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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취재원은 그냥 만나주지 않는다. 본보 기자가 지난해 11월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를 며칠째 맴돌던 때다. 당시 이 교수는 총상을 입은 북한 귀순 병사를 치료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교수와 마주친 곳은 그의 연구실 앞 화장실이었다. 이 교수는 화장실에 잠입해 기다린 기자에게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깔려 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는 ‘퇴로’를 귀띔해줬다. 며칠 뒤 본보에 는 기사가 실렸다. 결국 열흘간의 ‘뻗치기’(취재원 주변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방법)에도 이 교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 대신 청소아줌마와 구내식당 영양사, 병원 세탁실 직원, 동료 의료진 눈에 비친 이 교수의 모습을 기사로 옮겼다. 여당의 대권주자에서 성범죄 피의자로 전락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공인이 공적인 상황에 놓였으니 그 역시 ‘뻗치기’ 대상이다. 10일 안 전 지사가 은신하는 수도권 한 야산의 컨테이너 숙소를 가까스로 찾아냈다. 몇 걸음 다가서자 숙소 근처에서 누군가가 기자를 향해 활을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안 전 지사에게 거처를 제공한 지인이었다. 할 수 없이 ‘비무장지대’를 정하고 멀찍이 떨어진 자리를 잡았다. 본보가 20일 보도한 기사에도 안 전 지사의 말을 많이 담지 못했다. 열흘간 그의 행보를 살피고 주변 인물을 만나 기록한 메모를 종합했다.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매서웠다.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한 여성단체 주관 토론회에서는 본보 기사를 두고 “가치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보도”라고 비판했다. 새겨들을 지적이다. 발품 팔았다고 좋은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다. 다만 4개월 전 이 교수 관찰기를 보도했을 땐 “국민 영웅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지배적이었다. 같은 형식의 기사였지만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이 교수는 존경을, 안 전 지사는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뉴스 가치가 높은 관찰 대상이다. 두 사람을 최대한 정확히 관찰할 수 있게 가까운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섣부른 가치판단보다 눈앞의 상황을 선입견 없이 지켜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적 영웅에게서 진솔한 면모가, 여론의 몰매를 맞는 인물에게서 교묘한 꼼수가 포착되길 기다리곤 한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은 곧잘 배반당한다. 이것이 ‘뻗치기’의 묘미다. 미리 정답을 정해놓고 현장에 가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뻗치기’는 중립적이다. 그래서 “안 전 지사에 대해 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뻗치기 현장에 가는 후배에게 잔소리를 던진다. “보고 들은 대로만 쓰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도심을 가로지르는 서울국제마라톤은 전 세계에 서울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사진)은 15일 “최고 권위의 세계적 마라톤 대회라는 위상에 걸맞게 안전과 질서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국제마라톤 중계 영상은 해외 112개국에 송출된다. 이 청장은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과 함께 한강과 청계천, 동대문 등 서울의 명소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선수와 참가자 안전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찰청은 교통경찰 730여 명과 모범운전자 520여 명 등 3700여 명의 진행요원을 코스 곳곳에 배치해 대회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하고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 청장은 “대회 성공을 위해 코스 주변 주민들의 성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교통통제 플래카드와 입간판 등을 통해 일찍부터 홍보에 나섰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회 당일 오전 5시부터 8시 40분까지 출발지인 세종대로(광화문 삼거리∼세종대로 사거리) 양방향 전 차로의 교통을 통제한다. 오전 7시 50분부터 오후 1시 35분까지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잠실주경기장에 이르는 구간에서 순차적으로 진행 방향 전 차로 교통이 통제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조순형 의원이었다. “이거 우리가 처리 못 하면 구설수에 오를 겁니다. 이거 폐지해야 됩니다.” 2010년 3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 적막감이 돌았다. 조 의원이 말한 ‘이거’는 형법의 성폭력 친고죄 규정이다.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한다’는 바로 그 조항이다. “제발 없애 달라”는 여성단체 요구가 당시 절정이었다. “학계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 않을까요.”(장윤석 법안소위 위원장) “피해자에게 주도권을 주는 의미에서 계속 있는 게 오히려….”(손범규 의원) “고소 취하해 달라고 가해자들이 하도 괴롭혀서 피해자들 두 번 울어요.”(조 의원) 팽팽하던 토론은 8일 후인 그해 3월 30일까지 이어졌다. 장 위원장이 “정리를 좀 하겠다”고 나서면서 ‘폐지’ 측이 밀리기 시작했다. “성폭력특별법을 보면 성범죄는 경미한 경우 빼고는 대부분 친고죄가 배제돼 있습니다.” 열흘 전 시행된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을 통해 친고죄가 거의 사라진 마당에 형법상 친고죄 규정까지 없앨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자는 취지였다. 법무부 검찰국장 출신인 장 위원장의 지적에 여야 의원들은 반론하지 않았다. 당시 황희철 법무부 차관이 장 위원장을 거들었다. “친고죄를 연구해봤지만 성폭행범의 경우 몇 개 남아있지 않습니다.” 박영선 의원이 “외국은 친고죄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라고 맞섰다. 하지만 판세를 뒤집을 ‘팩트’가 없었다. “좀 더 검토해보자”는 기약 없는 다짐과 함께 회의는 끝났다. 당시 대부분의 성범죄에 친고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은 법조문을 읽어 보면 정확하지 않은 추론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장 위원장이 거론한 성폭력특별법 15조는 공중장소에서의 추행,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등의 경우 고소가 있어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 외 다른 성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라고 추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에 명시된 ‘그 외 다른 성범죄’는 특수강간과 장애인 간음, 미성년자 강간 등 가중처벌이 필요한 소수의 특수범죄뿐이다. 형법에 나오는 강간과 강제추행 등 일반적인 성범죄는 그 안에 없다. 형법을 고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성범죄가 친고죄 적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회의에 법조인 출신 의원들과 법무부 차관, 검찰국장, 법원행정처 차장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장 위원장의 법 해석에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튿날 본회의에서 몇몇 의원이 “왜 친고죄를 그대로 두느냐”고 항의한 것을 끝으로 관련 논의는 국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성폭력 친고죄 조항은 3년 뒤인 2013년 6월에야 폐지됐다. 늦어진 정의의 대가를 요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자가 치르고 있다. 그 3년 동안 벌어진 성폭력에는 지금의 정의가 닿지 않는다. 그날 법사위 회의에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습 성폭력 가중처벌 조항을 넣었다. 그 덕분에 2013년 6월 이전이라도 상습성이 입증되면 처벌할 길이 열렸다. 하지만 법사위원들은 이때도 오류를 범했다. ‘상습’ 문구를 형법에만 넣었다. 성폭력특별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특별법에 들어 있는 ‘업무상 위력 추행’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처럼 직장에서 하급자를 유린하는 상급자를 벌하는 조항이다. 이런 추행이야말로 가장 상습적으로 벌어지지만 8년 전 입법 과실 탓에 가중 처벌할 수 없다. 