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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빛, 가로등 빛,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빛…. 밤인데도 너무 밝아 잘 수 없는 아기 여우가 외친다. “불 좀 꺼주세요!” 아기 여우는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딱정벌레와 밤의 어둠을 찾으러 간다. 길을 알려주는 별이 안 보여 하늘만 맴돌던 새, 개굴개굴 합창할 때를 기다리지만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아 입을 꾹 다문 개구리, 겨울잠을 못 잔 곰도 함께한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알을 깨고 나온 아기 바다거북들은 바다 가는 길을 못 찾는데…. 인간이 만든 빛 때문에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빛 공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아기 바다거북들은 곰과 딱정벌레, 새의 도움으로 무사히 바다로 간다. 먼바다로 향하는 아기 여우와 친구들. 어둠이 짙어지자 딱정벌레가 빛난다. 반딧불이였던 것이다! 섬에 닿은 이들이 마주한 풍경이 신비롭다. 달빛, 은하수, 하얀 거미줄…. 아기 여우와 친구들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이런 표정을 계속 짓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꼭.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박서보 화백(90)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7)이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훈장 수훈자 17명을 선정해 21일 발표했다. 박 화백은 단색화의 선구자로, 한국 추상미술을 세계에 알렸다. 이 전 장관은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시대변화에 따른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은관문화훈장은 김병기 화백(105), 김우종 계간문예지 ‘창작산맥’ 발행인(91), 안숙선 명창(72), 고 유희경 전 이화여대 교수(1921∼2021)가 받는다. 보관문화훈장 수훈자로는 김청기 애니메이션 영화감독(80), 고 남정현 소설가(1933∼2020), 고 이수인 작곡가(1939∼2021), 고 이애주 전 서울대 명예교수(1947∼2021)가 선정됐다. 옥관문화훈장은 김수자 미술작가(64), 김인철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대표(74), 백영규 도예가(83), 안중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67), 고 엄영자 한국발레협회 광주·전남지부장(1940∼2020)이 받는다. 화관문화훈장 수훈자는 권대섭 도예가(68),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78)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내가 왜 수련을 좋아하는지 알아? 뿌리가 없어 보이지만 실은 있어. 뿌리 없이 살 순 없거든.” 13일 개봉한 영화 ‘푸른 호수’에서 베트남 이민자 파커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안토니오(저스틴 전)에게 말한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온 파커는 안토니오를 가족 모임에 초대해 베트남 음식을 맛보게 하고 노래도 들려준다. 아시아 문화를 접한 안토니오는 생모와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다. 한국계 미국인인 저스틴 전이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에 연출까지 한 이 영화는 추방 위기에 처한 안토니오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처연하게 그렸다. 저스틴 전은 “추방 위험에 처한 9명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자란 안토니오는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지만, 양부모가 입양 당시 서류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은 외국에서 입양된 이들에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법을 2000년 마련했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수만 명이 추방 위기에 내몰렸다. 안토니오의 아내 캐시는 “미국인인 저와 결혼했다고요”라고 외치지만 변호사는 “그래도 구제받지 못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방법은 안토니오가 미국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입증하는 건데,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영화 맨 마지막에는 추방됐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각국 입양아 출신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온다. 1964년에 입양된 여성도 있었다. “미국에 살면서 삶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는 저스틴 전은 고국에서도, 살아온 나라에서도 거부당한 이들이 발 디딜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 영화를 보며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떠올렸다. 탄자니아 난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바닷가에서’ 등을 통해 난민,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탐구했다. 