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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한 데 대해 “심히 못된 망발이다. 박근혜가 북남(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면 아무 말이나 제멋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무지와 무식의 표현” “방구석에서 횡설수설하던 아낙네의 근성”이라는 막말에 가까운 표현도 사용했다. 또 “박근혜는 아무리 미국의 노복(종)이고 하수인이라고 해도 무엇을 지껄이려면 엄연한 사실 자료나 초보적 상식이라도 똑바로 알고 입을 놀리라”며 “미국의 핵전쟁 하수인인 박근혜가 상전의 흉내를 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국가원수의 정상적 외교활동까지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비방한 것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행위”라며 “이런 무례한 남북 합의 위반행위를 하지 않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남북은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상 중단’을 합의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은 천안함 폭침 4주기인 26일에도 천안함 폭침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재개했다.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상을 중단하기로 한’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방위원회 검열단 비망록’을 발표하고 천안함 폭침에 대해 “동족 대결광들이 고안해낸 초유의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천안호(천안함) 사건을 더 이상 북남(남북)관계 개선을 막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5·24 대북(제재)조치를 철회하라”로 덧붙였다. 이에 통일부는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사과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조치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남조선(한국) 집권자가 국제무대에 나가 ‘신뢰’니 ‘평화’니 하는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마치 ‘통일의 사도’인 양 가소로운 놀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한국군이 24일 백령도 등 서해 5도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판하는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한국 국방부는 “대북전단은 민간단체가 살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는 30, 3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일본과의 국장급회담 의제로 일제강점기 군 위안부 보상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삶의 질에 대한 탈북자들의 만족도가 일반 한국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취약계층이어서 행복감을 덜 느낄 것’이라는 인식과 다른 결과다.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이 최근 공개한 ‘2013 북한이탈주민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생활 여건이 3년 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응답한 탈북자의 비율이 55.4%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 통계청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좋아졌다’고 답한 31%보다 높았다. 남북하나재단은 지난해 처음으로 탈북자 1482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묻는 사회조사를 진행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항목과 똑같이 질문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중하로 나눴을 때 ‘상’이라고 답한 탈북자는 1.3%, ‘중’은 27.3%였다. ‘하’가 70.6%로 가장 많았다. 일반 국민 조사에서는 ‘상’이 1.9%, ‘중’이 51.4%, ‘하’가 46.7%였다. 여전히 탈북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낮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탈북자가 높았다. 탈북자의 58.1%는 앞으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나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일반 국민 응답비율(28.2%)의 2배가 넘는다. 또 탈북자의 64.6%는 자식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신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 역시 일반 조사 결과(39.9%)보다 높다. 자신의 2014년 재정상태에 대한 전망도 탈북자의 52.6%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반면 일반 국민은 23.6%만 그렇게 답했다. 소득 만족도도 탈북자는 23.4%가 만족한다고 답해 일반 조사(12.1%)보다 높았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삶의 질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국 내에서의 ‘작은 통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2007년 9월 신경순 씨(45)는 북송되는 길이었다. 당시 38세. 신 씨는 1999년 고난의 행군 때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 허베이(河北) 성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철천지원수’라고 배워왔던 한국으로 갈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가 조국을 배반한 게 아니라 조국이 우리를 못 지켜줘서 살 길 찾아 떠난 것 아니었나.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겠지.’ 신의주에 도착하는 순간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후회가 머리를 쳤다. “쌍, 간나 새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쏟아낸 살벌한 욕설에 온몸이 몸서리쳤다. 구타도 당했다. 신체검사를 이유로 발가벗겨졌다.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저질스럽고 포악한 곳이었어요. 