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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외시장 맞춤형 케이코믹스(K-Comics) 국가대표예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해외진출 기획원고 개발지원’ 사업을 통해 미국 유럽 일본 시장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작품 30개를 선발했다고 8일 밝혔다. 올해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30여 편의 작품 시안과 기획안을 접수 받아 심사한 결과다. 10년 이상 경력의 만화작가, 대형 만화출판사 직원, 콘텐츠 개발업체 직원, 만화에이전트 등 심사위원 8명이 ‘해외 시장 성공 가능성’을 제1순위로 두고 뽑았다. 지금까지 만화 수출은 주로 이미 제작된 만화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아 해외로 진출하거나, 국내 만화가가 직접 해외에서 만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해당 시장 환경까지 고려해 선발하는 ‘만화 오디션’은 처음이다. 이번에 선발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 유럽 일본의 만화 트렌드를 짚어볼 수 있다. 미국 수출 작품은 북미 시장의 주류인 그래픽노블(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강렬한 그림에 이야기를 결부한 만화) 및 슈퍼히어로물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아이언 크로우즈’를 그래픽노블 형태로 그려낸 김예신 작가의 동명 만화, 동양의 기(氣)를 이용한 무술을 연마한 슈퍼히어로를 다룬 유경원 작가의 ‘처용만가’(Hero's Dirge) 등이다. 심사에 참가한 대형 만화출판사 관계자는 “북미에선 그래픽노블 스타일을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시장에 그래픽노블 수요가 없어 고민하던 일부 그래픽노블 작가가 미국 진출 기회를 얻게 됐다”고 밝혔다. 유럽 수출 작품은 한국적 색채를 가미한 만화가 낙점됐다. 제주도 ‘서사무가’ 설화를 만화로 옮긴 송동근 작가의 ‘오늘’, 프랑스 현지에서 활동했던 김금숙 작가의 ‘흥부가’, 유럽 현지의 잔혹동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노명희 작가의 ‘다크 메르헨’ 등이다. 한 심사위원은 “예술만화 시장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우리 것을 담되 실험적이고 작품성 있는 만화가 진출해 성공을 거둬왔다”고 했다. 우리 만화와 스타일이 닮은 ‘망가제국’ 일본 수출 작품은 ‘더 재밌는 소재, 스토리’에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밀리터리 게임을 즐기는 미소녀, 한국 음식을 만드는 일본인 요리사 등을 다룬 만화가 뽑혔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만화 수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전 세계 만화시장 규모는 축소되고 있지만 수출액은 2009년 420만 달러(약 47억 원)에서 2011년 1721만 달러(약 191억 원)로 늘었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549만(약 62억 원) 달러에서 396만 달러(약 44억 원)로 줄었다. 이번에 선발된 작품은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현지 언어로 번역돼 해당국 메이저 출판사와 손잡고 수출되게 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출판전문지 ‘출판저널’이 한국 책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영문판 디지털 매거진 ‘K-북 리뷰’(K-Book Review)를 창간했다. 지난달 29일 서비스를 시작한 ‘K-북 리뷰’ 창간호(Vol.1)에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 소개, 소설가 신경숙, 박범신과의 인터뷰, ‘코리안 탱크, 최경주: 실패가 나를 키운다’를 쓴 프로골퍼 최경주 인터뷰, 2013 서울국제도서전 리뷰를 담았다. 매달 말 한 차례씩 발행되며 안드로이드 마켓, iOS 마켓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다. 출판저널 관계자는 “한국 책을 외국에 널리 알려 국격을 높이고 한국 출판물의 해외 수출을 돕기 위해 영문판을 만들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착한 식당 프로젝트를 통해 먹거리 문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채널A의 간판 프로그램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 책으로 나왔다. 이 프로그램의 취재팀은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층 오픈스튜디오에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착한식당을 찾아서’(동아일보사)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행사에는 이 프로가 선정한 착한식당 주인과 착한식당 검증단, 음식전문가, 김재호 채널A 회장 및 동아일보 사장, 유재홍 채널A 사장, 전용길 KBS미디어 사장 등이 참석했다. 착한식당으로 뽑힌 제일어버이순대 이채호 사장은 “방송 이후 손님 입속에 깨끗한 음식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반칙 없는 음식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 먹거리 X파일이 오래 가길 기원한다”고 축하했다. 유재홍 사장은 인사말에서 “오늘의 주인공은 착한식당 주인 분들이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먹거리 X파일이 계속 활약해 우리 먹거리 문화에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책에는 지난해 2월 첫 방송 이후 최근까지 방영된 착한식당 33곳 중 15곳을 소개했다. 착한식당 안내서, 착한 먹거리 구입방법과 함께 ‘MSG 첨가 선택’ ‘나트륨 줄이기’ ‘빙초산 안 쓰기’ ‘반찬 재탕 안 하기’ 등 착한 먹거리 제안도 눈길을 끈다. 대표 저자인 이영돈 PD는 “장사가 안 되던 착한식당도 방송 이후 장사가 잘되는 모습을 통해 착하게 살고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며 “책을 읽으면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원곡문화재단(이사장 김성재)은 제35회 원곡서예문화상 수상자로 문관효 예술의전당 서예아카데미 교수(60), 제4회 원곡서예학술상 수상자로 곽노봉 동방대학원대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59)를 7일 선정했다. 시상식은 14일 오후 5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1000만 원.}