우리에겐 낯선 작가로, 한국에 출간된 책이 없어 출판계에서는 “노벨문학상 특수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적, 종교, 인종의 차이로 외면받는 이들의 삶을 일관되게 그려온 그의 수상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던진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탄생시킨 문학, 영화, 드라마는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특정 집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푸른 호수’에서 안토니오의 의붓딸 제시는 아빠를 무척 좋아하지만 엄마 배 속에 있는 안토니오의 친딸이 태어나면 아빠가 자신을 외면할 거라 두려워한다. 제시는 친부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배제되고, 부유하는 존재의 불안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함께 짚은 것이다. 구르나는 “문화장벽은 영속적이지 않으며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 장벽을 걷어내는 데 예술은 주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손효림 문화부차장 aryssong@donga.com}

엄마 토끼와 딸기 케이크를 만들려는 꼬마 토끼. 앗, 딸기가 다 떨어졌다. 좋아하는 케이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에 꼬마 토끼는 딸기를 구하러 달려간다. 엄마가 딸기 있는 곳을 알려주려 하지만 꼬마 토끼는 벌써 저만큼 가버렸다. 숲을 지나 바다를 건너고 눈이 펑펑 내리는 산에 오르는데…. “케이크 케이크 케이크!”라고 외치고 딸기를 찾아 곧장 내달리는 꼬마 토끼의 통통 튀는 모습이 앙증맞다. “케이크를 꼭 만들 거야”, “난 딸기를 찾을 수 있어”라며 계속 주문을 외고, 동물들이 도와주려 해도 사양하며 질주하는 꼬마 토끼. 무언가에 사로잡히면 그것만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과 닮아 웃음이 난다. 드디어 딸기를 찾았다! 엄마 토끼가 건넨 딸기 케이크를 먹었을까? 뜻밖에도 꼬마 토끼는 “괜찮아요. 나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요? 나 아이스크림 좋아요”라며 냉장고로 간다. 관심사가 휙휙 바뀌고, 일단 행동부터 하는 아이라면 “맞아, 맞아”라며 꼬마 토끼에게 공감할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제48대 한국언론학회장으로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사진)가 16일 취임한다. 여성 학회장은 언론학회 63년 역사상 두 번째다. 2003년 박명진 당시 서울대 교수가 취임했다. 김 신임 회장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서 9년간 기자로 일한 후 2000년부터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시장경쟁평가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자문위원회 위원, 방송학회 미디어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올바른 미디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언론학회는 학문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다양성, 사회 기여, 공유, 연속성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임기는 이달부터 1년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와 나를 보살펴 주신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농사를 야무지게 짓고, 농기구도 늘 반짝이게 닦아놓는 할아버지는 ‘펄펄 영감님’으로 불렸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자 어머니가 풀잎 하나를 조심스레 건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좋아하며 가져오셨단다. 나는 어릴 적 건초를 만들 풀을 베러 간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을 떠올린다. 늘 덤덤한 표정이지만 소년이 잡아온 메뚜기를 구워 같이 먹고, 그늘막을 만들어 낮잠을 자도록 세심하게 챙기던 할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불어온 거센 돌풍에 휩쓸려 애써 벤 풀이 모두 날아가지만, 수레 틈에 끼어 한 가닥 남은 풀을 가져와 내민 소년. 위기를 함께 버텨낸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담겼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안갯속에 일렁이는 강, 풀 내음 짙은 들판이 펼쳐진 풍경과 어우러져 서정적이고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의 첫 그림책.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제40회 세종문화상 수상자로 변성준 김연수 한글과컴퓨터 대표(한국문화 부문), 백시종 소설가(예술),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학술), 이찬해 프놈펜국제예술대 총장(국제문화교류), CJ문화재단(문화다양성)이 선정됐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4일 밝혔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창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됐다. 한글과 한국어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고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에게 보관문화훈장을, 김칠관 전 인천성동학교 교감에게 화관문화훈장을 각각 수여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녀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자신을 보면 반갑게 달려오길 바라며. 소녀는 활짝 웃으며 “안녕?” 인사하고 마음을 나눌 테니까. 외로울 땐 안아주고 기쁠 때는 신나게 춤출 거다. 때로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겠지만 같이 헤쳐 나갈 수 있다. 네 잎 클로버, 조약돌, 구슬…. 고이 모아놓은 보물도 보여주고 싶다. 세상으로 처음 나아가는 소녀가 소중한 존재를 기다리며 자유롭게 펼치는 상상을 고운 시처럼 풀어냈다. 