북한엔 자유가 없고, 중국에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분 보장이 안 됐죠. 갈 곳은 한국뿐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당찬 경순 씨라면 할 수 있어요” 2008년 1월 두만강을 다시 건넜고 같은 해 4월 한국에 도착했다. 고향 함북 청진의 바다가 그리워 부산에 정착했다. 중국의 약밤과 옥수수 등 농산물을 수입하는 무역회사의 중국어 통역으로 취업했다. 중국 생활 때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고 학생들이 버린 책으로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한 게 큰 자산이었다. 월급은 100만 원이었지만 거주지보호기간(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퇴소 이후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간) 5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지원금까지 합쳐 1억 원을 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취직 1년 만인 2009년 여름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다. 일자리 찾아 서울로 갔다가 허탕 치고 내려오던 기차 안에서 신 씨는 인생을 바꿀 결심을 했다. ‘매 맞고 욕먹다가 목숨 걸고 한국에 왔는데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잖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자. 중국어는 자신 있다. 아예 회사를 내가 운영하면 어떨까.’ 부산에 돌아온 신 씨는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면 어떨지 한 직원에게 물었다. 그 당돌한 질문에 그 직원은 “당찬 경순 씨라면 잘할 것 같아요”라며 힘을 줬다. “사람들이 이렇게 날 믿어주는데 내가 나를 못 믿을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 솟았어요.” 취업장려금과 저축해놓은 돈을 합쳤고, 부산 소상공인지원센터를 찾아 1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같은 해 8월 신 씨의 직함은 신영무역 대표로 바뀌었다. 약단밤 수입을 위해 허베이 성 업체들과 접촉하면서 중국생활 시절 신 대표를 좋게 봤던 관계자들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 신 대표는 그해 가을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햇밤을 들여왔다. 국내 약밤 시장에 난리가 났다. “약밤은 햇밤 전쟁이에요. 거래처들이 경쟁 수입업체들에 ‘신영은 햇밤인데 너희는 왜 묵은 밤이냐’고 한 거죠. 그 업체들까지 저희 약밤을 사가면서 동이 났습니다.”○ 한국의 법은 탈북자에게도 공평했다 신 대표가 히트를 치자 경쟁업체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시장을 호락호락하게 내게 넘겨주겠어요? 호호호. ‘북한에서 온 여자 주제에 무슨 사업이냐’며 사무실로 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죠.” 신 대표는 물러서기보다 새로운 개척을 준비했다. 그때까지 경쟁업체는 모두 오프라인 판로만 있었다.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2011년 여름 신 대표는 ‘키즈약밤’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인터넷판매 준비에 돌입했다. “마침 소셜커머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다시 대박이 터졌어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이 실감났죠.”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에 따르면 신영무역은 2011년 국내 약단밤 판매량 1위이다. 2012년 한 언론사의 중소기업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매출은 10억 원이 넘었다.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2012년 세법(稅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 세무 추징금을 내야 했다. “누굴 속인 적 없고 노력해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탈북자라서 차별받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하지만 2012년 조세심판 청구로 추징금의 3분의 2를 감면받았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법은 탈북자에게도 공평하다는 걸….”○ “당당하게 살 것 아니면 왜 목숨 걸고 탈북하나” 신 대표는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자유와 합법적 신분을 보장받았습니다. 무한대의 기회가 열린 거죠. 한국 정부로부터 그 기회의 공을 받은 겁니다. 그 공을 어디로 던질지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 기회 역시 원래 한국인이든 탈북자든 똑같아요.” 그래서 그는 북한에서 온 사람임을 숨기지 않았다. “당당하게 북한에서 왔다고 밝히고 그래서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면 편해지고 마음을 터놓게 되더라고요. 북한에서 온 게 죄가 아니잖아요. 탈북자도 한국인입니다.” “통일이 되면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았더니 부자가 되더라. 나는 북한에서 못한 것 한국에서 다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게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의 역할이겠죠.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목숨 걸고 한국엔 온 게 무의미하지 않겠어요?”부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34년간 집권한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사진)의 동상을 만드는 대가로 약 500만 달러(약 53억8000만 원)를 받기로 짐바브웨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5일 짐바브웨의 한 독립 언론을 인용해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무가베 대통령의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대형 동상과 소형 동상을 한 개씩 건립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RFA에 따르면 대형 청동 동상은 약 10m 높이로 제작비가 350만 달러이며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세워질 예정이다. 제작비 150만 달러의 소형 동상은 무가베 대통령의 고향에 조성 중인 기념박물관에 세워진다고 한다. 