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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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4-13~2026-05-13
문화 일반40%
문학/출판20%
역사13%
칼럼7%
여행7%
인사일반7%
경제일반3%
언론3%
  • [책의 향기]중국 GDP가 세계 1위였던 시대

    중국 청나라의 전성기로는 강희제부터 옹정제를 거쳐 건륭제까지의 ‘강희-건륭년간’이 꼽힌다. 그중 건륭제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건륭제는 실질 통치 기간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길었던 군주다. 재위(1735∼1796년) 뒤 태상황으로 최고 권력을 행사한 3년까지 더하면 총 63년 4개월이다. 이 기간 청나라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경제 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해 세계 제일이었다. 건륭제는 청나라 영토를 최대로 넓혔으며,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하는 등 문화적으로도 업적을 남겼다. 아버지 옹친왕(옹정제)이 강희제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후계자로 간택된 데에는 홍력(건륭제)의 덕이 컸다고 한다. 청고종실록에 따르면 강희제는 열두 살 손자 홍력을 처음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다. 그의 총명함에 반했던 것. 강희제는 ‘후계자가 어떤 아들을 두었는지’ 중요시했는데, 그런 아버지의 눈에 들려는 옹친왕의 치밀한 계획이 성공한 것이었다. 옹정제가 재위 13년 만에 죽고, 24세에 황위에 오른 건륭제는 황태후와 황비, 외척, 환관의 정치 개입을 철저하게 막으며 권력을 공고하게 다졌다. 어머니인 황태후의 생일엔 앞에서 몸소 춤을 추고 막대한 돈을 쓰는 등 효자 역할을 했지만 황태후가 정치에 나서는 건 철저하게 막았다. 이런 명도 내렸다. “황궁 밖에서 일어나는 일, 자금성 밖에서 들려오는 일은 누구도 태후께 보고해서는 안 된다.” 황태후에게 들어가는 정보를 차단한 것이었다. 어느 날 황태후가 한 사찰을 수리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태후를 모시는 태감(고위 환관)들을 모조리 불러 모아 족치기도 했다. 건륭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 다양한 역사서를 공부하며 태후의 힘을 빌려 일을 도모하려는 무리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륭제도 말년에 사치를 부렸고, 고집불통에 기고만장해서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스스로 그 성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중국의 역사학자가 펼친 강연을 정리한 책이어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느껴지고 읽기가 쉽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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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주, 마치 인류 탄생을 위해 설계된 것만 같은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마치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물음이다. 진지한 과학으론 취급되지 않는 지적설계론(우주와 자연을 지적 존재가 설계했다는 이론)자의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저자를 만나 던진 것이다. 저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이후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작고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교양과학서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책엔 호킹과 이 같은 질문에 직면하며 우주론을 발전시킨 이야기가 논쟁의 전사(前史)와 함께 소개된다. 호킹이 우주가 과거 특이점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예측한 이야기, 허수 시간을 도입하고 ‘무경계 가설’을 제안해 양자 중력의 세계로 진입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호킹은 “영구적 인플레이션 추종자들과 다중우주 추종자들이 똘똘 뭉쳐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하향식 우주론’을 제안한다. 이 우주론은 “깊은 양자적 수준에서 우주와 관찰자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로부터 생명 친화적 특성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읽다 보면 현대 물리학에서 우리의 직관과 배치되는 많은 아이디어가 진지하게 연구된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관찰자의 역할은 무성하게 뻗어 있는 갈림길 중 대부분을 가지치기 하듯 잘라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찰자가 경험한 세계만이 유일한 가지로 살아남는다.” 일본 만화 ‘나루토’에서 유리한 현실만을 고를 수 있는 닌자의 ‘이자나기’ 술법처럼 들리지 않는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을 건너뛰다 보면 천천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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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마음까지 얼어붙는 연말… 詩에 기대어 손 잡아봐요

    연말이다. 회사 앞 서울 청계광장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혔다. 행인들은 스마트폰을 치켜들며 세밑 풍경을 즐긴다. 지난해에도 같은 모습을 보며 퇴근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올해도 끝이 보인다. 이런… 벌써 연말이다.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 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천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 나눔을 실천하며 무애(無礙)의 삶을 살았던 ‘선(禪) 시조’의 대가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1932∼2018)의 ‘아득한 성자’다. 만해축전을 계기로 무산 스님과 오래 인연을 맺었던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푸른사상)에서 스님을 ‘내 마음속의 큰 산’에 비유했다. 스님 앞에서 시 ‘아득한 성자’를 평론가로서 분석하자 스님은 그냥 듣더니 이내 묻더란다. “권 박사는 ‘하루살이’를 아느냐?” 시를 읽다 보면 ‘하루살이는 하루에도 제 할 일을 다 하는데, 나는 하루라도 제대로 살았던가, 올해는 어땠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무산 스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18년 발간(1∼3호)했던 잡지 ‘유심(惟心)’을 2001∼2015년 시 전문지로 다시 발간했다.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올 9월 ‘유심’을 재창간했고, 이달 1일 2호를 냈다. 시는 둘째 치고 활자 매체 자체의 인기가 시들한 요즘 같은 시대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호 권두에는 최근 세상을 뜬 김남조 시인(1927∼2023)에 대한 문현미 시인(백석대 교수)의 추모 글이 실렸다. 