그는 또래 친구일 수도 있고 새, 토끼, 코뿔소, 바람일 수도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소녀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으니까. 생김새가 달라도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얘기도 들려줄 거다. 소녀가 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호수 위 보트에 고립된 토끼들을 구하는 상상 속 풍경은 깜찍하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안고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연필로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과 포근하게 어우러진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화 ‘보이스’에 나오는 보이스피싱 수법은 다양하다.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현장 작업반장인 서준(변요한)의 아내에게 7000만 원을 송금하게 만들고, 대기업 지원자들에게는 합격했다고 속인 뒤 입사 보증금 명목으로 일인당 3000만 원을 보내게 한다. 이들은 팩트를 정교하게 분석한 뒤 인간의 분노, 희망, 공포를 자극해 치고 들어간다.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사람들이 화가 난 걸 이용해 건강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며 접근하는 식이다. 누구나 혹할 만한 시나리오는 전문 기획팀이 쓴다. 경찰, 은행원, 금융감독원 담당자는 여러 명이 나눠 감쪽같이 연기한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워낙 빠르게 진화해 2016년부터 영화를 기획한 제작진은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해야 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보이스’를 비롯해 군대 내 가혹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드라마 ‘D.P.’, 돈이 없어 벼랑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오징어게임’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은 작품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을 본 이들은 걱정하거나,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고교생 아들을 둔 이는 “앞으로 아이를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아들이 제대한 이는 “군대에서 힘들다고 할 때 좀 더 따뜻하게 챙겨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군대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럽다고 호소한 남성들도 많다. 보이스피싱도 현재진행형이다. 기자의 지인은 최근 백신 접종 문자를 받고 가짜 홈페이지에 접속해 낭패를 볼 뻔했다. 그는 “실제 접종을 앞두고 있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예전에 취재를 위해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많았다. 순식간에 잃어버린 5000만 원, 8000만 원은 그들이 가진 현금 자산 전부였다. 한 할아버지는 “밤에 한숨도 잘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뭣보다 속은 내 탓이 크다”고 자책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 돈을 찾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건지 일말의 기대를 하며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의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 엄마와 딸들…. 수시로 보도되는 기사다.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돈이었다. 첫 게임에서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자 남은 이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살아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다시 게임에 참가한다. 짜임새, 완성도에 대해서는 작품마다 평가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마음 편하게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영화니까’ ‘드라마니까’라고 넘기기에는 많은 장면이 현실과 겹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숨쉬고 있는가. 이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이다.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정원에서 아기 북극곰을 발견했다. 소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만큼 조그맣다. 곰은 쑥쑥 자라 주머니로, 다시 모자로 옮겨진다. 커지는 곰을 보며 소년은 결심한다. 집에 데려다 주기로. 곰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란다. 소년은 곰이 바다에 뛰어들지 않도록 조심조심 돌본다. 곰은 소년을 등에 태울 만큼 커지고, 드디어 고향에 도착한다! 처음 만난 작은 생명을 소중하게 돌보고 당차게 홀로 항해를 떠나는 소년, 이를 가만히 따르는 곰이 은은한 그림과 따스하게 어우러진다. 눈부시게 하얀 빛을 뿜어내는 북극곰 가족과 소년이 신나게 노는 모습은 정겹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집으로 떠난 소년, 그가 탄 배가 사라질 때까지 오도카니 앉아 있는 어미곰과 아기곰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나눈 소년과 아기곰. 서로를 기억하는 한 둘은 이어져 있다. 곰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걸 소년이 느꼈을 때처럼.