‘나’형은 74.9%(48만4974명)였다. 문과에 비해 수험생 수가 적은 이과가 대학에 진학하기 수월하다는 뜻이다. 계속되는 취업난으로 여학생의 인식 변화가 생긴 영향도 크다. 박승동 서초 메가스터디 원장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문과를 나와 봐야 마땅히 갈 만한 전공이 없고 취업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특히 문과 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법대가 없어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현재 고1이 대학에 가는 201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대폭 확대되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을 병행 중인 12개 대학 중 동국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의전원을 폐지한다. 이에 따라 2015학년도에는 의대 정원이 현재 14곳에서 25곳으로 늘어난다. 박권우 서울 이대부고 입시전략실장은 “아예 의대를 노리고 이과를 선택하는 상위권 여학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일교육컨설팅의 김영일 대표는 “학부모들에게 ‘수학 못한다고 이과 안 가는 건 바보짓’이라고 강조한다. 대입정원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도, 취업 면에서도 이과가 대세다”라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청년층(25∼34세)의 70% 이상이 대학에 가는 게 맞다.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은 교육 개도국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사업국장인 디르크 판 다머 씨(사진)는 11일 한국의 고등교육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10∼12일 인천 연수구 쉐라톤인천호텔에서 진행된 OECD 국제교육지표사업(INES) 회의 참석차 한국에 왔다. INES 회의는 34개 OECD 회원국과 주요 20개국(G20)의 교육체제를 비교 분석하는 행사로 매년 세계 각지에서 6회 열린다. 이 회의를 토대로 OECD는 교육지표를 개발해 매년 발표한다. 다머 국장은 서로 다른 교육제도를 가진 국가 사이에 합의를 도출해 일반화된 지표를 만드는 부분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개별 국가의 비판에 대해서는 “우리는 통계만 제시한다. 어떤 시스템이 더 좋다는 평가는 물론이고 정치·이념적인 판단도 배제한다. 결과 자체에 직접적인 가치를 부여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했다. 외부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여러 국가가 서로 검토하게 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 교사 평가에 대한 의견은 단호했다. 교사의 발전을 위해 강한 자극제 역할을 하므로 차등 연봉을 통해서라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한국에서 최근 학교 폭력이 뜨거운 이슈란 걸 안다”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의 통합 또는 사회 네트워크가 상당히 끈끈하다. 한편으로는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쌓인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인천=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 프롤로그―소년원 운동장에서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군대 훈련병들이 떠올랐다. 가까이 갔다. 좀 달라 보였다. 한 아이는 팔에 용 문신을 했다. 다른 아이의 다리에는 칼자국이 보였다. 민준이(가명·17)는 이 중 한 명이다. 다부진 체격. 유독 얼굴이 어두웠다. 그때 한 여성이 다가갔다. 친누나 같이 푸근한 미소 때문일까. 잔뜩 경계하던 민준이의 입이 트였다. 민준이는 축구선수였다. 집이 가난했다. 그래서 감독이 차별한다고 생각했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결국 감독에게 크게 대들다가 학교를 뛰쳐나갔다.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다. 얘기를 듣는 여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축구하는 사람 모두, 이런저런 상처가 있지. 나도 있었고…. 지금이라도 후회하고 뉘우치면 그걸로 됐다.” 따뜻한 마음을 읽었을까. 민준이가 흐느꼈다. 둘은 공을 들고 일어섰다. 》 광주 광산구의 고룡정보산업학교. 일반인들은 소년원이라고 부른다. 민준이는 8일 오후 신나게 공을 찼다. 축구부를 그만두고 처음이었다. 이날 30분 넘게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민준이와 민준이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정말 좋다.” “누나들을 보니 괜히 설렌다. 축구까지 잘하니 부럽다.” “다음엔 편지도 들고 와달라.” 소년원을 찾은 이들은 지영주(29) 이하린(20) 김진희 씨(21). 호남대 축구학과 여학생 3인방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들.○ 영주 이야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수채화를 옮겨 놓은 듯한 잔디밭. 날렵한 자태를 뽐내는 과녁. 중3 겨울 무렵, 경남체고의 양궁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양궁장에 처음 갔을 때다. 부모는 반대했다. “절대 안 돼.” 집안일이나 도우라 했다. 낙심한 채 몇 개월이 흘렀다. 누가 찾아왔다. 얼굴이 까맸다. 축구부 감독. 여자 선수가 드물던 시절이라 운동 좀 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힘들게 허락을 받았다. 고향인 경남 합천을 떠나 마산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훈련 첫날.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공만 잡으면 넘어졌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경기 때면 다른 선수들의 부모가 와서 응원했다. 자기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다행히 대학에 갔다. 축구 특기생으로. 기회가 보였다. 실력만 좋으면 인정받는 분위기. 기술이 몸에 붙기 시작했다. 욕심이 생겼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발뒤꿈치가 아렸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오산이었다.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 갔더니 진단이 나왔다. 족저근막염. 완치가 어려울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안 될 운명인가 했다. 한동안 축구화를 꺼내지 않았다. 며칠 뒤 친구가 집에 왔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녀석. 실력도 좋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어제 축구 그만뒀어.” 친오빠가 크게 사고를 쳐서 당장 돈 버는 게 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을 꼭 붙잡았다. “넌 축구공 만질 여유는 있잖아. 꼭 선수로 성공해라. 그래야 나도 미련이 덜 남을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슴속 꺼져 가던 불이 확 지펴지는 느낌. 더 주저앉을 여유가 없었다. 재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몸은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왔다. 피는 더 뜨거워졌다. 2004년 졸업하면서 실업팀에 스카우트됐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엔 초등학교 코치, 심판, 축구교실 지도자를 지냈다. 그러다 대학에 다시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인생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그래서 원서를 썼다. 호남대 축구학과에.○ 하린이 이야기 “어쩜, 이렇게 예쁠까.” 지나는 사람마다 소녀를 보곤 이런 말을 했다. 소녀는 말이 별로 없었다. 수줍음이 많았다. 가끔 눈빛이 살아날 때가 있었다. 남을 꾸며줄 때. 피부미용사이던 어머니 피를 물려받았을까. 중학생 때부터 미용 일을 배웠다.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호남대 뷰티미용학과에 갔다. 