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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불안에 사로잡힐 때, 누군가는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로 새로운 고민이 이어질 수 있겠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에 집중해 ‘어떻게 생각을 멈출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계적으로 40만 부가 팔린 ‘생각 중독’을 썼던 저자가 인지행동치료(CBT) 원리를 바탕으로 수년간 개발, 검증해서 제시하는 해결의 원칙은 ‘버리고-정리하고-바꾸어라!’다. 먼저 휘몰아치는 생각과 감정을 ‘명령’이 아닌 ‘정보’로 받아들이고 객관적으로 본 다음 필요 없는 것을 ‘버려야’ 한다. 다음은 마인드맵, 일기 쓰기, 시간 관리 등의 방법을 통해 생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상황 자체가 아닌,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바꿔야’ 한다. 책은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반추’를 줄이는 훈련법, 주의력 훈련법, 분석 마비에서 벗어나는 법 등 실천법과 ‘감정 어휘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글쓰기 가이드, 불안 수준 평가표 등을 수록했다. 저자는 우리가 걱정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분석하는 ‘생각 과잉’ 상태에 몰입하면 더 많은 걱정과 불안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회피 행동이며 ‘가짜 불안’을 인식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또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고향’이라는 말을 그곳에 붙이기는 무언가 어색합니다. ‘고향’이라면 산과 들이 있는, 아주 옛날 우리가 ‘원래’ 살았던 어딘가를 상상해야 할 것 같죠.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늘 그 자리에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안식처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공간입니다.이 모든 것은 농경 사회나 오랜 세월 문화와 전통을 유지한 토착민이 사라지고 ‘도시’가 생겨나며 발생하는 현상입니다.이런 가운데 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의 작품은 묻습니다.“여전히 집은 영원한 안식처인가? ”그의 작품은 식기가 가득 놓인 식탁에 전선을 달아 전기가 통하도록 만들거나, 그 입구에 벌겋게 달아 오르는 열선을 달아 감옥 같은 풍경을 연출하죠.따뜻한 집이지만 불안한 기운이 가득 도사린 모습. 돌아갈 고향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감각을 자극해 세계 여러 미술 기관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명되고 있습니다.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일상 속 당연해 보이는 것정말 당연한가?모나 하툼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독일 카셀 도큐멘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와 미국 뉴뮤지엄 등 여러 미술 기관과 국제전에 참가해왔습니다. 올해는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2인전을 앞두고 있는데요.저는 2016년 영국 테이트모던 개인전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때 기억을 되살려 가장 먼저 하툼이 사용하는 작품의 ‘소재’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작가님은 일상 속 도구를 작품의 재료로 자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그런 평범한 재료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의자, 침대, 탁자는 그걸 쓰는 사람의 ‘몸’이 편히 눕고 기대거나 앉도록 만든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를 보면 자동으로 그걸 사용하는 상상을 하게 돼요. 제가 작품에 몸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익숙하지만 어딘가 변형된 사물을 보면 사람들은 이상한 감정을 느끼죠.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위험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불안정해집니다.이건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져보는 거에요. - 저도 그런 기분을 느꼈어요. 이를테면 치즈 강판 모양으로 만든 침대 작품을 보면 저절로 눕는 모습을 상상하죠. 그 다음엔 강판에 무언가가 갈리는 생각으로 이어져요(…). 이렇게 작품 속 사물들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작가님이 사물을 볼 때 어떤 부분을 눈 여겨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님의 질문에서 ‘사물이 살아있다’는 표현이 좋아요. 제 작업에 실제로 물건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요. 테이트 모던에서도 전시한 설치 작품 ‘Homebound’에 모든 물건에 전기가 통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요.저는 학생 때부터 ‘보이지 않는 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전기나 자성(magnetism)에 매료됐는데, 가만히 있는 사물에 전기를 통하게 하면 마치 그 물건에 생명력이 생기는 듯한, 일종의 애니미즘을 생각하게 됐죠. - 그 작품 앞에서 무서운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나요. 내가 무언가를 잘못 만져 감전되는 상상이들기도 했고요.맞아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집이 흉기로 변하는 순간이죠.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제가 제목을 ‘Homebound’라고 한 이유는 ‘bound for home’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집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습니다. 즉 돌아갈 수 없는 집이거나, 집 안에 갇혀서 나갈 수 없는 구속된 상태를 뜻할 수도 있고.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모호한 제목이죠. - 집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네요.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하는 휠체어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제가 병원에서 본 휠체어에서 영감을 얻은 거에요. 그 휠체어는 바퀴가 아주 작았는데 이는 누군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앉은 사람이 스스로 조작하긴 힘들다는 의미죠. 이 의자의 손잡이를 칼처럼 만들고, 받침대는 도망가려는 듯 앞으로 기울였어요. 약간 코믹한 느낌도 나죠. 이 모양은 내 휠체어를 밀어주는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상황을 생각한 거에요.영어에 ‘먹이 주는 손을 물어 버린다’(bite the hand that feeds you)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내 휠체어를 밀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데 공격하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을 표현해봤어요.- 그럼 일상적인 사물을 볼 때, 그것의 원래 기능과 반대되는 면을 생각하나요? 음, 이게 정말 믿을만한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편에 가까워요.누군가가 나를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표면 아래에 있는 진심은 정말로 무엇일까 의구심을 갖는 거죠.익숙한 문화권을 떠나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하거든요.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괜찮았던 일들이 다른 곳에선 그렇지 않아요.저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문제 제기 하는 것을 좋아해요.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뉴스나 정부 발표 같은 것들이 혹시 내 생각을 조종하는 건 아닌지, 그 이면에 다른 뜻은 없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서요.