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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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07-02~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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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년만에 日에서 열린 루이스 부르주아 회고전 [영감 한 스푼]

    좋은 예술가를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해오면 저는 ‘삶에 고난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 자주 답을 했습니다.뛰어난 실력, 감각,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끈기 등 다른 여러 조건도 있지만, 결국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야기가 있어야, 작품도 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얼마 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을 보고 생각을 조금 바꾸었습니다.굴곡진 삶이 좋은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문제를 얼마나 정직하게, 깊이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죠.그러니까 예술가들은 기구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수많은 것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이었습니다.오늘은 부르주아의 회고전을 통해 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태어나기 싫었던 아이와,세상에 나온 뒤의 외로움어머니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아이. 그럼에도 마침내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느끼게 되는 끝없는 외로움, 허무와 결핍.이번 전시에서는 위협적이지만 따스하고, 나약하지만 강한 거미 엄마 대신 깊은 고독과 허무를 곱씹으며 실을 잣는 여자로서 부르주아를 만났습니다.이번 모리미술관 ‘나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황홀했습니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는 일본에서 27년 만에 열리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고전이자, 대형 설치 작품과 회화,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매체 100여 점을 선보이는 일본 최대 규모 전시입니다. (내년엔 호암미술관에서도 열립니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품고 전시장을 찾았습니다.2년 전 뉴스레터에서 부르주아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그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벗어난 과정에 집중했었는데.이때의 기억과 더불어 그녀가 예술을 공부하기 전 소르본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섞여 저는 부르주아를 냉정한 지성인으로 상상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선 다음 이 상상은 약간 무너졌습니다. 먼저 인상 깊었던 건 부르주아가 아들 알랭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표현한 조각 작품입니다.부르주아는 말수가 적은 아들 알랭을 ‘태어나기를 거부한 아이’라며 임신했을 때의 여러 모습을 천 조각으로 만들고, 글로도 감정을 남깁니다.“엄마의 배에서 나오기를 거부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의 출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아기는 무엇을 느꼈길래 자궁에서 떨어져 세상으로 나오기 싫었던 걸까?이렇게 나타나길 거부하는 것이 이 아이의 성격, 감정,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아기는 미래를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자주 침묵을 하게 되다가, 그것이 어색함이나 적대적인 감정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그는 과묵한 아이다. 과묵했었지만, 결국 세상에 나왔다.”그리고 이 작품 맞은편엔 자수로 글귀를 새긴 작품 ‘나는 두렵다’(I am afraid, 2009)가 걸려 있었습니다.여기에 수놓아진 글귀는 이렇습니다.나는 침묵이 두렵다나는 어둠이 두렵다나는 추락이 두렵다나는 불면이 두렵다나는 허무가 두렵다무언가 부족한가?그렇다. 내겐 무언가가 부족하고 그건 항상 그럴 것이다허무에 대한 감각부족하다너는 무엇이 부족한가?아무것도난 불완전하지만 부족한게 아무것도 없다어쩌면 무언가 부족하겠지만 모르기에 고통받지 않는다빈 속 빈 집 빈 병무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은 어머니에게 버림받는 것이다어머니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아이. 그럼에도 마침내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느끼게 되는 끝없는 외로움, 허무와 결핍.전시장 초입에 있는 두 작품에서 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지만 외면하는 그 감정이 펼쳐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위협적이지만 따스하고, 나약하지만 강한 거미 엄마 대신 깊은 고독과 허무를 곱씹으며 실을 잣는 여자로서 부르주아를 만났습니다.나는 알고 싶지 않다,따스히 안기고 싶을 뿐이런 감정을 시작으로 전시장에는 연인을 형상화한 크고 작은 조각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서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부둥켜안은 천 조각부터, 닿아 있지만 연결되진 않은 것 같은 금속 재질의 조각 작품까지.사람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관계는 함께 공감하고 의존하며 따스한 안정감을 주지만, 때로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간극을 보여주며 고독을 느끼게 하는. 모든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담고 있었습니다.부르주아는 글을 통해서도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단상들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내가 만약 다시 버림을 받는다면, 집에 불을 지를 것이다.” (1960년 날짜 없는 일기장에)“버림받았다.복수하고 싶다.태어나게 된 것에 눈물 흘리길 원한다사과를 원한다나는 원한다피를내게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도 겪게 하고 싶다. 태어나는 것은 꺼내지는 것이고 버림받는 것이다. 거기서 분노가 오는 것이 아닐까?”(1990년경 메모)“나는 알고 싶지 않다. 따스히 안기고 싶을 뿐”하고, 없애고, 다시 하고(I do, I undo, I redo)“부르주아의 삶은 매혹적이지만, 결국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이다.그녀가 묘사하는 인간관계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감정을 우리 모두는 부모, 자녀, 아내, 남편, 또는 연인으로서 살면서 느낀다.사랑과 따스함은 물론 극단적 증오와 폭력, 그리고 질투까지.우리는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고 느끼다가도 하루아침에 고독과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유혹을 받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부르주아의 예술이 그녀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의미는 분명히 보편적인 것이다.”부르주아가 남긴 메모들은 독기에 가득 차서 비관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전시장에 새겨진 글귀 중에는 작업을 멈추면 주변 사람을 공격하기에 그만둘 수 없다는 내용도 있습니다.얼마나 공격적인 사람이었기에 그럴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가 예민한 예술가로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하는 과정이 예술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즉 허무 결핍 고독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녀가 왕성한 작업 활동을 하는 땔감이자 에너지였던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던 또 다른 설치 작품은 ‘2번 죄인’(Culprit Number Two)이었습니다. 무거운 철문 6개로 둘러싸인 공간은 살짝 벌어진 틈으로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그 안에는 위 사진처럼 조그마한 나무 의자와 얼굴이 겨우 보일 정도 크기의 동그란 거울이 보입니다.나무 의자는 관객을 등진 방향으로 놓여 있어, 관객은 그 의자에 앉아 홀로 자기 얼굴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뒤로 열린 틈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스스로 만든 감옥에 있습니다.타의로 갇힌 감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곳은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고 정면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담긴 공간임을 느낍니다.삶에서 고통이 찾아올 때 처음엔 그걸 외면하고 덮어 두려 하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결국 타인을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죠.‘장본인(Culprit)’이라는 제목은 “네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부르주아가 이 작품에 대해 남긴 말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삶에서) 고통은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고통을 치유하거나 회피할 방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내가 가진 고통을 차분히 바라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그렇지만 이 감옥의 육중한 무게와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2000년 테이트모던이 개관할 때 터빈 홀을 처음으로 채웠던 부르주아의 타워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나는 하고, 없애고, 다시 한다’(I do, I undo, I redo)‘.그러니까 삶에서 시시각각 찾아오는 혼란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무언가를 만들었다가, 그것이 효용이 다하면 없애고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끊임없는 과정 자체에 더 방점이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당시 커미션을 맡았던 큐레이터 프랜시스 모리스의 회고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탑 작업에 붙여진 제목, ‘하고, 없애고, 다시 하고’(I do, I Undo, I Redo)는 우리가 인생에서 타인과 관계를 정의하고 재정의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가 직접 골랐다. 하고, 없애고, 다시 하기란 사실상 부르주아의 모든 작업의 주제라고 할 만하다.”또 모리스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그녀의 삶은 매혹적이고 흥미롭지만, 결국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이다.그녀가 묘사하는 인간관계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감정을 우리 모두는 부모, 자녀, 아내, 남편, 또는 연인으로 살면서 느낀다.사랑과 따스함은 물론 극단적 증오와 폭력, 그리고 질투까지.우리는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고 느끼다가도 하루아침에 고독과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유혹을 받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부르주아의 예술이 그녀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의미는 분명히 보편적인 것이다.”자신의 삶을 깊이 파고들어 보편적인 이야기에 닿는 것. 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거울처럼 자기의 감정과 삶을 비춰보도록 하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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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속 화가들의 신념과 애증…‘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 출간

