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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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취재하는 방송·영화 담당 기자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기사 안에 담겠습니다.

jetti@donga.com

취재분야

2026-04-13~2026-05-13
문화 일반32%
인물/CEO17%
정당13%
선거9%
정치일반9%
사회일반4%
IT4%
산업4%
검찰-법원판결4%
패션4%
  • “코로나시대 극단 선택, ‘이대녀’ 가장 많이 늘어”

    “청년자살자 증가는 직업, 주거, 인간관계에서 청년들이 다른 연령대보다 취약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팬데믹 이후 청년자살자가 늘어난 원인에 대해 ‘가장 외로운 선택’(북하우스·15일 발간)을 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와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20대 사망자 중 54.3%가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해 20대 자살 사망자는 1471명으로 직전 해에 비해 12.6% 늘었다. 전체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2020년 우리나라 전체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4.4% 감소했다. 두 사람은 인간 삶을 지탱하는 직업, 주거, 인간관계가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 불안해졌는데, 이 세 요소에 있어 청년층이 다른 연령대보다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을 때 청년 알바생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1인 가구로 원룸, 고시원, 반지하 등에 거주하는데 실업으로 월세를 내지 못해 주거 위기까지 맞게 됐다는 것. 직업을 잃고, 주거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관계의 단절까지 겹쳤다. 거리 두기로 인해 친구나 친척들을 만날 기회가 크게 줄었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친구 관계에 더 의존적인 청년층의 정서적 박탈감이 심화됐다. 김 교수는 “한국은 식당, 카페 외에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마땅치 않기에 거리 두기로 서로 만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청년자살자 중 여성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2020년 상반기(1∼6월) 20대 여성 자살자 수는 296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다. 전체 성별 및 연령별 사망자 수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는 직업, 주거, 인간관계에서 20대 여성의 타격이 가장 컸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남성은 교통, 경찰 등 위기 상황에도 반드시 유지돼야 하는 필수인력 종사자 수가 여성에 비해 많다”며 “저임금 직군에 종사하는 비율도 여성이 더 높아 코로나19로 인해 생활고를 겪는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안으로 위기를 견딜 자원이 부족한 청년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부 국가들은 전염병으로 인한 록다운(도시 봉쇄) 시 청년 해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에 자살 위기 청년을 위한 상담창을 개설했다. 김 교수는 “국가재난 발생 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세대를 잘 가려내 선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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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당한 빅토리아 시대 여성 주인공… 흥미로운 상상”

    2006년 1편이 발표된 추리소설 ‘에놀라 홈즈’ 시리즈의 주인공은 셜록 홈즈(홈스)의 여동생이다. 2년 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제작한 1편 ‘사라진 후작’은 그해 넷플릭스 영화 세계 2위에 올랐다. 올해 말 2편 ‘왼손잡이 숙녀’가 영화로 나온다. 이 작품은 에놀라 홈즈가 오빠인 셜록, 마이크로프트와 함께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 7편 ‘검은색 사륜마차’(북레시피)가 4일 국내에 출간됐다. 이 시리즈를 쓴 미국 소설가 낸시 스프링어(74)를 13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에놀라 홈즈가 성공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에놀라 홈즈 캐릭터를 구상한 건 ‘잭 더 리퍼’ 시대의 음침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보라는 편집자의 조언이 계기가 됐다. 잭 더 리퍼는 1888∼1891년 영국 런던에서 11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어린 시절 셜록 홈즈 시리즈를 즐겨 읽은 그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런던을 배경으로 한 원작에 착안해 에놀라 홈즈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역사소설을 써 본 적이 없던 그는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 고증을 위해 자료를 치밀하게 조사했다. 영국 배우 제러미 브렛이 주연을 맡은 ‘셜록 홈즈’ 영화 시리즈를 반복해 보며 배경을 세밀히 살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과 드레스를 담은 컬러링북을 색칠하고 이 시대 종이인형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그는 영국 민담에 등장하는 로빈 후드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로언 후드 이야기’를 2001년 발표했다. 로빈 후드에 이어 셜록 홈즈까지, 기존 남성 캐릭터의 여성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그는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던 시대에 스스로 여성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당당히 살아가는 인물을 상상하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흥미롭다”고 답했다. 시리즈 1∼6편에서 에놀라와 셜록이 주로 대립구도를 펼친 데 비해 7편에서는 남매가 본격적으로 협력한다. 신작에서는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이 형부인 백작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셜록 남매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남매는 죽은 언니가 검은색 사륜마차에 실려 가는 걸 봤다는 목격담을 단서로 범인을 추적한다. 그는 “10년 만에 펴낸 7편은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라며 “영감의 원천은 에놀라 그 자체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강인하게 살아 숨쉰다”고 했다. 8편 ‘Elegant Escapade’(우아한 장난)는 올 9월 미국에서 출간된다. 총 60여 권의 소설을 발표한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지친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소설을 집필 중이에요. 펜을 잡을 수 있는 순간까지 계속 글을 쓸 겁니다. 글쓰기는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펜을 놓는 순간 내 활동적인 두뇌는 점점 시들기 시작할 거예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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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셜록 오빠 비켜!…“여동생 ‘에놀라 홈즈’ 성공, 상상도 못해”

    세계적인 추리 소설 ‘셜록 홈즈’는 영화, 드라마, 게임, 뮤지컬 등에서 수많은 버전으로 재해석됐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아닌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는 2006년 나온 추리소설 ‘에놀라 홈즈’가 처음이다. 소설은 셜록 홈즈의 가상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가 첫째 오빠 마이크로프트, 둘째 오빠 셜록과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미국 소설가 낸시 스프링어(74)는 2011년까지 6편을 냈고,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한 7편 ‘검은색 사륜마차’(북레시피)가 4일 국내 출간됐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제작된 1편 ‘사라진 후작’은 공개 직후 세계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기세를 이어 제작된 2편 ‘왼손잡이 숙녀’는 올해 가을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이다. 13일 스프링어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에놀라 홈즈가 성공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가 에놀라 홈즈라는 캐릭터의 영감을 얻은 건 친한 편집자의 제안 덕이었다. 편집자는 스프링어에게 “잭 더 리퍼 시대의 어둡고 음침한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써 보라”고 제안했다. 잭 더 리퍼는 1888~1891년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발생한 11건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연쇄살인범. 유년시절 셜록 홈즈를 즐겨 읽었던 스프링어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셜록 홈즈에 착안해 에놀라 홈즈를 창조해냈다. 역사 소설을 써 본 적이 없던 그는 19세기 중후반 빅토리아 시대의 고증을 위해 치밀한 자료조사를 거쳤다. 그는 “제러미 브렛이 주연을 맡은 셜록 홈즈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영화 속 배경들을 세밀히 살폈다. 빅토리아 시대의 집, 건축물, 드레스 등 주제의 컬러링북을 직접 색칠하면서 데이터들을 내면화했다. 빅토리아 시대 종이인형까지 참고했다”고 말했다. 스프링어는 영국 민담 속 영웅 로빈 후드의 가상의 딸 로완 후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로완 후드 이야기’를 2001년 출간한 바 있다. 이처럼 유명한 남성 캐릭터의 여성 가족을 창조해 내 그들의 성장을 그린 소설을 내는 이유에 대해 “나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에게 역할을 부여하거나 능력을 인정하지 않던 역사적 시기에, 여성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것은 마치 퍼즐을 맞춰가는 것처럼 흥미롭다”고 말했다. 1~6편에서 에놀라와 셜록이 반목했다면, 검은색 사륜마차는 둘 간의 협공에 초점을 맞춘다.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은 언니의 남편인 백작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에놀라와 셜록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두 사람은 의뢰인의 언니가 검은색 사륜마차에 실려가는 걸 봤다는 목격담을 단서로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스프링어는 “6편이 나온 뒤 10년 만에 7편을 내게 됐다. 7편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막이 열린 것”이라며 “끝없는 영감의 원천은 에놀라 그녀 자체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강인하게 살아 숨쉰다”고 말했다. 스프링어는 8편 ‘Elegant Escapade’ 집필을 마쳤고, 올해 9월 미국에서 출간된다. 지금까지 60여 권의 소설을 낸 스프링어는 “지친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쓰는 것은 내 존재의 이유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에요. 펜을 잡을 수 있는 순간까지는 계속 글을 쓸 겁니다. 글을 쓰는 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펜을 놓는 순간 나의 활동적인 두뇌는 점점 시들기 시작할 겁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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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 고통에도 연명치료… 죽음의 가치관 바뀌어야”

