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조작투표 해명해.” 22일 그룹 ‘엑스원’이 참여한 네이버 브이라이브(V앱) 채팅창. 아이돌답게 주로 하트가 난무했지만, 이렇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문구가 자꾸만 반복됐다. 엑스원은 19일 종영한 Mnet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이 선발한 11명으로 꾸려진 화제의 신생 그룹. 결성 뒤 처음으로 팬과 소통하는 자리였지만, 댓글에는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제작진의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이오아이와 워너원, 아이즈원 등 시즌3까지 여러 스타를 배출한 ‘프로듀스’ 시리즈가 시청자 반발이 거세지며 존폐 위기까지 맞고 있다. 참가자 가운데 약 10%만 데뷔하는 경쟁 과정에서 “투표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크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 이전 시리즈도 크고 작은 논란은 있었지만, 이번엔 일부 시청자들이 법적 대응을 준비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실제로 ‘조작’ 근거로 꼽는 대목은 누가 봐도 의문투성이다. 특히 마지막 방송에서 공개한 1∼20위의 득표수가 문제였다. 이날 1위 김요한과 2위 김우석의 표차는 2만9978표였다. 그런데 3위와 4위, 6위와 7위, 7위와 8위, 10위와 11위도 정확히 2만9978표 차이가 났다. 다른 구간에서도 11만9911표와 7494표 차이가 반복됐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는 (투표 수) 차이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던 인기 연습생 이진혁과 김민규가 탈락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팬들은 “사전에 최종 멤버를 정해놓고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종 투표수를 구성하는 사전 온라인 투표와 생방송 문자투표의 세부 점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Mnet 관계자는 “투표 결과를 조작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면서도 “지금 공개해봤자 오히려 반발만 부추기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공개를 꺼리고 있다. 방송계에서도 이번 투표 결과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온라인이나 문자 투표는 대행업체를 통해 받은 결과를 작가들이 관리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있는 한 지상파 PD는 “시청자들은 투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며 “조작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투표는 순위, 득표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듀스…’는 홈페이지에 전체 득표수만 공개하고 상세 정보를 게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진상규명위원회’까지 만든 팬들은 제작진을 사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형사 고소 및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 마포구에 있는 CJ ENM 사옥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도 검토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한 한 팬은 “엑스원이 ‘조작 그룹’이란 오명을 벗고 떳떳하게 활동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의혹을 속 시원히 해명하고 제대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그간 화제성만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방영한 ‘프로듀스48’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팬들이 그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에게 추첨을 통해 비행기 왕복권 같은 고가의 선물을 지급한다고 홍보해 논란이 됐다. 중국 한 온라인 쇼핑몰에선 투표가 가능한 아이디(ID)를 개당 10위안(약 1711원)에 거래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당선과 탈락의 구조라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번 사태는 향후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신뢰를 결정지을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제작진의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조작투표 해명해.” 22일 그룹 ‘엑스원’이 참여한 네이버 브이라이브(V앱) 채팅창. 아이돌답게 주로 하트가 난무했지만, 이렇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문구가 자꾸만 반복됐다. 엑스원은 19일 종영한 Mnet 아이돌 선발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이 선발한 11명으로 꾸려진 화제의 신생 그룹. 결성 뒤 처음으로 팬과 소통하는 자리였지만, 댓글에는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제작진의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이오아이와 워너원, 아이즈원 등 시즌3까지 여러 스타를 배출한 ‘프로듀스’ 시리즈가 시청자 반발이 거세지며 존폐 위기까지 맞고 있다. 참가자 가운데 약 10%만 데뷔하는 경쟁 과정에서 “투표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크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 이전 시리즈도 크고 작은 논란은 있었지만, 이번엔 일부 시청자들이 법적 대응을 준비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실제로 ‘조작’ 근거로 꼽는 대목은 누가 봐도 의문투성이다. 특히 마지막 방송에서 공개한 1~20위의 득표수가 문제였다. 이날 1위 김요한과 2위 김우석의 표차는 2만9978표였다. 그런데 3위와 4위, 6위와 7위, 7위와 8위, 10위와 11위도 정확히 2만9978표 차이가 났다. 다른 구간에서도 11만9911표와 7494표 차이가 반복됐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는 (투표 수) 차이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던 인기 연습생 이진혁과 김민규가 선발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팬들은 “사전에 최종 멤버를 정해놓고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최종 투표수를 구성하는 사전 온라인 투표와 생방송 문자투표의 세부 점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Mnet 관계자는 “투표 결과를 조작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면서도 “지금 공개해봤자 오히려 반발만 부추기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공개를 꺼리고 있다. 방송계에서도 이번 투표 결과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온라인이나 문자 투표는 대행업체를 통해 받은 결과를 작가들이 관리한다. 오디션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있는 한 지상파 PD는 “시청자들은 투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며 “조작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투표는 순위, 득표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듀스…’는 홈페이지에 전체 득표수만 공개하고 상세 정보를 게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진상규명위원회’까지 만든 팬들은 제작진들을 사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형사 고소 및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 마포구에 있는 CJ ENM 사옥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도 검토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한 한 팬은 “엑스원이 ‘조작 그룹’이란 오명을 벗고 떳떳하게 활동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의혹을 속 시원히 해명하고 제대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그간 화제성만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방영한 ‘프로듀스48’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팬들이 그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에게 추첨을 통해 비행기왕복권 같은 고가의 선물을 지급한다고 홍보해 논란이 됐다. 중국 한 온라인쇼핑몰에선 투표가 가능한 아이디(ID)를 개당 10위안(약 1711원)에 거래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당선과 탈락의 구조라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번 사태는 향후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신뢰를 결정지을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제작진의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왁르남 의구쓰 애론.” 당최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고? 9월 ‘파트3’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애청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던 표현이다. 