문 시인은 “자신의 고독과 추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도 그러함을 알아서 같이 울어주는 사람, 그가 진정한 시인이며, 바로 김남조 선생님이시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故) 김 시인의 시 ‘시인’을 인용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춥고 무섭고 외로웠다/자라면서/다른 사람들도/춥고 무섭고 외로워함을 알았다/멈추지 않는 눈물처럼/그에게/말과 글이 솟아났다” 기술적으로는 인류사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고립돼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타인도 자신처럼 나약함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만드는 건 그 어떤 첨단 기술의 힘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기승을 부리는 북극 한파 탓인지 몸은 얼어붙고 유난히 마음까지 추운 연말이다. 시의 힘에 기대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등의 시집을 낸 박준 시인은 유심 2호에 게재한 산문 ‘고요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시에 기댈 때만 말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시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삶에 기대는 것이다. 만약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해 말보다 더 긴 침묵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향하는 혼잣말도 거두게 될 것이다”라고.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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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송나라 사신 눈에 비친 고려의 멋

    고려의 나전 공예 솜씨가 빼어났던 것, 회계 처리 수준이 세계적이었던 것 등을 알 수 있는 건 송나라 휘종이 보낸 사신 서긍(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한 경과와 견문을 적은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남겼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을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서긍은 1123년 6월 12일 바닷길로 벽란도에 도착해 한 달 남짓 개경에 머물다가 송으로 돌아갔다. 서긍이 본 고려 여인들은 머리카락의 반은 오른쪽 앞으로 늘어뜨리고, 나머지는 등 뒤로 늘어뜨렸다고 한다. 귀부인들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몽수(蒙首)라는 긴 너울을 써서 얼굴과 눈만 노출했다. 치마 속엔 바지를 입고, 외출할 땐 수레나 가마가 아닌 말을 탔다. 고려인들은 시냇물에 모여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의관을 언덕에 벗어놓은 후 목욕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상거래에선 주로 모시나 삼베, 은병으로 값을 치렀고 값어치가 작은 건 쌀로 지불했다. 송상을 통해 고려로 유입된 화폐는 왕부의 창고에 보관돼 잘 유통되지 않았다. 서긍이 본 고려의 궁궐과 성곽, 관아 등의 모습도 자세히 담겨 있다. 고려인들은 바삐 걸었고, 불교 국가임에도 고관대작들의 집에서는 고기반찬이 끊이지 않았으며, 밤엔 곳곳에 불을 밝혔고 술 마시는 걸 즐겼다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서긍의 사행에 동행하는 것처럼 서술돼 독자가 마치 9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서긍의 그림 대신 삽입한 여러 삽화가 이해를 돕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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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망각의 세계에서 기억은 광증일 뿐

    가족의 비극적 죽음을 겪은 모자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단편 ‘목소리들’). ‘자신을 탓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고문이 멈추지 않을 걸 알기에’ 끊임없이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린다. 인간은 모순적이고 나약한 존재다. 작가가 2018년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 8편을 묶은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요령이 없거나, 예민하고, 낯이 두껍지 못한 사람들이다. 부당한 대우를 겪고도 항의하지 못하거나, 마지막 통화를 거절했다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눈 딱 감고 그냥 넘어갈 줄은 모르는 이들이다. 단편 ‘공가(空家)’에선 폭력적인 소음이 이들을 괴롭힌다. 남편의 출장이 길어진 동안 시댁 식구들이 집에 눌러앉고, 급기야 노래방 기기까지 들여와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자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나선다. 또 다른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부모에 의해 늘 귀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삶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자 옛집을 찾아가지만 집은 재개발 지역의 공가가 돼 있다. 내몰린 두 사람이 들어서면서 빈집은 빈집이 아니게 된다. 주인공들은 ‘사랑마저 차별을 만들어 내는’ 역설적인 세계에 놓여 있다(단편 ‘마음의 부력’). 구약성서에서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인 척하며 아버지가 내리는 장자의 축복을 훔쳐 가지만, 소설에서 동생은 본의 아니게 형을 소외시킨 처지가 괴로울 뿐이다. 죽은 형과 자신을 헷갈리는 어머니 앞에서 동생이 보이는 연기는 작은 구원의 신호일까. 그 역할은 누가 부여한 것일까. 부조리한 세계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건 사실 망각 때문이다. 뺑소니 교통사고, 민간인 학살 같은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잊고 사는 이들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미친 여자’가 될 뿐이다(단편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등단한 지 42년 된 작가의 묵직한 주제의식과 섬세한 문장이 펼친 책을 좀처럼 놓지 못하게 만든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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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방금 한 그 행동, 알고보면 인류 삶 전체와 연결돼있다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 전투에선 단발식 머스킷 총이 2만7000정 가까이 회수됐는데, 그중 약 2만4000정은 한 번도 발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병사 대부분은 총을 쏘기는커녕 부상자를 돌보거나, 명령을 외치거나, 달아나거나, 망연자실 배회했다는 것. “인간은 근거리에서 타인에게 중상해를 입히는 걸 강하게 꺼리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을 쏘기보다는 오히려 집단에 수류탄을 던지는 게 더 쉽다. 멀리 떨어졌다지만 화상으로 상대를 관찰해야 하는 드론 공격도 마찬가지다. 드론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적을 감시하다 공격해 죽인 미군들은 상당수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걸렸다. 