    전공의 2년 차 때 말기 신부전 환자의 심정지가 발생했다. 당직 중이던 전공의들은 중환자실로 모여들었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담당하는 박중철 교수(47·사진)도 그중 하나였다. 그를 포함한 전공의들은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40분간 지속된 심장 마사지에 흉곽은 주저앉았고, 압박할 때마다 입에 꽂혀 있는 호흡관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결국 환자에게는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다음 날 비참하게 망가진 아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환자의 남편은 “사람을 이렇게 끔찍한 몰골로 죽게 만들었어야 했느냐”며 울부짖었다. 박 교수는 1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이후 의학의 목표가 과연 사람의 행복인지, 기술의 실현인지 혼란이 생겼다”고 했다. 5일 출간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홍익출판미디어그룹)는 그가 20여 년간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느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가 고통받는 시간이 늘어나는 문제를 지적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도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가 생명 가치만을 절대 추앙하는 ‘생의 전체화’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학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중증환자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는 의사들을 영웅으로 그립니다. 생명 가치에만 집착하면 환자도 죽음을 재앙으로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의학의 힘을 빌려 싸우게 됩니다. 의사들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함께하며 비극을 만듭니다.” 그가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은 무엇일까. 그는 의료진이 객관적 의료지침에 충실한 것만이 의학적 최선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환자의 삶과 가치관, 나아가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서사적 생명윤리’가 필요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렵고 떨릴 때 가족과 의료인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문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입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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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분 심폐소생술 끝에 끔찍한 몰골로 죽은 환자…‘친절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전공의 2년 차 때 말기 신부전 환자의 심정지가 발생했다. 당직 중이던 전공의들은 중환자실로 모여들었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담당하는 박중철 임상조교수(47)도 그중 하나였다. 그를 포함한 전공의들은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40분간 지속된 심장 마사지에 흉곽은 주저앉았고, 압박할 때마다 입에 꽂혀 있는 호흡관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결국 환자에게는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다음 날 비참하게 망가져 있는 아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환자의 남편은 “사람을 이렇게 끔찍한 몰골로 죽게 만들었어야 했느냐”며 울부짖었다. 박 교수는 1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이후 의학의 목표가 과연 사람의 행복인지, 기술의 실현인지 혼란이 생겼다”고 했다. 5일 출간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홍익출판미디어그룹)는 그가 20여 년간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느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가 고통 받는 시간이 늘어나는 비인간성을 지적했다. 현행법상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는 뇌사 판정 후 장기기증을 결정했거나, 임종 과정에 들어섰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임종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다. 임종 과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어려워 대부분 의료진은 의료과실에 대한 처벌을 우려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환자를 살린다. 박 교수는 “생존했을 때 더 큰 고통과 비극에 처한다면 그 생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혈압이 떨어지면 앞뒤 따지지 않고 승압제를 사용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인공호흡기를 다는 사건 대응적인 의학은 환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없고, 심지어 삶을 망가뜨리는 해로운 의학”이라고 지적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도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가 생명 가치만을 절대 추앙하는 ‘생의 전체화’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학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중증환자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는 의사들을 영웅으로 그립니다. 의대 교육도 죽음과 맞서는 전사들을 양성해내고 있고요. 생명 가치에만 집착하면 환자도 죽음을 재앙으로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의학의 힘을 빌려 싸우게 됩니다. 의사들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함께하며 비극을 만듭니다.” 그가 그리는 ‘친절한 죽음’은 무엇일까. 그는 의료진이 객관적 의료지침에 충실한 것만이 의학적 최선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환자의 삶의 맥락과 가치관, 나아가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서사적 생명윤리’가 필요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렵고 떨릴 때 가족과 의료인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문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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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 여동생이 본 빈센트 반 고흐를 읽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남동생 테오는 각별한 사이였다. 테오는 괴팍하고 충동적인 고흐에게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 고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빈센트의 임종을 지킨 것도 테오였다. 빈센트가 죽고 불과 6개월 뒤 테오 역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빈센트의 뒤를 따라갔다. 둘은 같은 장소에 나란히 묻혔다. 빈센트와 테오의 관계는 숱하게 조명됐지만 빈센트에게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저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흐의 세 여동생 안나, 리스, 빌레민과 빈센트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들을 바탕으로 빈센트의 삶을 재구성했다. 반 고흐 가문 자녀들은 일과 학업을 위해 각각 런던과 파리, 브뤼셀 등으로 흩어진 뒤 서로 마음이 담긴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세 여동생과의 관계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빈센트는 자신처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고 사회의 관습과 체제에 반감이 컸던 막내 여동생 빌레민과 가장 가까웠다. 둘은 종교와 미술, 문학에 심취했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빈센트가 빌레민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했고, 동시에 가족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사랑하는 동생아… 네가 겪었다고 언급한, 지금 내가 다시 경험하고 있는 이 우울한 상태일 때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처럼 기질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지탱하는 데에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야.’ 빈센트는 보수적이었던 목사 아버지를 잘 따랐던 첫째 여동생 안나와는 끊임없이 반목했다. 안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빈센트 때문이라고 여겼다. 아버지 장례 후 안나는 빈센트에게 집을 나가라고 압박했고, 작업실로 거처를 옮긴 빈센트는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안나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거다.’ 빈센트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예술가가 아닌 인간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을 보여준다. 테오 외 가족들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살았던 빈센트가 평생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 빌레민을 그리워했다는 대목은 가슴 아프다. 빈센트는 사망 한 달 전인 1890년 6월, 빌레민에게 ‘언젠가 정말이지 네 초상화를 그려 보고 싶구나’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가 그토록 그리고자 했던 빌레민의 초상화는 못 다 이룬 꿈으로 남았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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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안에 툰베리 있다… 국가 이기주의 버리고 환경 지켜야”

    2100년 프랑스 파리, 105세 과학자 막시밀리안은 6명의 동료 과학자와 함께 2025년을 회상한다. 당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자 미국, 중국, 러시아는 육류 소비 감축, 자동차 주행거리 제한과 같은 강력한 규제를 발표한다. 이에 브라질이 강력 반발하고, 미-중-러와 브라질 간 싸움을 조장해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은 브라질에 강력한 무기를 지원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독일 작가 디르크 로스만(76·사진)의 공상과학(SF) 스릴러 소설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북레시피) 줄거리다. 이 책에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선·후진국 간 갈등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자 인도, 브라질 등이 “선진국 발전의 대가를 개도국이 질 수 없다”며 반발했다. 저자 로스만은 세계 4100개 매장을 가진 헬스·뷰티숍 로스만그룹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3일 서면 인터뷰에서 “나는 사업가이기 전에 자식과 손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다. 기후변화는 현실이다. 즉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신작에서 브라질에 무기를 지원하려는 세력의 음모를 폭로해 전쟁을 막은 이는 평범한 요리사 히카르두 다 실바다. 그는 식당 손님인 FC 상파울루 회장 엔리케 자코브 데 수르포에게 폭로 쪽지를 전달한다. 로스만은 “수줍어 보이는 한 소녀가 2018년 8월 스톡홀름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소녀는 그레타 툰베리”라며 “우리 안에는 히카르두나 툰베리가 있다. 육식을 줄이고 비행기를 덜 타는 소비 생활을 통해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설에서는 2025년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2100년 현재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파리에 모인 과학자 중 한 명인 자이츠는 자신이 개발한 인공 다리를 문어에게 붙여 다리가 아홉 개인 문어를 선보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로스만은 “문어는 그 자체로서 완벽하기에 더 이상의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비판하고자 문어를 소재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자국 이기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중국이 31%로 가장 많고 미국, 인도, 러시아 순으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처럼 미국, 중국, 러시아가 주도하는 강력한 기후 동맹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는 국가 간 경계를 뛰어넘기에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문제 해결에 어떤 이견도 없어야 합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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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상처투성이 과거를 치우고 현재를 돌려주는 일이란

    누렇게 바랜 침실 벽을 타고 흐르다 마른 갈색 액체, 얼룩진 카펫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 파리가 우글거리는 냉장고 안…. 사람이 산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 공간은 성범죄자 셰인의 집이다. 여성과 단둘이 있는 것이 금지된 그의 집에 아무렇지 않게 발을 들인 여성 샌드라 팽커스트. 그는 호주의 특수 청소회사 STC 서비스의 대표다. 살인 자살 약물중독 학대 등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를 치워온 그에게 셰인의 집은 특별할 것이 없다. 다목적 세제와 병원용 소독제를 섞어 침실 문과 욕실 바닥의 얼룩을 지우고, 포르노 잡지 더미를 가리키며 셰인에게 묻는다. “이것들 중 버려야 할 게 있나요?” 샌드라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이자 한때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했던 성노동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한 강력범죄 생존자이기도 하다. 호주의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4년 동안 샌드라와 함께 특수 청소 현장을 찾아가 샌드라의 삶과 일을 책에 담았다. 샌드라는 자살현장이나 정신질환 또는 육체적 장애로 오랫동안 방치된 집들을 청소한다.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청소하는 샌드라의 삶도 트라우마 덩어리였다. 샌드라를 입양한 양부모는 아들을 낳은 뒤 샌드라에게 “너를 입양한 건 실수였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었다. 알코올의존자(알코올중독자)였던 양아버지는 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샌드라를 향해 손찌검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한 그에겐 세상 역시 냉혹했다. 여장을 하고 성매매를 했던 샌드라는 소수자 중 소수자였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경찰에 발각되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사회에서 성소수자로서 겪은 폭력은 오히려 샌드라에게 포용력을 길러줬다. 그는 밑바닥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따뜻한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저자는 성폭행의 상처가 아직도 몸에 아로새겨져 있는 샌드라에게 성폭행 전과가 있는 셰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괜찮겠냐고 묻는다. 이에 샌드라는 이렇게 답한다. “고객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난 그 이면을 봐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냥 정신질환의 증세일 뿐이에요.” 오물이 카펫을 뒤덮어 악취가 코를 찔러도 샌드라는 결코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집주인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죽은 쥐 수십 마리를 모으는 동물 조련사의 집부터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숨진 35세 여성의 집까지…. 샌드라와 저자가 함께 다녔던 공간들은 이 세상의 가장 낮고 어두운 곳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돌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샌드라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발판 삼아 기꺼이 타인의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간다. 불결함과 추악함으로 찬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샌드라는 자신을 쓰레기 더미 속에 놓아 버린 이들의 마음 깊은 곳 상처까지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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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인 줄 알았던 부모 체벌, 폭행이었다”