북한은 2010년 세네갈에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을 건립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동상 또는 건물을 지어주는 대가로 외화를 벌어 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좋은 일자리다. 남북하나재단의 탈북자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38.7%였던 탈북자 고용률은 2013년 51.4%로 높아졌다. 정부는 탈북자 취업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탈북자를 고용한 기업에 주는 고용지원금의 지원 기간을 기존의 최대 3년에서 4년으로 늘리도록 정착지원법을 개정했다. 탈북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확대해 탈북자 고용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지원금의 총액은 기존 1인당 3년간 최대 2280만 원에서, 4년간 최대 2400만 원으로 늘어난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하지만 탈북자 고용률(51.4%)은 전체 국민 고용률(60.4%)보다는 여전히 낮다. 탈북자 실업률(9.7%)도 전체(2.7%)의 3배가 넘는다. 탈북자 일자리의 질도 아직 단순노무나 서비스업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 취업자의 직업 유형은 단순노무 종사자가 28.2%, 서비스업 종사자가 21.4% 순으로 높았다. 탈북자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2012년 137만7000원에서 2013년 141만4000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전체 국민의 평균 소득(218만 원)보다는 여전히 크게 낮다. 특히 20, 30대 탈북자의 고용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 특성과 연령, 정착기간, 취업 유형에 따른 맞춤형 지원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2005년. 아홉 살 북한 소년은 고향 함북 청진의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걷고 있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다녀와야 할 거리는 왕복 20km. 소년은 인적 뜸한 시골길을 혼자 걸으며 상상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텔레비전에 한번 나올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공상일 뿐이었다. 소년은 학교 선배들을 따라 가족 몰래 공차기(축구) 경기에 나간 적이 한 번 있었다. 축구는 그를 매료시켰지만 그 경기 후 공차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소년에겐 운동화도, 축구공도 없었다. ○ 허무한 공상만 있던 북녘 생활 “꿈이 없었어요.” 김창준 군(18)은 북한 생활을 이렇게 떠올렸다. 김 군의 어머니는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김 군을 데리고 2005년 탈북했다. “처음엔 그저 이제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뿐이었어요. 한국은 어디인 줄조차 몰랐죠.” 소년은 한밤에 동남아 국가의 국경을 넘어야 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진흙에 발이 빠졌고 군인들의 서치라이트가 어지러이 들판을 갈랐다.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였다. 2006년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도 소년은 미래를 꿈꾸지 못했다. 한국에 도착해 서울 마포구에 정착한 다음 날은 소년의 인생을 바꾼 일요일이었다. 엄마와 교회 운동회에 간 김 군은 신나게 공을 찼다. 이를 눈여겨보던 교회 집사가 말을 걸어왔다. “너, 축구해볼 생각 없니?” 김 군은 왠지 모를 의욕이 솟아났다. 집사는 친분이 있는 서울 강남의 구룡초등학교 김영곤 감독을 소개했다. 어머니도 “네가 정 하고 싶으면 도전해봐라”고 허락했다. “기본기가 전혀 없었어요. 볼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루기) 5개도 못했죠. 감독님이 다른 아이들을 혼내면서도 저는 실수해도 혼내지 않는 거예요. 처음엔 ‘나를 싫어하는 건가’ 생각했죠.” 그게 아니었다. 며칠 뒤부터 김 감독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김 군을 저녁마다 불렀다. 혹독한 개인훈련이 시작됐다. “너무 힘들어서 다음 날 아침이 밝는 게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축구가 밝게 바꿔놓은 인생 자기도 모르게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새벽엔 학교에 나와 조기축구 아저씨들과 공을 찼다. 설날에도 혼자 눈 쌓인 운동장에서 숨이 찰 때까지 달리고 훈련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리프팅을 300개 할 수 있었고 팀 주장을 맡은 6학년 때는 1000개를 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김 군은 서울의 축구 명문 동북중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때 우리 팀에 항상 이기던 강팀에서도 제일 잘하는 친구들만 왔더라고요.” 김 군 주변에선 ‘네가 경기에 나갈 수 있겠나’는 걱정을 했다. 그때 박지성 선수의 ‘멘털’을 떠올렸다. “박 선수는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으로 갈 때 ‘잘하는 선수가 많아 5분, 10분만 기회가 오더라도 노력해 선발 기회를 얻겠다’고 했어요. 저도 그 정신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기회가 많이 왔어요.” 그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혼자 연습했다. 동북중 2학년 때 유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해 서울시 축구협회장배 대회에서 동북중이 우승하며 김 군은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았다. 그해 유소년 국가대표팀이 중국에서 열린 국제 친선경기에 참가했을 때, 김 군은 북한 팀과 맞붙었다. 한눈에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착잡하고도 묘한 마음이 들었다. 경기는 3-0으로 이겼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향하여 김 군은 현재 프로축구팀 제주 유나이티드의 고교팀(방통고)인 U-18(유스팀)의 선발 오른쪽 수비수(사이드백)로 활약하고 있다. 이 팀은 프로축구팀 소속인 21개 고교팀이 참가하는 ‘K리그 주니어’에 출전한다. 우수한 고교 선수들만 참가하는 리그다. 팀 설동식 감독의 말이다. “창준이는 오버래핑(수비수가 공격에 가담하는 능력)과 경기를 잘 풀어가는 넓은 시야, 성실성과 지구력이 말할 수 없이 좋은 산소탱크예요. 