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976년 ‘국민학교’ 4학년이 된 첫날, 여학생 함박꽃은 고민한다. 자기소개를 하면 이름 때문에 늘 놀림을 받으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경상도에서 전학 온 남학생 창우가 사투리로 인사하자마자 아이들은 킥킥거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말을 이어가는 창우가 멋져 보인다. 함박꽃처럼 창우도 안경을 낀 게 반갑다. 이전까지는 반에서 안경 낀 아이는 함박꽃이 유일했다. 함박꽃과 짝이 된 창우는 벌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함박꽃을 도와주고 아픈 날은 가방도 들어준다. 그럴 때마다 함박꽃은 가슴이 뛴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를 아이들이 쫓아다니고, 번데기를 사서 친구와 아껴가며 나눠 먹는 등 1970년대 풍경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져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함박꽃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티격태격하지만 차츰 마음을 풀고 서로를 보듬는 아이들의 모습이 맑고 싱그럽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베세토오페라단은 24,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레타 ‘플레더마우스: 박쥐’를 공연한다. ‘박쥐’는 19세기 유럽 사교계에서 벌어지는 장난과 복수, 사랑과 배신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이 연출하고 음악총감독은 권용진 씨가, 지휘는 우나이 우레초 씨가 맡았다. 로잘린데 역은 소프라노 박혜진 박상영, 아이젠슈타인 역은 테너 전병호 김성곤이 연기한다. 팔케 역은 김용현, 아델레 역은 진윤희 이현, 오를로프스키 역은 송혜원이 맡는다. 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마에스타오페라합창단, 러시아 댄스팀 FAME이 함께한다. 2막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장 파티에서는 디자이너 랑유 김정아가 마련한 화려하고 이국적인 패션쇼를 선보인다. 강화자 단장은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지닌 이들이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7시 반, 25일 오후 2시 반. 5만∼25만 원. 7세 이상 관람 가능.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목욕하자.” 이 말에 잽싸게 도망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욕실이 우주, 세차장, 바다로 변한다면 어떨까. 아이와 엄마는 놀이하듯 목욕을 한다. 오일을 푼 욕조는 우주로 바뀐다. 추락하는 우주선에 탄 외계인 조종사를 빨리 구해야 한다. 샤워기를 든 아이는 소방관이 돼 불을 끄기 위해 물을 힘차게 발사한다. 왼쪽에 그려진 목욕 용품과 오른쪽 페이지를 꽉 채운 상상의 세계가 짝을 이룬다. 목욕 비누로 거품을 내면 욕조는 순식간에 빙하가 둥둥 떠 있는 바다가 된다. 앗, 큰일 났다! 아이가 탄 잠수함이 빙하에 부딪힌다. 물 위로 쑥 나온 엄마의 무릎은 해적이 보물을 숨겨 놓은 보물섬이다. 순식간에 휙휙 바뀌는 세계를 정신없이 탐험하고 나니 어느 새 목욕을 다 했다. 목욕 시간이 탐험 시간이 된다면 얼마나 신날까. 욕실에서 아이와 함께 마음껏 상상하며 이렇게 놀아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다. 아이가 목욕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면? 대성공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국 법원에 취재를 나가 흥미로운 사건의 피고, 원고, 변호사의 사진을 찍어 오란다. 법정에서 쓰는 영어는 너무 어려워 도대체 무슨 사건인지 파악이 안 된다. 방법은 현장에 있는 다른 회사 기자들에게 물어보는 것뿐. 레드카펫, 시상식에 참석한 연예인의 사진을 찍을 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군지 당최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건 또다시 타사 기자에게 물어보기. 바쁜 데다 서로 경쟁 중인 기자들이 순순히 설명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다. 항상 웃으며 커피나 차, 비스킷을 건네고 저녁에는 틈틈이 맥주도 샀다. 영국 언론사 견습사원에서 게티이미지 유럽지사 수석 사진가를 거쳐 마이클 잭슨, 스팅, 에마 스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촬영한 MJ KIM(본명 김명중·49)의 이야기다. 그는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79)의 전속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야기를 나눌 때도 웃으며 환한 기운을 뿜어낸다. 밝은 표정은 누군가에게 늘 물어봐야 했던 사회 초년병 시절에 생겼다고 한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을 하려면 몸을 낮춰야만 했다. 돌아보니 그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됐고, 영국 내무부가 그에게 노동허가서 발급을 불허하자 50명도 넘는 이들이 항의 편지를 써서 결국 내무부가 그의 손을 들어주는 등 고비마다 뜻하지 않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 그와 친한 영국 사진 기자들이 매카트니 소속사 직원들에게 “MJ가 그 자리에 간 게 정말 잘됐다”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한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빈도나 기간에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을’이 되는 경험을 한다. 꼭 업무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상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그게 ‘을’이 되는 순간이다. 