    에곤 실레, 폴 고갱, 폴 세잔, 살바도르 달리 등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과 삶을 다룬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이 출간됐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신념, 2장은 애증, 3장은 극복, 4장은 용서를 키워드로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담은 작품부터 예술가들의 경쟁 구도,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작품과 삶, 마음속에 품은 상처를 넘어 새롭게 나아가려 애쓴 작가들의 그림과 삶을 소개한다.‘황금빛의 화가’로 사랑받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예술에 전념하는 삶을 살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이야기 등 예술가들의 삶 속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조르주 쇠라,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 예술가 31인의 삶과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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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쟁적 주제 던져 사회적 논의 끌어내는 게 미술관의 역할”

    미국 워싱턴DC 아메리칸대(AU) 내에는 2800㎡(약 847평) 규모의 미술관이 있다. 사립대학 미술관인 이곳은 워싱턴DC 내 국립 기관들과 달리 정치적, 사회적으로 과감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2006년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술을 전시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던 이 미술관의 관장 잭 라스무센이 한국을 찾아 5일 만났다. 미술관이 개관한 2005년부터 관장을 맡은 라스무센은 “북한 미술은 직접 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당시 많은 관객이 호기심을 가졌다”며 “배송 비용을 아끼려 대규모 벽화를 종이에 그린 뒤 접어서 우편으로 보냈는데, 전시를 위해 다시 펼쳐 배접했을 때 구김이 전혀 가지 않는 기술이 놀라웠다”고 했다. 북한 미술을 전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적국이지만 작품을 통해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은 훌륭한 외교적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라스무센 관장이 약 20년 전에 이어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안창홍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의 소개로 안창홍의 작품을 알게 된 라스무센 관장은 4일 경기 여주미술관에서 열리는 ‘안창홍’전과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는 “작품을 실물로 처음 보았기에 이해하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박제 연작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엄청난 동물 박제를 소장하고 있는데, 그와 대비되는 효과가 흥미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6년 9월로 추진하고 있으며, 데이비드 호크니의 개인전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그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전시의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개별 예술가와 그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했다. 라스무센 관장은 북한 미술뿐 아니라 페르난도 보테로가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가혹행위 사건을 비판한 작품, 1976년부터 정치범으로 수감된 인디언 저항운동가 레너드 펠티어를 표현한 조각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라스무센 관장은 “논쟁적 주제를 던져 사회적 논의를 끌어내는 것이 미술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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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가 경매로 이끄는 비결은 풍선처럼 떠있는 분위기 조성”

    세계 양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에는 경매사 약 50명이 일하고 있다. 지금은 남녀 비율이 5 대 5로 거의 같지만, 7년 전만 해도 여성 경매사는 단 4명. 이때 여성이자 25세 최연소 나이로 경매사가 된 조지나 힐턴(32)은 수백억 원대 작품부터 산유 같은 인기 작가의 최고 기록까지 이끌어 내며 크리스티의 간판 경매사가 됐다. 휴가를 맞아 한국을 찾은 힐턴을 10월 25일 서울 종로구 크리스티 서울에서 만났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힐턴이 진행한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바스키아의 ‘엘 그란 에스펙타쿨로(El Gran Espectaculo (The Nile)·1983년)’는 6771만 달러(수수료 포함·약 952억 원)에 주인을 찾았다. 이는 2023년 경매에서 팔린 작품 중 19∼20세기 초 대가인 파블로 피카소, 구스타프 클림트, 클로드 모네에 이어 가장 비싼 가격. 당시 분위기를 묻자 힐턴은 “이례적으로 응찰자가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본인이 낙찰받는 것을 알리고 싶은 사람은 공개적으로 패들(번호판)을 들고 경매에 응하기도 하는데, 이 응찰자는 그렇지 않았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객석에 앉아 조용히 담당 직원에게 신호만 보냈습니다.” 약 2000만 달러에서 시작한 경매는 전화와 현장 응찰자의 경합으로 이뤄졌다. 초고가 작품인 만큼 가격은 아주 느리게 올랐다. 힐턴은 “풍선이 땅에 닿지 않고 떠 있도록 분위기를 띄우며 천천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경매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힐턴은 산유의 ‘붉은 국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무제(America #3)’ 등 당시 작가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의 경매를 이끌었다. 그에게 경매 분위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물었다. “여러 가지 전략 중 하나는 ‘침묵’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아시아 경매는 특히 템포가 느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은데, 계속해서 말하기보다 조용히 기다리며 긴장감을 높이죠.” ‘연극적 스타일’로 유명한 힐턴의 평소 경매는 밝고 경쾌하다. 2017년 처음 경매사가 됐을 때 그는 “여성 경매사가 적어 참고할 만한 스타일이 부족했는데 내 성격에 맞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며 “크게 팔을 휘두르는 등 움직임과 제스처를 활용해 재미를 주고, ‘한 번 더 비딩해 볼까요?’ 하는 등의 멘트로 응찰자와 유대감을 형성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처음엔 거울을 보거나 영상으로 기록하며 제스처를 연구했어요. 경매에 필요한 멘트도 거의 본능처럼 나올 수 있도록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습관처럼 내뱉었죠. 실전에선 현장 반응도 살펴야 하기에, 제스처와 멘트를 고민할 시간이 없거든요.” 생애 첫 경매는 영국 런던 사우스켄싱턴에 있는 저가 작품 경매장이었다. 힐턴은 “객석에 10명이 있었는데 그중 5명은 제 가족이었다”며 “저렴한 작품이기 때문에 템포도 빠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거운 경매를 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 마케팅 헤드를 맡고 있는 힐턴은 경매를 진행하지 않을 때는 홍보 캠페인을 기획하고, 유럽 고전 예술 작품 경매 업무도 담당한다. 11월 7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달 운석을 경매에 내놓는다. 힐턴은 “컬렉터들이 호기심을 놓지 않도록 새로운 것을 선보이려 노력한다”며 “지난해에는 아인슈타인의 손 편지였고, 올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달 운석”이라고 했다. 상하이에서 첫 경매에 나오는 달 조각은 어떤 기록을 세울까? 답은 경매장에서 결정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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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술집 같은 곳에 관객이 앉아야 작품 완성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두 개 층을 아우르는 넓은 전시 공간인 ‘서울박스’에 선술집이 등장했다. 낡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입간판에는 ‘낙지볶음, 조개탕, 돼지갈비’ 등 메뉴 이름이 붓글씨로 적혀 있다. 관객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완성되는 이 작품은 한국 작가 이강소가 1973년 명동화랑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인 ‘소멸’이다. 이강소의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10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 ‘이강소: 풍래수면시’가 1일 개막한다. ‘바람이 물을 스칠 때’라는 뜻을 가진 전시 제목은 송나라 성리학자 소옹(1011∼1077)의 시 ‘청야음(淸夜吟)’에서 따온 문구로,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면서 깨달음을 얻은 의식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전시는 미술관의 제3, 4전시실에서 열린다. 제3전시실에서는 실험미술에 영향을 받은 1970년대 개념미술 작품과 1980년대 추상, 구상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유리에 물감을 칠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 ‘페인팅78-1’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제4전시실에서는 청년 시절 설치 작품인 ‘근대 미술에 대하여 결별을 고함’(1971/2024년 재제작)을 비롯해 1974∼1979년 이강소가 중심으로 전개했던 대구현대미술제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내년 4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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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스 부르주아의 신비로운 감옥[김민의 영감 한 스푼]