한 의원이 2015년 이를 바로잡는 법안을 냈지만 논의가 헛돌다 19대 국회 만료로 폐기됐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감수하며 연일 힘겹게 아픔을 꺼내놓는다. 눈물로 만든 진전의 기회를 입법자들이 허무하게 날리지 않았으면 한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모 형사는 5일 카카오톡 답변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출입국 기록상 일본에 있는 30대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경찰입니다. 지연이(가명) 보호자 되시죠?’ 물음에 대한 답은 끝내 없었다. 김 형사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지연이가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안 나왔더군요.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하지만 딱 네 글자. ‘잘 있어요.’ 김 형사는 바로 답장했다. ‘말로는 안 되고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초등학교 취학통지를 받고도 1월 예비소집에 불참한 아이들의 행방을 찾는 게 요즘 김 형사의 주 업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학대의 징조일 수 있다. 형사가 아이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면 사안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학교 측과 동주민센터가 주소지 등을 찾아봐도 행방이 묘연할 때 경찰로 공이 넘어온다. 지난달 서울 경찰로 아동의 소재 파악 요청이 온 22건 중 지연이는 마지막 ‘미확인’ 건이었다. 부모는 일본으로 출국했지만 지연이는 출국 기록이 없었다. 가끔 여권 영문이름에 오류가 있거나 이중국적자일 경우 출입국 기록이 검색되지 않는 때가 있다. 하지만 김 형사는 지연이의 실물 확인 없이 안심할 수 없었다. 예비소집 불출석은 어쩌면 아이가 보내는 간절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외면했다. 불출석 아동 소재 파악은 지난해 비로소 시작됐다. 올해가 두 번째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집 가스배관을 타고 맨발로 탈출한 열한 살 A 양, 욕실에서 감금된 채 부모 학대로 숨진 일곱 살 원영이가 여론에 불을 지핀 결과였다. A 양은 학교에 2년째 장기결석했지만 아무도 살피는 이가 없었다. 김 형사가 일본으로 보내는 ‘카톡 노크’는 혹시 있을 수 있는 음지에 볕을 들이는 이를테면 ‘햇볕정책’이다. ‘잘 있다’는 말 외에 답이 없던 지연이 보호자에게 김 형사는 결국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아이의 현재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십시오. 그게 없으면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지연이 보호자의 반응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랐네요. 곧 보낼게요.’ 몇 시간 뒤 김 형사의 카톡으로 한 아이가 천진하게 웃는 사진과 집 거실을 뛰노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전달됐다. ‘아이와 함께 2월 말 귀국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왔다. 사진과 동영상 속 아이는 김 형사가 지연이 친인척을 통해 미리 확보한 얼굴 사진과 일치했다. 촬영 시각도 전송 직전이었다. 김 형사는 안도하며 답장했다. ‘2월 말 귀국하시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투표권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 그들의 절규는 집 담장을 넘기 힘들다. 아동을 위한 정의는 감금되어 있기 일쑤다. 아동보호제도는 아이들의 눈물과 죽음 뒤에야 고작 한발씩 나아간 슬픈 진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일궈낸 제도의 울림이 작지 않다. 2016년 경남 고성에서 일곱 살 친딸을 때리고 굶겨 숨지게 한 어머니와 부천에서 여중생 딸을 죽게 한 뒤 1년간 시신을 방치한 목사 아버지는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 결과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해 고준희 양을 숨지게 한 부모 역시 비슷했다. 전국으로 확대되는 ‘위기아동 조기발견시스템’을 의식해 거짓 실종신고를 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아이들에게 ‘잘 있느냐’고 묻는 어른들의 노크가 더욱 집요해져야 할 것 같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2014년 세월호 침몰 때 승객 구조에 실패한 해경 김경일 전 경위의 재판 날이면 방청석 맨 뒤에 그의 20대 남매가 앉았다. 유족이 빼곡히 앉은 방청석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두 사람뿐이었다. 남매는 피고인석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재판이 끝나면 서둘러 빠져나갔다. 어느 날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둘 다 사범대를 나와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김 전 경위의 딸은 “저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 비극을 당했는데 선처를 바라는 저는 교사 자격이 없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김 전 경위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종희 소방경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다. 김 소방경은 건물 2층에 갇힌 인명 구조에 실패해 징계를 앞두고 있다. ‘2층 상황이 심각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신속히 대원을 투입하지 못했다. 사망자 29명 중 20명이 2층에서 발견됐다. 그는 25일 전화 통화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진압 당시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경위와 김 소방경은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촌각에 달렸던 ‘골든타임’에 해경과 소방의 말단 지휘관이었다. 김 전 경위는 34년 경력에 24차례 표창을 받았다. 김 소방경 역시 27년 근무하며 6차례 표창을 받은 베테랑이다. 두 사람 모두 아들이 뒤를 따랐다. 김 전 경위의 아들은 해경 전투경찰로 복무했다. 김 소방경의 아들은 현직 소방관이다. 구조 실패에 대한 두 사람의 해명은 비슷했다. “평소대로 대응했고,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조치했으며,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김 전 경위는 세월호 안에 수백 명이 남아 있는 걸 알고도 우선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해경 배에 옮겨 태웠다. 퇴선 방송이나 선내 진입 등 승객을 대피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소형 경비정(100t급) 지휘관이다. 주 업무가 불법어선 단속이었다. 인명 구조는 물에 빠진 사람을 몇 명 건져본 게 전부였다. 침몰하는 대형 여객선(6700t급)을 눈앞에 두고 그는 경험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 소방경은 불길에 휩싸인 건물 옆 액화석유가스(LPG) 탱크에 불이 붙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1994년 12명이 사망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스폭발 현장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119상황실로부터 ‘2층 구조’ 연락을 받은 뒤에도 가스통 지키기에 몰두했다. 3층과 옥상의 눈에 보이는 사람만 구조했다. 화재 초기 2층으로 가는 비상계단은 불이 크게 번지지 않은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김 전 경위와 김 소방경 모두 경험의 덫에 빠져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처럼 노련한 지휘관도 긴박한 현장에서는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최소화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상급자의 몫이다. 그러나 상급자들은 책임 소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말단 지휘관이 모두 떠안는다면 참사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와 해경 지휘부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김 전 경위가 유일한 정부 측 ‘책임자’였다. 당시 한 검찰 간부는 “300명 넘게 죽었는데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476명을 태운 6700t급 여객선의 침몰을 100t급 경비정 하나로 막아서야 했던 해경의 인명구조 체계는 세월호 침몰 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제천 화재 역시 현장 지휘관을 끌어내리는 ‘한풀이식 정의’로는 화마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2014년 김경일, 2017년 김종희에 이어 참사 때마다 실패한 지휘관이 양산될 뿐이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2014년 세월호 침몰 때 승객 구조에 실패한 해경 김경일 전 경위의 재판 날이면 방청석 맨 뒤에 그의 20대 남매가 앉았다. 