고개를 숙이는 건 쉽지 않다. 다만 스스로를 낮출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도 마찬가지다. 조니 뎁은 사진 촬영을 할 때 “MJ,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만 해.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라고 했다. 이 말은 온 마음을 다해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조니 뎁이 멋진 사진을 갖게 됐음은 물론이다. 800곡이 넘는 노래를 만든 매카트니는 콘서트를 할 때 곡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공연에 온 관객들이 정말 즐겁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시간을 갖고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는 그들이 듣고 싶은 노래는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곡을 선정합니다.” 가수들 중에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 위주로 콘서트 프로그램을 구성해 팬들이 아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카트니는 자기가 원하는 노래만 불러도 뭐랄 사람이 없지만 이 세계적인 거장은 철저히 낮은 자세로 관객을 대한다. 허리를 굽혀야 할 때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주문처럼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내 인생이 조금 더 윤택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아 종종 아빠 집에 가는 잭. 타코, 밀크셰이크를 함께 만들고 이야기도 나눈다. 웃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아빠는 얼마 전부터 그러지 않는다. 아빠 집은 너무나 조용하다. 어느 날, 초록색 앵무새 한 마리를 만났다. 폭풍이 지나간 후 현관 계단에 앉아 있어 아빠가 데려왔단다. 앵무새 지미 덕에 아빠는 다시 웃긴 이야기를 하고, 그릇을 부리로 옮겨 설거지도 돕는 지미를 칭찬한다. 활기가 돌지만 잭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칭찬도 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외로운 잭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비 오는 날 아침, 사라진 지미를 찾아 나선 잭은 뒤따라 온 아빠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는다. 지미가 아니라 너를 찾고 있었다고. 외로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고 어른에게 당부하는 작품이다. 아이가 관심받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눈앞에 선 배우들의 몸짓과 숨소리,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 처음 연극을 봤을 때 장면 하나하나와 소리, 감정, 냄새까지 잊을 수가 없어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났어요.” 휠체어를 타는 주모 씨(32)는 2018년 처음 연극을 본 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쌍둥이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놀이’였다. 공연에 매료된 그는 꾸준히 공연장을 찾았고 연극 ‘서편제’, 뮤지컬 ‘당신만이’ 등을 봤다. 그는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 정말 좋다”며 “이제 공연 관람이 취미가 됐다”며 웃었다. 주 씨는 문화누리카드를 통해 티켓을 구입했다. 문화누리카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생활에 쓸 수 있도록 발급하는 카드다. 2014년 도입돼 지난해까지 총 1100만 장이 발급됐다. 올해는 1인당 10만 원씩 177만 명에게 발급됐다. 책 구입, 영화·공연·전시 관람, 테마파크 이용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많다. 대학교 1학년인 윤모 씨(19)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뮤지컬을 보고 무대의 강렬함에 사로잡혔다. 고등학생 때도 공연이 보고 싶었지만 티켓을 사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민하다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하자 선생님이 문화누리카드를 소개해줬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서울 대학로로 달려갔다. 그는 “2019년 시리아 내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연극 ‘더 헬멧’을 본 후 연극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학교 연극 동아리에 지원해 연출을 맡게 됐다”고 했다. 이공계로 진학하려 했던 그는 공연을 보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돼 국문과를 선택했다. 윤 씨는 “주위 어른들이 ‘공연 볼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라’라고 했지만 국문과에 가고 싶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추억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홀로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A 씨(33)는 문화누리카드로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 세 모자의 데이트 날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소감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뮤지컬 배우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며 대결을 펼치는 모습에 웃음이 빵빵 터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많은 분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나누며 살자고 했어요.