    전시장 입구부터 무겁고 커다란 철문들이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철거된 건물에서 가져온 6개 문짝은 모두 방화문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도, 연기도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문이 서로 손을 맞잡은 듯 육각형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나란히 세워진 문들을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한 사람이 서 있을 만한 정도의 틈이 보입니다. 안이 잘 보이지 않던 철문 속에는 뭐가 있을까, 호기심을 잔뜩 안고 틈 앞에 서면 보이는 광경은….고독을 마주하는 감옥 제가 지금 묘사하는 작품은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2번 죄인’(Culprit Number Two·1998년)입니다. ‘Culprit’이라는 제목을 단순하게 ‘죄인’이라고 번역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책임자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요. 그 이유는 철문 속 펼쳐진 광경에 있습니다. 문틈 사이에 서면 조그마한 나무 의자와 얼굴이 겨우 보일 정도 크기의 동그란 거울이 보입니다. 나무 의자는 관객을 등진 방향으로 놓여 있어, 관객은 그 의자에 앉아 홀로 자기 얼굴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뒤로 열린 틈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스스로 만든 감옥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르주아가 1990년대 초반부터 만들기 시작한 ‘감옥’ 연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상상하며 처음엔 외롭고 힘들겠다는 느낌을 먼저 받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열릴 수 있는 문,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작은 틈, 의자 위에 놓인 신비로운 빨간 구슬 같은 것을 보면 단순히 ‘감금’이나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타의로 갇힌 감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곳은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고 정면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담긴 공간임을 느낍니다. 삶에서 고통이 찾아올 때 처음엔 그걸 외면하고 덮어 두려 하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결국 타인을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죠. ‘장본인’이라는 제목은 “네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부르주아가 이 작품에 대해 남긴 말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삶에서) 고통은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고통을 치유하거나 회피할 방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내가 가진 고통을 차분히 바라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내가 다녀온 황홀한 지옥 지난달 25일 개막한 이 전시는 일본에서 27년 만에 열린 개인전이자, 부르주아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최대 규모 회고전입니다.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가 뒤늦게 조명된 이유, 제니 홀저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모습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의 이야기에 맞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전시의 제목입니다. ‘나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황홀했습니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이 제목은 부르주아가 1996년 손수건에 자수로 놓은 글자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미술관은 이 문구가 그녀의 작품이 보여주는 여러 감정의 파동은 물론이고 부르주아의 유머 감각도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맥락은 이렇습니다. 부르주아는 오랫동안 아팠던 어머니, 권위적인 아버지 등 힘들었던 유년 시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일을 ‘불행’이라고 치부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파고들어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을 평생 작품으로 풀어냈죠. 즉 부르주아가 말하는 지옥이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고통과 그것이 수반하는 어두운 감정들을 말합니다. 부르주아는 그 감정들을 홀로 작은 의자에 앉아 곱씹다 조용히 일어나 빠져나오는, ‘지옥을 다녀오는’ 과정을 ‘황홀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위태로워서 강한 거미 엄마 이 전시는 모리미술관 앞에 설치된 10m 높이의 대형 거미 작품 ‘엄마’(Maman)의 의미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전시장 속 거미(1997년), 웅크린 거미(2003년) 작품과 함께 ‘엄마’는 가느다란 다리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강철로 만들어져 단단하고 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삶에서 안정적이고 단단한, 믿을 만한 것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안하고 흔들리며 위태로울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임을 부르주아의 여러 작품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미 엄마가 부드럽고 유연하면서 강하고 무서운 형태를 함께 갖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부르주아가 시간과 지역을 뛰어넘어 오래도록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건, 자신의 문제를 거울로 찬찬히,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정직하게 펼쳐 낸 결과임을 작품들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둠이 두렵다/나는 추락이 두렵다/나는 불면이 두렵다/나는 허무가 두렵다//(중략)//부족하다/뭐가 부족한가?/아무것도/난 불완전하지만 내게 부족한 건 없다/어쩌면 무언가 부족한데 몰라서 고통받지 않는가 보다//(생략)’(‘나는 두렵다’·2009년).※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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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1세대 사진작가 작품, 日서 첫 소개