유족이 빼곡히 앉은 방청석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두 사람 뿐이었다. 남매는 피고인석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재판이 끝나면 서둘러 빠져나갔다. 어느 날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둘 다 사범대를 나와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김 전 경위의 딸은 “저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 비극을 당했는데 선처를 바라는 저는 교사 자격이 없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김 경위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 현장지휘관이었던 김종희 소방경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다. 김 소방경은 건물 2층에 갇힌 인명 구조에 실패해 징계를 앞두고 있다. ‘2층 상황이 심각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신속히 대원을 투입하지 못했다. 사망자 29명 중 20명이 2층에서 발견됐다. 그는 25일 전화통화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진압 당시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경위와 김 소방경은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촌각에 달렸던 ‘골든타임’에 해경과 소방의 말단 지휘관이었다. 김 전 경위는 34년 경력에 24차례 표창을 받았다. 김 소방경 역시 27년 근무하며 6차례 표창을 받은 베테랑이다. 두 사람 모두 아들이 뒤를 따랐다. 김 전 경위의 아들은 해경 전투경찰로 복무했다. 김 소방경의 아들은 현직 소방관이다. 구조 실패에 대한 두 사람의 해명은 비슷했다. “평소대로 대응했고,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조치했으며,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김 전 경위는 세월호 안에 수백 명이 남아있는 걸 알고도 우선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해경 배에 옮겨 실었다. 퇴선방송이나 선내 진입 등 승객 대피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소형 경비정(100t급) 지휘관이다. 주 업무가 불법어선 단속이었다. 인명구조는 물에 빠진 사람을 몇 명 건져본 게 전부였다. 침몰하는 대형 여객선(6700t급)을 눈앞에 두고 그는 경험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 소방경은 불길에 휩싸인 건물 옆 액화석유가스(LPG) 탱크에 불이 붙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1994년 12명이 사망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스폭발 현장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119상황실로부터 ‘2층 구조’ 연락을 받은 뒤에도 가스통 지키기에 몰두했다. 3층과 옥상의 눈에 보이는 사람만 구조했다. 화재 초기 2층으로 가는 비상계단은 불이 크게 번지지 않은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김 전 경위와 김 소방경 모두 경험의 덫에 빠져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처럼 노련한 지휘관도 긴박한 현장에서는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최소화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상급자의 몫이다. 그러나 상급자들은 책임소재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말단 지휘관이 모두 떠안는다면 참사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와 해경 지휘부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김 전 경위가 유일한 정부 측 ‘책임자’였다. 당시 한 검찰 간부는 “300명 넘게 죽었는데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476명을 태운 6700t급 여객선의 침몰을 100t급 경비정 하나로 막아서야 했던 해경의 인명구조 체계는 세월호 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제천 화재 역시 현장 지휘관을 끌어내리는 ‘한풀이식 정의’로는 화마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2014년 김경일, 2017년 김종희에 이어 참사 때마다 실패한 지휘관이 양산될 뿐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뽀미, 옳지!” 9일 경기 김포시 반려견 행동교정 훈련소 ‘리더스독’ 운동장. 작은 몸집의 치와와가 산책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뽀미’로 불리는 이 반려견은 앙상한 다리를 앞뒤로 휘저으며 훈련사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주인 통제에 잘 따르게 하려는 훈련이었다. 견주 A 씨는 “평소 뽀미가 가족들을 물곤 했는데 작고 아기 같아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최시원 프렌치불도그’ 사건 이후 사람을 무는 습관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 훈련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맹견 전문으로 알려진 이 훈련소에는 최근 중·소형견을 키우는 주인들의 훈련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날 30분 간격으로 진행된 8번의 훈련에서 ‘교육생’은 거의 뽀미 같은 작은 개들이었다. 치와와 포메라니안 웰시코기를 비롯한 이들 17마리는 별도 공간에서 ‘훈련 대기’를 하고 있었다.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가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 씨의 반려견에게 물린 뒤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새롭게 등장한 풍경이다. 윤재하 리더스독 훈련소장은 “사건 전 하루 서너 건 정도이던 중·소형견 훈련 문의가 최근 20여 건으로 늘었다. 기존에는 일반 개가 맹견 5마리당 1마리꼴이었는데 지금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견주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고 관심을 갖는 교육은 입마개 착용 훈련이다.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견종에 상관없이 무게 15kg 이상 반려견에 대해 외출할 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도사견 등 6종에 대해서만 입마개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다. 몸무게가 15kg에 육박하는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들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견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웰시코기는 평균 체중 13kg, 골든레트리버는 대체로 20kg이 넘는다. 이날 리더스독 훈련소에서는 맹견은 아니지만 몸무게가 50kg에 이르는 카네코르소 한 마리가 입마개 훈련을 받고 있었다. 훈련사가 “입!” 하고 외치면 훈련사 손에 들린 입마개 안으로 입을 밀어 넣는 동작을 반복했다. 윤 소장은 “견주들이 최근 입마개를 많이 사는데 막상 씌우려 하면 개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난감해한다. 입마개를 하고도 물과 먹이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적응하게 해야 개들이 입마개를 피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반려견 훈련에 대한 지자체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애견협회에 따르면 ‘최시원 프렌치불도그’ 사건 이후 협회에 들어온 지자체 강의 요청이 30건에 달했다. 박애경 부회장은 “전국에 시설장을 갖춘 훈련소가 70여 곳에 불과해 밀려드는 반려견 훈련 문의를 소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김포=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시민들이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도심을 달릴 수 있도록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사진)은 10일 “올해 15회째인 서울달리기대회는 약 1만 명의 참가자가 서울 도심을 달리는 대규모 축제인 점을 감안해 교통경찰과 모범운전사 등 800여 명을 배치해 교통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김 청장은 “올 도심에서 열린 다양한 문화체육 행사는 시민들의 협조로 무사히 마무리됐다”며 “이번 대회도 공감하면서 동참하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대회 당일인 15일 원활한 흐름을 위해 탄력적으로 교통을 통제한다. 출발지인 세종대로(서울시청 앞∼세종대로 사거리)와 도착지인 무교로(시청 삼거리∼모전교) 구간은 이날 오전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순차적으로 통제된다. 마라톤 코스인 종로(세종대로 사거리∼흥인지문)→동호로(흥인지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1가)→청계천로(청계광장∼청계5가∼청계광장) 구간은 오전 7시 50분부터 9시 반까지 차례대로 통제된다. 