몇 해 전 소설가 송은일 씨(49·사진)는 전남 고흥군 두원면 고향 마을에 갔다. 마침 마을 노인정에서 덜 늙은 할머니들이 더 늙은 할머니를 위해 점심상을 차리는 날이었다. 송 씨는 상차림을 담당하는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할머니들이 모인 노인정 문을 열게 됐다. 그곳에선 100명 가까운 70∼90대 할머니들이 ‘넓고 긴 방의 사면 벽에 등을 댄 채 한 무릎을 세우고’ 붙어 앉아 있었다. 마치 미라처럼 보이던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송 씨는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고 한다. 송 씨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들이 붙잡았다. “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쓴담시롱야? 내 이약 잔 써주라(내 이야기 좀 써주라).”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소설 ‘매구 할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송 씨를 만났다. 그는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소설을 쓰게 했다. 고향 마을도 언젠가 사라질 텐데, 한 시대가 가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매구란 천년 묵은 여우가 변한, 이상하고 신기한 짐승. 소설 속 매구는 간사한 구미호가 아니라 사람을 보살피는 큰 할머니를 뜻한다. 송 씨는 자신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상상의 공간인 ‘계성재’를 창조했다. 소설은 계성재 20대 손인 소설가 ‘은현’이 고향 집으로 귀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액자소설 형식으로 전개된다. 은현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안 기록 ‘계성재가솔부’를 바탕으로 계성재를 지키는 100세 넘은 노인 ‘매구 할매’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다. 해방과 전쟁 통에 죽은 남편, 아들을 대신해 집안을 지킨 17대 종부 여례당 권씨가 액자소설의 중심인물이다. 남성을 대신해 가문의 전통을 지켜온 여장부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소설 속에서 현실감 넘치게 펼쳐진다. 송 씨는 “액자 형식을 택한 이유도 과거 이야기를 살아 있는 현실로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2000년 여성동아에서 당선된 장편 ‘아스피린 두 알’을 시작으로 ‘매구 할매’까지 13년간 장편만 10편을 쓸 만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그는 “고향을 오가며 할머니들을 봤더니 어느새 내 몸 안에 할머니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는 이야기를 쓰니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고 술술 편안하게 썼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금까지 국내 최초의 신문 아동만화로는 조선일보의 ‘숨박국질’(윤석중·1928년), 첫 신문 아동연재만화로는 동아일보의 ‘그림동화 여섯동무’(박천석, 남궁랑·1930년)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기록을 모두 깨는 새로운 신문 아동연재만화가 발굴됐다. 192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뺑덕이와 섭섭이’(작자 미상)이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서은영 씨(37·사진)는 최근 박사학위 논문 ‘한국 근대 만화의 전개와 문화적 의미’에서 국내 만화역사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 만화야말로 한국 최초의 신문 아동만화임을 밝혀냈다. 밭 전(田)자 형식의 한국형 4컷 만화인 ‘뺑덕이와…’는 1926년 5월 2일부터 7월 12일까지 총 62회 연재됐다. 작가는 만화에 이름을 남기지 않아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논문에서 아동만화는 아동이 주인공이거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그려지는 만화를 의미한다. 아홉 살짜리 까까머리 꼬마 뺑덕이는 말썽을 피워 엄마 속을 썩이지만 꿈이 많은 사내아이다. 섭섭이는 뺑덕이가 좋아하는 또래 여자아이. 마냥 어린아이처럼 굴던 뺑덕이는 엄마에게 잘 있으란 말만 남기고 가출하더니 화가로, 유모로 변신한다. 중산층 가정에 유모로 들어간 뺑덕이의 눈에 비친 중산층 부부의 허세가 웃음을 유발한다. 부부는 집안을 비싼 사진으로 장식하지만 피서 비용을 아끼려고 뺑덕이를 기차에 무임승차시킨다.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신문박물관에서 만난 서 씨는 “당시 신문은 기존 식자층에서 여성과 아동으로 독자층을 확대하면서 아동만화를 도입했다. 뺑덕이가 부인·가정면, 문예면에 실리면서 신문이 가족 모두가 함께 읽는 위치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논문에는 만화연구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동아일보의 ‘말괄량이 박람회 구경’(작자 미상·1929년)도 등장한다. 시골소녀 까불이가 소심한 아버지를 모시고 경성 만국박람회장으로 가는 여정과 현장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시 잘 쓰지 않던 ‘말괄량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서 박사는 “만화 현상공모 등 식민지 조선에서 만화가 전개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동아일보가 만화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을 해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만화평론가인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창작과 교수는 “저자를 밝혀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한국 최초의 신문 아동만화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뺑덕이와…’의 그림체나 표현 형식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조선일보로 옮긴 김동성 작가와 많이 닮았지만 그가 그린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 씨는 1920년 창간부터 1940년 폐간 때까지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신문의 PDF 파일을 빠짐없이 확인해 기존 연구에서 누락된 작품을 발굴했다. 그는 “194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선전 동원 수단으로 삼은 만화를 연구할 것”이라며 “1930년대 최고 만화가로 꼽히는 최영수 작가를 재조명해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 웹툰을 그린 최종훈 작가는 2009년 이곳에 ‘입소’했다. 이전까지 그는 10년간 혼자 살며 그림을 그렸다. 잘 그려지지 않으면 지쳐 힘들어했다. “성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 땐 ‘험한 생각’도 했죠.” 하지만 동료들이 모인 여기에 오면서 위로와 격려를 얻을 수 있었다. 최 작가가 입소한 이곳은 ‘만화 선수촌’. 2일 경기 부천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창작공간을 찾았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화가 1000여 명 중 300여 명이 이곳에 모여 있다. 》만화가들은 원미구 상동의 진흥원 내 만화비즈니스센터(130명)와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원미동 만화창작스튜디오(170명)에 입주해 작업을 한다. 