    직장인 김가을 씨(25)는 친아버지에게 맞는 게 일상이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날아오는 주먹이 두려워 옷 안에 휴지뭉치를 넣기도 했다. 사회복지사 전안나 씨(40)는 어릴 때부터 양어머니로부터 “너는 언제 죽냐”는 말을 매일 들었다. 양어머니는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았고 몸을 마구 밟기도 했다. 전 씨는 ‘태어난 것 자체가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고백한 에세이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천년의 상상), ‘태어나서 죄송합니다’(가디언)가 각각 21일, 23일 출간됐다. 두 저자는 가정폭력의 기억과 그로부터 벗어난 과정을 서술했다. 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동안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 씨는 결혼을 한 27세에, 김 씨는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한 뒤 쉼터에 가게 된 23세에 각각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가정폭력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에 있다. 부모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보호자였기 때문. 전 씨는 “어머니는 저를 때리고, 다음 날 약을 발라주는 행동을 반복했기에 폭행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씨는 “학창 시절 아버지는 늘 ‘공부 잘하라고 때리는 거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폭행이 이어지자 내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의 상처는 여전히 이들의 몸에 새겨져 있다. 전 씨는 잠든 그를 깨워 때리기도 했던 양어머니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방문을 잠그고 잔다. 김 씨는 남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아버지의 일상적인 폭력을 지켜보며 누군가를 때린다는 게 문제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동물 같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두 책은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에 일침을 날린다. 김 씨는 “가정폭력을 신고해봤자 다시 부모에게 돌아가야 했기에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전 씨는 “한국 사회는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체벌을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아이를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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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때리고 약 발라주던 엄마…폭력도 사랑인 줄 알았다”

    직장인 김가을 씨(25)는 친아버지에게 맞는 게 일상이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날아오는 주먹이 두려워 옷 안에 휴지 뭉치를 넣기도 했다. 맞은 곳을 또 맞지 않으려 자세를 바꾸면 거슬린다며 더 때린 탓에 부동자세로 견디는 것이 지옥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날 유일한 방법임을 터득했다. 사회복지사 전안나 씨(40)는 어렸을 때부터 양어머니로부터 ‘너는 언제 죽냐’는 말을 매일 들었다.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았고, 몸을 마구 밟기도 했다. ‘태어난 것 자체가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고백한 에세이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천년의 상상), ‘태어나서 죄송합니다’(가디언)가 각각 21일, 23일 출간됐다. 두 저자는 부모에게 매 맞고 욕설을 들으며 자란 기억부터, 어떻게 가정폭력을 인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과정을 서술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 동안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 씨는 결혼을 하게 된 27살에, 김 씨는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한 뒤 쉼터에 가게 된 23살에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가정폭력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에 있었다. 부모는 가해자인 동시에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보호자이기 때문. 전 씨는 “어머니는 온갖 이유로 저를 때리고, 다음날 약을 발라주는 행동이 무한 반복됐다. 이 때문에 폭행도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폭력은 자녀를 위한 체벌이라는 오류에 빠지기도 쉬웠다.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김 씨는 “학창시절 아버지는 늘 ‘공부 잘하라고 때리는 거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폭행이 이어지자 이 사람은 뭐라도 때릴 이유를 찾아서 때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의 상처는 여전히 이들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전 씨는 독립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잠든 전 씨를 깨워 때리기도 했던 양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방문을 잠그고 잔다. 김 씨는 남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동생을 때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일 보니 저도 남동생을 똑같이 때리고 있더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게 문제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두 책은 피해자를 위로함과 동시에,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에 일침을 날린다. 김 씨는 “가정폭력을 신고해봤자 다시 부모 밑에 들어가 살아야 했기에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철저한 분리, 쉼터 등 인프라의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전 씨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체벌을 가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아이를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걸 모든 부모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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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완벽한 글쓰기? 더 나은 ‘실패’ 위해 계속 노력할 뿐”

    오로지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없이 50여 년 전 장만한 올림피아 타자기로 지금껏 글을 써온 75세 노작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식사 시간 45분을 제외하고 11시간 남짓 꼼짝 않고 작업실에서 문장과 씨름하는 워커홀릭…. 이달 30일 출간되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열린책들)의 작가 폴 오스터(75)를 22일 단독 인터뷰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방금까지 새로 시작한 소설을 쓰던 중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길을 잃어요. 글을 쓰면서 답을 찾아나가죠.” 유대계 미국 작가인 오스터는 ‘뉴욕3부작’ ‘달의 궁전’ ‘빵굽는 타자기’ 등으로 유명하다. 간결하지만 섬세한 문장으로 정체성을 탐구하고 우연의 미학을 다뤄온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7년 882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4321’을 낸 뒤 소설에선 한발 물러나 있었지만 에세이와 논픽션은 매년 꼭 한 편씩 냈다. ‘낯선 사람…’은 그의 에세이와 서문 등을 모은 산문집으로 미국에선 2019년에 출간됐다. 첫 장인 ‘굶주림의 예술’은 작가가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그는 크누트 함순의 소설 ‘굶주림’,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통해 ‘예술가는 굶주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작가는 글을 쓰는 데에 내 모든 것을 다 갈아 넣어야 한다. 때로는 50페이지를 쓰고 몽땅 쓰레기통에 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다면 정직함의 균형을 이룬 것이다. 꼼수를 쓰지 않았다는 도덕적인 만족감이 있다”고 말했다. 사뮈엘 베케트, 조지 오펜 등 동시대를 산 작가들과의 만남을 담은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오스터는 베케트와의 일화를 떠올릴 땐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베케트와 두 번째로 만난 오스터는 그의 소설 ‘메르시에와 카미에’가 좋았다고 베케트에게 말했다. 이에 베케트는 “아니, 별로예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5분 만에 베케트는 오스터에게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정말 그 작품이 좋았어요?” “베케트조차 자기 작품에 확신이 없었던 겁니다. 나 역시 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케트의 말대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실패’(fail better)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1만 km가 넘는 먼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연결한 전화선 사이에 누군가의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몇 차례 끼어들었다. 오스터가 말했다. “아마도 화성인이 우리의 전화에 끼어드는 걸까요?” 전화의 잡음만으로 화성인을 떠올리던, 장난기 넘치는 일흔 다섯 소설가는 여전히 글쓰기에 목이 마르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크레인의 작품을 읽다가 그에게 빠져들어 800페이지에 달하는 전기 ‘버닝보이’를 지난해 출간했다. 미국 총기 문제를 다룬 논픽션 ‘블러드베스 네이션’은 올해 말 미국에서 출간된다. “책 제목인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결국 작가라는 업의 본질이에요. 소설만이 낯선 이들이 완벽한 친밀감을 갖고 만나는 공간입니다. 소설은 굶는 아이에게 음식을 줄 수도, 폭탄이 터지는 걸 막을 수도 없지만 낯선 이들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게 바로 책의 묘미 아닐까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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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차대전 폐허 속 런던 보랏빛으로 물들인 잡초

    1945년 5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일주일 앞둔 이날 영국 큐 왕립식물원 관리자는 런던 피폭 지역에서 못 보던 잡초가 자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교회가 폭격을 맞자 의용 소방대는 외벽에 물을 뿌렸고, 이후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고사리들이 건물을 뒤덮었다. 노란 꽃을 피우는 금방망이속은 런던 월의 깨진 벽돌 사이에서 자랐고, 맹독성 식물인 독말풀은 런던 중앙을 가로지르는 치프사이드 거리에 싹텄다. 런던 사람들은 곳곳에서 피어나 보랏빛 물결을 이룬 분홍바늘꽃에 ‘폭탄잡초’라는 별칭을 붙였다.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으로 황폐화됐을 때, 폭탄이 휩쓸고 간 폐허에 가장 먼저 등장한 생명체는 다름 아닌 잡초였다. 자연과 식물을 다룬 30여 권의 책을 집필해온 저자는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 재빠름, 기회주의적 생활방식에 주목한다. 잡초는 농작물을 말려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유독성으로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악마적 존재로 치부되기도 했다. 저자는 못난이 취급을 받았던 잡초가 땅의 빈 공간을 메우고, 산사태나 산불로 복구되지 않은 초목을 치유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잡초를 박멸 대상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줄기에 호랑이 무늬가 있는 ‘무늬왕호장근’이다. 일본과 중국이 원산지인 이 풀은 19세기 중반 유럽에 들어와 정원 관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무늬왕호장근은 점차 쓰레기 틈과 길가 배수로에서 자라고 교회 부속 묘지까지 침범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외래 잡초종으로 낙인찍혔다. 1990년에는 환경보호법에 따라 해당 풀을 매립지에 폐기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한때 이국적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던 식물이 돌연 뿌리 뽑아야 하는 침입종으로 돌변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중심적 사고로 식물의 유용성을 판단하는 대신에 ‘귀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토종식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식물 공백을 채울 새로운 식물들의 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리치는 건 우리 작은 군도의 식물군이 점점 더 빈곤해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잡초를 사랑했다. 그의 작품에는 100여 종의 야생식물이 언급돼 있고, 그중 상당수는 영국에서 발에 차이는 잡초들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94번에서 이렇게 썼다. ‘여름철 꽃은 혹여 아무도 모른 채/홀로 살다 죽어도 여름을 향기롭게 하지만/그 꽃이 해충에 점령되면/가장 초라한 잡초도 그 꽃보다 더 품위 있을 것이다/가장 향기로운 것도 그 행위로 가장 역겨운 것으로 바뀌나니/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더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 화려한 꽃보다 잡초가 더 품위 있고 향기롭다고 노래한 셰익스피어처럼, 길거리에 마구 피어난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관찰해보는 건 어떨까.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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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군 공습 후 런던 거리에 분홍바늘꽃이 핀 이유는…