후배와 동료에게 힘을 넣는 리더십도 좋아서 어느 프로팀에 가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겁니다.” 김 군은 “축구선수로 생활하며 탈북자 출신이라는 주변의 선입견을 한번도 느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미래와 꿈에 대해 얘기하다 제가 얘기를 먼저 꺼내면 친구들이 공감하며 ‘잘 왔다. 더 열심히 하자’고 격려해줬고 그게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김 군의 목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이다. “북한에 있었다면 꾸지도 못했을 꿈을 한국에서 찾고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습니다. 신기하고 기적 같은 일이에요. 이영표 선수처럼 조용하고 묵묵하게 동료 선수들을 이끌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9년 전 비포장 길을 걸으며 공상으로 외로움을 달랬던 소년은 꿈과 미래를 향해 달리는 축구 유망주로 성장해 있었다. “한국에 와서 비행기도 타고 통일부 공익광고에도 출연한 적 있으니 어린 시절의 공상도 이뤄진 셈이네요. 축구로 꿈을 이뤄가며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제주=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이 남북 DMZ 모두를 포함하는 생태친화적 공원으로 조성된다. 이 공원은 세계인 모두에게 개방해 ‘세계평화의 랜드마크’로 육성된다. 정부는 24일 이런 구체적 비전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발간한 ‘2014 통일백서’에서 DMZ 공원의 조성 방향에 대해 △남-북-유엔 등 국제기구 협력을 토대로 추진 △공원 입지는 남북한 비무장지대를 모두 포함 △가급적 비무장지대의 자연환경을 보전 △남북한 주민은 물론이고 세계인에게도 개방을 제시했다. 또 “세계평화공원 조성 운영에 국제사회가 참여할 것이며 정부는 유엔과 공원 조성을 위한 고위급 접촉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는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했던 ‘DMZ 평화공원에서 세계 방문객 남북 오간다’(2014년 1월 15일자 A1면)의 기사 내용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백서는 “남북 간 분열과 갈등이 상징이 돼버린 비무장지대에 남북 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작은 통일의 공간’이 조성되면 분단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큰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서는 또 “북한의 경제특구 진출을 모색하고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선경제무역지대, 신의주특별행정구 등에 진출해 남북 경제협력을 심화시키고 북한 지하자원 개발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또 “금강산 관광이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발전적 방향에서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민족통일중앙협회의 특강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통일시대로 반드시 가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국가를 완성하는 프로젝트다. 국가 건설 프로젝트에서 국가 완성 프로젝트로 가기 위해 통일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현재 탈북자가 취업을 하면 3년간 지원되는 취업장려금은 이직 없이 한 직장에 근무해야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막 정착한 탈북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취업했다가 뒤늦게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막노동으로 시작했고 네 번째 직장이 동아일보다.” 탈북자 출신인 동아일보 국제부 주성하 기자(김일성종합대 출신)는 한 세미나에서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의 취업장려금 제도가 탈북자의 진로나 직업 탐색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탈북자가 취업하면 1년 차에 연간 450만∼550만 원, 2년 차에 550만∼650만 원, 3년 차에 650만∼75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3년간 근무’ 조건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아도 이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현장의 이런 지적을 수용해 올해부터 이직을 두 번까지 해도 취업장려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자 취업 지원제도의 ‘손톱 밑 가시’를 빼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통일부는 탈북 여성들이 자녀를 낳으면 거주지보호기간(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퇴소 이후 정부 지원금을 받는 5년)을 1년씩(3자녀까지 총 3년)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탈북자들의 정착을 적극 돕는 시민들에게 올해부터 훈장과 국민포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남북하나재단은 북한 사회와 문화 특성을 대폭 반영한 ‘탈북자 심리 사회적 적응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을 확신하고 북한의 가족이나 이웃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탈북자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대폭 강화된다. 통일 준비의 핵심 중 하나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 국정기조를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해왔고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탈북자가 저축하는 액수만큼 정부가 돈을 지원해 목돈 마련을 지원하는 ‘미래행복통장’을 도입하고 △탈북 여성의 취업과 양육을 지원하는 다양한 지원개선책도 내놓을 계획이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정부 통계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의 탈북자 수급 비율은 2007년 63.5%에서 지난해 35%로 6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학업 중도 탈락률도 2007년 7.1%에서 2013년 3.5%로 줄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 통일이 남북의 미래면 탈북자는 ‘먼저 온 미래’다. 