출판만화, 웹툰, 학습만화, 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를 고루 선별해 뽑았다. ‘전설의 주먹’, ‘목욕의 신’, ‘피터 히스토리아’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작가 이종범 씨(31)는 2008년 여름 무릎 아래까지 침수된 서울 합정동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렸다. 마감에 쫓긴 터라 감전 위험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2009년 이곳에서 꿈에 그리던 작업실을 얻었다. 그는 이곳을 ‘만화계의 태릉선수촌’이라 불렀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곳에 모여 운동하면 종목이 달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죠. 모여 있는 것만으로 자연스레 테크닉을 전수하며 ‘상향 평준화’가 이뤄집니다.” 웹툰 ‘와라! 편의점’의 작가 지강민 씨(34)는 “작업 과정을 흔쾌히 보여 주고 노하우도 서로 공유하며 ‘같이 크자’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모여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도 된다. 잘나가는 동료 만화가의 중고차가 비싼 차로 바뀌거나 옷차림이 바뀔 때 자극을 받는단다. 한 만화가는 “잘 풀린 만화가는 꼭 티를 내는데, 그걸 보며 각오를 다진다”고 털어놨다. 뭐니 뭐니 해도 개성 강한 만화가들이 모여 정을 나누며 사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손이 바쁠 때 일감이 몰리면 손이 비는 옆방 만화가에게 나눠 준단다. ‘돈 되는 일감’ 정보뿐 아니라 만화가를 등치는 ‘블랙리스트 업체’도 서로 알려 주며 추가 피해를 막는다. 캐릭터 ‘이야기군&뭉크’의 작가 한성민 씨(38)는 “만화가들은 고립된 곳에서 일하다 보니 더 밖으로 안 나가게 되는데, 모여 작업하는 이곳이 유일하게 사회성을 키워 주는 곳”이라고 했다. 웹툰 ‘갓 오브 하이스쿨’의 작가 박용제 씨(32)는 “나를 찾아온 팬이 다른 작가도 좋아하면 데려가서 소개해 준다. 다른 작가가 내 작품을 좋아하는 팬을 데려올 땐 의욕이 더 솟구친다”고 말했다. 만화선수촌 입소는 쉽지 않다. 빈자리가 생겨도 3∼4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기존 입주 만화가도 2년마다 작품 결과물과 지역사회 기여도를 평가받아 낮은 점수가 나오면 퇴소해야 한다. 만화가를 도와주는 전담 변호사와 회계사도 있고, 일감을 따오는 코디네이터까지 있다. 다만 부천시가 운영하다 보니 주간에만 냉난방이 가동돼 주로 야간에 작업하는 만화가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입소 8년차로 고참 격인 ‘광폭난무’의 작가 임석남 씨(42)는 “이곳이 어느새 예비 만화가들에겐 꼭 들어가야 할 ‘꿈의 공간’이 됐다. 언젠가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날 텐데, 이곳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부천=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차정윤 인턴기자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4년}

여성 운동가 저메인 그리어 교수는 1970년 출간된 책 ‘여성, 거세당하다’에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여성임을 느끼기 위해 생리혈을 한번 먹어 보라고 권했다. 좀 심한가? 그럼 이 책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은 꼭 읽어 보라. 저자는 열다섯 살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여성주의자”라고 외쳤다. 여덟 남매가 임대주택에서 함께 살면서 남동생보다 자신이 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여성주의 책을 마구 읽었다. 글쓰기에 심취한 그는 2010년 영국 언론협회 선정 ‘올해의 칼럼니스트’가 됐다. 그가 입에 올리는 포르노, 브래지어, 브라질리언 왁스(음모 제모용 왁스), 성기를 지칭하는 노골적인 속어들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저자의 포르노에 대한 고찰을 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란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이 길어야 6분 정도인 이유가 무엇일까. 남자가 평균적으로 사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과 같은 남자들이 주도하고 통제하는 하드코어 포르노를 불편함 없이 바라본다. 저자는 남성 중심적인 21세기 하드코어 포르노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남녀 모두 사정할 수 있는 인간적이고 환각적인 포르노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출산 문제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본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난 여성은 남은 평생을 용감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되면서 배울 수 있는 가치를 다른 일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열어 둔다. 아이 없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자신을 증명하는 여성도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단, 성형수술에 대해서는 여성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 결정한 선택으로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결사코 반대한다. 남성 독자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공격적인 여성주의자’의 목표는 남자를 제압하거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여성의 몫을 챙기는 일이란다. 남자들은 그저 방해만 하지 말자. 원제는 ‘How to Be a Woman’(2011).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블라드(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민음사)=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동유럽의 ‘뱀파이어’ 설화와 ‘꼬챙이 황제 체페슈’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우아하면서도 섬뜩한 공포소설 형식으로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아 냈다. 1만 원.시각예술의 의미(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한길사)=최고의 미술사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도상해석학을 제창하고 그 방법론을 확립했다.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1950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미술사학에 관한 10편의 글을 담았다. 2만8000원.