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권력 기관에서 하는 말을 다 맞다 생각하고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표면 아래에 것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나에게 집은 항상 움직이는 것”-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요? 저에게 ‘돌아가고 싶은’,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집은 제가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집이에요. 그런데 그 집도 원래 저희 부모님이 살았던 곳은 아니죠. 제 부모님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한 거니까요.그런데 지금 그 집도 완전히 사라졌죠. 15년 간 내전과 침략까지 너무나 많은 분쟁을 겪었으니까. 사실 제게 ‘집’이란 개념은 없어요. 모두 사라졌죠. 요즘 제가 집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런던의 제 집이에요. 그렇지만 전시나 프로젝트를 위해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저한텐 그렇게 거처를 수시로 옮겨 다니는 일이 아주 익숙하고 편해요. 그러니 런던 집도 완전한 집처럼 느껴지진 않아요. 오히려 항상 움직이며 다른 상황에 있는 것을 즐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집은 항상 움직이는 곳이에요. - 제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작가님의 많은 작품들이 집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 집이 다른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그렇죠. 제가 ‘집’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건 확실해요. 왜냐면 안식, 편안함, 돌봄을 주는 ‘집’이라는 공간에 제가 완벽히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또 제가 집을 다루는 데에는 ‘여성’에 관한 문제도 있어요. 이를테면 제가 전기를 흐르게 한 식탁은 보통 여성들이 머무르며 가족을 돌보고 베푸는 공간으로 상상하죠. 그런데 이런 ‘따뜻한 부엌’에 있는 여자가 마음 속으로는 내가 여기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면 어떨까요?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면. 혹은 집 안에서 학대가 있다면? 이렇게 집에 관한 고정관념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말자는 거에요. 이 이야기를 하니 제가 미국의 셰이커 커뮤니티에 잠시 머물렀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 사람들은 외부 문명과 차단된 채 한 지역에서 몇 세대에 걸쳐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며 살아온 분이에요. 그렇게 한 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그 커뮤니티를 경험하며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정말 놀랐죠. 거길 떠날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 재밌네요. 그런데 그렇게 변하지 않는 커뮤니티라는 건 셰이커 교도들처럼 아주 특별한 곳에서만 가능하잖아요. 지금은 사방에서 무한한 정보가 쏟아지고 매일 매일 변화가 일어나죠. 그 가운데 사람들은 얼마 살아본 적도 없는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네. 제가 만약 그런 안정된 공동체 안에서 태어났다면 또 저항하고 빠져나오려 애썼을 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잖아요.저는 레바논에서 자랄 때도 거기서 태어난 친구들에 대해 질투를 느꼈어요.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친구들을 따라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며 ‘난 왜 이런 게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처음 찾은 한국한지 작품 실험해보고 싶어- 작가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예술 작품은 뭔가요?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4-5살 때가 떠오릅니다. 유치원에서 그리기, 색칠하기, 콜라주, 심지어 긴 색종이 띠를 천처럼 엮어보았던 기억도 나요. 그게 제 어린 시절 최고의 기억이예요.그 후 학교에선 교과 과정에 미술이 없었지만 과학시간에 해부학이나 식물 그림, 지리학 시간에 지도를 그렸고 그 때마다 칭찬을 받았어요. 어쩌면 그런 것들이 제 첫 예술 작품일지도 몰라요. 그런 경험에 제게 큰 격려가 되었거든요.재밌는 건 저희 아버지가 제가 어릴 때 만든 과학 드로잉이나 책에 한 낙서를 전부 버리지 않고 갖고 계셨다는 점이에요. 제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 했을 때 아버지는 안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제 그림을 조용히 감상하고 좋아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았죠.-모든 부모님들은 자식이 예술가가 된다고 하면 걱정하시죠.아버지는 반대했죠. 그걸로는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레바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우연히 런던에 갔는데, 이 때 1975년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요. 전쟁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서 일주일만 머물 예정이었는데 발이 묶였어요.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여름 내내 일을 했지만 전쟁은 더 심해졌고, 그래서 가고 싶었던 미술학교에 가게 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저녁과 주말에도 항상 일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지중해에서 온 저에게 런던은 너무 춥고 안개가 가득해서 처음 몇 년 동안은 감기를 달고 살았어요. - 한국은 어떤가요?이번이 제 첫 한국 방문이에요.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지난 30년 동안 그룹전에 7번을 참여했는데 올 기회가 없었어요. 아직 한국에서 충분한 시간을 지내지는 못했지만,어제 시장에서 큰 한지 여러 장을 샀어요. 그걸 보고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작업실로 돌아가면 바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일 말고 궁금한 건 없나요?) 다이소! 다이소에 가서 일상 속 여러가지 물건들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웃음)※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낙원상가의 기적.” 현대미술가 김아영(사진)과 그의 스튜디오 매니저들은 올해 11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개인전 개최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지난해 가을 듣고 이렇게 반응했다. 김 작가는 수년 동안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아파트의 작업실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어 왔다. 2022년 여기서 탄생한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는 작가에게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최고상과 ACC 미래상, LG구겐하임 어워드를 안겼다.이후 김 작가는 호주무빙이미지센터(ACMI) 개인전과 독일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 개인전, MoMA PS1 개인전과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 그룹전에서 전시를 했거나 전시가 예정돼 있다. ‘기적’이란 표현도 그리 과장이 아닌 셈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신작 ‘플롯, 블롭, 플롭’을 공개한 작가를 26일 만났다.