통일시대의 개척자인 그들은 힘들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으로 되돌아간 탈북자도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탈북자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 착한(着韓) 스토리를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과 함께 시리즈로 소개한다. 》2003년 어느 날 동남아 국가의 한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가 급히 이륙했다. 비행기엔 북한 노동당 교육기관 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한 북한군 대대 지도원 출신 ‘여성 외화벌이 일꾼’이 앉아 있었다. 그는 7년간 그 나라 인근에서 외화를 벌어 북한에 보내는 일을 했다. 2002년 그 일을 관리하던 장성택(김정은의 고모부·지난해 12월 처형됨)이 국가예산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자 그를 포함한 외화벌이 일꾼들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체포령이 떨어지자 그는 ‘살려고’ 한국으로 왔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가.” 이정옥 씨(48)는 급변한 삶에 혼란스러웠지만 한국 생활은 어쨌든, 그렇게 시작됐다.○ 봉사로 찾은 삶의 이유 전남 목포에 정착한 이 씨는 얼마 뒤 TV에서 130명의 인명 피해를 낸 초대형 태풍 매미의 피해 현장을 봤다. 이재민들을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발 벗고 돕는 모습은 그가 북한에서 배운 ‘괴뢰 한국’과 전혀 달랐다. 그 광경이 이 씨의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줬다. 이 씨는 목포 사회복지관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태풍에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성금을 냈다.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목욕 봉사, 도시락 배달 봉사를 시작했다.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탈북자가 사회봉사를 자원한 건 처음이다. 대단하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봉사를 하면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봉사가 나를 살게 해준 것이죠.” 그랬던 그가 2004년 불현듯 캐나다로 떠났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북한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했어요.” 4년 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내가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울타리와 벽을 스스로 치고 나를 거기에 가둬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씨는 그 벽을 깨고 싶었다. 한국인으로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목포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2008년 결혼한 남편 김진우 씨(51)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안좌도 내호리에서 농사꾼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가둔 울타리, 나눔으로 깼다 내호리 사람들은 처음에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 밭을 매는 어르신이 보이면 같이 밭을 맸죠.”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이 씨는 내호리 노인들을 모두 “엄마, 아부지”로 부를 만큼 친숙해졌다. “사흘만 안 보이면 엄마 아부지 집에 가서 ‘엄마 살아계셔?’ ‘아부지 살아계셔?’ 확인해요. 어르신들 집에 수돗물이 얼면 ‘엄마 물 나와?’ 하며 물을 길어주고요.” “사시는 날까지 아프지 말아야 한다”며 약 먹을 때를 챙기니 술 좋아하는 노인들은 “정옥이 쟤 앞에선 술도 못 먹어”라며 혀를 내두른다. 마을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상가(喪家) 음식 장만도 이 씨 몫이다. 마을 여기저기서 “어디서 저런 복덩이 가시내가 굴러왔을까”라는 살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매주 소외된 이웃을 위한 무료급식, 도시락 배달에도 빠지지 않았다. 안좌도의 노인회관 40곳에 매년 김장김치를 기부한다. 2012년엔 김치 850포기(2.5t)를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했다. 그 김치는 저소득층 이산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이 씨는 오갈 곳 없는 탈북 노인의 농촌 정착도 돕고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과 함께 탈북자 영농교육도 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마을 주민 50명 중 약 40명의 압도적 지지로 이장에 선출됐다. 남북하나재단은 “이 씨는 ‘첫 탈북자 이장’이자 ‘만석꾼 이장’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이 씨는 마을 노인회관을 내호리의 어려운 홀몸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양로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장으로서의 꿈을 밝혔다. “농촌 고령화가 심각하니 자식 떠나보낸 뒤 어렵게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요.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도 자식들이 몇 주간 모르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 노인들이 함께 의지하며 더불어 살 수 있는 따뜻한 곳을 만들려 합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몫이에요.”○ “내 동생 해도 되겄지?” “얼마 전 도시락배달 봉사를 갔던 안좌도 다른 마을의 한 노인이 ‘야 내호(리)! 이제 내 동생 해도 되겄지?’ 하더라고요. ‘우리’ 축에 끼워주겠다는 것이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벅찼죠.” “근데∼잉” “진짜∼잉” “그러요”라며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 씨는 “한국의 시골에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국엔 북한과 달리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란다. 삶의 기로에 섰던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이 나눔을 실천하는 마을 이장으로 거듭났다. 기회를 준 건 한국 사회지만 그것을 통해 새 삶을 개척한 건 이 씨 자신이다.