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 지음·인간사랑)=1952년 출간돼 탈식민주의 문화 연구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문학 철학 심리학을 바탕으로 시적 문체로 서술한 책은 저자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1만7000원.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김용택 외 6명·황금시간)=시인 김용택, 편집장 이충걸, 교수 서민, 국회의원 송호창, 요리사 박찬일, 언론인 홍세화, 미술평론가 반이정이 각 7편씩 쓴 49편의 에세이 묶음. 1만3800원.유교를 아십니까(츠치다 켄지로 지음·그물)=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유교를 협의와 광의로 나누어 소개하고, 유교 도덕의 주요 개념, 유교와 유학의 차이, 유교는 종교인지 등을 설명한다. 1만6000원.성게 실험에서 복제양 돌리까지(샐리 모건 지음·다섯수레)=청소년을 위한 복제과학 안내서. 복제과학의 연구 성과와 복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 썼다. 1만2000원.발레하는 할아버지(신원미 글·박연경 그림·머스트비)=소년은 발레를 배우러 다닌다. 외할아버지는 “사내 녀석이 배울 게 없어 ‘빨래’를 배워?”라며 구박한다. 어느 날 소년은 발레 수업 도중 창 너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레를 따라하는 할아버지를 발견하는데…. 1만 원.고양이네 도서관(조현진 글·한여진 그림·상상의집)=야옹이는 주인을 피해 낮잠 잘 곳을 찾다 책꽂이를 발견한다. ‘톰 소여의 모험’ 주인공 톰을 피해 통 속에서 꾸벅꾸벅 졸다 ‘보물섬’으로 가는 배에 오르고, 폭풍을 만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섬에 표류도 한다. 1만2000원.}

비교당하는 입장에선 기분 나쁘겠지만 비교 좀 해야겠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딱 보는 순간,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쓴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가 떠올랐다.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쉽고 재밌게 풀어가는 방식이 닮았다. ‘죽은 경제학자…’가 경제학 입문서로 인기를 끌자 지난해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비즈니스맵)란 비슷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경제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마르크스(1818∼1883)에 대한 서술을 비교해 보자. 두 책 모두 마르크스의 한계를 지적했다. 생산량 증대가 더 나은 삶의 조건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믿음과 달리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놀랄 정도로 윤택해졌다는 것. 그런데 풀어내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마르크스가 책상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본 적도 없고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동시대 천재들과 교류는커녕 자기 생각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못 박는다. 그는 마르크스가 기계화의 참상을 묘사하면서 공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단정한다. 뇌리에 확 박힌다. 반면 ‘죽은 경제학자…’에선 마르크스를 곱씹어 보자며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경제학 이론 위주로 그 한계를 평가한다. 마르크스 비판은 쉽지 않다며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조목조목 친절한 설명에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죽은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를 통해 경제학을 풀어냈다면, 이번 책은 경제학을 빌려 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의 원제도 ‘위대한 추구: 천재 경제학자 이야기’(GRAND PURSUIT: The Story of Economic Genius). 기자 출신인 저자는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삶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뷰티풀 마인드’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 이번에도 괴팍한 경제학자의 모습이 생생히 읽힌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책에 녹여 독자의 눈길을 잡는다. 경제학보다는 천재의 삶이 궁금한 독자에게 추천한다. 책의 두께에 지레 놀랄 독자를 위해 친절하게도 옮긴이가 드라마 시놉시스 형식을 빌려 경제학자의 일생을 책 말미에 정리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첫 차를 구입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새 차를 살지, 중고차를 살지 한참 고민해야 한다. 고민 끝에 구입하고 나서도 후회하기 일쑤다. 자동차 전문기자인 저자는 첫 장에 “새 차 살 능력이 부담스럽다면 중고차로 시작하라”고 딱 잘라 말한다. 현금을 주고 중고차를 사는 게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며, 새 차도 인수하는 순간 중고차가 될 뿐이란다. ‘엔진오일을 자주 갈아야 한다’ ‘순정부품을 써야 고장이 안 난다’ ‘50만 원 이하는 자비 처리가 유리하다’ 같은 자동차 관련 거짓말의 진실을 파헤친다. 꼼꼼히 읽으면 ‘호구 잡힐 일’ 없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독자가 책 출판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대중 모금)에 동참하는 것을 뛰어넘어 직접 책 홍보와 판매에 나서는 ‘북 펀드 2.0’ 시대가 열렸다. 대형 출판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은 출판사’의 차별화 전략이다. 장르문학 전문출판사 북스피어는 지난해 일본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 출간을 앞두고 북 펀드 5000만 원을 모아 화제가 됐다. 올해는 같은 작가의 소설 ‘그림자 밟기’ 북 펀드를 모집해 8000여만 원을 모았다. 지난해의 ‘북 펀드 1.0’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북스피어는 지난해 모인 5000만 원에 빌린 돈을 더해 광고비에 썼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로 책을 알렸지만 단발성 광고라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1년간 1만5000부 이상을 팔면 원금은 물론 투자액의 10%를 돌려주기로 했는데, 1만2000부가량을 팔아 원금만 돌려줬다. 올해는 방식을 바꿨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를 없애고 모금액을 종잣돈 삼아 투자자 102명이 직접 각종 홍보와 판매에 나선다.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차량 문짝 전체에 붙이는 대형 광고 스티커(개당 25만 원)를 투자자와 지인들의 차에 붙이는 것. 