확인해보니, 극에서 “푸른 피를 지녔고 사람보다 빠르면서 힘이 센” 뇌안탈 부족이 쓰는 언어라고 한다. 그럼 위 문구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누리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뇌안탈어(語) 번역기’에 ‘마늘과 쑥의 노래’를 입력하면 이렇게 나온다. 올해 종영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가 떠올랐다면 당신의 드라마 감정 지수는 평균 이상. 애청자들은 왕좌의 게임 ‘도스라키(Dothraki)’ 말과 비견하는, ‘아스날…’에 등장한 한국 드라마 최초의 가상언어를 집중 분석해봤다. ○ 단어의 재배열로 생소함 극대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뇌안탈어 번역기가 뱉어낸 저 문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뇌안탈어는 한글 자모를 거꾸로 재배치해서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방식을 차용했다. 이를테면, 나무(ㄴ+ㅏ+ㅁ+ㅜ)는 뇌안탈어로 ‘우만(ㅜ+ㅁ+ㅏ+ㄴ)’, 사람(ㅅ+ㅏ+ㄹ+ㅏ+ㅁ)은 ‘마랏(ㅁ+ㅏ+ㄹ+ㅏ+ㅅ)’이 된다. 극본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후 8년여 동안 태고 시대의 신비한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전작이 한글 창제를 다룬 작품이었던 데다, 원래부터 훈민정음의 글자 배열에 관심이 많았던 터. 이들의 성향이 언어를 창조하는 데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물론 단순히 한글을 뒤집기만 한 건 아니다. 몇몇 단어는 영어 단어를 한글로 쓴 뒤 재배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마에도 등장한 ‘마늘’이다. 영어 ‘garlic’을 한글 ‘갈릭(ㄱ+ㅏ+ㄹ+ㄹ+ㅣ+ㄱ)’으로 쓴 뒤 뇌안탈어 ‘길락(ㄱ+ㅣ+ㄹ+ㄹ+ㅏ+ㄱ)’을 만들었다. 때문에 ‘사랑’은 ‘아랏(ㅇ+ㅏ+ㄹ+ㅏ+ㅅ)’도 ‘으벌(러브)’도 될 수 있다. 앞서 나온 ‘마늘과 쑥의 노래’ 답은 ‘길락 구쓰 애론’이 맞다. 뇌안탈어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벌써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조사’가 없다. 굳이 따지면 ‘길락 구쓰 애론’은 ‘마늘 쑥 노래’라고 봐야 한다. 김원석 PD는 서면자료를 통해 “조사 없이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이지만 시제와 인칭, 격식도 표현할 수 있다”며 뇌안탈어가 그 나름의 문법체계를 갖춘 언어임을 강조했다. 드라마 속 언어 창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지만,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이런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아바타’(2009년)의 나비족 언어나 드라마 ‘스타트렉’의 클링곤어 등은 작품 흥행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다. ‘왕좌의 게임’의 ‘도스라키’나 ‘발리리아(Valyria)’ 어는 언어학자 데이비드 피터슨이 기본 문법 구조와 단어 3000여 개를 갖춘 언어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발음은 호전적 부족 특성 살려 ‘아스달 연대기’는 뇌안탈어의 발음에도 공을 들였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자문역을 맡았다. 이 교수는 “이 언어는 독일어나 일부 아프리카 언어와 발음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면, 양쪽 성대 사이의 좁은 틈을 막았다 터뜨리면서 내는 성문파열음(聲門破裂音)이 빈번하게 쓰였다. 그런데 목젖을 긁어 어두의 강세가 세고 쉰소리가 많아 ㅁ, ㄴ, ㅇ, ㄹ 등 울림소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최고난도 발음”이다. 때문에 이 교수 연구실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발음 연습시간엔 ‘어흐’ ‘에흐’ 등 요상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뇌안탈어는 전문가인 이 교수조차 발음이 쉽지 않았다. 그 역시 대본을 읽으며 여러 번 NG(?)를 낸 뒤 배우가 참고할 ‘정답 녹음파일’을 제공했다. 솔직히 이 교수는 “한국인 발음에 맞게 순화하는 게 낫다”며 우려했다고. 하지만 김 PD는 “네안데르탈인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이국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태어난 배우 유태오나 4개 언어에 능통한 가수 닉쿤을 섭외한 배경도 이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뇌안탈어 발음을 자연스레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캐스팅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한 문장마다 뇌안탈어와 발음, 뜻 등 세 줄로 만들어진 대본을 밤낮없이 달달 외워야 했다. 특히 유태오는 이 교수가 “음성학 강의를 들었으면 A학점을 받았겠다”며 극찬했다. 그는 “소리와 의미의 연관성이 적어 암기가 어려웠지만 독일어가 입에 배어 그나마 수월했다. 뇌안탈어의 거친 감수성을 이해하는 게 뭣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영향력 있는 인물에 3년 연속 올랐다. 16일(현지시간) 타임에 따르면 BTS는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영국의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빈,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이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명단에 오른 것은 유일한 기록이다. 타임은 “한국 슈퍼 그룹 BTS는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그룹이 돼가고 있다”며 “강한 팬덤인 ‘아미’의 적극적인 온라인 콘텐츠 소비와 홍보 덕분에 BTS가 빌보드 소셜 아티스트 차트에서 2년 넘게 정상을 지키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평했다. 타임은 또 BTS가 1년 안에 ‘빌보드 200’ 1위를 달성한 앨범을 3개나 발매했고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MAPOF THE SOUL: PERSONA)’ 앨범의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 뮤직비디오가 공개 하루 만에 7500만 뷰를 기록했다고 추켜세웠다. BTS 모바일 게임이 여러 국가의 애플 앱스토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성과도 언급했다. 타임이 매년 공개하는 ‘인터넷에서…’ 명단은 올해로 5번째다. 평가 기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세계적인 영향력과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왁르남 의구쓰 애론.” 당최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고? 9월 ‘파트3’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애청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던 표현이다. 확인해보니, 극에서 “푸른 피를 지녔고 사람보다 빠르면서 힘이 센” 뇌안탈 부족이 쓰는 언어라고 한다. 그럼 위 문구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누리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뇌안탈 어(語) 번역기’에 ‘마늘과 쑥의 노래’를 입력하면 이렇게 나온다. 올해 종영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소설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가 떠올랐다면 당신의 드라마 감정 지수는 평균 이상. 애청자들은 왕좌의 게임 ‘도스라키(Dothraki)’ 말과 비견하는, ‘아스달…’에 등장한 한국 드라마 최초의 가상언어를 집중 분석해봤다. ●단어의 재배열로 생소함 극대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뇌안탈 어 번역기가 뱉어낸 저 문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뇌안탈 어는 한글 자모를 거꾸로 재배치해서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방식을 차용했다. 이를테면, 나무(ㄴ+ㅏ+ㅁ+ㅜ)는 뇌안탈 어로 ‘우만(ㅜ+ㅁ+ㅏ+ㄴ)’, 사람(ㅅ+ㅏ+ㄹ+ㅏ+ㅁ)은 ‘마랏(ㅁ+ㅏ+ㄹ+ㅏ+ㅅ)’이 된다. 극본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후 8년 여 동안 태고 시대의 신비한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전작이 한글 창제를 다룬 작품이었던 데다, 원래부터 훈민정음의 글자 배열에 관심이 많았던 터. 이들의 성향이 언어를 창조하는 데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물론 단순히 한글을 뒤집기만 한 건 아니다. 몇몇 단어는 영어 단어를 한글로 쓴 뒤 재배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마에도 등장한 ‘마늘’이다. 영어 ‘garlic’을 한글 ‘갈릭(ㄱ+ㅏ+ㄹ+ㄹ+ㅣ+ㄱ)’으로 설정한 뒤 뇌안탈 어 ‘길락(ㄱ+ㅣ+ㄹ+ㄹ+ㅏ+ㄱ)’을 만들었다. 때문에 ‘사랑’은 ‘아랏(ㅇ+ㅏ+ㄹ+ㅏ+ㅅ)’도 ‘으벌(러브)’도 될 수 있다. 앞서 나온 ‘마늘과 쑥의 노래’ 답은 “길락 구쓰 애론”이 맞다. 뇌안탈 어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벌써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조사’가 없다. 굳이 따지면 ‘길락 구쓰 애론’은 ‘마늘 쑥 노래’라고 봐야 한다. 김원석 PD는 서면자료를 통해 “조사 없이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이지만 시제와 인칭, 격식도 표현할 수 있다”며 뇌안탈 어가 나름의 문법체계를 갖춘 언어임을 강조했다. 