신안=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18일 청와대에서 청와대-정부세종청사 간 첫 영상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화면 속 인물) 등 국무위원 10명은 세종청사에서 회의에 참석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다른 법안과 연계해 이것(원자력방호방재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라며 “지금 북한의 핵 위협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핵 안보와 관련해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기는커녕 약속한 것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국제적으로 얼마나 신뢰를 잃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비준과 관련해서도 “(비준이 지연되면)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우리 근로자들의 급여를 줄 수 없고 관련 중소기업의 조업도 중단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치는 국익과 국민을 최우선에 놓는 정치”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회에서 원자력방호방재법 등이 처리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국제사회와 약속한 핵 관련 협약 비준을 위해 법안 처리를 요청했으나 민주당이 다른 쟁점 법안과의 일괄 처리를 요구하며 거부했다. 민주당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법안 처리는 어려운 상태다. 이날 국무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와 정부세종청사 간 영상회의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서울에 집무실이 있는 국무위원은 청와대 비서동 위민1관 3층 영상국무회의실에 모였다. 정홍원 국무총리 등 세종청사에 집무실이 있는 국무위원 10명은 현지에서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 영상국무회의실에는 박 대통령 정면에 110인치 초고화질(UHD) TV 2대와 좌우에 85인치 UHD TV가 2대씩 설치돼 있었다. 화면 한쪽은 청와대 영상국무회의실의 모습을, 다른 한쪽은 세종청사 영상회의실의 모습을 보여줬다. 각 화면 위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 줌인·줌아웃 기능을 통해 발언자를 생생하게 비췄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세종청사 이전을 계기로 부처 간 회의의 효율성을 위해 영상회의를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세종청사를 찾아서도 “2단계 세종청사 이전을 계기로 영상회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청사는 이명박 정부 때 건립 단계에서부터 영상회의실을 만들었고 서울과 과천 중앙청사도 곧바로 영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영상회의실은 지난해 5월에야 공사에 들어가 연말에 마무리됐다. 원래 올해 1월 곧바로 박 대통령이 영상 국무회의를 진행하려 했으나 점검 과정에서 조명을 보완하는 등 추가 공사를 하다 보니 늦어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매번 영상으로 국무회의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자주 이용할 예정이다. 정 총리는 이미 자신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12차례 영상으로 진행했다.이재명 egija@donga.com·동정민 기자}

북한은 12일 “남조선(한국) 집권자(박근혜 대통령)와 당국, 언론이 비방 중상을 계속해 비방 중상 중단을 합의한 남북 고위급 접촉의 합의 이행이 엄중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남북 고위급 접촉 북측 대표단 대변인 담화’을 통해 “비방 중상을 중단하지 않으면 (남측은) 앞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최근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북핵이다” “도발에 철저히 응징할 것”이라고 말한 것 등에 대해 “남조선 집권자의 못된 발언은 더 외울 지경이 못 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북한에 변화 움직임이 없다”는 등의 발언에 대해서도 “자극적이고 오만무례한 수작질”이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언급에 대해서는 “치사하고 역겨운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KBS MBC SBS를 거명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대한 보도 내용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는 5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비방 중상은 고위급 회담 합의의 파기”라는 통지문을 보냈다. 이에 국가안보실이 6일 “(북한이 문제 삼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내자 북한은 7일 국방위 명의로 재차 비슷한 내용의 통지문을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북한의 7일 통지문’ 관련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사실과 다른 비난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은 체제의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한국의 총선 격)에서 새 실세로 부상한 인물이 대거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장성택 사람들’ 중 핵심 인사 일부는 명단에서 사라졌다. 북한 매체들이 11일 공개한 북한 중앙선거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 중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롯해 376명이 새로 뽑혔다. 교체비율은 55%로 2009년 12기 선거 때(45%)보다 높은 수치다. 북한 권력 핵심인 노동당 정치국 위원 중 장성택(지난해 12월 처형됨) 측근으로 분류된 이명수 전 인민보안부장은 대의원 명단에서 빠졌다. 이 외에도 정치국 후보위원 중 △문경덕 당 비서 겸 평양시당 책임비서 △현영철 전 총참모장(지난해 해임)도 대의원 명단에 없었다. 반면 ‘살아남은 장성택 사람들’도 있었다.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지재룡 주중대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김정은 수행 빈도가 높아서 신(新)실세로 분류되는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장성택 숙청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연준 최휘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은 대의원에 새로 뽑혔다. 