꿈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점점 멀어져 갔다. 신이 나지 않았다.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었다. 남을 꾸며 주는 대신 자신을 치장하느라 바빴다. 어느 날,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췄다. 밤 10시가 지난 늦은 시간. 시끌시끌했다. 호기심에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가 봤다. 1시간 넘게 넋을 잃고 지켜봤다. 축구부 선수들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켜만 봐도 손에 땀이 가득 찼다. 가슴속 심지에 불이 붙었다. 당시에는 축구 규칙도 몰랐다. 하지만 결심했다. 축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저 뜨거운 열정을 나누고 싶다고. 축구 선수인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가 무릎을 크게 다쳤다. 그래서 부상과 관련된 책을 다 찾아봤다. 서울에 있는 병원도 직접 알아봤다. 이렇게 도와주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제대로 축구를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옮겼다. 호남대 축구학과로.○ 진희 이야기 아버지는 항상 첫째가 씩씩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시켰다. 재능이 있었다.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고교에 온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골반이 끊어질 듯 아팠다. 10분을 앉아 있기 힘들 만큼 고통이 지속됐다. 병원에선 선천적으로 골반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 거라 했다. 이날 저녁. 긴 가족회의 끝에 태권도를 그만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마침 태권도에 흥미를 잃어 가던 터라 마음이 시원했다. 하지만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 춥지도 않은데 몸이 덜덜 떨렸다. 고민만 하다 고교 시절을 보냈다. 영남대 체육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생활은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수동적으로 따라만 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 몇 달 뒤 자퇴했다. 친구랑 여행을 다녔다. 제주, 태백, 남해…. 전국을 훑었다. 신기했다. 여행지마다 축구 대회가 열렸다. 글쓰기도 원래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버이날만 쓰는 편지를 평소에 ‘뿌리는’ 수준으로 많이 보냈다. 중고교 시절에는 신문부 활동을 했다. 학생기자 직함만 달면 신이 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축구 기자가 되면 어떨까. 그래서 인터넷 매체 축구 기자로 활동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축구 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를 인터뷰할 때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축구 기자가 되자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서를 냈다. 호남대 축구학과에.○ 에필로그―학교에서 이들은 이렇게 만났다. 학년은 서로 다르다. 영주는 졸업학력이 인정돼 3학년, 하린이는 전과해서 2학년, 진희는 1학년. 어쨌든 축구학과는 올해가 처음이다. 학기 초에는 각자 다른 이유로 고생했다. 영주는 많은 나이가 부끄러웠단다. “첫 수업 시간에 학생회장이 뭔가 설명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물었죠. 몇 살이냐고. 스물넷이라기에 ‘나는 계란 한판’이라 했어요. 분위기가 ‘싸’해졌죠. 그때 생각했어요. 조용히 지내자고.” 하린이는 처음부터 화제였다. 학과가 개설된 이래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 여학생은 처음이었다. “답답했죠. 화장한다고 축구 공부 못 하는 게 아닌데. 남자친구 만들러 왔다는 등 이상한 소문에 속이 상했어요.” 진희는 낯선 환경이 힘들었다. 한동안 밥을 혼자 먹었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탔다. “거의 만날 고향 친구들과 밤에 얘기하며 울었어요. 전염병 환자가 된 기분이었죠.” 학기 초, MT를 갔을 때 3명은 같은 방을 썼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때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하나는 또렷이 기억했다. 셋이서 학과의 중심이 되자는 약속. 이들은 약속을 지켰을까. 호남대 축구학과의 장재훈 교수는 “학과 성적, 동아리 활동, 어학 등 모든 면에서 여학생 3총사가 학과 상위권이다. 축구학과의 대표 브랜드”라고 치켜세웠다. 호남대 축구학과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박기인 이사장이 직접 축구부를 챙길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전문 인재를 육성하자며 2005년 이 학과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꿈이 영그는 중이다. 나이, 고향, 성격, 하던 일에 공통점은 없다. 목표 역시 지도자(영주) 행정가(하린) 기자(진희)로 서로 다르다. 유일한 공통분모는 축구. 인터뷰가 끝날 때쯤 물어봤다. “여자 선배가 별로 없어 걱정되지 않느냐”고.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편견이 있다면 실력으로 뻥 걷어차 버리죠.”광주=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그때 그 장면. 충격이었다. 당사자는 아무 거리낌 없었는데. 주변 학생들은 히죽히죽 웃었는데. 정작 교사인 나는 무기력했다. 머릿속에선 호통을 쳤지만 수업 시간 내내 칠판만 응시했다. 평소 장난꾸러기로 유명한 남학생이긴 했다. 그래도 옆자리 여학생 치마 속을 더듬다니. 당황스러웠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초등학교 여교사 이모 씨·33)‘분노가 치밀었다, 딸은 ‘남자친구랑 신체접촉하러 학교에 일찍 나오는 친구가 있다’며 웃었다. 수업 도중 선생님 몰래 몸을 더듬는 커플도 많다고 했다. 말을 듣고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전학을 보내야 할까. 고교는 외국어고를 보내면 좀 괜찮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딸은 이런 내 마음을 알까.’(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김모 씨·43)‘답답하다. 같은 학교 여자친구랑 사귄 지 두 달째. 아직 손밖에 못 잡았다. 친구들은 ‘어디까지 갔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다. 쪽팔린다. 분명히 다른 남자랑 사귄 경험은 있을 텐데. 만지고 싶다. ‘쪽(키스마크)’이라도 있어야 친구들이 부러워할 텐데.’(고교생 이모 군·17)10대들의 ‘교내 애정 행각’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교내에서 손잡고, 키스하고, 심지어 더 심한 신체 접촉에도 거리낌이 없다.서울 A중학교 교사는 “10년 전만 해도 학교 밖에서 손잡고 다니는 애들은 있었어도, 학교 안은 나름 신성한 공간이었다. 몇 년 새 울타리가 무너진 느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고교생 김지현 양(18)은 “남학생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여학생을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의뢰해 교사 1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교내에서 남녀 학생이 손잡거나 팔짱 낀 모습을 본 적 있다’는 응답은 65.6%나 됐다. ‘10회 이상 목격했다’는 대답도 25.9%에 달했다. ‘포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39.7%, ‘키스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는 응답은 21.9%였다. ‘포옹이나 키스 이상의 신체 접촉을 본 적 있다’는 응답자는 3명 중 1명꼴이었다. 10명 중 1명은 10회 이상 봤다고 답했다.교직 경력 5년 이상인 교사 149명 중 58명은 ‘5년 전과 비교해 교내 신체 접촉 정도가 아주 심해졌다’고 말했다. ‘조금 심해졌다’는 응답자도 61명이었다. ‘별 차이 없다’는 28명, ‘조금 덜하다’는 2명에 그쳤고, ‘아주 덜하다’는 없었다.