참여자가 차를 몰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입소문 광고 효과를 낸다. 여럿이 차를 몰고 전국투어도 떠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투자자에게 한 권씩 책을 공짜로 줬지만 올해는 이것도 없앴다. 책을 직접 사게 만들어 펀드 수익에 기여하도록 한 것. 투자자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책 증정 이벤트를 벌이고,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 가게에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대형 출판사의 덤핑, 사재기, 선인세 경쟁 공세 앞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다 북 펀드를 생각했다”며 “지난해 시행착오를 거쳐 북 펀드 투자자가 직접 책 홍보에 나서도록 했다”고 말했다. 판매는 지난해보다 순조롭다. 지난달 19일 출간 후 3000부를 서점에 배포했는데 딱 열흘 만에 재주문이 들어와 현재 4000부가 팔려 나갔다. 지난해보다 25%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11월까지 3만 부가 팔리면 펀드 수익을 배당한다. 모금 과정도 ‘작은 기적’이었다. 지난달 1일 마감 당일 아침까지 펀드 하한선인 7000만 원에 700만 원이 부족했다. 하지만 곧 펀드 성사 여부 문의 전화가 쇄도하더니 하루 만에 1710만 원이 모였다. 유학 가서 한 달 굶을 각오로 돈을 낸 유학 준비생이나 아내 몰래 형에게 300만 원을 빌려 낸 남자도 있었다. “늘 헌책만 샀는데 처음으로 ‘그림자 밟기’ 새 책을 샀다. 출판사가 잘되는 걸 보면 덩달아 나도 잘되는 것 같다.”(강원 상서우체국장 조희봉 씨·43) “생활비 절반을 잘라 50만 원을 냈다. 3만 부가 팔리면 돈보다는 책 판매에 일조했단 생각에 뿌듯할 것 같다.”(주부 임민정 씨·35)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뿌리깊은 나무’가) 하던 일을 다만 떠도는 전설로 내버려둘 것이냐, 아니면 다시 오늘로 불러내어 더 새로운 일을 하도록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 이제 우리 같은 뒷사람들이 오래 되새기며 풀어야 할 일로 남았다.” -2008년 출간된 단행본 ‘특집! 한창기’(창비) 중에서 1980년 잡지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리’)의 신군부 강제 폐간 이후 태어난 1980년대생 젊은이들이 다시 옛 잡지를 꺼내들었다. 7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38만 원짜리 월세 방에 자리한 대안문화공간 ‘초록옥상’에 6, 7명이 모여 돌아가며 낭독을 하고 토론도 한다. 7월 30일 저녁엔 김선문(29·출판기획자) 조선종(28·대학생) 강수영(27·대학생) 정슬아 씨(25·전직 비행기 운항관리사),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20대 그래픽디자이너까지 5명이 모였다. 책상 위에는 1976년 3월 창간호부터 1980년 8월 폐간호까지 ‘뿌리’ 53권 전권이 올라와 있었다. 헌책 냄새가 솔솔 나는 30여 년 묵은 잡지다. 잡지는 김선문 씨가 구했다. 김 씨는 2009년 출판사에서 일하며 ‘뿌리’를 처음 접했다.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의 삶이나 ‘뿌리’를 다룬 책을 읽으며 잡지 전권을 구해 읽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뿌리’를 찾기 시작해 인터넷 중고 판매 글을 역추적한 끝에 6개월 만에 전권을 구할 수 있었다. 김 씨는 “한 선생이 일생 동안 만든 잡지를 읽고 나도 한번 하나에 미쳐 보자”며 페이스북에 ‘뿌리’ 읽기 모임을 제안하자 뜻있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래 묵은 잡지가 재미있을까. ‘선데이 서울’ 같은 성인잡지도 아닌데…. 조 씨는 “창간호에 백해무익한 담배를 국민 상대로 파는 국가를 질타하는 글이 나온다. 30년이 지난 오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담배를 팔아 돈 버는 국가는 그대로다”라며 “반면 흡연자의 권리가 위축된 모습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것과 바뀌어 가는 것을 찾아가는 작업이 재밌다”고 말했다. 강 씨도 “아파트 사는 사람이 아파트를 흉보고 살아도 되는가 묻는 대목이 나온다”며 “과거에 비춰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정 씨는 “지금 모습을 미래에 보면 어떨까 자주 생각한다. 하나를 선택할 때 30년 뒤 미래에서 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년배들은 취업 공부에 바쁜데 불안감은 없을까. 현대예술 전공인 조 씨는 “발행인처럼 돈 안 되는 일을 돈 되게 하고 싶다”며 “파격적인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선보인 잡지처럼 새롭고 진취적인 작업을 앞으로 펼쳐 볼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뿌리’를 읽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작업을 꿈꾸고 있다. 읽기를 마치면 ‘뿌리’에 등장했던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에 올릴 계획이다. 5월 문을 연 초록옥상 공간에서 최근 홍익대 뮤지션을 초대해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공연도 열었다. 김 씨는 “나이 드신 분들을 그냥 떠나보내는 건 많이 아쉽다. 뿌리를 기반으로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콘텐츠를 많이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문의 sunmoonceo@gmail.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해 영어로 출간돼 화제를 모은 책 ‘한국, 불가능한 나라(Korea: The Impossible Country)’의 한국판이 출간됐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판은 지금까지 2만 부가량 팔렸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서울특파원인 저자 다니엘 튜더 씨(31)는 3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판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한국과는 11년 넘게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어로 모두발언을 했고 질의응답도 대부분 한국어로 했다. 한국어판은 외국 독자를 위한 한국사 설명은 줄이고 오늘날의 생생한 한국 모습을 앞세워 새로 편집했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여성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위험천만한 성형수술을 감내하는 나라이자 새것에만 집착하는 ‘네오필리아(neophilia)’인 동시에 따뜻한 ‘정’과 불가사의한 ‘흥’의 나라다. 튜더 씨는 “서남표 전 KAIST 총장을 만났는데 말끝마다 미국을 언급하며 따라가야 한다고 하더라”며 “한국은 스스로 존경하지 않고 세계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서구권 기준을 무작정 따라가는데, 진짜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남아선호 사상을 개선하는 한국인의 유연성에서 그 저력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다만 “한국인은 항상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야 한다. 