특히 올해 김정은 수행 빈도가 가장 높은 황병서 당 부부장 등 노동당 신진세력의 약진이 주목된다. 남북 고위급 회담의 북한 측 수석대표로 나선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지난해 무산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이 수석대표로 내세웠던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도 대의원에 새로 선출됐다. 심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 고모 김경희의 건재 여부는 미스터리다. 제285호 태평선거구 대의원에 ‘김경희’가 이름을 올렸으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김경희는 11, 12기 선거 때는 평양지역인 3호 선거구에 이름을 올렸다. 285호는 평안북도 지역이다.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북한 매체가 처음으로 이름을 공식적으로 호명해 주목받은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대의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9일 치러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 대의원에 추대됐다고 북한 매체가 10일 전했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한국 정부는 111호 선거구가 백두산 인근의 북한군 부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27)이 처음 북한 매체에 호명되며 김정은과 함께 투표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백두혈통’ 출신의 핵심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소개되지 않았다. 김경희는 거동이 어려울 만큼 병세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정일 체제에서 맡아 온 김경희의 정치적 역할을 김여정이 대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9일 선거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등 공식행사 주석단에 오르는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총출동했다.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등 노동당 비서와 강석주 노두철 내각 부총리,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조연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오극렬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노동당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도 모두 투표에 참여했다. 또한 새해가 되면서 2개월 넘게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았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지난달 15일 이후 북한 매체에 등장하지 않았던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의 이름이 다시 거명됐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전격 처형된 장성택의 측근 그룹이다. 1월 6일 김정은의 신년사 관련 평양시 군중대회 이후 자취를 감춘 장성택의 또 다른 측근 문경덕 노동당 비서 겸 평양시당 책임비서는 이번에도 보도에 나오지 않아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상 100% 투표, 100% 찬성’의 대의원 선거는 이번에도 서방 언론의 ‘해외토픽감’으로 주목받았다. 탈북자들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 선거는 투표가 아니라 ‘정치적 동원’이다. 반대표를 던지려면 기표소에서 후보자의 이름에 줄을 그어야 하는데 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 드러나기 때문에 사실상 공개투표다. 투표장에 가지 않고 기권하는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았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27·사진)을 9일 북한 매체가 처음 공식 소개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김정은이 평양 김일성정치대학에서 투표했다고 전하면서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김경옥, 황병서, 김여정 등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 김정은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김여정은 과거 주요 행사에 종종 얼굴을 드러냈지만 이름이 공식적으로 북한 매체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김여정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인 황병서 다음에 언급됐기 때문에 당 부부장 직급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이 와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당 핵심 인사로 입지를 넓혀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8일 인터넷판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많은 투표소에서 김정은 지지를 호소하는 포스터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중국 국경 순찰 강화를 위해 파견된 북한군 병력이 급히 소환돼 투표소 순찰 강화에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선거 포스터 훼손은 김정은이 북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평북 정주에서 선거 포스터 훼손이 일어나 이 지역의 국가안전보위부 책임자가 해임됐다. 북한은 군 병력을 동원해 투표소 주변을 24시간 감시하는 등 순찰을 강화했으나 북-중 국경지대인 양강도 혜산에서 선거 포스터 훼손 사건이 잇달았다는 것이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6일 “북한에 100만 포대 비료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밝히면서 2007년 이후 중단된 대북 비료 지원 재개가 현실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정부 내에선 “군사적 전용이 우려되는 쌀은 어렵지만 남북 농업협력에 도움이 되는 비료의 대북 지원은 가능하다”는 기류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 농업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비료 지원은 인도적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면서 ‘남북농업협력추진협의회’를 구성해 종자와 농기구 지원, 공농 영농 시범사업 등 대북 농·축산 협력을 크게 확대할 방침이다. 