인간은 전쟁을 벌여 수천만 명을 죽이지만 동시에 얼굴을 마주치는 적군과 쉽게 유대를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남북전쟁 때도 병사들은 적과 서로 친해져 물물교환을 하거나 전투를 앞둔 저녁에 공동으로 예배를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 휴전’이 있었던 건 잘 알려져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모순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부제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처럼 인간의 폭력성과 이타성이라는 양면, 도덕성과 자유 의지, 부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등에 대해 ‘생물학과 심리학, 문화적 측면을 종합해’ 다룬 책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집필에만 10년 넘게 걸린 역작으로, 인용한 연구의 출처를 밝힌 후주(後註)만 얇은 책 한 권 분량이다. 전반부는 ‘특정 행동은 왜 일어났을까’라는 질문 아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장을 나눠 설명한다. 행동이 일어나기 ‘1초 전’은 뇌신경과학의 시간대다. 뇌의 편도체는 공포, 불안, 공격성과 관련돼 있고, 통제를 담당하는 이마엽(전두엽) 겉질이 손상되면 사람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뇌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부위와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가 서로 따로 놀기도 한다. “다섯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죽여도 괜찮으냐”라는 이른바 ‘트롤리 문제’에서 답변자가 ‘직접 한 사람을 밀쳐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자 뇌의 정서와 관련된 영역이 함께 활성화됐지만 ‘그저 레버를 당기면 된다’는 상황에선 인지 영역만 활성화됐다. 행동하기 ‘몇 초에서 몇 분 전’은 감각의 시간대다. 실험에 따르면 우리 뇌는 피부색에 매우 예민하다. 누군가의 얼굴 사진을 10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보여주면 사람들은 뭘 보기는 한 것인지마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으로 본 얼굴의 인종을 맞히라면 꽤 잘 맞힌다. 피험자와 다른 인종의 얼굴을 보여주면 편도체가 더 잘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뇌가 ‘우리’와 ‘그들’을 순식간에 가른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 무조건 지배되는 존재는 아니다. 저자는 “의식이 감지할 만큼 오래(약 0.5초 이상) 노출되면 뒤이어 이마앞엽 겉질이 활성화되고 편도체가 조용해진다. 스스로도 불편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이런 식으로 ‘몇 시간에서 며칠 전’의 호르몬 이야기와 ‘며칠에서 몇 달 전’의 신경가소성을 살핀 뒤 청소년기, 아동기, 태아기에 겪은 변화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뒤이어 문화와 진화로 주제를 넓혀 간다. 저자는 사람이 누군가를 돕는 것에 대해선 “자전거 타기처럼 오래전부터 몸에 익힌 나머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의 문제”라고 했다. 위트 있는 문장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전개하니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을 것은 없다. 원제 ‘Behave’.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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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전 피아노 트리오 악보집 출간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전(전강호)이 피아노 트리오 악보집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전의 피아노 트리오 이야기’(예솔)를 올해 10월 출간했다.하이든,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드뷔시 등 고전부터 현대까지 12개의 피아노 트리오 악보와 함께 연주 팁과 곡 해설을 담았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기만의 언어로 곡을 표현하고 연주자로서의 느낌을 풀어냈다. 직접 곡을 연주해 본 경험이 연주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다니엘 전은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거쳐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와 영국 런던 길드홀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미시간 주립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서울시향, 대전시향을 비롯해 미국의 잭슨 심포니, 독일 모차르트 캄머 오케스트라, 영국 로얄 리버풀 필하모니에 악장 또는 솔리스트로 초청됐다. 나눔 피아노 트리오를 창단해 영국, 독일, 이탈리아에서 연주회를 열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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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도심에도 노거수 살 수 있게 나무에 흙바닥 돌려주자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엔 2006년 쓰러졌다는 육백 살 나무가 있다. 텅 빈 속에 곰이 들어앉아 쉴 것 같은 크기다. 그 건너편 그루터기,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지러워질 만큼 동심원이 많은 나이테 위에서 ‘멍 때리며’ 앉아 있으면 ‘사람의 삶은 참 짧다’ 싶다. 겨울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고요 속에서 늙고 키 큰 나무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다람쥐가 뒤척이며 떨어뜨린 눈이 살포시 지면을 두드릴 때면, 나무의 물관이 지표 아래에서부터 한껏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럴 땐 거대하고 말 없는, 뿌리 박아 움직이지 않는 초연한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슴을 채운다. 강원이 산이라면 제주는 숲이다. 거문오름 곶자왈에서 ‘돌은 낭(나무) 의지, 낭은 돌 의지’라는 제주 속담처럼 돌을 붙잡고 깊이 뿌리 내린 거목과, 그 위를 다시 콩짜개덩굴이 뒤덮은 모습을 보노라면 ‘고다마’(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숲의 정령)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은 이젠 도시를 떠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됐지만 전통시대엔 노거수(老巨樹)가 일상의 일부였다. 마을 어귀마다 느티나무가 정자나무로 서 있었고, 산기슭의 당산나무는 신령하게 여겼다. 그 시절 경이와 신비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물론 산업화를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오래된 마을엔 여전히 아름드리나무가 꽤 있다. 다만 거기서 놀라움은 좀 다른 것이다. ‘이런 채로도 생존할 수 있다니!’ 건물과 도로가 장악한 공간의 한구석에서 노거수는 산다. 늙고 큰 나무가 빗물과 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한쪽, 가로세로 1m 정도밖에 안 되는 흙바닥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마저도 길을 정비하면서 원래 지표보다 높게 흙을 덮은 탓에 뿌리엔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다. 