    1945년 5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일주일 앞둔 이날 영국 큐 왕립식물원 관리자는 런던 피폭 지역에서 못 보던 잡초가 자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 피카딜리 거리 있는 세인트 제임스 교회가 폭격을 맞자 의용 소방대는 외벽에 물을 뿌렸고, 이후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고사리들이 건물을 뒤덮었다. 노란 꽃을 피우는 금방망이속은 런던 월의 깨진 벽돌 사이에서 자랐고, 맹독성 식물인 독말풀은 런던 중앙을 가로지르는 치프사이드 거리에 싹텄다. 런던 사람들은 곳곳에서 피어나 보랏빛 물결을 이룬 분홍바늘꽃에 ‘폭탄잡초’라는 별칭을 붙였다.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으로 황폐화됐을 때, 폭탄이 휩쓸고 간 폐허에 가장 먼저 등장한 생명체는 다름 아닌 잡초였다. 자연과 식물을 다룬 30여 권의 책을 집필해온 저자는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 재빠름, 기회주의적 생활방식에 주목한다. 잡초는 농작물을 말려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유독성으로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악마적 존재로 치부되기도 했다. 저자는 못난이 취급을 받았던 잡초가 땅의 빈 공간을 메우고, 산사태나 산불로 복구되지 않은 초목을 치유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잡초를 박멸의 대상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줄기에 호랑이 무늬가 있는 ‘무늬왕호장근’이다. 일본과 중국이 원산지인 이 풀은 19세기 중반 유럽에 들어와 정원 관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무늬왕호장근은 점차 쓰레기 틈과 길가 배수로에서 자라고 교회 부속 묘지까지 침범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외래 잡초종으로 낙인찍혔다. 1990년에는 환경보호법에 따라 해당 풀을 매립지에 폐기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한때 이국적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던 식물이 돌연 뿌리 뽑아야 하는 침입종으로 돌변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중심적 사고로 식물의 유용성을 판단하는 대신 ‘귀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토종식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식물 공백을 채울 새로운 식물들의 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리치는 건 우리 작은 군도의 식물군이 점점 더 빈곤해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잡초를 사랑했다. 그의 작품에는 100여 종의 야생식물이 언급돼있고, 그중 상당수는 영국에서 발에 차이는 잡초들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94번에서 이렇게 썼다. ‘여름철 꽃은 혹여 아무도 모른 채/홀로 살다 죽어도 여름을 향기롭게 하지만/그 꽃이 해충에 점령되면/가장 초라한 잡초도 그 꽃보다 더 품위 있을 것이다/가장 향기로운 것도 그 행위로 가장 역겨운 것으로 바뀌나니/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더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 화려한 꽃보다 잡초가 더 품위 있고 향기롭다고 노래한 셰익스피어처럼, 길거리에 마구 피어난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관찰해보는 건 어떨까.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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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작품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일흔아홉 老시인, 시집-산문집 펴내

    팔순을 바라보는 최문자 시인(79)은 4일 출간한 자신의 아홉 번째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민음사)를 마지막 작품으로 여겼다. ‘다음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펜을 잡았다. 죽음과 가까이에서 쓴 글은 마치 유언장과도 같았다. 불시에 죽음을 맞이해도 남겨진 세 딸들이 시집을 통해 그가 삶의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는 이번 시집에 삶과 죽음, 청춘과 늙어감, 사랑과 후회에 대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리토르넬로는 후렴구를 의미한다. 서울 동작구 카페에서 21일 만난 최 시인은 “후렴구는 계속 돌아오지만 연주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인간도 반복되는 순간들을 조금씩 다르게 걸어가려 한다. 20대의 나와 70대의 내가 달랐단 것처럼 말이다”라고 했다. ‘해바라기밭…’은 2019년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 이후 3년 만에 낸 신작이다. 산문집도 냈다. ‘생에 단 한 번’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시인이 산문을 쓰는 건 ‘외도같이 느껴져’ 고집스럽게 시만 썼던 그는 14일 출간한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난다)를 통해 유년 시절, 고통스러웠던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그는 “바람처럼 쓰러지는 죽음도 있다. 나도 그렇게 죽을지 모른다. 어떤 조짐 같은 걸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가 마지막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건 별안간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2014년 건강검진에서 폐암 2기를 선고받은 그는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46년을 함께한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최 시인은 “남편의 장례식 직후 수술대에 누웠다. 3개월 안에 일어난 일련의 비극을 통해 ‘죽음은 백지 한 장 너머에 있다’는 것을 통절했다”고 말했다. 깨달음은 그의 시집과 산문집에 담겼다. ‘이런 흰 꽃이 죽어라고 피면 죽음도 그칠 줄 알았나? … 꽃꿈은/설렘이 아니고 새파란 공포인 거야.’(시 ‘수선화 감정’ 중) 죽음을 목전에 뒀던 그가 깨달은 건 ‘아낌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다. 사물이나 일, 이상향, 또는 신을 향한 사랑이 될 수도 있다. ‘한창 뜨거울 때, 한창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울 때 이 뜨거움과 부드러움의 힘으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힘껏 돕고 힘껏 녹여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중) “산문집 제목처럼 우린 늘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다 세워놓고 끝을 맺어요. 깊이 사랑할수록 더 깊이 두려워하는 게 인간 본성인가 봐요. 이별과 맞닥뜨렸을 때 안타깝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내 안에 다 받아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라도 아쉬움은 없다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만약’이라고 운을 뗐다. “만약 또 한 번의 시집을 낸다면, 아주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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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은 백지 한 장 너머에”…유언장 같은 아홉 번째 시집