드라마 속 언어 창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지만,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이런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아바타’(2009년)의 나비 족 언어나 드라마 ‘스타트렉’의 클링곤 어 등은 작품 흥행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다. ‘왕좌의 게임’의 ‘도스라키’나 ‘발리리아(Valyria)’ 어는 언어학자 데이비드 피터슨이 기본 문법 구조와 단어 3000여 개를 갖춘 언어로 만들어내기도 했다.●발음은 호전적 부족 특성 살려 ‘아스달 연대기’는 뇌안탈 어의 발음에도 공을 들였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자문을 맡은 건 이미 유명한 일화. 이 교수는 “이 언어는 독일어나 일부 아프리카 언어들과 발음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면, 양쪽 성대 사이의 좁은 틈을 막았다 터뜨리면서 내는 성문파열음(聲門破裂音)이 빈번하게 쓰였다. 그런데 목젖을 긁어 어두의 강세가 세고 쉰 소리가 많아 ㅁ, ㄴ, ㅇ, ㄹ 등 울림소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최고난이도의 발음.” 때문에 이 교수 연구실과 드라마제작사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발음 연습시간엔 ‘어흐’ ‘에흐’ 등 요상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뇌안탈 어는 전문가인 이 교수조차 발음이 쉽지 않았다. 그 역시 대본을 읽으며 여러 번 NG(?)를 낸 뒤 배우가 참고할 ‘정답 녹음파일’을 제공했다. 솔직히 이 교수는 “한국인 발음에 맞게 순화하는 게 낫다”며 우려했다고. 하지만 김 PD는 “네안데르탈인을 모티브로 삼은만큼 이국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태어난 배우 유태오나 4개 국어에 능통한 가수 닉쿤을 섭외한 배경도 이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뇌안탈 어 발음을 자연스레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처사였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한 문장마다 뇌안탈 어와 발음, 뜻 등 세 줄로 만들어진 대본을 밤낮없이 달달 외워야 했다. 특히 유태오는 이 교수가 “음성학 강의를 들었으면 A를 받았겠다”며 극찬했다. 그는 “소리와 의미의 연관성이 적어 암기가 어려웠지만 독일어가 입에 배어 그나마 수월했다. 뇌안탈 어의 거친 감수성을 이해하는 게 뭣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17일 오후 9시 반 처음 방영되는 채널A ‘리와인드: 시간을 달리는 게임’은 이수호 PD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상상을 현실로 만든 예능”이다. 박명수, 김종국, 하하를 필두로 나뉜 세 팀은 과거 특정 시기의 사회, 문화, 경제 이슈와 관련된 사업에 투자하게 된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 과거 가치와의 차액을 포인트로 적립해 가장 많은 누적 포인트를 획득하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타임슬립(시간여행) 투자 예능인 셈이다. 출연자들은 1990년대 서울 각지의 유망한 아파트에 투자하거나, 지금은 ‘명반’이 된 음반 제작에 뛰어들 수도 있다. 투자 과정에서는 “그땐 그랬지”라며 무릎을 탁 치는, 수십 년 전 출연자 개개인의 다채로운 기억, 경험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접 경험했던 익숙한 과거이기에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선명하거나 단편적이지 않다. 첫 회를 살짝 엿보는 스포일러를 하자면, 출연자들은 몸풀이 게임 격인 ‘종잣돈 모의고사’에서 1999년 KBS ‘개그콘서트’의 유행어, 최저시급을 묻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물론 투자도 단순한 ‘찍기’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 과정은 모두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다. 세 팀에 제공하는 정보는 신문, 방송, 출판 등 동아미디어그룹의 축적된 자료들을 참고했다. 제작진이 깔아놓은 판에서 출연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온갖 상식, 잔머리, 촉을 동원한다. 때론 협박, 눈속임, 멱살잡이 등 편법(?)도 활용했다고 한다. ‘리와인드’의 큰 축을 담당하는 팀장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다. “인생은 한 방”이라며 ‘투자 1인자’를 꿈꾸는 박명수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하다. 저축 제일주의를 외치는 ‘소비 철벽남’ 김종국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하는 포용력을 지녔다. 하하는 안목보다는 촉을 믿는, 우리가 알던 낙천적이고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다. “전설의 ‘하명국’을 재소환해 놀아보자던 계획이 맞아떨어졌다”는 이 PD의 말처럼 셋은 SBS 예능 ‘X맨 일요일이 좋다’(2006년) 이후 오랜만에 한 프로그램에서 ‘케미’를 선보이게 됐다. 이지혜, 뮤지, 양세찬, 박경, 김하온, 에이프릴 진솔 등 팀원 구성도 신구 조화를 맞췄다.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을 바라보는 2000년대생 김하온, 진솔의 시각도 흥미롭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달하고 투자를 이끄는 역할은 MC 김성주의 몫이다. 그는 출연자들에게 수십 년 전 뉴스를 전달하며 방송 경력 19년 만에 처음으로 앵커 자리를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김성주는 “과거를 소재로 하지만 시청자들이 미래에 있을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출연자의 선택을 보며 시청자 스스로도 어떤 결정을 할지 생각해 본다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17일 오후 9시 반 첫 방영되는 채널A ‘리와인드: 시간을 달리는 게임’은 이수호 PD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던 상상을 현실로 만든 예능”이다. 박명수, 김종국, 하하를 필두로 나뉜 세 팀은 과거 특정 시기의 사회, 문화, 경제 이슈와 관련된 사업에 투자하게 된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 과거 가치와의 차액을 포인트로 적립해 가장 많은 누적 포인트를 획득하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타임슬립(시간여행) 투자 예능인 셈이다. 출연자들은 1990년대 서울 각지의 유망한 아파트에 투자하거나, 지금은 ‘명반’이 된 음반 제작에 뛰어들 수도 있다. 투자 과정에서는 “그땐 그랬지”라며 무릎을 탁 치는, 수십 년 전 출연자 개개인의 다채로운 기억, 경험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접 경험했던 익숙한 과거이기에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선명하거나 단편적이지 않다. 첫 회를 살짝 엿보는 스포일러를 하자면, 출연자들은 몸풀이 게임격인 ‘종잣돈 모의고사’에서 1999년 KBS ‘개그콘서트’의 유행어, 최저시급을 묻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물론 투자도 단순한 ‘찍기’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 과정은 모두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 한다. 세 팀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신문, 방송, 출판 등 동아미디어그룹의 축적된 자료들을 참고했다. 제작진이 깔아놓은 판에서 출연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온갖 상식, 잔머리, 촉을 동원한다. 때론 협박, 눈속임, 멱살잡이 등 편법(?)도 활용했다고 한다. ‘리와인드’의 큰 축을 담당하는 팀장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다. “인생은 한 방”이라며 ‘투자 1인자’를 꿈꾸는 박명수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하다. 저축 제일주의를 외치는 ‘소비 철벽남’ 김종국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하는 포용력을 지녔다. 하하는 안목보다는 촉을 믿는, 우리가 알던 낙천적이고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다. “전설의 ‘하명국’을 재소환해 놀아보자던 계획이 맞아 떨어졌다”는 이 PD의 말처럼, 셋은 SBS 예능 ‘X맨 일요일이 좋다’(2006년) 이후 오랜 만에 한 프로그램에서 ‘케미’를 선보이게 됐다. 이지혜, 뮤지, 양세찬, 박경, 김하온, 에이프릴 진솔 등 팀원 구성도 신구 조화를 맞췄다.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을 바라보는 2000년대생 김하온, 진솔의 시각도 흥미롭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달하고 투자를 이끄는 역할은 MC 김성주의 몫이다. 그는 출연자들에게 수십 년 전 뉴스를 전달하며 방송경력 19년 만에 첫 앵커 자리를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김 씨는 “과거를 소재로 하지만 시청자들이 미래에 있을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출연자의 선택을 보며 시청자 스스로도 어떤 결정을 할지 생각해본다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반일 감정을 건드렸다간 큰일 나죠. 행여나 공든 탑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중견 연예기획사 A사는 최근 소속사 배우 10여 명에게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만 이런 조치에 나선 데엔 까닭이 있다. 