● 아날로그로 빚어낸 최첨단 미술김 작가는 생성형 인공지능(AI)부터 게임엔진, 모션 캡처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최첨단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작품을 찬찬히 보면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고, 문헌을 뒤져보는 ‘아날로그’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세계관이 강점임을 알 수 있다. AI 등 각종 기술을 활용하는 작가가 적지 않지만, 그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도 이런 세계관이 사회와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 역시 배달 플랫폼이 만들어 낸 현실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의 샘 바더웰 관장은 이 작품을 두고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살필 수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팬데믹 시기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며 벌어지는 인간 주체성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미술관들이 흥미롭게 본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을 준비하며 손수 배달 라이더의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배달을 나갔다. 작품에 투영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개념을 폭넓게 연구하기도 했다. “세종대왕 때 만든 달력인 칠정산에 대해 공부하고, 18세기 인도에서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에 매혹돼 전통 인도 시간관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를 만났어요. 아시아의 전통 나침반인 ‘윤도(輪圖)’를 만드는 무형유산 보유자를 전북 고창으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정독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구상” 결국 ‘기술’이 활용되는 건 발품을 들인 조사를 토대로 뼈대를 구성하고 난 다음이라고 김 작가는 말했다. 그는 “AI 같은 기술을 이용한 프로덕션은 가장 마지막 과정”이라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책”이라고 했다. “편한 차림으로 책가방을 메고 근처 정독 도서관에 올라가 책을 읽고, 메모하고, 여러 문헌을 연결 지으며 저만의 세계관을 만들 때가 가장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에요. 물론 이미지를 만지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구상하는 건 지극히 아날로그한 과정입니다.” AI를 활용하는 중에도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이어진다. 작가는 “AI 이미지라고 상상하면 그림이 ‘뚝딱’ 나오는 걸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이를테면 여성 라이더를 묘사할 때 대상화되거나 수동적인 모습이 자꾸 나와 아예 몸은 남자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최근 공개한 신작 ‘플롯, 블롭, 플롭’은 작가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 작품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아버지와의 긴 대화와 현지 조사 등 오랜 준비가 바탕이 됐다. 작가는 “제 이야기를 해서 쑥스럽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는 6월 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비무장지대(DMZ)의 생태 환경을 연구해 온 최재은 작가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가 잘 보존됐을 거라는 환상과 달리 환경이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곳의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나무 종자를 품은 직경 3∼5cm 크기의 종자볼(seed bomb)을 빚어 드론으로 뿌리는 프로젝트에 나서기로 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공개된 최재은의 ‘자연국가’는 이 같은 DMZ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다. 관람객들이 DMZ 생태계 복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전시장이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가가 매일 숲을 산책하며 수집하고 말린 꽃잎으로 제작한 병풍(사진)이 보인다. 그 사이에 놓인 컴퓨터를 통해 관객은 직접 원하는 구역에 ‘종자 볼 기부 약속’을 등록할 수 있다. 100원에 종자 볼 한 개가 기부된다. 종자 볼 샘플과 그 안에 들어갈 나무 종자 40여 종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연은 인간이 필요 없지만 인간에겐 자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자연 생명에 주권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은은 설치미술가로 오랫동안 자연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1970년대 일본 도쿄 소게츠 아트 센터에서 이케바나(꽃꽂이) 문법을 공부했고 1986년 소게츠 아트센터에서 전시장을 13t 흙으로 덮고 씨앗을 뿌린 ‘대지’를 선보였다. K2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현재 거주 중인 교토의 숲을 산책하며 모은 낙엽과 꽃잎으로 만든 작품, 거대한 고목의 밑동을 느리게 촬영한 영상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5월 1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금 이 순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 넘버다. 뮤지컬로 유명한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재해석한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2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23일 찾은 무대는 강렬한 음악, 화려한 스펙터클이 있는 뮤지컬과 완전히 달랐다. 무대 위에는 오래된 문과 테이블, 모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출연 배우도 단 한 명인 ‘1인극’이다. 지킬 박사의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배우 1명이 어터슨부터 지킬, 래니언 박사, 풀, 그리고 하이드까지 홀로 연기한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날 공연은 배우 최정원이 19세기 영국 신사처럼 슈트를 차려입고 열연을 펼쳤다. 내적 갈등을 겪는 어터슨의 심리, 코믹한 캐릭터의 래니언 박사, 미스터리한 인물인 지킬 박사 등 인물에 따라 목소리나 자세, 말투를 한 장면에서도 순식간에 전환하는 고난도 연기를 보여줬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명과 음향이다. 모든 이야기가 배우의 ‘말’로 묘사되다 보니 조명과 음향의 변화로 관객의 상상을 돕는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하이드가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 부딪친 소녀를 폭행한 사건을 설명할 때, 무대 좌우에서 비치던 조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양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하게끔 한다. 또 2명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빈 무대 위에 동그랗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배우가 빈 모자를 허공에 띄워 마치 다른 사람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덕분에 관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 ‘하이드’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배우 게리 맥네어가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 지난해 1월 에든버러에서 첫선을 보였다. 원작 소설은 어터슨의 이야기, 래니언 박사의 수기, 지킬 박사의 수기가 차례로 이어지는 구성이지만 이 연극은 어터슨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국내 초연을 맡은 이준우 연출은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인간이 가진 양면성과 감정의 진폭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며 “이 작품이 단순한 선악의 대립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금 이 순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 넘버다. 