    1950년대 전쟁 이후 한국의 풍경을 생생하게 남긴 1세대 사진가 임응식(1912∼2001)의 ‘구직’ 등 대표작의 빈티지 프린트(작가가 생전 직접 인화한 사진)가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에서 열린 예술 사진 페어 ‘T3 포토 아시아’를 통해서다. ‘T3 포토 아시아’는 아시아 예술 사진 시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페어로 한국인 김정은 더레퍼런스 대표가 디렉터를 맡아 한일 갤러리 14곳이 참가했다. 이 페어에는 한일 사진가의 빈티지 프린트를 선보이는 특별전 ‘마스터스’ 전시가 개최됐다. 임응식, 이형록, 한영수의 미공개 빈티지 프린트가 일본 사진가 시하라 오사무, 우에키 노보루 등과 함께 소개됐다. 김 디렉터는 “일본의 PGI갤러리 디렉터 사야카 다카하시와 협업해 일본인 사진 소장가인 ‘마루카와 컬렉션’을 함께 전시한 것”이라며 “전시를 본 마루카와 컬렉션 대표가 임응식의 작품도 소장해 향후 한일 사진의 역사의 빈자리를 메꾸는 컬렉션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사진가 이갑철의 미공개작 ‘사유와 추상’ 연작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작품들은 도쿄 도심의 사찰을 운영하는 스님이자 사진가인 아키요시 다니구치가 만든 공간 ‘쿠렌보’에 전시됐다. 쿠렌보는 사전 예약을 통해 15분마다 1명만 입장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또한 이번 페어에는 한국 갤러리 예화랑, 상업화랑, 스페이스 윌링앤딜링과 비영리 공간 프라이머리 프랙티스가 참가해 김도균, 안옥현, 박진영(Area Park), 장성은과 안초롱의 작품을 소개했다. 올해 처음 개최된 ‘T3 포토 아시아’ 페어는 도쿄의 사진 축제인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의 일환으로 열렸다.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는 6회째를 맞아, 올해는 ‘새로운 일본 사진: 50년 후’를 주제로 27일까지 도쿄 야에스, 니혼바시, 교바시 일대에서 전시를 열었다. ‘새로운 일본 사진’전은 1974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전시로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 예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기념해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과 뉴욕 MoMA의 사진 전문 큐레이터들도 일본을 찾았다. 김 디렉터는 “SFMoMA의 큐레이터 에린 오툴이 임응식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한 뒤 도몬켄 등 일본 사진가와 교류한 역사 등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의 디렉터 이히로 하야미는 “유연하고 다채로운 한국 현대 사진 미술이 많은 영감을 줬다”며 “이번 교류가 한일 사진 역사를 알리고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사진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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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1세대 사진가’ 임응식부터 이갑철 미공개 작품까지…日 ‘T3 포토 아시아’ 

    1950년대 전쟁 이후 한국의 풍경을 생생하게 남긴 1세대 사진가 임응식(1912~2001)의 ‘구직’ 등 대표작의 빈티지프린트(작가가 생전 직접 인화한 사진)가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에서 열린 예술 사진 페어 ‘T3 포토 아시아’를 통해서다. ‘T3 포토 아시아’는 아시아 예술 사진 시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페어로 한국인 김정은 더레퍼런스 대표가 디렉터를 맡아 한일 갤러리 14곳이 참가했다. 이 페어에는 한일 사진가의 빈티지프린트를 선보이는 특별전 ‘마스터스’ 전시가 개최됐다. 임응식, 이형록, 한영수의 미공개 빈티지 프린트가 일본 사진가 시하라 오사무, 우에키 노보루 등과 함께 소개됐다. 김 디렉터는 “일본의 PGI갤러리 디렉터 사야카 다카하시와 협업해 일본인 사진 소장가인 ‘마루카와 컬렉션’을 함께 전시한 것”이라며 “전시를 본 마루카와 컬렉션 대표가 임응식의 작품도 소장해 향후 한일 사진의 역사의 빈 자리를 메꾸는 컬렉션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사진가 이갑철의 미공개작 ‘사유와 추상’ 연작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작품들은 도쿄 도심의 사찰을 운영하는 스님이자 사진가인 아키요시 타니구치가 만든 공간 ‘쿠렌보’에 전시됐다. 쿠렌보는 사전 예약을 통해 15분마다 1명만 입장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또한 이번 페어에는 한국 갤러리 예화랑, 상업화랑, 스페이스 윌링앤딜링과 비영리 공간 프라이머리 프랙티스가 참가해 김도균, 안옥현, 박진영(Area Park), 장성은과 안초롱의 작품을 소개했다. 올해 처음 개최된 ‘T3 포토 아시아’ 페어는 도쿄의 사진 축제인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의 일환으로 열렸다.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는 6회째를 맞아, 올해는 ‘새로운 일본 사진: 50년 후’를 주제로 27일까지 도쿄 야에스, 니혼바시, 쿄바시 일대에서 전시를 열었다. ‘새로운 일본 사진’ 전은 1974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전시로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 예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기념해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와 뉴욕 MoMA의 사진 전문 큐레이터들도 일본을 찾았다. 김 디렉터는 “SFMoMA의 큐레이터 에린 오툴이 임응식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한 뒤 도몬 켄 등 일본 사진가와 교류한 역사 등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의 디렉터 이히로 하야미는 “유연하고 다채로운 한국 현대 사진 미술이 많은 영감을 줬다”며 “이번 교류가 한일 사진 역사를 알리고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사진 문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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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방울 속에 오롯이 간직한 ‘마음의 평화’

    선화랑은 다음 달 9일까지 이영수 개인전을 서울 종로구 갤러리 1, 2층 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전시는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을 그려 온 이영수 작가의 회화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Natural Image’ 등의 작품은 물방울 표면에 비친 풀잎은 뚜렷하고 자세히 표현한 데 반해 배경의 풀잎은 윤곽선을 흐리고 균일한 녹색 톤으로 그렸다. 이런 방식은 작가가 사진 같은 사실적인 느낌을 제거하고 회화성을 강조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 녹색 풀잎이 아닌 은행잎을 소재로 한 연작도 소개된다. 캔버스 천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지만, 여러 차례 붓질을 반복해 한국화처럼 맑고 투명한 색감을 나타내고자 했다. 최근 만든 작품 중에서는 은행잎으로 벤치나 의자 형상을 구성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지친 현대인에게 휴식과 안정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과 소중한 의미를 일깨우고자 했다”며 “작품 속 영롱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보는 이의 마음에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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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여성기자협회, ‘제2회 한일여성기자포럼- 저출생 위기, 함께 찾는 해법’ 개최