    올해 여든의 노시인은 이번 시집을 마지막이라고 여겼다. 이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펜을 잡았다. 죽음과 가까이에서 쓴 글은 마치 유언장과도 같았다. 불시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세 딸들이 시집을 보며 그가 삶의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도록. 최문자 시인(79)은 4일 나온 그의 아홉 번째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민음사)에 삶과 죽음, 청춘과 늙어감, 사랑과 후회에 대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2019년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 후 3년 만이다. 산문집을 낸 것도 ‘생에 단 한 번’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시인이 산문을 쓰는 건 ‘외도같이 느껴져’ 고집스럽게 시만 썼던 그는 14일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난다)를 통해 유년시절, 고통스러웠던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도 담았다. 21일 서울 동작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마지막을 각오하고 글을 썼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청춘 같은 에너지를 뿜었다. “그 전에는 쓰고 싶어도 참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아무 제재 없이 막 쏟아냈어요. 바람처럼 쓰러지는 죽음도 있거든요. 나도 그렇게 죽을지 몰라. 어떤 조짐 같은 걸 미리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죠.” 마지막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건 별안간 죽음을 봤기 때문이었다. 2014년 건강검진에서 폐암 2기를 선고받았다. 수술을 1주일 앞두고 46년을 함께한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최 시인은 남편의 장례식 직후 수술대에 누웠다. 부작용으로 진통제도 맞을 수 없어 폐의 3분의 1을 잘라낸 고통을 맨 정신으로 받아냈다. 불과 3개월 안에 일어난 일련의 비극들을 통해 최 시인은 “죽음은 백지 한 장 너머에 있다”는 것을 통절했다. 이 깨달음은 그의 시집과 산문집에 담겼다. ‘아무도 부르지 말고 피자 꽃피자/아침에도 수선화는 그냥 그렇게 피었던 거야/격렬한 신념 같은 거 없이/이런 흰 꽃이 죽어라고 피면 죽음도 그칠 줄 알았나?…꽃꿈은/설렘이 아니고 새파란 공포인거야.’(‘수선화 감정’) 산문집엔 중환자실에서 ‘아카시아꽃’을 부르짖다 숨이 멎은 한 환자에 대한 회고도 적혔다. ‘’꽃‘자 발음을 끝까지 내지 못하고 힘없이 병상에서 미끄러지는 여자를 들어올리며 간호사는 응급이 터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가시가 수없이 박힌 가지에 달린 아카시아꽃을 생각하며 나는 통증을 핑계로 소리내어 울었다.’ 죽음을 가까이 두니 삶을 성찰하게 됐다. 삶에 대한 성찰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최 시인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완성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했다. 산문집엔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혹시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을 발굴하지 않았다. 다 파내고 파헤쳐진 흉터 같은 폐허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누군가 총을 겨눠도 어떤 감정은 죽지 않고 푸르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그해/죽은 해바라기 옆에 채송화를 심고 히말라야로 갔지’. “부모님은 나한테 기대가 컸어요. 해바라기 같이 크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 하셨죠. 근데 채송화만도 못하게 됐어요. 대학 자퇴를 했고, 가출도 했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도 했죠. 내가 아이 셋 키우면서 시도 못쓰고 최악의 시기를 지날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해바라기가 되는 걸 끝내 못 보시고. 여전히 부채의식이 있죠.” 일평생 후회하는 사랑만 했다는 그는 청춘에게 아낌없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단순히 사람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다. 사물이나 일, 이상향, 또는 신을 향한 사랑이 될 수도 있다. ‘한창 뜨거울 때, 한창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울 때 이 뜨거움과 부드러움의 힘으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힘껏 돕고 힘껏 녹여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평생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어보지 못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산문집 제목처럼 우린 늘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다 세워놓고 끝을 맺어요. 깊이 사랑할수록 더 깊이 두려워하는 게 인간 본성인가봐요. 근데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사랑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거든요. 밖에 세워 놓은 사랑이 떠나면 전부 후회되는 거죠. 이별과 맞닥뜨렸을 때 안타깝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내 안에 다 받아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라도 아쉬움은 없다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만약’이라고 운을 뗐다. “만약 또 한 번의 시집을 낸다면, 아주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요. 이번에 쓴 것처럼 갈등으로 가득한 것 말고. 근데 그건 내 희망사항입니다. 그런 기회가 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봉지에 덜렁 넣어오기 뭐해서 오는 길에 예뻐 보이는 가방 하나 샀어요.” 시집과 산문집을 넣은 베이지색 에코백을 그가 건넸다. 올해 6월 영어로 번역된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들고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며 설레어하는 그는, 늙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며 눈을 빛내던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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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피카소의 뮤즈’가 아닌, 불꽃 같은 예술가를 만나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그와 공식적인 연인관계였던 여성만 7명. 그중 유명한 이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9년간 피카소와 함께했던 도라 마르(1907∼1997)다. 연인의 초상화도 다수 그렸던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 삼아 ‘우는 여인’(193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도 남겼다. 마르는 당시 패션과 광고사진으로 이름을 알린 사진작가였고, 다양한 그림을 남긴 화가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작가’보단 ‘피카소의 연인’으로 더 유명해졌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열정과 광기, 공허함으로 점철됐던 마르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재조명한다. 저자가 마르의 발자취를 추적하게 된 계기는 한 권의 다이어리였다. 남편이 아끼던 에르메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저자는 이와 가장 비슷한 중고 제품을 이베이에서 주문했다. 배송된 다이어리 안주머니에 샤갈, 라캉, 자코메티 등 예술가들의 주소록 수첩이 끼워져 있었던 것. 이 수첩이 마르의 것임을 확신한 저자는 2년 동안 수첩에 적힌 이름과 관련된 자료, 기사를 뒤졌고 생존 인물을 직접 찾아다녔다. 책은 마르가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예술가로 인정받고자 노력한 과정을 따라간다. 마르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스페인과 영국의 가난한 동네를 다니며 실업자, 기형의 몸을 가진 사람 등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 ‘무제’(1933년)는 거대한 소라에서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뻗어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 몽환적이고 기이한 마르의 몽타주 작품들 역시 실험성과 참신함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사랑을 갈구했던 한 여자로서의 삶도 그려진다. 피카소를 비롯한 연인들과의 관계에서 마르는 늘 감정에 솔직했고 적극적이었다. 때때로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은 광기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가 피카소와 만나기 전 연애했던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 루이 샤방스가 마르에 대해 남긴 시는 불같은 마르의 성격을 추측하게 한다. ‘그대 이제 흔들리는구나. 신경질 가득한 미친 여인…내가 바친 사랑의 대가로 내 배를 걷어찼지.’ 처음 피카소와 만난 카페 되 마고에서 마르는 피카소의 시선을 끌기 위해 손가락 사이로 칼을 내리꽂았고, 마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피카소는 그를 카페에 데려온 시인 폴 엘뤼아르에게 이렇게 묻는다. “저 이상한 여자를 압니까?” 유명 예술가의 삶에는 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가 존재했다. 근대조각의 시조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아내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대표적이다. 클로델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뮤즈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에 천재적 재능을 드러냈던 조각가였다. 플뢰게 역시 바람둥이 클림트가 유일하게 평생 사랑했던 여성으로 유명할 뿐, 오스트리아 유명 패션디자이너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마르의 삶은 누군가의 뮤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예술가로서 창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사랑에 늘 솔직했던 한 주체적인 여성이 있음을 몸소 증명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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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조카 잃은 후 1000일 하고도 68일…여전히 악몽의 웅덩이