뮤지컬로 유명한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재해석한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2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23일 찾은 무대는 강렬한 음악, 화려한 스펙터클이 있는 뮤지컬과 완전히 달랐다. 무대 위에는 오래된 문과 테이블, 모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출연 배우도 단 한 명인 ‘1인극’이다. 지킬 박사의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배우 1명이 어터슨부터 지킬, 래니언 박사, 풀, 그리고 하이드까지 홀로 연기한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점도 눈에 띈다.이날 공연은 배우 최정원이 19세기 영국 신사처럼 슈트를 차려입고 열연을 펼쳤다. 내적 갈등을 겪는 어터슨의 심리, 코믹한 캐릭터의 래니언 박사, 미스터리한 인물 지킬 박사 등 인물에 따라 목소리나 자세, 말투를 한 장면에서도 순식간에 전환하는 고난도 연기를 보여줬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명과 음향이다. 모든 이야기가 배우의 ‘말’로 묘사되다보니 조명과 음향의 변화로 관객의 상상을 돕는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하이드가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 부딪친 소녀를 폭행한 사건을 설명할 때, 무대 좌우에서 비치던 조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양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하게끔 한다. 또 2명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빈 무대 위에 동그랗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배우가 빈 모자를 허공에 띄워 마치 다른 사람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덕분에 관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 ‘하이드’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배우 게리 맥네어가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 지난해 1월 에든버러에서 첫선을 보였다. 원작 소설은 어터슨의 이야기, 래니언 박사의 수기, 지킬 박사의 수기가 차례로 이어지는 구성이지만, 이 연극은 어터슨의 시점으로 전개된다.이 작품의 국내 초연을 맡은 이준우 연출은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인간이 가진 양면성과 감정의 진폭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며 “이 작품이 단순한 선악의 대립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무여(無如) 문봉선의 개인전 ‘수묵강산’이 최근 서울 종로구 공화랑에서 개막했다. 문 작가가 1993년부터 그린 인왕산, 삼각산, 인수봉 등 산을 주제로 한 수묵화 50여 점을 볼 수 있다. 1부 전시는 폭 35m인 ‘한강’과 인왕산을 주제로 한 작품 등을 선보이며 4월 6일까지 진행된다. 4월 8일부터 이어지는 2부 전시는 일부 작품을 교체해 ‘서귀포 칠십리’, ‘도봉동천’ 등을 선보인다. 작가는 “오랫동안 거닐었던 인왕산, 삼각산, 도봉산을 떠올리되 실경, 진경, 관념 등의 개념에서 벗어나 내 마음속의 산을 화선지에 펼쳐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5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이수 작가의 개인전 ‘앵프라맹스-인카운터’가 서울 강남구 조은숙갤러리에서 6일 개막했다. 작가가 2년간 작업한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는 아크릴 회화 작품과 드로잉 등으로 구성됐다.아크릴 회화 작품은 마스킹테이프를 이용해 그린 직선을 겹겹이 쌓아 면으로 만들었는데,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중심되는 개념을 ‘앵프라맹스’라고 설명한다. 앵프라멩스는 개념 미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저서에서 설명한 것으로, 너무 미세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뜻한다.작가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선 너머로 잘게 갈라지는 풍경,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경계의 풍경을 본다. 나의 작업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간극을 화면에 호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지하 공간에서는 이전 작품과 다르게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 드로잉 소품도 소개된다. 전시는 2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김병기(1916∼2022)의 작고 3주기를 맞아 기획된 전시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김병기의 생전 영상자료, 연보, 기록과 주요 작품 10여 점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돌아본다. 김병기가 전시 기획자 겸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관한 기록도 살펴본다. 김병기는 1934년 일본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입소해 추상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하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전시장에서는 신라 토기를 사각형, 선과 함께 그린 ‘토기가 있는 정물’(1998년)과 말년 작품 ‘메타포’(2018년), 1970년대 미국 새러토가에 머물던 시절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또 미술평론가로서 김병기가 쓴 글이 실린 ‘신태양’, ‘사상계’, ‘새벽’ 등 잡지도 전시된다. 2, 3전시장에는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김환기, 이응노, 김종영, 이세득, 권옥연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환기의 ‘Echo’ 연작 3점, 이응노의 ‘Composition’, 김창열의 ‘제사 Y-9’ 등 5점이 당시 출품작이다. 다른 작품들도 1960년대 초중반 시기의 최대한 비슷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자리 잡는 과정과 당대 예술가들의 도전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김병기(1916~2022)의 작고 3주기를 맞아 기획된 전시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김병기의 생전 영상자료, 연보, 기록과 주요 작품 10여 점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돌아본다. 김병기가 전시 기획자 겸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관한 기록도 살펴본다.김병기는 1934년 일본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입소해 추상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하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전시장에서는 신라 토기를 사각형, 선과 함께 그린 ‘토기가 있는 정물’(1998)과 말년 작품 ‘메타포’(2018), 1970년대 미국 사라토가에 머물던 시절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또 미술평론가로서 김병기가 쓴 글이 실린 ‘신태양’, ‘사상계’, ‘새벽’ 등 잡지도 전시된다.2, 3전시장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김환기, 이응노, 김종영, 이세득, 권옥연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환기의 ‘Echo’ 연작 3점, 이응노의 ‘Composition’, 김창열의 ‘제사 Y-9’ 등 5점이 당시 출품작이다. 