    한국과 일본의 여성기자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출생 해법을 함께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여성기자협회(회장 하임숙)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저출생 위기, 함께 찾는 해법’을 주제로 ‘제2회 한일여성기자포럼’을 개최했다. ‘한일 저출생 실태와 현 정부 정책 시사점’, ‘달라진 가족…다양성과 포용성 진단’, ‘저출생과 미디어의 역할’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포럼에는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효재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대사를 비롯해 양국의 여성 기자와 전문가 100여명이 참석했다. 1부에서는 이미지 동아일보 기자, 오다 마이코 닛케이 크로스우먼 편집위원, 유혜정 한반도미래연구원 센터장, 히구치 이쿠코 요미우리신문 조사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이 한일 출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을 분석했다. 2부는 김희경 강원대 객원교수, 오누키 사토코 아사히신문 기자, 박진경 일과여가문화연구원 사무총장, 하즈미 아야카 가나가와신문 기자,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 대사가 1인 가구 증가와 여성의 사회 참여 가속화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들여다봤다. 3부는 저출생 시대에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살펴봤다. 유수정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 야마와키 에리코 일본 교도통신 편집국 국차장, 이미숙 오츠마여자대학 커뮤니케이션 문화학과 준교수, 장은미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 아쿠츠 유키 홋카이도TV 도쿄지사 편성업무부장이 참여했다. 한일여성기자포럼은 양국 여성 기자들이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처음 열렸고, 올해는 규모를 확대해 두 번째로 열렸다. 주형환 부위원장은 축사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초저출산, 초고령화, 초인구절벽이라는 ‘3초’의 인구위기 앞에 서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더 좋은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간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효재 이사장은 축사에서 “저출생 문제는 사회적 이슈를 넘어 우리의 경제, 문화, 미래세대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도전과제”라며 “이번 포럼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한일 양국의 미래세대를 위해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길 기원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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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불암이 말하는 故 김수미…“사명감이 철저한 배우”

    “배우로서 사명감이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돈 벌려고, 유명세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충실한 배우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배우 최불암(84)은 향년 75세로 25일 세상을 떠난 김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불암은 25일 오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배우 김수미’에 대해 “용기도 대단하고 재주가 있던 배우”이라고 말했다. 최불암은 지난해 여름 한 예능 프로그램 촬영 때 김수미를 본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때 내가 보기에는 건강하게 일을 해야 하는데 조금 몸이 부어 있는 것 같았다.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아냐~ 괜찮아요~’ 이랬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빨리 들어가서 음식해서 내 솜씨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해서 촬영장으로 들어갔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촬영이 끝나고 갈 때 서운해서,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목이 멘 듯한 느낌으로 김수미 씨가 인사를 했어요. ‘내가 너무 일찍 나오는 거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수미는 세트장을 자기 집처럼 생각했다고 최불암은 말했다. 당시 촬영을 함께했던 배우 김용건(78)도 “여기 그냥 수미가 사는 집이구나, 세트가 아니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김수미는 “내가 그래요~”라고 웃었다고. 최불암은 김수미가 자신의 병색에 대해 말한 적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배우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배우를 지칭하는 말에 여러 가지가 있죠. 중국말로 연기자가 있고, 한국말로는 광대. 전국을 누비는 패거리.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배우’라는 말이 가장 좋습니다. 배우(俳優)라는 한자를 찾아보면 ‘사람이 아닌 우수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인이 아프거나 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들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도 수십 명의 동료를 다 잃었어요. 그 중 자기의 아픔에 대해, 무슨 병이 있다고 나에게 보고를 한 사람이 없어요. 그런 배우의 정신이 김수미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수미는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 역을 맡아 유명세를 탄다. 할머니 역을 시작할 때 그의 나이는 고작 29살. 최불암은 말한다. “일용엄니는 시골에 가면 한명 씩 꼭 있는 재밌는 할머니 캐릭터죠. 왔다갔다 하며 정보가 가장 빠른 할머니요. 그런 할머니 캐릭터를 캐치 하는 김수미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젊을 때 참 예쁜 외모를 갖고 있었음에도 그런 재주가 있었기에 어린 몸에도 노역을 했습니다. 본인의 젊음을 무릅쓰고 70대 할머니 역할을 했다는 용기도 대단하지만 재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다양성, 직관력, 관찰력이 발달했던 사람이었죠.” 김수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음식도 잘 하고, 남 먹이기를 좋아해 촬영장에 음식을 잔뜩 해오곤 했다는 최불암의 설명. “남 먹이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 음식 해오면 김치도 서너 가지 가져오고. 고기도 이 고기 저 고기 해서 여러 가지 해서 가져오고. 나를 보면 ‘회장님 오시는구나~’하면서 반갑게 맞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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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용엄니’ 배우 김수미 별세…향년 75세