최근 배우 이시언이 일본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했다가 “시기상 적절치 않다”며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이 씨는 곧장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나빠지자 방송·연예계에도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방송국이나 제작사는 아예 해외 촬영지 목록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를 자주 다루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은 ‘악플’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가장 반응이 민감한 분야는 ‘댓글에 취약한’ TV 예능 프로그램이다. 몇몇 방송사는 잡혀 있던 일본 로케이션도 취소하고 있다. 한 케이블채널 예능도 이미 일본 현지 촬영을 포함한 기획안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최근 국내로 변경했다. 관계자는 “보통 해외 촬영을 고려할 때 시간까지 고려한 ‘가성비’가 좋아 일본을 자주 선택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일 감정이 수그러들 때까지 자제하기로 했다”고 했다. 특히 여행 예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략 방영 1개월 전에 미리 촬영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현재 방영 중인 대표적 여행 예능들은 ‘다행히’ 일본 편이 남아있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KBS ‘배틀트립’과 tvN ‘더 짠내투어’ 제작진 모두 “예정된 방영분도 없고, 당분간 대상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 등 SNS에 올린 일본 콘텐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특히 경색 분위기 직전 올린 게시물이 갑자기 ‘댓글 전쟁터’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여행 정보를 담은 브이로그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비난과 “여행은 개인의 자유”라는 옹호가 첨예하게 맞붙는다. 하지만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문구가 적힌 불매운동 포스터가 SNS에서 화제일 정도로 비난 목소리가 훨씬 압도적이다. 구독자 217만 명의 인기 뷰티 유튜버인 이사배도 최근 일본 화장품 마스카라를 소개했다가 논란이 거세지자 영상을 삭제하고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미 찍어놓았던 일본 콘텐츠의 업로드(게재)를 포기하는 유튜버들도 많다. 지난달 사비 300만 원을 들여 일본 촬영을 다녀온 한 ‘먹방’ 유튜버는 “이미 편집까지 마쳤지만 구독자가 줄어들까 봐 업로드를 포기했다”고 했다. 구독자가 1만 명이 넘는 한 여행 유튜버도 최근 촬영한 일본 여행 영상을 결국 삭제했다. 그는 “하루에 500명씩 구독을 취소하고 ‘매국노’라고 개인 쪽지까지 보내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자제품 전문 유튜버도 타격이 크다. ‘신상’에 대한 후기를 발 빠르게 올려 인기를 끌고 있는 박모 씨(34)는 “카메라나 게임기는 대부분 일본 제품인데, 아예 콘텐츠 제작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울상을 지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SNS는 소비자 반응이 빠르고 확산력이 커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했던 비중이 컸던 만큼 당분간 콘텐츠 제작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반일 감정을 건드렸다간 큰일 나죠. 행여나 공든 탑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중견 연예기획사 A사는 최근 소속사 배우 10여 명에게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만 이런 조치에 나선 덴 까닭이 있다. 최근 배우 이시언이 일본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했다가 “시기상 적절치 않다”며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이 씨는 곧장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나빠지자 방송·연예계에도 ‘붉은 경고 등’이 켜졌다. 방송국이나 제작사는 아예 해외 촬영지 목록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를 자주 다루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은 ‘악플’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가장 반응이 민감한 분야는 ‘댓글에 취약한’ TV 예능프로그램이다. 몇몇 방송사는 잡혀있던 일본 로케이션도 취소하고 있다. 한 케이블채널 예능도 이미 일본 현지 촬영을 포함한 기획안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최근 국내로 변경했다. 관계자는 “보통 해외 촬영을 고려할 때 비용과 시간 대비 ‘가성비’가 좋아 일본을 자주 선택해왔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일 감정이 수그러들 때까지 자제하기로 했다”고 했다. 특히 여행 예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략 방영 1달 전에 미리 촬영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현재 방영 중인 대표적 여행 예능들은 ‘다행히’ 일본 편이 남아있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KBS ‘배틀트립’과 tvN ‘더 짠내투어’ 제작진 모두 “예정된 방영분도 없고, 당분간 대상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 등 SNS에 올린 일본 콘텐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특히 경색 분위기 직전 올린 게시물이 갑자기 ‘댓글 전쟁터’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여행 정보를 담은 브이로그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비난과 “여행은 개인의 자유”라는 옹호가 첨예하게 맞붙는다. 하지만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문구가 적힌 불매운동 포스터가 SNS에서 화제일 정도로 비난 목소리가 훨씬 압도적. 구독자수 217만 명인 인기 뷰티 유튜버인 이사배도 최근 일본 화장품 마스카라를 소개했다가 논란이 거세자 영상을 삭제하고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미 찍어놓았던 일본 콘텐츠의 업로드(게재)를 포기하는 유튜버들도 많다. 지난달 사비 300만 원을 들여 일본 촬영을 다녀온 한 ‘먹방’ 유튜버는 “이미 편집까지 마쳤지만, 구독자가 줄어들까봐 포기했다”고 했다. 구독자가 1만 명이 넘는 한 여행 유튜버도 최근 촬영한 일본 여행 영상을 결국 삭제했다. 그는 “하루에 500명씩 구독을 취소하고 ‘매국노’라고 개인 쪽지까지 보내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자제품 전문 유튜버도 타격이 크다. 신상에 대한 후기를 발 빠르게 올려 인기를 끌고 있는 박모 씨(34)는 “카메라나 게임기는 대부분 일본 제품인데, 아예 콘텐츠 제작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울상을 지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SNS는 소비자 반응이 빠르고 확산력이 커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했던 비중이 컸던 만큼 당분간 콘텐츠 제작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하던 대로 했어도 성공은 보장됐겠죠.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습니다. 뭣보다 한국인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미국 디즈니의 캐릭터 슈퍼바이저. 한국 영화제작사 ‘로커스’의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60·사진)은 3년 전 업계에서 꿈처럼 선망하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애니메이션영화 ‘레드슈즈’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는 ‘주먹왕 랄프2’ ‘겨울왕국2’ 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한데 김 감독은 20여 년간 몸담았던 디즈니를 곧장 퇴사했다. 10일 서울 제작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스스로를 뛰어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김 감독이 3년 동안 공들인 영화 ‘레드슈즈’가 25일 개봉을 앞뒀다. 마법구두를 신고 미인으로 변한 ‘스노 화이트(백설 공주)’와 저주에 걸린 난쟁이 왕자들을 다룬 토종 애니메이션. 동화 백설 공주를 모티브로 하되 전혀 다른 스토리로 풀어냈다. 모든 작품 캐릭터를 구상한 김 감독은 캐스팅 전부터 스노 화이트 역에 할리우드 배우 클로이 머레츠를 염두에 뒀다. 그가 출연한 영상 수십 편을 찾아보며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말할 때 왼쪽 눈을 살짝 찡그리는 습성까지 디테일로 살린 결과 실제 캐스팅으로도 이어졌다. 머레츠는 “정말 특별한 작품이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레드슈즈’는 순제작비만 220억 원을 투입한 대작. 하지만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독립영화 수준”이었기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적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은 잊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번개’라고 쓰인 부적을 든 멀린은 애정 가득한 한국인 캐릭터다. “고생이 많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 자평합니다. 어쩌면 영화를 보고 ‘너무 디즈니 같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결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랐단 뜻 아닐까요.”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입니다.” 