학생들이 교내에서 애정 표현의 수준을 넘어 애정 행위를 하는 모습에 대해 교사들은 “당황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젊은 여교사들은 수업까지 심각하게 방해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A고교 여교사 임모 씨는 말했다. “수업 시간에 남학생이 여학생 허벅지를 만지기에 수업 끝나고 한마디 했어요. 여자친군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더군요. 그 뒤론 수업 시간에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빌죠.”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전날 밤 ‘야동’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 수업 시간에 견딜 수가 없다. 여자친구 사귀면 반드시 하고 싶다.”(고교생 B 군) “여학생들이 먼저 들이댈 때도 많다. ‘일진’이 되려면 최소한 교실 안에서 키스 정도는 해야 자격이 있다.”(중학생 C 군)문제는 과도한 신체 접촉으로 10대의 성 관념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총 김항원 교권본부장은 “교내 신체 접촉은 ‘도미노’ 작용을 일으켜 다수 학생의 마음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현숙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상임대표는 “여학생의 경우 교내 신체 접촉이 ‘낙인’이 돼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성적인 자기결정을 할 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서울의 사립명문 A대에 다니는 김진규(가명·21) 씨.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고향인 경남 창원시에 내려갔다. 일찌감치 귀향한 이유는 논술 과외를 하기 위해서다. 추석 연휴 5일 동안 하루 6시간씩 고교 3학년 수험생 3명을 가르쳤다. 고향에선 이미 명강사로 이름났다. 입시 컨설팅을 포함해 1인당 120만 원을 받았다. 김 씨는 “추석 연휴 동안 딱 하루, 고향 집에서 쉬었다. 가족 얼굴보다 수험생들 얼굴을 더 많이 봤다. 고향 친구도 못 만났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김 씨처럼 ‘귀향 과외’를 하는 대학생이 올해 크게 늘었다. 대학생 송선미 씨(22)는 “고향에서 과외에 집중하기 위해 연휴 전후로 며칠씩 학교에 안 나온 친구가 주변에만 1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귀향 대학생들은 수험생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데다 입시를 직접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시 컨설팅, 논술 등 수시 관련 정보에도 밝아 지방 학부모에게 인기가 많다. 올해 처음 귀향 과외를 한 김선형 씨(21)는 말했다. “불황에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특히 올해 추석 기간은 고3 수험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10월 초인 데다 3일 개천절까지 더해 5일 이상 연휴로 이어지니 대학생들이 대목으로 여긴 거죠.” 고향이 서울인 대학생들은 ‘스터디룸 과외’로 추석 특수를 누렸다. B대 법학과 졸업 예정인 B 씨(25·여)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하루 3시간씩 신촌 스터디룸에서 하는 특강을 공고했다. 4∼6명을 대상으로 팀당 90만 원 정도. 그는 “주요 대학의 논술 기출문제를 엄선해 개별 첨삭해준다”고 소개했다. 고교생이 많이 모이는 네이버의 어느 카페에는 추석을 앞두고 이처럼 대학생의 ‘추석 논술 특강’ 모집 글이 앞다퉈 올라왔다. 대학생들은 수시 논술전형으로 합격했거나 학원에서 자기소개서를 첨삭한 경험이 있다며 수험생들을 유혹했다. 대학생의 ‘1대1 맞춤형 과외’도 추석 연휴를 달궜다. 보통 논술이나 특정 과목을 3일에서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식이다. 최소 기간에 최대 효과를 끌어내준다고 선전한다. 대치동의 논술학원 강사 C 씨는 “상대적으로 수험생에게 친근한 대학생의 강점을 극대화한 방식이다. 대개 학생 수십 명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선 이렇게 유연한 지도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과외는 대부분 은밀하게 진행된다. 수강료는 대부분 고액이다.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김영선 씨(44·서울 서초구)는 “강남 일대에선 이미 추석 한 달 전부터 대학생 과외 선생 모시기 전쟁이 있었다. 최소 50만 원 이상의 고액이 오간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부는 올해 추석 연휴 동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7개 학원중점관리구역을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벌였지만 대학생 고액 과외는 거의 적발하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대학생의 고액 맞춤형 과외는 소규모인 데다 유연하게 치고 빠져 적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공부를 잘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대인관계가 좋았다. 밝고 착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그런 그녀를 좋아했다. 겉으론 한없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 꿈은 무엇일까. 친구들은 학기 초 진로상담 시간 때마다 장래희망을 잘도 적었다. 소녀는 쓸 말이 없었다. 공무원, 의사, 학자…. 어느 직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는 대학을 졸업하면 고향 나라 일본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치라고 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초조해하던 소녀는….○ 소녀, 꿈이 생기다 학교에 지역 고교의 진로상담교사가 찾아왔다. 8학년 봄이었다. 학교 설명회를 위해서였다. 미국은 유치원반에서 시작해 12학년까지 있다. 7, 8학년은 한국의 중학교 3학년, 9∼12학년은 고교에 해당한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소녀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상담교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어느 새 소녀의 머릿속엔 희망이 생겼다. 농업과학 관련 특성화 학교인 카노가파크 고교에 흠뻑 빠졌다. 소녀는 원래 동식물을 사랑했다. 생명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교 건물에서 하는 공부보다 땅을 밟아가며 몸으로 배우는 공부가 좋았다. 카노가파크 고교에서는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이후 소녀는 몇 차례 그 학교를 찾아갔다. 시설을 눈으로 확인하고 지도 교사로부터 수업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중학교의 진로상담 시간도 충분히 활용했다. 결국 카노가파크 고교에 진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에도 같은 계열로 진학해 역시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주인공은 일본계 미국인인 세라 이시다 씨. 현재 모교인 카노가파크 고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원래는 연구실에서 농업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모교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후배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교단생활은 만족스럽다. 이시다 씨는 말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본인과 부모가 함께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요. 진로가 결정되면 고교 때부터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죠.”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요? 나 역시 남들이 선호하는 전공을 선택해 별 생각 없이 대학에 진학했겠죠. 