다른 작품들도 1960년대 초중반 시기의 최대한 비슷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자리 잡는 과정과 당대 예술가들의 도전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4월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릴 때부터 별 관찰을 좋아해 천문학 탐사를 하다 국내 최대 망원경을 제작하는 회사의 창업자가 된 저자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 속 별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2007년 한국에서 전시된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을 처음 본 뒤 고흐에게 반한다. 2011년 ‘론강의 별밤’을 본 다음엔 고흐가 그린 하늘과 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저자는 고흐가 프랑스 생폴 드 무솔에 머물렀던 1889년 여름, 아를에 머물렀던 1888년 9월에 관한 여러 기록을 조사하고 현장을 답사한다. 책은 이곳의 천체 사진과 고흐가 남긴 편지 등 기록물, 하늘의 각도, 시간 변환 등을 활용해 고흐가 어떤 하늘을 그렸을지 추측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저자는 ‘밤의 카페테라스’의 하늘에 비친 여름철 대삼각형 별자리를 직접 관찰하고, ‘론강의 별밤’ 속 북두칠성을 보면서 그림에 관한 호기심을 풀어간다. 이어 ‘별이 빛나는 밤’ 속의 별자리가 정말 양자리인지, 언제 그린 것인지에 관한 나름의 가설을 펼친다. 저자는 그림 속 별자리가 양자리가 아니며, 통상 논의되는 6월이 아닌 7월 하순에 그린 것이라고 주장한다.미술사에서 고흐의 작품은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보고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업과 달리 그것을 본 감흥을 표현한 ‘후기 인상주의’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화가가 ‘정확히 무엇을 보고 그렸냐’보다는 ‘화가가 받은 느낌’에 예술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천문 전문가의 관점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추론해 가는 과정은 흥미롭게 느껴진다.명작은 보는 사람마다 끊임없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천체에 애정을 가진 저자가 자신을 고흐에게 투영해 그림 속 하늘을 풀어가는 과정이 독특하다. 만난 적도 없는 먼 거리, 먼 시대에 살고 있던 화가의 삶을 연구하고 그 흔적을 샅샅이 추적하게 만드는 예술의 힘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흔히 ‘자유’라는 단어를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은 이렇습니다.넓게 펼쳐진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거나, 아무런 장애물 없이 하늘을 나는 사람.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상상하죠.앙리 마티스(1869~1954)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도 이러한 자유입니다.역동적으로 원을 그리며 뛰는 사람들을 그린 ‘춤’이 대표적이죠.이 ‘춤’을 그리기 전 마티스가 낙원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삶의 기쁨’입니다.오늘 이 작품을 통해 마티스가 자유로운 표현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프랑켄슈타인 같은 ‘낙원’‘삶의 기쁨’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낙원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그림 속에는 울긋불긋한 들판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누워 있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애정 표현을 하고 있죠.시각부터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이 그림을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처음 본 동료 화가 폴 시냐크는 기겁했습니다.“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마티스가 완전히 퇴보했다. 2.5m 폭 캔버스에 이상한 인물들을 엄지손가락만 한 두꺼운 선으로 칠하고, 화면 전체를 엷은 색조로 칠했다. 심혈을 기울여 칠한 색이지만 내 눈엔 역겨웠다.”1906년 프랑스 파리 앵데팡당 전시장에 걸렸을 때 반응은 더합니다. 이곳을 찾았던 딜러 베르트 베이의 회고입니다.“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난 관객의 고성, 놀란 사람들의 웅성임, 비명 같은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소리는 마티스의 그림을 조롱하며 어슬렁거리는 군중이 내는 것이었다.”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이 그림의 인체 표현이나 원근법 사용이 아카데미 그림에 익숙한 관객에겐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자세히 보면 오른쪽 아래 분홍빛 남녀와 중앙의 두 여성, 그 뒤로 군무를 추는 사람들의 크기가 비율이 맞지 않습니다.또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뼈가 없는 고무 인간처럼 신체 비율이 제각각이죠. 각 인물을 본 시점이 전부 다르고, 인체를 그리는 기준도 다른,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짜깁기 된 그림으로 보였던 것입니다.내재적 질서가 만든 음악모두가 이 그림을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20세기 초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수집가 레오 스타인은 이 전시를 본 뒤 ‘삶의 기쁨’을 소장했습니다.또 러시아 수집가이자 마티스의 중요한 후원자가 될 세르게이 슈킨은 이 그림을 계기로 마티스에게 강한 관심을 갖습니다.시끄럽게 비난하는 사람들 뒤에서 그 진가를 알아보는 예술가도 많았죠. 그중 한 명은 파블로 피카소.피카소는 스타인의 집 거실에 걸린 ‘삶의 기쁨’을 보고 자극을 받아 ‘아비뇽의 여인’을 그립니다.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며 찬사를 받게 된 것이 단순히 원근법, 해부학 등 과거의 규칙을 벗어났기 때문일까요.여기서 더 생각해 봐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마티스가 고군분투를 거쳐 이 그림에서 나름의 ‘내재적 질서’를 세웠다는 점입니다.그 질서의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선과 색이 만드는 리듬입니다.‘삶의 기쁨’ 앞에 선 관객은 가운데 군무를 추는 사람들이 그리는 원이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며 크게 울려 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그 원은 인물들의 포즈, 몸 바로 옆에 그려진 두꺼운 선, 겹겹이 쌓인 색면 등 다양한 요소로 변주되고 있습니다.편견 없는 눈을 가진 소수의 사람은 이 음악을 느끼고, 고유의 질서가 뿜어내는 신선한 아름다움을 즐겼던 것입니다마음대로 할 자유의 조건여기서 내재적 질서가 중요한 이유는, 마티스가 ‘원하는 대로 그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자유’란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가능했음을 ‘삶의 기쁨’은 보여주고 있습니다.만약 마티스가 원근법과 해부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그리기만 했다면 그건 낙서에 불과하고 말았겠지요.마티스는 대신 프란시스코 고야,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시냐크 등 ‘다른 길’을 만들었던 작가들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규칙을 만듭니다.이 과정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죠. 마티스는 동료 화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품의 반응이 나쁘다고 작업을 멈추면 그때부터 비판이 정당화된다”며 “신념이 확실하다면 모든 문제는 오로지 작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쓰죠.미술사가 힐러리 스펄링은 “노동은 마티스 가족의 가훈이자 만병통치약이었다”고 마티스 전기에 씁니다.‘삶의 기쁨’이나 ‘춤’ 속의 무한한 자유는 치밀한 계산과 오랜 고민의 산물입니다.마티스는 “남들은 나에게 ‘대담하다’지만 난 그저 다른 식으로 그리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유는 남들과 똑같은 방식을 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그러면서 “자유는 나의 재능이 이끄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죠. 이 자유를 위해 마티스는 새로운 건물을 짓듯이 ‘나만의 길’을 견고하게 쌓았습니다.