    국내 최장수 방송 드라마인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사랑받았던 배우 김수미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경찰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8시경 심정지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인은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고혈당 쇼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고인은 지난 5월부터 피로 누적 등으로 활동을 중단해왔다.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고인은 드라마 ‘전원일기’(1980년~2002년)에 일용엄니 역으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젊은 나이에 60대 노인 역할을 맡았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전 나이 순서대로 살아온 게 아니라 거꾸로 살았잖아요. 겨우 스물아홉에 일용어머니 역할을 했으니 제대로 된 청춘을 못 느끼고 살아서 좀 억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1986년 MBC 연기대상을 받았고 이후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 영화 ‘가문의 영광’ ‘맨발의 기봉이’ 등에서 괄괄한 어머니 역이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를 코믹하게 연기해 인기를 누렸다. 최근까지도 영화·뮤지컬·예능 등에서 전방위로 활동해 온 김수미는 동료들에게 병색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과 함께 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저마다 애도를 보내며 고인과의 기억을 추억했다. 배우 김용건(78)은 “2주전 마지막 통화를 하며 ‘또 봅시다, 오빠’라고 했는데 그 말을 못지켰다”며 “혹시 가짜 뉴스가 아닐까 싶었는데 황망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여배우로서 노인 역을 소화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프로의식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그런 연기 욕심과 열정이 있으니 작품마다 새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배우 최불암(84)는 “배우(俳優)란 ‘우수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아프거나 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들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배우 정신이 김수미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다양성, 직관력, 관찰력이 발달했던 충실한 배우였다”고 고인을 회고했다.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이 기억하는 김수미는 배우로서의 사명감뿐 아니라 인정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 먹이기를 좋아해 촬영장에 음식을 잔뜩 해오곤 했다. 최불암은 “김치도 서너 가지 가져오고 고기도 여러 가지 해서 가져오곤 했다. 나를 보면 ‘회장님 오시는구나~’하면서 반갑게 맞아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전원일기’에서 응삼이 어머니 역으로 출연했던 김영옥(86)은 고인에 대해 “‘천생 연예인’이라며 “일에 목마른 사람처럼 오늘날까지 미친 듯이 뛰어온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20일 전쯤 통화를 할 때만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인사도 못 하고 갑자기 가 버리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배우 강부자(83)도 “입원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며칠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일 잘하겠지’ 생각했는데 너무 망연자실해서 앉아만 있다”고 말했다.함께 전원일기에 출연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73)은 이날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로 가족처럼 다가오신 분이라 그 슬픔이 가족을 잃은 것처럼 크게 다가온다”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신 고인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애도한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 배우인 며느리 서효림 씨 등이 있다.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11시. 02-2290-9456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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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와 만난 한국 현대미술 [영감 한 스푼]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을 찾는 여행객이 많습니다.그런 클림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길이 34m,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벽화가 있습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한 ‘베토벤 프리즈’입니다.1900년을 전후로 오스트리아 빈은 격동의 역사를 겪었습니다.유럽 전역은 아카데미를 거부하고 바르비종, 인상파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의 바람이 불었고, 그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왕정을 유지했던 빈 사회는 탐미주의로 빠져들었죠.땅 위로는 화려한 도시가, 그 밖에는 빈곤과 범죄가 가득한 모순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안은 빈은 사회주의에 경도된 ‘레드 비엔나’로 기울었다가, 그 후에는 나치 점령되며 극단을 오고 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이 중 ‘탐미주의’가 넘쳐났던 빈의 분위기를 담은 예술이 바로 클림트의 화려한 작품들입니다.그런 역사를 담은 작품 옆에 한국의 현대미술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됐습니다. 그 현장을 직접 가보게 되어 오늘 뉴스레터로 소개합니다.‘황금 양배추’ 속 DMZ빈의 미술관인 ‘제체시온’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로 유명합니다. 제가 찾은 날에도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문을 열기 전부터 관객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그중에는 현지 미대 학생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이 클림트의 작품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꾸준히 기획전을 여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입니다.이곳에서 오스트리아에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하는 전시 ‘그림자의 형상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 전시의 출발은 2012년부터 비무장지대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 디엠지’. 즉 ‘황금 양배추’ 미술관 속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출발한 여러 사유를 다룬 현대미술전이 펼쳐진 것입니다.이 전시는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위 사진이 전시장 입구로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나는 광경인데, 아르헨티나 출신인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대형 설치작품이 보입니다.1969년 달 착륙 풍경을 재해석한 것으로, 가운데 아주 무거운 머리를 하고 있는 인물이 인상적입니다. 이 인물의 손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쥐어져 있습니다.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 그리고 찬란하지만 제국주의를 떠올리게도 하는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품 등을 통해 작가는 냉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이 작품의 뒤로 펼쳐진 임민욱의 ‘커레히-홀로 서서’는 군용 모포에 그린 그림인데요. 군에서 병사는 몸도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모포를 덮고 자는 꿈까지는 통제할 수 없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뒤로는 이불 작가가 DMZ 감시 초소에서 나온 철조망으로 만든 ‘오바드 V’도 전시됐습니다.냉전의 그림자는이주, 분쟁 등세계의 여러 그림자로….이 전시가 DMZ에서 시작했지만 장소는 오스트리아인 만큼 그 내용은 냉전이나 분단에서 출발해 다른 현대사회의 문제들로 확장됩니다.튀르키예 작가 닐바 귀레시는 수십 년간 분쟁으로 인프라가 심각하게 부족해진 동부에서 전화 신호를 잡기 위해 동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습니다.라미로 웡의 ‘이주에 관한 노트’ 연작은 음식을 먹고 남은 그릇을 한데 모아 포장한 뒤 여행 가방에 넣어 굳힌 작품을 보여줍니다. 이 작가는 전시하는 지역마다 그곳의 재료로 자신이 태어난 곳의 전통 요리를 합니다. 완벽히 재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동떨어진 것도 아닌 음식의 맛을 통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제주의 버려진 리조트에서 음악가, 미술가, 시인, 반군국주의자, 환경운동자, 이주민, 퀴어 등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급과 분열 위에 세워진 세계를 끝내기 위해 장례 의식을 치르는 영상 작품도 상영됩니다. 제인 진 카이젠의 ‘이 질서의 장례’입니다.“‘쿨한’ 한국,더 깊은 모습 알게 돼“전시를 함께 관람한 제체시온의 큐레이터 베티나 스포르는 오스트리아의 최근 선거 결과(극우파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음)를 언급하면서, 전쟁의 공포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이렇게 한국의 분단 문제에 대해 현지 큐레이터, 작가들은 진지하게 관심을 표했습니다.전시를 열게 된 과정에 대해 관장인 라미쉬 다하를 만나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술가인 다하는 팬데믹 기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많이 접했다고 합니다.그러면서 “유럽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해 ‘쿨한’ 한국과 ‘끔찍한 독재 국가’ 북한의 이미지가 일반인이 갖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그는 중개인을 통해 북한의 전통 자수 공예가에게 의뢰해서 만든 함경아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고 놀랐다고 털어놨습니다.또 “오스트리아는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었고, 최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으로 확전될 거라는 우려, 극우파의 압박 속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이런 점에서 아직도 냉전이 진행 중인 한국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또 한국 미술 작품을 초청하고 싶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제체시온은 클림트의 작품도 있지만, 지금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와 정치에 관해서도 적극 참여하고 발언하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예술가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울 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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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흰 것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칠이 벗겨진 자리마다 녹이 슨 문. ‘301호’임을 가리키는 숫자를 송곳으로 아무렇게나 긁어 표시했으며 방에는 크고 작은 얼룩이 졌고 스위치 주변은 까만 자국이 가득하다. 이 집에 살기로 계약하고 들어선 주인공은 흰 페인트와 평붓을 들고 더러운 곳들을 칠하기 시작한다. ‘얼룩이 지더라도 흰 얼룩이 더러운 얼룩보단 낫겠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상처투성이인 문, 핏자국 같은 녹물, 송곳으로 아무렇게나 그은 숫자들을 흰색으로 칠해버리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눈처럼 하얀 강보에 꼭꼭 싸인 아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아기는 내 어머니가 낳은 첫아기.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고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 코, 입이 또렷하고 예뻤다. 까만 눈을 뜨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살아 있는 시간 동안 들은 유일한 음성은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속삭이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주인공은 그 아이가 때로 나의 삶에도 찾아왔는지 떠올려 본다. “그이가 나에게 때로 찾아왔었는지. 잠시 내 이마와 눈언저리에 머물렀었는지.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어떤 감각과 막연한 감정 가운데, 모르는 사이 그이로부터 건너온 것들이 있었는지. 어둑한 방에 누워 추위를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주인공은 누군가가 한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는 질문에 아기의 죽음을 떠올린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이 말은 더 적나라하게 옮긴다면 그 아이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 덕분에 가능했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주인공이 한국을 벗어나 지구 반대편의 오래된 도시로 옮겨오면서 더 넓은 차원으로 확대된다. 이 도시는 주인공의 말로 유추했을 때 폴란드 바르샤바로 추정된다. 자신의 책을 옮긴 번역자의 초청으로 휴가 기간 동안 바르샤바에 오게 된 주인공은 우연히 1945년 봄 미군 항공기가 촬영한 도시의 영상을 보게 된다. 흰 눈에 뒤덮인 줄 알았던 도시의 사진은 가까이 가니 산산이 부서져 폐허가 된 모습이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며 봉기를 일으켰던 이 도시를 (중략)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깨끗이, 본보기로서 쓸어버리라”는 히틀러의 명령 아래 이 도시는 완벽하게 무너지고 부서졌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 죽은 아기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치에 죽음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금의 세계는 연약한 아이가 죽었기에 태어난 어느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 도시에서 주인공은 상처 위에 ‘흰’ 페인트를 칠하며 치유를 시도한다. 그러나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칠하는 ‘흰’은 상처를 안 보이게 덮는 것이 아닌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 같은 것이다.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더러운 얼룩보다는 그나마 나은 흰 얼룩. 그런 ‘흰 것’에 대한 단상을 이어가며 주인공은 죽은 아기에게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빌려주고자 한다. 그렇게 주인공이 써 내려간 ‘흰 것’은 총 65개의 짧은 챕터로 구성된다.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흰 도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흰 돌, 흰 뼈, 백발, 구름, 백열전구, 백야,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흰나비, 쌀과 밥, 수의, 소복, 연기, 아랫니, 눈, 눈송이들, 만년설, 파도, 진눈깨비, 흰 개, 눈보라, 재, 소금, 달,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손수건, 은하수, 백목련, 당의정…. 세상의 흰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생각하는 것들은 이렇다. 희게 얼어 있는 바다, 태양 빛이 조금 더 창백해지기 시작하는 서리가 내릴 무렵, 죽은 나비의 투명해져가는 날개, 움켜쥘수록 차가워지는 창백한 두 주먹, 검은 코트 소매에 내려앉았다 녹아 사라질 때까지 1, 2초를 살다 가는 눈,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어느 추워진 아침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로 입술에서 처음으로 새어 나오는 흰 입김,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흰 새, 날개를 반쯤 접은 새처럼 머뭇머뭇 내려앉을 데를 살피는 혼처럼 떨어지는 손수건. 이렇게 덧없어 보이는 것들을 떠올리는 가운데 낯선 도시의 사람들이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일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일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그러한 죽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달래기 위한 애도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재건하기 위해 그러한 애도를 이어 나간다.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었” 듯이 삶과 죽음은 얇은 종이의 하얀 앞 뒷면처럼 가까운 일이다. 나만 살았다고 온전히 산 것이 아니며 그 옆엔 죽음이 항상 따라다닐 수 있음을 떠올리는 유연한 사고, ‘끌어안음’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 이유 없는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아기에게 다시 한번 말한다.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으며 2017년 영국 가디언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가디언은 “한강의 ‘흰’은 신비한 텍스트다. 부분적으로는 세속적인 기도서 같기도 하다. (중략) 상처와 고통을 언어로 초월하려는 한강의 소망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라고 평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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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어질 결심’ 류성희 미술감독 디자인,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에 소개