노거수가 이런 환경에 처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데이터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18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노거수의 생육 환경과 나무의 활력에 관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이 느티나무 노거수 25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나무의 가지와 잎이 펼쳐진 넓이만큼의 지표, 지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라는 노거수는 광합성을 잘하지 못했다. 지하에 장애물이 있으면 뿌리가 뻗지 못하고, 바닥을 콘크리트로 덮으면 그만큼 공기와 물, 영양분이 땅속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흙을 두껍게 덮어 물이 땅속으로 침투하기 어려울수록 나무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낮았다. 노거수 주위의 콘크리트를 뜯자. 뿌리가 숨을 쉴 수 있게, 인위적으로 덮은 흙은 걷어내자. 연구진은 전화 통화에서 “벤치를 놔두는 정도야 괜찮겠지만 적어도 수관(樹冠) 폭만큼은 바닥을 자연 상태로 둬야 노거수의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가운데는 600∼700년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도 있다. 우리가 오래 살 나무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셈이다. 말라 죽는 노거수와 함께 우리의 경이로움도 사라져 간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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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실패한 역사? 오히려 배울 점 많다

    “동학군을 진압해 달라고 청군을 불러들여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할 구실을 내주고 조선 몰락의 물꼬를 튼 이가 고종이다. … 권력 유지를 위해 외세에 의존하려 했던 용렬한 군주 고종이 미화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책머리에 던지는 저자의 질문이다. 저자는 우리 역사 인식이 “은폐와 과장, 왜곡,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위화도 회군은 ‘명분 없는 군사 쿠데타’였으며, 만약 고려 우왕이 이성계 대신 최영 장군을 보냈다면 요동에 진출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해볼 만했던’ 원명 교체기, 쿠데타로 집권해 명분이 부족했던 이성계가 스스로 굽히고 명나라의 신하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반면 명청 교체기엔 막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대들다가 깨졌다. 저자는 “‘병자호란은 미개한 만주족이 문화국 조선을 유린한 것이며 만주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절개를 높이 기린다’는 식의 역사 서술은 국내 정치 투쟁의 명분을 지키고자 국가 안보를 포기함으로써 백성을 고난과 치욕으로 몰아넣은 정치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축적된 해양 역량을 포기한 조선의 해양 정책’, ‘성리학 질서에 매몰된 일류 과학기술’ 등 역사에서 배울 교훈을 조곤조곤 짚는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저자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을 보완해 묶었다. 저자는 “실패한 역사는 전략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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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 중 발행된 종이 조각, 세계경제 흔드는 금융 무기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발표하는 날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연준이 부여하는 달러의 가치에 지구 반대쪽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일자리가 왔다 갔다 한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달러의 힘’이다. 국제정치·경제전문가로 앞서 ‘지정학의 힘’(아카넷)을 펴냈던 저자가 달러의 탄생과 패권 구축 과정을 다뤘다. 달러의 등장은 전쟁과 직결돼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 초기 미국에선 옥수수나 비버 모피, 담배 등이 물품화폐로 쓰였다. 영국은 미국이 주화를 주조하는 걸 막았다. 화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차용증서인 ‘신용증권’을 발행해 지폐처럼 통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대륙의회는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콘티넨털 달러’를 발행했다. 이 화폐는 금, 은과 바꿔준다고 명시됐지만 사실 재원이 없었던 데다, 영국이 독립군에 타격을 주려고 위조해 뿌리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화폐 발행권을 각 주가 아닌 연방의회가 갖도록 하고 달러를 단일 통화로 발행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순식간에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떠올랐다. 당시 1달러는 금 1.6g에 해당했다. 오늘날과 같이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만으로 가치를 갖는 달러는 남북전쟁으로 등장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연방정부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다. 링컨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불환지폐(금화, 은화 등과 태환이 불가능한 화폐)를 발행하고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가 국가 권력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화폐는 뒷면이 녹색이라서 ‘그린백’이라고 불렸다. 1879년 금 태환이 재개되면서 그린백은 소멸했지만 오늘날의 달러 역시 그린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이 밖에도 중앙은행의 부재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한 연준의 등장,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달러가 국제 금융의 중심에 서는 과정, 영국의 유로달러시장 발명,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정지, 달러 기반의 신용 확장과 금융 혁신 등 달러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살핀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에도 한 장을 할애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 달러 결제는 대부분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인에게도 손쉽게 달러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 굳이 유엔을 통해 제재할 필요도 없다.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와 송금을 금지하는 미국의 금융 제재는 치명적이다.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면서 달러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중국은 정치와 법, 규제 환경 면에서 투자자와 각국 중앙은행의 신뢰가 부족하다. 세계의 안전 자산은 여전히 미국 국채 같은 달러 자산이다. 이는 미국이 갖춘 제도와 금융시장 때문이다. 저자는 “통화 패권은 글로벌 세력 균형의 핵심적인 열쇠”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비를 줄이고 수출을 늘리는 대신 더 많은 달러를 ‘수출하며’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고 있다. 저자는 “달러 체제는 대안이 없어서 지속되는 차선의 시스템일 뿐”이라며 “다른 화폐가 달러를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면 미국의 정책 실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꼼꼼한 자료 조사가 눈에 띄는 책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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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당신의 아픔이 당신이 되지 않길