청계천로(청계6가∼제2마장교) 구간은 오전 7시 50분부터 9시 10분까지 통제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6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의 5촌 조카들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비공개 수사기록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곧 공개된다. 서울북부지검은 서울행정법원이 최근 “수사기록을 유족에게 공개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 기밀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해 왔다. 이 사건은 살해당한 박 전 대통령의 5촌 조카 박용철 씨(사망 당시 49세)가 박 전 대통령 남매의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하게 개입했던 인물이어서, 사건에 숨겨진 배후가 있을 거라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박 씨가 숨진 시점은 박 전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 씨 남편인 신동욱 씨(49)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기 직전이었다. 신 씨는 2007∼2009년 인터넷에 “박지만 씨가 육영재단을 강탈했고 박용철 씨에게 위협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박용철 씨는 당시 “박지만 EG 회장의 비서실장과 통화한 녹음 파일이 있다”며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폭력사태 배후가 박 회장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주장을 했다. 2011년 9월 박용철 씨는 서울 북한산 등산로에서 칼로 복부 여러 군데를 찔리고 머리도 망치에 맞아 함몰된 채 발견됐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3km 떨어진 숲속에서는 박 씨의 사촌형 박용수 씨(당시 51세)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과 경찰은 “박용수 씨가 금전 문제로 박용철 씨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지인들의 진술을 근거로 박용수 씨가 박용철 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숨진 박용수 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박용철 씨 유족은 수사 결과를 믿기 어렵다며 검찰에 박용철 박용수 씨의 사망 전 한 달간 통화기록과 휴대전화 발신 기지국 주소, 같은 기간 두 사람이 통화한 인물들의 신상정보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기록 공개를 거부했고, 유족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이번에 공개되는 기록에서 숨진 박용철 박용수 씨가 박 회장 등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 등 새로운 정황이 드러나면 사건 재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신광영 neo@donga.com·구특교 기자}

“일부 당원의 행위를 일반화해 불법 정당으로 판단한 후 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위협으로 비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5)는 2015년 1월 한 언론 기고문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렇게 비판했다.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던 법무부의 수장에 통진당 해산을 반대한 학자가 지명된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당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김이수 헌법재판관(64)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선정했다.○ “공수처 신설·법무부 탈검찰화” 포부 청와대는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 11일 만에 박 후보자를 지명했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및 안 전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비(非)사법시험, 비검찰’ 출신이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박 후보자 낙점으로 문 대통령의 ‘법무부 탈(脫)검찰화’ 의지가 다시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후보자는 이날 서울 종로구 적선동 청문회 준비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학자와 시민운동가의 경험을 토대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법무부 탈검찰화 등 검찰개혁을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7년부터 연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해온 박 후보자의 전공은 형사법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과 한국형사정책학회장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2002년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2006년에는 대통령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형사·사법제도 개혁에 참여했다. 또 올해 5월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를 맡아 왔다. 박 후보자는 그동안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지난해 1월 한 일간지 칼럼에서 박 후보자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지침이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검사들이 사회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는 과잉된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지난해 9월 언론 기고문에서 “검찰이 독립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는 상황이라면 특별조직(공수처)이 불필요하지만 국민이 이를 낙관적으로 기대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공수처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형사정책연구원장 법인카드 부당 사용 박 후보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재직했던 2010년 법인카드를 주말과 공휴일에 사용하는 등 360여만 원을 부당 결제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2013년 국무조정실은 형사정책연구원 감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해 부당 사용액 회수를 지시했다. 박 후보자는 주말에 자택 근처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고 술집에서 법인카드를 쓰지 못하도록 한 내부 규정을 어긴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감사에서 박 후보자는 업무추진비 일부를 업무와 무관한 축의금과 조의금으로 썼다는 지적도 받았다. 당시 감사 결과 박 후보자는 법인카드 부당 사용액 360여만 원을 형사정책연구원에 반납하라는 처분을 받았고, 연구원 측에서 부정 지출된 업무추진비 가운데 100만 원을 추가 반납하라는 요구도 받았다. 박 후보자는 반환 요구액 460여만 원을 현금으로 내지 않고 자신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연구원 발간물의 인세 수입으로 수년에 걸쳐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 무안(65) △연세대 법과대 학장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신광영 neo@donga.com·김준일·전주영 기자}