대통령 국정 연설이 열리던 국회의사당이 의문의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붕괴되자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박무진(지진희) 환경부 장관은 엉겁결에 대통령 자리를 맡게 된다. 미국 ABC방송,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원작으로 하지만, 1일부터 방영 중인 tvN ‘60일, 지정생존자’ 곳곳엔 현지화를 고심한 흔적으로 가득하다. 지정생존자는 ‘권한대행’으로, 제목엔 ‘60일’이 추가됐다. 대통령 유고 시 지정생존자가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는 미국과 다르게, 한국은 60일 이내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만 권한대행이 국정 운영을 대행하기 때문. 그래서 “상상력을 적용하자니 헌법의 차이가 있었다. 원작처럼 몇 달, 혹은 재선이 아니라 60일 안에 한정된 이야기를 그리게 됐다”는 것이 유종선 PD의 말이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으로서 정무적 감각을 지녔던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과 다르게 KAIST 교수 출신 박무진은 양복과 구두도 불편해하는 정치 문외한이다. 그래서 조력자 한주승(허준호) 대통령비서실장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원작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와 서사가 유사하다”는 분석이 많다. 한주승에게서 광해(이병헌)를 올바른 왕으로 길러내는 허균(류승룡)을 떠올리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국력 차이도 다분히 현실적이다. 원작에서 미국은 이란의 도발에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슈퍼파워’를 지녔지만,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한반도에선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테러를 북한의 소행으로 본 일본은 동해에 군함을 파견하고,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빌미로 한국 정부를 통제하려 든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하는 장면은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를 상기시킨다. 연평도 포격도발, 천안함 폭침 등을 떠오르게 하는 이름만 달라진 사건들이나 국가 비상사태에도 재연되는 대북 강경파와 온건파의 해묵은 갈등 역시 “한국 드라마만이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이라는 평이 나온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이 태국의 멸종 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채취하는 장면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방영된 ‘정글의 법칙’에는 배우 이열음이 태국 남부 꼬묵섬 주변 해역에서 대왕조개 3개를 채취하는 장면이 담겼다. 다음 화 예고편에서는 대왕조개를 시식하는 멤버들의 모습도 공개됐다. 태국에서 대왕조개는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돼 이를 채취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태국 핫차오마이 국립공원은 3일 경찰에 이 씨를 국립공원법, 야생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제작진은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지만 7일 현지 매체 타이 피비에스(PBS)에 따르면 태국 관광스포츠부와 제작진이 주고받은 공문에 담당 PD는 “태국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방송으로 송출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누리꾼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송을 강행한 제작진을 비판하며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했다. 자신을 다이버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지반에 단단하게 고정돼 있는 대왕조개는 잠수해서 쉽게 들고나올 수 없다며 제작진이 미리 채취한 것을 이 씨가 들고나오도록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6일 방송에서는 예고편과 달리 대왕조개가 나오는 장면 없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SBS는 “이열음 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내부 조사 결과에 따라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8일 밝혔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방탄소년단(BTS) 해외 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이 가사 ‘선행학습’을 해오기 때문. BTS의 ‘IDOL’ 뮤직비디오에는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추임새가 ‘Hooray it‘s so awesome’, ‘Bum badum bum brrrrumble’ 등 외국인도 알기 쉽게 번역돼 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노래”라고 해외 팬들이 치켜세우는 데 번역도 한몫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적절한 번역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해외 팬들에게 탄탄한 아이돌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나 문학에서도 K콘텐츠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케이팝은 그 중심에 국내 팬들이 있다. 이들은 소속사에서 운영하는 아이돌 공식 계정과 별개로 신곡이 나오면 부지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러 외국어로 가사를 번역해 나른다. 트위터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등 일명 ‘번역계’라 불리는 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가사뿐 아니라 아이돌 소식이 담긴 한국어 기사,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 영상까지 번역한다. ‘Oppa(오빠)’ ‘Unnie(언니)’ ‘Aegyo(애교)’ 등 ‘돌민정음’(아이돌과 훈민정음을 합한 신조어)을 소개한 글도 수두룩하다. BTS 팬 박현정 씨(23·여)는 “해외 투어를 다니기 시작하면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 활동하든 ‘팬질’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영화 번역의 중요성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더욱 조명 받고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똥파리’(2008년) 이후 독립영화도 외국어 자막을 제작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칠곡 가시나들’(2018년)은 할머니들의 경북 사투리를 미국 남부 사투리로 표현해 말맛을 살렸다. 표현이 한국적일수록 번역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기생충’ 번역을 맡았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짜파구리’를 라면(Ramen)과 우동(Udong)을 합친 ‘Ramdong’으로 번역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카카오톡’과 ‘곱등이’는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왓츠앱’ ‘노린재(Stink bug)’로 바꿨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특히 의역과 직역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는 일은 번역자와 감독에겐 큰 고민거리다. ‘기생충’에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에게 기택(송강호)이 한 이 말은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돼야 한다”는 봉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옥스퍼드대로 교체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는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가 됐다. 최근 각광 받는 K문학의 번역자는 한국인, 외국인, 교포 2세 등으로 다양하다. 한쪽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공동 번역자를 두거나 제3자에게 초벌 번역을 의뢰하기도 한다. 문학 번역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난도가 높다. 작가의 숨은 의도와 문체의 맛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 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예전보다 상황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검증된 번역자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시 번역은 뭣보다 까다롭다.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데다 사전에 없는 관용구 빈도가 높아서다. 이 때문에 시인과 번역자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주어를 넣느냐 빼느냐, 관용 어구를 어떻게 옮기느냐 등 구조가 달라 논의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의 산물은 큰 찬사를 받는 결과물로 탄생하기도 한다. 최정례 시인(54)의 시 ‘얼룩덜룩’은 영국인 번역가 매토 맨더스롯과 협업해 2017년 ‘Zebra Lines’로 번역했다. 나무 그늘에 몸이 얼룩덜룩한 모습을 ‘얼룩말 무늬’로 표현한 것. 당시 옥스퍼드대에서 한국 시 최고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화콘텐츠 번역은 여전히 부차적 요소로 취급받는다. 그렇다 보니 번역자들은 여전히 빠듯한 마감 시간에 시달린다. 번역비도 중국, 일본 시장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파켓 씨도 “5일 만에 급하게 완성해 넘긴 영화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번역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웹소설이나 웹드라마 등 새로운 콘텐츠가 출현하고, 유튜브 등 유통 방식도 다양해졌다”며 “번역 방식과 플랫폼도 이런 흐름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설 기자}