민화협은 대북 비료 지원 시기를 농사가 시작되는 3, 4월로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와 민화협은 공식적으로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원 시기까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홍 의장의 발언은 정부와의 사전 교감을 거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홍 의장이 친박(친박근혜) 중진인 만큼 교감설에 힘이 실린다. 정부는 아직 정부 차원의 쌀 비료 지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화협 관계자는 “민화협 같은 민간단체가 비료 지원의 공감대를 조성하고 정부가 비료 지원을 승인하면 정부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선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북한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강하지만 인도주의 사안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거래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민화협이 추진하는 비료 지원은 정부가 하고 있는 영·유아 취약계층 대상의 순수한 인도적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면서도 “민화협에서 지원 계획을 구체화해 정부에 신청하면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은 특별검사제 도입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해임을 주장하며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국정원은 “본질은 유우성 씨가 간첩인지 여부이며 그는 분명히 간첩”이라고 하면서도 법원에 제시한 유력 증거가 ‘조작’으로 밝혀진 데 대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호텔 벽면에 피로 쓴 ‘국정원’이라는 글자는 지울 수 있겠지만 국정원 증거 조작의 진실까지 지울 수는 없을 것”이라며 특검을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새누리당에 국회 법사위, 정보위 개최를 요구하고 검찰에 대해서는 국정원, 선양(瀋陽) 영사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실시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특검 요구가 안 받아들여지면 6월 발효되는 상설특검법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할 방침이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신중 모드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사태 파악이 우선이며 선거를 앞둔 시점에 야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간첩 혐의는 간첩 혐의대로, 증거 조작 의혹은 증거 조작 의혹대로 구분해 엄정히 수사할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국정원에 현재 진행상황에 대한 자료보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내용을 좀 파악한 뒤 서상기 정보위원장과 정보위 개최 여부 등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 가면 간첩 혐의자 유 씨의 무죄가 거의 확실해지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 측은 협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위조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김 씨가 한국에 와 위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겠다고 해서 우리가 김 씨를 검찰에 출석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조 여부 검증에 대해선 “진위를 비교할 서류가 없고 중국 정부에 확인할 수도 없었다. 중국은 같은 기관에서 발급하는 서류에도 서로 다른 관인을 쓴다”고 해명했다.손영일 scud2007@donga.com·윤완준 기자}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6일 “앞으로 북한에 100만 포대 비료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홍 의장은 이날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정기대의원회에서 “북한이 현재 절실히 필요한 것이 비료”라며 이 캠페인을 민화협의 공식사업으로 채택했다. 정부는 2007년의 30만 t을 끝으로, 북한의 도발 책임 등을 문제 삼아 대규모 비료 지원을 하지 않아왔다. 홍 의장은 대회사에서는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남북이 공동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북한이 이 두 행사의 공동 개최를 제의했지만 한국 정부는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그룹 ‘7인회’ 멤버인 홍 의장의 이런 적극적인 대북 제안이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나온 것인지 주목된다. 북한은 5일 한국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2월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북한은 국방위원회 명의의 통지문에서 “대북 전단 살포는 2월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의 비방 중상 중단 합의 위반이다. 왜 합의를 이행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국가안보실은 “우리 국민들은 헌법으로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이런 기본적 권리를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제한할 수 없다”는 답신을 북측에 보냈다. 북한은 6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논의하는 남북 적십자실무접촉을 갖자’는 정부의 제의에 대해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 그런 중대한 인도적 문제들은 적십자 협의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조숭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