법무부는 이른바 ‘돈 봉투 만찬’으로 물의를 빚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대구고검 차장)에 대해 16일 중징계인 면직을 의결했다. 면직이 확정됨에 따라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퇴직금과 연금은 정상적으로 받지만 앞으로 2년간 변호사 개업은 할 수 없게 됐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이날 이 전 지검장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 과장 2명에게 각각 현금 100만 원이 든 돈 봉투와 9만5000원 상당의 식사 등 1인당 109만5000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다. 현직 검사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무원에 대한 중징계는 면직, 해임, 파면 순서로 불이익이 커진다. 공무원 지위를 박탈하는 면직 처분을 당한 검사는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퇴직금과 연금은 100% 받지만 변호사 개업은 2년간 금지된다. 해임 처분의 경우에도 퇴직금과 연금은 모두 받을 수 있다. 다만 변호사 개업 제한 기간은 면직 처분에 비해 1년이 더 긴 3년으로 늘어난다. 단, 금품 관련 비위로 해임되면 퇴직금과 연금 둘 다 25%씩 감액된다. 파면 처분은 퇴직금이 절반으로 줄고 연금도 재직 중 본인이 불입한 액수만큼만 돌려받는다. 5년간 변호사 개업도 할 수 없다.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에 따르면 ‘돈 봉투 만찬’은 4월 21일 이 전 지검장이 안 전 국장에게 제안해 이뤄졌다. 이 전 지검장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특별수사본부(특수본) 간부 6명, 안 전 국장은 검찰국 과장 2명을 데리고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국장은 특수본 간부들에게 70만∼100만 원씩, 이 전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 원씩 격려금을 줬다. 합동감찰반은 7일 감찰 결과를 발표하며 이 전 지검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외에는 횡령이나 부정처사 후 사후수뢰죄 등 법 위반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이날 면직 의결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52·19기)가 합동감찰반의 면직 처분 권고를 그대로 수용해 징계를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68)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김 후보자의 경기도교육감 재직 당시 비서실장이 뇌물죄로 처벌받은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법원과 검찰은 비서실장이 받은 뇌물 중 일부가 김 후보자의 업무추진비 등 공적인 용도로 쓰인 사실을 인정했다. 김 후보자는 뇌물을 받는 데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1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9급 공무원 출신으로 경기도교육청 5급 사무관이 된 정모 씨(47)는 김 후보자가 교육감이던 2012년 7월∼2014년 3월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는 2014년 11월 정 씨를 경기도교육청 관련 업체 2곳에서 49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구속 기소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씨는 당시 교육청이 추진하던 도내 학교 옥상의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사업자 차모 씨로부터 사업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등 도움을 준 대가로 1814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또 교육청에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던 업체 대표 윤모 씨에게서 계약 연장 등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3183만 원을 받았다. 정 씨는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교육감의 비정상적인 특수활동비 지출로 인해 불가피하게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교육감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는 월 50만 원 수준인데, 김 교육감이 매달 200만 원 이상을 쓰는 바람에 150만 원 이상 적자가 났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부정한 돈을 받게 됐다는 것이었다. 정 씨는 재판부에 “업체로부터 받은 뇌물 중 1300만 원은 김상곤 교육감에게 현금으로 교부됐고 1400만 원은 (경조사의 교육감 명의) 화환 값으로 지출됐다”며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운동권처럼 돈 문제를 감히 교육감에게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여서 비서실장이 알아서 막아야만 했다”고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 씨가 업자들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를 경기도교육감의 업무추진비 등 공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도 “정 씨가 경기도교육청 교육감의 업무추진비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1, 2심 법원은 “부족한 업무추진비를 뇌물로 충당하는 행위 자체가 직무의 염결성(廉潔性·청렴하고 결백한 성질)을 해하는 것이어서 용인될 수 없다”며 정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정 씨가 온전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뇌물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법적으로 선고 가능한 최저 형량인 징역 2년에 벌금 4000만 원을 선고했다. 정 씨는 뇌물죄로 2년간 수감생활을 했지만 김 후보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나 재판을 받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정 씨가 뇌물을 받는 과정에 (김 후보자가) 직접적으로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아 소환조사 등을 하지 않았다”며 “정 씨가 ‘업무추진비가 부족하다’고 김 후보자에게 보고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정 씨가 뇌물을 받게 된 점은 당시에도 사실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신광영 기자}
2004년 3월 국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직후, 노 전 대통령 대리인단으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이던 안경환 교수를 찾아갔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명망 있는 헌법 전공 교수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안 교수는 처음에는 문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다른 교수들이 같은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안 교수는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캠프의 ‘새로운 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검찰 개혁 추진할 적임자” 11일 청와대는 검찰 고위직 출신이 주로 맡아온 법무부 장관에 ‘비(非)사법시험, 비검찰’ 출신인 안경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를 지명했다.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 아닌 법무부 장관은 1950년 김준연 전 장관(언론인·별세) 이후 67년 만이다. 법학자가 법무부 장관에 기용된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인 1974∼1975년 황산덕 전 법무부 장관(고등문관시험 사법과·별세)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이날 안 후보자 내정 이유에 대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검찰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도 지명 사실 발표 직후 “법무부의 ‘탈(脫)검사화’ 등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그동안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조해 왔다. 지난해 8월 한 언론 기고에서는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하는 우리나라 검찰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권한이 매우 강하다. 검찰 권력을 견제할 다른 권력이 필요하며 정권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검찰로 만드는 개혁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자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 직속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검찰과 법무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당시 안 후보자는 검찰청법 제7조(검사동일체원칙)를 개정해 상명하복 의무를 삭제하고 검사가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 검사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2006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2년 8개월 동안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학교를 떠나 잠시 외도도 했다. 안 후보자는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사퇴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임사에서 “(인권위가)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유엔 결의로 채택한 독립기구를 축소시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자는 인권위원장 재임 당시 피우진 중령(신임 국가보훈처장)이 유방암 수술 전력을 이유로 강제 전역을 당해 행정소송을 벌일 때 “국방부가 복무의 자유를 제한하고 병력(病歷)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반했다”며 법원에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 조국 수석과는 동문 사제지간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2)은 안 후보자가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일할 때 조교로 일했다. 