만족을 모른 채 좁은 의미의 성공에만 집착하기보다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다”라고 당부했다. 옥스퍼드대 학생이던 튜더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 놀러왔다가 한국인의 응원문화에 푹 빠져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영어강사,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7년 영국으로 돌아가 맨체스터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위스 헤지펀드 회사에 다니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으로 부임했다. 튜더 씨는 조만간 특파원을 그만둔다. 한국에 있으면서 북한 핵문제만 기사로 다루는 일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남한이 북한에 유일하게 뒤진 것이 맥주 맛’이라는 기사를 썼던 그는 서울 이태원에 하우스맥주 가게 ‘더 부스 펍’을 운영하며 책 쓰기에 열중할 계획이다. 한국 진보정치의 방향을 논의하고 ‘경제민주화’ 대신에 ‘경제합리화’를 얘기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황손 이석의 삶을 다룬 소설도 쓸 계획이다. ‘왕의 나라’ 영국에서 온 그의 눈에는 황손의 불행한 인생이 비극으로 비쳤다고 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형 서가가 줄지어 서 있다. 1만3223m²(약 4000평)의 공간에 책 100만여 권이 보관돼 있다. 얼핏 고요한 도서관 풍경을 떠올릴 만하지만 이곳에선 엄청난 ‘속도전’이 펼쳐진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드넓은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분배하고 포장하는 데까지 권당 1분이 채 안 걸린다. 그래서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책을 받는 서비스에 ‘총알배송’이란 이름이 붙었다. 29일 아침 대구 달성군 예스24 대구물류센터를 찾았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007년 서울지역부터 시작해 당일 배송 지역을 확대해 왔다. 7월 대구물류센터가 문을 열어 강원 충청 전라 지역으로 확대됐다. 전국 당일 배송 시대가 코앞에 온 셈이다. 대구물류센터는 기존 파주물류센터의 시스템을 보완해 첨단시설로 만들었다. 하지만 책은 크기와 모양, 두께가 제각각이어서 100% 자동화가 불가능하다. 주문받은 책의 신속하고 정확한 출고를 돕는 자체 프로그램이 있지만 결국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일단 주문이 들어오면 서가에서 책을 꺼내오는 집책(集冊)부터 시작한다. 평균 80여 명의 집책 직원이 1인당 많게는 하루 800여 권의 책을 꺼내 온다. 3명이 한 조가 돼 한 번 집책 때 평균 200권을 찾아온다. 당일 배송은 주문 마감 이후 30분∼1시간 안에 출고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찾아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기자가 테스트 삼아 현장에서 책 한 권을 주문하고 직접 집책과 포장을 해봤다. 주문서에 적힌 알파벳과 숫자가 책의 위치를 알려줬지만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겨우 책을 찾아 곧장 꺼냈더니 지켜보던 직원이 말린다. “제목만 보지 말고 바코드와 대조해야 합니다.” 요령은 바코드의 마지막 4, 5 자리만 빨리 확인하는 것. 시리즈 책은 한 칸에 꽂혀 있지 않다. ‘상’권을 주문한 고객에게 ‘하’권이 배달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다. 책에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 열어 봐서도 안 된다. 집책 직원이 분배 라인으로 책을 갖다 주면 분배 직원이 분배기(50칸짜리 이동식 책장)에 책을 나눈다. 분배기에 책이 쌓이면 포장 라인으로 옮겨진다. 포장 직원은 주문서에 담긴 책과 맞는지 다시 확인한다. 잘못 배송되는 경우가 0.001%밖에 안 되는 비결이란다. 주문 건수마다 부피가 달라 20여 종의 박스에 구분해 담는다. 직원이 포장하는 데는 건당 5, 6초밖에 안 걸린다. 그러나 기자가 책을 박스에 넣고 이른바 ‘쏘세지’(비닐완충재)를 넣어 테이프를 붙이고 마지막으로 송장까지 붙이는 데 1분이 넘게 걸렸다. 마감시간과 정확성에 쫓기다 보니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긴장돼 있다. 과거 다른 업체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강모 씨(32)는 “막연히 기계가 책을 골라 보내 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한 뒤에는 책을 구입할 때 당일 배송 주문을 피한다”고 했다.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 일한다고 한다. 경북 영천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대구로 온 나영란 씨(40·여)는 “제목밖에 볼 수 없지만 많은 책을 보고 만지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대구=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오막살이집에 틀어박혀 10년 세월을 작정하고 책만 읽었다. 아내가 삯바느질로 곤궁한 살림을 이어갔지만 모른 척했다. 참다못한 아내가 버럭 대든 날 허생은 탄식하며 집을 나섰다. 그는 부자에게 빌린 돈을 잘 굴려 큰돈을 벌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의 저자 김병완 씨(43)는 허생과 달랐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다”라는 아내의 엄포에도 1000일 동안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1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33권의 책을 썼다. 그는 스스로를 ‘도서관이 만든 인간’이라고 불렀다. 부산에 사는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나 도서관에 있었다. 김 씨는 강연이 있는 날을 빼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도서관에서 앉아 지낸다. ‘나는 도서관…’에는 2008년 마지막 날 11년간 다니던 삼성전자 연구직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도서관에 틀어박혀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쓴 4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그는 땅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고 회사를 관뒀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과장 3년 차, 일도 잘해서 임원에도 도전해볼 만했다. 그런데 직장생활 11년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직관적으로 도서관을 택했다. 책을 읽으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 2009년 1월 중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내려갔다. 