    [안인득 방화살인, 그 후 1068일의 기록]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방문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형식으로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또 늘었다. 금세은 씨(43)는 매일 10가지의 신경정신과 약 22알을 복용하고 있다. 추가된 약은 항우울제 0.5알과 불안, 경련을 완화하는 약 3알. 이제 하루에 알약 26개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병원 신경정신과 진료실에서 세은 씨는 주치의 김봉조 교수와 마주 앉은 채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년 11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2년 4개월. 알약 2만 개가 그의 몸 안에 쌓였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그날’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친다. 약은 순서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전신 떨림, 두통, 호흡곤란, 불면증을 잠시 멎게 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불면증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약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세은 씨)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괴로우니 그렇지. 근데 약 한꺼번에 먹으면 절대 안 돼요.”(김봉조 교수) 세은 씨는 오늘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온 그는 병원 1층 약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멍한 눈으로 약사로부터 A4 용지 네 장에 달하는 복약지도서와, 약 봉투가 가득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악몽 같은 3년… “안인득 방치한 국가,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 10분 만에 달라진 삶1000일 하고도 68일 전, 2019년 4월 17일 전의 세은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치위생학과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시작한 치위생사 일이 잘 맞았다. 환자 상담까지 도맡았다. “예전엔 사람 만나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어.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3남매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편히 사는 게 세은 씨 소원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마흔 살까지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갚아가고 있었다. 매일 알약 26알로 버티는 생존자빗물만 봐도 ‘그날 핏물’ 트라우마… 20년 일했던 치위생사 결국 관둬“숨져가던 엄마 모습 아직도 생생” “가족 위해서 고생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좋은 옷 입고 편하게 살길 바랐지. ‘엄마, 이제 (통장) 플러스 된다. 쪼매만 기다려라’ 했는데….” 자칭 ‘일벌레’이자 효녀였던 세은 씨는 2019년 4월 17일,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오전 4시 25분, 경남 진주시 A아파트 303동. 조현병을 앓던 이 아파트 406호 주민 안인득(45)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미리 준비한 흉기를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휘둘렀다. 화재경보음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고작 10분 만에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숨진 5명 중 2명은 세은 씨의 가족이었다. 그는 불과 10분 사이 어머니 김모 씨(당시 65세)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금지윤(가명·당시 12세) 양을 잃었다. 세은 씨는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 웅덩이에 빠진 날세은 씨는 3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건 당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와 맥주 한 잔을 하고 오전 3시쯤 잠에 든 세은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소란에 눈을 떴다. “살려주세요!” 올케 차모 씨(44)의 비명이 들렸다. 세은 씨 오빠 금민수(가명·47) 씨 부부와 딸 지윤 양도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놀란 어머니가 복도로 뛰쳐나갔다. 5분 정도가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세은 씨도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뿌연 연기가 복도에 가득했다. 복도를 지나 방화문을 열자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경비원이 “수건 달라”고 외쳤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수건을 챙겨 현관문을 다시 열자 바로 앞에 올케 차 씨가 서 있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신고해야 된다!” 차 씨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보호하다 옆구리를 흉기로 찔린 상태였다. 세은 씨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예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빨리 와주세요!” 비상계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주민들을 지나 1층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어머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어머니도 손녀 지윤이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다. “엄마 지혈을 (소방대원이) 저보고 도와 달랬어요.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지혈을 하는데 지혈이 안 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야….○ 빗물은 핏물이 됐다 세은 씨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민수 씨네 가족은 비 오는 날엔 늘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비 오는 날은 세은 씨에게 공포가 됐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어느 날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비가 와서 문 앞에 물이 가득한 거라. 그걸 보는 순간 그날 복도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지.” 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년간 했던 치위생사 일도 그만둬야 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을 잃은 오빠 민수 씨의 삶도 여전히 2019년 4월 17일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민수 씨와 같은 통로에 살았다. 사건 당일, 문틈을 넘어오는 매캐한 연기에 잠에서 깬 민수 씨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곤 옆집 문을 두드려 이웃들을 깨웠다. 이웃들을 뒤따라 내려가던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딸과 어머니를 마주해야 했다.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딸)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연기 빼고 불났다고 문 두드리고…. 그게 제일 큰 실수라. 내가 미친놈이지.”○ 원망할 수 없는 이유민수 씨가 유독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민수 씨는 안인득의 형과 고등학교 친구였다. 민수 씨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친구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역시 처음에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 “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보따리로 사주고 한 놈이라. 조현병인 줄도 몰랐지.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근데 병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본 기라.” 약도 먹지 않고 입원도 거부하며 안인득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사건 수개월 전부터 주민들을 향해 폭언을 하고 오물을 던졌다. “모두가 피해자” 국가에 손배소송안인득 형, 동생 입원위해 백방노력… 檢-警-동사무소 모두 책임 떠넘겨“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방치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사건 약 한 달 전, 안인득은 흉기를 사용한 폭행사건을 일으켜 경찰에 입건됐다. 동생을 걱정한 안인득의 형은 경찰서에 전화를 해 “조현병 환자인 동생을 강제입원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고 했다. 검찰청 민원실에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동사무소나 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는 “강제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려 사방팔방으로 뛰었던 그의 형이자 자신의 친구. 민수 씨는 딸과 어머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원망할 수 없었다. ○ 국가에 책임을 묻다 사건 뒤 어려워진 생계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경남지방경찰청 진상조사팀이 조사를 벌여 경찰 조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지만 관련 경찰 5명을 경징계하고 2명을 경고 처분하는 데 그쳤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원망은 스스로를 향했다. 불면증과 불안 증세로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술에 기대 하루하루를 보냈다.민수, 세은 씨 남매가 일상을 잃은 채 살아가던 2020년 봄,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한신경정신학회였다.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사건이 매년 반복되면서 학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상태였다. 학회는 중증정신질환자는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을 위해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달라고 했다. 소송을 위해 다시 사건을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남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그 사람들도 아픈 사람이다. 방치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그 사람 가족까지 죄인이 되는 기고. 안인득도, 안인득 형도 피해자다.”(민수 씨) 세은 씨와 민수 씨 가족은 지난해 11월 8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조금 괜찮아져서 소송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민수 씨가 답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소송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 눈물의 웅덩이가 마를 때까지세은 씨는 매년 추석, 설날마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를 찾는다.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소장 제출 직후 아파트를 찾은 세은 씨는 아파트 정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사건이 났던 303동을 향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검정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세은 씨는 한참 떨어진 309동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303동을 바라보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한참 동안 사진을 쳐다봤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사진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사진은 없어.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 기억하게….” 오늘도 세은 씨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68일분의 고통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 ‘보호자 없는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지대… “국가책임제 필요” 입원 거부자 경찰 호송 쉽지않고, 가족없는 1인가구는 더 어려워인권단체 “제도 개선 필요성 인정… 인권 살피고 예방 치료도 힘써야” 금민수(가명), 금세은 씨 가족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경찰이 법에 명시된 정신질환자 대응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범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차 공판 기일은 4월 21일로 약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에 반해 입원시키는 ‘비(非)자의 입원’ 제도가 규정돼 있다. 하지만 금 씨 가족과 대한신경정신학회 등 관련 단체들은 이런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안인득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한 전력이 있고 △폭행, 욕설 등 공격적 성향이 지속된 경우로 비자의 입원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입원하거나 치료받지 못했다. 비자의 입원 중 행정입원은 전문의 진단이 필수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전문의에게 강제로 호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응급입원은 상황이 급박해 다른 절차가 불가능할 때에만 가능하다. 경찰이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절차를 밟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 전체 비자의 입원 8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직계혈족, 배우자가 없는 경우 보호입원이 불가능하다. 직계혈족, 배우자, 민법상 후견인 중 2명이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학회 법제이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자를 보살필 가족이 없어지고 있다.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비자의 입원 신청 권한을 광범위하게 열어둔다. 미국 32개 주에서는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일본도 ‘정신장애인 또는 그 의심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신청 권한을 인정한다.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도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박환갑 사무국장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상담하고 외래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환자 관리 시스템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송, 치료 과정에 인권침해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일의 기록’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기사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연결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기사 취재: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남건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동영상 편집: 김태희 인턴 김신애 CDQR코드를 스캔하면 기사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연결됩니다.}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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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분 만에 죽은 엄마와 조카…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안인득 방화살인, 그 후 1068일의 기록]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방문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형식으로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또 늘었다. 금세은 씨(43)는 매일 10가지의 신경정신과 약 22알을 복용하고 있다. 추가된 약은 항우울제 0.5알과, 불안, 긴장, 경련 증상을 완화하는 약 3알. 이제 세은 씨는 하루에 알약 26개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진료실에서 주치의 김봉조 교수와 마주 앉은 세은 씨는 약을 늘리자는 김 교수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년 11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그가 하루에 먹었던 알약은 20~30개 사이. 2년 2개월 동안 알약 2만 개가 그의 몸 안에 고스란히 쌓였다.베개에 머리만 대도 목 뒤까지 저릿해지는 편두통에 급격한 시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세은 씨는 며칠 전 같은 병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 “뇌에 문제는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2년 넘게 약을 먹었지만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쳤다. 약은 순서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전신 떨림, 두통, 호흡곤란, 불면증을 잠시 멎게 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플 수 있어요? 이제 내 몸한테도 화가 나.” (세은 씨)“부작용 문제로 항우울제를 다 바꿨는데 2개월 넘게 기대하는 효과가 안 나와서…. 최근에 나온 약으로 바꿔 봅시다.” (김봉조 교수)“불면증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약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 (세은 씨)“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괴로운 게 해결이 안 되니 짜증 안 나는 게 이상하지. 