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티스가 빈 캔버스에 쌓은 단단하고 자유로운 선율 앞에서 명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근대 화가 박수근(1914∼1965)이 보낸 연하장(사진)이 60여 년 만에 화가의 고향인 강원 양구군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일 “박수근 연하장 등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박수근이 미국인 지인 로버트, 산드라 마티엘리 부부에게 1962년 12월 보낸 연하장과 연하장 봉투, 같은 해 열린 개인전 리플릿 등 3점을 마티엘리 부부로부터 기증받아 미술관에 전달했다. 연하장에는 박수근이 산드라 마티엘리에게 보낸 판화 그림이 부착돼 있다. 이 판화는 연을 날리는 두 사람을 묘사했다. 같은 형태의 연하장으로 박수근이 미술사학자 최순우와 동료 화가 이응노에게 보낸 것이 전해진다. 재단은 “마티엘리 연하장은 1962년 12월이라고 발송 연월이 적힌 편지봉투가 함께 있어 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박수근 개인전 리플릿’은 1962년 주한미군 서울기지사령부 도서관에서 열린 전시에 관한 것이다. 전시회와 작가 정보, 출품작 제목과 금액이 적혀 있다. 리움미술관도 같은 리플릿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 기증본엔 작품명 11점이 더 기록돼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 11점은 전시 도중에 새롭게 출품된 작품으로 당시 전시가 큰 호응을 얻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기증품은 다음 달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의 ‘박수근 작고 6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공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분주히 일을 처리한다. 평범한 워킹맘처럼 보이는 브렌다. 하지만 아들인 매튜의 변호사 로버트가 등장하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매튜는 연쇄 강간을 저질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연극 ‘그의 어머니’가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 있는 연습실을 공개했다. 매튜를 지칭하는 ‘그’의 엄마인 주인공 브렌다를 맡은 배우 김선영은 30분이란 짧은 시연 동안 여러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브렌다는 ‘아들을 강간범이 되도록 조장한 엄마’로 묘사된 기사를 보고 억울함에 치를 떤다. “다음 카드를 고심하자”는 변호사의 말에 “이 상황이 게임이냐”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평범한 엄마로 보여야 하니 둘째 제이슨과 함께 다니라’는 조언에 고민하는 것도 잠시. 곧 하교한 제이슨에게 “엄마랑 같이 마트 가자”고 하는 뻔뻔함도 보인다. 격정적인 감정과 무거운 침묵이 교차되는 장면 내내, 관객은 ‘강간범 엄마가 저래도 되는 거야’라는 반감과 혼란을 느낀다. 김선영이 이 무대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도 바로 이런 ‘난해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 엄마 선영으로 잘 알려진 그가 연극 무대에 서는 건 2018년 ‘낫심’ 이후 7년 만. 오랜만에 돌아온 무대인 만큼, 일부러 어려운 작품을 고르고 싶었단다. 김선영은 “이 여자를 연기하면 내가 죽어 나겠다 싶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매 순간 이 여자의 감정을 고민해요. 아들을 비난하며 연민하고, ‘내가 잘못 키웠나’ 죄책감도 느끼고, 혹시 아들이 누명을 쓴 건 아닐까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마음까지. 대본을 읽고 또 읽는 중입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 연기의 관건은 ‘비호감 인물’인 브렌다에게 관객이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 수 있느냐다. 연극계에서도 연기파 배우로 유명했고, 2014년 창단한 극단 ‘나베’에서 연기 디렉팅을 해온 그이지만 “아직도 브렌다를 새롭게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털어놨다. 대사 몇 줄을 두고 밤새워 씨름하며 새로운 감정을 깨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브렌다를 너무 이해해서 비호감 인물인 걸 뒤늦게 인지해 당황했어요. 지금은 ‘아들을 잘못 키운 죄책감’을 몰랐다는 걸 깨닫고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 김선영과 공연예술아카데미 동기이기도 한 류주연 연출은 “학생 시절 주인공을 맡아 달라 했는데 70대 유모역을 하고 싶다더니 화장실에서 혼자 할머니 걸음을 연습하던 배우가 김선영”이라며 “그때도 동료들에게 ‘잠잘 시간이 있냐’며 타박한 노력형 인간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류 연출은 “가해자 가족의 심리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아주 난처한 감정인데 문학과 예술이기에 그러한 심리를 파헤쳐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선영은 이 작품을 고른 또 다른 이유로는 “무대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나오는데, 그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돼 공개할 수 없다”며 “그 장면은 공연장에서 확인해 달라”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분주히 일을 처리한다. 평범한 워킹맘처럼 보이는 브렌다. 하지만 아들인 매튜의 변호사 로버트가 등장하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매튜는 연쇄 강간을 저질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자였기 때문이다.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연극 ‘그의 어머니’가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 있는 연습실을 공개했다. 매튜를 지칭하는 ‘그’의 엄마인 주인공 브렌다를 맡은 배우 김선영은 30분이란 짧은 시연 동안 여러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력을 선보였다.브렌다는 ‘아들을 강간범이 되도록 조장한 엄마’로 묘사된 기사를 보고 억울함에 치를 떤다. “다음 카드를 고심하자”는 변호사의 말에 “이 상황이 게임이냐”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평범한 엄마로 보여야 하니 둘째 제이슨과 함께 다니라’는 조언에 고민하는 것도 잠시. 곧 하교한 제이슨에게 “엄마랑 같이 마트 가자”고 하는 뻔뻔함도 보인다. 격정적인 감정과 무거운 침묵이 교차되는 장면 내내, 관객은 ‘강간범 엄마가 저래도 되는 거야’라는 반감과 혼란을 느낀다.김선영이 이 무대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도 바로 이런 ‘난해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 엄마 선영으로 잘 알려진 그가 연극 무대에 서는 건 2018년 ‘낫심’ 이후 7년 만. 오랜만에 돌아온 무대인 만큼, 일부러 어려운 작품을 고르고 싶었단다. 김선영은 “이 여자를 연기하면 내가 죽어 나겠다 싶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매 순간 이 여자의 감정을 고민해요. 아들을 비난하며 연민하고, ‘내가 잘못 키웠나’ 죄책감도 느끼고, 혹시 아들이 누명을 쓴 건 아닐까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마음까지. 대본을 읽고 또 읽는 중입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연기의 관건은 ‘비호감 인물’인 브렌다에게 관객이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 수 있느냐다. 연극계에서도 연기파 배우로 유명했고, 2014년 창단한 극단 ‘나베’에서 연기 디렉팅을 해온 그지만 “아직도 브렌다를 새롭게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털어놨다. 대사 몇 줄을 두고 밤새워 씨름하며 새로운 감정을 깨치고 있다고 한다.“처음엔 브렌다를 너무 이해해서 비호감 인물인 걸 뒤늦게 인지해 당황했어요. 