모아둔 돈으로 전셋집을 얻었지만 곧 월세로, 나중엔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살림이 쪼그라들었다. 월세 낼 돈도 떨어진 날 아내는 회사 면접을 보라고 남편 등을 떠밀었다. 김 씨는 “면접을 보고 합격했지만 다음 날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결국 아내가 대신 밥벌이에 나섰다”며 “자존심이 무너진 일도 여러 번 있었지만 책을 30분만 읽으면 근심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하루 온종일 책에 몰두하니 몸도 축났다. 밤에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이 어두워졌고 치질과 손가락 통증으로 고생했다. “그래도 안 할 수가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미쳤다.” 처음 6개월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도서관에서 처음 읽은 책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6개월이 지나자 책을 읽는 법에 눈떴다. ‘하찮은 책’에서도 보석을 캐냈다. 2011년 가을부터 전율을 느끼며 책을 썼다. ‘48분 기적의 독서법’ ‘박근혜의 인생’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기저기 특강도 다닌다. 한 가지 주제나 대상을 정해 관련된 책을 다 찾아 읽으면 그것을 꿰뚫는 통찰력이 생긴다고 했다. 김 씨는 “1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일도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글귀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살림은 나아졌을까. “선비는 편하게 살려고 하면 안 된다. 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런 것에 집중하면 큰 걸 못 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얼마 전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책을 구해 읽었다. 시중에 떠도는 글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단어나 문장을 뜯어고쳐 놓았다. 기계적인 설명이 지루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읽고 나서도 막상 내 글을 쓰려니 자판 위에서 손이 버벅거렸다. 글쓰기 책을 요행을 바라는 심정으로 몇 번 읽어보았는데 결과는 매번 비슷했다. 좋은 글쓰기를 욕심내는 독자라면 이 책이 궁금할 거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을 공개한다고 하니 기대감을 높인다. 저자는 연암 글쓰기의 본질과 정신 전략을 살피고 저자의 분석을 책에 담았다. 연암이 글쓰기에 관해 언급한 글, 빼어난 글도 책에 옮겼다. 독자는 연암이 죽비로 등을 내려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연암의 글을 자연 사물의 생태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나와 타자, 인간과 자연 간의 다양성을 자각하고 상생과 공존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생태 글쓰기’로 정의했다. 생태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 비결 중 하나는 뛰어난 관찰력. 박지원은 코끼리 눈을 묘사하며 ‘초승달처럼 매우 가늘어서 간사한 사람이 아첨할 때 눈웃음부터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연암은 나쁜 글은 엄하게 꾸짖었다. 상투적 표현, 베끼기는 용서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쓰는 말은 먹지도 않을 맛없는 음식을 죽 늘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하다는 말은 이미 참되지 않은 것이라며 단죄했다. 심심한 글도 낙제점을 줬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데면데면 우유부단한 글은 쓸 데가 없단다. 어떻게 써야 할까. ‘사의(寫意)’,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만일 뿐이라고 했다. 글을 짓는 사람이 참되면 된단다. 다만 쓸 때는 전략을 세워 써야 한다. 글자는 군사고 글자가 문장을 이루는 일은 대오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지만 전략은 상황에 따라 변화시켜야 한단다. 아, 어렵다. 그를 상사로 만나지 않은 게 축복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파과(구병모 지음·자음과모음)=평범한 60대 노부인처럼 보이지만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직업 킬러가 어느 날 ‘타인’이란 존재에 눈을 뜨고 슬픔과 공허, 애정 등의 낯선 감정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그렸다. 1만3500원.아무도 보지 못한 숲(조해진 지음·민음사)=사채업자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엄마가 ‘조폭’에게 팔아넘긴 남동생 현수는 12년 뒤 자기 존재를 숨긴 채 누나 미수의 집을 드나들며 필요한 물건들을 조금씩 채워준다. 부재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서글픈 현실을 담았다. 1만2000원.도덕의 두 얼굴(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사람의무늬)=저자는 ‘도덕은 너무 많이 써먹어 버린, 그야말로 오래전부터 과도하게 써먹어 버린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근본적인 삶의 욕구를 억압하는 ‘도덕의 이중성’을 해부했다. 1만4000원.의도하지 않은 결과(케네스 헤이건·이안 비커튼 지음·삼화)=미국이 벌인 10개의 주요 전쟁을 골라 당초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목적과 실제 결과를 분석했다. 6·25전쟁은 불법적인 침략을 당한 한국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일순간 악의 제국인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성전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1만6000원.모사드(미카엘 바르조하르·니심 미샬 지음·말글빛냄)=2011년 11월 이란 테헤란 인근 비밀 미사일 기지 폭격의 배후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있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과 국영방송사 사장이 베일에 싸인 모사드의 활약을 소개한다. 2만2000원.나는 정말 행복한가(강태수 지음·끌리는책)=스스로 행복을 충전하는 ‘셀프 에너자이징 비법’을 담았다. 내 안의 무의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한다. 1만3000원.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아킬 모저 지음·더숲)=탐험가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30여 년간 세계 각지의 사막을 여행하며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기록했다. 그는 “삭막한 광야를 걷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내부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만4000원.모든 동물은 평등하다(피터 싱어 지음·오월의봄)=동물해방 운동을 펼친 헨리 스피라(1927∼1998)의 일생을 담은 평전. 고교 교사였던 그는 미국의 윤리학자인 저자가 쓴 ‘동물해방’을 읽고 고통받는 동물 구하기를 실천했다. 1만6000원.}