방탄소년단(BTS) 해외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이 가사 ‘선행학습’을 해오기 때문. BTS의 ‘IDOL’ 뮤직비디오에는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추임새가 ‘Hooray it’s so awesome‘, ’Bum badum bum brrrrumble‘ 등 외국인도 알기 쉽게 번역돼 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노래”라고 해외 팬들이 추켜세우는데 번역도 한몫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적절한 번역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해외 팬들이 탄탄한 아이돌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나 문학에서도 K-콘텐츠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케이팝은 그 중심에 국내 팬들이 있다. 이들은 소속사에서 운영하는 아이돌 공식 계정과 별개로 신곡이 나오면 부지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러 외국어로 가사를 번역해 나른다. 트위터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등 일명 ’번역계‘라 불리는 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가사뿐 아니라 아이돌 소식이 담긴 한국어 기사,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 영상까지 번역한다. ’Oppa(오빠)‘ ’Unnie(언니)‘ ’Aegyo(애교)‘ 등 ’돌민정음‘(아이돌과 훈민정음의 합한 신조어)을 소개한 글도 수두룩하다. BTS 팬 박현정 씨(23·여)는 “해외 투어를 다니기 시작하면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 활동하든 ’팬질‘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영화 번역의 중요성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더욱 조명 받고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똥파리‘(2008년) 이후 독립영화도 외국어 자막을 제작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칠곡 가시나들‘(2018년)은 할머니들의 경북 사투리를 미국 남부 사투리로 표현해 말맛을 살렸다. 표현이 한국적일수록 번역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기생충‘ 번역을 맡았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짜빠구리‘를 라면(Ramen)과 우동(Udong)을 합친 ’Ramdong‘으로 번역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카카오톡‘과 ’곱등이‘는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왓츠앱‘, ’노린재(Stink bug)‘로 바꿨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특히 의역과 직역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는 일은 번역자와 감독에겐 큰 고민거리다. ’기생충‘에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에게 기택(송강호)이 한 이 말은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돼야한다”는 봉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옥스퍼드대로 교체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는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가 됐다. 최근 각광 받는 K문학의 번역자는 한국인, 외국인, 교포2세 등으로 다양하다. 한쪽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공동 번역자를 두거나 제3자에게 초벌 번역을 의뢰하기도 한다. 문학 번역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작가의 숨은 의도와 문체의 맛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 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예전보다 상황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검증된 번역자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시 번역은 뭣보다 까다롭다.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데다 사전에 없는 관용구 빈도가 높아서다. 때문에 시인과 번역자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주어를 넣느냐 빼느냐, 관용 어구를 어떻게 옮기느냐 등 구조가 달라 논의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의 산물은 큰 찬사를 받는 결과물로 탄생하기도 한다. 최정례 시인(54)의 시 ’얼룩덜룩‘은 영국 번역가 매토 맨더스롯과 협업해 2017년 ’Zebra Lines‘로 번역했다. 나무 그늘에 몸이 얼룩덜룩한 모습을 ’얼룩말 무늬‘로 표현한 것. 당시 옥스퍼드대학에서 한국시 최고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화콘텐츠 번역은 여전히 부차적 요소로 취급받는다. 그러다보니, 번역자들은 여전히 빠듯한 마감시간에 시달린다. 번역비도 중국, 일본 시장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머물러있다. 파켓 씨도 “5일 만에 급하게 완성해 넘긴 영화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번역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웹 소설이나 웹드라마 등 새로운 콘텐츠가 출현하고, 유튜브 등 유통 방식도 다양해졌다”며 “번역 방식과 플랫폼도 이런 흐름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이설 기자 snow@donga.com}

캐스팅 제의를 받고 처음엔 걱정도 됐다. 부도덕적이고 지탄받아 마땅한 그 ‘금지된 사랑’이라니.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이야기에 “깊숙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배우 박하선(32), 이상엽(36)은 5일 처음 방영되는 채널A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오세연)을 두고 “우리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입을 모았다. 무미건조한 부부 관계에 사랑을 잃어간, 결혼 5년차 지은(박하선)에게 대안학교 생물교사 정우(이상엽)가 다가온다. 그 역시 미국에 아내를 두고 ‘싱글’처럼 살아왔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저마다 관계의 균열을 인지하고 있는 ‘오세연’의 부부들은 아슬아슬한 일탈을 이어간다. 박 씨의 말대로, 금지된 사랑으로 역경을 겪는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다. 원작은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일본 후지TV 드라마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2014년)이다. 원작의 팬이었다는 이 씨는 “한국적 정서에 맞게 바뀌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원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연출을 맡은 김정민 PD도 배우들에게 자극적인 요소보단 부부의 감정을 최대한 담백하게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불륜을 조장하거나 미화시키는 작품이 절대 아니에요. 이해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그려냈죠. 살면서 겪는 외로움, 슬픔 등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려 했어요.”(박하선) 수수한 외모와 조용한 성격의 지은을 그려내기 위해 박 씨는 화면에 어떻게 잡힐까 걱정될(?) 정도로 화장을 최소화했다. 쾌활하고 직설적인 실제 성격과의 괴리 때문에 답답함도 많이 느꼈단다. 그는 “촬영할수록 지은에게 동화됐다. 촬영이 끝나고 집에 혼자 있는데 자책감과 우울감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물론 부부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됐다. 미혼인 이 씨는 처음 연기할 때만 해도 정우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옆에 있는 배우들과 캐릭터의 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본의 깊이가 느껴졌고 점점 정우에게 빠져들게 됐어요.”(이상엽) 지금껏 해왔던 작품들과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세연’은 이 씨에게 또 다른 도전인 셈. 지난해 tvN ‘톱스타 유백이’에서 코믹한 연기를 선보인 이 씨는 “진지하고 애잔한 정우를 이질감 없이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2016년 tvN ‘혼술남녀’ 이후 3년 만에 복귀한 박 씨는 그간 결혼과 출산을 경험했다. “솔직히 사극, 로맨틱 코미디가 익숙하고 편하죠. 좀 더 어렸다면 이 드라마를 못했을 것 같아요. 