지금은 ‘아들을 잘못 키운 죄책감’을 몰랐다는 걸 깨닫고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김선영과 공연예술아카데미 동기이기도 한 류주연 연출은 “학생 시절 주인공을 맡아 달라 했는데 70대 유모역을 하고 싶다더니 화장실에서 혼자 할머니 걸음을 연습하던 배우가 김선영”이라며 “그때도 동료들에게 ‘잠잘 시간이 있냐’며 타박한 노력형 인간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류 연출은 “가해자 가족의 심리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아주 난처한 감정인데 문학과 예술이기에 그러한 심리를 파헤쳐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선영은 이 작품을 고른 또 다른 이유로는 “무대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나오는데, 그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돼 공개할 수 없다”며 “그 장면은 공연장에서 확인해 달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물 샐 틈 없이 꽉 찬 캔버스, 여러 장의 그림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어지러운 형상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떠들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림. 18일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작가 래리 피트먼(사진)은 이렇게 설명했다.“제가 태어난 미국의 앵글로·색슨 백인 문화권에서는 장식이 내용 전달을 방해하는 군더더기로 여겨져요. 그런데 제가 자란 라틴 문화권에서는 장식 그 자체가 이야기이자 콘텐츠죠. 이 점을 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피트먼은 군더더기를 없애는 미니멀리즘 예술이나 물건을 가져다 놓는 설치 미술이 유행한 1960, 70년대 미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인이지만 콜롬비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낸 그는 스페인어가 ‘모국어(母國語)’다. 작품은 멕시코시티를 걷는 듯한 시끌벅적함에 손이 미끄러질 듯 매끄러운 마감이 더해져 미국과 남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 40여 점이 이날 개막한 개인전 ‘래리 피트먼: 거울 & 은유’에서 공개됐다. 전시는 작가가 최근 14년간 만든 작품들을 크게 네 가지 주제별로 엮었다. 첫 번째 전시장은 작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표현한 ‘사념체(思念體)’ 연작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전시장은 ‘녹턴’과 ‘카프리초스’ 연작이 전시된다. ‘카프리초스’ 연작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인간사의 어두움을 표현한 동명 연작을 미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엮었다. 피트먼은 “디킨슨이라고 하면 로맨틱한 시로 알려졌는데, 여기서는 그의 어둡고 강한 시를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전시장에선 시끌벅적한 도시를 향한 애정이 펼쳐진다. ‘알 기념비가 있는 도시’ 연작을 볼 수 있는데 폭 10m가 넘는 대작도 있다. 작가는 “사람들은 흔히 시골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도시가 더 포용적이고 즐겁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도시의 형태는 낡아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쾌한 색채가 이 광경을 즐겁게 만든다. 도시 사이사이에 동그랗고 밝은 알들이 가로등처럼 반짝인다. 피트먼은 “알은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도시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마지막 전시장에선 팬데믹 시기 어두운 곳에서 밝은 희망을 기대하는 연작 ‘아이리스 숏’ 등이 소개된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복잡한 그림들을 작가 혼자 컴퓨터 도움도 없이 아날로그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피트먼은 “보통 작가들은 제목을 나중에 붙이지만, 나는 제목부터 시작한다. ‘이걸 그리자’라고 나와의 계약을 맺고 그다음 즉흥적으로 화면을 채워 나간다”고 했다. 저 넓은 화면을 혼자서 채우는 게 힘들진 않을까.“저더러 좋은 기술의 도움을 왜 받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아는데, 내 손으로 했을 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는걸요.” 6월 15일까지.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가 이불(61)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메가 갤러리인 하우저 앤드 워스의 전속 작가가 됐다. 하우저 앤드 워스는 19일 “서울의 갤러리 BB&M과 협력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 이불의 공동 전속 갤러리가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하우저 앤드 워스는 1992년 스위스에서 설립해 세계 18개 지점을 거느린 ‘메가 갤러리’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 알렉산더 콜더(1898~1976) 등 서양 근현대 미술 거장의 작품을 관리하고 있다.마크 파요 하우저 앤드 워스 대표는 “이불 작가는 자타공인 당대 가장 뛰어난 한국의 예술가”라며 “엄격한 개념을 바탕으로 재료에 섬세하게 접근하고 이를 깊은 휴머니즘과 결합해 발전을 거듭하며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길을 열어 온 작가”라고 평가했다. 이어 “40년간 초기의 감각적인 퍼포먼스에서부터 개념적 경계를 확장한 설치 작품까지 선보이며 선구자로서 차세대 예술가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갤러리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에 이불 작가의 조각과 회화 2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2026년 하우저 앤드 워스 뉴욕 갤러리에서 이불 작가의 첫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불 작가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썩어가는 물고기 작품인 ‘장엄한 광채’(1997)를 전시했으며, 이후 퍼포먼스와 설치를 통해 인간 문명의 허약함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루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9월 12일에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의뢰로 미술관 정문 파사드에 조각 연작 ‘롱테일 헤일로’를 공개했다. 이 작품은 6월 10일까지 전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물 샐 틈 없이 꽉 찬 캔버스, 여러 장의 그림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어지러운 형상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떠들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림. 18일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작가 래리 피트먼은 이렇게 설명했다.“제가 태어난 미국의 앵글로·색슨 백인 문화권에서는 장식이 내용 전달을 방해하는 군더더기로 여겨져요. 그런데 제가 자란 라틴 문화권에서는 장식 그 자체가 이야기이자 콘텐츠죠. 이 점을 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피트먼은 군더더기를 없애는 미니멀리즘 예술이나 물건을 가져다 놓는 설치 미술이 유행한 1960, 1970년대 미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인이지만 콜롬비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낸 그는 스페인어가 ‘모국어(母國語)’다. 작품은 멕시코시티를 걷는 듯한 시끌벅적함에 손이 미끄러질 듯 매끄러운 마감이 더해져 미국과 남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 40여 점이 이날 개막한 개인전 ‘래리 피트먼: 거울 & 은유’에서 공개됐다.전시는 작가가 최근 14년간 만든 작품들을 크게 네 가지 주제별로 엮었다. 첫번째 전시장은 작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표현한 ‘사념체’(思念體) 연작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전시장은 ‘녹턴’과 ‘카프리초스’ 연작이 전시된다. ‘카프리초스’ 연작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인간사의 어두움을 표현한 동명 연작을 미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엮었다. 피트먼은 “디킨슨이라고 하면 로맨틱한 시로 알려졌는데, 여기서는 그의 어둡고 강한 시를 결합했다”고 설명했다.세 번째 전시장에선 시끌벅적한 도시를 향한 애정이 펼쳐진다. ‘알 기념비가 있는 도시’ 연작을 볼 수 있는데 폭 10m가 넘는 대작도 있다. 