    1944년 봄 헝가리에 살던 열여섯 살의 저자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부모님은 도착한 날 가스실에서 살해됐다. 나치 친위대 간부를 위해 강제로 춤을 춰야 했던 저자는 속으로 어머니의 조언을 생각하며 견뎠다.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 수용소의 생지옥을 견디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시체 더미에서 구조된 저자는 쉰이 넘은 나이에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40년 이상 미국에서 내담자들의 심리를 치료해 왔다. 그런 저자가 ‘해로운 생각을 멈추고 삶을 선물로 바꾸는 법’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울었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당장 생존이 다급했기 때문이다. 풀려난 뒤에도 홀로코스트에 관해 말하는 걸 꺼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 회피했던 감정들은 나중에 닥쳐왔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홀로코스트에 관해 묻자 남편은 저자가 아우슈비츠에 있었다고 알려줬다. 저자의 가슴이 그제야 무너져 내렸다. 종전 30여 년이 지난 뒤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해서도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회피했던 감정들과 마주한 뒤엔 몽땅 밖으로 쏟아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연약한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모든 현실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좋다”며 “감정은 감정일 뿐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상실, 범죄 등을 경험한 이들을 상담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통해 ‘나를 제외한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 ‘내면의 대본은 다시 쓰일 수 있다’, ‘분노 안에는 해소되지 않은 슬픔이 있다’, ‘오직 나만이 나를 해방해줄 수 있다’ 등 치유를 위한 열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내 고통은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악의 감옥은 나치가 나를 가두었던 감옥이 아니다. 최악의 감옥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감옥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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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日, 간논지불상 韓에 기증하면 오랜 악연이 좋은 인연 될 것

    진즉 일본에 돌려줬어야 했다. 약탈당한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장물을 취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2년 10월 한국인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對馬)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고려 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 얘기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이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2013년 1월 도둑들이 잡힌 지 10년 9개월 만이다. 그동안 법원 판결은 왔다 갔다 했다. 2017년 1심은 정부가 불상을 충남 서산 부석사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원래 부석사 소유인 불상이 오래전 도난이나 약탈을 통해 일본에 넘어갔다고 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간논지는 불상의 취득 경위를 소명할 증거를 내지 못했다. 불상을 왜구가 약탈했을 가능성이 큰 것도 맞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올해 2월 나온 2심 판결은 뒤집혔다. 왜구의 약탈 정황은 인정되지만 불상이 제작, 봉안된 14세기 초 고려 사찰 ‘서주(瑞州) 부석사’와 현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또 불상의 소재지였던 일본의 민법에 따라 간논지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부터 20년 이상 불상을 점유했으므로 소유권은 간논지에 있다는 판결이었다. 법 논리상 일본 법을 따른 것일 뿐 우리 민법을 따라도 결론은 같았다. 대법원은 2심의 일부 판단은 틀렸다고 봤다. 근처에 부석사라는 이름의 다른 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현 부석사는 고려 시대 부석사를 그대로 계승한 권리의 주체가 맞는다는 것. 하지만 불법 반출의 개연성만으로는 일본 간논지의 소유권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긴 소송을 거쳤지만 단순한 일이다. 기자는 약탈당했거나 무단으로 국외 반출된 문화재가 고국의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누구보다도 소망한다. 그러나 강제로 빼앗긴 물건인 것 같다고 해서 다시 훔쳐 오는 일이 정당화되긴 어렵다. 불상이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유서 깊은 절 부석사와 그 신도들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불상을 돌려주지 않은 채 부석사에 봉안했다 해도 ‘(약탈당했다가) 훔쳐 온 불상’이라는 꼬리표를 떼진 못했을 것이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보관된 불상은 향후 정부가 반환 절차 등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간논지 측에 “불상을 한국에 기증해 달라”고 제안하고 싶다. 수백 년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 온 불상을 돌려달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소송이 오래 이어지면서 감정의 앙금도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악연을 오늘날의 좋은 인연으로 바꾼다면 부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당초 불상이 일본에 건너가게 된 건 아무래도 악연이었던 것 같다. 한국 도둑들의 절도는 또 다른 악연을 만들었다. 간논지가 한일 우정의 마중물이 돼 준다면 한국인들도 마음이 크게 움직일 것이다. 일본 정부도 나서 달라.