    박찬욱 영화감독과 오랫동안 협업해 온 류성희 미술 감독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전시가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다.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원장 임진홍)은 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과 한국 영화미술을 소개하는 전시 ‘씬의 설계: 미술 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상’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전시는 영화 ‘헤어질 결심’, ‘아가씨’를 중심으로 영화 속 프로덕션 디자인 과정을 소개하고 류성희 미술 감독의 작업 과정과 디자인 철학을 조명한다. 류 감독이 제공한 사진과 영상 자료로 전시를 구성했으며 VR기기를 통해 영화 세트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전시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빈의 영화관인 슈타트키노(Stadkino)에서 ‘헤어질 결심’ 상영회가 열린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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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옻칠 집’ ‘조개껍질 한옥’… 건축, 자연을 입다

    “일본에서도 사라져 가는 기술을 가져와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기쁩니다. 그냥 방치하면 고장 나는 천연 기술이니 앞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83)가 22일 광주에서 ‘옻칠 집’을 공개했다. 광주 동구 동명동의 한 주차장에 마련된 ‘옻칠 집’은 건칠 기법을 활용해 만든 실험적인 건축물이다. 실제 모습은 집보다는 햇볕이나 비를 잠시 피해갈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그러나 공예에만 사용되던 옻칠 기술을 처음으로 건축에 활용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토는 센다이 미디어테크, 토즈 오모테산도 빌딩, 이토 도요 건축박물관 등의 프로젝트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이재민 쉼터인 ‘모두의 집’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모두의 집’은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가 참여한 ‘옻칠 집’은 일본 도키 겐지 미야기대 교수와 가나다 미쓰히로 도쿄예술대 교수가 협업했다. 로마 시대에 사용되다 잊혔던 ‘콘크리트 건축’이 최근 150여 년간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 시작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진 ‘건칠’ 기술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 이번 프로젝트다. “건칠 기술은 천 위에 옻나무 수액을 겹겹이 입혀 단단하게 만드는 것으로, 합성수지와 접착제를 사용하는 플라스틱(FRP)의 천연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햇볕에 노출되면 변색하고 삭는다는 단점이 있는데, 옻칠 건축물은 유지 관리를 하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으며 천연 재료로 만들어 더 이상 쓰지 않을 때도 환경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죠.” 이토 측은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500m 초고층 건축보다 더 큰 노력이 드는 프로젝트였다”고 밝혔다. 이날 이토가 한국을 찾은 것은 그가 제5회 광주폴리 ‘순환폴리 Re:Folly’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광주폴리는 건축가들이 실험적인 건축물에 도전해 결과물을 광주 도심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광주폴리는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총감독을 맡아 ‘기후변화 시대 건축의 미래’를 주제로 ‘옻칠 집’을 비롯해 ‘숨 쉬는 폴리’, ‘이코한옥’, ‘에어 폴리’ 등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숨 쉬는 폴리’는 조남호 건축가와 친환경 건축 전문가 이병호가 협업해 목재로 만든 구조물이다. 나무를 활용해 ‘숨 쉬는 외벽’을 만들고 지하에 50m 길이 튜브를 연결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조성했다.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을 달아 일반적 콘크리트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10%만으로도 적절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인천 공장에서 만들어 광주로 가져왔을 정도로 이동이 쉬워 야외무대 대기실이나 독서, 교육 공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이코한옥’은 건축가 그룹 어셈블(영국), BC아키텍츠(벨기에), 아틀리에 뤼마(프랑스)가 협업해 굴, 꼬막 껍데기, 미역과 다시마, 볏짚과 왕겨, 건설 현장의 흙과 돌을 재료로 벽돌, 기와, 미장 재료, 건축 패널을 제작해 만든 한옥이다. ‘에어 폴리’는 미역 줄기로 만든 ‘재활용 건축’이다. 이번 광주폴리 프로젝트 결과물은 과거의 광주폴리 참여 작품들과 함께 ‘광주폴리 둘레길’을 통해 도보로 모두 관람할 수 있다.광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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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라한 환경서 만드는 화려한 진주 상품