안 후보자는 울산대, 동국대 교수로 일하던 조 수석이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조 수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으로 임용에 어려움을 겪자 안 후보자가 적극 해명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참여연대와 국가인권위에서도 함께 일했다. 조 수석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투표를 독려하며 트위터에 ‘안경환 교수님의 약속’이라며 “(투표율이) 77%를 넘고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면 내 사랑하는 제자 조국 교수와 조 교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77번 큰절을 하겠다”는 글을 인용해 올리기도 했다. 청와대는 당초 법무부 장관에 비검찰 출신, 여성 인사를 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물망에 올랐던 여성 후보자들이 잇달아 입각을 고사하면서 안 후보자로 선회했다. △경남 밀양(69) △서울대 법과대 학장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신광영 neo@donga.com·문병기·허동준 기자}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숨기는데 가담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관계자들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병철)는 9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허위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혐의(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안진회계법인 이사 배모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상무 임모 씨와 회계사 강모 씨에게는 각각 징역 1년6개월씩을 선고하고 이들을 모두 법정 구속했다. 또 구성원이 불법을 저지를 경우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따라 안진회계법인에게는 검찰 구형량(벌금 5000만 원)보다 높은 벌금 7500만 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2013~2015 회계연도 외부감사를 하면서 전문가적 의구심과 독립성, 객관성을 져버린 채 대우조선의 부정 회계처리를 눈감아줬다”며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기소한 내용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했다. 또 “대우조선해양이 영업목표 달성을 위해 분식회계를 할 동기가 있다는 점을 알고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고 외부 대응논리까지 개발해줬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분식회계를 눈감아주고 허위정보를 공시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우조선은 안진회계법인이 ‘적정의견’으로 공시해준 재무제표를 근거로 금융권에서 사기대출을 받았으며, 이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했던 주주들은 회사의 경영부실이 드러난 뒤 막대한 손해를 봤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10월 이후 투입한 공적자금 규모만 7조1000억 원에 달한다.신광영 기자neo@donga.com}

“과거 중요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했다고 문제가 제기돼 인사 조치했다.” 법무부는 8일 검사장·고검장급이 다수 포함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이번 인사가 문책성 인사임을 공표했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뀐 직후에는 일부 고위 간부를 조용히 한직으로 보내 사표를 내도록 유도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직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좌천시킨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날 한직으로 발령 난 검찰 간부들 중 상당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구속 기소)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청와대에 입성한 2014년 이후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이 수사했던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 ‘정윤회 문건’ 파문 등은 지난 정권에서 논란이 된 대표적 사건들이다.○ 코너 몰린 검찰에 일격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대구고검 차장)이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면직을 당한 지 단 하루 만에 이처럼 대대적인 좌천성 인사가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검찰 내에 거의 없었다. 인사 대상자들은 법무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직전에 본인이 인사 대상임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좌천 대상이 된 한 간부는 “조용히 물러나라고 하면 그럴 의향이 있는데, 이렇게 망신을 주려는 이유가 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가 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의 감찰 결과 발표 바로 다음 날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실세로 불렸던 이들에 대한 ‘솎아내기’ 인사를 낸 것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그간 검찰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예전처럼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사직을 권고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재판을 받고 있는 국정 농단 사건처럼 자칫 직권남용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번처럼 다소 과격한 좌천성 인사를 내는 것뿐이었다.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의 중징계로 검찰이 코너에 몰린 상황은, 청와대가 검찰 내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인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좌천 대상이 된 검찰 간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53·19기) 등 4명은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반면 광주고검 차장검사와 서울고검 검사로 각각 전보된 유상범 전 창원지검장(51·21기)과 정수봉 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51·25기)은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형사1부장으로 재직하며 수사를 함께 했던 사이다. 이들이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은 자칫 자신들의 사직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자인하는 모양새로 비칠까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앞서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국정 농단 사태를 막지 못했다”며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위협 우려” 법무부의 이날 인사는 앞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승진 임명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 인사위원회 등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기인사는 인사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번처럼 개별 인사를 할 경우 인사위원회가 필수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이번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인사 발표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색이 강한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이 줄줄이 인사 불이익을 받은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청와대가 너무 험하게 인사를 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초반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려는 것 같다”며 “검찰 개혁이 자칫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심는 수단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가슴이 너무 아프고 지금도… (울음) …죽어간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면 매일매일 물이 닿을 때마다 아픈 가슴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2014년 사망)의 장녀 유섬나 씨(51)는 7일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유 씨는 세월호 참사 발생 1148일 만에 프랑스에서 강제 송환돼 한국 땅을 밟았다. 