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의 한국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는 건 양국의 문화 협력에 기여할 것이고, 이를 권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불행한 역사도 오늘날의 선의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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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이재진 교수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59)가 선임됐다. 임기는 3년. 이 신임 위원장은 한국언론학회장, 한국언론법학회장,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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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라운지]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심포지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언론정보대학원장 겸 사회과학대학장 한동섭)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창립 60주년, 언론정보대학원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언론학교육 6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11월 7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심포지엄을 연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안동근 교수가 ‘언론학교육 60년, 교육프로그램 변화의 역사’, 손동영 교수가 ‘언론학교육의 현재와 미래’, 박진우 교수가 ‘AI 저널리즘과 인간 저널리즘, 그리고 저널리즘 교육’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다.이 밖에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 김경모 연세대 교수, 윤석민 서울대 교수, 박정찬 전 연합뉴스 사장, 정준형 SBS 기자, 성지영 MBC 기자 등 학계와 언론계 주요 인사가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벌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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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금관훈장 받은 전통가요, 딱 맞는 제 이름 찾아주자

    한국인에게 음악은 기록의 첫 페이지부터가 엘레지(elegy, 만가·挽歌 또는 애가·哀歌)다. 2000여 년 전 어느 새벽 한 남자가 흰머리를 풀어헤친 채 깊은 강물을 건너려다 최후를 맞는다. 끝내 남편을 붙잡지 못한 아내는 공후(箜篌·고대 현악기)를 타며 마지막으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부른다. 곡조는 전해지지 않지만 애절한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수 이미자 씨가 21일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중음악인이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 훈장을 받은 건 처음이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64년 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그의 위상을 볼 때 때늦은 감이 있다. 오래 폄하됐던 전통가요(트로트)가 뒤늦게나마 제 대접을 받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씨가 1964년 내놓은 ‘동백 아가씨’는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35주간 1위를 했지만 1년 만에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됐다. 일본의 엔카(演歌)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탓이다. 하지만 엔카와 전통가요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것은 당연했다. 성장기를 조선에서 보냈고, 아리랑을 편곡하기도 했던 엔카의 대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1904∼1978)가 “한국의 멜로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건 잘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의 민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시에 서양음악과 결합하면서 비슷한 양식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백제 미마지가 고대 일본에 기악무를 전했고, 정읍사 같은 백제 노래도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다. 이 씨의 노래에 대한 금지 조치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가 저자세 외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여론몰이 차원에서 내렸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전통가요는 옛 우리 노래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가요 ‘가시리’에서 김소월의 시로 이어진 절창(絶唱)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동백 아가씨’)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많은 전통가요엔 우리 옛 노래와 마찬가지로 그리워하는 이의 하심(下心·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 담겨 있다. 대체로 자유로운 개인이 강조되는 K팝의 흥망과는 별개로 전통가요는 앞으로도 오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공무도하가에서처럼 기어이 물을 건너려 할 수밖에 없는 좌절(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과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장차 임을 어이할꼬·當奈公何) 존재의 근원적 비극이 담겼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가요라는 명명은 엄밀해 보이지 않는다. 근대 들어 여러 나라와 접촉하며 변화 발전한 측면이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반대로 미국의 ‘폭스트롯’에서 기원한 ‘트로트’라는 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 내려온 노래라는 걸 보여주지 못한다. 더구나 이 씨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에서 “전통가요를 이어가는 가수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요즘은) 트로트라는 장르로 잘 이어받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활발한 리듬의 트로트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가요가 다시금 변화한 근래의 트로트와는 구별되길 바란다는 취지다. 전통가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딱 맞는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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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풍경화처럼 펼쳐진 생명의 역사