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에 합격한 큰아이가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튼튼한 도구를 개발해 유엔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한 사실을 교수님에게 들었어요. 아이들이 나눔의 가치를 알게 돼 기뻤습니다.” 문화누리카드는 매년 2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발급돼 해당 연도 말까지 쓸 수 있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예술이 지닌 치유와 위로의 힘을 확인했다는 분들이 많다”며 “문화생활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다음 주 폴 경(Sir Paul)을 만나러 런던에 갑니다. 딸 스텔라 매카트니가 50세 생일 파티를 하거든요. 매년 6개월씩 얼굴을 보다 코로나19로 1년 반이나 못 봤더니 걱정되고, 보고 싶기도 해요.”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79)의 전속 사진작가를 맡고 있는 MJ KIM(본명 김명중·49)은 유쾌하게 말했다. 마이클 잭슨, 콜드 플레이, 푸 파이터스, 스팅, 비욘세, 조니 뎁, 내털리 포트먼, 에마 스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사진을 촬영한 그는 “재미있어서 푹 빠져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1일 그를 만났다. 그는 숱한 실패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왔다고 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미국 유학을 가려 했지만 비자 발급이 거부됐다. 알고 보니 여대에 지원한 것. 그 정도로 영어를 못했단다. 영국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외환위기로 공부를 접어야 했다. 우연히 사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영국 언론사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가 기자가 됐다. 게티이미지 유럽지사 사진가로도 일했다. 자신감에 차 2007년 프리랜서가 됐지만 6개월간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스파이스 걸스의 사진 촬영 제안을 받자 무조건 수락했다. 까다로운 다섯 멤버가 모두 만족하는 사진이 나오기까지 그는 찍고 또 찍었다. 스파이스 걸스를 ‘견뎌낸’ 그를 눈여겨본 이가 매카트니의 전속 작가로 추천했다. “절박함이 상대방의 호감을 사도록 애쓰게 만들었어요. 영어도 짧아 늘 웃으며 몸을 낮추고 최대한 좋은 사진을 찍으려 노력했죠.” 매카트니와의 작업이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매카트니는 “MJ, 네 사진이 더 이상 나를 감동시키지 않아”라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매카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억나는 작품으로 2010년 매카트니가 미국 의회 도서관이 수여하는 거슈윈 대중음악상을 받으러 백악관에 초청됐을 때 찍은 사진을 꼽았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매카트니가 나란히 앉았는데, 그의 자리는 뒤에 배치돼 뒤통수만 보였다. “공연 때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지만 백악관은 지정한 자리에서만 촬영해야 했어요. 고민하고 있는데 공연을 위해 앞쪽에 둔 드럼이 보이더라고요. 드럼에 원격 카메라를 설치해 한 손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원격 조종기를 계속 눌렀죠.” 오바마 대통령이 매카트니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활짝 웃는 명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카트니는 “이건 백악관도 못 찍은 사진이잖아. 이게 바로 ‘록&롤’이야!”라고 외쳤다. 가장인 그는 매카트니와의 계약이 끝나면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늘 불안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매카트니의 모든 공연이 중단되면서 우려는 생각보다 더 일찍 현실이 됐다. 그런데 한국 기업으로부터 작업 제안이 들어왔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단편 영화 ‘쥬시걸’도 찍게 됐고요. 지금은 ‘쥬시걸’을 장편영화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그는 서울 을지로 일대 공업소 거리 사장 33명의 얼굴을 찍어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게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이날 마련한 ‘CCF2021문화소통포럼’에 참가한 그는 “국내외 명망 있는 분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청받은 게 신기하다”고 했다. 스타들의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고뇌, 쓸쓸한 뒷모습까지 본 그는 삶이 진솔하게 담긴 얼굴을 찍는 게 참 좋다고 했다. “가장 잘 나온 사진은 진짜 삶, 진짜 감정이 나타난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직업, 나이에 상관없이 ‘진짜’를 찍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크레파스로 제주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온 한중옥 작가(64)의 작품을 모은 ‘한중옥크레파스미술관’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최근 문을 열었다. 