근데 앞으로 그렇게 약 한꺼번에 먹으면 절대 안 돼요.” (김봉조 교수)세은 씨는 오늘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온 그는 병원 1층 약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검정색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약사로부터 A4 용지 네 장에 달하는 복약지도서와, 약 봉투가 가득 담긴 검정색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엄청 심각한 병 걸린 사람 같죠? 이게 2주치야, 2주치. 2주 뒤에 와서 이만큼 또 받아야 돼.”주치의도 그런 세은 씨가 안쓰럽다. 김봉조 교수는 “시기에 따라 환자를 심하게 괴롭히는 증상이 달라질 뿐 처음 진료 때와 비교해 나아진 점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환자가 겪은 외상이 워낙 크다보니 장기간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고, 다른 PTSD 환자에 비해 증상도 다양하고 깊게 나타납니다. 예전엔 잠을 못 자는 증상이 심했고 최근에는 두통, 시야 가림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약을 바꾸며 다양한 시도는 하고 있지만 환자나 의사가 기대하는 효과에는 아주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10분 만에 달라진 삶2019년 4월 17일 이전의 세은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일 중독’이었다. 치위생학과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시작한 치위생사 일이 잘 맞았다. 환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다. 일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치과 원장은 그에게 환자 상담도 맡겼다.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게 180도 변했어. 지금은 사람을 보자마자 꺼리기부터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지금은 내 자신이 바보 같아.”‘엄마는 내 삶의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끔찍한 효녀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3남매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편히 사는 게 세은 씨의 소원이었다. 엄마를 위해 세은 씨는 스물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7년을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다 갚아가고 있었다. “가족 위해서 고생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해외여행도 가고 좋은 옷 입고 편하게 살길 바랐지. 우리는 영세민이잖아. 빚 갚으면서, 그 와중에 되는대로 돈 모으면서 열심히 살았어. ‘엄마, 이제 (통장) 플러스 된다. 조매만 기다려라. 한두 달 안 남았다’했는데….”자칭 ‘일벌레’이자 효녀였던 세은 씨는 2019년 4월 17일,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그날 오전 4시 25분. 경남 진주시 A아파트. 조현병을 앓던 이 아파트 406호 주민 안인득(45)은 이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집 전체에 번지게 했다. 미리 준비한 흉기를 양손에 쥐고 비상계단에서 대기하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휘둘렀다. 화재경보음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얼굴, 목, 가슴 등에 상처를 입었다. 4시 32분, “누군가 흉기로 사람을 찌른다.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최초 112 신고가 접수됐다. 3분 뒤인 4시 35분 경찰 5명이 현장에 도착해 10분간 대치 끝에 안 씨를 검거했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뒤였다. 숨진 5명 중 2명은 세은 씨의 가족이었다. 그는 불과 10분 사이 ‘삶의 목표’였던 어머니 김모 씨(당시 65세)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금지윤 양(가명·당시 12세)을 잃었다. 세은 씨는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웅덩이에 빠진 날딸을 피지로 유학 보낸 세은 씨는 엄마와 함께 아파트 303동 304호에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엄마와 맥주 한 잔을 하고 17일 새벽 3시쯤 잠에 든 세은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소란에 눈을 떴다. 이내 “살려주세요!”라는 올케 차모 씨(44)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세은 씨 오빠 금민수 씨(가명·47)네 부부와 딸 지윤 양도 이 아파트 403호에 살았다. 놀란 엄마는 복도로 뛰쳐나갔다. 5분이 지나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세은 씨는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뿌연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다. 복도를 지나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을 열자 경비원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수건 달라”고 외쳤다. 경비원 뒤로 보이는 복도 계단이 피로 가득했다. ‘뭔가 사달이 났구나.’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화장실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수건을 여러 장 챙겼다. 다시 현관문을 열자 바로 앞에 올케 차 씨가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아비규환 속 차 씨의 울부짖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신고해야 된다!” 차 씨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보호하다 옆구리를 흉기로 찔린 상태였다. 세은 씨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에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곧 죽을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신고를 마치고 비상계단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3층과 2층 사이엔 507호 주민 조모 씨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조 씨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3층을 지나 2층 계단으로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세은 씨는 몸에 수건을 덮어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을 전혀 움직이질 못했지. 그 상태로 나랑 눈이 마주친 거야.”1층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엄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엄마도 손녀 지윤이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다. 2층 계단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민수 씨가 1층으로 옮긴 뒤였다. “우리 조카는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근데 구조대원들이 지혈을 안 해. 지혈을 안 하니 피가 펑펑 나는 거야. 목에서도 나고 팔에도 나고. 내가 “지혈 안 하고 뭐 하냐”고 하니까 엄마 지혈을 (소방대원이) 저보고 도와 달래.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지혈을 하는데 지혈이 안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세은 씨는 지금도 자신의 손 안에서 온기를 잃어 가던 어머니의 피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빗물은 핏물이 됐다304호에 살았던 세은 씨와 엄마, 403호에 살았던 오빠 민수 씨네 가족은 1주일에 두 세 번은 함께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은 틀림없이 모였다. 땡초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와 감자전, 삼겹살, 두루치기는 단골 메뉴였다. “비 오는 날 제가 ‘언니(올케), 비와요. 땡초전 묵으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새언니한테 전화가 와요. ”땡초 사오라.“ 그럼 퇴근길에 슈퍼 들러서 밀가루랑 땡초랑 맥주 사서 가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는데…”가족들 맥주파티 하던 비 오는 날은 이제 세은 씨에게 공포가 됐다. 비 오는 날 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 복도에 창문이 없으니 비가 오면 다 들쳐요. 이사 오고 얼마 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물이 가득한 거야. 그걸 보는 순간 그날 복도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어요.”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년 간 했던 치위생사 일도 그만 둬야 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 냄새를 맡으면 우리 엄마 응급처치 하면서 피가 펑펑 나던 그 모습이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사건 직전이었던 2019년 초 한 모임에서 세은 씨와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김진석 씨(가명)는 사건 직후부터 그를 곁에서 지켰다. 호흡곤란, 전신 떨림, 해리성 기억장애, 불면증, 극심한 두통을 달고 사는 세은 씨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불치병인 것 같아요. 100미터만 걸어도 숨 차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요. 식당 갔다 공황발작이 오기도 하고…. 당당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모든 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거죠.”김 씨는 세은 씨가 순간순간 기억을 잃는 증상을 가장 걱정한다. 주치의는 PTSD로 인한 해리성 기억장애라고 진단했다. 처음은 건망증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을 갔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지난해 8월에는 비 오는 날 한밤중에 두 시간동안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세은 씨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 한다. 자정 무렵 오빠 네에서 밥을 먹고 대리를 불러 집에 간다던 세은 씨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세은 씨 지인에게 연락을 돌리고 아파트 주변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야 집 근처에서 비를 맞으며 멍한 눈으로 걷는 세은 씨를 발견했다. “세은아!”라고 불렀지만 세은 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김 씨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 세은 씨는 목 놓아 울었다.“증거 남기듯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됐어요. 어디 갔었는지도 기억 못 할 때가 있으니까 사진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갔었잖아’ 하려고. 둘 다 사진 찍는 것 정말 싫어하는데 계속 연습을 해요.” (김 씨)바꾼 이름, 바뀌지 않는 삶세은 씨의 오빠 민수 씨와 그의 아내, 첫째 딸은 2019년 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잘못 돼서 온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닥쳤나’ 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을 택했다. 늘 아빠 옆에서 잠을 자던 둘째 딸 지윤이,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 끓여놨다고 전화하던 어머니가 없다는 현실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수 씨의 삶은 여전히 4월 17일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그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같은 층에 살았던 민수 씨네 집 현관으로 이내 연기가 슬금슬금 넘어왔다. 민수 씨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수영선수인 첫째 딸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 집에 없었다.가족들을 내려 보낸 그는 옆집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렸다.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 마지막에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피를 흘리며 2층 계단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이 나서 가족들을 내려 보냈는데 애하고 할매(어머니)가 누워 있어.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연기 빼고 창문 열고, 불났다고 문 두드리고…. 그게 제일 큰 실수라. 내가 미친놈이지.”언니 금모 양(19)은 사건 1년이 지나고서야 가족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차 씨가 금 양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던 일요일이었다. 방에서 짐을 챙기는 금 양의 눈이 벌겠다. “울었나?” 묻는 엄마의 질문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차 안에서도 묵묵부답이던 금 양은 기숙사 앞에서 “도대체 왜, 뭐 땜에 그카노?”라는 엄마의 질문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운동장 뛸 때도 생각나고, 수영할 때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난다. 그래서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너무 보고 싶다. 미치겠다, 엄마.”원망할 수 없는 이유민수 씨는 안인득의 형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진주는 동네가 좁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았다. 민수 씨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친구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역시 처음에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보따리로 사 주고 한 놈이라.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내가 ‘밥 묵었나’ 하면 ‘예’ 하며 지냈어. 근데 조현병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 본 기라.”동생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안인득의 형은 민수 씨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안 들리드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나?’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술자리에선 “동생이 아픈데 약을 안 먹는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엔 동생이 집에 있으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가면 문도 안 열어준다. 집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으면 전화 좀 주라.” 형은 걱정을 하면서도 동생이 조현병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민수 씨는 “알겠다”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약도 먹지 않고 입원도 거부하는 동생을 두고 형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수개월 동안 주민들은 안인득의 오물투척, 폭행, 폭언 등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안인득의 주요 타깃은 윗집인 506호 주민 최모 양(당시 19세)과 그의 숙모 강모 씨(57)였다. 안인득은 윗집에서 자신의 집에 벌레를 뿌린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8년 9월부터 사건 전까지 다섯 번에 걸쳐 506호 현관문에 계란, 간장 등 오물을 투척했다. 직접 위협도 일삼았다. 2019년 2월 28일, 안인득이 출근을 하는 강 씨에게 계란을 던지고 욕설을 했다. 강 씨는 신고했지만 경찰은 “임대아파트라 이런 신고가 많다. 화해하라”고만 한 뒤 돌아갔다. 3월 10일, 안인득은 주차 시비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가격하고 망치를 휘둘러 특수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형은 경찰에 “동생이 정신병력이 있다”고 알렸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안인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3월 12일과 13일, 안인득은 이틀 연달아 최 양을 따라가며 욕을 했다. 집에 들어가는 최 양을 뒤따라가 초인종까지 눌렀다. 최 양은 1급 시각장애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뇌병변 장애로 몸의 반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등학생이었다. 13일 강 씨가 경찰에 재차 신고해 “안인득이 더 이상 이런 짓을 못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안인득에 구두 경고를 주는데 그쳤다. 3월 말 안인득은 진주의 한 주방용품점에서 흉기를 샀다. 사건 당일 그가 주민들에게 휘두른 것과 같은 흉기였다.형은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이 됐다. 4월 4, 5일 이틀에 걸쳐 안인득을 입건했던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동생을 강제입원 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고 답했다. 검찰청 민원실도 책임을 떠넘겼다. 직원은 “검사를 만나더라도 강제입원은 어렵다”며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행정기관이 처리해야 한다. 동사무소나 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에서는 “강제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 당일인 4월 17일, 자정이 넘은 시간 안인득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샀다. 3시간 반 뒤, 안인득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인득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최 양은 그날 안인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세은 씨의 조카이자 민수 씨의 딸도, 두 사람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잃은 대가, 5000만 원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던 그의 형이자 자신의 친구. 민수 씨는 딸과 엄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원망할 수 없었다. 분노와 설움은 스스로를 향했다. 하루에 소주를 6병 씩 비우는 날이 허다했다. 사건 직후 1년은 술과 정신과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매일을 보냈다.사건 후 나라가 피해자이자 유족인 세은 씨와 민수 씨에게 진 책임은 치료비 5000만 원이 전부다. 