    “노스슬로프를 배회하던 말과 그 뒤를 쫓던 동굴사자에게 드넓은 스텝은 영원할 듯 보일 테지만 장구한 시간 규모에서 보면 영속성이란 환상이다. 얼음이 물러나면 비가 한 방울만 내려도 말들이 발굽을 힘차게 내딛던 딱딱한 땅은 이내 무너져내린다. 명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에도 오로라는 사라진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이 지구 생명 역사의 주요 장면을 장대한 풍경화처럼 그려낸 책이다. 약 2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스토세의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눈에 보이는 크기의 생물이 나타난 지 얼마 안 지난 5억5000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에디아카라 언덕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2만 년 전엔 아일랜드의 대서양 연안부터 땅이 드러난 베링육교(지금의 베링해협)까지, 역대 최대 연속 생태계였던 ‘매머드 스텝’(매머드가 살기 좋은 춥고 건조한 초원 지역)이 존재했다. 큰 짧은얼굴곰은 뒷다리로 서면 어깨높이가 3m에 이르는 매머드를 1m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랑말 같은 크기의 알래스카말이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달랬고, 아프리카 사자보다 10% 더 크고 덥수룩한 털이 있는 유라시아동굴사자가 이들을 노렸다. 매머드 스텝은 약 1만4500년 전 급속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난해지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이탄(식물이 퇴적돼 분해된 탄소화합물) 습지가 늘어나 토양이 산성화된 것. 먹을 것은 적어졌고, 푹푹 발이 빠지는 웅덩이는 동물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당시 동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화석과 인류가 그린 벽화로만 남았다. 책은 신생대의 6개 세(世·epoch)와 고생대와 중생대의 9개 기(紀·period)에 각기 한 장(章)씩을 할애한다. 유려한 문장으로 드러내는 과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other lands)’다. 저자는 “멸종 뒤에도 생명은 복구되고 종 다양화가 뒤따른다.…종종 놀라울 정도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지만 최소한 수만 년이 걸린다. 복구는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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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도덕은 유전자의 산물? 이의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를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려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인류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진화에서 그것이 이득이 됐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수긍이 갈 때도 있지만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도 많다. 인간이 놀랄 만한 이타성을 보이고,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며, 수많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창조하고, 영성(靈性)과 신비에 빠져드는 것 모두가 단지 진화에서 유리했기 때문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품어본 적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은 영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히며, 런던대 버크벡칼리지 교수로 미학을 가르쳤던 저자(1944∼2020)가 2013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했던 특별강연을 담고 있다. 저자는 과학만이 세계를 해석할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도덕성을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그저 유전자의 복잡한 부산물이라고 봤다. 그와 같은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선 “도덕성은 인간 유전 물질을 손상 없이 유지하는 것 외의 다른 명백한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가 무엇이었느냐’로 치환할 수 있다고 전제한 채, 인간의 조건을 단순한 원형으로 끌어내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대신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고유한 인격의 세계다. 저자는 인간성이란 유기체로부터 ‘창발하는’ 특징이라고 봤다. 육체를 갖고 있다고 인간성이 생물학적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것. 인간성은 유기체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 창발한다. 인격체의 만남을 통해 이뤄진 근본적인 도덕 감정을 인식해야 인간만이 가지는 인격체로서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다. 현대 윤리학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와 같은 딜레마에 사로잡혀 도덕적 판단을 허깨비로 만들었다는 것. 영미 사회철학에 대해서도 사회가 ‘계약’으로 형성됐다고 이해해 도덕에 대한 냉소로 빠져들 길을 열어놨다고 비판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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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단아하게 빛나는 삶 속의 문장들

    “마른땅에 보슬비가 내리듯이, 건조하고 닫혔던 마음에 조금씩 설렘의 동요가 일어나며 한 편의 글은 시작된다. 마치 농부가 대기의 미세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농작물과 교감이라도 하듯이. 때로는 한 문장이, 때로는 문장 전체가. 어떤 때는, 드물지만, 핵심이 되는 영상이 자리를 잡으며 그 설렘은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의 음계일 수도 있으며,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는 하나의 어조(톤)에 멈추기도 한다.”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소설가이자 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명예교수인 저자의 글 ‘나는 어떻게 쓰는가’의 첫머리다. 글쓰기의 설렘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저자는 글쓰기는 “시작과는 달리 곧장 긴 낙담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글은 일단 이 부인할 수 없는 흥분 어린 희열로 열린다”고 했다. 저자가 ‘잠깐 비켜서서 자유롭고 싶을 때’ 쓴 산문을 모은 책이다. 산문집으로는 1994년 낸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문학동네) 이후 29년 만이다. 저자는 1988년 중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 ‘오릭맨스티’ ‘첫 만남’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겨울, 아틀란티스’ 등을 내며 사회와 역사를 다채로운 문법으로 다뤄왔다. 산문집 역시 교단에 선 경험, 여행자로서의 체험, 좋아하는 작품 등을 소재로 한 단아한 문장이 빛난다. 자연과 종교,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엿볼 수 있다. “삶의 무수한 이방인에 대한 성숙한 한 인간의 태도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무수한 다름의 타인과의 ‘동행’이 아닐까 합니다.”(‘현대를 극복하는 공감과 환대’에서) 글쓰기를 두고선 이같이 비유했다. “그러나 대체로 사막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그것이 모래사막이건 돌사막이건 바위 사막이건, 모두 다 나름의 개별적 아름다움과 버려진 지역에서 영글어 깊어진 순수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 갇히는 것은 위험하다. 사막의 정의는 결여이기에 그곳에는 신기루가 있다. 사막과 신기루, 이 두 단어는 내게 자주 세상과 글쓰기의 은유였다.”(‘지금 생각나는 몇 가지 비유’에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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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만날 수 있어 감사한 추석… 잔소리 삼키고 진심 전하길