어쩌면 아직까지도 내 적성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었겠죠.” ○ 학생들 꿈 어루만져주는 마그넷 스쿨 로스앤젤레스통합교육구(LAUSD) 내에 위치한 카노가파크 고교는 3개의 작은 학교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하나가 농업과학 분야를 특성화한 마그넷스쿨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무역·경영 분야를 특성화한 마그넷스쿨, 또 하나는 지역 학생을 선발하는 일반 고교다. 마그넷스쿨은 외국어 수학 과학 예술 컴퓨터 등의 분야를 특성화한 공립학교다. 학생을 자석(마그넷)처럼 끌어당긴다는 뜻을 학교 이름에 담았다. LAUSD 내 학교들의 학생 구성이 인종별로 편중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77년 도입했다. 학군보다는 학생의 재능을 우선시하면 학교 간 격차도 줄어들 거란 판단에서였다. 이 판단은 주효했다. LA 내 마그넷스쿨에 접수되는 신청서는 매년 7만 건. 경쟁률은 보통 3 대 1을 넘긴다. 마그넷스쿨은 미국 진로 교육의 시발점이자 대표 교육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카노가파크 고교 농업과학 관련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최소 8개의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 정부부처나 농장을 방문하는 일정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잡혀 있다. 전문가가 강연하는 횟수도 매 학기 3회를 넘어선다. 정원(180명)의 절반 이상은 대학과 기업에서 인턴 실습을 하는 기회를 갖는다. 교내에는 6070m²에 이르는 야외 실험실이 있다. 실험실 내 2개의 온실 안에선 토마토, 해바라기 등 수십 가지 작물을 기른다. 유기농 작물만을 재배하는 정원, 관개 시설도 있다. 또 말 양 염소 돼지 닭 토끼 등 10여 종의 동물을 기르고 있다. 학교 프로그램 관리자인 브라이언 요크 씨는 “200만 달러(약 22억 원) 이상을 야외 실험실에 투입했지만 학생들이 얻는 ‘살아있는 지식’에 비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 제임스 군(17)은 “교과서로만 배우던 내용을 직접 관찰하고 만져보면 머리에 콱 박힌다. 전공에 대한 확신도 선다”고 했다. 마그넷스쿨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해 7월 미국 전체 공립고 500개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10개 고교를 특별히 지목했다.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높음에도 발군의 교육성과를 낸 ‘기적의 학교’. 이 중에서 4곳이 마그넷스쿨 같은 유형의 학교였다. 캘리포니아교육청 관계자는 “마그넷스쿨은 과학자 경찰 패션디자이너 등 학생들이 지닌 꿈을 일찌감치 어루만져주는 무대이자 산실”이라고 했다.○ ‘패스웨이’에서 길을 묻다 LA 인근의 글렌윌슨 고교. 생명공학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문답을 주고받았다. “동물 세포는 식물 세포와 어떻게 다르죠?” “동물 세포엔 세포벽이 없어요.” “그럼 세포벽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거지?” ‘스무 고개’ 같았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사이에 원석처럼 거칠었던 답변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시청각 교재와 각종 기재도 활용했다. 명칭만 대충 언급하고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학생들은 직접 보고 만지면서 원리를 눈과 손으로 이해했다. 교사인 지나샤 우데시 씨는 “우리 학교의 생명공학 수업 커리큘럼이나 실험 기재는 대학 교수도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글렌윌슨 고교는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 고교다. 그럼에도 ‘예술과 미디어’, ‘생명공학’ 분야에선 특성화고 못지않은 인력과 시설, 프로그램을 뽐낸다. 비결은 패스웨이(pathway)로 불리는 프로그램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에너지 및 시설 공학 △건강 과학 및 의료 기술 △마케팅, 판매, 서비스업 등 16가지로 나뉜다. 일반 고교에서는 이 가운데 학생·학부모의 선호, 지역적인 특성, 재정적인 능력을 고려해 2∼5개를 선택한다. 패스웨이를 선택하면 정부가 지원한다. 학교는 난이도를 조절해 관련 과목을 집중 배치한다. 지역사회, 기업체와 연계해 현장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학생은 학교가 운영하는 다양한 패스웨이 프로그램을 고려해 지원한다. 카노가파크 내 일반 고교는 ‘의료서비스’ 분야를 패스웨이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다. 하루는 이 학교 학생 로라 양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발작으로 쓰러졌다. 로라 양은 수업 시간에 배운 응급 서비스 기술을 이용해 응급조치를 취했다. 평소 마네킹을 두고 충분히 실습했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살린 로라 양은 인생을 의료서비스 분야에 걸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인근 병원에서 인턴도 했다. 로라 양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패스웨이 프로그램이 어머니는 물론이고 내 인생까지 바꿨어요.”로스앤젤레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유죄 확정으로 교육계의 좌파 진영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10년 선거를 통해 6개 시도에서 좌파 교육감이 나오자 좌파 진영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며 의욕적으로 나왔다. 실제로 좌파 교육감들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상황은 곽 교육감의 퇴진으로 달라졌다. 전남도교육청의 관계자는 “진보 교육감들을 이끄는 인물은 사실상 서울과 경기도의 교육감이다. 특히 서울시교육감의 상징성이 엄청나다. 전체의 6분의 1이 아니라 60%가 무너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곽 교육감에 대한 확정 판결 직후 기자들로부터 “진보 교육이 크게 위축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 교육감 역시 직무유기 혐의로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좌파 교육감들은 개혁과 청렴을 강조했지만 비리에 연루되기도 했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뇌물·횡령 사건으로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전남 교육의 부패 및 비리 척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와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선거 당시 CN커뮤니케이션즈(CNC)와 공모해 선거비용을 부풀린 의혹으로 6월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교과부와의 갈등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학교폭력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정부와 좌파 교육감 측이 제기한 소송은 14건에 이른다. 이처럼 바람 잘 날 없다 보니 좌파 진영에서는 ‘수난시대’란 말이 나온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느냐”면서도 “클린 교육에 앞장서야 할 교육감이 줄줄이 구설에 오르면서 진보교육 전체의 시야가 흐려진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선 무기력감을 호소한다. 서울의 A고교 교장은 “교육계 수장이 비리로 자리에서 물러나니 의욕이 꺾인다. 임기 내내 교육감 정책보다 수사·재판 과정만 지켜본 것 같다”고 전했다. 교육감들이 이처럼 잇따라 구속되거나 물의를 빚자 일각에선 직선제를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육 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바에는 임명제나 간선제 같은 방식이 낫다는 말이다. 