제주 토박이인 한 작가는 제주 용암석과 해녀, 소나무 등을 45년간 크레파스로 그려 왔다. 3개 전시실로 구성된 미술관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 7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제주 해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용암석을 실물처럼 묘사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용암이 굳으며 만들어낸 굽이치는 물결무늬,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수많은 구멍 등 시간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바위의 다채로운 표면을 담았다. 숱한 구멍이 난 바위의 표면을 그린 작품은 보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 구멍이 오목하게 파여 보이고, 볼록하게 튀어나와 보이기도 한다. 용암석이 만들어낸 기이한 모양은 추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들의 모습을 시대별로 담은 작품들도 있다. 한복 저고리처럼 생긴 전통 해녀복부터 현대 해녀복을 입은 모습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해녀들을 확인할 수 있다.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해녀들의 단단함과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 작가는 캔버스에 크레파스를 각각 다른 색으로 겹겹이 두껍게 칠한 뒤 칼끝과 칼날로 벗겨낸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한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기초적인 재료로 여겨지는 크레파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 제주 용암석은 표면과 형태, 색채가 제각각 달라 작업할 때마다 그 독특함에 매료된다”고 말했다. 한 작가가 미술관을 자주 찾기에, 운이 좋으면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무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늘도 난장판인 콩이네 집. 엄마는 아빠에게 설거지와 청소를 미룬다고, 아빠는 엄마에게 빨래를 미룬다고 쏘아붙인다. 그날 밤, 물을 마시려던 콩이는 부엌에서 어떤 그림자를 본다. 다음 날, 설거지와 빨래가 다 돼 있었다. 그 다음 날엔 맛난 식사까지 차려져 있다. 세 식구가 밤새 거실을 지켜보니, 달팽이 달평 씨가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 화단에서 얼어 죽을 뻔했는데 콩이가 구해줘 은혜를 갚는 중이란다. 우렁각시처럼 나타난 달평 씨 덕에 콩이네 집은 웃음이 넘친다. 느릿느릿 움직이기에 뭘 하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달평 씨. 깨끗한 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려면 누군가의 오랜 수고로움이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달평 씨와 일하다 아빠는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다. 청소하는 엄마의 손놀림은 더 빨라진다. 콩이도 물건을 제자리에 둔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쾌적하고 기분 좋게 지내려면 서로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흥미롭게 콕콕 짚어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국민의힘은 20일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키기 법’으로 규정하고 “헌법소원 제기 등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총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은 제2, 제3의 조국을 만들어내고 날개를 달아주는 ‘조국 지키기 법’에 불과하다”며 “조국 씨는 심지어 법원 판결이 선고돼도 가짜뉴스라고 우기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들도 동조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조 전 장관처럼) 공직 후보자 일가가 각종 반칙과 편법을 이용해 입시비리 등 불법과 일탈을 일삼아도 사생활 영역이라고 우긴다면 도덕성 검증을 제대로 못 하게 될 것”이라며 “조 장관 후보자 검증 때처럼 언론이 보도를 쏟아낼 때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날치기 처리한 언론재갈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며 독재로 가는 지름길”이라면서 “청와대와 민주당은 마치 탈레반 점령군처럼 완장을 차고 독선과 오만으로 우리나라의 근본을 통째로 뒤집어 왔다”고도 비판했다. 특히 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전직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한 뒤 자신에 대한 의혹을 다루는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법안의 내용이나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방식 등 어떤 면으로 봐도 일방적인 입법 폭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며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략적 봉쇄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재갈법’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민주사회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큰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 주요국 중 드물게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죄가 민사적 책임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이 가능한 데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해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외신기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