    “토란국에 솔잎떡을 새로 차려(芋羹松餠○初新)/마루 위에서 은근히 모친을 위로하네(堂上慇懃慰母親)/자매와 형제가 한 사람 적다고 탄식하니(姊妹弟兄歎少一)/올해 추석은 가장 마음이 아프네(今年秋夕最傷神)”(‘하재일기·荷齋日記’에서) 궁과 관청에 그릇을 납품했던 중인 출신 지규식은 1900년 추석을 엿새 앞두고 수구(水龜)라는 아홉 살 아이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명절을 맞아 토란국을 끓이고 송편을 차렸지만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집 뒤엔 대추가 전보다 배나 달려 한가득 따보지만, 주고 싶은 아비의 마음을 아이는 이제 알 수가 없습니다. 지규식은 이런 심정을 시로 지어 일기에 적었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가족이란 애증이 깊은 관계다 보니 귀성길 정체를 헤치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마주해도 보고팠던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박남수 시인은 읊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서/바라보는 중추(仲秋)의 달은/그리움의 거울./이북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며/미주(美州)에 간 아내를 그리며/내가 지금 귀뚜라미처럼/추운 몸을 떨고 있다” 딱 100년 전 추석도 그랬습니다. 1923년 추석 다음 날인 9월 26일 동아일보엔 ‘총독부제2회 안부조사도착’이라는 제목 아래 간토대지진 생존자의 명단이 빼곡히 실렸습니다. 그해 9월 1일 발생한 대지진 소식을 듣고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이 명단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겁니다. 그날 본보 사설은 이렇게 썼습니다. “‘추석이지만 쓸쓸하다!’ 이것은 비상(非常)히 슬픈 말이다.” 1933년 10월 추석 즈음엔 돈 벌러 만주로 떠난 오빠를 그리는, ‘고향에서 어린 누이’가 쓴 편지가 게재됐네요. “오늘은 8월 한가위 푸른 하늘에 밝은 달은 말 없이 흐르는 깊은 밤!…머나먼 오빠 계신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라버님의 고생 (생)각할 때 가슴은 바작바작 타오르는 듯 안타까울 뿐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유리왕이 6부(部)를 정한 뒤 패를 갈라 길쌈 승부를 한 데서 가배(한가위)가 유래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는 편이 술과 밥을 내면서 놀았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한 건 다음 구절입니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졌다 해도, 노는데 왜 슬펐을까요. ‘회소’를 ‘모이소(集)’나 ‘아소(知)’ 등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만날 수 없는 영혼들이 모두) 모여 소생(蘇生)하라”는 간절함을 담은 건 아니었을지, 근거 없는 추측을 해 봅니다. “가을이 되었으니/한가위 날이 멀지 않았소/추석이 되면/나는 반드시/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천상병, ‘한가위 날이 온다’에서)라는 시구처럼 말이지요.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추석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는 다시 삼키고, 진짜 마음을 전해 봅시다. “보름달이다./…/백수 건달바/아들딸도 보아라,/바람으로 돌아오는/은의환향 밤길엔/그리움의 사연으로도/달은 채워지나니”(김경희, ‘추석’에서)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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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메타버스는 고대에도 있었다?

    “예수의 형상이 남아 있다는 ‘토리노의 수의’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사회가 그 천에 다른 세계를 향한 믿음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토리노의 수의가 요즘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디지털 아트 같은 가상 오브제이다. 종교적 상상력으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와 와이파이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는 생각보다 비슷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살핀 책이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의 한 종류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태고부터 언어와 상상력만으로 메타버스를 창조해왔다고 말한다. 1만여 년 전 만들어진 터키의 신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메타버스의 원형이다. 1000년에 걸쳐 거대한 바위를 날라 만든 이 유적엔 전갈과 으르렁대는 맹수, 날갯짓하는 독수리와 머리 없는 인간의 조각 등 신화적 상징이 넘쳐난다. 고고학자들은 사람들이 이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협동하면서 신석기 혁명이 앞당겨졌을 거라고 본다. 피라미드나 올림푸스 신전 등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메타버스는 인류가 처음 존재했을 때부터 지녔던, 현실에 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본성의 최신판이라는 것이다. 고대에도 가상세계는 사람들이 사건과 정체성, 규칙, 사물이 실재한다고 믿기에 존재했고, 현실의 인간사회와 서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부와 만족감, 의미를 증진했다. 자연스레 오늘날 좋은 메타버스의 조건도 찾을 수 있다. ‘이용자의 내적 동기와 자기 결정성을 충족시키며, 다른 사람과 충분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현실 세계와 가치 교환이 가능한’ 메타버스다. 저자는 21세기 안에 컴퓨터와 뇌 신경이 직접 연결되는 포스트 휴먼 사회가 등장하고, 사람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지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때는 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현실보다 더 정교한 가상 세계 수천 가지 속에서 다채로운 삶을 병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글로벌 가상현실 소프트웨어 회사 임프라버블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쓴 책답게 메타버스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고찰이 펼쳐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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