인천국제공항 입국 후 인천지검에 도착한 유 씨는 취재진에게 “그분들(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같이 아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세월호는 슬프지만, 나는 억울” 약 3년 만에 한국에 온 유 씨는 자신을 둘러싼 혐의에 대해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얼굴 표정은 당당했다. ‘도피 생활을 오래했는데 송환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유 씨는 “저는 도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지난 시절 무자비한 공권력으로부터 저를 보호할 방법이 없었다. 해외의 다른 법으로라도 보호를 받고 싶어 이제까지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공정한 심사를 받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유 씨는 자신과 아버지인 유 전 회장 등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이유인 듯 암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프랑스에서 주장한) 정치적 희생양이 어떤 의미인가’란 질문에도 “나중에 얘기하겠다”며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바뀌기를 기다렸나’라는 물음에는 “정권보다도 세상이 바뀌길 기다렸다”며 은연중에 자신의 심경을 드러냈다. 492억 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얘기다. 저는 평생 일하면서 살았고 일한 대가로 보수를 받은 거 외에는 횡령하거나 유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전 회장 등 일가가 세월호를 실소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세월호 실소유주라는 말을 믿지도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유 씨가 디자인업체를 운영하며 컨설팅비 48억 원을 빼돌리는 등 세모그룹 계열사에 492억 원의 손해를 입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법무부가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유 전 회장 일가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등 33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1878억 원의 구상금 청구소송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유라 아들도 귀국, 장시호는 석방 이날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딸 정유라 씨(21)의 생후 23개월 된 아들과 보모, 정 씨의 마필관리사 이모 씨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는 국적기 직항 편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검찰은 이 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소환해 정 씨의 독일 및 덴마크 도피 행적 등에 대해 조사했다. 이 씨는 독일과 덴마크에서 정 씨와 함께 생활하며 보호자 역할을 했으며, 정 씨가 덴마크 현지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보모와 함께 정 씨의 아들을 돌봐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의 아들을 끌어안고 공항을 빠져나온 보모는 이날 오후 6시 40분경 정 씨가 머물고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에 도착했다. 한편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38)는 8일 0시 1심 구속기한 만료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첫 사례다. 장 씨는 삼성에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18억여 원을 후원하도록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지난해 12월 8일 구속 기소됐으며 앞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인천=차준호 run-juno@donga.com / 신광영 기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배모 씨(71)는 광주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34세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27세의 군 법무관이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4)가 배 씨에게 내린 사형 선고는 배 씨는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뒤바꿔놓았다. 배 씨는 32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시국사범’ 꼬리표 때문에 오랜 기간 보안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배 씨는 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37년 전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김 후보자에 대해 “나를 재판한 사람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배 씨 옆을 지킨 딸은 “역사의 비극 속에 한 가정이 파괴됐지만 (김 후보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가 한 번도 없었다”며 원망을 나타냈다. ○ “저분은 좋은 자리로 가는데 내 인생은…”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배 씨는 광주 동구 노동청 부근 내리막길에서 버스를 운전 중이었다. 배 씨는 “시위가 한창이던 도심은 극심한 최루탄 연기 때문에 1∼2m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배 씨는 “버스를 몰고 가다 갑자기 벽 같은 것에 부딪혔고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며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도망쳤고, 나 역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배 씨는 당시 자신이 들이받은 벽이 경찰의 저지선이고 그 때문에 경찰관 4명이 숨진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다음 날 버리고 도망쳤던 버스를 찾으러 사고 현장을 찾아가다 경찰에 체포되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배 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앞이 안 보여서 들이받은 것이지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1980년 10월은 김 후보자가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때였다. 1982년 8월까지 군 복무를 한 김 후보자는 다수의 5·18 관련자 재판에 참여했다. 배 씨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이 제정되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맡은 광주고등법원은 1998년 6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고의 책임을 운전자인 배 씨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으로 살인 누명은 벗었지만 32개월의 복역과 보안당국의 감시로 심한 고초를 겪은 배 씨는 김 후보자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당시 군 판사로서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저분(김 후보자)은 저렇게 좋은 자리로 계속 가는데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배 씨에 대한 사형 선고는 김 후보자가 2012년 헌법재판관에 지명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 판결을 거론하며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후보자는 “사건을 확실하게 검토해서 제 마음의 결단을 정하겠다”고 답변했다. 