이들은 선거비용으로 수십억 원을 모으고 쓰다 보니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현재의 주민직선제는 주민자치라는 대원칙에 부합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교직원에 의한 직선제나 검증 절차를 강화한 임명제 등 여러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운명의 날이 다가오는데도 그는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걱정하는 지인에게는 오히려 “목에 가시가 걸린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둔 2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진행자에게 쉴 틈을 거의 주지 않고 말을 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대법원이 순수하게 법리를 따르지 않고 이번 건을 법적인 처벌 대상으로 보면 역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루 전에도 같은 방송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금권선거가 판치는 저개발국에도 없는 ‘사후매수죄’라는 엉터리 법이 한국에만 있다.” 서울시교육청 곽노현 교육감 얘기다. 그는 27일 오전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진행될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사후매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확정되면 그는 교육감직을 상실한다. 보전 받았던 선거 비용 35억2000만 원도 반환해야 한다. 말 그대로 그의 운명은 ‘바람 앞 등불’ 신세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진실이 이긴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차분하게 기다리는 게 보기에 좋지 않을까.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재판부를 상대로 자신이 처벌되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다고 했다. 이는 법치주의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불쾌해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 역시 “재판부 판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재판 전에 스스로 법 기준을 세우는 행위가 법을 공부한 사람의 상식으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청 내부에서조차 “선고 며칠 전 동안만이라도 자중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곽 교육감은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구속 기소돼 4개월가량 수감된 경험이 있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출소 직후 교육감은 “관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대법원 앞은 벌써부터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뒤엉켜 시끌벅적하다. 이럴 때일수록 곽 교육감이 진중한 자세를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 전에, 강단에서 법정신을 가르쳤던 법학자였고 수도 서울의 교육을 책임졌던 수장(首長)이라서 더욱 그렇다.신진우 교육복지부 기자 niceshin@donga.com}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 눈앞엔 고속도로만 보인다. 남보다 빨리 이 길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린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달린다. 부산에 발을 딛는 순간에서야 깨닫는다. 아, 여기가 아니구나…. 국내 초중고교 학생 중에서 상당수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진로와 관련해서 말이다. 자신의 앞길을 부모 및 교사와 상의하며 선택하기보다는 방향과 목적지를 모르고 무작정 출발하는 식. 후회를 덜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고속도로만 있는 줄 알았다 세 명의 젊은이가 있다. 공통점이 있다. 사회생활을 이미 5년 이상 했어야 할 나이. 하지만 지금의 일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백수로 지냈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두 학창 시절 모범생 소리를 들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에 눌러 앉을 기회도 있었다. 이보인 씨(33). 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전형적인 ‘엄친아’였다. 대학 재학 중에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졸업 후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수학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과학고가 아닌 외고에 진학한 데는 누나의 영향이 컸다. 외고에 다니는 누나를 따라가는 길이 가장 좋은 줄 알았다. 점수에 맞춰 일본어과를 갔다. 외국어를 싫어했기에 난생 처음 시험지가 까맣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당시 그는 광고인이나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광고 종사자가 쓴 책을 보니 멋있어서, 회사원인 아버지가 좋아 보여서. 김은지 씨(27)와 윤채우리 씨(28)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진로를 결정했다. 김 씨의 선택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 의사가 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크다 보니 그게 자신의 길인 줄 알았다. TV 속 하얀 가운 입은 의사의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수학과 과학에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이과를 선택했다. 의대에 가려 했지만 시험에서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 서강대 화학공학과에 갔다. 공대에 가면 취업이 잘된다고 담임선생님이 설득했다. 윤 씨는 어릴 때부터 방송반 활동을 했지만 사학과에 갔다. 역시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고교 2, 3학년 담임이 모두 역사 담당이었다. 이들은 이과면 약사, 문과면 교사나 사서를 하라고 했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교사들은 성적에 맞는 대학 및 학과가 나열된 배치표를 쫙 펼쳤다. 가능하면 학생이 재수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듯했다. 학생들도 점수에 맞춰 지원하는 게 정답인 줄만 알았다. ○ 돌고 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 입학의 기쁨도 잠시, 이들의 고민은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이 씨는 복식부기와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졌다. 군 제대 뒤 창업을 선택했다. 한창 벤처 붐이 일었을 때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노래방 화면에 광고를 넣는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자금만 날렸다. 이후 고교 시절 꿈꿨던 광고 일이 생각나 광고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막상 부딪쳐 보니 밤낮도 없는 고된 일. 결국 적성과 무관한 통신 관련 대기업에 입사했다. 김 씨도 의대 편입 준비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하고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어느새 4학년. “불안감에 쫓겨 주변 친구들처럼 취업준비를 했죠.” 대기업에 입사했다. 취직하고 얼마 뒤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음속 답은 항상 ‘노(No)’였다. 미련 없이 사직서를 쓰고, 사업을 시작했다. 꽤 잘됐다. 하지만 10년 뒤를 내다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깨끗하게 접었다. 막연히 방송인을 꿈꾸던 윤 씨는 한글연구동아리, 국제교류박람회 기획, 베이징 올림픽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됐다. 현장 한가운데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자신에게 가장 맞았다. 2009년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로 학사 편입했다.