감정이 더 풍부해지니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박하선) 둘 다 편집본을 보며 시간 순삭(순식간에 삭제)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 씨는 특히 “영상미에서도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느껴졌다”고 강조했다. “처음으로 제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잘 전달된다면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실 거라 생각해요.”(박하선)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4일 개봉될 예정인 영화 ‘나랏말싸미’가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에 휘말렸다. 2일 출판사 나녹은 “원작자에 대한 동의 없이 영화를 제작했다”며 제작사와 배급사, 조철현 감독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출판사는 “제작사와 감독이 출판사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책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을 토대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고 투자를 유치했다”며 “출판사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협의를 시도했고, 협의 마무리 전에 영화 제작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제작사 ‘㈜영화사 두둥’은 이 책이 영화의 원 저작물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불교계 신미 대사가 관여했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해석”이라며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 참여한 책의 저자인 박해진 작가에게 고액의 자문료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또 “‘제작사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구하기 위해 박 작가를 상대로 저작권침해정지청구권 등 부존재 확인의 소를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박 작가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시나리오 기획 과정에 참여했지만, 제작사는 내 책을 원안으로 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연구한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 기사에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보다 천진난만한 슈퍼 히어로가 또 있을까. 2일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년)에서 쟁쟁한 슈퍼히어로들에게 “모두들 안녕?”이라며 등장했던, 그 모습 그대로다. 타노스와의 전투 이후 5년간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일상으로 돌아온 파커는 친구들과 떠난 유럽 여행에서 새로운 빌런(악당) ‘엘리멘탈’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여전히 10대인 스파이더맨에게 지구를 지키는 일은 “거물급 슈퍼히어로가 해결할 문제”이고, 마음은 짝사랑하는 친구 MJ(젠데이아 콜먼)에게 향해 있다. 이번 작품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에서 사망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다. 한데 우울하기보단 경쾌한 톤. 극 초반 그를 추모하는 사진과 함께 흘러나오는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는 폭소를 유발할 정도다. 1일 내한 간담회에 참석한 홀랜드에게도 ‘로다주’의 빈자리는 컸다고 한다. 그는 “누구도 아이언맨을 대체할 순 없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로버트에게 이따금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고 말했다. 사고뭉치 청소년이자 ‘완성형’ 히어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홀랜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는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결을 달리한다. 샘 레이미 감독(2002∼2007년)은 파커(토비 매과이어)의 우울함을 앞세웠고, 마크 웹 감독(2012∼2014년)은 파커(앤드루 가필드)의 깐죽거림을 특화시켰던 터. 영화는 아이언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고민하는 스파이더맨의 성장기를 하이틴 영화스럽게 담아낸다. “아이언맨은 억만장자, 토르는 신인데 스파이더맨은 완벽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슈퍼히어로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우리 모두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라기엔 무게감이 떨어지긴 한다. 우주를 누비는 캡틴 마블(브리 라슨)이 레이저를 쏘는 스케일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시리즈를 총정리하는 4벌의 스파이더맨 의상과 베네치아, 프라하 등 아름다운 도시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특히 거미줄을 쏴대며 수백 개의 드론과 벌이는 런던 전투는 단연코 스파이더맨만이 할 수 있다. 줄곧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캐스팅 물망에만 올라오다 처음으로 슈퍼히어로 영화에 출연하는 제이크 질런홀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미스테리오’ 역할을 맡은 그의 연기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복합적인 성격의 빌런으로 호평을 받은 벌처(마이클 키턴)와 견줄 만하다. “쫄쫄이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던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6년) 촬영에 이어 두 번째 내한했다. “한국에 오기 전 봉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e메일로 식당을 추천해줬어요. 그곳에서 어제 톰과 저녁을 먹었습니다(웃음).”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KBS가 ‘진실과 미래위원회’(진미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내렸다. 1일 KBS는 ‘진미위’의 징계 대상에 오른 전 보도국 간부 가운데 10여 명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정지환 전 보도국장은 해임 통보를 받았고 3명은 3∼6개월의 정직, 1명은 감봉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에게는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앞서 진미위는 지난해 6월부터 10개월간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의 편성규약, 취업규칙 위반 사례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2008년 대통령 주례연설 청와대 개입 문건 등 22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5건의 사례를 근거로 19명에 대한 징계를 양승동 사장에게 권고했다. KBS는 지난달 초부터 이들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순차적으로 열어왔다. 지난달 일부 징계 대상자들이 “진미위 운영 규정에 문제가 있다”며 서울남부지법에 징계절차 중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만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KBS 공영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과거 사장 시절에 간부를 지낸 것에 대한 명백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영화의 만듦새와 스타일로 볼 때 당연히 칸에 초청될 줄은 알았죠. 그런데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기생충’이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달라진 한국 관객들의 힘이죠.” 영화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제작사인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51)는 관객 500만 명, 잘해야 700만 명을 예상했다고 한다. 극장가 비수기로 불리는 5월,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던 2011년 ‘써니’(745만 명)를 기준점으로 삼은 탓이다. 하지만 5월 26일(한국 시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평가나 흥행 면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달 29일 기준 국내 관객 940만 명을 돌파한 ‘기생충’은 이르면 이번 주 ‘괴물’(2006년)에 이어 봉준호 감독(50)의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예술적 면에서 대중적인 ‘기생충’의 기록들 ‘기생충’의 가장 큰 수확은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점이다. 그간 칸의 부름을 받은 한국 영화들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으로 인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기생충’을 제외하고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한국 영화 16편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작품은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428만 명). 순제작비 135억 원인 ‘기생충’은 손익분기점을 닷새 만에 가뿐히 넘겼다. 