    “뉴욕에서 내가 먹는 사탕을 아주 멀리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포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 놓인 사람의 몸, 노동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조명한 미카 로텐버그의 개인전 ‘노 노즈 노우즈(No Nose Knows)’가 23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개막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텐버그가 20여 년간 작업해 온 대표 영상과 설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의 출발은 로텐버그가 대학원생일 때 만든 초기 작품 ‘메리의 체리’다. 좁은 공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체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은 유쾌하며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이 작품은 이어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노 노즈 노우즈(NoNoseKnows)’로 이어지는데, 백인 여성이 재채기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영상과 중국에서 진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영상이 전시된 장소 입구에는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진주가 놓여 있는데, 이렇게 최종 결과물로 생산된 진주는 반짝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흙투성이의 맨바닥이다. 상품은 우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작가는 세계의 수많은 자원을 한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현대사회 경제의 이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텐버그의 작품만이 가진 강점은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발랄한 색감과 재치가 가미된 스토리다. 21일 기자들을 만난 로텐버그는 “세상에 대해 비평할 수 있지만 너무 진지하게 힘을 줘서 명령하듯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유머는 작가로서 나름의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에는 긴 손톱이 달린 채 벽면에서 회전하는 조각 작품 ‘손가락’이나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을 연상케 하는 ‘스파게티 블록체인’ 같은 작품도 볼 수 있다. 작가는 대규모 상품 유통 과정을 역설적으로 묘사한 ‘코스믹 제너레이터’를 꼭 봐야 할 대표 작품으로 꼽았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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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의 도시 공간과 교감된 미술 …‘서울청년비엔날레’ 12월 24일 개최

    서울 서초구 멀버리힐스(MULBERRY HILLS) 빌딩 안의 갤러리와 전시장에서 국제적 감각의 청년 작품들이 모인 비엔날레가 열린다. 12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2024년 ‘서울청년비엔날레’가 그것. 이 비엔날레 전시는 멀버리힐스 9개 전시관, 갤러리 앨리 6개 전시관, 그 외 모든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25여 갤러리 전시관을 한 빌딩 안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19세 이상 45세 이하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전시 형식과 작품이 강남의 도시 공간과 교감 된 미술로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이경모(미술평론가협회 평단 주간) 운영위원장은 “올해 서울청년비엔날레는‘청년 서울, 청년 미술, 청년 아더랜드’라는 주제로 개최된다”며 “멀버리힐스 다목적홀에서는 서울청년비엔날레 포럼을 세계미술의 다양한 전략과 청년 미술 환경의 회복성을 주제로 연다“고 전했다. 포럼은 △미술의 도시 서울 △청년 미술의 개념과 변화 등 세션으로 진행된다. 안재영 총감독은 “미술뿐 아니라 영화, 디자인 및 다양한 문화의 영역까지 확장된 청년들의 시각과 전문성, 예술성을 폭넓게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수석큐레이터는 P&C TOTAL GALLERY 박천희 대표가 맡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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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제목이 왜 ‘무제’?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제목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즉흥적으로 붙인 제목이 나중에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제목은 후대의 연구자들이 임의로 붙이기도 한다. 또 어떤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러 동떨어진 내용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술 작품의 제목을 돌아본 전시 ‘이름의 기술’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1560점 중 관객이 난해하게 여길 만한 ‘무제’, ‘기호’, ‘문장형’의 제목을 가진 작품 37점을 소개한다. 먼저 ‘무제’는 추상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으로 1970, 80년대 멋이나 유행의 어조로 지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내용이 없어 불친절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따라서 전시는 ‘무제’ 제목이 붙은 작품은 이미지를 언어에 가두지 않고 관객이 직접 교감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호형’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불분명하게 내세워 작가의 의도를 감춘다. 김도균 작가의 ‘b.vfd. 46.1783921.266070-01, 2011’이 그 예다.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촬영한 사진으로, 촬영한 장소의 지도에 표기된 좌표를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암호 같은 제목은 작품이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고 관람객이 상상하고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문장형은 1990년대 이후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공성훈의 ‘예술은 비싸다’(1992년), 김상진의 ‘나는 사라질 것이다’(2021년)처럼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온라인에서 밈으로 활용되는 유행어를 차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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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작품에서 제목의 의미는…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이름의 기술’전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제목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즉흥적으로 붙인 제목이 나중에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제목은 후대의 연구자들이 임의로 붙이기도 한다. 또 어떤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러 동떨어진 내용의 제목을 붙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술 작품의 제목을 돌아본 전시 ‘이름의 기술’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1560점 중 관객이 난해하게 여길 만한 ‘무제’, ‘기호’, ‘문장형’의 제목을 가진 작품 37점을 소개한다. 먼저 ‘무제’는 추상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으로 1970~1980년대 멋이나 유행의 어조로 지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내용이 없어 불친절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따라서 전시는 ‘무제’ 제목이 붙은 작품은 이미지를 언어에 가두지 않고 관객이 직접 교감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호형’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불분명하게 내세워 작가의 의도를 감춘다. 김도균 작가의 ‘b.vfd.46.1783921.266070-01,2011’이 그 예다.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촬영한 사진으로, 촬영한 장소의 지도에 표기된 좌표를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암호같은 제목은 작품이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고 관람객이 상상하고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문장형은 1990년대 이후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공성훈의 ‘예술은 비싸다’(1992), 김상진의 ‘나는 사라질 것이다’(2021)처럼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온라인에서 밈으로 활용되는 유행어를 차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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