책은 태어날 때부터 수분 10%를 갖고 있다. 그런데 책의 습도가 적정 수준(10%)보다 올라가면 곰팡이나 세균의 먹잇감이 된다. 곰팡이로 망가진 책에 코를 대보니 고소한 종이 냄새 대신 역한 냄새가 난다. 24일 열린 국립중앙도서관 전국 도서관 사서 대상 ‘자료재난 대비 응급조치 요령’ 강의에 참가해 장마철 책 관리 요령을 배워봤다. 장마철 책이 침수됐다면 응급조치가 중요하다. 물에 젖은 채 방치하면 3일 안에 곰팡이가 종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가정에선 ‘자연바람 건조’로 책을 살릴 수 있다. 먼저 흙탕물에 침수된 책은 찬물로 깨끗하게 씻어낸다. 씻은 책 사이사이에 흡습지나 갱지, 키친타월을 끼운 다음 살짝 눌러 물기를 뺀다. 단, 잉크가 묻어나는 신문지는 피해야 한다. 물기가 어느 정도 빠졌다면 종이 위에 책을 부채 모양으로 세운다. 선풍기 바람을 이용해 말리며 책 사이에 끼운 종이를 주기적으로 바꿔 주면 좋다. 책을 위아래로 자주 뒤집어 주면 변형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제본된 부분은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하면 완벽하게 말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 앞뒤에 단단한 송판을 대고 아령이나 벽돌 같은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줘야 한다. 책 표지나 속지가 주름지는 걸 막아 준다. 37일째 장마가 이어진 요즘 같은 날씨엔 책장에 꽂아 둔 책의 습도도 15%에 육박한다고 한다. 책장에 오래 꽂아 둔 책을 한 번씩 꺼내 술술 넘기기만 해도 습기 제거에 도움이 된다. 열린 창가에 서서 선풍기를 등진 채 책을 넘기면 곰팡이 포자를 쉽게 날려 보낼 수 있다. 책을 꽂을 때도 여유롭게 꽂아야 습기를 머금어 부푼 책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호우주의보가 내린 12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교동교회 구본선 목사(48)를 만났다. 교동도는 강화군과 배로 불과 15분여 거리에 있는 섬이다. 육지를 잇는 다리는 내년에 완공된다. 구 목사는 2011년 1년간 육지를 오가며 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예배당 24곳을 누볐다. 발품 팔아 쓴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홍성사·사진)은 이달 초 출간됐다. 》책은 기독교인이자 건축을 전공한 장석철 사진가가 24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에 이야기를 더해 만들어졌다. 출판사는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에게 먼저 부탁했지만 이 교수는 구 목사를 추천했다. 구 목사와 ‘처음 예배당’은 인연이 있다. 책 속엔 담기지 않았으나 교동교회는 1899년 설립됐다. 1933년에 세워진 예배당도 지금 교회 인근에 보존돼 있다. 1998년 5월 교동도에 들어온 구 목사는 다음 해 ‘교동선교 100년사’를 동료 목사들과 집필하며 교회사에 눈떴다. 남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하기 좋아해 강화군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도 잘 읽힌다.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지키던 교회를 은퇴한 아들이 보듬고’ 있는 경북 봉화군 척곡교회(1909년)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기독교도로 대한제국 관리였던 김종숙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봉화로 내려와 작은 예배당과 학교를 세웠다. 스스로 목회자가 돼 신앙을 전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아들 김운학은 교회 1대 면려회장(기독교도 청년단체)을 맡아 교회를 지켰다. 종손 김영성 장로는 인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하고 교회로 내려왔다. 교회를 부탁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른 것. 지금도 주일이면 담임목사 부부와 김 장로 부부, 시골 노인 네댓 명이 조촐한 예배를 올린다. 구 목사는 “처음 예배당엔 교회 역사와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예배당이 사라지면 그 역사도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 목사의 소망과 달리 ‘처음 예배당’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교세를 확장한 교회는 망설임 없이 오래된 예배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체육관을 닮은 대형 건물을 세운다. 1930년대 이전 교회 건물은 전국에 30곳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구 목사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서울의 한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교회는 빌딩 옆 역사 깊은 예배당을 창고처럼 방치해뒀습니다. 교회가 옛 예배당을 내팽개치니 교인들은 예배당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지방의 한 교회에선 1930년대 만들어진 예배당을 교인들이 먼저 허물자고 나섰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설득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섬마을 작은 교회 목사가 예배당 취재를 위해 자주 뭍에 나가려니 제약도 많았다. 구 목사는 예배가 없는 요일을 택해 길어야 2박 3일 일정으로 예배당을 답사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타고난 ‘길치’인지라 섬 밖을 벗어나면 직접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동료 목사들이 대신 운전대를 잡아줬다. 구 목사가 5년만 버티자고 아내, 두 딸과 함께 섬에 온 지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그는 직접 9인승 승합차를 몰아 고령의 신도들을 교회로 모셔온다. 90대 할머니 신도는 70대 신도가 차에 오르면 “어린것들이 목사님을 부려먹는다”고 ‘핀잔’도 한단다. 그는 평균 연령이 70세인 신도 25명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95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예배를 거른 적이 없고 88세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 몇 년째 외출을 못해도 교회 헌금은 꼭 전한단다. 먼저 하늘로 간 신도 12명은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교동교회 십자가엔 도시의 교회와 달리 붉은 조명이 없었다. 인위적인 빛을 내지 않아도 빛이 나는 교회였다.교동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