봉 감독 작품이라 재미있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정해 놓고 작품에 들어가지 않는다. 두 부분을 나눠 저울질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생충’을 ‘피아노’(1993년)나 ‘펄프픽션’(1994년), ‘어둠 속의 댄서’(2000년)와 비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역시나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5일(현지 시간) 프랑스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18일 만에 관객 68만 명을 돌파하면서 봉 감독의 이전 작품인 ‘설국열차’(2013년)가 갖고 있던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기록을 넘어섰다. 심지어 지난달 17일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쾌거도 이뤘다. 상영관도 180여 개에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현지 언론은 “‘펄프픽션’ 이후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중”(프랑스퀼튀르), “가족영화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특유의 다양한 천재성을 발휘한다”(르몽드) 등 호평을 쏟아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각국에서 개봉이 이어지며 ‘기생충’ 열풍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칸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192개국에 팔린 ‘기생충’은 이후 10개국에 추가로 판매됐다. 세계 202개국 판매는 역대 한국 영화 1위 기록이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넘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도 들 수 있다”(뉴욕타임스)는 예상까지 나올 정도다. 향후 각종 영화제에서 ‘상복’을 누릴 일만 남았다.○ 공감하고 논쟁하는, 관객들의 영화 곱씹기 봉 감독의 전작 ‘괴물’ ‘마더’(2009년)보다 메시지가 명료하고 ‘설국열차’나 ‘옥자’(2017년)에 비해선 반전의 충격이 강하며 서사의 몰입도도 높다. 해외에서 찬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짜빠구리’ ‘반지하’ 등 영화 곳곳에 “한국인만 100% 이해할 디테일”들이 가득해 친근하다. 화룡점정처럼 복선마저 깔끔하게 회수돼 “완성도가 높다”는 평이다. 뭣보다 ‘빈부격차’라는 세계적 이슈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기택(송강호)네, 언덕 위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모두가 선악의 이분법으로 쉽게 재단하기 힘든 입체적인 인물들. 봉 감독도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가족을 넘나드는, 감정이입을 경험했다”는 관객의 반응이 나온 건 꽤나 잘 짜인 수순대로 흘러간 셈이다. 특히 ‘기생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영화 속 장치에 대한 해석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점이 눈에 띈다. 20, 30대는 기우(최우식)의 팍팍한 삶에서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청년 실업에 공감했다. 40, 50대는 기택을 통해 가장의 무게감을 떠올렸다. “변기가 높은 곳에 위치한 반지하의 디테일을 정확하게 구현했다” “대중교통을 탈 때 정말 ‘냄새’를 맡아봤다” 등 소소한 경험을 털어놓거나, 박 사장과 연교(조여정)의 애정행위 등을 언급하며 15세 관람가인 ‘기생충’의 관람 등급을 문제 삼는 냉철한 지적도 있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소위 ‘킬링타임’용 영화와 다르게 관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새 문화를 만든 셈이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재관람률이 4.9%에 이르는 ‘N차 관람’ 열풍이 이어졌다. 영화를 3번 봤다는 김종민 씨(42)는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처음 볼 땐 재미를, 두세 번째엔 슬픔과 공포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와중에 “스토리 전개를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던 개봉 전 봉 감독의 이례적인 요청을 관객들도 이해한 것일까. 관객들이 앞장서서 스포일러를 거부하는 ‘자발적 마케팅’도 잇따랐다. 오죽하면 프랑스에선 박 사장이 아내 연교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에다 “Si tu me spoiles la fin, je te tue!”(스포일러하면, 널 죽여버리겠어)라는 문구를 달아 포스터를 제작했으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봐야 충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관객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순기능적인 마케팅 효과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봉 감독도 지난달 23일 800만 명 돌파 기념 GV(관객과의 만남) 행사에서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영화계 ‘선한 영향력’ 계속돼야 봉 감독은 “우리만 유별난 건 아니다”라고 겸양했지만, ‘기생충’은 모든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 52시간을 준수한 ‘좋은 영화 만들기’의 표본이 됐다. 첫 표준근로계약 사례가 아닌데도 조명을 받은 건 그간 우리 사회가 영화 제작진의 처우에 무관심했다는 증거다. 60여 회 차 사이즈였지만 제작비 상승을 감수한 제작사의 ‘통 큰’ 배려로 77회 차에 촬영을 마쳤다. 폭염에 아역배우가 뛰노는 장면을 촬영할 수 없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한 건 이미 유명한 얘기가 됐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년)을 시작으로 표준근로계약이 정착돼 온 영화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방송계가 반응한 건 칸의 위력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만들었고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출범해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미약하지만 ‘선한 영향력’이 문화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물론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을 맺은 작품 비율은 2015년 36.3%에서 지난해 77.8%로 늘었지만 10억 원 이하 저예산 독립영화 등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대형 투자사가 없는 영화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대로 영화를 만들기 버겁다”는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의 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포스트 봉준호’ 양성을 위해선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용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의 다양성이 감소되고 흥행 공식을 답습한 유사 영화들이 재생산될 때마다 ‘한국 영화의 위기설’이 흘러나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의미다. 곽 대표도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 젊은 감독들의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많았던 2003년을 떠올리며 “‘기생충’이 이런 분위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흥행에 대한 부담으로 도전을 주저하게 된 업계 분위기가 유망한 감독의 창의성을 억압하진 않는지 반성해 볼 때다. 신규진 문화부 기자 newjin@donga.com}

여름 성수기를 앞둔 국내 극장가에 디즈니 돌풍이 매섭다. 박스오피스는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가 선두 자리를 놓고 집안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지난달 24일부터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알라딘’은 최근 관객 수 800만 명을 돌파했다. 5월 23일 개봉한 뒤 박스오피스 역주행만 5번에 이른다. ‘기생충’이 개봉한 직후 2위로 밀려났던 ‘알라딘’은 뒷심을 발휘해 지난달 20일 개봉한 ‘토이스토리4’와 함께 1, 2위 자리를 오르내리고 있다. ‘토이스토리4’도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기세를 이어갔다. 두 영화 모두 원작에 대한 애정이 두터운 팬들의 지지가 컸다. ‘알라딘’은 판타지적 요소가 많아 실사영화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1992년 원작 애니메이션을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해 현대적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호평. 특히 4DX관 싱어롱(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화 감상) 상영도 관객 수 60만 명을 목전에 뒀다. ‘토이스토리3’(2010년)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토이스토리4’는 전작의 동화적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드레스를 벗고 저돌적인 해결사로 나선 인형 보핍을 전면에 내세워 달라진 시대를 잘 반영했다. 디즈니의 흥행 열풍은 1994년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만든 ‘라이온킹’(17일 개봉)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