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면 길이 보일 것 같아서였다. 이들은 지금에서야 자기 길을 찾았다. 이 씨는 지난해 6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SK행복나눔재단에 입사했다. 새롭게 눈을 뜬 사회 공헌 관련 공부를 위해 미국 케네디스쿨에 유학을 다녀온 뒤였다. 처자식이 있는 그로서는 쉽지 않았다. 김 씨는 관광 분야에서 일할 구상을 하면서 집필 활동을 한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 후배에게 들려주고 공유하는 지식 나눔 활동에도 열심이다. 윤 씨는 언론사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한다. 테니스 중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서 통역으로 인연을 맺었던 핸드볼 관계자들과의 끈끈한 인연도 도움이 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학창 시절 진로 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만 나눠 진로를 결정짓잖아요. 학생의 개성과 능력,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로 교육만 있다면 좀 더 일찍, 다양한 꿈들을 활짝 펼칠 수 있을 텐데요.”(김 씨) 인생 선배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이들은 자기 자신부터 진지하게 바라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현장을 찾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라고 당부했다. 김 씨는 말했다. “내가 겪은 만큼 꿈꾸는 시야가 넓어진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어젯밤 꿈. 또 그 얼굴을 봤다. 항상 눈만 마주치면 혀를 날름거리는 그 아이. 복도를 지날 때면 괜히 어깨를 슥 스치고 간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교실 문을 들어설 때면 숨이 막힌다. 얼마 전엔 학생 하나가 “피곤해 보인다. 어젯밤 좋은 데 갔느냐”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대놓고 놀린다. “남자친구가 힘은 좋으냐” “오늘 옷이 너무 야하다”고.여교사 김민지(가명) 씨. 서울의 사립 A중학교에 임용된 지 1년쯤 됐다. 인터뷰 중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울먹거리며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학교에서 1년쯤 지내니 이젠 아이들이 무서워요. 처음엔 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점점 심해지더군요. 얼마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까지 받고 있습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은 없어진 지 오래됐어요.”여교사를 상대로 하는 남학생들의 교내 성희롱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경북 포항의 B중학교에서는 여교사들이 집단으로 전근을 요청했다. 다른 학생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집단폭행을 일삼은 학생들을 훈계한 일이 화근이었다. 문제의 학생들은 이들 여교사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급기야 교무실까지 쫓아와 성희롱을 일삼았다. 결국 여교사들은 손을 들었다.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여교사들을 상대로 한 성희롱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전국 초중고교 여교사 360명 중에서 73명이 학생을 지도하다가 성(性)적으로 불쾌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학교에서 여교사 성희롱을 이유로 징계당한 학생이 있다는 응답자도 14명이나 됐다.유형별(복수응답 가능)로는 ‘언어로 인한 불쾌감’이 63명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접촉’(31명) ‘문자’(7명) ‘사진촬영’(3명) 순이었다. 교직경력 5년 이상인 여교사(341명)를 대상으로 ‘5년 전과 비교해 교내 학생에 의한 여교사 성희롱 실태가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45.5%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별 차이 없다는 응답은 44%, 덜하다는 응답은 7.9%에 그쳤다.부산시의회 김길용 교육위원장이 지난해 7∼10월 부산시내 초중고교 여교사 309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학생들로부터 성에 대한 불쾌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교사가 23.4%나 됐다.최근 성희롱이 빈번한 이유로 여교사들은 스마트폰 보급을 꼽았다. 학생들이 음란물을 접하기 쉬운 창구가 생겼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의 편리한 동영상 촬영 및 녹음 기능도 여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서울 A고의 여교사 최모 씨(11년차)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기능의 발달과 성희롱 수준이 비례 관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동아일보 설문조사에서도 ‘스마트폰 보급으로 성희롱 및 초상권 침해가 늘었느냐’는 질문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71.1%에 이르렀다. 일부 여교사는 화장실 가기도 불편해한다. 11.1%가 스마트폰 촬영을 할까 봐 화장실 가는 게 두려운 적이 있다고 답했다.교육현장이 학생 중심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학생의 인권을 위한 여러 기준과 방안이 마련됐지만 교사를 보호하는 수단은 오히려 줄었다. 여교사만을 위한 생활지도 노하우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서울 B고의 남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조숙해져 노련한데 많은 여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도 몰라요. 신경질을 내다 안 되면 남자 교사에게 의지하죠. 여교사들끼리 정보를 교류하는 노하우가 필요하고, 대응 매뉴얼도 마련해야 합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한국 사회를 이끄는 파워엘리트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통계로 다시 확인됐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서울대 졸업자가 가장 많았다. 고려대는 정·관계와 법조, 연세대는 경제와 의료 분야의 인재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했다. 동아일보가 한국 사회에 영향력이 가장 큰 직책과 직업을 정치 행정 경제 법조 의료 등 20개 분야로 나눠 전현직 10만7300명의 출신 대학 자료를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다. 서울대는 전체 20개 분야 중에서 △대통령 △프로스포츠 감독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제외한 17개 분야에서 1위였다. 최근 20년간 5부 요인의 56%, 부총리 및 장관의 55%, 현직 정부출연연구소장의 50%가 서울대를 졸업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각각 8개 분야에서 2위를 차지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3개 대학 출신은 10개 분야에서 1∼3위를 차지했다. 분야별로 보면 고려대는 △부총리 및 장관 △국회의원 △법조인 △4대 고시 합격자 △언론사 대표 △언론인 △비정부기구(NGO) 운동가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 8개 분야에서 2위였다. 연세대는 △5부 요인 △대학 총장 △대학 교수 △병원장 △의료인 △기업 최고경영자(CEO) △정부출연연구소장 △프로스포츠 감독 등 8개 분야에서 2위였다. 성균관대는 광역단체장 점유율이 2위(14.29%)로 고려대와 연세대를 앞섰다. 법조인과 4대 고시 합격자 역시 성균관대가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이어 가장 많았다. 다음은 한양대와 이화여대의 순이었다.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돈암동 강간미수범 잡았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식당에서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을 쫓아갔다고 작성자인 A 군(17)은 설명했다.