또 당시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이 “전혀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고 묻자 김 후보자는 “사과보다도 저는 오히려 더 큰 짐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5·18특별법 제정 이후 김 후보자의 5·18 관련 선고 20여 건 가운데 7건이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배 씨를 포함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 ○ 자유한국당 “김 후보자 부적격” 공세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주장하는데, 김 후보자는 5·18 당시 시민군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 공로로 상도 받았다”며 “헌재 소장으로 부적격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의 이 같은 공세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호남 공략’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5·18 판결 논란이 부각될수록 여권이 김 후보자를 두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한국당의 판단이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4일 김 후보자 부인 정모 씨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는 2004년 충남 서산시 부석면 991m² 규모 농지를 주말농장 명목으로 1290만 원에 매입해 위탁경영을 맡겼다가 2011년 8월 농어촌공사에 1887만 원을 받고 팔았다. 곽 의원은 “주말농장 목적의 농지는 일반적 농지에 해당되지 않아 위탁경영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광영·최고야 기자}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의 장녀 유섬나 씨(51)가 7일 국내로 강제 송환된다. 유 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말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이에 불응하고 프랑스에 머물러 왔다. 2일 법무부에 따르면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인 콩세유데타(Conseil d’Etat)는 지난달 30일 유 씨가 프랑스 정부의 한국 송환 결정에 불복해 청구한 소송을 각하했다. 유 씨는 2014년 5월 파리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프랑스 경찰에 체포됐지만 아들이 미성년자(당시 16세)라는 사유가 인정돼 불구속 상태에서 송환 불복 소송을 해왔다. 법무부는 콩세유데타의 결정 직후 프랑스 정부와 송환절차 협의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6일 현지에서 유 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을 진행하기로 했다. 검찰 호송팀은 지난달 30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 송환 때처럼 유 씨가 인천행 국적기에 탑승한 직후 체포영장을 집행할 방침이다. 유 씨는 한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모그룹 계열사 ‘다판다’로부터 컨설팅비 명목으로 48억 원을 빼돌리는 등 세모그룹 계열사에 492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유 씨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참사 원인을 수사했던 인천지검 특수부가 담당한다. 유 씨가 한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를 하면 강제송환 절차는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유 씨는 콩세유데타의 결정이 나온 지 사흘째인 2일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유 씨가 불복 소송을 계속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본 신문은 2017년 06월 02일 ‘사회’면에서 「유병언 장녀 유섬나, 7일 국내송환 … 492억 원 횡령·배임 혐의」, 2017년 06월 03일 ‘사회’면에서 「유병언 딸 유섬나 7일 한국 송환」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고 유병언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주식을 본인 명의로 소유한 사실이 없으며 따라서 청해진해운의 주식이 유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 아니라는 행정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청와대에 근무할 때 특별감사반장으로 함께 근무한 김형욱 부부장검사(44·사법연수원 31기)가 30일 사직했다. 김 부부장은 2015년 2월 서울남부지검 검사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옮겨 2년간 근무하다가 대통령 탄핵 심판이 한창이던 올해 2월 검사로 재임용됐다. 김 부부장은 2006∼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3부에 근무하면서 교육부와 통일부 고위 공무원 뇌물사건을 맡아 탁월한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 부부장과 개인적 인연이 없던 서울중앙지법의 한 영장전담 판사가 사석에서 “김 검사가 청구한 영장은 믿고 발부할 수 있다”고 칭찬한 일이 검찰 내에 회자될 정도였다. 이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파견돼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당시 중수1과장이던 우 전 수석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 2월 검찰에 복귀한 김 부부장은 민정수석실에서 한 업무가 수사 대상이 되고, 우 전 수석과 근무한 인연이 구설에 오르는 일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김 부부장은 사직서를 내면서 “건강이 좋지 않아 업무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사유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돈 봉투 만찬’ 참석 검사 10명을 대면 조사한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법과 여론의 갈림길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직접 감찰 지시를 한 데다 참석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 형사 입건 등 엄벌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처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감찰반의 고민이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대구고검 차장)은 각각 27일과 28일 감찰 조사를 받으며 “후배 검사들을 격려하는 취지로 금일봉을 건넸으며 특수활동비 등 관련 예산을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찰반은 이를 근거로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에게서 돈을 받은 만찬 참석자들에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지난해 펴낸 ‘김영란법 Q&A’ 해설서에도 ‘상급 공직자 등이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 등’은 처벌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해설서에 따르면 검찰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간부들이 이 전 지검장에게 식사 접대와 돈 봉투를 받은 일도 처벌할 수 없다. 해설서에는 ‘지방법원 사무국장 A가 격려 목적으로 같은 법원 예산 담당 사무관 B, 감사 담당 사무관 C와 저녁 식사를 하고 15만 원을 냈다면 법 위반인가’라는 예시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가 위로·격려 목적으로 B와 C에게 식사를 제공했다면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위법이 아니다’며 ‘인사이동으로 2, 3년마다 소속 법원이 바뀔 수 있으므로 같은 법원에 근무하지 않더라도 예외 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감찰반은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이 특수활동비 등 예산을 횡령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감찰반 내부에서는 “이 전 지검장 등이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사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한 처벌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내사를 받았던 안 전 국장에게서 ‘돈 봉투’를 받았던 특수본 간부들에 대해 부정처사 후 수뢰죄 적용이 가능한지도 쟁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처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국장이 지난해 7∼10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19기)과 160여 차례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만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 일각에서는 “만찬 참석자들을 기소하거나 중징계한 뒤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했다가는 청와대의 분노와 여론의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법을 다루는 기관이 법이 아닌 여론으로 감찰 결론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