작가는 “사람들은 흔히 시골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도시가 더 포용적이고 즐겁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도시의 형태는 낡아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쾌한 색채가 이 광경을 즐겁게 만든다. 도시 사이사이에 동그랗고 밝은 알들이 가로등처럼 반짝인다. 피트먼은 “알은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도시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마지막 전시장에선 팬데믹 시기 어두운 곳에서 밝은 희망을 기대하는 연작 ‘아이리스 숏’ 등이 소개된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복잡한 그림들을 작가 혼자 컴퓨터 도움도 없이 아날로그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피트먼은 “보통 작가들은 제목을 나중에 붙이지만, 나는 제목부터 시작한다. ‘이걸 그리자’라고 나와의 계약을 맺고 그다음 즉흥적으로 화면을 채워 나간다”고 했다. 저 넓은 화면을 혼자서 채우는 게 힘들진 않을까.“저더러 좋은 기술의 도움을 왜 받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아는데, 내 손으로 했을 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는걸요.” 6월 15일까지.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흔히 ‘자유’라는 단어를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은 이렇습니다. 넓게 펼쳐진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거나, 아무런 장애물 없이 하늘을 나는 사람.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상상하죠.앙리 마티스(1869∼1954)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도 이러한 자유입니다. 역동적으로 원을 그리며 뛰는 사람들을 그린 ‘춤’이 대표적입니다. ‘춤’을 그리기 전 마티스가 낙원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삶의 기쁨’입니다. 오늘 이 작품을 통해 마티스가 자유로운 표현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프랑켄슈타인 같은 ‘낙원’‘삶의 기쁨’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낙원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는 울긋불긋한 들판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누워 있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애정 표현을 하고 있죠. 시각부터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이 그림을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처음 본 동료 화가 폴 시냐크는 기겁했습니다.“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마티스가 완전히 퇴보했다. 2.5m 폭 캔버스에 이상한 인물들을 엄지손가락만 한 두꺼운 선으로 칠하고, 화면 전체를 엷은 색조로 칠했다. 심혈을 기울여 칠한 색이지만 내 눈엔 역겨웠다.”1906년 프랑스 파리 앵데팡당 전시장에 걸렸을 때 반응은 더합니다. 이곳을 찾았던 딜러 베르트 베이의 회고입니다.“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난 관객의 고성, 놀란 사람들의 웅성임, 비명 같은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소리는 마티스의 그림을 조롱하며 어슬렁거리는 군중이 내는 것이었다.”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이 그림의 인체 표현이나 원근법 사용이 아카데미 그림에 익숙한 관객에겐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아래 분홍빛 남녀와 중앙의 두 여성, 그 뒤로 군무를 추는 사람들의 크기가 비율이 맞지 않습니다. 또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뼈가 없는 고무 인간처럼 신체 비율이 제각각이죠. 각 인물을 본 시점이 전부 다르고, 인체를 그리는 기준도 다른,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짜깁기된 그림으로 보였던 것입니다.내재적 질서가 만든 음악모두가 이 그림을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초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수집가 레오 스타인은 이 전시를 본 뒤 ‘삶의 기쁨’을 소장했습니다. 또 러시아 수집가이자 마티스의 중요한 후원자가 될 세르게이 슈킨은 이 그림을 계기로 마티스에게 강한 관심을 갖습니다.시끄럽게 비난하는 사람들 뒤에서 그 진가를 알아보는 예술가도 많았죠. 그중 한 명은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는 스타인의 집 거실에 걸린 ‘삶의 기쁨’을 보고 자극을 받아 ‘아비뇽의 여인’을 그립니다.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며 찬사를 받게 된 것이 단순히 원근법, 해부학 등 과거의 규칙을 벗어났기 때문일까요. 여기서 더 생각해 봐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마티스가 고군분투를 거쳐 이 그림에서 나름의 ‘내재적 질서’를 세웠다는 점입니다.그 질서의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선과 색이 만드는 리듬입니다. ‘삶의 기쁨’ 앞에 선 관객은 가운데 군무를 추는 사람들이 그리는 원이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며 크게 울려 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 원은 인물들의 포즈, 몸 바로 옆에 그려진 두꺼운 선, 겹겹이 쌓인 색면 등 다양한 요소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편견 없는 눈을 가진 소수의 사람은 이 음악을 느끼고, 고유의 질서가 뿜어내는 신선한 아름다움을 즐겼던 것입니다.마음대로 할 자유의 조건여기서 내재적 질서가 중요한 이유는, 마티스가 ‘원하는 대로 그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가능했음을 ‘삶의 기쁨’은 보여주고 있습니다.만약 마티스가 원근법과 해부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그리기만 했다면 그건 낙서에 불과하고 말았겠지요. 마티스는 대신 프란시스코 고야,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시냐크 등 ‘다른 길’을 만들었던 작가들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규칙을 만듭니다.이 과정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죠. 마티스는 동료 화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품의 반응이 나쁘다고 작업을 멈추면 그때부터 비판이 정당화된다”며 “신념이 확실하다면 모든 문제는 오로지 작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쓰죠. 미술사가 힐러리 스펄링은 “노동은 마티스 가족의 가훈이자 만병통치약이었다”고 마티스 전기에 씁니다.‘삶의 기쁨’이나 ‘춤’ 속의 무한한 자유는 치밀한 계산과 오랜 고민의 산물입니다. 마티스는 “남들은 나에게 ‘대담하다’지만 난 그저 다른 식으로 그리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유는 남들과 똑같은 방식을 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유는 나의 재능이 이끄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죠. 이 자유를 위해 마티스는 새로운 건물을 짓듯이 ‘나만의 길’을 견고하게 쌓았습니다.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티스가 빈 캔버스에 쌓은 단단하고 자유로운 선율 앞에서 명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종로구 상명아트센터 갤러리는 17일부터 27일까지 이연종 개인전 ‘순백의 신비, 곰배령(The Mystery of Pure White, Gombaeryeong)’(사진)을 개최한다. 치과의사로 뒤늦게 사진에 입문한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강원도 점봉산 곰배령의 흰 꽃들을 포착한 흑백 작품 40여 점과 8폭 병풍 작업을 선보인다. 이 작가는 “사계절 세찬 바람이 부는 환경에서 자라나 마주한 흰 꽃들의 기품 있는 단아한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22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대화 행사도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