검거 당시 상황도 자세하게 적었다. 성폭행범의 가방끈을 자기가 잡아 넘어뜨렸고 직접 신고했다고 자랑했다. 붙잡고 난 뒤 찍었다며 범인의 뒷모습 사진까지 올렸다. 누리꾼들은 지난달 28일 올라온 글을 보고 ‘참 멋있는 고등학생’이라며 칭찬했다. 일부 언론은 기사화했다. 그런데….○ 실제 뉴스처럼 그럴듯하게 조작독자의 제보를 받고 동아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대부분 거짓이었다. 경찰 관계자와 피해자의 아들 B 씨는 “당시 성폭행 미수 사건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A 군은 검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은 B 씨가 붙잡았다. A 군은 근처에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B 씨는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 범인을 붙잡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야속하고 안타까웠죠. 나중에 A 군의 글을 보고는 할 말이 없더군요. 철없는 고교생의 영웅심리라고 생각하더라도 사람 두 번 죽이는 듯해서 화가 납니다.”A 군의 글은 10대들의 온라인 거짓말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거짓말은 ‘소설’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구체적 내용을 담은 ‘뉴스’처럼 보일 정도. 거짓말이 다양하고 대담하고 정교해졌다는 뜻이다.예를 들어 전에는 ‘지구 멸망설’이나 ‘태양 폭발설’ 등 소설 같은 제목의 글이 많았다. 요즘은 실제 벌어진 일을 소재로 그럴듯하게 부풀리는 식이다. 태풍이 발생해 한반도로 다가오자 “제주도에서 조랑말이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한다.지난해부터 전남 순천, 경남 창원, 제주 서귀포에서 떠돌던 인신매매 괴담도 마찬가지다. 경찰에 붙잡힌 괴담 작성자는 대부분 10대 여학생이었다. 최근에는 손연재(리듬체조) 기성용(축구) 등 스포츠 스타를 사칭한 글이 페이스북에 이어졌다. 이 글들 또한 작성자의 상당수가 10대였다.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최근 5, 6년 사이 온라인에 뉴스 같은 거짓말이 부쩍 늘었다.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라 진짜 어린 학생들이 썼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말할 정도.○ 10대 대부분이 온라인 거짓말 경험동아일보가 서울 강동구 A고교의 학생 80명에게 물은 결과는 놀라웠다. 온라인에서 거짓으로 뉴스 같은 글을 작성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4명(92.5%)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중 12명은 ‘10회 이상’ 상습적으로 글을 남겼다고 했다.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42명이 ‘전혀 없다’고 했다.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해 11월 3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윤리문화실태조사에서도 10대의 73.8%가 허위 사실, 미확인 정보를 퍼뜨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온라인 거짓말이 교묘해진 데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큰 영향을 미쳤다. 뉴스 접근성이 좋아지고 유포 방법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신용태 한국인터넷윤리학회 부회장(숭실대 컴퓨터학과 교수)은 “10대들은 이제 학원을 오가면서까지 뉴스 헤드라인을 접한다. 글의 소재는 물론이고 쓰는 방식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온라인에서 관심받기를 즐기는 10대의 특성도 이런 거짓말을 부추긴다. 지난해 순천 인신매매 거짓말을 유포시킨 여중생도 경찰에서 “끔찍한 글을 사실인 양 올렸을 때 호기심을 느낀 누리꾼들의 조회수가 폭증했다.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지금 10대는 소통이 안 되는 외로운 세대다. 관심에 대한 집착이 더 자극적인 콘텐츠 양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흰 도복이 땀에 흥건히 젖었다. 커다란 체격에 앳된 얼굴. 소년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훈련이 고돼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죽은 강아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원래 동물을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을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개, 고양이 가릴 것 없이 집에 데려왔다. 엄마 몰래 옥상에서 키웠다. 한 푼이라도 용돈을 받으면 우유부터 사서 먹였다. 그렇게 아끼던 강아지가 병으로 죽었으니….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슬픔이 아픔이 됐다. 어린 가슴에 생채기가 생겼다.며칠 동안 입맛도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작은 애완동물 가게 앞. 구석에 있던 새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을 띤 손바닥만 한 새. 가게 앞에 서서 몇십 분 동안 바라봤다. 앵무새와의 첫 만남. 이땐 몰랐다.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 앵무새에 미치다머릿속에 그때 본 왕관앵무새가 자리 잡았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한 쌍을 샀다. 30만 원이란 거금을 주고. 애지중지 키웠다. 1년쯤 지났을까. 앵무새가 새끼를 4마리 낳았다. 별생각 없이 2마리를 가게에 갖고 갔다. 주인은 40만 원을 손에 쥐여줬다. 눈이 번쩍 뜨였다. 좋아하는 동물을 기르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소년은 사실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중3 때 유도를 시작한 이유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쏟을 만큼 즐겁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이때가 처음. 심장이 쿵쾅거렸다. 말 그대로 앵무새에게 미쳤다. 자료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성에 차지 않았다.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충분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앵무새 유랑’에 나섰다. 앵무새를 기르는 사람을 다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쉽진 않았다. 매일 합숙하는 유도부 특성상 토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오전까지가 가능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은 밀린 잠을 잔다고, 놀겠다고 했다. 소년은 노트와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앵무새 브리더(앵무새를 기르고 분양도 하는 사람)를 찾아 나섰다. 브리더들은 까다로웠다. 핵심 노하우를 꽁꽁 숨겼다.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심 끝에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젊은 피’ 전략. 앵무새를 정말 좋아하는 어린 학생이라면서 동정심에 호소했다. 다른 하나는 ‘바보’ 전략. 기본적인 지식조차 모르는 척하면 상대방이 경계를 해제하고 노하우를 풀어놓았다. 1년쯤 지났다. 고3이 됐을 무렵이다. 국내에서 자기만큼 앵무새를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됐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됐다. 좀 더 벌여 보자고. 중저가 앵무새 몇 마리를 기르는 수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고가의 앵무새를 기르자고 마음먹었다. 베란다를 개조해 수를 늘렸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루비노장미라는 고급스러운 앵무새.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280만 원.