방화죄, 살인죄, 상해죄 등 강력범죄피해자는 연 1500만 원, 총 5000만 원 한도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살해된 조카를 구하려다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506호 강 씨는 수술과 재활치료가 이어져 이미 5000만 원을 다 썼다. 강 씨의 딸은 때때로 전화로 안부를 묻는 세은 씨에게 늘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저희 같은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하고 약 먹으면 돼요. 근데 506호 살던 숙모는 뇌수술을 또 해야 할 수도 있고, 손에 감각이 안 돌아와서 재활치료도 계속 받아야 한대요. 그런 분들은 치료비를 평생 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라에선 그 조차도 안 된다고 하대요.”부족한 치료비, 어려워진 생계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왜 주민들의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는지, 왜 안인득은 제때 치료받지 못했는지,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경남지방경찰청 진상조사팀이 사건 이후 조사를 벌여 경찰 조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지만 관련 경찰 5명을 경징계하고 2명을 경고 처분 하는데 그쳤다. 잊지 않으면 고통스러웠다. 잊을 수가 없어 술에 기댔다. 세은 씨와 민수 씨가 일상을 잃고 시간의 흐름도 잊어가던 2020년 봄, 그들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한신경정신학회였다. 조현병 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학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상태였다. “지금 나라에서는 조현병 환자를 방치하고 있어요. 안인득처럼 치료를 거부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큰 환자는 경찰이나 지자체가 의사 판단을 받아 잠시라도 입원을 시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런 사건이 또 나는 걸 막아야 합니다.”학회는 이들에게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달라고 설득했다.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1년을 꼬박 고민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돈 때문에 소송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하지만 금 씨 남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그 사람들, 그냥 정신이 아픈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돼 있었던 게 잘못이지.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그 사람 가족까지 죄인이 되는 거고. 그걸 왜 못 막느냐는 거지. 안인득도 피해자다. 안인득 형도 피해자고.” (민수 씨)금 씨 남매는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법과치유는 지난해 11월 8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이다. 원고는 민수 씨 남매 세 명, 민수 씨의 아내 차 씨 등 4명이다. 소송의 요지는 경찰이 법에 명시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범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조금 괜찮아져서 소송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민수 씨는 말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소송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을 때정신건강복지법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의 정신질환자를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입원시키는 이른바 ‘비(非)자의 입원’을 허용하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인 만큼 엄격한 절차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중 ‘행정입원’은 경찰이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요원에게 요청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지자체장이 절차를 거쳐 최장 2주 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긴급한 상황에는 경찰관과 의사 동의 아래 최장 3일 간 환자를 입원시킨 뒤 계속 입원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응급입원’ 제도도 있다. 안인득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한 전력이 있고 △폭행, 욕설 등 공격적 성향이 지속된 경우로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인득은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 안인득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입원과 응급입원 모두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됐다.비자의 입원 중 행정입원은 유명무실하다. 행정입원에는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데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전문의에게 강제로 호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응급입원은 요건이 더 까다롭다. 자·타해 위험이 크고, 상황이 급박해 다른 입원절차가 불가능할 때만 가능하다. 당장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경찰이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응급입원 절차를 밟기 어렵다.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이 입원시키도록 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에 행정입원은 입원시킬 가족이 마땅치 않은 경우로 제한된다. 응급입원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해 활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까다로운 절차 탓에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호입원’이 활용된다.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 전체 비자의 입원의 80~90%를 차지한다. 보호입원은 가족 중에서도 직계혈족, 배우자, 민법상 후견인 중 2명이 신청하고 의사 진단이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직계혈족이나 배우자가 없는 경우 적용이 불가능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한국 현실에서 점점 더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학회 법제이사는 “노부모 중 한 명과 살거나 직계 가족이 없는 조현병 환자들이 사각지대”라며 “1인 가구가 늘며 정신질환자를 보살펴줄 가족이 없어지고 있다.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지는 ‘국가책임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비자의 입원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광범위하게 열어둔다. 미국 32개주에서는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자의 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일본도 ‘정신장애인 또는 그 의심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신청 권한을 인정한다. 영국은 신청권자를 정신보건전문요원 또는 환자의 가족 또는 친지로 규정하는데 직계가족이나 동거인은 물론 형제자매, 조부모, 조카 등이 포함돼 있다.일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법원이 입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보장되고, 환자 본인이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사를 법정에서 표현할 수 있는 절차도 포함돼 있다. 이동진 교수는 “비자의 입원은 강제조치인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주도하고, 그 안에서 본인과 가족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래치료명령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자체장이 정신의료기관장의 청구를 받아 비자의 입원 환자가 퇴원하는 대신 최장 1년까지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제도다. 퇴원한 환자가 아니더라도 의사 판단으로 위험한 환자는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정신장애인 인권단체도 어쩔 수 없는 경우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국장은 “비자의 입원이 필요한 수준까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상담하고 외래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입원시키는 조치는 필요하지만, 폭력적인 병원 이송 과정, 환자를 폐쇄병동에서 강제로 치료하는 방식 등 문제점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지적했다.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르지만 세은 씨는 매년 추석, 설날마다 사건이 발생한 A아파트 3단지를 찾는다. 엄마의 숨이 멎은 곳이지만 엄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해서다. “추석, 설날 때마다 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니까…”지난해 11월 11일 아파트를 찾은 금 씨는 아파트 정문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사건이 발생했던 303동을 향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요. 나 여기선 모자도 절대 안 벗어요.”시야를 차단하는 검정색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검정색 패딩 조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세은 씨는 303동과 한참 떨어진 309동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한동안 303동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그는 한참 동안 화면을 쳐다봤다. ‘그리움’이란 제목의 사진첩 폴더에 저장된 엄마의 생전 사진이었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사진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사진은 없어. 나라도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게 사진이라도 찍을 걸…”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피지로 유학을 간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이제 진짜 숙녀 같다, 숙녀. 다 컸네.”세은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깨를 훌쩍 넘긴 머리를 매만지는 딸의 모습이 세은 씨는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어느덧 13살이 된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현재 건강 상태로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세은 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딸과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치위생사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라도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어. 지금 몸 상태로는 운전도 제대로 못 하니까.” 올해 2월 설 세은 씨는 아파트를 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남긴 장소에 가면 병세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말 때문이었다. 대신 엄마와 조카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는 진주 응석사를 세 번이나 찾았다.1000일이 지나도록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세은 씨에게는 키워야 할 딸이 있고,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야 할 가족이 있다. 오늘도 세은 씨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00일 분의 고통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일의 기록’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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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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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메스 수첩에 담긴 피카소 연인의 비밀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그와 공식적인 연인관계였던 여성만 7명. 그 중 유명한 이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9년 간 피카소와 함께 했던 도라 마르다. 연인의 초상화도 다수 그렸던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 삼아 ‘우는 여인’(193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도 남겼다. 마르는 당시 패션과 광고사진으로 이름을 알린 사진작가였고, 다양한 그림을 남긴 화가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작가’보단 ‘피카소의 연인’으로 더 유명해졌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에르메스 수첩의 비밀’(복복서가)에서 열정과 광기, 공허함으로 점철됐던 마르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재조명한다. 저자가 마르의 발자취를 추적하게 된 계기는 한 권의 다이어리였다. 남편이 아끼던 에르메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저자는 이와 가장 비슷한 제품을 이베이에서 주문했다. 배송된 다이어리 안주머니에 샤갈, 라캉, 자코메티 등 예술가들의 주소록 수첩이 끼워져 있었던 것. 이 수첩이 마르의 것임을 확신한 저자는 2년 동안 수첩에 적힌 이름과 관련된 자료, 기사를 뒤졌고 생존 인물을 직접 찾아다녔다. 책은 마르가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예술가로 인정받고자 노력한 과정을 따라간다. 마르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스페인과 영국의 가난한 동네를 다니며 실업자, 기형의 몸을 가진 사람 등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 ‘무제’(1933년)는 거대한 소라에서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뻗어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 몽환적이고 기이한 마르의 몽타주 작품들 역시 실험성과 참신함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사랑을 갈구했던 한 여자로서의 삶도 그려진다. 피카소를 비롯한 연인들과의 관계에서 마르는 늘 감정에 솔직했고 적극적이었다. 때때로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은 광기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가 피카소와 만나기 전 연애했던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 루이 샤방스가 마르에 대해 남긴 시는 불같은 마르의 성격을 추측케 한다. ‘그대 이제 흔들리는구나. 신경질 가득한 미친 여인…내가 바친 사랑의 대가로 내 배를 걷어찼지.’ 처음 피카소와 만난 카페 되 마고에서 마르는 피카소의 시선을 끌기 위해 손가락 사이로 칼을 내리 꽂았고, 마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피카소는 그를 카페에 데려온 시인 폴 엘뤼아르에게 이렇게 묻는다. “저 이상한 여자를 압니까?” 유명 예술가의 삶에는 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가 존재했다. 근대조각의 시조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아내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대표적이다. 끌로델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뮤즈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에 천재적 재능을 드러냈던 조각가였다. 플뢰게 역시 바람둥이 클림트가 유일하게 평생 사랑했던 여성으로 유명할 뿐, 오스트리아 유명 패션디자이너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마르의 삶은 누군가의 뮤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예술가로서 창작에 혼신을 다하고 사랑에 늘 솔직했던 한 주체적인 여성이 있음을 몸소 증명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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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침공 피해, 우크라 알고 싶어” 역사서적 판매량 3배 껑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와 전쟁사를 다룬 책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1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관련 책 28종의 판매량은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본격화된 올 1월 이후 평소에 비해 약 3배로 늘었다. 지난달 21일 발간된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글항아리)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역사와 문화, 종교, 국제관계를 다룬 ‘우크라이나의 역사 1·2’(아카넷)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 외교관이 우크라이나 역사를 개괄한 ‘유럽 최후의 대국…’은 15일 5쇄까지 찍었다. 전쟁사 책도 인기다. 올 1월 27일 나온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배틀 그라운드’(교유서가)는 이달 둘째 주 교보문고 정치·사회부문 11위에 올랐다. 이 책은 미국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강대국 간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정학적 배경을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나온 미국 작가 에릭 라슨의 ‘폭격기의 달이 뜨면’(생각의힘)은 같은 기간 교보문고 역사·문화부문 11위에 올랐다. 이 책은 윈스턴 처칠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습을 받은 영국 안팎의 정세를 세밀하게 담았다. 5년 전 발간된 벨기에 역사학자 자크 파월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오월의 봄)도 같은 기간 교보문고 역사·문화부문 10위를 차지했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대기업과 파워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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