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데 이모가 입원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원래 정이 많던 소년은 유도 합숙소에서 하루 ‘휴가’를 얻을 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이모의 다리를 주물러줬다.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이모가 물었다.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니?” 머리에서는 무리한 부탁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앵무새요.” 이모는 가격을 듣고 크게 놀랐지만 간절한 눈빛을 읽었는지 지갑을 열었다. 결국 원하던 앵무새를 얻었다. 좌절, 그때 찾아온 친구소년은 베란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거실의 TV와 연결했다. TV 화면에 24시간 앵무새가 등장했다. 어머니는 가끔 말했다. 무슨 ‘동물의 왕국’을 찍느냐고. 소년의 귀엔 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앵무새만 보였다. 몇 개월이 지나 앵무새가 번식했다. 이 장면을 화면으로 직접 봤다. 소름 끼치는 감동.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루비노장미는 새끼를 5마리 낳았다. 인터넷으로 분양해 480만 원을 벌었다. 어머니한테 모두 드렸다. 부모가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고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됐다. 일을 더 벌였다.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앵무새 농장을 직접 만들었다. 앵무새를 분양해서 번 돈에 주말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을 합쳤다. 땅을 사고 사육장을 만들었다.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룰 듯했다. 자만심이 꿈틀거렸다. 국내 최고 앵무새 전문가가 됐다는 생각에. 이때였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가 처음으로 좌절한 시점이. 도라지앵무새를 80만 원 주고 사서 길렀다. 새끼를 분양했지만 20만 원도 못 받았다. 처음 살 때보다 더 좋은 종(種)이 나왔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자신감이 꺾였다. 의욕이 사라졌다.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그냥 그만둘까….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무렵, 앵무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발가락에 장애가 있었다.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이 갔다.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산에 있는 나무를 갖고 와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새장에 넣는 대신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4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앵무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에게 다가와 비비고, 아침마다 “안녕”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앵무새와 함께 있을 때의 행복함을 잊고 지냈구나. 앵무새를 만났을 때의 기쁨을 되찾으니 자신감이 다시 붙었다. 단순히 앵무새만 알아선 부족하다고 생각해 시장 현황을 공부했다. 마케팅 관련 서적을 사서 읽고, 저자를 찾아갔다. 부산에서 살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의경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남들은 가장 고되다는 시위 진압. 그의 눈엔 기회가 보였다.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되는 곳에 가기 전, 근처에 앵무새 키우는 곳이 있는지 알아봤다. 시간 날 때 찾아가 앵무새를 분양할 거래처를 뚫었다.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카카리키란 앵무새가 있었다. 100만 원이 넘던 새가 당시 1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앵무새를 기르는 유행이 관상조(새장에서 애완용으로 키우기에 적당한 조류)에서 애완조(곁에 두고 기르는 조류)로 바뀌면서였다. 애완조로 바꿀 순 없을까. 그는 우선 전국에서 구할 수 있는 카카리키를 다 사들였다. 어떤 브리더는 모이 값도 안 나온다며 거저 줬다. 이때부터 카카리키를 애완조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번식 장소와 기간, 모이 종류, 모이 주기 등 모든 방법을 다 시도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로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홍보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바로 팔지 않았다. 마리당 15만 원 이상으로 오르자 분양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카카리키로 2억 원을 벌었다.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동서대 경호학과에 다니는 김승수 씨(24) 얘기다. 지난해 1월 제대한 그는 앵무새 사업이 잘되자 농장을 2개로 늘렸다. 한 달 매출은 15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인건비를 들이지 않는 데다 사료값도 거의 나가지 않으니 대부분의 매출이 순이익으로 직결됐다. 그런데 올해 6월, 그는 번창하던 농장을 통째로 팔았다. 미국에 가기로 결정한 뒤였다. 학교는 해마다 100여 명을 뽑아 1년가량의 미국 연수를 지원한다. 그는 ‘앵무새 선진국’ 미국에서 다양한 앵무새를 만나고, 기르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었다. 문제는 영어 실력이었다. 학점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꿈만 믿고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1시간 넘게 앵무새 스토리를 얘기했다. 문을 나서는데 장제국 총장이 말했다. “이 정도 꿈과 열정이면 어딜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게다.” 자신감을 얻고 자기소개서를 냈다. 미국 연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나이에 비해 땅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200평(약 661m²) 넘는 땅을 사놓았다. 이유를 물었다.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갑자기 허름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됐죠. 어린 마음에 너무 부끄러웠어요. 친구들이랑 집에 갈 땐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죠.”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선 정말 악착같이 일했어요. 제가 중3이 돼서야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죠. 이젠 그때처럼 힘든 일이 닥치면 제가 나설 겁니다. 제 땅에 큰 집을 지어드리려고요.” 땅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앵무새 숲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귀여운 앵무새가 산책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장면,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아요?” 승수 씨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12일에 했다. 그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기사로 쓰겠다면서 앵무새 대통령이란 말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그는 과분하다면서 또 다른 꿈을 얘기했다. “외로운 홀몸노인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싶어요. 앵무새는 대화가 가능하고 애교를 잘 떨어요. 또 오래 살고 키우기가 쉬워요. 그분들에게 새로운 손자를 안겨주고 싶습니다.” 이 학생. 참 순수하고 기특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